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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의 기업] 한국전력공사, 다문화 청소년들 모국 방문 돕고 인재 교육

    [국민의 기업] 한국전력공사, 다문화 청소년들 모국 방문 돕고 인재 교육

    한국전력공사가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이 우리나라에서 자립 기반을 갖고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17일 한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1일까지 고려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민족 역사 찾기 행사’를 진행했다. 이번 행사에는 광주에 위치한 고려인 자녀 전문학교인 새날학교 학생 24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항일독립운동 현장인 안중근 의사 단지 동맹비, 러시아 최초의 한인 마을인 ‘지신허’ 등 강제이주 현장, 러시아 사할린의 고려인 문화센터 등을 방문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1937년 강제이주된 아픔을 체험하며, 구소련과 일제의 핍박에 굴하지 않은 한인들의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도 되새겼다. 이어 현지 고등학교를 찾아 러시아 학생들과 소통의 시간도 가졌다. 한전은 5년째 다문화 가정의 모국 방문 행사를 진행해 지금까지 총 347명의 이주 여성과 자녀의 모국 방문을 도왔다. 다문화 가정 100만명 시대를 맞아 단순한 모국 방문을 넘어 다문화 자녀의 성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소년 교류 행사와 명문대학 방문, 문화·역사 특강 등 인재 교육에 특화된 행사로 추진하고 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항을 꿈꾸는 하이난성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항을 꿈꾸는 하이난성

    ‘동양의 하와이’로 불리는 중국 최남단의 열대섬 하이난다오(海南島·하이난성)가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항을 꿈꾼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하이난성 자유무역항 개발 선언에 이어 공산당과 국무원도 오는 2035년까지 하이난성 자유무역항을 세계적인 수준의 비즈니스 환경을 갖춘 개방 플랫폼으로 성장시킨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며 개발에 불을 댕겼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3일 하이난 경제특구 조성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하이난 자유무역실험구 조성을 결정했고 이를 지지한다”며 “단계적으로 중국 특색 자유무역항을 건설하겠다”고 천명했다. 뒤이어 14일 당중앙과 국무원이 공동으로 ‘하이난성 전면적 개혁·개방 심화 지지를 위한 지도의견’(지도의견)의 세부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관영 신화통신 등이 15일 보도했다. 시 주석은 앞서 10일 보아오(博鰲)포럼 개막 연설에서도 하이난성을 중국의 새로운 개혁·개방의 시험지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이에 따라 대만 면적과 비슷한 하이난성은 섬 전체(3만 5400㎢)를 12번째 자유무역시험구이자 첫번째 자유무역항으로 개발된다. 기존 11개 자유무역시험구의 면적이 평균 120㎢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큰 규모이다. 면적이 약 1000㎢인 홍콩과 싱가포르, 4000㎢가 채 안되는 두바이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큰 자유무역항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까닭이다. 시 주석이 자유무역항 건설을 통해 중국의 개혁·개방 의지를 다시 한 번 대내외에 과시하고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은 중국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중앙과 국무원이 제시한 지도의견에 따르면 하이난성은 2025년까지 기본적인 자유무역항 체제를구축하고 이후 10년간 본격적인 운영을 위한 절차를 진행한다. 이어 2050년까지는 하이난성에 시장경제와 법치주의를 갖춘 국제화, 현대화한 선진 경제를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상품과 인력, 자본 이동을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해 무역과 투자, 융자, 재정, 세제, 금융, 출입국 등과 관련한 규제를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외국 투자기업은 중국 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기존 자유무역지구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싱가포르와 홍콩과 같은 최고 수준의 자본주의 개방특구 시험을 철저히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하이난성에 집중 육성할 산업으로 관광과 인터넷, 의료, 금융, 컨벤션산업을 제시했다. 관광산업을 위해선 글로벌 항공 노선을 구축하고 상품 구매 때 면세 한도를 높이기로 했다. 하이난성에 등록한 외국 자본 합작 여행사는 대만을 제외한 해외 관광 업무(아웃바운드)도 허용할 예정이다. 에너지와 해운, 원자재, 지식재산권, 주식, 탄소배출권 등과 관련한 거래소를 세우고 차세대 정보기술(IT)산업과 디지털경제 발전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인터넷, 사물인터넷(L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을 실물 경제와의 깊이 있는 융합을 통해 하이난성의 종합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하이난성에 국가 열대 농업과학센터를 만들고 글로벌 동식물 종자 자원 기지 건설도 병행 추진하는 한편 항공우주 등 주요 과학기술 혁신 기지와 국가 심해기지 남방센터를 건설하기로 했다. 특히 2030년까지 화석연료 차량 제로(0) 지역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휘발유와 경유 등 화석연료 차량을 전면 금지하고 전기자동차 등 청정에너지 차량으로 대체키로 했다. 중국이 한 지역을 화석연료 차량금지 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화통신은 하이난성이 전기차에 선택과 집중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시범 케이스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선샤오밍(沈曉明) 하이난성장은 “2030년까지 성 전체에서 청정에너지차를 사용토록 할 계획“이라며 그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기관에서부터 시작해 공공버스와 택시 등 공공 차량을 우선 청정에너지차로 바꾼 뒤 마지막은 개인 자동차에 적용하겠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한 청사진도 마련했다. 베이징(北京)대와 칭화(淸華)대 등 중국 명문대 분교와 저명 연구기관의 분소를 적극 유치할 방침이다. 중국 대학에서 석사학위 이상을 받은 외국 유학생이 취업하거나 창업하는 것은 물론 외국인 기술 인재가 취업과 영구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 인재에게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혁신창업시범지구도 조성할 계획이다. 국가 열대농업과학센터와 글로벌 동식물자원기지, 항공우주를 비롯한 주요 과학기술 혁신기지와 국가 심해기지 연구센터를 짓기로 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하기 위해 문화·교육·농업·관광 교류 플랫폼도 구축할 예정이다. 하이난성에 경마와 스포츠복권 사업도 허용될 전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하이난성에 ‘국제 관광객 유치를 위해 경마와 수상 스포츠 육성을 지원한다’, ‘스포츠 복권과 즉석 복권의 개발을 모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16일 전했다. 1990년대 이래 광저우(廣州), 항저우(杭州), 난징(南京) 등 중국 주요 대도시로부터 경마 베팅을 허용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지만, 본토 내 도박산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온 중국 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홍콩의 전문가들은 하이난성 자유무역항 건설 계획이 성공할 경우 홍콩, 마카오와 광둥성을 포함한 주장(珠江)삼각주 지역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하이난성에 경마 베팅이 허용될 경우 마카오의 카지노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마카오는 카지노사업으로 연간 330억 달러(약 35조 2000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5배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다. 블룸버그통신은 “마카오에선 샌즈, 윈리조트 같은 외국계 사업자가 도박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하이난성은 중국 국내 사업자를 선호할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하이난성에 도박을 허용함으로써 자본 유출을 막고 도박 수익이 중국 본토에 머물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이난성은 중국이 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영유권 분쟁이 벌이는 남중국해와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군사적·전략적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하이난성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남해함대의 잠수함 기지가 있고 공군과 미사일 부대, 해안경비대, 군사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우주선 발사대도 자리잡고 있다. 항공모함 정박 시설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국과의 영유권 분쟁은 물론 미국과의 무력 대치가 잦은 남중국해의 군사 지원기지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국제사회는 하이난성 개발이 시 주석이 꾀하는 중국 패권주의와 맞물려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하이난성은 실제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여기는 남중국해의 시사(西沙)군도(파라셀군도), 난사(南沙)군도(스프래틀리군도)·중사(中沙)군도(메이클즈필드뱅크) 모두 관할한다. 시 주석의 최대 역점사업인 일대일로사업 가운데 해상 실크로드 요충지이기도 하다. 이런 만큼 시 주석은 12일 하이난성 남쪽 남중국해에서 군복 차림으로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에 올라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열병식을 거행해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항공모함은 물론 신형 핵잠수함,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구축함과 호위함 등 48척, 전투기 76대, 해군 1만여명이 참가했다. 시 주석은 함상에서 연설을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으로 가는 과정에서 강대한 해군이 지금처럼 절박하게 필요했던 적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숨막히는 현실, 오지 않는 희망… 그래도 나아가라는 거장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숨막히는 현실, 오지 않는 희망… 그래도 나아가라는 거장

    “자, 이제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그렇군.” 바짝 마른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빈 무대에 허름한 점퍼를 입은 두 사람이 앉아 구두를 벗으려 애쓴다.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는 고도가 올지 안 올지를 두고 대화한다. 도대체 고도는 누구인지,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싱거운 대화만 몇 번이고 반복한다. 주인과 노예가 잠시 등장하고, 소년이 등장하여 고도가 그날은 오지 않고 내일도 오지 않을 거라고 알린다. 고고와 디디는 왠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무의미한 대화로 시간을 때운다. 1막에서는 고고가 가자고 하고, 2막에서는 디디가 가자고 한다. 쓸데없는 장난과 엉뚱한 대화를 듣는 관객이 왜 내가 여기 앉아 있어야 하나 고민할 때 막은 내린다.●파리로 온 작가·화가·철학자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에서 태어난 사뮈엘 베케트(1906~1989)는 부유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졸업 후 파리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1937년 파리 몽파르나스 언덕에 정착한 베케트는 이듬해 장편소설 ‘머피’를 발표했다. 1938년 1월 6일,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오던 베케트는 소위 ‘묻지마 폭력’을 당한다. 모르는 청년이 느닷없이 그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법정에서 범인이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베케트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인생을 숙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1년 파리에서 그는 조국도 아닌 프랑스 레지스탕스 친구들을 돕는다. 더블린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부잣집 아들이 어떻게 이런 위험을 결심했는지 모르지만, 1942년 동지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베케트는 시골 농장으로 피신하여 ‘와트’라는 소설을 썼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그는 집중해서 작품을 썼다. 우주의 인연이란 기이한 바, 베케트가 태어나기 5년 전 한 인물이 옆 나라에서 태어났다. 1901년 10월 10일 스위스에서 탄생한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스위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후기 인상파 화가였던 아버지 덕에 자코메티는 거대한 서가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자코메티는 10세 때부터 소묘와 그림을 그렸으며, 14세 때 동생 디에고를 모델로 처음 흉상을 만들었다. 18세 때 자코메티는 제네바 미술 공예학교에 들어갔다. 자코메티는 눈앞에서 몇 번의 죽음을 목격했다. 아이를 위해 제왕절개를 거부했던 여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어제까지 함께 베네치아 여행을 즐겼던 병든 할아버지 이야기도 황당하다. 아침에 깬 자코메티는 죽어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때 자코메티는 깨닫는다. 죽음이란 늘 곁에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폭격으로 잘린 팔 등 그는 죽음을 목격하고 강제로 성찰해야 했다. 그의 예술은 죽음이라는 한계에서 탄생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베케트처럼 자코메티도 파리에 있었다. 그 무렵에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도 파리에 있었다. 세 사람은 양차 대전을 모두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의 비극으로 아수라장이었던 파리라는 공간을 작가 베케트, 화가 자코메티, 철학자 사르트르는 같은 시기에 체험했다. 세 거장은 죽음의 심연을 극복하는 실존주의 문학(베케트)-미술(자코메티)-철학(사르트르)의 연대를 보여줬다. 이후 1953년 1월 파리 몽파르나스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성공을 거두었다.●기다리는 사람과 걸어가는 사람의 만남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텅 빈 무대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가 있다. 처음 이 연극을 보았을 때 홀쭉이와 빵빵이 같은 개그맨이 나와서 만담하는 줄 알았다. 노숙자 복장을 한 괴이쩍은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고도가 온다는 확신도 없이, 두 사람은 그저 기다리지만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림 자체가 희망이다. 반세기를 기다렸건만, 고도는 오지 않고 다만 심부름꾼을 보낸다. 디디는 고도의 심부름꾼에게 “나를 만났다고 말해”라고 부탁한다. 두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버티기 위해 구두끈을 풀었다 다시 감기를 반복한다. 두 인물이 대체 몇 번이나 구두끈을 풀고 다시 묶는지 세어보다가 포기할 정도다. 어찌보면 이 한심한 방법이 아우슈비츠의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꿈꾸었던 생명들이 견뎌내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아니 전쟁이 아니더라도 삶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영어 ‘신’(God)이 무의식에 있어서 절대자를 생각하고 썼을 수도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희망이란, 숨은 신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이 연극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배경에는 자코메티가 있다. 1961년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려 할 때 베케트는 자코메티에게 무대 디자인을 맡겼다. 두 거장은 밤새도록 나무 하나를 구부려도 보고, 꺾어도 보고, 부수고, 다시 세웠다. 목매달아 죽고 싶어도 매달리면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한 나무를 구상했다. 나뭇잎이 한두 개 달린 앙상한 나무를 석고로 만들어 마치 뼈다귀 같은 느낌을 줬다. 자코메티와 베케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났다. 석고로 만든 이 나무 하나로 자코메티는 열매 맺을 수 없는 죽은 나무의 비극을 미니멀리즘 무대 양식으로 표현했다.베케트가 무대 디자인을 자코메티에게 부탁한 까닭은 자코메티가 1년 전인 1960년에 발표한 ‘걸어가는 사람’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은 사진으로, 모작으로 하도 많이 봐 와서 별 감동이 없었다. 과연 저 삐쩍 마른 철사 같은 존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파리 퐁피두센터 5층에서 저 삐쩍 마른 이상한 작품이 몇 점 있어 한참을 봤지만, 부끄럽게도 모자란 서생은 철사인간의 깊이를 공감할 수 없었다. 뭔 뜻인지 몰랐다. 이번에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서 이 작품 하나만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묵상하는 방에서 나는 사십여분을 응시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운명을 쏘아보는 듯 눈알이 크고 둥글었다. 원효의 눈부처를 보듯, 저 둥근 눈에 내 눈을 겹쳐 놓으니 가슴이 떨렸다. 대지를 버티는 두툼한 발, 해골 같은 머리를 촬영하면서 저 철사 같은 인간을 내 삶에 전이시켜 보았다. 183㎝ 키의 철사인간을 자코메티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뜨리고 불필요한 것은 다 덜어냈다. ‘덜어냈다’는 표현이 대단히 중요하다. 죽음을 곁에 둔 인간이 덕지덕지 무엇을 품고 걸을 필요는 없었다. 자코메티 이전의 화가들은 ‘본 것’을 만들려 했지만, 자코메티는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려 했다. 동양철학에 깊이 영향을 받은 자코메티는 쓸데없는 것을 다 덜어낸 인간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는 선배 화가 피카소를 향해 엄청난 말도 했다. “난 피카소가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천재더라.” 자코메티의 말은 무서운 자세를 보여준다. 예술은 명성이나 기술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상에서 탄생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피카소는 기술로만 그리는 천재(기술자)일 뿐, 사상을 가진 예술가는 아니라는 비판이다. 나는 피카소와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라는 자코메티의 생각은 사뮈엘 베케트의 정신과 만난다. “우리는 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걸까요?” “그건 말이야, 인간이 더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는 인간을 만든 베케트처럼, 자코메티는 걸어가는 인간을 말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에 계속 걸어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순간을 경험한다. 비록 이것이 하나의 환상 같은 감정일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걸어나가야 한다.”●걸어가는 고도가 만든 실존주의 철학 희망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음이 앞에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는 주인공은 베케트 자신이었다. 동지들이 죽어가는 전쟁 속에서 레지스탕스로 숨어 지내면서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다. 고독을 벗하며 쓰고 또 쓰면서 사망 전까지 그는 매년 작품을 발표했다. 자코메티, 베케트, 사르트르는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에서 절망하지 않고, 걷는 인간, 기다리는 인간, 실존주의 철학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파리는 창조의 공간인 동시에 죽음을 체험하게 한 공간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두 등장인물의 모습은 요즘도 파리에 많은 집시, 난민, 노숙자의 모습이다. 젊은 시절 나치를 피해 도망쳐야 했던 베케트와 자코메티가 한때 저런 처지가 아니었을까.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삶 자체는 무의미요, 전쟁의 아수라와 유사하지 않은가. 세 사람은 뜬구름 잡는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살을 유도하는 염세주의를 자극하지도 않았다. 숨막히는 현실에서 오지 않는 희망을 기다리는 세 거장의 자세는 운명을 견디는 잔혹한 낙관주의라 할 수 있겠다. 이 땅에서는 식민지의 어둠 앞에서 쫄지 말고 “눈 감고 가라”고 했던 시인 윤동주, 독재 시대에 아마득한 혁명을 꿈꾸었던 시인 김수영, 제주도에서는 4·3의 비극에 숨죽이며 지금까지 많은 눈물을 삼켰던 이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 철사인간이 바로 내 모습,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여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베케트는 금욕적인 수도승처럼 살았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글쓰기와 연출에만 전념했던 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 자코메티와 함께 잔혹한 낙관주의를 가르쳐 준 베케트는 1989년 12월 22일에 조용히 고도가 있는 곳을 찾아 까마득한 여행을 떠났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지금, 이 영화] 레이디 버드

    [지금, 이 영화] 레이디 버드

    크리스틴(세어셔 로넌)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본인을 명명한다. “레이디 버드”(LADY BIRD). 그녀는 이것이 자신의 진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레이디버드(ladybird)라고 붙여 쓰면 ‘무당벌레’ 혹은 ‘연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레이디 버드를 ‘아가씨 새’로 직역하고 싶다. 진부하게 들리겠으나, ‘데미안’의 저 유명한 구절 때문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이렇게 보면 자칭 레이디 버드는, 기성 질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삶을 살려는 그녀의 의지가 담긴 선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레이디 버드는 두 개의 세계에 맞선다. 하나는 그녀의 고향 새크라멘토다. 이곳은 캘리포니아주에 속해 있다. 그러나 같은 행정 구역인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다. 영화 오프닝에 아예 이런 문장이 나올 정도다. “캘리포니아의 쾌락주의를 말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 봐야 한다.” 새크라멘토 출신 작가 존 디디온의 말이다. 한마디로 새크라멘토는 흥미 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심심하고 지루한 동네라는 이야기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레이디 버드가 기어코 뉴욕 같은 대도시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녀가 맞서는 다른 하나의 세계는 엄마 매리언(로라 멧캐프)이다. 매리언은 미국 명문대에 진학하겠다는 레이디 버드를 향해 차갑게 대꾸한다. “넌 그런 학교 못 가. 그냥 시립대학에나 가. 그런 정신 상태로는 시립대 아니면 감방밖에 못 가. 그런데 들락대다 보면 자립 방법은 배우겠지.” 아무리 평소 딸의 행실을 잘 알고 있어도 지나치다 싶은 언사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평범함을 거부하는 레이디 버드의 성품이 어디서 왔겠는가. (이 대화는 매리언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이루어졌고, 레이디 버드가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면서 끝났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정말로 죽을 만큼 싸우는 것이다) 모전여전이다. 이 영화는 이처럼 두 개의 세계에 대항하는 레이디 버드의 분투기를 담아낸다. 한데 동시에 다음과 같은 질문거리도 던진다. 이를테면 ‘알은 새를 가두기만 하는, 그러니까 산산이 부숴버려야 할 세계인가?’ 하는 점이다. 적어도 그레타 거위그 감독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영화는 뒤로 가면서 새로운 명제를 제시한다. 새가 아니었던 어떤 생명체가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따뜻하게 지켜준 세계가 바로 알이라는 사실이다. 새가 알을 깨야 하는 것은 맞다. 그래야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으니까. 하나 그렇다고 새가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해 왔던 알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테다. 새크라멘토―엄마라는 알 없이는 레이디 버드도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것을 체감한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월드피플+] 가난한 美17세 소년, 명문대학 20곳 동시 합격

    [월드피플+] 가난한 美17세 소년, 명문대학 20곳 동시 합격

    미국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대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감격적인 순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일(현지시간) 미 CNN, 뉴욕타임즈 등 현지언론은 텍사스 주 라마 고등학교 학생 마이클 브라운(17)이 전액 장학금 지원과 함께 미 명문대학 20곳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브라운은 저소득 가정에서 자랐지만 ‘스탠포드 대학교 입학’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의 어머니도 브라운이 좋은 학교에 들어갈 것이라 믿고 아들을 묵묵히 뒷바라지 했다. 학교 지원 당시 그는 4.86의 우수한 평점(GPA)외에 토론 동아리나 청년 민주주의 같은 특별활동에도 참여한 이력을 열거했다. 그 결과 브라운은 하버드, 예일, 프리스턴 등 미 북동부 8개 명문대학인 아이비리그를 포함해 스탠포드, 노스웨스턴, 조지타운, 캔더빌트, 존스 홉킨스 대학 등의 합격장을 거머쥐게 됐다. 또한 대학들은 그에게 우리 돈으로 2억 8000만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시했다. 그는 다음달 1일까지 어느 대학에 입학할지 선택해야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브라운은 “그렇게 많은 통지서를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충격을 받았다”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큰 꿈을 가져라, 겁내지 마라. 가족을 자랑스러워하고 지역사회와 나 스스로를 사랑하라. 그리고 당신의 어려움을 공유하라”며 세상에 외쳤다. 사진=뉴욕타임즈, 유튜브캡쳐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0점 받고도 최종합격… “추천인 ‘회’는 ‘회장님’ 지칭”

    0점 받고도 최종합격… “추천인 ‘회’는 ‘회장님’ 지칭”

    32건 적발… 고위직 청탁 최다 명문대·해외파 14명 특혜합격 합격권 女 2명 탈락 ‘性차별’도 하나銀 “김 회장 추천 아예 없다” 금감원은 “인사팀장 진술 확보” 2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3년 하나은행 채용비리 검사 결과는 하나은행이 당시 전방위적으로 채용비리를 저질렀다는 정황을 보여 준다. 특히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추천한 것으로 의심을 사는 지원자는 서류전형 때부터 ‘최종 합격’이 정해진 상태에서 응시한 덕분에 바닥권 성적에도 은행원이 될 수 있었다.2016년에도 13건의 채용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하나금융은 이번 의혹이 검찰 수사 결과 사실로 확인된다면 최악의 경우 김정태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사퇴와 사법 처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 금감원 등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자사 최고경영진은 물론 국회, 청와대 등으로부터 청탁을 받고 ‘검은 채용’을 일삼았다. 합격선에 못 미치고도 합격한 이는 전체 229명의 15% 정도인 32명에 달하고, 그중 절반인 16건이 채용 청탁이다. 주요 사례의 경우 한 지원자는 서류전형에서부터 아예 추천 내용 항목에 ‘최종 합격’으로 표기됐고 추천자는 ‘김○○(회)’로 기재돼 있었다. 김○○은 2013년 당시 하나금융 인사전략팀장이었고, 현재 하나은행 전무로 영전한 상태다. 이 지원자는 서류전형과 실무면접에서 점수가 합격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고, 합숙면접에서는 태도불량 등으로 아예 0점 처리가 됐지만 최종 합격했다. 금감원은 김정태 회장이 이 지원자를 추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성일 금감원 부원장보는 “전형 단계가 (서류전형과 실무면접, 합숙, 임원면접 등) 4단계이지만 처음부터 최종 합격이 정해져 추천이 됐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회)’가 무엇을 뜻하는지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했지만 ‘회장이나 회장실을 지칭한 것 같다’고 진술한 인사팀장 외에는 모두 모르쇠를 지켰다”면서 “직원들의 ‘김정태 지키기’도 여전했다”고 귀띔했다. 함영주 하나은행장도 채용비리에 연루됐다. 추천 내용에 ‘함□□대표님(◇◇시장 비서실장 ▽▽▽)’으로 표기된 지원자는 합숙면접 점수가 합격선에 모자랐음에도 임원 면접에 올라 최종 합격했다. ‘함□□’는 당시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 대표(부행장)로 함 행장이었다. 지원자는 ◇◇시의 시장 비서실장 ▽▽▽의 자녀로 나타났다. 추천자가 ‘짱’으로 표시된 지원자 6명 중 4명도 합격했다. 이 중 3명은 서류전형(2명) 또는 면접단계(1명)에서 합격 기준에 미달했음에도 최종 합격했다. 검사 결과 ‘짱’은 당시 하나은행장인 김종준 전 행장을 가리켰다. 이 밖에 추천 내용에 ‘청와대 감사관 조카’와 ‘국회정무실’로 표기된 지원자들은 서류나 실무면접 점수가 합격선을 넘지 못했음에도 최종 합격했다. 최종 임원 면접에서 합격권 내의 여성 2명을 탈락시키는 대신 합격권 밖의 남성 2명의 순위를 상향 조정해 합격시킨 정황도 포착됐다. 명문대나 해외파 출신 지원자에게 특혜를 부여해 탈락자 14명을 합격 처리한 정황도 나왔다. 여기에 남녀 4대1 비율로 차등 채용하기로 사전에 계획을 수립하면서 서류전형에서 여성 커트라인(서울 지역 600점 만점에 467점)이 남성(419점)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점수만 따졌을 땐 남녀가 1대1로 뽑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나은행이 다른 은행들보다 여성 채용 비율이 낮았던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고 덧붙였다. 하나은행은 “김정태 회장의 추천 사실이 아예 없고, 함영주 행장 추천 건 역시 해당 시청 입점 지점의 지점장이 추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김정태 하나금융회장 채용비리 연루 정황

    김정태 하나금융회장 채용비리 연루 정황

    금융감독원은 2일 최흥식 전 금감원장의 사퇴 배경이 된 2013년 하나은행 채용비리를 검사한 결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은행장이 채용비리에 연루된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금감원 “함영주 은행장도 연루”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따르면 서류전형 단계에서부터 추천 내용 항목에 ‘최종 합격’으로 표기돼 있던 한 지원자는 합숙전형에서 0점을 받았지만 최종 합격했다. 이 지원자의 추천자는 ‘김○○(회)’로 쓰여 있었다. 김○○는 당시 하나금융지주의 인사전략팀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금융 인사담당자는 “‘(회)’가 통상 회장을 의미한다”고 금감원 검사에서 진술했다. 최성일 금감원 특검단장은 “김정태 회장 연루 건일 수 있다고 추정되지만 특정할 수는 없다. 검찰이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이와 관련, “김정태 회장이 해당 지원자를 추천한 사실이 없다. (해당)지원자는 물론 부모도 누군지 모른다”고 해명했다. ‘함□□ 대표님(◇◇시장 비서실장 ▽▽▽)’으로 표기된 지원자도 있었다. 함□□는 2013년 충청사업본부 대표(부행장)였던 함영주 행장이다. 하나은행은 “해당 시청 입점 지점장이 추천한 것으로, 함 행장이 추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나은행 측 “사실 아니다” 금감원은 김 회장 연루 의혹 건을 비롯해 성(性)·학교 차별 등 32건의 비리 의혹을 적발, 향후 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채용 청탁 특혜채용 16건, 최종 면접 순위 조작으로 남성 특혜 합격 2건, 명문대·해외 유명대 출신 순위 조작 14건 등 32건이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전호환의 교육의 향기] 도시의 미래, 대학에서 시작된다

    [전호환의 교육의 향기] 도시의 미래, 대학에서 시작된다

    1960~70년대 미국은 탈산업화를 겪으면서 주요 산업도시의 쇠락을 관망해야 했다. 탈산업화 과정은 미국 경제와 지역 발전에 큰 타격을 주었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야 피츠버그, 클리블랜드 등 몇몇 산업도시들이 인구감소 추세를 극복하고 성장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AP통신 기자였던 저스틴 포프는 이 도시들이 침체를 벗고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를 ‘우수한 지역 명문대학’에서 찾았다. 각 지역에 소재한 명문대학들이 지역 내 고용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피츠버그는 카네기멜론대학과 피츠버그대학의 우수한 연구 인프라를 도시 재건의 지렛대로 활용, 1950년대 ‘철강 도시’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바이오ㆍ정보기술(IT)을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창조 도시로 거듭나면서 ‘대학 중심 도시 재건’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추진으로 우리나라도 대학의 역할과 기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성장률이 6%대로 떨어진 90년대 후반부터 전문가들은 탈산업화를 경고했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업과 같은 주력 산업들이 불황에 빠진 2014년부터로 볼 수 있다. 20년 전 탄광업의 몰락으로 위기를 맞은 강원도가 선택한 것은 ‘강원랜드’였다. 미래 비전을 ‘돈의 문제’로 찾았던 선택은 지역공동체의 혼란과 분열이라는 상처를 남기며 도시의 희망을 빼앗아 갔다. 지난 2월 독일대사관 주선으로 독일 주요 대학들과 연구소를 방문해 실용적인 정책과 시스템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독일은 분단과 재통일의 경험 속에서 이룬 급속한 경제 개발이 우리와 흡사해 친근감이 가는 나라다. 늦은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벤츠, BMW, 지멘스 등을 통해 경쟁력을 입증한 독일 공과대학의 산업지향적 교육 정책에 많은 관심이 갔다. 뮌헨ㆍ베를린ㆍ아헨공대 등 9개 독일 거점 공과대학들은 독일의 연구 중심 종합대학으로 육성돼 ‘TU(Technische Universitat)9’이라는 브랜드로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있다. TU9 대학은 전체 독일 공학도의 60%를 배출하며 국가 혁신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연구거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훔볼트의 교육철학을 실현하고 있었다. 특히 아헨공대는 도시와 대학의 상생을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하고 있었다. 아헨시(市)는 새 기차역을 지으면서 옛 역사(驛舍)를 대학에 제공하는 ‘대학 중심의 도시재건 정책’을 통해 도시 전역을 대학 캠퍼스로 만들고 있었다. 도시 인구의 약 10%가 대학생이니 대학이 도시고 도시가 대학이었다. ‘독일의 MIT’로 불리는 이 대학의 특징은 기업과의 협업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초가 된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성공 뒤에는 아헨공대의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산학협력 프로그램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학 내 260여개 연구소가 기업과 협력하면서 기업이 원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학업과 연계시킨다. 이 대학 군터 슈 박사가 창업한 전기차 회사 ‘이고(eGO)’는 캠퍼스 팩토리로 전기차를 생산한다. 섬유소재연구소(ITA)는 마치 생산공장 같았다. “이곳에서 뽑지 못하는 실은 아무 데서도 못 뽑는다”는 연구원들의 자부심에 찬 설명처럼 실제 소비시장을 선도하는 산학 중심의 ‘오픈 이노베이션’ 연구가 이뤄지며 산학협력의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미국과 독일 사례는 탈산업화로 인한 침체기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대학 중심의 도시 재건’이라는 해법을 시사해 준다. 우수 인재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대학을 중심으로 도시 발전과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해 볼 필요가 있다. 우수한 인재가 모인 대학에 기업이 몰리고, 이는 도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선진국들이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대학 중심의 창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미래는 우리에게서 시작된다’는 아헨공대의 슬로건처럼 우리나라의 지역균형발전과 도시 발전도 대학으로부터 시작됐으면 한다.
  • ‘시진핑 사상통제 반발’ 베이징대 교수 3명 사직

    “용기 없이 순응하는 자만 남았다” ‘중국판 카톡’ 웨이신에 공개 글 당국 검열에도 中 네티즌 큰 공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사상통제에 반발해 중국 최고 명문대학인 베이징대 저명 교수 3명이 사직했다고 홍콩 명보가 25일 보도했다. 명보에 따르면 베이징대 내 단과대학인 위안페이(元培)학원의 어웨이난(鄂維南·55) 원장, 리천젠(李沈簡·49) 상무 부원장, 장쉬둥(張旭東·53) 부원장 등 3명이 최근 대학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리천젠 상무 부원장은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메신저인 웨이신(微信·위챗)에 ‘베이징대인들이여, 서로 용기를 북돋자’란 제목의 공개서한을 올려 “베이징대는 중국의 신성한 사상의 전당으로서, 사상과 이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에는 어쩔 수 없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교조적인 사상만을 얘기하고 있다”며 “용기를 내 말을 하는 사람은 화를 당하고 그 화가 주위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바람에 직언을 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오직 순응하는 사람만 남아있다”고 비판했다. 리천젠은 ‘암흑은 광명을, 절망은 희망을, 의심은 믿음을, 원한은 사랑을 불러온다’는 시구를 인용하면서 “베이징대가 세워진 후 120년이 지난 오늘 모두 관변 학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꼿꼿이 일어서자”고 주장했다. 1898년 ‘경사대학당’으로 창설된 베이징대는 1919년 반외세 저항 운동인 ‘5·4운동’을 주도했고,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선봉에 서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지난해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 전역의 29개 명문 대학을 감찰한 후 일부 대학이 당의 정책과 노선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개서한을 발표한 리천젠은 신경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미국 뉴욕대 종신교수로 재직하다가 중국 정부의 인재 유치 정책에 따라 베이징대 교수로 초빙됐다. 평소 자유롭고 포용적인 이념의 대명사로 학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교수로 꼽힌다. 함께 사직서를 낸 어웨이난 원장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로 재직하다 중국으로 돌아온 세계 정상급 수학자며, 중문과 교수인 장쉬둥 부원장도 해외에서 명성이 높은 저명 학자다. 리천젠의 공개서한이 큰 인기를 끌자 중국 당국은 온라인에서 리천젠의 글을 삭제했다. 베이징대 당국은 위안페이학원 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거나 웨이신으로 연락해 리천젠의 글을 퍼뜨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지식인의 기개를 보여 준 리천젠의 글은 온라인에서 몰래 퍼져나가 중국 네티즌들의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베이징대 교수 3인, 시진핑 사상통제 반발해 ‘사직’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베이징대 교수 3인, 시진핑 사상통제 반발해 ‘사직’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사상통제에 반발해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베이징대 저명 교수 3명이 사직했다고 홍콩 빈과일보와 명보가 25일 보도했다.빈과일보 등에 따르면 베이징대 내 단과대학인 위안페이(元培)학원의 어웨이난(鄂維南) 원장, 리천젠(李沈簡) 상무 부원장, 장쉬둥(張旭東) 부원장 등 3명이 최근 대학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특히 리천젠 상무 부원장은 자신의 웨이신(微信·위챗)에 사퇴의 변을 밝힌 ‘베이징대인들이여, 서로 용기를 북돋자’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올렸다. 리천젠은 “베이징대는 중국의 신성한 사상의 전당으로서, 사상과 이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역사를 지니고 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어쩔 수 없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교조적인 사상만을 얘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용기를 내 말을 하는 사람은 화를 당하고 그 화가 주위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바람에 직언을 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오직 순응하는 사람만 남아있다”고 개탄했다. 이어 “베이징대의 정신을 계승하고 국민의 존엄을 지키고자 한다”며 “불요불굴의 항쟁을 전개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개인의 존엄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를 원한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리천젠은 ‘암흑은 광명을, 절망은 희망을, 의심은 믿음을, 원한은 사랑을 불러온다’는 시구를 인용하면서 “베이징대가 세워진 후 120년이 지난 오늘 모두 관변 학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꼿꼿이 일어서자”고 주창했다. 1898년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창설된 베이징대는 1917년 학장으로 취임한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개혁으로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돼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학풍을 확립했다. 이후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돼 1919년 반외세 저항 운동인 ‘5·4운동’을 주도했고,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의 선봉에 섰다. 리천젠의 공개서한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고 신격화에 몰두하는 시 주석을 비판한 것이라고 빈과일보는 전했다. 2012년 말 시 주석이 집권한 후 중국 대학들은 시민권, 언론의 자유, 인권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지 말 것을 강요받는 등 사상통제에 시달려야 했다.이를 따르지 않은 교수들은 처벌을 통해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대학을 떠나야 했다.지난해에는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 전역의 29개 명문 대학을 감찰한 후 일부 대학이 당의 정책과 노선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개서한을 발표한 리천젠은 신경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미국 뉴욕대 종신교수로 재직하다가 중국 정부의 인재 유치 정책에 따라 베이징대 교수로 초빙됐다. 평소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강조해 학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교수로 꼽힌다. 함께 사직서를 낸 어웨이난 원장은 프린스턴대 교수로 재직하다 중국으로 돌아온 세계 정상급 수학자이다. 장쉬둥 부원장도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명성이 높은 저명 학자이다. 리천젠의 공개서한이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자 중국 당국은 부랴부랴 소셜미디어에서 리천젠의 글을 삭제하는 등 검열에 나섰다. 베이징대 당국은 위안페이학원 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거나 웨이신으로 연락을 취해 리천젠의 글을 퍼뜨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러한 대응에도 리천젠의 글은 온라인에서 몰래 퍼져나가 중국 네티즌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한 네티즌은 “비장하고 위대한 사퇴이고,고귀하고 드문 기개이다.끝없는 암흑과 사악함 속에서 베이징대의 정신이 꼿꼿이 살아 있음을 이 글이 보여준다”고 찬사를 보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용석의 상상 나래] 대학의 변화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다

    [김용석의 상상 나래] 대학의 변화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다

    오래전 일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화제의 도서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 초에 소개가 됐고, 그 당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계 이민자 4세로 하와이에서 태어난 로버트 기요사키다. 이 책은 다음의 말로 시작된다. “학교는 우리에게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 세계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을까?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단다.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 그리고 부모님은 이런 나를 통해 당신들의 목표를 달성했다.” 그에게는 두 아빠가 있었다. 그가 ‘가난한 아빠’라고 부르는 친아빠는 교육을 많이 받은 분이다. 대학 과정을 2년 만에 마치고 박사 학위까지 거쳤지만, 평생 금전적으로 고생했고, ‘부자 아빠’라 부르는 어린 시절 친구의 아버지는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하와이 최고의 갑부가 됐다. 부자 아빠는 말한다. “네가 돈을 위해 일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계속 학교에 있어라. 그렇지만 돈이 너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가르쳐 주마.” 부자 아빠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부자 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대학의 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과연 지금 대학은 기업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를 키워 내고 있는 것일까. 과거의 학문과 지식에 머물러 있고, 여전히 이론 중심의 교과서 교육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대학이 사회적 수요에 걸맞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많은 기업 경영자를 만나 보면 대학 교육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입사원 재교육에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대학의 교육 과정에 맞추어서 열심히 공부하면 사회에 나가서 배운 내용이 충분히 활용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4차 산업혁명 논의에서도 대학이 주도하고 기업을 이끌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면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관련 교과목이 꼭 필요할 것이고, 대학의 교육 과정에 반영돼야 할 것이다. 기업과 대학의 차이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서 비롯된다. 기업은 늘 생존을 위한 고민을 하게 된다. 전 세계적인 불황, 저성장, 엄청난 기술 변화에 따른 예측 불가능한 시장 환경 등의 어려움에서 늘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학은 생존의 어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대학에 오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늘 넘쳐났고, 교수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목표를 맞추기만 하면 승진할 수 있고, 대학을 그만두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열심히 일을 해서 큰 성과를 낸다고 해도 그에 걸맞은 인센티브를 받는 것도 아니다. 기업은 경영환경에 맞추어서 사업 목표, 일하는 조직 구성원의 마음 자세가 바뀐다.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키아나 코닥 같은 초일류 기업들이 열심히 일을 안 해서 망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왔는데도 관행대로 그저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혁신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그 미래는 안갯속에 있다. 대학 졸업생은 넘쳐나고 기업은 많은 인력을 받을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대학은 고고한 상아탑의 기능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사회가 원하는 혹은 기업이 바라는 교육을 해야만 한다. 교육 과정을 바꾸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교실에서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에서 벗어나서 만들어 보고 내 손으로 익히는 핸즈온(Hands-on) 교육이 기본이다. 획일화된 교육에서 탈피해 현장과 연결된 강의와 문제 해결 능력, 창의력 교육에 맞추어야 한다. 국내 대학의 위기는 인구 감소로 학생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또 세계 명문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무크’(MOOC)가 등장했고, 대기업은 해외 대학 출신 인력을 선호하고 있다. 또한 신입 인력 채용에서도 실무 경험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시기다. 대학의 변화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위기를 느껴야 변화의 이유를 찾는다. 그다음으로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생각하자. 그리고 실천하자.
  • 가혹한 운명… 가혹한 ‘파친코의 굴레’

    가혹한 운명… 가혹한 ‘파친코의 굴레’

    파친코1·2/이민진 지음/이미정 옮김/문학사상/각 권 368·400쪽/각 권 1만 4500원재미교포 작가 이민진(50)의 장편소설 ‘파친코’는 한국과 일본 어느 나라로부터도 환대받지 못한 재일 조선인들의 뼈저린 애환을 담은 책이다. 1910년부터 1989년까지 약 80년간의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일가족이 경계인으로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좇는다. 재일 조선인들이 겪은 차별과 멸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면글면 애썼던 생존의 역사는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고 극적이다. 작가는 대학교 3학년 때였던 1989년 미국 예일대의 한 강의에서 조선계 일본인과 그 후손을 일컫는 ‘자이니치’의 역사와 고충을 처음 접했다. 조선계라는 이유로 졸업 앨범을 훼손당한 중학생 남자아이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충격이었다. 이를 실마리로 1996년 소설의 초안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2007년 도쿄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 일본에 살면서 조선인을 직접 만나 취재하며 원고를 수차례 다듬어 지난해 이 책을 내놨다. 책은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에게 시집가는 가난한 집 막내딸 양진이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훈이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던 양진은 온갖 궂은일을 다하면서도 딸 순자를 묵묵히 키운다. 엄마를 닮아 매사에 진중하고 착실하던 순자는 인생의 항로를 크게 뒤흔든 생선 중매상 한수와 사랑에 빠진다.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의 아이를 임신한 순자는 절망에 빠지지만 그녀를 가엾게 여기던 목사 이삭과 결혼해 이삭의 형 요셉 가족이 살고 있는 일본 오사카로 떠난다.순자는 오사카에서 한수의 아이인 노아를 낳은 뒤, 이삭의 아들 모자수도 낳는다. 공부를 잘하는 노아는 일본 명문대에 입학하지만 가족의 품을 떠나 파친코에서 일을 한다. 공부에 소질이 없었던 모자수 역시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어 두각을 드러낸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미국에서 유학한 뒤 영국계 투자은행의 일본 지사에 취업하지만 일본인 동료의 배신으로 결국에는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는다. 양질의 교육을 받은 노아와 솔로몬도 끝내 선택하는 ‘파친코’는 재일 일본인들의 굴레와 같은 삶 그 자체다. 일본인들에게는 ‘더러운 조선인’들이 일하는 ‘더러운 업계’인 파친코 사업은 ‘조국 같지 않은 조국’에서 조선인들이 돈과 권력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도박 같은 운명 앞에서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한계에 갇혀 고립된 삶을 산다. 양진과 순자, 순자의 동서인 경희는 여자로서의 인생은 잊은 채 강인한 엄마, 헌신하는 아내로서 자신의 삶을 오롯이 가족에게 바친다. 경희의 남편이자 이삭의 형인 요셉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은 채 스스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다. 순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는 건설적인 미래를 꿈꾸지만 ‘자이니치’라는 굴레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 나가는 이들의 끈질긴 노력은 내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 때문에 가능했다. 순자가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 이삭의 묘석 앞에서 흐느껴 울던 끝에 아들들의 사진을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주저앉지 않고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건 가혹한 운명을 피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다름없기에. 이 마지막 장면을 마주한 뒤에 책의 첫 문장을 본다면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올 터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최흥식 “하나은행 채용 관여 안해”…채용 청탁 의혹 부인

    최흥식 “하나은행 채용 관여 안해”…채용 청탁 의혹 부인

    ‘채용 청탁’ 논란에 거듭 해명…금감원 “단순 추천과 채용비리는 달리 판단“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제기된 하나금융지주 사장 재직 시절 친구 아들의 하나은행 채용 청탁 의혹을 부인했다.최 원장은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안내 자료’에서 ”하나금융지주 사장으로 있을 때 외부에서 채용과 관련한 연락이 와서 단순히 이를 전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하나금융 사장이던 2013년 대학 동기로부터 자기 아들이 하나은행 채용에 지원했다는 전화를 받고 은행 인사담당 임원에게 그의 이름을 건넨 바 있다. ‘단순 전달’이라도 추천이거나 압력으로, 이는 금감원이 최근 적발한 하나은행 등의 채용비리와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에 금감원은 ”추천자 명단에 기재됐다는 사실만으로 추천 대상자를 모두 부정 채용으로 본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금감원은 ”면접 점수가 조작된 것으로 확인되거나, 채용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기준 신설 등을 통해 부당하게 합격시킨 사례만을 적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천+조작’으로 합격한 사례만 채용비리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하나은행의 추천인 명단에 기재된 55명(이른바 ‘VIP 리스트’) 중 6명에 대해서만 부정 채용으로 적발해 검찰에 통보했으며, 나머지 7명은 ‘SKY’ 등 명문대 지원자 채용을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한 사례라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호주 명문대학교들과 함께하는 ‘제37회 IDP 호주유학박람회’, 이번 주 시작

    호주 명문대학교들과 함께하는 ‘제37회 IDP 호주유학박람회’, 이번 주 시작

    호주대학교 총장협의회에서 설립된 IDP 에듀케이션이 주최하는 제37회 ‘IDP 호주유학박람회’가 이번 주에 시작된다. 호주유학을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님들을 위해 호주 전역의 명문대학 담당자들이 총 출동한 이번 박람회는 3월 10일~11일 양일간 코엑스에서 열린다. IDP에듀케이션은 전 세계 1위 유학기관이자 유학과 이민, 취업 등에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공인영어시험 IELTS의 공식 주관사이며 국내 유일한 호주상장 회사로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된 교육기관이다. 또한 세계대학랭킹을 선정하는 THE(Times Higher Education)의 공식 스폰서이며, 전세계에서 가장 큰 해외유학정보 사이트 핫코스의 자회사이다. 현재 전세계 34개국 100여개 지사가 모두 주요도시에 위치해 세계 각지에 유학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 박람회에는 호주 최고의 명문대학교인 G8(Group of 8) 대학을 포함해 전세계 랭킹 상위 3%의 호주대학교가 참가했으며 각 학교담당자들이 호주 유학을 고려하는 학생들을 만나 호주 대학교 소개와 호주유학의 특징과 장점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더불어 IDP 호주유학박람회에서는 학교담당자와 학생들이 1:1로 전문적인 상담을 받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전문 통역원을 배치해 개별적으로 상세하고 자세한 상담이 가능하다. 여기에 박람회에 참가한 멜버른대학교, 시드니대학교, UNSW, 모나쉬, UQ등 G8대학의 입학전형료 면제가 양일간 이뤄질 예정이며 무료 수속진행 역시 가능하다. IDP에듀케이션 관계자는 “호주 명문대학교와 함께하는 이번 박람회는 단순한 유학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비영리 단체로 높은 수준의 윤리기준을 통해 학생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포괄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개최했다”고 전했다. 박람회에서는 IELTS 시험 공략법 및 멜버른대학교 입학설명회, 맥쿼리대학교 졸업생 스토리 등 다양한 세미나를 진행해 더욱 풍성한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며 양일 참가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기념품 및 이벤트를 통한 IELTS 모의고사권 등이 제공 될 예정이다. 자세한 박람회 안내 및 사전신청은 IDP에듀케이션 홈페이지 또는 ‘IDP 호주유학박람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여성 임원 채용하라” 기업 압박하는 아베

    아베 신조 정부가 상장기업들에 대해 여성 이사 기용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올봄에 개정하는 ‘기업 지배구조 지침’(거버넌스 코드)에 관련 방침을 밝히고, 이사회에 여성이 전무한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자 및 언론 등에 그 이유를 밝히도록 할 계획이다. 거버넌스 코드는 기업 운영 방향 및 이사회 결정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공식적인 강제력은 없다. 그러나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가 만든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강제력을 지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8일 “금융청이 3월 자문회의 및 의견 수렴을 거쳐 젠더(성)와 국제성을 포괄하는 이사회의 다양성 증대 방안을 요구하는 규정을 거버넌스 코드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의 상장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중은 3.7%로 20~30%대인 서구의 5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내각부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015년 기준 프랑스 34.4%, 영국 23.2%, 미국 17.9% 등이었다. 아베 정부는 2020년까지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앞서 2013년 상장기업의 임원 중 최소 한 명은 반드시 여성으로 기용하도록 경제계에 요청한 바 있다. 2015년에는 유가증권 보고서에 여성 임원 비율을 나타내도록 의무화했다. 아베 정부는 여성 이사가 늘어나면 이사회의 구성이 다양해지는 동시에 기업 의사결정 과정이 유연하고 투명해지는 등 경쟁력이 높아지고, 기업 가치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성 이사진이 늘면 오랜 관습과 구태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일본 상장기업의 이사회는 몇몇 명문대학을 나온, 비슷한 학교와 경력을 지닌 ‘중년 아저씨들의 클럽’으로 전락해 식상한 의견에 진부한 결정을 내린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러나 현재 이사진에 오를 여성 후보가 한정돼 있다는 것이 문제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여성 관리직의 비율은 12.1%에 불과했고, 부장급은 6.5%에 그쳤다. 여성 임원을 등용하기 위해선 우선 여성 관리직을 더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 인력의 희소성 탓에 몇몇 여성 변호사와 교수, 전문경영인들이 여러 곳의 사외이사를 겹치기로 맡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여성 대상으로 성적인 내기…美 명문대 사교클럽 논란

    여성 대상으로 성적인 내기…美 명문대 사교클럽 논란

    미국 명문대에 다니는 유명 남성 사교클럽 회원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성적인 내기를 벌여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 CBS뉴스 등 현지언론은 7일(현지시간) 아이비리그 코넬대에 다니는 남성 사교클럽 ‘제타 베타 타우’(ZBT·Zeta Beta Tau)의 일부 회원 사이에서 여성과 동침한 횟수로 내기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피그 로스트’(Pig Roast)로 명명된 이 문제의 시합에는 주로 신입 회원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참가자는 여성과 잠자리를 가진 횟수에 따라 점수를 받았는데 가장 많은 여성과 자면 우승하는 것이었다. 만일 점수가 같으면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가는 여성과 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충격적인 실태는 지난해 12월 처음 밝혀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괴이한 시합이 얼마 동안 벌어졌는지, 얼마나 많은 회원이 참여하고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이들 회원과 관계한 여성들은 자신들이 내기의 대상이었던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몇 명의 여성이 회원들과 관계를 맺었는지도 현재까지 파악되지 않았다. 코넬대 측은 해당 남성 사교클럽에 대해 앞으로 2년 동안 보호관찰(probation) 기간을 두겠다고 지난 7일 발표했다. 또한 이 대학은 소속 회원들의 생활 태도를 다시 검토하고 매년 진행되고 있는 성폭력 방지 등 특별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여긴 이들 남성에 대한 처분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북미 남성 사교클럽 ‘제타 베타 타우’(ZBT) 코넬대지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제천 화재 참사 유족의 절규 들어준 판사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를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8일 오전 10시쯤 청주지법 제천지원 2호 법정. 지난해 12월 21일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희생된 사고와 관련해 구속기소된 스포츠센터 건물주 이모(54)씨에 대한 첫 공판을 참관하려는 방청객들이 30여개 좌석을 가득 메웠다. 그중에는 이번 참사로 가족을 잃은 민모(57)씨와 김모(43)씨의 모습도 보였다. 영하 14도의 매서운 한파를 뚫고 참석한 두 사람은 점퍼 차림에 수염이 덥수룩했다. 10시 10분 신현일 재판장의 호출로 카키색 수의를 입은 이씨가 고개를 숙인 채 법정에 들어와 피고인석에 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씨가 서울의 명문대 입학을 앞두고 이번 화재로 숨진 딸이 생각나는 듯 눈을 감았다. 재판장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느냐”고 묻자 이씨는 작은 목소리로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검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가 구체적으로 적시된 이씨의 공소장을 읽어 내려가자 방청석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밀폐된 공간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숨져 간 희생자들의 고통이 법정을 오열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재판장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이씨는 “나중에 답하겠다”고 했고, 첫 공판은 그대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재판장이 방청석을 향해 “이 사건 피해자 가족 중 하실 말씀이 있는 분은 하시라”며 이례적으로 발언권을 줬다. 민씨가 일어나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 조카를 한꺼번에 잃은 유족입니다. 29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참사를 일으킨 건물주를 엄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없는 죄를 있게 해 달라는 게 아니라 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처벌을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망하신 29명의 영혼이 자유롭게 저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씨의 절규를 듣고 잠시 침묵하던 재판장은 “유족들은 공소장을 열람할 수 있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도 할 수 있다”고 말한 뒤 재판을 끝냈다. 법원을 나서는 두 유족의 허름한 몸으로 영하의 칼바람이 다시 휘몰아쳤다.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여학생에게 강제 입맞춤하는 볼리비아 교수

    여학생에게 강제 입맞춤하는 볼리비아 교수

    볼리비아의 한 명문대학 교수가 여학생을 성추행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돼 파문을 일으켰다. 외신에 따르면, 사건은 최근 볼리비아 가브리엘 레네 모레노 국립 대학의 한 교실에서 일어났다. CCTV에는 홀로 공부 중인 여학생에게 교수가 다가가 강제로 입맞춤하는 순간이 담겼다. 당황한 여학생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책을 들여다보자, 교수의 만행은 계속됐다. 교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여학생에게 쥐여주기도 했다. 취업을 앞둔 여학생들은 교수들의 이런 추행에도 쉽게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고 외신은 전했다. 해당 영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나가며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누리꾼들은 “볼리비아 명문대학의 망신”이라며 교수의 해임과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자치광장] ‘빽’ 없는 ‘빽’이 더 좋다/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자치광장] ‘빽’ 없는 ‘빽’이 더 좋다/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공직생활에서 밀어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 즉 ‘빽’이 있어야 출세가 쉽다고 한다. 그래서 변변한 ‘빽’이 없는 신출내기는 상처를 많이 받기도 한다. 충청도 산골 출신인 나는 형편이 어려워 공고와 공대를 졸업한 후 서울시 공직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시청은 명문고, 명문대 출신이거나 특정 지역 출신이라야 제대로 대접받는 분위기였다. 도와줄 지인 하나 없었던 나는 주변의 차별에도 설움을 감추며 늘 기가 죽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호 보직에서 밀려나 민원이 극심하고 사고 위험도 높은 부서로 발령나기도 했다. 그래서 나만의 ‘빽’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 맡게 된 도시 분야를 공부하러 유학도 가고 대학원도 다녔다. 전공 이외 연관 분야까지 지식을 습득하고 융합하는 등 창의력을 발휘했다. 소관이 불분명한 남의 일도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해냈다. 상사는 물론 동료 부하 직원들의 신뢰를 쌓는 데 남달리 집중했다. 그 결과 지하철건설본부장, 뉴타운본부장 등 최고의 도시건설 책임자가 되고, 직업공무원의 꽃인 차관급 행정부시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다. 7년 전 구청장이 되고 보니 구청의 분위기가 너무 낯설었다. 일만 너무 시킨다며 불평이 많았고, 출신 지역별로 갈등도 깊었다. 공직자로서 가장 중요한 청렴성, 도덕성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데다 스스로 자존감이나 자긍심도 부족해 보였다. 어디서부터 고쳐 나가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런 사내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의 ‘빽’이 돼 주기로 했다. 아무런 연고나 배경이 없어도 자기 일에 성심을 다하면 누구나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보여 줬다. 외부의 부당한 청탁이나 위법한 압력을 철저히 막아냈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직무를 평가하고 특별한 성과를 내거나 남달리 고생하는 부서와 직원은 상응한 포상과 함께 승진 등 인사에 반영했다. 그간 줄서기 문화에 젖어 있던 직원들이 처음에는 무덤덤했으나 3년 정도 지난 후부터 적극적으로 일하는 분위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중구의 108개 사업이 정부, 서울시 등의 우수한 평가와 함께 사상 최대의 인센티브 사업비(약 140억원)를 지원받는 성과를 이루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저마다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가장 큰 ‘빽’이라고 생각된다. 손쉽게 기댈 수 있는 ‘빽’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조직 내부에서 자신이 쌓아 온 신뢰나 본인의 능력은 오래될수록 많아지고 커져서 공직 생활을 행복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확실한 자기 ‘빽’을 만들어 능력 있는 공직자가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 하나ㆍ국민銀도 ‘채용 특혜 VIP 리스트’ 있었다

    하나ㆍ국민銀도 ‘채용 특혜 VIP 리스트’ 있었다

    하나 55명 전원 서류 전형 통과필기통과 6명 면접 조작후 합격 국민 20명 ‘서류 합격 요망’ 표시윤종규 회장 종손녀도 명부 포함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이 신입 사원 채용 과정에서 각각 55명, 20명의 인적 사항이 담긴 ‘VIP 리스트’를 만들어 특혜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리스트를 넘겨받은 대검 반부패부(부장 김우현)는 이르면 5일 사건을 일선 청으로 이첩해 본격 수사에 나설 뜻을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두 은행의 사례가 외부 청탁자, 사내 친인척 명부를 관리하면서 37명을 부정 합격시킨 혐의로 기소된 우리은행 이광구 전 행장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금감원 등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2016년 공채에 앞서 55명의 이름이 담긴 리스트를 작성했다. 이들은 그해 공채에서 한 명도 빠짐없이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필기시험까지 통과한 6명은 조작된 면접 점수를 받고 최종 합격했다. 앞서 금감원이 하나은행 채용비리 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하나카드 사장 및 거래처 사외이사 지인의 자녀도 55명 리스트 안에 포함된 인물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하나은행의 경우 공채 시작 전부터 리스트를 만들어 전형 단계별로 참고한 정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에서 발견된 20명 리스트는 일단 합격자 명단인 점이 하나은행과는 다르지만, 서류심사부터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실제 2015년 120명 최종 합격자 명단 중 해당 20명에게만 ‘서류전형 합격 요망’, ‘1차 결과 통보 요망’ 같은 별도 표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KB금융 노조 관계자는 “20명 관리 리스트 비고란에 최고경영진의 조카, 전 사외이사 같은 꼬리표도 붙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은행장 해명 자리에서도 리스트 존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서류전형에서 840명 중 813등, 1차 면접에서 300명 중 273등을 하고도 최종 합격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종손녀도 20명 중 한 사람이다. 금감원은 국민은행, 하나은행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2015년, 2016년 외에는 VIP 리스트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각 은행은 검찰 수사에서 채용 과정을 소명하겠다는 입장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특정인을 합격시키라는 지시를 받지 않았다는 게 일관된 주장”이라면서 “현재 의혹도 은행이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민간 회사의 재량 안에서 설명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명문대 출신 우대와 관련해서는 “입점 대학을 고려했다”는 해명을 되풀이했다. 국민은행 측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향후 예정된 조사에서 성실하게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DGB대구은행에 2016년 특혜 채용된 3명 중 한 명은 현 박인규 회장 운전기사의 자녀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은행은 특혜가 아니라는 입장이어서 박 회장 연루 여부도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날 전망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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