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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막의 방패”… 미국의 결의/장수근 국제부차장(오늘의 눈)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과 미국간의 힘겨루기가 점차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는 가운데 9일 미 국방부의 소식통은 사우디 방어를 위한 미 지상군의 파병규모가 25만명에까지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직 추가파병의 규모와 시기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같은 비상계획 공개는 페만의 전쟁억지를 위해 미국이 더큰 위험부담도 감수할 것임을 분명히한 시사라는 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이같은 규모의 지상군이 페만에 작전배치 되려면 최소한 60여일이란 시간이 필요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현지 상황대처에 즉각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란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같은 미국의 파병의지 표현만으로도 「아랍의 비스마르크」를 꿈꾸고 있는 사담 후세인의 야심을 꺾는 데 상당한 효험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만만찮다. 「사막의 방패」로 명명된 미국의 파병계획에 따라 현재 사우디에는 베트남 전쟁이후 최대 규모의 미군이 투입되고 있으며 그 위험성에도 불구,미 의회와 국민들은 부시대통령의 결정에 초당적이며 동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있다. USA 투데이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미국인의 80%가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는 사우디에 대한 이라크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미군의 파병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ㆍ민주 양당의원들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미국의 지금까지의 이니셔티브가 적절했다고 말하고 사담 후세인 성토에 나서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출정을 앞두고 가족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장병들의 이별장면 사진과 화면을 보도,파병에 대한 국민여론을 「애국」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번 이라크의 쿠웨이트 강점은 미소간의 냉전종식으로 전면전의 가능성이 배제된 현 국제질서 아래서도 지역분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이럴 경우 진화에 나설 「국제경찰」의 존재가 얼마나 절실한 명제인가를 보여준 한 예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군의 대규모 사우디 파병결정은 문명사회의 세계질서 파괴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단호히 응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표명이라고 풀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시에 세계는 미국의 이번 페만 군사력 개입이 군사대국 미국의 고압적 무력시위가 아니라 세계질서와 자유산업사회 보호를 위해 적절한 조치였던 것으로 기록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폴란드 자유노조 분열/반 바웬사파,신당 결성

    【바르샤바 AP 연합 특약】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의 지도노선에 반대하는 일단의 인사들이 28일 신당을 창당함으로써 자유노조가 분열됐다. 신당을 창당한 주요인사들은 지난 80년대 공산주의통치에 맞서 성공적인 투쟁을 주도했던 인물들로 이들은 이날 새당의 명칭을 「민주주의 운동을 위한 시민모임」으로 명명했다. 이날 창당대회에는 1천여명의 대의원이 운집했으며 이들은 『마조비치총리를 지지하기 위해 창당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 칠레 「피노체트 학정」청산 진통(세계의 사회면)

    ◎아일윈 신정부,군 반발속 「조사」나서/가매장된 정치범 유골 잇따라 발견/인권단체들,“전정권서 3만여명 「인간사냥」”주장/군부방해로 진실 밝혀질지는 의문 지난 12일로 출범 4개월째를 맞은 칠레의 아일윈대통령정부가 전임 피노체트정권 아래서 저질러진 정치범들에 대한 고문 학살 그리고 암매장등 인권유린에 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규명을 놓고 어려운 걸음걸이를 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칠레 곳곳에서는 피노체트 치하에서 사라졌던 데사파레시오스(실종자)들의 유해가 발견되고 있고 희생자 가족과 인권단체 카톨릭교회의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요구가 드높게 일고 있다. 아일윈정부도 「진상규명후 용서」를 전제,인권유린문제를 다룰 위원회를 출범시켜 놓고 있다. 이에 대해 피노체트를 중심으로 하는 칠레군부는 책임자 규명은 물론 진상조사에 대해서조차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피노체트는 지난해 국민투표로 대통령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이미 그 전에 헌법을 수정,98년까지 참모총장직을 계속 맡을 수 있게 손을 써 놓은터. 칠레의 인권단체들은 16년반동안의 피노체트통치기간중 3만명이 처형되고 2천3백명이 재판없이 살해됐으며 7백여명이 실종됐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같은 주장은 과거 피노체트정권하에선 전혀 규명될 수 없었다. 그러나 칠레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로부터 지탄을 받던 이같은 끔찍한 일들이 영원히 역사속에 묻혀 있을 수는 없었다. 올 3월 산티아고 부근의 군기지 돌담밑에서 낙하산줄에 묶인 3명의 유골이 발견된데 이어 고문과 학살에 대한 증언이 줄을 잇자 아일윈대통령은 인권유린사태를 조사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지난 4월에 구성했다. 이때부터 아일윈정부와 군부의 갈등은 깊어졌다. 아일윈대통령은 조사위원회의 활동기간을 6개월로 제한하는 한편 피노체트계열의 인물 2명을 위원으로 임명하고 조사뒤에는 관계자를 용서하겠노라며 군부를 다독거렸다. 하지만 군부는 조사가 『군과 피노체트의 권위를 잃게 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인권관련 서류를 파기하고 문민정부를 겁줄 셈으로 비밀경찰을 해산ㆍ흡수,군부의세를 강화했다. 여기에 지난달 6일 수도 산티아고 북방 1천5백㎞의 항구 피사구아에서의 유골21구발견,산티아고 북쪽 1백25㎞지점 라 리구아에서의 다수의 유해 발견으로 군부의 과거 만행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굳혀지자 군부의 반발은 더욱 격렬해졌다. 지난달 13일 피노체트와 60여명의 최고위 군장교들은 『처형은 좌익과의 내전중 필요한 일이었으며 군의 위신을 추락시키기 위해 과거의 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국민화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칠레를 과거로 돌아가게 만들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피사구아지방법원이 주민들의 증언을 받아들여 인근 사막과 바다밑바닥까지의 추가수색을 명령함으로써 이제 아일윈대통령정부와 피노체트간의 명운을 건 일전은 불가피해졌다. 한꺼번에 21구의 유해가 발견된 피사구아는 피노체트정권하에서 정치범을 수용하는 교도소가 있었던 곳. 6개월 이내에 조사활동을 마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하는 「진실과 화해위원회」가 진실의 공개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군부의 온갖 위협과훼방속에서 이 모든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조사하고 책임자를 가려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의없이 평화없다」고 주장하는 인권세력과 「새 출발」을 고집하는 군부사이에서 아일윈정부가 어떻게 과거를 정리하고 문민통치의 터전을 닦아 나갈지 세계인의 관심이 칠레에 쏠리고 있다.
  • 단교 15년… 베트남 호지명시에/「한국계2세 직업학교」 개교

    ◎현지 교포회사­시 교육당국 합작/재봉ㆍ건축ㆍ아버지나라 언어 배워 한국의 베트남 참전으로 혼혈아라는 부담을 안고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한국계 2세의 직업기술교육과 한국어 강좌를 위한 한월직업기술원(학교)이 6일 호지명시에 개설됐다. 전 주월 한국군 총사령관 채명신씨가 후원하는 국제사회복지협의회와 관련을 맺고 있는 국제사회복지개발주식회사(베트남 현지 대표 김병하)와 베트남의 한국계 무역회사인 비에트코유한회사(사장 이종오),호지명시 교육위원회,호지명시 산하 푸우녕군 인민위원회는 이날 호지명시에서 한국관계자와 푸우녕군 인민위원회위원장,마이콕빈교장,트란 킴롱씨 등 베트남인사 및 학생 등 3백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글로 한월직업기술원으로 명명된 합동 현판식 겸 학교 개소식을 갖고 10일부터 교육에 들어가기로 했다. 학교 정문에 순수한 한글로 ▲학교사랑,나라사랑 ▲배우는 사람답게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자 ▲궂은 일은 내가 먼저,좋은 일은 네가 먼저 ▲우리의 힘으로 한국과 월남 사이에 많은 사랑의 다리를 놓자는 교훈을 나무판에 써붙이고 개소된 이 학교는 한국계 2세뿐 아니라 베트남 극빈자들을 위한 직업기술전수학교로서 5백여명의 입학지원자중 1차로 한국계 2세 80명과 베트남 극빈 학생 1백20명 등 모두 2백명을 선발했다. 학급은 40명을 기준으로 6개월 코스의 여자 2학급(재봉),남자 2학급(건축,가구) 및 1년코스의 한국어,영어 1학급으로 편성됐으며 현지인 사무직원외에 한국인 등 10명을 강사로 채용했다. 75년 베트남 공산화이후 한­베트남 외교관계가 단절된후 15년만에 개소된 이 학교를 위해 베트남측은 학교건물을 제공했고 한국측은 우선 5개 학급을 위한 운영 및 교사봉급조로 월 2천달러씩 연간 2만4천달러를 지원하며 이밖에 실습기자재와 교과서 및 학용품을 제공키로 했다. 학교측은 직업기술원을 이수한 학생들의 취업을 알선할 예정인데 특히 한국어를 이수한 학생들에게는 한국 유학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앞으로 베트남에 진출할 한국투자기업의 근로자 또는 통역요원으로 추천할 계획이다.
  • 지일이 극일/송복 연세대교수(세평)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도대체 우리와 일본은 어떤 관계인가. 서로 주고 받는 호혜관계인가,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일방적 봉사관계인가. 역사를 돌아 보면 마치 우리는 일본을 위해서 존재하는 나라처럼 되어있다. 그들이 미개한 때는 우리의 문화를 그들에게 전파해서 깨우쳐주는 구실이나 하는 나라로,그것도 모자라면 대륙의 문물을 그들에게 전해주는 다리구실까지 해주는 나라로,또 그것도 모자라면 우리 연안을 무인지경으로 노략질하던 왜구들의 약탈장소나 돼주는 나라로­. 그러나 이 정도는 고려때까지이고,조선조에 들어서면 아예 그 구실과 역할의 양태로 달라지고 내용도 달라진다. ○미래 장담할 수 있는가 자기들끼리 분열해 싸움을 일삼다 통일이 되니 이젠 그 통일된 힘의 시험장소로,혹은 통일된 제 세력들의 내부압력을 바깥으로 분출시키는 외부발산장소로 우리를 초토화시킨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어떤 이들은 네덜란드 중간상인들과 무역하던 사카이지방 조총상인들의 안팔린 조총소화장소로 우리를 이용한 것이 임진왜란이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17세기이후 평화로웠던 얼마간의 시기도 있었지만 일본은 내내 위협의 적이 됐고,마침내 19세기 중엽을 넘어서면 후발 일본 자본주의를 보다 빨리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는 구실을 하는 장소로 바뀐다. 그들의 야욕을 충족키 위해 청일전쟁을 벌일 때는 그 전쟁의 싸움터로 그들 나라가 아닌 우리가 돼 주었고,잇따라 일어난 노일전쟁에서 우리는 그들 승전의 주배후지가 됐다. 드디어는 식민지까지 돼서,뿐만 아니라 대륙침탈의 병참기지까지 돼서,무소불위로 그들이 하고 싶은대로 해도 되는 가장 악랄한 수탈의 대상자가 돼 주었다. 45년 원자탄을 맞고 참담한 패배자로 무조건 손을 들었을 때는 이제야말로 그 잔인 무극의 나라가 최후의 비명을 지르고 물러가나 했더니,난데없이 6ㆍ25가 터져서 그들 부흥의 기틀을 만들어 주었다. 물러간 지 5년도 채 못돼,우리가 우리를 죽이는 상잔을 벌이면서까지 전쟁의 폐허에서 몸부림치는 그들을 구해주는 것이 됐다. 가장 잔인했던 적을,그것도 치가 떨리도록 증오했던 적을 1백만명이상의 사상자를내면서까지 구해준 것이 우리의 6ㆍ25였다고 한다면 6ㆍ25야말로 일본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를 죽인 전쟁이다. 일본에 대해선 우리야말로 살신성인의 나라다. 역사상 그 어느 나라가 자기를 죽이면서까지 원수를 구해준 나라가 있던가. 오늘날은 어떤가. 우리는 매년 40억달러이상의 적자를 내면서까지 일본의 물건을 사주는 나라가 돼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한 나라가 된 그 일본의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우리 기업가가 밤낮없이 뛰고 있고,우리 노동자가 살을 에이면서까지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격이 돼있다. ○우리 힘으로 청산해야 도대체 우리는 일본에 어떤 나라인가. 우리 역사는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일본을 살찌우기 위해서,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져 있는 나라인가. 우리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다할 수 있는가. 우리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고 우리의 역사를 다시 고쳐 쓸 수 있는가. 그러나 그 일본은 언제나 기껏해야 「통석의 염」에 불과하다. 그들의 사고를 속에는 호혜의 염이란 있을 수 없고,호혜의 염이 있을 수 없는한 「통석」아닌 「통한의 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 마음이 일어날 수 없는 그들을 보고 우리의 한을 달래는 말을 받아 낸다고 해서 그 내실이 바뀔 리 없고,그 내실이 바뀔 리 없는 한 그 일본을 위해 존재해온 것이나 다름없는 우리의 과거역사가 미래에도 그 구실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아니 더할나위 없이 요구되는 것은 그 과거의 역사를 우리가 우리 힘으로 청산하는 것이다. 통석의 염이든 통한의 염이든 뼛속에 깊이 간직하면서 과거는 과거로 보내는 것이다. 이제 그것을 다시 거론해서 이렇게 반성해라 저렇게 사죄하라 한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본을 볼 때마다,그리고 일본을 생각할 때마다 이제 더이상 이제 더이상 일본을 위해 존재하는 역사를 만들지 않겠다는 극일의 앙다짐이 있어야 한다. 일본은 명명백백 자진해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나라가 아니다. 일본은 명명백백 과거역사의 패턴을 패턴 그대로 지속시키려는 나라다. 지속시키려 하는 그만큼 그 일본이 우리를 위해서 우리 교포들의 지위를 바로 잡아 줄 리 없고,우리를 위해서 그 과거 역사와는 다른 패턴을 가지라고 기술을 순순히 이전해줄 리도 없을 뿐아니라,더더구나 우리 부에 한 푼이라도 도움이 되는 무역역조를 스스로 나서 시정해줄 리 없는 것이다. 오로지 우리가 해야 할 따름이다. 우리가 주체가 되고 우리가 주도를 해서 우리가 다시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일본을 알고 일본을 배워야 한다. 오래전 그 일본이 우리를 배워서 우리를 좌지우지 했듯이 거꾸로 우리가 일본을 배워야 그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 그 다른 무엇보다 일본인들의 「나라사랑 마음」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역사시대이후 대소 전쟁을 수도 없이 치르면서도 이상하게도 나라사랑 마음을 내면화 시키지 못했다. 뼈에도 안 박히고 살에도 안 박히는,입발림만의 나라사랑만 무성해 있다. 더구나 중상층의 경우 자기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 나라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나 「완벽히」 잊고 있다. 대일 무역역조를 시키는 사람들이 우리 국민 가운데 도대체 누구인가.수입개방이야 피할 수 없어 한다해도 그 물건을 안 사쓰는 양식과 양심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나라사랑 마음이 있다면 그 양식 그 양심이 어디로 갈 것인가. 자기 상품이 질이 낮다해도 남의 것을 안 사쓰는 정신,그래서 내수용 수입을 한푼이라도 줄이는 생활자세 그것이 일본인들의 나라사랑 마음이며 그것이 오늘의 대국 일본을 만든 장본이다. ○「나라사랑」 본받을만 일본은 미국처럼 통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 통이 큰 미국도 불리하니 우리에게 개방하라고 수없이 압력하지 않던가.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 일본은 대국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작은 기술로 오직 나라사랑하는 일념으로 오늘의 대국이 됐다. 자기를 돕지 않는 자는 하늘도 돌아보지 않는다. 자기가 자기를 일으키지 않는데 어느 하느님이 자기를 일으켜 줄 것인가.
  • 국산 통신위성/96년 4월 발사/아리랑호로 명명

    통신방송위성사업실무위원회(위원장 경상현한국전자통신연구소장)는 9일 오는 96년4월 발사계획인 국산통신방송위성의 명칭을 「아리랑」으로 명명하고 92년까지 위성설계기술과 지상장비개발을 완료키로 하는등 위성발사에 따른 구체적인 일정을 확정했다. 위원회는 93년부터 95년까지 본격적인 위성제작과 지상장비건설 및 기술훈련을 마친다음 오는 96년 4월 6백50㎏급의 국산통신위성을 발사하는 한편 2천년대의 급속한 위성수요증가와 주위성 고장에 대비,주위성을 발사한 직후 주위성과 같은 성능을 갖춘 예비위성 1기도 발사하기로 했다. 주위성과 예비위성은 각각 3개씩의 방송채널을 갖게 된다.
  • 소군,반고르바초프 무력시위/나토 소식통 “한때 내전위기”

    ◎“개혁에 불만” 지난 2월 4천명 중무장행진/충격 고르비,탈소ㆍ군축입장 강경으로 선회 소련에서 민주화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2월25일 소련군 정예요원들이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혁에 반발,「무력시위」를 벌였으며 이로 인해 고르바초프는 군축협상과 리투아니아의 분리운동에 대해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하게 됐다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한 소식통이 3일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당시 모스크바 부근에 배치돼 있던 약3천∼4천명의 정예 타만경비부대 병력이 모스크바에 소재한 한 군사학교로 진입했으며 여기서 이들은 학생들을 박격포와 기관총으로 무장시켰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어 고르바초프에 대한 무력시위와 소연방의 분열을 우려하는 군부의 경고를 표시하기 위해 학교주위에서 행진을 벌였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이날 군부의 시위는 약10만명의 소련주민들이 민주화를 지지하며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과 때를 같이해 발생한 것이다. 소식통은 고르바초프가 이후 나토 16개 회원국과 바르샤바조약기구(WTO) 7개회원국이 빈에서 개최하고 있던 유럽배치재래식무기 감축회담(CFE)에서 입장을 경화함으로써 군부의 이같은 시위에 대응했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또 이른바 「개방된 영공」이라고 명명된 나토와 WTO간의 공중정찰에 관한 오타와회담에서 협정이 체결되는 것을 막았으며 소연방의 해체에 반대하는 군부의 주장에 동의,결국 리투아니아의 연방탈퇴에 대해 강경입장을 취하게 됐다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고르바초프가 당시 군의 사기를 올려 주기 위해 더 많은 물품을 지원해주고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에게 원수란 칭호를 붙여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소식통은 또 고르바초프의 사진이 지난 3월16일자 소련군 기관지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때는 그가 군부와의 우호관계를 회복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의 ITN뉴스와 BBC방송도 나토의 소식통을 인용,소련이 당시 「내전 일보 직전」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서방의 저명 정치지도자들은 3일 모스크바에서 당시그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아직 접하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부시 미국대통령을 비롯,몇몇 인사들은 고르바초프에 대한 소련군부의 반대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 경찰의 KBS진압 「여의도작전」 이모저모

    ◎산발저항속 45분만에 “해산완료”/노조원 대부분 귀가한 뒤에 진입개시/안위원장은 지하통로 거쳐 미리 피신 ○…30일 하오 11시15분부터 진입을 시작한 경찰병력은 본관 2층 민주광장과 IBC빌딩등 두 방향으로 진출,먼저 민주광장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던 3백50여명의 노조원들을 둘러싸고 있다 하오 11시40분쯤부터 연행을 시작. 민주광장에 있던 대부분의 노조원들은 연행에 순순히 응하는 모습이었으나 방송국 스튜디오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농성을 벌이던 일부 노조원들은 경찰의 연행에 완강히 저항하며 『방송민주화』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그러나 이날 작전은 별다른 불상사없이 농성자들을 전원 연행함으로써 작전개시 45분만에 완료. ○…이날 본관2층 로비와 IBC건물 곳곳에서 농성중이던 사원3백여명을 연행한 경찰은 이들을 경찰버스에 태워 영등포경찰서 등 서울시내 각경찰서에 분산 수용,밤새 조사,농성가담의 정도를 분류. ○…이날 하오 KBS사원들이 투표를 통해 방송정상화안을 부결하자 경찰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KBS에 대한공권력재투입이 임박했음을 예고. 특히 공권력 투입의 최고책임자인 안응모내무부장관이 이날 하오 9시40분쯤 치안본부에 들러 김우현치안본부장등 경찰고위간부를 불러 상황을 보고받고 대책을 숙의하면서 공권력투입은 확정적. 안장관은 기자에게 『KBS사태의 악화로 국민들이 크게 실망하고 있다』며 『KBS사원들이 다중의 힘으로 정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고 격앙된 어조. 그는 또 『민중세력은 사회주의를 통해 세상을 한번 잡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지만 KBS사원들이 의도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특히 안장관은 기자들과 만나는 도중 총리실에서 걸려온 것으로 보이는 전화를 받고 『본부장등의 보고를 듣고 곧바로 전화를 다시 하겠다』고 말해 정부의 공권력투입결정이 상당히 어려운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 ○…공보처관계자들은 KBS비상대책위원회의 방송정상화 결정이 사원총회에서 부결되고 곧이어 공권력재투입으로 이어지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공보처 관계자들은 청와대특사로까지 오인된 김용갑 전장관의 사태수습방식이 결국 「악재」로 작용됐다고 이구동성으로 비난. 이날 저녁 밖에 있다가 비서관의 연락을 받고 밤 9시30분쯤 집무실에 돌아온 최병렬공보처장관은 즉각 강용식차관ㆍ이덕주매체국장 등을 불러 구수회의를 열고 사태추이를 지켜보며 혹시 KBS공권력 재투입이 다른 방송사의 동맹파업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했다는 후문. 최장관은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KBS사태가 결국 공권력 재투입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4개서에 분산 수용 이에앞서 강공보처차관은 하오 9시50분쯤 김우현치안본부장과 사태수습을 최종 협의했으며 거의 같은 시간 김학준 청와대사회보좌역은 공보처로 전화를 걸어 이매체국장으로부터 KBS사태를 보고 받는 등 공보처주변은 공권력재투입을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 최장관은 공권력재투입전 기자들과 만나 『여러분과 같은 심정이다』며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고 『국민의 기대를 이렇게 저버릴 수 있느냐』고 한탄. 최장관은 이어 짤막한 논평을 한 뒤 『이제는 우리로서도 어쩔수 없다』고 해 공권력투입을 기정사실화. 최장관은 그러나 『공권력을 정말 투입하느냐』는 물음에는 『그것은 경찰이 알아서 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으나 『그래도 방송정상화를 요구하는 사원들이 많은데 성급한 공권력투입은 좋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이 상황에서 「성급한」이라는 형용사는 맞지 않는 듯 하다』고 강조. ○…경찰관계자들은 이날 KBS에 대한 공권력투입작전을 「여의도진압작전」이라고 명명한 뒤 세부적인 작전계획을 모두 완료해 놓고 찬반투표 개표 당시 KBS안에 있던 노조원등 3천5백여명의 직원들이 빠져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모습. 치안본부고위간부들은 이날 하오부터 KBS에 대한 공권력투입여부가 커다란 관심사로 등장하자 『우리로서는 알지도 못하고 말할 수도 없지만 농성인원이 3백∼4백명으로 줄어야 공권력 투입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공권력 투입시간이 KBS농성인원에 달려 있음을 시사. ○…이종국서울시경국장은 이날 하오 9시30분쯤 점퍼차림으로 안병욱시경2부장을 대동하고 청사를 출발,하오 10시쯤 여의도 현장본부인 대광장파출소에 도착,10여분간 진압작전 도상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한 뒤 하오 10시35분쯤 KBS사옥 주변을 직접 돌아보며 작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 안부장은 이 자리에서 『KBS공권력 투입은 현대중공업사태와는 달리 단순히 사전구속영장을 집행하는 것으로 최루탄은 필요치 않다』면서 『KBS에로의 진입이나 연행과정은 순조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수노조위원장은 경찰이 투입되기 직전인 이날 하오 10시40분쯤 기자들과 만나 『공권력투입이 확실시돼 위원장직 사퇴와 비상대책위 개편을 유보하겠다』며 당초의 입장을 변경. 안위원장은 김용갑전장관과의 서사장퇴진 밀약설에 대해서는 『김 전장관의 말을 선의로 받아들였다』고 말해 밀약이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 그는 또 『김 전장관이 「대통령 특사」라는 말을 뒤집어 개인자격 운운하는 바람에 사원들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면서 『공권력 투입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김씨와 정부측에 있다』고 주장. 안위원장 등 조합원 10여명은 기자들과 만난 직후 KBS보도진들이 갖고 다니는 무전기에서 「경찰이 투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찰이 들어오기 10분전쯤 황급히 대피. 경찰은 11시15분쯤 「비상대책위」의 출입구를 막고 사무실로 들어왔으나 노조간부들을 연행하는 데 실패. 30여평 규모의 비상대책위 사무실은 오랫동안 농성을 벌여와 집기와 비품이 여기저기 널려있는데다 경찰까지 들어와 온통 어수선한 분위기. ○간부 사후대책 숙의 ○…안병욱시경제2부장과 정동수영등포경찰서장은 작전이 시작되자 사장실 등이 있는 본관 6층에 올라가 회사측 간부들과 만나 「비상대책위」위원들의 소재를 물은 뒤 각층의 병력배치 상황을 일일이 점검. 안부장은 특히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의 출입문에 배치돼 있던 병력들에게 예기치 못한 충돌을 우려,사무실 안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라고 지시. ○…경찰이 KBS에 진입한 직후 정영등포경찰서장은 본관 2층 중앙홀에서 농성중인 노조원들에게 핸드마이크로 『여러분은 지난 12일부터 제작거부 등 사실상의 파업을 하고 있으며 이같은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경찰이 투입됐다』면서 미리 구속영장이 발부된 안동수위원장 등 7명을 비롯,농성자 전원을 연행하겠으니 순순히 이에 응해 마찰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 노조원들은 2층홀에서 이임호씨등 노조간부 2∼3명이 단상에 나와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농성을 벌이다 경찰이 들이닥치자 어깨동무를 하고 「승리의 그날까지」「흩어지면 죽는다」 등의 노래를 합창. 한편 병력이 투입되자 본부장 등 KBS간부들은 최악의 사태가 온것에 침통해 하며 삼삼오오 모여 앞으로의 사태진전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박성범보도본부장은 경찰이 들어오자 농성장까지 내려와 한동안 연행장면을 지켜보기도. ○…서기원사장은 이날 하오 2시부터 회사부근 맨해턴호텔 816호실에서 간부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경찰이 투입될 때까지 이 호텔에 머물면서 회사내에서의 상황을 보고받고 수습책 등을 논의. 서사장은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직후인 이날 하오 11시20분쯤 사장실로 들어가 본부장들을 소집,긴급회의를 열고 공권력투입이후의 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 ○MBC,자막뉴스 보도 ○…경찰이 본관에 진입한 이날 하오 11시15분 이후에도 TV방송프로그램은 예정대로 진행. KBS­TV에서는 하오 11시20분부터 「가요무대」 재방송을,2TV에서는 하오 10시30분부터 방영중이던 미니시리즈 2부작 「몬테카를로」 1부 「카트리나 열풍」을 계속 방영. 그러나 1ㆍ2TV모두 경찰진입 사실을 자막뉴스로조차 처리하지 않았던데 비해 MBC­TV는 경찰진입 5분뒤 곧바로 경찰진입사실을 자막뉴스로 보도.
  • 훈련중 부하2명 구하고 순직/고 정재훈중위 영결식

    ◎대전국립묘지 안장 훈련중 강물에 빠진 소대원 2명을 구하고 순직한 고 정재훈중위(25·ROTC27기)의 안장식이 23일 하오 대전국립묘지에서 육본 인사참모부장및 관계장병,유가족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정중위의 유해는 이날 현충관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육군군악대의 진혼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장교묘역에 안장됐다. 고 정중위는 지난달 16일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교동리 일대에서 벌어진 연대 전투단훈련중 이웃 소대원 김명소상병(22)등 2명이 북천강을 건너다 골재채취로 생긴 웅덩이에 빠진 것을 보고 물에 뛰어들어 이들을 구하고 순직했다. 이날 영결식에서 고 정중위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이 추서됐고 소속부대였던 제5861부대측은 고인의 소속중대를 「재훈중대」로,종합체육관을 「재훈관」으로 명명했다. 한편 고 정중위의 출신학교인 단국대학은 「고 정재훈중위 추모사업추진회」(위원장 한명석 단국대학교총동창회장)를 구성,추모비와 동상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장학회를 설립하여 정중위의 희생정신을 기리기로 했다.
  • 몽고 야당연합 결성

    【북경 AFP 연합】 몽고의 6개 야당은 오는 7월말까지로 예정된 자유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6일 연합전선을 결성했다고 중국 관영통신 신화와 동독의 ADN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들은 이날 울란바토르발 기사에서 「몽고 민주연맹」으로 명명된 이 야당연합전선은 최대규모의 몽고민주연합(MDA)을 포함,몽고민주당과 민주사회운동ㆍ사회민주당ㆍ신진보연합ㆍ국가진보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고 전했다.
  • 한국등 태평양 5국 「림팩90」훈련 발진

    【샌디에이고 UPI 연합】 한국을 포함,태평양연안 5개국은 9일 동태평양 전역을 무대로 한 대규모 해상기동훈련을 시작했다. 한국ㆍ호주ㆍ일본ㆍ미국ㆍ캐나다 등 5개 참가국은 50대이상의 함정과 5만명이상의 병력을 「림팩90」이라 명명한 이번 훈련에 투입할 예정인데 매년 태평양상에서 전개된 이 훈련에 한국은 올해 처음으로 참가하게 됐다. 이번 훈련은 오는 5월20일까지 실시된다.
  • 네팔「30년왕정」붕괴위기/유혈 시위로 번진 민주화운동

    ◎정당활동 금지·경제난에 국민반기/“공안 정국 한계”…개혁요구 드세질 듯 지난 2월18일 불법화된 재야단체들의 주도로 다당제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작된 네팔의 민주화 시위는 지난31일 경찰이 시위군중에게 발포,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한 가운데 우파디아야 외무장관이 사의를 표명함으로써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1월 비합법재야단체인 자유네팔의회당(NCP)이 사회·경제문제의 해결과 전통적이 촌락회의형태인 판차야트의 해체등을 요구하면서 점화된 네팔의 민주화운동은 자유네팔의회당이 7개 공산주의 노선 정당들과「네팔민주회복운동」(MRD)이란 연합체를구성,공동투쟁키로 처음합의함에 따라 가속화됐다. 비렌드라 현국왕의 조부인 트리부반왕의 왕권회복을 기념하여「민주주의의 날」로 명명된 국경일인 지난 2월18일 군중들이 행사행렬에 돌을 던짐으로써 촉발된 이번 시위를 통해 지금까지 34명이 사망하고 3백여명이 부상했으며 약 5천여명이 체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60년이후 모든 정당활동이 금지된채 판차야트 제도에 기초,국왕이 절대적인 군주권을 행사해오던 네팔의 해묵은 정치적 갈등이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폭발한 것이다. 지난 51년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한 네팔은 59넌 헌법이 제정되고 네팔의회당 주도의 내각이 구성됐으나 왕권약화와 급진적인 정책에 불만을 품은 마헨드라 당시 국왕(비렌드라 현국왕의 부)이 60년 현왕쿠데타로 왕권을 강화하고 의회를 해산,무정당왕정체제를 구축했다. 이에 대한 거센 반발은 7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발전했고 80년에는 판차야트 존속여부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까지로 이어졌으나 국민투표결과 54%가 존속 찬성쪽에 표를 던짐으로써 당시의 민주화 운동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85년 또 한차례의 민주화 운동이 있었으나 현비렌드라국왕은 카트만두시의 반정부 폭탄테러 사건을 빌미로 공안정국을 강화,역시 무위로 끝났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는 그 이전과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즉 세계 유일의 힌두교 군주국이며 문맹률이 높고 정치적 관심이 낮았던 이왕국의 국민들이 인접국 인도와의 무역마찰로 빚어진 경제위기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데다 동구등 전세계를 휩쓴 민주화 바람에 자극받아 정치적 자각을 하기 시작했으며 더이상 국왕의 통치를 신정으로 여기지 않는등 왕권에 대한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의 경제적 압력은 네팔의 수출입 업무를 거의 마비시켜 식량 및 연료부족 현상까지 초래하고 있다. 인도는 네팔이 지난 88년 인도와 불편한 관계인 중국으로부터 대공화기를 수입하는등 친중국 자세를 보이자 인도­네팔 국경경로를 봉쇄한데 이어 지난해 3우러 시효가 끝난 「무역 및 통행에 관한 협정」의 갱신을 거부하는 등 대네팔 제재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네팔의 후견인을 자처해온 인도는 현재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있는 「네팔민주회복운동」을 공공히 지지하고 나서 인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네팔정부의 운신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현지 관측통들은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네팔이 국민들의 점고하는 민주화 개혁 요구를 수렴하지 않고 힘으로 찍어 누르려 할 경우 피플스 파워에 의한 왕정 붕괴의 위험을 안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EC 진출 전진기지/종합무역센터 건립/무공,화란에

    우리나라의 EC(유럽공동체)진출 전초기지가 될 종합무역센터가 네덜란드에 세워진다. 대한무역진흥공사는 19일 오는 92년 EC통합에 대비,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신개발지역 2만4천2백평의 대지에 총1억5백만달러를 들여 20층규모의 종합무역센터(사진)를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러 아시아비즈니스센터로 명명될 이 무역센터는 오피스텔과 특급호텔 각3백실,전시장 3백실 및 소핑아케이트 등을 갖추게 되며 오는 10월에 착공,93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 「제4땅굴」곳곳에 부비트랩/10개 발견/수색중 지뢰터져 군견 폭사

    강원도 양구 동북쪽 26㎞지역 군사분계선 남쪽1㎞지점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제4땅굴에는 북한측이 매설한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폭발물이 묻혀있어 아군의 탐색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에따라 제4땅굴의 규모와 형태를 완전히 파악하는데는 최소한 10여일이 걸릴 전망이다. 국방부는 5일 『4일 낮12시5분쯤 아군 특수수색조가 우리측의 역갱도를 통해 북한측이 남침용으로 파놓은 제4땅굴에 들어가 북쪽으로 7백m쯤 전진한 지점에서 앞서가던 군견 한마리가 북한측이 매설해 놓은 목함지뢰를 밟아 폭발,즉사했다』고 발표하고 『제4땅굴속에서 이미 10여개의 위장지뢰(부비트랩)를 찾아내 제거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 폭발사고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땅굴안에 돌풍현상과 함께 흙먼지사태가 일어나면서 산소가 극히 희박해져 실험용으로 들여보낸 십자매가 질식사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앞으로 군사분계선까지 남은 3백m가량의 구간을 더 탐색할 예정이나 이 잔여구간은 각종 폭발물 등이 매설된 복합장애물지대로 추정되고 있다』면서 『이 구간의 탐색작업은 더욱 어려울 것이므로 약 12일정도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75년3월 제2땅굴이 발견됐을 때도 수색작업에 나섰던 아군병사 8명이 지뢰를 밟아 폭사한 일이 있었다』고 상기시켜 탐색작업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탐색작업에 나선 현지 군사령부는 4일 제4땅굴에서 폭사한 군견을 「충견」이라 명명하고 역갱도 입구에 무덤과 묘비를 세우기로 했다. 한편 아군측의 역갱도가 제4땅굴과 관통된 뒤 북한측은 1백55마일 휴전선에서 확성기를 통해 『땅굴은 없으니 찾지말라』 『고리타분한 땅굴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등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일선부대들이 전했다.
  • 소「민주사회주의 새 깃발」 올리다/고르바초프「도박」의 의미와 전망

    ◎정치개혁과 경제발전 연계 포석/재야흡수,온건진보정당 결성 가능성도/서유럽서 극동까지 대폭 군비축소 시도 1백40년 전에 카를 마르크스가 근로대중의 자기임금 되찾기 운동으로 제시한 공산주의 이념은 그로부터 70년후 소련땅에 현실로 적용됐다. 그런데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분배받는 공산주의 이념이 소련땅에 적용된지 정확히 73년이 지난 1990년,올해의 벽두에 그만 공산주의의 깃발을 내리게 됐다. 소련은 소수 민족자치령을 국가체제로 연합하면서 유럽국가중 후발대 국가로 형성된 제정러시아를 붕괴시키면서 시작됐다. 국민의 9할 이상이 저소득계층으로 구성된 농경사회였던 제정 러시아를 1917년 소수파인 볼셰비키가 과격 공산혁명으로 무너뜨렸다. 그후 토지 자본국가공영제,중앙계획경제와 통제배급제를 실시하고 서방세계와는 중공업위주의 군수산업으로 군비경쟁을 하면서 냉전구도를 이룩해 왔다. 레닌이 심장ㆍ뇌졸질환으로 조기에 사망하자 오히려 극단적 소수파로서 민주사회주의를 건국하려던 도덕성에서 정반대의 궤를그린 사회주의 파시즘을 만들었다. 마르크스가 역사발전의 맥락에서 가설적으로 제시한 근로자의 기대임금과 실질임금의 차액을 소수 자본가가 착취함으로써 빈부격차가 극대화된 자본주의가 성숙된 사회에 공산혁명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 논리는 소련에서는 해당될수 없는 그 당시 상황이었다. 즉,극소수 상업가ㆍ지주 외에는 성숙된 자본주의사회의 지표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중산계층이나 활발한 상업활동이 소련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정체된 후진사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신축적인 경제활성화와 생필품위주의 산업발전 대신에 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 육성에 정책선택의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스탈린의 명령없이는 전 사회가 움직이지 않았으며 하부구조 구성원의 창의성은 본질적으로 봉쇄됐다. 이와같은 자기모순의 공포사회가 스탈린 이후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다. 말하자면 성숙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었던 후진국 러시아의 풍토속에서 다원적 공산주의 이상은 스탈린 이후의전체주의 지배자들에 의해 침묵과 복종만을 강조하는 관료적 동원체제를 구사해온 것이 핸재의 소련사회이다. 현재의 소련사회는 순발력없는 저능 거인이며 실질적 파산선고를 내린 회사와 같다. 중지한 부실기업이며 저능거인은 기초운동과 기초이론 학습부터 시작하여 거듭 태어나야 하고,부실파산회사는 처음부터 새로운 경영진에 의해 구조적으로 재조직ㆍ관리돼야 한다. 바로 여기서 개혁,재조직(Perestroika)과 만인에게의 공개성(Glasnost)을 강조하면서 정규교육을 받은 스탈린 후기세대의 대표주자로 새로운 사고를 가진 고르바초프가 통치권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되는 소련사회의 변혁은 미시적으로 볼때 원초적으로 빈곤했던 소련이 군사대국 유지로 인해 더욱 피폐된 생필품 절대빈곤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시장경제원리 도입,사유재산의 인정으로 민중봉기 일보직전의 긴박한 경제빈곤의 고리를 풀자는데 있다. 그런데 그같은 경제빈곤 해결은 주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국민전체가 새로운 생산기풍을 진작하는 자발적 노력의지가보여야 하는데 국민은 두려움과 의심의 눈초리로,그리고 지성인을 비롯한 여론주도계층에서는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황에서 그같은 노력은 아무리 신사고를 가진 개혁의지에 불타는 개혁주의자가 있다고 해도 개혁은 무위로 끝날수 있다. 인구증가와 같이 서서히 로가리즘적으로 누적되어온 소련의 사회경제침체는 아무리 자유와 개방ㆍ개혁이 뒷받침돼도 하루 이틀에 성취될 일이 아니다. 여기에 고르바초프는 정치 개혁을 통해 국민의 자발적 총의를 민생문제 해결 위주의 경제발전에 연계하려는 전략포석으로 이미 동구에서 시행돼 오고 있으며 고르바초프가 원거리에서 보호해준 바 있는 다당제 도입ㆍ자유경선ㆍ시장경제 원리도입,그리고 국가원수의 직선제 등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로서는 그의 정치적 주사위인 대통령 직선제에 출마하여 국민의 직접 신임을 얻음으로써 지속적 정치경제사회 개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90년 초인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85년에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가 개혁의 신호탄을 올린 시기라면 90년대는 개혁의 실적을 경제사회적으로 보이는 행동단계라고 보겠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이 응하든 않든 서유럽에서 이제는 극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군비축소를 국내정치맥락에서 자의적으로 실시할 것이다. 또한 조만간 28차 당대회를 치르고 난후 그는 공산당을 해체하거나 구조적으로 당의 체질을 개선하여 이에 걸맞은 당명 또한 새로이 변경하면서 어쩌면 수면위에 부상하는 재야조직을 흡수하여 의외의 인물로 충원하는 새로운 온건진보정당을 조직할지도 모른다. 볼셰비키 소수 급진공산당이 해체된다고 해서 공산당 통치의 러시아 역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 사회가 소수민족의 자치도 인정하면서 제국주의적 영토팽창에 눈돌릴 수 없는 내치의 민주화ㆍ경제활성화에 당분간,적어도 2000년 이후까지 정책집행에 우선권을 유지하는 역사의 긍정적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노력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측근인 정치국원이나 참모들은 과거 공산당의 보수적 당관료가 아닌데 그들의 전직은 해외근무 특파원,대외경제 전문가,기타 국내 각분야에서 개혁에 불타던 깨끗한 도덕정치를 표방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당면문제를 다룰때 소련 역사의 방향을 다원화된 민주사회주의 국가로 그 키를 돌리는 역사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믿고있다. 혹한기를 피할수 있으며 대서양과 발트해를 접하고 있는 정치ㆍ상업ㆍ관광도시인 레닌그라드의 옛 이름은 성 페테르스부르크시였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공산혁명의 진원지가 된 이후로 레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레닌그라드(레닌시)라고 명명하였는데 이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치가 90년에 정착돼 2000년이 되면 레닌그라드도 고르바초프의 이름을 본따 고르비그라드(고르비시)로 부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또 이렇게 예상하는 서방인에게 소련인은 처음으로 빙그레 웃음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 한글학회등서 동ㆍ다리ㆍ역등 53곳 “작명”

    ◎분당=돌마 사송동=앞들골 백현동=잣고개/분당 「우리말 거리」로/유래ㆍ지형등 살려 옛 정취 물씬 나게/전철역 5곳은 「재안」ㆍ「궁안」등으로 새로 건설되는 분당 신도시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동이름과 도로ㆍ교량 등의 이름을 순우리말로 붙인 「한글도시」로 탄생된다. 한글학회와 땅이름학회는 건설부의 의뢰를 받아 3일 분당 신도시지역의 22개 동 및 10개 주요도로,16개 주요교량,5개 전철역 이름을 예스러운 멋과 유래 등을 살린 우리말로 새로 지었다. 분당 신도시 새이름짓기 작업에 참여한 사람은 한글학회의 유중달씨(52)와 땅이름학회의 정재도회장(65) 및 이영택부회장(69) 등 3명. 이들은 우선 신도시의 이름을 분당 대신 「돌마」로 바꾸어야 한다고 추천했다. 분당을 「돌마」로 불러야하는 이유는 이 지역이 성남시가 생기기 전까지는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이었으며 지금의 중원구가 되기전에는 성남시 돌마출장소가 관할하던 지역으로 돌마는 예로부터 이곳을 일컫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게다가 돌마는 한자로 돌마로 쓰고있기는 하나 그뜻은 「돌진하는 말」이 아닌 「돌이 많은 마을」의 순우리말식 표현이라는 것이다. 건설부가 당초 신도시에 새이름을 지으려 한 것은 과거 과천시를 만들면서 지명이 1단지,2단지… 하는 식으로 획일화돼 운치가 없어졌고 행정면에서도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는데다 분당이라는 이름이 중국을 일컫는 당자가 들어있어 우리식으로 바꿔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한글학회와 땅이름학회는 지명개정시안을 2개로 정해 제출했다. 하나는 순한글식이고 또 하나는 현재의 지명을 살리고 한자로도 쓸 수 있도록 만든 안이다. 예를 들면 지금의 사송동과 이재동의 일부가 포함될 새 동네는 「앞들골」 또는 「대평동」으로 명명하고 있다. 개정안은 또 지금의 「동」을 그냥 쓸 수도 있고 동대신 「골」을 쓸 수도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현재 지명의 유래와 동네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참작해 완성했다. 서현ㆍ수내동을 묶어 「볕고개」로 정했다. 두 마을을 잇는 고개가 바로 볕고개(양현)이기 때문이다. 수내동은 「숲안」과 「글재」 「역말」이 된다. 수내라는 이름자체가 「숲」과 「안」이라는 음과 뜻을 각각 빌려만든 이름이고 각각 마을 이웃에 「글재」(글고개ㆍ서현)와 「낙생역」(역)이 있었다는 뜻이다. 「잣고개」는 백현동의 뜻을 풀어 쓴 것이며 「밤나무」와 「오리」는 각각 동네뒷산에 밤나무와 오동나무가 많아 붙여졌던 옛 이름이다. 분당신도시에 들어설 5개의 전철역가운데 2곳은 「재안」 「궁안」 등의 순우리말로,우리말로 바꿀수 없는 3개역은 「와소」 「은행」 「구미」 등으로 하되 한글로만 표기토록 했다. 건설부 신도시개발기획단 측은 분당신도시에 대한 세부개발계획이 변동되지 않는다면 이 개정안을 곧 경기도 성남시 지명위원회에 회부,신도시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전 확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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