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명당자리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수급자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보행자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콩국수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 사원
    2026-03-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6
  • 아파트 조망권 마케팅 뜬다 / ‘한강·바다 + 명당’ 강조 감상적호소 보다 효과적

    한강과 바다의 조망권 프리미엄을 강조,아파트 투자를 이끌어내려는 광고가 눈길을 끌고 있다. 6차 서울 동시분양에 나온 LG청암 자이 아파트는 수요자들의 청약을 유도하기 위해 ‘한강 조망권+명당’을 강조하고 있다. 광고 밑바탕에는 클로즈업시킨 한강 이미지를 깔고,그 위에 아파트 조감도를 얹어 시원한 한강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키고 있다.헤드라인 카피는 태조 이성계와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었던 곳임을 내세워 ‘역사가 인정한 명당자리’로 뽑았다. 도시안㈜은 ‘씨클라우드 부산’ 호텔형 오피스텔을 분양하면서 ‘해운대에서 多(다)가져라.’라는 광고로 투자자들의 눈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해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는 입지를 지녔다는 것을 광고카피로 뽑았다.아파트 로비에서 백사장까지 30초면 달려나갈 수 있다며 바다 조망권을 컨셉트로 내놓았다.시원한 광고만 보고도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류찬희기자
  • 사회 플러스 / 최규선씨 ‘농지에 가족묘’ 추가기소

    서울지검 형사8부(부장 金鎭太)는 1일 용도 변경 없이 불법으로 농지에 가족묘를 조성한 혐의(농지법 위반)로 최규선(43)씨를 추가 기소했다. 최씨는 지난 2001년 3월 자신의 고향인 전남 영암군 금정면에 6500㎡의 농지를 매입한 뒤 불법으로 증조부와 조부모 등의 묘를 옮겨 가족묘를 조성한 혐의다. 최씨가 가족묘를 조성한 지역은 백제시대에 천자문 등을 일본에 전수해 일본 고대문화 형성에 기여한 왕인 박사의 묘와 마주하고 있는 명당자리로 알려져 있다.
  • 이산가족 면회소 어떻게 짓나/ 1000명 수용 규모 건설비 남측 부담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가 조속히 이뤄질 것인가.1일 남북적십자회담 실무접촉에서 남북이 조포마을 면회소 설치를 합의했고 북측의 의지도 굳건한 만큼 착공 시기만 남은 상태다.이에 따라 면회소의 규모와 입지조건,연내 착공가능 여부,공사 기간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때 이산가족 100명이 500명의 가족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최소 600명 이상이 묵을 수 있는 규모로 이뤄져야 한다.거기에 대형 면회장과 운영 사무실 등도 갖춰져야 한다. 북측은 1일 남측 대표단과 함께 조포마을을 둘러보면서 변전소가 가까워 전기사정이 좋은 점과 동해선과 연결되는 금강산청년역과 도보로 10분 거리인점,식수원 북강과 인접한 데다 온정각과 가까운 점 등을 들어 최고의 적지라고 강조했다. 북측은 아예 조포마을의 민가 10여채도 현재 철거에 들어갔으며 주민 이주를 진행하고 있다. 북측은 가급적 연내에 면회소를 착공하거나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공사에 들어가자며 “면회소 형태를 모양새 있게 짓고 규모는 1000명 정도 수용할수 있도록 대규모로 짓자.”는 방안을 내놓았다. 남측 역시 조포마을에 면회소를 짓는 데 긍정적이다.물론 아직까지는 ‘제1후보지’이지만 최상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이날 오후 면회소 예정지인 온정리 조포마을을 둘러보던 남북 대표단은 모두 흡족해했다.북측 리 단장은 “원래 이 땅은 아끼던 땅인데 (상부에서) 면회소 건설하라고 떼줬다.여기 이상 명당자리가 없다.”고 자랑했다.남측 이수석대표는 ‘금강산 온정리 조폭마을’이라고 큰소리로 읽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남은 것은 실무적인 문제다.면회소를 착공하기 전에 지질조사,설계 등을 해야 한다.이번 실무접촉에서 조포마을로 면회소 부지를 확정한다 하더라도 지질 조사에만 열흘 정도 걸리게 된다.또한 설계작업 역시 빨라도 두 달 정도걸리며,길면 서너달도 걸릴 수 있다. 착공에 들어가면 남측이 비용과 장비를 지원하고 북측의 인력을 이용하면 완공까지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을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북측을 설득하는 것도 과제다. 남측 수석대표인 이병웅(李炳雄) 한적 총재특보는 “연내 착공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여러 여건상 연내 착공은 조금 어렵지 않나 싶다.”면서도 “어쨌든 가능한 한 빨리 착공에 들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한편 회담이 진행 중인 금강산여관은 현대아산이 지난 9월 임대한 뒤 보수공사를 앞두고 있어 탁자와 의자 등 집기를 2층 로비에 겹겹이 쌓아놓는 등 어수선한 상태였다.계단을 덮고 있던 카펫도 치워져 있었다.북측 관계자는“이번 실무접촉을 위해 급하게 회담장을 꾸미느라 애를 먹었다.조명·난방등 불편한 점이 있을 것”이라고 양해를 부탁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2001 대한매일 광고 우수상/ 건설부문 쌍용건설(경희궁의 아침)

    우수 광고를 발굴함으로써 광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광고인들에게 긍지를 심어주고 있는 ‘2001 대한매일 광고대상’에서 이렇게 권위있고 뜻깊은 상을 받게 되어기쁩니다. 그동안 ‘아내같은 아파트 쌍용 스윗닷홈’으로 가족의행복을 추구하는 아파트를 공급해온 쌍용건설이 고품격 주거명작 ‘경희궁의 아침’을 선보여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습니다.서울 4대문 한복판에 들어서는 ‘경희궁의 아침’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주거형 주상복합빌딩이기에 도심이라는 점이 오히려 소비자 입장에서는 꺼려지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단,도심의편리함 외에 고궁의 명당자리라는 ‘터’를 강조했습니다. ‘하늘이 내린 터!’ 이는 4대문안에 있으면서 경희궁,덕수궁 등 5개의 궁궐로 둘러싸인 지역에 위치한 것에 착안한 컨셉이었습니다.특히 문틈으로 보이는 왕궁의 뜰이라든지,‘경희궁의 아침’을 아름다운 연못에 반사된 모습으로 표현한 비주얼은 소비자들의 호기심과 호감도를 극대화했을 뿐 아니라 이를본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봅니다. 최세영 홍보팀장
  • 석탄일 특집프로 ‘풍성’

    은행잎 새순이 돋았는지,라일락 꽃잎이 어느새 떨어지는지 모른 채 숨가쁜 나날들이다.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다보니 정작 소중한 것들은 스쳐가 버리는 건 아닌지….하루쯤속도를 늦추고 인생의 쉼표를 찍는다면 어떨까.그 날이 바로 무념무상의 깨달음을 가르친 부처님 오신 날이면 더 제격이겠다. 1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공중파 방송들이 이 날의 뜻을 기리는 다양한 특집프로들을 내놓았다. KBS는 ‘미국스님 무량의 선(禪)수행기’를 30일 오후11시35분 방송한다.예일대학 재학중 우연히 숭산스님의 법문을 듣고 불가에 입문한 무량스님(미국명 에릭 버럴·41)이주인공.무량은 한국에서 5년간 수행을 마친 뒤 미국으로돌아가 LA인근 산속에 전통 사찰을 짓고 있다.절터는 2년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닌 끝에 풍수지리에 따라 찾아낸 명당자리다.낮에는 한국에서 날아온 도편수들과 일꾼처럼 일하고,밤에는 참선하는 스님으로 동분서주하면서 깨달음을찾아 나선 무량의 모습은 많은 의미를 던진다. EBS는 가장 많은 볼거리를 마련했다.특별 대담 ‘천 강에비친 달’(1일 오후10시)에서는 판화가 황남채와 실상사주지 도법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의 참뜻과 한국 사회에서 불교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풀어본다. 천강에 비친 달은 월인천강(月印千江)을 직역한 말.부처의 가르침이 세상에 널리 퍼진다는 의미와 함께,달이 물에비치듯 나와 남의 모습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2가지 뜻을 내포한다. 특집다큐 ‘티벳을 가다-바람과 생명의 땅’(1일 낮12시)은 오랜 세월동안 불교의 관습 속에 살아온 티베트인들에게 불어온 현대화의 거센 바람 속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변화에 적응하는 티베트인들의 문화와 자연풍광을 만나본다. 이밖에 64년 발표된 신영균 김지미 주연의 영화 ‘석가모니’(1일 오후8시)도 방송된다.석가모니의 탄생부터 구도의 고통,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따라간다. SBS ‘휴먼 TV 아름다운 세상’(1일 오후7시10분)은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간 ‘미운 7살’ 악동 5명을 담은 ‘동자승,30일간의 출가’를 방송한다.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조계사에서는 5∼7세 어린이를 삭발해 30일동안 출가시키는행사를 한 것.엄마와 잠시만 떨어져도 눈물을 흘리는 마마보이 청파스님,언제나 울고만 있는 청북스님,그들을보살펴주는 청공스님 등이 30일 후에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 속에 숨어있는 부처를 만나본다. 허윤주기자 rara@
  • 롯데 辛格浩회장 경영기법‘화제’

    롯데그룹이 해태음료의 인수후보로 급부상하면서 롯데 신격호(辛格浩)회장의 독특한 경영기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신회장은 라이벌 관계에 있는 회사를 인수한 뒤 동업종 계열사와 통합하는 대신 공정한 경쟁을 유도,이윤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 예로 롯데제과와 롯데삼강이 9,000억원 규모인 빙과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빙과사업 비중은 롯데삼강이 40%선으로 롯데제과(35%)보다 많지만 시장점유율은 롯데제과가 38%선으로 16%선인 롯데삼강을 앞서 있다. 이같은 계열사간의 경쟁을 사업중복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지만 롯데그룹으로서는 두 회사를 통해 빙과시장의 절반이상을 손쉽게 차지할 수 있다. ‘자신있는 분야에 적극 투자한다’는 신조를 지닌 신회장은 같은 그룹소속은 아니지만 계열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외부 업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과감한 전략도 서슴치 않는다. 지난 8월 롯데백화점 잠실의 식당가 명당자리를 그룹의 주력외식업체인 롯데리아와 경쟁관계에 있는 외식업체인 T.G.I.프라이데이스를 입점시킨 것이그 예.백화점 관계자는 “신회장은 롯데 잠실점의 고객수가 다른 상권에 비해 너무 적다며 고객을 더 많이 유치하는 방안으로 유명 외식업체를 입점시키는 방법을 검토해 보라고 귀띔 했다”며 “지나가는 말처럼 던진 한마디였지만 T.G.I.를 유치한 뒤 내점 객수가 월 3만명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신회장의 이같은 경영기법은 최근 해태음료 인수업체로 롯데그룹이 유력시되면서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롯데그룹이 일본계 컨소시엄을 통해 해태음료를 인수하게 되면 2조4,000억원 규모의 음료시장을 놓고 한집식구가 된 롯데칠성과 해태음료는 경쟁을 벌이게 되는 셈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충무공 선영에도 쇠말뚝…보수작업중 식칼등 22개 발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모 묘소 등에 식칼과 쇠말뚝이 각각 11개씩 꽂혀있는 것이 후손들에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0일 오전 8시50분쯤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산 2의1 충무공의 부친(덕연 부원군 李貞)과 모친(정경부인 초계 변씨)의 묘소에서 봉분 보수작업을하던 충무공의 14대손 종학씨(47)가 두 묘소에서 식칼과 쇠말뚝을 발견한데이어 충무공의 형제·후손 등의 9기 묘소에서도 식칼과 쇠말뚝이 각각 9개씩 꽂혀 있는 것을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종학씨는 이날 “최근 내린 비로 봉분 일부가 무너져 내려 인부 6명을 동원,보수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두 묘소에 식칼과 쇠말뚝이 각각 1개씩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발견된 식칼은 전체 길이 34㎝(칼날 길이 23㎝,손잡이 11㎝)의 크기로 두봉분 맨 윗부분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각각 손잡이 부분까지 깊숙이 박혀 있었으며 전혀 녹슬지 않은 상태였다.또 쇠말뚝은 길이 30㎝,직경 3㎝ 크기로 한쪽 끝이 매우 뽀족하며,종학씨 등이 봉분을 굴착기로 파내는 과정에서 각각 발견됐다. 식칼과 쇠말뚝이 발견된 충무공의 부모 묘는 충무공 묘역에서 500m가량 떨어진 능선을 따라 마련된 덕수이씨 종중 선영(30여기)의 상단 3번째에 위치해 있다. 경찰은 이 선영이 있는 야산이 봉황새 형국의 명당자리로 누군가 후손들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이같은 짓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지관및 풍수지리가 등을 상대로 조사중이다.경찰은 덕수이씨 문중과의 개인적인원한 관계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배제치 않고 수사하고 있다. 대전 최용규기자 ykchoi@
  • 죽어서도 마음 편한 나라/서해성 소설가(굄돌)

    저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무덤이 단지 문화적인 행태를 갖추어 주검을 폐기하는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전통적으로 무덤을 유택,죽은 이가 사는 영혼의 집이라고 한 건 죽음을 삶의 연장선에 놓고 있음에 틀림없다. 실제로 평민들의 무덤은 거의가 살던 집과 그닥 머잖아서 망자의 숨결이 현실에서 생생히 숨쉴 수 있었으며,잘 닦인 터는 인근아이들의 놀이공간이기도 했다.대개의 무덤 모양은 마치 산모가 아이를 가진 배 형상이어서 새로운 생명이나 가치를 잉태하는 대지를 상징한 듯 보이기도 한다.알다시피 대지는 실로 모든 생명의 어머니다. 후손들이 여기서 무언가 발원되기를 비는 일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게다가 육탈을 촉진하는 약산성의 이 나라 땅은 알맞게 빠른 시신의 부패를 명당자리의 중요한 요소로보게끔 만들었다. 그러므로 대단위 묘지가 들어설 일도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가로막을일도 없었다. 전적으로 이는 산업사회가 거대도시를 부추기면서 파생시킨 산물일 따름이다.서구기본사회의 가치는 이제 어쩌면 마지막으로 전통적인영면의 가치마저 수정하기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묘지가 생산은커녕 점유를 넘어 잠식으로만 보이게 된게 되레 너무 늦은 발상이 아닌가 싶다.효율적 운운이란 정확하게 말해 근본적으로 고정불변의 것인 대지를 좀더 과학적으로 착취하겠다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다. 효율을 앞세운 가치체계가 대지에 저지른 문명의 범죄에 관해 언급하는 건 차라리 구차하리라.사실 제 아무리 묘지가 많기로서니 골프장보다 더할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 생을 간난한 처지로 살다가는 사람들이 후대에라도 발복하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좋은 묘 자리를 찾아온 일마저 탓할 수는 없으리라.매장문화의 방향이 바뀌기 위해서는 명당도 매장도 필요 없는 사회가 먼저 요구된다고 말해야 옳지 않겠는냐는 뜻이다.추석 밑에,죽어서도 마음이 편한 나라를 부질없이 꿈꾸어 본다.
  • 격동의 대한제국 이면사/철없는 임금(비록 남가몽:1)

    ◎고종 첫 어명 “계동 군밤장수 처형하라” 대원군은 미친 사람 행세를 해가면서 와신상담 집권의 기회를 노리다가 1863년 마침내 둘째 아들 재황을 왕위에 올려 놓는데 성공하였다.이 분이 바로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다.고종의 즉위식 날이 음력으로 12월13일이었으니 양력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취임식 날인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고종의 나이는 열두살 철없는 어린아이였다.만으로 따지면 10살 밖에 안되는 아이였으니 요즘 같으면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다.그러나 고종 앞의 철종이 18살이었고 그 앞의 헌종이 8살,그 앞의 순조도 11살 나이로 등극하였으니 당시로서는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대원군 둘째 아들… 12세 즉위 왜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계속해서 왕위에 올랐느냐 하면 순조,헌종,철종 등 3대 60여년에 걸쳐 세도정치를 하던 안동 김씨가 의도적으로 어린 왕을 세워 권력을 전단하려 했던 탓이라 한다.그런 세도정치하에서 흥선군(흥선대원군은 고종 즉위 후에 부른 존칭)처럼 난처한 사람은 없었다.흥선군은 영조대왕의 현손(증손자의 아들)이었으니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였다.그러니 그는 안동 김씨들의 일급 요시찰 인물이었다.까딱하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죽는 몸이었다.말이 세도정치지 사실상 군사독재보다 더한 공포정치였다.그러니 철종 14년간은 대원군으로서는 살얼음 밟듯 조심하여 살아야 했던 눈물의 재야시절이었다. 흥선군의 사저는 최근 복원된 운현궁이다.말이 궁이지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흥선군이 거지나 다름없이 살았던 초가 삼간이었다.이 초가 삼간에 왕기가 서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집터 때문이었다.터 좋은 데를 명당자리라 하지만 운현궁 자리는 그보다 더 좋은 왕후정승이 나는 터,대지였다. 운현궁 터에는 본시 관상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관상대는 일명 서운관이라 했으므로 서운관의 구름 운자를 따서 운현궁이라 했다는 것이다. 관상대라면 천기를 엿보는 기관이다.왕이 되는 것은 천운을 타고나야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천기를 엿보는 고개마루의 초가집에서 왕이 났다.운현궁에 왕기가 서린다느니 또 성인이 난다느니하는 소문은 벌써 철종 초년부터 났었다.그러면 그럴수록 흥선군의 처신이 더 어려워져 마침내 탁질양광,옛날 양녕대군이 그랬듯이 온갓 미친 짓을 다하며 정신병자처럼 행세하여 안동 김씨의 눈을 속였던 것이다. 고종이 왕좌에 오르게 된 데에는 집터 말고 고종의 관상이 좋았다는 설도 있다.경상북도 청도에 사는 박유붕이라는 애꾸눈 관상쟁이가 있었는데,어느날 운현궁에 와서 고종 얼굴을 보더니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물리치고 난 뒤 “왕이 될 관상이니 이 말을 절대 누설하지 마십시요”라고 했다고 한다.이 사람은 그 공으로 고종이 즉위하자 이듬해 경기도 남양부사와 수사로 임명되었다고 하니 관상보는 것도 출세의 한 방편이었다. 1863년 말 강화도령으로 이름난 철종이 나이 32살의 젊은 나이에 후사도 없이 죽게 되니 흥선군은 극비리에 조대비와 내통하여 전격적으로 후계자를 자신의 둘째 아들로 결정해 버렸다.즉위식은 지금의 창덕궁 안에 있는 인정문에서 거행되었다. ○“운형궁에 왕기 서린다”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누가 대통을이을 것인지 논란이 많았다.중론이 분분하여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사슴(대권)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이와같이 의론이 분분하게 갈려 있는 시점에 조대비가 특별히 처분을 내려 운현궁의 흥선군 제2자 재황으로 대통을 잇게 한다는 명령을 내리니 누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그리하여 12월 길일 양신에 고종이 보위에 오르니 만조 백관들이 모두 축하하고 만세를 불렀다.한쪽에서는 철종의 장례를 치르고 한쪽에서는 즉위식을 거행하니 조정의 백관들은 눈코뜰새가 없었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철없는데다가 평소 굶주리며 자라온 고종이었기에 옥좌에 앉자마자 제일성으로 하는 소리가 계동에 사는 군밤장사를 잡아다 죽이라는 것이었다. 놀란 대신들은 황급히 제지하였다. “전하가 지금 보위에 오르시어 성선의 덕으로써 정치를 하셔야 하는데 어찌해서 주살의 위엄을 먼저 보이십니까” 이에 고종은 반박하여 말하기를 “다른 이유는 없다.내가 여러 번 군밤 하나를 달라고 하였으나 한번도 주지 않았으니 이 어찌 인심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이같이 이익만 알고 의리를 모르는 자는 죽어 마땅하며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의 불선한 마음을 막아주어야 하는 것이다.어찌 내가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그를 죽이려고 하겠는가.” 이 말을 듣고 대신 한 사람이 아첨하여 말하기를 “훌륭하도다! 왕의 말씀이시여.훌륭하도다! 왕의 말씀이여. 다른 사람의 불선한 마음을 막는다는 교를 내리시니 과연 임금의 도량에 알맞습니다.그러나 일개 하찮은 군밤장사를 효수하라는 것은 전하께서 처음 등극하신 자리에서 혹 국가의 화평한 기운에 미안한 일인 듯 생각됩니다.” 이에 수렴청정을 하게 된 조대비(신정왕후)는 교를 내리기를 “대신이 말씀드린 것은 금석과 같은 말입니다.그 효수하라는 명령은 거두어 들이시는 것이 타당할 것 같으니 짐짓 그만두고 논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했다. 이 말을 한 대신이 다름 아닌 안동 김씨 핵심인물이었는데 그 아첨하는 말솜씨는 후세의 정치인들에게 으뜸 가는 귀감(?)이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 청와대/황병선 논설위원(외언내언)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북악산 자락의 청와대 자리는 풍수지리상 최상의 길지에 속한다.북한산과 북악산을 주산으로 좌청룡인 낙산,우백호인 인왕산,그리고 명당수인 청계천이 흘러 배산임수의 더없는 명당자리다.6공 당시인 90년 현재의 새 관저를 짓기위한 토목공사중 ‘천하제일복지’라 새겨진 조선조 중기 작품으로 보이는 표석이 발견되기도 해 길지임을 증명했다. 너무나 뛰어난 명당인 때문인지 청와대 자리는 얽히고 설킨 사연이 우리 역사의 기복만큼이나 복잡하다.고려때 조그만 이궁이 세워졌던 이 명당 자리에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을 창건했고 청와대는 이 경복궁의 후원터에 해당한다.이 후원에는 오운각 융문당 등과 함께 경무대가 세워져 과거장으로 쓰였는데 이 경무대주변이 청와대 터인 것이다. 자유당시절 무소불위 권세의 상징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기전 경무대는 일제 조선총독의 관저로,해방후에는 미 군정장관 하지장군의 숙소로 쓰이는 서글픈 과거를 가졌다.4·19직후 윤보선 대통령은 시위대의 공격목표,원부의 상징처럼 된 경무대 명칭을 건물의 청기와에서 따온 청와대로 바꿨다.당시 서울 시사 편찬위원을 맡았던 김영상씨가 청와대와 함께 ‘화령대’를 제시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이성계가 건국후 중국 명나라에 보내 국호로 선택을 구했던 조선과 화령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뒤 박정희 대통령때는 ‘청’보다는 ‘황’색이 더 존귀함을 나타낸다며 ‘황와대’로 바꿔야 나라에 길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일화가 남아 있다.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하며 구총독부 건물과 함께 총독관저였던 옛 청와대 건물은 완전 철거됐다. 새 정부 인수위가 ‘국민의 정부’에 걸맞게 청와대 명칭을 바꾸는 문제를 검토한다는 보도다.권위주의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는게 이유다.김영삼 정부도 청와대를 개방하며 ‘관광명소’로 만든다고까지 했었다.이름바꾸기도 따지고 보면 옛것을 부수는 일이다.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과거의 것을 부수기보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멋진 정치로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의 이름이 정겨운 이미지로 국민에게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은 아닐까.이제 우리 정치도 워싱턴의 백악관이나 런던의 다우닝가 10번지처럼 전통있는 권부의 애칭을 가질때가 되지 않았을까.
  • 장묘문화 개선해야 한다/김동익 새문안교회 목사(서울광장)

    산자(생자)를 위한 땅은 점점 좁아져가는데 비해 죽은자(사자)를 위한 땅은 점점 넓어져가고 있다.이런 상태로 계속되다가는 국토의 묘지화가 우려된다.한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의 묘지수는 1천9백만기로서 전국토의 약 1%인 9백60만㎡를 차지하고 있다.서울 면적의 1.7배에 달한다.해마다 25만명의 사망자중 85%인 22만여명이 매장됨에 따라 여의도의 1.3배 규모인 10㎢의 땅이 묘지화되고 있다. 한국장묘연구회의 보고에 의하면 산 사람이 1인당 차지하는 대지면적이 44.5㎡(13.5평)인데 비해 죽은 자가 차지하고 있는 1인당 묘지면적은 50.5㎡(15.3평)나 된다고 한다. 수도권 지역의 산세가 완만하고 경관이 좋은 곳은 묘지 아니면 골프장으로 채워지고 있고,특히 일부 몰지각한 저명인사와 부유층은 호화분묘를 만들어 사회의 빈축거리가 되고있다.이들은 매장에 관한 법률을 아예 외면하고 있는듯 하다. 현행 묘지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분묘의 면적은 기당 20㎡(6평)이내이고,합장의 경우도 25㎡(7.5평)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그러나이러한 법률이 특권층에 의해 사문화되고 있음이 안타깝다. 묘지문제는 법률적 규제 이전에 국민의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동양의 풍수지리설과 유학의 조상숭배 사상의 영향으로 명당자리에 호화묘지를 만드는 것이 효도이고,가문을 빛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선조의 정신을 이어 받으려는 내용 보다는 좋은 묘지를 만들려는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다. 고대 인도의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젊은 왕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명당자리에 묘지를 잘 마련하였다.한 해가 지난뒤 기일이 되어 왕은 어머니의 묘지에 가 보았다.묘지만 쓸쓸히 있는 것 같아서 석등을 비롯하여 여러 동물들의 조각상들을 묘지주변에 세웠다.그 다음해에도 어머니 묘지에 가 보았다.묘지 주변이 허전한 것 같아서 담을 쌓고,묘지옆에 대궐도 지었다.나무도 심었다.여러해 세월이 흘렀다.왕이 다시 묘지를 찾아 갔었다.묘지 뒷동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묘역의 경관도 좋고 대궐도 웅장하고 망부석도 담장도 아름다운데 잡초가 우거진 가운데 부분이너무 초라하게 보여 눈에 거슬렸다.왕은 신하에게 명령하기를 담장안에 있는 볼품없이 잡초로 덮여있는 부분을 파 없애버리라 했다고 한다. 외양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결국 본질을 상실하고 만다는 의미의 설화이다.그래서 인도사람들은 이 설화에서 교훈을 찾아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기 보다는 화장한다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흙으로 육체를 만든후 그 속에 영혼을 넣어주어 하나의 인격체가 되게 했다고 가르치고 있다.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고,육체는 썩어 흙이 될 뿐이다.흙이 될 시신을 위해 호화분묘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 사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유가족 자신들의 위세를 드러내려는데 불과하다.묘지를 잘 만드는 것이 곧 효도라는 인식의 개혁이 있어야 하겠다. 당장 사망자 모두를 화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우리의 전통이나 관습,정서가 화장에 호의적이 아니다.또한 종교에 따라 화장을 허용치 않는 경우도 있다.그렇다고 현행 분묘의 폐습을 그대로 방치해 둘수는 없다.몇가지 개선점을 생각해 본다. 첫째,모든 묘지는 규격화,평준화해야 한다.현행법이 허용한 묘지규격(6평)도 너무 크다. 유럽의 대다수 나라에서는 묘지 크기가 대개 3평(10㎡)이내이다.이탈리아의 경우는 기당 1∼2평에 불과한다.법적규격을 절반정도로 축소해도 묘지로서 충분하다.「국민 누구도 예외없이 평준화된 묘역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만약 위반한 묘지에 대해서는 개선될때까지 해마다 벌과금을 중과해야 한다」 한가지 부연하고 싶은 것은 국립묘지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다.국립묘지에 갈 때마다 마음이 개운치 않은것은 계급이나 신분에 따라 묘지 크기가 다르다는 점이다.국립묘지부터 규격화,평준화되어 다른 사설 묘지의 본이 되고,교육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둘째,납골당을 각 지역별로 세워서 적극 활용토록 해야 한다.정부에서는 사회복지,국토이용의 측면에서 납골당을 전국 각지에 건축해야 할 것이다.납골당을 건축하되 음산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현대식으로 아름답고 경건한 모습으로 지어야 하고,특히 각종 종교의식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셋째,한시적 묘지제도를적극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일부 종교계에서 전개하고 있는 한시적 묘지제를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있다.10년이상 매장된 시신은 거의 부식되게 마련이다.따라서 15년 이상된 묘는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할 수 있는 제도를 개발,발전시켜야겠다.모든 관립과 사설 묘지단지에는 반드시 납골당을 의무적으로 건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종교계가 앞장서서 묘지개선을 위한 의식 개혁운동을 전개해야 한다.전국에 3만여 교회가 있는데,자립하는 교회는 1만여곳 된다.대다수 자립하는 교회들은 자체 묘지를 가지고 있거나,가지려고 계획하고 있다.장례나 묘지제도는 종교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각 교회가 묘지를 가지려고 하고 있다.이러한때 교회가 묘지제도 개선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 「화장하도록 하여라」(송정숙 칼럼)

    『나를 화장하도록 하여라』 기회있을때 이말을 꼭 해두고싶다.당장 중병도 아니고 아직 그럴 것까지는 없는 나이이지만 미리 해두고싶다.이 싱싱한 6월에 사위스럽고 써늘하게시리 웬 「화장타령」이냐고 핀잔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래도 이런 기회에 말해두고 싶다. 최근에 아버지의 초상을 치렀다는 20대 젊은이를 만났다.그는 생전의 아버지에게서 『화장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들었었기때문에 돌아가신 뒤에 집안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뜻을 살려 『화장해드리자』는 의견을 냈다가 「천하의 불효」취급을 당했다.결국 공원묘지 한귀퉁이에 구차하게 묻어드렸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도 생전의 아버지뜻은 「화장」이었음을 지울 수가 없고,그때문에 집안에서 「불효」취급을 받은 일이 억울하다고 했다. 그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유언이 실현되기 어려운 중요한 이유를 절실히 깨달았다.그러므로 가능하면 총기가 성할때 본인이 확실히 천명해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는 것이 무엇보다 상주가 될 자식들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유언이 실현되게 하는 길인 것이다. 최근 어떤 정치지도자의 「가족묘소」가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가족들」묘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 따랐지만 사진에 비친 그 가족묘는 둘레가 꽤 호화로워보였다.이것을 보도한 언론의 태도는 그런 일(묘소를 새로 정하여 가꾸는 행위)이 자손된 사람의 미덕처럼 느껴지게 했다. 요새는 산역을 옛날처럼 사람품으로 하지않고 포크레인으로 하기때문에 높은산에 산소마련하는 일을 기피하고 찻길에서 가까운 논밭에다 마련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그래서 경작지까지 묘지로 잠식당하는 일이 더욱 극성스러워졌다고 한다.생각있는 사람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전국토가 묘지로 씌일 것같다고 걱정이다.그런데도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조상의 묘를 치장하는 일은 미덕으로 묘사되는 이중적 구조를 우리는 지니고 있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요즈음 사람들은 부쩍 주술에 경도되는 경향을 보인다.예언이 적중했대서 화제를 모은 무속인이 화려하게 언론에 부상하고 급기야는 비싼 모델료로 광고에도 발탁되고,「명당자리」잘짚는 지관은 「부르는 게 값」으로 모셔지는 세상이다.그래선지 예의 「가족묘」주인에 대한 뜬소문도 나돈다. 사실은 그 묘소를 잡아준 사람이 그방면에 용한 「모씨」인데 그자리에 조상산소를 쓰면 평생소원이 성취될 것이라고 해서 가족묘를 새로 조성한 것이라는 둥,그래도 묘지를 호화롭게 꾸미지는 말랬는데 말을 안들었으므로 효험을 책임질 수 없다고 말했다는 둥….필시 소문꾼들의 소행이 분명한 근거없는 풍문이 나도는 것이다. 묘제에 관한 제도는 이리저리 견제를 당하여 손도 못대고 있는 형편이어서 국토의 묘지잠식은 방치상태에 있다.최근에 나온 사회지도층의 「화장 수범」공론은 이런 일련의 일에 대한 궁여지책인 셈이다.그러니 그 공론이라도 솔선해서 따라야 할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화장은 당연하게 장기기증을 전제로 한다.내가 보던 눈이 남의 안구에 들어가 계속 볼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죽음이후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만한 설이 아무것도 없다.다만,죽는 순간영혼이 육신을 떠나 허공에 떠서 산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게 된다는 「설」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그것이 맞는다면 육신이 묘지에 담기는 것이나 불꽃에 산화하여 가루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차라리 한줌 가루가 되어 반짝이는 햇빛을 받으며 허공에 날리는 것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같다.아니면 오지 항아리에 담겨 먼저 떠난 가족들과 함께 납골당에 놓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다가 기일이나 성묘철에 가족의 방문을 받는다면 그또한 반갑고 대견할 것이다.새로 맞은 며느리가 새로 태어난 손주를 안고 단란한 모습의 가족이 되어 찾아준다면 나비처럼 가벼운 내영혼은 나풀나풀 그들의 어깨위를 날아다니며 『네가 바로 너로구나!』하고 반가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평소에 이런 마음을 미리 밝혀두면 자식들은 부모를 화장하는 일에 「불효의 누명」을 쓸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그래서 『쓸 수 있는 장기는 누군가 쓸 수 있게 하고 남은 몸일랑 화장하여라』하는 말을 기회있을 때 분명하게 말해두고싶다.〈고문〉
  • 지일·극일 3·1절 특집 다양

    ◎일 독도 영유권 주장 시점과 맞물려 관심/KBS­재미 다큐작가 크리스틴최의 「남경대학살」/MBC­독도 둘러싼 한·일분쟁 예고 「표충비의 비밀」/SBS­「3·1절 바로세우기」·드라마 「국화와 칼」 방송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한·일 양국이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올해 3·1절에는 그 어느해보다 많은 기획특집물이 홍수를 이룰 전망이다. 우선 KBS­1TV는 24일 하오 7시30분 「역사추리­서삼릉 태실에 관한 사연」(이상출 연출)을 방송한다. 태실이란 왕실의 안녕과 국가의 번영을 위해 전국의 명당자리를 골라 임금과 왕자·공주등 왕손의 태반과 탯줄을 봉안해놓은 곳.일제 총독부가 조선조 왕과 왕자·공주의 태반과 탯줄 53위를 모아 공동태실을 만들었던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을 찾아 일제가 공동태실을 만든 이유와 또 태를 넣었던 항아리들이 모두 사라진 이유를 추적해 본다. 25일 하오 8시 1TV 「KBS 일요스페셜」시간에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작가로 이름을 떨치는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틴 최가 제작한 「제국의 이름으로­남경 대학살의 기록」을 방송한다. 샌프란시스코 필름페스티벌에서 특별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한 이 프로그램은 학살당한 시체와 강간당한 여인의 모습등 남경 대학살 당시의 참혹상을 생생하게 담고있는 미국인 선교사 존 매기의 기록필름에 뉴욕타임스지 기자였던 틸단 듀어딘,한국인 정신대 송신도 할머니,남경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됐던 우에하 후치로,나카토미 하쿠도,아주마 시로 등의 증언을 곁들여 재구성한 것이다. MBC­TV 「논픽션 30」(윤혁 연출)은 25일과 3월3일 상오 8시30분에 2부작 「땀나는 비석­표충비의 비밀」을 방송한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재난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진 경남 밀양의 표충비(일명 영당비)를 찾아 1894년 동학농민전쟁 발생 7일전 처음으로 땀을 흘린 이래 최근까지 1백여년동안 수십차례에 걸쳐 땀을 흘린 기록을 되짚어 보고 비석에 얽힌 비밀을 추적한다.또 지난 1월14일에도 땀을 흘려 독도를 둘러싼 한·일간의 분쟁을 예고했다는 소문의 진상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26∼28일 하오11시에는 우리 민족의 애환과 영광을 담고있는 전통민요 아리랑의 종적을 찾아가는 특집 다큐멘터리 3부작 「아리랑 아라리요」(송승종 연출)를 방송한다. 해외편,김산·나운규편,국내편으로 나누어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 저자 님 웨일스의 「아리랑」기록들을 통해 미국·일본·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필리핀 등지에 퍼져있는 「아리랑」을 찾아 한민족의 징표임을 확인한다. SBS­TV도 29일 밤 12시10분 「시사 포커스」(박래양 연출)시간에 「3·1절 바로세우기」란 주제로 우리가 갖추어야할 바람직한 대일 자세를 되짚어 보는 한편 3월1일 낮 12시30분부터는 일본 극우세력들의 실체를 파헤쳐 호평을 받았던 2부작 드라마 「국화와 칼」(장형일 연출)을 앙코르방송할 예정이다.
  • 고 장택상전총리 유족에 육관도사 2천만원 패소(조약돌)

    ○…서울지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박장우부장판사)는 14일 장택상 초대총리의 3녀 병혜(64)씨가 풍수지리책 「터」의 작가인 육관도사 손석우(65)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장씨와 박정희전대통령간에 마찰이 있었다는 명당자리는 장씨측과는 관련이 없는 만큼 명예훼손에 따른 배상금 2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 병혜씨는 지난해 2월 『장씨가문이 경북 칠곡군 금오산일대 땅을 소유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손씨가 「터」에서 장총리가 5·16 직후 박전대통령에게 이일대 명당자리를 권력에 눌려 헌납한 것으로 묘사하는 등 가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씨를 고소한 데 이어 민사소송을 제기.
  • 선각의 땅 「명동촌」(두만강 7백리:27)

    ◎민족의 아품 간직한 숱한 유적 곳곳에/일지사 길러낸 학교·교회당 보이고 윤동주시인 생가 6간 기와집 복원/장재촌 사자산 아래동네는 인재배출 명동 1995년은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은지 꼭 반세기가 되는 해다.한반도에 살고있는 민족들에게도 물론 감회가 깊겠지만,연변조선족들의 올해 8월15일은 더욱 각별할 수 밖에 없다.나라 잃은 설움을 삼키면서 북만주 황무지를 일궈 생명을 부지하면서도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 구실을 했던 땅이 바로 오늘의 연변이었기 때문이다.그 해방 이후에도 대륙의 격변속에서 민족을 지키고 살아온 사람들 또한 연변 조선족인 것이다. 그래서 연변에는 민족과 아픔을 같이한 유서 깊은 지역들이 숱하게 널려있다.용정시 지신향 명동촌은 빼놓을 수 없는 독립운동의 요람이다.나는 함경북도 회령 대안의 삼합(옛 이름은 게사처)에서 그 옛날 이주민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오랑캐령을 넘고 달라즈를 지나 용정으로 가는 길목 육도구의 명동촌에 닿았다.본래 청국인 대지주 동한의 땅이었는데 1899년2월 두만강을 건너온 함경도사람들이 사들였다. 그 명동촌을 사들인 사람들은 김약연(1868∼1942년)을 비롯한 네 양반가문의 대소 스물두집이었다고 한다.1백41명의 식솔과 함께 눌러앉았다.교육구국의 뜻을 품었던 김약연은 규암재라는 서당을 꾸린데 이어 19 08년4월27일 서당을 명동서숙으로 바꾸었다.그리고 다음해 명동학교를 세웠다.이상설이 용정에 세운 서전서숙이 그가 헤이그로 떠난 이듬해 1906년 폐교되는 바람에 학생들은 명동으로 몰려들었다. ○김약연 선생이 설림 이에따라 명동학교는 반일구국 인재양성을 목표로한 민족공동체의 자리를 굳힐 수 있게 되었다.이동휘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명동학교를 드나들었고,이동휘의 딸 이의순은 교편을 잡았다.1928년까지 1천여명의 학생을 배출했는데 국내 3·1만세운동의 연속인 연변의 3·1운동,광주학생 성원운동의 주역들이 모두 명동학교 출신들이었다.나운규,윤동주,송몽규 등도 명동학교가 배출한 인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명동학교는 오간데가 없고 그 자리에는 담배가 자라고 있었다.다만 그가 세우고 성도들을 위해 직접 설교를 했던 명동교회당 건물이 시야로 들어왔다.서울의 금성출판사 김낙준회장의 협찬으로 복원된 명동교회당은 85년전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그동안 문화대혁명과 같은 숱한 격변을 겪었던 교회당은 한 때 정미소가 들어앉은 적도 있다.마침 교회당 안에서는 「반일민족 독립투사 김약연,저항시인 윤동주 사진전」이 열리는 참이었다. 김약연을 기리는 공덕비가 교회당 동쪽에 서 있다.이 역시 80년대에 요행히 흙무더기속에서 파낸 것이다.명동사적지 복원에 따라 이제야 비각안에 세워진 공덕비는 해방 후에 김약연일가의 성분이 지주로 낙인찍힌 바람에 모진 수모를 당했다.뿌리째 뽑아 내동이 쳤기 때문에 귀퉁이 한쪽이 깨진채 발굴되어 자리를 잡았지만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그를 다시 알아주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공덕비 뒤늦게 발굴 시인 윤동주의 생가도 복원되었다.명동교회당 서쪽으로 꽤 떨어진 옛 집터에 복원된 그의 생가는 육간 기와집이다.운동장 같이 넓은 뜰안에 남향으로 앉았다.봉당과 부엌이 딸리고 정주간을 복판방에 배치한 함경북도식 구조를 한 전통가옥이다.네모칸 문살이 촘촘한 지게문을 시인이 열고 나올법도 한 착각이 든다.마루에 올라 문을 열었더니 새하얀 벽지가 눈부셨다.시인의 집은 그렇게 복원했다. 이제 발걸음을 명동의 윗동네인 장재촌으로 옮길 차례가 되었다.어딘가 김약연의 발자국이 찍혀있을 길을 따라 장재촌으로 향했다.남으로 동실동실한 봉우리들이 이마를 맞댄 오봉산이 바라보이는 사자산자락 아랫동네가 장재촌이다.장재촌에서 바라본 사자산은 한마리 용맹한 사자가 휘우듬 허리를 꼬고 돌아앉은 형국이다.또 선바위를 용머리로 본다면 거대한 용이 뛰는 형국이기도 하다. 장재촌의 이종순(70)노인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 사자산은 사자가 돌아앉아 대변을 보는 형국인데,대변도 보통 것이 아니고 금변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사자산 아랫동네는 영웅과 인재가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명당자리로 여겼다.바로 여기 김약연목사의 집자리가 있다.집은 허물어져 없어졌지만 명동학교에서 퇴직한 조광춘(69)노인이 그자리에 초가 팔칸을 지었다.집 울타리 밖에 나무판자테를 두른 우물만이 옛모습 그대로라고 했다.그의 회고담은 아주 감격적으로 들렸다. ○일인들도 빈소 찾아 『김약연 목사님은 국어를 손수 가르치셨댔습니다.그런데 작문에 반일이나 독립이라는 말이 없으면 점수를 주지 않았다고 기래요.또 수업시간에 학생이 한눈을 팔면 학생을 벌하시는 대신 자기 종아리를 치셨다는 겁네다.분명히 학생 탓인데도 자기가 강의를 잘못 했다는 뜻에서 그렇게 한 것이디요.훌륭한 스승이셨던 모양입네다』 김약연의 장례날에는 수백명의 조문객이 장재촌을 메웠다고 한다.가족은 물론 제자들과 애국인사,그의 인격을 높이 샀던 일인들도 빈소를 찾았다는 것이다.그리고 통곡소리가 고을을 메웠다.그도 그럴것이 김약연의 죽음은 간도 조선인사회의 대들보가 무너진 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용정의 일본 총영사는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헌병과 순사를 데리고 나와 반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김약연의 유택은 장재촌 서쪽 산언덕에 마련되었다.나는 묘소에 참배하고 담배 한개비를 물었다.우리민족의 풍속대로면 묘를 남북방향으로 써야 옳았을 것이다.그런데 시신은 동서로 누어계셨다.문득 소설가 우광훈선생이 언젠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풍수지리설에 좌청룡 우백호란 말이 있디요.마을에서 보면 사자산 선바위가 용의 상이고 좌측이 됩네다.이 자리가 선바위 등성이니 좌청룡이고,사자와 범이 다가 동물의 왕인지라 사자산을 백호로 보아도 낭패는 없소.김약연선생께서는 정동으로 누우셔서 한반도 모양으로 가꾸고 무궁화를 심어놓은 마을을 굽어보고 계신거디요.그리고 멀리 바라보이는 오봉산은 오복을 뜻하는 것이고,그 복이 나라의 독립으로 실현되길 기원한 것으로 보면 좋을 것입네다』
  • 「터」저자육관도사 등상대/고 장택상씨 유족 손배소(조약돌)

    ○…고 2장택상 초대 외무장관의 띨 병해씨등 유족들은 26일 풍수지리서 「터」의 일부내용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저자 손석우(필명 육관도사)씨와 도서출판 「답계」대표 장소님씨를 상대로 1억1천여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유족들은 소장에서 『「터」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 선친의 묘가 장씨가문 소유의 금오산 명당자리에 무단으로 들어서게 되자 장씨가문측이 이장을 요구하며 강력 항의하다 박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장씨측에서 자진헌납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실어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 창경궁에도 쇠말뚝 2개/일제 소행 추정,장서각자리앞 바위에

    전국명산의 산봉우리등에 이어 조선시대 궁궐인 창경궁안 바위에서도 일제가 박은 것으로 추정되는 쇠말뚝이 발견됐다. 쇠말뚝이 박힌 곳은 궁궐안 장서각이 있던 양화당과 영춘헌사이의 계단 바로 아래부분으로 명당자리로 알려지고 있는 곳이다. 이 쇠말뚝은 광복 40주년인 지난 85년에도 시민들에 의해 발견돼 서울시에 제보됐으나 그동안 제거되지 않고 방치돼왔다.
  • 환경보전 앞장 「풍수지리학회」(산하 파수꾼)

    ◎“자연훼손땐 명당도 잃는다”/지관 46명 환경감시위원에 동참/새달 북한산서 현장캠페인 계획 산속을 헤매며 명당을 찾아다니는 지관들이 환경운동에 앞장섰다.한국풍수지리학회(회장 주광석·47)본부 및 시·도지부 간부 46명은 서울신문사가 벌이는 「깨끗한 산하 지키기운동」의 환경감시위원이 돼 이 운동에 동참했다. 주회장은 『자연이 파괴되면 명당은 커녕 삶의 터전마저 잃게 된다』며 서울신문·스포츠서울이 펴고있는 밝은물 푸른산을 깨끗하게 지키는 운동이 마음에 들어 적극 참여키로 했으며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갈 것을 다짐했다.이에따라 그 첫 사업으로 오는 10월 북한산에서 전국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깨끗한 산하지키기 현장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풍수지리학회는 남들이 환경에 관심을 보이기 전인 10여년 전서부터 자체적으로 각종 자연보호활동을 전개해 왔다.아름다운 산과 물이 그대로 잘 보존돼야만 동양풍수지리학의 대상이 존재하며 따라서 자진들의 설 자리가 있다는데서 비롯됐다. 풍수지리학회가 처음 발족된 것은 지난81년.주회장을 중심으로 8백여명이 모여 학술동호인회로 출발했다. 이들의 첫 사업은 풍수지리서에 기록된 명당자리와 역사에 나타난 명승·고적지등을 답사해 연구하는 일이었다.2년여에 걸쳐 남한의 대상지역을 모두 살펴 본 이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발복이 있을만한 터는 일제때 인위적으로 거의가 훼손됐고 해방후에도 산업개발을 위한 도로와 공장건설로 국토는 상처투성이가 되어갔다. 이에 풍수지리학회는 전국의 지관과 풍수리지학연구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체교육(1∼3개월)과 함께 회원규합에 나섰다.현재 풍수지리학회 회원은 모두 2만5천여명.처음에는 일부의 거센 반발도 있었지만 그동안 환경보전을 전제로 한 풍수지리학설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대상자는 9천여명에 이르며 현재 50명이 수강을 하고 있다. 이와함께 풍수지리론을 종래의 명소에 집착하는 이론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경관과 풍부한 물의 보존상태를 중시하는 치산치수에 중점을 두기로 하고 지난 83년부터 환경 감시활동에 직접 나섰다. 중앙에 본부를 두고 시·군지부를 조직한 풍수지리학회는 봄과 가을에 본부와 각지부별로 한해에 두차례씩 모두 1백여회의 환경캠페인을 갖고 오물과 쓰레기수거,훼손된 산에 나무심기,자연 그대로의 물줄기 보존등의 현장 활동을 벌였다.또 정부나 기업이 추진하는 대형 건설공사가 국토파괴의 주요 원인이 될때는 서슴없이 정당한 이론을 통해 반대하고 나섰다.
  • 대동여지도/“지형도 아닌 풍수지도”

    ◎한균형 교원대교수 논문 「…교수논총」서 주장/지도 구성도가 풍수 3요소 산·강·향과 일치/산맥이 용의모습…태극지형으로 명당 표시 우리나라 고지도의 대명사인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풍수지이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지도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균형 한국교원대교수(지리학)는 최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지리학적으로 본 대동여지도」라는 제목의 논문을 「교원대 교수논총」에 발표했다. 한교수는 『대동여지도를 지도요소별로 분석하면 산맥도·하계망도·도로망도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바로 풍수지리의 기본적인 3요소인 산·강·향과 일치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볼 때 대동여지도는 틀림없는 풍수지도』라고 주장했다. 「대동여지도」는 잘 알려진 대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인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철종 12년)에 펴낸 약 16만분의 1 축척의 목판본 전국지도.남북 22층으로 각층은 가로 20.1㎝,세로 30.2㎝ 크기의 8폭으로 접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순서대로 이으면 세로 7m,가로 3m에 달하는 한장의 커다란 우리나라 전도가 된다. 한교수는 「대동여지도」가 지형 부분은 김정호 자신이 1834년(순조 34년)에 펴낸 「청구도」를 바탕으로 했으나 그림은 완전히 달라 풍수도에 가깝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를테면 풍수에서 산을 용에 비유해 신성시하는 것처럼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산과 산맥은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대동여지도」를 보면 풍수에서 말하는 대간용에 속하는 백두대간이 가장 굵고 소간용에 해당하는 장백정간은 가늘어지며 각각 하나 씩이 보인다.대지용과 소지용에 비유되는 많은 정맥들과 지맥들도 점점 가늘어지며 어떤 곳은 끊어져서 나타나기도 한다.이것은 연결선이 굵을수록 기가 조산으로부터 많이 전달된다는 풍수의 원리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한교수의 주장이다. 또 산태극·수태극의 태극지형으로 명당형태를 지도에 의도적으로 많이 나타낸 것이나 고을의 위치를 3면이 산으로 싸인 삼태기지형 속에 나타낸 것도 이 지도가 실제 지형의 묘사보다 풍수도로서의 역할이 강함을 나타내주고 있다는 것이다.한교수는 『실학자였던 김정호가 당시 서양의 지도제작 기술을 참작했다면 더욱 정밀한 지도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1832년 영국의 통상압력에 이은 1854년 러시아군함 및 1856년 프랑스군함의 잇따른 출몰에 따라 나타난 조선사회의 안전지대나 명당자리에 대한 간절한 요망이 김정호로 하여금 이 지도를 만들게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또 『당시 김정호의 나이 60여세로 묘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가능성이 큰데다 조선 후기 전국 송사의 80% 가까이가 묘자리 싸움이어서 풍수지도의 출현을 사회가 몹시 갈망했다는 점도 이 지도가 만들어진데 대한 설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동작동 국립묘지“만원”/일반묘역 12년전 바닥…특별묘역82기 남아

    ◎관리소,“여유있는 대전묘지 이용해줬으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도 만원을 이뤄 심각한 묘지난을 겪고 있다. 동작동 국립묘지의 경우 사병과 장교를 안장하는 일반묘역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82년부터 신규안장을 못하는데다 독립유공자·군장성등을 위한 특별묘역도 여유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55년 조성된 44만평의 동작동 국립묘지에 설치된 묘는 일반묘역 5만3천8백10기와 특별묘역 5백74기등 모두 5만4천3백84기다. 그러나 6일 국방부에 따르면 남아 있는 특별묘역의 묘는 1백18기에 지나지 않으며 지난해 8월 해외순국선열들의 고국유해봉환을 위해 긴급히 만든 임정요인·애국지사묘역 36기는 이미 안장대상자가 정해져 있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묘는 82기뿐이다. 이 가운데 장군묘가 52기로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고 이밖에 국가유공자묘 7기,경찰묘 23기정도가 남아 있다. 묘지 관계자들은 매년 이곳 특별묘역에 안장되는 경우가 20여기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특별묘역도 4∼5년내에는 모두 찰 것으로 보고 있다. 국립묘지가 만원을 이루자 일부 퇴역군장성들 사이에서는 『빨리 죽어야 동작동에 묻힌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돌고 있다. 이에 비해 79년 동작동 국립묘지가 찰 것에 대비해 만든 대전 국립묘지는 특별묘역을 포함,여유분묘가 3만8천5백38기에 달해 앞으로 20년간은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국립묘지측은 특별묘역대상 유가족들에게 은근히 대전 국립묘지를 권하고 있지만 수도권에 생활기반을 둔 대상자가 많고 동작동 국립묘지의 상징적인 권위등으로 거의 모두가 동작동을 원하고 있다. 강경순국립묘지관리소장은 『대전 국립묘지가 지형학상 명당자리이고 주변환경등 입지조건이 동작동 국립묘지보다 훨씬 뛰어난데도 불구하고 유가족들이 싫어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