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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대표적 화가50인 작품 한자리에/「코리안 평화미술전」열린다

    ◎8일부터 일 오사카시 매일신문 오팔홀 전시장서/지난해 10월 동경전이어 두번째… 2백여점 출품/작품 비교보다 동질성 회복위한 「문화만남」으로 남한의 화가 25명과 북한의 화가 25명이 이념의 장애를 넘어 한 전시장에서 오늘의 한국미술을 선보인다. 8일부터 13일까지 일본 오사카시 매일신문 빌딩내 오팔홀 전시장에서 열리는 「코리안 평화미술전」. 예술기획사 동현아트(대표 김동현)가 지난해 10월 도쿄전에 이어 두번째로 마련한 이 만남의 장은 남북한 비교의 차원을 넘어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를 기대하고 있다. 남한의 한국미술협회와 북한의 조선미술가동맹이 후원하는 이 자리는 양측의 출품작가 명단만으로도 오늘의 한국미술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한에서는 김기창 서세옥 민경갑 이종무 권옥연 박창돈 김형근 이만익등 동·서양화단의 원로와 중진은 물론 이두식 이숙자 황창배 이왈종 신명범 김수익 장순업 차일만 김일해 이원희등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화단의 중견등 25명이 출품하는 것. 북측에서도 「김일성상」계관인이며 인민예술가인 정영만을 비롯,이창 김춘전등 한국화를 그리는 조선화가와 역시 「김일성상」계관인인 인민예술가 홍성철과 김창길 임용진등 서양화에 해당하는 유채화 작가등 인민예술가,공로예술가 중심의 북한을 대표하는 작가 25명이 참여한다. 「정치적 사상성을 띠지 않은 순수한 예술작품」이란 단서가 붙은 출품작들은 모두 2백점으로 20만엔부터 수백만엔에 이르는 가격이 형성돼 판매도 될 예정이다. 지난해 도쿄의 「코리안 평화미술전」에 참가했던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오늘날 분단의 현실에서 남북한간의 미술수준을 비교해 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50년 분단에 따른 시간 및 공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의 목적에 부합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그런 점에서 지난해에도 그랬듯이 출품작들은 평면회화에 국한됐다.이를 발판으로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많은 문화의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주최측은 오사카전에 이어 일본 주요도시 순회전과 서울전도 기획하고 있다.한편 이 「코리안 평화미술전」주최를 위해 주최측과 참가작가들은 최근 통일원으로부터 「북한주민접촉」승인을 받았으며 동현기획 김동현대표와 한국미술협회 이두식이사장,원로화가 권옥연씨등 10여명의 남한측 대표들이 7일 현지에서 열릴 리셉션에 참가한다. 북측 참가명단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 국제기구·제3국 통해 이산가족 재회 지원/권통일부총리 본지회견

    정부는 올해부터 북한당국 뿐만 아니라 북한주민과의 접촉 기회를 질서있게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다. 권오기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1일 서울신문과의 특별회견에서 『남북회담이 열리면 최우선적으로 「이산가족 방문단」교환과 「이산가족 면회소」설치를 제의해 실현되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이산가족문제는 북한의 호응이 없더라도 국제기구 또는 제3국을 통한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등을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북간 교류협력은 여러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질서있게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제,『그러기 위해 다면적,기능적 정책 대안들을 개발해내고 학술·문화등 민간차원의 접촉과 교류가 활성화되도록 최대한 지원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권부총리는 또 대북 경수로 사업 비용분담 문제에 언급,『경수로 총공급비용과 우리의 분담액은 금년 하반기쯤에나 대체로 윤곽이 잡힐 것』이라면서 『경수로 비용의 적정분담과 재원조달 방식등에 대해서는 국회와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 국민적 합의로결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혀 앞으로 국회동의절차를 거칠 것임을 시사했다.
  • 통일정책/권오기부총리 인터뷰(올해 국정 이렇게)

    ◎“북 개방 등 체제변화 유도 힘쓸터”/북 주민 생활개선 포함 거시적 입장 중요/경수로 분담규모 국민적 합의 바탕 결정 □대담=황병선정치부장 분단 반세기를 막 넘기고 남북관계의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지고 있는 96년 새해를 맞아 대북 정책 관련부서의 좌장인 권오기부총리겸 통일원 장관을 만났다. 권부총리는 1일 서울신문 황병선정치부장과의 인터뷰에서 남북한 관계를 우리 전래의 설화 「콩쥐 팥쥐」로 풀어 나갔다.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한 올해 통일정책의 주안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우회적 답변이었다. ○통일 후유증 최소화 권부총리는 올해가 쥐띠 해인 점을 염두에 둔듯 『북한에는 팥쥐(당간부 등 기득권 계층)만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콩쥐(피억압자로서의 일반주민)들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했다.『팥쥐어머니(북한당국)와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콩쥐들의 상황을 시야에 넣고 북한정책을 펴나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어느 외국인에게 남북한 관계를 설명하면서 인용했다는 이 콩쥐 팥쥐 비유는 북한당국 뿐 아니라 북한주민들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그가 취임초 정의한 「복안」적 대북 정책 추진기조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한마디로 북한주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개선하고,통일 후유증을 미리 최소화하는 등 통일 이후까지 내다보는 거시적 통일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새겨질 수 있을 듯하다. -최근 식량난 등 북한내부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습니다.이같은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북한을 도와줘야 되는지,그들의 돌발적 행동을 걱정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경제가 저렇게 어려운 북한이 감히 어떻게 전쟁을 도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상식적 추론이 있는가 하면 그렇기 때문에 이판사판으로 전쟁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습니다.요컨대 북한 관찰자들의 공통언어는 「불가측성」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한 50년간 접촉하는 과정에서 북한체제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우리 나름의 선은 있습니다.올해도 정부는 한반도의 긴장을 푸는데 역점을 두겠습니다.그래서 북한이 안정 속에서 자발적으로 변화와 개방의 길로 나오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펼 생각입니다.물론 상대방이 우리 뜻대로 대응해주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지요. -잠비아 주재 북한외교관이 망명하는 등 탈북자가 속츨하고 있는 것과 관련,북한 내부정세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김일성 사후 군부가 득세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글쎄요.북한경제가 그렇게 어렵다면 군사비를 좀 줄여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군부의 입김이 강한 것 같기도 하고….그러나 김일성 사후 북한체제의 통제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일지 모르나 일부에서 얘기하듯 북한이 당장 무너질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또 최근 일련의 탈북사태가 관심을 끌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체제동요가 심화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불가측” 공통의견 -취임사에서 북한당국 뿐만 아니라 주민들까지 시야에 넣는 「복안적 시각을 강조했는데,종교·학술·문화·언론·체육 등 민간부문의 남북 교류를 확대시킬 방도가 있겠습니까. ▲잘 아시는 「콩쥐 팥쥐」얘기로 비유하자면 북한의 콩쥐(주민)들을 배려하는 정책도 많이 발굴해야 한다고 봅니다.우리가 북한에 무엇인가를 지원하고자 할 때 북한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투명성」을 말하는 것도 바로 그런 취지입니다. 남북간 교류협력은 여러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질서있게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따라서 다면적·기능적 접촉 확대 방안들을 개발해 내고 학술·문화 등 민간차원의 접촉과 교류가 활성화되도록 최대한 지원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해 남북교역이 3억달러에 이르렀는데 교역 뿐만 아니라 남북경협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은 없습니까. ▲지난해 우리가 일본·중국에 이어 북한의 3대 교역국이 되었습니다.또 대북 직접 투자의 물꼬도 텄습니다.앞으로 경수로 지원사업의 진전 추이 등을 봐가며 경협확대를 탄력적으로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그러나 남북경협사업은 사람과 재화가 함께 오가는 일이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만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경협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려면 당국간에 절차와 방법 등의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북한당국에 설득할 생각입니다.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미·일 등 국제사회의 시각과 우리 정부의 평가가 다르게 비쳐지고 있는데…. ○투명성 보장이 전제 ▲북한의 식량부족에 대해선 대체로 견해가 같습니다.하지만 북한정보가 명확치 않은데다 평가기준이 다른 탓인지 서방의 국제기구들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보는 반면 사회주의권인 러시아·중국은 다른 의견입니다. 정부로선 지난해 북한의 곡물생산량이 3백45만t인데 비해 올해 수요량이 사료·종자용을 포함해 6백73만t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북한당국이 「애국미」라는 이름으로 22% 정도 줄여서 배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올추수기까지 2백33만t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배급기준량 대로 하루 1만5천t을 배급하더라도 6월중순까지 지탱할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대북 곡물지원에 대한 정부의 원칙에 변화가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북한의 태도에 따라 검토해 볼 문제입니다.우리는 이미 북한의공식적 지원요청,한반도내 회담,대남 비방 중지 등을 요구해 왔습니다.국제사회의 대북 식량 지원도 북한주민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장기적 관찰 자세를 -대북 경수로 사업비용을 어느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우리측 재정분담 규모는 어떻게 될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경수로 총공급비용과 우리의 분담액은 금년 하반기에나 윤곽이 잡히리라고 봅니다.경수로 비용의 적정부담과 재원조달 방식에 대해선 국회와의 충분한 협의를 거쳐 국민적 합의로 결정해 나갈 것입니다.다만 앞으로 사업 추진과정에서 건설요원과 장비의 왕래에 대한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측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공세에 매달리고 있는데,우리측이 먼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제시할 수는 없을까요. ▲남북기본합의서 5조는 현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남북이 공동노력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현시점에서는 이미 합의한 사항부터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가 늦어지고 있어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김이 현재로선 당·정·군을 장악,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어 승계에 장애는 없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지 않습니까.올하반기쯤 북한에서 김일성 탈상절차를 밟는다고 하니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권부총리는 『남북관계는 스냅사진으로 보지 말고 비디오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때그때 한 국면만을 볼것이 아니라 장기적 연속적 시각으로 관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당장의 남북 경색국면도 통일로 가는 긴 여정속의 한 정거장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듯 했다. ◎북녘 변화 유도 어떻게 할까/경수로 이행사업 주민접촉 확대/「자유의 집」 개축,출입국 센터 활용 「접촉을 통해 북한체제의 변화를 유도한다」. 벽돌을 한장씩 쌓아가듯 상호 신뢰구축과 교류협력의 확대로 점진적,평화적으로 통일 대장정을 이룩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캐치프레이즈이다.우리측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오늘의 남북 현실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기도 하다. 권오기부총리겸 통일원장관도 북한의 태도변화 유도에 올해 통일원 업무 추진계획의 최우선 주안점을 둔다는 방침을 밝혔다.이를테면 종교·학술·문화·체육 등 남북간 각종 민간교류 지원 및 경협 확대 방침 등이 그것이다. 국제기구 및 제3국을 통한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 등 「이산가족 찾기사업」을 지원한다는 방안도 마찬가지다.이는 체제동요를 염려해 북측이 이산가족 교류를 거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 우회적 인적 교류 확대 정책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올들어 구체화될 경수로 사업 이행과정에서 남북주민간 접촉을 통해 남북간 해빙무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의 경수로 건설현장에서 우리 기술진과 북한 근로자들간의 접촉 과정에서 신뢰분위기를 구축,북한주민들의 대남 적대감 해소에 주력한다는 복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북한의 태도변화를 전제로 북한경제의 자생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중심으로 경수로사업 이외의 다른 「민족공동발전계획」도 구체화해 나간다는 입장이다.예컨대 북한의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키 위해 북한농업 생산 증대를 위한 우리측의 기술지원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북한이 남북경제공동위 가동에 호응하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다. 물론 이같은 방안들은 접촉 기회 확대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이같은 소프트 웨어들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기념비적 「하드웨어」 건설을 개시한다.지난 1월말부터 설계 공모에 들어가 오는 7월께 첫삽을 뜨게 될 판문점 「자유의 집」의 증·개축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연건평 1천5백평에 지하 2층,지상4층 규모로 오는 97년말에 완공될 이 건물은 앞으로 남북접촉과 교류가 활성화되면 「남북출입국종합관리센터」로 활용될 예정이다.남북 경협확대와 경수로 지원사업,미­북 연락사무소 설치등으로 남북은 물론 제3국인의 왕래가 잦아질 경우에 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옛건물이 완전히 헐리고 새로 단장될 「자유의 집」에는 ▲이산가족 면회소실 ▲남북 연락사무소 ▲통관­검역시설 ▲프레스센터 등이 들어서게 된다. 이에 따라 남북분단의 상징적 명소였던 흰색 팔각정 지붕을 가진,기존의 「자유의 집」은 오는 6월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지난 65년 우수 국산품 전시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어졌던 이 건물은 71년 적십자회담 연락사무소가 들어서면서 70년대 이후 남북접촉 장소로 25회 정도 이용된 바 있다. 그러다가 지난 89년 「평화의 집」이 준공되면서 이 건물은 사실상 용도가 폐기됐다.그러나 「자유의 집」은 바야흐로 본격적인 남북교류 협력시대 개막을 앞두고 올들어 새로운 면모로 거듭나게 되는 셈이다.
  • 단색화 「모노크롬」의 진수 재조명

    ◎현대화랑­70년대 대표작가 김창렬 등 15인전 기획/국제화랑­유럽등서 활약… 세 젊은작가 새모습제시 「모노크롬」.일반인에게 생소한 이 단어는 「단색화」를 지칭한 것으로 외국은 물론 한국 현대미술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던 미술유형이다. 전위의 무한한 혼재속에 고전적 평면회귀가 강조되고 있는 최근 세계미술계 흐름속에서 새해들어 국내 두 주요 화랑이 이들 「모노크롬」회화의 진수를 선보이는 자리를 차례로 마련한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갤러리현대가 올해 첫 기획전으로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전(2월1일∼25일)을 갖고,한 동네의 국제화랑이 국내외 젊은 작가 3인의 회화전 「표면과 이면사이」(3월12일∼4월2일)를 통해 새로운 「모노크롬」회화의 경향을 살필 수 있는 자리를 펼치는 것. 두 전시는 구상회화와 달리 단색화면위에 특별한 그림이 없어 일반인들에게는 아직도 이해가 힘든 「모노크롬」이라는 장르가 국내 미술계에서조차 이제 「고전」적 위치에 가 있는 현실이어서 관심있는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모노크롬」은 한국의 서양미술이 서구영향에 묻힌 50년대말 무정형의 「앵포르멜」과 60년대 「추상표현주의」를 거친 것과 달리 70년대 중반 우리 정신이 담겨진 회화로 꽃피워낸 장르. 단색화면위에 덧칠하고 긋는등 다양한 기법아래 탈속적 느낌으로 단아하게 창출된 한국의 「모노크롬」은 국내 서양화단의 거물급 작가들의 화폭에서 그 빛을 발했다. 현대화랑의 「1970년대…」전은 바로 이 한국의 「모노크롬」을 꽃피운 대표작가들을 내세운다. 출품작가는 한국 서양화단의 큰 맥을 이뤄온 박서보·정창섭·윤형근·김창렬·정상화·하종현·이우환·김기린·이승조·서승원·최명영·이동엽씨등 15명. 작가 박서보씨는 『우리의 모노크롬은 다색주의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탄생한 서구 모노크롬 회화와는 달리 동양정신에 바탕을 둔 자연관의 회복에 근원을 두고 있다』면서 흰색을 주조로 미묘한 느낌의 중간색을 사용하면서 조선시대 백자의 빛과 같이 우리민족의 정신을 표출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국제화랑의 전시는 한국과 미국,유럽이라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과거 모더니즘회화의 뿌리를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는 3명의 젊은 작가를 통해 새로운 「모노크롬」을 제시한다. 한국의 이인현(41),미국태생의 교포2세 바이런 킴(35),이탈리아태생의 유럽작가 루돌프 슈팅겔(40). 지난60년대 모더니즘 작가들이 추구했던 절제된 색과 기하학적 조형위에 현대적인 분석과 위트,아이러니를 담고있는 이들은 새 세대의 후기모더니스트로 불리운다. 형식면에서는 「모노크롬」을 탈피하지 않지만 그 위에 설명을 함축하는 매우 「개념적」이라는 점에서 70년대 우리 「모노크롬」 작가들과 다른 이들은 「형식 이어받기와 내용 새로 집어넣기」면에서 80년대이후 신개념주의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 작가들의 두드러진 경향을 보여주게 된다.
  • 전씨 “내란죄 추가기소 예상했던 일”/연희동·검찰 이모저모

    ◎전씨 “단식 않겠다” 건강회복 강한 의지/검찰 “특별법 적용안해 공소유지 자신” ▷전씨측 반응◁ ○…경찰병원에 34일째 입원중인 전두환전대통령은 23일 검찰에 의해 내란혐의로 추가기소된데 대해 『예상했던 일』이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병원측은 전했다. 전씨는 면회온 가족들로부터 추가기소 소식을 들은 뒤 『오는 2월5일 공판 때에는 하루종일 앉아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해야 할텐데』라고 말하는 등 건강회복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병원 관계자가 전언. ○…이날 상오 10시부터 10여분간 전씨를 면회한 부인 이순자씨와 재국씨 등 아들 3형제,이양우변호사 등도 『추가기소에 대해 위로의 말을 전했으나 전씨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차남 재용씨의 득남소식을 전해듣고 『장세동씨의 귀가조치에 이어 올들어 두번째로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는 등 흐뭇한 표정을 지었으며 『이제는 우둔한 짓(단식)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 ▷검찰측 반응◁ ○…검찰은 이날 공소장의 적용법조에 5·18특별법이 포함되지 않은 점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자 『특별법은 이 사건의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기능만 있을 뿐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며 『통상 시효를 규정한 법조항은 공소장에 기재하지 않는다』고 설명. 또 전직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군형법상 반란죄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5·18특별법의 위헌여부에 관계없이 이날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유지는 가능하다는 입장. 검찰은 내란의 완성시점을 최규하대통령 하야일에서 비상계엄해제일로 늦춘 점과 관련,『법원의 인정을 받을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수사검사가 확신 없이 어떻게 기소하느냐』며 자신감을 피력. ○…검찰은 기소된 8명의 죄목을 정하기 위해 그동안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돼온 5·17사건과 5·18사건을 별개의 사건으로 엄밀히 구분. 5·18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행위를 말하며 5·17은 이를 제외한 비상계엄확대부터 해제까지의 일련의 사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자에만 내란목적살인죄가 인정된다는 것. ◎전·노씨 등 재판 일정/「12·12」 「5·18」사건 병합심리/헌재 결정따라 일정 바뀔수도/비자금 사건은 공판일 달리해 병행심리 23일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제기로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가 맡은 사건은 5·18사건을 비롯,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12·12사건 등 모두 4건이다.하나같이 초대형 사건에다 관련 피고인만 해도 모두 26명에 이른다.재판부는 앞으로의 재판일정과 관련,몇가지 원칙을 세워놓았다. 우선 전·노씨 비자금사건은 피고인들이 서로 겹치지 않으므로 공판일자를 달리해 병행해서 심리한다는 것.노씨 비자금사건 3차공판은 오는 29일,전씨 비자금 사건의 첫 공판은 다음달 5일 열기로 이미 일정을 잡아 놓은 상태다. 재판부는 그러나 12·12와 5·18사건에 대해서는 전·노씨가 함께 관련됐고 성격상 분리할 수 없는 측면이 강해 두 사건을 병합해 같은 날 공판을 진행키로 잠정 결론을 지었다.두 사건의 첫 공판은 지난 18일 전씨측이 특별법에 대한 위헌신청을 낸 데 이어 전·노씨측이 두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라 헌법재판소의 판단 전에는 일정을 잡기 어렵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위헌여부를 최대한 빨리 결정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면 다음 달말이나 3월초쯤 첫 공판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헌재의 심리가 늦어지더라도 『위헌제청이 있을 경우 해당 소송사건의 재판은 정지되지만 긴급하다고 인정되면 법원은 선고공판 전단계까지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재판소법 42조에 근거,심리를 앞당길 수는 있다.그러나 검찰은 장세동전청와대경호실장 등 아직 기소되지 않은 12·12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헌재결정에 따라 기소여부를 판단할 방침이어서 재판부도 헌재의 결정을 끝까지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 이데올로기의 희생양 기구한 삶 오학증씨(압록강 2천리:21)

    ◎북한으로 피신… 강제송환돼 감옥생활 11년/79년 출옥후 개가한 아내 수소문해 재결합/독립군 출신 부친도 반동으로 몰려 개죽음 요령성 단동시 조선족소학교 아파트에서 신경질환으로 만년을 보내고 있는 오학증(64)선생은 기구한 운명을 산 사람이다.그 격변의 대륙에서 조선족 누구인들 정치이데올로기에 휘말려 모진 삶을 살지 않았을까만,그의 인생역정은 남달리 불행했다.그의 일생은 대륙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극의 드라마 그것이었다. 『제 아내와는 두 번을 장가 든 셈이디요.그래서리 아이들도 제대로 못 키우고….이자 나같이 사는 사람들이 다시 없도록 평안한 세상이 돼야 합네다.지난일들을 생각하면 다가 악몽이야요』 한 아내에게 두 번을 장가갔다는 말이 의아스러웠다.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는데,자신이 반우파로 몰려 감옥살이 하는 동안 아내가 살길이 없어서 한족 홀아비한테 개가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그가 1979년 1월 감옥에서 나왔을 때 아내는 이미 남이 되어 있었다.개가한 아내가 사는 곳을 수소문해서 한족영감에게 애걸복걸했다.그렇게 찾아온 아내다.그는 우파누명이 벗겨져 본래의 자리인 소학교로 돌아와 정년을 넘기고 지금은 학교가 내준 아파트에서 아내와 함께 다시 살고 있다. 그는 요령성 환인현 사전자 태생이다.부친은 평북 구성 사람인 오성오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1930년대 독립군 해산과 더불어 관전현 보달원에서 교편을 잡았다.해방이 되자 부친은 교장 자격으로 손수 학교를 꾸리면서 일본 메이지대 출신 전봉천을 초빙해와 같이 일했다.그무렵 팔로군이 보달원에 들이닥쳤다.그리고 나서 이내 미국식 현대무장을 갖춘 국민당 군대가 밀고 들어왔다.부친이 교사로 초빙한 전봉천은 국민당 편에 서서 한국교민회를 조직했다. 『제 부친께서는 장래의 시국을 예견하신 것 같았습네다.국민당에 붙어서 보달원에 출장온 전봉천선생에게 이런 말을 했디요.이 사람아 자중하게.국민당이 기세당당하게 왔디만 조만간 팔로군이 또 올 것이라고….아니나 다를까 1947년이 되면서 국민당이 꺾이고서리 농촌 전체가 공산당 일색이 되고 토지개혁을 착수했디요.나도 당시 아동단에 참가하지 않았겠습네까.팔에 빨간천을 두르고 목창 개지고 보초도 서고…』 ○통화사범학교 진학 오씨네 일가의 비극은 이 때에 닥쳐왔다.공산당은 국민당과 가까운 사이였던 부친의 독립군 경력과 반동 전봉천과의 관계를 문제삼았던 것이다.『아무개가 반동이다.죽이는 것을 동의하는?』라고 물으면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서슬 시퍼런 시대였다.부친은 공산당에 체포되어 몽둥이를 맞고 세상을 떴다.마을사람 김희묵은 빈농이었지만 억울하게 죽었다.옷을 깨끗이 차려입고 나온 통에 그를 부농으로 착각한 공산당이 조리질을 돌려 죽여버렸다. 그러한 상황이었으니 오학증선생의 어린시절은 불우할 수밖에 없었다.중학교 입학자격마저 잃었다.철저하게 계급을 따진 공산주의사회는 가갸 뒷다리도 모르는 빈농의 자식들 위주로 신입생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그러니 학교 꼴이 말이 아니었다.공산당도 할 수 없이 중학교 시험제를 채택하게 되어 어린 오학증에게도 중학입학의 길이 열렸다.밭에서 가을일을 하다 학교로 달려가 시험을 치러 홍광중학에 들어갔다.한국전쟁이 터져 거의가 지원군으로 나갔지만 나이가 어려 면제를 받고 통화사범학교에 진학했다. 사범학교 졸업이후 첫 부임지는 지금의 단동인 안동시 북광소학교.학교 당조직에서 자신이 중점 육성대상자가 될만큼 열심히 일했다.그러다가 1957년 반우파투쟁이 일어났다.교육정책을 바꾸어 한족과 조선족의 연합교육을 실시하는 바람에 교육의 질이 형편없게 떨어졌다.곧은 성질을 가진 오학증선생은 이를 시정해야 된다고 건의했다.그 건의가 화근이 되어 우파로 낙인찍힌 것은 물론 부친의 청산을 암암리에 보복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라는 모략까지 따라 붙었다. ○당국에서 이혼 강요 그에게 내려진 일종의 형벌은 혹사를 통해 정신을 바로잡게 하는 이른바 노동개조.월급은 취소되고 하루 1원57전을 받는 건축공사장에 끌려다녔다.1957년 1월에 결혼하고 신접살림을 차린 지 다섯달이 안되어서 일이다.비단공장에 들어가기로 되어있던 아내의 일자리도 취소되고 말았다.죽지못해 살기를 4년여 성상,1961년 우파 너울이 벗겨져 교사로 다시 복직되었다.그러나 비극은 끝나지 않고 1966년 문화혁명이 기다리고 있었다.그해가 중반에 접어든 6월22일 출근길에 자신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보았다.그러지 않아도 신경쇠약에 걸려있던 터라 병원진단서를 붙이고 학교를 쉬었다.그런 어느날 학교에 들어온 군대표로부터 중요한 일이 있으니 다음날 학교에 꼭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아무래도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날 관전현으로 올라가 압록강을 건넜다.북한으로 탈출한 것이다. 그가 북한으로 도망친 것을 눈치챈 학교는 이를 당국에 고발했다.곧 북한당국에 연락되어 1주일간 신의주에서 구류를 살았다.그리고나서 중국으로 강제송환된 그는 15년형을 받았다. 『아내가 감옥으로 면회를 왔습데다.아들 둘 하고 세 돌이 난 딸애를 업고 왔디요.철딱서니없는 어린 딸이 제가 먹던 싸구려 과자를 쥐고 쇠창살 사이로 넣어주는데 고만 눈물이 쏟아집데다.두번째 면회때는 아내가 혼자와서 이혼을 제기하길래 거절했더니 대성통곡을 하고 애들의 앞날을 봐서리 이혼해달라는 것이었디요.그후에 감옥소 소장이 저를 대신해서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 강제 이혼하고 말았수다』 아내 김성란(61)씨도 평북 벽동 사람이다.시집을 가면 죽어도 그 집에서 귀신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터라 도리를 모를 까닭이 없었다.아이가 학교에 가면 새끼반동이라고 따돌리고 당국에서도 이혼을 강요해 별 도리가 없었다.막상 이혼을 하고 났더니 문화혁명 이후의 관행대로 산골로 내몰았다. 열세살과 일곱살짜리 아들.세살짜리 딸과 함께 내팽개쳐진 곳은 한족들만이 우글거리는 봉성현 백기공사산하 지리대대.살길이 아득했다. 그의 아내는 고생으로 살아서인지 나이보다 훨씬 늙었다.남편옆에 앉아 훌쩍훌쩍 울기를 여러차례하고 나서 겨우 말문을 열었다.그 표정은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한 것이었다. ○신경질환으로 고생 『제가 못된 여편네디요.아이들 하고 죽지 못해 한 일이디만….기래도 두 해를 버티다 한족 홀애비 백국영을 만나 재혼했습네다.저녁이면 아이들을 재워놓고 한참씩 울다가는 한족 영감옆에 누어잤디요.그런데 11년만에 무죄석방된 저 양반이 그 산골을 찾아왔디 뭡네까.저는 간염에 걸려 다 죽어가는 터디였디요.저 양반이 하루를 살더라도 복혼하자고 그럽데다.저도 한 마음이었수다.한족 영감도 인생들이 가여웠던지 저를 놔 주었디요』 그들이 재결합한 지도 어언 19년이 되었다.이산부부의 후유증은 아물지 않아 자신은 신경질환을 앓고 큰아들은 뇌종양으로 병신으로 살아가고 있다.대륙의 몇차례 큰 바람은 이들 가족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었는지도 모른다.
  • 판문점 「자유의 집」 설계 현상공모/통일원/하반기 증개축

    통일원은 본격적 남북교류에 대비,올하반기에 증개축 시공에 들어갈 판문점 「자유의 집」에 대한 설계를 현상공모한다고 12일 밝혔다. 정부는 지난 65년 9월 준공한 연 86평 규모의 「자유의 집」을 연 1천5백평 규모로 증개축,남북연락사무소,남북이산가족면회소,남북적십자회담사무소,남북왕래지원시설등 다목적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통일원 남북회담사무국은 97년말에 완공될 이 건물의 현상공모와 관련해 오는 24일 판문점 건축현장에서 설계응모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한다. 설계 응모자 문의처는 조달청 공사관리과(593­5412).
  • 전씨 혼수상태 직전… 응급치료 시작/경찰병원 입원 이모저모

    ◎링거주사 맞고 의식 회복… 단식중단에 눈물 국립경찰병원에 입원중인 전두환 전대통령이 29일 혼수상태직전까지 건강이 악화됐다가 병원측이 응급치료에 나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전씨는 29일 새벽부터 말을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등 호흡곤란과 의식이 혼미한 증세를 보였다.병원측은 상오8시40분쯤 산소공급튜브를 코에 착용시키고 링거주사를 투여하는 등 응급치료를 시작. 응급치료가 시작된뒤 전씨는 상오 1차례 심한 설사를 한뒤 하오부터 의식을 회복했으나 거동을 제대로 하기는 힘든 상태. ○…이에 앞서 전씨는 28일 하오4시쯤 심한 복통과 호흡곤란증세를 보였고 저녁에는 2차례 심한 설사증세를 동반. 이에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는 담당검사인 홍만표 검사를 하오6시35분쯤 병원에 급히 보내 치료대책을 협의. ○…전씨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병원 이권전 진료1부장은 『전씨가 29일 상오 잠시 혼수상태직전에 이르러,혼수상태에 빠지면 회복에 큰 문제가 야기될 것으로 판단해 응급치료를 했다』면서 『하오부터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 이 부장은 『전씨가 28일 마신 쌀뜨물을 검사한 결과 세균이 검출됐다』면서 『이 때문에 전씨가 설사와 탈수상태에 빠졌고 이것이 실신의 원인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 ○…전씨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링거주사를 맞음으로써 전씨의 단식은 사실상 중단됐다는 평. 병원측은 『전씨가 평소 링거주사를 맞으면 단식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고 전언. 이 때문에 전씨의 링거주사 투여에는 전씨 가족및 측근은 물론 전씨 자신도 동의했다고 병원측은 전언. 이와 관련,이진료1부장은 『전씨가 세균이 든 쌀뜨물을 먹고 혼미상태에 빠진 것이 오히려 단식을 중단시키는 전화위복이 됐다』면서도 혹시 전씨의 마음이 변해 계속 단식을 고집할까봐 걱정스런 표정. ○…전씨가 단식을 중단하고 건강을 회복하는데는 링거주사­끓인 쌀뜨물­미음­일반식이 순서가 될 것이라고. 병원측은 전씨가 하루정도 끓인 쌀뜨물을 먹고 빠르면 2∼3일 뒤 미음을 먹게 될 것이라고 설명. 한편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한관계자는 『가뜩이나 전씨가 입을 열지 않아 수사가 지체되고 있는데 건강에 이상이 있으니 수사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냐』며 난감한 표정. ○…전씨는 식염수 및 정맥주사를 맞은뒤 의식을 되찾고 『어이쿠,기어코 주사를 맞았구나.31일까지 단식을 하려했는데 설사때문에 뜻을 못이루게 됐다』라는 혼잣말과 함께 눈물을 보였다고 이진료1부장이 전언. 또 이날 하오1시50분쯤 전씨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2남 재용씨와 3남 재만씨는 4분간의 면회를 마친뒤 『아버지가 날씨를 묻는 등 말을 제대로 하는 것으로 미뤄 위기는 넘긴 것같다』며 안도.
  • 전씨 약먹기 시작/「5·18」­전씨 수사 이모저모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는 27일 광주 현장조사와는 별도로 5·18 관련자 3명을 소환해 조사하는 한편 전두환 전대통령이 입원해 있는 경찰병원에 수사팀을 보내 비자금 규모 및 내역 등을 추궁했다. ○…김성호 서울지검특수3부장은 이날 하오2시20분쯤 전씨의 비자금에 대한 조사와 관련,경찰병원으로 8번째 방문조사를 떠나기에 앞서 『전씨의 비자금이 3천억원 이상으로 확인됐느냐』『정치권에 유입된 비자금이 밝혀졌느냐』는 질문에 『아직 조사가 진행중이라 구체적인 규모를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 이종찬 특별수사본부장은 이와 관련,『전씨가 「골목성명」에서 밝힌대로 수사에 전혀 협조하고 있지 않다』고 전하고 『단식까지 하는 바람에 강하게 추궁할 부분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는 등 수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전씨의 태도에 불만을 표시. ○…검찰은 민주당 장기욱·박석무 의원 등이 지난 26일 전씨 비자금 수사의 참고자료로 전달한 제보내용을 검토한 결과 제보자들의 신원이 「40대 남자 성명불상」등으로불분명하게 기록돼 있어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모습. ○…이본부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광주 현장에서는 피해자만 조사하고 서울에서는 가해자를 조사한다는 이분법적인 시각이 있다』면서 『현지에서 필요하면 진압군측 관련자나 시민군측의 공격행위에 대해서도 조사할 수 있다』고 설명. 이본부장은 이어 『여론에 밀려 피해자의 일방적인 주장만 듣는다는 오해가 우려돼 현장조사 실시를 망설였다』면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수사원칙을 거듭 강조. ○…경찰병원에 수감된 전씨는 이날 상오7시쯤 소금을 첨가한 생수를 마신데 이어 식사 때마다 설탕을 탄 생수와 동치미국물을 마시는 등 음식물을 섭취. 전씨는 또 이날부터 병원측이 위점막보호제 등을 넣어 조제한 약도 복용하기 시작. 한편 이날 하오2시쯤 전씨의 둘째아들 재용씨와 막내 재만씨가 전씨를 5분동안 면회. 재용씨는 『아버지가 절을 할 때만 앉아 있었고 면회도중 내내 누워있었다』고 전하며 『건강히 악화돼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였으나 단식중단 의사가 전혀 없으신 것 같았다』고 설명.
  • 전씨 다시 생수만 마셔/검찰 “쌀뜨물 먹었다” 발표에 마음 상해

    ◎당분 등 필수영양소 든 보리차도 거부 「단식이냐,절식이냐」의 논란이 인지 하루만에 전두환 전대통령은 또다시 단식에 들어갔다. 전씨는 경찰병원 입원 엿새째인 26일 생수만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병원으로 옮겨진 뒤 마셔 온 당분이 섞인 보리차도 물리치고 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 25일 『전씨가 영양·혈관주사를 맞고 있으며 24일부터 고칼로리 영양분이 함유된 쌀뜨물을 마시고 있다』면서 전씨의 단식이 사실상 중단됐다고 밝혔다. 전씨가 이같은 검찰측의 「언론플레이」에 마음이 상해 본격적으로 단식에 재돌입했다는 해석이 현재로선 설득력이 있다. 이날 하오 전씨를 면회한 둘째 아들 재용씨는 『「쌀뜨물을 드셨냐」고 묻자 아버지는 「쌀뜨물이 뭐냐」고 반문하셨다』면서 『아버지가 어제 하오부터 당분 등 필수영양소가 든 보리차도 거부하고 생수만 드시고 있다』고 전했다. 병원측은 그러나 사실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병원측은 단식이 사실상 중단됐다는 검찰측의 발표에 처음부터 거부반응을 보였다.전씨가 경찰병원에 이송된뒤에도 음식물을 거부하고 있어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지난 3일부터 24일째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강진국 경찰병원장은 이날 『본인의 요청에 따라 전씨가 지금까지 3∼4차례 쌀뜨물을 마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쌀뜨물을 마셨다고 해서 단식이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씨의 현재 체중은 평소 74㎏보다 13㎏이 준 61㎏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병원이송 당시의 61㎏에서 60㎏으로 줄었다가 최근 1㎏이 늘었다는 것이다.혈압,맥박 등도 위험수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정상은 아니라고 병원측은 밝히고 있다.다만 전씨가 단식을 계속 고집,체중이 60㎏ 이하로 떨어지면 혼미상태 등 위험한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 3∼4일이 고비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 우성호 선원 오늘 판문점 통해 귀환/생존 5명·유해 3구 함께

    ◎가족면회뒤 북 행적 조사 지난 5월30일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나포당한 우성호선원 5명과 사망한 3명의 유해가 26일 하오4시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다. 우성호선원의 송환은 지난 22일 북한측이 방송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알려옴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정부는 이준구 남북회담사무국 연락부장을 단장으로 인수단을 구성,선원인수대책을 마련했으며 이날 하오 판문점에서 선원들을 북한측으로부터 인수받을 예정이다. 이날 송환은 사전에 당국간 연락관접촉이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특별한 절차 없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군사분계선상에서 유엔군사령부측과 북한군측간에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는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유엔사측으로부터 선원들을 인계받아 판문점공동경비구역 밖 남북회담사무국 전방사무소에서 선원들과 가족을 만나게 할 방침이며 이 자리에서 기자회견도 가질 예정이다. 정부는 가족면회에 이어 선원들을 적십자병원에서 종합건강진단을 받게 한 뒤 관계당국에 넘겨 북한에서의 행적을 조사할 방침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25일 선원들의 북한내 행적과 관련,『북한의 강요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선원들이 현행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환되는 선원과 사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귀환자명단 ▲생존자=김부곤(선장·34·인천 남동구 만수동 1048) 이병소(38·인천 남동구 구월동 1279의 18) 박재열(44·인천 중구 중앙2가 17) 윤경순(31·인천 남구 학익1동 91의 1) 김우석(36·경남 하동군 하동읍 비파리 611) ▲사망자=심재경(35·전남 여수시 남산동 350) 신흥광(37·인천 중구 중앙동 2가 17) 이일용(59·경남 마산시 합포구 산호2동 334)
  • 이순자씨 전씨 첫 면회/세 아들과 함께 “단식중단 권유하러”

    성탄일인 25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세 아들과 함께 전씨 구속후 처음으로 병실을 찾아 면회한 데 이어 전씨도 단식 23일만에 그동안 거부하던 영양주사를 맞았다. 이씨는 이날 재국씨 등 세 아들,그리고 민정기 비서관과 함께 상오 10시30분쯤 연희동 집을 나서 11시15쯤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에 도착해 전씨를 면회했다. 검은색 코트차림의 이씨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체 답변을 않고 재용·재만씨의 부축을 받으며 7층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민비서관은 이씨의 방문목적에 대해 『단식중단을 권유키 위해서』라며 『미결수신분인 전씨에게는 휴일면회가 이루어지지 않으나 가족 전원의 특별면회라는 형식을 법무부와 협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30여분정도 전씨를 면회하고 나온 이씨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고 재국씨는 『외조부 이규동씨(84)가 최근 건강악화로 쓰러진 것에 대해 전씨가 「오늘이 (장인 이씨의)생일인데…」라며 건강을 걱정했다』고 전했다. 한편 전씨는 지난 20일 밤 병원으로 이송된 이후 설탕·비타민·전해질·위장보호제·염화칼륨 등을 섞은 보리차를 하루 1천6백㏄이상 섭취한 데 이어 이날에는 단식후 처음으로 영양제주사를 투약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관계자는 『전씨가 고칼로리 영양분을 함유한 보리차 외에 영양제주사까지 투약받음으로써 체중감소현상이 중단되고 혈압과 맥박도 정상상태를 회복하고 있다』며 『전씨가 매일 흡수하는 정도의 영양분이면 다른 영양제나 음식물을 따로 공급하지 않더라도 건강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구속전 73㎏이던 전씨의 체중은 그동안 계속 감량현상을 보여 지난 23일에는 한계체중인 60㎏까지 떨어졌다가 이날 현재 61㎏로 다소 회복세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씨는 화장실도 혼자 다녀오고 가끔 일간신문도 본다』고 전했다.
  • 전씨 체력저하로 취침 늘어/경찰병원 입원 나흘째

    ◎링거주사… 식사 여전히 거부/건강엔 아직 큰이상 없는듯 전두환 전대통령은 경찰병원으로 이송된지 나흘째인 24일에도 링거주사와 식사를 여전히 거부하면서 단식을 계속했다. ○…병원측은 『전씨가 점차 정신적 안정을 되찾고 있으며 전해질을 섞은 보리차와 함께 비타민,위장보호 성분을 가진 알약을 복용하고 있다』면서 『현재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상태』라고 설명. 병원측은 또 『전씨가 불교서적과 신문을 보며 병원생활에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다』고 전하고 『다만 오랜 단식으로 인한 체력저하 탓인지 잠자는 시간이 늘었다』고 부연. ○…이날 상오 10시쯤 병원을 찾은 이양우 변호사는 전씨가 입원한 7층 병실에 올라갔다 온 뒤 『어른을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으나 「어른의 건강은 어제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전씨의 현황을 소개. 법무부측은 『전씨가 미결수신분이어서 안양교도소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휴일에는 일반적으로 면회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개진. ○…이변호사가 병원을 나간지 5분쯤뒤건장한 청년 5명이 조간신문뭉치를 들고 전씨가 입원해 있는 7층 병동으로 올라가 관심을 집중. 그러나 이들이 전씨가 입원해 있는 7102호에 배치된 교도관들과 근무교대를 하기 위해 찾아온 안양교도소 소속 교도관들로 확인되자 진을 치고 있던 보도진들은 쓴 웃음.
  • 검찰 5·18수사 이모저모

    ◎김종환 전내무 굳은표정으로 출두/전씨 “구속정지신청 절대 하지말라” 검찰은 전두환 전대통령 기소로 12·12사건 재수사가 사실상 일단락됨에 따라 22일 김종환 전내무장관을 필두로 5·18 핵심 관련인사들에 대한 본격 소환조사에 들어갔다.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김씨는 이날 상오 9시50분쯤 굳은 표정으로 검찰에 출두,사진촬영에 잠시 응한 뒤 조사실로 직행. 또 5·18 당시 국보위 법사위원이었던 우병규씨는 이날 상오10시15분쯤 검찰에 출두,『국보위 초창기의 멤버이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 왔다』고 소환된 이유를 설명. 우씨는 또 「전씨 구속기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인간적으로 안됐다고 생각하지만 공식적으로 말할 처지가 아니다』며 답변을 회피. ○…경찰병원 입원 이틀째를 맞은 전씨는 이날도 링거주사와 미음을 거부한 채 단식을 계속하고 있으나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 이날 상오 11시5분 전씨의 장남 재국씨는 병실을 찾아와 7분동안 병문안을 한뒤 『아버지가 냉수외의 음식물이나 링거주사 등 치료를 거부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누워있어 온몸 통증과 함께 약간의 현기증을 호소하고 있다』고 상태를 설명. 재국씨는 또 『기소된 사실을 알리자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알고 있다」고만 대답했다』며 『법무부 관계자로부터 하루에 20∼30분의 면회가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소개. ○…재국씨가 면회를 마치고 돌아간지 10분후인 낮 12시30분쯤 이양우 변호사가 병실을 방문,5분동안 면회를 마친 뒤 『구속집행정지 신청은 절대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변호사는 『말하기조차 힘들어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데 검찰의 방문조사는 무리』라며 전날 검찰의 장시간 방문조사에 불만을 표시. 한편 검찰관계자는 이날 『어제 장시간에 걸친 조사에도 불구하고 전씨의 건강에는 별다른 문제점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
  • 작가 박경리(이세기의 인물탐구:88)

    ◎삶과 문학에 당당히 맞선 “대지의 어머니”/암수술·사위구속 시련속 25년만에 「토지」 완간/인기영합 두려워 80년 원주 정착,은둔생활/「일본론」 집필 구상… 체험 바탕의 문학강의 큰 인기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바느질할 때 살아 있다/풀을 뽑고 씨앗뿌릴 때/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서쪽에서/빛살이 들어오는 주방/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나는 내가 죽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88년 「산더미 같은 「토지」에 파묻혀」 다른 잡사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 작가 박경리는 자신을 추스르고 위로받기 위해 시집 「못떠나는 배」를 낸 적이 있다. 그때까지 「토지」3부가 「열가닥의 씨올로 짠 피륙」이라면 4부의 무대는 「인간이 소모품으로 파괴되고 영혼과 육체가 참살되는 가공할 전쟁의 광란」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나락같이 깊은 내용과 엄청난 양감」으로 인해 어디서부터 소설을 허물어나가야 할지 망연자실하던 시기였다.그만큼 「토지」는 그를 비웃는 태산이었으나 내면의 아우성과 전진과 기록의 난무속에서」 그는 스스로 황폐해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천형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사마천) 「우리는 시시각각 자신과도 이별하며 살아간다」(매)는 무명 같은 시들을 남기게 되었다. 평소 「작품을 쓰는 일은 자기속에 있는 악과의 싸움」이며 「쓰기 때문에 살아 있고 살아 있으면 써야 한다」는 그는 「진실을 위해 생명을 버림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성서의 잠언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사잊고 창작 몰두 이른바 한번 쓰기 시작하면 세사와의 접촉을 일체 끊고 몇년이고 칩거하여 창작에만 몰입하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그는 본래 투명하도록 맑고 연약한 인상이지만 「운명적으로 맡겨진 역할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똑바로 해내는 동안 「못 하나 박는 일」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강인한 성격이 되었다.또 어떤 탁류에도 휩쓸리지 않으면서 만약 작은 상처를 입더라도 이를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줄 아는 섬광의 혜지를 타고났다.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외롭고 참담한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견고해졌다고는 하지만 그에게선 끈질긴 여인의 일면이나 풍상에 시달린 마모의 기색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신기하다.오히려 작가로서 준열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여 「독자에게 영합하려는 붓을 깊이 경계하고」 약자에게가 아니라 강자를 향해 안으로 도도하고 마음속으로 굽히지 않는다.그런 그를 시인 정현종은 「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독한 사람에 틀림없는 것은 한 작품에 25년간이나 매달린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파악된다.남들은 5년에 한번 쓸까말까한 장편을 58년 첫장편 「애가」와 59년 현대문학에 「표류도」 연재를 필두로 「내마음은 호수」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등 어느때는 1년에 두편이상을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처럼 끊임없이 집필하고 있었고 문학지에 발표해온 중단편이 그때마다 평자들의 호평에 오른 것은 작가가 정교하게 책임진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토지」1부를 쓸 때는 암으로 오른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고 2부때는 사위인 김지하시인의 구속사태로 가족이 온통 고통을 겪으면서 그의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던 외손자 원보(군입대중)를 등에 업고 구치소 면회를 다니던 정릉시절이 눈에 선연하다. 「어찌하여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가중되는 망상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나는 주술에 걸린 죄인인가」 그러나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거나 도망치지 않고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삶과 문학에 그는 언제나 정면대결로 마주서 있다.그리고 구약의 욥이 가산도 자식도 다 잃고 악창에 시달려 환부에 흐르는 고름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면서도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고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내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악마의 시련을 신앙으로 극복한 의인의 발아래 진심으로 무릎을 꿇고 싶어했다.이 자세는 고통과 의지의 절대세계라고 할만한 작가의 구도적 혈흔이 선명히 와닿는 육성으로 그의 문학을 논할 때마다 인용되어지는명문이다. 그는 사람이 행불행을 수월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 「때론 노여움을,때론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무궁무진한 인생의 심층을 상식으로 가려버리려는 것이 비겁」하기 때문이다.또한 「그렇게 분류되는 불행,그렇게 가치지어지는 행복이라면 실상 그 어느것과도 나와는 별인연이 있을 성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외면해버린다. ○7백여평에 농사 지어 그의 주장은 작가의 선민의식을 시속기로 천시하여 「작가는 철저한 에고이스트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그래서 「토지」3부를 끝내고 「인기라는 물결로부터 자기가 썩고 있는 일에 빗장을 지르기 위해」 80년 아무런 연고지도 아닌 원주시 단구동에 정착,정릉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흙을 주무르고 나무를 가꾸고 온갖 새와 동물을 거두어 그의 7백여평의 드넓은 뜨락을 「억조창생」이 머무는 생명의 근원지로 만들어나갔다.그의 생명에 대한 겸손은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나 배추 한포기라도 갓난아기를 안듯이 정성껏 보듬고 나무를 꺾으면 나무에 깃든 생명이 피를 흘리며 슬퍼한다는 것을아는 심심상인의 경지다.철이 되면 고추를 따서 햇볕에 말리고 날씨가 궂을 듯하면 다시 방에다 군불을 때어 바짝 마른 고추를 하나하나 헝겁으로 닦아내는 그의 정성은 한시도 쉬지 않는 또 다른 창작의 일면인 것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겉보기엔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하는 것도 같고 인고를 타고난 것이나 아닌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의 노동은 수확의 기쁨을 아는 농부의 그것일 뿐 그에게 있어 일이란 삶의 확인이자 생명의 신비와 경이에 대한 외경의 표현이다. 이제 그는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의 자신과의 언약에서 결국 「도전함으로써 비약」했다. 따라서 「토지」는 그의 대명사이자 분신 이전에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찬란한 광망」을 그었으나 「진실은 내 심장속 깊은 곳에 유폐되어 영원히 침묵한다」고 그는 심상한 의미를 예감시키고 있다. 「토지」 이후 그는 연세대 강의 외에 일간지에 시론을 쓰고 일본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한 일본론을 구상중이다.특히 그의 문학강의는 어디선가 읽은 듯하거나들은 듯하거나 한번 들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생한 체험이 말마다에 살아 있어 대학생 사이에서 명강의로 소문나 있다. ○내년 봄 매지리로 이사 요즘은 단구동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는 바람에 그가 살던 집이 헐릴 위기에 있었으나 토지개발공사의 배려로 「박경리기념관」으로 남게 되었고 그는 이른 봄쯤 연세대 원주캠퍼스가 있는 승업면 매지리로 이사할 예정이다.아마 그때도 그는 농부가 될 것이다. 글 한줄도 쓰지 않으면서 「작가」를 자처하는 사람은 많다.글 한줄도 쓰지 않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쓰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문단의 수많은 모임에서 사교적인 활동만으로 문인을 빙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모든 허세는 작가 박경리 앞에서 무색하다.작품의 질이나 분량에서 이미 남에게 비교될 수 없는 그를 두고 「모든 찬사는 미흡하다」는 문단의 평은 옳다.그의 손은 농사 외에도 바느질과 그림과 나무를 조각하고 돌담을 쌓느라고 거북등처럼 갈라졌으나 그의 미소는 작가의 웃음이며 그의 글은 단한번도독자를 배반하지 않는다.범접할 수 없는 결곡한 기상,금과 옥을 품은 거대한 푸른 산 같은 그 앞에 서면 왠지 작아지고 부끄러워진다는 최일남의 말은 한치의 과장 없이 모든 사람의 공감을 산다. □연보 ▲26년 경남 충무 출생 ▲45년 진주여고 졸업 ▲55년 단편 「계산」 「흑흑백백」 김동리 추천(현대문학)데 뷔 ▲58년부터 장편연재 「애가」(민주신보) 「표류도」(59년 현대문학) 「내마음은 호수」(60년 조선일보) 「노을진 들녘」(경향신문) 「가을에 온 여인」(62년 한국일보) 「파시」(64년 동아일보) 「타인들」(67년 주부생활) 「겨울비」(여성동아),69년부터 대하소설 「토지」1부(현대문학) 연재시작,「죄인들의 숙제」(경향신문) 「창」(70년 조선일보) 「단층」(74년 동아일보) ▲80년 원주시 단구동 정착 ▲84년 한국전후문학 30년 「최대의 문제작」으로 「토지」 선정 ▲86년 북경 연길 백두산여행 ▲90년 프랑스어판 「토지」(파리 벨퐁출판사)출간,중국기행 ▲91년 연세대원주캠퍼스 객원교수 ▲94년 민족사에 길이 남을 걸작 「토지」전5부 16권 완간(도서출판 솔),이대 명예문학박사 「김약국의 딸들」(62년 을유문화사) 「내마음은 호수」(63년 신태양사),단편집 「불신시대」(63년 동민문화사) 「시장과 전장」(64년 현암사),수필집 「거리의 악사」(77년 민음사) 「Q씨에게」(79년 풀빛사) 「박경리문학전집」전34권(79년 지식산업사) 「토지」사전(93년 도서출판 솔),시집 「못떠나는 배」(88년 지식산업사) 「자유」(94년 도서출판 솔)등 60여권 현대문학상(57년) 내성문학상(61년) 한국여류문학상(65년) 월탄문학상(72년) 인촌문학상(90년)
  • 영양걸핍… 심각상황 아닌듯/전씨 병원이송 이모저모

    ◎영양제 투여 거부… “단식 계속” 의지/병원주변 경비 강화로 마찰 속출/이순자씨 백담사서 예불중 급거 상경 전두환 전대통령은 단식 18일째인 20일 밤 11시40분 안양교도소를 떠나 경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영양제와 수액투여 등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전씨는 검진결과 탈수증상과 영양결핍증세를 보이고 있으나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전씨의 소송대리인 이양우 변호사는 21일 『어른께서는 건강상태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수액주사를 맞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며 병원에 이송된 후에도 단식을 계속할 것으로 추정. 이변호사는 이날 상오 11시20분쯤 전씨가 입원중인 경찰병원 7102호실을 방문한뒤 『어른께서는 「나는 괜찮으니 신경쓰지 마라.링거주사는 안맞겠다」고 하셨다』고 전하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등 건강이 매우 악화돼 심각한 상태』라고 소개. 그는 전씨의 병원이송과 관련,『사전에 법무부나 검찰로부터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며 사전협의설을 일축. ○…이날 하오2시10분쯤 강진국(57) 경찰병원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전씨의 신체상황은 정상이며 병원으로 오기 전과 건강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강원장은 『미결수신분인 전씨는 법무부소관이므로 앞으로 모든 브리핑은 상·하오 2차례 법무부 공보관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 ○…법무부는 전씨의 입원실과 옆방인 7101호실에 각각 교도관 3명과 5명을 배치하는 등 철통같은 경계망을 구축. 또 경찰은 7층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와 비상구 5곳에 30여명의 전·의경을 배치했는가 하면 정문과 병원외곽,현관,응급실출입구 등에서 모든 출입자에 대한 검문검색을 실시. 이에 따라 간병과 면회를 위해 병원을 찾은 환자가족과 경비경찰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마찰이 속출. ○…지난 7일부터 백담사에 머물며 예불을 올려 온 이순자씨는 남편 전씨가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 낮12시40분쯤 서둘러 상경. 이씨는 이날 상오7시쯤 아침예불을 마친뒤 서울에 있는 둘째아들 재용씨로부터 병원이송소식을 전해듣고 홀로 생각에 잠겼다가 점식식사를 마치자마자 함께 예불을 올리던 전씨의 막내동생 점학씨와 함께 서울로 출발. 백담사측은 『전씨가 병원에 이송된 뒤에도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는 말에 이씨의 마음이 흔들린 것같다』면서 『짐을 그대로 두고 간 것으로 보아 조만간 다시 돌아와 예불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
  • 안현태씨 소환배경에 관심 집중/검찰수사·안양­서울구치소 표정

    ◎박철언 자민련 부총재 노씨 면회 눈길/“단식 전씨 건강 위태한 지경은 아니다” 검찰은 19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구속만기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기소준비에 나서는 한편 기소에 앞서 전씨 비자금에 대한 수사에서도 굵직한 「열매」를 따기 위해 안현태 전청와대경호실장을 급거 소환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검찰은 또 이날 국회에서 5·18 특별법이 통과됨에 따라 5·18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재수사 일정을 논의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하오 2시15분쯤 예정에 없던 안현태 전청와대경호실장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갑자기 출두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 안씨는 12·12와 5·18 당시의 뚜렷한 행적이 나타나 있지 않은 만큼 검찰이 전씨 비자금의 규모및 퇴임 뒤 운용하고 있는 비자금 잔여분 등을 조사하기 위해 전격 소환했을 것이라는 게 검찰주변의 지배적인 관측. 안씨는 그러나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된 조사를 받으러 나온 것 아니냐』『역대 청와대경호실장들이 모두 비자금 창구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딱잘라 부인. 안씨는 이어 『언제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느냐』는 물음에 『글쎄요』라고 얼버무린 뒤 전씨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이미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고 말하고 급히 조사실로 직행. ○…이에 앞서 하오 1시50분쯤에는 12·12 당시 육본 작전참모부장으로 신군부측의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던 하소곤씨가 출두,『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한 뒤 조사실로 이동. ○…18일 첫 공판을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간 노태우 전대통령은 평소처럼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는 등 공판 전과 다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법무부 관계자가 전언. 노씨는 재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돌아온 뒤 순두부찌개,오징어튀김,배추김치로 저녁식사를 했으며 이날도 감자국,두부조림,배추김치로 차린 아침식사를 들었다는 것. 그러나 식사 뒤에는 맨손체조를 하거나 불교서적을 읽던 습관과는 달리 한동안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기는 등 착잡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하오 3시20분쯤에는 박철언 자민련부총재가 노씨를 면회,눈길을 끌기도. ○…한편 안양교도소의 전두환씨는 이날로 17일째 보리차만 마시며 단식을 계속하고 있으나 건강상태가 알려진 만큼 위태한 지경은 아니라는 후문.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전씨의 건강이상설과 관련,『전씨의 가족 및 측근들이 상당히 수척해진 외관만 보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전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외부에 전했을 것』이라고 풀이. 검찰 관계자도 이날 『전씨가 조사를 받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고 말해 심각할 정도의 건강악화설을 부인. 전씨는 이날 상오 이양우 변호사를 접견한데 이어 하오 2시10분쯤 석진강·전상석 변호사와 만난 뒤 아들 재용씨,민정기·송춘석 비서관 등과 면회.
  • 전씨 체력 급격 저하…병원 이송 검토/단식 16일째…교도소 표정

    ◎영양주사·의료조치 거부… 합병증 우려/눈 약해져 독서 못해… 탈수증세는 없어 안양교도소에 수감중인 전두환 전대통령이 18일로 16일째 단식을 계속하면서 체력이 급격히 저하돼 법무부와 교도소측은 일반병원 이송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교도소 주변에는 전씨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문이 한때 나돌았다.전씨가 영양주사는 물론 기본적인 의료조치도 거부,교도소측이 합병증을 우려해 병원호송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교도소측은 그동안 하루 두차례씩 계속해온대로 이날도 상오 10시에 몸상태를 검진한 결과 체중이 10㎏ 가량 줄었을 뿐 아직 크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전했다. 이날 상오에는 아들 재국씨와 재용씨가 교도소를 방문,내의 등을 전하고 돌아갔고 이양우 변호사도 교도소를 찾았다. 재국씨는 점심식사시간전 면회를 마치고 나와 『아직 병원으로 옮길 정도는 아니다』면서도 『그렇지만 눈과 귀가 크게 약해져 유일한 소일거리였던 독서도 못하고 계신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전씨는 면회전까지 내내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켜 의자에 옮겨 앉아 초췌한 얼굴로 『괜찮다』는 말만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전씨의 건강을 우려해 15분만에 나왔다는 것. 재국씨는 『매번 단식을 중단할 것을 권하지만 완강히 거부해 우리도 난감하다』고 말했다.이양우 변호사도 『목소리가 매우 작아져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말해 전씨의 기력이 떨어졌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교도소측은 전씨가 보리차를 어떤 때는 한번에 2잔씩을 마시는 등 물을 많이 마시고 있기 때문에 탈수증세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식전문가들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이 물만 마시고 단식할 경우 20여일이 지나면 혈압저하와 영양불균형으로 혼수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전씨는 그러나 추운 날씨와 스트레스로 그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앞으로 전씨의 건강상태가 더욱 악화되면 법원에 구속집행정지를 요청해 병원으로 이송할 계획이다.이 경우 경찰병원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 「12·12」·「5·18」 수사 이모저모

    ◎“최규하씨 조사불응 뾰족한 대책 없다”/“계좌추적 공표로 승부 불가피” 분석도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는 16일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방문조사가 무산된데 이어 최전대통령이 대 국민성명까지 발표하자 마땅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최전대통령의 성명이 발표되자 검찰은 『이제 검찰과 최전대통령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게 아니냐』면서도 『별로 뾰족한 대책이 없다』며 갑갑해 하는 분위기.더욱이 이날 검찰이 최전대통령의 예금계좌를 추적하고 있는 사실마저 공표돼 검찰과 최전대통령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대두. 하지만 검찰은 끝까지 최전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이나 자금추적 사실에 대해 함구해 최전대통령의 심기를 직접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검찰 관계자들은 『강제구인이나 내사 등 주변에 압력을 아무리 가해도 최전대통령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입을 모아 곤혹스런 입장을 표출. ○…이에 앞서 이날상오 최전대통령의 법률고문인 이기창 변호사는 서울지검 기자실에 들러 『검찰의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이 최전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이라면서 『최전대통령의 집에 번거롭게 오시지 말라고 검찰에 당부했다』고 전언. 이변호사는 특히 최전대통령이 신군부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한 민주당 강창성 의원의 발언과 관련,『보안사령관을 지낸 사람이 정치인이 되더니 권총으로 최전대통령을 위협했다는 주장을 한 김광해씨처럼 사실을 확인도 않은채 멋대로 말하고 있다』고 맹렬하게 비난. ○…최전대통령의 부인 홍기여사 명의의 예금계좌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사실이 이날 하오 알려지자 특별수사본부 주변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분위기.하오 1시30분쯤 기자들의 확인 요구를 받은 이종찬 본부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는 바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이본부장은 거듭되는 요청에 『알아보겠다』고만 답변하다가 지쳤는지 1시간30여분 뒤인 하오 3시쯤 청사 밖으로 피신. 한편 12·12 당시 국무총리였던 신현확씨는 이날 상오 9시50분쯤 여유있는 모습으로 검찰에 출두하면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려고 할 때 반대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뒤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말하고 조사실로 직행. ○…수감 2주째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은 16일 급격한 체력 저하와 함께 현기증 증세까지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낮 12시20분쯤 동생 재용씨와 함께 면회를 하고 나온 아들 재국씨는 전씨 건강에 대해 『말할 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발음을) 정확히 알아 듣지 못할 정도로 목소리가 작아지셨다』면서 『혈압도 낮아지고 어지러움 증세도 좀 있는 것 같았다』고 설명.
  • “5·18관련자 본격 소환 될것”/검찰 전씨수사 이모저모

    ◎5공 경호실과장 조사 이틀동안 숨겨/전씨 13일째 단식… 수사에는 잘응해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는 15일 헌법재판소의 선고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다 결정문이 나오자 『오히려 잘 됐다』고 안도했다. ○…최병국 대검공안부장은 헌재의 선고를 지켜본 뒤 상오 11시쯤 기자들과 만나 『헌재의 결정은 검찰의 「공소권 없음」처분이 잘못됐다는 견해를 소수 의견의 형식을 빌려 간접적으로 밝힌 것으로 여겨진다』고 소감을 피력. 최공안부장은 이어 『검찰이 국민적 여망과 특별법 제정 등으로 어차피 5·18사건에 대해 공소권을 발동해야 할 상황에서 헌재가 이같은 분위기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수사에 상당한 참고가 될 것』이라고 강조. 또 다른 관계자도 『소환 대상자에 대한 피의자 신문서 준비에 본격 착수했다』면서 『이제부터 5·18 관련자에 대한 본격 소환이 시작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 ○…전두환 전대통령의 계좌 추적에 나선 검찰은 전씨의 대통령 재직기간인 지난 81년부터 88년까지 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이었던 김종상(49)씨를 주목.한 관계자는 김씨를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관리인이었던 이태진 전경호실 경리과장과 똑같은 역할을 한 「제2의 이태진」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 검찰은 특히 김씨를 지난 14일 이미 소환,이틀째 철야조사를 벌이고 있으면서도 신병확보사실을 끝끝내 숨겨 김씨가 전씨 비자금의 윤곽을 모두 진술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무성. ○…13일째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전 전대통령은 이날 아들 재용씨만을 면회하고 곧바로 검찰의 4차 출장조사를 받았다. 이날 하오 전씨를 면회한 재용씨는 전씨의 건강과 관련,『몸무게가 10㎏ 이상 빠졌을 뿐만 아니라 혈압도 상당히 떨어지셨다』고 걱정. 한편 이날 안양교도소를 방문,4차 출장조사를 벌인 채동욱 검사는 『전씨가 계속된 단식에도 불구하고 말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어 수사에는 지장이 없었다』며 『지난번과 같이 질문에는 잘 응해 준다』고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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