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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 독립국 7월창설/이 환경장관/“자치위 구성 등 현안타결후”

    ◎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 영토로/「대외 안보」 제외 전권행사 【예루살렘 AFP 연합】 요시 사리드 이스라엘환경장관은 18일 독립 팔레스타인국가가 앞으로 수개월후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창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리드 장관은 수개월후 (팔레스타인)영토안에서 선거후 공식적으로는 팔레스타인독립국가라고 명명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스라엘이 책임을 지는 「대외안보」를 제외한 모든 정부기능을 수행할 실질적인 한 국가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요르단강 서안에 이스라엘병력을 배치하는 문제와 그동안 계속 지연되어온 팔레스타인자치통치위원회 구성을 위한 선거실시문제등 두가지 현안합의시한을 오는 7월1일로 잡아놓은 상태다. 팔레스타인자치기구 설립을 위한 이스라엘협상대표단의 일원인 사리드 장관은 팔레스타인독립국가 건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획기적인 진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스라엘과 서안간에 그어질 안보국경은 팔레스타인국가의 국경을 명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리드 장관은 그러나 이스라엘인에 대한 팔레스타인측의 공격방지를 위해 설치될 무장국경선은 안전을 위한 국경이지 정치적 국경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양측 국경선설치계획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서안 사이에 30㎞길이의 울타리를 치고 동예루살렘에는 보다 많은 이스라엘병력을 배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유엔 사회개발 정상회의/13국정상 만찬 뒷얘기

    ◎26개 비동맹국중 절반이 참석 “성황” ◎“남남협력” 강조에 참석자 모두 공감 김영삼 대통령이 10일 에티오피아와 페루,몽고를 비롯한 13개 비동맹 국가의 정상들을 초청한 만찬행사는 우리나라의 외교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객관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한 나라의 정상이 다른 나라의 정상 여러명을 함께 초청해 만찬을 주재하는 행사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처음 청와대 쪽에서 유럽순방 행사를 기획하면서 사회개발정상회의 기간에 20개국 정도의 정상을 초청하는 만찬을 갖자고 아이디어를 냈을 때,외무부의 반응은 시니컬한 것이었다.『얼마나 오겠느냐』는 부정적인 전망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공로명 장관도 우선은 걱정부터 됐던 것 같다.그러나 담당 국장과 직원들을 불러 가능성과 효과를 검토하고는 『한번 추진해보자』고 강력하게 직원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우선 이 행사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 목표와 관련시켜 아시아와 아프리카,남미의 26개 비동맹 국가를 초청대상으로 선정했다.우리와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다투는 스리랑카와 가까운 나라들이다.예상했던대로 섭외가 쉽지 않았다.3월2일 김대통령이 첫 방문국인 프랑스로 떠날 때까지도 참석을 수락한 나라는 8개국 밖에 되지 않았다.외무부 당국자들은 다급해졌다.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참가국이 최소한 10개국은 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손발을 바쁘게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참가요청을 받은 나라들이 선뜻 승낙을 하지도 않았지만,승낙을 해도 10명이 넘는 국가정상의 일정을 하나로 맞추는 일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결국 행사 당일인 10일 직전 13개국의 대통령 및 총리의 참석이 확정됐다. 그런데 막판에도 고비가 있었다.이날 행사는 저녁7시에 시작됐는데 6시가 넘어가도록 김대통령의 인사말에 대해 답사를 할 나라가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그 한시간 동안 몇나라와 마지막 교섭을 해봤지만 여의치 않았다.결국 만찬에서 김대통령은 답사가 없는 건배사를 했다.옥의 티같은 것이었다. 어쨌든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남남협력의 정신에 입각해 긴밀한관계를 유지해 가자』고 제의했고 참석국가의 정상들은 이 뜻에 공감을 나타냈다.교섭과정은 힘이 들었지만 일단 우리나라 대통령이 다자간 정상외교를 주도하는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 나라의 정상이 쉽게 오고가는 것은 아니다.그들은 국가를 위해 뭔가를 얻는 것이 있다고 판단될 때 움직인다.세계 13위의 무역국이라는 우리의 국제적 지위가 10개국이 넘는 정상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한 당국자는 말했다.그러나 외무부는 당초에 우리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외무부에 부족했던 것은 실력이 아니라 의욕이었다.그것이 옥의 티를 만든 것이다. 이날의 행사는 국가의 진로를 결정하거나,국익을 다투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이번 만찬행사는 우리의 외교사에서 기억해둘만한 이벤트가 될 것 같다. ◎「벨라센터」 주변 표정/“미,개도국 여성교육에 1억불 지원”/힐러리/“회교국엔 평등·정의 없다” 강연파문/방글라 여 작가 ○…나라시마 라오 인도총리와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등 9개 인구대국들은 10일 여성교육을 전세계에서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 인도와 인도네시아 외에 방글라데시,중국,브라질,이집트,멕시코,나이지리아,파키스탄등 인구대국들은 이날 회동을 마친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전세계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 이들 국가대표는 사회발전과 모든 민족의 균등한 발전에 필수적인 조치로 어린소녀와 여성등에 대한 기본교육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져줄 것을 각국 대표들에게 호소. 이와관련,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는 지난 8일 미국이 향후 10년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남미여성교육을 위해 1억달러를 투입하겠는 「야심적인」계획을 발표했다. ○…로베르토 로바이나 곤살레스 쿠바 외무장관은 유엔 사회개발정상회의 연설에서 쿠바가 미국의 지시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미국의원들이 쿠바인들에 대한 대규모 축출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 그는 또 이번 정상회담에서 강대국들이 제시한 시장경제개혁 청사진을 일축하면서 개도국들도 독자적인 개발모델을 보유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 로바이나 장관은 『우리는 쿠바의 사회개발계획을 좌초시키려는 미국의 범죄적인 경제·무역·재정봉쇄 조치에 35년간 저항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완전한 재량으로 민족주체성 훼손과 국가전복을 야기시키는 국제화 추세에 대항해 독립과 자결,주권등을 적극 옹호해왔다』고 말했다. 쿠바는 경제제재 조치를 놓고 미국과 첨예한 대결을 벌여 공동선언과 행동계획등 관련문서 승인등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으나 그같은 최악의 장애물은 제거됐다고 회의 관계자는 전언. ○…유엔 사회개발정상회담 관계자들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이 이번 정상회담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 팔레스타인 대표단을 이끌고 이번 회의에 참석한 디아브 아유슈 팔레스타인 사회문제 차관은 이날 AFP통신회견에서 아라파트 의장은 최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서 돌파구가 열림에 따라 후속조치 마련등 「바쁜 일정」때문에 정상회의에 참석할수 없게 됐다고 전언. 아라파트 의장은 앞서 정상회담 조직관계자들에 자신의 회의불참 소식을 전하면서 양해를 구했다고 한 팔레스타인 관리는 전언. ○…방글라데시의 망명 여성작가 타슬리마 나스린은 원리주의를 비롯한 회교전체가 여성의 자유와 정의를 빼앗았다고 맹렬히 비난하고 나서 이번 사회개발정상회에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그는 이날 강연회를 마친뒤 『회교 원리주의 세력들이 여성을 억압한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하면서 『나는 이슬람에서 평등과 정의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 그는 지난해 8월 회교 원리주의 세력이 암살위협을 가하자 스웨덴으로 도피했는데 방글라데시 종교법원은 그에 대해 「회교모독」등의 혐의로 궐석 재판을 진행중이다.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정부수뇌들은 11,12일 최종 문서를 승인하기에 앞서 7분씩 돌아가며 연설할 예정이지만 이들이 시간을 엄격히 지켜줄지의 여부는 미지수라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경우 오는 4∼5월 대통령 선거 이후 사임하게 됨에 따라 이번이 주요 국제행사에서의 마지막 연설이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코펜하겐 선언문」 10개항 요약 【코펜하겐 AFP 연합】 유엔 사회개발 정상회담에 참석중인 각국 정부 대표들은 이번 주말 정상회담에 앞서 「코펜하겐 선언문」으로 명명된 10개항의 선언문을 작성했다. 다음은 10개항의 요약이다. ▲사회개발 달성을 위한 경제·정치·사회·문화·법적 환경을 창조한다. ▲인류의 윤리·사회·정치·경제적 의무로서 단호한 국가단위의 행동과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세계의 빈곤을 근절한다. ▲경제·사회적 정책의 우선사항으로 완전고용의 달성을 촉진하며 모든 남성과 여성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생산적인 직업과 일을 통해 안전하고 지속적인 생활을 영위토록 한다. ▲불우하고 약한 단체와 개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참가와 안전,단결,기회의 평등,다양성 존중,관용,무차별,모든 인권의 존중과 촉진에 기초한 정의롭고 안전하고 안정된 사회를 만듦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촉진한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완전한 존경을 촉진시키며 남녀의 평등과 공평을 달성하며 정치적·사회적·경제적·시민적·문화적 생활과 개발에서의 여성의 지도적 역할과 참여를 인정하며 촉진한다. ▲기본적인 의료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접근과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대한 최상의 표준,그리고 질높은 교육에 대한 보편적이고 공평한 접근기회를 촉진하고 달성한다. ▲저개발국가와 아프리카의 경제적·사회적·인적자원의 개발을 촉진한다. ▲구조적 조정계획들을 수립할 때 빈곤의 근절과 완전하고 생산적인 고용,사회적 통합의 촉진이라는 사회개발 목표들의 포함을 보장한다. ▲정상회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별 행동과 지역적·국제적 협력을 통해 사회개발에 할당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자원을 증대시킨다. ▲동반자 정신 아래 유엔이나 다른 다자간 기구를 통해 사회개발을 위한 국제적·지역적·소지역적 협력의 틀을 개선하고 강화한다.
  • 대만,중 공격 방어훈련/장태13호 명명/5일간 4천명 참가

    【홍콩 연합】 대만은 중국의 공격에 대비해 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중국과 마주보고 있는 대중 해안지구에서 「장태 13호」 군사훈련을 실시중이라고 대만 육군이 7일 발표했다. 「장태 13호」 군사훈련에는 대만의 여단 병력이 중국 방향으로부터 가상공격해오고 다른 여단 병력은 중국 복건성에서 가까운 대만 서쪽 대중 해안지구를 방어하는 훈련이 포함돼 있다고 대만 육군은 밝혔다. 이 군사훈련에는 4천명 이상의 병력이 참가해 적의 상륙 저지 훈련을 비롯,방공훈련·화학전·지상전·야간전 훈련등이 포함돼있다고 대만 육군은 밝혔다. 이정림 대만 육군 총사령관은 이 군사훈련이 중국이 핵탄두들을 적재할 수 있는 M계열 미사일들을 복건성내로 전진배치했다는 대만당국의 비난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 이번엔 파나마B형 상륙/감기도 세계화?

    ◎올들어 산동 A형 이어 3번째/근육통·비염 등 유발… 상당기간 만연할듯 올들어 중국 산동A형과 대만A형 인플루엔자에 이어 이번에는 파나마B형 인플루엔자까지 상륙,감기몸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7일 서울에 사는 박모씨(64·여)등 3명으로부터 파나마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검출했다고 밝히고 인플루엔자가 당분간 만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지난 1월과 2월 산동A형,대만A형이 유행한데 이어 또다른 바이러스가 잇따라 검출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이번 감기는 1∼4일의 잠복기간을 거쳐 기침,고열,근육통,인후통,비염 등을 유발하고 유아들은 구토와 설사를 일으키기도 한다.또한 합병증으로 세균성폐렴을 유발할 수도 있다. 유행성독감을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형과 B형이외에도 C형이 있다. 그러나 C형은 A와 B형에 비해 그 증상이 경미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3가지 유형의 바이러스는 발견된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 지역의 이름을 따 바이러스를 명명하는 것이 상례다. 처음에 유형을 표기하고 이어 발견한 지역,분리연도 순으로 명명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1월 발견된 산동A형은 A/산동/93으로,2월 발견된 대만A형은 A/대만/86,파나마B형은 B/파나마/90 등으로 표기한다.93,86,90은 문제의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한 해를 나타낸다.
  • 중 흑룡강성 10억평 합작개발/대륙개발,「삼강평원」 이어 두번째

    ◎10년간 375억원 투자/흥개호지역 등 4곳 목장·농장 개발/옥수수 등 생산… 아주지역 수출 【북경=이석우 특파원】 여의도 크기의 1천1백배규모가 되는 중국 동북부지방의 황무지가 국내자본으로 개발된다. 대륙종합개발(회장 장덕진)과 중국 흑룡강성 국영농장총국(총국장 유문거)은 17일 북경 조어대에서 오는 2004년까지 10년동안 5억위엔(5백억원상당)을 투입,흑룡강성일대 10억평에 달하는 황무지를 농지및 목축지로 개간하고 사료공장등 관련시설을 건설하는 내용의 합작개발 기본계약서를 체결했다. 개발예정지는 중국 동북부 흑룡강성 일대 4곳으로 연해주및 흥개호를 접하고 있는 호림시및 흥개호지역 2억5천여만평,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접경해 있는 동북끝의 무원지역 6억여만평,송화강 중류의 학립시와 개목사시 일대 6천만여평,내몽고와 접경지대인 대경시와 안달시일대 4천5백여만평등이다.이가운데 무원지역은 옥수수 중점 경작지로,가목사지역은 고기소 목축지역,그리고 대경지역은 시범목장지역으로 각각 중점개발할 예정이다.개발예정지 전체의크기는 국내 논밭을 합친 전 경작지의 6분의1,밭면적의 2분의1가량이며 6억평은 농지로,4억평은 목축지로 각각 개발된다. 양측은 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20만마리의 소 사육을 시작,오는 2005년에는 고기소 50만마리를 사육하고 옥수수등 사료작물을 연간1백만t씩 생산할 계획이다.또 개간지에 사료,콩깻묵(대두박)공장,고기 가공공장,가죽가공공장등을 건설해 현지의 원료를 가공해 동남아일대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양측은 공동으로 대륙농간유한공사(대육농간유한공사)를 설립하고 개발되는 목장과 농장을 대륙목장,대륙농장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이 개발사업은 총개발비 5억위엔(5백억원상당)가운데 75%인 3백75억원은 대륙개발측이 투자하고 대신 경영권과 개발지에서 생산되는 생산품과 가공품의 아시아지역 수출독점권을 갖는다.또 합작기간은 70년이고 한쪽이 원할 경우 자동 연장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개발이 완료되는 오는 2005년부터는 옥수수등 곡물과 사료생산에 주요 원료가 되는 옥수수대,콩껍질,공대 등 단미 사료의 안정적인 국내공급이 가능하게 되는등 68% 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관련 국내 사료부족현상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또 오는 2001년부터 완전수입자유화되는 소고기의 수입선 다변화등 가격인하 효과도 가능하게 됐다. 대륙종합개발과 흑룡강성 국영농장총국측은 이날 중국농업부의 형식 승인절차를 거쳐 빠르면 오는 5월말부터 개발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 대우자 조직운영 개혁안 발표

    대우자동차는 17일 결재 단계를 대폭 줄이고 부·과장 등 중간 관리자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내용의 조직운영 개혁을 발표했다.「웅비 95년 대혁신 선언」으로 명명된 개혁조치로 앞으로 의사결정은 임원 부서장 과장의 3단계로 줄어든다.종전에는 7단계였다.이사부장을 핵심 부서의 부서장에 배치했다.생산직 최고 직급인 공장 39명을 생산현장 과단위 책임자로 발령하는 등 조직을 바꿨다.
  • 세계 첫 원폭실험 50년/로스 알라모스/그때와 오늘

    ◎「에뇰라 게이전시회」 취소 미·일 논쟁속 관심 증폭 1945년 7월 16일 상오5시반 미 뉴멕시코주 로스 알라모스의 앨라모고르도시 트리니티 지역에 어둠을 가르는 섬광이 번쩍였다.인류최초로 시험용 원폭이 터진 것이다.뉴멕시코주 사람들은 이날을 되새기며 『그날은 해가 동쪽에서 뜨지 않았다』고 말한다.이 순간 과학의 힘을 공포로 바꾼 핵의 시대가 이곳에서 막을 열었다.미국은 1943년부터 소위 「맨해턴 계획」이란 암호명으로 원폭제조 실험을 시작,이날 원폭의 아버지라 불리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주도로 극비리에 이 폭발실험을 감행한 것이다.그당시 사막 한가운데에서 터진 이 폭발로 사람들은 생애 처음으로 보는 버섯구름에 대해 그저 아름다운 자연현상 쯤으로 미화하기까지 했었다.그로부터 약 3주일 뒤(8월 6일) 히로시마에 「에뉼라 게이」(enola gay)라는 이름의 B­29폭격기가 4t짜리 원폭 「꼬마」(little boy)를 투하,8만여명이 숨지고 4만여명이 다치거나 후유증으로 고생하기 시작했으며 9일에는 나가사키에도 「뚱보」(fat man)란 이름의 원폭이 떨어졌다.미국은 이 최초의 원폭시험장소를 「제로지점」으로 명명,아직껏 울타리를 쳐놓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으나 핵의 역사를 아는 이들은 이곳을 찾아 그날의 일을 되새긴다.미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에뉼라 게이 전시 계획 취소로 미·일 양국이 시끄러워진 사건을 계기로 시그마가 이곳 제로지점을 돌아봤다.
  • 미 박물관/스미소니언/원폭투하기 전시계획 취소

    ◎“살상미화”·“일을 희생자 오도” 거센 반대/일선 “원폭공포 알릴 기회 무산” 아쉬움 워싱턴의 세계적 박물관 스미스소니언이 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당시의 B29 폭격기를 우주항공박물관에 전시하려는 계획이 많은 찬반 논란 속에 1일 전격 취소됐다. 스미스소니언측은 지난해부터 1945년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을 떨어뜨렸고 3일 후 나가사키에 원폭을 떨어뜨린 당시의 B29 폭격기 「에뉼라 게이」(조종사의 어머니 이름을 따라 명명됨)의 동체를 실물 그대로 박물관에 상설 전시하는 계획을 마련,오는 5월 개장할 예정이었다. 스미스소니언은 『역사의 사실을 기록하고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킴으로써 더 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논리로 반대에도 불구,전시 계획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미국의 중요한 압력단체의 하나인 재향군인회 등은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진주만을 기습당하는 등 분명히 침략을 당한 나라임에도 이것을 전시하면서 마치 우리가 침략자이고 일본이 희생자인 것처럼 역사를 오도하고 있다』는 논리로 반대했다.또 평화그룹들은 한 순간에 21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원폭투하는 인류의 수치라는 또 다른 주장으로 반대운동을 폈었다. 이처럼 반대운동이 격해지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마이클 헤이먼 사무총장은 지난 30일 박물관의 운영이사회의 소집을 앞두고 이사들에게 계획 자체의 전면취소를 고려하고 있음을 알렸으며 마침내 1일 이를 취소한 것이다. 일본측은 오히려 『원폭의 공포를 알리기 위한 기회가 없어진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취소 방침에 반대 입장을 보였는데,미의회가 이 계획이 입안·취소된 과정에 대한 청문회를 요구한데다 미·일 양국간에 2차대전에 대한 현격한 입장 차이가 다시 노출된 만큼 이에따른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미에 대북투자 중개사 등장/CNC사/시찰단 모집·광고대행 계획

    【로스앤젤레스 연합】 북한의 대외개방과 함께 미국에서 북한에 대한 무역·투자 창구역할을 할 중계자문회사가 로스앤젤레스에 설립됐다. CNC(Chosun Network System)로 명명된 이 북한투자 중계회사는 지난 1월9일 설립돼 현재 본격적인 업무개시를 준비중으로 친북한계 신한민보 발행인겸 북미조선친선협회 공동의장인 김운하씨가 사장을 맡고 있으며 북경에도 지사를 설치했다. CNC는 북한에 대한 무역,합영(합작투자) 등 경제활동을 자문해주고 중계하는 북한투자 창구역할을 하는 한편 북한의 미국에 대한 창구역할도 겸하게 될 것이라고 CNC측은 밝혔다. CNC는 북한에의 투자희망자들에 대해 사찰단을 조직·인솔하고 계약을 도와주며 북한에 대한 광고대행 업무도 하게 된다.
  • “진도 8대지진 다가온다”/현실로 나타나는 백년 주기설

    ◎「플레이트」­내륙간 진동의 직하형 강진발생/휴지기 지나 거대지진의 활동기진입 조짐 일본열도가 17일 발생한 진도 7.·2의 지진으로 한순간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난번 지진과는 달리 인구밀집지역에 지진이 발생해 인명피해가 크고,동북지역에 이어 그동안 지진이 비교적 일어나지 않던 관서지역도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지도상으로 보면 지진이 한발 한발 남하하면서 도쿄등 관동지역을 포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게다가 이번 지진에서 일본의 「안전신화」가 깨졌다는 데 대해 일본인은 적지 않이 당혹해 하고 있다. 도쿄대학의 아베교수는 『일본열도 전체가 지진의 활동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면서 주의를 촉구. 일본의 지진학자 가운데는 이번 지진과 지난해 동북지방 지진과는 관련성이 높지 않다면서도 진도 8정도의 지진을 앞두고 활동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 하는 의견을 내놓는 전문가들이 많다.앞으로 지진에 대한 주의가 각별히 요구된다는 것이다.이번 지진은 태평양 밑으로 가라앉고있는 필리핀해 플레이트가 일본육지를 끌어당기다가 놓으면서 반발력으로 인해 발생한 지진이라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이들은 이같은 움직임이 1백년을 주기로 되풀이된다면서 앞서 비슷한 원인으로 발생한 지진은 지난 16년 발생한 진도 6.1의 지진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이들은 또 지난 46년 1천3백30명의 사망자를 낸 진도 8의 지진도 필리핀해 플레이트의 활동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지진예측회의 모기회장에 따르면 거대지진에 앞서 수십년동안 휴지기를 계속하다가 서일본 내륙에서 지진이 빈발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이번 지진이 진앙이 될 만한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반발력이 조금씩 방출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정말 큰 지진은 앞으로의 일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교도대학 지진예지센터의 안도교수도 의견이 같다.안도교수는 1백년주기설에 따라 지난 16년 진도 6.1의 지진을 기점으로 이제 지진이 자주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지진은 또 직하형 지진인점이 특징.일본은 지진을 해양형과 직하형으로 분류하는데 직하형은 육지 바로 밑에서 발생한 지진이고 해양형은 먼 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물론 직하형이 피해가 크게 발생한다.이번 지진은 대도시 밀집지역의 직하형 지진이어서 피해가 엄청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지난해 동북지방에 발생한 지진은 해양형이었다. 지진학자들은 이번 지진이 발생한 지역은 활단층이 몰려 있는 곳으로 지질구조가 불안정한 지역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지진학자들은 지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깨어진 안전신화… 필해 왜 컸나/활단층지대에 진앙얕아 충격 직접전달/진도 관서지방사상 최대규모… 피해 확산 89년과 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의 내진설계기준은 미국을 크게 웃돌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자신하던 일본의 지진전문가들은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온 17일의 「헤이세이 7년 효고현 남부 지진」에 대해일본의 「안전신화」에 금이 갔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 방재도시계획연구소의 요시카와 연구원은 『이번 피해는 연구소로서도 충격이었다』면서 『내진설계는 일본지진계로 진도 6(리히터 지진계로 7정도)에 견디도록 돼 있지만 국지적으로 지반이 달라 고가에 진도 6 이상의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요코하마 (횡빈)시립 대학 기쿠지 마사유키(국지정행)교수(문리학부)는 「헤이세이 7년 효고현 남부 지진」으로 명명된 이번 지진의 진원지가 된 아와지시마(담로도)로부터 효고현 세토나이(뇌호내)해에 걸친 지역은 『일본의 주요 활단층 지대로 많은 단층들이 북동으로부터 남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 가운데 하나가 움직여 지진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쿠지 교수는 17일 『지진의 메커니즘에 관한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또 북해도대 가사와라 미노루(입원념·지진학) 교수는 『규모 7·2는 긴키(근기)지역의 지진 규모로서는 최대급』이라고 밝히고 『지진의 크기로 볼 때 진원역(진원역)은 고베,니시노미야(서궁)부근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사와라 교수는 『오사카(대판)만에서 아와지시마에 걸쳐서는 많은 활단층이 집중돼 있다』고 지적하고 『아와지시마 부근을 진원으로 한 내륙성 지진은 지난 1916년 마그네튜드 6.1의 지진이 발생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가사와라 교수는 또 『지난해 10월의 홋카이도 동쪽 해상 지진과 12월의 산리쿠(삼육) 해상 지진과는 플레이트가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밝히고 『해일이 없었던 것은 단층이 수평 방향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인 것같다』고 말했다.
  • 타클라마칸사막 동남단 호탄(서역 문화기행:7)

    ◎실크로드 남로 중심… 명주·옥의 명산지/한때 열국우전의 수도… 토기·벽돌 파편 널려/동보고승 법현이 도닦은 찬목묘 유명… 바로 옆엔 이슬람 예배당 우루무치부근을 떠돈지 엿새째,지구의 지붕으로 불리는 천산산맥언저리이건만 또 한번 서역의 깊숙한 벽지로 날고싶었다.호탄(화전)을. 호탄은 곤륜산맥의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타클라마칸사막의 동남단.세갈래의 실크로드,그중 가장 환상의 코스인 남로의 중간지점이자 한나라때 서른여섯개의 열국중,남로의 최강국이었던 우전나라의 도읍지였고,「한서」의 「서역전」에선 「서성」으로 불렸던 곳이다. 우루무치에서 직항 2시간10분에 도착한 호탄비행장은 온통 잿빛 모랫벌이었다.과연 33만㎦에 달하는 중국 최대의 사막인 타클라마칸사막의 동남단답게 끝이 없는 모랫벌이 이어져 있으며 그 모래는 콩가루같은 미립자로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활주로조차 묻혀 이착륙이 어렵다고 했다. 호탄시내까지 11㎞의 공항로를 달리면서 필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창밖에 하늘을 뚫는 포플러나무와 자작나무가서 있는데 그 잎새는 한결같이 잿빛으로 모랫바람이 휩쓸고 지난 자국들이었다.이런 모랫바람속 그 어디쯤에 화사한 꽃들이 피어서 꽃 따는 사람을 불렀고,또 이 사막 어디쯤에 꽃다운 비단을 짜 낸 뽕밭이 숨었을까? 그리고 이렇게 삭막한 모랫벌 그 어디쯤 깊숙한 골에 하얀 구슬,푸른 구슬이 묻혔을까? 그런가하면 인도에서 불경을 구하여 장안으로 돌아가던 현장법사가 기원645년에 이곳을 지났는데 그들의 발길과 그들의 말방울이 울렸던 곳은 어딜까? ○화향 5천여명 수도 수나라때의 시선집인 「전수시」에는 「우전에서 꽃 따기(우전채화)」라는 무명씨의 시가 이렇게 실려 있다. 「산천수이소,초목상동춘. 역여진유지,자유채화인.」 (산천은 비록 멀리 떨어졌지만,초목의 봄은 마찬가지. 하남땅 진이나 유지처럼,여기도 꽃 따는 사람 있어라) 그런가하면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기록된 호탄은 1백여군데의 절에 5천여 화상들이 불도를 닦던 대승불교의 중심지로 그 사방을 둘러싼 뽕밭이 화려한 명주와 주단의 생산지임을 밝혔고,반고의 「한서」「서역전」엔 우전국이 장안으로부터 9천6백70리(4천8백35㎞)떨어진 곳에 3천3백의 호구와 1만9천3백명의 인구를 지닌 나라,특히 옥의 산지로 중원에 알려졌었다.「우전옥」,또는 「곤륜옥」으로 불리는 호탄옥의 성가는 1968년 하북에서 발굴된 한나라 중산왕의 「금루옥의」로 더욱 증명되었다.기원전 154년 2천4백89장의 연녹색 옥판으로 얽어 맨 시의,그것들이 몽땅 호탄의 옥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호탄을 에워 싼 두줄기의 강,백옥강과 묵옥강이 각각 동쪽과 서쪽을 흘렀다.옛날엔 이 두줄기 중간에 또 하나의 강 녹옥강이 있었다고 하니 강 이름으로 미루어서도 백옥·청옥·흑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호탄시내에 도착한 필자는 처음으로 이방감을 느꼈다.우선 거리에서 만나는 십중팔구가 까무잡잡하면서 무성한 수염을 단 위구르사람들,그들의 오똑한 콧마루에 쌍꺼풀,달걀모양의 갸름한 얼굴에 푸르딩딩한 눈동자,거기다 다혈질의 말씨에 굴뚝처럼 뿜어대는 담배연기를 보면서 어리둥절했다. 필자는 서역땅에 들어 처음으로 필자가 서 있는 곳이지금 중국의 강토이면서도 중국의 한족이 아닌 서역의 원주민속에 깊숙이 들어왔노라는 사실과 이곳 서역의 남로 도처에서 최근 민족갈등의 충돌이 가끔 일어난다는 생각때문에 얼른 여관문을 두들겼다. 이튿날 우전국의 고도를 찾기로 했다.한나라때는 36개부족국가의 하나였지만 당나라때는 「안서사진」의 하나였던 그 도읍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았다.혹자는 호탄시 남쪽 25㎞지점 카스강 서쪽언덕에 지금도 남아 있는 높이 6m,둘러 60m의 석탑근린을 두고 말하는가하면 혹자는 호탄시 서쪽 10㎞지점 요트칸(약특간)마을이라는 설이 있다. 그 두군데가 모두 우전국 도읍일 가능성은 있었다.거기에 남아 있는 폐허는 물론 거기서 지금도 출토되고 있는 기와조각·벽돌·질그릇·철제농구등이 그를 증언하고 있는데,특히 요트칸 유적지의 개울물에선 지금도 벽돌이나 질그릇 파편쯤은 쉽게 주울 수 있다는 말이었다. ○요트칸 유적지 찾아 필자는 그 말에 혹하여 요트칸을 찾기로 했다.호탄시에서 서쪽으로 10㎞라지만 아주 기름진 오아시스.가느니 굽이 굽이 농로요,농로를 따라 출렁이는 관개로,곤륜산에서 녹아 내리는 설수는 파랗고 차가웠다.게다가 농로는 자작나무가 목책처럼 늘어 섰거나 포도덩굴이 푸른 터널을 지어서 홀연 여기가 사막임을 잊게했다. 이윽고 「허톈셴바허치공사(화전현파합기공사)」라는 팻말이 보였다.거기서 좌로 돌아 또 한번 농로를 달렸다.마찬가지로 우거진 자작나무요 포도덩굴인데 길가엔 맨발의 개구쟁이가 흙투성이가 되어 뒹굴고,관개의 수문에는 빗장이 걸린 채 그 안으로 물살이 출렁거렸다.그 무렵 난데없이 「요트칸유적지」란 안내판이 보였다.필자는 습관처럼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산 한자락도 보이지 않는 편편한 언덕일 뿐이었다. 마치 환토하느라 새흙을 옮겨놓은 논바닥을 방불케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지면이었다.아닌게 아니라 버드나무 사이로 개울이 흘렀다.필자는 얼른 그 개울물에 손을 담았다.어렸을 적 뱀장어나 게를 잡았던 그 몸짓으로 개울을 뒤졌는데 당장 손끝에 잡히는 것은 빨간 토기의 파편이었다.풀잎무늬의 얇은 토기였다.또 한번 소매를 걷어 올리고 개울을뒤졌더니 월척의 붕어를 잡듯 큼직한 벽돌 하나가 잡혔다. 호탄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요트칸일대 10㎦의 유적지에는 그런한 영세한 파편들이 널려 있다고 했다.더구나 그 일대는 일찍이 홍적기의 침적된 지질인만큼 겨우 3m내지 6m의 지층속에는 상당한 질량의 박물이 잠겼을지 모른다고 했다.그동안 발굴된 도기·옥기·전폐등 특히 개원통보 같은 엽전이나 인면·수면의 도기로 보아 기원 3세기로부터 8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고시대의 궁궐이나 도시의 유적으로,그리고 당시의 주민들이 황색의 한족이 아닌 긴 얼굴,긴 눈썹에 푸른 눈,황갈 피부의 회골족,곧 오늘의 위구르족임을 추정하기에 충분했다. ○인도수행길 머물러 비록 묻히고 무너졌지만 정치의 유적을 답사한지라 이젠 우전국의 종교 유적지를 찾기로 했다.그것은 「커커마르무」(극가마일목)유적,한족들은 「찬목묘」라고 부른다. 그것은 동진때의 고승 법현(337?∼422?)이 기원399년 인도에 갈때 여길 경유하면서 불법을 닦다가 그렇게 명명했다는 작은 암자였다.호탄시에서 남으로 36㎞지점,바로파랗게 굽이치는 카라카스강 동쪽,80m의 벼랑위에 있었다.그 벼랑을 오르느라 그 산의 북쪽을 우회하여 나무 한그루 없는 능선을 탔는데 거기서 굽어보는 카라카스강 유역은 정말 스펙터클한 장관이었다.파랗게 강이 굽이치고 강가로 푸른 오아시스,오아시스는 젖줄 따라 허리띠처럼 뻗는데 그 배경은 온통 황갈색의 구릉들.그림으로는 단조로운 삼원색,그러나 영원의 구도였지만 지세로는 찬목묘가 천혜의 요새였다.발밑으로 벼랑,벼랑아래로 강물,강물밖으론 사막.그렇게 무한히 펼쳐진 곳에서 상과 무상은 날마다 피부로 오득했을 지 모른다. 찬목묘는 천연의 작은 2층석굴이었다.석굴의 높이 겨우 6m남짓,그 한쪽에 사다리를 가설했는데 그 2층까지 기어올라간 필자의 눈에는 침침한 골방 하나쯤의 공간,그러나 아무런 시야도 없었다.법현이 책상다리하고 앉았을 때 그 귓전에 들렸을 법한 강물 소리,유사의 소리를 생각하면서 사다리를 내려섰다. 그 석굴밖으로 이슬람교의 예배당인 마자(마찰) 두어칸이 있었고,산 허리를 돌아 카라카스강가에도 몇군데의 마자가 보였는데,여기 호탄 실크로드에 우뚝 선 커커마르무는 지금 종교의 금석을 한눈에 보여주는 박물관이었다.곧 불교의 유적에 이슬람의 마자가 공존한 사실말이다.바로 기원 10세기를 전후해서 불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던 것이다.
  • 유경호텔(외언내언)

    평양의 옛이름은 서경과 유경.개경(개성) 동경(경주)과 함께 고려시대 삼경중의 하나이다.북한이 평양의 보통강구역 서장지구에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1백5층짜리 초대형 호텔을 짓기 시작한것은 87년4월.김일성이 직접 평양의 옛 이름을 따 「유경호텔」이라고 명명했다. 평양도심에 공룡처럼 서있는 이 호텔은 모양도 삼각형으로 특이하지만 시설규모 또한 세계적이다.부지가 50만㎡고 높이는 3백23·3m이며 객실은 3천개.이처럼 어마어마한 호텔을 짓기로 한것은 정치적인 속셈때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89년의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에 내세우기 위한 전시용이었다.평양축전 개막과 동시에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시공을 맡았던 프랑스업체가 공사비를 못받게되자 철수해 버리는 바람에 골조와 외벽공사만 끝낸채 「유령의 집」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92년 홍콩의 화재투자유한공사와 내장공사및 호텔운영권을 놓고 상담을 벌이다 실패했고 마카오의 카지노재벌 여유오락유한공사에 호텔의 카지노 운영권을 맡기려 했으나 그것도 무산되고 말았다.세계은행에 7억달러의 차관도입을 신청했지만 북한의 국제적 신인도가 워낙 낮아 이마저 거부당했다. 그렇다고 이 거대한 건물을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는 노릇.외화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조금씩 공사를 진척시켜 지금은 1백5층중 46층까지의 객실내장공사를 마쳤다고 한다.그러나 공사를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되자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발상이 완공된 1천여개의 객실을 사무실로 임대하고 그 자금으로 나머지층의 공사를 마무리짓겠다는 것. 유경호텔 사무실 분양권을 한국의 부동산 전문업체 코리아랜드가 따냈다고 해서 화제다.내년 1월16일 정식계약을 체결,2월부터 분양하는데 한국기업은 입주대상에서 일단 제외됐다고 한다.그러나 한국기업을 제외하면 입주희망자가 몇이나 되겠는가.우리가 할 걱정은 아닌지 모르지만….
  • 투루판분지 고창고성(서역 문화기행:5)

    ◎서한군이 지은 토성… 내·외성 2중구조/성복판에 망루… 인도식 원형불탑 남아/서쪽 사막지대엔 고분 5백여기… 고대문서·미술품 등 유물 20년간 1만여점 출토 아테네가 로마의 폐허에 들어서면 보이느니 돌기둥에 돌계단이지만 서역의 폐허에 들어서면 모두가 흙의 덩어리요 흙의 동굴이다°그 황색의 폐허는 중국의 감숙·섬서는 물론 산서·하북·하남·산동 등 황하가 흐르는 그 언저리였다. 걸핏하면 토성의 자드락길이요,때로는 치열하게 활싸움을 벌였던 보루의 주춧돌이었다.그런 흔적들을 보면 흙은 먼지가 아니라는 사실과 그러한 폐허가 결코 앙상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된다.투루판에는 그러한 역사의 현장으로 두군데의 고성이 있다.하나는 서쪽 13㎞지점에 있는 교하고성이요,다른 하나는 동쪽 40㎞ 지벙에 있는 고창고성이다. 고창고성은 바로 베제크리크천불동이 있는 무르룩계곡을 빠져나와 승금구에서 약간 남쪽의 언덕위,그러니까 멀리 화염산이 병풍처럼 북쪽을 가린 나직한 오아시스에 세워진 성곽이다. 교하고성과 비슷한 역사배경을 지닌 고창고성은 교하보다 1세기,차사왕국에 주둔한 서한둔전부대가 축조한 것이다. 그곳은 적어도 한 두개의 사단 병력이 훈련을 받다가 세워총을 하고 휴식중인 연병장을 방불케 했다.5㎞의 둘레에 2백20만㎡의 넓이,바로 그러한 광장인데 그 유적들은 모두 올망종망한 높이로 유적과 유적사이의 길조차 좁고 꼬불꼬불 하였다.그것은 교하의 토성이 흙 자체의 판축인데 반해 고창의 것은 흙벽돌의 축조라서 무너지기로 말하면 와르르 붕괴되었기게 그렇다. ○외성엔 4개문 설치 그들 설계의 구도도 달랐다.교하의 그것이 남북의 중앙대로를 중심한 동서의 정연한 분포임에 비추어 고창의 그것은 불규칙한 정방형의 외성이 있고 한 복판에 내성이 있는 이중구도로서 그 내성의 주위로 사원이나 민가들,다시 변두리로 무덤들이 산발적으로 분포된 것으로 보였다. 온전한 외성은 12m의 높이며,그 두께도 넉넉했다.그동안 출토된 기록에 따르면 외성 4면에 「현덕문,「금복문」,「금장문」,「건양문」,「무성문」등의 성문이 가설되었다고 한다.과연 외성의 풍모는 당당했다.내성 어디쯤으로 보이는 복판에 국기대나 첨성대인양 높다란 축대가 솟았는데 거기에 규칙적으로 뚫린 구멍으로 보아 당시 둔병을 총지휘하던 교위의 청사나 말대쯤으로 쓰였을지 모른다.보다 분명한 유적은 동남쪽과 서남쪽에 남은 불사의 폐허였다.동남쪽의 그것이 인도식 불탑의 원형층탑이라면 서남쪽의 그것은 사각의 튼튼한 기초위에 원형의 건물이다.그 언저리로 널따란 마당에 우두커니 선 필자에게 적어도 천년전 서로 다른 피부에 서로 다른 언어와 복장들이 오락가락하면서 희희낙락했을 그 소리들이 들리는 듯 했다. 명나라 초엽의 명시인이었던 진성의 「화주성」이란 시가 바로 이 자리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창구치월씨서, 성곽숙조시사희. 유적상존당제도, 거인쟁도한관의. 범궁영락류금상, 신도류량와석비. 정마불지풍토이, 격화유자인시」. (고창은 옛날 월씨의 도성 너녘, 성곽은 썰렁한채 저자도 한산해. 폐헤엔 아직도당나라 법도, 주민들은 다투어 한관을 쳐다보네. 절터엔 스산하게 공부처가 뒹굴고, 신도엔 황량스레 돌비석이누웠네. 전마는 달라진 풍토에 영문 모른채, 꽃 그늘에 사람보고 소리지르네) ○현장법사도 머물러 지금부터 6백년전의 작품으로 보이는데 그때만해도 성곽이나 사원은 무너졌어도 유물은 즐비한데다 아직 주민들이 살았음을 짐작케 한다. 여기서 고창의 역사를 거슬러 보면 고창성을 다스렸던 회골의 마지막 고창국왕인 훠츠할(화적합이)이 몽골군의 위공에 못견디어 전사하고 그 전화로 소실되던 1275년까지 고창은 1천4백년동안 때로는 군현의 치소로,때로는 와국의 서울로 그 나름의 번영과 웨세를 부렸던 곳이다. 기원전 1세기는 서한 둔병들의 주둔지로,기원 327년엔 전향(전량)의 군현으로,기원 460년엔 원주의 함·장·마·국씨 등이 서로 번갈아 「고창국왕」을 1백40년이나 누리다가 640년에는 당나라의 군현으로,840년에는 회골족이 와국을 세워 가장 강력한 왕권을 부리다가 훠츠할에 다다른 것이다. 무덥고 낮은 투루판에도 많은 와국이 엎치락 뒤치락 흥망을 반복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흥성했던 와국으로 두말할 것 없이 서로 쿠처(고차),동으로 하미(합밀),북으로 천산의 북록 창지(창길)까지 넓은 영토를 4백년이 넘게 떵떵거렸던 회골의 「고창왕국」을,그리고 가장 흥성했던 군형시기로 한·당(한·당)두 조대를 들수 있겠다.그것은 고창이란 지명이 곧 한나라때 대완국을 원정하던 이광장군에 의해 명명된 것으로 「지세가 높고 넓은데다 백성이 창성하다(지세고창 인서창성)는 뜻으로 미뤄보아 그렇고,당나라 때인 630년 2월경 현장법사가 인도로 가던중 고창왕 국씨의 요청으로 한달이나 머물면서 불법을 강론했다는 데서도 문물이 성행했음을 알게한다. 당나라와 당나라 이전의 문물이 출토되어 「투루판문서」로 불리는 지하박물관은 바로 고창고성의 서단 하라허줘촌 사막에 있었다.이름하여 「아스타나(아사탑나)고분」.50년대말에서 70년대까지 계속된 발굴탐사에서 드러난 5백여 고분은 10여㎦의 넓은 모랫벌에 묻혀 있었다. 그것은 흡사 우리나라 한강변 고수부지에 쌓아 둔 동그란 모래 둥지 같았다.도시 이토록 삭막한 사막에 무덤은 웬 일이며 더구나 거기서 2천7백여점의 고대문서를 포함한 만여점의 미술품·농기구·생활구등이 쏟아져 나왔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대부분 부부합장 묘 필자가 답사한 세걔의 무던은 그 구조가 대체로 비슷했는데 지상에서 비스듬히 팬 1·20m의 묘도를 따라 묘실에 들어가면 안창에는 묘주의 시신,그 중간에는 두개 혹은 네개의 이실이 사랑방처럼 양쪽에 설시되어 있었다.삼면의 묘벽에 벽화를 두르고 누운 시신은 대체로 부부,그것도 미라로 누웠고 그 미라 가운데로 장난감같은 헌금함,그 뒤로 삶인지 죽음인지 알수 없도록 희미한 불빛에 묘실을 지키는 소년이 졸고 있었다.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소년은 웬걸『시원해서 좋다』며 빙그시 웃었다.하긴 서역 사막에서 미라를 만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건조한 기후와 토질 때문에 시신도 얼른 수분을 뺏긴 채 건시로 남는다 했다. 진나라에서 당나라때까지 고창 주민들의 공동묘지였던 아스타나무덤에는 뜻밖에 북량의 장군으로부터 당나라의 도호같은 고관도 끼어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부부합장,혹은 가족합장이었고,관목보다는 초석이나 목판같은 간소한절차를 따랐음에도 그 속에 벽화와 문물을 시설허가너 부장한 것이 특기할만 했다. 특히 필자가 보았던 인물화나 동물화같은 벽화는 진·남북조시기의 사실적이면서 전원적인 생활의 단면이 생동하게 표현되어 있었다.그것들은 어쩌면 무덤의 주인이 살았을 때의 생활이요 윤리였을 것이다. 아스타나고분에서 투루판으로 돌아오는 도중,투루판 동쪽 2㎞지점에 있는 훤칠하고 준수한 건축물인 「에민탑(액민탑),속칭 소공탑을 답사했는데,1777년 투루판 군왕이었던 에민의 수복을 빌기 위해 그의 아들 수라이만(소래만)이 청대의 이름난 위구르족 건축사 이푸라인(이포랍음)을 시켜 세운 높이 37m 72단 사다리의 이슬람식 탑이다. 커다란 강당크기의 예배당 입구에 우뚝 솟은 탑신에는 삼각·물결·꽃잎·마늘덩굴등 열몇가지 무늬가 적갈색으로 새겨져 있는데 얼핏 단조로운듯 하면서도 근엄한 분위기를 뿜으면서 멀리 천산산맥의 만년설을 마주보고 있다.이 탑은 그 탑기에 새긴 비문이 한문과 위구르문자인 것처럼 또 한가지 성공적인 동서 융합이었다.
  • 여의도광장에 들어설 공원 이름(조약돌)

    ◎최 서울시장,「벅정희공원」 제안 ○…최병렬서울시장이 23일 여의도개발계획에 대한 공청회 자리에서 새로 조성될 여의도공원의 이름으로 「박정희공원」을 제안,발언진의를 놓고 의견이 분분. 최시장은 공청회에 앞서 인사말 도중 사견임을 전제로 『여의도공원의 이름으로 박정희공원이나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취지에서 광복공원으로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 이에 대해 조대성(성균관대)교수는 『시민 모두의 장소를 특정인의 이름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반대를 표시. 한 방청객은 『박 전대통령이 북한의 김일성광장을 의식해 만든 5·16광장을 최시장이 박정희광장으로 명명하자고 제안한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고 한마디.
  • 이 총리 첫 당부/“전문성·책임감 갖도록”

    ◎공식 일정만 13건 바빳던 집무 첫날/민자 방문,정부개편안 조속 처리 요청/“통일부총리 더 오래하고 싶었다”/이영덕 전총리 「건강사회 운동」 관심 당부/민주당방문 이 대표 거부로 무산 임명장을 받은지 3일째이자 취임식 날인 19일 이홍구국무총리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비서실에서 파악한 이총리의 공식일정은 자그마치 13개. ○…휴일인 18일 하오 2시쯤 청사로 출근해 김시형행정조정실장,이흥주비서실장으로부터 총리실의 현안을 간략하게 보고받은 이총리는 19일 아침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으로 공식 집무를 시작. 이총리는 9시쯤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로 출근해 4층에 있는 통일원 회의실에서 5급 이상 직원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임식에 참석. 이총리는 이임사에서 『지난 4월 통일원에 올 때는 여러분들이 재수생이라고 해서 재수생이기에 더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며 또 좀더 오래 일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는데 7개월 반만에 해어지게 돼 아쉽다』고 심경을 피력. 이총리는 이어 19층 대회의실에서 열린국무총리 이·취임식에 참석한 뒤 옆에 마련된 국무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첫 국무회의를 주재. 이총리는 이·취임식 직전 이영덕전총리와 잠시 면담했는데 이전총리는 자신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 만들기 운동」에 대한 이총리의 지속적인 관심을 요청. 이총리는 약 1시간동안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9층에 있는 총리실로 내려와 회의실에서 2백여명의 직원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상견례. 이총리는 이 자리에서 『지금까지 전문성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충실해 달라』고 당부. 이총리는 이어 소회의실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취임소감과 함께 기자들의 몇가지 질문에 답변. 이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국무총리라는 자리를 맡게 된 것이 새로운 경험인 것만은 사실』이라면서도 『평소 국무회의에서 앉던 총리의 옆자리에서 바로 한자리 옮겨 앉은 것일 뿐』이라고 여유를 표시. ○…이총리는 하오에는 국회로 가 김종필 민자당대표와 황락주 국회의장을 차례로 인사차 예방한 뒤이날 개회된 임시국회 개회식에 참석. 이총리는 이기택 민주당대표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이대표 쪽이 『국회가 열려도 국회 대표실에 안 나올테니 올 필요 없다』고 거절해 무산.이대표는 박지원대변인에게 이총리를 비난하도록 지시하기도 해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기도. 이에 비해 김종필대표는 이총리를 극구 칭찬해 대조.김대표는 이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어려운 때 중책을 맡긴 것은 그만큼 신뢰한다는 증거』라면서 『부총리도 해보셨고 경험이 풍부하니 무난히 잘 해나갈 것』이라고 덕담을 한뒤 당정협조를 긴밀히 하자고 당부. 이총리는 김대표에게 『정부조직법개정안을 빠른 시일안에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고 김대표는 『임시국회가 닷새간의 일정이며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심의하게 될 것』이라고 협조를 다짐. 이총리는 이어 열린 국회 본회의에 참석,인사말을 통해 『세계화 추진과 국민생활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 ○…이총리는 하오 3시쯤 청사로 다시 돌아와 박재윤 재무부장관으로부터 일상적인 보고를 받고 4시에는 KBS­TV및 라디오,그리고 기독교방송의 뉴스프로그램과 대담. 이총리는 이날 저녁 시내에 있는 냉면집에서 오래 전부터 약속이 돼있던 통일원 출입기자들과의 만찬을 끝으로 일정을 마쳤는데 이총리도 이총리이지만 수행했던 이흥주 비서실장도 빡빡한 스케줄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 한편 이총리는 20일에도 윤관 대법원장,조규광 헌법재판소장을 예방한뒤 이시윤 감사원장도 접견할 예정. ◎이 총리 회견 내용/휘어잡기 보다 결과로 말하는 총리 되겠다”/정책 일관성·효율 중시/국민이 믿는 정부되게 『새 내각은 언론이 「세계화내각」이라고 명명한대로 세계화라는 큰 목표에 걸맞는 개혁의 자세를 완비하고 거기에 필요한 전략을 수립해 집행해 나가는 한편 국민생활의 안전과 안정에도 모든 힘을 기울여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를 만드는데 역점을 기울이겠습니다』 이홍구 신임 국무총리는 19일 상오 취임후 첫 기자회견에서 국정의 당면 과제를 이같이 두가지로 요약했다. 이총리는 남북문제에관해 『통일·외교 현안은 총리가 바뀌었다고 해서 새로운 정책이나 방안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국민의 지혜와 뜻을 모아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애쓰겠다』고 말했다. 곧 단행될 개각에서 총리에게 주어진 각료들에 대한 임명제청권을 어떤 기준에 따라 행사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이미 세계화에 적합하고 청렴하며 미래지향적일 뿐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의 발탁이라는 4가지 기준을 제시했다』고 상기시키고 『이같은 기준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제시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 어느 정도 국민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논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총리는 역대 총리들과 비교한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극단적이거나 교조적인 태도를 좋아하지 않으며 가급적 무리가 적은 방향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밝히고 『대학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지적인 태도와 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과단성이 있다거나 강력한 장악력을 갖고 있다는 등의 스타일 보다는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한다』면서 『시원하게 결정적으로 일을 추진하지 못한다는 언론의 지적을 충고로 받아들이겠다』고도 했다. 강화되는 총리실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는 『총리실이 내각을 일관성 있는 유기체로 움직이게 하는 중심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권한과 역할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국회·학계·국민들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조직 개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풀이하고 『국민적 합의가 바탕이 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첫 「CD롬잡지」 내년2월 창간

    ◎기사·사진·음악 등 각종 정보 담아 인쇄물 대신 CD­롬을 이용해 일반기사는 물론 사진·음악·비디오등의 각종 멀티미디어 정보를 담아 격월간으로 정기간행하는 국내 최초의 CD­롬 잡지가 내년 2월에 창간된다. 전자신문사가 발간하는 「클릭(Click)」이란 이 잡지는 최근 뉴미디어로 각광받고 있는 CD­롬의 형태로서는 사실상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작되는 정기간행물이란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컴퓨터 마우스조작만으로 손쉽게 사용 할 수 있다는 뜻에서 「클릭」으로 명명된 이 전자잡지는 문자로 된 기사는 물론 동화상(비디오)·사진·그래픽·음악 등 총 9백메가바이트 분량의 각종 정보를 2장의 CD­롬 타이틀(원반소프트웨어)에 담아 간행된다. 전자신문은 이 CD­롬 전자잡지의 독자가 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젊은 연령층인 점을 감안해 컴퓨터 정보,연예가 중계,신세대 조류와 갈만한 명소소개,영상갤러리,영화·음반·비디오·게임 소개,세계 유명대학 탐방,광고 등의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 백두산(연변 조선족1백년:9)

    ◎민족의 영산… “조국 그리우면 오릅니다”/산자락에 조선족 마을 여러개… “고향으로 생각” 조선족들은 중국영토에 얹혀 살지만 정신만은 아직도 부여·고구려·발해 땅에 살고 있다.이러한 의식으로 사는 것은 백두산 때문이다.그리고 백두산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의식은 지워지지 않는다.언젠가 단신으로 백두산등정을 했을 때의 일이다.연변조선족부녀회 임원 몇명과 만났다.『한국서 오셨구만요.참으로 멀리서 오셨군요.통일만 되면 바루 올라오실걸…』그렇다.중국대륙을 횡단해 우회하며 올라온 필자를 측은히 여겨 준 것이다.『우린 만주땅에 살지만 백두산이 있는한 외롭지 않아요.조국이 그리우면 백두산엘 오르는걸요』이토록 정신적 지주가 된 백두산은 진실로 물질적 정신적 모신의 요람이었다. 문득 가곡원류에 실린 이름 없는 이의 시조 한수가 떠오른다. 「백두산에 높이 앉아 앞뒤뜰 굽어보니/남북만리에 옛 생각 새로웨라/간 님의 정령 계시면 눈물질가 하노라」 이 시조작가도 넓은 만주벌을 잃은 설움에 한숨 지은 것이다.백두산은 신령의 산이다.한민족의 젖줄이며 정기가 담긴 영봉이다.최고봉이라는 것 뿐 아니라 한반도와 만주벌의 중앙에 우뚝 서서 그 옛날 한민족이 활약했던 넓은 대지를 굽어보며 흥망성쇠를 지켜본 영산이다. ○천지는 하늘의 호반 왜정 때는 잔혹한 일본인의 탄압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가냘픈 목숨을 지탱한 곳이고,일본군의 총칼과 맞서 조국을 위해 싸운 독립군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백두산은 마치 모신의 가슴처럼 굶주린 고아들을 먹였고,외로운 고아들을 따스하게 안아준 어머니 가슴이었다. 백두산 정상에 오르면 누구나 『아아,백두산』하고 절규하지만 순간 자연의 외포와 엄숙함에 할말을 잃고 침묵이 있을 뿐이다.병풍처럼 둘러싸인 기암절벽안에 검푸른 물결로 덮인 잔잔한 천지는 거짓없는 하늘의 호반이었다.마치 금세라도 해룡이 용틀임하며 승천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그래서 천지를 용왕담이라고 하나부다.예로부터 백두산신령은 나라의 평화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민간신앙의 표상이었다. 백두산 정상에서 얼마 안되는 곳에 중국에서 명소로 꼽는 장백폭포가 있다.달문을 통해 흐르는 천지의 물줄기가 폭포로 힘을 얻어 벌을 적시면서 송화강에 합류한다.천지의 물줄기는 분명 조선족의 젖줄이 된다.폭포로부터 얼마 안되는 곳에 작은 담수호가 숲속에 슬며시 모습을 나타낸다.사람들은 이곳을 소천지라 부른다.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 작은 호수가 그토록 유명한 「선녀와 나무꾼」의 무대라는 것이다. ○중국선 장백산으로 나무꾼이 사냥꾼으로부터 쫓기는 사슴을 도운 덕택에 이 호수에서 멱을 감던 선녀를 아내로 맞는다.그러나 보여서는 안될 선녀의 옷을 보인 탓으로 아내는 그 옷을 입고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간다.이 슬픈 설화가 본토에서는 금강산이 무대로 되어 있지만 이곳 조선족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현재의 공간에다 설정하고 있다.이리하여 백두산을 업고 사는 만주벌을 삶의 터전으로 하면서 고향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발현이 강하게 나타난다. 폭포를 따라 내려오면서 처음 만나는 도시가 이도백하진이다.도시라기보다는 백두산의 풍요로운 임업·광산·동식물을 관리하는 관청이 있는 농촌마을이다.『안녕하십니까?』로 통하는 마을,이곳도 조선족이 개발한 지역이다.인근에 옹기종기 작은 마을을 형성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싸리울타리에 싸릿문,호박덩굴이 지붕을 덮은 모습,닭들이 마당에서 모이를 쪼는 모습이 전날 한국 농촌의 풍경을 옮겨 놓은듯 하다.모두 조선족 마을이다.삼도진을 거쳐 매음마늘을 지나면 평지에 이른다.여기부터 평강벌이다. 백두산 자락이 펼친 면적은 8천㎦로서 전라북도의 면적과 비슷하다.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경계를 하고 있으니까 자연히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부른다.중국문헌을 뒤져보면 옛날에는 「넓은 황야 가운데 있으니 불함이라 이름한다.숙신땅에 속한다(산해경)」고 되어 있다.한나라 때는 「단단대령」이라 불렀고,남북조의 위시대는 「개마대산」또는 「태백산」이라했다.「장백산」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때 비로소 나온다.한편 백두산을 배경으로 살아온 민족을 보면 숙신족·읍루족·물길족·말갈족·여진족·만주족 등 여러 민족을 들 수 있으나 우리 민족도 부여·고구려·발해 등 여러왕조가 백두산에 발상을 두고 있다. ○「밝달」이란 의미 유래 이와같이 백두산을 배경으로 여러 민족들이 발붙여 살아왔으나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오직 우리 민족만이 뿌리를 내리고 민족의 성산으로 숭상하면서 우리의 정신적 지주로 여겨 오래오래 살 것을 표상하고 있다.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천상에서 하강한 곳도 태백산 아래 신단수로서 이곳에 신시를 만들었다.발해 대조영이 건국의 기틀을 만든 곳도 태백산이며,부여 금와왕이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만났다는 곳도 태백산으로 다름 아닌 백두산이다. 백두산의 명명유래는 성해응의 「동국명산기」에 나타난다.즉 흰독을 엎어놓은 듯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란다.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네계절 산마루에 흰 눈이 덮여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한편 최남선은 우리의 명산들에 백자가 많이 들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광명한 산악,해가 돋는 신성한 고지 등을 의미하는 「밝뫼」나 「밝달」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어떻든 이 백두산을 우러러 보며 지키고 있는사람들은 다름 아닌 중국조선족들이다.『우리 조국땅에 살아요』라는 말은 백두산에 사는 한 그게 남이든 북이든 조국이라는 의식에서다.그리고 백두산에 얽힌 수많은 전설들이 우리 동포들에 의해 생성되고 있음은 의식의 연장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이호왕 고대교수/태 마히돈상 수상

    【방콕 연합】 유행성출혈열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이호왕 박사(66·고려대 명예교수 겸 한국바이러스학회 명예회장)가 30일 태국의 권위있는 금년도 마히돈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태국의 마히돈상재단은 이날 이박사와 미국 록펠러대의 윌리엄 트레이저 박사가 대중보건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게 인정돼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밝히고 이들은 내년 1월21일 방콕에서 푸미폰 아둔야데트 태국국왕의 둘째딸인 마하 차크리 시린돈 공주로부터 각각 상장과 함께 상금 5만달러및 메달을 받게 된다고 발표했다. 마히돈상재단은 이박사가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를 발견,이를 한타(Hanta)로 명명했으며 백신개발에도 성공했다고 수상이유를 밝혔다.
  • 항암나무(외언내언)

    숲을 돈으로 따져봤다.하도 돈이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라서 돈으로 환산해야 바로 그 가치를 인정할 것 같아 계산해 냈다고 한다.한반도 휴전선 이남 산림면적 6천4백60◎의 공익적 기능이 한해 27조6천1백억원이라 한다.국민총생산액의 약 12%되는 액수다.국민 한사람이 입는 혜택은 연간 63만원쯤 된다고 한다.숲이 감당하고 있는 대기정화 홍수방지 수원함양 토사방지 같은 큼직한 공익기능만 기준하여 산림청이 계산해 낸 것이다.숲이 주는 정서적 기능과 피톤치트같은 건강효소 발산,수피 열매 약초 경제효과까지 포함시키면 그 가치액수는 더 올라갈 것이다. 우리네 소백산과 설악산 오대산에 군락하고 있는 주목과 같은 중국 흑룡강성 주목이 항암나무로 명명되어 대량재배되고 있다는 소식이 외신으로 전해졌다.주목껍질과 잎에 항암물질인 주목 알코홀이 0.016%와 0.007%포함된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흑룡강성은 앞으로 3년간 3백33㏊ 면적에 주목을 재배할 계획이라 한다. 주목에서 항암성분을 추출해 내는 연구는 미국이 먼저 시작했다.미 국립암센터(NCI)가 60년대초 암세포근치제를 천연물에서 찾는 연구에 들어갔고 13만2천4백여종 동식물을 대거 채집해 분석하는 중 인디언들이 주목을 소염제로 사용해온 사실에 착안해 주목 항암효과를 실험했다.30여년 연구끝에 주목 껍질에서 「택솔」이라는 항암물을 추출해낸 것이다.이 약은 암세포를 마비시켜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게 작용한다고 한다.난소암 치유에 효과를 나타냈고 유방암 폐암 치료에도 응용된다고 한다. 우리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도 지난해 주목나무 종자 씨눈에서 택솔성분을 대량 추출하는데 성공했다.한국산 주목 종자와 씨눈 택솔함량이 5.9%로 미국의 태평양 주목껍질 택솔 함량 0.06%보다 1백배나 많다고 한다.우리도 주목을 국민의약품 원료로 보아야 한다.정원수 가구용으로 남벌 도벌되는 것부터 막고 황폐된 군락지 복원에도 힘써야 한다.
  • 비·인니·말련·브루나이 역내 무역자유화 추진/8개항 결의안 채택

    【다바오(필리핀) 로이터 교도 연합】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중 특히 낙후된 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4개국은 19일 향후 지역간 자유무역 실현을 위한 8개항의 결의안을 채택,이 지역을 동남아국가중 핵심 무역시장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일대 혁신의 계기를 마련했다. 4개국 기업가들은 이날 필리핀 남부도시 다바오에서 「동아시안성장지역(EAGA)회의」로 명명된 3일간의 회담을 끝맺으면서 이 지역의 풍부한 어업·삼림·관광자원을 개발하는 한편 EAGA간의 무역과 경제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한 광범위한 조처를 이행키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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