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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사면 자동 기부 기분좋은 ‘사랑 쇼핑’

    상품사면 자동 기부 기분좋은 ‘사랑 쇼핑’

    연말연시를 맞아 선물을 사면 자동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금이 적립되거나 환경을 지키는 ‘일석이조’의 이색아이템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탐스 슈즈’다. 탐스 슈즈 1켤레를 사면 똑같은 신발 한 켤레가 저개발국가의 어린이에게 기증된다. 온라인매장(www.tomsshoes.co.kr)과 신세계백화점, 명동 에이랜드 등 12개 매장에서 이 신발을 구입할 수 있다. 올 8월 현재 전 세계에서 15만켤레에 이르는 신발이 이렇게 마련돼 아르헨티나와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에게 전달됐다. 한국 판매를 맡고 있는 코넥스솔루션 임동준 이사는 “신발도 사고 어려운 아이들도 도울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져 2년 만에 직원이 2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날 정도로 많이 팔리고 있다. ”고 말했다. ●신발 1켤레 사면 1켤레 기증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만든 1만원짜리 다이어리를 사면 위안부 할머니를 도울 수 있다. 정대협이 2005년부터 수요집회 경비와 기금 마련을 위해 제작한 다이어리에는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들의 추모일과 생전의 모습이 등재돼 있다. 안선미 정대협 간사는 “올해 다이어리 주제는 ‘희망을 엮어가는 사람들’로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할머니들을 기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책사면 인세 적립 청소년 도와 책을 사면 동시에 기부가 되는 아이템도 있다. 아름다운재단이 2003년부터 시작한 ‘인세 1% 기부’ 캠페인에 동참한 책을 사면 해당 인세의 1%가 자동으로 기부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박광수의 ‘참 좋은 사람들’, 안도현의 ‘연어’ 등 현재 작가 192명과 32개 출판사가 참여하고 있다. 또 아름다운 가게가 만든 재활용 디자인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http://ww w.mearry.com)에서는 재활용품을 수거한 뒤 새롭게 디자인해 만든 사무용품, 옷, 소품 등을 판매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관광1번지 서울도심도 불안하다

    관광1번지 서울도심도 불안하다

    한파가 몰아친 16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 좁은 골목의 5㎡ 남짓한 옷가게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빈틈 없이 진열된 인조 털코트가 50벌은 족히 넘어 보였다. 낡은 전기배선이나 난로에서 불꽃이라도 튀면 유독 가스와 함께 가게 전체로 불이 번지는 건 불문가지로 보였다. 때마침 4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가게에 들어와 열심히 옷을 고르고 있었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그 흔한 소화기 한 대 보이지 않았다. ●소화기·대피안내 표지판 전무 14일 발생한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참사를 계기로 남대문시장과 명동 등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을 둘러봤다. 연간 510만명의 외국인이 찾는 한국 제1의 관광도시 서울 역시 관광객 화재 안전에는 무방비였다. 골목이 많은 남대문시장이나 명동에는 대피로를 알려주는 안내 표지판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김, 인삼 등 특산품과 일본인 관광객이 선호하는 패션잡화류를 주로 취급하는 남대문시장은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이 많다. 불이 나면 즉시 대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통로를 확보해야 하지만 가게마다 내놓은 좌판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은 소방차와 구급차 진입의 장애물이다. ●외국인 관광객들 ‘불안한 쇼핑’ 명동 쇼핑거리도 마찬가지였다. 골목 입구에 대피 안내 표지판조차 없어 화재가 났을 경우 지리에 어두운 외국인 관광객은 우왕좌왕하다가 참변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불안해하긴 마찬가지다. 명동에서 만난 일본인 유코(45·여)는 “토요일 아침에 부산 사격장 화재 소식을 듣고 가족들이 한국행을 말렸다.”면서 “예정대로 여행을 왔지만 화재사고가 생기면 즉시 신고할 수 있도록 한국 소방서 번호(119)도 외워 두었다.”고 말했다. 한국을 열 번 이상 방문했다는 일본인 스기타(47·여)는 “남대문시장·명동·동대문시장을 돌아다녔는데 좁은 길이 많아 불이 나면 위험할 것 같다.”면서 “관광안내소나 공항에서 사고·화재 안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대피 안내 표지판만이 아니었다. 큰 화재는 보통 소화시설이 부족한 작은 가게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정작 영세한 상점들은 소방안전점검 대상도 아니었다. 대형화재를 예방해야 할 소방안전점검이 무용지물인 셈이다. 연면적 400~600㎡인 방화관리대상 건물에 대해 2년마다 한 번씩 행하던 정기점검은 2004년 관련법이 폐지되면서 중단됐다. ●정기 소방안전점검 등 대책 시급 중부소방서 예방과 관계자는 “자동화재탐지설비 설치의무가 없는 연면적 400㎡ 이하의 건물은 소방당국의 관리대상으로 지정돼 있지 않아 영세한 상점은 화재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남대문시장은 화재경계지구로 지정해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연택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교수는 “정부가 2010~2012년 한국 방문의 해 홍보에만 매달리고 최우선이 되어야 할 여행객들의 안전 문제에는 소홀했다.”면서 “여행객 안전은 가장 기초적인 사항으로 관광객 안전 교육, 관광시설 안전점검 강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평범한 노동자들 고뇌 담고 싶었죠”

    “평범한 노동자들 고뇌 담고 싶었죠”

    다큐멘터리 영화 ‘저 달이 차기 전에’는 무차별적인 정리해고를 거부하며 77일간 공장 안에서 옥쇄투쟁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900여명의 사투를 담은 영화다. 17일 오후 4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1차 시사회에 앞서 서세진(38) 감독(따미 픽쳐스)을 16일 만났다. ●“진실 들여다볼 통로 마련” 서 감독은 “편집하다 보니 우연히 77분짜리 작품이 나왔다.”고 소개했다. 영화는 5월21일 노동자들의 공장결집 이후 31일 직장폐쇄, 8월6일 경찰투입으로 인한 강제해산 때까지 공장 안에서 민중의 소리 기자가 함께 먹고 자며 기록한 60여시간의 영상을 압축했다. 영화 도입부는 노동자들의 공장 진입까지 상황을 내레이션으로 보여준다. 단수 이후 일시적으로 살수차가 들어왔을 때 등목하는 장면, 주먹밥 식사 장면 등 당시 상황이 그대로 담겼다. 교섭 결렬·비상근무가 반복되는 와중에 농성자들끼리 벌어진 갈등, 8월 초 경찰 강제진압도 빼놓을 수 없다. 경찰 투입 이후 농성자들이 공장을 떠나면서 한명 한명 지부장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서 감독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된 뒤 가족,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매일 안에 남을 것인가, 공장 밖으로 나갈 것인가 고뇌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본래 부터 영화를 제작할 심산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찰이 공장을 봉쇄하고 ‘기업구조조정=정리해고’ 등식의 여론몰이를 일어나면서 진실을 들여다볼 통로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매일 전화로 공장 상황을 전해들으며 촬영소재를 잡는 등 기획회의를 했다. ●“쌍용차 사태는 아직도 중요한 현안” 영화는 완성됐지만 이들의 사연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농성 노동자 대부분이 재해고·무급휴직 통지를 받거나 구속됐기 때문이다. 제작진들은 “쌍용차 사태는 회생계획서가 부결되고 기술유출 사태가 드러난 지금도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라며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일반 시사회는 24일 오후 6시 서울 명동 인디스페이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KB지주회장 선임 본격화

    KB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선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황영기 전 회장의 낙마로 내부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털어내고 내년 시작될 본격적인 금융권 인수·합병(M&A)을 염두에 둔 조직 정비의 복안으로 분석된다. KB금융 회장추천위원회는 13일 서울 명동 KB지주 본점에서 9명의 사외이사가 참여한 가운데 첫 본회의를 열어 조담 이사회 의장을 위원장으로 공식 선임하고, 향후 회장 후보 선출 절차와 방식도 결정했다. 회장 후보는 현재 지주사 안의 상시평가보상위원회가 확보하고 있는 20명의 인재풀을 토대로 구제적인 검증 작업에 들어가며, 후보군으로는 강정원 현 KB은행장 및 회장 직무대행을 비롯, 전·현직 금융전문가 및 경제 관료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담 위원장은 “회추위에서 처음으로 회장 후보에 올라온 인사들을 봤다.”면서 “우선 20명의 후보 가운데 10명 안쪽의 ‘숏 리스트’를 만든 다음 내부 논의와 후보 인터뷰 등을 거쳐 최종 후보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회의는 20일 열릴 예정이다. 조 위원장은 차기 회장 후보로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사회는 KB지주가 올해 금융위기를 무사히 마감하고 내년 금융시장에서 중대한 변화에 대비해 조직 방향 설정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면서 “리더십과 국제적 감각 등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를 진행, 사후에 모든 절차를 공개하더라도 한 점의 의혹이 없을 만큼 투명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유력한 회장 후보로 강 행장을 꼽고 있지만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 기획재정부 출신 관리들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우리證, 여의도 72층빌딩 매입 추진

    우리투자증권은 11일 우리투자·제이알컨소시엄이 서울 여의도 통일주차장 부지에 건설 중인 파크윈빌딩 매입을 위한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계열사 본점을 모두 입주시켜 우리금융그룹 타운을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면서 “그룹 차원에서도 여의도 이전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투자증권은 여의도에 본사가 있지만, 주력 계열사인 우리은행은 명동에 본점을 두고 있다. LG그룹 본사 옆에 들어설 파크윈빌딩은 연면적 22만 3340㎡에 72층 규모로 오는 2012년 말 준공될 예정이다.
  • [비즈&피플] 신세계 정재은 명예회장 “고객의견 반영이 품질 결정”

    [비즈&피플] 신세계 정재은 명예회장 “고객의견 반영이 품질 결정”

    “품질의 개념을 고객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이 6일 서울 명동 본점 문화홀에서 임직원 300여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정 명예회장이 매년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행사이다. 정 명예회장은 ‘품질 혁명을 통한 새로운 변화 선도’라는 주제로 서비스 차별화와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최상의 상품이라는 의미 자체가 변하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상품 자체의 성능이 우수한 게 최상의 상품이었지만, 최근에는 성능뿐 아니라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고 있는 정도가 품질을 결정하는 포인트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품질혁명을 통해 신세계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달라.”고 덧붙였다. 정 명예회장은 또 미국 경영학자 톰 피터스의 말을 인용, “벤치마킹의 시대가 끝나고 ‘퓨처마킹’의 시대가 왔다.”면서 “유통리딩 기업으로서 미래에도 통할 독창적인 컨셉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뢰성·보증성·공감성 등 신세계만의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정 명예회장은 2006년 유통업의 미래, 2007년에는 가격혁명, 지난해에는 글로벌 신세계라는 주제로 특강을 진행해 왔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원더걸스 1000일, 팬들 ‘특별 이벤트’ 자축

    원더걸스 1000일, 팬들 ‘특별 이벤트’ 자축

    원더걸스의 데뷔 1,000일 축하하기 위해 팬들이 특별한 이벤트를 열었다. 원더걸스 팬들은 5일 낮 원더걸스의 데뷔 1000일을 알리기 위해 서울 명동 거리로 나가 시민들에게 원더걸스가 모델로 활동 중인 비타민 음료수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이 음료수의 겉면에는 원더걸스의 이미지와 데뷔 1000일을 맞았다는 문구가 새겨 의미를 더했다. 소속사 JYP 측은 “원더걸스 멤버들은 데뷔 1000일을 한국에서 국내 팬들과 맞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내에 머무는 동안 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내지 못해 아쉬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 진출한 원더걸스는 ‘노바디’(Nobody) 영어버전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76위까지 오르는 등 좋은 성과를 거뒀다. 한편 원더걸스는 이번 주 주말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현장 행정] 중랑, 지역명소 홍보 독립영화 큐!

    [현장 행정] 중랑, 지역명소 홍보 독립영화 큐!

    # 제목-약수터 부르스 # 감독-손재명 # 주촬영지-중랑구 망우공원 용마천 약수터 # 촬영협조 및 후원-중랑구청 # 시사회 개봉일 및 장소-11월10일 중랑구민회관 대공연장 # 줄거리-공원약수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외 이웃들의 일상 탈출기 중랑구에 거주하는 한 영화감독이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을 배경으로 독립영화를 제작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화제의 감독은 CF 광고감독으로 15년간 활동했던 손재명(44)씨. 손 감독은 중랑구 망우본동에서만 25년째 거주하고 있는 ‘지역 토박이’다. 현재도 본인이 사는 아파트의 대표회장을 2년째 맡고 있을 만큼 동네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열혈 구민’. ●배우 대기실 제공·초대권 제작 그는 “제작 초기 주요 촬영장소를 물색하려 서울시와 경기 일원의 약수터 수십곳을 일일이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면서 “중랑은 녹지보존이 잘 돼 있어 배경으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데다, 영화를 통해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중랑의 가치를 널리 알릴 기회라고 판단, 촬영지를 이곳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촬영이 진행되자 중랑구도 팔을 걷고 나섰다. 영화 제작에 앞서 구는 망우공원 주차장과 용마천 약수터 등에 촬영지 사용 협조를 요청했다. 촬영기간 안내 현수막을 제작해 곳곳에 설치했다. 서일대학교를 방문해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고 구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포스터도 붙였다. 또 예산 200만원을 들여 각종 행사장 입구와 구청 홈페이지에 영화 홍보 배너를 띄웠다. 배우 대기실 제공, 초대권 제작 등 영화 촬영부터 제작에 필요한 물품 등을 제공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민들도 한목소리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망우3동에 거주하는 김순양(54)씨는 “평소 자주 다니던 약수터가 영화 촬영지로 활용된다는 말을 듣고 자랑스럽고 신기했다.”고 흐뭇해 했다. ●10일 중랑구민회관서 시사회 중랑구는 오는 10일 오후 7시부터 9시30분까지 중랑구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영화 ‘약수터 부르스’의 열린시사회를 열 예정이다. 시사회엔 문병권 구청장을 비롯해 주민 400여명, 서일대 학생 등 총 500여명이 참석한다. 망우공원 용마천 약수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약수터 부르스’는 백수 청년을 검술 고수로 착각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에 소외계층들의 삶의 이야기와 블랙유머가 버무려진 독립영화다. 영화는 16일 명동 롯데시네마에서 시사회를 시작으로 26일 건대입구·일산·부평·부산 롯데 시네마 등 4곳에서 동시 개봉된다. 문 구청장은 “유서 깊은 망우산 묘지공원 약수터를 배경으로 영화가 제작돼 구민들은 물론 전국에 중랑구의 뛰어난 문화유산과 자연녹지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인제 DMZ 생태전시관 개관

    강원 인제 한국DMZ평화생명동산 교육마을에 비무장지대(DMZ)의 생태환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이 개관, 관람이 시작됐다. 4일 인제군에 따르면 전시관은 DMZ 전반에 걸친 설명과 함께 중동부 북부지역의 생태계 등을 소개하는 7개 존으로 구성됐다. 전시관은 480㎡ 규모로 사업비 18억 4400만원이 들었다. 7개 존으로는 DMZ 범위와 접경지역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존’과 DMZ의 자연이 스스로 복원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아픈 상처를 치유하다 존’, 중동부 산악지역의 생태를 담은 ‘평화·생명이 숨쉬는 중동부 산악지역 존’, 중동부 산악지역의 중요자원인 식물을 벽면에 영상으로 연출한 ‘푸른 숲길따라 존’이 설치됐다. 또 DMZ 중동 부산악지역 중심지인 금강산 향로봉의 생태환경을 개체별로 분류하고 생생하게 재현한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드는 땅 존’, 국내 최초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인제 대암산 용늪 및 자연성을 회복해 가고 있는 인북천 가전리 습지를 소개한 ‘생태계의 순환고리 존’ 등이 꾸며져 있다. 인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속초관광수산시장 전천후 장터로

    강원 속초지역 전통시장인 속초관광수산시장(옛 중앙시장)이 전천후 장터로 바뀐다. 속초시는 전통시장 환경개선 사업의 하나로 속초관광수산시장의 명동로에 비가림시설공사 구조물 조립을 마치고 본격적인 설치공사에 들어갔다고 3일 밝혔다.명동길 비가림시설 설치공사는 속초관광수산시장의 어물전·닭전골목 비가림시설 사업에 이은 세 번째 사업이다. 사업에는 국·도비 등 모두 9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창성문구사부터 강릉떡방앗간까지 연면적 1500㎡에 길이 180m 구간에서 진행된다.시는 지난달 초 차 없는 거리와 연계해 소방시설과 화강암으로 보도정비를 모두 완료한 데 이어 조립식 철골 구조물의 설치는 11월 중순까지, 천막은 12월 중순까지 설치하는 등 올해 말까지 모든 비가림 시설공사를 마칠 계획이다.명동로의 비가림시설이 완료되면 전통시장내 대부분 지역에 비가림시설이 설치돼 날씨에 상관없이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시민과 관광객, 지역 상인의 편의가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이같은 전통시장 현대화사업으로 전통시장의 매출도 예전보다 크게 개선되고 있다.속초관광수산시장활성화구역 관계자는 “전통시장 현대화사업에 힘입어 예전에 비해 고객은 30%, 매출은 20% 가량 늘어났다.”고 말했다.속초시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전통시장내 비가림시설, 주변 교통체계 개선, 대형 주차장 조성, 빛의 거리 조성, 차 없는 거리 조성 등 2006년부터 전통시장 현대화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채용생 속초시장은 “전통시장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이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시장 상인들의 의식 개선을 통해 깨끗하고 정감어린 전통시장의 특색을 살리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속초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물고기 꽃다발/이림

    [엄마와 읽는 동화] 물고기 꽃다발/이림

    “아유, 냄새!” 분홍장미가 찡그리며 말했다. “우후! 냄새!” 줄돔이 벙글거리며 말했다. 서울 명동 노다지 횟집. “사장님, 이 것 잠시 좀 맡아주시겠어요? 지하철 타고 갔다 올 일이 있어서요.” 점심 식사를 마친 초등학교 졸업생 어머니가 계산대에 꽃다발을 내밀며 말했다. 분홍 장미 한 아름에 버들개지 두어 가지, 또 다른 꽃들도 섞여 있었다. 꽃다발 속에는 벌써 봄이 와 있었다. “어이, 주방장!” 꽃다발은 주방 안으로 건네어졌다. 횟감용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수족관 위 선반 위에 올려졌다. “아유, 기분 나빠!” 분홍장미는 오후 내내 수족관 위 선반 위에서 코를 쥐었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물고기 냄새가 역겨웠다. “우후! 기분 좋아!” 줄돔은 오후 내내 수족관 안에서 코와 입을 활짝 열고 헤엄쳐 다녔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장미 향기가 황홀했다. “그 아주머니, 곧 우리를 데리러 올 거야… 늦둥이 아들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얼마나 정성들여 꽃다발을 만들었는데…” 버들개지가 분홍장미를 달랬다. 버들개지는 꽃다발 꽃 중에서 하나뿐인 야생 꽃이다. “코 좀 다물어. 흔적만 남은 코를 벌름벌름, 발름발름… 너, 힘 빠지면 바로 회로 썰어진다는 것 알지?” 볼락이 줄돔을 나무랬다. 볼락은 수족관 물고기 중에서 하나뿐인 자연산 횟감이다. 값비싼 눈요기용 횟감인 줄돔 뒤에 숨어 다니며 뜰채를 피해 다니는 꾀돌이다. 밤이 왔다. 주방 안은 어슴푸레 밝다. 뽀르르 뽈뽈~ 웅~ 수족관 산소 방울 소리에 냉장고 소리가 가끔씩 더해지고 있다. “아유, 냄새!” 분홍 장미는 밤늦도록 코를 쥐고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우후! 냄새!” 줄돔은 코를 벌름거리며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뭐? 수족관에서 물고기 냄새가 올라온다고?… 그만 자. 그 아주머니, 내일은 틀림없이 올 거야.” 버들개지가 분홍 장미 잠을 재촉했다. “그만 자. 잠을 잘 자야 하루라도 더 생생하게 버티지.” 볼락도 줄돔 잠을 재촉했다. 다음 날이 왔다. 사장과 주방장은 하루 내 선반 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바빠서 꽃다발이 거기 있다는 것조차 잊은 듯했다. 밤이 되도록 졸업생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유, 냄새. 훅…” 분홍 장미는 몹시 목이 말랐다. 벌써 겉잎이 다 말라 자줏빛 테를 두르고 있었다. “우후, 냄새. 헉…” 줄돔은 온몸이 나른했다. 까만 줄무늬에 하얀 거품 같은 것이 끼고 있었다. 자정 무렵이었다. “훅! 훅!…” 분홍 장미는 목이 탈 대로 탔다. 속잎까지 꾸덕꾸덕 마르고 있었다. “헉! 헉!…” 줄돔은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뼈없는 물고기처럼 온몸이 흐물거렸다. “좋은 수가 있어!” 버들개지가 말했다. “분홍 장미야, 우리 저 수족관 물에 뛰어들자.” “뭐라고?” “아무리 꽃다발 꽃이라지만 이렇게 날로 말라 죽긴 싫어.” “?” “너처럼 비닐하우스 속에서만 큰 꽃은 모르겠지만, 내 고향 시냇물 속에도 물고기가 많았어! 물고기가 발을 간질러 주면 힘이 막 솟곤 했지.” “저 비린내 나는 물에?… 싫어, 싫어.” 분홍장미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수가 있어!” 볼락이 말했다. “줄돔아, 우리 저 꽃다발 속으로 뛰어들자.” “뭐라고?” “어차피 너나 나나 내일을 못 넘겨. 손님들 눈요깃감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너부터 바로 회로 썰어질 거야! 난 이런 감옥 같은 데서 죽음을 맞긴 싫어.” “?” “너처럼 양식장 속에서만 자라온 물고기는 모르겠지만, 내 고향 바다 속에는 물풀도 많았어. 검푸른 물풀 속을 헤엄치고 있으면 힘이 막 솟아나곤 했지.” “저 고운 냄새 나는 꽃다발 속에?… 좋아, 좋아. 그런데 어떻게 저 높은 곳에 뛰어들어?” 줄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뛰어들어야지 뭐. 아님 내려오게 해서 들든지...” 볼락이 지느러미를 흔들며 말했다. 뽀르르 뽈뽈~ 웅~ 사작사작 삭삭 끙~ (“분홍장미야, 몸을 밀어 봐.” “싫어, 버들개지야. 무서워!” “내려가야 한다니까!”) 뽀르르 뽈뽈~ 웅~ 철버덕 철버덕 슉! 풍덩~ (“돌돔아, 뛰어 올라.” “그렇게 높이? 난 볼락 너처럼 몸이 가볍지 않아!” “그래도 더 높이 뛰어야 해!” “이렇게?” “그래. 그래야 꽃들이 우리 지느러미를 잡고 내려오게 하지.) 밤새 노다지 횟집 주방 안은 수선스러웠다. 늘 나던 수족관 산소막대 소리에 안간힘을 쓰는 소리들이 더해졌다. 날이 밝았다. 삐삐~ 띠띠~ 문이 열리고 사장이 들어왔다. 주방장도 들어왔다. 수족관 앞으로 간 사장이 소리쳤다. “아니, 주방장, 꽃다발이 왜 수족관 안에 떨어져 있어? 선반이 기울어진 것 아니야?” “아닌데요. 똑 바른데요!” “그럼 왜 널따란 선반에서 꽃다발이 떨어져?” “그, 글쎄요… 꽃다발이 발을 달았나? 아님 혹, 혹시 우리 주방 안에 쥐가?…” 사장과 주방장은 주방 안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곧이어 비닐 옷 입은 아저씨가 들어왔다. ‘우주수산’이란 글씨가 새겨진 파란 통을 들고 있었다. “사장님, 오늘 횟감 진짜 좋습니더. 바로 넣겠습니더.” 우주수산 아저씨가 수족관 앞으로 왔다. 물 속에 떨어져 있는 꽃다발을 보고 소리쳤다. “아이, 이게 뭐꼬? 이 꽃들 바보 아이가? 짠물에 뛰어들어서 김치가 될라 카나… 에잇!” 우주수산 아저씨는 꽃다발을 문밖으로 휙 날려버렸다. “사장님, 어제 회 특대 시킨 사람이 있었어예?” “왜요?” “줄돔 큰 것 없앴네예.” “아니, 아직 잡지 않았는데요?” “잔고기들도 거의 다 팔았고요.” “아닌데?… 어젯밤 퇴근할 때만 해도 있었는데?… 가만! 꽃다발 속에?” 사장이 얼른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주방장도 따라 나갔다. “사장님, 그 고기들, 다 꽃다발 속에 숨어 든 게 틀림없어요.” “빨리 꽃다발을 찾기나 해. 큰 돔 값이 얼만데!” “예, 예!” 사장과 주방장은 꽃다발을 찾느라 횟집 앞 주차장을 헤매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꽃다발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꽃, 꽃다발이 어디 갔어?” “정말, 그새 어디로 간 거야? 흔적도 없어.” “…저, 저기!” 뒤따라 나온 우주수산 아저씨가 소리쳤다. “어디?” ”어디요?“ “저기, 저기예!” 대성당 위로 로켓 모양 물체 하나가 올라가고 있었다. 분홍 몸체에 줄무늬 문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줄무늬 문 안으로 오글오글 바글바글 손님들이 타고 있었다. “비행접시다! 제보해야지.” 징-칙! 지나가던 청년이 디카를 눌렀다. “미사일이다!” 찰칵! 지나가던 초등생도 손전화를 눌렀다. “물고기 꽃다발, 삼각산 너머로 가버렸지요?” “낮달 속으로 들어갔어!” “우주로 날아갔습니더!” 사장과 주방장, 우주수산 아저씨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 하나가 가던 길을 되돌아와 소리를 질렀다. “누구예요? 남이 싣고 가는 시험용 폭죽에다 꽃다발을 던진 사람이… 폭죽 값이 얼만지 알아요? 오늘 연구소에서 발사 시험을 해야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근데 저 폭죽이 왜 터지지 않고 날아가기만 하지?” ●작가의 말 지난 겨울, 아들 졸업식이 있었다. 2월 하순은 꽃들에겐 추운 날씨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꽃다발 속 꽃들에게 참 미안했다. 축하 오찬을 하러간 횟집 수족관 물고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에게 찰나적인 즐거움을 위해 바쳐진 그 순간이, 저들에겐 한평생 온힘을 다해 일군 가장 빛나는 순간인 것을. 그들에게 영원한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이 동화를 썼다. ●약력 199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가작. 제13회 계몽사 아동문학상 장편동화 부문 당선. 경남아동문학상 수상. 영남 아동문학상 수상. 제7차 교육과정 5학년 국어교과서에 ‘울타리속 비밀’ 수록. 펴낸 책으로는 ‘아빠는 짜리몽땅’, ‘안녕하세요?’ 등 다수가 있다.
  • 독립운동가 산실 명동학교 새달 복원

    독립운동가 산실 명동학교 새달 복원

    시인 윤동주와 영화배우 겸 감독 나운규를 비롯해 수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했던 명동학교가 원형대로 복원된다. 중국 지린(吉林)성 룽징(龍井)현이 130만위안(약 2억 3000만원)을 들여 지난 9월 착공한 명동학교 복원 사업이 다음 달 완공된다고 중국동포 인터넷 매체 조글로미디어가 1일 보도했다. 복원 학교는 명동학교 옛터에 세워지며 4채의 단층 벽돌 건물로 이뤄졌던 1920년대 초 명동학교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중국동포 교육의 효시이자 수많은 항일 운동가를 배출했던 명동학교는 1908년 4월 규암 김약연 등 민족지사들이 세운 근대적 민족교육기관이었다. 1925년 일제 탄압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1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신문화 보급과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이바지했다. 고 문익환 목사, 시인 송몽규, 한국인 최초의 항공기 조종사 서왈보 등도 명동학교 출신이다. 1919년 3월 룽징에서 대한독립선언대회를 주도한 충열대는 명동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돼 구성됐으며 대한국민회(간도국민회) 중심인물 대부분도 이 학교 졸업생이었다. 명동학교가 북간도 민족운동의 근거지로 자리잡자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명동학교를 불태우고 교장 김약연을 체포했다. 1923년 출옥한 김약연이 폐허가 된 터에 임시 건물을 지어 다시 문을 열었지만 이듬해 혹심한 흉년으로 운영난에 시달리다 1925년 룽징의 은진중학교와 통합, 문을 닫았다. 이후 학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담배밭으로 변했으며 ‘명동학교 옛터’라고 쓰인 표지석만이 과거 민족운동의 산실이었음을 알려 왔다. 선양 연합뉴스
  • 파격으로 무장한 3색 햄릿 어때요?

    파격으로 무장한 3색 햄릿 어때요?

    셰익스피어의 ‘햄릿’만큼 전세계 연극연출가들의 예술혼을 자극하는 작품이 또 있을까. 셰익스피어가 남긴 원전은 하나지만 이 세상엔 동서양 연출가의 숫자에 버금가는 ‘햄릿’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버전의 ‘햄릿’이 명멸을 거듭하고 있다. ‘햄릿’의 변주, 혹은 진화의 지점이 궁금하다면 11월 서울에서 공연되는 3편의 ‘햄릿’을 놓치지 말자. 파격과 실험정신으로 가득 찬 ‘햄릿’을 잇따라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극단 여행자의 ‘햄릿’은 우리 전통의 굿 양식을 극 전반에 도입한 독특한 시도로 눈길을 끈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동양적인 이미지와 정서로 풀어내 국내외에서 호평받았던 양정웅 연출은 이번 작품에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햄릿의 슬픔을 한(恨)의 정서로 해석하고, 햄릿의 복수를 한풀이를 위한 한판 굿으로 풀어낸다. 양정웅 연출은 “유령을 본 적이 없어서 존재감이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죽은 영혼이 무당의 몸을 통해 이야기한다면 좀 더 현실감 있게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거대한 신당처럼 꾸민 무대부터 압도적이다. 3면 벽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무속신앙 그림으로 채우고, 바닥엔 흰 쌀을 깔았다. 점을 보거나 제사를 지낼 때 쌀을 사용하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20㎏짜리 90포대의 쌀이 소요됐다. 무대 한가운데 덧마루를 깔아 놀이판처럼 만들고 주변에 북, 꽹과리, 장구 등 악기를 배치해 마치 한판 신명나는 굿판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할 예정이다. 실제 극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종류의 굿이 벌어진다. 햄릿이 죽은 아버지를 위로하는 지노귀굿,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어의 넋을 건지는 수망굿, 그리고 죽음을 앞둔 햄릿을 위한 산지노귀굿을 볼 수 있다. 흰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햄릿과 가죽 재킷을 걸친 레어티즈가 칼 대신 부채로 결투를 벌이고,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가 정화수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등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30일~11월8일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02)762-0010. 연희단거리패의 ‘햄릿’은 1996년 초연 이래 14년간 끊임없이 국내외 무대에 오르며 빛나는 연륜을 쌓아 온 작품이다. 한국적 ‘햄릿’공연의 원조라 부를 만한 이 작품이 대학로 혜화동 눈빛극장 개관작으로 11월5일부터 22일까지 공연된다. 원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연희단거리패 특유의 몸짓과 소리,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윤택 연출의 ‘햄릿’은 내년 4월 루마니아에서 열리는 제7회 국제셰익스피어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됐다. 세계 각국의 ‘햄릿’만을 엄선해 열리는 페스티벌에는 미국 연출가 로버트 윌슨, 러시아 유리부투소프, 독일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등 세계적 연출가들이 참여한다. 1만 5000~3만원. (02)763-1268. 이탈리아 폰테레라극단의 ‘햄릿-육신의 고요’는 철제 구조물로 단순하게 형상화한 무대 위에서 검은 옷을 입은 햄릿과 하얀 펜싱용 의상과 헬멧을 쓴 검투사 6명의 대립과 긴장을 통해 햄릿의 비극적 운명을 극대화해 보여 준다. 여섯 결투자들은 거트루드, 오필리어, 폴로니우스, 클로디어스, 레어티즈의 망령 등 다양한 존재들을 연기한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 초청작. 11월14~1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2만~5만원. (02)3673-2561.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어릴때부터 저축습관 몸에 배”

    “유년시절부터 저축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요. 아직 미혼이라 수입을 부모님께서 관리해주고 계셔서, 부모님께서 대신 이 상을 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27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제46회 저축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배우 장동건은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배우 김아중과 가수 이자연은 국무총리 표창을, 가수 이민우는 금융위원회 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김아중은 “초등학교 때 받아본 저축상을 두번째로 받게 됐다.”면서 “통장은 세어보진 않았지만, 10개는 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행사에서는 훈장 1명, 포장 3명, 대통령표창 6명, 국무총리표창 11명, 금융위원회 위원장 표창 73명 등 총 94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10·26 30주년]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10·26 30주년]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대담: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 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 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 만에 이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 만에 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 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 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도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 대통령을 재평가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경호를 하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었다. 그 중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 텐데.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 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들어봐야 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호실장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 뻔했는데, 그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 김 주석이 사망했다.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됐다. →그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씨가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씨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 줘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 될 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 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기에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 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 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많이 다녔나.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없었다. 그런 걸 그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충남)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전남) 광양으로 바뀌었다.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니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박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다. 외모는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다. 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1974년 영부인이 서거한 뒤 굉장히 외로워하셨다. 그러다 보니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때 건설됐다. 안면도에는 제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하다. 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박상범 전 靑 경호실장 인터뷰 전문 보러가기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은행·증권사 ‘전략적 동침’

    은행·증권사 ‘전략적 동침’

    직장인들의 월급통장을 유치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경쟁하던 은행권과 증권업계가 ‘적과의 동침’에 나섰다. 돈은 증권사에 두되 지급결제에 이용하는 카드는 은행을 이용하는 식으로 전략적 제휴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관련한 경쟁 과정에서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기싸움을 하던 양측이 복합상품 출시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업무협약 줄줄이 ‘시너지효과’ 23일 외환은행과 대우증권은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에서 은행 신용카드에 증권사 CMA를 결합한 상품 출시와 관련한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했다. 외환은행의 넘버엔 Epass카드에 대우증권 CMA계좌를 연계시킨 ‘대우증권CMA 외환넘버엔Epass카드’를 출시하는 데 양측이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오는 11월 시장에 선보이는 이 상품은 최고 연 4.7%의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CMA에 교통요금 할인과 각종 포인트를 제공하는 신용카드의 장점을 섞었다. 앞서 외환은행은 지난 8월 대신증권과도 양해각서(MOU)를 맺고 비슷한 형태의 CMA카드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현대·SK증권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3가지 종류의 CMA결합 신용카드를 출시했다. 대우증권 및 한국투자증권과 각각 제휴를 한 기업은행도 다음달 말까지 2개 이상의 CMA신용카드를 발급한다는 계획이다. 이전까지 CMA와 은행 카드와의 만남은 같은 금융지주사의 ‘가족간 제휴’가 대부분이었다. 고객이 신한금융투자 CMA통장을 신한카드 결제계좌로 지정하면 입금액보다 많은 포인트를 적립해 준다든지, 우리투자증권의 CMA에 가입한 고객이 신용카드를 신청하면 우리은행에서 발급해 주는 방식 등이다. 하지만 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휴 범위를 스스로 넓히고 있는 양상이다. 정수천 외환은행 카드사업본부 부행장은 “은행과 증권사가 각각 축적한 노하우를 공유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효과는 클 것으로 본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상품을 출시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동침이 유행한다고 해서 은행과 증권사 간 CMA 유치전이 끝났다고 보는 이는 적다. 필요에 따라 잠시 서로 동거는 할 수 있지만 작정하고 ‘살림’을 차리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동거일 뿐 살림 차린 건 아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내부에선 당장은 카드발급 수가 증가하면서 수익도 늘겠지만 도가 지나칠 경우 고객도 자금도 증권사로 고스란히 넘겨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면서 “이런 이유로 CMA와 관련한 증권사와의 제휴는 일부 상품에 국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귀띔했다. 실제 외환은행은 10여개 주력 카드상품 가운데 30, 40대 CMA 고객층이 가장 일치한다고 보는 1개 상품(Epass카드)으로만 제휴 범위를 국한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CMA고객과 월급통장 고객은 층이 달라 전혀 피해가 없다고 주장하는 측과 증권사 CMA에 날개를 달아주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은행 내부에서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면서 “서로 필요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적이니만큼 동거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오늘의 눈] 용산국민법정의 진실/이재연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용산국민법정의 진실/이재연 사회부 기자

    지난해 이맘때 ‘수습기자’ 딱지를 달고 들어온 후배들을 몰아치면서까지 일깨워주고 싶었던 게 있었다. 현상보다 중요한 건 사건 이면의 진실이란 점이다. 기자로서 존재 의미였다. ‘취재’란 단어조차 낯설었던 수습기자 시절, 선배 기자로부터 혹독하게 전수받은 금과옥조다. 용산참사 결심공판이 열린 21일 검찰은 이충연 철거대책위원장 등 피고인 7명에게 징역 5~8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화염병 투척 등 화재 참사의 원인이 철거민에게 있고 경찰에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구형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앞서 18일 서울 명동에선 또 하나의 법정이 열렸다. 용산 국민법정, 참사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7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피고인도 뒤바뀌었다. 김석기 전 서울청장 등 경찰간부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제대로 된 전말을 밝히고 사건 책임자를 가리자며 2만여명의 시민들이 기소인단에 동참했다. 전화, 인터넷, 우편으로 별도 신청한 265명의 배심원 중 50명이 공개추첨으로 선정됐고 이날 45명이 출석했다. 재판 전후 어렵사리 시민 배심원단을 인터뷰했다. 미술을 전공한다는 대학생 박모(22·여)씨는 맑은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사회문제 잘 몰라요. 용산사건도 마찬가지고요.” 그의 말은 이어졌다. “인기 TV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상금 300만원을 걸고 재개발 이주 프로젝트에서 방영하기도 했잖아요. 연예 프로그램까지 풍자할 정도면 무엇이 진실인지 궁금해져서요.”라고 말했다. 김석기 전 서울청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명동 거리의 국민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날 진행된 국민법정은 법적구속력이 없다. 검찰이 철거민들에게 중형을 구형했지만 시민들의 판결과 검찰의 판단 사이, 어디에 진실이 있는 걸까. 한가지 확실한 건 답답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시민들은 오직 진실을 찾아보자고 법적 효력이 없는 거리법정에 모였다는 사실이다. 28일 오후 법원의 선고공판이 주목되는 이유다. 이재연 사회부 기자 oscal@seoul.co.kr
  • 도난방지 맨홀뚜껑 등장

    도난방지 맨홀뚜껑 등장

    맨홀뚜껑 도난사건을 차단하기 위해 철선이 연결된 맨홀뚜껑이 등장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는 맨홀뚜껑 도난을 예방하기 위해 1000여만원을 들여 쇠고리 여러 개를 연결한 철선 700개를 만들었다고 19일 밝혔다. 이 철선은 맨홀뚜껑과 맨홀 내부바닥에 고정된 빗물받이 낙엽 거름망을 연결하는 데 사용된다. 철선의 길이는 70㎝로 청소를 위해 맨홀뚜껑을 여는 데는 지장이 없다. 흥덕구는 인적이 드문 곳에 설치된 맨홀뚜껑에 쇠고리 철선을 연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흥덕구가 쇠고리 철선을 만든 것은 맨홀뚜껑 도난 사건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장성동, 미평동, 봉명동 일원 이면도로에서 맨홀뚜껑 32개가 사라지는 등 올해까지 130개가 도난당했다. 지난해에는 총 170개가 사라졌다. 범인을 잡은 것은 최근 2년 동안 1건뿐이다. 맨홀뚜껑 1개를 만들어 설치하는 데 총 8만원 정도 들어가 해마다 적지 않은 예산이 새나가는 것이다. 흥덕구 관계자는 “생계형 도둑들의 소행으로 보인다.”며 “맨홀뚜껑을 가져가는 사람을 보면 경찰이나 구청으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장나라 “영화와 중국행사 병행, 그래도 행복해”

    장나라 “영화와 중국행사 병행, 그래도 행복해”

    배우 겸 가수 장나라가 영화 ‘하늘과 바다’(감독 오달균·제작 제이엔디베르티스망)를 찍으며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놨다. 19일 오후 서울 명동 롯데 에비뉴엘에서 열린 영화 ‘하늘과 바다’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장나라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에도 중국을 오가며 다양한 행사에 참석해야만 했다.”고 고백했다. 아버지인 주호성이 ‘하늘과 바다’의 제작에 깊인 관여한 줄도 몰랐다는 장나라는 “영화 일정으로 바쁠 때도 중국을 빈번히 방문했던 이유를 최근에야 알게됐다.”고 너스레를 떨어 객석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밝힌 장나라는 “많이 노력했고, 또 내가 열심히 돈을 벌며 만든 영화라 더욱 애착이 간다.”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편 ‘하늘과 바다’는 집에만 있는 아이 하늘(장나라 분)과 집에서 쫓겨난 아이 바다(현주니 분), 집도 없는 외로운 피자배달부 진구(유아인 분)의 우정을 담은 따뜻한 영화다. 영화 ‘오! 해피데이’ 이후 6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인 이 영화에서 장나라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하늘 역을 맡았다. 장나라의 부친인 제이엔디베르티스망의 주호성 대표가 제작하고 영화 ‘마음이’의 오달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하늘과 바다’는 오는 29일 개봉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사진=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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