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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부터 「화랑훈련」/적 서울침투 저지연습/11일까지

    대간첩대책본부는 7일 하오1시부터 11일 낮12시까지 서울시 전역에서 올 전반기 수도권 방어훈련을 민·관·군 합동으로 실시한다고 6일 발표했다. 「화랑훈련」으로 명명된 이번 훈련은 92년도 대간첩대책본부 훈련계획의 한 부분으로 평상시 수도권으로 침투하는 적의 비정규전부대를 조기에 발견,적을 섬멸하는 훈련과 전쟁시 수도권 방어를 위한 훈련을 통합해 실시하는 것이다. 화랑훈련에는 수도방위사령부 전부대와 서울시·경찰·민방위대·국가주요시설·예비군 일부 등이 참가하는데 공포탄이 사용되고 특전부대 복장의 대항군이 운용되는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이를 사전에 통보했다.
  • 21세기를 향한 대역사(사설)

    경부고속전철이 어제 착공되었다.이 공사는 21세기를 향한 대역사이자 국민들의 공간과 시간개념을 바꾸어 놓을 교통혁명의 매개체이다.동시에 1세기에 가까운 한국철도사에 신기원이 될 이 전철공사가 예정대로 오는 98년말 완공되어 우리경제에 제2도약을 실어다 줄 것을 기대한다. 그동안 경부고속전철공사를 둘러 싸고 찬·반 양론이 있었는데도 이 공사가 예정대로 착공된 것을 환영한다.경부고속전철 건설은 지난 70년대초 세계은행(IBRD)조사단이 경부축의 장기수송대책으로 새로운 철도건설을 건의하면서부터 논의되기 시작되었다. 그 이후 정부에 의해 84년과 89년 두차례에 걸쳐 타당성조사 결과 경제성이 인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일부에서는 고속전철대신 고속도로건설을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6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착공될 때는 철도건설이 더 경제적이라는 반론이 있었다.이번에는 철도대신 고속도로의 건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60년대 당시 고속도로건설을 반대했던 인사들도 도로가 완공된 후 고속도로를 민주의 대동맥이라 명명하는데 합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속전철역시 곧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고속전철이 완공 될 경우 그 효과는 지대하다.먼저 서울∼부산간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바꾸어 놓는다. 또 균형된 국토개발과 심각한 교통체증해소,에너지절약등 제2 경제도약을 위한 기반구축과 함께 21세기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전기를 제공 할 것이다.뿐만아니라 건설과정에서 축적될 기술이 가져올 파급효과 역시 크게 기대된다.우리는 고속도로건설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을 이용하여 중동등의 해외고속도로건설에 진출할 수 있었다. 고속전철의 건설과정에서 선진국으로부터 전수받을 기술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한다.우리가 선진국과 합작하여 제3국의 고속전철 건설에 참여가 가능하리라 믿는다.일부에서는 고속전철의 착공시기를 늦추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그러나 기술축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선진기술을 전수받는게 우리에게 유리하다. 기술전수가 늦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새로운 기술에로의 도약이 늦어지게 마련이다.특히 고속전철건설기술은 첨단기술에 속한다.때문에 기술문제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물론 고속전철건설의 경우 자금조달문제를 비롯한 몇가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5조8천억원의 사업비 가운데 정부의 재정지원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이 사업비도 공사기간중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그러므로 정부는 자금조달문제를 좀더 구체화시키는 한편 기술이전분야에서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측에 공사를 발주시키기 바란다.고속도로가 70년대의 고속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과 같이 고속전철이 2천년대 제2경제도약의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 홍콩거부 이가성 한국증시 넘본다(해외화제)

    ◎세계적 부동산업체 소유… 총자산 40억불/「투자귀신」별명… “이윤내는게 최대의 낙” 최근 동방유랑과 합작으로 한국의 증권업계로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홍콩 제일의 거부이자 중국계 제일의 해외투자가인 리 자청(이가성·63)씨.그의 총자산은 약 4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투자의 귀재답게 그는 항상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된 자산을 찾아 투자,단시간내 엄청난 부를 축적해왔다. 지난 88년 그는 캐나다 밴쿠버의 해안부지 2백4에이커를 에이커당 63만7천달러에 매입,최근 이중 14에이크를 에이커당 2백38만달러에 넘겼다. 또 얼마전에는 1억5천8백만달러에 채권으로 잡힌 미국 맨해턴의 빌딩을 5천8백만달러에 확보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수많은 현찰을 갖고있음에도 그는 항상 남의 돈을 끌어들여 자산을 증식시키는 특이한 상술을 지니고 있다. 그가 대주주로 있는 허치슨통신사는 미국의 AT&T사와 모터롤러사와 합작으로 아시아와 유럽에까지 전파를 공급하고 있으며 스타TV는 미국의 MTV와 영국의 BBC방송으로부터 오락쇼,스포츠쇼,뉴스등을 사서 인공위성으로 아시아및 중동지역에 보내고 있다. 그의 투자파트너에는 미국의 시사경제주간지인 포천지발행인의 부친인 타임 워너,중국 광주에 비행기정비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록히드사,중국 남부에 샴푸와 로션을 생산하고 있는 프록터&갬벌사도 포함돼 있다. 리씨는 도박가 다운 본능적인 감각과 보험계리사와 같은 계산본능을 가진 보기드문 거부임에도 실제 생활은 검소하기 짝이 없다.남들처럼 예술품을 수집하지도 않고 전용비행기도 없으며 홍콩의 언덕배기 집에서 30년동안 살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이윤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낙』이라고 생활철학을 자랑하는 그는 늘 검은 양복에 수수한 넥타이,흰 와이셔츠 차림새이며 50달러도 채 안되는 손목시계를 차고 임시가건물같은 사무실에서 돈 버는 일에만 골몰한다. 학교선생이었던 그의 부친은 그가 열두살때 홍콩으로 유학을 보냈으나 2년후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어머니와 어린 두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요일도 없이 플라스틱 벨트와 시계줄을 파는 일로 하루 16시간씩 일해야만 했다.20살에 벌써 조그만 회사의 총지배인이 된 그는 2년후 1950년에 저축했던 7천달러로 독립,공장을 임대해 플라스틱 빗과 비누갑을 생산했다.그리고 그의 고향을 흐르는 거대한 강의 이름을 따 창장으로 명명했다.
  • 개발능력 어느 정도인가(북한핵:4)

    ◎핵탄 언제든지 제조 가능한 수준/플루토늄 상당량 추출·구소서도 수입/이미 2∼3개 제조,은닉했을 가능성도 김일성 북한주석은 지난 4월9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3차회의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을 비준하면서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어 『우리가 1·2개의 핵무기를 갖는다 해서 수천·수만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강대국들을 상대로 어떤 위협을 가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북한에 이미 핵무기가 존재하고 있거나 최소한 개발중에 있지 않는가라는 의심을 갖게했다. 5월초 최정순 북한원자력공업부 외사국장은 일본 NHK와의 회견에서 『지난 86년 완공된 녕변의 5메가와트(MW)급 원자로에서 「매우 제한적인 양」이지만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밝혀 북한이 핵재처리 공정을 갖추고 있음을 외부세계에 최초로 시인했다. 북한의 핵개발능력에 관한 평가는 다소 혼돈의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달초 북한측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셀릭 해리슨등 3명의 미카네기재단 학자들은 『북한의 핵개발수준이 핵무기를 제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고 지난달 11일부터 16일까지 방북했던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도 16일 북경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다. 그러나 CIA등 서방세계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이미 핵무기제조에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자체적으로 추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매우 제한적인 양」이라는 최정순 북한원자력공업부 외사국장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이동복대변인도 최근 『북한이 2차대전때 히로시마(광도)에 투하됐던 원자폭탄을 2개가량 제조할 수 있는 13∼15㎏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IAEA의 한 관계자는 12일 『북한이 재처리공장을 건설해온 것과 관련,상당량의 플루토늄 추출 가능성이 제기돼왔다』고 지적하면서 『최대한의 가정은 매년 소형 원자폭탄 2개를 제조할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보다 정확한 평가는 15일 열리는 IAEA 정기이사회에 제출될 임시사찰결과보고서에서 내려질 전망이지만 그동안의 의심이 사실로 확인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미국은 최정순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2차대전때 「맨해턴 프로젝트」라고 명명된 연구를 진행하던 실험실에서 곧바로 원자폭탄제조가 가능했던 점을 돌이켜 볼때 북한이 핵무기제조원료인 플루토늄을 갖고 있는 이상 북한의 핵개발능력은 언제든지 핵무기제조로 이어질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 분명하다는 견해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북한은 남북간의 군사력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재래식 무기보다는 비교적 값싼 비용을 들여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핵무기개발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함께 대규모의 살상능력을 지닌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만이 국제사회에서 「관심」과 「존경」을 획득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서방의 한 전문가는 북한이 핵무기보유에 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NCND정책은 한국에서는 지난해 11월8일 노태우대통령의 「남한지역내 핵부재선언」으로 이미 폐기된 정책으로 이 전문가는 북한이 NCND정책을 추진할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한다. 다시 말해 핵무기가 이미 개발돼 북한 어딘가에 은닉돼 있거나 최소한 핵무기개발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북한이 지난 5월4일 IAEA에 제출한 사찰대상목록에 그들이 플루토늄을 추출한 장소라고 시인한 녕변의 방사화학실험실을 선뜻 포함시킬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플루토늄을 추출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세계에 흘려 자신들을 섣불리 자극할 수 없도록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IAEA의 사찰에서 자신들이 공개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재처리시설이나 핵무기제조에 필요한 기술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킨다는 입장이다.사찰결과 재처리시설등이 드러나더라도 폐기처분을 요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IAEA의 한계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속셈이다. 그 능력은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모스크바 근처 두브나원자력연구소에서 수학한 고급두뇌들이 북한원자력산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북한에 풍부한 천연우라늄이 부존돼 있다는 점,소련이 해체되는 혼란기를 틈타 50㎏가량의 플루토늄을 반입한 점,그리고 원자력및 관련산업에 대단한 열의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개발능력과 의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림팩 92」 해상훈련/19일부터 46일간/미 국무부 발표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미국방부는 9일 한국을 비롯한 호주·캐나다·일본·미국등 태평양5개국가가 참가하는 태평양상의 대규모 합동해상기동훈련이 오는 19일부터 8월2일까지 46일간에 걸쳐 실시된다고 발표했다. 피터 윌리엄스 국방부대변인은 이날 「림팩 92」로 명명된 이 해상훈련에는 각국에서 45척의 군함,2백대의 항공기,2만명의 병력이 파견되며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에서부터 하와이의 진주만에 걸치는 태평양전역이 훈련지역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훈련은 해상작전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 참가부대들의 전술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 「지구온난화」방지 구체협약 마련/내일개막 리우회담 뭘 다루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기준 논의/유독성폐기물·오염방지기술 이전 거론 유엔환경개발회의라는 공식명칭보다 지구촌 환경정상회담으로 더 잘 알려진 회담이 3일 상오(현지시각)브라질의 리우데 자네이루시에 있는 리우센트로 컨벤션센터에서 개막,오는 14일까지 12일동안의 마라톤 회의에 들어간다. 이번 회담은 전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최고지도자들이 참석,지구를 살리기위한 방안을 논의할 계획으로 있어 규모면에서 인류 역사상 최대이다. 의제가 갖는 중요한 의미 때문에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번 회담이 냉전의 종식을 기념하는 행사일 뿐만 아니라 지구의 자원 파괴에 대항,세계 각국이 연합전선을 형성해 「환경전쟁」을 개시하는 무대라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이번 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는 ▲대기 ▲해양 ▲삼림 ▲멸종 위기생물 ▲수자원등의 보호 ▲유독·유해 폐기물 처리이지만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빈곤 ▲인구성장 ▲세계경제구조의 재편등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큰 장애요인은 환경 보호를 위해서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드는 것으로 환경보호노력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연간 1천2백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어떻든 브라질 정부는 이번 회담을 그들의 카니벌처럼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다.다른 것은 몰라도 리우시 중심가에서 40㎞ 떨어진 리우센트로 컨벤션 센터만은 현재 단장을 모두 완료,참석자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정부 차원으로 열리는 이번 회의와는 별도로 다수의 민간단체들이 참여하는 별도의 대규모 집회인 글로벌 포럼도 리우시 과나바라만 해변의 플라멩코 공원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주목을 모은다. 이 집회에는 그린피스와 세계야생동물보호연맹,YMCA,바하이를 비롯,세계 1백64개국에서 5천여 환경관련 단체와 1만2천명의 회원들이 참석,정부차원의 환경 노력에 대한 비판과 그들이 주장하는 대안들을 외칠 것으로 보인다. 리우 환경정상회담에서는 리우 선언과 이른바 의제 21호를 비롯한 여러 합의문이 채택될 예정인데 채택될 합의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리우선언=청정한 환경 개발을 위한 여러 원칙들을 규정.당초지구헌장으로 명명됐으나 나중에 명칭이 바뀌어졌다.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것이 약점이다. ▲의제 21호=9백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문서로 환경을 보호하며 경제성장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지침을 설정.법적인 구속력은 없다.유독성 폐기물과 「오염방지기술」의 이전 문제,제3세계에 대한 자금 지원등 중요한 문제가 언급돼 있다. ▲기온통제협약=지구 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협약.이번회담의 간판격인 합의문서이다.그러나 부시 미행정부의 압력으로 규제조치의 대상과 기한등이 제외되는등 취지가 많이 퇴색해 있다. ▲삼림에 관한 선언=세계 삼림자원 보호에 관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역시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말레이시아는 협상과정에서 열대 목재의 판매를 규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문구의 삽입을 극력 반대했다. ▲생물종족 보존에 관한 합의안=멸종위기에 놓인 식물과 동물,자원의 보존에 관한 문서.부시 대통령은 지난주 이 문서에 조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해 이번회의에서 채택되더라도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 북한,신형미사일 개발/대중동 수출용… 사거리 1천5백㎞

    【워싱턴 AFP 연합】 북한은 중동으로 판매할 계획아래 신형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미국무부 고위관리가 29일 밝혔다. 이 관리는 북한이 「노동」으로 명명된 사거리 1천∼1천5백㎞의 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마쳤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하고 『이 신형 미사일이 중동으로 판매될 경우 그 지역을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며 이것이 북한의 의도인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은 탄도미사일 기술의 확산을 막기 위해 체결된 미사일 기술통제 장치(MTCR)협정에 위반되는 것이라면서 『북한은 MCTR의 규제대상인 미사일을 수출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지적했다.
  • 킷샛 1호/첫 과학위성 8월 11일께 발사

    ◎아리안사 일정 늦어져 3주 연기/한글이름 「우리별 1호」로 명명도 국내 첫 과학실험 위성으로 오는 7월23일 남미 가이아나의 크루에서 발사키로 됐던 킷샛 1호(한글이름 우리별1호)의 발사날짜가 약3주정도 늦춰진다. 위성제작 및 발사 총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의 최순달박사(인공위성연구센터)는 27일『영어 이름외에 국내최초의 위성을 알기 쉽게 「우리별」로 이름 붙였다』며 『다른 위성 발사 스케줄이 잡힌 아리안사의 V51로켓의 발사가 늦춰져 우리 위성을 실어 띄울 V52로켓의 발사가 순연된 것』이라 밝혔다.새 일정은 현지시간8월10∼12일(한국시간 8월11∼13일)사이의 아열대인 이곳의 기상환경조건이 가장 양호한 밤12시(상오9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당초 이달말 영국 서리대학에서 제작을 마쳐 아리안항공본사가 있는 프랑스 트루스로 옮겨져 다시 남미로 갈 위성체는 6월20일경 영국을 출발,프랑스로 간다. 우리별 1호 위성의 제원은 가로 세로 각50㎝,높이 80㎝,무게50㎏의 입방체형.지표면 관측 능력은 1×1㎞로 적도 상공의 1천3백㎞의 저궤도에서 1백분에 한번씩 지구를 돌며 과학관측을 한다.우리별1호위성에는 각종 환경감지기와 CCD카메라가 탑재돼 우주에서 오는 고에너지,전자X선등의 방향과 방출량을 측정한다.또 위성전자 우편장치를 설치,93년 8월 대전 엑스포 개회식 때는 대전과 남극 세종과학기지를 연결,축하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하게 된다.국내 첫 위성체 제작 및 발사는 기계 전기 전자 컴퓨터 통신전자회로 소재 과학 수학등 30종이상의 다른 분야의 사람을 훈련시키며 종합적으로 해낸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정부는 우리별 1호의 기술축적과 발사경험을 토대로 내년 8월 엑스포 행사중 2호 발사를 우리 손으로 할 계획이다.또한 95년 방송통신용으로 발사되는 무궁화 위성등을 위한 기반기술을 확보한다는 목표아래 과기처,체신부,한국과학재단등이 약 7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 현사시­늦봄 종모날려 “꽃가루 공해”(나무이야기:9)

    ◎인공교잡 성공한 현신규박사 성따 명명/속성수로 한때 권장… 고급 목재로 쓰여 현사시는 한때 은사시 또는 은수원사시로 불렸다.현사시는 수원사시나무와 유럽에서 도입된 은백양 사이에서 생긴 자연잡종으로 1950년 서울대 농대 구내 묘포장과 연습림내에서 우연히 발견케 되었다.그 후 1953년 세계적인 임목육종학자인 서울대 농대 현신규박사가 미국에서의 임목육종 연구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국내 첫 임목육종연구실을 만들고 은백양을 어미나무로,수원사시나무를 아비나무로 하여 인공교잡에 성공함으로써 현사시를 인공적으로 대량생산케 되었다. 현박사는 이 나무의 장단점의 형질을 찾아내 품질개량 연구를 불철주야 계속함으로써 마침내 가장 짧은 연구기간내 우수한 개체를 선발케 되어 이 기적의 나무를 탄생시킨 것이다.1967년에 비로소 일명 산지포플러란 명예의 이름까지 더 얻은 이 나무를 속성 조림권장 수종으로 내놓자 너도나도 심어 인기를 끌었다.당시 박정희대통령은 산림녹화에 관심이 대단하여 은수원사시로 명명된 이 나무를 현박사의업적을 치하하는 뜻에서 현사시로 개명토록 지시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사시로 불리고 있다.심은지 20년 후면 키 20m,직경 80㎝에 달하며 산지일지라도 습기가 있고 토양의 통기성만 좋은 곳이면 어디서나 잘자란다. 꽃은 암수가 한 그루에 같이 있는것과 암수가 따로 있는것이 있다.꽃은 4월말에 피며 열매는 5월에 익는다.삽목시의 생장은 그리 좋지 않으나 다음해부터의 생장은 매우 빨라진다. 나무의 용도는 이태리포플러에 비해 재질의 백색도가 높고 단단해 젓가락,이쑤시개,아이스바 등에 널리 쓰이며 지름 20㎝ 이상은 무늬단판재로서 값비싼 오동나무·자작나무의 대용재로 활용된다.또 지름 15㎝이상의 중경재는 각종 포장·건축내장·가구의 서랍재 등으로 이용이 가능하고 지름 12㎝미만의 소경재는 펄프재로 쓰인다.특히 웨이퍼보드(삭편적층판)로서도 최상급에 속해 앞으로 합판대체재로 쓰일 계획에 있고 못쓰는 소경재 역시 합판의 대체재로 곧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잎은 가축사료용으로 소화력이 높아 ㏊당 4천그루를 심을 경우 7.5t 정도의 사료를 생산할 수 있으며 잎의 양도 많고 대기오염에도 강해 도시의 환경정화 수종으로 안성맞춤이다.이같이 유익한 수종이지만 늦봄에 눈처럼 날리는 종모때문에 기적의 나무가 낙인 찍혀 마구베어지고 있음은 답답하기 그지없다.수나무만을 골라 심었다면 최상의 쓸모있는 좋은 나무가 되었을 텐데….
  • 콜레라균발견 의학자 코흐 1918년 타계(오늘의 과학소사)

    5월27일은 탄저병·결핵·콜레라균을 발견,인류의 생명을 구한 의학자 코흐가 1910년 세상을 떠난 날이다.결핵은 19세기까지 전염병으로 간주되었다.한집안의 가족들이 잇따라 걸리는 탓이었다.1865년,비르만은 결핵이 동물에 옮겨지는 것을 발견,전염병임을 밝혔다.그러나 병원체는 발견치 못했다. 1870년경 시골의사로 탄저병의 전염메커니즘을 해명, 세균에도 생활사가 있음을 밝힌 코흐가 그 공로로 국립위생원에 일자리를 얻어 손댄 것이 결핵 연구였다.각종 실험기술을 개량하고 창안한 그는 현미경사진촬영,젤라틴 평판배지,색소염색법등을 총동원,18 82년 마침내 혈청을 첨가한 배지를 개발,결핵균의 인공 배양에 성공했다.배양한 균을 실험동물에 접종해서 발병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일약 명성이 유명해진 코흐는 18 90년 결핵치료제를 발표,인기는 절정에 달했다.결핵균에서 추출된 약제는 투베르쿨린이라 명명되었다.그러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투베르쿨린 주사가 원인이 되어 사망하는 환자까지 생겼다.충분한 실험을 하지 않고 발표를 했던 것이다.명성이 그를 타락시켜 시골의사의 겸손함을 잃었던 것이다.세상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명성은 무산되었다. 때마침 노벨상이 생겨 제1회 의학상을 탄 것은 디프테리아의 혈청요법을 연구한 그의 제자 베링이었다.코흐의 투베르쿨린은 결핵치료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으나 부작용때문에 해롭기까지 했다.피하에 주사했을 때 빨갛게 붓는 일까지 있었다.그러나 결핵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빨갛게 붓는 일이 없었다.그래서 이 부작용을 살펴 투베르쿨린은 결핵 감염을 체크하는 수단으로 쓰이게 되었다.오늘날 투베르쿨린주사는 결핵균의 유무를 조사하는데 쓰인다.전염병을 제압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의 하나는 백신이다.결핵 백신은 19 21년 완성되었다.결핵구균을 13년간에 대를 거듭해 인공배양함으로써 독성을 약화시킨 생균 백신으로 BCG로 불리고 있다.코흐는 19 05년 간신히 노벨상을 탔다.
  • 호화분묘 조성 91명명단 공개/정·재계등 사회지도층인사 다수 포함

    ◎불법형질변경·산림훼손 보사부는 호화·불법으로 묘지를 조성한 사람에 대해서는 앞으로 형사처벌외에 명단을 공개하기로 하고 25일 1차로 91명의 호화·불법분묘설치자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명단에는 정부의 묘지면적축소시책에도 불구,전현직국회의원 전직장관 기업체사장 등이 다수 포함돼 충격을 주고 있다. 공개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작게는 50평에서 크게는 3천평이나 되는 조상의 호화분묘를 조성하면서 묘지설치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형질변경과 벌목을 일삼았는가 하면 공적비등 호화석물에서부터 연못·진입로등을 멋대로 조성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보사부가 이날 공개한 불법·호화분묘설치자 가운데는 석준규민자당의원 봉두완·오범수전의원등 전현직국회의원 3명,민병권전교통부장관 이활전법무부장관등 전직고위관료 6명이 포함돼 있다. 재계인사가운데는 구두회호남정유사장 구자열럭키금성상사이사 전응규주식회사청방회장 이회림동양화학그룹회장등 지도급 기업가 20명이 끼여있다. 봉전의원은 지난 78년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오산리 산31에 5백10평크기의 선친묘소에 석등2개 상석1개등을 설치,관리해오다 지난해 9월 경기도로부터 면적과다로 정비지시를 받았다. 권철현전연합철강회장은 지난88년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심석리 산60에 3천70평규모의 호화분묘를 불법으로 설치,임야훼손과 초지훼손혐의로 지난89년 당국에 의해 고발되기도 했다. 현행 매장 및 분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개인묘의 경우 88㎡(24평)이상,공원묘지는 7평이상을 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1년이하의 징역 또는 2백만원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돼있다. 보사부가 공개한 명단중 저명인사는 다음과 같다. ◇전 현직국회의원 ▲오범수▲석준규▲봉두완◇전직고위공무원 ▲정광호전해병대사령관▲민병권전교통부장관▲홍종국전영등포구청장▲박영하전전매청장◇기업체 대표 ▲권철현전연합철강회장▲민병린 삼성신약사장▲손재호 동양상호신용금고사장▲오종렬로터리클럽총재▲강숙희 패션디자이너▲노경환 상우항공사장▲전응규 청방회장▲김영설 삼성제약사장▲이동희 용인가든대표▲최만기 수유시장대표▲이회림 동양화학그룹회장▲최충경 경인회장▲한상훈 대유산업회장▲구자윤 LG유통사장▲구두회호남정유사장▲박영애 크라운사장▲김정훈 (주)기린사장▲정재원 정식품회장▲김동훈 롯데제과전무▲한석진 남산케이블카사장
  • 한진 오사카호 명명식

    한진중공업(주)은 21일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초대형 4천TEU급 풀컨테이너선인 「한진오사카호」(5만2천4백t)명명식을 가졌다.(사진)
  • 수친다 사임번복이 도화선/태국 유혈사태 배경과 정국전망

    ◎군부,집권연장 겨냥 초강경/「민선총리」 개헌안 무산 위기 태국의 긴장정국이 결국 유혈충돌이라는 최악의 길로 치닫고 말았다.17일 저녁 20만명의 대군중이 방콕 중심가에 운집했을 때만해도 사태의 민주적인 해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분위기였으나 18일 신새벽과 함께 시위군중들에게 전해진 것은 기대했던 집권층의 요구조건 수락성명이 아닌 군·경의 무차별총성이었다. 수친다총리의 즉각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시위는 지난 4일부터 본격화했으나 무력탄압 강행이 예상됐던 집권세력은 그동안 엄포만 놓았을 뿐 이를 행동화하지 않았었다.뿐만아니라 요구조건 수락 내지는 타협할 용의까지 비춰 11일까지 연속된 반정부시위는 피흘림없이 소기의 목적을 거둔듯 했다.그러나 이날 새벽 총성으로 군부의 절대지지를 업고있는 수친다총리의 사임거부 「본뜻」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것이다. 유혈충돌 발생과정을 두고 시위군중이 먼저 과격해져 무력해산을 유발했다는 주장도 없는 건 아니다.그러나 민주화시위의 핵인 잠롱 스리무앙 전방콕시장의 제3불순세력 개입 주장이 보다 설득력있게 들릴 만큼 이날 군경의 무력진압은 적극적인 공세로 일관됐었다.정부의 비상사태선언은 계엄령보다는 한급 아래이지만 집회시위를 원천봉쇄하고 있어 수친다총리를 위시한 군부세력의 집권유지를 위한 강경국면 전개가 전망된다. 무력진압 반나절전 북부지방시찰중에 반정부시위에 관해 아주 유화적인 제스처를 썼던 수친다총리는 유혈사태발생과 함께 방콕으로 귀환하면서 국회를 해산할 계획을 갖고있지 않다고 말했다.비상사태 선포를 축으로 시국안정을 꾀하겠다는 것이다.이같은 발언은 자신의 즉각사임의 차선책으로 거론되던 「새총선 실시를 위한 국회해산」의 타협안마저 거부하겠다는 의사로 보여진다.그러면서 수친다는 국회가 의결하면 사임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친군부정당세력이 과반수의석을 차지하고있는 의회에서 그의 불신임결의안이 가결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또한 민주화시위의 대안으로 채택돼 큰 기대를 모았던 총리의 민선의원 자격요건및 군부직접지명의 상원권한축소 등 개헌안논의도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다.수친다총리는 그전부터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차기총리부터 해당되지 자신에게 소급적용할 수 없다고 반발해왔었다. 한마디로 태국군부는 지난 32년 절대왕정 폐지이래 16번의 쿠테타를 통한 집권전통을 총칼로서 유지 보전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경제개발과 함께 국민의식이 옛날과 사뭇 달라졌지만 태국군부에 대한 정치불개입 요구는 아직도 「시기상조」라는 태도이다.따라서 의외의 변수가 돌출되지 않는 한 민주화세력으로부터 「시대착오」의 집단으로 규정받고있는 태국군부의 집권유지 강경노선은 강화될게 뻔하다.
  • 5월의 캠퍼스/김준철 제주대총장(굄돌)

    어느 계절이고 그 나름대로 특징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지만 5월은 더욱 찬란하고 화사하다.그래서 이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다.무엇보다도 연한 잎새의 신록이 아름답고 다정하다.파란 잔디가 하늘을 향해 눈부시고 온갖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난다. 이런 대자연의 신비를 대할적마다 신의 섭리에 경탄하게되고 감사를 느끼게 된다. 이처럼 장엄하게 펼쳐지는 5월의 햇살아래 그 어느 한구석이 낯설고 칙칙할까마는 유독 현란한 것은 대학의 캠퍼스가 아닌가 싶다.잘 가꾸어진 넓은 뜰에 여기저기 젊은지성들의 모습은 유난히 빛나고 대견스럽다.자랑스러운 이 젊은 군상들 가운데도 막내둥이 1학년생들의 생활에 더욱 애착이 가고 궁금해지는 것은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지난날 컴컴한 입시공부방에서 태양을 등지고 치열한 경쟁으로 얼어붙은 그들의 마음이 이제 어느정도 녹여졌는지,스승과의 만남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캠퍼스와 친구들과 선배들과는 어느정도 교감이 이루어졌는지 모두가 궁금해진다.과연 그들이 찾아온 이곳이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의고귀한 전당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고 있고,그들의 장래를 똑바로 가늠하로 있는지도 늘 걱정스럽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말을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고,「나는 모르는 것을 알뿐이다」는 그 위대한 철인의 겸허를 가르쳐 주고도 싶다. 「대학의 도는 재명명덕」이라는 동양의 큰 목표도 소중하지만 소크라테스가 학풍을 세우고 그의 제자 플라톤이 아카데미를 창설하던 바로 그 진리의 동산이 저희가 찾아온 이 학문의 고향이라는 것을 진실로 절실하게 느끼며 경건하고 열정적인 탐구 생활을 해주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면서 캠퍼스를 거닐때가 많다. 젊은이들! 그 말만으로도 자랑스럽고 소중한 대학생들이 참으로 멋진 그들의 대학시절을 꾸려나가야 할터인데 하고 늘 소망의 꿈을 꾼다. 그들(젊은이들)은 이 신성한 진리의 고향에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아폴로적인 이성의 노예만 되지말고 또한 「너 자신을 망각하라」라는 디오니소스적인 모습도 함께 길러 인격의 깊고 높고 넓은 조화를 이루어주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내가 소망하는 것은 그리고 동시에 이 캠퍼스의 젊은이들은 무엇보다도 윤리적인 인격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그리고 연민의 정에 넘치고 훈훈한 인간미와 넉넉한 품성으로 이기주의적인 좁은 골목에서 활달하게 열린 넓은 대지를 호흡할 줄 아는 호연지기를 길러주어야 할 것이다.
  • 규장각 자료서 드러난 일제의 날조 파장/긴급좌담

    ◎“을사조약등 무효” 대일 공식통보를/5년간의 의병희생등 추가배상 마땅/두나라 교과서등 역사기술 새로해야/학계도 일자료 의존 탈피,원전연구 나설때 ▷참석자◁ 윤병석 인하대교수·역사학 신용하 서울대교수·사회학 백충현 서울대교수·법학 일본은 일제의 한국 침략이 이른바 「을사보호조약」 「정미7조약」등 두 나라사이의 국제조약에 의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해 왔다.우리 국민역시 일제의 역사왜곡에 의해 대한제국이 무력하게 국권을 내어 준것으로 잘못 알아왔다.그러나 서울대 규장각 소장자료 정리·분석과정에서 을사조약을 비롯,대한제국말기의 각종 조약과 칙령 등이 황제의 승인없이 일제에 의해 날조된 것(서울신문 12일자 보도)으로 밝혀짐에 따라 원인무효의 조약에 의한 일제36년의 청산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역사적 사실의 재정립 및 대일피해보상 등 한·일간의 새로운 현안들을 짚어보는 전문가 좌담과 조약체결과정에대한 박성수교수의 글을 싣는다. ○“체결”로 거짓 발표 ▲신용하교수=일제가 지난 1905년 조선에 강요한 을사조약과 1907년의 정미7조약등 각종 조약과 식민지법령이 당시 조선황제인 고종의 인준을 받지못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일제에 의해 황제의 서명이 위조된 것이라는 서울대 규장각의 발표는 국민들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을 겁니다.먼저 제가 1905년 을사조약체결과정과 이를 둘러싼 조선조정의 대응등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는 것으로 오늘 대담을 시작하겠습니다.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에 승리한 뒤 조선의 국권을 빼앗기 위해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일제는 을사조약을 만들어 일본 헌병대를 동원해 대신들을 위협하고 강제로 체결하려다 고종의 완강한 거부로 고종의 인허·수결·옥새·날인 어느 것도 받지 못해 조약체결에는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일제는 조약이 체결된 것처럼 거짓으로 발표해버렸습니다.당시 대한제국은 전제군주국가로서 모든 외국과의 조약과 칙령에는 황제의 친필서명과 옥새의 압인이 필수요건이었으므로 을사조약은 무효인 것이지요.이 과정에서 당시 참정대신 한규설은 조약체결에 반대해 헌병들에게 멱살이 잡힌채 밖으로 끌려나갔고 민영기 이하영등도 이를 막아보려 했습니다.이밖의 국내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윤병석교수=당시에는 국내의 친일파들 말고도 미국·영국·독일등 제국열강들 조차도 일제의 불법을 자국의 이익에 따라 묵인한 상태여서 일제의 조선침략은 계획대로 진행됐죠.이는 바로 우리가 역사에서 얻어야 할 교훈인데 지금도 달라진 것은 크게 없습니다.물론 일부에서는 1세기전에 국가간 조약을 체결하면서 지금처럼 철저하게 법적절차를 거치고 그에 대한 인식이 있었겠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예를들어 「양국간의 통상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은 1876년의 강화도조약만해도 조약체결 당사자들의 서명은 물론 이들의 도장 왼쪽에 양국통치권자의 서명·날인이 돼있습니다.하물며 한나라의 국권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조약에 통치권자의 서명·날인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신=이들 조약들이 법적효력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는데 그럼 무엇이 달라지고 지금 우리가 취할수 있는 대응책은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백충현교수=을사조약이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공표됐다는 것은 학계내부에서는 알려져있었지만 우리의 원본으로 공식확인된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입니다.그리고 정미7조약과 같은해 12월에 반포된 48개의 칙령등에 순종의 수결이 위조됐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발견된 것이라는 것도 분명히 해야합니다.외교권박탈과 통감부설치에 의한 조선지배등을 규정한 을사조약이 무효이므로 이후 일본이 외국과 체결한 간도협약(1909년)이나 내치를 위해 반포했던 일체의 식민지법도 모두 무효가 됩니다.여기에서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기본협정에서 일본측이 취했던 입장을 짚고넘어가야 합니다.일본측은 1910년 한일합방을 합의했던 것자체가 무효가 아니라 당시 조선황제의 동의를 얻어 제정·반포된 법에 근거해 합법적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전세계에 알려야 그러나 을사조약자체가 무효라는 것이 판명된 이상 물적배상의 차원을 떠나 사실은 사실대로 기록되어야하며 이는 역사의 잘못된 반복을 막으며 장래한일양국관계의 정상화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신=저도 백교수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저는 이밖에도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지는 몰라도 을사조약이 체결도 안된 것으로 무효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봅니다.또 이사실을 사후에라도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공식문서로 작성해 일본정부에 전달해야 합니다.한일교과서의 내용도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체결하였다」는 서술을 「일제는 1905년 소위「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려다가 실패하자 체결되지도 않은 조약을 체결된 것처럼 제멋대로 거짓 반포하였다」로 고쳐써야 할 것입니다.또한 지난65년 한일기본조약체결때 1910∼1945년에 대한 배상만을 논의했는데 1905∼1910년사이 일제침략에 무참하게 학살된 수만명의 의병들의 희생에 대해서도 추가로 배상을 요구해야 합니다. ▲윤=저는 신선생님의 제안에 몇가지를 덧붙이고자 합니다.이번 기회에 일제침략의 악랄함과 간교함,기만적인 부분들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일부에서는현재의 한일관계가 수교이후 가장 불편하다는 점을 들어 감정적인 대응을 경계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그것은 어느 한시점에 근거한 단견입니다.국제관계란 때로는 소원해질수도 있고 가까워질수도 있는거니까요.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만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며 아직까지도 계속 거론되는 친일잔재 역시 하루빨리 완전청산돼야합니다. ○주권지켜낼 정도 ▲백=규장각 자료분석작업에 직접 관여하면서 저를 포함해 학계가 반성해야한다고 절실히 느꼈습니다.우리는 여러이유로 자료들이 제대로 보관돼있지 않아 일본자료를 그대로 인용하는 풍토가 만연돼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고 굴절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이번경우도 규장각에 소장돼있던 자료를 정리하다 우연히 발굴된 겁니다.우리 학계는 이제 간접자료가 아닌 원본에 근거한,원칙에 충실한 연구자세를 지향해야하며 우리의 문헌을 창고에 방치하지 말고 근본적인 자료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마지막으로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역사사실이 우리사회에 던진 충격에서 벗어나 잘못 알려져온 역사는 바로잡고 이로인해 손상당한 우리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며 또한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최근 일본에 치우쳐있는 국민들의 무비판적인 관심을 한번 거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또 우리민족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갖도록 역사사실을 알려 최근 물밀듯 상륙하고 있는 일본의 경제·문화침략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판단력을 지니도록 해야하는데 이는 바로 우리의 주권과 문화적인 자주성을 지켜나가는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고종,“순할지언정 인허 못한다”/을사조약 이등협박에 끝까지 불응/박성수 정문연교수·역사학(특별기고)/이완용등 오적변절… 대신회의서 “가” 결정/황제,“적자 모두 일어나라” 국민항쟁 촉구 1905년의 을사조약이 조약당사국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한제국 광무황제(고종은 일제의 명명)의 비준없이 체결되고 1907년의 정미조약도 융희황제(순종)의 위조된 수결로 체결된 사실이밝혀져서 이 시기의 모든 법령은 물론 1910년의 소위 합병조약(경술조약)까지도 무효임이 밝혀져 이 시기에 관한 기존의 역사 기술에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1905년 11월17일 광무황제의 재가 없이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국권탈취의 원흉 이등박문이 서울역에 도착한 것은 1905년 11월9일 하오.이튿날 낮12시 덕수궁의 황제를 알현,소위 일본천황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1차로 협박하고 2차 알현을 요구하였으나 황제가 거절,15일에 가서야 2차 협박에 성공했다. 그러나 얻어낸 결과는 죽는 한이 있어도 인허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이등=만약 폐하가 이 조약을 거절하면 중대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황제=이 조약은 국가중대사이므로 짐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국민의 의사를 물어 봐야 한다. ▲이등=국민의 의사 운운하심은 국민을 선동하여 일본에 반항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황제=이 조약을 인허하는 것은 망국이나 같은 것이니 짐이 종사에 순할지언정 절대로 인허할 수 없다. 죽으면 죽었지 이 조약은 받아 들일 수 없다는 황제의 태도는 그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5월17일 이등박문이 불법으로 소집,주재한 대신회의에서 이완용등 오적이 변절하여 「가」라고 대답했을 때 황제는 그들의 배신행위를 「천재의 유한」이라 개탄하면서 『짐의 적자는 모두 일어나 이 슬픔을 함께 하라』고 말했으며 피를 토하여 통곡하였다.황제의 뜻이 이러하였으므로 을사조약에 수결했을 리 만무하다.따라서 이 조약은 원천적으로 무효일 뿐 아니라 일제는 이 조약 자체를 위배하고 있다.즉 한국의 외교권만을 침탈하기로 되어 있는 조문을 무시하고 한국의 모든 내정권을 유린하고 있다.이것도 명백한 불법이다. 광무황제는 이보다 먼저 1904년 러 일전쟁 발발 직전에 국외중립을 선언한 바 있으나 이것도 일제가 불법적으로 묵살하였다.1907년 해아특사를 파견하여 만국평화회의에 친서를 전달하게 되는데 그 요지가 을사조약의 무효선언이었다. 『짐은 최근 한국과 일본간에 체결된 소위 보호조약은 무력협박과 감금속에서 강요된 것이므로 무효를 선언한다.짐은 이조약을 절대 승인한 바 없으며 장차도 그럴 의사가 없다』 헐버트에게 보낸 전신에서 황제는 이렇게 명언하고 있다.이 사건으로 황제는 강제 퇴위 당하나 그 때도 퇴위아닌 황제대리를 선언하였다.그러나 일제는 또다시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양위를 발표하였다.그리고 한국군 해산을 골자로 하는 정미조약을 체결했다.이것마저도 융희황제의 재가없이 강행하였다면 당연히 무효이다. 이등의 주구였던 이완용의 매국내각을 인정할 수 없듯이 1904년 러일전쟁 발발이후 1910년 경술조약까지의 모든 법령,안중근의사에 대한 사형판결까지도 모두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그런 전제하에서 한일 두나라 교과서는 물론 모든 역사기술을 재검토하여 새로이 집필되어야 할 것이다.특히 일본은 1931년 이후 소위 15년간의 침략통치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고 그 이전의 한국침략을 합법적이었다고 보는 어처구니 없는 역사관을 버리고 솔직하고 겸허하게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새 축산정화시스템 선보여/KIST 박환철박사팀 개발… 제품화 추진

    ◎가축폐기물 처리능력 97%로 높여/호기성미생물 이용… 설치비용도 저렴 하천등 국내 수질오염의 주요원인이 되고 있는 축산폐기물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환철박사(환경연구센터)팀은 그동안 50% 수준에 밑돌았던 가축폐기물의 분해처리능력을 97%까지 끌어올린 새로운 형태의 축산정화시스템을 최근 개발,시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KDST라고 명명된 이 축산 처리 시스템은 기존방법에 비해 설치비용도 5분의1∼10분의1에 불과하고 유지비용도 저렴(소10마리 기준 한달에 1천3백원정도)해 영세한 국내 축산농가에 널리 보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국내농가에서 이용해온 「부패 탱크형」 축산폐기물 처리장치는 폐기물의 분해효율도 낮을 뿐 아니라 설치비용이 소 10∼30마리 경우에 1천5백만원이나 드는 등 설치비용 부담 때문에 국내축산농가에 널리 보급되지 못해왔다. KDST의 설치비용은 소10마리(돼지30마리)를 기준으로 1백20만원 가량이 소요되며 1년에 1번정도의 청소로 유지가 가능하다.이에따라 하천등 국내수질오염의 30∼40% 가량을 차지하는 축산폐수로 인한 오염이 크게 줄어들 수 있게 됐다.국내에서 배출되는 축산폐수는 3천2백ppm의 고농도 유기성폐수(인분은 3백80ppm)로 하루에 1천9백60t정도가 하천에 방류되고 있다. 이 축산정화 시스템은 정화조에 산소투입을 늘리고 침전·여과과정을 대폭 개선한 것이 특징.침전분리실·공기흡입실·순환실·소독실 등 5단계를 거치면서 활동성이 강한 호기성 미생물에 의해 폐기물이 처리된다. KDST는 현재 경기도 미금시 축산농가에 시험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동성실업에서 기업화를 추진중이다.
  • 외언내언

    「학교거절증」이라는 청소년들의 정신장애병이 있다. 50년대말 명명된 정신과영역 병증세. 8세미만에서 5%쯤이 이 증세를 겪게 된다. 이 분야에서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특별한 증세가 따로 있다. 80년초 공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험불안증후군」과 「입시스트레스증후군」 보통말로 중3병·고3병·재수병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저 형용사가 아니라 의학적으로는 실제의 병이다. ◆두통·시력장애·위장장애·현기증·불면증들이 이 증세에서 나타난다. 의욕상실·식욕부진·극도의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초기증세에 어떤 조치도 받지 않으면 정서적 혼돈상태로까지 갈수 있다. 그러나 입시와 진학이 더 절대적인 가치이므로 이를 병으로 간주하려는 관점은 약해진다. 누구나 거쳐야 될 청소년의 한국적 통과의례쯤으로 보고 있다. ◆우리 청소년성장은 과연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를 묻기전에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전교조가 전국 국민학교 3∼6학년 1천7백여명을 대상으로 이번 조사한 결과 국교생 99.7%가 학원수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단 0.3%가 학교교육만을 받고 있다. 정상적인 학교교육만도 실은 국민학생에게 어떤 부담을 줄수 있는데,우리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학교 교육만을 믿고 있기엔 너무도 조급한 심정이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니까 또 45.2%가 가출충동을 받고 있고 41.6%가 죽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해보고 있다. 이런 생각의 비율이 중·고생들 조사에서는 이미 여러번 확인됐고,또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지낸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국민학교생들. 중·고생들과 같은 느낌으로 받아 들인다면 우리 사회는 대단히 큰 실수를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중앙대 의대 부속병원이 최근 21년간(1968∼88) 청소년정신장애환자 분석을 한게 있다. 21세미만 6천3백여환자중 무려 10%가 12∼14세에 몰려 있었다.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해 우리는 지금 청소년을 정신과병동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를 좀더 심각히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 백범암살/엇갈리는 증언… 진상규명 본격화해야

    ◎일제청산·단정반대로 이박사와 갈등/극우·친일파 조직적음모 여부가 초점/안 1년복역후 출감… “암시”발언 의무투성이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의 진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암살지령을 내린 배후는…? 사건발생 43년이 지나도록 줄곧 단독범행을 주장해온 암살범 안두희씨(75)의 최근 증언으로 이 사건이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안씨는 최근 두차례에 걸쳐 『김창용육군특무대장·장택상초대 수도경찰청장,노덕술수도경찰청수사과장,최운하수도경찰청정보과장 등이 나와 반공이념·인생철학이 같았으며 이들 모두 백범을 미워했다.누구로부터 암살지시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알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증언해 갖가지 추측만 무성하게 낳고 있다.백범암살사건의 전말과 관계자들의 증언,앞으로의 사건전개 전망등을 짚어본다. ○안두희발언 계기 사건전말·관계자주장 재조명 백범은 1919년 중국의 상해로 건너가 이봉창·윤봉길의사등의 의거를 지도하는 등 독립운동에 몸바쳐 임시정부의 주석에까지 올랐다.그는 8·15해방을 맞아 45년11월 26년만에 광복 조국에 돌아왔다. ◎반탁운동에 앞장 백범은 서대문 경교장에 숙소를 정한 뒤 28년 이시영 이동령 등과 함께 중국에서 창당한 한국독립당을 이끌며 45년 12월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의되자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47년 11월 국제연합(유엔)은 남북총선거에 의한 독립정부수립을 결의하고 48년초 총선거감시위원단을 한반도에 파견했다. 그러나 백범은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은 남북분단을 고착화 시킨다』면서 5·10선거에의 참여를 거부하고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김규식과 함께 평양으로 가 김일성 김두봉등과 4자협상등을 벌였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백범은 8월15일 이박사를 대통령으로 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경교장에 머물며 일제잔재의 청산과 통일정부수립 등의 노선을 견지,갈수록 이박사등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같은 상황아래서 49년 6월26일 정오 경교장 2층 집무실에 있던 백범은 육군포병사령부 소속 안두희소위가 쏜 4발의 총탄에 맞아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다. 안두희는 범행직후 『단독범행』이라고 밝힌뒤 헌병사령부 김병삼대위 등 헌병들에게 연행돼 육군중앙고등군법회의(재판장 원용덕소장)에서 「살인및 군인의 정치관여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이태원 형무소에 수감됐다.한달뒤 대전형무소로 이감된 그는 곧이어 징역15년으로 감형됐으며 백범 1주기를 하루 앞둔 50년 6월25일 6·25의 발발과 함께 형집행정지처분으로 석방됐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해 7월10일 육군소위로 복직됐으며 51년 국회질의에서 이같은 사실이 문제가 되자 소령으로 예편,강원도에서 식품군납업체를 경영하게 됐다. 그의 「단독범행」주장에 대해 49년8월 한독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이대통령에게 ▲백범이 안을 응대한 시간이 겨우 3분에 불과하고 안과 같은 청년과 정치언쟁을 벌였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범인의 심리로 일시적 흥분에 의한 것이면 1발로 족할 것이며 저격후 8발의 탄환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권총을 던지고 체포당한 것은 안의 개인적 행동으로 간주할 수 없다▲경교장 경비경찰관의 손에 체포되는 즉시 난데없이 헌병대가범인을 데려간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등의 진상규명 요청서를 보내 의문을 제기했다.백범의 장례는 그해 7월5일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새로운 내용은 없어 백범암살에 대한 안두희씨의 최근 증언이후 안씨의 배후문제에 대한 또다른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그동안의 증언들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새로운 것은 별로 없으며 안씨 역시 최근 두차례의 증언에서 일부 대목을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안두희씨(범인)=당시 백범을 암살하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받지는 않았으나 김창용육군특무대장 초대수도경찰청장을 지낸 장택상씨와 친일경찰관으로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던 노덕술,정보과장 최운하씨 등으로부터 백범을 암살해야 된다는 강력한 암시를 받고 공감해 범행했다. ▲김신씨(70·백범아들·전교통부장관)=김창용육군특무대장 등이 지시했다는 안씨의 증언은 빙산의 일각이다.이승만정권하에 있던 친일세력과 해방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한 세력을 중심으로 당시 군부와 경찰·정계 고위층을 망라한 정권차원의 배후세력이 선친살해에 관련되었다는 일부 증거를 갖고 있다.그러나 정확한 명령계통을 밝히지 못해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진상규명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최대교씨(91·변호사·당시 서울지검장)=사건직후 최초지휘때 김병삼헌병대위가 한때 경교장출입을 막기도 했다.권승렬법무부장관과 함께 대책을 숙의하기 위해 이범석국무총리 집에 갔으나 꿩사냥을 갔다고 해 신성모국방장관 집으로 가 아프다는 신장관을 겨우 만나 『경무대에 빨리 백범피살 사실을 알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자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가 됐다』고 말했다.또 검사장인 나도 모르게 범인 안씨에게 비밀당원증을 발급해준 김학규 한독당 조직부장 등 민간인 7명의 살인교사죄 구속영장을 김익진 당시 검찰총장이 직접 청구,한격만서울지법원장에 의해 발부됐다.이를 김총장에게 항의하자 『저 영감(이대통령 지칭)이 일체 비밀로 하라고 해서 그러니 양해해 달라』고 해 백범암살 수사가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얼마뒤 사표를 냈다. ◎“동족에 죽을일 없다” ▲선우진씨(71·당시 백범비서실장)=백범피격 하루전 대광고교 교감 박동엽씨가 찾아와 『옛 제자인 김정진소령을 만났더니 역시 제자인 오병순소위가 암살조에 가담,괴로운 나머지 털어 놓았다』고 밝혀 『몸조심 하십시오』라고 백범선생께 말했다.백범은 『동족에게 맞아 죽을 일은 하지 않았다』면서 이같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을 박씨로부터 들었다. ◎인천에서 사격 훈련 ▲정관일씨(71·안씨와 육사특8기 동기생으로 포병사령부에 함께 근무)=안씨는 당시 장은산포병사령관의 지시로 인천앞바다 비밀사격훈련장에서 주5회 극비사격훈련을 받았다. ▲홍영기씨(74·국회의윈·당시 육군법무감실검찰과장)=안씨를 기소한뒤 채병덕육참총장이 부르더니 『안두희에게 몇년을 구형할 생각인가』고 물어 『살인범이니 마땅히 사형』이라고 대답했더니 『사형은 너무 심하니 징역10년만 구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후 은폐위한 사기 ▲한필동씨(72·사건당시 김창용특무대장과 같은 부대에 근무·미국거주)=김창용의 지시로 백범을 암살했다는 안두희씨의 증언은 진짜 배후인물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다.내가 알기로는 신성모국방장관·채병덕육참총장,김태선내무장관 등의 비호아래 장은산포병사령관이 요원들을 훈련시키고 전봉덕헌병사 부사령관이 작전을 지휘하는등 백범암살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김교식씨(56·현대역사자료연구소장)=안씨의 증언은 앞뒤가 맞지않으며 직접 명령을 내렸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뒤 수사과정에서 처음 만난 김창용을 끌어들였을 뿐이다.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장택상 노덕술 최운하씨 등도 암살사건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김태선씨 또한 김지웅을 지원하며 경찰쪽에서 별도의 암살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포병장교인 안씨와 접촉이 있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암살계획의 시나리오는 포병사령부쪽에서 실행을 맡고 헌병사령부쪽에서 현장을 감시하며 육군정보국제3과에서 수사종결처리를 맡는 것으로 짜여진 것으로 보는게 옳다. ○서거43년… 「백범암살 재조명」을 보며/박성수 정문연교수 ◎민족정기 바로잡는 계기로/「통일민족주의」의 큰뜻 되새겨야 할때 최근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범 안두희가 범행 40여년만에 드디어 일부 배후 인물을 밝혔다 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증언 내용이 겨우 빙산의 일각을 드러냈을 뿐 바다속의 엄청난 얼음덩어리는 여전히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잠겨 있다. 안두희의 증언 자체가 이처럼 불성실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범행이 얼마나 중대한 과오였는가에 대해서도 거의 반성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는게 세론이다.아직도 안두희는 자신을 애국지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그의 증언 태도는 오만하기까지 했다. 백범 김구선생은 한국독립운동사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큰 인물이다.그의 이름 두자를 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사를 쓸 수 없음은 물론 광복이후 47연사도 기술할 수 없는 것이다. 『백범이 살아 있었어야 한다』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 물어 보아도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대답일 것이다.백범은 생전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칭송받게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었다.「아름다운 나라」란 더러운 나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선생 자신이 아름드리 거목이듯이 이 나라도 아름드리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군정을 반대하고 남북협상의 불가능에 도전한 사실을 안두희와 같은 극우반공주의자들은 단순한 용공주의자로 몰아 세울수 있었을지 모른다.그러나 평생을 통일운동에 몸바친 선생의 혈적을 모르는데서 온 무지의 소치였다.흔히 임정을 상해시대 14년(1919∼32년),이동시대 8년(1932∼40년),중경시대 5년(1940∼45년)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27년을 단순한 독립운동의 역사로 보아서는 안된다.그것은 동시에 통일운동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중경시대에 이르러 모든 민족주의 진영은 임정산하에 통일되었으나 공산주의자들 만은 연안으로 도주하여 중공산하에 들어갔으며 1950년 6·25 남침의 주력부대가 되는 김무정의 소위 조선의용군이 되었다.김구선생은 귀국후 임정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통일운동을 광복된 조국에서 실현하려고 했다.그것이 군정반대로 나타난 것뿐이다.그에게 있어 남북통일은다름아닌 한국독립운동의 연속이요 완성이었던 것이다. 좌우익투쟁의 피비린내나는 해방정국에서 그것은 부당하게도 김구로선으로 명명되어 그 실질이 왜곡되고 말았으나 그것은 김구자신의 역사신앙이었던 것이다. 만일 김구선생이 그때 없었어도 될 안두희라는 인간,아니 짐승에게 쓰러지지 않고 살아계셨더라면 우리 현대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를 모두들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아쉬워하고 있다. 다른것은 몰라도 최소한 남북의 분단상태를 악용한 이른바 사이비 통일민주주의만은 이땅에 뿌리 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진실된 통일민주주의가 자라나서 통일의 날을 앞당겼을 것이다. 오늘처럼 김구선생의 독립정신,통일정신이 절실한 때가 또 있었을까.또 오늘처럼 우리나라가 아름드리 나라로 커야 한다고 바라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다시한번 경교장의 비극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앞날을 생각할 때라 할 것이다.
  • 브라질:3/나윤도특파원 현지 리포트(중남미를 다시본다:4)

    ◎「작은한국」 상파울루엔 교포상점 즐비/한인 90% 의류업체… 패션문화 주도/현지인 10만여명 고용,자긍심 높아 『여기는 상파울루 공항입니다.저희 항공을 이용해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계속 애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상파울루에 도착한 브라질 바리그항공 여객기의 기내방송에는 3월초부터 포르투갈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다음으로 한국어 기내방송이 나온다.서울로부터 27∼28시간의 지루한 여행끝에 접하게되는 우리말은 지구의 반대편 이곳 땅에도 또하나의 우리핏줄이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했다. 5만 브라질 한인.한국동란 이후 온민족이 좁은 국토에서 겪던 가난의 고통을 덜기 위해 60년대 미지의 땅을 찾아왔던 이들 대부분은 거의 맨주먹으로 시작,30년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발붙이고 서있는 땅이 바로 한국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브라질 한인들이 모여살고 있는 상파울루의 대표적 의류상가 지역인 브라이스지역과 봉헤르츠지역은 중간 중간에 낀 브라질인들의 상점이 낯설게 보일정도로 이들이건설해놓은 「작은한국」이다. 상파울루 뿐아니라 브라질 전역과 인접국에까지 의류를 공급하는 중남미 최대의 의류시장으로 발돋움한 이들 지역은 이제 단순한 상가로서가 아니라 중남미 의류문화를 창조하는 문화거리로서의 긍지가 높다. 이곳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은 한국인 의류도매백화점 「패션센터 루츠」와 한국공원.브라이스지역 중심가에 위치한 의류백화점은 이곳 한인들의 평생소원인 「내 가게」마련을 성사시킨 대표적 케이스로 꼽히고 있다. 2백여 한인 업주들이 힘을 합쳐 시고속버스터미널로 쓰이던 건물을 임대받아 백화점으로 개조,지난해 문을 연 이 패션센터는 3층건물로 중앙이 터져있어 시원한 느낌을 주며 가운데는 88올림픽의 엠블렘을 조각해놓아 이 건물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든 「한국」을 쉽게 느낄수 있다. 상파울루 패션1번지로 통하는 이 상가를 자주 찾는다는 여대생 호자리오 올리비에라양(21·상파울루대)은 『한국인 옷가게는 진열부터 틀리고 또 옷의 질은 물론 맵시나 모양도 좋아 최고로 친다』고 극찬했다.브라이스지역 한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2백여평의 한국공원은 지난 80년대 중반 상파울루시청으로부터 명명받은후 그동안 이름뿐이었으나 내년2월 한인 이민30주년을 앞두고 이곳에 「이민선구자의 탑」을 세우고 한국식 정원을 꾸미는등 한인사회의 구심점으로 삼기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신수현한인회장(55·심프레스컴퓨터 사장)은 『전에는 이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재이주하는등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제는 상당한 안정을 찾고 있으며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많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한인회는 금년도 활동목표를 브라질사회에의 적응과 한민족 긍지갖기로 정하고 그같은 작업의 일환으로 이민30년사 편찬을 위해 서울에서 여류수필가 한동희씨를 초빙,생존 원로들의 증언을 채록하고 또 이곳 TV의 민족간 경연대회와 상파울루 카니발등에도 참여하는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내년의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한인회는 2세교육의 요람이될 한글학교 혹은 한국문화원의 설립을 위한 모금활동도 적극 전개할 계획이다. 이곳 한인들은 90%가량이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단순한 옷판매가 아니고 자체공장을 가지고 직접 옷을 생산하기 때문에 고용효과도 대단히 높다.90년 한인상공회의소의 통계에 따르면 직간접으로 한인업체에 고용된 인원이 10만명을 넘고 있으며 또 한인 의류업계가 브라질 원단생산의 30% 이상을 소비하고 있는등 한인경제가 브라질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차츰 늘고있다. 특히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원단생산에서부터 염색,의류제품 생산까지 전 공정을 갖춘 복합공장도 늘어나고 있다. 브라질 한인상공회의소의 김경삼회장(42)은 『브라질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의류업종만은 비교적 기복이 적은편』이라면서 『이민 1세들은 언어문제 등으로 인해 어쩔수 없이 상업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1·5세나 2세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제대로 공부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문직으로의 진출이 가능한데도 손쉽게 돈을 잘 벌수 있는 부모의 가게나 공장을 그대로 물려받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상대적으로 변호사·공인회계사·공무원등 전문직종으로의 진출이 적은것을 문제점으로 제기했다. 또 김회장은 『이곳 교포들의 실상이 국내에 너무 왜곡돼 전해진것 같다』고 지적하며 자신도 서울에 가서 몇번 경험한 일이지만 상담을 위해 찾아간 서울의 기업체나 관련기관 등에서 대하는 태도가 너무 고압적이고 불신풍조도 강해 한번 다녀온 사람들 가운데는 「찬밥신세」되러 무엇하러 가느냐고 서울행을 기피하려는 풍조마저 있다면서 교포들에 대한 모국인들의 보다 따뜻한 시선을 당부했다.
  • 원로 김삼순박사·재미학자 권경주박사 만남의 자리

    ◎“여성과학자 더 많이 양성해야죠”/“국내 의진균학회 없어 안타까워”/김/학술원 자연계 홍일점회원… 버섯등 익균 연구/권/병원성진 세계적 권위… 후즈후 인명사전 실려 학문의 길은 끝없이 깊고 고된 작업이다.더구나 여성으로서 미개척분야를 택해 연구하고 체계를 세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우리나라 학술원 자연계의 유일한 여성 회원인 김삼순박사(83)가 미생물분야의 후학들을 위해 제정한 성지학술상의 제2회 수상자는 미국립보건연구원(NIH)에서 26년간 사람의 질병을 일으키는 곰팡이인 병원성진균의 연구를 해온 권경주박사(58)로 선정됐다.권박사는 짧은 귀국일정중,노환으로 시상식(17일·보건연구원)에 참석치못한 김삼순박사를 찾아가 세대를 넘는 학문의 경지를 이야기했다. ○2회 성실학술상 수상 『지난해 성지상 심사위원회가 상취지와 선생님께 관한 자료를 보내주셨을 때부터 선생님을 뵙고 싶었어요.제연구가 선생님께서 체계잡으신 위에서 이뤄진 학문적인 연이 있다는 것을 알고 특히 기뻤어요』 『왕성한 연구활동으로 1백40편에 이르는 논문을 세계학술지에 게재한 주인공이 한국여성과학자라는걸 알고 나도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요』김삼순박사는 조카딸이나 만난듯 권박사의 손을 잡아주며,대견해했다. 두사람은 공통점이 많다.모두 만학으로 61년 일본과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고 권박사가 비록 32년이나 아래이지만 동문(경기여고)이고 같은 천주교신자이다. 김삼순박사는 신학문1세대 여성으로는 드물게 자연과학을 공부한 개척자.동경여고사를 나와 경성여고보 교사를 하다 다시 일본에 가 화학,식물학,농예를 공부했다.그러나 2차대전 말기,전쟁이 심해져 도중에 귀국했다.해방뒤 서울농대교수,문교부 편수관을 지냈지만 끝내지못한 공부의 미련을 버리지못해 53세때 다시가 58세이던 66년 일본 규수대학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땄다. ○53살때 뒤늦게 일유학 그의 연구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등에 실린 빛과 식물간의 상호작용을 밝힌 「타카아미라제 A의 광불활성화에 관한 연구」.귀국후에는 곰팡이균의 일종인 수많은 버섯등 익균을 연구,농민들에게 팽이·느타리·영지등 수많은 버섯재배로 고소득을 올리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대에서 가르치다 유학을 갔습니다.국내엔 변변한 현미경 한대 없을 때 미국에 가서보니 석사부터 다시 하고싶었습니다』권박사는 생명과학연구의 요람인 위스콘신대에 입학,박사학위를 땄고 66년 의생물과학의 중추기관인 미NIH에 들어가 수많은 의진균을 발견했다. 66년 세계최초로 아스퍼질루스속의 타가교배 균종을 발견했고 많은 신종을 찾아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72년에는 북미,중미등에 만연하는 히스토플라스마의 완전세대를 세계 최초로 발견,정확한 계통분류학적 위치를 찾아 명명했다.75년에는 또다른 병원성 진균중 크리프토코커스를 발견,진균의 세계적 권위자가 되었다. 그가 지금하는 연구는 병원성 진균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질환의 원인인자 크리프토코커스·아스퍼질루스·히스토플라스마 등과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암과의 연관관계를 규명하는 분야이다.이 균들은 모두 그가 발견,계통분류학적 위치를 찾아 명명한 것이다.크리프토코커스는 비둘기똥에 서식하는 균.호흡기를 통해 폐를 경유,중추신경으로 가 면역성이 떨어진 에이즈·암환자들에게 합병증을 유발해 사망케하는 최고의 위험요소이다. 『미국의 경우 에이즈환자중 7.1%가 2차적 병원성 진균인 크리프토코커스에 의해 사망했다』고 권박사는 전한다. ○진균학 교과서도 집필 권박사는 유명한 인명사전 「후즈후」및 「미국의 남녀과학자」인명록에 실렸다.또 의학도들의 진균학 필수교과서인 의진균학 등을 지었다. 『무엇보다 이 상을 받으면서 한국의 후배들을 키우는데 소홀한것 같아 대단히 죄송합니다』 권박사는 의진균학회조차 없고 병원성진균에 대한 진단방법,진단기술,검사시술 등에서 전혀 깜깜한 국내가 안타까운듯,국내학계를 위한 기여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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