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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얀 백사장·거대한 모래산…태안반도 피서지 3選

    스러져가는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우리는 서해 일몰에서 그 운치를 읽거니와 백제 사람들의 한숨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몽실몽실 살아있는 충남 태안과 서산 땅에서 그 절정을 맛본다. 태안군의 해안선 길이를 합하면 530㎞.들쭉날쭉 길다란 해안선 만큼이나 다채로운 볼거리와 감동을 준비하지만 산과 들,바다가 숨바꼭질하듯 비경을 연출하는 이곳을 지나칠라치면 왠지 모를 서글픔 같은 것이 밀려온다. 바람 찬 삽교호를 건너 한참을 달리자 안면도.이곳의 가장 큰 해수욕장인 ‘꽃지’는 2002년 꽃박람회를 열기 위한 준비와 인파들로 북적대는 바람에 태안읍으로 다시 나와 603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쪽을 향했다. 안면도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결코 빠지지 않고 동해 어느 바다 못지않게 청정한 수질이 길손을 반긴다. [학암포 해수욕장] 태안여상앞에서 40분 정도 여유있게 북행길을 밟으면 원북면 방갈리 2구.학처럼 생긴 바위가 양쪽에 버티고 있다 해서 학암포란 이름을 얻었다. 선창을 중심으로 1.6㎞ 백사장과 1㎞쯤 되는 백사장이 나란히 있는 쌍둥이해수욕장이다.조선시대부터 질그릇을 중국 상인들에게 많이 수출하던 곳이어서 분점포라고 불렸다. 군부대가 있던 선창 뒷동산에 오르면 학암포와 만리포,선갑도,울도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멀리 덕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선창에 서면 50m정도 떨어진 곳의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깨끗한 수질을 자랑한다. 조영광씨(37)의 어머니는 제주 비바리 출신.칠순을 넘긴 어머니는 요즘도 물질을 나가 하루 8∼9만원은 벌어온다.“어쩌겄시유.안 나가면 몸이 아프고…”선창의 배들은 이날 잡아올린 광어와 우럭,놀래미 회치는 칼질로 바쁘다. 조씨는 “지난해 좀 뜸하더니 요즘은 5㎏이 넘는 광어를 잡아올리는 모습도심심찮게 본다”며 바다를 쳐다본다.평생 보아왔을 그곳을. 봄이면 해당화가 해수욕장을 뒤덮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차량들이 마구 훼손하고 있었고 태안해안 국립공원도 아니어서 무분별한 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신두리 모래사막] 학암포 아래,원북읍 삼거리(반계)에서 왼쪽으로 치달으면신두리. 인천시 옹진군의 대청도와 함께 우리나라에 둘밖에 없는 해안 사구(沙丘). 물경 5㎞.마침 해무가 낀 25일 도대체 이 드넓은 백사장의 끝을 가늠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물이 빠지면 폭 300m에 이르는 거대한 모래밭이 드러나고 비포장 해안도로너머에는 사막같은 풍경이 몸을 감추고 있다. 모래산 위를 어지러이수놓은 발자욱과 차바퀴 자국들. 하지만 몇년전까지 ‘사방 십리가 온통 모래땅’이라던 이곳 풍경은 최근 많이 변하고 있다.들풀의 씨앗들이 어디에선가 날아와 초지로 변하고 있는 것. 여기저기 한가로이 우공들이 거닐고 있다.한 방송사 다큐팀이 이곳의 생태계 변화에 담긴 뜻을 풀기 위해 넉달째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광활하다는 표현이 딱떨어지는 백사장을 지프로 달려보자. 갈매기는 차창밖으로 길동무하고 끝없이 이어진 모래언덕 사이로 가끔씩 타조떼가 푸드덕댄다.두군데 타조 사육장이 있다.백사장을 달릴 때 유의할 점은 하얀 모래위에는 올라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해수욕장 끝쪽엔 미국식 별장이 초지위에 버티고 서 있는데 초지와 사막,백사장을 한데 안은 오만한 자태가 도드라진다. 남쪽 끝은 굴양식장.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경운기 등을 몰고 나가는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리한 굴맛을 즐길 수 있다. 해수욕장을 관리하는 이 마을 번영회 총무 최평화씨(49)는 “굴이 나는 넉달동안 줄잡아 3억원 정도는 벌어들이쥬”라며 “물이 빠지면 낙지나 게가 지천이고 20㎝가 넘는 맛도 쉽게 캐낼 수 있시유”라고 말한다. [독살] 태안에서 40번 국도를 타고 20분쯤 남하한 뒤 소목골로 들어서면 원형이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원시어구(漁具)인 독살(石防簾)이 눈에 들어온다.몽산포에서 2㎞ 위쪽.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황해도 강령만과 해주만,충청도 천수만에집중 분포된 어구였으나 지금은 이곳김의배씨의 독살만이 본래 기능을 다하고 있다. 150m 길이에 지름 30∼70 돌멩이로 V자 모양으로 쌓았다.밀물을 따라 들어온물고기들이 모일 만큼 구멍을 내고 그 앞에 대발을 쳐놓고 뜰채로 건져내면그만이다. 우럭,놀래미,전어는 물론 고등어,멸치,낙지까지 잡힌다니 그 재미가 솔찮다고 김씨는 말한다. [가는 길] 완공을 서두르고 있긴 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가 완전개통되지 않는 등 가는 길이 불편한 편.포승I.C에서 38,34,32번 국도를 차례로 탄 뒤 태안에서 40번 국도와 649번 지방도를 이용해 태안에 이른다.천안에서 예산,덕산,갈산을 거친 뒤 서산방조제를 지나 태안으로 들어오는 길도 있으나 서울에서 갈 경우 전자가 수월하다.그러나 학암포에서 밤 9시30분에 출발할 경우12시면 서울에 도착할 정도로 사정은 나아지고 있다. 서울 남부터미널(02-521-8550)에선 학암포까지 직행버스가 여름 성수기만 7차례 운행된다.요금 1만2,600원. [들를 곳] 백제인의 황홀한 미소를 담은 서산과 태안의 마애삼존불을 비교감상하는 것은 필수.개심사와 아픈 역사를 지닌 해미읍성을 들러보는 건 선택. 원산도,삽시도,장고도 등과 연결되는 영목항에서 어리굴젓,까나리액젓 등을구입한다.배편 문의 영목슈퍼 673-7151안면도 휴양림 673-5017학암포에는 조영광씨 민박집(041-674-7103) 등. 학암포(충남 태안) 임병선기자 bsnim@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8)낯선 땅에서

    *'옹심이 수제비'맛보았던 가슴아린 강릉길. 이미 청소년기에 집을 나가 한 해 가까이 남도 곳곳을 싸돌아 다녔고, 장성해서도 남한의 이 구석 저 구석을 헤집고 다녔으니 비록 먹는 이야기라 하여도 한정된 지면에 모두 기억하여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음식이나 풍속과 말씨에 오래 전부터 동한 서한의 구분이 있어 강원 경상도와 충청 전라도가 한데 묶인다.같은 생선탕도 서해의 조기매운탕과 동해의생태매운탕은 그 맛이 전혀 다르다. 내가 강원도 출입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일학년부터였는데 첫 학기에 등산반에 들어갔던 탓이었다.당시의 고등학교 등산반은 그냥 산에만 오르고 내리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선배들이 암벽타기 훈련부터 시켰다. 기초는 대개 인왕산에서 슬로프 코스와 침니를 익히고 북한산으로 가서 인수봉의 두코오스를 마치고 틈틈이 오봉과 우이암에서 세밀한 기술을 익힌다.그래서 바위에 자신이 붙으면 도봉산의 선인봉 남측 측면 십자로와 전면을 타고 주봉의 그 유명한 티자 침니를 기어 오른다.그리고는 여름방학이면 벌써설악산으로 가던 것이다.겨울에는 다시 빙벽 훈련을 하러 내설악을 찾아가고 지경을 넓혀 오대산까지 찾아갔다.고등학교 때에 알고 지내던 어린 록크라이머들은 조난으로 죽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중에 유명한 산악인이나 등산지도자로 성장했다. 내가 고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가서 방랑했던 얘기는 뒤에 하겠지만,하여튼산에 다니면서 나는 당시 일제에서 해방 되었어도 전체주의 교육의 잔재였던규율과 획일화라는 학교감옥에서 놓여나는 기분이 들었다.감수성이 예민하던시절에 벌써 나는 학교와 집과 동네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체험을 원격지 등반을 통하여 익혔던 셈이다. 훨씬 뒤에 아직은 이십대 초반이었지만 아직도 수염이 뻣뻣하지는 못했을 적인데 나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 한다는 어느 친구와 함께 강원도를 돌아다녔다.나도 가난했지만 그 친구도 겨우 남의 가정교사로 용돈벌이를 하던 중이었다.그에게는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건만 심중을 털어 놓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의 집이 왕십리에 있었는데 우리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놓고 어느 선술집에앉아 있었다.그는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점점 우울해지는 얼굴로 변해 갔다.이해가 되는 것이 그는 영장을 받아 놓고 있던 터였다.연기를 할 수도 있었건만 집안 형편도 좋지 않으니 얼른 나가서 때우고 와야 할텐데 그네가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였다.그는 도스또에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창백하고 마른 인상은 아니었지만 러시아 소설에나 나옴직한 깃넓고 치렁치렁한 검게 물들인 군용 오버코트를 겨우내 걸치고 다녔다. 때는 마침 늦은 봄이라 불행하게도 분위기 있던 외투를 벗어버리고 역시 검게 물들인 미군 쫄쫄이 작업복 차림이어서 볼품은 없었다.그가 갑자기 강릉엘 가자는 것이었다.거리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봄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청량리 역은 선술집에 앉아서도 기적 소리가 들려올 만큼가까운 거리에 있었다.우리는 비를 맞으면서 역까지 걸었다.거의 통금시간이다 되어 출발하는 강릉 가는 완행열차가 있었다.처음에는 소주에 마른 오징어를 씹다가 서로 기대어 자다가 날이 밝으면서 영주 태백을 지나서삼척에당도하면 거기서부터 철도는 바닷가를 향해 달린다. 바로 철로 아래 흰 포말이 이는 파도와 짧은 백사장이 보이고 저 근사한 해변묘지가 천천히 지나간다.해송이 구부리고 섰는 숲 위로 백로 떼가 날아 앉는다.벌써 상큼한 바다 비린내가 풍겨 온다. 우리는 항구에 도착했다.정박해 있는 배는 마치 잠시 후에는 모든 것을 훌훌털고 먼 바다로 떠나버릴 자유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했다.그가 전화를 건다. 그네는 주문진에서 소학교 선생님으로 있다고 한다. 사범학교를 나와 부임했다니 겨우 우리네와 동갑내기이거나 아래일 것이 분명했다.소녀였지만 그네는 하여튼 선생님인 것이다. 퇴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까 우리는 강릉으로 되돌아 나가서 하루 종일서성거렸다.그때에는 해수욕장이라곤 경포대 정도 밖에 없었고 요즈음처럼시도 때도 없이 바다를 보러오는 사람도 드물어서 봄철의 바닷가는 거의 인적이 없었다. 그가 주문진으로 그네를 만나러 가기 전에 우리는 선창가 언저리를 돌아다니다가 뱃사람들이나 가끔씩 들를 것같은 구석진 모퉁이의 작은선술집을 발견하고 들어가 앉았다. 거기서 술국과 끼니 대신 먹어본 것이 ‘옹심이 수제비’였다.팟죽에 넣는찹쌀경단이나 조랑떡국의 동그랗게 뭉친 떡 보다는 약간 크고 투박하게 뭉친알심이 들어 있었다.감자 전 지질 때처럼 감자를 강판에 갈아 녹말을 내려서건더기와 함께 반죽하여 수제비 끓일 때처럼 멸치 다시에 호박이며 양파며 풋고추 등속을 넣고 그저 설설 끓여낸 것인데 시원하고 얼큰하고 든든하다. 그때 처음 본 오징어 순대도 신기했지만 나중에는 흔한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냥 시장 모퉁이 아무데서나 해장으로 끓여 주는‘곰치국’은 충청도 서해안 지방의‘물텀벵이탕’과 비슷했다.해안가에서 사는 메기 비슷하게 생긴놈인데 살과 뼈가 흐물거리고 무를 함께 넣고 오래 우려낸 국물 맛이 비리거나 기름지지 않고 맑았다. 나는 선창이 멀리 내다보이는 일본식 이층의 여인숙에 방을 정하고 주문진에그네를 만나러 간 친구를 기다렸다. 그는 통금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더니한 시가 넘어서야 술이 만취해서 방문을 벌컥 열었다.그는 아무 말없이 그무렵에 젊은 여자들 사이에 대유행이던 흰색 하이힐을 비좁은 방 가운데로 던졌다.나는 이불 위에 떨어진 여자 구두를 내려다 보았다.잠이 번쩍 깨는 느낌이었다. 엽기적인 생각과 함께 그가 성공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부러움이 동시에 지나갔던 것이다.그렇지만 그는 사건의 전말을 절대로 얘기하지 않고 취해서 시뻘건 눈으로 자기 청춘의 시대가 이것으로 막을 내렸노라고 중얼거렸다.그는한 달 뒤에 군대에 나갔고 몇 년 후에야 제대한 그에게서 그날 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여선생을 만나서 다방에 앉아 청혼을 했다고,그네는 어리둥절하고 놀라서 말을 못하더라는 것,마침 휘영청 달이 밝은데 그가 여선생을 하숙집까지바래다 주겠다고 했고,걷다가 이제는 마지막이니 표적이라도 남기겠다며 그가 입을 맞추려고 덤볐다는 것,바로 길 옆에는 바람에 휘청대는 보리밭이 있었고,장소는 맞춤했지만 술 취한 그 보다 그네가 힘이 더 세었다고,그쪽에서떠미는 바람에 넘어지고, 넘어져서도 두 다리를 잡았다는 것,그래서 그네는콩쥐처럼 신만 남겼다고 한다. 어쩌다가 동해안에 가게 되면 음식들은 모두 관광 일색이 되어 온통 생선회천지가 되었지만 ‘옹심이 수제비’나 ‘곰치 해장국’을 찾으려면 선창을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헤매다녀야 한다. 황석영
  • 시원한 계곡 있어 더 짙푸른 東海바다

    바다가 손짓하는 동해안 7번국도는 짐작대로 지난 주말 차량들로 북새통을이뤘다.한밤까지 차량의 행렬이 이어졌고 국도변 해수욕장은 인파로 북적댔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이라면 강릉까지 간 다음 7번국도를 이용하기 마련.하지만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이 상습 정체구간이어서 여행의즐거움은 들머리부터 반감되기 십상이다. 이럴 때 영동고속도로 진부I.C를 빠져나와 6번국도를 탄 뒤 7번국도에 올라보자.차량행렬과 인파에 치인 마음을 달래며 계곡에서 야영을 하는 재미와먼 길의 피로감을 씻고 바다로 향하는 즐거움을 안을 수 있다.은은한 향취를자아내는 소나무와 맑고 차가운 계곡물에 몸을 담가보자.바다만을 떠올리는7번국도에서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진부∼연곡해수욕장 태양이 그 열과 성을 다해 빛과 열을 토해내는 데도이곳은 차가운 기운이,오싹할 지경이다.진부I.C를 빠져나와 월정사 방향으로8㎞ 진행하면 진고개 방향으로 우회전하는 길목에 오대산 자생식물원이 있다. 3,000원을 내면 우리꽃 화분을입장권대신 안겨준다.오대산 자락 3만3,000평에 우리 꽃과 풀 1,000여종을 전시,숲속 길을 따라 걸으며 개미취 제비동자꽃 곰취 부채꽃 등 화려한 여름꽃과 벌써 가을을 준비하는 구절초 같은 꽃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033)332-706910분 거리의 방아다리약수에서 규산 라듐 카리 탄소 등이 듬뿍 든 약수를 한모금 들이키며 피로를 씻는 것도 좋다. 이어 진고개.부드러운 황병산 자락을 ‘좌청룡’으로,웅혼하면서도 품이 넉넉한 오대산을 ‘우백호’로 삼은 이 고갯길은 청량감이 단연 으뜸이다. 바닷바람과 계곡풍이 조화를 이루니 그만이다.그러나 취할 일은 아니다.S자형 길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내려올 때 브레이크 파열에 주의해야 한다.앞차가 커브를 완전히 돈 뒤,한달음에 내려오는 것도 방법. 성급하게 밀려오는 바닷내음을 잠시 접고 부연동계곡에 들어서보자.지프나겨우 지나갈 수 있는 험한 도로를 따라 전후치고개를 걸어 넘으면 오른쪽으로 희귀 들꽃인 처녀치마가 길손을 맞는다.한참을 내려가면 가마솥처럼 넓은분지에 자리잡은 부연동 마을.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아찔함을 즐길 수 있고 기암괴석과 잘 어울리는 폭포를 곳곳에서 구경할 수 있다. 이름이 제법 알려진 어성전리와 법수치로 이어지는 계곡길 10㎞를 터벅터벅걸어보는 것도 충분한 준비를 거쳤다면 권할만하다. 금강을 옮겨놓은 듯 오묘한 섭리를 느낄 수 있는 소금강이 또한 지척이다.유연한 산세와 아늑한 계곡,동해 바다로 이어지는 이곳은 산의 깊이와 바다의무한함이 교차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진고개길의 카페 ‘산에 언덕에’(www.sane.co.kr·662-0700)는 팬션 하우스를 겸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연곡해수욕장∼법수치리 연곡해수욕장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행하다 남애해수욕장을 지나자마자 왼편에 보리수마을 들머리가 보인다.이곳에서 좌회전,10여분을 오르면 300∼400년은 족히 됨직한 노송과 밤나무,감나무위에 눈내린듯 허연 무늬가 확연하다.백로와 왜가리.보통 왜가리가 나무 꼭대기쪽에앉고 백로는 그 아래 얌전히 ‘버틴다’.주민 김용배씨(65)는 “그 수가 전혀 줄지 않았어요.여름에 오는 쇠백로는 이제짝짓기를 마쳐 처서때 떠나지요”라고 일러준다. 다시 7번국도.남애리를 지나 광진리 초입의 언덕길에서 오른쪽으로 차 한대겨우 지나갈만한 샛길을 내려가면 동해안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작은 바닷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큰바다마을.마을앞 바다 양쪽의 바위가 파도를 잠재워 동해 어떤 바다보다 잔잔하고 왼쪽 바위동산 너머로 해가 기웃거리면이곳의 얼굴은 서해나 남해의 그것으로 탈바꿈한다. 부처인듯 미륵인듯 보이는 오른쪽 바위동산 뒤편으론 200명이 앉아도 족히남는다는 너래바위가 갯바위 낚시꾼을 유혹한다.설악 흔들바위를 조그맣게꾸며놓은 듯한 흔들바위와 거북바위 등이 길손을 반긴다.너래바위횟집(671-6573)이 민박을 겸하고 있고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카페 ‘언덕위의 바다’(671-2594)가 재즈음악으로 피서객을 유인한다. 이곳을 빠져나와 인구항에 들어가보자.멸치떼가 앞바다에 몰려들면 아연 활기를 찾는다는 포구 옆에 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다.모래가 깨끗하고 부드러울 뿐만아니라 수심도 얕아 아이들을 안심하고 바다에 맡길 수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속 모래밭에 발을 넣어 꺼칠한 것이 느껴지면 자맥질,조개잡는 재미에 빠져들면 하루해가 어느덧 넘어간다.민박 문의 양양군 현남면 사무소(670-2605)7번국도를 따라 22㎞를 내달으면 하조대 해수욕장.왼쪽 길로 접어들어 30분을 달리면 법수치계곡.약 4㎞구간만 포장이고 나머지 6㎞이상은 비포장.여름계곡치곤 차지 않은 물이 되레 매력으로 꼽힐만하다.부드러운 계곡이 끝없이이어지고 물속의 자갈들이 고만고만한 게 여간 살갑지 않다. 어성전 들머리의 진선미식당(671-5963)은 남대천에서 건져올린 손가락만한물고기를 넣어 끓인 뚜거리탕으로 유명하다.은어회도 푸짐하다.민박문의 현북면 사무소(670-2604)글 양양 임병선기자 bsnim@
  • 홍도·흑산도 파도위 기암괴석들의 觀兵式

    홍도(紅島)의 첫 인상은 깨끗함이었다. 선착장이 너비 500여m의 빠돌해수욕장 한가운데 있으니 선착장이 바로 해수욕장의 다이빙보드 역할을 하고 있는셈.백사장은 없다.짙푸른,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깨끗한 물이 만점이다.빤질빤질한 돌이란 뜻의 빠돌을 밟으며 돌들이 파도에 떠밀려 내는 ‘사갈사갈’소리를 듣는 삼매경 또한 만만찮다. 2시간30분의 긴 바닷길에 쌓인 피로는 멱감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속에 녹아버린다. 이어 90분에 걸친 유람선 여행.남문,촛대,칼,남매,독립문,주전자,거북 등 형형색색의 기암괴석을 즐기는 유람은 익히 아는 홍도의 멋.특히 탑섬은 층층이 쌓아놓은 듯한 탑들의 형상이 이국적인 맛을 물씬 풍겼다.,“참말로 징헌 장관이네잉”귀에 익은 전라도 사투리 사이로 경상도 아줌마들의 왁자지껄한 탄식도 끊이질 않는다. 부부탑,석화굴,그리고 천정에 뿌리를 내리고 거꾸로 땅을 향해 자라는 나무가 있는 요술동굴을 보며 오묘한 섭리를 만끽한다. 칼바위에 노을이 어리기 시작하자 배가 멈춰선다.아,홍도의 옛이름이 왜 매가도인지 알겠다.온통 붉은 빛으로 단장한 바위,기쁨에 달아오른 길손들의얼굴,온세상이 붉다. 횟감을 유람선에서 맛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유람선에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근처 어민들이 옆에 배를 대고 직접 횟감을 손질,건네준다. 불콰한 얼굴로 선착장에 돌아오니 이번엔 화려한 낙조.붉은 태양이 무참히얼굴을 담그는 장관을 매일 쳐다볼 수 있다면 삶을 마구 사는 일은 없을 것이란 속절없는 감상에 빠져든다. 그러나 사람살이는 강팍하다.경사 35도 이상의 가파른 산지로 이루어져 도대체 밭 한뙈기를 얻기가 힘들었던 땅.집은 붙어서고 골목은 비좁기 그지 없다.성수기가 아니더라도 외지인이 주민 500명보다 많아 늘 흥청거린다. 군데군데 원추리와 들꽃들이 만발한 왼쪽 구릉을 헤치고 깃대봉을 넘으면 홍리2구.격랑 때문에 배를 띄울 수 없을 때만 이곳 주민들에 한해 길을 열어준다는 등산로가 아득히 높다. 동백나무 울창한 산책로가 매끈해 연인들 거닐기에 그만한 장소가 없다고 주민들은 자랑하지만 정작 외부인 출입은 통제된다.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이기때문.관리사무소 곁의 자생란 전시실도 꼭 둘러볼만 하다. 홍도분교에 전학생이 늘어 교사를 신축했다는 얘기가 많은 걸 함축한다.돈이 꾀이고 사람이 몰린다는 얘기니 이 섬의 비경은 그런 강팍함을 비싼 대가로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산도(黑山島)는 동으로 영산도,북으로 대둔도와 다물도,서로 대·소장도,홍도 등 100개를 넘나드는 섬을 거느리고 있는 큰 섬.비포장도로를 3시간 남짓 달려야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오뚝이마냥 몸을 마구 흔들리며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는데 먼지가 휘날리는 게 장난이 아니다. 뭍의 오지 트레킹이나 오프-로드에 비견해도 손색없는 산길은 그 덕분에 비경을 감출 수 있었으리라.특히 예리선착장에서 1시간은 족히 걸어야 할 거리에 있는 세께해수욕장은 영화 ‘남태평양’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야트막히 경사진 해변에서 모래와 뒤엉켜 키스신을 오래도록 나누던 환상을 떠올리기에 족했다. 바위 가운데 파도가 넘쳐나오면 그 모양이 야릇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하여 붙여진 여바위.바위뚫린 곳의 형상이 꼭 우리나라 모양같다하여 붙여진지도바위,갯벌에서 일하는 부모를 보호하기 위해 파도에 맞서 바위로 굳었다는 칠형제 바위 등 흑산도는 살가운 사람냄새로 그윽하다. 이 섬은 또한 유배의 땅.조선시대는 뭍에서 일주일이 걸렸다니 얼마나 험한뱃길인지 가늠된다.정약전과 상소로 이름난 면암 최익현이 유배생활을 견뎌낸 곳이기도 하다. 지겨운 먼지길을 달린 뒤 도착한 상라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섬의 전체 풍경 또한 여유롭기 그지 없다.흑산도의 마지막 인상은 지겨움이지만 그 안에는 비릿함 대신 사람사는 내음으로 정겹다. 홍도 글·사진 임병선기자 bsnim@. ●가는 길 서울 강남터미널∼목포 5시간 소요,20∼40분 간격 운행.김포공항∼목포 50분 소요,하루 10편 운항. 목포∼흑산도 2시간10분,오전 7시20분·7시40분,오후 1시20분·1시40분.흑산도∼홍도 40분.요금 2만9,750원.배편은 계절과 해상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잦아 출발전 운항여부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목포항 (061)243-1081 홍도관리사무소 246-3700 신안군문화관광과 242-6501 흑산 여객터미널 275-9323 흑산관광안내소 275-9115우리여행사(02-335-7137)에선 오는 30일과 8월1·3일 세차례 출발해 2박3일로 홍도와 흑산도를 돌아보는 여행상품을 19만5,000원에 내놓았다. ●잠잘 곳과 유람 홍도에선 숙박시설을,흑산도에선 민박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홍도 대한장 (246-3788)을 비롯해 여관이 15곳 정도이고 횟집을 겸한 민박집이 비슷한 수로 있다. 홍도 유람선은 쾌속선이 도착한 후 바로 출발할 수 있거나 목포행 배가 출발하기 전 유람을 마칠 수 있도록 조정돼있다.2시간이 걸린다.16일부터 1만2,000원.그밖에 홍도 입장료로 2,000원을 걷는다. 흑산도 유람선 역시 쾌속선 출발·도착시간과 연계해 운행되며 대둔도 다물도 영산도 등을 돌아본다.요금 1만원. ●먹거리 홍도에선 양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횟감은 모두 천연산.전복과 농어 등을 최상품으로 친다.그러나 다소 값이 비싼 편. 흑산도 홍어는 음력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만 잡기 때문에 지금은 제맛을 즐길 수 없다. 수협 사상 역대 최고 입찰가는 한마리에 80만원.그외 전복과 멸치,다시마,미역 등이 좋다.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7)잃어버린 먹거리

    최초의 도시락은 아마도 주먹밥이었을 것이다. 집 부근의 논이나 밭에 나가 일하는 동안에 아낙네들이 대광주리나 채반에 밥과 반찬을 얹어 나르던 일은 오래된 행사였을 터이다.조선 시대의 민화에보면 들밥 먹는 그림이 심심찮게 나온다.춘향전에도 걸인 차림의 어사또가들밥을 얻어 먹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나도 예전에 남도를 방랑하던 청소년 시절에 들밥을 종종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당시에는 아직도 농촌이 별로넉넉하지 않던 시절이라 여름철에는 대개가 푹 삶아 퍼진 보리밥을 먹었다. 깡보리도 있고 이밥에 보리를 나우 섞은 밥도 있었다.지금 생각해 보아도 호박나물이나 알감자 조림 또는 가지나물 등속의 맛이라든가 상추며 깻잎이며데친 호박 잎에 장을 쳐서 풋고추 툭 부러뜨려서 싸먹던 기억이 새롭다. 들밥은 품앗이나 두레로 이루어진 공동 노동의 산물이기도 하였다.한 마을에서 집집이 돌아가면서 여럿의 농사 일을 협동하여 서로 해주는데 이 때에 새참이나 끼니도 공동으로 해결하였다.비록 햇보리밥에 제철 푸성귀 뿐이었지만 인심은 풍성하여 일하는 남정네는 물론이고 부엌 일을 거드는 노약자나집에서 놀던 어린 것들까지 손목 잡혀 나와서 함께 먹었다.그뿐인가,지나는나그네라도 보이면 서로 손짓하여,들밥 좀 같이 자시고 쉬어서 가시라고 불러대는 것이었다.들밥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인데 대광주리에는 식반찬과 함께 닷되들이 술병이 들어있다.밥 먹으랴 서로 권커니 잣커니 하는 밥주발의 막걸리 마시랴 하다보면,식곤증으로 축 늘어져서 제각기 땡볕을 피하여 나무 그늘을 찾아가 짧은 낮잠 한 숨을 부치게 된다.담배 한 두어 죽 피울만치 오침을 하고나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 아침처럼 새로운 기운이 부쩍난다. 덧붙여 말하자면,이제 이러한 들밥은 사라져 버렸다.요즈음은 농촌에서도 일손 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하루 일당 노임이 전국적으로 또박 또박 정해져 있고 서로 나누는 인심 따위는 없어졌다.들에서 일하다가 핸드폰으로 짜장면 시켜 먹고 커피까지 배달해다 먹는다.새참이라고 하여도 대광주리로 이어나르는 일은 없고 빵이나 우유나 코카콜라 음료수가 나온다. 집 근처에서는 식구와 동네 사람들이 들밥을 어울려 먹었지만 혼자서 깊은산에 나무나 약초를 하러 간다든가 먼길을 떠날 적에는 주먹밥이나 떡이나곡물가루 같은 비상식량을 해가지고 다녔다.옛날 전쟁 기록에서도 그렇고 구한말 동학사 같은 데서 보자면 병정들도 마찬가지였다.밥을 주먹만하게 뭉쳐서 가운데에다 장을 찍어 바르거나 소금을 적당히 풀어 놓은 물에 두 손을담궜다가 간간하게 밥을 뭉쳐서 주먹밥을 만들었다.육이오 때에는 나도 그런 주먹밥을 먹은 기억이 있고 전선의 군인들도 고지 위로 보급 되어 올라온돌처럼 얼어붙은 주먹밥을 으깨어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동양에서는 봉건시대의 전형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그리고 최근까지도 주먹밥 문화가 생생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주먹밥과 다꾸앙은 사무라이의 야전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김밥이나 각종스시의 원형도 그러할 것이다. 주먹밥에서 시작하여 가랑잎,연잎,파초잎,호박잎 같이 넓적한 나뭇잎에 밥을 싸서 간수하는 데서부터 베보자기나 헝겊에 싸기도 하다가 도시락이 탄생한다. 도시락은 대나무나 왕골이나 덩굴 줄기로 작은 고리 상자를 짜서 만들었다. 이것을 허릿춤 또는 지게 모퉁이에 매달기도 하고 일터에 가서는 바람이 잘통하는 서늘한 나뭇가지에 걸어 놓기도 하고 옹달샘에 담궈 두었다. 하여튼 입맛이란,여럿이 함께 먹는 음식과 노동을 한 뒤의 것이 훨씬 맛있고풍성한 자연 속에서는 더욱 살아나기 마련이다. 우리 기억 속에 ‘도시락’은 우리말 가꾸기로 나중에 바뀐 말일뿐 그 맛과함께 남아있는 말은 일본 말인 ‘벤또’였다.근대를 일제의 식민지로 치뤄낸 우리의 점심 문화는 벤또로 시작했던 것이다.즉 직장이며 학교며 근대적 의미에서의 일터란 모두 일제가 가져온 것들이었다.알미늄으로 만든 그릇들을총칭해서 양은 그릇이라고 했는데 어른들은 아르마이또 라고 불렀다.아낙네들은 일터에 나가는 가장에게 알미늄으로 만든 깊숙하고 네모난 벤또를 작은 손수건만한 보자기에 싸서 주었고 남정네는 제 점심을 자전거 화물칸 위에얹고 출발했다.퇴근 길에는 빈 벤또 속에서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딸그락거렸다. 나는 소학교 시절부터 장성해서까지 오랫동안 이 벤또를 ‘까먹고’ 하루를보냈다.겨울날 조개탄 난로 위에 이것을 층층이 올려놓고 식은 밥과 김치를데워 먹던 생각이 난다. 도시락 반찬의 변천사도 만만치 않다.반찬 칸이 밥과 함께 있던 터라 뭔가양이 적으면서도 짭짤한 것이 필요했다.김치가 도시락 반찬의 대종을 이루었지만 때로는 멸치볶음이니 콩자반이니 각종 건어조림이나 어포 볶음 등이 많았고 해방 뒤에 무슨 서양요리처럼 등장한 계란 프라이는 밥 위에 그대로 얹어서 부잣집 반찬 행세를 했다.그러나 어디 우리네 전래의 장아찌에 비길만한 도시락 반찬이 있을 건가!철철이 나오는 채소와 해물을 뒷뜰의 장독대에 있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덜어내어 담궈 두기만 하면 되었다.대개는 한 해만 묵히면 깊은 맛에 쫄깃하고 아삭거리는 장과를 만들 수 있었다.채소를 일단 소금에 절여서 풀을 죽이거나 수분을 줄이고 간이 배게 한 다음에 장에 박거나 담근다.가장 기초적인것이 무나 마늘이나 오이를 된장 고추장 그리고 간장에 담그는 것이다.특히된장과 고추장에박은 무는 노랗고 발갛게 색깔이 서로 다르고 맛도 다르다. 소금에 절이기만한 오이와 무도 담백한데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쳐서 무치기도 한다.마늘과 마늘쫑은 각각 간장과 고추장에 담근 것이 맛이 다르다.더덕은 고추장에 담근 것이 맛있고 풋고추와 깻잎은 간장에 담근 것이 맛이 있다.감이나 오이 참외 가지 등속은 된장에 담그면 아삭거리고 깊은 맛이 든다. 무말랭이는 간장에 담았다가 무칠 때에 고춧가루 등속을 쓴다.김이며 미역다시마 등속은 고추장에 담근 것이 맛있다. 작년에 제주도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망명과 투옥으로 십여년 이상이나 국내여행을 못했다가 오랜만에 찾아가니 친구들이 반겨주었다.하루는 나를 바닷가의 사라봉으로 점심 초대를 하길래 따라 나섰다.몇집에서 그날 먹으려던음식들을 제각기 싸가지고 나왔는데 모두 싱싱한 푸성귀에 짭쪼롬한 밑반찬종류였다.콩잎에 멸치 젓을 넣어 밥을 싸먹기도 하고 잘게 토막쳐서 양념에버무린 자리돔을 상추에 싸먹기도 하였는데 특히 입맛을 돋구었던 것은 된장에 버무려 담은 제주도식의 갓김치였다. 하여튼 돌아온 뒤에도 그런 소박한 반찬을 싸들고 집 부근으로 나가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 취미가 생겼다.또 달랑 제 식구만 나가는 게 아니라 이웃이나 친구 가족도 불러서 함께 갔다.어떤 날은 옛날식 양은 도시락에 짭짤한 밑반찬과 밥을 싸서 하다못해 동네 공원에 나가서 먹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정체도 모를 미국식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고 어른들도 야외에만 나가면 그저 고기를 떡 벌어지게 지글지글 구어서 독주에다실컷 마시고 쿵쾅거리는 가라오케 기계 틀어놓고 법석댄다. 장아찌는 장독대가 사라지면서 백화점의 반찬가게로 옮겨갔고,서로 담 넘어로 장을 빌리거나 찬을 나누고 들밥을 함께 먹던 문화는 식구끼리의 외식문화로 바뀌었지만 실천에 따라서는 회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황석영
  • [마음은 북녘 고향에](7)함남 삼호면 출신 박충희 할머니

    “내 고향 삼호에 가면 제일 먼저 섭죽을 먹고 싶습네다” 함경남도 홍원군 삼호면 신중리가 고향인 박충희(朴忠姬·73·여·서울 송파구 광장동)씨는 7일 “남쪽 사람들은 섭죽을 잘 모를 테지만,홍합으로 끓인 죽”이라고 설명했다. 박씨의 고향은 함흥에서 80리쯤 떨어진 작은 어촌 마을.아버지가 어업조합이사로 지내 넉넉지는 않았지만 6남매가 부러움 없이 자랐다.막내인 박씨는마을 앞 바다에 있는 ‘전초섬’에 목선을 타고 가 놀곤했다.마을 사람들은섬 주변 바다에서 잡은 홍합으로 죽을 쑤어 밥처럼 먹었다. 마을 뒤편에는 ‘두넘’이라고 부르는 동산이 있었다.동산에 오르면 푸른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함흥의 반룡산에는 벚꽃나무가 많아 봄이 되면 눈처럼 새하얗게 장관을 이뤘다. 정월 대보름에는 주머니에 잣과 해바라기씨를 가득 넣고 성천강을 건너며 먹었다.마을 사람들은 대보름날 이 강을 건너면 시집 못간 노처녀가 시집을 가고,아픈 사람은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 장터가 열리는 신중리는 삼호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박씨는 “장이열리면 ‘아마이(할머니)’들이 수수전병을 쭉 늘어놓고 팔았다”며 먹거리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어릴 적 할머니에게 가자미식해를만들어 달라고 조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살이 오돌오돌 돋은 큰 멸치를 소금에 절인 멸치젓,겨울이면 집집마다 명태를 수십마리씩 잡아서 아침마다 끓여먹는 명태국도 별미였다. 박씨는 삼호여자중학교를 거쳐 홍원고급중학교에서 교사로 있던 1951년 1·4후퇴때 북한체제에 반대하는 학도호국단 학생 10명과 함께 목선을 얻어 타고 고향을 떠났다. 박씨는 “고향을 잠시 떠나 있을 것으로 여겼지,이렇게 긴 세월 동안 부모형제들과 헤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나중에 따로 피란온 큰 오빠를 경북 포항에서 만났을 뿐 나머지 형제는 북에 남아 있다. 박씨는 함흥에서 하숙을 하며 함흥실과여학교를 다녔다.김흥수(金興洙)화백은 당시 미술을 가르치던 교사였다.모윤숙(毛允淑)시인의 동생인 모월천씨는 국어교사였다.김 화백은 엄격한 총각 선생님이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박씨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길이 트여 너무 벅차고두려워 고향방문단 신청을 다음 번으로 미뤘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 신나는 여름방학 어린이캠프 다채

    여름방학이 다가오면서 아이들 보낼만한 곳을 고민하는 어른들이 많다.체험을 통해 자연을 배우려는 학교나 캠프들을 소개한다. ■한국해양문화발전연구소(02-668-4174)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를 대상으로 어부체험학교를 꾸민다.7월 22일부터 24일까지 남해바다 사량도에서 후리그물을 쳐서 고기잡는 방법과 양식장,바지락,멸치잡이 등을 체험한다.이달 30일까지 접수를 받는다.회비는 5만원,선착순으로 20명을모집한다. ■한국환경교육협회(02-571-1195)는 환경체험학교를 충남 연기군에 있는 청소년수련장에서 갖는다.하천탐사와 수질오염 검사,장난감 재활용방안,숲속생존게임,농촌생활체험 등을 한다.초등부는 7월 21∼23일과 8월4∼6일 두차례,중고등부는 7월 25∼27일(모두 5만5,000원),청소년회원은 8월8∼10일(5만원) 실시한다. ■정선아리랑학교(0373-378-7856)는 7월27∼29일 초등생 40명을 모집,‘산골마을 아리랑학교’를 연다.회비 10만원.들꽃과 곤충 관찰,매화동 골짜기 탐험,반딧불이 찾아가기,동강 역사공부,재미있는 농사체험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된다.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4)잃어버린 먹거리

    6·25전쟁 전에도 쌀이 늘 모자라서 수제비나 국수를 많이 먹었지만 밥을 지어 먹을 때에도 반찬은 한 두어 가지가 고작이었다.동그란 밥상 가운데에 찌개 냄비 올려놓고 김치 한 보시기에 밥 한 그릇씩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밥에다 뭔가 넣어서 해먹으면 양식도 절약이 되고 반찬도 따로 장만할 필요가 없게 된다.나는 요즈음 경양식 집에서 김치와 베이컨과 햄이며 당근 등속을 넣고 버터에 볶은 김치볶음밥은 어딘가 맛이 분명치 않아서 딱 질색이다. 김치가 시어지면 속을 좀 털어내고 송송 썰어서 김치밥을 해먹었고 햇감자가나오면 감자밥을, 고구마가 나오면 고구마밥을,그리고 가을에 김장하고나서남은 무를 넣고 무밥도 해먹었는데,콩나물은 값싸고 가장 흔한 채소라 어느철에도 가끔씩 해먹었다. 영등포의 그 작은 집 뒷뜰에는 화단도 있었고 수돗간과 광도 있었고 광 위에장독대가 있었다. 여름이면 화단에다 일년초의 씨를 뿌렸는데 봉숭아 채송화분꽃 그리고 나팔꽃이 누나들이 매어준 실을 타고 판자 울타리 끝에까지 기어 올랐다.익으면 발간 주황색이되는 유자도 열렸고 수세미 넝쿨도 광의 지붕으로 뻗어 올라갔다.초겨울이 되면 아버지가 광의 뒷편 그늘진 곳에다 땅을 파고 김장독을 묻곤 했다. 어머니가 뚜껑과 짚으로 둥글게 짠 덮개를 열고 웅크리고 한 손을 집어넣어통배추 김치나 절인 무를 꺼내는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삼삼하다. 김치밥은 돼지고기를 써야 더욱 맛이 좋다.돼지 살코기를 다져서 갖은 양념하여 살짝 볶아 놓고 쌀을 앉힐 때 김치와 돼지고기와 쌀을 켜켜로 두어 물을 잡는다.보통 때보다 물을 약간 덜 잡아서 밥을 하면 되지만 약간 질척한듯 짓는 것이 더욱 맛있는 것같다.양념장을 준비했다가 조금씩 밥 위에 두고비벼서 먹는다. 멸치로 다시를 낸 맑은 미역국과 함께 먹으면 다른 찬이 필요가 없다. 콩나물 밥도 짓는 법은 비슷하여 양념이 된 고기를 볶아서 콩나물과 같이 쌀에 앉히는데,더욱 구수한 맛을 내려면 다시마 우린 물이나 멸치 맛국물로 밥물을 잡는다.역시 양념장을 넣고 비벼서 먹는다.국은 재첩이나 조개로 된장국을 끓여서 낸다. 무밥이나 감자밥 고구마밥도 모두 양식이 모자라던 시절의 밥짓기지만,얼마전에 여행길에서 산간에 들어갔다가 감자밥과 막장으로 끓인 호박찌개를 먹고 투박하고 구수한 옛맛이 살아나서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던 적이 있었다.도무지 이런 맛이란 시중의 음식점 어디를 가보아도 없다.요즈음 대중식당의 차림표와 음식은 서울에서 저 남도 끝이며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어슷비슷한 맛이다. 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셈이랄까.대충 벽에 붙은 차림표대로 주문을 하고나면어디선가 먹은 그 음식이 같은 모양새로 나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밥은 또 어떤가.밤중에 공부를 하다가 아니면 책을 읽다가 귀찮기는 하지만 속이 출출해서 슬슬 부엌에 나가서 뭔가 먹을 것을 찾는다.형제들이 많은 집이면 서로 가위 바위 보를 하기도 하고 제일 굴풋하고 시장한사람이 부엌으로 나가게 된다. 밥이 솥 안에 조금 남아있고 찬장에는 먹던 김치가 있고 고추장 뿐이다.허름한 양은 냄비에다 참기름을 두르고 밥과 고추장과 김치를 넣어 비비면서 볶는다.그대로 숫가락 여러 개를 꽂아서 냄비채로 들고 방으로 돌아오면형제들이 저마다 달려들어 퍼먹는데 밤참의 그 맛이란 세 끼 중에 가장 특별한맛이다. 뭔가 나물이나 김치나 하여튼 먹고 남은 찬을 넣고 비벼 먹는 음식은 어느지방에나 있는데 사람들 추측에 의하면 대개 명절이 지난 뒤라든가 제사를지낸 며칠 후에 ‘먹어 치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전주 지방의 비빔밥이 유명하지만 안동에서는 원래의 의미대로 헛제사밥이라고 부른다. 어렸을 적에 평양이 고향이던 어머니는 ‘온반’을 제대로 한 적은 없었다. 부모님들은 아마도 수십년 동안을 남쪽에 정착해 살면서도 이곳은 임시 거처려니 여기고 살아온 게 분명할 것이다.더구나 어머니는 농촌 가정 출신이 아니라 개화된 지식인 집안이었고 커서 배운 요리도 거의가 일본식의 개화 음식이었다.아니,그렇다고는 해도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뿌리를 뽑힌 ‘피난살이’의 살림을 의식적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게다.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몇 대를 서울에서 살아온 토박이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을 보고 깊은 인상을받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들이 찬통에 싸온 여러 종류의 장아찌는 기가막힌 맛이었다. 머니는 나중에 아버지와 사별하고부터는 혼자서 벅찬 생업을 감당하노라고더욱 부엌일과 멀어졌고 우리집 식단은 그야말로 가게에서 그날 그날 사다가후딱 조리해서 먹어치우는 식이 되었다. 어머니는 노티를 외우던 것처럼 고향의 온반이 먹고 싶다고 여러번 말했고 비슷하게 만들어 먹기도 했다.그저콩나물 시금치 무나물 등속에다 두어 국물을 부어 만든 것이었는데 우리가보기에는 국밥도 아니고 비빔밥도 아닌 이상야릇한 음식인 듯했다.이렇듯 야릇한 음식으로는 중국집의 울면이 있다.우동이나 짬뽕처럼 시원한 국물도 아니고 짜장면처럼 비비는 것도 아닌 걸죽한 소오스가 아닌가.마치 비벼 먹다가 마음이 변해서 국을 들이부운 것만 같다. 내가 몇 차레 김일성 주석과 나눈 점심에 온반을 먹게 되었다.어느 기록에도보니까 해방후 초기 집권 시절에 부인이 집에서 직접 콩나물 기르는 얘기가나오고 장군(김 주석)이 콩나물 국밥을 즐겨했다고 한다. 이거이 주로 먼길 떠나는 사람들이 먹었디.손님이 많고 일손은 바쁘고 할적에 온반 한 그릇씩 주면 얼마나 편리했겠소.속두 풀리구 든든하디. 온반 역시 설이나 제사 뒤의 비빔밥의 유래와 같은 계통의 음식이었을 것이다. 다만 추운 지방에서는 남은 음식을 차게 먹을 수 없으니 더운 국물을 부어서먹었을 게 분명하다. 이것을 끓인 것으로 온반죽이 있으니 더욱 그럴 듯 하다. 표고버섯과 고기를 볶고 찢어 놓은 고사리며 갖은 양념하여 무친 숙주나물을두고 달걀 지단을 썰어 밥 위에 얹고 녹두전을 부쳐서 밥 위에 얹고나서, 그위에 푹 곤 양지머리 국물이나 닭 가슴 살을 곤 맑은 육수를 부어서 먹는다. 대개는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잡지만 나는 뜨거운 국물을 밥과 건더기가 푹잠기도록 부어야 직성이 풀린다.벌겋고 시원하게 담근 깍두기나 고추를 갈아젓과 버무린 배추 겉절이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이마에서 땀이 나고 속이후련해진다.과음한 이튿날 속풀이로도 그만이고 별로 입맛이 없는 요즈음의여름 날 점심 때에 땀을 흘리며 먹고나면 이열치열도 될 것이다. 초대소에서도 점심으로 몇번 더 먹은 기억이 난다.요새는 북에서 무슨 국을끓여도 대개는 닭을 고아서 쓰는 모양이었다.내가 된장국의 맛을 내려고 멸치를 찾았더니 주방장은 멸치를 어떻게 국물로 쓰느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내가 자꾸만 된장국이나 야채국에는 멸치를 넣어야 제맛이 난다고 했더니 답답했던지 그가 멸치를 가지고 나와서 내게 보여 주었다.아뿔싸,이북에서는 동해안 멸치가 있긴 있는데 크기가 거의 작은 꽁치만이나 했다.이건비려서 못쓰겠지.이것 보다 작은 게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그건 멸치가 아니라 까나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역시 지방마다 맛과 조리법이 다른 이유는 기후와 풍토,그리고 자연조건에따른 것이다.그러한즉 땅은 작지만 팔도마다 서로 조금씩 다른 말과 음식은얼마나 아기자기한가.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잃어버린 먹거리

    내가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지금은 먹을 수 없다거나 만들 수가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그때의 맛이 나지 않는다는 소리다.사람이 변했든지 세월이변했든지 했을 터이다. 나는 다 알려져 있듯이 만주에서 태어났고 해방이 되면서 외가가 있던 평양으로 나와서 다섯 해를 살았다.따라서 기억이 나는 것은 평양에서의 한 두해가 될 것이다.태어나자마자 줄곧 피난 길이었는데 이것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팔 년 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평양에서는 이른바 적산집이라고 일본인이 버리고 간 이층 목조 집에서 살았는데 가파른 나무 계단과 모든 방마다 다다미가 깔려 있던 게 생각난다.방안쪽에는 또한 일종의 붙박이 벽장인 오시이레가 있어서 혼자 들어가 숨기에맞춤했다.오시이레 안에서는 나프탈린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우리 가족이륙색이나 봇짐을 지고 이리 저리 남한의 산하를 돌아다닐 적에도 내내 따라다녔던 냄새였다. 우리 식구가 아버지의 취직으로 남한으로 내려올 때 삼팔선을 넘었는데 해주의 어느 사공 집에서 저녁을 먹었던 일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갯가에서 흔하게 주을 수 있는 작은 게를 장에 조린 반찬이 신기했다.앙징맞게 작았지만집게발과 두 눈의 생김새가 그대로 있는 통째로의 게여서 입 안에 넣기가어쩐지 징그러웠다. 나는 나중에 어른들에게 듣고서야 거기가 개성의 피난민 수용소임을 알았는데,지금 기억에 남은 건 운동장의 무너진 담 사이로 보이던 작은 언덕에 봉긋봉긋 솟아난 한아름 크기의 새 무덤들과 그 앞에 사이다 병에 꽂아놓은 들꽃들이다. 만주에서부터 육로로 나온 일본인 귀환자들이 많았다는데 대부분의 작은 무덤은 그들 어린 아이들의 것이었다고 한다.내게는 다만 사이다 병에 꽂힌 들꽃들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서울에 와서도 효창동의 일본집들이가득찬 골목에서 세를 들었는데 분위기는 평양의 이층 집과 비슷했던 것 같다.하여튼 그 시절에 길 위에서도 새로운 고장에 도착했을 적에도 언제나 어른이 내 손에 쥐어준 것은 김밥이었다.그냥 밥 몇 술을 펴담고,조글조글하고아작아작한 (단무지가 아니라)다꾸앙을 길게 박아서 마른 김 한 장에 둘둘만 김밥은 어린내 눈에 굉장히 커 보여서 아마도 오랫동안 손에 쥐고 자다깨다 하면서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일본식 집에 가서 무심코 오시이레 문을 열면 나프탈린냄새가 떠오르고 다꾸앙과 김밥 냄새가 나곤 했다.그 김밥은 요즈음에 패스트푸드가 되어버린 체인점의 김밥과는 달랐다.그 뒤 전쟁이 터지고 다시 피난길에 오르면서부터 김밥의 속이 달라지고 주먹밥이나 개떡을 먹는 일이 흔해졌지만 나중의 일이다. 해방 뒤부터 전쟁 때에는 물론이고 전후에도 오랫동안 양식이 부족해서 도회지에서는 밀가루로 연명하는 날이 많았다.어머니는 언제나 없는 재료로 아이들이 좋아할 뭔가 색다른 반찬들을 만들어내야 했다.그럴 적에 등장했던 것이 바로 ‘장떡’이었다.훨씬 뒤인 칠십년대에 와서야 어머니가 정식으로 어릴 적에 할머니로부터 전수 받은 진짜 장떡을 먹어보고서야 당시의 그것이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알았다.어머니가 당시에 된장국과 김치 한 보시기를달랑 올려놓기가 거북했을 때에 급조했던 장떡은 우리 형제들에게는 대단한특식이요 별찬이었다.어머니가 부엌에서 장떡을 지지는 냄새를 풍기면 우리어린 것들은 둥그런 밥상 주위에서 야,장떡이다 장떡! 하면서 맴돌았다. 어머니가 급히 지져낸 장떡은 사실은 고추장떡이었다.밀가루를 묽게 반죽해서 거기에 고추장을 타고 그때 그때 눈에 띄일 때마다 파나 마늘이나 풋고추를 썰어 넣고 지진 기름끼가 도는 음식이었다.이것은 지져낸 당시에 방금 먹지 않으면 나중에는 흐물흐물해져서 풀때죽이 되어버리고 만다. 대개 장떡은 이북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방에 따라서 고추장을 넣든가된장을 넣든가 아니면 둘 다를 섞어 조리하기도 한다. 평안도나 황해도에서는 된장을 주로 쓰는데 밀가루와 찹쌀을 섞어서 맛을 돋굴 마늘이나 부추 또는 깻잎 등을 다져 넣고 시루에 쪘다가 한 낮의 햇볕에한 사날 말려서 갈무리해두고 먹을 때마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지져 먹는다. 개성에서는 햇된장을 건질 적에 아예 장떡 조리용으로 소금을 치지 않고 두었다가 찹쌀가루와,다진 쇠고기며,깨,파,마늘 고춧가루 참기름을 섞어서 동그랗게 빚는다.그리고 앞서와 같이 말리거나 쪄두었다가 지져 내지 않으면구워서 낸다.여기서는 햇된장에 고춧가루를 섞는 것이 특징인데 그냥 고추장떡 보다 훨씬 맵쌀한 게 특징이다. 미나리와 부추를 섞어서 밀가루와 멸치가루 등속을 넣고 파 마늘 다진 것에고춧가루나 고추장을 버무려 동글납작하게 빚어서 담백하게 그냥 즉석에서쪄먹기도 한다. 똥그랑뗑처럼 다진 쇠고기나 다진 돼지고기를 역시 으깬 두부에 섞어 된장고추장과 밀가루에 반죽해서 기름에 지져내기도 한다. 얼마 전에 큰 아이가 장가를 갔는데 사돈 댁의 법도에 따라 우리 집에 오면서 ‘이바지’ 음식을 며느리 손에 들려 보내왔다.한과니 전이니 과물이니는 제사 때 보던 것과 같은데 유난히 눈에 띄는 음식이 있었다.그것이 바로 사돈댁의 고향인 강화의 수수장떡이었다.수수를 빻아다가 찹쌀을 섞고 된장을넣어 부추와 마늘을 다져 넣은 것이었다.며늘아이가 말하기를,수수장떡의 주의할 점은 반죽할 때 절대로 물을 타지 않는다는 점이란다.된장과 부추의 물기로 반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색깔을 보니 어두운 회색 빛인데 속으로부추의 푸른 빛이 어른거린다.강화의 장떡은 다른 지방과는 달리 수수로 빚으면서 그냥 날것인 채로 햇볕에 말린다는 특징이 있다.꾸덕꾸덕하게 한나절 햇볕에 말린 다음 그대로 쪄서 먹거나 역시 참기름에 지져 먹으면 된다.아이들에게는 조부모가 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조촐한 젯상을 차리고 ‘이바지’ 음식을 드리고 참배했다. 그때 물이 스미는 것처럼 영등포의 그 작은 집 안방의 가난했던 밥상이며 어머니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던 생각이 났다. 방은 두 칸이었고 마루방 하나가 딸려 있었는데 부엌은 비좁은 편이었다.시멘트로 바른 부뚜막에는 중간 크기의 쇠솥 두 개가 걸려 있었고 부엌 문 앞의 처마 밑에 숯을 사용하는 풍로가 있었다.어머니는 두 솥에다 밥과 국을짓고 풍로는 아궁이의 잔불이 사라진 다음에 밑불로 타다 남은 숯을 작은 부삽으로 꺼내어 풍로에 옮기고는 그 위에서 석쇠로 생선을 굽거나 찌개를 끓이거나 번철에 뭔가 지지곤 했다.나는 누나와 함께 가끔씩 부엌에서 어머니를 도와 잘 붙지 않는 밑불을 살리노라고 풍로를 돌리곤 했다. 우리는 비 오는 날이나 또는 일요일 오후에 어머니가 부엌 봉당에 주저앉아밀가루 부침개를 붙이거나 고구마를 삶거나 할 때에 나직하게 부르던 노랫소리를 기억한다.일본 노래도 부르고 전쟁 때에 나온 유행가도 불렀다.어머니는 당시 표현대로 교육을 받은 신여성 인텔리였다.그래서 나중에 전후의 가난이 어느 정도 가셨을 때에는 요리책에 나온 특별한 서양 음식도 해주곤 하였다. 제를 끝내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물린 상을 먹으면서 그제서야 실로 몇 십년만에 장떡을 먹어 보았는데 어쩐지 물컹하고 아무런 맛도 없어서 저도 모르게 구워낸 굴비쪽으로만 젓가락이 가는 것이었다.아이들은 더해서 한 점을밥 위에 올려 놓고 떼어 먹는 품이 못내 내키지 않는 양이다.그래도 보낸 쪽의 성의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더해져서 서너 점을 먹고나니 밥이 한참이나 그릇에 남았는데도 벌써 배가 불렀다.수저를 놓고나서야 장떡의 미덕을알게 된다.밥을 보통 때보다 적게 먹었는데도 어쩐지 덧부룩하고 든든한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광주에 살던 시절 모시고 있었는데 광주사태 있고나서 내가당국의 권유로 제주도에 유배 비슷하게 머물던 그해 겨울에 돌아가셨다.암이라서 식구들도 모두 포기하고 병원에서 모셔내다가 진통제나 놓아 드렸다.아내가 내게 ‘노티’가 뭐냐고 물었다.글쎄…그게 뭘까,했더니 그네가 말했다.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몇번이나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
  • 수라상 기장미역 민속주 산성막걸리 부산 특색식품 지정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기장미역과 전통의 민속주 산성막걸리 등 식품 10종이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개발된다. 부산시는 16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학계와 요리연구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음식문화 향상사업 심의위원회를 열고 19개 업소의 식품 10종을 부산의 특색식품으로 지정했다.이들 먹거리는 2002년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 행사에서부산의 특색식품으로 소개된다. 이번에 선정된 특색식품은 기장미역,기장멸치액젓,오복간장,백두산오가피주,산성막걸리,태평한차,명란젓,육포,복어포,부산어묵 등 10종류다. 기장멸치액젓은 화학조미료나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1년간 숙성시킨 것이며 오복간장은 맛과 향이 뛰어나다.태평한차는 각종 한약제를 이용한 건강차이고,명란젓은 참명란만을 선별해 죽염을 첨가한 것이 특징이다. 육포는 독특한 풍미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복어포에는 DHA 등이 함유돼 있다.부산어묵은 맛과 영양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는 이와 함께 부산의 향토전통음식 연구사업을 벌여 지난해 생선회와 동래파전,흑염소불고기를 상품화한데 이어 올해에는 복어요리와 곰장어,해물탕을,내년에는 아귀찜과 오리보양탕,재첩요리를 각각 상품화할 계획이다. 시는 오는 10월 제81회 전국체전 기간에 부산의 음식을 소개한 ‘부산의 맛’ 홍보책자를 발간해 부산의 특색식품 10종,향토전통음식 3종,관광호텔음식14종과 부산지역 유명음식점 150여곳, 먹거리 집단촌 14곳 등을 적극 홍보할계획이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피로회복·强心효과”… 녹차의 계절

    차를 아는 이들은 5월이면 가슴이 설렌다.햇내 가득 머금은 첫물차가 막 나오기 때문이다. 첫물차는 어린 새순을 곡우(보통 4월 20일)전후에 따낸 것으로 맛이 부드럽고 향이 뛰어나다. 차 애호가들은 바로 이때를 기다려 1년 마실 차를 한꺼번에 마련하기도 한다.녹차의 대표적인 효능은 피로 회복과 강심(强心)작용. 풍부한 비타민C가 피로를 풀어주고 고혈압을 억제한다. 최근엔 항암,치매예방 효과외에도 대표적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을 체내에서 배출시킨다는 새로운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차를 맛있게 음미하는 방법과 녹차를 이용한 다양한 별미를 알아본다. ●차끓이는 법. 우선 기본적인 다기는 갖추는 것이 좋다. 찻물은 샘물이 좋지만 수돗물을 써야할땐 받아서 하루 묵혔다 쓴다. 물은 되도록 넉넉히 끓여 일부는 찻주전자와 찻잔을 헹궈 냉기를 가시는데쓰며 찻물은 끓는 물을 일단 섭씨 80도 정도로 식혀서 쓰도록. 주전자에 차를 넣고 물을 부은뒤 1-2분정도 지나 알맞게 우러나면 찻잔에 조금씩 따라가며 마신다. ●차밥. ●재료 쌀350g(3인분),가루차5g,다진 맛살,맛소금,통깨,재운 김 5장 ●만들기① 준비된 쌀로 밥을 고슬고슬하게 짓는다.②넓적한 그릇에 뜨거운밥을 담아 가루차를 뿌려서 골고루 섞는다. 이때 소금,통깨등도 함께 넣어간이 배이도록 한다.③5-10분정도 뚜껑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 맛살등을 넣고다시 골고루 섞는다.④준비된 차밥을 한입 크기로 만든후 김에 싼다. ●녹차 셰이크. ●재료 계란 노른자 1개,가루차3g,우유 1컵, 설탕 1큰술 ●만들기 믹서기에 계란 노른자와 우유,설탕을 넣고 50초 정도 돌린 다음 가루차를 넣고 다시 한번 돌려 컵에 따라 담아낸다. ●차 통밀 수제비 ●재료 가루차 5g,우리밀가루 2컵,물 반컵,소금 약간,애호박 반개,감자1개,멸치다시다 국물,양념장(간장,파,마늘,고추) ●만들기①가루차에 물 반컵을 조금씩 부어 매끄럽게 젓는다.②우려낸 녹차물을 부어 반죽하고 호박과 감자는 반달모양으로 두툼하게 썬다.③끓는 멸치다시다 국물에 감자,호박을 넣고 끓이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잡아 당겨 넣는다.간은 간장과 소금으로 약하게 한다.④그릇에 수제비를 넣고 양념장을곁들인다. 허윤주기자 rara@
  • [이색부서 이색공무원] 국립민속박물관 金宗大과장

    “우리나라 도깨비는 장승만큼 크고 털이 많은 머슴 같은 놈입니다.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우스운 잡귀신은 일본 ‘오니(鬼)’의 모습이죠.”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김종대(金宗大)과장은 공식 직함보다는 ‘도깨비 박사’라는 호칭이 더 친근하다. 그가 ‘도깨비에게 홀린’ 때는 지난 86년.설화·민요 등을 조사하기 위해전북 위도에 갔을 때 ‘위도 띠뱃놀이’를 듣기 위해 만난 이복동 옹(翁)으로부터 들은 도깨비 이야기가 김과장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큰 인물을 알아보는 도깨비,멸치를 몰아주는 바다도깨비,과부에게 속아넘어간 어설픈 도깨비 등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하지만 그것 모두 우리가알고 있는 그런 도깨비 이야기와는 다르더군요.” 김과장 역시 그때까지 도깨비의 모양은 머리에 뿔을 달고 원시인 복장을 한 우스꽝스런 잡귀 정도로 알고 있었다.그러다가 도깨비를 신앙처럼 믿고 있는 그곳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깨비에게 빠져들었다. 이후 중앙대 대학원에서 전공하던 구비문학에서 손을 떼고 도깨비 연구를시작했다.이후 지방곳곳에 숨어있는 한국의 도깨비들을 찾아다녔다.설화·민담·도깨비 체험담을 들으며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도깨비의 흔적을 쫓았다.93년 중앙대에서 ‘한국 도깨비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본격적인 ‘도깨비 바로세우기’를 시작했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우리 문화의 중요한 상징인 도깨비를 어린이들이 잘못알고 있다는 것.일제시대 초등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혹부리 영감’은 일본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도깨비도 일본 ‘오니’의 모습이다.귀신을 쫓아낸다는 귀면와(鬼面瓦)는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다.또 도깨비는 불·씨를 의미하는 ‘돗’과 남자어른을 나타내는 ‘애비’의 합성어이기 때문에 엄마도깨비·애기도깨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과장은 이같은 도깨비의 참모습을 알려주기 위해 전국에서 모은 얘기를담은 전래동화와 자신의 논문집을 쉽고 재미있게 재구성한 책 등을 출간했다.올해 말에는 일본의 국립역사예술박물관에서 ‘한국의 도깨비’를 일본어로출판할 계획이다. 현재 김과장의 도깨비 바로세우기 노력은 소강상태다.전시운영과 7명의 직원으로는 2,000여평 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리는 상설·특별전시,외국교류전을운영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요즘 우리 도깨비의 모습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찾고 있어 다행”이라는 김과장의 가장 큰 목표는 착한 이에게는 부를 안겨주고,나쁜이는 혼내주는 우리 고유 도깨비에게 참모습을 찾아주는 것이다. 최여경기자
  • 부산, 주민축제 선거바람에 ‘주춤’

    해마다 열리던 주민축제들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총선 때문에 연기·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부산 수영구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개최해온 ‘민락활어축제’와 ‘남천벚꽃축제’를 통합해 지난해부터 마련한 ‘광안리 해변축제’를 올해는 당초예정했던 4월 1∼3일에서 10월 중순으로 연기했다고 13일 밝혔다. 준비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회에 질의한 결과 “특정시기가 불가피한 경우가아니라면 열지 않는 것이 좋고 활어축제의 경우 무료 시식회가 선거법 위반소지가 있다”는 회신을 받았기 때문이다. 벚꽃축제는 꽃이 피는 4월초가 아니면 의미가 없는만큼 행사를 해도 무방하지만 삼익아파트단지 주민들은 “쓸데없이 정치판에 휘말리는 것이 싫다”며올해는 축제를 아예 취소했다. 영도구 청학2동사무소도 지난 88년부터 매년 4월 중순에 봉래산 체육공원에서 벚꽃축제를 열어왔으나 이 지역이 유난히 혼탁한 선거운동 양상을 보이자말썽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논의 끝에 올해는 열지 않기로 했다. 기장군도 올해 4회째를 맞는 ‘대변멸치축제’를 당초4월초 열기로 계획했다가 선거가 끝난 뒤로 연기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國唱 임방울 ‘쑥대머리’로 만난다

    부와 명예를 마다하고 팔도각지 장터로 떠돌며 서민의 시름을 달래준 국창임방울.그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오는 18∼20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광주시립국극단(단장 성창순)의 창극 ‘쑥대머리’에서 되살아난다. ■광주시립국극단 18-20일 국립극장 공연 1904년 광주에서 태어난 임방울은 14세때 판소리에 입문했다.박재실 공창식유성준 등 여러 명창의 문하에서 서편제와 동편제를 전수했으며,전라도 특유의 육자배기 가락을 접목해 독특한 창법을 갈고닦았다.그가 명성을 얻은 것은 전국명창대회에서 ‘쑥대머리’로 장원을 차지하면서부터.스물다섯살 때였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콜롬비아,빅타레코드사와 잇따라 전속계약을 맺었다.한양에 간 이도령을 잊지 못해 춘향이가 옥중에서 부르는 ‘쑥대머리’는12만장이나 팔려 일본 유명가수를 능가할 정도였다.해방후 ‘임방울과 그 일행’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만주·일본 등지로 수많은 순회공연을 다니던 그는 61년 김제장터에서 판소리를 하다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창극 ‘쑥대머리’는 문학평론가 천이두가 쓴 ‘명창 임방울’을 원작으로해 판소리 인간문화재 성창순이 작창을 맡았다.1부에서는 고된 판소리 수업을 받고 독공으로 득음하는 데서부터 송정리 장터에서 공연하다 일경에게 잡혀가 고문당하는 장면,그리고 첫사랑 산호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인간적인면모를 그리고,2부에서는 해방후 순수 판소리를 지키고자 애쓰는 임방울의고집스런 예술혼이 묘사된다. 성창순은 ‘쑥대머리’‘추억’같은 임방울의 원곡 외에 ‘멸치잡이 노래’‘엿노래’등 잘 알려지지 않은 남도의 전래민요를 풍부하게 섞어 창극 보는맛을 한껏 살렸다.지휘를 맡은 한상일 국립국악관현악단장은 신시사이저를활용하는 등 다양한 음색의 국악을 들려줄 예정이다.채향순 백제예술대교수가 안무한 13가지 민속무용도 볼 만하다. 연출자인 김효경 서울예대교수는 “기존 창극이 보여준 지루함을 없애고자현대적인 기법을 많이 가미해 청소년들도 재미있게 볼 것”이라고 말했다.임방울 역은 광주 국악인 양신승과 윤진철이,임방울의 첫사랑 산호 역은 김태희와 최혜정이 번갈아 맡는다. 지난해 10월 광주 초연에서 호평을 받아 지방단체로는 이례적으로 서울나들이를 하게 됐으나,극중 입체 창극을 주장하는 김연수와의 갈등에서도 알 수있듯이 정작 임방울 자신은 창극을 아주 싫어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제작진은 서울 공연후 광주비엔날레를 거쳐 시드니올림픽 등지에서의 해외공연도 모색하고 있다.18일 오후7시,19·20일 오후 3시·7시.(02)595-0146. 이순녀기자 coral@
  • 설 선물 냉장 한우·’새천년 사과’ 어때요

    설(2월5일)이 일주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업계는 이번 주말에 밀레니엄첫 설 특수가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대목장사를 노리는 업체들의 막바지 판촉전 또한 뜨겁다.눈에 띄는 설 선물과 부대 서비스 등을 소개한다. ◆냉장육 한우고기는 명절선물의 인기 품목.그러나 얼려진 상태로 배달되는냉동육은 아무래도 맛이 떨어진다.이에 착안해 신선한 냉장육을 선물세트로신세계와 LG백화점이 내놓았다.부위별 가격대별 맞춤제작이 가능하다.단 제작시간을 감안해 최소한 희망배송날짜 이틀전에 신청해야 한다. ◆멸치 신세계는 지난 추석때 크게 히트했던 ‘아주 좋은 멸치 복합세트’를20만원에 내놓았다. ◆문자 사과 한화유통과 신세계는 사과 표면에 ‘新21세기’ ‘새천년’이라는 글자를 각각 새겨넣어 밀레니엄 선물세트로 내놓았다.한화유통 밀레니엄사과세트는 5만원(24개입),신세계 문자사과세트는 6만원(15㎏). ◆더덕과 수삼 뉴코아백화점 서울점은 더덕과 수삼을 원가 이하로 파는 미끼상품으로 선정했다.국내산 더덕세트(2㎏)를 3만8,000원에,국내산 동충하초세트(98g)를 2만5,000원에 500세트 한정판매한다.한화유통도 인천 강화에서 재배한 4년근 수삼 선물세트를 4만9,000원에 내놓았다.포장을 오동나무에서 등나무로 교체해 가격을 크게 낮췄다. ◆술 특별소비세와 주세 인하로 가격이 떨어진 양주 선물세트도 노려볼 만하다.시바스리갈의 경우 12년산(100㎖)이 6만5,500원에서 5만5,900원으로 인하됐다.두산씨그램은 지난해 추석부터 부대 선물및 포장재 가격을 세트가격에 포함시키지 않아 큰 호응을 얻고 있다.위스키 값만 내고 시가와 시가 커터,골프공 세트,보온컵 등 다양한 선물을 챙길 수 있다. ◆알아두면 도움되는 쇼핑정보 LG유통은 떡국떡,나물류,전류 등 15가지 설음식을 즉석에서 만들어 판매한다.그랜드백화점 일산점은 할인점 가격으로 백화점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마트 출장판매’ 행사를 2월4일까지 실시한다. 자녀들 설빔 마련이 고민이라면 중소기업전문 백화점 ‘행복한세상’을 찾는 게 좋다.‘아동설빔 큰 잔치’를 벌이고 있다.축산공기업 한냉이 운영하는 한우판매 전문쇼핑몰 ‘생생한우’(www.hannaeng.co.kr)를 이용하면 시중유통가보다 평균 10% 저렴하다.올해는 사과값이 많이 올라 배와 별 차이가없으므로 이왕이면 배세트를 사는 게 더 실속있다. 안미현기자 hyun@
  • 자치구‘사랑의 김장담그기’열풍

    본격적인 김장철을 맞은 요즘 각 자치구들이 불우이웃에게 사랑의 김장을담가주기 위해 진기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짜내고 있다. 텃밭에 심은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그는가 하면 직능단체가 중심이 돼 기금을 모아 사랑을 실천하기도 한다.외국인과 동사무소 문화교실 수강생도 참여하는 등 참여폭도 다양하다. 동작구와 새마을부녀회 동작구지회는 최근 3일동안 5,000포기의 김장을 담가 불우이웃 800가구와 불우복지시설 10곳에 제공했다. 비용은 새마을부녀회가 지난달 18일부터 23일까지 구청 주차장에서 멸치액젓과 족발 등을 팔아 마련한 600만원에 구청에서 보탠 지원금으로 마련했다. 재료는 자매결연지인 충남 홍성군 등에서 구입하거나 구청광장에서 열린 ‘직거래 김장장터’를 통해 싼값에 조달했다. 중구는 구립 어린이집 원장협의회가 새마을알뜰장을 통해 모은 70만원과 구청 여직원회가 1년동안 일일찻집을 해 모은 기금 50만원 등으로 3일 배추 400포기를 담가 80명의 무의탁노인에게 제공했다. 중랑구는 중랑천 둔치 유휴지 6,500여평에 공공근로자를 활용해 심은 배추8만포기와 무 5,000개 등으로 김치를 만들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복지시설 등에 보냈다. 영등포구도 공터로 방치돼있던 양화동 인공폭포 뒤 하천부지 1,400여평에 공공근로자들이 가꾼 배추 4,000포기와 무 2,000개를 수확,새마을부녀회의 일손을 빌려 408가구의 저소득층을 도왔다. 강동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김치맛자랑대회를 열어 만든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불우이웃에게 제공하는 이색사업을 펼쳤다. 성북구 정릉3동사무소는 20명의 독거노인에게 미리 좋아하는 김장종류를 신청받아 총각김치 갓김치 파김치 일반김치 등을 만들어 전달했고 송파구 잠실3동에서는 주한 외국인 문화단체회원 10명과 동사무소 문화교실 수강생 등 60명이 김장담가주기에 동참했다. 또 은평구 진관내동사무소는 지난해 여름 수해때 크게 훼손된 창릉천 둔치를개간해 심은 배추 등으로 불우노인 등을 도왔다. 이밖에 동작구 사당4동과 송파구 가락1동 사무소와 새마을지도자협의회,새마을부녀회,바르게살기협의회,마을문고,통장협의회 등도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배추로 김장을 해 이웃에게 전달했다. 조덕현기자 hyoun@
  • 불량 젓갈류 제조 17곳 적발

    방부제(보존료)가 들어가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불량 젓갈류 등을 만든 업소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식품의약품안전청은 김치 및 젓갈류 제조업소에 대한 위생지도 점검을 벌여 식품위생법 등을 어긴 17개 업소를 적발,해당 시·군·구에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의뢰했다고 1일 밝혔다. 위반사례를 보면 충북 진천군 덕산면 신농가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난 ‘까나리액젓’을 판매하다 적발됐으며,경남 마산시 합포구 진동면 제일해광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파손돼 반품된 ‘멸치액젓’으로 ‘맛국젓’ 제품을제조해왔다.또 서울 강남구 청담동 미미식품의 나박김치,송파구 가락동 청솔식품의 깍두기,구로구 고척동 정갈찬식품의 나박김치,노원구 상계동 덕유농산의 총각김치,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영미식품의 농가포기김치에서는 김치류에 쓸 수 없는 감미료 ‘사카린나트륨’이 검출됐다. 임태순기자 stslim@
  • 맛있는 김치 담그는 요령

    김장맛 절반은 배추절이기가 좌우/ 김장철이다. 김치를 아주 즐겨먹지 않더라도 식탁에 김치가 없으면 허전한 것이 보통 한국 사람들의 정서다.또한 김장김치만 넉넉히 있으면 김지전,김치볶음,김치찌개,김치해장국 등 다양한 응용을 할 수 있어 겨울철 반찬걱정이 한결 줄어든다. 그러나 ‘김치’ 하면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신세대 주부들에게 김장을 직접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맛깔지면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김장법은 없을까. 전통요리연구가 한영용씨(30)는 “젊은 주부들 가운데는 ‘어렵다’‘맛이없으면 어떻게 하나’하며 지레 겁먹고 시도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작은 요령과 감각만 있으면 힘을 덜 들이고도 ‘대사’를 거뜬히 치를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보통 주부들이 김장 속을 준비할 때 무 채 썰기를 가장 힘들어하지만 무 채를 쓰지 않고 대신 무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김치를 저장할 때 사이사이에 넣어 주기만 해도 무의 시원한 맛이 김치에 스며들고 무에도 김치양념이 배어 수월하게 맛있는 김치를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배추고르기] 배추는 줄기가 얇고 잎이 긴 것을 고른다.줄기부분을 눌렀을때너무 단단하거나 무른 것보다 약간 탄력있는 것이 좋다. 쪼갰을 때 속이 개나리꽃처럼 노랗고 겉잎은 녹색이 선명한 것이 고소하다.배추크기는 4포기무게가 10㎏ 정도 되는 것이 적당하다. [배추절이기] 김치 맛의 50%는 배추를 얼마나 알맞게 잘 절였느냐 따라 결정된다.배추 밑동을 잘라낸 다음 10㎝ 정도 십자로 칼집을 넣고 손으로 쪼갠다.물 4ℓ에 굵은 소금 800g을 풀고 배추를 넣어 절인다.이때 무거운 것을 얹어놓으면 뒤집지 않아도 된다.7∼8시간 정도 절인다음 줄기부분을 눌러본다. 탄력이 있으면서 씹었을때 아삭아삭하고 단맛이 나야한다.너무 절이면 배추의 맛있는 성분이 빠져버리므로 주의한다.알맞게 절여지면 헹궈서 채반에 엎어 물기를 뺀다. [양념만들기] 물고추 간 것(마른 고추를 물에 20분정도 불려 블렌더에 넣고고추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 만든다)6컵,고춧가루 400g,새우젓 2컵,까나리액젓 1컵,실고추 조금,청각 다진것 1컵,마늘 다진것 1컵,생강 다진것 ½컵,깨 1컵,찹쌀풀 1컵,멸치다시물 8컵과 갓과 쪽파 각 400g을 2㎝길이로 썰어함께 섞는다.굴이나 낚지 등은 기호에 따라 선택,양념에 함께 섞는다. 찹쌀풀은 익으면서 단맛을 내는데 찹쌀이 없으면 조청(400g)이나 밥(1컵)으로 대신해도 된다.단 밥은 불린고추를 갈 때 함께 넣어 준다. [담기] 준비한 양념을 배춧잎 사이에 켜켜로 넣고 맨 나중에 뿌리쪽에 칼집을 넣고 양념을 밀어넣는다.그래야 줄기까지 고루 간이 밴다.양념이 끝난 배추는 전체적으로 공기를 빼듯이 꽉꽉 쥐어준다.무를 2㎝ 두께로 잘라 김치사이사이에 넣어 준다. [저장하기] 아무리 맛있게 담근 김치도 저장을 잘못하면 빨리 신다.김치통은입구가 좁으면서 깊이가 있는 것이 좋다. 그래야 공기와 접촉면이 적어 빨리시지 않는다. 김치를 담고 윗면을 소금에 절인 겉잎으로 덮어서 공기를 빼듯이 꼭꼭 눌러준다. [꺼내먹기] 식구가 단촐한 집에서는 한끼에 김치 1쪽을 다 먹기 힘들다. 이럴 때는 김치 몇쪽을 꺼내 머리부터 세로로 길게 자른다.그리고 두쪽을 엇갈리게 놓고 김치 겉잎으로 싸서 먹기좋게 4∼5등분 한다. 자른 것이 풀어지지 않도록 잎으로 꼭꼭 싸서 통에 담아놓고 한 끼에 한 묶음씩 꺼내 먹는다. 층마다 비닐을 깔고 담으면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강선임기자 sunnyk@ * 요리전문가가 권하는 별미김치 3가지 요리 코디네이터 노영희씨와 요리 연구가 한영용씨가 권하는 별미김치 3가지. ■ 노영희의 ‘롤김치’[재료] 일반 포기김치와 동일. [만들기] ①양념 전에 미리 배추잎을 따로 떼어 두 세 장씩 펴놓고 배추 속을 넣어 김밥 말듯이 돌돌 만다.②김치통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가 한롤씩꺼내 먹는다.간편하면서 보쌈김치를 먹는 듯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요리메모] 식구가 적거나 혼자사는 사람에게 유용하다.주문 김치도 집에서저장하기 전 김치 잎을 떼거나 머리부분을 잘라내고 두 세 장씩 돌돌감아 보관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 한영용의 ‘육수로 담근 갓 물김치’[재료] 양지머리 400g,돌갓 2㎏,대추 10개,당근 1개,배 1개,인삼 1뿌리,쪽파 50g,새우젓 1∼2컵(기호에 따라 결정),소금. [만들기] ①양지머리를 푹삶아 국물은 체에 받쳐 두고 고기는 얇게 저민다. ②갓은 소금에 10분 정도 살짝 절인다.③인삼,배,당근은 직사각형으로 썰고대추는 돌려깎기 하여 비슷한 크기로 준비한다.④육수에 새우젓으로 간하고돌갓,대추,배,당근을 넣고 버무린다.⑤실온에서 하루,냉장고에 1주일 정도익히면 제 맛을 즐길수 있다. [요리메모] 갓의 쌉싸름한 맛이 육수와 어울려 시원하다.돌 갓으로 해야 제맛이 난다. ■ 한영용의 석류김치[재료] 배추 2포기,미나리 50g,석류 2개,청각 10g,잣 1큰술,생강 1톨,마늘 10개,무 1개,석이버섯 약간,배 1개,홍고추 2개,다시마 삶은물 4컵,까나리액젓 ½컵. [만들기] ①배추를 반으로 갈라 소금물에 절여 씻어둔다.②생강,마늘,무,석이버섯,홍고추는 채 썰고 청각은 물에 불려서 짜 둔다.배는 납작하게 직사각형으로 썬다. ③미나리는 3∼4㎝길이로 썰고 석류알갱이는 알알이 뺀다.④다시마 삶은 물에 ②③의 재료와 잣을 넣어 섞는다.⑤배추 사이사이에 ④를 넣어서 항아리나 김치통에 담는다. [요리메모] 석류에는 비타민C가레몬의 30배나 들어있어 겨울철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다.
  • 롯데백화점 점포확장 ‘무자비’

    롯데백화점이 제2창업의 기치 아래 ‘문어발식 점포 확장’을 무리하게 추진,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롯데는 서울 강남의 노른 자위인 도곡동에 있는 그랜드백화점 본점을 지난6월 인수했다.롯데는 그랜드백화점을 1,413억원에 사들였으며,지난 8월22일이 백화점을 폐쇄하고 현재 개조작업을 하고 있다.그러나 그랜드 대주주들로부터 “매각이 터무니없이 싸게 이뤄졌다”며 반발을 샀다. 당시 롯데는 그랜드백화점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대금까지 가압류를 신청했다가 법원에 의해 기각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랜드백화점 관계자는 “남은 상품을 처분하기 위해 여름세일을 시작하는날 롯데가 가압류를 신청하는 바람에 거래선이 모두 끊어져 마지막 세일마저 망쳤다”고 비난했다.그는 “지나간 일이긴 하나 롯데 같은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가 그 같은 악덕 상도의를 보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좌절감이 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런가 하면 롯데는 매입대금을 일시불로 치른다는 계약을 일방적으로 어기고 6개월짜리 어음으로 결제하려다가실패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월급을받지 못하던 그랜드백화점 직원들이 롯데 본사에서 연일 항의 시위를 벌여문제가 커지자 부랴부랴 당초대로 계약을 이행했다.이자차익을 노리려다 실패한 것이다.롯데의 도덕 상실증세는 또 있다.그랜드백화점 관계자들은 “그랜드백화점 인수가 확정된 뒤 그랜드백화점 입구에 롯데카드 발급 창구를 만들어 막바지 영업을 방해했다”고 지적한다. 롯데는 또 지난달 말에는 경기도 구리시 LG백화점 건물 옆에 쌀 라면 멸치오징어 재고의류 등의 생활필수품을 파는 출장 판매대를 설치,주변 상인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한 상인은 “롯데가 물건을 팔겠다는 의도보다는 LG의영업을 방해하겠다는 뜻이었다”고 비난했다.한국백화점협회 관계자는 “롯데백화점은 본점 매출만도 연간 1조원이 넘는 공룡기업인 만큼 무차별 공세로 지역 상권을 망가뜨리는 행위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외환위기가 발생한지 2년도 채 안됐는데 사치성 백화점에다지역의 소규모 상권을 무시한 물량 공세를 펴느냐”고 롯데의무자비 확장에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와 별개로 롯데는 2002년까지 모두 40개의 마그넷 매장을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을 계획이다. 김경운기자 kkwoon@
  • 관광공사 추천 ‘고향 맛거리’ 8選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가을은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면서도 조락의 쓸쓸함이 인생을 조금은 서글프게 한다.그래서 고향이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그 그리움의 계절에 ‘고향의 맛’을 찾아 가족 여행을 떠나보자.어른들에게는 고향의 옛 정취를,햄버거와 피자 맛에 익숙해져 가는 어린이들에게는 고유한전통의 맛을 체험케하는 가을여행이 될 것이다.젓갈류와 고추 등으로 유명한 곳도 많아 김장철을 앞두고 쇼핑과 관광을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좋다.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고향 맛거리’ 8선을 소개한다. ?소래포구 인천 남서쪽에 있는 소래포구는 어시장이며 ‘젓갈 백화점’.새우젓·멸치젓·꼴뚜기젓·밴뎅이젓·황석어젓·소라젓·갈치젓·굴젓 등 모든 젓갈류를 만날 수 있다.꽃게·바지락·우럭 등 온갖 생선도 언제나 값싸게 살 수 있다.김장철이 되면 소래 포구는 더욱 바빠진다.특히 생새우가 유명하다.많은 생선횟집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소래수협 어촌계 (032)442-6887. 가는길 제물포역에서 21번 버스.30분 소요.주안역에서 38번 버스.40분 소요.제2경인고속도로 남동IC로 나와 남동공단로를 지나 소래포구.수인산업도로를 타고 인천대공원 입구를 지나 논현동에서 소래포구. ?광천 토굴 새우젓 시장 충남 홍성군 광천읍은 온갖 젓갈상점들이 밀집돼있는 젓갈마을.새우젓은 토굴에서 14도의 일정한 온도로 2∼3개월 숙성.맛과 향이 다른 지방보다 뛰어나다.김장철이 되면 전국에서 소비자와 상인들이몰려들어 성시를 이룬다.광천토굴은 마을 뒤편 야산의 암반을 꼬불꼬불 파들어간 30∼120m의 굴.35개 정도의 토굴에서 새우젓이 만들어진다.광천특산물상인조합 (0451)642-7700. 가는길 경부고속도로 천안 IC로 나와 천안∼온양∼예산∼홍성∼광천읍.홍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광천읍까지 시내버스(15분간격),시외버스(20분간격) 운행.20∼25분 소요. ?곰소만 젓갈단지 전북 부안군 진서면 곰소만 일대의 젓갈단지.새우젓·멸치젓·갈치젓·밴뎅이젓·꼴두기젓·황석어젓 등 40종류의 젓갈류가 유명.곰소 천일염으로 자연상태에서 6개월 이상 발효시켜 맛이 담백하고 고소하다.18개 업체가 성업중.전화주문 가능.부안군청 유통수산과 (0683)580-4381.부안수협젓갈 (0683)581-2263. 가는길 부안읍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변산과 격포를 지나 진서면 곰소항.부안∼곰소 시내버스 20∼30분 간격,직행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운행.50분 소요. ?괴산 고추 5일장 충북 괴산군 괴산읍 5일장(매월 3·8·13·18·23·28일에 열림)은 옛고향의 정취가 남아 있는 전통 재래시장.괴산 특산물인 청결고추로 유명하다.인근 농촌·산촌에서 가져오는 농산물·산채류도 풍부.청결고추는 조선시대부터 괴산에서 재배해온 쇠뿔고추의 개량 품종.매운맛과 단맛이 혼합된 특유의 향과 선명한 진홍빛을 자랑.고추가루는 최첨단 가공공장에서 위생적으로 생산.전화·우편 주문도 가능.청결고추 상설직판장 (0445)830-3535. 가는길 동서울터미널에서 괴산행 버스.청주에서 괴산행 시외버스.경부고속도로 청주 IC에서 나와 괴산. ?나주 배축제 전남 나주의 특산품인 나주배를 주제로 한 ‘나주배 축제’가 25∼31일까지 열린다.나주배 품평회,배깎기대회,배먹기대회,배품종 전시회,나주배 아가씨 선발대회등 다양한 이벤트.나주시청 문화관광과 (0613)330-8224. 가는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나주행 버스.광주에서 나주행 버스.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광주에서 하남을 거쳐 나주. ?안흥 찐빵마을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리에 가면 옛날 궁핍했던 시절그렇게 먹고 싶었던 찐빵맛을 즐길 수 있다.안흥 찐빵은 팥의 단맛이 적당하고 쫄깃한 것이 특징.17개 찐빵가게가 밀집돼 있다.안흥 찐빵 홍보를 위해 30·31일 한마당 큰잔치를 벌인다.1개에 200원.5,000원과 1만원 상자로 배달가능.배달료 4,000원 별도.안흥찐빵마을협의회 (0372)342-4046,4202. 가는길 횡성에서 안흥리까지 62번 버스(40분 소요).횡성까지는 상봉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영동고속도로 새말IC로 나와 평창·강릉방향의 42번 국도를 따라 15분 정도. ?서일 된장 농원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에 있는 서일농원.1,700여개의 장독에서 전통 장맛이 만들어지고 있다.품질을 향상시키고 냄새없는 청국장을 만들기 위해 중앙대·충북대와 산학협력.농원에서 직접 사거나 전화주문만 가능.된장은 1만9,000원(1kg)에서 8만원(6kg).고추장은 1kg에 3만7,000원에서 4만원.그밖에 간장,각종 장아찌 등도 있다.(0334)673-3171,(02)2263-3171. 가는길 동서울터미널에서 일죽행(40분 소요).안성에서 버스(40분 소요).중부고속도로 일죽IC에서 38번 도로를 타고 장호원 방향으로 700m 쯤 가다가오른쪽의 삼성·생극방향으로 2km 정도. ?제주 감귤 따먹기 농장 제주도의 4개 감귤농장에서 황금빛 감귤을 직접 따기도 하고 먹기도 할 수 있다.오동관광농원 1인 3,000원.(064)746-4738.담양관광농원 1인 2,500원.(064)755-7005.신미관광농원 1인 3,000원.(064)748-2710.노형관광농원 1인 2,500원.(064)748-0606. 이창순기자 cs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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