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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총련 시민 2명 폭행치사후 한국 학생운동 대중지지 상실”

    ◎NYT 보도 군부독재의 종말을 가져오고 10년전에는 직선제를 있게 할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한국의 학생운동이 최근 대중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즈가 21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금 한국의 과격학생들은 사회에서 어떤 동조 목소리도 얻기 힘들 지경까지 몰리고 있다고 전하면서,많은 한국인들은 한총련 학생들의 명동성당 단식농성에 대한 신문·TV보도에 대해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문은 과격학생에 대한 국민들의 이같은 감정은 학생들이 경찰정보자라는 이유로 2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구타해 숨지게 했다고 자인한 이후에 고조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학생운동에 대해 한 건설회사사장은 『한생들의 행위가 긍정적이고 받아 들여질만 하다면 괜찮겠지만 폭력과 살인은 그렇지가 않다』면서 『그들의 과격이념이 자신들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과격학생들은 94년에 사망한 북한 김일성의 교시를 설교하고 있으며 공산주의 계급투쟁의 가치를 받들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 명동성당 단식농성 끝내/어제 탈진으로 입원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서울 명동성당 단식농성이 20일 끝났다. 명동성당은 이날 하오 8시쯤 농성중이던 5명의 대학생들이 탈진 기미를 보이자 119구급대의 협조를 얻어 병원으로 옮겼다.
  • 한국무용가 김매자(이세기의 인물탐구:135)

    ◎원형을 벗어던진 파격의 몸짓/「맨발」의 공연 등 쉼없는 실험정신/압축된 관능성이 몸전체에 흐르고/역동적 손놀림에도 현대적 춤사위 무용가 김매자가 국제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84년 미국의 무용전문지 「댄스 매거진」 5월호 표지에 그의 춤사진이 실리면서부터다.이 잡지는 기다란 명주수건에 빨간 옷고름이 물결치는 「김매자 살풀이」를 싣고 「그의 춤은 단아하면서도 감동적이다.무용의 선구자이며 실험자로서 그는 지난 20년간 한국전통무를 연구하고 분석해왔다」고 쓰고 있다.한국에서도 고정구독자가 많은 이 잡지에 한국무용가가 표지에 실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창무단 통해 인재양성 2년이 지난 86년,그는 워싱턴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꽃신」을 공연하여 다시 한번 대대적인 호평을 받았다.꽃신을 만드는 갓바치의 딸과 백정의 아들과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재미작가인 김용익의 동명소설로 미국공연에서는 「웨딩슈스」란 제목으로 소개되었다.「워싱턴 포스트」가 「창무회의 정교한 광채」란 타이틀 아래 「조용한 표면밑에서 소용돌이치는 교묘한 긴장과 드라마틱한 움직임을 주의깊게 살펴볼때 그의 춤에서는 최면상태의 믿기 어려운 고요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호평했다.창무회의 워싱턴 공연은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한국유물 전시비용 모금을 위한 것으로 한국무용이 워싱턴 무대에 소개되어 「워싱턴 포스트」의 호평을 받은 것은 역시 그가 처음이었다. 이후 그는 뉴욕과 일본,유럽과 소련에 드나들면서 국제적인 무용가로 부상하고 있었다.90년 인도국제무용제에서는 그의 창작무인 「숨」이 인도의 「마니푸리(Manipuri)춤」과 흡사하다는 유사성을 지적받았고 핀란드의 큐오피오예술제때는 평론가 티나 라마사리가 「한국의 장엄한 춤사위가 큐오피오에서 물결치고 있다.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춤을 볼수 있었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김매자가 우리 한국무용에서 갖는 비중과 영향력은 대단한 편이다. 그는 첫째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창무단 공연에 투입시키고 있고 두번째는 언제나 선도적인 입장에서 춤이 할수 있는 수많은 다양성 발굴 외에도 춤의 본질에 깊이 파고들어 가장 저변에 깔린 춤의 생명력과 원초적 움직임을 끌어내고 있다.인도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숨을 쉴때는,오랫동안 강렬히 채색된 응어리가 내 핏속에 머무른다」고 말했다.집중적으로 기를 심장의 중심에 모았다가 춤으로 서서히 분출한다는 것이다.실제로 그의 창작춤인 「숨」은 삶의 동작의 진수로서 어깨를 들어올릴 때마다 압축된 관능성이 몸 전체에 전류처럼 흐른다.또 열두폭 치마가 바람에 일렁이는 듯한 「산조」는 한과 슬픔 이전에 허심탄회한 허튼 흐트러짐을 보여준다.황병기 작곡의 「비단길」에서는 무대전체를 휘덮는 거대한 장막을 펼쳐 발레에서나 볼수 있는 디베르티멘토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춤은 청아하고 정치되기보다 남성적으로 폭이 크고 광활하다.「살풀이」의 특징인 정중동에서도 동중동을 구사하고 옆으로 구부렸다 펴는 잦은 발디딤새와 한손을 직각으로 뻗치는 역동적인 손놀림도 옛것을 전수하여 답습하는 차원이 아닌 현대적 춤사위가 언뜻언뜻 반영된다. 저팬파운데이션이 초청한 일본춤 연구를 6개월간 끝내고 지난 5월 아카사카국제교류 포럼극장에서 열린 연구발표회에서도 그는 「살풀이춤」을 일본의 피리인 캉(능관)과 한국의 가야금 즉흥연주에 맞춰 한·일춤의 공통점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그것은 일종의 변형된 「살풀이춤」이었으나 「동양 춤이 세계 춤무대의 중심으로 갈수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일본의 「노우(능낙)」나 「가부키」의 면모가 숨어있는가 하면 일본적인 잦은 발디딤새속에는 우리 살풀이 산조의 의연한 춤사위가 녹아들고 있었다. 이보다 훨씬 이전인 지난 74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개인발표회에서 그는 앨런 하바네스의 곡을 황병기 가야금연주로 춤춘 적이 있고 「한오백년」 가락을 전자음악에 실어 한국무용에서는 처음으로 「맨발」로 춤을 추어 무용계를 경악시키기도 했다.당시 무용평론가 정병호씨는 「저런 것도 춤인가」라고 신랄하게 비난했으나 5,6년이 지나자 「김매자같은 창작성과 독창성이 없다면 그것은 예술가라고 할수 없다.전통무라도 자신만의 개성과 안무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을 바꾸게 되었다. ○폭이큰 남성적 춤동작 누구나 자신의 생애에서 보람과 성취,아니면 미처 다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게 마련이다.그러나 김매자로서는 춤과 관련된 분야에서 자신이 추구하던 모든 것을 성취했다고 할수 있다.재미사업가이던 부군 임기수씨의 배려로 마포구 창전동에 그만의 창무춤터를 갖는가 하면 이 장소는 무용과 연극의 요람이 되었고 무용학교인 창무예술원을 개설,외국교수를 초빙하고 있고 93년부터는 춤전문지인 「댄스 아트」를 발간,1년의 절반은 해외 초청공연에 나가고 있다. ○전문지 「댄스 아트」 발간 그는 강원도 고성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고교를 다녔다.그 시절엔 부산민속학원에 다니면서 창과 부채춤을 배우고 임춘앵과 김경애 등 여성국극에 반해 지방공연에 따라다니기도 했다.그때 연기지도를 해준 이가 연극배우 윤소정의 부친인 윤봉춘씨다.이후 그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현대무용」으로 돌아서 황무봉 무용연구소에 다니면서 레슨비가 없어 집에서 싸준 도시락을 친구들에게 팔아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의 춤은 섬세의 극치로서 몸의 선이 극도로 표현할 수 있는 정제된 증류수를 길어올리는가 하면 정과 동,평면성과 입체성이 접속되는 묘한 미적 반란을 꾀하기도 한다.여전한 과열성과 현대성을 과시하면서 하나의 동작에도 해체·분석·변형을 거쳐 그만의 명상과 상징성으로 자못 동양주의적 미학관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숨소리로부터 출발하는 그의 「춤본」은 우리춤에 대한 확실한 「보존과 혁명」이라는 차원에서도 그의 선구자적이고 실험적인 업적은 우리 무용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연보 ▲1943년 강원도 고성 출생 ▲66년 이대 체육과 졸업 ▲68년 경희대 대학원 무용과 졸업 ▲68∼91년 이대 무용과 교수 ▲76년 창무회 창립 ▲79년 파리 자크레조크학교 마임무브먼트연구 ▲81년 사단법인 한국무용연구회 창립,세계민속음악대회 불교의식무용공연 ▲85년 창무춤터 개관 ▲92년 창무예술원 건립 ▲93년 월간 「댄스아트」 창간 〈저서〉 「한국무용사」(77년·금연재)「한국의 춤」(90년·대원사) 〈현재〉 창무예술원 예술감독,창무회 지도교수
  • 한총련 명동성당 농성/대열 이탈자 계속 늘어/12명만 남아

    서울 명동성당에서 6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 8명이 17일 탈진 등으로 성당을 이탈,학생 12명만이 남아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대선자금 공개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던 학생 31명 가운데 이날까지 19명이 농성장을 떠났다.
  • 명동성당/한총련농성단 해산 재요구

    ◎“교회정신 위배… 해산땐 안전귀가 보장” 명동성당은 14일 성당 입구 계단의 가로분리대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농성중인 한총련 학생들에게 성당을 떠날 것을 거듭 요구했다. 명동성당 장덕필 주임신부(57)는 하오 8시30분쯤 사흘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명동성당은 용서와 평화의 장소이므로 단식농성과 같은 건강을 해치는 행동은 교회정신에 어긋난다』면서 해산을 촉구했다. 장신부는 『만약 해산하겠다면 경찰과 협조해 안전한 귀가를 보장할 것이며,경찰 조사나 연행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한총련 농성장에 “계란 세례”(조약돌)

    ○…13일 상오 7시20분쯤 서울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오던 한 여신도가 성당입구 계단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중인 한총련 학생들에게 계란을 던져 이들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대변. 40대 후반의 이 신도는 성당입구 계단을 내려가다가 갑자기 핸드백에서 미리 준비한 계란 1개를 꺼내 한총련 학생들을 향해 던져 농성중이던 한 여학생의 뒷머리를 맞혔다. 성당 관계자는 『재야단체와 노동조합 등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장기농성을 벌여왔지만 이렇게 계란을 던진 적은 없었다』면서 『등돌린 국민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속히 학생들이 성당을 떠나야할 것』이라고 일침.
  • 한총련 너무 뻔뻔하다(사설)

    한총련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명동성당에서 쇠사슬로 서로 묶고 농성에 돌입하는가 하면 『이석씨는 공안당국이 학생을 가장한 복면프락치들을 시켜 폭행,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해괴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한총련 지도부가 이석씨를 자신들이 죽였다고 발표할 때는 언제고,이제와서는 PC통신을 통해 공안당국이 살해했다고 허위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니 그런 뻔뻔스런 적반하장이 또 어디 있겠는가.명동성당에서의 농성도 그렇다.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이적단체의 조직원들이 성당을 피난처로 악용하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자신들의 실체를 호도하기 위해 외치는 『대선자금 공개』『정권퇴진』등 구호는 가증스럽기조차 하다. 명동성당 평신도 사목위원회가 한총련 학생들의 성당농성에 대해 『한총련의 폭력노선은 교회정신에 맞지 않으니 나가달라』고 요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처사다.차제에 명동성당은 종교적 성소가 국기를 흔드는 무리들의 투쟁장소로 오염되는 것을 더이상 용납치 않겠다는 의지를 단호하게 천명해야 할 것이다. 한총련은 무엇보다도 대학가의 냉담한 반응에 주목해야 한다.이화여대,중앙대,효성가톨릭대 등 20여개 대학 총학생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한총련 지도부는 국민에게 백배사죄한 뒤 전원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반성하는 뜻에서 농촌봉사활동을 벌일 것을 결의했다.서울대에서는 80년대 학생운동의 주역들이 모두 초청된 가운데 한총련을 비판하고 새로운 학생운동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한총련이 설 땅은 이제 사라졌다. 지하로 잠적한채 PC통신 등을 통해 비현실적인 투쟁지침을 하달하는 한총련 지도부나 스스로 그 하수인이 되어 자기 몸을 결박한 채 뭇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명동성당의 저 어리석은 「단식농성단」은 현실을 직시하고 각성해야 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사죄하고 자수하라.
  • 명동성당 “한총련 학생 나가라”

    ◎사목협 “교회정신에 안맞아 수용 못해”/자진퇴거 않을땐 “할수있는 모든 조치 취할것”/어제 31명 계단난간에 쇠사슬묶고 단식농성 시민 이석씨 폭행치사 사건을 계기로 한총련에 대한 비난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명동성당이 12일 성당입구에서 농성에 들어간 한총련 학생들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박광순 명동성당 사목협의회 총회장(58)은 이날 하오 8시쯤 성당 입구에서 농성중인 한총련 대학생들에게 『교회는 지금까지 어려운 분들을 도와 왔지만 한총련은 교회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수용할 수 없다』며 농성 학생들에게 소속학교로 돌아가 달라고 요구했다. 박총회장은 『오늘 하오 7시쯤 평신도 회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사목협의회에서 이같이 입장을 정리했다』면서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교회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한총련 학생들이 성당에 찾아와 단식농성을 하겠다고 했을때 버스에 태워 경희대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명동성당이 이처럼 농성학생들의 해산을 요구한 것은 뚜렷한 명분도 없이 무고한 시민을 때려 숨지게 할 정도로 순수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한총련을 비난하고 있는 일반 여론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한총련 구국농성단」이라고 신분을 밝힌 한총련 학생 31명은 이날 하오 1시5분쯤 서울 명동성당 입구 계단 난간에 쇠사슬로 자신들의 몸을 묶은채 「92년 대선자금 공개와 현정권 퇴진」 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으며 『성당측의 허락을 받는데로 성당구내로 들어가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겠다』고 말했었다. 학생들은 성당측의 퇴거요구에 대해 『실망스럽다』며 농성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 자유·풍요 만끽한 첫 외출/귀순 홍진희씨 가족 덕수궁 나들이

    ◎“남한엔 모든것 풍부… 한총련투쟁 이해 안돼” 지난해 1월 귀순한 홍진희씨(28·고대 중문과1년)에 이어 지난달 29일 귀순한 어머니 주영희씨(49·여·북송 재일교포),여동생 경화씨(26),남동생 진명씨(20) 등 일가족 4명이 11일이 서울 덕수궁에 첫 나들이를 했다.비슷한 시기에 귀순한 최명동씨(51·군부대 소속 외화벌이 지도원)와 탁영철씨(25·신의주 경공업대학 기계학부 1년) 등 2명도 동행했다. 아들의 귀순으로 고초를 겪던 주씨 일가족 3명은 지난 2월17일 북한을 탈출,중국에서 떠돌다 귀순에 성공했다. 밝은 색 양장 차림의 주씨는 『자유가 넘치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아들 진희를 다시 만나 더없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동생 경화씨는 『남한은 모든 것이 풍부하고 자유스러운데 한총련 학생들이 왜 투쟁을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홍는 이들보다 10여분뒤에 도착,어머니와 동생들을 얼싸안았다.어머니 주씨 등 3명은 현재 관계기관의 보호아래 생활하고 있다. 홍씨는 『북에 남겨둔 가족 생각에 마음고생을 이젠 잊게 됐다』면서 활짝 웃었다. 홍씨는 귀순 정착금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 대부분을 중국으로 보내 가족의 탈북 경비에 쓰도록 했다. 동생 진명씨는 『형 때문에 산골로 쫓겨나 군대도 못가고 취업도 할 수 없어 원망했지만 이젠 형을 이해하고 고맙게 여긴다』면서 홍씨의 손을 꼭 잡았다.진명씨는 『북한에서 2년 넘게 익힌 유술을 대학에 진학해서 더 연마해 선수가 되고 싶다』며 석조전 앞에서 형을 업어치기로 메치며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어머니 주씨는 『산촌으로 추방돼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무엇보다 군대와 대학에 못가게 된 진명이의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파 탈출을 결심했다』고 탈출 동기를 밝혔다.
  • 일하던 식당 침입/2천8백만원 털어

    서울경찰청 지하철수사대는 10일 전에 자신이 일하던 식당에 몰래 들어가 2천8백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김영주씨(26·무직)에 대해 야간 주거침입 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9일 자정쯤 서울 노원구 상계5동 명동칼국수 식당(주인 이일성··37)에서 종업원으로 일할 때 갖고 있던 열쇠로 뒷문을 열고 들어가 소형 금고에 있던 현금 10만2천원과 가계수표 5백만원권 5매 등 모두 2천8백35만원 상당의 금품을 털어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음식쓰레기 줄이기 5월의 모범업소 명단/서울신문사 선정

    ▷서울◁ ▲종로구=대학로 면옥(송협국·명륜동4가 88­7) ▲성동구=명문의 집(신원식·용답동 121) ▲광진구=한강가든(이완재·광장동 125) ▲은평구=연신숯불갈비(고창진·불광동 304­5) ▲양천구=송전명옥(김선자·신월2동 510­2) ▲구로구=민속회관(목진성·신도림동 433­4) ▲금천구=마포갈비(이옥이·독산2동 1037) ▷부산◁ ▲중구=대중식당(김명려·동광동5가 3­225) ▲서구=향미식당(윤희숙·부민동2가 7)▲동구=문촐래된장(문춘엽·초량3동 1200­7) ▲영도구=목장원(류춘민·동삼동 628­1) ▲진구=장군설렁탕(장점용·부전동 351­16) ▲동래구=어가초밥(임갑만·온천1동 189­21) ▲남구=거창맷돌순두부집(백차수·대연3동 564­17)▲수영구=지중해식당(김우진·민락동 177­1) ▲북구=구포아구찜(정계선·덕천동 353­10) ▲사상구=복가복요리(서춘남·감전2동 121­13) ▲해운대구=대어초밥(조기선·중1동 1126­1) ▲사하구=대성그릴(이정섭·장림2동 1053) ▲금정구=배비장보쌈(배삼수·구서1동 84­15) ▲강서구=큰바다식당(주일태·명지동 3208­9) ▲연제구=신토불이식당(박분선·연산4동 726­13) ▲기장군=월광식당(정성갑·기장읍 연화리 146) ▷대구◁ ▲중구=마산설렁탕(조웅제·북성동 79) ▲동구=회성식당(권의상·효목2동 645) ▲서구=광장복어식당(권기욱·서구 내당1동222­6)▲남구=우리식당(김경숙·봉독1동 595­7) ▲북구=벽강(도상용·침산3동 447­25) ▲수성구=제주가든(배칠근·범어2동 177­2) ▲달서구=충무활어직판장(김귀숙·감삼동 472­2) ▲달성군=원조현풍 박소선할매곰탕(차준용·현풍면 하리 128­1) ▷인천◁ ▲중구=부산밀물회관(손창조·중구 항동7가 70) ▲동구=제물포식당(방정자·송현2동 72)▲남구=잔치부페(정관식·도화동 548­21) ▲연수구=구어매(최명수·동춘1동 791­12) ▲남동구=만민부페(김치현·구월1동 1139­31) ▲계양구=우민관(유명희·계산동 42­3) ▲서구=스카이락 가좌점(손경식·가좌1동 75­2) ▲부평구=동수정 함흥냉면(김중환·부평동 543­45) ▲강화군=충주식당(박복순·강화읍 관청리 490­10) ▲웅진군=업죽산가든(김은님·백령면 북포리 496­1) ▷광주◁ ▲동구=유진회관(문태중·동구 불로동 43­2) ▲서구=풍년회관(함명자·화정4동 452) ▲북구=거부정(길천호·중흥1동 721­14) ▲남구=목우촌(정성님·주월2동 517) ▲광산구=한국회관 송정점(원춘예·송정동 816­12) ▷대전◁ ▲동구=한밭식당(피금순·중동 60­1) ▲중구=신촌설렁탕(권순호·대사동 248­264) ▲서구=토정(김현식·둔산동 191­50)▲유성구=그린하우스(송병진·봉명동 544­7) ▲대덕구=야호 한우촌식당(최용복·중리동 221­8) ▷경기◁ ▲수원시=공원식당((유순자·팔달구 인계동 1036­1) ▲성남시=서현가든(이경재·분당구 서현동 221­5) ▲의정부시=도봉산가든(백효준·의정부2동 482­3) ▲안양시=장원생고기(오영애·동안구 귀인동 920) ▲부천시=우촌(우순자·원미구 신곡2동 155­1) ▲광명시=상제리제(김순식·철산3동 426) ▲동두천시=눈내리는마을(박영준·생연3동 601­10) ▲안산시=우가촌(정전식·고잔동 520­3) ▲고양시=황실부페(선정자·덕양구 주교동 606­10) ▲과천시=전주 콩나물국밥(김용한·별양동 1­7) ▲구리시=남양민물장어(황한철·수택동 489) ▲평택시=맛골식당(송용석·비전동 831­2) ▲남양주시=늘봄가든(정명동·진접읍 장현리 45­10) ▲오산시=청원가든(서준길·원동 769­1) ▲시흥시=미미횟집(김계문·신촌동 89­11) ▲군포시=한식부페(한정임·산본동 중심상업지역 1137) ▲의왕시=옛터골갈비(임충규·내손동 412) ▲하남시=예정식당(임혜숙·미사동 296) ▲파주시=(주)임진각(신흥식·문산읍 마정리 1325­1) ▲이천시=이천뚝배기(김옥수·장전동 160­10) ▲용인시=능동아구찜(함미자·기흥읍 구갈리 374­5) ▲양주군=밤나무식당(주민순·장흥면 석현리 385­13) ▲여주군=큰집갈비(남정아·여주읍 교리 46­7) ▲화성군=원두막가든(이익제·향남면 제암리 136­13) ▲광주군=석촌갈비(김영철·광주읍 영리 57­4) ▲연천군=축협회관(정하억·전곡읍 전곡리 333­35) ▲포천군=유림회관(윤연호·포천읍 신읍리 23­4) ▲가평군=석정가든(이재훈·가평읍 배곡리 403) ▲양평군=힐하우스(강은숙·강하면 전수리 17­3) ▲안성군=안일옥(이종안·안성읍 명동리 24) ▲김포군=한탄강(두옥분·김포읍 운양리 1027) ▷강원◁ ▲춘천시=봉운장(김병준·소양동 소양로3가 11) ▲원주시=명산한정식(한영순·원동 204) ▲강릉시=강릉한식부페(김종복·포남동 1238­5) ▲동해시=대밤골가든(서경희·용정동 302­2) ▲태백시=수정숯불갈비(정상숙·장성2동 4/1반) ▲속초시=금수강산(최순란·노학동 582­6) ▲삼척시=영빈회관(권혁배·남양동 6/6) ▲홍천군=파레스가든(박영희·홍천읍 갈마곡리 500­1) ▲횡성군=초원갈비(변영희·읍상리 275­3) ▲영월군=강산회관(박영숙·영월읍 영흥3리) ▲평창군=대관령휴게소(하행)(김진구·도암면 횡계리 14­111) ▲정선군=청운식당(조남순·정선읍 봉양1리) ▲철원군=철원식당(장영덕·갈말읍 신철원1리 5반) ▲화천군=청기와집(정정순·화천읍 아리 248­5) ▲양구군=운림식당(이금옥·양구읍 중리) ▲인제군=한국관(김준업·인제읍 상동4리) ▲고성군=청우회관(정문식·간성읍 신안2리 3반) ▲양양군=녹원갈비(김수임·양양읍 임천리 248­1) ▷충북◁ ▲청주시=대원식당(유복우·상당구 북문로2가 101­1) ▲충주시=경일회관(강화선·교현1동 257­21) ▲제천시=영동관(이정자·명동 209­3) ▲청원군=옥산(하)휴게소(최동규·옥산면 오산리 689­15) ▲보은군=태동관(이종식·교사리 35­7) ▲옥천군=금강식당(주명선·옥천읍 금구리 34­23) ▲영동군=송천가든(이준영·용산면 율리 626­4) ▲진천군=마산아구찜(전명화·진천읍 읍내리 263­5) ▲괴산군=녹수청산(정동완·청천면 지촌리 43) ▲음성군=다솔웨딩부페(강신영·금왕읍 무극리 358­4) ▲단양군=전원식당(김영근·단양읍 별곡리 321) ▷충남◁ ▲천안시=자연식당(유경상·광덕면 원덕리 510­2) ▲공주시=예단원회관(유선호·금성동 373) ▲보령시=용하장횟집(유광희·신흑동 1083­2) ▲아산시=장수식당(임명수·영인면 월선리 96­5) ▲논산시=정자나무가든(이혜숙·두마면 금암리 333) ▲금산군=코리아캐터링(차덕근·제원면 구억리 202) ▲연기군=늘푸른가든(임영애·동면 예암리 19) ▲서천군=건지산회관(강순금·한산면 지현리 362) ▷전남◁ ▲순천시=고려회관(송진형·장천동 45­19) ▲나주시=대명산(한영례·송월동 1096­12) ▲담양군=백제회관(이화자·담양읍 지침리 111­8) ▲곡성군=우리식당(김옥순·곡성읍 읍내리 189­2) ▲구례군=맷돌식당(성하현·마산면 황전리 32­1) ▲여천군=영빈식당(최재섭·소라면 덕양리 1042­56) ▲보성군=한국식당(이한수·보성읍 보성리 693­3) ▲화순군=한국뷔페(김성동·화순읍 광덕리 164) ▲함평군=다미가든(최백수·대동리 향교리 5­3) ▲영광군=양지식당(국근섭·영광읍 신하리2) ▲장성군=초야식당(이정례·장성읍 삼오리 688) ▲진도군=천하장사(곽채암·진도읍 성내리 47­15) ▷경북◁ ▲포항시=달맞이가든(김영래·남구 대잠동 909­10) ▲경주시=부산한식당(노필선·황오동 258­2) ▲김천시=밀밭식당(김복자·부곡동 410­19) ▲구미시=(주)금오산맥(한의신·송정동 455) ▲영천시=제주초밥(전성정·문외동 38­1) ▲문경시=안양해물탕(김숙자·모전동 119­1) ▲경산시=포석정(이영희·중방동 838­1) ▲군위군=도남식당(김봉권·군위읍 서부리 13­5) ▲의성군=왜풍식당(김경환·의성읍 후죽리 591­1) ▲청송군=수궁식당(유외순·청송읍 월막리) ▲영양군=갈채가든(김순일·영양읍 세실리 83) ▲청도군=명문숯불가든(박석근·청도읍 고수리 152­77) ▲고령군=금계숯불가든(제순자·고령읍 지산리 929) ▲칠곡군=경북컨트리클럽식당(이상완·매월리 산23­1) ▲예천군=빅도널드(전선희·예천읍 노하리 74­5) ▲울진군=전원경양식(김희자·울진읍 읍내리 469­2) ▲울릉군=나리가든식당(이정숙·울릉읍 도동리 140­3) ▷경남◁ ▲창원시=임진각식당(김태진·서상동 44B 1L) ▲울산시=효성T&C(구내식당)(김인환·남구 매암동 588) ▲마산시=암소한우촌식당(김애숙·합포구 동성동 135) ▲진주시=서울설렁탕(이용정·본선동 1­4) ▲진해시=수양회관(조정순·대천동 2­1) ▲통영시=통영공원가든(김귀자·향남동 242) ▲사천시=정통곰탕(강문식·별리동 19BL 1L) ▲김해시=경포장횟집(하재숙·불암동 220­127) ▲밀양시=금수강산(조우연·내일동 192­1) ▲거제시=롯데점(강미순·옥포1동 542­15) ▲양산시=대호초밥(김형인·북부동 44­16) ▲의령군=삼오정(백기택·의령읍 중동리 365) ▲함안군=삼청가든(박희순·여향면 의암리 774) ▲창녕군=공원숯불갈비(김정균·부곡면 거문리 221­9) ▲고성군=명보식당(우의석·고성읍 성내리 60­7) ▲남해군=녹수정(김현철·남해읍 남변리 410­2) ▲하동군=유정식당(김제례·하동읍 광평리 292­3) ▲산청군=미나미횟집(천덕남·산청읍 산청리 271) ▲함양군=상림숯불갈비(박종출·함양읍 백연리 510) ▲거창군=나현가든(정국자·가조면 마상리 174) ▲합천군=송림식당(이경희·합천읍 합천리 590­9) ▷제주◁ ▲제주시=물항식당(오복렬·건입동 1319­75) ▲서귀포시=명금호가든(진성순·강정동 259­4) ▲북제주군=유화회관(이정란·한림읍 한림리 932­6) ▲남제주군=진미식당(강창건·안덕면 사계리 2072)
  • 대구에 올 첫 장티푸스환자/20대 여 치료받고 퇴원

    대구에서 올 첫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했다. 영남대병원은 지난달 28일 고열을 동반한 설사와 두통 증세로 입원한 하모씨(28·여·대구 남구 대명동)의 혈액을 채취,검사한 결과 장티푸스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7일 밝혔다. 하씨는 항생제 투여 등 치료를 받고 이날 퇴원했다.
  • 피아니스트 백건우(이세기의 인물탐구:133)

    ◎끝없이 「대곡」에 도전하는 “건반의 거장”/미·불 등서 더 명성… 라벨·리스트 해석에 권위/고전적 기교·낭만적 선율로 청중 매료시켜 그는 음악의 화가,음악의 철학자, 음악의 시인이다.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무수한 어휘의 바구니속에서 하나의 낱말을 골라내고 그 낱말이 다음의 낱말에 연결되어 어떤 이미지를 형성할것인가를 무한히 추구해 나간다.그리고 높고 낮고 험한 계곡과 계류를 지나 정상에 올랐을 때의 정복감과 승리감,완성과 사색을 동시에 안겨준다.그의 「메피스토 왈츠」는 마치 여러 대의 피아노가 협주하는듯한 역동성을 분출시킨다.또 「발렌슈타트 호반」은 금물결이 튕겨나오고 나뭇잎새에 맺힌 이슬방울이 수면에 아롱지는 섬세함의 극치다.고전적인 기교와 낭만적인 선율이 조화된 그의 연주는 때로는 넘치는 폭발력으로,때로는 심장을 후비는 미세한 서정성을 만들어냈고 잘게 부서지는 투명한 화음과 광풍같은 질주로 치닫다가 자지러질듯 소멸된다. 그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넘나들며 난곡 대곡에 끝없이 도전한 마에스트로다.일찍이 라벨과 리스트 해석의 권위자로 떠올랐고 독일의 슈트겐슈미트는 『백건우보다 「밤의 가스파르」를 더 훌륭하게 연주한 사람은 없을것』이라고 단언한다.프로코피에프 무소르크스키 라흐마니노프에 이어 지난 92년 프랑스 단테사가 출반한 스크리야빈연주는 권위있는 디아파종 금상에 선정되었고 「놀라운 기량과 독특한 점층법으로 스크리야빈의 색소와 섬세함을 제압하고야 말았다」는 평을 받았다.프랑스의 음악평론가 알랭 코샤르는 「스크리야빈의 해석에 있어 호로비츠,리히터에 대항할 확실한 경쟁자가 나타났다」고 격찬,리스트의 「헝가리광시곡」에 대해서도 「천재적 해석의 결정판」으로 못밖는다. ○배재중 졸업후 단신 도미 지난해 가을 명동성당에서 국내초연한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은 그의 수많은 연주중에서도 단연 명연주의 백미다.올리비에 메시앙의 이 피아노대곡은 연주시간 2시간 30분 길이에다 기교적으로도 대단한 난곡이어서 이를 완주한 피아니스트는 손꼽을 정도다. 이곡을 들은 사람들은 무엇을 만날지 알수없는 소리의 힘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기예수의 이미지가 다이아몬드의 다면체처럼 반짝거리는 신비로운 상념을 체험할수 있었다. 성당안은 음이 뿜어내는 눈부신 광휘로 가득찼고 별들이 일으키는 우주의 천둥소리에 청중은 전율했다.그는 화음의 각음을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아르페지오의 연쇄와 폴리포니(다성음악)로 장대한 음악의 성전을 구축해 낸것이다.「변화무쌍한 리듬,찬란한 화성,소용돌이치는 음의 진행」속에서 소리는 빛의 다발이 되어 객석을 온통 얼어붙어버렸고 연주가 끝나자 청중은 한동안 침묵,문득 깨어나 전원 기립과 긴 박수로 열광했다.메시앙이 「나는 음악을 듣고 작곡할때 움직이는 모든 색채를 본다」고 했듯이 그는 다채로운 음의 변화를 작가자신이 되어 되살려낸 것이다.청중은 더이상 바랄것이 없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칠수있는 분위기에서 자라났다.장충국민학교 3학년때 벌써 김생려씨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주제를 위한 랩소디」협연으로 「천재성과탐구성」의 기미를 보이더니 배재중 졸업후 혼자서 도미,맨손으로 세계음악의 중심에 뛰어들어 고독한 방황끝에 어떤 음악을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를 터득하여 「건반위의 순례자」가 되었다. 일년내내 꽉찬 스케줄속에서 연주여행으로 끝없이 움직이는 가운데도 그는 음악을 말할때 두눈을 반짝인다.지금도 순수무결한 소년같은 모습이지만 연습에 들어가면 숲을 조감하는 매처럼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이며 건반을 낚아채고 찍어낸다.그리고 건반 깊숙이 숨어있는 미지의 보석들을 얼마든지 캐낸다.앉은 자세 하나만으로도 피아노 장악력이 느껴질만큼 그의 모든 분위기는 이미 음악이다. ○여우 윤정희와 결혼 또 엄격주의자로서 보수적인 편이지만 지휘자나 오케스트라와의 곡해석에서 의견이 다를때는 상대방의 무한한 가능성에 요구하기보다 제한된 능력을 빠르게 파악하고 적응해나간다. 지난해 차이코프스키 볼쇼이교향악단과 BMG(RCA레드실)가 제작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완주녹음에 들어갔을때 그는 명상적인 순간을 길게 가져간데 비해 페도세예프는 열혈적인 슬라브의 민족성을 몰아붙이듯 빠르고 강한 템포로 오케스트라를 지휘,그러나 페도세예프는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가진 난해한 깊이를 어려움없이 끌어내는 백건우」를 이해하여 두 사람은 마법에 걸린듯 호흡과 개성을 맞춘 뒷얘기를 남기고 있다. 폭넓은 통찰력과 감각적 기교를 겸비한 그는 곡이 갖고있는 고유한 색채를 가장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피아노의 시인」「피아노의 건축가」로서 그의 음악은 맑게 정제된 영롱성으로 화창감을 성취하는 것이 특징이다.그의 연주에 감동받은 브리짓드 마셍은 「르마뗑」지에다 「백건우의 리스트연주는 한마디로 신비로운 여행이며 청중들을 작품의 심장부로 끌어들여 원초적인 맥박의 경험과 그 깨달음을 전해준다」고 했다.그와 절친한 피가로지의 피에르 페티도 「만약 리스트가 현재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백건우와 같이 빈틈없는 테크닉과 순수하고 경이로운 음악적 해석으로 연주했을 것」이라고 평한다.이런 모든 증명처럼 그의 음악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시적 심상」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76년 파리에서 결혼한 영화배우 윤정희와의 사이엔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딸 진희양(20)이 있다.음악외엔 그림과 영화를 좋아하고 사진실력은 수준급,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아 그방면의 책과 대화를 즐긴다. ○권위의 디아파종상 수상 이제 그는 세계적으로 일급연주자만을 엄선하는 RCA의 전속으로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그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녹음하고 있다.이른바 세계적 음악가로서 입지를 굳힌 셈이다.또 수많은 대곡을 정복하고 다음 대곡의 정상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그는 에베레스트를 탐험하는 산악인에도 비유된다.그러나 「피아노 비루투오소」「그레이트 카리스마」로 불리는 시기이지만 어떤 찬사에도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음악에서의 완성이라든가 원숙은 있을수 없다는 주의다.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자세,건실한 학구적 태도를 고집스럽게 지킨다. 무궁무진한 음악의 광활한 세계에 파고들어 다음은 어떤 신세계를 펼쳐낼 것인가.그리고 새롭게 캐낸 수많은 음과 리듬을 내부에 양성시켜 어느날 일진광풍을일으킨다.누군가 「1세기에 몇명 나오는 예술가의 한사람」이라고 한 말은 「건반위의 명상자」인 마에스트를 두고 너무나 적중된,당연한 찬사다. □연보 ▲1946년 서울 출생 ▲61년이후 뉴욕예술고와 줄리어드음악학교 동시입학,로지나 레빈 일로나 카보쉬 빌헤름 켐프사사 ▲65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연주 ▲69년 미레벤트리트 콩쿠르 특별상 ▲70년 이부조니콩쿠르 금메달 ▲71년 미 나옴버그피아노콩쿠르 대상 ▲72년 뉴욕 링컨센터연주 ▲74년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모리스 라벨 1875­1937」제전 피아노전곡 탄주자 초청 ▲75년라벨탄생 100주년 기념음악제 연주,광복 30주년기념 음악제 귀국연주 ▲82년 리스트연속연주(파리) ▲84년 라벨­스크리야빈­무솔그스키의 작품 전곡 4차례연주(파리) ▲86년 리스트 100주년기념 음악제 독주자초청연주 ▲87년 런던 프롬나드 페스티벌 100주년 기념공연 라스트연주 ▲88년 파리 단테사 전속계약 ▲89년 리스트콩쿠르 심사위원, 영국 버진사에서 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등 10매의 음반 출반 ▲91년 KBS홀 개관기념 연주 ▲92년 디아파종상 금상 및 대상 ▲93년 누벨아카데미 디스크상, 피가로지 「베스트 레코드」선정, 그리그 탄생 150주년기념연주,라흐마니노프 탄생 120주년 및 서거 50주년기념완주(3일연속),서울독주회 ▲96년 메이저사인 BMG와 4년간 독점계약,올리비에 메시앙의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명동성당서 3일간연주) 등 연 60회 연주 ▲97년 라로크 단테룸에서 프로코피에프연주(유럽전역에 실황중계) 〈현재〉 프랑스 디나르 에머럴드 해변축제 음악감독 런던필 런던필하모니 BBC교향악단 베를린필 프랑스국향 스위스로망드관현악단 등 셰계적 교향악단 수백여회 협연
  • 이석씨는 누구인가/해남 출신… 최근 서울서 선반기능공으로

    ◎며칠전 부모에 “좋은 회사에 취직” 전화도 숨진 이석씨(23)는 전남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 126이 고향으로 최근까지 수원과 서울의 중소업체에서 선반기능공으로 일했다. 해남군 계곡면사무소에서 민원봉사계장으로 근무하는 아버지 이병욱씨(52)와 어머니 정옥애씨(49) 사이의 3형제중 장남. 92년 2월 해남실고를 졸업하면서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땄다.이어 해남천주교의 추천을 받아 서울대교구(명동성당)에서 운영하는 돈 보스코 청소년센터(직업훈련원)에서 선반기능공 2년 과정을 수료했다. 이씨는 93년 키가 작아(5급판정)병역을 면제받았다.지난 4월 고향집에 들른 이씨는 할아버지 이규림씨에게 『수원에 있는 직장에서 선반 기능공으로 일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으나 최근 서울로 직장을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고교 1·2학년 생활기록부에는 「인사성이 밝고 순박하나 솔직성이 요구됨.천성이 착하고 명랑하나 집중력이 요망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독실한 천주교신자인 이씨는 며칠전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수원에서 서울의 좋은 회사로 옮겼으며 돈을 벌어 용돈을 보내 드리겠다』고 말했다.또 동생 원(21)·경(16)군에게도 자주 편지하는 등 우애가 깊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전했다.
  • DONNA KARAN(패션가 산책)

    도나 카렌(DONNA KARAN)은 미국 뉴욕의 롱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패션계에 종사했던 부모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등학교 시절에 첫 패션쇼를 열 정도였다. 파슨즈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뒤 당시 유명했던 앤 클라인(Ann Klein)에 보조 디자이너로 들어가면서 패션계에 입문했다.능력을 인정받아 3년뒤에는 앤 클라인의 후계자로 발탁됐다. 처음에는 앤 클라인의 대표적인 브랜드보다 싼 라인(브리지 라인)인 앤 클라인Ⅱ를 소개하면서 심플(단순)하고 편안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그는 10년 뒤인 84년 독립을 선언하면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다.85년에 첫 선을 보인 도나 카렌 뉴욕컬렉션으로 호평을 받아 미국 패션계의 「빅3」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도나 카렌은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장인과 활동하기에 편안한 최고급 원단,온몸을 우아하게 감싸안아 신체의 선을 부드럽게 드러내는 독특한 실루엣으로 내적인 편안함과 자신감을 동시에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대중화를 위해 도나 카렌 뉴욕컬렉션 가격의 절반선인 DKNY도 선보였다.뉴욕패션에서는 브리지라인의 원조격이라고 한다.DKNY는 클래식,액티브,진 등으로 세분돼 있다. 지난해 10월 HPL21 코리아가 국내에도 선보였다.가장 비싼 도나 카렌 뉴욕컬렉션 매장은 청담동(02­511­9172)에,DKNY 매장은 명동 슈퍼스토어(02­776­8179)와 롯데백화점 잠실점,갤러리아백화점에 있다. DKNY 기준으로 스커트와 바지는 20만∼30만원,재킷은 40만∼50만원,여성정장은 70만∼80만원,니트는 9만∼20만원,로고티는 3만∼4만원,남성정장은 60만∼80만원,넥타이는 3만∼7만원이다.
  • 락카페→신촌로터리 닭집→대학로/시위 학생들의 은어

    ◎비디오방→대한극장 로터리→종로/부자집→신세계백화점 부두→뚝섬 「H대생들은 락카페,D대생은 닭집으로 집결 바람」 「제5기 한총련 출범식」 참석을 위해 시위 중인 학생들이 사용하는 은어다.「락카페」는 신촌로터리,「닭집」은 대학로를 일컫는다. 최근들어 운동권의 은어는 주로 지명을 지칭한다.경찰이 집회·시위장소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나름대로 만든 「약속」이다. 「부자집」은 명동 신세계백화점,「비디오방」은 대한극장,「부두」는 뚝섬,「로터리」는 종로를 가리킨다. 대학 이름도 영어 알파벳으로 대신한다.A는 건국대,B는 경희대,C는 외국어대,D는 서강대라는 식이다. 이같은 은어가 적힌 메모지는 한총련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달 30일 하오 3시 원주역을 출발한 관동대생이 경찰의 검문검색을 피해 버리고 달아난 가방속에서 발견됐다. 학생들은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과 호출기로 대화할 때도 은어를 사용했으며 시위 도중에도 은어로 시위 장소의 이동이나 집결지 선정 등 정보를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 귀순아들 권유로 「동토의 땅 탈출」/북 가족 감격의 「서울재회」

    ◎94년 탈북 홍진희씨 일가 셋 입국/외화벌이 지도원 등 2명도 함께 지난해 1월 귀순한 북송 재일교포 2세 홍진희씨(28·고려대 중어중문 1년)의 일가족 3명과 탁영철씨(25·신의주 경공업대학 기계학부 5년)등 북한 주민 2명 등 모두 5명이 29일 하오 5시10분 대항항공 602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귀순했다. 귀순자는 홍씨의 어머니 주영희씨(49·가내협동조합중앙회 농장원),여동생 경화씨(26·비닐신발공장 노동자),남동생 진명씨(20·농장원)와 탁씨,최명동씨(51·군부대 소속 외화벌이지도원) 등이다. 이미 귀순한 탈북자의 나머지 가족이 북한을 탈출,잇따라 귀순한 것은 처음이다. 주씨 가족의 귀순은 서울에 있는 큰 아들이 눈물겨운 뒷바라지를 한 끝에 이뤄졌다.이날 공항 입국장에서는 홍진희씨가 북한을 탈출한 지 4년3개월만에 만나는 어머니와 두 동생을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주씨는 『무사히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기게 돼 무척 기쁘다』면서 『특히 지난 2월 중국에 머물때 북한 공안요원들의 감시를 따돌려 준 중국 교포들에게감사한다』고 말했다. 주씨는 특히 『지난해 12월 함경남도 단천의 한 아파트 모퉁이에서 죽어가는 어린이와 노약자들을 하루에 평균 2∼3명씩 목격했다』고 폭로,북한의 식량사정이 크게 악화됐음을 증언했다. 주씨 일가족과 함께 이날 귀순한 탁씨는 『재학 중인 신의주 경공업대학에서 동료들과 함께 한국의 KBS 사회교육방송을 청취,남한 실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면서 『이 사실이 사회안전원에게 적발돼 신변에 위협을 느껴 탈북했다』고 말했다.한편 최씨는 언어 장애를 겪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씨는 61년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으나 첫 남편과 사별했고 93년 3월 맏아들 진희씨가 중국으로 탈출한 뒤 직장에서 쫓겨나 94년 1월 함남 허천군 상남리의 외딴 산촌으로 가족과 함께 강제 이주했다.주씨는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96년 7월 재혼한 뒤 단천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재혼 한달만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 연길에 갔다가 맏아들이 외화벌이 요원때 알고 지내던 조선족 동포를 만났고 그를 통해 96년1월 한국에 귀순한 맏아들과 전화통화를 했다. 진희씨는 그때 어머니에게 탈북을 권유했고 이후 편지와 전화를 주고 받으며 탈출계획을 세웠다. 주씨 일가족은 북한의 최대 국경일인 김정일의 생일 하루 전인 지난 2월15일 함남 단천에서 회령 부근의 상봉으로 이동,17일 밤 두만강을 건너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진희씨가 부쳐준 2천만원을 탈출자금으로 사용,중국의 연길·심양·청도 등지를 거쳐 탈북 31일 만인 지난 3월20일 홍콩으로 밀입국해 망명을 신청했다. 이들이 망명한 뒤 우리 정부는 홍콩측과 두달여에 걸친 망명협상 끝에 무사히 귀순시켰다.
  • 패션전문점 전성시대/유통업체·패션회사 등 설립 붐

    ◎전국 30개… 외국사 진출 눈앞 패션전문점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삼성물산(유투존),미도파(메트로미도파) 등 유통업체와 대하패션(트렌드20),엘칸토(브이익스체인지) 등 패션회사뿐 아니라 최근에는 두산건설,쌍방울개발 등도 신규 참여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앞으로 패션전문점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여기에 영국 할인업체인 막스&스펜서가 명동과 압구정동에 점포를 설립한 상태이다.조이스,싹스 피프스 애비뉴 등도 국내 진출을 모색하고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명동에 패션전문점이 생긴 것은 지난 87년 메세지가 처음이지만 양적으로 대폭 늘어난 것은 최근 2∼3년 사이.현재 전국적으로 30여개의 전문점이 있다.백화점의 수많은 브랜드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찾아 헤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브랜드만을 갖춘 전문점을 찾는 소비층,즉 수요가 생기면서 공급이 늘어난 것이다. 백화점과 자체 대리점망에 의존하던 패션제품의 유통망이 패션전문점의 등장으로 유통 채널이 확대되었다.특히 10∼30대 초반의,패션 상품 소비력이 큰 세대를 주고객으로 하고 있어 패션전문점의 시장점유율이 확대되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패션전문점간의 차별화전략도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개점 1주년을 맞은 유투존의 경우 설립 당시부터 모든 점을 차별화하는데 주력해 왔다.예컨대 신예 디자이너 브랜드매장인 챌린지매장과 평장 매장을 통해 독특한 패션제품을 보유하는 한편 정보지 제작,패션기금 조성 등 남들이 하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
  • 북한에 식량 보내기/박정란 방송작가(굄돌)

    북한 동포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적게든 많이든 「북한에 식량 보내기」운동에 참여했으리라 생각한다.우리 아이들의 햄버거 한개 값도 안되는 700∼800원이 북한 어린이 한달 식량이 된다는 사실도 믿어지지가 않는데 그나마도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아사직전이라니 기가 막힌다고밖엔 이런 심정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은 만나면 당연히 한보 이야기 아니면 북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식량이 제대로 북한 동포에게 전달되는지 믿을수가 없어 식량 보내기운동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후배가 있었다.그 말이 왠지 내 심사를 꼬이게 했다.그래서 퉁명스럽게 네가 할 일은 식량 보내기 운동에 동참을 하는 것까지만이고 보내는 방법은 또 그 일을 맡은 사람의 몫이니까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나 유기하지 말라고 해버렸다.그러면서 오래전 내가 잠깐 갈등을 했던 일을 떠올렸다. 70년대에는 명동이나 육교에 아기를 안고 구걸하는 여자나,한겨울 얇은 옷 한겹에 맨발로 동태처럼 얼어 구걸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나는 내앞에 이런 사람이 있을때 아무리 바쁘고 또 돈을 꺼내기가 귀찮아도 「그냥 지나치지 말자」를 내 생활의 작은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그런데 어느날 신문에 그것이 다 가짜라는 기사가 났다.사실이 아니고 연출을 한다는 것이었다.아이는 빌려서 안고 있는 것이고 꽁꽁 얼어 시멘트바닥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도 뒤에서 조종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나는 순간 분노를 느꼈다.결과적으로 나는 악을 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걸인을 돕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계기가 되었다.육교에서 추위에 떨며 기진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가,그리고 동태가 되어 시멘트바닥에 엎드려 있는 소년이 가짜인지,정말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 내가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내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가 가짜라면 그것은 그 사람의 책임이지 내 잘못은 아닌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하실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그리고 다시옛날의 작은 원칙으로 돌아갔다.별것도 아닌 이런 내 얘기를 들은 후배도 아마 북한동포 식량 보내기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싶다.
  • 귀순 보트피플 김원형씨 등 두가족 감격의 첫나들이

    ◎“서울거리 보석상자 같아요”/남산타워·롯데백화점 등 돌아봐/“남북 격차 이정도라니…” 놀라움/쇼핑 시민들 박수갈채에 손흔들며 답례 『서울 시내가 마치 보석상자 같습니다』 지난 12일 첫 「보트피플」로 귀순한 김원형씨 등 두가족은 18일 첫 서울 나들이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와 안선국씨 두가족 14명은 휴일인 이날 남산타워,롯데백화점,남대문시장 등을 둘러보며 『진작 내려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며 북한에서 궁핍하게 지낸 생활을 되새겼다. 이들은 버스로 남산타워에 도착하기 까지 계속 창밖을 내다보며 『신의주는 산에서 조차 나무를 구경하기 어려운데 서울은 시내에도 숲(가로수)이 많아 산에 갈 필요가 없겠다』며 감탄하기도 했다.남산타워에서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던 아이들 4명은 선물을 고르라고 하자 일제히 장난감들을 다투듯 움켜쥐고 장난을 치며 즐거워했다. 이들은 남대문시장과 롯데백화점에서 『어떻게 이럴수가 있느냐,남과 북이 이 정도로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질린 표정을 지었고 안씨의 어머니김몽선씨(67)는 『죽기전에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돼 여한이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당국의 관계자들이 남대문시장에서 점퍼,바지,셔츠 등을 골라 입으라고 하자 즉시 갈아입고는 『옷이 날개라더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며 『저 옷들이 다 팔리느냐,미제가 아니냐』고 질문하기도 했다.또 휴일을 맞아 쇼핑나온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하고 상인들이 아동용 의류들을 선물하자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이들은 명동의 한 음식점에서 등심,게,냉면등으로 점심을 하면서도 『일반사람도 이런 곳에서 마음대로 음식을 사먹을수 있느냐.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며 달라진 생활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한편 관계당국은 이들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어감에 따라 곧 기자회견을 갖게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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