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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체니의 ‘네버 트럼프’ 전쟁/박상숙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체니의 ‘네버 트럼프’ 전쟁/박상숙 국제부장

    ‘현재 공화당에서 정직함보다 더 큰 죄는 없다.’ 대선 사기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른바 ‘빅 라이’(Big Lie)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리즈 체니가 공화당 지도부에서 축출되자 터져 나온 개탄이다. 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아니라 “승리를 도둑맞았다”는 전직 대통령의 거짓 주장에 동조하기를 거부한 죗값을 물어 당의 ‘넘버3’를 끌어내린 건 미 언론의 자조대로 ‘바나나 리퍼블릭(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체니가 누구인가.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실세 부통령을 역임한 ‘보수의 원류’ 딕 체니의 맏딸로 가족의 오랜 터전이자 친트럼프 성향이 강한 와이오밍을 지역구로 둔 터라 트럼프와 여러 면에서 죽이 잘 맞는 동반자였다. 와이오밍의 주요 산업은 석탄·석유. 트럼프의 기후변화협약 탈퇴 등 일방 정책은 체니에게 표심을 다지는 축복이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표 통상, 이민, 환경 정책에서 딴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당연히 트럼프의 1차 탄핵심판 때 그를 엄호했고, 지난해 대선에서는 카멀라 해리스 당시 민주당 부통령 후보를 향한 억지 출생지 논란에도 기꺼이 트럼프와 한배를 탔던 그였다. 공화당이 똘똘 뭉쳐 3선으로 당 서열 3위까지 오른 체니를 속전속결로 제거한 건 와이오밍의 험악한 민심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몰표를 준 이곳 유권자들은 체니에게 ‘이름만 공화당원’(RINO·Republicans In Name Only)이라며 돌을 던졌다. ‘비호’로 찍힌 체니는 사실상 재출마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수세에 몰려 있다. 와이오밍의 분위기에서 백악관과 의사당을 모두 내준 공화당은 내년 중간선거에서 설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뾰족한 전략은 없는 상황에서 ‘브랜드 파워’가 여전한 트럼프에게 영혼을 파는 건 쉽고 확실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수호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정당에서마저 개인숭배라니,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기도 하나 보다. 입에 쓴 약을 뱉듯 반대자와 이견을 제거하는 소위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세계 정치판에서 점점 일상이 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발달로 유권자들의 요구와 비판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면서 이런 경향은 짙어지는 상황이다.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오로지 인기와 당선에만 목매 극렬 지지자들의 아우성에 휘둘린 정치인과 정당이 일으킨 분열과 갈등 사례를 찾으려고 멀리 갈 것도 없다. 특정 인물의 신격화,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오만함, 문자폭탄을 동원한 반대파 제거 등 민주주의 위기 양상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에서 이질성과 다양성을 제거한 집단은 일치단결한 모습으로 단기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지만, 급격한 환경 변화가 닥쳤을 때 다양성의 부재로 멸망의 길을 걸었다. 이견과 다툼은 시끄럽고 불편하지만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항체와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앵무새’가 되기를 거부한 체니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네버 트럼프’ 기치를 높이 들며 4년 뒤 대선을 바라보는 트럼프를 향해 “백악관 근처에도 못 가도록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반격을 선포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위험하고 반민주적인 트럼프 개인숭배에 빠진 공화당의 현실을 꼬집으며 “역사가,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용기를 내 자유와 민주적 절차를 지켜야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종종 미국에서 부는 바람은 한국에서 폭풍으로 바뀐다. 공화당의 블루칩에서 졸지에 트럼피즘의 희생양이 된 체니의 ‘네버 트럼프’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란다. okaao@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426㎞ 거대 상수도 시스템 청결히 관리한 동로마 제국의 비밀

    [핵잼 사이언스] 426㎞ 거대 상수도 시스템 청결히 관리한 동로마 제국의 비밀

    고대 로마 제국은 도시 중심의 문명을 이룩했다. 제국의 수도인 로마는 물론 곳곳에 건설된 도시들은 신전, 극장, 목욕탕, 상하수도 시설 등 당시 문명의 척도로 여겨진 시설들이 즐비해 시민들은 상당히 세련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먼 장소에서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거대한 상수도 시설은 로마의 가장 독보적인 사회 기반 시설이었다. 현대적인 위생 시설과 의학 기술이 없던 시절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서 발생하는 전염병은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다. 깨끗한 식수를 항상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콜레라 같은 수인성 전염병에서 좀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로마 제국도 다른 고대 문명처럼 주기적인 전염병 유행으로 큰 재난을 겪었지만, 상수도 시스템 덕분에 일부 수인성 전염병은 피해가 덜했을 것이다. 따라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동로마 제국은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주변에 거대한 상수도 시스템을 적어도 12세기까지 유지했다. 독일 마인츠 대학의 과학자들은 현재 남아 있는 콘스탄티노플 상수도 시스템을 조사해 5세기부터 12세기까지 어떻게 관리되었는지 밝혀냈다. 콘스탄티노플은 서기 324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초기 상수도 시설은 도시에서 50㎞ 거리에서 깨끗한 물을 공급했다. 하지만 도시가 점점 거대해지자 물 공급이 부족해져 5세기에는 상수도 시스템을 120㎞ 떨어진 지점까지 확장했다. 직선거리로는 120㎞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수로 시스템이기 때문에 실제 길이는 최소 426㎞에 달한다. 연구팀은 수로 바닥에 남아 있는 침전물을 조사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 침전물이 쌓였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아무리 오래된 것도 27년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수로 시스템은 동로마 (비잔틴) 제국이 쇠락하는 12세기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에 5세기부터 12세기까지 적어도 700년에 걸쳐 수십 번에 걸쳐 수로 청소를 했다는 이야기다. 청소를 자주 한 건 아니지만, 상수도 시스템의 길이를 생각하면 상당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관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요 구간 50㎞는 두 개의 수로를 건설해 하나를 청소하면 다른 하나를 대신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점을 보면 중요 수로는 더 자주 청소했음을 알 수 있다. 항상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거대한 상수도 시스템을 건설하는 것 이상으로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긴 상수도를 끊임없이 보수하고 관리했다는 것은 당시 로마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비잔틴 문명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뽑아라! 대륙 호령한 대조영의 기상

    뽑아라! 대륙 호령한 대조영의 기상

    경북 경산에 발해마을이 있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후손들이 사는 집성촌이다. 드넓은 만주 땅을 호령했던 발해의 후예들이 한반도의 남쪽에 터를 잡은 이유는 뭘까. 특성화 마을이라 할 만한 볼거리는 아직 없지만, 긍지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만으로도 발걸음할 이유는 충분하지 싶다. 중국이 요즘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을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격하시키려는 터라 더욱 그렇다.●영순 태씨 후손 27가구 모여 사는 집성촌 남천면 송백2리. 발해마을이 있는 곳이다. ‘발해의 후예’라는 영순 태씨 후손 27가구가 이 마을에 모여 산다. 발해마을에서 가장 궁금한 건 두 가지다. 대씨와 태씨가 동일 성씨인 이유는 무엇이고, 만주 지역을 휩쓸던 대씨가 한반도의 남쪽 마을에 터를 잡게 된 이유는 또 뭐냐는 거다. 스스로를 대중상(대조영의 아버지)의 43세손이라고 밝힌 태재욱(79) 발해왕조제례보존회장은 영순 태씨가 어떻게 대(大)씨인 대조영의 후손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크다라는 의미인 대(大)를 강조하기 위해 획을 하나 추가해 태(太)로 썼을 뿐 태(太)와 대(大)는 서로 혼용됐던 글자”라며 “중국의 역사 기록서인 ‘동사통감’에 대조영을 태조영이라고 쓴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 역사서 ‘고려사’도 고려 후기의 무신 대집성을 태집성과 혼용해 썼다”고 설명했다. 두 글짜가 혼용되다 조선시대 때 족보가 만들어지면서 태씨로 굳어졌다는 것이다.만주를 호령하던 발해의 후손이 경산에 터를 잡게 된 경위는 이렇다. 926년 발해가 거란에 멸망한 뒤 8년이 지난 934년에 발해의 마지막 세자 태광현이 수만 명의 유민을 이끌고 고려로 망명해 왔다. 이처럼 발해 멸망 직전에, 혹은 멸망 뒤 발해 부흥운동이 좌절되면서 발해 왕실의 후예들이 망명지로 선택한 곳이 고려였다. 이후 대중상의 18세손인 태금취가 고려 고종 때 몽골군을 격퇴하는 공을 세워 영순현(지금의 문경 일대)을 하사받아 다스렸다. 이들이 성씨의 관향을 ‘영순’으로 쓰는 건 이 때문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진 뒤엔 대중상의 31세손 태순금이 경산에 자리를 잡았다. 북한 지역을 제외하면 현재 발해 후손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은 남한에서 발해마을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발해마을 진입로엔 태극기가 줄지어 서 있다. 발해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깃발도 함께 나부끼고 있다. 마을 안 담장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을 테마로 그린 벽화들이다. 전형적인 한국인상의 대조영 그림이 눈길을 끈다. 태재욱 회장에 따르면 전국 142명의 태씨 남자의 얼굴 사진을 찍어 특징을 분석한 뒤 그렸다. 이 그림은 현재 대조영에 대한 정부표준영정(86호)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 반곡지 꼭 들러야 2015년 기준으로 국내에 태씨는 9000여명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40여명이 발해마을에 산다. 마을 주민 80%가 태씨 집안 사람이란다. 발해마을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당시 ‘전국 어르신마을가꾸기 경진대회’에서 태씨 집성촌이라는 역사 콘텐츠를 활용해 우수상을 탔다. 그해에 표지석, 발해고황 대조영장군상, 벽화, 기마상 조형물, 발해 상징 로고 깃발 등도 만들었다. 집집마다 내건 문패도 독특하다. 봉황이 그려진 문패 안에 발해 몇 대 손인지 적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43~44세 손이다.다만 내세울 만한 ‘킬러 콘텐츠’는 아직 없다. ‘발해문화 현창사업’이 제대로 진행돼야 역사 관광마을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발해문화 현창사업’은 발해 박물관과 역사관, 대조영 영정을 모실 고왕전 등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발해 역사의 실체를 보여 줬다고 평가받는 3대 문왕의 딸 정효공주묘도 마을 안에 재현할 예정이다. 이맘때 경산에선 남산면 반곡지를 찾아야 한다. 빼어난 봄 풍경으로 입소문 난 곳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이기도 하다. 발해마을에서 멀지 않다. 반곡지 주변으로 십여 그루의 아름드리 왕버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늙고 거무튀튀한 가지 끝엔 올봄 새로 나온 연둣빛 이파리들이 매달려 있다. 휴대전화를 들이대면 화면이 싱그러운 신록으로 가득 찬다. 반곡지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계정숲도 꼭 찾아야 할 곳이다. 해마다 단옷날 자인단오(무형문화재 44호) 행사가 이 숲에서 열린다. 이팝나무와 느티나무 등의 노거수들이 빼곡하다. 짙은 숲그늘에서 산책하기 맞춤하다. 계정숲 안에는 이 지역의 전설적 인물인 한 장군 묘와 사당, 자인현청 등이 보존돼 있다. 글 사진 경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밀림 속 마야 유적서 ‘대사관’ 역할 건물시설 잔해 발견

    [핵잼 사이언스] 밀림 속 마야 유적서 ‘대사관’ 역할 건물시설 잔해 발견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 북부 밀림 속에 남아 있는 고대 마야 문명 도시 티칼에서 한때 다른 도시국가의 대사관 역할을 했으리라 추정되는 복합 건물 시설을 고고학자들이 발견했다. 이곳에는 약 1000㎞ 거리 멕시코 북동부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 문화 양식의 피라미드와 매장지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마야 문화자연유산재단(PACUNAM) 연구진은 2018년 ‘라이다’(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라는 기술을 사용해 티칼 상공 주변 지역을 스캔했다. 티칼은 멸망하고 나서 몇 세기에 걸쳐 밀림 속에 가려져 있었지만, 라이다를 탑재한 항공기를 활용한 대대적 조사를 통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고고학자들은 티칼이 이전 예상보다 훨씬 더 컸기에 주민 몇백만 명이 살았다고 추산할 수 있었다.티칼 남쪽 지역을 촬영한 이미지 한 장은 원래 언덕으로 여겨졌던 피라미드와 작은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우스 티칼 고고학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에드윈 로만라미레스 박사는 지난해 여름 티칼에서 발굴을 시작해 이곳 마야인들이 건축에 사용하지 않는 재료인 흙과 석고로 지어진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 건축물은 이곳과 나중에 적대적인 관계였던 테오티우아칸에서 발견된 건축물들과 거의 똑같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미 브라운대 고고학자 스티븐 휴스턴 박사는 “이 복합 시설은 테오티우아칸의 북쪽 성채인 시타델을 절반 크기로 축소한 건축물로 보인다”면서 “세부적인 유사성에 놀라웠다”고 설명했다. 이 유적에서는 녹색 흑요석으로 만든 다트와 비의 신 틀랄록 조각품 등 4세기 초 테오티우아칸의 전형적인 유물이 발견됐다. 게다가 테오티우아칸 양식이 사용된 매장지도 발견됐다. 로만라미레스 박사는 이번 발견을 통해 티칼에서는 테오티우아칸 출신이나 그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도 살았다는 점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기 378년 이전에 티칼과 주변 지역에서는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이 적어도 어느 정도 존재감과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사람들이 가장 강력한 왕국(테오티우아칸)의 문화를 모방하고 있었을 뿐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발견으로 그 이상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는 이들 건축물은 고대 테오티우아칸의 대사관으로, 양측이 더욱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던 시대에 세워졌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도시국가의 관계는 어떤 계기로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그후 서기 378년 1월 테오티우아칸의 왕인 스피어스로워 오울은 휘하의 장군인 본 오브 파이어와 그의 군대를 티칼에 파견했다. 그리고 티칼의 왕인 재규어 포가 죽던 날, 스피어스로워 오울의 어린 아들이 이곳의 통치자로 임명됐다.5세기까지 티칼의 건축과 예술 양식은 테오티우아칸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티칼의 시타델은 서기 300년쯤 지어졌다. 만일 이곳이 대사관이었다는 이론이 맞다면 두 도시국가의 수교가 악화해 갈등이 빚어졌음을 시사한다. 이런 생각은 최근 테오티우아칸 중심부에서 발견된 마야 문명을 나타내는 건물의 발견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이 건물의 벽은 색채가 풍부한 마야 문명 양식의 벽화로 장식돼 있었지만 티칼이 멸망했을 무렵 산산조각이 나 파묻혔다. 연구진은 티칼의 매장지에서 인간 유골의 추가 발굴과 분석을 통해 이 복합 시설이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야 문명은 서기 250년에서 900년 사이 절정에 이르렀고 오늘날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 벨리즈 그리고 온두라스까지 대규모 영토를 지배했지만, 16세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의 도래로 끝이 나고 말았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외출하기 두려운 봄철… 어린이들이 읽을 자연과학 도서는

    외출하기 두려운 봄철… 어린이들이 읽을 자연과학 도서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600~700여명을 넘나들며 ‘4차 대유행’이 사실상 현실화된 가운데,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외출보다는 독서를 권장하게 된다. 문학이나 그림책과 비교하면 어린이를 위한 자연과학 부문 도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학교도서관저널 도서추천위원회가 교육 현장의 교사, 사서, 전문가의 의견을 취합해 발간한 ‘2021 추천도서목록’의 어린이 자연 과학 서적 일부를 소개한다.●초등 저학년 학생에겐 공룡 등 생물 서적 권장 초등학교 1~2학년을 위한 자연 과학 서적으로는 ‘공룡이 나타났다!’, ‘난 곤충이 좋아’, ‘날쌘 담비야’, ‘조개는 왜 껍데기가 있을까?’ 등이 있다. ‘공룡이 나타났다!’(소피 헨 지음, 김영선 옮김, 보림 펴냄)는 공룡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담을 뿐 아니라 공룡의 실제 크기를 다룬다. 60㎝가량 되는 큰 판형을 가진 책을 펼쳐보면 공룡의 실제 발자국, 알, 코, 부리 등 공룡의 몸 전체 혹은 일부를 담은 장면이 나온다. ‘난 곤충이 좋아’(소피아 스펜서 마거릿 맥나마라 지음, 전수경 옮김, 미디어창비 펴냄)는 곤충을 좋아하는 어린이 소피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이다. 소피아는 곤충을 죽이지 않으려고 집 안에 들어온 곤충을 결국 놓쳐버리는 웃지못할 사건을 겪는다. ‘날쌘 담비야’(최태영 지음, 비룡소 펴냄)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담비의 한해살이를 세밀하고 잔잔한 그림으로 담았다. 이 책은 소중한 생명이 우리와 같이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하고, 동물들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마중 물이 된다. ‘조개는 왜 껍데기가 있을까’(멜리사 스튜어트 지음, 김아림 옮김, 다섯수레 펴냄)는 연체동물의 껍데기가 왜 모양·크기·색깔이 각각 다양한지 알려주는 책이다. 껍데기의 생김새는 각각의 연체동물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졌다는 내용을 작가는 수채화와 글로 전달한다.●초등학교 중간 학년에는 신체, 우주, 항공 등 다양한 관심사 반영 초등학교 3~4학년을 위한 과학 도서로는 ‘내 이웃의 동물들에게 월세를 주세요’, ‘밥에서 똥까지’, ‘블랙홀이 뭐예요?’, ‘어린이 비행기 대백과’ 등이 있다. ‘내 이웃의 동물들에게 월세를 주세요’(마승애 지음, 노란상상 펴냄)는 수의사인 저자가 시골 살림을 시작하면서 만난 이웃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웃 텃밭에 상추와 고추를 훔쳐가는 밤손님의 정체를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밥에서 똥까지’(알렉산드라 미지엘린스카 외 1인 지음, 김영화 옮김, 풀빛 펴냄)는 우리 몸의 소화, 흡수, 배설의 원리를 상세하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탄수화물과 지방의 비교, 단백질이 하는 일과 종류, 대변 색깔과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은 웬만한 성인 건강 서적에 견줘도 부족하지 않다. ‘블랙홀이 뭐예요?’(미네시게 신 지음, 전희정 옮김, 이성과감성 펴냄)은 ‘블랙홀’에 대해 쉽고 친절한 설명을 담은 그림책으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블랙홀이 어떻게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알려준다. ‘어린이 비행기 대백과’(손봉희 지음, 바이킹 펴냄)는 비행기의 탄생 과정부터 독특한 비행기의 종류까지 역사와 과학을 소개한 책이다. 80여 종의 비행기를 복엽, 단엽, 전투기, 여객기 등으로 묶어 구분해 사전처럼 활용할 수 있다.●초등 고학년 학생에겐 과학사, 이론, 바이러스 등 높아진 눈높이 적용 5~6학년 과학 도서로는 ‘과학의 우주적 대실수’, ‘매머드 사이언스’, ‘원자에서 우주까지 과학 수업 시간입니다’, ‘지구를 들었다 놨다! 세균과 바이러스’ 등이 있다. ‘과학의 우주적 대실수’(루카 페리 지음, 김은정 옮김, 봄볕 펴냄)는 과학자들이 실수로부터 연구 방향을 수정하고 인내하며 다시 연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학자도 실수를 하며, 실수의 결과를 바로잡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때로는 그 실수에서 발견이 시작된다는 것을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매머드 사이언스’(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음, 이한음 옮김, 크래들 펴냄)는 화학·생물학·물리학·지구과학으로 이어지는 과학 이론이 망라돼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물질, 생명, 에너지, 힘, 지구와 우주 등 다양한 과학의 원리를 매머드를 통해 쉽게 알려준다. ‘원자에서 우주까지 과학 수업 시간입니다’(마이크 바필드 지음, 이은경 옮김, 풀과바람 펴냄)은 다양한 과학자들의 업적과 실험을 소개한 책이다. 만화 형식으로 구성해 독자가 내용을 쉽게 파악하고 실험을 직관적으로 따라할 수 있다. ‘지구를 들었다 놨다! 세균과 바이러스’(유다정 지음, 다산어린이 펴냄)은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봉건제도를 무너뜨린 흑사병, 아즈텍과 잉카 문명을 멸망시킨 두창, 황열, 발진, 콜레라 등이 어떻게 인류 역사를 바꿨는지를 일깨워준다.●모든 학년이 공유할 책들도 흥미진진 이밖에 전 학년이 모두 공유하면서 볼만한 자연 과학 도서도 있다. ‘경이로운 동물들’(벤 로더리 지음, 이한음 옮김, 보림 펴냄)은 자연사 화가가 쓰고 그린 친절한 동물 그림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동물들의 놀라운 능력, 위장, 진화, 암수, 색깔의 비밀 등을 담았다. ‘우리는 물이야’(이정모 지음, 아이들은자연이다 펴냄)는 화학과 물에 대해 안내하는 책이다. 우리 몸 대부분을 이루는 물질은 물이다. 물 캐릭터와 주인공이 대화하면서 물의 탄생, 물의 구성, 물의 작용과 변화에 대해 세세히 알려준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돌고 도는 역사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돌고 도는 역사

    서양 문명의 원조인 그리스 문명을 그리스인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전히 독자적으로 이룩한 업적이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유럽중심주의’ 또는 ‘유럽쇼비니즘’이다.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그리스는 백인들의 우월한 역사가 시작된 자궁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 문명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독자적 문명으로 보는 연구자는 없다. 고대 세계에서 처음으로 문명의 불을 밝힌 건 메소포타미아·이집트였다. 두 문명이 빛을 발할 때 그리스는 후미진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스인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오리엔트 문명을 받아들여 그리스 문명을 탄생시켰고, 알렉산드로스는 그것을 동부지중해에 확산시켰다. 헬레니즘 문명의 등장이다. 그리스 문명이 떠오르자 오리엔트는 주변부로 가라앉는다. 헬레니즘 문명이 동부지중해에서 화려한 꽃을 피울 때,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는 어두컴컴한 변방이었다. 그러나 포에니전쟁으로 서부지중해를 장악한 로마가 이어 동부지중해를 정복하고 헬레니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다. 이렇게 천 년을 지속한 로마는 5세기에 멸망한다. 로마 멸망 후 로마가 수용한 그리스 문명의 물줄기는 이슬람 세계로 흘러간다. 이슬람 문명은 그리스의 학문과 철학을 대대적으로 아랍어로 번역하고, 여기에 독창성을 가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750년에서 900년 사이에 아랍어로 완역됐다. 이슬람 문명이 세계사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다. 로마 멸망 후 5세기 동안 변방에 머물던 서유럽은 11세기 십자군원정 이후 아랍인과 교류하면서 이슬람의 선진 문명에 경악한다. 그들은 이슬람 학자들을 스승으로 받들고,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고전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에 몰두한다. 12세기를 ‘번역의 세기’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할 수 없어서, 그리스어→아랍어→라틴어로 중역(重譯)했다. ‘대학’이 설립된 것도 이 무렵이다. 지적 자극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차오른 시기였다. 그 결과 1300년경 서유럽은 이슬람을 추월한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한 서유럽은 14세기 흑사병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16세기에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대륙으로 뻗어나간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다. 21세기가 밝았다. 태평양 건너 동아시아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의 전성기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우위 지키려는 美, 발판 포기 않는 中… ‘패권 전쟁터’ 된 신장

    우위 지키려는 美, 발판 포기 않는 中… ‘패권 전쟁터’ 된 신장

    지난달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 공산당의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와 손잡고 ‘동시다발 제재’를 단행해 ‘동맹을 통한 중국 압박’을 본격화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겨냥한 ‘바이든식 외교 전략’은 이제 시작이어서 신장 지역을 둘러싼 양국의 충돌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위구르족 인권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두 나라는 왜 이제서야 사생결단에 나선 것일까. 미중 갈등의 새 축이 된 신장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아시아·이슬람 연결 ‘교량’… 18세기에 中 편입 중국 북서부에 위치한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역사적으로 실크로드(비단길)를 통해 동아시아와 이슬람 세계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했다. 중국 고전 ‘서유기’를 보면 당나라 고승 현장(602~664)이 인도에서 불경을 구하려고 서역을 지나다 갖가지 요괴들의 공격을 받는데, 소설 속 서역이 바로 신장이다.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돌궐(투르크)에서 찾는다. 돌궐은 중국 역사에서 ‘흉노’로 불리던 민족들 가운데 하나로 몽골과 만주 지역 등에 퍼져 살았다. 전성기에는 고구려와 손잡고 중국 대륙을 위협했다. ‘돌궐의 후예’를 자처하는 터키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기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돌궐은 중국의 압박으로 영토를 잃고 서쪽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가 중앙아시아 지역에 정착해 위구르족이 됐다고 믿는다. 1759년 청나라 건륭제(1711~1799)가 이곳을 중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새로운 강토’라는 뜻의 신장(新疆)이라는 이름도 이때 지어졌다. 19세기 미국이 멕시코 땅이던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네바다 등을 빼앗아 국토 면적을 두 배 가까이 늘린 것과 비슷하다. 중국의 신장 병합은 약소 민족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패권국 팽창 경쟁의 결과물이다. 20세기 들어 청이 멸망하고 일본이 중국 본토를 침공하자 위구르인들은 ‘힘의 공백’을 깨닫고 1944년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선포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1949년 신장을 다시 침공했고, 1955년 이 지역을 자치구로 만들었다. 그간 신장은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받았음에도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위구르인들의 뿌리 깊은 반중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5일 설명했다. 위구르족은 수니파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유목 민족의 후예다. 중국의 주류인 한족과는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다. 1949년 인민해방군이 신장으로 갈 때만 해도 이 지역의 위구르족 비율은 80%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50% 밑으로 떨어졌다. 베이징 당국이 의도적으로 한족을 대거 이주시켜 지역의 고유성을 말살한다는 것이 위구르인들의 주장이다. 현재 ‘동투르키스탄 망명정부’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당’ 등 50여개 단체가 분리·독립 운동을 펼치고 있다. ●구소련 해체 뒤 위구르인도 독립 열망 커져 전문가들은 위구르인들이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이 생겨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도 나라를 세우자’는 열망이 커졌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1997년 신장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SCMP는 “2013년 베이징 톈안먼광장 위구르 차량 돌진 사고와 2014년 중국 윈난성 쿤밍역 테러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중국 지도부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해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를 반영하듯 2017년쯤부터 신장에서 위구르인들이 하나둘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극적으로 탈출해 국경을 넘어 도망친 이들의 증언과 위성사진으로 확인된 콘크리트 건물들, 내부자가 몰래 제공한 수용소 관련 공식 문서가 외부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강제수용소 논란에 대해 “위구르인들의 직업 교육을 위한 재교육 시설”이라고 반박한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이 지역 위구르인 1100만명 가운데 100만명 정도가 이 시설에 수감된 적이 있다고 추산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위구르족 강경책을 고수할까. 구소련 같은 ‘분리독립 도미노’가 절대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위구르족이 독립하면 54개의 다른 소수민족도 이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어서다. 만에 하나 위구르족을 독립시킨다고 해도 새 나라는 중국과 ‘앙숙’으로 지낼 가능성이 크다. 신장의 ‘전략적 가치’도 한몫한다. 이곳은 중국에서 석유·천연가스 매장량이 가장 많다. 18세기에 편입된 신장과 시짱(티베트)은 중국 전체 면적의 3분의1이나 된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이 신장을 포기할 리 없다.●“美, 中에 나쁜 이미지 심어 추격 막으려 해” 여기에 더해 중국은 ‘서구 세계가 숨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여긴다. 겉으로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는 듯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위구르족 독립운동을 은밀히 지원한다는 판단이다. 중국이 내부 분열로 치명상을 입게 해 ‘대서양 동맹(미국과 유럽)이 이끄는 국제질서’에 도전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있다고 본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의 수교 이후 양국 관계를 해칠 정도로 신장 문제에 적극적이진 않았다. 심지어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9·11 테러 직후인 2002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위구르 독립단체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전 세계 테러 의심자들을 초법적으로 가둔 관타나모 수용소에 있던 신장 분리주의자들을 중국의 심문관이 만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2010년에는 노르웨이가 중국을 대신해 위구르 독립단체 조직원을 체포했다. 최소한 10년 전까지는 서구 세계가 신장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와 궤를 같이했음을 알 수 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휩쓸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중국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안정을 지키길 원했기에 위구르족 인권 문제에 눈감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공조는 ‘비정치인 출신’으로 ‘반중’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깨졌다. 그간의 국제질서 맥락을 알리 없던 그가 신장 문제를 그냥 넘어갈 리 없었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위구르족 수용소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때는 트럼프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2017년이다. ●“나토 등 IS와의 전쟁에 위구르족 병사 이용” 일각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신장 인권 문제로 압박에 나선 것을 두고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한 중국을 패권 경쟁에서 낙오시키려는 전략’으로 해석한다. 과거 미국이 구소련에 대해 그랬듯 중국에 대한 국가 이미지를 최대한 나쁘게 만들어 전 세계에 ‘힘이 커지면 안 될 나라’로 각인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캐나다 진보성향 매체 ‘글로벌리서치’는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터키 등이 IS 궤멸을 위해 위구르족 수천명을 테러 조직에 잠입시켰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했다. 위구르인들이 영화 ‘무간도’나 ‘신세계’에서처럼 신분을 숨기고 범죄 집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매체는 “세계 주류 언론사나 미국의 정치인들은 (서구 세계가 위구르인을 은밀히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에 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레바논 언론 ‘볼테르 네트워크’도 시리아 매체들을 인용해 “‘IS와의 전쟁’ 임무를 수행한 위구르족 병사 1만 8000여명이 2013년부터 몰래 신장으로 돌아가 여러 형태의 테러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이는 중국을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나토 비밀 계획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시간의 마디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시간의 마디

    역사학은 시간을 다룬다. 그러나 태초부터 현대까지를 통으로 다룰 수 없으니 편의상 ‘시대’를 쪼개서 나눈다. 그렇다고 원칙 없이 구분하는 건 아니다. 역사상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판단이 서는 대전환기를 ‘시간의 마디’로 삼는다. 본격적으로 시대를 구분하기 시작한 건 르네상스 시기였다. 그 시대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시대가 앞선 시대와 차별된다는 뚜렷한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그리스ㆍ로마의 고전고대와 직결된다고 보았다. 고대의 찬란했던 문명이 로마 멸망과 더불어 소멸하고 그로부터 천년의 세월이 흐른 후, 1500년경 제2의 황금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시대와 고대 황금시대 중간에 있는 천년의 세월은 문명이 사멸한 기나긴 암흑의 시대로 간주했다. 이렇게 해서 고대ㆍ중세ㆍ근대로 이어지는 ‘3분법 시대구분’이 등장하게 된다. 고대의 제1 황금기와 부활한 제2 황금기 중간에 암흑시대가 펼쳐졌다는 독특한 역사 이해 방식이다. 르네상스란 말 자체가 ‘부활’이란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중세’의 ‘중’(中)에는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포함돼 있다. 위대한 두 황금기의 ‘중간에 낀’ 무지와 야만과 암흑의 천년이란 뜻이다. 중세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19세기 낭만주의 등장과 더불어 중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다. 중세 기사도를 찬양한 ‘아이반호’를 쓴 작가 월터 스콧,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 역사가 랑케 등에 의해 중세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반박된다. 오늘날 진지한 역사가로서 중세를 암흑시대로 보는 이는 없다. ‘중세’에 내포된 초기의 부정적 함의는 사라졌고, 지금은 가치중립적 용어로 사용될 뿐이다. 19세기 이후 유럽에서 발달한 근대 역사학은 일본을 거쳐 20세기 전반에 한국에 도입된다. 그러나 동아시아 역사는 유럽과 다른 길을 걸었다. ‘첫 번째 황금시대와 두 번째 황금시대 사이에 낀 중간기’라는 발상에서 비롯된 3분법은 아시아권 역사에는 맞지 않는다. 몸에 안 맞는 옷이다. 그러나 근대적 학문 수용 과정에서 서양의 시대 구분법 도입은 불가피했다. 맞지 않는 옷에 안주할 수 없었던 역사가들이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거듭하며 독자적인 시대구분법을 모색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니까.
  • [세종로의 아침] 버마 혹은 미얀마/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버마 혹은 미얀마/최병규 체육부 전문기자

    1970~8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미얀마보다는 버마라는 이름이 훨씬 익숙할 게 틀림없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버마는 1989년 군사정부에 의해 바뀐 현재 국호 미얀마의 예전 이름이다. 버마 축구는 70년대 초반 공포의 대상이었다. 1971년 서울(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에서 한국과 공동 우승을 차지하더니 이후 두 해 거푸 준결승에서 만난 한국에 똑같이 0-1 패를 안겼다.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에서 연속 3위에 그치자 시상식을 마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2회 대회 준결승 당시 25m짜리 중거리 결승골의 주인공은 마웅 예뉜이다. 이듬해는 마웅 틴윈이 헤딩 결승골을 넣었다. 버마 이름에는 성(姓)이 없다. ‘마웅’(Maung)은 20세 전후 미혼 남자의 이름 앞에 붙이는 일종의 존칭 접두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으면 ‘우’(U)가 붙는다. 초등학교 시절 따지지도 않고 달달 외던 당시 유엔 3대 사무총장의 이름 우 탄트(우 딴)가 대표적이다. 1983년의 버마는 우리에게는 축구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 10월 9일 버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전 수도 랑군(양곤)에 있는 버마 독립운동의 영웅 아웅 산 묘소를 참배하기 직전 발생한 폭탄 테러 때문이다. 정부 관료 17명이 한자리에서 폭사한 끔찍한 참사였다. 버마는 1988년 아웅 산 수치(이하 수치) 국가고문의 등장으로 다시 주목을 받는다. 병석의 어머니를 보기 위해 영국에서 돌아온 그는 8월 8일 3000여명이 죽어나간 ‘8888 민주항쟁’을 목격한 뒤 50만 군중을 상대로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연설을 통해 버마 민주화운동의 어머니로 떠올랐다. ‘아메이 수’(어머니 수)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는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을 타락시킨다.” 19세기 이후 버마 혹은 미얀마를 관통하는 두 가지 코드는 ‘반외세’와 ‘민주화’다. 버마는 마지막 왕조 멸망 전 1824년을 시작으로 세 차례나 영국과 전쟁을 치렀다. 망국은 피할 수 없었지만 이후 ‘영연방’ 가입은 거부할 정도로 자존심은 옹골찼다. 가시밭길 같은 ‘민주화’ 행보는 우리네와 꼭 닮은꼴이다.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 바로 1년 뒤 네 윈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버마는 이후 60년 가까이 군부가 좌지우지했다. 2008년 개정된 헌법에는 의석의 25%를 군부가 지명토록 하는 조항이 명시됐다. 수치 고문의 민족민주연맹(NLD)이 2015년 총선에서 의석을 휩쓸어 1기 문민정부를 출범시키고도 사정은 그대로였던 이유다. 그런데 향후 15년간 단계적 군부 의석 지명 축소를 선언한 NLD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도 83%의 압승으로 이를 실현할 개헌 가능성까지 열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전두환 신군부의 12·12사태와 비견될 만한 이번 쿠데타의 빌미다. 2013년 첫 방한 당시 수치 고문은 국내 언론사에 미얀마 대신 ‘버마’로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미얀마는 영국의 지배 이전의 이름이다. 130여개 소수민족을 아우른다는 좋은 의미를 가졌지마 신군부에 의해 되돌려졌다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했다. 광주의 5·18 항쟁에 버금가는 반군부 시위와 유혈 진압은 이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를 낼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현지 매체는 14일 희생자가 100명에 육박한다고 타전했다. 꼭 50년 전 ‘박대통령컵 축구대회’에서처럼 이름이 ‘마웅’으로 시작되는 20세 안팎의 젊은이가 대다수일 것이다. 우리에게 한때 익숙했던 ‘민주주의 나무는 민중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지금 버마 혹은 미얀마에서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다. cbk91065@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위선도 그리워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위선도 그리워

    미국 사회비평가 모리스 버먼(1944~)의 ‘미국 문화의 몰락’(2001)은 ‘미국이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반미 성향을 지닌 독자라면 반가워할지도 모르지만, 한국도 그리 여유롭지 않다. 한국 역시 거대한 미국화의 조류에 휩쓸려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대 로마제국 멸망의 4대 원인을 열거하면서, 미국 역시 같은 원인으로 몰락하는 중이라고 진단한다. 몰락의 원인 중 하나가 특히 인상적이다. 천박한 상업주의의 만연으로 사회 전체가 ‘정신적 죽음’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상업주의가 일상을 지배한 결과 저속한 모방과 과장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과장으로 부풀리고 거짓으로 그럴싸하게 치장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쓰레기와 진정한 가치를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저자는 조악하고 저속한 것들이 오히려 사회에 잘 적응하고 문화적으로도 환영받는 실정이라고 개탄한다.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수치스러워도 ‘유명’하기만 하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심지어 돈도 된다. 정신적 죽음이다. 멸망의 주요 원인이다. 뻔히 거짓임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가짜뉴스를 생산해 돈벌이를 꾀하는 일부 유튜버들,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터무니없는 거짓과 왜곡을 저지르는 몇몇 학자들,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어 자극적인 거짓말로 클릭을 유도하는 일부 언론이 여기 해당한다. 일제강점기 기독교 사상가 김교신(1901~45)은 ‘위선도 그리워’(1933)라는 글에서 예수 시대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야말로 ‘위선자의 표본’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교신은 그들에게 차라리 긍정적인 모습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바리새인은 말뿐이고 실행은 없는 것이 결점이었으나 하는 ‘말’만은 옳은 말이었으므로 예수도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이 하는 ‘말’은 따르라고 가르쳤다. 바리새인은 스스로는 의인이 못 되더라도 겉으론 진실하고 선량한 외양을 보이고 싶어 했다. 부끄러움을 알았다. 그러나 작금의 세태는 어떠한가. ‘언행의 일치’를 도모해 행동은 물론 말까지도 뻔뻔스럽게 거짓을 내뱉는다. 과장으로 부풀리고 거짓으로 치장한다. 그러면 오히려 ‘솔직’하고 ‘용감’하다는 찬사를 받는다. 정신적 죽음이다. 그러므로 김교신은 말한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사회에선 차라리 위선마저 그립다고.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주식 이제 팔아야 할까요?”…존리의 답은

    “주식 이제 팔아야 할까요?”…존리의 답은

    ‘동학개미운동’ 이끈 존리 대표주식 펀드·장기 투자 강조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주식투자는 시간과의 싸움 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주식을 팔아야 하는 세 가지 경우를 밝혔다. 존리는 지난해 ‘동학개미운동’을 이끌었던 장본인이다. ‘동학개미운동’이란 2020년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주식 시장에서 등장한 신조어로,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기관과 외국인에 맞서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인 상황을 1894년 반외세 운동인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표현이다.주식 팔 때도 이유 있어야…세 가지 경우 존리 대표는 23일 방송된 SBS플러스 ‘강호동의 밥심’에 출연해 이 시대 금융공부의 중요성과 주식투자의 기본을 강조했다. 존리의 등장에 강호동은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존리는 “부자가 되는 건 어렵진 않다. 제일 중요한 건 부자처럼 보이면 안 된다. 가난하게 보여야 한다”며 “가난한 사람은 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얻고 부자인 사람은 투자로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주식을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상황에 대해 “첫 번째는 이 회사를 구매한 이유는 10~20년 안에 큰 회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투자한 회사가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그때 팔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번째는 세상이 변할 때다. 한 필름회사는 과거 시장의 90% 이상 점유했지만, 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완전히 없어졌다”고 사례를 들었다. 세 번째로 존리는 “돈이 필요할 때”라고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제발 기다리라고 말해도 대부분 못 기다려” 존리는 이날 “흔들리는 주식 시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갖고 싶은 기업의 주식을 샀는데, 그 회사 주식이 폭락한다면 좋은 거다.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거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작년 같은 게 좋은 예다. 코로나19로 주가가 폭락할 때 사고 싶었던 주식이 바겐세일 나온 거다. 길게 보는 사람들은 ‘이게 웬 떡이냐’한다. 어차피 코로나19는 해결될 거다. 사람들은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말하는데, 나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기업의 가치는 그대로 있지 않냐”라고 말했다. 또 존리는 “펀드도 마찬가지다. 초반에는 40~50% 치솟았다가 갑자기 성적이 나빠져서 마이너스가 된 사람이 많다. 제발 기다리라고 말해도 대부분 못 기다린다. 마이너스가 되면 그냥 팔아버린다. 기다리면 올라가게 되어 있다. 주식투자는 10%, 20% 벌려고 하는 게 아니다. 자본금의 10배, 100배를 벌기 위한 투자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날 존리는 “주식에 투자하는 건 기업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라. 기업과 동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단기 투자는 위험하다며 장기 투자를 강조했다. 존리는 “시장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항상 투자가 돼있으면 된다. 작년 시장 호황을 예측한 사람은 드물다”며 “자녀부터 투자를 시켜라. 태어나자마자 투자를 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유대인보다 밝다”고 투자는 빠를수록 좋다고도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악취를 못 맡는 사람들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악취를 못 맡는 사람들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목욕을 하다가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치며 뛰어나왔다. 그리스인이 목욕을 즐겼다는 증거다. 목욕 전통은 로마 시대에도 이어졌다. 목욕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청결이 미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가 열리면서 목욕에 대한 반감이 커진다. 기독교의 목욕에 대한 반감은 3세기부터 본격화됐는데, 이는 로마식 목욕이 쾌락주의와 연관돼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 사회의 목욕에 대한 태도는 ‘중세 전성기’가 열린 11세기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로마가 멸망한 5세기부터 현저히 줄어든 서유럽의 공중목욕탕은 11세기 이후 십자군의 영향으로 다시 등장해 급속히 확산한다. 그러나 14세기부터 번지기 시작한 흑사병은 모처럼 재등장한 목욕 문화에 철퇴를 가한다. 문제는 당시의 의학 수준이었다. 파리대학 의학 교수들은 뜨거운 목욕이 인체에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의사들은 인체의 분비물이 보호막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목욕으로 열과 물이 피부의 구멍을 열면 역병이 구멍을 통해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후 200여년 동안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죽기 싫으면 목욕탕과 목욕을 피하시오”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왕과 귀족들도 목욕을 꺼렸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1643~1715 재위)는 악취로 유명했다. 궁정 안의 모든 사람은 ‘태양왕’의 입 냄새를 잘 알고 있었다. 정부(情婦) 몽테스팡 부인은 왕의 구취에 대한 자구책으로 자기 몸에 향수를 뿌려 댔고, 왕은 그녀의 향수 냄새에 진저리를 쳤다. 루이 14세는 펜싱 연습을 하고, 춤을 추고, 군사훈련을 마친 후 땀에 흠뻑 젖어도 좀처럼 씻지 않았다. 대신 깨끗한 아마포(리넨) 옷으로 하루에 세 차례 갈아입을 뿐이었다.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는 게 목욕보다 안전하고 건강하다는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행동이었다. 현대인은 예전 사람들의 불결함에 몸서리를 친다. 그러나 12세기 프랑스 신학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모두가 악취를 풍기면 냄새가 나지 않는 법’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도 특권의식에 젖은 엘리트 집단이 있다. 그 집단이 내뿜는 악취를 내부자는 잘못 맡는 듯하다. 베르나르의 말대로 ‘모두가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악취 제거를 외부에 맡겨야 하는 이유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500년 전 잉카제국 공동묘지 발굴…고고학적 미스터리 풀릴까

    500년 전 잉카제국 공동묘지 발굴…고고학적 미스터리 풀릴까

    에콰도르에서 발견된 잉카제국의 공동묘지 유적에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0년 고고학적 공백을 풀어줄 비밀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공동묘지 유적은 에콰도르 중부 라타쿤가 지방의 농촌 물랄로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2019년 농수 공급을 위해 물탱크를 세우는 건설현장에서 해골과 세라믹 유몰 각각 1점이 나오면서 공동묘지의 존재가 희미하게 세상에 알려졌다. 공사는 즉각 중단됐지만 에콰도르 정부는 예산부족으로 발굴작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자 물랄로 당국은 민간 학계에 조사를 의뢰했다. 학계가 주도한 발굴작업에선 공동묘지의 규모가 파악되고 유골과 유물이 대거 발견됐다. 공동묘지 터는 가로와 세로 각각 13m와 7m 규모 직사각형으로 건물을 짓기 위해 점토로 기초공사를 했다. 건물을 지을 때 잉카제국에서 흔히 사용하던 기법이다. 터에선 심하게 훼손된 상태의 유골 12구와 세라믹 유물이 출토됐다. 관계자는 "유적은 불과 지하 1m 아래에 흙으로 덮여 있었다"며 "워낙 낮게 묻혀 있어 유골의 훼손 상태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동묘지는 최소한 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가 물랄로의 잉카 공동묘지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건 유적에서 나온 특이한 유물 때문이다. 물랄로 공동묘지에선 십자가와 알파벳 W가 새겨진 그릇류가 발굴됐다. 남미를 호령하던 잉카제국이 몰락하고 스페인이 남미를 정복하는 과도기 때 묘지가 조성됐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학계는 1450~1540년을 잉카제국이 멸망하고 스페인이 중남미를 장악한 과도기로 본다. 과도기에 대해 그간 역사학적으론 다양한 연구와 조사가 진행됐지만 고고학적 연구는 미흡했다. 발굴을 지휘한 고고학자 에스테반 아코스타는 "고고학적으로 보면 과도기에 대한 연구는 전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물랄로의 공동묘지 유적에 특별한 관심이 쏠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DNA 검사를 통래 12구 유골이 한 가족인지부터 확인할 예정"이라며 "공동묘지에 상상 이상의 비밀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에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쓰레기통에 넣게 될 겁니다, 한국 SF영화 별로라는 생각

    쓰레기통에 넣게 될 겁니다, 한국 SF영화 별로라는 생각

    멸망 위기에 놓인 지구와 인류 구하라우주 청소선 선원들 좌충우돌 모험기 뛰어난 그래픽으로 현실적 우주 표현화려한 전투에 짠내 나는 드라마 더해할리우드 안 부러운 블록버스터 탄생현실적인 화면 구현이 어려운 탓에 지금까지 영화 속 우주 영웅은 할리우드 배우들 차지였다. 넷플릭스에서 지난 5일 공개된 조성희 감독 영화 ‘승리호’로 그런 등식은 깨질 듯하다. 영화는 6일 기준 총점 525점(플릭스패트롤 집계)으로 넷플릭스 인기 영화 세계 1위에 오르며 ‘한국의 본격 우주 SF 영화´라는 타이틀의 실체를 입증했다. 한국과 벨기에, 크로아티아, 핀란드, 프랑스, 필리핀, 우크라이나 등 16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승리호’는 2092년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사막화하자 우주 개발 기업 UTS(Utopia Above The Sky)는 지구 위 위성 궤도에 인간의 5%만 머무는 새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지구와 UTS 사이에 가득한 우주 쓰레기는 우주 청소선들의 먹거리다. 장 선장(김태리 분)과 대원 태호(송중기 분), 타이거 박(진선규 분), 인간형 로봇 업동이(유해진 분)가 뭉친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는 어느 날 사고 우주정을 수거하다가 대량살상무기로 수배 중인 로봇 도로시(박예린 분)를 발견하며 사건에 휘말린다. 영화 배경은 그동안 익히 봤던 우주 SF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암울한 디스토피아는 ‘블레이드 러너’, 독특한 캐릭터가 우주선을 몰고 우주를 돌아다니는 영화는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미래형 슈트를 입은 기동대의 모습은 ‘스타워즈´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일부 기시감이 들 수도 있다. 영화를 차별화하는 건 쓰레기 청소선이라는 독특한 설정이다. 그럴듯한 우주선이 아닌 쓰레기 청소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에 개성 강한 캐릭터가 재미를 더한다. 배우 송중기는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승리호는 찌질한 대원 4명이 서로 부대끼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대원들은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하지만, 각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영화는 테러집단 검은 여우와의 거래가 꼬이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유쾌하게 그리면서 대원들이 왜 돈을 밝히는지 각자의 과거를 적절히 풀어내며 보여 준다.매끈한 그래픽도 주목할 만하다. 첫 장면부터 압도적인 우주선 쓰레기 청소 모습을 비롯해 각종 기계로 가득하지만 꼬질꼬질한 느낌을 자아내는 우주선 내부, 사막화한 지구와 UTS의 차이 등을 생생하게 구현했다. 묵직한 기계들의 무게감은 물론 우주선 추격전, 승리호 대원들을 쫓는 기동대와의 격투 액션이 볼만하다. 승리호 대원은 한국어를 쓰고 외국인은 각자의 언어를 쓰되 귀에 꽂는 작은 통역기를 통해 무리 없이 대화하는 식으로 이질감을 줄였다. 조 감독은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어로 주로 대사를 하는 영화다. 그러면서도 우주선이 날아다닌다. 이런 위화감을 어떻게 줄일까, 관객들이 이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배우 유해진의 모션캡처로 구현한 로봇 업동이의 모습에서 약간의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구수하고 투박한’ 업동이의 말투가 ‘한국형 SF 영화’라는 걸 떠올리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화려한 볼거리를 입힌 짠내 나는 한국형 드라마에 각종 유머러스한 장면을 쏙쏙 잘 넣은 영화는 독특한 색깔을 지닌 우주 활극이 됐다. 우주 SF 영화 불모국이었던 우리도 할리우드 영화들에 뒤지지 않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건 영화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승리호’는 지난해 코로나19로 두 번의 개봉 시기를 놓친 뒤에 결국 넷플릭스 공개로 전환됐다. 영화의 실체를 보니 더 확장된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진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대구 조선은행에 폭탄… 일제 손에 죽는 치욕 대신 ‘옥중 자결’

    대구 조선은행에 폭탄… 일제 손에 죽는 치욕 대신 ‘옥중 자결’

    1929년 12월 28일자 신문 1면에 “근래에 보지 못한 대음모”, “미증유의 대사건” 등의 부정적인 수식어를 단 큰 사건이 대서특필됐다. 바로 장진홍 의사의 대구 폭탄 투척 의거이다. 일제는 사건이 발생한 뒤 2년 2개월이 넘도록 보도를 통제하다 장 의사를 비롯한 관련 인물들을 검거한 뒤에야 공개했다. 폭탄을 던져 일제 기관들을 폭파하기로 계획한 장 의사는 1927년 6월 일본인 고바야시로부터 다이너마이트 30개와 뇌관 30개, 도화선 등을 15원을 주고 구입해 폭탄을 만들기로 했다. 폭탄 투척 대상으로 삼은 곳은 경북도청, 경북경찰부, 조선은행 대구지점,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등이었다. 의사는 냄비와 솥 등 쇠붙이를 부수어 파편을 만들고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폭탄을 제조했다. 동지를 규합하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단독으로 거사를 치르기로 하고 경북 칠곡군 봉화산 골짜기에서 폭탄 성능 실험에 성공했다.1927년 10월 18일 아침. 대구 덕흥여관에 투숙한 의사는 나무상자 4개에 폭탄을 넣어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신문지로 포장했다. 11시 30분쯤 여관 종업원에게 소포 4개를 주면서 “나는 몸을 다쳐 걸을 수 없으니 이 벌꿀 선물 상자를 조선은행, 도청, 식산은행의 순서대로 급히 배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종업원은 친절한 의사의 말에 의심하지 않고 소포를 받아 먼저 조선은행으로 가서 4개 중 1개를 전달했다. ●안동·영천경찰서 폭파 제2 거사는 실행 못 해 바로 이때 포병 출신 일본인 은행원이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나무 상자를 열었다. 은행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두려움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벌꿀 선물이라던 상자 속에는 불이 붙은 도화선이 2㎝밖에 남지 않은 폭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당황한 은행원들은 상자의 도화선을 끊고 다른 상자 3개는 건물 앞 공터에 갖다 놓고는 경찰에 연락했다. 대구경찰서 일경 10여명이 출동해 폭탄 3개를 은행 옆 길에 옮겨 놓았다. 채 2분이 지나지 않은 11시 50분쯤 폭탄이 굉음과 함께 잇따라 폭발했다. 현장에 있던 은행원과 일경 등 5명이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은행 창문 70여개가 부서졌다. 유리 파편이 대구역까지 날아갈 정도로 폭탄의 위력은 엄청났다. 장 의사는 1895년 6월 6일 칠곡군 인동면 문림리(현 구미시 인동)에서 태어났다. ‘충효’를 가훈으로 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의사는 애국심과 효심을 중히 여기며 성장했다. 1907년 인명학교(현 인동초등학교)에 입학해 의사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장지필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졸업했다. 장지필은 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심어 주는 애국계몽운동에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는 인명, 협성 등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제자들에게 민족의식을 깨우쳐 준 우국지사였다. 의사는 1914년 3월 조선보병대에 들어갔다. 1910년 한일병합 후 대한제국 친위대를 개편한 부대였다. 조선보병대 입대는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중도에 보병대를 그만두고 광복단에서 활동하던 의사는 일경의 감시가 심해지자 1918년 만주 봉천(현 선양)으로 갔다. 만주에서 의사는 조선광복단 이국필, 김정묵 등을 만나 과감한 무장투쟁을 벌이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러시아 하바롭스크로 넘어간 의사는 한인 100여명을 규합해 조선보병대 경험을 살려 ‘보병조전’(步兵操典)을 설치하고 군사훈련을 시켰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적군(赤軍)과 백군(白軍)의 내전이 격화되고 있었는데 하바롭스크가 백군에 점령되고 일본 관동군이 출병하자 귀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국 후 의사가 착수한 일은 3·1운동 과정에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었다. 집안의 전 재산인 전답 5두락(약 1000평)을 몽땅 팔아 조사 비용을 마련했다. 의사는 서적 행상으로 가장,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가 자행한 학살, 방화, 고문 등을 상세히 조사해 문건으로 만들었다. 마침 1919년 7월 미국 군함이 인천항에 입항했는데 함대에는 경북 출신 승무원 하사관 김상철이 있었다. 의사는 김상철에게 조사서를 전달하고 세계 각국에 배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사는 일제에 항거할 최종 수단으로 폭탄 투척을 생각하고 있었다. 1927년 4월 무렵 일본인이면서도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폭탄 전문가 호리키리를 만난 것은 의사의 의지를 불태우게 된 계기가 됐다. 호리키리는 의사에게 다이너마이트와 철편 등을 이용한 폭탄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 ●일경의 혹독한 고문에도 동지 이름 발설 안 해 의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후 인상착의를 바꾸고 도피해 경북 선산에 은신했다. 폭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의사는 경북 안동과 영천에서 경찰서 등 주요 기관을 폭파하는 제2의 거사를 계획했지만 일경의 감시망이 좁혀지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신변의 위험을 느끼자 의사는 1928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경시청과 중의원에 폭탄을 던질 계획을 세우면서 오사카에서 안경점을 하는 동생집에 머물렀다. 한편 일제는 의사의 폭탄 투척을 중대 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망을 좁혀 갔다. 수사 과정에서 관련이 없는 이정기 등 8명을 검거해 악독한 고문으로 자백하게 만든 뒤 진범으로 꾸며 재판에 넘기기도 했고, 폭탄 상자에 쓰인 글씨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민족저항 시인인 이육사를 투옥시키기도 했다. 일경은 이런 엉뚱한 수사 끝에 마침내 의사가 벌인 일임을 알아내고는 체포에 혈안이 됐다. 그러다 일본에서 귀국한 노동자로부터 의사를 오사카에서 본 적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결국 동생집에 숨어 있던 의사는 일본으로 급파된 일제 형사들의 간교한 계략에 체포되고 말았다. 1928년 2월 19일 의사는 대구로 압송됐다. 의사는 “일본이 멸망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며 이번 거사는 야만 일본을 타도하기 위하여 정의의 폭탄을 던진 것인데 성공하지 못하고 너희들의 손에 붙들린 것이 천추의 유한이다”라고 일경들을 호통쳤다. 또 조선인 경관들에게는 “한민족의 피를 받고도 일제 경찰의 주구가 되어 동족의 해방운동을 이다지도 방해하는 악질 조선인 경관의 죄상이야말로 나의 죽은 혼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일제는 공범을 대라며 혹독한 고문을 했지만, 의사는 어느 누구의 이름도 대지 않고 혼자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30년 2월 17일 1심에 이어 4월 24일 복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됐다. 의사는 하늘을 쳐다보고 크게 웃은 다음 주먹만 한 돌을 주머니에서 꺼내 재판장에게 던지고 큰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한 다음 다시 의자를 집어던지며 항거했다. ●張의사 자결에 재소자 1300명 만세·단식투쟁 최종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되자 의사는 일제의 손에 치욕스런 죽음을 당하느니 깨끗이 죽기로 결심했다. 1930년 6월 5일(음) 무더운 밤 11시쯤 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했다. 의사의 나이 35세였다. 의사의 자결 사실을 안 대구형무소 재소자 1300여명은 만세를 부르고 단식투쟁을 하며 농성을 벌였다. 의사의 부모는 충격을 받고 세상을 떴다. 일경은 의사의 장례도 방해했다. 의사의 시신은 제대로 장례식을 치르지도 못하고 칠곡 석적면 남율의 언덕에 쓸쓸히 묻혔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의사는 순국하기 전 옥중에서 간수를 통해 조선 총독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너희들 일본제국이 한국을 빨리 독립시켜 주지 않으면 멸망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내 육체는 네놈들의 손에 죽는다 하더라도 나의 영혼은 한국의 독립과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위하여 지하에 가서라도 싸우고야 말겠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아이도 인신공양”…16세기 스페인 정복자와 아즈텍인 학살 사건 전말

    “아이도 인신공양”…16세기 스페인 정복자와 아즈텍인 학살 사건 전말

    16세기 후반 멕시코에서 일어난 에스파냐 정복자들과 아즈텍인 사이 끔찍한 학살 사건에 관한 퍼즐 조각을 과학자들이 맞춰냈다. 멕시코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 연구진은 2019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의 한 마을유적지에서 아즈텍인의 에스파냐 포로 학살 증거를 발견했다. 당시 아즈텍 주민은 이들 포로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 풍습까지 서슴치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연구진은 에스파냐의 아즈텍왕국 정복자인 에르난 코르테스(1504∼1547)가 줄테펙(Zultepec)이라는 이름의 이 마을에 대해 보복 공격을 명령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이는 코르테스의 병사들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즈텍 주민들의 유해다. 연구진에 따르면, 아즈텍인이 제물을 먹는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테코아케(Tecoaque)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의 주민들은 1520년 쿠바에서 출발한 에스파냐 선단을 습격해 에스파냐 남성 15명과 여성 50명, 아이 10명 등을 포로로 붙잡았다. 이중에는 쿠바 출신 에스파냐 병사 몇십 명과 에스파냐와 동맹을 맺은 아즈텍 인근 부족 출신 병사 몇백 명도 있었다.연구진은 이 유적에서 발굴된 유해를 조사해 이들 포로가 문이 없는 감방에 감금된 채 살이 찌도록 사육됐고 인신공양 제물로 바쳐졌다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발굴된 포로 유골들은 찢겨져 있고 뼈에서는 살이 제거된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테코아케 주민들은 천천히 몇 달 동안 이들 포로를 인신공양하고 잡아먹었는데 그중에는 아이와 여성 그리고 임신부까지 있었으며 이들의 두개골은 전리품처럼 장식되기까지 했다. 이런 학살 사건으로부터 8개월쯤 뒤인 1521년 초 에르난 코르테스는 에스파냐 선단이 포로로 잡혀 학살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부관 곤살로 데산도발에게 병력을 이끌고 가서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런데 이번 연구에서는 테코아케 주민들 역시 코르테스의 보복 공격을 미리 알아챈 것으로 나타났다. 유적에서 주민들이 인신공양한 포로의 뼈 등 모든 흔적을 우물에 던져 증거를 은폐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테코아케 주민은 마을 중앙에 방어책까지 마련하며 대비했지만, 1521년 3월 에스파냐 측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 이 습격에서 일부 아즈텍 남성 전사는 도주하는데 성공했지만, 나머지 전사는 물론 남겨진 여성과 아이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유적에서 발굴된 흔적은 최소 12명의 성인 여성이 5, 6세 아이 10명을 보호하다가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방안에 남겨진 유골 흔적은 이곳에 숨었던 여성과 아이들 역시 죽임을 면치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즈텍 사원들은 불에 타 사라졌고 조각상들의 목은 모두 절단됐다. 몇 달 뒤 에스파냐군은 동맹 부족과 함께 아즈텍왕국의 수도 테노치틀란을 함락했고 이후 목테수마 2세의 죽음으로 이 왕국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아즈텍 문명은 결국 전쟁과 유럽인이 들여온 천연두로 인한 인구 감소 탓에 멸망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연구를 주도한 고고학자 엔리케 마르티네스 박사는 테코아케 유적은 아즈텍 역사에서 에스파냐에 대한 저항과 왕국 붕괴의 시작을 나타나내는 중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도자실·일본실 개관...세계문화관 조성 완료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도자실·일본실 개관...세계문화관 조성 완료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관 3층 세계문화관 내에 세계도자실과 일본실을 개관했다고 25일 밝혔다. 2005년 경복궁에서 용산으로 이전하며 ‘아시아관’을 신설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은 2019년 12월 이를 세계문화관으로 개편했다. 이집트실을 시작으로 중앙아시아실, 인도·동남아실, 중국실을 차례로 열었고, 이번 세계도자실 신설과 일본실 개편으로 세계문화관 조성이 완료됐다. 세계도자실은 동서교류의 대표적인 산물인 도자기 243점을 펼친다. 중국에서 처음 제작된 도자기는 한반도와 일본 등 동남아시아를 거쳐 아라비아반도까지 수출됐다. 16세기 해상 무역로가 개척되면서 동서양의 도자기 교류는 활발해졌고,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세계 자기 생산의 중심지는 유럽으로 옮겨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도자기 동서교류사를 담기 위해 네덜란드 국립도자박물관과 흐로닝어르박물관의 소장품 113점을 대여했다. 2019년 네덜란드 국립도자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 박물관 소장품인 신안선 출토 도자기를 10개월간 출품하면서 쌓은 신뢰가 바탕이 됐다. 세계도자실은 내년 11월 13일까지 약 2년 간 열린다.일본실은 ‘무사’(武士)에 초점을 맞춰 전시 내용과 시설을 대폭 바꿨다. 귀족들에게 고용된 신분에 불과했던 무사들은 차츰 영향력을 키워 중앙 권력을 장악했다. 1192년 최초의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 막부가 세워진 뒤 1868년 에도 막부가 멸망할 때까지 약 700년 동안 무사는 일본의 지배계급이었다. 일본 문화와 예술을 후원해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흐름을 만드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칼과 갑옷 등 무사를 상징하는 무구와 함께 무사 계급의 후원으로 발전했던 노(能), 무사의 미학을 반영한 다도, 무사 계급의 여성이 결혼할 때 지참하는 마키에 혼례도구, 고급자기 ‘나베시마’ 등 63건 198점이 전시됐다. 아울러 도자기 무역 역사와 일본 역사를 디지털 패널로 제작하고, 독일의 도자기 공방과 일본의 다실을 입체적으로 재현하는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도 마련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마윈과 말하기의 어려움/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마윈과 말하기의 어려움/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 전국시대 법가를 집대성한 한비(韓非·BC 280~233)가 지은 ‘한비자’ 세난(說難)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정(鄭)나라 무공(武公)은 호(胡)나라를 치려고 마음을 먹었다. 금지옥엽 공주를 호공에게 시집보내 환심을 샀다. 신하들에게 물었다. “어느 나라를 정벌하는 게 좋겠소?” 대부 관기사(關其思)가 나섰다. “호나라입니다.” 무공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죽여 버렸다. “호나라는 우리의 형제 나라인데, 공격하라니 이 무슨 망언인가?” 호공은 정나라를 정말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방비를 게을리했다. 정나라는 얼마 뒤 호나라를 멸망시켰다. 한비는 이 책을 통해 왕에게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말하기의 성공은 상대 마음을 헤아려 내가 말하려는 의도를 상대에게 맞출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설파한다. 명예를 구하는 임금에게 이익을 진언한다면 그를 비루하다고 여겨 내쫓는다. 이익을 추구하는 왕에게 명예를 간언한다면 그를 현실에 어둡다고 여겨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익을 좇지만 명예를 따르는 척하는 군주에게 명예를 조언한다면 그를 받아들이는 척하지만 속으론 멀리한다. 그렇다고 이익을 말하면 내심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론 내칠 것이다. 뛰어난 계책이라도 은밀하게 이뤄져야 성공하고 새어 나가면 실패하게 마련이다. 누설할 의도는 없지만 대화하다 은연중에 흘리게 되면 목숨이 위태롭다. 관기사는 임금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누설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먹을 것도 없지만 버리기도 아깝다는 계륵(鷄肋)의 고사로 유명한 동한시대 양수(楊修·175~219)가 조조(曹操)에게 참수당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중국에서 마윈(馬雲) 전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당국을 비판한 뒤 행방이 묘연했다가 3개월 만에 시골 교사들에게 연설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문화혁명(1966~1976)기의 ‘하방’(下放·지식인 노동개조운동)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자 실종설과 구금설로 민심이 흉흉해진 데 따른 것이다. 중국에선 항용 있는 일이다. 마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상하이 와이탄(外灘) 금융포럼에서 당국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는 “국유은행이 전당포 영업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중국 금융시스템의 후진성을 질타했다. 마 전 회장에 앞서 ‘금융안정’을 강조했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최측근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의 체면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며칠 뒤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 앤트그룹 지배주주인 그는 앤트그룹 회장 등과 당국에 불려 가 일장 훈시를 들었다. 앤트그룹은 즉각 ‘반성문’을 써냈지만 당국은 앤트그룹의 상하이·홍콩 동시 상장을 전격 중단시켰다. 340억 달러의 세계 최대 기업공개(IPO)가 무산되자 알리바바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마 전 회장의 재산은 120억 달러 증발했다. 알리바바는 반독점 위반 행위로 조사를 받았고, 해체 위기에 몰렸다. 황금알을 낳는 온라인 대출사업을 중단하고 결제서비스인 알리페이 사업만 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앤트그룹의 날개가 꺾였다. 마 전 회장이 어떤 의도에서 당국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반골 기질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뉴욕증시에 상장한 글로벌 기업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인지 속내는 오리무중이다. 다만 그의 비판의 목소리가 2014년 알리바바의 뉴욕증시 상장 뒤 높아졌다. 상장 직후 “삶이 너무 피곤하다”고 고백했다. 당국의 국내 상장 회유를 뿌리친 대가가 아마도 ‘피곤함’으로 표현됐을 것이다. 당국은 백서까지 내며 알리바바가 가짜 상품을 파는 것도 모자라 불법 무기 거래마저 묵인하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반박에 나섰던 마 전 회장은 끝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중국에선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도자에게 말하기’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만큼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khkim@seoul.co.kr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톡] AI 기술은 사회적 책임 예외 대상일까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톡] AI 기술은 사회적 책임 예외 대상일까

    37년 전인 1984년,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SF영화가 개봉했습니다. 바로 ‘터미네이터’ 입니다.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고 인간은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을 이리저리 엮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이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AI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AI 관련 논의가 있을 때마다 터미네이터는 소환되곤 합니다. 1950년대에 AI 개념이 등장하고 오랜 잠복기를 지나 2000년대 들어 관련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기술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AI 기술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AI를 포함해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목적은 인류가 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레드우드신경과학연구소 설립자 제프 호킨스 박사도 ‘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라는 저서에서 “AI 같은 두뇌형 기계를 개발하는 것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인식하기 어렵고 빠르게 계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손쉽게 해결함으로써 인간의 감각과 지적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만드는 기술과 시스템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윤리적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2016년 ‘인공지능과 2030년의 삶’이라는 분석보고서를 작성한 미국 스탠퍼드대 ‘AI 100’ 연구단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범죄예방 프로그램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인공지능 기술은 알고리즘을 설계한 개발자의 편견이 개입할 수 있으며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도 크다”라고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 컴퓨터·커뮤니케이션공학과 연구팀 역시 AI를 활용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맞춤형 뉴스피드 알고리즘은 개인화되고 편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을 왜곡시키거나 편협하게 만들 수 있으며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기술의 최종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AI챗봇 ‘이루다’가 혐오표현 학습과 개인정보 노출 등 문제로 운영이 중단됐습니다. 이에 대해 AI 기술 고도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라던가 이번 사건이 혁신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던가, 기술 문제가 아니라 혐오 표현이 일상화된 사회가 문제의 근원라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그런 발언의 당사자들이 인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면에는 기술을 사용하는 사회와 대중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과학기술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기술의 가치중립성 논리가 숨어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은 환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과학기술은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은 대학 교수나 많은 연구비를 쓰는 연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과학기술과 혁신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인간이 소외된 혁신과 기술은 ‘야수’로 변하기 십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edmondy@seoul.co.kr
  • [씨줄날줄] 반다르아바스/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반다르아바스/서동철 논설위원

    반다르아바스는 호르무즈해협 북단에 자리잡은 이란의 군사·무역항이다.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1세(BC 522~486)가 인도로 출정한 항구가 이곳이다. 이후 해양 실크로드의 서쪽 거점 항구로 고대 한반도와의 교섭 통로 역할도 했을 것이다. 이란이 공해상에서 나포한 한국케미호를 이렇듯 유서 깊은 역사 도시에 억류하고 있다니 더욱 안타깝다. 이란의 해상 교역은 반다르아바스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그 동쪽 중심지는 중국의 광저우였다. 페르시아만에서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일대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바닷길은 7세기 무렵부터 활성화됐다. 오만 정부는 1981년 다우선이라는 이름의 상선을 재현해 이 바닷길을 재현하기도 했다. 이란은 당대 오만과 함께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중국 승려 의정(635~713)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도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 상인 ‘포세’와 아랍어를 쓰는 이란 상인 ‘타시’의 존재가 보인다. 의정은 바닷길로 광저우를 떠나 수마트라와 팔렘방을 거쳐 인도에 갔고 귀로에도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를 거쳤다. ‘대당서역구법고승전’은 인도로 구법의 길을 찾아나선 스님들의 전기다. 의정이 다룬 구법승 가운데는 신라 승려 9인과 고구려 승려 1인도 들어 있다. TV 프로그램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이란의 ‘쿠시나메’ 설화도 흥미롭다.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아랍의 침입으로 651년 멸망하자 민족 영웅을 다룬 페르시아 대서사시가 유행하는데 ‘쿠시나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사산왕조 왕자인 압틴은 중국을 거쳐 바실라로 망명해 그곳 공주 파라랑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이란으로 돌아갔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파리둔이 아랍으로부터 왕위를 다시 찾아온다는 스토리다. 여기서 바실라는 신라, 파라랑은 신라의 공주라는 것이다. 압틴과 파라랑이 신라에서 14개월의 항해 끝에 돌아간 항구도 당연히 반다스아바스였을 것이다. ‘아바스의 항구’라는 뜻의 반다르아바스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은 1614년이다. 아바스 1세(1587~1629)가 캄바라우라 불리던 이 항구를 포르투갈로부터 탈환하고 붙였다. 아바스 1세는 페르시아제국 이후 1000년 만에 이란인의 국가를 세운 사파비 왕조(1502~1736)의 부흥 군주다. 그는 수도를 타브리즈에서 육상 실크로드의 서쪽 거점인 이스파한으로 옮기기도 했다.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 신라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스파한이 ‘세계의 절반’으로 불린 것도 육상 실크로드는 물론 해양 실크로드를 거쳐 반다르아바스로 들어온 문물이 한데 모인 국제도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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