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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1982년 5월 19일 ‘기업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고의 날일 것 같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사장에 그를 앉히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 현대그룹 후계구도에서 형들보다 한발 늦게 출발한 몽준씨가 가장 먼저 부친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겁니다. 우리 아이들간에도 서열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열어 몽준 사장이 충분히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몽준씨가 미국 MIT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몽준씨는 훗날 가장 아끼는 그의 저서로 ‘기업경영이념’을 꼽으면서 “서문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곁들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부친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던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2002년 12월 18일 ‘정치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악의 날일지 모른다. 그는 이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 사실상 ‘백의종군’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정권의 공동 주인으로 향후 5년간 막강한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셈이다.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나이(51)였다. ●아버지에게 바가지 씌운 아들 정몽준(54). 현대가(家)의 여섯번째 아들.5선의 중진 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산규모 재계 9위(지난해·공기업 제외)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지분 10.80%). 국내 재벌가에서 정 의원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드물다. 일각에서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순탄하게 성장한 대가”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정 의원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3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담임 선생이었던 임환씨는 “몽준이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놀러갔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면서 “전혀 부잣집 티를 내지 않았으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포대를 지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고 정 명예회장임을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정 의원의 학생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부친한테는 다른 형제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부친에게 ‘바가지’ 씌운 일화 한 토막.1970년대 초반 어느 날.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잔 쏘겠다며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에 흥에 겨워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1차는 제가 샀으니,2차는 아버지가 사시라.”고 제안했다. 고 정 명예회장도 유쾌한 기분으로 흔쾌히 응했다.2차 행선지는 정 의원이 정한 강남의 한 술집. 그러나 2차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술값에 놀랐다. 먹은 것에 비해 족히 여섯배의 술값이 청구됐기 때문. 그렇다고 재벌 회장이 술값을 놓고 시비를 걸기도 뭐했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업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드님이 전에 드셨던 외상 술값까지 계산하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허허 이것 참….”고 정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의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허물없는 부자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는 이렇다.“한번은 고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과 골프를 치는데 티샷을 하고는 먼저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머뭇거리다 채를 들고 뒤따라 가는데 유독 정 의원만 얼른 공을 놓고 티샷을 했죠. 그러자 고 정 명예회장이 ‘저놈∼.’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나는 나의 아내가 고맙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종종 내가 대통령 감이라기보다 내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 감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바쁜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고, 조용히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정 의원이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밝힌 부인 김영명(49)씨에 대한 평이다. 정 의원은 1978년 여름 넷째 형수(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의 중매로 영명씨를 미국에서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명씨는 “우선 키(정몽준 182㎝·김영명 174㎝)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라 어머니가 ‘너는 키 큰 신랑감이 없으면 시집도 못 갈거다.’고 곧잘 농담을 하곤 했어요. 첫 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갔는 데 키 큰 여자들이 쭉 지나가기에 미국 사람들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나에게 오더라고요.”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들은 틈틈히 테니스를 치며 1년 가량 연애끝에 잠시 귀국해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웨슬리대학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전통의 명문 대학이다. 영명씨는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나다.‘88 서울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고 정 명예회장을 현장에서 보좌했고,1992년 대선 때는 변중석 여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는 미소와 화술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미스 스마일월드컵’이라는 애칭은 이 때 얻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의 부인 자랑은 유별나다.‘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계속되는 자랑 하나.“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유머를 곁들인 자연스러운 영어는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곧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한다. 그동안 4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는 아이들이 크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의 ‘옛’것을 ‘올’바로 알자라는 의미를 가진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명씨가 밝힌 애처가 해프닝은 이렇다.“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했던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남편은 며느리들만 모인 자리에 와서는 제게 ‘밥 먹었니.’하고 묻는 거예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한마디 때문에 남편은 ‘애처가’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 꼬리표는 지금까지 따라 다닙니다.” 그도 신혼 초에 시아버지인 고 정 명예회장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철부지 며느리 시절, 저는 식사 중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어느 날 저에게 ‘밥 먹을 때 말을 많이 안하는 게 좋은 거다.’며 조용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자녀는 2남2녀. 장남인 기선(23)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올 초 아버지의 뒤를 이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장녀 남이(22)씨는 연세대를 휴학하고, 현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유니버시티에 유학 중이다. 차녀 선이(19)씨도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막내 예선(9)군은 경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명씨는 늦둥이인 막내 임신과 관련해 병원에서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잖아요. 한번은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어요.” 시중에는 예선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의원은 최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정치인 정몽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고,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가 나가면 여당 의원이 떨어진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지켜온 가장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다.”정 의원이 밝힌 정치 입문의 배경이다.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은 5선의 중진 의원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본 정치인 정 의원은 어떨까. 지난 대선기간 내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 회장도 ‘피’는 어쩔 수 없었던지 그 속내를 내보인 적이 있었다.“몽준 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 생겼다. 미국 MIT 대학원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 발언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 정 의원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직선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보좌했던 비서관의 얘기다.“정 의원은 성격이 급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매너가 깨끗하다는 평이다.“정 의원은 서구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직원들이 떠나는 차에 인사를 하면 ‘왜 차에다 대고 절을 하느냐. 하지 말라.’고 말린다. 또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한다.”며 다른 전직 비서관이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브레인 민계식(63)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가장 부지런한 CEO, 백발의 마라토너 CEO로 불린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2시 퇴근하는 일과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서를 퇴근시키고 저녁 6시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까지 사업구상이나 신제품 개발 계획에 열중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150편의 논문을 발표토록 했으며,48건의 국내 및 국제특허를 보유토록 했다. 우주항공학 및 조선공학(석사), 해양공학(박사)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전문지식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부문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 부회장은 또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최고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비록 20대 초반 시절에 일궈낸 기록이지만 지금도 2시간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42.195㎞의 완주기록도 100회를 넘었다. 유관홍(60)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내에서 경영 합리화의 귀재로 통한다.1999년 침체에 빠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세계 각지를 직접 뛰는 영업활동을 전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결과 만성적자였던 건설장비 부문을 2001년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국내 1위의 건설장비 업체로 탈바꿈시켰고, 중국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중국 최대의 건설장비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경영능력을 두고 지난해 6월 미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유 사장을 ‘기업회생 전문가’라고 평했다. 이연재(63)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1976년 현대중공업 간부로 입사한 이래 30년간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해 왔다.1999년 부도 위기에 처했던 옛 한라중공업을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하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단기간에 70여척의 선박을 수주했으며, 중단된 사원 복지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 사원아파트와 스포츠문화센터 등을 조성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던 회사를 2001년부터 4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최길선(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최 사장은 설계·생산·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선 현장에서 33년을 보낸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이다.‘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아래 내실을 강조한다. 최 사장은 올해 슬로건을 ‘창사 30주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선포하고, 선박 60척 생산체제 구축을 마련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현대중공업 탄생 일화 ‘옥스퍼드 박사가 낳은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에 즐겨 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곳이 현대중공업의 설립 신화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고 정 명예회장의 ‘원맨쇼’였다. 고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작은 회사가 언감생심 어딜 넘보는 것이냐.’는 바클레이즈 은행의 태도에 기가 질렸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기댄 곳은 당시 기술협조 계약을 맺은 영국의 A&P 애플도어 엔지니어링사. 그는 500원짜리 지폐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켰다.“이것은 한국 지폐입니다. 여기 그려진 것이 거북선이죠. 한국은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800년대이니 한국은 무려 30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그는 롱바톰 회장의 도움으로 바클레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그러나 콧대 높은 영국 은행의 부총재를 설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옥스퍼드 박사’ 일화는 여기서 나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어제 제가 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한번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유머’에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이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고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지폐’와 ‘옥스퍼드 박사’로 바클레이즈 은행 벽을 넘었지만, 아직 영국 수출보증기구(ECGD)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이것도 울산의 초라한 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그리스 선사인 ‘선 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 선박을 수주 계약함으로써 무사히 통과했다. 이로써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하는 신화가 나오게 됐다. 고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이 당시 맺은 인연은 지금도 대(代)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MJ 처가의 ‘화려한 혼맥’ 정몽준 의원의 처가인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상류사회의 ‘족보’를 엿볼 수 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고 김 장관과 송두만(83) 여사는 자식교육 뿐 아니라 혼사까지 성공한 케이스. 자녀 모두 외교관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영어와 일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특히 장녀인 영애(60)씨와 차녀인 영숙(59)씨는 일본 최고의 여성 사립명문인 세이신대학을 졸업했다. 장남인 대영(57)씨는 미국의 암허스트대학을 졸업했으며, 차남인 민영(51)씨는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자녀 가운데 재계 가문으로 시집간 이는 삼녀인 영자(55)씨와 막내인 영명(49)씨. 영자씨는 GS그룹의 허씨가인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형제로는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과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이 있다. 또 허창수(57) GS그룹 회장과는 사촌간이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맏형이다. 고 허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성물산의 창립멤버로 참여,LG 구씨가와 손잡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명씨는 정몽준 의원과 1979년 결혼, 현대가의 일원이 됐다. 이로써 고 김 장관의 집안은 국내 대재벌인 삼성과 현대,LG,GS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차녀인 영숙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64)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30대 초반에 ‘손컨설팅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대미포조선과 쌍용자동차, 맥슨전자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웍스솔루션 코리아 고문이다. 장녀인 영애씨는 자수성가한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의 부사장이다. 남편인 최융호(62)씨는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제너럴 마리타임 사장이다. 장남인 대영씨는 부친인 고 김 전 장관의 아호(海吾)를 딴 해오실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차남인 민영씨는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인인 정다미(44)씨도 명지대 교수다. 김 전 장관의 집안은 또 언론계와도 각별하다. 손녀 사위들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셋째 사위인 허 회장의 장녀인 유정(31)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준오(31)씨와 결혼했다. 둘째 사위인 손 고문의 차녀인 정희(31)씨는 1999년 헤럴드미디어 사장인 홍정욱(35)씨와 화촉을 밝혔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여담여담] 여성대통령 맞을 준비 돼있나/ 최광숙 산업부 차장

    지난해 11월 미국 동부 명문대인 스미스여대 크리스트 총장 일행을 서울에서 만났다. 학교 홍보를 위해 방한했던 그녀는 한국에서 활동 중인 각계의 여성 지도자들을 만나고 싶어했다. 조선호텔에서 가진 여성 지도자들과의 이날 간담회에는 내로라하는 직함을 가진 각계 여성 선배들이 대거 참석, 자리를 빛냈다. 여성 지도자 반열에 오를 위치가 아닌 내가 참석한 것은 순전히 친한 선배가 스미스대 한국 총동창회장이라는 인연 때문이었다. 이날 자연스레 육아와 출산, 직장에서의 ‘유리천장’등 사회 진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 화제로 떠올랐다. 한·미 여성간에는 ‘파워게임’도,‘국제질서’도 작용하지 않고 쉽게 공감대가 형성됐다. 당시 미국 대선이 끝난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정치 문제도 식탁에 올랐다. 내가 “한국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의 여성들이 다음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고 소개하며 “미국도 여성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고 물어봤다. 총장 남편인 이 학교 임원이 대답했다.“미국에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 라이스 안보보좌관(현 국무장관) 등이 있다.”면서 “우리 남성들은 여성 대통령을 맞이할 충분한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웃음 바다가 됐다. 하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미국은 선거를 겪으면서 상당히 분열됐고, 이제 ‘안보’가 가장 큰 이슈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보가 쟁점화될수록 여성은 불리한 구도”라고 진단했다.“미국 안보를 여성에게 맡기려 하지 않는 남성들의 시각이 있다.”고 그쪽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메시지인즉 ‘안보=남자’라는 얘기였다. 다소 놀랐다. 미국도 여성 역할에 대한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9·11테러가 결국 여성문제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미치자 씁쓸했다. 안보의 중요성이라면 우리나라를 능가할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와 테러를 경험한 미국 중 어느 나라에서 먼저 여성 대통령이 나올까?.‘내기’를 걸어 봄직하다. 최광숙 산업부 차장 bori@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하버드 졸업생은…/데이지 웨이드먼 엮음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미국 하버드경영대의 졸업생은 매학기의 마지막 수업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수업을 마치기 전 고작 10분이나 될까. 스승들이 이 짧은 시간에 무슨 말을 남기기에 제자들은 인생의 고비마다 마지막 강의를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는 것일까. 성적조작과 입시부정 등으로 얼룩진 우리 교육의 단면을 생각하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어쩌면 하버드 스승들의 인상적 강의에서, 난마처럼 얽힌 우리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하버드경영대 교수 15인이 들려준 마지막 강의를 묶은 책 ‘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데이지 웨이드먼 엮음, 안명희 옮김, 세종서적 펴냄)가 나왔다. 책에 의하면 교수들은 졸업생들에게 명문의 자부심을 논하지 않는다. 정치적·경제적 성취를 부추기지도 않는다. 대신 이들은 그동안 감추어왔던 자신의 소중하고 내밀한 경험을 내보이며, 오직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한 이야기,‘진정한 승리’를 위한 길이 어떤 것이지 가르쳐준다. 데이비드 벨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5년 후 여러분은 졸업 5주년 동창회 초청장을 받을 것이다. 결코 참석해선 안 된다.10년 후,15년 후도 마찬가지다. 그 곳에 간 순간 여러분은, 친구들을 보기도 전에 그들이 타고 온 차를 보며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것이며, 칵테일 잔을 마주치며 이미 CEO에 오른 친구의 자랑을 듣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자신이 설계한, 자신이 가고자 한 삶을 잊은 채, 화려해 보이는 다른 행로를 택할 가능성이 크며, 그 순간 불행한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다. 레이포트 교수는 그가 대학 2학년 때 치른 황당한 기말시험 이야기를 꺼낸다. 다리만 빼고 몽땅 가린 새의 박제를 보고는 새의 이동패턴과 식생활, 짝짓기 습관 등을 추론하라는 시험이었다. 그때 이를 참지 못한 한 학생은 바짓단을 말아올리며 조교에게 ‘당신이 나에 대해 말해 보시죠.’라고 소리친 뒤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레이포트 교수는 오늘의 세상이 그 시험문제 같다고 말한다. 짙은 안개 속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용기, 그리고 확신과 결단이다. 니틴 노리아 교수는 어떤가. 그는 ‘절대로 나무를 태워서 밭을 일구는 화전민처럼, 종업원 해고로 수익을 올리는 경영자가 되지 말아라. 화전민같은 경영자는 결코 신뢰받을 수 없다.’라고 당부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사업성공을 위한 금과옥조로 숭배하는 우리 경영인들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하버드의 스승들은 주로 개인적으로 경험한 도전과 성공, 실수, 갈등을 풀어놓으면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리더로서보다 나은 인생을 사는 방법이 어떤 것이지 이야기한다. 여기엔 스승 자신들의 삶에 대한 진솔한 자세, 제자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뜨거운 열정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졸업생들은 이런 수업을 들으며 단순한 ‘명문대 졸업생’이 아닌 ‘열린 인간’으로 사회에 나간다.800대 기업의 CEO 중 25%가 하버드 출신이라는 ‘하버드의 법칙’도 이런 수업이 있었기에 생기지 않았을까. 1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소신선택으로 빛낸 ‘만점 학업’

    소신선택으로 빛낸 ‘만점 학업’

    ‘명예’나 ‘출세’보다는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해 졸업평점 만점을 기록한 이색 졸업생들의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오는 25일 학위를 받는 전남대 졸업생 가운데 개교 이래 처음으로 평균 평점 4.5점 만점을 받은 학생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농업생명과학대학 산림자원 조경학부 정일신(23·여)씨. 그의 만점 학점 취득은 신념에 따라 ‘나의 길’을 선택해 얻은 결과이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황칠 연구가로서 10여년 전 귀농한 전남 해남 ‘아침재 산막’ 정순태씨의 1남1녀중 외딸. 전남과학고를 졸업한 그는 동창생들이 당연한 듯 지원하는 서울대나 카이스트, 의·치대를 마다하고 ‘임학과’를 선택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지적 엘리트 중 일부가 의사, 판검사, 과학자로서 세상을 고치기 위해 노력할 때 그 누군가는 무너져가는 땅과 삶의 근원을 보수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며 ‘임학과’를 당당히 선택한 이유를 내비쳤다.“아버지의 외길 인생처럼 농업과 환경의 룰이 적용되는 ‘사회생태학’ 분야로 공부의 영역을 넓혀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학부 졸업 후에는 전남대 대학원 임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할 계획이다. 한편 23일 조선이공대학 전기과를 졸업하는 조준현(30)씨는 지난 99년 연세대 생명과학과를 졸업한 뒤 2003년 2년제인 이 대학으로 U턴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2년 내내 한번의 결석도 없이 열성적인 제2의 학창시절을 보내며 졸업평점 만점(4.5점)으로 과수석을 차지했다. 지난 한해 동안 전기공사기사·전기산업기사 등 전기 관련 자격증을 5개나 따냈다. “하고 싶은 분야의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학창시절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며 “엔지니어로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전기 관련 사업을 키워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교시절 상위권을 유지했던 그는 부모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연세대에 입학했다. 당시 학력고사 점수로는 지방대 의학계열 진학도 가능했지만 ‘명문대’를 바라는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의과대 복수전공이 가능한 생명과학과를 지원한 것도 그의 뜻이 아니었다. 하지만 “해부학 시간에 ‘피’를 보는 것이 제일 싫었다.”는 그는 의학계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졸업 후 ‘부모가 바랐던 길’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이 대학 전기과에 다시 입학해 열성적으로 공부했다. 조씨는 “이제 부모님도 저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며 “앞으로는 ‘나의 길’을 소신껏 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명문대 망령에 망가진 인생

    명문대 망령에 망가진 인생

    명문대를 향한 빗나간 모정과 비뚤어진 진학욕심이 수험생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이들로부터 의뢰를 받은 대리시험 응시자들도 별다른 죄의식 없이 돈을 벌기 위해 부정행위에 가담, 범죄를 낳았다. ●마비된 범죄의식에 2년째 대리시험 부탁 올해 수능에서 서울대 중퇴생 박모(28)씨에게 대리시험을 의뢰했다가 경찰에 적발된 차모(23)씨는 지난해 수능에서 자신을 ‘서울대 공대생’이라고 속이고 친구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했던 인물. 수도권 A대학 03학번인 차씨는 지난해 11월 K대 한의대에 다니는 고교 동창생 신모(23)씨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했다가 신씨가 시험 감독관에게 적발되는 바람에 사법처리돼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다. 경찰은 당시 “서울대 공대생인 친구 차씨가 한의대에 진학하고 싶다고 해 대신 시험을 치렀다.”는 신씨 진술을 그대로 발표했고 차씨 역시 조사과정에서 버젓이 경찰을 속였다. 이 사건은 당시 이공계 기피 현상과 관련해 “서울대 공대생마저 한의대로 가려 한다.”며 세간에 화제가 됐다. 올해에도 명문대에 가기 위해 대리시험을 의뢰한 차씨의 거짓말은 멈출 줄을 몰랐다. 차씨는 지난 8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과외중계’라는 카페를 통해 만난 박씨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했다. 차씨는 자신이 사는 동대문구 이문동 관할 교육청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친척이 사는 강남구 일원동을 주소지로 응시원서를 제출하고 박씨에게 줄 사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중고자동차 매매센터를 운영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하기도 했다. ●범죄도 마다하지 않은 모정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 순간적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아들의 수능 대리시험을 의뢰했다가 경찰에 적발된 재수생 박모(21·부산시 남구)씨의 어머니 서모(48)씨는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서씨가 대리시험이라는 방법을 이용한 것은 아들에 대한 유별난 사랑과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 대한 빗나간 모정에서 비롯됐다. 경남의 모 명문여고를 나온 서씨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명문대에 보내야 한다는 ‘극성스러운 엄마’였다. 박씨는 중학교 졸업후 서울 강남의 모고교로 유학가 서울 모대학 호텔경영학과에 입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1학기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다. 약대 진학을 목표로 재수를 하던 박씨는 성적이 신통치 않자 어머니와 함께 대리응시생을 구하기로 했다. 지난 2월 인터넷 과외 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 광고를 낸 부산 모대학 의예과 2학년 김모(22)씨가 눈에 들어왔다. 김씨를 만난 서씨는 수능점수가 좋으면 1000만원, 점수가 잘 안나와도 500만원을 주겠다며 대리응시를 부탁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김씨는 이들의 부탁을 승낙했다. 서씨 모자는 시험 당일 아침 김씨에게 응시원서와 함께 김씨의 사진을 얇게 오려붙이고 비닐랩을 씌워 전기다리미로 눌러 위조한 박씨의 주민등록증을 건네주는 등 치밀하게 사전준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中 유학파도 “취업 걱정”

    中 유학파도 “취업 걱정”

    중국서도 해외 학위의 위력이 ‘빛바랜 신화’가 됐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19일 해외 대학의 졸업장만으로 좋은 자리와 고소득을 보장받던 시대가 중국서도 막을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해외유학생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데다 중국 국내대학의 성장으로 외국의 어지간한 대학을 졸업해선 구직 전선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신문은 조지워싱턴대, 존스홉킨스대, 메릴랜드대학 등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고도 포기한 베이징대학 졸업생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불확실한 유학생의 미래로 인해 미국 명문대학의 장학금과 입학허가를 받고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해외 유학생은 현재 11만 7000명.2000년 3만 9000명에서 4년 만에 4배가량 늘었다. 중국 취업시장에서 유학생의 공급이 이제 수요를 넘어서고 있는 셈이다. 개혁개방 20년 동안 쌓인 해외파 두뇌도 포화상태로 구직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해외로 나간 유학생은 58만여명. 공식통계로는 그 가운데 17만명이 중국으로 돌아와 일하고 있다. 공식통계엔 잡히지 않지만 경제성장이 궤도에 오르면서 해외에 자리잡고 있던 상당수의 중국계 두뇌들이 단기간 중국으로 일시 귀국, 일을 하기도 한다. 또 해외와 중국을 오가면서 돈을 버는 사례도 일반화됐다.‘기회의 땅’인 중국으로 몰려드는 외국인 두뇌들도 경쟁의 치열함을 더한다. 월 5000달러를 요구했던 한 미국 법학박사는 겨우 1500달러에 만족해야 했다. 중국의 고급인력 구직시장의 문이 그만큼 좁아진 탓이다. 중국 명문대학들의 약진도 해외대학 졸업장이 예전처럼 좋은 직업과 자리를 보장하는 보증서가 되지 못하게 한다. 베이징대, 칭화대, 푸단대 등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거액의 해외 기부금까지 유치하면서 도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세계 랭킹에서 한국대학들을 제친 지 오래다. 중국 국내대학의 영어교육 및 자본주의 경제교육의 강화로 중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이 구태여 더 많은 돈을 주면서 해외대학 졸업생을 구하려 하지 않는 것도 추세다.‘순수 국내파’면서 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인재들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도 미국 등 해외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는 ‘해귀파’(海歸派)들의 입지를 좁게 한다. 중국의 ‘해귀파’들도 하버드·예일·스탠퍼드 등 특별히 좋은 대학의 MBA나 경제·경영 등 수요가 많은 전공이 아니고는 구직 전선에서 고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오랜 외국생활로 인한 중국내 동창 등 인간관계 단절이나 권위주의적인 중국적 사회분위기에 대한 해외유학생들의 부적응도 유학생들이 경쟁에서 처지는 이유라고 IHT는 지적했다. 스탠퍼드대 MBA인 한 귀국 유학생은 “해외유학생들이 중국의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 누리던 혜택과 기회는 5년내에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14) ‘제2 고리채 정리’ 나선 정대근 농협 회장

    정대근 회장은 헌칠한 키(180㎝)만큼이나 말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60평생을 살면서 줄곧 지켜온 신념이 진솔하고 투명하게 사람과 일을 대하자는 것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정 회장은 “지금이 나의 30년 농협 활동에 있어 최대의 위기이자 기회”라고 말했다.안팎으로 처한 우리 농촌과 농업의 현실이 그만큼 위중하다는 얘기다.그는 ‘혁신’밖에는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농촌 고리채 정리가 반평생의 숙원 사업 세상 물정 몰랐던 서른 한 살에 처음 작은 시골 조합장이 됐다.내리 8번 연임을 하고,환갑이 된 지금 중앙회장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반평생을 농협에 바친 셈이다. 내 고향은 낙동강이 굽이치는 밀양시 삼랑진읍이다.마산과 부산이 갈라지는 곳으로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 꼽혔던 곳이다.부친께서 3만평 정도의 농사를 지었으니 마을에서 꽤 큰 부자로 통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수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부산공고에 다닐 때에도 2등이라곤 몰랐다.부산상고와 더불어 부산공고도 명문 중 하나였다.부산공고 총학생회장 시절에 4·19혁명이 터졌다. 대구 경북고에서 시작된 학생운동은 부산에서도 요란했다.공부도 안 하고 학생운동한다고 돌아다녔다.부산시 학생회를 만든 뒤 부산의 한 대학에 들어갔지만 중간에 그만두었다.동네 사람들이 “저 친구 서울 명문대 갈 것”이라고 했는데 공부를 제대로 못했으니 나도 가족들도 참담한 심정이었다.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마침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집안 살림도 형편이 어려워졌다.무작정 고향으로 내려왔다. 동네 유지들이 나에게 농협 조합장을 맡으라고 권했다.똑똑했던 어릴 적 모습 때문이었다.조합이 뭔지는 몰랐지만 집에서 과수원도 했기 때문에 농산물에 대해서는 훤했다.1975년 삼랑진 조합장에 처음 당선됐다.“그래,우리 고장을 정말 아름답고 잘 사는 곳으로 만들어 보자.” 사실 그때에는 정치에도 마음이 있었다.물론 지금은 “흙에서 태어났으니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농협을 농민에게 돌려달라” 조합장을 하면서 나는 아침마다 일부러 부산까지 가는 통근열차를 탔다.그때 열차에는 통학생들과 함께 부산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탔다.기차에 오르면 승무원의 도움으로 안내방송 마이크를 잡았다.“○○공판장으로 가세요.그곳에 가면 좋은 값에 팔 수 있습니다.” 삼랑진 복숭아를 한 곳에 다 모아서 시세를 잘 받아 팔았다.지금으로 말하면 농산물 ‘계통출하(공동판매)’였던 셈이다.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지만 그 길만이 조합원들이 조금이라도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어떤 때는 삼랑진 복숭아를 하루 동안 화물차 35대분을 실어 날랐다.토마토는 인천 공판장까지 싣고 가기도 했다.서울 공판장에도 발이 부르틀 정도로 돌아다녔다.그래서 공판장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입으로 웅얼웅얼대는 경매인의 눈빛만 봐도 “저 친구 어젯밤에 술 좀 마셨구나.”하고 알 수 있었다.소주를 몇병 먹었는지 안주를 잘 먹었는지 못 먹었는지조차 훤히 눈에 들어왔으니 그날 경매시세를 가늠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에는 한국 농협 대표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쌀시장 개방반대 운동을 했다.전국 농민대표로서 서울 여의도에서 최대 규모의 농민집회도 이끌었다.협동조합운동이든 농민운동이든 농민이 떳떳하게 잘 살도록 해 주는 게 진짜 운동이다.농민대표 노릇을 하며 외친 구호는 “농협을 민주화시키고 중앙회장 자리를 농민에게 돌려달라.”였다.결국 나는 2000년 1월 농협,축협,인삼협을 합친 통합 농협의 1기 민선 회장에 당선됐다. ●실익을 주고 믿을 수 있는 농협 지금까지 살면서 잊지 못하는 일이 있다.70년대 말 3선 조합장으로 일할 때 조합장실에 지팡이를 짚고 남루한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찾아왔다.할아버지는 대뜸 “돈 50만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워낙 큰 돈이어서 “어르신,왜 그러십니까.”하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집사람이 일찍 죽고 혼자서 늦둥이 딸을 키웠는데 곧 딸이 시집간다.”면서 “죽기 전에 부모 노릇 좀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사정했다.나는 고심한 끝에 대출계 직원에게 50만원을 빌려 주라고 지시했으나 직원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양반에게 거액대출은 절대로 안 된다.”고 버텼다.3일을 설득해 내가 보증인이 돼 대출을 해 주었다. 몇년 뒤 나는 돌연 농림부로부터 감사(監査)를 받았다.이유를 캐보니까 도시에 사는 그 할아버지의 조카가 “정대근 조합장이 어리숙한 시골 노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고리를 뜯고 있다.”고 농림부에 투서를 했던 것이다.감사결과 대출금리 연 15%가 다른 조합과 똑같은 것이어서 혐의는 벗었지만 도시은행들의 연리 10%보다는 무척 높은 편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 조카 말만 듣고 조합을 괘씸하게 여겼던 할아버지는 오해가 풀리자 담배 2보루를 들고 찾아왔다.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떨궜다.나는 그때 생각했다.“순박한 촌부가 나를 오해하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농민 대출의 높은 금리를 도시 은행들처럼 합리적으로 낮출 수 있는 길은 없을까.”결국 이때의 고민이 오늘 농민대출의 금리를 크게 내린 계기가 됐다. 아내는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장인이 일본에서 의과대학을 나온 분이어서 아내는 유복한 집안의 딸로 자랐다.나는 1년에도 제사를 셀 수 없이 많이 지내야 하는 보수적인 집안의 장남이다.그런 아내가 젊은 나이에 돈벌이도 시원치 않고 선거판이나 돌아다니는 남편에게 시집 와서 고생했으니 돌이켜보면 참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아내는 평생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나를 내조했다.문밖 출입도 제대로 못한 채 살았다.그런 아내와 지난해 처음 제주도에 갔다.아내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우리나라에 있었느냐.”며 좋아했다.나를 믿고 따라준 사람들을 위해 나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농협이 잘 돼야 농민이 산다.나는 반평생 조합장을 하면서 “사촌이 잘 사는 것보다 농협이 잘 되는 것이 여러분에게 낫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농협이 잘 되면 돈을 얼마든지 빌릴 수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농협의 자립이 중요하다.자립할 수 있는 조합은 살아남고 농민에게 실익을 주지 못하는 부실조합은 어쩔 수 없이 도태될 것이다. 나의 경영철학은 정도(正道) 경영이다.기본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사람을 바르게 대하고 올곧게 뜻을 펼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게 평생의 신조다.농민과 농협이 서로 협동하며 상생(相生)하고,농민과 도시민이 함께 잘 사는 게 내 꿈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앙회가 단행한 일선 지역조합의 상호금융 대출금리 인하 조치는 농민도 도시민과 더불어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제2의 농어촌 고리채 정리사업’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다.농촌은 고금리에 시달리고 있다.현재의 농협은 61년 농업은행과 구 농업협동조합이 합쳐져서 탄생했다.72년부터 농림수산업자를 대상으로 신용보증 업무를 시작했다.그때는 촌에 사는 농민들은 편하게 돈 빌릴 곳이 없어 고리 사채에 손대기 일쑤였다.그러나 신용사업 덕분에 고리채가 없어졌다.농협이 최초로 농촌에서 고금리 사채를 몰아낸 것이다. 그로부터 3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그러는 사이 또다시 도시와 농협간 금리 차이가 생겼다.도시 은행들은 서로 경쟁을 하며 자연스럽게 금리를 낮췄지만 열악한 금융환경의 농촌에서는 이런 혜택을 누릴 수가 없었다.농민들은 또다시 비싼 이자를 물면서 대출받아 농사를 지었다.앞으로 통합 2기 농협은 고금리를 농촌에서 몰아낼 계획이다.전에는 농협도 신용조합 등과 마찬가지로 금리가 연 9∼10%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시중은행 수준인 8.5% 정도다. 전국 1320여개 지역조합 가운데 1218곳이 금리를 인하했다.중앙회 방침에 적극 호응해 준 지역조합에 고마움을 전한다.그러나 지역조합은 저금리 체제로 가면서 그만큼 생긴 이익감소를 자구책을 통해 메워야 한다.필요하다면 구조조정도 해야 할 것이다. 통합 2기 농협은 유통 대혁신에도 나설 것이다.농민은 고품질의 농산물 생산에만 몰두하고 판매와 정산,수송은 농협이 책임지겠다는 것이다.또 농협을 지역사회의 문화복지 센터로 만들겠다.이것이 내가 반평생을 몸 담고 있는 농협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일이다. ■ 정대근 회장은 정대근(鄭大根·61) 농협중앙회장은 지난달 25일 통합농협(농협·축협·인삼협)의 2기 회장으로 재선됐다. 1999년 3월 전임자의 잔여임기를 넘겨받아 지금까지 5년여 동안 회장으로 있으면서 괄목할 만한 경영성과를 거뒀다.지역조합 예수금이 65조원(98년)에서 103조원(2003년)으로 늘었고,같은 기간 순이익도 1144억원에서 6448억원으로 증가했다.적자 조합은 106곳에서 26곳으로 줄었다.최근에는 은행·보험 등 금융사업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경기침체로 고통받는 농민들을 위해 올초 대출금리를 큰 폭으로 낮춰 환영받기도 했다. 바른 말과 거침없는 행동으로 유명한 정 회장이지만 부리부리한 눈에 눈물도 자주 고인다고 주변에서는 말한다.거세지는 농산물시장 개방압력과 내부환경 변화 등 안팎으로 대 전환기에 선 지금,정 회장의 ‘개혁적 공격경영’이 농협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궁금하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서울대 출신 45년 양복匠人 이순신씨

    가업(家業).사전적 의미는 대대로 물려받은 직업이란 뜻이다.세업(世業)이라고도 한다.선대의 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후대 입장에선 도박일 수 있다.후대의 적성과 가업의 계승이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할아버지,아버지의 거대한 그늘에 눌려 평생 자리를 찾지 못하고 ‘짝퉁’으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청출어람(靑出於藍).’그렇게 호락호락한 사자성어가 아니다. 장인을 천하게 취급하는 분위기도 가업을 쉬 포기하게 하는 요소가 돼왔다.이런 탓에 유럽이나 일본처럼 수백년 전통의 장인 명가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했다.더군다나 장인이 추구하는 옛것이 성장의 가파름과 무관할 때 장인 명가의 생존율은 급격히 떨어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를 물려 고집스럽게 양복을 지어온 명문대 출신 재단사가 있다.서울 소공동 해창양복점 사장 이순신(68)씨.대학생이 귀했던 1950년대 명문 서울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그가 40여년 동안 한 길만 걸어온 사연은 무엇일까. ●75년의 궤적을 쌓은 해창양복점 “저쪽 길 건너 해창양복점이오.” 양복점이 운집한 소공동에서 가장 오래된 양복점을 물으면 재단사들은 입을 모아 해창을 가리킨다.경쟁자들마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월의 누적이 해창을 믿게 만든다. 지난해 12월 해창은 롯데호텔 본점 지하아케이드인 롯데 일번가에서 소공동 양복점거리로 되돌아왔다.롯데백화점이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자 다시 옛 둥지를 찾은 셈이다.1929년 부산에서 문을 처음 연 해창양복점은 우리나라 수제 양복의 산실이다.해창은 30년대는 서울 을지로4가에서,해방 전후에는 소공동,79년에는 롯데일번가로 자리를 바꿨지만 해창 특유의 브리티시 스타일 양복에는 변함이 없다. 해창의 창업자인 이씨의 아버지 이용수씨는 보통학교를 마친 뒤 일제시대 당시 면서기로 근무를 하다 작은아버지가 있는 일본 고베로 향한다. 항구도시인 고베의 한 양복점에서 이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군복과 예복 등을 지으며 양복기술을 습득한다.그리고 23세에 귀국해 자신의 가게를 시작한다. ●은행 취직 대신 가업을 잇다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학을 졸업했지만 이씨는 주저없이 아버지의 양복점을 첫 직장으로 택했다.살림집과 붙어 있던 양복점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재단사로 진로를 정했다.주위의 시선을 고려하면 쉽지 않았을텐데,이씨는 “은행에 다니는 것보다 옷을 만드는 것이 훨씬 재미있어서”라며 선택이유를 평범하게 밝혔다.의외로 아버지도 아들을 이해하고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이씨는 이미 고교 2학년때 수를 놓아 교복의 명찰을 만드는 방식을 처음 고안해낼 정도로 감각을 타고 났다. 당시 상과대학 학장이던 은사는 “상대생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냐?”면서 그의 장래를 걱정했지만 1년 뒤 제자를 다시 만났을 때는 잘 선택했다며 격려해 주었다. “동창들 가운데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친구들은 많아요.하지만 그들만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죠.나도 내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가지고 성공한 셈입니다.” 적성을 찾은 이씨는 지난 1959년부터 고객의 몸치수를 재고 직접 재단을 했다.1970년에는 노동부 주관의 양복재단 1급 기능사 자격증도 거머쥐었다.옷을 짓는 일뿐만 아니라 국내외 양복관련 단체에서도 맹활약했다.70∼80년대에는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일본 등 전세계 20여개국 양복제작자들의 단체인 세계주문복업자연맹에서 회장으로 활동했다. ●꼼꼼한 이병철,소탈한 정주영 해창의 오랜 역사가 말해주듯 해창을 거쳐간 단골 명사들도 적지 않다.웬만큼 멋을 찾는 사람들은 옷의 맛을 찾아 해창의 문턱을 넘는다. “제일모직에서 복지를 새로 만들면 인근 양복점에서 고 이병철씨의 옷을 시범으로 만들었습니다.지금은 고급 복지로 평가받지만 초창기에는 물에 적시면 사용한 실의 수축정도가 달라서 복지가 울었어요.” 옷이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듯 단골인 이병철씨와 정주영씨의 취향도 제각각이었다.이병철씨는 권위적인 느낌의 옷을 좋아하며 옷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으며 정주영씨는 소탈하고 서민적인 양복을 즐겨 입었다.해창의 단골손님으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화신백화점의 박흥식씨,한국일보의 장기영씨 등이 있다. “젊은 시절 음식점 국일관에서 일했던 이기붕씨는 정치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적으로는 무척 세심한 사람이었어요.옷을 가지고 가면 옷상자까지 되돌려주고 상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옷값은 즉시 지불했죠.” 풍채가 좋았던 한국일보 창업자인 장기영씨는 검정색 계통의 옷을 즐겨 입었다.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던 시절 숯다리미는 불의 강도 조절이 어려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옷에 흠을 냈던 일화도 있었다. ●“사람의 개성과 옷이 조화를 이뤄야” 40여년 동안 쌓은 이씨의 옷 철학은 비싼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란다.옷은 입는 사람의 개성과 품위,지위와 함께 조화를 이뤄야 제값을 한다고 말한다. “옷은 사람에게 제2의 피부로 감정표현이 가능합니다.비싸고 좋은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품격에 맞는 옷을 입어야 인상이 좋게 보이고 호감도 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점차 사양길에 접어든 맞춤 양복에 대한 아쉬움은 떨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해창은 대량생산보다는 다품종 1제품 생산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도 양복 한벌을 짓는데 1주일여가 소요된다.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제대로 된 옷이 나오기 때문이다. “양산을 많이 하면 품질을 조정하기 힘들죠.수량이 많아지면 사람의 개성이나 취향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어요.” 옷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은 역시 후학 양성으로 귀결된다.이씨의 아들도 불투명한 맞춤복의 미래 탓에 기성복 수출 쪽에서 일하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 대학에 양복재단 관련 학과를 세우려고 하는데 이를 하겠다는 학교재단이 거의 없어요.요즘 젊은 사람들은 10년이나 소요되는 재단사에 뛰어들지 않습니다. 관련 학과라도 만들어야 맞춤양복의 명맥을 잇지 않을까요.” ■프로필 ▲1936년 1월 8일 서울 출생 ▲1955년 2월 서울고등학교 졸업 ▲1959년 2월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 ▲1959년∼현재 해창양복점 경영 ▲1966년∼현재 세계주문복업자연맹 한국대표 ▲1976∼1986년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 회장 ▲1984년 9월 제19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양복심사장 ▲1984년∼현재 서울대 총동창회 이사 ▲1991∼1999년 세계주문복업자연맹 부회장 ▲1997∼2003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1999∼2003년 세계주문복업자연맹 회장 ▲2003∼현재 세계주문복업자연맹 명예회장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 [방황하는 과학영재] ③정부가 나서라- 벤처·대기업·학계 휩쓴 KAIST 인맥

    ‘NHN,새롬기술(솔본의 옛이름),핸디소프트….’ 코스닥시장의 황제주이거나 한때 코스닥의 샛별로 군림했던 벤처 기업이다.하지만 이들 업체의 창업주가 카이스트 출신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해진,오상수,안영경씨는 모두 카이스트 전산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NHN 이 전 대표는 국내 최대 검색엔진 회사로 키워 청년 재벌이 됐다. 부도는 났지만 국내 벤처기업의 ‘원조’로 불리는 메디슨의 이민화씨도 이 학교에서 198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최대 과학기술단지인 대전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가운데 상당수가 카이스트 출신이고 세계적인 기업 삼성전자 핵심 연구원도 이 학교 출신이 많다.이문용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연구소장과 임형규 삼성전자 전사 최고기술경영자(CTO·사장)는 77년,78년 이 학교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다. 카이스트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은 벤처기업협회장으로 벤처기업계를 이끄는 수장이다. 카이스트는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설령 다른 대학을 나왔더라도 우수 인재들이 카이스트 석·박사과정을 밟을 정도로 국내 이공계의 대표라는 데 이견이 없다.학부과정은 85년 개설됐다. 최고의 화제를 불러온 카이스트 출신은 지난 3월15일 SK텔레콤 상무로 발탁된 윤송이(28)씨.국내 최연소 박사기록 보유자로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카이스트를 7학기 만에 수석 졸업한 천재소녀로 유명하다.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윤씨는 과거 SBS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탤런트 이나영이 열연한 천재공학도의 실제 모델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상천 영남대 총장,카이스트 총동창회장인 김호식 전 해양수산부 장관,김대욱 전 공군참모총장 등도 카이스트 석·박사 출신이다. 또 실험실습을 통해 내공을 쌓아온 이 대학 출신들은 국내 이공계 대학교수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과학분야를 이끌고 있다. 외국에서도 카이스트 박사출신들이 지난해에만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와 영국 워릭대 등 명문대 교수로 4명이 임용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홍창선 총장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이공계는 전국체전이 아닌 올림픽에서 1등을 하는 것처럼 국제적인 스타들이 필요하다.”면서 “우리 대학은 전 세계의 이공계 대학에서도 톱에 드는 수준으로 국내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더 많이 알아주고 있다.”고 자랑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열린세상] 학벌주의와 대학교육

    ‘학벌주의 극복 방안 수립을 위한 합동기획단’이라는 긴 이름의 정부기획단이 탄생한다는 소식이다.14개 부처 장·차관이 회동하여 만들어낸 공동지혜의 산물이다.기획단에는 정부부처 이외에도 언론기관,시민단체,경제단체 등 민간의 참여가 예정되어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온 이른바 ‘학벌주의’가 연간 7조원에 이르는 사교육비,고용,소득,분배구조의 왜곡의 주범이라는 데 정부 각 부처가 공감했다는 배경 설명도 있다.노무현 정부의 근본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발상으로 보인다.많은 국민이 환영할 정책이지만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지도 미리 걱정된다. ‘간판’이 아니라 ‘실력’이 제대로 평가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실력을 갖춘 엘리트집단이 아니라 특정학교라는 간판 아래 모인 연고자들이 집단적으로 득세하는 것을 막자는 데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공정한 경쟁이라는 시장의 원리를 제약하는 요소를 제거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면 말이다.그러나 행여라도 이 정책이 개인의 실력과는 무관하게 골고루 자리를 나누는 방향으로 시행될 소지가 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인위적인 평준화정책을 구상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딛고 선 헌정질서의 근본이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유와 평등의 조화이다.사적 자유의 극대화가 초래할 극심한 불균형이 사회적 악이 되고,그 악이 인위적인 재배분을 통해서만 바로잡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국가의 개입이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이를테면 대학입시에 지역균형 선발제도를 도입하고 교육의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각종 특례입학 제도를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로 그런 예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학벌주의’의 근원은 다른 곳에 있는 듯도 싶다.특정학교가 학생에게 제공하는 교육의 질에 대한 평가제도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종래 우리나라의 대학은 입학만 하면 사실상 졸업이 보장되었다.그리하여 특정 대학의 입학과 동시에 평생토록 한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다시피 하였다.재학 중에 그가 어떤 수준의 교육을 받았는가는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실인즉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의 비중은 극히 미미했다.그러기에 자신은 대학에서 배운 것이 거의 없다고 공공연히 큰소리치는 세칭 ‘명문대’ 출신들이 즐비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다르다.국공립,사립 구분 없이 대학마다 교육의 질로서 경쟁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규모나 질에 있어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을 크게 앞선 지 오래인 우리나라이다.과거와 달리 대학 간의 격차도 좁혀졌다.40대 이하의 경우 특정직역에 있어 특정 대학 출신의 지배현상도 엷어졌다.시대가 이미 평준화,다원화의 길을 내쳐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 명문 상업고등학교가 인문계로 전환하고자 시도한다는 언론보도다.전직 대통령이 다닌 상업학교는 그분의 재직 중에 이미 인문학교로 전환했다고 한다.실업계 경시현상이라는 사회전반의 문제를 특정학교의 문제처럼 언론이 보도하듯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학벌주의가 뿌리박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만큼 동창회 모임이 활발한 나라도 드물다.학력이 높을수록 여러 단계에 걸쳐 중첩된 인연을 맺는다.그런데 대체의 경우 동창회는 학교의 발전보다는 동창생 간의 결속과 친목을 다지는 데 주력한다.국립대학일수록 동창의 기여가 미미하다.이제는 동창은 소집단적 연고와 결속을 통한 자신의 영달을 도모하는 대신 학교와 후세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쏟아야 한다. 불공정한 학벌의 횡포는 막아야 한다.그러나 인위적인 제도를 만들기 전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다.신중하고도 체계적인 정책이 수립되기를 바란다. 안 경 환 서울대법대학장
  • [수평사회를 만들자]2부 학벌타파 (2)학벌문화의 정점 서울대 개혁 어떻게 할까

    ■교육계의 서울대 개혁론 참여정부 출범 이후 서울대 개혁론이 힘을 얻고 있다.윤덕홍(尹德弘) 교육부총리가 취임 전 서울대의 공익법인화론을 제기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정부는 공룡같은 서울대의 구조에 ‘메스’를 들이대야 할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서울대의 힘 때문이다.특히 교수들의 반발이 크다.교육부는 현재 순수학문 육성과 전문대학원 체제 확대라는 원칙만을 되풀이하고 있다.그러나 서울대 내부에서조차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교육계에서도 다양한 개혁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세무대학처럼 폐교도 가능하다” 입시경쟁을 독점하고,사교육비를 증가시켜 중등교육을 피폐하게 하는 근본 원인으로 서울대를 꼽는다.학교 운영비를 국고로 충당하면서도 대학 서열화의 중심축을 형성,인재를 ‘싹쓸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건국대(충주) 정영섭(丁榮燮) 인문사회대학장은 “서울대가 있는 한 대학 특성화나 지방대 육성은 지엽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그는 국립 전문대인 세무대를 폐교했던 사례를 들어 폐교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대신 권력 분산 차원에서 3∼4개 이상의 대학의 경쟁 체제를 통해 대학 서열화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학생 뽑지 말고 他국립대생 교육을” 대학입시의 과열은 서울대의 ‘이름값’이 너무 비싼 탓인 만큼 학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회익(張會翼) 전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의 학부를 일정기간 폐지,‘간판’때문에 대학간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대신 지방 국립대의 신입생 모집을 서울대 학부생 만큼 더 뽑자는 것이다.지방 국립대 학부생들이 서울대에서도 배울 수 있도록 하되 졸업장은 해당 지방대에서 받도록 하는 방안이다. 연세대 홍훈(洪薰) 교수와 ‘학벌없는 사회’ 홍세화(洪世和) 공동대표는 ‘학부 개방론’을 제안한다.장 전교수의 학부 폐지론과 비슷하다.그러나 서울대가 자체 학부생을 선발하지 않는 대신 지방 국립대의 학부생들에게 수강을 허용,개방해야 한다는 점에서 폐지보다 개방에 가깝다. ●“국공립대 통폐합,학과 특성화를” 상명대 박거용(朴巨用) 교수가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있다.국공립대 학과를 통폐합,세부 전공 분야별로 특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박 교수는 이를 위해 “세부 전공 분야별로 국립대 교수들을 서울과 지역에 나눠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야별 교수가 한 곳에 모여있어야 두터운 인재의 두께 속에서 제대로 된 대학원 교육도 가능해진다.”면서 “법대와 의대,경영대 등 사립대에서 있는 인기 전공은 폐지하고 기초학문과 연구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를 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순수·기초학문 중심 대학원으로” 교육부를 비롯한 대부분 서울대 개혁론자들의 주장이다.서울대에서도 줄곧 내세우는 방향이기도 하다. 서울대 김모 교수는 “서울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기초학문이나 소외된 학문,돈이 많이 드는 학문,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학문 분야에 치중해야 한다.”면서 “100개에 이르는 학과 가운데 기초·순수학문 등은 학부에 남기고 나머지 학과는 털어낸 뒤 대학원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서울대 오모 교수도 “학부 보다는 연구중심대학원 체제로 전환,독점 체제를 버리고 세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가 손떼고 재정·의사결정 자율로”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를 공익법인화하는 방안이다.국가가 국립대에서 손을 떼는 것이 핵심이다.국가기관의 일부로서 공무원이 파견되고 국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재정을 집행하며,이에 대한 철저한 책임까지 지는 형태다.교원인사와 학생선발,예산편성 등 모든 권한은 대학으로 넘어간다. 국민대 김동훈(金東勳) 법대 학장은 이와 관련,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를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김 교수는 “사립대와 구별되는 유일한 특성인 지역대표성을 살릴 수 있다.”면서 “이는 지역 분권의 흐름과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기타 현 정부의 수도권 지방 이전 방침에 따른 서울대의 지방이전론과 학과의 분산을 위한 제2캠퍼스론,국가가 완전히 손을 떼는 민영화론 등도 제기되고 있다. 박홍기 김재천기자 hkpark@ ■개혁모델 서울대 행정대학원서울대 행정대학원은 학부가 없는 전문대학원이다.학부를 두고 있는 현 대학원 체제와는 상당히 다르다.학부없이 운영된 지 28년째다.지난 99년 ‘두뇌한국(BK)21’ 사업의 일환으로 인정받아 전문대학원 인가를 받았다.국립대가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해야하는지 보여주는 모델로 삼아도 좋다는 의견이다. 행정대학원은 서울대 출신들로 거의 채워지는 다른 대학원과는 달리 서울대와 다른 대학의 학부 출신이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김신복(金信福)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학원생을 모집할 때 학부를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여러 대학에서 지원한 우수한 학생들을 뽑을 수 있다.”면서 “현행 체제가 학문적 접근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1960년 국내 첫 특수대학원으로 출발한 서울대 행정대학원은 75년 법과대학에서 법과만 두고 행정학과를 폐지하면서 학부없는 대학원이 됐다.당시 행정학과는 법학과처럼 행정법 위주로 교육과정이 짜여졌다. 더군다나 미국 대학에서는 행정학과를 학부가 아닌 대학원에서 실무와 이론을 겸해 가르치는 체제가 주류였다.따라서 행정학과를 폐지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현재 교수는 23명이다. 박홍기기자 ■기고 / 마릴린 플럼리 한국외국어대 교수 영어학부 높은 교육열과 인적자원개발에 대한 관심 그 자체는 한국 사회의 매우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측면이다.하지만 비효율적·생산적이지 못한 면도 적지 않다.이는 한국의 우수한 인적자원을 극대화하는데 오히려 저해요소가 되고 있다.우선 엄격하고 치열한 경쟁을 축으로 하는 시험제도를 통해 교육 및 승진 기회를 결정해온 관행을 들 수 있다.어떤 교육을 받는가에 따라 개개인의 평생 사회적 지위나 위상이 대체로 결정되는 것이다.시험제도의 경쟁적 성격은 생산성을 높이고 창의적 해결을 가져오는 대안적(代案的) 사고를 키우는 대신 학생들에게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이런 방식이 왜 생산적이지 못한가.개인적인 차원에서 볼 때 자신의 재능과 관심이 있는 전문분야를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직업이나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대학 교육,그것도 명문대학에서의 교육을 출발점으로삼지 않고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인정받기가 어렵다. 시험제도는 학생들에게 자기만의 독특한 재능을 계발하거나 관심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젊음을 바치게 하기보다 표준화된 시험을 위한 벼락치기 공부에 엄청난 시간을 쏟아 붓게 만든다.학생들은 이를 통해 좋은 직장에 취직,사회적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개개인의 관심을 살릴 수 있는 대안적 목표를 추구해보라고 조언해도 시험제도,그리고 명문대학 입학을 권유하는 부모와 다른 교사들의 유형무형의 압력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현행 시험제도와 맹목적인 명문대 학위 취득 추구로 인해 학생들의 분석·종합력,창의적 사고력이라는 중요한 재능의 가치가 떨어지는데다 교실이라는 교육현장을 경시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전한 가치관 형성을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비효율성과 기회 박탈로 대변되는 이러한 개인 차원에서의 폐해는 사회적 차원에서 더욱 증폭된다.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에 따라 학사 학위의 가치가 달라지는 대학교육의 경직된 틀 안으로 다수의 학생들을 밀어넣는 것은 국가로서도 경제적·인적 자원의 낭비이다.대학만이 학생들의 재능을 연마하고 배양할 유일한 무대는 아니다.보다 실용적 목표를 가진 교육기관들 역시 국가의 인적자원의 풀을 넓히는데 제 몫을 하고 있다.따라서 이 기관들에 대해 나름의 기여도를 제대로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러나 현 체제 안에서라도 최소한 전공분야별 대학 순위제가 도입된다면 어느 정도 다양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전통적으로 대학교육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분야에서도 훌륭한 인재들이 꽃필 수 있다. 한국의 인적자원의 성장 잠재력을 저해하는 요소는 기업의 사원채용에서도 존재한다.기업들이 학생들을 가을학기 중에 채용하기 때문에 4학년생들이 마지막 학기를 채용면접 준비에 허비한다.4학년은 학문적 성취 면에서 최고조이어야 할 시기,수업 참여 및 기여 면에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시기,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종합할 능력을 연마하여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그러나 학생들은 취업관행에 얽매여 학업에 집중할 수 없다.결과적으로 대학교육의 가치도 떨어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동창이나 동문을 우대하는 뿌리깊은 채용 관행이다.많은 나라에서는 ‘제도적 근친상간’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다.미국의 예를 들면, 대부분의 주요 대학에서 모교출신을 채용하려면 다른 대학기관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다음에야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대학에 ‘새로운 피’를 수혈,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롭고 신선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 [수평사회를 만들자] 제2부 학벌타파 1.학벌문화의 원인.실태-간판을 거부한 젊은이들

    공부를 잘 하면 당연히 일류 명문대를 가야 한다고 교사나 학부모들은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권한다.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수없이 들으며 ‘세뇌’되다시피 한다.자연스럽게 학교든,학부모든 아동 교육부터 학벌을 염두에 둔 교육방식을 선택하고 있다.모든 교육의 지향점은 좋은 학벌을 갖기 위한 것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다.적성이나 소질은 고려 순위에서 뒤로 밀린다.학벌의 굳은 틀을 깨고자 노력하고 있는 학생들을 찾아보았다. ◈긴 방황끝 영화학과 입학한 임경진군 “앞으로 학벌에 얽매이는 그런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중앙대 영화학과 03학번 새내기 임경진(林敬眞.24)군은 최근 4년간의 경험을 떠올리며 거듭 다짐했다.‘학벌문화에서의 탈출’ 이것은 임군의 소망이다. 그에게 중앙대는 세번째 대학이다.대전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지방의 J대와 서울 D대를 전전한 지 4년만의 선택이다.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장학금을 받기 위해 선택한 두 대학의 학과에서도 모두 수석이었다.하지만 임군에게 4년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해진학벌문화에 방황하던 시기’일 따름이었다. 중3 때였다.공부를 곧잘하던 임군은 당시 전국적으로 일던 외국어고 진학 열풍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담임 교사부터 외국어고 진학을 적극 권했다.이른바 ‘명문대’ 진학에 유리하다는 이유였다. 담임 교사의 뜻을 어기고 진학한 일반고도 다를 바 없었다.고교는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전장(戰場)’일 뿐이었다.‘명문대' 진학을 위한 특별반이 별도로 운영됐고,철저하게 수치화되는 성적에 친구는 경쟁자에 불과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제 자신은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엄청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적성과는 상관없이 공부에만 매달린 것 같아요.꼭 기계처럼요.” 취업 걱정으로 J대를 1년 다니고 다시 들어간 D대는 새로운 학벌문화와의 만남이었다.대학측이 마련해준 고시반 생활은 더욱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다.고시만이 신분 상승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지 성공을 위해 젊음을 몽땅 바치는 선배들을 보고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지요.” 마침내 임군은 지난해 고심 끝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임군의 실력은 ‘명문대’에 충분히 갈 수 있었지만 영화를 선택했다.하고 싶어도 가정 형편 때문에 엄두도 못냈던 진짜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더이상 학벌문화도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예술대학에서 수석도 차지했다. “실력이 있어도 학벌 때문에 사회적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부터 죽는다면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주위에서도 만류했지만 제 결정이 옳다고 믿습니다.” 임군은 최근 삭발을 했다.정형화된 틀에 맞춰 젊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안성 김재천기자 patrick@ ◈포항공대 김석범·김현수군 포항공대 김석범(金錫範·기계공학과)군과 김현수(金賢洙·신소재공학과)군은 스물한살 동갑내기 2학년이다.기숙사 룸메이트이기도 하다.둘다 서울대 자연과학부에 합격하고도 포항공대를 선택했다. 석범군은 비평준화 지역인 경기도의 B고에서 부러움을 살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다.학교에서도,집에서도 진학할 대학은 ‘서울대’라고 얘기했다.예상대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은 잘 나왔다.서울대 자연과학부와 포항공대에 동시에 붙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도 서울대를 권하더군요.취업도 보장되고 성공의 길도 넓다고요.쉽게 살 수 있다면서요.” 석범군도 서울대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왔다.서울대의 힘이나 학벌의 ‘위력’을 저절로 느꼈다.하지만 포항공대를 택했다. “고민 끝에 매끄럽게 닦아놓은 길을 가기보다 새로운 길을 닦고 싶었어요.설립된 지 20년도 채 안돼 인맥도 적지만 연구와 노력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석범군은 아직도 고교 동창들이 “너 서울대 다니지.”라며 당연한 듯이 여길 때 오히려 곤혹스럽다고 말했다.부모님도 가끔 “집에서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고생도 덜하고…”라며 서운함을 표시한다고 귀띔했다. “대학의 이름만 보고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학에 가는 선후배들을 적지 않게 봤지만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았어요.적성에 맞춰 하고 싶은 일은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하잖아요.지금의 대학생활에 만족해요.” 석범군의 설명이다. 경기도 신도시의 B고 출신인 현수군도 대학 선택 과정은 석범군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현수군은 2002학년도 대입에서 모집단위 군별로 서울대 자연과학부·포항공대·순천향대 의대를 모두 합격했다.학교에서는 서울대를,집에서는 의대를 ‘실속’을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권했다. 현수군은 “당시 전망만 밝다고 맞지도 않는 전공을 선택한다는 것은 제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석범군과 현수군은 요즘 많은 얘기를 나누기가 어렵다.1주일에 한 두차례 밤 11∼12시까지 각자의 전공실습에 매달리는데다 수업 시간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서로 열심히 하자는 격려는 잊지 않는다. 박홍기기자 hkpark@ ◈학벌주의 뿌리는 학벌 문제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보면 몇 가지의 부정적 측면이 문제가 된다.첫째 간판주의다.이른바 ‘명문대’라는 브랜드에 과도한 가치가 주어지는 탓에 수요자들도 오로지 대학 간판,즉 브랜드 파워를 선택의 제일 가치로 여긴다. 둘째는 서열의식이다.장유유서를 따지는 유교적 영향 때문에 조직이나 인간관계에서 나이나 밥그릇 수에 따라 서열을 따지는 의식은 매우 뿌리깊다.학벌도 출신교의 서열 체계상의 위치에 따른 서열의식이 추상같다. 셋째로 파벌주의다.대학마다 호화판으로 지어대는 동문회관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출신교가 같다는 것에 대단한 동류의식을 느끼며 각종 크고 작은 폐쇄적 서클을 만든다.자기들끼리 상부상조하며 집단이기주의를 강화해 나가는 탓에 지금의 학벌사회라는 것이 조선시대 문벌간 당파싸움의 재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러한 학벌주의의 부정적 측면은 열린 시민사회의 도래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체현상으로 볼 수 있다.그리고 그 배후에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인간관이 깔려 있다.한마디로 ‘파시즘적 인간관’이다.우리 헌법이 선언하는 인간 존엄의 핵심적 가치는 인간능력의 다양성과 잠재성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학벌주의 인간관은 인간을 단일한 기준으로 서열화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차별이 정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해마다 80만명의수험생이 한날 한시에 같은 문제로 객관식 시험을 치르고 컴퓨터가 채점한 점수에 따라 역시 칼같이 서열화된 대학과 학과에 배치되는 대입 시스템은 우리 사회가 교육의 측면에서는 철저한 전체주의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체제가 유지된다는 것은 그 배후에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고등교육이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시민사회적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국가가 선도기능(?)을 가진 국립대를 직영하고 사립대들도 손아귀에 넣어 질식시키는 국가독점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이로써 국립 우위,서울 소재 우위의 고착된 대학서열체계가 성립하고 국가독점관리의 수능시험 제도와 맞물려 지금의 학벌체제가 유지되는 제도적 기반이 되고 있다. 새 정부에서도 학벌타파를 국정과제의 하나로 제시했지만 청와대 장·차관급 비서관의 83%,국무위원의 62%를 국립 서울대 학벌이 차지하는 ‘학벌 일당독재’의 실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유수 사립대에서 우리 학교 출신도 한 자리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우리 학벌주의의 핵심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국가의 사당화(私黨化)’다.국가가 특정 국립대를 통해 국가 엘리트를 후계자그룹으로 육성하고 그 출신이 국가 학벌을 이루어 국가를 사당화함에 따라 다수의 민간학벌이 생존차원의 대항 학벌을 형성하는 구도라고나 할까. 김 동 훈
  • [수평사회를 만들자]제2부 학벌타파 (1)학벌문화의 원인.실태 - 생활속 뿌리깊은 차별

    정형외과 전문의 A씨(32)는 지난해 말 웨딩촬영장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신혼의 단꿈에 부풀어 있었다.그는 이른바 ‘명문’ 사립대인 Y대 의대 출신.집도 마련했고 병원 개원 준비도 착착 진행 중이었다.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러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벌의 ‘벽’이었다.촬영 도중 무심결에 “지방 캠퍼스를 나왔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말없이 돌아선 여자측으로부터 며칠 후 걸려온 전화는 파혼 선언.‘부모 상견례도 마쳤고,예식장까지 예약했는데….’그는 고개를 떨궜다.지방 캠퍼스를 나온 것이 죄라면 죄였다. ●결혼도 점수에 맞춘다. 학벌은 혼인문화에도 이미 깊숙이 침투했다.‘중매시장’에서는 직업과 재산은 물론 학벌에 따라 예비 신랑·신부의 점수를 매긴다.등급을 매겨 시장에 내다파는 고대 노예와 다를 바 없다.한 유명 결혼정보업체 커플매니저가 전하는 실상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서울대나 연·고대 이상 학벌이 아니면 의사라고 해도 안만나겠다는 여성들이 많아요.아예 상대방 부모 학력까지 요구하기도 합니다.요즘에는 남성들도 여성의 학벌을 따지지요.” 이러한 최근 성향은 30세 이하 젊은층에서 더 강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그는 “지방국립대인 B대 출신 남성이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4년제 대졸 여성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서울 중하위대 이하 출신은 중매결혼을 꿈꾸지 않는 게 낫다.”며 씁쓸한 조언을 했다. ●취업을 좌우하는 학벌 점수 구직자에게도 학벌은 예외가 없다.한국교육개발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은 1차 서류전형에서 학벌에 20∼40점을 할당,학벌을 5단계로 구분하고 등급마다 1.0∼0.6의 가중치를 둬 지원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용케 1차에 통과했더라도 학벌의 족쇄를 벗어나기는 어렵다.기업 상당수는 공채에 앞서 명문대 출신 채용 비율을 조율하기 때문이다.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해마다 주요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모여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기타 대학 출신자를 어떤 비율로 뽑을지 의논한다.”고 털어놓았다. ●학벌도 능력? 기업이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는 이유를 들어보았다.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지방대 출신 10명보다 SKY(서울·연·고대) 1명이 낫다.”면서 “정부기관에 학벌로 연결되는 직원이 많아야 일이 쉽게 풀리기 때문”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업무상 만나야할 주요 부처에 SKY가 많으니 SKY를 뽑는 게 유리하다는 논리이다.또다른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정부고위인사와 같은 명문교 출신을 중용하면 동창회같은 곳에서 친분을 쌓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서 “명문교 출신은 그 자체로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학벌의 종착점,공직사회 학벌의 폐해는 공직사회에서 정점을 이룬다.사기업에 비해 인사평가 기준이 부족한 탓에 공무원의 출세길인 승진이 학벌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게다가 정책부서들은 학벌을 통한 기업들의 치열한 로비 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특정 고교 동문 모임은 부처 안팎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고,이는 자연스럽게 지연으로 연결된다. 공무원들이 학벌에 민감한 것은 승진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전 중앙부처 장관 가운데 한 명이 유난히 S고 출신자들을 우대했다는사실은 유명하다.S고 출신들의 고속 승진에,요직에만 앉히는 인사가 잇따랐다.나중에는 ‘S고가 부처를 주무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검찰의 학벌인사 학벌 중시 풍조는 위계질서가 중시되는 검찰에서 더 뚜렷하다.서울대를 비롯한 K·S·Y대 등의 4개 대학과 K·K·K·K·S·D·J·B고 등 8개 지방 명문고의 학벌 규모가 가장 크다. 유독 검찰에서 학벌이 복잡한 데는 인사 시스템에 원인이 있다.법무부 검찰국장이나 검찰1과장이 인사를 좌지우지하다 보니 어느 학교 출신이 그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검사들의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YS때의 일화.소위 서울 명문 사립대 출신이 검찰1과장이 되자 그 동문들은 ‘물좋은’ 일선 검찰청에 배치됐다.지방 명문고 출신이 법무장관으로 임명되자 퇴직하려던 검사가 검사장으로 발탁되고,동문 검사들이 혜택을 입은 일도 있다.이와 반대로 DJ때 서울 비명문고에 ‘평범한’ 대학 출신인 한 부장검사는 지난 96년부터 무려 6년 동안 지방에서만 맴돌아야 했다. 검사들이 학연 중심으로 뭉치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특히 명문고 출신 검사들은 주기적인 동문 모임을 갖는다.이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동문 출신 변호사나 기업인이 참석한다.한 참석자는 “저녁값과 1·2차 술값은 변호사나 기업인의 몫”이라며 “하루 저녁 모임에 수백만원씩 들어가는 것은 기본”이라고 귀띔했다.문제는 이런 자리가 나중에 사건 청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대형 부패사건이 터질 때마다 고교나 대학 동문들의 이름이 줄줄이 등장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학벌의 수단으로 전락한 동창회 사정이 이렇다보니 동창회나 동문회도 학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서로 돕자는 소박한 취지에서 생겼지만 실제로는 부정한 방법이 개입되기 십상이다.A대학 총동창회 관계자는 “최근 동문들에게 한 동문의 딸을 채용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며 동문회의 역할을 자랑스러워했다.학벌을 통해 ‘뒷구멍’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속내다. 최근 잇달아 문을 연 주요 대학들의 웅장한 동문회관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김재천기자 부처종합 patrick@ ◆여고생 눈에 비친 학벌 ‘학벌주의는 국어사전에도 정의되지 않은 독특한 단어이지만 사람들은 ‘학벌=능력’으로 알고 있다.그래서인지 어떤 이들은 이 말을 경계하고 이 말에 몸서리를 치기도 한다.’ 춘천여고 3학년 최지나(사진·18)양이 쓴 ‘학벌타파 계획안’의 서론 부분이다.최양은 지난해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처음 실시한 ‘학벌문화 아이디어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는 달리 능력이 아닌 지연·학연의 연결고리 안에서 정치·사회·경제 등의 힘이 독점되다시피하는 것 같아요.” 최양은 고교 1학년 특별활동 시간에 윤리교사를 통해 학벌문화의 의미와 폐해를 처음 접했다.그 이후 인터넷 검색과 부모님 등을 통해 학벌문화를 더 알게 됐다.최양은 계획안에서 ‘범국민적인 학벌타파 운동’을 내걸며 ▲학부모 가치관의 변화 유도 ▲기업의 인력채용에 대한 관행 개선 등 6가지의 조건을 제시했다.또 학벌타파의 실질적인 방안으로 서울대는 학문의 연구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순수학문 추구의 상아탑으로 전환하는 한편 엄격한 학사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지방대는 과감한 통폐합을 통한 특성화를,기업은 채용 때 업무 관련 자격증에 비중을 둬야 한다.교육에서는 직접세의 비율을 늘려 예산 규모를 확대,의무교육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건의했다. 대학에서 화학을 연구하고 싶다는 최양은 “대학의 간판에 얽매이지 않고 포항공대와 같은 특성화된 대학을 선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홍기기자 hkpark@
  • [대선후보 부인에 듣는다] (3)정몽준후보 부인 김영명씨

    대한매일은 ‘대선후보 부인에 듣는다’기획의 세번째 주자로 9일 오전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 부인 김영명(金寧明·46)씨를 만났다.김씨는 후리후리한 키에 마른 듯한 체형,서글서글한 눈매를 지녀 생각보다 훨씬 훤칠해 보였다.엄격한 시집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딸부잣집 막내딸의 구김살 없는 태도를 그대로 갖고 있었다.질문에 대해서는 다소 긴 듯하게,웃음을 섞어 차근차근히 답변했다.김씨는 “남편은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국제감각과 젊음을 갖추고 있고 월드컵 때 보여준 것처럼 국민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는 21세기형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날 인터뷰는 서울 평창동 정의원 자택에서 1시간 동안 이뤄졌으며 대담자로는 신연숙(辛然淑) 문화에디터와 김경애(金慶愛) 동덕여대 교수 겸 본사 명예논설위원이 참여했다. ■결혼과정과 남편 정몽준 ◆정 의원이 청혼은 어떻게 하던가요.결혼하면서 어떤 가정을 꿈꾸셨습니까. 결혼할 나이가 돼 소개로 만나서 그런지 좋으면 그냥 결혼하는 거라 생각했어요.영화처럼 드라마틱한 프로포즈는 없었는데 다른 분들은 그렇지 않으신지,이 대답을 할 때는 내가 뭔가 빼먹고 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친정 아버님이 공직에 계셔서 어머님이 하루 건너 손님을 치르는 등 바쁘게 살았어요.초창기 외교관은 지금보다 여건이 열악했거든요.결혼하면서 사업하는 가정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공직을 갖게 돼 한바퀴 돌아 원래 자리로 온 느낌이에요. ◆부부싸움을 한 적이 있으신가요. 신혼 초에는 많이 했죠.내용은 잘 기억 안 나는데 하여튼 처음 결혼해서는 서로 다른 가정 환경에서 자라 적응하기 좀 힘들었어요.친정은 경상도 집안에 딸이 많아 분위기가 부드러운데 시댁은 아들이 많고 대가족이라 좀 딱딱한 편이거든요. ◆남편이 어떤 경우에 가장 자랑스럽게 느껴지셨습니까. 감성지수(EQ)가 굉장히 높아요.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추진하는 모습이 자랑스럽죠.남편은 부부관계도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또는 계약관계라고 표현하는데 그 말은 ‘사랑에 대한 계약’을 뜻하죠.사랑하고,사랑하려고 노력하고,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배려한다는 뜻입니다. ◆정 의원이 구두쇠라 돈을 써야 할 데도 안 쓰는 것 같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검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꼭 써야 할 데는 씁니다. ◆정 의원이 언젠가 부인께서 첫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좀 섭섭하지 않으셨습니까. 결혼한 지 23년입니다.애가 넷이고요.그런 것에 섭섭하다고 말할 시기는 지났지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아들을 주욱 대동하고 출근하고 아침 식사도 모여서 하는 등 전통적인 가부장이었습니다.또 너무 검소해 며느리로서 부담이 됐을 법한데요. 대가족이 좋은 면도 많아요.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서로 의지하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잖아요.제사때도 며느리들이 많아 음식 장만이 빨리 끝나요.아버님은 그릇이 크면서도 굉장히 자상하고 섬세하셨어요.저희들이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죠.그렇게 바쁘게 큰 기업을 하면서도 자식들 하나하나 챙기는 걸 보면 대단하세요.아버님을 통해 절제와 부지런함을 배웠어요. ■가정생활과 자녀교육 - 아이에 가끔 ‘사랑의 매' 들어 ◆정 의원께선 집안살림이나 자녀교육에 얼마나 참여하시나요. 남편은 “아이들은 멍하니 천장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요즘 아이들이 너무 바쁘게 지내는 것을 안타까워해요.월드컵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일요일날 예배 끝나고 아이들에게 자장면도 사 주고 쇼핑도 같이 하곤 했는데 지난 10년 간은 출장을 많이 다녀서…. ◆정 의원이 아이들 칭찬은 많이 해 주는 편인가요. 아이들과의 대화 시간이 아무래도 부족하죠.어렸을 때는 아이들 교육은 제가 챙겼습니다.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는 것 같아요.등산이나 축구 등 어른들 행사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나이가 되니까 옆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 같고요. ◆혹시 아이들에게 매를 든 적이 있나요. 아이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하게 하고 잘못을 인정하면 ‘몇 대를 맞아야 하지?’라고 물었어요.그리고 체벌한 후에는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고 꼭 이야기를 하고 안아 주었습니다.감정적인 매는 금물이지만 사랑의 매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하지만 아이들이 조금 자라면 체벌은 효과가 없습니다.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겠지요. ◆늦둥이는 어떻게 해서 보게 됐습니까. 막내를 임신하고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담당의사가 “아들이 없으신가요.”하고 진지하게 물어 참 당혹스러웠습니다.제가 막내여서 항상 동생을 가지고 싶어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아이를 넷이나 낳았습니다.아이는 두 돌까지가 제일 예쁜 것 같아요. 큰 애들이 이제 집을 떠나고 있는 과정에서 아직 집에 누가 있어 엄마를 기다린다는 건 너무 좋죠.하지만 나이 많은 엄마라 미안하기도 합니다. ◆둘째 딸은 왜 미국 고등학교에 보내셨는지요. 미국에서 (정 의원이) 박사과정 밟을 때 태어났어요.그래서 그런지 본인이 그곳에서 공부하기를 원해 네 아이 중 하나쯤은 원하는 대로 해주자,그렇게 됐지요.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이모가 학교 가까이 살고 있지 않았다면 안 보냈을 겁니다. ◆정 의원이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입니까. 식성이 좋아서 설익은 김치와 국만 있으면 되지 반찬 타박은 절대 안 해요.된장찌개를 자주 끓이고 계절에 따라 게장과 굴전을 해 줍니다. ◆가정 살림은 어떻게 운영하십니까.살림 비용을 타 쓰는 편입니까. 결혼 후 지금까지 매달 생활비를 받아왔습니다.생활비를 받을 때는 다른 주부 선배들이 가르쳐주신 대로 ‘감사합니다.수고 많으셨습니다.’하면서 받습니다. ◆부부가 함께 노래방에 가신 적이 있는지요.애창곡은 무엇입니까. 물론이죠.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노래는 안치환의 ‘내가 만일’입니다. ■개인생활 - 정신지체아 보호시설 운영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한국에 친구는 많으십니까. 친구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출마선언을 하고 나니까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요.생각보다 많이 있더라고요.(웃음) ◆경상도 말씨가 울산에서 출마할 때 좋은 점수를 얻었겠습니다. 언니들은 서울말씨를 쓰는데 제가 어려서 한국을 떠나 부모님 영향을 받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억양이 좀 남아 있을 뿐이지 그렇게 심하진 않지요? 유권자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건 사실이에요. ◆웰슬리대는 명문대로 알려졌는데 공부를 잘 했나 봅니다.정치학을 전공한 건 외교관이 되려고 한 것 아니었나요. 웰슬리대는 당시에는 비교적 들어가기 쉬웠어요.클린턴 대통령 이후 미국사회도 교육열이 높아져 지금은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 돼 있다고 하대요.요즘 같으면 입학도 못 했을 거예요. 친정아버님이 외교관이셨는데 저희 남매 중에 외교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그래서 생각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결혼을 안 했으면 혹시 모르죠.하지만 결혼해서도 거의 외교관이나 다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국제축구연맹(FIFA) 일이 대부분 외국 부인들 만나는 일이라 예전에 어머님 하던 일과 비슷해요. ◆ FIFA 집행위원들 사이에 ‘미스 스마일 월드컵’이라 불린다는데요. 너무 과대평가해 주신 거지요.사람 사귀는 일이 다 만나서 밥 먹고 얘기하고 그런거잖아요.그냥 아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지요. ◆‘내가 대통령감이라기보다는 아내가 퍼스트레이디감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정 의원이 책에 썼는데요. 누가 그런 얘길 했나봐요.그래서 듣고 기분이 좋았나 보죠.생각해 주신다는 게 나쁘지 않고 감사하죠.하지만 제가 퍼스트레이디감인지 아닌지는 좀더 공부를 해 봐야겠어요.역할을 잘 할 수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혹시 지금까지 좌절을 겪어본 일이 있습니까. 좋은 부모와 시댁을 만나 어려움 겪지 않고 살았습니다.감사한 일이지요.그만큼 사회에 돌려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올’이란 단체에서 문화재 보존 활동을 하고 있다는데요. 외국 손님이 오면 뭔가 짧은 시간에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데 그런 장소를 찾는 데 아쉬움이 많았어요.훌륭한 문화재가 많은데도 통역 인프라가 부족하고 보존이 제대로 안 돼 있어 부끄러웠죠.아이들 교육도 급하지만 문화재야말로 대대손손 물려줘야 하는 거잖아요.주부들이 주축이 돼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앞으로 많은 단체가 협력해 좋은 정책이 나오도록 여론조성 작업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울산 사택에서 12년째 운영하고 있는 ‘정신지체아동 주간보호시설’은 김여사가 세웠다는데요. 대단한 건 아니고, 아이들에게 너무 부족한 부분이 많아 좀더 나은 놀이시설을 주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정치관 - ‘상식 통하는 사회' 만들어야 ◆재벌가 출신이면서 노동자들 표로 당선됐는데 유권자들이 거리감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요. 처음 출마했을 때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지역구에 내려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니까 많이 사라졌어요.서로 마음을 열고 애로점 듣고 아이들 교육 문제,지역 생활 개선점 등을 얘기하면서 가까워졌죠. ◆부인께서는 아주 좋은 인상을 주는 한편 너무 귀족적인 이미지라는 지적도 있습니다.과연 서민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도 있고요. 인터뷰를 하니까 이렇게 화장도 더 하고 옷도 신경 써서 입은 거지 저도 보통 주부들처럼 시장도 다니고 그래요.남편이 후보가 되기 전에는 아무도 못 알아봤을 거예요.염려를 많이 해 주시는데 좋은 말씀이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어려운 상황에 계신 분들을 만나뵙고 모르는 부분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 의원이 여성들에게 국회의원 및 지방의회선거에 50% 공천을 할당하겠다고 약속했는데요. 여성들의 능력은 남성들도 다 알고 있을 거예요.사실 여자축구도 남자축구만큼 투자했더라면 벌써 월드컵4강에 갔을 거라고 하더라고요.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그만큼 투자나 보살핌이 없으면 안 되는 거죠.정 후보는 그런 데 대해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우리보다 못한 나라도 여성들의 지위가 높은 걸 보고 많이 느꼈나봐요. ◆왜 정 의원이 꼭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세계는 많이 변하고 있어요.국내 정서나 상황도 이해해야 하지만 우리가 세계 안에서 살고 있는 만큼 세계를 이해하고 맞춰 살아야 할 필요도 있거든요.지도자들도 다 젊어지고 있어요.정말 이번이 21세기 첫 대선인데 우리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건지 잘 생각하고 지도자를 뽑아야 될 것 같아요.우리가 월드컵 때 느꼈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무한한 능력을 드러내 줄 수 있는 대통령이 됐으면 해요.항상 국민들 발목을 잡았던 게 정치였잖아요.국민들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지도자가 되길 바랍니다. ◆정 의원의 대통령 출마를 만류한 적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한 엄마와 아내로서는 만류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공직이란 많은 희생을 가족에게 요구합니다.평범한 가장으로 있길 바라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제게 자주 하였습니다.그런 사회만이 우리 아이들에게,또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족이나 개인의 희생은 따르겠지만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열심히 도와야지요. 박정경기자 olive@ ■김영명씨는 누구/ ‘스마일 월드컵'… 영·일·스페인어 능통 김영명씨에겐 애칭이 있다.‘미스 스마일 월드컵’.정몽준 의원이 월드컵유치를 위해 뛰어다닐 때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정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을 때 한나라당 핵심당직자는 “다른 것은 몰라도 부인만큼은 경쟁력이 있다.”고 했다.170㎝가 넘는 키와 미모에 더해 재벌가 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소탈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그리고 모나지 않은 행동에서 비롯된 평가다. 주일·주미대사와 외무장관 등을 지낸 김동조(金東祚)씨의 2남4녀 중 막내.혜화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을 떠나 20년 가까이 외국에서 살았다.덕분에 영어와 일어,스페인어 등 3개 국어에 능통하다.영어로 작성한 정 의원의 박사학위 논문을 감수해 준 일은 잘 알려진 일.국제감각도 지녀 남편의 해외활동에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다만 오랜 외국생활로 학창시절 친구가 없는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정 의원과는 1978년 여름 미국 보스턴에서 정 의원의 넷째 형수인 이행자씨 소개로 만나 1년간 연애 끝에 이듬해 정동교회에서 결혼했다.정 의원은 당시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고, 김씨는 웰슬리대에서 국제정치학과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었다.이곳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명문여대다.김씨는 “정 의원이 과묵하고 심지가 굳어 끌렸다.”고 한다.정 의원이 기숙사로보내온 장미꽃은 지금도 가슴에 담겨 있다. 김씨의 큰 키는 경남여고 농구선수였던 어머니에게서 비롯된다.자매들도 마찬가지.맏언니 영애(57)씨는 미국 모건스탠리 부사장이고 셋째 형부는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으로,LG그룹 공동창업주인 허준구씨 조카다.허 회장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사돈관계.한국외대 교수인 오빠 민영씨는 정 의원 캠프에서 자문팀을 이끌고 있다. 바쁜 사회활동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자녀양육에 더 심혈을 기울였다.장남기선(20)씨와 장녀 남이(19)양은 연세대 경제학과와 철학과를 각각 다닌다.차녀 선이(16)양은 유학 시절 낳아 미국 시민권자로,현재 미국에서 고교를 다닌다.올해 세검정 초등학교에 입학한 늦둥이 예선(7)군은 얼마전까지 차범근 축구교실에 나갔다. 남편의 출마선언 이후 김씨는 매일 새벽기도를 나간다.그리곤 재래시장 방문과 봉사활동,각종 인터뷰 등으로 숨가쁜 하루를 보낸다.대선 출마가 가족과 주변에 몰고올 변화가 지금도 두렵다는 김씨.그러나 앞에 놓인 일정표는 더이상 고민할 겨를조차 주지 않는다. 박정경기자
  • 뒤틀린 ‘교육 특구’ 강남/ (상)사교육 실태·문제점

    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교육 특구’로 불린다.수도권을비롯,전국의 학부모들이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갖춘 대치동에 진입하기 위해 앞다퉈 이삿짐을 챙긴다고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부추기면서 비롯됐던 최근의 집값 파동에서 보듯 이곳은 교육에 관한 한 모든 문제가 한데 어우러진 심장부이다.유치원이나 초·중·고교생을 둔 학부모들은 물론,신혼 부부들도 ‘평당 2,000만원’이라는 집값에도 불구하고 2세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가고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교육 특구라는 명칭에 걸맞게 소그룹과외가 주류를 이루는 보습학원과 입시학원 등 사교육기관이 무려 160여개나 들어서 있다.학부모들은 단 1분이라도 자녀들을학원으로 내몰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학생들도 학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를 사귈 수 없다.학부모,특히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학원에 실어 나르는 ‘마을버스 운전기사’로 전락했다.옆집 아이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대치동 학부모들이 털어놓는 자녀 교육 실상과 대안을 2회에 걸친 시리즈로 게재한다. ■중학생 부모 경험담.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주부 S씨(41)는 이틀에 한 번 반드시 통화를 하는 사람이 있다.미국에서 공부하는 큰아들 현준이(16·가명)이다.벌써 1년 반째다.현재 미국 사립학교에서 8학년에 다니고 있는 현준이는 다행히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유학을 결정한 것은 현준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지 한 학기도 지나지 않을 때였다.서울 일원동에 살면서 대치동 학원에 다녔던 현준이는 숨막히는 공부에 몸서리를 쳤다.초등학교 때만 해도 남들만큼 사교육을 시키지는 않았다.4학년부터 영어를 시작했을 뿐이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수학은 전문학원에 보내고 암기과목은 돈을 아끼기 위해 중학교 참고서를 구해 S씨가 직접가르쳤다.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자 사정은 달라졌다.국영수는 물론 미술과 음악,체육까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결국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스파르타 식으로 전 과목을 가르친다는 유명 학원에 등록했다. “아이가 견디지 못하더군요.자정이 넘겨서야 집에 돌아오는 학원 생활때문에 심하게 앓았습니다.한 달도 안돼얼굴이 누렇게 뜨고 잠자면서 헛소리까지 하는 아이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S씨는 당시를 돌이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을 포기하면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성적표가 나오거나 다른 아이들얘기를 들으면 ‘언제 그 얘기 했나’ 할 정도로 현실로돌아오곤 했습니다.유학은 그런 갈등이 끊임없이 계속되다가 내린 결론이었지요.이런 식으로 계속 가르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사업가가 꿈인 현준이가 미국에서 좀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면서 여유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대치동으로 이사갈 생각도 했지만 현준이가 떠난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다.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 현민이(12·여·가명)는 워낙 학원을 싫어하는데다 현준이 때와는 달리 과도한 교육열 속에서 처신하는 노하우도 어느 정도 터득했기 때문이다.“첫째 아이를 기를 때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시행착오를 거치지요.둘째를 기르면서 ‘대학 못가도 아이 팔자(八字)’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아이 스스로 더 잘하더라구요.” 그는 ‘대치동 열풍’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이렇게말했다. “대치동이 다른 곳보다 교육여건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요.하지만 부모가 주관이 없다면 주변 분위기에 휩쓸릴 수 밖에 없습니다.주관대로 하기도 어렵지요.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대치동으로 간다고 끝은 아닙니다.경제사정이 교육을 좌우하는 환경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김재천기자 patrick@ ■숨막히는 주변환경. “대치동 엄마들은 모두 ‘마을버스 운전사’입니다.” 대치동에 사는 주부 A씨(41)는 대치동 학부모들의 처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매일 자녀들을 학원까지 자가용으로 실어나른다는 말이다.학원 셔틀버스가 있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 엄마들은 돌아가며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 몇몇을 모아 직접 태워주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A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A씨가 이곳에 산지는 8년째다. “지난해였습니다.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애가 독서토론 과외를 했지요.‘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도 쓰고 토론하는 과외였습니다.책 한 권을 읽으면 직접 경험해야 한다며 책에 나온 국가로 여행을 떠난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공무원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떠나기 한 달 전에 슬그머니 팀을 빠졌습니다.아이에게 상처주기 싫어서였지요.” 그의 아이들은 체육과외도 받고 있다.이 곳에서 ‘주말체육’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체육과외는 주말에 아이들끼리 모여 노는 일종의 ‘노는 과외’다.“주중에는 학원에 다니느라 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과외지요.주말체육 과외에 참가하지 않으면 함께 놀 친구들도 없다며 울며 졸라대는 아이의 성화에 못이겨서 하고 있습니다.” 촌지 문제는 그의 또다른 고민거리다.“7년 전 처음 이곳에 이사와서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였습니다.학기 초 학부모총회를 한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담임선생님이 하는 말이 기가 막혔습니다.‘다른 엄마들이 얘기 안해주더냐.지방에서 와서 잘 모를 거다.학교에 찾아오기 어려우면 집으로 와도 된다’며 집 주소를 적어 슬쩍 주머니에넣어주더군요.학기초와 말,명절 등 ‘때’가 되면 주는 촌지가 연간 60만원이었는데 이 정도면 최소 수준이라고 하더군요.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요즘에는 아예 촌지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요즘 두 아들은 그에게 이사가자고 조른다.아빠를 따라지방으로 1년간 전학갔다 온 이후 바뀐 모습이다.도저히이 곳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자기밖에 모르고 오직 경쟁만이 있는 이 곳이 싫다고 하더라구요. 아이들과 생각은 같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가지 못하는 이유는 미련 때문입니다.이러다가 아이들을 망치겠다는 걱정이 앞서다가도 ‘혹시 이 곳에 있으면 상위권 대학은 갈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놈의 미련 말입니다.”김재천기자. ■대학생이 본 대치동. K씨(21)는 대치동에서 13년째 살고 있다.K대 의예과 2학년인 그는 요즘 대치동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냉소적인 눈길이 못마땅하기만 하다.‘돈 많고,옷 잘 입고,고액 과외많이 받아 대학 들어온 애’로 매도당하는게싫다. 그도 역시 학원도 다니고 과외 공부도 했지만 공부는 스스로 했다고 자부한다.가정 형편도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넉넉하지도 않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치동’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잘 하다고 착각하고 있어요.가까운 곳에 다양한 학원이 많아 편리한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다수의 아이들은 학원을 친구를 만나는‘사교의 장’ 쯤으로 생각합니다.매일 학원에 아이들을열심히 실어나르는 엄마들이 불쌍하지요.” 대치동에서도 남들에게 지지 않게 과외공부를 시킨 한 학부모가 요즘 코가 쑥 빠졌단다.올해 입시에서 지방대 원서 내려고 전국으로 뛰어다니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곳에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은 사실이지요.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초등학교 동창회에나가면 명문대에 들어간 친구들은 많지 않습니다.일부는서울 지역 대학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거의 재수합니다.엄청난 돈을 투자했는데 지방대는 자존심이 상해 갈 수 없다는 이유죠.그런 현상은 이곳 토박이보다는 이사온 사람들이 더 심합니다.모든 걸 희생해서 이곳으로 왔는데 뭔가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공부를 잘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 때문이지 과외를 하느냐,안하느냐 때문이아닙니다.” ‘대치동 사교육’은 어른들의 욕심의 산물일 뿐이라는게 그의 주장이다.어느 강사가 일류대학에 학생들을 많이 보냈다고 하면 가리지 않고 찾아 다니는 학부모들 때문에 학원과 강사가 이곳에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학부모들은 ‘누구의 강의를 들은 아이들이 몇 명 붙었다’는 식의 소문이 돌면 앞뒤 안가리고 그 강사만 찾을 정도로 극성을 부린다는 것이다.대치동 출신인 그도 “그런 부모들을 보면정말 답답하다”고 했다. 부모들의 극성만큼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며그는 이곳에서 꽤 알려진 S강사의 수업시간 얘기를 했다. “강의를 제대로 듣는 아이들은 맨 앞 3줄에 앉은 학생들 뿐입니다.나머지는 중간에 빠져나가 놀고,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합니다.강사는 아이들에게 관심도 없습니다.학원료만 꼬박꼬박 받으면 그만이죠.한 반에 3분의2는 들러리선다고 보면 됩니다.부모들은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거라고 믿겠죠….”
  • [씨줄날줄] 예술고 인맥

    “뉴욕 전통 명문인 상류 계급의 딸은 4살이 될 때까지 대부분 유모와 어머니손에서,그후에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할줄 아는 가정교사 손에서 큰다.7살이 되면 사립학교에 다니며 14살이 되면 메릴랜드의 ‘세인트티모시학원’또는 코네티컷의 ‘미스 포터’학교나 ‘웨스트오버학원’등에 보내진다.그후 브린모어,바서(Vassar)나 웰슬리대학 등에 다닌다.그들이 졸업하고 결혼하면 바로 자신의 딸들을 똑같은교육 과정으로 인도한다” 1950년대 미국 이야기다.상류층 교육이 사회 신분 대물림에 미치는 과정을 한 사회학자가 지적한 것이다.물론 이런명문 학교 중 일부는 지금도 유지된다.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미국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은 모두 매사추세츠주의 명문 여대인 웰슬리대 졸업생이다.이들 명문 학교 졸업생은 미국 여성으로 상류사회 티켓을 쥘 수 있는 강력한 요건 중 하나를 갖추는 셈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경기·이화여고 졸업생은 여성 엘리트의 주류를 이루고 상당수 남성 엘리트의 부인이 되어 있다. 경기여고 동창회인‘경운회(慶雲會)’ 회원 가운데는 현직국회의원과 장관이 있고 장관·의원 부인도 수십명에 달한다.이화여고 출신 역시 대통령 영부인부터 전직 장관을 비롯해 각계 저명 인사층에 많이 포진하고 있다. 경기·이화 등 명문 여고 학연이 지난 1977년 고등학교 평준화 조치이후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흥미롭다.이화여대 최샛별 교수는 서울예고와 선화예고 등 예술계 고등학교가 기존 명문 여고를 제치고 강력한 여성 학맥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밝혔다.평준화 이후 이들 예술고출신들이 평준화 이전 경기여고만큼 서울대에 많이 합격하고 있다는 것이다.또 서울대와 이화여대 음대에 진학한 서울예고 출신의 77.9%가 세칭 명문대 출신 남자와 결혼한다. 최 교수는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자기보다 나은 남성과결혼하는 점에서 이들 예술고 출신들은 상류층의 남성 네트워크를 강화시킨다”고 지적했다.여성 학맥을 유난히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다만 예술고 졸업생은 중산층 이상으로 집안 환경이 비슷해 학연이 더욱 공고해질가능성이 문제로 지적된다.그렇지 않아도 별의별 연줄을 다 대가며뭉치기 좋아하고 연줄의 폐해가 심각한 마당에 또다른 강력한 여성 인맥이 형성된다는 소식이 그리 반갑지는 않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이사람] 여성원로과학자 신영애박사

    국내 생명과학계가 미국과 교류를 시도할 때나 거꾸로 미국 과학계가 한국 사정을 알고자 할 때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통하는 길이 있다.재미 원로 여성과학자 신영애박사(辛英愛·69)를 만나는 것이다. 미국립보건원(N I H)에서 35년간 연구원과 과학행정가로활동해 온 신박사는 워싱턴D.C.주변 과학계는 물론 정계,관계에 촘촘한 그물망을 갖고 있는 마당발. 그가 미국생활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펼치기 위해 한국에왔다.공직을 은퇴하고 고국의 젊은 과학도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경험을 나누고자 영구 귀국한 것이다. 한발 먼저 들어와 서울 청담동에 빌라를 마련해 놓고 그를기다린 남편은 “노인네가 은퇴까지 하고 한국에 와선 뭘그리 바쁘게 돌아다니느냐”며 제발 편하게 좀 살자고 충고를 한다.하지만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 국제협력실상임자문관이라는 공식 직책에 연세대,서울대,이대에서강의까지 맡은 그는 “바쁘게 사는 건 내 천성”이라며 슬쩍 빠져나간다. 6·25전쟁 통에 도미해 대학을 졸업한후 2년 간격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 생활 2년만에 종신연구원직을따내며 과학행정가로 자리잡기까지는 그의 이런 천성이 큰몫을 했다. 대학원때부터 ‘뻔뻔한’ 성격에 조직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는 동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 교수나 디렉터를 대리하는 일이 많았고 외부 회의에 자주 참석하게 되면서 뛰어난 대인관계 수완을 발휘해 마침내 행정쪽으로 방향전환을 권유받기에 이른다.그가 마지막 10년동안 맡았던 연구평가담당관은 국내외에서 들어온 각종 연구지원신청과제에 대해 적절한 관련전문가를 찾아내고 평가단을 구성해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막강한 자리다.자연히신진 연구자들을 키워주기도 하고 실력있는 전문가를 사귈수도 있어 광범한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또한 연방예산을 사용하기 위한 의회 설득작업을 통해서는 관계와 정계 인사들과도 빈번한 접촉을 갖게 돼 인맥 구성은 더욱다양해진다.신박사는 이곳서 쌓은 연구관리 노하우를 모국에 아낌없이 전수하는 한편 타고난 근면함,애국심을 바탕으로 한미간 교량역을 도맡아 왔다.워싱턴D.C에서 정례적으로 열리는 한미과학기술포럼은 그의 역할이 숨겨진 대표적 사례. 지난 학기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시작한 ‘과학커뮤니케이션’강의는 그가 귀국후 가장 즐겁게 몰두하고있는 분야다.“NIH는 연간 80%의 연구비가 외부에 개방돼있다.한국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연구비를 따낼수 있다.나의 목표는 유망한 고국의 과학도들에게 NIH 평가자들을 설득할수 있는 의사소통기술을 가르쳐맘껏 연구를 펼칠수 있게 하는 것이다”과학자들끼리,혹은 과학자와 대중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수 있도록 글쓰기, 발표력 등을 훈련하는 이 분야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사실 과학자들은 어렵고 폐쇄적인 전문용어로 대중들을 소외시켜 왔다.그러나 이는 오직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과학자의 사명에 어긋나며 실제로 국민과 정책결정자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더 이상 과학의 존립기반마저 위협받을 상황에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훈련이 필수적이라는게 그의 소신이다.영어로 진행되는 이 강의는 반응이 좋아 출강 요청이쇄도하고 있다. 그는 미국대학 경제학교수로서 역시 은퇴한 남편과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자녀들은 프린스턴 스탠포드 다트머스등 명문대와 예일등 대학원을 나와 법률 금융분야에서활동한다. 일과 결혼,가족을 모두 성공시킨 비결은 무엇이었을까.“남들이 안할 때 일찍 시작해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그는 그래도 한가지만 들어달라고 하자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가능성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추구했다”고 말했다. 그가 귀국함으로 해서 미국의 유용한 한 거점을 잃어버리게 된 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그러나 그는 “NIH는 은퇴한 나에게 국제협력국 상임과학자문관 직책을 주며방까지 마련해 주었다”며 “언제든 내역할이 필요한 때면 달려가겠다”고 말한다.나아가 미국의 친구들을 국내에끌어들여 합동강의를 꾸밀 계획도 갖고 있다고 들려 주었다.과학계의 맏누이 같은 그에게 칠순 나이로는 믿기지 않는 에너지가 느껴져왔다. 신연숙편집위원 yshin@. *신영애 박사는. ■32년 서울출생(본명 임영애,‘신’은 남편의 성)■53년 도미■56년 미국 머서대(조지아 메이컨 소재)졸업(화학전공)/58년 오하이오주립대(콜럼버스 소재)석사(무기화학전공)/60년 〃박사■61∼63년 일리노이대·65∼67 미국립보건원(NIH)산하 노인학연구센터 박사후과정■67∼89년 NIH 노인학연구센터 분자세포생물학연구실 무기생화학부 연구원■89∼91년 NIH 노화연구소 분자세포생물학 프로그램관리담당관/일반의학연구소 질환세포및 분자기초 프로그램 담당관/당뇨 소화 및 신장질환연구소 신진대사질환연구프로그램 담당관■91∼99년 〃 구강및 두개안면연구소 연구평가담당관■99년12월31일자로 NIH은퇴■2000년 5월 영구귀국■∼현재 과기부 산하 과학기술정책평가원 국제협력국 상임자문관/NIH 포가티국제센터 국제협력국 상임과학자문관/한국과학기술원·이화여대등 출강. * NIH와 한국인 과학자들. 미국립보건원(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메릴랜드주 베데스타 소재)은 미국정부 산하기관이지만 인류건강증진을 위한 의학연구의 세계적 메카라 할 만하다.연구영역만도 미국인들에 많은 심장병에서부터 AIDS,인간게놈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전(全)지구적이며 새로운 지식의 싹이 보이는 곳이면 국적,소속,신분,연령을 불문하고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유명하다. 이같은 사실은 연간 203억달러(2001년기준)의 예산 중 자체 연구소에서 쓰는 돈은 10%에 불과한 반면 일반 대학및민간연구소,외국기관에 지원하는 연구비는 82%나 되는 것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나머지 8%는 행정비용).국립암연구소등 26개의 산하 연구소와 센터에 4.000명의 박사급연구진을 포함한 1만5,6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지만 NIH밖에서 연구에 참여하는 인원은 2,000개 연구소,5만명에이른다. 지난 2월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것을 비롯, 22년 사이 미국내 심장병사망율을 36% 감소시키고 5년간 암환자생존율을 60% 증가시켰으며 90년도 세계최초로 유전자치료를 실시하는등 연구성과도 눈부시다. 이곳에서 연구를 하거나 연구비를 지원받아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가 97명이나 될 정도다. 외국인들에 대한 문호도 활짝 열려있어 이곳서 연구하는한국인 과학자는 250명에 이른다.이는 중국(300명)에 이어두번째. 연구자로서 최고지위인 랩 치프(Lab Chief,세포신호전달연구실장)에 오른 이서구박사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정신의학연구소 진혜민박사·생명공학정보센터 장원희박사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참여해 화제가되기도 했다.국내에서는 서울대 연구처장을 맡고 있는 의대 박상철교수가 이곳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치는등 학계,연구계 인사가 많아 동창회활동도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미국인들의 NIH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높아만 가고 있다.NIH는 99년과 2003년사이에 예산을 두 배로 늘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으며올해도 약 6%,10억달러의 예산 증액이 이뤄져 이 계획은차질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신연숙편집위원
  • 이색 피의자들

    병무비리의 사례는 다양했다.병역면제 과정과 수사 및 검거 과정에서의 천태만상을 소개한다. ?朗滑┯? 한꺼번에 면제시킨 사례 신생프로덕션 대표 송진화(53·여·구속)씨는 6,000만원을 주고 쌍둥이 아들 2명이 한꺼번에 면제받도록 했다. 건물임대업자 전용배(48·구속)씨는 신검군의관에게 1,500만원을 건네고 큰아들은 면제,둘째는 4급 공익요원 판정을 받도록 했다. ?攬瑛? 챙긴 장인·장모 장재순(50·여·구속)씨와 마산 중앙자모병원장 구정열(56·불구속)씨는 딸이 고생할 것을 걱정해 사위의 병역을 면제시키려고 각각 3,000만원과 1,000만원을 건넸다. ?卵翩煐痴寧? 위해 도급업체 사장 아들을 면제시킨 사례 전 대유공영 대표유일수(51·구속)씨는 도급업체인 신라교역 대표 아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병무청 직원에게 3,000만원을 건네고 그 대가로 78억원 어치의 공사를 수주했다. ?籃鋼굼湄湧? 금품만 챙겨 실패한 사례 성남 시의원 김종윤(56·불구속)씨는 고교동창 유모씨 등 모두 6명에게 4,000만원을 건네고 아들의 병역면제를청탁했지만 알선자들이 중간에서 금품만 챙기고 군의관에게 전달하지 않아 4급 판정을 받아 돈만 날렸다. ?欖恥怜活막? 변신한 피의자 수사를 받으면서 이틀 동안 혐의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던 노모(61·구속)씨는 돈을 건넨 사실을 자백한 뒤 수사관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쳤다.그는 혐의를 극구 부인하는 피의자들을 직접 만나 “부인해도 아무 소용없다”며 설득,피의자 3명의 자백을 이끌어냈다. ?蘿?입’맞춘 부모와 아들 검찰 조사를 받기 전 가족들과 미리 말을 맞췄던유모(49·구속)씨는 검찰의 끈질긴 추궁에 혐의사실을 인정했다가 명문대에다니는 아들로부터 “아버지는 연습까지 하고도 틀리느냐”는 원망을 들어야 했다. 부인이 병역비리에 연루된 김승유(金勝猷)하나은행장은 이날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참석차 홍콩으로 출국했으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28일 귀국하기로 했다.김행장이 비리사실을 몰랐더라도 지난해 선우중호(鮮于仲皓)서울대총장의 예처럼 ‘도의상’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금융계의 중평이다. 환경미화원 박모씨의 처 우모(58·불구속)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들이 신검 결과 면제 판정을 받지 못할까봐 미리 걱정,병무청 직원에게 300만원을 건넸다. 김재천기자 patrick@
  • 金三雄칼럼-실용학문과 학력파괴의 전당

    한국사회의 ‘고질적 괴질' 두가지는 지역감정과 학력차별이 아닐까. 선거철도 아닌데 지역갈등이란 괴질이 기업의 구조조정과 빅딜을 가로막고, 대통령이 경찰인사에 앞서 특정고교 문제를 언급해야 할 만큼 학벌과 학맥이 공정인사를 저해한다. 우리가 IMF시련을 겪는 배경에는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논리의 경제행위와 사회 각분야 고위직의 근친상간적 ‘동창생조직'도 빼놓을수 없다. 구정권의 무리한 삼성자동차허가나 한보·기아그룹 봐주기행태, 여기에 상하좌우로 특정고·특정대학 동창생끼리 얽히고설킨 관료집단의 조직이 비판과 견제기능을 상실하면서 건강성을 잃게 되었다. IMF위기 속에서 지역감정이 다소 완화되는 듯하다가 최근 재발한 것과는 달리 ‘학력파괴'는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전히 일류대 지망생과 고시응시생이 줄을 서는 한편에서는 4년제 대학졸업생이 다시 전문대로 역류하거나 방송통신대학을 지망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일류대나 4년제대학 졸업장이 출세나 부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출세'의 보증수표가 되었던 명문대 졸업장은 실력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흐름속에서 효력을 상실한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이다. 미국에서는 고교재학생이 대학진학보다 실력으로 승부를 걸겠다며 직장을선택한 청소년이 수만명에 이르며, 요즘 일본 아사히신문은 주요인사들의 약력소개서에 학력표시 대신 출생과 경력만 소개한다. 제도권 대학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방송통신대학 육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있다. 대학교육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시민 재교육을 통해 복지구현에 힘써온 이 대학은 27년동안 재적생·재학생·동문등 100만 가족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의 원격교육기관이다. 방송대학은 金大中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창조적 지식과 정보중심의 지식기반 국가를 바로세우는, 그리하여 제2건국을 위한 문화운동으로서의 교육기관을 표방한다. 실력과 창의성, 진정한 공동체의식으로 사회의 미래를 선도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일을 우선과제로 삼는다. 이에 따라 학벌이나 인맥, 요령에 의해 성공을 꾀하는 태도와 학벌위주 교육이 야기하는 문제점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지난 2년동안 잇따라 교육부가 선정한 교육개혁추진 우수대학에 뽑힌 방송대는 방송강의 디지털화 등 첨단 시스템을 기반으로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등 국민의 평생교육기관으로 육성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실용학문과 학력파괴를 통한 능력위주 인물배출을 위해서는 방송대학 육성이 시급하다. 현재 21만명이 재학중인 방송대학의 예산중 국고지원금이 40%수준에 불과한 것은, 일반 국립대학의 70% 수준에 비해 지나친 홀대라 하겠다. 방송대는 일반 대학과는 달리 서민대중에게 고등교육을 하는 평생교육기관인 만큼 충분한 국고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이 대학은 순수 학술적인 내용을 넘어 실용학문쪽으로 다가가겠다는 목표는 21세기 우리 교육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방송대는 우리사회 민주화의 시금석이다. 방송대가 성공하면 그만큼 우리사회의 학력차별이 사라지고 지식민주화가 진전될 것이다”란 학교 관계자의 주장이나, “金대통령이 서울대나 사관학교 졸업식참석도 중요하겠지만 방송대 졸업식에 참석하여 학력차별과 실용학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모습이 절실하다”는 곽노현교수의 바람은 전체 방송대인의 소망일 것이다. 방송대 육성으로 ‘고질적 괴질'중 우선 학력차별 한가지만이라도 철폐시켰으면 한다. 주필 kimsu@deahanmaeil.com
  • 올 연세등 3개대 직선제 폐지 계기로본 실태와 문제점(심층취재)

    ◎총장선거/정치판 보다 더 혼탁/경륜·철학은 뒷전… 중상모략·줄서기 경쟁/반대파 사사건건 꼬투리… 행정 마비 일쑤/외부인사 영입 길 아예 막혀… 학교발전 “뒷걸음” 한 때 대학 민주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총장 직선제의 폐해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선거로 인한 폐단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줄서기,편가르기로 반목하고 중상,모략이 횡행한다.소송 사태도 잇따른다.때문에 적지 않은 대학들이 총장 직선제를 폐지했고 많은 대학들이 없앨 움직임이다.직선제 없이도 대학을 민주적으로 내실있게 꾸려가는 나라들은 많다.또 직선제를 도입했더라도 우리처럼 고약한 문제들은 나타나지 않는다.총장 직선제의 실태를 해부하고 모범적인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직선제를 없애려는 움직임은 올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다.지난 3월 말 경남대 계명대 아주대 한남대 전주대 관동대 호남대 등 8개 지방 사립대의 총장들이 모여 직선제 폐지를 결의함으로써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후 연세대 국민대 계명대 등 3개대가 직선제를 없앴다.건국대 아주대 울산대 등은 사실상 지난 해 직선제를 폐기했다. 특히 연세대재단 이사회의 폐지결정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려대를 비롯한 상당수 대학들이 총장선출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높은 학식과 고매한 인격의 대명사인 총장을 더 이상 선거로 뽑아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폐지” 공감대 확산 지난 88년 목포대에서 첫 직선 총장이 탄생한 후 현재 전국 1백45개의 4년제 대학 중 26개 국·공립대 및 11개 교육대 모두와 1백8개 사립대학의 절반 가량이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 8년만인 지금,초기의 「장미빛 꿈」은 온데간데 없다. 대부분의 대학이 극심한 선거의 홍역을 앓고 있을 뿐이다.직선 총장들마저도 이 선출방식에 커다란 회의를 표한다. 강의와 연구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이 학연과 지연 등으로 얽히고 설킨다.로비도 치열하고 술과 골프 접대 등 향응은 기본이다. 교수사회의 위계질서가 무너진 지는 오래다.갓 임명된 전임강사도 총장후보 앞에서 다리를 꼬고 맞담배질을 한다.전에는상상도 못하던 일이다.이들도 1표를 가졌기 때문이다. 선거판의 중상모략과 투서는 썩은 정치판을 뺨친다.허무맹랑한 공약과 보직약속 남발도 빼놓을 수 없다. 선거가 끝나면 교수들의 편가르기가 더욱 깊어져 지지파는 무조건 총장을 따르고 반대파는 매사에 꼬투리를 잡아 총장을 공격한다. 학사행정은 마비되기 일쑤고 대학발전은 생각도 못한다.덕망있는 외부인사를 총장으로 영입하는 길은 아예 막혔다.표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훌륭한 자격을 갖췄음에도 혼탁한 선거양상이 싫어,끝내 출마를 고사하는 교수도 많다. ○위계질서 무너져 명문 사학인 Y대는 S총장과 반대파간의 알력으로 몇년째 홍역을 앓고 있다.반대파 교수들은 S총장의 2중국적을,S총장은 인격모독과 학교의 명예실추를 걸어 서로 맞고소했다.이 사건은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S총장을 비난하는 진정서가 청와대와 교육부 등에 숱하게 쏟아졌다.총장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은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대학발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최근에는 상대 출신인 S총장이 경상대에만 신경을 쓴다며 각 단과대별로 『다음에는 우리도 총장후보를 내자』는 집단 이기주의까지 생겼다.수적으로 열세인 일부 단과대 교수들이 연합을 모색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립 지방대인 K대와 사립 M대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총장 임기 4년이 맞고소,교수들의 농성 등으로 점철됐다.급기야 K대는 교육부의 감사를 받아 총장을 비롯한 1백70여명의 교수가 징계·경고·주의 처분을 받았다.소송의 몸살을 앓는 대학은 10군데가 훨씬 넘는다. 또다른 명문 사학인 K대는 H총장의 임기가 2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2년 후의 총장선거에 나설 예비후보 진영에서 정원조정을 포함한 학사행정 전반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 정상적인 대학운영이 마비된 상태이다.H총장은 선거 후 화합차원에서 상대 후보진영의 교수를 주요 보직에 임명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지방 국립대인 C대는 L총장이 선거 때 공약으로 제시한 중간평가 때문에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교수협의회는 중간평가를 거듭 요구하며 집단행동도 불사할 태세이다. 최근에는 학생들까지가세해 기성회 예·결산 전문위원회에 학생 참여 등을 요구하며 총장 불신임을 결의했다.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도 했다. ○교수끼리 맞고소 지방의 사립 D대는 한 총장후보가 교수 자녀의 학자금을 대학졸업 때까지 전액 지원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공약을 제시해 쓴 웃음을 자아냈다.B여대에서는 직원들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며 교직원 노동조합을 통해 쟁의발생을 신고하기도 했다. 서울의 K대는 재단과 사이가 좋지 않은 총장이 선출되자 재단의 전입금이 크게 삭감됐다.총장이 내세운 학교발전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지방의 D대는 총장에 반대하는 교수들의 집단 수업거부와 점거농성으로 심각한 학내분규를 겪었고 결국 관선이사가 파견되는 「험한 꼴」을 당했다. 선거를 6개월 가량 남겨둔 국립 S대는 예상후보들이 벌써부터 치열한 사전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지난 총장선거에서는 한 후보의 부인이 총장후보 추천위원회 위원들에게 사과상자를 돌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후보를 판단하는 기준도 학교운영에 관한 경륜이나 철학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선거 때마다 전문 선거꾼으로 변신하는 일부 교수들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한 교수는 『친목모임에 연고가 전혀없는 교수가 느닷없이 찾아와 인사를 하고 술대접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가장 적극적인 총장 직선제 폐지론자는 박재규 경남대 총장이다.지난 94년 직선제의 폐해도 처음으로 제기했다.박총장은 『몇몇 대학의 경우 일부 교수들이 운동권 학생을 부추겨 학교신문에 총장을 비난하는 글을 싣거나 집단행동까지도 사주한다』고 전했다. ○학생 집단행동 사주 구본호 울산대 총장은 『교수사회가 지나치게 정치화되는데다 인기에만 영합하는 총장을 양산,장기적인 발전계획보다는 급여 인상등 단세포적인 공약만 남발한다』고 걱정했다. 김종운 전 서울대총장도 『외부 인사라 하더라도 훌륭한 인물이면 총장으로 영입할 수 있도록 문호개방 차원에서 직선제는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한종태 기자〉 □외국에선 어떻게 선출하나 ◎미국/이사진이 주도… 인물 철저히 탐색·검증 미국의 아이비리그 사립명문대학들의 총장선출은 철저하게 소수 이사진의 주도하에 이뤄진다.대신 전세계에 걸친 광범위한 인물탐색과 여론조사를 거치며 거의 1년이 소요된다. 하버드대학의 경우 현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대로 3백여년 전통의 「후임총장물색위」를 즉시 가동시킨다.하버드대의 모든 결정은 총장,감사,5인의 이사로 이뤄진 하버드법인(코포레이션) 소관인데 이 결정은 30명의 동창대표로 구성된 감독위원회의 추인을 얻어야 한다. 총장물색위는 이 법인 7명 및 감독위 3명등 10명으로 구성되는데 90년 5월 보크총장 후임을 고르기 위해 물색위는 하버드와 관련된 인사 25만8천명에게 마땅한 인물을 추천해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고 3백명의 교수,학생들과 면담했다.배경조사등을 거쳐 10명 정도의 최종추천인물이 가려지자 물색위 위원들은 이들과 개별면담을 가진뒤 91년 3월말 이중 1명의 후보를 추천,법인과 전체 감독위의 승인을 거쳐 10개월만에 26번째의 루덴스타인 새 총장을 선임했다.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역시 총장이 사직하게 되면 총장직무대행 체제와 함께 후임물색위를 가동한다.물색위는 총장,이사,동창대표등으로 코포레이션을 구성하고 동창들에게 의견요청 서신을 띄운다.현 레빈 예일대총장,소번 컬럼비아총장 역시 이같은 방식으로 지난 93년4월과 93년 2월에 각각 최종 선임됐다. 이런 광범위한 인물탐색과 철저한 검증,훌륭한 인물을 뽑기위한 여러 단계의 절차들이 학연이나 혈연을 떠나 인물위주의 총장을 선출하고,대학은 물론 미국을 초일류국가로 만든 밑거름이 되게 했다.〈워싱턴=김재영 특파원〉 ◎영국/사전선거운동 없이 교수위원회서 뽑아 영국 최고의 명문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의 경우 총장은 모든 교수들이 직접 뽑는 직선제에 의하지 않고 30여명의 교수들이 구성하는 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선출된다.총장은 학식은 물론 폭넓은 경험과 행정력을 인정받는 인물이 되며 사전선거운동이나 조율없이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총장의 임기는 4년이며 차기 총장은 2년전에 선출된다.취임하기 전 2년동안은 수습기간인 셈이어서 대학운영에 관한 업무를 익히게 된다. 한편 명예총장은 실권이 전혀 없으며 일반행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들의 업무는 총장을 뽑을때 고작 위원회의 사회를 보는 일정도다. 명예총장은 왕실로부터 경등의 칭호나 작위를 받은 인사들이 주로 맡는다. 옥스퍼드의 현 명예총장인 젠킨스경은 70년대 노동당 당수를 지낸 정계의 거물이다.이처럼 명예총장직은 은퇴한 정치인이나 고위층 인사들이 평생업적을 인정받아 주어지는 말그대로의 명예스런 자리에 불과할 뿐이다. 졸업한 지 5년이 지난 동문들이 모여 모교의 상징적 인물을 명예총장으로 선출하고 있다. ◎불·일/사전조정 제도적 장치마련… 잡음 없어 프랑스의 국립대학과 일본의 대학총장은 직접선거방식에 의해 선출된다.프랑스 국립대학은 85개로 행정위·학술위·연구 및 대학생활위원회등 3개 위원회가 총장선출에 참여한다.각 위원회는 교수·학생·교직원등이 각각 일정비율로 참여하고 있어 대학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총장선출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5년 임기의 총장을 선출할때는 행정위의 부위원장이 선거위원장을 맡는다.대학총장은 이들3개 위원회의 위원장을 겸하고 있어 권한은 막강하다. 일본의 경우 도쿄대학 총장은 2단계로 선출된다.우선 학부,연구소별로 선출된 대의원들이 후보자 5명을 추천한다.그다음 5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교수 전체회의가 직선으로 1명을 선출한다.이때 본인에게 수락여부를 확인,수락하면 총장으로 확정된다. 그러나 프랑스와 일본에서 총장선출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어나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경우는 거의 없다.그것은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가 우리와는 달라 사전에 조정이 되도록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첫째 사전협의(네마와시)의 사회문화를 지적할 수 있다.일본의 대학에도 친소관계나 파벌등의 갈래가 존재한다.하지만 파벌 또는 그룹들이 사전협의등을 통해 후보 또는 당선자를 조정함으로써 정면대결의 굉음은 일어나지 않는다.도쿄대의 경우 파벌,그룹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로 도쿄대학 총장직은 관료 최고직위인 사무차관보다 높은 대우를 받지만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총장이 예산과 인사권을 쥐고 막강한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단과대학(학부)과 전공별로 자치권이 강하기 때문이다. 셋째 총장은 보통 정년이 임박한 교수가 선출돼 4년 임기의 명예직 성격이 짙다.〈파리·도쿄=박정현·강석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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