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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한국정치 난맥 드러낸 국회법 개정안 거부 파동

    박근혜 대통령이 결국 위헌 시비에 휘말린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하면서다. 국회가 개정안을 처리할 때 삼권분립 논란이 일면서 예견됐던 일이다. 그래서 거부권 행사 자체보다 정치권과 여당의 원내 사령탑을 작심 비판한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정국에 더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여당 내 분란은 물론 야당의 반발이 야기할 정국 혼란이 길어질까 사뭇 걱정스럽다. 거부권 행사는 헌정사를 통틀어 이번이 73번째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처음이지만 놀랄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의 당위성을 설명하느라 국회를 정면 비판하면서 정국에 쓰나미를 몰고 온 형국이다. 즉 “국회의 행정 간섭의 ‘저의’를 이해 못해”, “배신의 정치는 국민이 선거에서 심판해야”라는 등 정치권에 강한 불신감을 표출하면서다. 우리는 이런 후폭풍을 여야가 자초했다고 본다. 대통령의 언급처럼 국회법 개정안이 “행정 업무를 마비시킨다”고 단정할 순 없겠으나, 삼권분립 위반 소지가 큰 건 사실이다. 시행령 등 행정입법의 수정·변경 요구권을 국회가 갖는 대목이 그렇다. 국회가 입법하면 정부가 필요한 시행령을 만들어 변화하는 민생 현장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건 당연하다. 시행령이 모법에 어긋나는지는 사법부가 가리고, 정부의 자의성이 의심되면 국회는 모법을 바꾸거나 새 법을 제정하면 된다. 이런 법리 해석상의 차이를 떠나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사이의 불신감이 이번 거부권 파동의 본질이란 생각도 든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해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지 않나. 경제 활성화 법안들은 3년째 깔아뭉개면서 여야가 국회법 개정안으로 정쟁을 부른 데 따른 이유 있는 불만 표시다.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국회법 개정이란 혹을 달 당위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이는 박 대통령 스스로의 소통 노력 부족을 탓해야 할 근거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세월호나 메르스 사태처럼 악재를 만날 때마다 늘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곤경을 자초했지 않는가. 까닭에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바람직하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위헌 소지는 개정된 국회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문제가 빚어질 때 다툴 수도 있다. 가뜩이나 온 국민이 메르스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야권의 반발과 정치 일정 중단도 문제지만, 친박 대 비박으로 갈라치는 ‘뺄셈 정치’도 국정 동력 약화 요인이다. 이번 거부권 파문으로 극심한 진영 논리와 정쟁으로 바람 잘 날 없는 한국 정치의 난맥상이 재확인됐다.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라 해도 정국 급랭이 문제다. 하지만 물은 엎질러졌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로 국민이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오래 방치해선 안 된다. 여당은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에 부쳐 3분의2 의결할 명분이 없다고 본다면 당론을 모아 자동폐기 수순을 밟는 등 신속히 결자해지하기 바란다. 야권도 이번 사태를 다른 사안과 연계하는 구태를 재연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 이종걸 최고위 불참 ‘당무 거부’…새정치연, 최재성發 내홍 격화

    이종걸 최고위 불참 ‘당무 거부’…새정치연, 최재성發 내홍 격화

    혁신위원회 출범으로 봉합됐던 새정치민주연합 당내 갈등이 또 곪아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표의 최재성 사무총장 인선을 반대했던 이종걸 원내대표 등 비노(비노무현) 진영 인사들은 24일 최고위원회의에 대거 불참한 데 이어 25일 의원총회에서 당직 인선을 비롯한 현안을 공론화할 방침이다. 비노 진영의 반발이 ‘원심력’으로 작용한다면 9월에 발표될 혁신안과 맞물려 ‘신당론’이 힘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표는 통합을 추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분열로 나가려고 하는 데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현재로선 최고위에 나가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분열의 정치를 한다면 당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열린 최고위원회는 당직 인선 후폭풍으로 어수선했다. 이 원내대표는 항의의 뜻으로 불참했다. 신임 당직자 중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김관영 수석사무부총장과 박광온 비서실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문 대표는 이 원내대표의 불참에 대해 “다 잘될 것”이라고만 했다. 또 “(최재성 신임 사무총장도) 잘할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최 사무총장도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잘하겠다”고 짧게 말했다. 총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선 “지금은 입이 ‘화’(禍)의 문이 돼서는 안 된다”며 말을 아꼈다. 비주류는 비판 수위를 높였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문 대표가 친노(친노무현)를 대표하는 상황에서 공천 실무를 책임지는 사무총장도 친노에 맡겼다. ‘친노 패권주의 청산’에 역행하는 인사”라고 말했다. 이날 긴급회동을 가진 비주류 측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소속 의원은 “굳이 (문 대표가) 자기 사람을 써야만 했는지 의문”이라며 “당장 당이 쪼개지거나 신당이 만들어지지는 않겠지만 통합이 아닌 분열의 길로 가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천정배 신당론’과 맞물려 분당의 명분을 제공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박지원 의원은 트위터에 “분당의 빌미를 주지 않는 인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실망을 안겼다. 향후 동지들과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립적 성향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결국 문 대표가 풀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밝히는 한편 투명한 인사를 약속하고 혁신안에 자리를 걸겠다는 등 명확한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與 “5만명 불이익”… 사학연금 손질 착수

    새누리당이 22일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이어 사학연금 개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달 29일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공무원연금 지급률은 ‘20년에 걸쳐’ 1.9%에서 1.7%로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지급률을 준용하게 돼 있는 사학연금 지급률은 별도의 부칙 규정이 없어 내년부터 곧바로 1.7%로 낮아진다. 사학연금 수령액이 내년부터 당장 줄어든다는 의미다. 또 공무원연금 기여율은 향후 5년간 7%에서 9%로 높아지지만, 사학연금 기여율은 7%로 별도 규정돼 있다. 이대로라면 공무원연금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이 되고, 사학연금은 ‘똑같이 내고 덜 받는’ 구조가 돼 혼선이 발생하게 된다. 공무원연금법 개정 후속 조치 차원에서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손질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재춘 교육부 차관으로부터 기금 운용 상황 등을 보고받았다. 김무성 대표는 “사학연금 가입자는 28만명이고 수급자가 5만여명인데, 공무원연금법이 개정되면서 지급률이 1.7%로 낮아져 사학연금 수급자 5만여명이 내년부터 당장 불이익을 당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사학연금법 개정을 빨리 안 하면 내년 1월 1일부터 엄청난 혼란이 온다”며 “교직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법 개정을 어떻게 할지 교육부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과 논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새누리당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국회법 개정안 논란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사학연금 개편 카드를 꺼내 든 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공무원연금 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주호영 의원과 교육계의 문제 제기가 발단이 됐다. 이에 당 지도부가 호응한 모양새로 비친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청와대에서 먼저 나서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당의 정국 돌파용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개혁 후속 조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면 곧 다가올 ‘대통령 거부권 정국’에서 사퇴 압박을 거부할 명분이 생길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총선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추진 동력이 약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公기관 상임감사 85% 정·관피아… 낙하산 면죄부?

    公기관 상임감사 85% 정·관피아… 낙하산 면죄부?

    지난해 직무 성적을 처음 평가받은 공공기관 상임감사 10명 가운데 9명이 ‘정피아’(정치인+마피아)와 ‘관피아’(관료+마피아)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 대상자 27명 가운데 12명(44.5%)이 업무 전문성이 없는 새누리당 출신의 정피아였고 11명(40.7%)이 관피아였다. 모두 박근혜 정부에서 내려온 ‘낙하산’들이다. 사실상 변별력이 없는 평가 제도를 도입해 놓고는 ‘공개 평가를 했다’는 명분을 확보함으로써 낙하산 감사들에게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낙제점인 ‘미흡’(60점 미만)을 받은 감사는 홍표근 한국광물자원공사 감사와 김종훈 한국농어촌공사 감사, 강형신 한국환경공단 감사 등 3명이다. 홍 감사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선대위 공동여성본부장을 지냈고 ‘완사모’(이완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한 경력도 있다. 김 감사는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전북총괄본부장을 맡았고 강 감사는 환경부 감사관을 지냈다. ‘우수’(80점 이상)를 받은 감사는 김충환 한국주택금융공사 감사와 윤양배 산업안전보건공사 감사 등 2명이다. 이들은 감사원과 고용노동부 출신의 관피아다. ‘보통’(60~79점)을 받은 감사 22명 중 정피아는 10명, 관피아는 8명이었다. 민간·내부 출신은 4명에 불과했다. 정부가 낙하산 감사를 대거 내려보냈으면 평가라도 깐깐하게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평가등급이 3개에 불과하고 평가 결과도 단순히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기 때문이다. 조직 2인자로 막강한 권한을 누리면서 책임과 평가에서는 ‘열외’인 셈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1일 “전문성과 독립성, 내부 통제, 방만경영 적발 및 예방시스템 구축 등 감사의 책임 평가를 60% 반영했고 감사원 평가와 국민권익위원회의 기관 청렴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등 외부 평가를 40% 적용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외부 평가 점수를 40% 반영한 것은 객관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도 있지만 감사 평가를 처음 해보는 탓에 ‘자신이 없어서’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변수가 많은 외부 평가의 비율을 낮추고 감사 직무에 대한 정교한 평가가 이뤄지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감사 직무평가에서 25%를 반영하는 감사원 평가는 현 감사의 직무 평가와 동떨어져 있을 때가 적지 않아서다. 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 차등 지급과 인사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변별력이 작고 외부 평가를 높게 반영한다는 것은 기재부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상임감사에 대한 직무 분석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라면서 “자신감이 없으니 상·중·하 가운데 대부분을 ‘중’(보통)에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직무평가에 따른 불이익이 없는 것과 관련해서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평가제도”라고 말했다. 박광서 전남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평가 결과가 ‘보통’ 등급에 80% 이상 몰렸다는 것은 결국 평가를 형식적으로 했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특히 “공공기관 상임감사는 연임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인센티브와 페널티(불이익)를 바로 적용해야 평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측도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시인했다. 앞으로 개선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檢 ‘법무·검찰총장 기수 역전’에 촉각

    21일 김현웅(56·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검장이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되자 검찰 내부에서는 “무난한 인선”이라는 평가 속에 향후 전개될 기수 역전 ‘장관-검찰총장’ 구도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김진태(63) 검찰총장이 김 장관 후보자보다 연수원 2기 선배인 14기이기 때문이다. 역대 다섯 번째 기수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일단 청와대는 올해 12월까지인 김 총장의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검찰총장 임기는 법으로 보장된 것”이라며 “김 총장은 연말까지 임기를 채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결정에는 김 총장이 채동욱(56·14기) 전 총장 퇴진 여파로 흔들리던 검찰을 잘 추스르며 연착륙시켰고 청와대와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임기가 5개월 남짓 남은 총장을 중도 퇴진시킬 명분이 없고, 채 전 총장에 이어 김 총장까지 연달아 임기를 채우지 못하면 검찰 독립성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김 총장 스스로 ‘선택’을 하지 않는 한 임기는 무난히 마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직 고검장이 장관으로 내정돼 후속 인사가 불가피하지만 총장이 임기를 채우게 될 경우 인사 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꼭꼭 숨겨라… 최고인민회의도 모르는 北 국방비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꼭꼭 숨겨라… 최고인민회의도 모르는 北 국방비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은 지난 2월 24일 ‘2015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에서 한국과 북한의 군사력 현황을 비교하며 “한국이 북한에 비해 엄청난 열세”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현역 전투병은 63만여명으로 119만명인 북한의 54%”라면서 “한국 군사력이 북한에 앞서는 부분은 13개 항목 중 장갑차와 헬기 등 2개 분야뿐”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북한의 노후한 장비까지 포함시켜 단순히 숫자만 비교한 것일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여론의 동향은 심상치 않았다. 네티즌들은 “북한보다 압도적인 국방비를 쓰면서 아직도 북한에 뒤지느냐”고 들끓었다. 북한은 지난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회의에서 액수는 밝히지 않은 채 군사비가 전체 예산의 15.9%라고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추산한 북한 재정 규모를 근거로 11억 5000만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북한은 해마다 예산의 15~16%를 지출한다고 발표해 왔다. 남한의 지난해 국방비는 325억 달러(35조 7000억원) 수준으로 북한의 30배 수준인 셈이다. 국방부는 이로부터 한 달여 후인 4월 14일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군사비 규모가 남한의 3분의1 수준인 102억 달러(약 11조 2000억원)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의 군사비는 은폐된 부분이 많고 실제 구매력평가환율(PPP) 기준으로 따지면 100억 달러를 상회하기 때문에 30배 차이까지 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남한 63만명 vs 북한 120만명 ‘이길수 있나’ 이 같은 일련의 모습은 북한의 실제 군사비와 군사력을 놓고 이해 당사자 간 ‘진실게임’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국방비 관련 공식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무엇보다 북한은 국내총생산(GDP)과 국가 예산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구소련 등 옛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발표하는 국방비는 일부일 뿐 나머지는 은폐돼 있다고 분석된다. 북한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국방예산이 정부 예산의 30% 수준이라고 공표해 왔지만 1972년부터 17%라고 발표했고 이후 15~16%대 수준을 유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는 군비 가운데 경상유지 비용 부문만 예산으로 공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일 “북한이 군사력 강화를 국가의 최우선 목표로 삼으면서도 평화를 중시한다는 국제적 선전의 명분을 쌓아야 하는 입장에서 군사비 지출을 최대한 적게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우리 군 당국의 북한 군비 분석은 은폐된 비용을 추산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한다. 북한군 병력 규모는 현재 120만명, 남한은 63만여명 수준이지만 40년 전인 1975년만해도 남한 63만명, 북한 56만여명 수준으로 북한군 병력 숫자가 적었다. 북한이 40년간 꾸준히 군사력을 증강해 120만 대군을 육성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의 15% 수준으로는 어렵다는 평가다. 북한의 군사 부문 경제는 국가 경제와 별도로 관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장비획득비, 군사건설비, 연구개발비나 퇴역 군인에 대한 연금 지출 등은 군사비 항목에서 제외됐을 개연성이 크다. 북한의 경우 군사 기지를 건설할 때 국유지를 사용하면 되고 군대를 동원해 건설하면 노임을 절약할 수 있다. 단순 경제규모 차이를 기준으로 군사비 지출을 계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군 당국의 판단이다. KIDA는 북한의 연간 핵 개발비용이 약 6억 5000만 달러이고 미사일 개발비용은 연간 5억 7000만 달러라고 추산하고 있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신형미사일 개발과 성능개량에 주력하는 만큼 연간 무기·장비 획득비는 최소 15억 달러 이상일 것이라는 평가다. 이를 감안한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군사비 지출은 102억 달러 수준으로 북한 GDP의 20~30% 수준이라는 것이다. 남한의 지난해 군사비는 GDP 대비 2.38% 수준이다. ●군 당국 북한 위협 과대평가 논란도 특히 북한의 군비 지출 현황에 대해 아는 사람은 북한 권력층 가운데서도 극히 소수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역임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생전에 “최고인민회의에서 예산을 심의할 때 심의에 들어가자 전 비서들이 모여 토론하는데 그때 나오는 숫자와 최고인민회의에 나온 숫자가 달랐고 국방비만큼은 얘기하지 않는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군 당국의 북한 군비 지출과 군사력 평가에도 과장이 포함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과거 군 당국이 이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고 북한의 위협을 과대 평가해 국민들의 불신만 높였다는 의혹이다. 2013년 11월 국정감사 당시 조보근 국방정보본부장은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누가 이길 것으로 보이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한·미 동맹이 싸우면 우리가 월등히 이기지만, 남북한이 1대 1로 붙으면 우리가 불리하다”고 답변했다. 이는 국방부가 북한의 재래식 전력 위협을 과대 평가해 조직을 확장하고 예산을 더 확보하려는 이율배반적 태도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이 같은 불신의 기저에는 정부 재정의 14.5%(올해 기준)를 국방 예산으로 투입해도 방산비리로 예산이 줄줄 샌다는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국방부는 군사력 산출 방식에 대해 PPP를 중심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마저 객관적 평가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는 “전년에 비해 북한군 포 숫자가 늘어나면 무기 단가에 늘어난 수만큼 곱해서 재정을 산출하는 식”이라면서 “문제는 이 단가가 우리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라 북한이 실제로 이를 얼마에 구입하는지 알 수 없어 부정확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북한 원화의 가치와 실제 상품에 대한 구매력을 과연 군사 부문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실제 북한 군사비는 40억 달러를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 당국은 남북한 현존 무력을 비교 평가하기 위해 ‘전력지수’ 방식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 전차를 비교하면서 전차의 성능에 따라 가중치를 다르게 두고 이에 수량을 곱해 총점을 매기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물적 역량 중심의 방식으로 정확한 군사력을 측정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면 공군력을 비교할 때 항공기의 숫자만큼 출격 횟수와 총체공시간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단일 무기 수치의 합으로 평가한다는 점이다. 함택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적의 위협을 극대화해야 하는 군의 속성상 북한의 위협 기준을 최대한 높이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북한 GDP와 예산이 밝혀지지 않는 이상 군의 발표가 완전한 신빙성을 갖고 있다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 병참지원 열악 전면전 수행능력 떨어져” 앞서 제시된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군사력 보고서도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 보고서의 남북한 군사력 비교는 각 무기 체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북한의 낡은 무기까지 계산해 ‘북한 군사력이 우세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문제는 이 같은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들이 록히드마틴 등 방산업체들의 연구비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의 공포’를 강조해 미국 방산업체들의 무기 구매를 유도하는 셈이다. 북한은 무기의 수량에서 우세하지만 해·공군 장비는 소형이고 노후화된 구식 장비가 많다. 북한군이 자주포, 방사포(다연장 로켓), 대공포를 많이 보유한 것도 한·미 연합군에 비해 공군의 제공권이나 지상 공격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군이 포병의 수적 우세에 힘입어 전쟁 발발 시 초기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어도 병참 지원이 열악해 전면전 수행 능력은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함 교수는 “군사력과 군사비는 대체로 비례하나 한 해 군사비뿐 아니라 누적 투자비가 어느 정도인가도 중요하다”라면서 “재래식 군사력은 남한이 우위이나 문제는 지정학적으로 서울이 휴전선에 가까이 있어 위협을 받아 방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비대칭전력인 핵무기를 포함시키면 남북 간 군사력 우위 비교는 무의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함 교수는 “남한이 재래식 무기에서 우위를 보여도 북한의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위력을 지닌 한·미 동맹의 억제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설] ‘메르스와의 전쟁’ 전사들에게 힘 모아 줘야

    어제 황교안 국무총리의 지시로 보건 당국이 메르스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수백 명 규모의 군 의료인력 추가 투입을 결정했다. 자원봉사자들을 포함한 민·관·군이 총력 대응에 나선 형국이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의료진을 비롯한 전문가 집단의 피로가 누적되고 피해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엊그제 삼성서울병원의 간호사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게 단적인 사례다. 그런데도 사이버 공간 일각에선 의료진과 가족들에 대한 신상털기가 횡행하고 있단다.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사들을 전폭적으로 성원해야 할 판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메르스 사태 초반 정부는 혼란을 부추긴다는, 설득력 없는 명분으로 환자를 진료한 병원 이름을 숨기는 등 비밀주의를 고수했다. 그 대가는 컸다. 정부는 병원에 책임을 떠맡기고 일선 의료진들도 위험성을 과소 평가해 격리 대상자 관리에 허점이 생기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정부도 의료기관들도 분투하고 있다. 어제 보건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하루 사이 사망자와 확진자 수가 각 1명에 그치고 격리자 수는 큰 폭으로 줄었으며 격리 해제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아직 마음 놓을 단계는 아니지만 일말의 서광은 비친 셈이다. 저명한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엊그제 한국의 메르스 확산 기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종식까지는 몇 주 더 걸릴 것이라고 평가했지 않은가. 중동에서 발원한 메르스는 우리가 그동안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감염병이다. 이제는 최일선에서 ‘메르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할 때다. 그런데도 어제자 본지 보도를 보면 메르스 환자를 돌보다 격리된 건양대 병원 의사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와 학원 이름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고 있단다. 사이버상에서 비전문적 괴담을 퍼뜨리는 것도 모자라 의료진 가족들에 대한 낙인찍기까지 자행하고 있다니 혀를 찰 일이다. 메르스는 환자가 많은 데다 막힌 공간인 병원에서 비말(飛沫·작은 침방울)을 통해 전염된다는 게 과학적인 소견이다. 이미 격리된 병원 종사자들의 가족들을 오염원인 양 치부해 사회 활동에 제약을 주는 것은 무지에 기반한 인권 테러인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미 한국 정부의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에 메르스 사태로 인해 한국에 대한 여행·교역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잖아도 중국인 관광객, 즉 유커들이 발길을 끊는 등 메르스 후유증이 막심하다. 우리 스스로 과도한 공포증을 부추기는 언행을 자제해야 할 근거다. 서민 경제가 메르스 직격탄을 맞고 신음 중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어제 “경제 위기를 벗어나는 근본 대책은 메르스 사태가 한시 바삐 종식되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당정이 진작에 그런 인식을 가졌어야 했다. 당분간 정부의 모든 역량을 메르스 극복에 집중해야 한다. 의료진뿐 아니라 ‘질병수사관’ 격인 역학조사관들도 인력·예산 부족으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필요한 조치를 하는 데 실기하지 말기 바란다.
  • ‘헌법 9조’ 무력화… 아베의 속셈 파헤치다

    ‘헌법 9조’ 무력화… 아베의 속셈 파헤치다

    일본은 전쟁을 원하는가 한다/시게루 지음/조홍민 옮김/글항아리/268쪽/1만 3000원 아베 신조가 처음 일본 총리에 오른 것은 2006년 9월이었다. 당시 주변에선 그를 ‘봉봉’이라며 비아냥댔다. 곱게 자란 도련님을 뜻하는 ‘봉봉’은 유약함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1년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그가 정치 전면에 다시 등장한 것은 5년 뒤인 2012년이었다. 하지만 컴백한 아베는 완전히 딴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나라’ 일본을 만들려는 행보가 두드러졌다. 아베 집권 이후 일본은 급격히 군국주의화하고 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물론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한 헌법 9조,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집권 후 그가 벌인 일들을 보면 그의 목표가 뭔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기 위한 해석 개헌, 무기 수출의 해금과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등장 등은 ‘보통 국가’ 일본을 향해 가는 정지 작업인 셈이다. 책은 아베 정권이 헌법 9조를 무력화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 만들기’를 추진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베의 노림수가 무엇이고, 지금 일본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법률 초보자를 모아 간담회를 열고, 여기서 제출하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내각이 헌법 해석을 바꿔 버리는 ‘입헌주의 파괴’ 과정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아베 정권이 지속될수록 실제 전쟁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본다. ‘있지도 않은’ 위기를 부추겨 무장을 강화하고, 정식 군대를 만들고,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려는 아베의 움직임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는 것이다. 아베의 소원대로 집단적 자위권이 용인되고, 헌법 9조가 무력화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미국이 일으키는 세계 각지의 전쟁에서 자위대 병력이 미군과 함께 싸우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손해 볼 것이 없다. 미국 젊은이 대신 자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일본 스스로가 원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이 같은 미국의 요구에 대해 일본 측에서 거부할 명분으로 내세웠던 게 헌법 9조다. 한데 아베는 이런 강력한 방파제를 스스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도쿄신문 기자 출신의 저자는 “(일본에 대한) 선제공격 따위는 없다. 일본이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으면 안정은 계속된다”며 “헌법 9조를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당장 그만두라”고 일갈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사설] 정치권 막말 어물쩍 넘어가선 안 된다

    정치권의 고질인 막말이 메르스처럼 번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그제 “비노(비노무현)계는 새누리당 세작(간첩)”이라는 트위터 글을 올린 김경협 수석부총장 징계 절차에 들어갔으나 이를 위한 윤리심판원 구성이 다시 논란을 불렀다. 서화숙 위원이 과거 쏟아낸 “개쓰레기인 이명박근혜 정부”라는 등의 험구가 부각되면서다. 또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똥볼 원순”으로 지칭했다. 박 시장 주장대로 삼성서울병원 의사가 메르스 확진 판정 전 접촉한 1565명을 전수조사했지만, 감염자가 없었다면서 원색적으로 조롱한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 건설적인 비판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래서 야권의 입장에서는 거친 대여 공세가 필요악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조용한 다수의 공정한 의견보다 목소리 큰 소수의 억지가 통하는 정치판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김 수석부총장의 언급은 친노(친노무현) 당권파의 나만 옳다는 선민(選民)의식으로 당내 소수파를 음해했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새정치연합이 당 개혁 차원에서 그의 책임을 물어야 할 이유다. 그런데도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작금의 막말 파문을 엄중히 인식하는지부터 의심스럽다. 온갖 구설수 전력이 있는 인물을 막말로 인한 당 문란을 바로잡기 위한 윤리심판위원으로 임명한 무모함 때문이다. 서 신임 위원은 “박근혜는 부정당선된 ×답다”, “이완구 도둑놈 총리” 등 검증 안 된 막말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런 인물이 포함된 윤리심판원이 과연 당 기강을 제대로 세울 수 있을 건지, 하 의원의 경우처럼 야권을 겨냥한 여당 측의 막말이 나올 때 무슨 명분으로 대응할 건지 자못 궁금하다. 대의 민주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는 ‘숙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공적인 이슈를 놓고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서로 경청하는 대화로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막말은 이런 숙의 민주주의의 최대 장애물이다. 그러나 막말을 법으로 막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또 다른 가치와 상충된다. 야권이 추진하려는 이른바 ‘혐오발언 제재법’에 대해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배경이다. 위헌이나 정치적 악용 소지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반 시민에게 재갈을 물릴 까닭은 없다. 우리는 그보다 상습적 막말꾼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 정치권이 먼저 자정 메커니즘을 확립하는 게 옳다고 본다.
  • “삼성 지배구조 개선 주장 엘리엇 동조자 엘리엇의 배만 불려주는 불쏘시개 역할”

    “삼성 지배구조 개선 주장 엘리엇 동조자 엘리엇의 배만 불려주는 불쏘시개 역할”

    2003~2005년 헤지펀드인 소버린의 SK그룹 공격 당시 SK의 입으로 활약했던 권오용 효성그룹 고문은 16일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지배구조를 명분으로 주가 차익 실현을 노린 소버린의 판박이”라고 규정한 뒤 “향후 최소 1년 동안 지속적인 공격이 이뤄지겠지만 삼성은 이겨 낼 것”이라고 말했다. 권 고문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버린 공격 초기 시민단체들은 ‘한국 정부도 못한 재벌 개혁을 외국 펀드가 해낼 것’이라며 환영했지만 소버린은 1조원의 차익만 빼먹고 달아났다”면서 “엘리엇의 삼성 지배구조 개선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엘리엇의 배만 불려 주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선진국처럼 기업의 경영권 방어책을 법에 명문화하고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을 새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등의결권은 최대주주 등에게 보유 지분율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제도,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움직임이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더 싼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을 말한다. 그는 “IMF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활성화 목적으로 투기세력은 활개를 치고 있지만 경영권 안정을 위한 제도는 없다. 소버린 공격 때도 이런 역차별 규제 때문에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권 고문은 또 삼성이 소버린을 물리치려면 자신들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이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이 국민 경제에 도움을 준다는 인식을 형성해 국민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와 관련, 2005년 3월 SK 주총 당시 SK의 지배구조 문제를 공격하던 소버린 관계자를 상대로 한 소액주주가 ‘이제 돈(주가 차익) 많이 벌었으니 떠나라’고 일갈한 사건을 소개했다. SK는 당시 여론을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 청사진과 함께 SK는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중요한 국민 기업이란 가치를 함께 홍보했다. 그는 “당시 그 소액주주의 발언을 들으면서 이제 여론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직감대로 몇 달 뒤 소버린은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절망, 그 끝엔 시대의 비극

    절망, 그 끝엔 시대의 비극

    1938년은 우리 민족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일제는 이른바 ‘제3차 교육령’을 선포하고, ‘국어상용화 정책’을 폈다. 이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주창하고 조선어교육을 폐지하며 민족을 말살하려는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이었음이 오래지 않아 확인됐다. 나아가 제국주의적 탐욕과 침략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강제징병, 창씨개명의 신호탄이었다. 이와 함께 작은 의문의 사건도 하나 발생했다. 그해 언론에도 제법 자세히 보도되며 세간에 화제가 됐던 ‘경성 근처 한 기숙학교에서 발생한 여학생 연쇄 실종사건’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명씩 무려 16명이 실종됐다는 내용이었다. 사건은 호사가들의 술자리 안주거리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 채 단순 가출실종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영화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은 1938년 실제 발생했던 사건의 뼈대에 많은 것을 기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배경은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여학생 기숙학교다. 선택된 단 두 명만 일본 도쿄로 유학 떠날 수 있다. 이를 유일한 꿈이자 목표로 여기는 여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는 공간이다. 폐병을 앓는 주란(박보영)이 유학온 뒤 따돌림을 받는다. 급장 연덕(박소담)이 주란을 챙겨주려 하지만 그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 친구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상처를 안고 있다. 반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가운데 주란이 미스터리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늘 자상한 미소를 잃지 않는 교장(엄지원)이 오히려 공포스러운 사건의 주체였음을 확인한다. 절묘하다. 어디로도 닿을 수 없는 폐쇄된 절망적인 공간, 기껏 도망쳐봐야 거대한 일본군의 병영을 발견할 따름이다. 파리한 표정으로 각혈하는 유약한 식민지 학생, 지도한다는 명분으로 뺨을 마구 갈기는 교사가 있는 학교는 식민지에서 겪어야 할 불가피한 장면이었다. 주체를 잃어버린 시대는 제국주의 괴물이건, 피압박 민중의 괴물이건 어떤 형태로든 괴물들을 양산한다. 여학생이 잇따라 실종됐지만, 이를 지켜줄 국가와 민족이 없었으니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었다. 물론, 비극적인 시대에 행복한 결론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마지막에 교장이 울부짖듯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다 너희를 위해서야. 너희들은 약하고 힘이 없잖니.” 악의 평범함 같은 더 무서운 현실이 아닌, 익히 들어왔던 뻔한 얘기다. 그럼에도 분노가 치밀어 오름은 슬픈 역사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어른거리고 있는 현실이 있는 탓일 테다. 광복 70주년, 그리고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일본에 소개해도 좋음직하다. 일본의 영화관객들이 당시 피압박 백성들의 심경과 정서를 우회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흑인 행세’ 들통난 美 인권단체 간부 물러나

    ‘흑인 행세’ 들통난 美 인권단체 간부 물러나

    오랫동안 흑인 행세를 하며 흑인 인권단체의 간부를 맡아 왔던 백인 여성이 15일(현지시간) 논란이 커지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국 워싱턴주 스포캔시의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지부장인 레이철 돌레잘(왼쪽·37)은 이날 단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예기치 못한 비난을 받고 사직했다”며 “지금 폭풍의 눈에 들어갔는데 가족이나 단체로부터 떨어져 있는 게 인종·사회적 정의나 NAACP의 대의명분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돌레잘의 흑인 행세는 앞서 지난 12일 부모의 폭로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 방송에서 돌레잘이 명백히 백인이라고 공개하며 과거 사진(오른쪽)과 출생 서류 등을 공개했다. 그의 정체성이 탄로 나자 스포캔시 당국이 조사에 착수하는 등 파문이 커졌다. 돌레잘은 인종 위장 이유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한 기자가 “당신은 흑인인가”라고 묻자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즉답을 피하고 “인종에 대한 질문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이는 다층적인 이슈”라며 모호한 말만 되풀이했다. 돌레잘의 부모는 15일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레이철이 자신의 현실과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며 “상담 치료가 필요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자신들이 입양했던 4명의 흑인 아이 때문에 딸이 어렸을 때부터 인종과 다양성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돌레잘의 흑인 행세는 2007년 기사를 통해 처음 접했다고 말했다. 흑인 사회 지도자를 다수 배출한 하워드대 출신인 돌레잘은 2002년 재학 당시 자신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장학금 등에서 차별을 당했다며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23·30일 중 거부권 유력… 재의결 상황따라 與·野·靑 희비 교차

    23·30일 중 거부권 유력… 재의결 상황따라 與·野·靑 희비 교차

    국회법 개정안이 ‘문구수정’이라는 고육지책을 거쳐 정부로 이송됐지만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어 전운이 감돌고 있다. 거부권 행사로 내상을 우려한 여당은 극도로 말을 아끼며 추이를 살피고 있다. 반면 거부권 행사 뒤 재의결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되는 야당은 청와대의 중재안 수용을 압박하고 있다. 파국을 막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청와대의 중재안 수용 뒤 법안 의결·공포이지만, 가능성은 낮다.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 추이를 살핀 뒤 23일 국무회의 또는 30일 시한에 임박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6일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 “한 글자 고쳤던데 달라질 게 없다”며 거부권 행사 방침을 시사했다. 거부권 행사 시기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제헌 국회 이후 73번째다. 총 6건의 거부권이 행사된 노무현 정부를 포함, 역대 정권에서 거부권이 행사된 경우는 대부분 ‘여소야대’ 정국이었다. 2013년 1월 이명박 정부에서 여야가 합의한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일명 택시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있었지만, 정부가 별도의 택시지원법 추진 의사를 밝혀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거부권 행사에 따라 여·야·청 또는 당내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예고된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 직후 국회법 개정안 문제와 관련, “일절 대응을 안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여당 지도부는 어떤 시나리오든 곤혹스러운 처지가 된다. 거부권 행사만으로도 유 원내대표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따라서 여당 지도부는 재의 요구된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 여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에 부쳐 가결되면 당·청 관계는 파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여당 내 계파갈등도 첨예해질 가능성이 크다. 야당이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는 반면 청와대는 국정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당·청 갈등을 이유로 여당 지도부의 퇴진 또는 대통령 탈당도 거론될 수 있다. 반대로 표결에 부쳐 부결되면 야당의 극심한 반발이 불가피하다. 여당 지도부는 심각한 타격을 입는 반면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계의 목소리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여당 지도부가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보류하면 야당의 반발은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세월호 시행령 개정이라는 명분과 정국 주도권 확보라는 실리를 모두 잃게 되기 때문이다. 협상을 주도한 이종걸 원내대표의 입지도 좁아진다.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박 대통령이 중재안을 수용해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법안을 재가·공표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당·청 관계는 회복되고 여야 관계도 순항이 예상된다. 여야 원내대표의 협상력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당·청 간 유연성을 발휘했다는 평가와 위헌 논란에 따른 원칙을 깼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원내대표는 이날 “유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하게 되면 의결정족수를 맞춰 주겠다는 정치적 약속을 했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두 원내대표가 거부권 행사에 대비해 ‘이면합의’를 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어서다. 야당은 “명시적으로 약속한 것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유 원내대표도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친박계는 “매당행위”라고 발끈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北, 조건부 ‘당국 간 대화 용의’ 정부 성명

    北, 조건부 ‘당국 간 대화 용의’ 정부 성명

    북한은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을 맞아 남북 당국 간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북한·중국 국경지역에서 월경한 우리 국민에 대한 송환 의사를 통보해 ‘화해 제스처’를 보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한·미 군사훈련 중단, 5·24 조치 해제 등을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해 실제 대화가 재개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북남 사이에 신뢰하고 화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당국 간 대화와 협상을 개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이어 “남북 사이의 교류 협력을 가로막는 법적·제도적 장치 철폐”를 요구했다. 또 “남조선 당국은 미국과 결탁하여 북침 전쟁 책동을 벌임으로써 북남 관계 개선의 좋은 기회들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전격적인 대화 제의는 한반도 문제를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또 향후 남북 관계 파탄의 책임을 남측에 돌릴 수 있는 ‘명분 쌓기용’이란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성명에 대해 대화 의지를 높여 정부에 관계 개선 노력을 촉구하는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화 필요성마저도 거부하던 북한이 대화 재개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평가했다. 북측은 이날 북한적십자 중앙위원장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지난 5월 북측 접경지역에 불법 입국한 우리 국민 2명을 17일 돌려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송환 대상자는 중국 여행 중 북·중 접경지역에서 실종됐던 이모(59)씨와 진모(51·여)씨다. 하지만 정부는 이씨와 진씨가 실종되고 한 달 이상 지난 상황에서도 북한 당국이 이들의 신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북측의 ‘전제 조건’ 요구를 일축했다. 통일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은 부당한 전제 조건을 내세우지 말고 당국 간 대화의 장에 나오는 한편, 남북 간 동질성 회복에 기여하는 민간 교류에도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국회법 개정안’ 향배, 15일 野의총서 결론

    국회법 개정안의 향방이 15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개정안의 문구에서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추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정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할 뜻을 밝히고 사실상 야당의 입장 정리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국회법 개정안의 향배는 야당이 중재안을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갈래로 나뉜다. 중재안 수용 방침을 시사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당 지도부에는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시킨 것으로 알려졌지만, 원안의 ‘한 획’도 고치지 못하겠다는 당내 강경파까지 설득하지는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14일 원내 핵심관계자는 “국회법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상황에서 황교안 총리 인준까지 해줄 수는 없다”고 밝혀 의원들이 국회법 개정안과 황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 문제를 연계해 생각하고 있음도 시사했다. 야당이 명분을 내세우며 중재안을 거부하면 정 의장은 ‘국회법 개정안 원안’을 정부로 즉각 이송한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거부권이 행사되면 야당은 당장 황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 표결을 거부하고 정국은 급랭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야당 협조가 필요한 각종 민생법안의 처리도 더욱 어렵게 된다. 반면 야당이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면 다시 관심은 박 대통령의 선택으로 쏠린다.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고 밝혀 중재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현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회법 개정안의 ‘공’은 새정치연합이 아니라 청와대에 있다”면서 “청와대의 성의 있고, 책임 있는 답변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의총에 대해 청와대가 긍정적으로 반응하라는 신호를 우회적으로 보내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女상사는 男부하를 키울까, 女부하를 키울까 (연구)

    女상사는 男부하를 키울까, 女부하를 키울까 (연구)

    이른바 '여왕벌 신드롬'(Queen bee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한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 여성은 자기 하나 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성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에 널리 퍼진 이같은 통념을 깨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미국 콜롬비아 경영대학원 연구팀은 '여왕벌 신드롬'은 '허구'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에 몇차례 나왔던 권력을 가진 여성은 다른 부하 여성들에게 더 비판적이라는 논문들을 반박한 이 연구는 총 1500개 회사의 인사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의 조사방법은 간단하다. 최고경영자가 여자일 때 고위직(책임직)에 다른 여성을 얼마나 임명하냐는 것. 그 결과는 흥미롭다. 정확한 통계는 밝히지 않았으나 여성이 최고위직에 있을 때 다른 여성들 역시 고위직이 되는 비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회사 내에서 상위 여성이 다른 하위 여성의 '사다리'를 적어도 걷어차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회사 내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 수가 절대적으로 적을까? 이에대해 연구팀은 회사 내 상대적으로 여성수가 적다는 것 외에 다른 해석도 제기했다. 연구팀은 "여성들이 소위 '유리 천장'을 깨기 힘든 이유는 몇 안되는 여성 사이의 견제 때문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남성들 때문" 이라면서 "기업은 고위직에 한 명 정도의 여성을 두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통해 기업은 명분을 얻지만 반대로 여성은 보이지 않는 쿼터에 직면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연구도 많다. 지난 2011년 미국 신시내티 대학 연구팀은 "고위직에 오른 여성 상사일수록 같은 여성보다 남성 부하 직원들을 더 잘 챙겨주고 승진을 도와준다" 는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사설] 주식시장 가격제한폭 확대, 개인투자자 신중해야

    주식시장의 가격제한폭이 오늘부터 상한가와 하한가 모두 30%로 확대돼 개인투자자들의 신중한 투자가 필요해졌다. 상·하한가 제한폭은 정액제에서 1996년 정률제를 도입한 이래 1998년까지 2~4% 포인트씩 4차례나 확대돼 왔지만 이번처럼 상·하한가 제한폭을 현행 15%에서 30%로 두 배로 늘린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주식 변동폭을 소폭 확대했을 때 축적해 놓은 과거의 자료가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 된다. 과거 자료가 별로 유용하지 않은 만큼 개인 투자자들 스스로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주식시장의 가격제한폭을 30%로 확대했다. 주식 투자자들이 자신의 책임 아래서 투자할 만큼 투자의식이 성숙해졌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주식시장 관계자들은 거래대금이 확대되고,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대체로 믿고 있다. 그러나 30% 변동률은 가볍게 넘길 수준이 아니다. 가령 1주당 1만원인 주식을 매수했는데 하한가를 연속 2번 맞으면 그 주식의 가격은 반토막인 4900원이 된다. 하한가 연속 3번이면 3분의1 가격으로 추락한 3430원, 연속 4번이면 4분의1 토막도 안 되는 2401원만이 잔고에 남게 된다. 지난 4월 ‘가짜 백수오 사건’으로 파동을 일으킨 내츄럴엔도텍이 4월 21일 종가 8만 6000원에서 5월 13일 종가 1만 1050원으로 8분의1 토막이 될 때까지 거래일 기준으로 14일이 걸렸는데, 앞으로 이런 시간적인 충격완화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당시 내츄럴엔도텍은 4월 28일 전후로 4회 연속, 9회 연속 하한가를 맞았다. 모두 13회 하한가를 기록했다. 선진국의 주식시장은 기관투자가들이 대세지만 한국은 개인투자자들의 비중이 올해 거래대금 기준으로 코스피는 52.9%, 코스닥은 88.1%로 아주 높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투자자의 제1, 제2원칙이 “원금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리느냐보다 투자원금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는 기관이나 외국인에 비해 자금 여력도 딸리고 정보도 늦고 부족하다. 시장 변동성에 익숙해질 때까지 신용거래를 자제하고 여유자금으로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 주식실패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수도 없다. 주식시장의 변동폭이 커지는 만큼 잘하면 물론 수익도 높아지겠지만 그만큼 위험도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비례대표 지역구 따내기’ 치열… 국회 전문성 제고 뒷전 ‘논란’

    ‘비례대표 지역구 따내기’ 치열… 국회 전문성 제고 뒷전 ‘논란’

    여야 비례대표 의원들이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갈아타기 위한 ‘눈치작전’이 벌써부터 치열해지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비례대표 의원 48명 중 이미 출마지역을 확정한 의원이 전체의 3분의2에 육박한다. 여야 모두 비례대표 연임 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 만큼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 전문성을 살리려는 비례대표 도입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야 비례대표 의원들은 ‘지역구 깃발 꽂기’를 위해 우선 당협(지역)위원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총선 공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어서다. ‘현역 의원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조직 기반까지 갖출 경우 당선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현재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 27명 중 김정록(서울 강서갑) 의원 등 7명이, 새정치연합에서는 21명의 비례대표 의원 중 김기준(서울 양천갑) 의원 등 4명이 각각 당협위원장 자리를 확보했다. 새누리당 황인자(서울 마포갑) 의원과 새정치연합 배재정(부산 사상) 의원 등 여야 비례대표 의원 18명은 당협위원장 선출 과정에 도전장을 내밀었거나 출마지역을 잠정 확정한 뒤 표밭 다지기에 나선 상태다. 반면 지금까지 내년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비례대표는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 한 명뿐이다. 하지만 출마지역을 ‘찜’한 비례대표 의원들이 정작 현실에서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 내부적으로는 현역 지역구 의원과의 불가피한 마찰을 피해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상대 정당의 유력 정치인과의 맞대결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갈 곳은 많은데 정작 오라는 곳은 없는’ 형국이다. 같은 맥락에서 역대 총선에서도 ‘지역구 갈아타기’에 성공한 비례대표 의원들은 극히 드물다. 17대 국회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 21명 중 8명, 새정치연합은 23명 중 1명이 18대 국회에서 생환했다. 하지만 18대 국회에서는 문턱이 더욱 높아져 새누리당 비례대표 22명 중 나성린(부산 진구갑) 의원만, 새정치연합의 경우 15명 중 김상희(경기 부천시소사구) 의원과 안규백(서울 동대문구갑) 의원 등 단 3명만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비례대표 의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지역만 찾아다니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며 “당선 가능성을 떠나 명분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좁은 문’을 통과한 비례대표 출신이 당의 간판 주자로 우뚝 선 성공 사례도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대표적이다.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들어와 이듬해 치러진 대구 동구을 재·보궐 선거에 당선돼 3선까지 성공했다. 새누리당 나경원(서울 동작구을·3선), 새정치연합 박영선(서울 구로구을·3선) 의원 등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도전을 바라보는 시선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우선 의정 활동 경험을 토대로 직능의 대표를 넘어 지역을 대변한다는 데 대한 긍정론도 적지 않았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례대표제는 국회 진입이 쉽지 않은 이들에게 경험을 쌓고 능력 있는 의원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며 “당 차원에서도 비례대표를 통해 능력 있는 자원을 얻게 되며 직능을 대표해 일을 해 봤으면 일반 국민을 대표해서 전환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출마 자체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공천 과정에서부터 직능, 계층, 소수자 등 다양한 대표성을 반영하기보다는 당 지도부의 ‘자기 사람 심기’가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각 직능의 이익을 입법 과정에 반영하라고 비례대표를 뽑는 것인데 정치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은 본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비례대표의 지역구 출마는 비례대표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사설] 온실가스 감축 명분도 좋지만 실리 중시해야

    정부가 그제 국제사회가 추진 중인 ‘신기후체제’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시안을 발표했다. 2030년 배출전망치(BAU)를 8억 5060만t으로 산정하고 14.7%, 19.2%, 25.7%, 31.3%를 줄이는 네 가지 시안이다. 공청회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해 유엔에 제출하겠다고 한다. 2009년 ‘녹색성장’ 정책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는 2020년 기준으로 30%를 줄이겠다고 선언했었다. 따라서 앞의 세 가지 안 중 하나로 결정되면 당시보다 후퇴하는 안이 된다. 온실가스 배출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업과 환경단체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환경을 위해서는 배출량을 많이 줄일수록 좋지만 그만큼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의 부담이 늘어난다. 정부의 시안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지만 기업들은 정반대로 가장 강도가 약한 1안(14.7% 감축)조차 지키기 어렵다고 반발하고 있다. 결국은 환경보호와 기업의 부담이라는 두 가지 이익을 적절히 고려해 최종안을 정할 수밖에 없다. 기업의 부담도 부담이지만 온실가스 감축은 성장률 하락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국가 이익과도 연관돼 있다. 그러잖아도 저성장에 접어든 마당에 정부로서는 온실가스 감축으로 성장률을 저해하는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시민단체에서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으로 의무감축 국가가 아니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이런 경향은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중국과 인도 등도 현재의 성장이 더 중요하다며 개발도상국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미래세대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적 재난을 겪을 것이다. 우리도 유엔기구협약 등의 국제기구에 적극 참여하면서 다른 나라들과 함께 힘을 모아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더 큰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기에는 아직 선진국 진입을 달성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이른 감이 있다. 국제사회에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의 실리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부도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많이 하는 게 맞듯이 온실가스 감축도 우리의 경제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각국의 경제력과 배출량에 따라 감축량을 배분하는 원칙을 지나치게 어기지만 않으면 된다고 본다. 명분과 실리가 다 중요하지만 그래도 실리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 대한민국은 영화공화국

    대한민국은 영화공화국

    프리랜서 출판 편집 일을 하는 신애필(32·가명)씨는 매년 10월이면 최소 5박 6일은 부산에서 지낸다. “번듯한 직장 좀 구해라, 남자는 언제 만날 거냐” 등 엄마의 지청구를 잠시 귓전으로 흘려듣고 버텨내기만 하면 세계적 거장과 스타들이 넘실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꿈 같은 일주일을 보낼 수 있다. 신씨는 못말리는 영화광이다. 1년이면 거의 두 달 가까이는 집 밖에서 지내다시피 한다. 전주, 제주, 제천 등 여러 지역의 다양한 영화제를 찾아다니는 즐거움은 서울 도심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짜릿함이다. 장애인권단체 활동을 하는 나희망(31·가명)씨 역시 매년 가을을 기다린다. 3년 전 장애인영화제에서 시각장애인 아버지를 돌보는 아이를 소재로 다룬 17분짜리 짧은 영화 ‘청이’를 본 뒤 영화에 푹 빠졌다. 특히 지난해에는 그도 함께했던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하는 광화문역 농성투쟁을 다룬 다큐영화 ‘서른넷, 길 위에서’가 우수상을 받아 더욱 뜻깊었다. 보통의 극장 영화들은 재미있긴 해도 극장을 나서는 발길이 왠지 허탈하다. 하지만 이곳에선 자신과 같은 이들의 삶과 기쁨, 고민과 갈등, 희망을 다룬 영화들을 만날 수 있어 뿌듯하다. 한국은 명실상부한 ‘영화 공화국’이다. 지난해 여름 일었던 ‘명량’ 신드롬처럼 전국민 3명 중 한 명이 일제히 같은 영화 한 편을 봐서였거나 최근 10년 동안 14편의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어섰을 정도로 입증된 영화시장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 공화국’의 완성은 바로 160개에 달하는 각종 크고 작은 영화제가 있어서다. 액션영화, 코미디영화, 공포영화 등 천편일률의 영화 문법을 무한재생하는 상업영화의 틈바구니에서 다양한 목소리, 다양한 시선,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영화제들은 한국영화의 힘이다. 그 힘은 신씨와 나씨처럼 곳곳에서 다른 목소리, 다른 결의 영화를 갈망하는 시네필들이 넘쳐나게 만든 배경이자 결과가 됐다. ●‘님아, 그 강을’ 등 저예산 독립영화의 토양 실제 다큐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80만명), ‘워낭소리’(293만명) 등 저예산 독립영화가 이뤄낸 대중적 성취는 이러한 영화제의 풍성한 토양 위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이달 들어서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아랍영화제 등이 줄줄이 열렸고 미쟝센단편영화제, 퀴어영화제 등이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또 최근 ‘먹방’ 흐름을 반영하듯 음식을 주제로 하는 단편영화를 공모하는 영화제 ‘푸드필름페스티벌’이 새로 만들어져 오는 9월 개막한다. 특히 지난 4일 개막한 제4회 아랍영화제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아랍문화제 프로그램의 하나로 치러지다가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올해 처음으로 독자적인 영화제로 독립했다. 예산 전액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치러졌다. 심인화 아랍영화제 홍보팀장은 “메르스의 우려가 큰 상황이었고 아랍권 영화감독 두 분이 내한하는 등 주변의 우려가 있었지만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등의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면서 “서울과 부산 두 곳에서 상영된 10편의 영화가 연일 매회 매진되는 등 80%가 넘는 객석점유율로 1만명 가까이 영화제를 즐겼다”고 말했다. 오는 25일 개막하는 제14회 미쟝센단편영화제는 기존 영화업계의 제작 관행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영화적 상상력과 표현력을 담아내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특히 상영수입 전액을 단편영화 감독들에게 배분한다. 신인감독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조건이다. 2012년 단편영화 ‘숲’으로 대상을 받았던 엄태화(32) 감독도 미쟝센영화제 출신이다. 엄 감독은 이듬해 첫 장편영화 ‘잉투기’로 더욱 단단해진 연출과 섬세한 표현력 등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올해는 이 영화제 심사위원 및 집행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올 아랍영화제 객석 점유율 80% 넘어 엄 감독은 “영화감독 지망생들에게 영화를 찍고 대중들과 접점을 이루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작은 영화제들밖에 없다”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계속 연출할 수 있는 발판이자 동기 부여”라고 영화제들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영화의 창작 및 향유 주체로 보면 어린이, 여성, 청소년, 노인, 장애인, 퀴어(동성애자), 이주민, 디아스포라 등으로 다양하게 나뉜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더욱 다양하다. 동물, 환경, 건축, 음악, 지하철, 해양, 노동, 산악, 인권, SF, DMZ 등으로 더욱 세분화된다. 영화의 형식 역시 다큐, 단편, 초단편, 미장센, 29초영화, 3D 등 강한 실험적 성격을 띤 영화제도 많다. 또한 지역별 특성 및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영화제도 다양하다. 유럽, 아랍, 체코,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일본 등은 물론 국내에서도 무주산골, 정동진, 태백, 광주 등 그 지역만의 정서를 담는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감독 지망생·배우들에겐 발판이자 동기부여 최근 영화진흥위의 일방적 국고지원금 삭감으로 존폐 위기에 놓였던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외부 행사를 최소화하며 오는 8월 5일 열릴 예정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영화제는 만 9~12세, 13~18세 등 어린이, 청소년 영화감독의 국제경쟁 부문과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작품의 경쟁부문으로 나뉜다. 16년 동안 지속돼 온 ‘미래의 스티븐 스필버그’, ‘차세대 봉준호’들이 꿈을 키우는 공간이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단편 부문 황금곰상을 받은 나영길(32) 감독은 이 영화제 출신이다. 2002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제 영상제작단 3기로 활동했다. 이 밖에도 권혁재 감독, 변성현 감독, 김진무 감독 등이 모두 서울청소년영화제 출신들이다. 배우 박보영(25)도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인 2005년 7회 영화제 출품작에 출연했고 전혜빈(32) 역시 3회 영화제 수상작품의 배우였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수한 영화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함과 풍성’이라는 찬사 속에서 ‘난립과 졸속’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해 영진위가 지원한 국내영화제는 인디다큐페스티벌, 광주독립영화제, 아시아태평양대학영화제 등 모두 22개였다. 이 밖에도 지방자치단체 혹은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영화제들이 상당수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축제의 일환으로 영화제를 개최하거나 주최 측의 의욕만 앞서는 경우에는 다른 영화제와 지나치게 경쟁의식을 가진 채 화려한 외양 보여주기식만을 추구하기 일쑤”라면서 “이 경우 오래 지속되기도 힘들뿐더러 내용 측면에서도 전반적인 질 하락으로 졸속 진행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스태프들이 여러 영화제를 돌며 겹치기로 일하는 것도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을 낳는 하나의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1~2회 개최한 후 개점휴업 영화제 수두룩 실제 기업 후원이나 지자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영화제는 극장 입장료 판매 수입으로 기신기신 버텨내야 하는 실정이다. 빈약한 자금은 운영난으로 직결된다. 이 때문에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1~2회를 끝으로 개점 휴업 상태인 영화제들도 꽤 있다. 한 영화제 사무국 관계자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운 영화제는 콘텐츠 부족에 시달리다 문을 닫고, 눈앞의 성과에 연연하는 영화제는 젯밥만 쫓다가 문을 닫는다”고 진단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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