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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방후 식량·농지문제(새로쓰는 한국현대사:11)

    ◎남북 모두 흉년… 귀환동포 늘어 식량난 심각/소,살 북송 않으면 대남 전력중단 위협/미군정 쌀시장 자유화… 가격뛰자 폐지/미,일인소유토지 환수… 소작농 선발나서 인구는 때로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경우가 있다.다시 말하면 먹여 살려야 할 사람들을 의미한다.광복 이듬해 19 46년의 남한인구는 1천9백36만8천2백70명.이는 해방직전에 비해 자그마치 2백80만3천8백53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북한으로부터 남하한 인구에 일본이나 북지에서 돌아온 귀환동포들이 합세했으니 그야말로 초만원이었다. 그래서 호구지책의 민생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해방원년 19 45년은 그런대로 풍년이 들어 쌀 1천2백83만5천섬을 수확했다.그 다음해인 46년에는 장마가 져서 흉년이 드는 통에 1천2백5만섬을 수확하는 것으로 그쳤다.오늘날 3천4백만섬을 해마다 웃도는 쌀 생산량에 비하면 분명히 격세지감이 있다.농촌의 쌀 과소비 탓도 있었지만 하여튼 해방이후 군정하에서 식량사정은 매우 심각했다.쌀 산지로 유명한 경기도에서도 45년 한해에 15만4천섬이 모자랄 정도였다. ○경기서만 15만섬 부족 우리 민족의 생활에서 쌀은 대단한 존재다.쌀농사 문화권(미작문화권)에서 쌀은 주식이려니와 재화의 척도가 되었다.그럼에도 1945년 미군정은 쌀의 중요성을 그리 깊이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군정은 10월11일 쌀을 시장기능에 맡기는 쌀 시장 자유화 시책을 시행했던 것이다.여기에는 물론 미국적 사고의 자유시장 경제원칙이 적용되었다.또 일제의 수탈로 위축된 농촌경제에 활로를 열어준다는 의도도 가미되었을 것이다. 미군정이 쌀 자유시장 시책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2주일이 걸렸다.그래서 군정은 한국경제를 위해 언제라도 식량을 통제하겠다고 선포했다.자유시장이 개설되고 나서 쌀 값은 해방전 암시세인 1말 1백50원선을 웃돌았다.도시민들은 자유시장 기능 정지와 배급제 실시를 연일 외쳤다.미군정은 다음해 1946년 2월 자유시장 폐지와 아울러 긴급법령으로 전년도에 생산한 쌀 수집령을 공포하기에 이른다. 하지장군의 경제고문 A C 번스는 쌀 자유시장 채택이 잘못이었다고 시인했다.그는 기자회견에서 『내 생각으로는 작년에 도입한 쌀 자유시장을 큰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본다』고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나섰다(서울신문 1946년9월4일자).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수집령을 내린 1946년 2월은 수확기로부터 3∼4개월이 지난 뒤였다.마침 2월2일은 마음놓고 선호할 수 있는 해방후 첫 구정이어서 농촌 쌀 소비량은 절정을 이루었다. 군정이 전국에서 수집한 쌀은 68만3천섬에 불과했다.서울시민 1백20만명에게 하루 1홉꼴씩 일곱달 반을 배급할 양을 겨우 수집한 것이다.이에앞서 1월25일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에서 소련은 지체없이 북한에 쌀을 보내지 않으면 전력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해왔다.그러나 미국산 잡곡으로 간신히 배급제를 유지하는 남한 실정으로는 어려웠다.북한은 8만㎾가 넘게 송전하던 전력을 4월부터 최하 3만2천㎾로 실제 내려버렸다. 한반도의 민생경제가 몹시 궁핍했다는 사실은 미소공위 예비회담에서도 보여주었다.최종 확정한 15개 항목 의제가운데 민생 경제관련 분야가 6개항목을 차지했다.쌀과 전력을 포함한 원자재,연료,화공품 교역과 철도차량 운송문제 등이 그것이다. ○미,쌀 수집령 긴급공포 철도는 북한에 미군보다 먼저 진주한 소련군에 의해 1945년 8월27일 자정을 기점으로 이미 끊긴 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물자교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남한에서는 농사짓는데 쓸 비료가 당장 필요했다.그러나 비료와 같은 중화학공업은 당시 북한에 있었다. 1946년 2월5일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이 급히 막을 내린 이유의 하나도 쌀이다.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다른 어떤 사안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소련대표 스티코프 대장은 쌀 공급요청을 되풀이하면서 더이상 토론할 일이 없다는 식으로 일방적 폐회 결론을 내렸다(주한미군사령관이 연합군사령관에 보낸 전문·1946년2월5일).미소공위 예비회담에서 노린 소련쪽의 주목적은 쌀이었다.소련은 북한에 쌀만 준다면 남한에서 아주 필요한 전력,석탄,비료를 보내줄 수 있다고 매달렸다(주한미군사령관이 연합군사령관에 보낸 전문·1946년2월7일). 미군정은 일본인 소유재산,특히 농지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23만1천3백㏊에 달했는데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우선 법령을 만들어 1945년 9월25일부로 일본인 재산 모두를 확보했다.이어 미군정은 이상한 현상들을 발견한다.그 하나가 해군대위로 전남도 미군정에 참여한 바 있는 E G 미드(전 버지니아대 교수·90년 작고)의 저서 「주한미군정 연구」에 나온다.「내가 전남에 도착했을 때 마침 수확기였는데 아무도 일본인 논의 벼를 거두어들이지 않고 있었다」는 대목이다. 일본인 소유농지를 법적으로 귀속시킨 미군정은 1945년 11월 신한공사(신한공사·New Koean Co.)를 서둘러 만들었다.과거 일본의 농촌수탈 법인격인 동양척식회사 보유 농지는 물론 다른 개인소유 토지를 인계받은 신한공사는 농사를 지을 소작농을 선발했다.미군정의 농지정책은 소련과 소련의 조종을 받는 좌익세력의 비난이 늘상 따라다녔다.왜냐하면 북한은 명목상 임시인민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19 46년 초반기에 토지개혁을 끝내고 이를 선전자료로 삼았기 때문이다. ○여론도 토지개혁 반대 미군정도 토지개혁을 그냥덮어둔 것은 아니다.하지장군은 일본인의 재산,그중에서도 농지처리문제 결정을 워싱턴에 요청했다.국무부는 이를 지지하면서도 정작 행정지침은 내려보내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결국 사문화한 1946년 2월 미군정의 농지령 역시 농지개혁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15년동안 농지를 점유한 농민에게 자작을 허용하고 대신 일정액의 현물지대를 내는 것을 골자로 한 이 법령은 군정기간 내내 빛을 못보았다. 미국의 입장은 새로 태어날 한국정부에게 농지개혁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실제 군정이 1946년 3∼6월 사이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분의2 이상이 장래의 한국정부가 담당하길 희망했다.이 조사에서 서울에서는 응답자의 89%,농촌에서는 68%가 북한의 토지개혁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와 비슷한 입법여부를 물어본 결과 서울의 73%,농촌의 56%가 반대했다는 것이다(미외교문서시리즈·1946년).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이 소련군 명령에 의해 거의 몰수성격을 띠고 19 46년 1월부터 강력히 진행되었다(별도기사 참조).김일성은 그해 4월10일 「토지사업을 결산하는 보고서」에서 『북조선 경제생활 향상을 위해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고 자찬했다.그러나 북한은 지금 혹독한 식량란을 겪고있다. 역사의 존재가치는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존중되느냐에 있다고 한다.그럼에도 역사를 무시한 북한의 고립주의적 주체철학은 「다 함께 침몰하는 운동」을 가속화시켰는지도 모른다.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미( 〃 〃) ▲김경운(조사부 〃) ◎「꼭두각시」 북정관 연구에 큰가지/서울신문 입수 미 노획문서를 보고/토지·농업 등 정책 배경 드러나/당시 행정 소군 사령부서 명령 서울신문이 입수한 미국의 노획문서는 해방 이후 북한 실정을 연구하는데 있어 그 어떤 자료보다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특히 이 문서와 같이 북한의 각급 행정당국 간에 내부적으로 전달된 문건일 경우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발간 혹은 발표한 자료에 포함되지 않는다.그래서 구체적인 정책 입안과정이나 배경등이 파악된다는 점에서 가치는 더욱 커지는 것이다. 이들문서 2건은 1945년 12월과 1946년 1월 초에 생산된 문서로서,모든 농업및 토지 문제에 관련된 자료이다.모두 『북조선 주둔 소련군 사령부의 명령』에 의해 작성되었음을 명기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1945년 12월 문서의 경우 『북조선 농림국은 소련군사령부의 명령에 의하여 임시조치 시정요강을 좌와 여히(왼쪽과 같이) 포고함』이라고 명기했다.이로 보아 이 당시 북한의 행정은 명백히 소련군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마치 자치정부인양 선전되었던 임시인민위원회가 실제로는 소련군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하부기관에 불과했던 것이다. 1946년 1월의 문서는 제목 자체가 소련군사령관의 명령서이기 때문에 「북조선주둔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와 「참모부장 벤코프스키」의 이름으로 발령된 것이 당연하다.그러나 1945년 12월의 문서는 「북조선 농림국장 이순근」의 이름으로 포고되었는데 이는 외형적으로 당시 북한의 각종 정책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정부기구에 의해 자율적으로 제정 집행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된다. 농림국 문서 내용 중에 각별히 눈에 띄는 것은 1945년 12월 이전에 이미 전일본인 소유 재산과 「친일파 및 민족반역자」의 재산을 몰수하여 인민위원회 혹은 농민단체에서 관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이 문서에는 조선인 지주들이 「건국성납」이란 명목으로 토지등을 내놓았다는 증거가 들어 있다. 1945년 12월에 『전도농호등록을 행하고 매년도 말까지 그 이동을 보고』토록 한 뒤 46년 1월부터는 북조선주둔 소련군사령관이 전농호를 조사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여기에는 각종 토지사용자들(농민·소작농·지주·사원 소유지 기타)과 일체 국유지,이전 일본인 소유지들이 세밀하게 포함되었다.토지면적조사는 46년 2월15일 이전까지 끝내도록 지시하였다. 어떻든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토지개혁 준비에 필수적인 과정이다.그래서 북한의 토지개혁이 1946년 3월에 시작하여 한달만에 완료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 것도 이처럼 1945년 말부터 그 준비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헌금강요 새혐의/영생교주 재조사

    서울지검 강력부(김승년 부장검사)는 17일 영생교 교주 조희성(63·구속수감중)씨가 「영생불멸론」을 내세워 신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한 혐의를 새로 잡고 조씨를 다시 불러,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최근 김모씨(45)등 영생교 신도 10여명이 『1인당 3천만∼5천만원씩 헌금명목으로 갈취당했다』며 고소해옴에 따라 조씨를 상대로 사실여부 조사를 한 뒤 사기혐의로 추가기소할 방침이다. 조씨는 신도 6명이 낸 5억원의 헌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고 상고했었다.
  • 고난의 시절/대약진 운동·문혁때 갖은 고초(두만강 7백리:4)

    ◎1957년 대약진/조선족 농토 모두 국유화… 군사훈련 시켜/1966년 문혁/5만여 동포 간첩·반혁명분자 몰아 고문 고난의 시대와 오늘 요즘 연변의 향진 일선 간부들은 저녁이면 술에 곤죽이 되어 돌아온다.그리고는 아침에 식사도 변변히 못하고 출근하기가 일쑤여서 위와 간을 버렸다고 한다.그 이유는 상부에서 지시는 내려오고 농민들은 치받아 중간에서 농민들을 달래느라 술을 마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래서 간부질(노릇)하려면 술재간을 키워야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런 것이 모두 세월 탓이다.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간부들에게 대든다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화룡시 남평진 유신촌에 사는 유택모(68)노인은 요새 간부들을 미더워 하면서 개혁개방의 시대에 사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개혁시대 보람 느끼며 『간부들도 우리네 사정을 알고 위에는 슬슬 거짓말도 하는것 같습데다.우리에게 이롭게 하자는 거디요.고생 끝에 낙이라고 좋은 세월이야요.그리고 등소평 동지는 정말로 감사한 분이십네다.개혁개방을 하니 얼마나 좋습네까.문화혁명 때에 가을을 해도 두달씩 했고 온 하루 뼈 빠지게 일 해도 5전(벼 한근이 9전이였다)수입이였디요.보리고개를 넘기 바쁘게 식량이 떨어지고….도거리(땅을 개인한테 나누어 줌을 이르는 말)를 하니 일년내내 하던 일도 세네달이면 되고 산량이 많이 나고 정말 옛날 지주보다도 훨씬 잘살게 됐디뭡네까.농한기면 버섯이며 약재들을 캐서 팔아 목돈을 쥐기도 하디요.작년에 송이를 따서 열흘 사이에 큰 돈을 벌었다구요.문화혁명땐 자본주의 복벽을 방지한다고 버섯은 고사하고 닭알 한알 팔지 못하게 했으니 원…』 그러나 불모지를 가꾸어 먹고 살만하게 된 조선족 들에게 지난날 불행은 크게 두번 찾아왔다.중국의 조선족들이 못자리판을 이룬 연변에서 「대약진 운동」이 일어난 것은 1957년이다.이 때에 간부들은 요즘과 같은 선의의 거짓말이 아닌 진짜 거짓말을 식은죽 떠 먹듯 내뱉았다.모든 개인의 재산을 국유화하면서 3년안에 영국을 따라잡는 다고 말대포를 펑펑 쏘아댔다.그 거짓말을 참말로 알아들은 연변 사람들은 몇년 후 차를 사게 되면누가 운전을 할 것이냐를 너나 없이 걱정할 정도였다.꿈도 참 야무졌다. 대약진 운동에 따라 향을 인민공사,촌을 대대,자연부락을 소대로 조직했다.또 농민군사화를 위해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온 마을이 집체식당에서 끼니를 꾸렸다.당시 생활은 집체화여서 먹는 것은 물론 잠자리 까지도 합숙화를 시도했다.농기구의 기계화 명목으로 손수레 바퀴축에 마구잡이로 베어링을 넣었다.제대로 굴러갈 턱이 없었는데,약진운동은 마치 그 손수레 같은 것이었다. 화룡시 덕화진 천중백(65)노인이 회고하는 당시 연변 농촌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수운 꼴이 많다.그러나 어디 웃음인들 웃을 여력이 있었겠는가….하여튼 그 절박했던 어려운 시절의 사연을 귀담아 들어 보았다. 『하루 진종일 일을 하고도 밤이 이슥해야 잠을 잤디요.밤에는 학습과 논쟁(토론)을 하라고 기래요.눈을 비비면 새벽부터 군사훈련을 시켰댔는데,농촌사람들이 제대로 할리 만무 아닙네까.아 글쎄 「우로 돌앗」하면 오른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꾸만 위켠으로 돌아 두만강을 향합데다.훈련 받는데서 보면 위켠에 두만강이 있었댓시요.기리니끼리 농사일도 안되고….해봤자 내 일이 아니니까 건성건성이었디요.그런데 명령은 주살나게 떨어져 정신차릴 틈도 없습디다』 ○“3년내 영추월”외쳐 대약진 운동은 허상에 불과했다.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위에서 농사땅 깊이갈이(심경)를 명령하면 미처 거두어들이지 못한 곡식을 그대로 둔채 흙을 덮어버렸다.그리고 나서 다음해 씨앗을 뿌리면 곡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땅속에 썩지도 않은 콩대 등이 그대로 깔려있으니 흙이 들떠 곡식이 자랄 수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보고는 늘 전량 완수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위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맞장구를 쳤다.깊이갈이를 해서 1㏊당 36만근의 수확은 거뜬할 것이라는 맞장구였다.36만근이 수확기에 가서는 결국 1만근도 안되게 줄지만,콩꼬투리 하나 남기지 않고 실어가버렸다.먹을 양식이 남지 않았다.그래서 이삭이라도 주워올까 하면,또 명령이 떨어졌다.발갈이요,추비요 하고 다그쳐 제것이라고는 곡식 한톨 가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1966년 5월부터 대륙을 휩쓸어 버린 이른바 문화대혁명은 「대약진 운동」을 뺨쳤다.연변에서 문화대혁명 당시 반혁명분자,간첩,우파,지주,부농,나쁜 분자,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반동적 지식분자 등의 혐의로 투쟁을 받은 사람은 무려 5만여명이었다.간부,인테리는 모두 투쟁 대상이었다.외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거나 편지거래가 있었다면 간첩이고 심지어는 말 한마디 잘못해도 용빼는 수가 없었다. 용정시 삼합진 북흥의 한인수는 사람들이 목에다가 충(모택동한테 충성한다는 뜻으로 심장을 상징하는 복숭아형 빨간 판에 충자를 쓴 패쪽)자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보고 『병아리 잡아 먹는 개처럼 패쪽은 왜 메고 다니는가』라고 해서 반년동안 투쟁을 당했다.그리고 한 무식한 할머니는 모택동의 어록「최저한도의 지식분자」를 「쇠좃 한동이」로 잘못 알고 외우다 1년동안을 욕보았다.한어를 모르는 송석봉은 모두들 한어로 구호를 부르는데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다가 엉겁결에 『나두…』하고 한마디 외쳤다가 한달동안 끌려다녔다.송석봉의 별명은 지금도「나두」다. 투쟁수단의 가혹정도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매는 약과,납을 녹여서 먹이고 쇠를 달구어 물리고 널판에 못을 박고 그 위로 걷게하고 온돌방에 가두어놓고 물 한모금 안주고 불을 때서 데우는 등의 고금 고문수단이 총동원 되었다. ○자살하는 사람 속출 용정시 대소과수농장의 조창선은 불찜질을 당한 그날 밤 두만강 건너 벼랑밑에 가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시체가 발견되었는데도 죽은 사람의 허리띠가 조선 상표가 붙은 것이라는 것을 트집잡아 중국 사람이 아니라고 못가져 오게 했다.결국 조선에 사는 친척들이 매장을 했다.지금도 묘는 강 건너에 있다. 문혁 당시 주도권을 잡고 사람잡이에 날뛴 사람은 대개 일자무식의 농민,노동자,군인이었다.그들은 노농병선전대라는 이름으로 농촌과 도시의 공장과 직장을 쥐고 흔들었다. 그들의 무지의 실례가 하나 있다.당시 소수민족의 언어를 한어화하였는데 조선말도 한어를 기준으로 고쳤다.연변인민출판사로 들어온 노동자선전대는 조선말 고유어를 한어로 고치는데 요일도 한어화 하여 성기로 고칠것을 주장하고 나섰다.요일이 성기로 되면 월요일은 성기일,화요일은 성기이,일요일(성기일)은 또 월요일과 똑같은 성기일이 될것인데 어떻게 가를 것인가 하는 문제에 걸려 결국 포기되었다.만약 이런 걸림돌이 없었더라면 문화혁명 10년동안의 3천6백55일은 모두 성기로 변했을 것이다.
  • 지방의원수·행정단계 축소 논의/「지자제 특위」무슨 일 하게 되나

    ◎도또는 읍면동 폐지 본격 거론/지자체 「사업갈등」조정방안도 모색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6월 지방자치선거가 끝난 직후 활동을 개시할 지방자치발전특별위원회의 구성 결의안이 가결됨으로써 지방자치제도의 지속적인 개혁 근거가 마련됐다. 특위는 지난달 13일부터 여권에서 필요성을 제기하다가 「선거연기 의혹」 때문에 선거 뒤로 미루어 놓은 지방행정조직개편의 법적·제도적 기초를 마련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도 또는 읍·면·동의 폐지,자치구의 준자치단체화 등 행정구조의 축소문제도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치구는 아니지만 행정구를 가진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의 위상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될 전망이다.울산·부천·안양·수원 등 10개 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민자당의 최재욱 기조위원장은 『이들 도시는 인구수에서 광역시에 해당하면서도 법적으로는 기초자치단체로 취급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지난해말 진통 끝에 97년부터 광역시로 승격시키기로 한 울산과 같은 사태가 비슷한 도시들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위상재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방의원들의 보수문제도 논란거리다.민자당은 15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했다. 지난해 개정된 지방자치법 제32조는 의정활동비란 명목으로 지방의원들에게 달마다 일정액을 지급할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구체적인 지급기준은 대통령령의 범위 안에서 지방의회 조례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시행은 오는 7월부터이다 지방의회들은 이를 근거로 부단체장에 준하는 보수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의회를 예로 들면 1백46명이나 되는 시의원들에게 부시장급(차관급)에 해당하는 보수를 달라는 것이다. 국고와 주민의 부담이 그만큼 가중될 수 밖에 없다.상한선의 책정을 놓고 정부와 지방의회 사이에 신경전이 불을 보듯 뻔하다.민자당은 다시 무보수 명예직 원칙을 확고히 법제화 하든지 지방의원 숫자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이견으로 시행이 어려운 국책사업에 대한 상급자치단체의 조정·협의권도 보강대상이다. 지방자치법 제140·146조는 「2개 이상의 자치단체에 관련된 사무의 의견조정을 위한 협의회의 구성」 근거와 「상급자치단체의 조정권및 이행명령권」을 마련해 놓았다.그러나 쓰레기처리장,상·하수도문제,도로신설 등을 둘러싸고 해당 자치단체가 조정에 불복할 때는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미비하다고 민자당의 한 관계자는 지적했다.지방의회의 회기상한선을 늘리고 자치단체의 예산집행에 대한 감사 등 통제장치를 강화하는 방안 등도 시급히 논의해야 할 과제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 사이비기자 6명 영장/미성년자 술집소개·비리폭로 미끼 갈취

    ◎1명 입건·4명 수배 【수원=김병철 기자】 수원지검 특수부 김태희 검사는 9일 미성년자를 술집에 소개해준 한국경찰신문기자 이웅진(37)씨와 공무원과 업체의 약점을 잡아 기사화하겠다고 협박해 광고비명목으로 금품을 뜯어온 전 경기도민일보 송탄주재기자 김성도(43)씨 등 6명을 공갈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검경일보 수원주재기자 최승운(52)씨를 불구속입건했다. 검찰은 또 전 수도권일보 이천주재기자 이태한씨(36)등 4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김씨는 93년 5월쯤 송탄시 공무원 최모씨가 공무원신분으로 재직하면서 철골부품업등 영리사업을 하고 있는 사실을 기사화하겠다고 협박해 광고비명목으로 2백80만원을 받는등 2차례에 걸쳐 3백80만원을 챙겼다.
  • 가계수표/불법 발급/브로커 7개조직 적발/무자격자 은행에 소개

    ◎수수료 4억대 챙겨/목사 등 7명 구속 거액의 CD(양도성예금증서)를 매입,은행의 수신고를 높여주는 대가로 무자격자에게 돈을 받고 가계수표를 발급해준 7개 가계수표 알선조직 14명과 알선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은행직원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지검 동부지청 특수부 조근호검사는 8일 은행으로부터 CD를 매입해주는 대가로 가계수표를 발행받을 수 없는 무자격들에게 1인당 3백만∼5백만원의 돈을 받고 가계수표 개설을 알선해 준 S선교회 목사 이경희(52·여)씨 등 6명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혐의(알선수재)로 구속하고 모집책 이모(33)씨 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검찰은 또 자격미달자 41명에게 가계수표를 부정 발급해주고 알선업자 권안자(50·여·구속중)씨로부터 3백50만원의 금품을 받은 J은행 전 신촌 출장소장 권만수(49)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혐의(수재)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최씨 외에 가계수표 부정발급과 관련된 3개 금융기관 5개 지점 및 출장소의 명단을 은행감독원에 통보,관련자를징계토록했다. 검찰에 따르면 알선업자 이씨는 94년 4월부터 지난달까지 수신고 실적이 부진한 J은행 신촌출장소 등 5개 점포에서 CD 1백46억원을 매입해주는 대가로 「가계수표 당일발급」이라는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 온 영세 자영업자 이모씨 등 78명에게 가계수표를 부정발급 받도록 알선하고 이들로부터 수수료명목으로 1억9천8백여만원을 받은 혐의이다. 검찰조사결과 이들 7개 조직이 수수료로 챙긴 돈은 모두 4억여원으로 가계수표 개설을 알선한 1백30명중 1백10명의 부도여부를 확인한 결과,82명(74.5%)이 부도를 내 현재 수배중이거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육군중령 낀 사기단 3억 사취/청와대 사칭,건설업자 속여…1명구속

    민자당 전문위원과 현역 육군중령이 낀 청와대 사칭 사기단 3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8일 청와대 고위층에 부탁해 사업지원을 해주겠다며 건설업자로부터 3억원을 받아 가로챈 최용건(31·경기 미금시 금곡동)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하고 민자당 전문위원 전모씨(39)를 입건했다. 경찰은 또 대전 육군교육사령부 소속 진모 중령(50)을 같은 혐의로 군 수사기관에 넘겼다. 최씨는 지난 1월29일 상오 10시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한모씨(42·건설업)에게 『청와대 민정비서실 이모과장의 지시로 정치자금 모집업무를 비밀리에 수행하고 있다』며 『정치자금 20억원을 내면 고위층에게 부탁해 사업지원을 해주고 각종 편의를 봐 주겠다』고 속인뒤 두차례에 걸쳐 3억원을 받아 전씨 등과 5천만∼1억5천만원씩 각각 나눠 가진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전씨는 진 중령으로부터 정치자금 명목으로 1억5천만원을 건네 받았다가 건설업자 한씨에게 되돌려 주었다는 것이다.
  • 목포시의회 의원들 예산 불법편성 사용/말썽나자 반납

    【목포=박성수 기자】 전남 목포시의회 의원들이 예산편성 지침에도 없는 예산을 편성해 나눠쓴 뒤 말썽이 일자 뒤늦게 반납했다. 7일 목포시와 시의회에 따르면 목포시의회는 지난해 예산심의 과정에서 의원의정 활동비와는 별도로 특별위원회 활동추진비 명목의 3천만원과 의정활동 활성화추진비 1천2백만원 등 모두 4천2백만원을 편성해 30명의 의원이 지난해 8월부터 3차례에 걸쳐 나눠 가졌다. 그러나 최근 의정활동비 조기 지급등과 관련,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되자 지난달 28일 연도말 폐쇄시점에 맞춰 27명의 의원이 자진 반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의회는 올해도 이같은 명목으로 4천2백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놓고 있으나 말썽이 일자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시의회측은 『의회가 예산편성권한이 없는만큼 집행부에서 세워진 예산을 각종 특위활동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통과시킨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 「기업형 폭력조직」 27명 구속/수원지검

    ◎15명 수배… 도박·히로뽕 주사 【수원=김병철 기자】 수원지검 강력부는 3일 평택시내를 무대로 폭력을 휘둘러온 폭력조직 「청하위생파」 두목 조남준(28)씨 등 14명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범죄단체 조직,가입)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달아난 윤길수(30)씨등 15명을 수배했다. 검찰은 또 윤락업소를 운영하면서 이들 폭력조직에 서식처를 제공해온 최영성(47)씨 등 포주 9명을 윤락행위방지법 위반및 상습도박등의 혐의로,윤락녀들에게 히로뽕을 주사해온 오광운(31)씨 등 포주4명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청하위생파 두목 조씨등은 지난 93년5월 폭력조직을 결성한뒤 평택시내 유흥가와 사창가를 장악,대부분 대형업소 업주와 포주들로부터 업소보호비명목으로 매달 60만∼1백50만원씩을 받아내 조직관리비로 써온 혐의이다. 이들은 또 평택시 비전동 598에 「종건설」이란 외벽전문시공회사를 차려놓고 조직원들을 동원해 다른 업체의 참여를 막고 공사를 독점해온 혐의도 받고 있다.
  • 굶어죽는 돼지/김광영 수필가(굄돌)

    차창 밖으로 농촌 풍경이 황량하게 펼쳐지고 있다.이 순간 『돼지해에 농촌부부가 가정불화로 부인이 가출한데 이어 남편마저 집을 나가는 바람에 이들이 사육하던 80여마리의 돼지가 돈사에서 모두 굶어 죽은 채 발견됐다』라는 기사내용이 머리를 스쳐지나고 있다. 왜 부인은 가출을 했으며,남편은 돼지에게 사료를 주지 않을 경우에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과 같은 돼지들을 버리고 훌쩍 떠나야만 했을까. 이 문제는 단지 이들 부부의 가정불화에 기인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돼지를 키우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현재 우리의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면한 과제로 보여진다. 왜 그렇게 생각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돼지는 임신기간이 3개월이고 판매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는 기간이 6개월이라고 한다.9개월 동안에 사료비를 비롯한 생산비를 투입하고 난 후에 판매하려고 할 경우에 한마리의 이익금이 1만2천원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의 수입금을가지고 이들이 희망을 가지기는 커녕 돼지를 키우며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생산비에 따라 판매금액이 결정되는 것이 시장경제의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물가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외국으로부터 돼지고기를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돼지를 키우는 농민들이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이러한 악순환이 거듭함에 따라 농민들은 축산진흥자금에서 빌린 빚만 늘게 된다.또 가정불화가 잦게 되어 부인은 가출하게 되었고 남편도 희망과 위안을 찾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으니 뒤에 남은 돼지들만 굶어 죽게 된 것이다.
  • 위안부 민간기금/일적서 설치 거부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적십자사가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정권이 가장 중요시하는 전군대위안부에 위로금 명목으로 일시금을 지불하는 민간기금의 사무국 설치를 거부함으로써 기금 구상의 일부를 재검토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2일 보도했다.
  • 강사이 오가던 인정(두만강 7백리:2)

    ◎60년대초엔 북한냉면 먹으러 수시 왕래/물길러 오가던 아낙네들 문화혁명뒤에 사라져/용정 백금발전소 전기는 아직도 상계리에 공급 화룡시 용화향 상화촌 김 노인은 마을 앞 강건너 북한 땅인 무산군 화평리(화평리­옛 이름은 봇더기)에 사는 조카잔치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어느날 강에 나갔다가 강 건너에서 목욕을 하는 조카를 보았다.아무 날 잔치를 한다고 높은 소리로 알리더라는 것이다.그런데 미처 출국 수속을 하지 못해 갈 수 없었던 그는 잔치날 강언덕에 서서 형님 집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가깝고도 먼 이웃땅 참으로 두만강 양안의 마을은 가까우면서도 멀다.거리로 계산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고 국법으로 따지면 멀다.그러나 철조망을 치고 콘크리트 담벽을 쌓은 무인지대를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눈 한반도 군사분계선에 대면 두만강은 보통강이라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만강은 국경선 구실을 변변히 못했다.강 양쪽의 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통행증이나 여권 따위는 필요도 없이 왕래를 했다.용정시 개산둔진 선구촌 사람들은 냉면 먹으러 대안의 종성으로 다녔다고 한다.개산둔에 가야 식당추념들을 할 수 있었는데 20여리나 떨어졌고 국수맛도 엉망이었다.그래서 가까운 강건너로 가면 걸음도 덜고 입맛도 돋굴 수 있었으니 진짜 꿩 먹고 알 먹기였다.더구나 종성의 냉면은 함경도에서도 제일이어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할 정도였다. 연변 텔레비전방송국 아나운서 박홍섭씨는 어릴 때 삼촌을 따라 강을 건너 친척 잔치에 참가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한달을 놀다가 돌아오려니 그만 얼음이 풀리기 시작했디 뭡네까.교두로는 감히 올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강이 다 풀리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디요.그래서 두껍고 긴 널빤지를 가져다 량켠 얼음우에 걸쳐놓고 허리에 바줄을 동여매고 건너왔댔시요』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중국과 북한관계가 냉랭해지면서 국경선은 쌀쌀한 냉기를 풍기기 시작했다.그러나 1970년 주은래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후 완화되긴 했다.겨울이면 두만강에서 아이들은 함께 썰매나스케이트를 타는 경우도 있다.말하자면 중국과 북한의 국제경기라 하겠다. 용정시 백금향 동광촌 제3촌민소조(옛명 현암동)는 10여호 오붓한 마을이다.몇년 전까지만해도 이 마을에서는 두만강물을 길어 음료수로 했다.겨울에 강이 얼면 아예 대안의 북한 상계리에 건너가 물을 길어왔다.온 마을이 물동이를 이고 지게를 지고 국경을 넘어 이국으로 간다.그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출국했다간 입국했다.아마 중국에서 출국 수가 가장 많았던 사람을 꼽으려면 이 마을 아낙들일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동삼 내내 펄럭거리고 다니자니 미안하기 짝없더만요.상계리 분들이 얼굴한번 찡그리는 일없이 반겨 줄수록 죄송했디요.그래서 가끔 사탕,과자며 과일이며 떡을 가져다 드리곤 했는데,그러면 상계리 분들은 「이러지 마시라우요.엎음 갚음이랍니다」고 기래요.「우리가 쓰는 전기가 백금발전소의 전기 아닙니까」라면서….물고생을 무던히도 했디요.그때는 언제면 집에서 물을 받아 먹나고 학수고대했는데….정부에서 이런 사정을 알고 뽐프를 놓아주어서야물동이를 팽개치게 되었다구요.그런데 정작 물고생을 덜고 나자 상계리의 고마운 분들이 그리워집디다.물을 긷는다는 핑계로 국경을 넘나들었는데 이젠 세울 명목을 잃은거디요. 동광 마을 김씨가 들려준 국경을 드락거릴 시절의 회고담이다. 북한 땅 상계리와 서쪽으로 마주한 용정리 백금향 안개골에 들어선 백금발전소는 7백리 두만강에서 유일무이한 발전소다.1960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리처 이호성과장이 안개골을 답사하고 발전소 건설구상을 구체화했다.그해부터 착수한 공사는 만 10년이 걸려 지난 1970년 5월부터 정식 발전을 시작했다.그런데 상계리는 조개형국으로 된 언덕이 북으로 뻗어내려 두만강이 병풍처럼 둘러선 두렁바위(둘러선 바위라고 해서 불려진 이름)를 핥으며 10여리를 굽이 돌아간다.강을 따라 전깃줄을 늘리려면 인력과 물력 낭비가 엄청나 사전에 북한측과 협의하고 곧바로 조개언덕으로 전선대를 세우게 되었다.그 보상으로 상계리와 상계리에 있는 북한 공전소에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한다. ○안개골이 전기골로 백금발전소 퇴직간부 서현석(67·경상북도 영천군 고견면 태생)씨는 『예전에 안개골은 이름 그대로 늘 안개에 묻혀 있었수다.발전소가 세워진 후로 안개골은 별무리가 내려 앉은 격이 되었지.안개골이 전등골로 탈바꿈한 셈이우다』라고 말했다. 누누천년 이 땅을 적시며 흘러온 두만강은 우리 민족의 발목을 잡는 테였다.재난을 덮어씌우고 혈육간의 이별을 주고,그래서 아리랑고개 다음 가는 눈물이 강이 아니였던가! 하지만 반 만년의 찬란한 문화를 창조해온 우리는 끝내 두만강을 정복하고 두만강문화를 창조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문명시대가 열리면서 두만강 푸른 물이 누렇게 혼탁해졌다.그래도 두만강연안 사람들은 여전히 동방예의지국의 배달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백금향 백금촌 제2촌민소조 박길남(함북 무산군 풍경면 소학동 태생)노인을 찾아갔을 때 그 집에서는 꿩고깃국에 햇 이밥으로 후더운 접대를 했다.연변에서 평강벌 입살이 제일미라 만주국시기 공품이었다고 하지만 백금의 입쌀도 못지 않았다.최몽필잠장은 이밥맛이 어떠냐고 묻고는 수입해온 종자라고 부언했다. 『백금은 연변에서 해발고가 가장 높고 서리가 빨리 내려 논벼산량이 많이 떨어지는 땅입네다.그런데 백금 제4촌민소조 분이 어느 해 가을 강을 건너가 조선(북한)논에서 잘 영근 벼이삭을 몰래 가져 왔댔습니다.이듬해 그것을 심었는데 그 품종이 지금 백금에 많이 퍼진겁네다.서리가 빨리오는 고산지대에 맞는 우량품종을 수입 한 걸로 봐주시라요.그 다음부터 좋은 소출을 내게 되고 맛도 훨씬 좋아졌고…』 ○봄이면 과일꽃 만개 지난해 11월 25일 나는 우리 민족의 후더운 정을 한가슴 지니고 용정시 대소 과수농장을 찾았다.시루형국의 두개의 시루봉사이 안침진 곳에 터를 잡고 강건너 오국산성을 바라보며 오순도순 모여 앉은 대소 과수농장은 봄이면 과일꽃속에 묻히고 가을이면 싱그러운 사과향기에 젖어 말 그대로 아름다운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된다.현재 1천7백명의 인구에 4백여명 노동자를 가진 이 농장의 과수밭은 4백50㏊.국광,홍성,진홍,계광 등 20여가지 사과품종의 총산이 4백50만근이라고 했다. 광복전에 대소 땅은 거의가 이씨 성을 가진 지주 차지였다.천성이 부지런한 이씨 지주는 북한땅 길주에서 사과묘목을 사다가 아래 시루봉과 웃 시루봉줄기가 만나는 움푹지고 양지바른 비탈에 심었다.그리고 식구들과 소작인들을 총 동원해서 사과밭을 가꾸었다.사과원을 만들면서 이씨지주의 며느리는 일에 지쳐 죽기까지 했다.이씨지주는 며느리의 묘를 사과밭속에 썼는데 지금도 임자 없는 묘가 쓸쓸히 남아있다.그러나 광복이 나고 공산당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지주를 청산하자 자기가 심은 사과가 열매를 맺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이씨지주는 몰래 떠나버렸다. 1964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덕해 제1대 주장이 대소로 시찰을 왔을 때 촌에서는 이씨지주과원의 사과를 대접했다.홍조를 띤 처녀의 볼마냥 탐스러운 사과를 받아든 주장은 대대적으로 사과원을 꾸려볼 구상을 했다.그는 요녕성 개현에서 초빙받아온 과수전문가 관치성(만족)을 대소에 파견하여 농장을 세웠다.이씨지주의 대담한 시도가 없었더라면 오늘 날 두만강변에 사과원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몇해 전에 대소과수농장허경진(46)부농장장이 20여리 떨어진 백금향에 초빙되어 가 30㏊ 땅에 사과나무를 심었지만 매서운 강바람에 겨울을 나면 얼어 죽어 결국 실패하고 말았던 일이 있다. 대소 맞은 쪽 대안 마을은 북한 함북 회령군 상수리다.그들은 강 하나 사이두고 대소에 사과꽃이 만발한 것을 볼 때마다 승벽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어느 해엔가 그들은 대소의 사과묘목을 떠다가 옮겼다.한해 겨울을 났는데 무사했다.신심이 생긴 회령군에서는 과수지도원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하여 시찰을 했다.원래 회령군에는 1천여㏊의 살구나무와 다른 과일나무가 있을 뿐 사과는 없었던 것이다.1985년 가을 대소에서는 묘목을 대량 보내고 이듬해 4월 22일 대소과수 농장에서 관치성,허경진,김수돈(57)등 책임자와 기술자들이 회령으로 건너갔다.그들은 회령군의 6개 이를 순회하며 기술지도를 했고 자동차로 접수를 싣고 가서 접목 등 지도를 해주기도 했다.85년부터 88년까지 4년동안 대소과수농장에서는 묘목과 접수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1988년 회령군에서는 세 상자의 사과를 따가지고 대소과수농장으로 와서 감사드렸다.1993년 여름에는 대소에 친척이 있는 상수 사람이 친척앞으로 편지를 보내 과수농약을 보내달라고 했다.농장지도부에서는 토론하고 밤을 타서 농약상자들을 둘러메고 강을 건너 주었다.이치로 따지면 국경을 사사로이 넘나드는 것은 불법이다.하지만 후더운 인간애앞에서 그런 것들이 때로는 무시되었다.
  • 집달관 「비장부」 확보… 상납 추적/「인천 경매」 수사

    ◎검사 추가투입 구조적 비리 캐기로 【인천=김학준 기자】 인천 경매입찰보증금 횡령사건을 수사중인 인천지검은 26일 법원 경매계와 집달관사무소의 비장부를 확보,법원 직원과의 유착관계및 뇌물수수부분에 대한 수사에 착수키로 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27일부터 조사부 검사 3명 이외에 강력부 검사들을 추가투입해 경매브로커와 경매계·집달관사무소의 구조적인 비리고리도 밝혀내기로 했다. 검찰의 이같은 방침은 집달관합동사무소의 공용기금통장이 일종의 「사금고」로 운영돼온 사실이 드러난 데 따른 것이다. 검찰은 집달관들이 공금중 일부를 경비명목으로 빼내 법원직원들에게 접대비명목으로 활용해왔고 특히 일부는 구속된 김기헌(48·집달관사무원)씨등의 비위사실을 무마하는 데 사용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김씨 등 전현직 경매계장 6명 등 구속자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는 한편 경매담당인 민사신청과장 등 법원 고위직 직원을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 병원 증명서 수수료 통일/새달부터/상해진단서 10만원 이하로

    대한병원협회는 24일 병원에서 발급하는 각종 증명서수수료 자율관리기준을 확정,3월1일부터 전국 병원에서 시행하기로 했다. 이 기준은 각급 병원이 상해진단서 발급수수료를 10만원이상 받을 수 없도록 했으며,출생증명서와 입·퇴원증명서는 무료로 발급하도록 했다. 일반진단서 발급수수료도 1만원이상 받을 수 없도록 하고 병원에 따라 가장 차이가 심하던 진료비추정서도 10만원이하로 제한했다. 같은 증명서를 추가로 뗄 때는 한통에 1천원의 추가수수료만 받도록 했다. 기 자 입 력 가제목:응급의료수가기준제정 기자명:이기백 부서명:사회부 보건복지부는 24일 「응급의료수가기준」을 제정,3월1일부터 대학병원 등 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할 경우 4천4백원을,이송중 응급처치가 가능한 특수구급차를 이용하면 5만원을 추가로 부담토록 했다. 이 기준은 응급환자를 심한 탈수 등 26개 증상으로 한정하고 이들 환자가 대학병원 등 전국 80개 응급의료센터를 찾을 때는 4천4백원을,전국 1백60여개 종합병원과 응급의료지정병원을 찾을 때는 2천7백원을 응급의료관리료명목으로 더 내도록 했다. 또 산소호흡기 등 최소한의 응급장비를 갖춘 병원의 일반구급차를 이용할 때는 10㎞이내까지 2만원의 기본요금을,이송중 치료가 가능한 특수구급차를 이용할 때는 5만원의 기본요금을 이송처치료 명목으로 더 내야 한다. 10㎞를 초과할 때는 1㎞에 일반구급차는 8백원을,특수구급차는 1천원씩을 더 부담해야 한다. 특수구급차는 응급구조사와 응급의료장비·시설·의약품 등을 구비해 보건소의 신고필증을 받은 구급차로 한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119구급대와 보건소의 구급차는 앞으로도 무료로 운행하며,한국응급구조단이 운행하는 구급차는 종전대로 기본요금 5천원에 ㎞마다 2백원씩의 요금을 받는다. 이와 함께 응급의료처치료는 현행 의료보험수가를 그대로 적용,일반환자기준으로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응급의료관리료 부과대상은 ▲심한 탈수▲급성의식장애▲급성신경학적 이상▲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증상▲급성호흡곤란▲심장질환으로 인한 급성흉통▲심계항진 및 박동이상▲약물·알코올 또는 기타물질의 과다복용이나 중독▲쇼크▲급성대사장애(간부전·신부전·당뇨병 등)▲개복술을 요하는 급성복증(급성복막염·장폐색증·급성췌장염이 중한 경우) ▲18%이상의 광범위화상 ▲관통상▲개방성·다발성 골절 또는 대퇴부·척추의 골절▲사지를 절단할 우려가 있는 혈관손상▲전신마취를 하고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다발성 외상▲구토·의식장애의 증상이 있는 두부손상▲소아경련성장애▲계속되는 각혈▲지혈이 안되는 출혈▲급성위장관출혈▲화학물질에 의한 눈의 손상▲급성시력소실▲얼굴의 부종을 동반한 알레르기반응▲자신 또는 타인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정신장애 등 응급의료를 요하는 거의 모든 증상을 포함시켰다. 이같은 증상이 없는 환자로부터는 응급의료관리료를 받지 못한다. 이 기준은 이밖에 이송처치료를 과다하게 받을 때는 응급구조사는 자격정지,병원은 업무정지를 받게 하는 등 효율적인 응급의료를 담보하기 위해 처벌규정을 크게 강화했다.
  • 병원구급차 이용료 확정/새달부터/기본 2만원… 특수차 5만원

    보건복지부는 24일 「응급의료수가기준」을 제정,3월1일부터 대학병원 등 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할 경우 4천4백원을,이송중 응급처치가 가능한 특수구급차를 이용하면 5만원을 추가로 부담토록 했다. 이 기준은 응급환자를 심한 탈수 등 26개 증상으로 한정하고 이들 환자가 대학병원 등 전국 80개 응급의료센터를 찾을 때는 4천4백원을,전국 1백60여개 종합병원과 응급의료지정병원을 찾을 때는 2천7백원을 응급의료관리료명목으로 더 내도록 했다. 또 산소호흡기 등 최소한의 응급장비를 갖춘 병원의 일반구급차를 이용할 때는 10㎞이내까지 2만원의 기본요금을,이송중 치료가 가능한 특수구급차를 이용할 때는 5만원의 기본요금을 이송처치료 명목으로 더 내야 한다. 10㎞를 초과할 때는 1㎞에 일반구급차는 8백원을,특수구급차는 1천원씩을 더 부담해야 한다. 특수구급차는 응급구조사와 응급의료장비·시설·의약품 등을 구비해 보건소의 신고필증을 받은 구급차로 한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119구급대와 보건소의 구급차는 앞으로도 무료로 운행하며,한국응급구조단이 운행하는 구급차는 종전대로 기본요금 5천원에 ㎞마다 2백원씩의 요금을 받는다. 이와 함께 응급의료처치료는 현행 의료보험수가를 그대로 적용,일반환자기준으로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 이산가족 교류도 시작하자(사설)

    오는 27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종군위안부문제 아시아연대회의」참석을 위한 북한대표들의 서울방문은 환영할 일이다.핵문제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이후 북한대표가 어떤 명목으로든 서울을 방문하는 것은 2년만의 일이며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남북간의 교류·접촉이 활발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북한대표단의 이번 회의 참석을 계기로 비정치적인 남북간의 민간교류가 활성화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북한이 이번에 대표단을 서울로 보내기로 한 것은 정치선전적인 측면을 많이 고려했을 것으로 짐작된다.그런데도 우리정부가 이를 허용키로 한 것은 앞으로의 남북관계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적극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생각한다. 남과 북이 검토해볼 수 있는 비정치분야의 민간교류로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이산가족의 상봉이다.우리정부는 지난 3일 오는 4월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체육문화축전」에 남쪽 이산가족들의 참관을 허용해줄 것을 촉구하면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당국간 회담을 제의했으나북한당국은 거부했다.정치적인 문제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인도적 제의를 당국간의 대화기피를 목적으로 외면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산가족의 재회와 자유로운 왕래를 촉구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인도적인 입장이나 민족화해의 차원에서 다른 어떤 분야보다 우선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헤어진 가족이 남북을 오가며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을 때 신뢰는 쌓이게 되고 통일도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남쪽 이산가족들의 방북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체제의 동요를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다면 판문점에 면회소를 설치하고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창구라도 마련,이산가족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어야 한다.북한당국은 남북대화와 교류를 늦출수록 손해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 자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 북·미교류 본격화/미기업인 잇단 평양행… 인프라투자 논의

    ◎북 당·사회단체 간부 등 방미… 카터 등 접촉 【워싱턴=이경형 특파원】 미국업계의 대표들이 잇따라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의 노동당간부 등이 사회단체,학술회의 참석을 명목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등 남북한간의 대화가 교착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북한과 미국의 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기업대표단은 지난 14일 평양을 방문,4일간 체류하면서 북한의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에 대한 위성통신망설치와 공항,항만건설문제를 집중 논의했으며 이들중 일부는 계속 북한에 남아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들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홍콩계 미국회사인 홍콩그룹은 약 5억달러 규모의 나진­선봉지구와 연결되는 공항및 항만건설사업에 가계약을 맺었고 미국의 장거리전화회사인 MCI와 온라인 테크놀로지사는 자유무역지대에 위성통신망을 설치하는 사업에 관해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20일 워싱턴 포스트지가 보도했었다. 이같은 미국기업인의 방북러시와 상응하게 북한의 당간부,사회단체인사들의 미국방문도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위원장 전경남이 이끄는 북한대표단 4명은 20일 뉴욕에 도착,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카터센터를 방문하고 워싱턴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미 기업/공항·항만건설 가계약/미의 대북규제 완화 1주일

    ◎나진·선봉 위성통신·전화망 개설도 추진/본격 투자땐 한계… 현장답사 성격 큰듯 미·북한간의 경제,인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으나 이같은 교류가 남북한관계와 미북한관계의 개선은 병행되어야 한다는 클린턴 미행정부의 기본원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미재무부가 미북합의에 의거 지난 14일 대북규제완화조치를 공식 발효시킴에 따라 기업인 등의 방북이나 북한인사들의 미국방문이 증대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일 수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오는 4월 21일까지로 시한이 정해져 있는 경수로 공급계약 체결을 앞두고 한국형경수로 수용불가를 내세워 북핵합의의 전부를 무산시킬 수 있다고 위협을 가함으로써 남북대화의 재개는 물론 북미합의사항 이행을 교착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북한은 남북대화 재개와 관련,김일성조문봉쇄에 대한 사과 등 전제조건을 내걸므로써 대화재개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고 사사건건 남한과의 관계는 계속 배제하면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총력전을 경주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 제네바 협상과정에서,그리고 그 이후 제네바합의의 이행과정에서 고수하고 있는 전술전략은 미북한간의 직접협상,한국배제,한미간 이간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미국업계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미국기업의 대북한 투자에 앞선 현지답사의 성격이 큰 것으로 아직은 본격적인 진출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미국기업이 북한에 투자를 하는 등 진출하기 위해서는 지난번의 은행구좌개설과 동결자산 해제 등의 조치로만은 부족하며 추가로 투자허용 등의 새로운 완화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홍콩계 미국회사로 알려진 홍콩그룹(무역,건설,엔진니어링회사인 FCI그룹의 별칭인지는 불확실)이 5억달러 규모의 나진 선봉지구의 공항,항만건설사업의 가계약을 맺은 것은 아직도 본격투자를 위한 제반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미국의 장거리전화회사인 MCI가 나진 선봉지구의 위성통신망 설치사업과 미국에서 북한간의 직통전화개설을 위한 관련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은 평양과 뉴욕의 북한대표부를 연결하는 국제전화서비스를 MCI가 현재 하고있기 때문에 이를 연고로 하여 다른 업체보다 먼저 북한에 진출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메이커인 제너럴 모터스(GM)는 북한에 자동차공장을 건설, 러시아와 중국에 판매하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이번에 방북대표단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외국인 투자유치는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에 국한하고 다른 곳으로는 더이상 확대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어 대기업의 진출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기업의 잇단 방북도 북한시장의 불모성,투자환경의 열악성으로 인해 아직은 현지답사 수준에 머물고 있다.그러나 자본주의의 경쟁원칙,북한을 발판으로 한 중국,러시아 진출의 교두보 확보 등 장기적 안목에서 미국기업인의 방북은 당분간 러시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인사들의 이번 방미는 카터센터의 초청에 의한 것으로 학술행사 참석 등을 명목으로 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미북관계 증진,연락사무소 교환개설에 앞선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있다.이는 이달 초 미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을 명목으로 하여 워싱턴을 방문했던 장재철 조선천주교 연합회장 일행이 조찬기도회장의 별실에서 다른 참석자 대표들과 함께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하고 워싱턴의 연구소를 방문하여 세미나를 통해 북한의 입장을 선전하는 등의 활동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차제에 「미북관계 개선과 남북관계는 병행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구체적인 수준을 한미간에 협의해야할 것이다.
  • 개봉 미영화 「가정교사」/일 문화색채 짙어 “논란”

    ◎감독·출연진 상당수 일본인 구성/「왜색영화」 수입금지 취지 어긋나 국적문제로 논란을 빚었던 영화 「가정교사」(원제 Private Lessons)가 18일 개봉(국도극장)과 함께 또 다시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영화의 수입 및 상영심의를 내줬던 공연윤리위원회의 설명과는 달리 감독과 출연진의 상당부분이 일본인으로 구성돼 있는 등 일본영화의 색채가 매우 짙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윤리위원회는 당초 이 영화의 국적이 문제가 되자 소명자료를 내 미국 영화제작자 R.벤 에프레임이 설립한 「프라이비트 레슨스 파트너십 L.P」사가 제작했으며 감독도 미국인 알란 스미티가 맡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지난 93년 3월 일본에서 개봉될 당시의 영화포스터에는 제작은 공륜측의 설명대로 R.벤 에이프렘이 맡았지만 감독은 충무로 영화인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즈미 세이치(화천성치)감독이 맡았음이 명기돼 있다.또 촬영도 스기무라 히로아키(삼촌박장)촬영감독이 했으며 상당수의 스태프와 출연진들도 일본인으로 표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화의 상당부분이 일본어로 진행될 뿐 아니라 일본의 거리풍경과 생활모습을 담은 화면이 연이어 펼쳐지는 등 일본색이 짙게 드러난다고 말한다.때문에 이 영화는 외형적으로는 미국영화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영화와 마찬가지라는 것.게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나가키 고로와 가수 최연제가 함께 부른 주제가와 일본 팝그룹 린드버그의 노래 등 대중가요가 실린 음반이 영화 사운드트랙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에서 발매되고 있어 일본 대중가요까지 들여오는 셈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영화관계자들은 정부와 공륜이 「제작 주사무소가 위치한 곳의 국적을 따른다」는 형식논리에만 매달려 명백한 「왜색」영화의 수입 및 상영허가를 내준 것은 일본대중문화의 수입을 금지하는 본래 취지를 망각한 처사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목사가 가짜학위증 사기/미 유령대 분교설립… 8천만원 챙겨

    ◎교포 등 셋 구속 경찰청 외사3과는 17일 재미교포 김구(62·LA거주)씨와 황봉섭(49·충북 진천읍 장관리)씨 등 목사 3명을 사기 및 교육법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미국 동북선교회 소속 목사인 김씨는 황씨 등과 짜고 지난 76년과 82년 LA에 「콘티넨탈 대학」과 「웨스턴 성서 대학」이라는 무인가 유령대학을 차린 뒤 전북 전주와 충북 진천에 분교를 설립,91년부터 전북 S교회 목사 이모(62)씨 등 48명을 모집해 가짜 박사 및 석사학위증을 수여하고 교육비 등 명목으로 1인당 1백50만∼3백만원씩 모두 8천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가짜학위를 받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추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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