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명나라
    2026-04-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55
  • “북한 비핵화는 망상”…한국도 핵무장 해야 하는 이유는

    “북한 비핵화는 망상”…한국도 핵무장 해야 하는 이유는

    북한이 연일 비핵화 논의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국내 50여 명의 안보·국제정치 전문가들이 집필한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총서 1·2권이 최근 출간됐다. 지난달 발간된 1권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 1: 당위성과 추진 전략’이 핵 자강의 필요성과 방향을 다뤘다면 이달 발간된 2권에서는 ‘누구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하는 구체적인 과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한국의 핵무장은 서로 이견을 가진 집단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첨예한 영역으로 꼽힌다. 북한의 위협에 맞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핵무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핵무장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었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핵무장보다는 한반도 비핵화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핵무장론은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핵무장을 하려면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을 깨야 하고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해야 한다”면서 “국제적 경제 제재를 받아 북한과 같은 삶을 각오해야 비로소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출간된 ‘한국의 핵안보 프로젝트’는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시각이 아닌 한국의 한국의 국가생존과 국익 관점에서 핵문제에 대해 다룬 책이다. 한국핵안보전략포럼이 지난해 여름 내내 수십 차례의 대면 및 화상 세미나를 열었고 필자들은 별도의 원고료 없이 집필에 동참해 나온 결과물이다. 이정규 전 주스웨덴 대사는 추천사를 통해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 책은 핵 자강 확보를 위한 비용과 전략을 냉철하게 검토한 지침서”라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핵이 현실의 위협이 된 세상에서 한국만 비핵국가로 남아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비판하며 핵무장의 현실적 필요성을 강조한다. 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특임교수는 “북한 비핵화는 비현실적 망상”이라며 “비핵화를 절대적 가치로 삼고 자위적 핵능력 확보를 금기시하는 사고는 조선 말기에 사대부들이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고 명나라에 대한 맹목적 숭배에 빠져 현실을 외면했던 소중화(小中華)사상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포럼은 내년 상반기 3권을 출간하고 이어 4권까지 마무리해 핵안보 프로젝트에 대한 본론을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3권은 핵전략과 지휘통제체계, 4권은 핵잠재력과 핵잠수함에 대해 다룬다. 정치적 논쟁 속에 밀려나고 가려진 논의들을 깊이 있고 차분히 다룬 만큼 핵무장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한반도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여러 지점을 던져주는 책이다.
  • [서울광장] 강화 비림을 거니는 재미

    [서울광장] 강화 비림을 거니는 재미

    강화전쟁박물관을 강화역사관에서 이름을 바꾼 이후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정문으로 들어서니 왼쪽 언덕에 낯익은 박물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취향도 바뀌었는지 오른쪽에 위치한 비석군(群)이 설치미술인 양 조형미를 자랑하며 강렬하게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역사가 깊은 고장은 어디든 비석거리가 있다지만 67기에 이르는 강화의 그것은 압도적이다. 강화도에서 연륙교로 이어진 교동도의 경기수영 터에서도 30기 남짓 겹겹이 늘어선 비석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무지(無知)의 소치이겠지만 교동도 선정비에 새겨진 이름은 대부분 생소했다. 하지만 강화 비석의 주인공들은 상당수 뇌리에 남은 인물들이다. 그만큼 강화도가 중요한 역사의 고장이라는 뜻이겠다. 비림(碑林)이라고 불러도 좋을 강화 비석군을 둘러보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시인으로도 명성을 떨친 동악 이안눌의 선정비는 두 기나 있었다. 1620년 ‘행부윤 이공안눌 청덕선정비’와 1631년 ‘유수 이공안눌 영불망지비’가 그것이다. 동래부사 시절 고을 백성이 한날한시에 가족의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고 ‘동래맹하유감’(東萊孟夏有感)이라는 시를 지어 위로했던 인물이다. 임진왜란 초기 동래성을 지키던 병사와 주민은 왜군에 몰살되다시피 했다. 강화도호부 수령은 1618년 종3품 부사에서 종2품 부윤으로 품계가 높아진다. 1627년 정묘호란으로 강화도로 피난했다가 환궁한 인조는 강화를 유수부로 더욱 격상시켰다. 이안눌은 부사로 왔다가 부윤이 돼 떠났고, 이괄의 난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물러났다가 다시 받은 벼슬이 강화유수였다. 이시백은 인조반정의 주역인 이귀의 아들로 그 자신도 반정공신이었다. 정묘호란 때는 수원방어사로 병마를 이끌고 동작나루로 달려가 인조를 강화도로 인도했다. 병자호란 때는 병조참판 겸 남한산성방어사였으니 인조의 측근 중에서도 측근이었다. 인조가 정묘호란 직후 강화읍성 개축과 해안 보루 축성을 논의한 것도 이시백이었다. ‘유수 이공시백 지청지덕무휼군졸 영세불망비’로 임지에 흔적을 남겼다. ‘유수 홍공중보 청덕선정 영세불망비’도 보인다. 홍중보는 효종의 뜻에 따라 강화도 동쪽 해안의 진보를 구축했다. 앞서 효종은 현재의 화성 땅인 남양의 영종진을 자연도로 옮겼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가 지금의 이름을 얻은 것도 이때다. 홍중보는 안산 초지진, 인천 제물진, 교동 월곶진, 통진 덕진진을 강화로 옮겼다. 용진진, 승천포진, 광성보도 이전하거나 새로 세웠다. 제물진이 강화에 있는 까닭이다. 제물진 병마만호 김병구의 선정비가 홍중보 불망비 곁에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 ‘삼충사적비’는 병자호란 때 순절한 세 장수를 기린다. 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갑곶 나루터 진해루 아래는 삼충신이 죽은 곳이다. 정축년(1637) 정월 22일이었다. 슬프도다. 삼충신은 강화부 사람이었다. 중군 황선신은 분개하여 싸우다가 전사했고, 우부천총 구원일은 칼을 쥐고 물로 뛰어들어 전사했으며, 좌부천총 강흥업은 중군과 함께 전사하였으니 삼충이라 한다.” 열강의 함선이 다투어 염하로 몰려들던 19세기 역사도 빠질 수 없다. ‘진무사 겸 유수 삼도통어사 신공헌 애민선정비’가 대표적이다. 신헌은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전권대관(全權大官)이었다. 후임 유수는 대표적 탐관오리이자 친일파인 조병식이었다. ‘유수 겸 진무사 조공병식 애민선정비’도 신헌 비석과 같은 해에 세워졌다. 맨 뒷줄에는 ‘오종도비’(吳宗道碑)가 있다. 경략 송응창 휘하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장수다. 정유재란 때는 명 수군을 이끌고 강화에 주둔했는데 드물게 주민들이 편안하게 여겨 떠나는 사람을 기렸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임란 이후 한말까지 외침(外侵)에 대항한 최일선으로 강화의 역사가 압축적으로 담겼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비석군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역사박물관 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장기적으로 넓은 공간에 의미 있게 비석을 재배치하면 강화의 명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하나하나 빗돌의 주인공과 그 시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팸플릿에 설명을 제대로 담는 서비스부터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 한 사람의 양심이 공명해 연대로… 한국 사회 문제의 해법, 양명학서 찾다

    한 사람의 양심이 공명해 연대로… 한국 사회 문제의 해법, 양명학서 찾다

    “일제강점기 박은식, 이건방, 정인보 등 일군의 지성인들이 양명학으로 유교를 개혁하고 민심을 일깨워 국권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 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경제적, 사회적 문제, 개인과 집단 간의 갈등 같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도 양명학적 관점에서 진단하고 극복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내의 대표적 양명학 연구자인 한정길 성균관대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최근 발간한 학술서 ‘양명학’(한국중앙연구원출판부)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가 학창 시절 양명학에 대해 배운 것은 조선시대 주류였던 주자학의 반대편에 섰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양명학은 15~16세기 중국 명나라 왕수인이 주창한 유학의 한 학파로 실천을 강조했다. 중국에서 양명학은 군주 중심의 정치 문화와 마음을 중심으로 두는 심학(心學)의 흥성 덕분에 명대 주류 사상이 돼 일반인의 의식과 행위까지 이끄는 지도 이념으로 기능했다. 일본에서는 일왕 중심의 정치 문화와 공자·맹자 시대로 돌아가자는 고학(古學)을 배경 삼아 국민 도덕학이 됐고, 서양 근대사상과 물질문명 수용에 영향을 줬다. 반면 조선에서는 사대부 중심의 관료 정치 문화와 주자학 중심의 학풍 때문에 수용 초기부터 거센 비판에 놓여 한 번도 주류의 자리에 서지 못했다. 위당 정인보(1893~1950)도 “조선에는 양명학파가 없었다”며 주자학이 체제를 뒷받침하는 학문으로 자리잡고 그에 반하는 사상체계는 무조건 이단으로 배척하는 풍토를 꼬집었다. 한 교수는 양명학이 조선에 비교적 일찍 전래했음에도 이단으로 배척된 이유가 정치 문화와 학술적 측면에 있다고 보고 있다. 조선 성리학도 마음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양명학 수용의 학술적 토대가 되기도 했지만 주자학의 왕도 정치 이념이 워낙 강고했기 때문에 다른 사상체계에 대한 배척이 있었다. 여기에 이황과 그 문인들의 비판이 학계에 강하게 자리잡아 양명학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 교수는 21세기에 양명학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전근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대의 변화에 주체적, 능동적, 집단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진원지는 법적 제약 틀 내에서는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투는 것을 정당한 일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체제”라며 “특히 욕망을 제어하는 내적 장치인 양심을 상실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명학에서는 실심 감통과 실천을 강조하는데, ‘참된 마음은 가닿는 대상에 감응하고 소통하여 애틋하게 여겨서 구해 주려 한다’는 것이 실심 감통이고 실심은 양심과도 일맥상통한다. 한 교수는 “자기 내면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회복할 수 있는 양심은 개인적이지만 사회적 성격을 띤다”며 “개인의 양심에 따른 행위가 다른 사람의 양심을 깨우고 점차 공명해 서로 연대하고 행진할 때 정의롭고 따뜻한 사회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길섶에서] 고양이 역사

    [길섶에서] 고양이 역사

    국사편찬위원회는 2008년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서비스하고 있다. 검색어를 넣으면 한글번역문과 원문을 모두 볼 수 있다. 조정에서 이런 이야기도 오갔을까 싶은 내용도 있으니 재미있다. 고양이도 그렇다. 실록에 129건이나 언급됐다. ‘고양이를 기르는 집에는 쥐가 마음대로 다니지 못한다’는 옛말이 자주 등장한다. 지방 수령을 어진 인물로 뽑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탐오(貪汚)하고 잔폭(殘暴)한 수령에겐 암행어사를 보내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이 조선시대 내내 고르게 분포한다. ‘고양이를 고양이로 바꾼다’는 표현도 나온다. 부정을 저지른 관리를 교체하면서 처신이 바르지 않은 자를 다시 내세우는 인사 난맥상을 지적하고 있으니 오늘날에도 새겨야 할 교훈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으로 온 명나라 제독 이승훈이 선조에게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달라는 공문서를 보낸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선조가 두 차례나 전교(傳敎)했는데도 고양이는 찾지 못했다. 외빈을 접대하는 책임을 맡은 접반사는 이승훈에게 사과해야 했다. 임금의 꾸짖음도 들어야 했다.
  • 천경자 ‘윤삼월’·박수근 ‘노상’ 등…6월 미술 경매 출격

    천경자 ‘윤삼월’·박수근 ‘노상’ 등…6월 미술 경매 출격

    박수근, 천경자 등 한국 근대미술작가와 1970년대 전위에술운동 참여 작가들의 작품이 6월 미술 경매에 대거 출격한다. 13일 미술품 경매업계에 따르면 서울옥션은 오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97점, 낮은 추정가 기준으로 64억원 상당의 미술품을 경매한다. 천경자의 ‘윤삼월’(1978)은 꽃, 사슴, 백조, 새 등 천 작가가 작품에 자주 그리는 소재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추정가는 8억5000만~12억원이다. 박수근의 1964년 작 ‘나무와 행인’은 유작전에 전시된 작품으로, 추정가 2억8000만~5억원에 경매에 나왔다. ‘폭풍의 화가’로 불렸던 변시지의 ‘폭풍의 언덕’은 가로가 2.4m에 이르는 대작으로, 추정가 2억~5억원에 경매가 진행된다. 이인성의 ‘사과나무’(2억5000만∼4억5000만원), 5·16군사정변 당시 군용 차량이 한강 철교를 넘는 모습을 담은 박영선의 ‘5월16일 새벽’(800만∼2000만원)도 경매에 나온다. 조선 중기 1624년 문인 권엽이 명나라에 사절로 떠날 때 주변 명사들로부터 받은 송별 시를 모은 시첩 ‘구사선생조천첩 4권 일괄’이 7000만~1억원에 경매에 나왔다. 이번 경매 출품작들은 오는 14~24일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케이옥션도 오는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90점, 83억원 상당의 작품들을 경매한다. 케이옥션은 이달 경매에서는 1970년대 활동한 전위예술운동 단체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작가 작품을 선보인다. 하종현의 2017년 작 ‘접합 17-91’(3억3000만∼5억7000만원)을 비롯해 이강소, 심문섭, 이건용, 최명영, 서승원 작품이 출품됐다. 케이옥션에서도 박수근, 천경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박수근의 1964년작 ‘노상’은 7억원, 천경자의 1990년 작 ‘여인’은 5억3000만원에 경매가 시작된다. 이들 작품은 14~25일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 중국 650년 문화재, 보수공사 1년 만에 ‘와르르’…원인은?

    중국 650년 문화재, 보수공사 1년 만에 ‘와르르’…원인은?

    중국에서 수백년 전 지어진 문화재의 기와가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해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중국 관영 영문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20일(현지시간) “최근 수리된 동부 안후이성(省) 문화재에서 기와가 떨어지는 사고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전날인 19일 오전 6시 30분경, 안후이성 츠저우시(市)에 있는 ‘명중도 고루’의 기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사고 당시를 촬영한 영상을 보면 고루 상단의 기왓장이 갑자기 희뿌연 먼지와 연기를 내뿜으며 쓰나미처럼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많은 기왓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때 누군가 “기와가 떨어졌다”라고 외쳤고,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문화재 건축물의 기왓장은 무려 1~2분간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면서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고 직후 츠저우시 펑양현 당국에서 현장에 출동했고, 추가 사고 우려가 있어 현장을 봉쇄한 뒤 긴급 점검에 나섰다. 펑양현 문화관광국은 “1995년 재건한 명중도 고루의 지붕 일부 기와가 낙하했으며, 인명 피해는 없었다”며 “정확한 원인은 현재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현존 최대 규모의 누각형 구조물인 ‘명중도 고루’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수도 이전 계획과 함께 1375년 평양현에 건립한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고루’는 절이나 도시에서 큰 북(鼓)을 매달아두고 치는 건물을 의미한다. 이 건축물은 돌로 만든 기단 부분을 제외하고는 청나라 때 모두 소실됐다가, 1995년 재건됐다. 명중도 고루는 주원장의 생애와 명나라 초기 역사를 소개하는 기념관으로 운영됐는데, 2017년부터 간헐적으로 기와 추락과 처마 손상이 발생하면서 2023년 9월부터 2024년 3월까지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보수공사가 끝난 지 불과 1년여 만에 기왓장들이 완전히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부실시공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지에서는 보수공사에 사용된 예산인 340만 위안(약 6억 5000만 원)이 기왓장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 (영상) 기와 수백장, 쓰나미처럼 떨어져…中 650년 된 건축물 지붕 붕괴, 부실공사 논란 [포착]

    (영상) 기와 수백장, 쓰나미처럼 떨어져…中 650년 된 건축물 지붕 붕괴, 부실공사 논란 [포착]

    중국에서 수백년 전 지어진 문화재의 기와가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해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중국 관영 영문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20일(현지시간) “최근 수리된 동부 안후이성(省) 문화재에서 기와가 떨어지는 사고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전날인 19일 오전 6시 30분경, 안후이성 츠저우시(市)에 있는 ‘명중도 고루’의 기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사고 당시를 촬영한 영상을 보면 고루 상단의 기왓장이 갑자기 희뿌연 먼지와 연기를 내뿜으며 쓰나미처럼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많은 기왓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때 누군가 “기와가 떨어졌다”라고 외쳤고,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문화재 건축물의 기왓장은 무려 1~2분간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면서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고 직후 츠저우시 펑양현 당국에서 현장에 출동했고, 추가 사고 우려가 있어 현장을 봉쇄한 뒤 긴급 점검에 나섰다. 펑양현 문화관광국은 “1995년 재건한 명중도 고루의 지붕 일부 기와가 낙하했으며, 인명 피해는 없었다”며 “정확한 원인은 현재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현존 최대 규모의 누각형 구조물인 ‘명중도 고루’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수도 이전 계획과 함께 1375년 평양현에 건립한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고루’는 절이나 도시에서 큰 북(鼓)을 매달아두고 치는 건물을 의미한다. 이 건축물은 돌로 만든 기단 부분을 제외하고는 청나라 때 모두 소실됐다가, 1995년 재건됐다. 명중도 고루는 주원장의 생애와 명나라 초기 역사를 소개하는 기념관으로 운영됐는데, 2017년부터 간헐적으로 기와 추락과 처마 손상이 발생하면서 2023년 9월부터 2024년 3월까지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보수공사가 끝난 지 불과 1년여 만에 기왓장들이 완전히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부실시공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지에서는 보수공사에 사용된 예산인 340만 위안(약 6억 5000만 원)이 기왓장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 삽시간 붕괴 ‘기와 쓰나미’ 기절초풍…중국 ‘저질시공’ 문화재까지? (영상) [포착]

    삽시간 붕괴 ‘기와 쓰나미’ 기절초풍…중국 ‘저질시공’ 문화재까지? (영상) [포착]

    중국 안후이성의 한 역사적 건축물에서 대규모 기와 붕괴 사고가 발생해, 관련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20일(현지시간) 중국 관영 영문매체 글로벌타임스와 베이징청년보 등에 따르면 전날인 19일 오후 6시 30분쯤 안후이성 츠저우시 평양현의 ‘명중도 고루’(明中都鼓楼) 기와가 무너져 내렸다. 사고 당시 촬영 영상에는 고루 상단의 기왓장들이 마치 쓰나미처럼 삽시간에 대규모 낙하하면서 거대 먼지구름을 일으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붕괴는 1~2분가량 지속됐다. 해당 영상과 관련 검색어는 이날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인근 관람객들은 누군가 “기와가 떨어졌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후 붕괴 장면을 목격하고는 기절초풍하며 대피했다. 낙하하는 기왓장 파편에 누군가 맞았다면 적지 않은 부상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평양현 문화관광국은 이날 공식 통지문에서 “사건 발생 후 문화재 관련 부서가 현장에서 인파를 즉시 대피시켰으며, 보안 장벽을 설치해 현장을 통제했다. 부상자는 없다”라고 밝혔다. 또한 “긴급점검 조사팀을 꾸렸으며, 복원 사업 설계·시공 및 감독 부서에 실시간 보고를 지시했다. 및 검증의 지원을 위해 민간 전문가도 초청했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현존 최대 규모의 누각형 구조물 중 하나인 ‘명중도 고루’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수도 이전 계획과 함께 1375년 평양현에 건립한 역사적 건축물이다. 통지문에 따르면 명중도 고루의 원형은 1853년 소실됐고 현재 모습은 1995년 재건한 것이다. 이후 주원장의 생애와 명나라 역사를 소개하는 기념관으로 운영되던 구조물은 2017년부터 산발적으로 기와 추락과 처마 손상이 발생해 2023년 9월 수리 사업에 돌입, 지난해인 2024년 3월 보수를 완료했다. 해당 수리 사업의 계약금은 340만 위안(약 6억 5000만원)었으며, 최종 정산금은 290만 위안(약 5억 5000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채 1년도 되지 않아 기와 대부분이 무너지면서 당시 사업 평가에 대한 의문이 번지고 있다. 당시 사업 안전 및 품질은 ‘만족’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평양현 문화관광국은 부실시공 여부 등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지붕 수리를 마칠 때까지 명중도 고루를 일시 폐쇄하기로 했다.
  • “뿌리 깊은 나무는…” 600년 전 세종대왕의 일상을 엿보다

    “뿌리 깊은 나무는…” 600년 전 세종대왕의 일상을 엿보다

    배우 100여명 근정전서 조정 재현‘용비어천가’ 읽고 ‘여민락’ 등 시연5대 궁·종묘서 ‘궁중문화축전’ 진행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 좋고 열매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않고 솟아나므로 내가 이루어져 바다로 가느니라.” 28일 찾은 경복궁은 약 600년 전 조선 세종대왕 시대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근정전에 모인 배우 100여명이 세종과 종친, 문무백관으로 변신해 그 시대를 재현해 냈다. 세종은 권제, 정인지 등에게 맡겨 펴낸 악장·서사시 ‘용비어천가’를 읽고 자신이 작곡한 전인자,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후인자 등을 박연을 통해 시연하며 흐뭇해했다. 근정전 앞 넓은 마당인 조정에 들어선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생경한 모습을 흥미로워하며 사진과 영상을 남기고 진지한 표정으로 퍼포먼스를 지켜봤다. 좀더 깊숙이 들어서자 강녕전 일대에서는 자신의 적장자인 문종, 기술자 장영실과 만난 세종이 명나라에서 들여온 과학 기구를 탐구하는 모습이, 인지당터에서는 똥지게를 지며 농사를 짓던 세종이 농악패와 함께 풍년을 기원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관람객은 궁궐 이곳저곳을 오가며 공연을 즐겼다. 30일까지 이어지는 이 공연의 이름은 ‘시간여행, 세종’으로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와 국가유산진흥원이 준비한 ‘2025 궁중문화축전’의 하나로 열렸다. 연출자인 송재성 감독은 “세종대왕 나신 날의 기념일 지정을 기리기 위해 한글 창제, 과학기술, 국방, 농업, 복지, 문화예술 등 다양한 업적을 주제로 공연을 구성했다”며 “경복궁 곳곳에서 펼치는 배우 150여명의 공연을 통해 관람객들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참여하고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부 관람객은 한복을 입고 궁궐 수습생이 돼 병과·공예·무용·회화 등 네 가지 체험 활동에 나섰다. 내소주방에서는 각색당(사탕)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고임상을 만들어 세종 탄신연을 준비하고 자미당터에서는 세종 때 현재의 모습을 갖춘 ‘오방처용무’를 배웠다. 융무루터에서는 궁중 장식화로 사랑받은 ‘모란화접도’를 활용해 세종이 신하에게 하사할 단오 부채를, 비현각에서는 문종의 가례를 준비하며 내명부에서 사용할 댕기를 만드는 체험이 이뤄졌다. 박수영 금박장 이수자는 박쥐무늬를 댕기에 새기는 시범을 보였다. 금박장 체험에 도전한 이문선(36)씨는 “전통을 배우며 생활 속에서 쓸 수 있는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체험이었다”고 말했다. 궁중문화축전은 경복궁 외에도 창덕궁·덕수궁·창경궁·경희궁 등 서울 5대 궁과 종묘에서 새달 4일까지 진행된다.
  • 종로구민 숙원 ‘동묘앞역’ 개명 살펴본다

    종로구민 숙원 ‘동묘앞역’ 개명 살펴본다

    서울 종로구가 27일 숭인2동주민센터에서 종로역사 바로 알기 ‘동묘앞역 개명 필요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강연을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이 일대의 오랜 화두이자 주민 숙원 사업인 동묘앞역의 개명 필요성을 논하고, 종로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복기대 인하대 대학원 융합고고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나선다. 지하철 1·6호선의 동묘앞역과 동묘벼룩시장으로 널리 알려진 동묘는 삼국지의 장수인 관우, 즉 관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 ‘동관왕묘’를 뜻한다. 임진왜란 때 온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에 주둔하며 관왕묘를 세워 1963년 보물 제142호로 지정됐다. 종로구는 중국 명나라의 재신을 모신 사당인 동묘를 보물로 보전해야 하는 이유와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동묘앞역이라는 지하철역 이름보다는 조선시대 한성부의 ‘숭신방’과 ‘인창방’에서 유래한 ‘숭인역’으로 개명 추진을 검토 중이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지역주민과 상인들의 오랜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도둑맞은 장물이었네… ‘대명률’ 보물 취소

    도둑맞은 장물이었네… ‘대명률’ 보물 취소

    보물 ‘대명률’(大明律)이 도둑맞은 장물이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가유산에서 지정 취소된다.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 지정 유산이 취소되는 첫 사례여서 눈길을 끈다. 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위원회 산하 동산문화유산 분과가 최근 회의를 열어 대명률의 보물 지정을 취소하기 위한 계획을 가결했다고 11일 밝혔다. 2016년 보물로 지정된 지 9년 만이다. 대명률은 중국 명나라의 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률 체계를 정리한 책으로 명 태조 홍무제 재위 22년(1389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내외에서는 전해 내려온 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본이다. 조선 시대에는 대명률에 근거해 우리 형편에 맞춰 법률을 적용했다. 국가유산청은 ‘2015~2016 국보·보물 지정 보고서’에서 “조선 시대의 법률은 물론 조선 전기의 서지학 연구를 위한 소중한 자료”라고 지정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나 보물로 지정된 바로 그해 경찰이 전국 사찰과 사적, 고택 등의 문화유산을 훔친 도굴꾼과 절도범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대명률이 장물로 확인돼 논란에 휩싸였다. 수사 결과 대명률은 2011년 도난 신고된 상태였는데 경북 지역의 한 사립 박물관장이던 A씨가 2012년 장물 취급 업자로부터 1500만원에 사들였고 국가유산 지정 신청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청 당시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이라며 입수 경위를 속인 것으로 알려진 A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 실형이 확정됐다. 법원 판결 후 국가유산청은 보물 지정 당시 중대한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위법하거나 부당한 처분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행정기본법’을 근거로 취소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의 가치가 달라지거나 가치를 상실했다고 판단돼 지정을 해제한 사례는 있으나, 국보나 보물급 문화유산 지정을 취소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허위 지정 유도에 따른 첫 취소 사례이기 때문에 법률 및 전문가 검토 등 행정절차에서 시간이 길어져 취소 처분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명률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임시 보관 중이다. 국가유산청은 조만간 보물 지정 취소 계획을 누리집과 관보 등을 통해 공고할 예정이다.
  • ‘대책 없는 호의’로 200년 조선 숙원 해결한 역관 [한ZOOM]

    ‘대책 없는 호의’로 200년 조선 숙원 해결한 역관 [한ZOOM]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8번 출구로 나와 80m쯤 걸어가면 ‘고운담골’의 유래가 새겨진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고운담골은 이 지역의 옛 이름이다. 고운담골 이전엔 ‘보은단동’(報恩緞洞)이었다. 은혜를 갚기(報恩) 위한 비단(緞)을 선물받은 마을(洞)이라는 뜻이다. 보은단골, 보운단골 등으로도 불리다가 고운담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 여인에게 은혜를 베푼 사내와 은혜를 갚고자 비단을 수놓은 여인의 이야기는 조선 중기 선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혜 갚은 여인, 조선의 염원을 풀다조선 숙종 때 편찬된 ‘통문관지(通文館志)’에는 역관 홍순언(1530~1598)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명나라로 가던 홍순언이 통주에 들렀다가 술집에서 소복을 입고 울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전염병으로 사망한 부모의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자신을 팔고 있었다. 홍순언은 기구한 사연에 가진 돈 300금을 건넸다. 여인은 감사한 마음에 이름을 물었지만 홍순언은 성만 알려주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여인에게 준 돈이 국가 공금이었던 탓에 홍순언은 횡령죄로 옥에 갇혔다. 역관 동료들이 돈을 모아준 덕에 풀려난 홍순언은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위해 명나라로 가는 사신단에 합류했다. 명에는 각종 법률과 제도를 담은 법전 ‘대명회전’(大明會典)이 있는데, 여기에 태조 이성계 부친이 이자춘이 아니라 이인임으로 기록돼 있어 문제가 됐다. 태조의 가계도가 잘못된 것은 건국의 정당성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게다가 이인임은 이성계 정적의 이름이기도 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대명회전’을 수정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를 ‘종계변무’라고 한다. 조선 태조의 세계(世系)를 바로 잡기 위해 갖은 시도를 했지만 명태조의 유훈이 담겼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무려 200년 동안 종계변무를 추진해야 했다. 명에 도착한 홍순언 일행은 고위관료인 예부시랑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알고 보니 홍순언이 통주에서 구해준 여인이 예부시랑의 부인이 되어 있던 것이다. 이 일은 자연스럽게 ‘대명회전’ 수정까지 이어졌다. 홍순언이 명을 떠나던 날, 여인은 직접 짜고 ‘보은단’을 수놓은 비단을 선물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선에선 홍순언이 사는 마을을 보은단동이라 불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은 구원병을 요청하는 사신단을 명에 파견하면서 홍순언을 합류시켰다. 그러나 구원병 파견은 심각한 난관에 부닥쳤다. 명 관리들은 일본이 명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심지어 조선이 일본과 손잡고 명을 칠 수 있다고도 여겼던 것이다. 왜구뿐 아니라 몽골의 위협에 대응하느라 여력이 없었던 상황도 있었다. 이때 종계변무를 도왔던 예부시랑이 다시 한번 홍순언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는 예부시랑에서 군(軍) 고위관료인 병부상서가 돼 있었다. 그 덕에 명의 5만 군사가 조선에 들어왔다. 홍순언의 호의, 현대에도 가능한 것인가홍순언의 이야기는 ‘통문관지’ 외에도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등 여러 기록에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정사(正史)에도 등장하지만 종계변무와 명군파병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정도만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홍순언이 실제로 여인에게 도움을 주었는지, 여인의 남편인 예부시랑의 도움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도 이견이 많다. 홍순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 사실이었는지보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였다. 우리나라 형법 제356조는 업무상 임무를 위배하여 횡령 또는 배임의 죄를 저지른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최대 10년 동안 감옥에 있을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홍순언처럼 국가 공금을 이름도 출신도 모르는 여인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조정의 숙원인 종계변무도 해결했고, 명 구원병도 이끌어내 국가적 영웅이 되었지만 돈을 내어줄 때 그것을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인에게 뭔가를 바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현재 가치로 1000만원도 넘는 공금을, 그것도 징역이 명확한 상황에서 홍순언은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 ‘애국주의’ 앞세운 中 애니 ‘너자2’, 사상 첫 관객수 3억명 돌파

    ‘애국주의’ 앞세운 中 애니 ‘너자2’, 사상 첫 관객수 3억명 돌파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2’ 관객 수가 중국 영화 사상 처음 3억명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청년망 등 중국 매체는 6일 온라인 관객 수 집계 사이트를 인용해 너자2는 현지시간 지난 5일 오후 6시25분 기준 처음으로 관객 수 3억명을 넘은 영화가 됐다고 전했다. 흥행 수익도 145억 7600만 위안(약 2조 9000억원)으로, 전 세계 애니 영화 흥행 순위에서 선두로 올라섰다. 너자2는 2019년 개봉한 ‘너자, 악동의 탄생’의 속편으로, 명나라 때 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로 널리 알려진 중국 고대 신화 속 영웅신 ‘너자’(나타)의 이야기를 각색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중국 신화에 뛰어난 액션과 화려한 영상, 첨단 기술 등을 입혀 높은 수준으로 제작된 점이 특징이다. 특히 미국에 대한 풍자가 영화 곳곳에 담겨있는 점이 중국 내에서 ‘애국소비’를 부추겼다. 단체관람뿐 아니라 2번, 3번 보는 관객도 있다. 중국 관영 신화망은 “너자2의 폭발적 인기는 중국 애니메이션 굴기의 축소판”이라고 평가했다.
  • [씨줄날줄] 펜디와 매듭

    [씨줄날줄] 펜디와 매듭

    한반도에서 매듭은 당연히 선사시대부터 쓰였다. 구석기시대 돌도끼를 묶는 데 사용한 흔적이 있고 신석기시대 토기엔 노끈을 엮어 두드린 문양이 선명하다. 서양에서도 ‘헤라클레스의 매듭’이 BC 3세기 공예품으로 전한다. 이렇게 보면 매듭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엇비슷한 시기 발생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선 일찌감치 아름다운 매듭이 안악3호분에서 보인다. 안악3호분은 북한학자들이 1949년 발굴조사한 고구려 벽화 무덤이다. 2004년에는 다른 무덤과 함께 ‘고구려 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 무덤에는 서기 357년에 해당하는 중국 연호와 고구려에 망명한 중국 무장 동수(冬壽)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북한학계는 이 이름이 무덤 주인이 아닌 지휘관인 장하독(帳下督)의 머리 위에 적혀 있는 만큼 동수는 묘지기에 불과하다고 일관되게 본다. 무덤의 주인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안악3호분이 중국 매장 문화가 고구려에 영향을 미친 초기 양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 해도 벽화에 보이는 모습이 모두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백제금동대항로 뚜껑의 악사가 연주하는 비파의 일종인 완함에서 늘어진 장식은 분명 매듭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있는 반가사유상에서도 비단을 엮은 매듭인 광다회를 볼 수 있다. 매듭이 이미 삼국시대에 크게 발전한 상태였음을 보여 준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가 한국의 매듭 장인과 협업한 ‘바게트백’을 내놓자 중국 네티즌이 “문화 도용”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중국 언론은 “매듭은 당나라와 송나라의 민속 예술로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인기를 얻은 장식용 수공예품”이라고도 설명했다. 그렇다면 당나라와 같은 시기 한반도에선 매듭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엔 무슨 딴소리를 할지 궁금하다.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문화의 이치를 저들이 이해하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 ‘한국 장인 콜라보’ 명품백 돌연 ‘삭제’…알고보니 중국인들 때문?

    ‘한국 장인 콜라보’ 명품백 돌연 ‘삭제’…알고보니 중국인들 때문?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가 한국의 매듭 장인과 협업해 지난해 출시한 가방을 두고 중국에서 “중국 문화를 도용당했다”는 항의가 쇄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펜디가 공식 웹사이트 등에서 해당 제품을 삭제하자,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펜디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고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펜디 측에 메일을 보내 ‘협업 가방을 삭제한 건 중국 누리꾼의 억지에 굴복한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이른 시일 내에 게시물을 다시 올리길 바란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해당 메일에 “한·중·일 매듭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과 함께 “중국 매듭은 종류가 다양하고 화려한 반면, 한국 전통 매듭은 단색의 끈목을 이용해 모양을 맺고 아래에 술을 달아 비례미와 율동미를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라는 설명도 함께 적어 보냈다. 이번 논란은 펜디가 서울시 무형문화재 13호 김은영 매듭 장인과 함께 제작해 지난해 11월 공개한 일명 ‘바게트 백’ 때문에 불거졌다. 펜디의 대표 제품인 ‘바게트 백’을 가죽 대신 한국 고유의 매듭을 엮어 만든 제품이다. 펜디는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라는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에 있는 장인들 손으로 한정판 제품을 만들어 왔는데, 김은영 장인과 만든 가방도 그 일환이었다. 그런데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 등에 따르면 해당 가방을 접한 중국 누리꾼들이 반발에 나섰다. 가방 제작에 사용된 매듭이 중국 고유의 문화를 도용했다는 주장이다. 글로벌타임스 역시 “중국 매듭은 당나라와 송나라의 민속 예술로 시작해 명나라와 청나라 때 인기를 얻은 장식용 수공예품”이라며 이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후 펜디 측은 인스타그램에서 관련 홍보 콘텐츠를 삭제했고, 해당 제품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사라진 상태다. 다만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이화여대에서 생활미술을 전공한 김은영 장인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인 김희진 선생에게 사사하며 1966년부터 전통매듭을 만들어왔다. 1996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 명예매듭장으로 지정된 그는 로마와 파리, 교토 등 전 세계 주요 도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며 한국의 전통 매듭을 홍보해 왔다. 일제 강점기 시절 사비를 털어 대한민국의 문화재를 보존한 간송 전형필 선생의 며느리이자 김광균 시인의 딸이기도 하다.
  • 中 네티즌, 韓 전통매듭 ‘펜디 가방’까지 시비…“문화 도용” 억지

    中 네티즌, 韓 전통매듭 ‘펜디 가방’까지 시비…“문화 도용” 억지

    중국 네티즌들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의 한국 전통매듭 협업 가방을 두고 “중국 문화 도용”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아리랑, 한복, 김치에 이어 또 다시 불거진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 사례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27일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펜디가 최근 제품 디자인의 문화적 뿌리를 ‘한국’으로 잘못 설명했다는 비난을 받은 후 분쟁에 휘말렸다”고 보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매듭은 당나라와 송나라의 민속 예술로 시작해 명나라와 청나라에 인기를 얻은 장식용 수공예품”이라며 “수많은 중국 네티즌들이 펜디에 ‘중국 문화 도용’ 의혹을 제기했으며, 이 문제는 웨이보 트렌드 차트에 올랐고, 관련 해시태그는 웨이보에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주제가 됐다”고 전했다. 이어 “펜디의 중국 고객서비스는 이 문제와 관련해 수많은 전화를 받았으며, 추가 조사를 위해 관련 부서에 회부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한 중국 네티즌은 웨이보에 “펜디의 가방 디자인은 미적으로 만족스럽지만, 중국 매듭 직조 기술을 한국의 장인 정신에 기인했다고 밝힌 것은 부적절하다. 펜디는 중국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된 펜디의 바게트 백 제품은 지난해 ‘핸드 인 핸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시됐다. 해당 가방 협업에 참여한 한국의 매듭장 김은영씨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 명예매듭장이다. 1979년 전승공예대전을 시작으로 국전, 인간문화재 공예전, 전승공예전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미국 시애틀 동양예술박물관, 런던 빅토리아앤앨버트 미술관 등 세계 곳곳에 전시됐다. 펜디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김씨를 두고 1965년부터 한국의 전통 매듭에 몰두해왔다고 소개하며 “이 에디션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기술의 복잡성으로, 조선왕조 의례복에 전통적으로 사용된 매듭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중국 네티즌들이 문제 삼은 펜디의 바게트 백에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 의상을 장식할 때 사용한 매듭 장식이 활용됐다는 의미다. 펜디 홈페이지에는 김씨가 한복을 차려 입고 비단실을 염색·합사해 끈을 짠 후 한국 전통 매듭을 만드는 과정도 함께 소개됐다. 김씨는 경상남도 고성 문수암에 구름이 드리울 때 아름답게 물든 석양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중국의 매듭은 비슷한 면이 있지만 차이점도 적지 않다. 중국의 매듭은 화려한 문자 모양이 특징이지만, 우리나라 전통매듭은 단색의 끈목을 이용해 단단한 모양을 맺는다. 또한 연봉매듭과 국화매듭, 잠자리매듭 등 동식물에서 따온 형태와 명칭이 많다. 우리나라 매듭 전통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에는 국가 소속의 매듭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한국의 전통 문화 유산인 매듭장까지 중국의 문화라고 주장해왔다.
  • 18·19·20세기 K아트 거장, ‘필과 묵’으로 시대를 잇다

    18·19·20세기 K아트 거장, ‘필과 묵’으로 시대를 잇다

    18세기 풍류 담은 정선 ‘연강임술첩’ 추사 김정희의 서예 대련 ‘대팽고회’‘선·면 추상 미술 대가’ 윤형근까지시공간 초월한 전통·현대 예술 조명 “18세기 최고 화가 겸재 정선, 19세기 최고 서예가 추사 김정희, 20세기 최고 추상 미술가 윤형근을 통해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하나의 예술 체계로 만날 수 있습니다.”(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한국 전통 예술과 현대 미학을 잇는 세 거장을 ‘필(筆)과 묵(墨)’이라는 고리로 연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강남구의 갤러리 S2A에서 열리는 ‘필과 묵의 세계, 3인의 거장’ 전이다. 다른 시대와 다른 장르의 3인이 필과 묵이라는 뿌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구현했는지 엿볼 수 있다. 40여점의 전시작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겸재 정선(1676~1759)의 ‘연강임술첩’이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이 작품이 이번 전시를 가능하게 했다”고 할 정도다. 작품은 임술년(1742) 양천현령 정선과 연천현감 신유현, 경기도관찰사 홍경보가 연강(지금의 임진강) 적벽에서 함께한 뱃놀이를 담은 화첩으로 그림 두 폭과 표지, 발문으로 구성돼 있다. 그림을 그린 경위를 쓴 발문을 통해 당시 지식인, 예술인의 풍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10월 보름, 연천군수 신주백(신유현)과 함께 관찰사 홍(경보)공을 모시고 우화정 아래에서 노닐었으니, 이는 소동파(송나라 시인)의 ‘설당고사’(‘후적벽부’에 등장하는 내용)를 따른 것이다. 신주백은 관찰사 명을 받아 부(운문의 한 갈래)를 짓고 나는 또 그림으로 이어서 각각 집에 한 본씩 소장했다. 이를 ‘연강임술첩’이라 일컫는다. 양천현령 정선이 쓰다.” 그림은 우화정에서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을 담은 ‘우화등선’과 웅연에서 닻을 내리는 상황을 담은 ‘웅연계람’으로 이뤄졌다. 임진강변의 웅장한 경치와 더불어 작은 마을과 강변의 정자, 횃불을 밝혀 마중 나온 사람들의 모습까지 세세하게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다. 세 벌이 제작된 이 화첩은 그동안 홍경보 소장본만 알려져 왔으나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14년 전 동산방화랑에서 일반 공개돼 화제가 됐던 정선 소장본이다. 신유현 소장본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유 교수는 “홍경보 소장본은 상대적으로 필치가 얌전하지만 정선 소장본은 필세가 굳세고 먹의 농담 변화가 강하다”며 “정선 소장본이 가장 먼저 그린 그림이고 홍경보 소장본은 나중에 다듬은 작품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67세에 쓴 대련(시문 등에서 나란히 짝을 이루는 연) ‘대팽고회’(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만남)도 만날 수 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대팽고회’가 생의 마지막 해에 쓴 대련이라면 이 작품은 북청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과천에 머물던 시기에 쓴 것으로 협서(본문 옆에 따로 적은 글)를 통해 글을 쓴 계기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명나라 시인 오종잠의 명구(‘두부와 오이 생강 나물을 크게 삶아/ 부부와 아들딸과 손자까지 다 모였네’)를 옮긴 대련은 필부(匹夫)의 낙을 노래한다. 협서에는 ‘우연히 글씨가 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는 뜻의 ‘우연욕서’라는 표현이 포함됐다. 한학자 임창순(1914~1999)은 이 표현을 단순한 즉흥적 필획이 아니라 서예 작품으로서의 자각과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했다. 윤형근(1928~2007)의 1977년작 ‘엄버-블루’가 앞선 두 대가의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선과 면, 단순화된 구성에 암갈색과 군청색이라는 단색조 채색이지만 깊이와 울림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미묘한 번짐과 질감이 주는 운치 또한 아름답다. 유 교수는 “‘명작은 명작끼리 통한다’는 격언대로 시대와 장르를 달리하는 거장들의 예술 세계가 혼연히 어울리는 감동이 있다”며 “이는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환상적인 예술의 축제라 할 만하며 감히 말하자면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K아트’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3월 22일까지.
  • 딥시크 이어 ‘너자2’ 흥행 돌풍… 中 소프트파워, 세계를 흔들다

    딥시크 이어 ‘너자2’ 흥행 돌풍… 中 소프트파워, 세계를 흔들다

    ‘인사이드아웃2’ ‘겨울왕국’ 제치고역대 영화 3위 ‘타이타닉’도 넘볼 듯30위 내에 美 이외 나라 제작은 유일中게임도 호평 세계 경쟁력 급부상장기적으로 K콘텐츠 위협할 수도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성능 칩만으로 미국 챗GPT에 필적하는 생성형 AI 모델을 출시해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재평가받기 시작한 가운데 토종 만화인 ‘너자2’(나타: 악동의 바다소동)가 세계 영화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미국이 독점해 온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흥행 세계 1위’에 오른 것이다. 아직 중국의 문화 상품이 ‘내수용’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지금의 발전 속도를 이어 가면 장기적으로 K콘텐츠와 경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9일 로이터통신과 환구시보 등을 종합하면 너자2는 전날까지 16억 9900만 달러(약 2조 4450억원)의 흥행 수익을 거둬 미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2’(2024년·16억 9800만 달러), 디즈니의 ‘겨울왕국2’(2019년·14억 5300만 달러)를 제치고 세계 애니메이션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춘제(설) 연휴 둘째 날인 지난달 29일 개봉해 9일 만에 중국 역대 흥행 1위 ‘장진호’(2021년)를 밀어냈고 지난 13일에는 중국 영화 최초로 ‘2억명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 세계 최초로 ‘단일국가 내 박스오피스 10억 달러 돌파’라는 신기원도 달성했다. 미국과 캐나다를 시작으로 해외 개봉도 시작했다. 중국 영화 예매 사이트 마오옌은 최종 스코어가 160억 위안(약 3조 2000억원)에 달해 (전 세계 영화 흥행 순위 3위인) ‘타이타닉’(1997년·21억 9000만 달러)과 비슷한 성적을 낼 것으로 예측했다. 전 세계 역대 박스오피스 30위 이내 영화 가운데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제작된 것은 너자2가 유일하다. 이 영화는 중국 명나라 소설 봉신연의에 나오는 영웅신 너자(나타)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전작인 ‘너자: 악동의 탄생’(2019년)도 50억 위안(9874억원)에 달하는 흥행 실적을 거뒀다. 봉신연의는 상나라 폭군 주왕과 그를 타도하려는 주나라 무왕의 대결을 그린 소설이다. ‘걸리버여행기’나 ‘홍길동전’처럼 사회 풍자 성격이 짙다. 이날 중국 베이징 CGV에서 너자2의 티켓 가격은 한화 1만~2만원 수준으로, 중국인의 구매력을 고려하면 꽤 비싼 편이었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N차 관람’ 인증을 하며 자국 애니메이션의 성공에 들떠 있다. 전통문화를 활용해 디즈니와 픽사 등 미국의 전통 강자를 제쳤다는 사실에 고무됐다.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미국의 패권을 풍자하는 내용이 담긴 것도 흥행에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영화 속 배경인 천상계에서 궁의 모양이 미 국방부 청사 펜타곤을 연상시키고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와 달러 표시($)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대체로 서구 매체들은 “깊어진 민족주의적 열기를 활용했다”(뉴욕타임스), “수익의 99% 이상이 본토에서 나왔다”(로이터통신) 등 너자2의 성공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고전에서 가져온 이야기인데도 서사 구조가 현대적이고 컴퓨터그래픽 특수 효과가 기대 이상이라는 칭찬도 잊지 않았다. 앞서 중국에서는 지난해 8월 서유기를 바탕으로 한 PC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이 출시돼 한 달 만에 전 세계에서 2000만장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이용자들이 뽑은 올해의 게임’에 선정되는 등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중국이 사회주의국가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일부 소프트파워 분야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춰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류 열풍으로 세계적 인기를 얻는 우리도 중국의 부상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기다림의 미학이 만들어 낸 메가시티 도쿄의 시작 [한ZOOM]

    기다림의 미학이 만들어 낸 메가시티 도쿄의 시작 [한ZOOM]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앞서 지금부터 등장할 인물들이 한국사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과 우리 역사가 이들에 대해 남긴 평가는 덜어내고자 한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이 전쟁은 당시 조선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붕괴시켰을 뿐만 아니라 100만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남겼다. 그러나 일본 역사는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 15세기 중반 일본에선 ‘오닌의 난’(1467)을 시작으로 전국 모든 다이묘(영주)들이 패권을 놓고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때 등장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는 조총과 같은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고, 새로운 전술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연전연승을 거두며 전국통일이라는 목표를 이루어 가고 있었다. 1582년 어느 날 오다 노부나가는 출정을 위해 교토 혼노지(本能寺)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원군으로 보낸 아케치 미쓰히데가 군대를 돌려 오다 노부나가를 공격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100명의 호위무사들과 함께 맞서 싸웠으나 병력의 차이에 밀려 장남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인생역전의 상징,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다 노부나가가 장차 일본을 제패할 것이라고 믿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를 찾아가 그의 신임을 얻으며 자리를 잡아갔다. 오다 노부나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이 공격하고 있던 모리 가문과 휴전을 맺은 후 군대를 돌려 교토의 서쪽에 있는 야마자키(山崎)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를 격파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공로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중에 가장 많은 영지를 가진 영주가 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반대세력들을 숙청해 나가면서 결국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만든 권력을 거머쥐었다. 와신상담의 상징, 도쿠가와 이에야스오다 노부나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아케치 미쓰히데를 무찌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민하고 발 빠르게 움직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오다 노부나가의 차남 오다 노부가쓰와 손을 잡고 반(反)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을 형성해 나갔다. 그러나 믿었던 오다 노부가쓰마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손을 잡으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립할 명분을 잃어버렸다.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여동생과 정략결혼을 하고 신하가 되어 복종을 맹세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전국통일을 완수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잠재적 숙적인 도쿠가와 이에야쓰에게 영지를 버리고 에도(江戸)로 갈 것을 명령했다. 도쿠카와 이에야쓰는 자신을 권력에서 소외시키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1590년 8월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에도에 도착했다. 당시 에도는 작은 어촌이자 갈대밭과 황무지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우선 하천을 정비해서 농업용수를 확보하고 농지를 개간해서 버려진 땅들을 비옥한 옥토로 바꾸어 나갔다.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에도에 있는 사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고니시 유키나가를 비롯한 장수들은 조선을 넘어 명나라 그리고 머나먼 인도까지 점령하여 거대한 땅을 나눠가질 꿈을 꾸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의병이라는 변수를 맞이한 왜군의 꿈을 서서히 무너져갔고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권력에서 소외되어 전쟁에 참전할 기회마저 박탈당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차근차근 에도를 개척하면서 기반을 다져가고 있었다. 다른 영주들이 임진왜란을 통해 재산과 병사들을 잃어가는 동안, 권력에서 소외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오히려 머나먼 에도에서 농업과 상공업을 발달시키면서 성장해 나갔다. 세키가하라 전투 그리고 뒤바뀐 결과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정권의 내부에서 후계자 자리를 두고 정치적 경쟁이 시작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기 전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후계자로 정해 두었으나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아직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를 중심으로 한 서군(西軍)이 도쿠가와 이에야쓰를 중심으로 한 동군(東軍)에게 참패하면서 권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쓰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1614년과 1615년 벌어진 오사카 전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참패하면서 도요토미 가문은 무너졌고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있는 에도를 중심으로 한 에도막부 시대가 열렸다. 평화로운 시대가 이어지면서 농업, 상업, 금융업이 발달했고 에도는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도시는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메가시티가 되었으며 1420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의 이름은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이다.
  • [열린세상] 공권력의 최후 보루가 무너졌다

    [열린세상] 공권력의 최후 보루가 무너졌다

    춘추전국시대의 일입니다. 진나라가 괵나라를 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 사이에는 우나라가 있었지요. 진나라는 우나라에 온갖 금은보화를 보내면서 괵나라를 치기 위한 길만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충신들은 ‘우나라와 괵나라는 하나이므로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한다’고 하면서 결사적으로 반대했지요. 그런데 우나라 임금이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진나라는 괵나라를 함락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마저 집어삼켰습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한 배경이지요. 직역하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입니다. 이해관계가 밀접한 사이에서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온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이지요.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정명가도(征明假道). 명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길을 빌려 달라.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 전 내세운 명분입니다.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금은보화를 받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조선은 일본과 맞서 싸워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만일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경찰이 망하면 검찰이 망하고, 검찰이 망하면 법원이 망한다.’ 검찰에 근무할 때 선배들에게 많이 듣던 말입니다. 형사사법 체계는 1차 수사를 하는 경찰, 2차 수사와 기소, 공판을 담당하는 검찰,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체계의 1차 보루인 경찰이 무너지면 검찰과 법원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뜻이었지요. 그러니 1차 보루가 든든하게 버틸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찰은 단순히 경찰이라는 기관이나 기구가 아닙니다. 공권력의 상징으로서의 경찰을 말하는 것이지요. 즉 경찰이 무너지면 검찰을 넘어 공권력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넘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죄 등으로 입건된 사람들의 수가 매년 1만명을 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매일 30명 이상의 경찰 공무원들이 공무집행을 하면서 폭행과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지요. 문제는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10%를 넘었던 공무집행방해 사범의 구속 비율이 2019년에는 4.7%까지 떨어졌고, 2022년에도 5.6%에 그쳤습니다. 게다가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을 받고도 다시 같은 죄를 저지르는 재범률이 20%에 이르렀지요. 우리 국민들은 구속되지 않으면 처벌되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범률도 높은 것 같습니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무너지자 검찰에도 곧 위기가 닥쳤습니다. 사건 처리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이 흉기를 들고 검찰청에 들어와 담당 검사를 향해 휘두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굴착기를 몰고 대검찰청으로 돌진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대검찰청 입구 계단에는 그 상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지요. 얼마 전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했습니다. 영상으로 본 현장은 마치 전쟁터처럼 처참했지요. 이 사건은 단순히 공무집행방해의 문제가 아닙니다. 형사사법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권위가 무너진 것이지요. 원인은 무엇일까요. 가장 직접적인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불리한 결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민들을 선동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의 존재, 경찰과 검찰,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대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태도 등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 검찰을 거쳐 법원이 무너졌습니다. 다음 차례는 어디일까요. 부디 그 종착점이 대한민국이 아니길 바랍니다.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전 수원지검 1차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