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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SK家 (2)-2세경영

    손길승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쌍두 체제’로 포스트 재벌을 향해 순항중이었던 SK그룹은 2003년 2월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소위 ‘SK사태’로 불리는 일련의 악재로 오너가(家)인 최 회장이 전격 구속됐기 때문이다.2세 체제의 성공적인 착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비상벨’이 울린 것이다. 그러나 ‘카운터 펀치’는 이것이 다는 아니었다. 투기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경영권 탈취를 목적으로 그룹의 지주회사인 SK㈜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결국 ‘보스’의 부재와 채권단의 압박, 소버린의 흔들기는 ‘SK호’의 최대 위기를 가져왔다. 한 임원은 긴박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시민단체의 공격과 채권단의 위협, 소버린의 가세는 그야말로 내부 구성원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시중에는 그룹 해체설까지 나돌았습니다. 또 소버린의 지분 매입 의도는 최 회장이 보석으로 나온 뒤에나 대책이 세워질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할까. 산전수전 다겪은 최 회장은 ‘뉴SK’ 기치를 내걸고, 난제를 정공법으로 하나씩 헤쳐나가고 있다. 포스트 재벌을 지향한 지배구조 개선은 경영투명성과 윤리경영을 핵심으로 강도를 더 하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해 10월 SK㈜ 창립 42돌에서 밝힌 내용이다.“나는 재벌이라는 말이 싫습니다. 그룹이라는 말도 재벌이라는 지배구조에서 나온 것인데 그런 지배구조가 과거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을 이끄는 시스템입니다. 누가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독립된 각 기업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일을 추진하는 시스템을 가졌느냐는 것입니다.” ●경영 ‘대표선수’ 패밀리 4인방 “내 아들은 5명이다. 경영능력이 있는 대주주는 경영인으로 키울 것이다. 적임자라고 판단되면 아들이든, 조카든 가리지 않고 경영을 맡기겠다. 나는 자식들 누구에게나 밥상(경영권 승계 후보)을 차려주겠지만 먹은 것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최종현 회장) 최씨가에서 현재 SK 경영에 참여하는 인물은 최신원(53) SKC 회장과 최태원(45) SK㈜ 회장, 최재원(42) SK엔론 부회장, 최창원(41) SK케미칼 부사장 등이다. 최씨가의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2000년 8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그룹 승계자로 확정된 것은 1998년 8월 가족회의에서다.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자 최씨가의 차세대 5인방인 사촌 형제들이 모여 당시 최태원 SK㈜ 부사장을 그룹의 경영권 승계자로 합의했다. ‘패밀리 5인방’이 별다른 갈등없이 신속하게 후계구도에 합의한 것은 고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이 많지 않아 ‘뭉쳐야 산다’는 묵계가 있었기 때문.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과 기원씨는 아예 상속포기 각서를 썼을 정도였다. 또 연장자인 최윤원·신원 형제가 경영권에 욕심을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맏이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최태원 회장이 가족대표로 경영권을 승계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적극 유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 회장은 가족회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룹 회장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훗날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으로서 능력과 자질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SK그룹은 98년 9월 계열사 사장단회의격인 수펙스(SUPEX·슈퍼 엑셀런트의 준말)추구협의회에서 손길승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선임하고, 최 회장은 SK㈜ 회장직을 맡았다. 국내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파트너십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토론해서 분석하고, 협의해서 합의한다.’로 요약된다. 합리적이며,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최재원 SK엔론 부회장은 ‘파이낸싱’의 귀재로 통한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일본계 증권사에서 18개월가량 근무한 경력도 있지만 그의 진면목을 드러낸 것은 2000년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에서였다. 당시 신세기통신의 최대주주는 27.6%의 지분을 보유한 포항제철(현 포스코).SK가 이를 매입하려면 1조 70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최 부회장은 이를 SK텔레콤 지분 6.5%와 포철의 신세기통신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의 스와핑(주식 맞교환)으로 해결했다. 최 부회장은 미국 브라운대 물리학과, 스탠퍼드대 재료공학과 석사, 하버드대 경제학 석사 출신이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은 94년 선경(현 SK)그룹 경영기획실로 첫 발을 내디뎠다.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에 뛰어나다는 평이다. 특히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계열사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그가 96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을 때는 국내 최초로 명예퇴직제를 도입했으며, 쉐라톤워커힐호텔과 SK상사에서도 잇따라 명퇴를 통한 감량 경영 바람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그는 ‘구조조정 리베로’라고 불렸다. 특히 최 부사장이 계열사로 내려온다는 소문이 들리면 해당 임직원들은 긴장했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90년대부터 ‘나는 경영에 자질이 없다.’며 경영일선에서 한발짝 비켜섰었다.SK케미칼 회장 때는 아예 회장 결재란을 없애고,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일임했다. 사교와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그룹의 원로 경영인들을 많이 챙겼다고 한다. 우석대와 미국 엘론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2세 교육 “선친은 자식들이 결코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유학시절엔 용돈이 항상 부족해 가정교사로 뛰고,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한번은 중고차를 샀는 데, 이것도 어떻게 구입했는지 일일이 현지 지사장으로부터 자금 출처(?)를 확인 받기까지 했죠. 그리고 집도 제일 싼 곳에서 살아 일주일에 쥐를 40마리까지 잡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쥐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을지 연구까지 했답니다.” 차남인 최 부회장은 남들처럼 어렵게 공부했던 미국 유학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고 최종현 회장의 자식 교육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 최 회장은 자식들과 토론을 즐겼다. 주제는 사회·경제가 아닌 과학 분야. 가끔은 난센스 퀴즈와 같은 질문을 들이대, 자식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최 부회장은 “부친이 살아계셨으면 최근의 토론 주제는 아마도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관련됐을 것”이라며 “그 만큼 과학을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화학도’인 고 최 회장은 아들들은 모두 이과 전공을 권했다. 최종현 회장은 장남이 진학 문제로 고민할 때 “자신의 진로는 자신이 선택해라.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합리적 논리를 펼 수 있는 객관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 경제의 기본원칙은 ‘합리(合理)’다. 경제를 잘 알려면 ‘리(理)’와 관련된 분야로 물리나 화학, 생물 가운데 하나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장남인 최 회장은 문과 지망생이었지만 선친의 뜻에 따라 물리학을 전공하게 됐다. 최 부회장도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고 최 회장은 또 자식들에게 최종 학력만큼은 최고를 주문했다. 최 부회장은 “선친은 최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학은 아무 곳에서 졸업해도 괜찮지만 최종 졸업장은 최고 수준의 ‘학벌’이 필요하다.”면서 “그래야 최고가 뭔지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가 3세들은 ‘공부 중’ 최씨가의 2세들은 대부분 연애 결혼했다. 최 회장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만났다. 최 회장의 설명이다. “대학 테니스 동호회에 선수가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와이프를 적극 끌어들였죠.”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가 진척될수록 SK가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노 관장의 부친이 당시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 체육부 장관으로 정경 유착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친인 고 박계희 여사가 미국에 건너가 맏며느리감인 노 관장을 직접 살펴봤으며, 고 최 회장도 미국 출장중에 노 관장을 면담했다. 고 최 회장은 사돈인 노 장관이 대통령이 되자 임직원을 모아놓고 “이제부터 SK는 해외에서 사업을 벌일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 “조금이라도 정경유착이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경영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위의 이목속에 결혼한 탓일까. 부부간 ‘애정 전선’은 세간의 이목 이상으로 견고하다는 평이다. 한 지인의 얘기다.“최 회장이 2003년 ‘SK글로벌’ 사태로 구속 수감됐을 때입니다. 노 관장은 공판 때마다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1주일에도 세 차례씩 면회를 꼭 갔었어요. 당시 수감중인 최 회장은 노 관장의 생일에 사람을 통해 장미꽃을 전달하기도 했고요.” 최 회장과 노소영씨는 장녀 윤정(16)양과 차녀 민정(14)양, 장남 인근(10)군 등 1남 2녀를 두고 있다. 차남인 최 부회장과 채서영(41) 서강대 영문과 교수의 인연은 누이동생인 최기원씨 소개로 맺어졌다. 채 교수와 기원씨는 친구 사이다. 자녀는 2남1녀. 장남 성근(14)군과 장녀 원정(8)양, 차남 동근(6)군이다. 고 최윤원 회장과 김채헌(51)씨는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장녀 서희(28)씨는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 7월 평범한 집안 출신인 최성훈씨와 결혼했다. 최씨는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차녀 은진(22)씨와 3녀 현진(20)씨, 장남 영근(18)씨는 모두 학생이다. 최신원 SKC 회장은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유진(27)씨는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다. 차녀 영진(25)씨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장남 성환(24)씨는 중국 복단대에서 학업을 하고 있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과 최유경(38)씨는 장녀 경진(8)양과 장남 민근(7)군을 두고 있다. 모두 초등학생이다. ●‘SK호’ 이끄는 전문경영인 조정남(64) SK텔레콤 부회장은 SK텔레콤의 기술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은 ‘산파’로 통한다. 또 ‘CDMA 전도사’라 불린다. 조 부회장이 밝힌 1995년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의 개발 성공 일화다.“당시 손길승 부회장이 저에게 지속적으로 CDMA 성공 여부를 물어오셨지만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수천명이 동시에 통화를 시도할 수 있는 상업화 규모의 투자를 결심해야 하는 판국에 몰렸습니다. 그때 제가 손 부회장에게 ‘제게 400억원을 주십시오. 항상 물으시던 CDMA 성공 여부에 대해 확실한 답을 드리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손 부회장은 과감한 지원을 약속했고, 결국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라는 신화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조 부회장은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친근감이 넘친다. 자칭 ’리버럴리스트’로 말한다. 전북 전주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김창근(55) SK케미칼 부회장의 별명은 ‘마징가’다. 매일 서너 시간만 잠자며, 일에 매달리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으며 업무를 했다고 한다. 일처리와 관련,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 후계자로 불릴 정도다. 그는 마지막 구조본부장으로서 1974년 ‘경영기획실’로 출범한 SK 구조조정본부를 30년 만에 직접 ‘간판’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1974년 입사 이후 SK케미칼 외환과장·자금부장·재무담당 상무를 거쳤고,1997년에는 그룹 구조본 재무팀장을 맡는 등 SK를 대표하는 재무전문가다. 서울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신헌철(60) SK㈜ 사장은 소탈한 외모와는 달리 일처리가 꼼꼼하다는 평과 함께 노력형 CEO(최고경영자)로 불린다. 상고 출신으로 주판알만 튀기던 그가 이효석의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 때문에 대학 입시에 떨어지자, 아예 작품을 통째로 암기해 버릴 정도다. 그는 지금도 기분이 좋아지면 ‘메밀꽃 필 무렵’을 술술 읊어댄다. 신 사장은 본인을 ‘운 좋은’ CEO라고 평가한다.SK㈜ 사장도 운 때가 맞아 떨어진 것이지, 능력으로 뽑았다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겸손해한다. 신 사장의 얘기다.“최 회장으로부터 SK㈜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능력도 부족한 내가 맡아서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최 회장이 지금의 SK㈜는 ‘아버지’ 같은 CEO보다 상처를 보듬아주고, 이것 저것 챙겨줄 수 있는 ‘어머니’ 같은 CEO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CEO를 맡을)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그러나 ‘능력없다.’는 말과 달리 SK㈜는 신 사장이 CEO로 취임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매출과 수출, 순이익 면에서 역대 실적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신 사장의 운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신 사장이 1998년 5월 SK텔레콤 수도권본부장으로 일할 때다. 당시 서정욱 사장은 국제전화 식별번호 추첨식에 참가할 SK텔레콤 제비뽑기 ‘대표선수’로 신 본부장을 선택했다. 가서 모든 경쟁사가 희망하는 ‘00700’ 번호를 뽑아오라는 특명과 함께. 그런데 이 업무는 신 본부장의 직무와 전혀 상관없는 무선사업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임직원이 염원했던 대로 기어이 ‘00700’번호를 뽑아내는 기염을 연출해냈다. 신 사장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부산상고와 부산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과 대학원을 나왔다. 김신배(51) SK텔레콤 사장은 논리적이며 날카롭다는 인상을 주지만, 의외로 가사를 외운 팝송이 100여곡에 이를 정도로 감성적인 면도 적지 않다. 또 순탄하게 CEO까지 오른 듯 보이지만 이공계 출신의 기획통 CEO로서 만년 하위권이던 수도권영업을 SK텔레콤 지사 중 1위로 올려 놓을 정도로 ‘야전 경험’도 많다. 그는 당시 현장 직원과 친해지기 위해, 또 바닥권이던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매일 ‘술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그는 사석에서 “평소에 즐겨하지 않던 술이었지만 그때 마셨던 술이 그 전 동안 마셨던 술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신세기통신과의 통합작업을 2년간 잡음없이 해 낼 정도로 사업 조정 및 대인 관계에도 능수능란하다는 평이다. 그는 애창곡으로 분위기를 띄울 때에는 ‘오늘같은 밤’(이광조)이나 ‘골목길’(신촌블루스)을, 분위기를 탈 땐 ‘사랑이 지나가면’(이문세)이나 ‘사랑일 뿐이야’(김민우)를 부른다고 했다. 학창시절엔 팝송 100곡 정도는 가사를 안보고 부를 정도였다고. 김 사장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정만원(53) SK네트웍스 사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표적인 CEO다.2003년 그룹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태로 위기를 맞았을 때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장으로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이같은 활약 덕분에 SK네트웍스 사장으로 취임, 채권단 조기 졸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 사장은 21회 행시 수석 출신으로 1994년 통산산업부 과장에서 ‘SK맨’으로 변신했다. 그는 사령장을 받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관련 서적 40권을 구입했다고 전한다.95년부터 OK캐쉬백 사이트의 원형인 쇼핑몰을 구상했으며,OK캐쉬백과 그 사이트를 기획해 SK에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중앙고,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장석(50) SKC 사장은 오너가(고 최종건 회장의 둘째 사위)의 일원이지만 전문경영인으로 불리기를 더 좋아한다. 솔직함과 친근감을 바탕으로 강한 추진력과 빈틈없는 일처리 능력을 보유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CEO라는 평이다. 그는 1979년 ㈜선경 미주본부로 입사, 경영지원본부장, 관리총괄 부사장을 거치며, 방송·통신 장비업체인 SK텔레시스 인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서울고와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미국 스티븐스대 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golders@seoul.co.kr ● ‘맏형’ 최신원 SKC회장 “분가요?시기상조입니다. 여건도 성숙치 않았는 데 무슨 분가입니까. 지금은 형제간에 서로 협력해서 SK를 더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훗날 때가 됐다고 판단되면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것입니다.” 최신원(53) SKC 회장은 최근 재계의 이슈로 떠오른 ‘SK분가설’을 이렇게 일축했다. 이어 “형님(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이 돌아가신 이후 최씨가(家)의 맏이로서 형제간의 협력과 우애를 돈독히 하는 것이 저의 책무”라며 “이를 위해 형제간에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패밀리 미팅’으로 알려진 형제간 모임은 실상 집안 제사 행사인 경우가 많다. 또 해외 출장을 빼곤 형제들 모두 참석하는 것이 최씨가의 오랜 전통이다. 최 회장은 ‘음지’에서 동생들을 지원하는 소리없는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지난해 ‘소버린사태’로 경영권을 위협받았을 때 SK㈜의 대주주인 SK케미칼 지분을 확대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행동하면 불협화음이 나올 수 없어요. 사업이야 다들 알아서 잘 하니까. 또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서로 뭉치면 되고요. 선친과 숙부께서 상호신뢰 속에서 그룹을 키워오신 것처럼 우리 2세 형제들도 서로 협력해 SK그룹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키울 것입니다.” 최 회장은 또 “몸은 부실해도 부친을 닮아 통뼈”라며 선친인 고 최종건 회장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선친은 언제나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사실 죽으면 돈 갖고 갑니까. 살아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해야죠.” 그는 앞으로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했다.“제 소박한 꿈은 이렇습니다. 재단법인 ‘선경 최종건 재단’의 장학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입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한국에 영국의 ‘이튼스쿨’과 같은 명문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기술학교를 세워 선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최 회장은 “선친은 평소 교육에 열정이 대단했지만 일찍 돌아가신 탓에 실천에 옮기지 못하셨다.”면서 “선친의 이름으로 재산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국내 재벌가에서 보기 드문 해병대 출신이다. 부친이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해병대 입대를 권유했기 때문. 그는 이런 경험을 살려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었던 회사의 임직원은 반드시 해병대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해병대 CEO’로 불린다.CEO(최고경영자)로 나선 지 8년째인 최 회장은 신속하면서도 과감한 업무 추진력, 강한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이다. 이는 위기관리 능력으로 이어져 SKC 회장에 취임한 이후 한계사업의 과감한 철수와 정보통신 관련 사업 진출 등 적극적인 ‘턴어라운드’ 작업을 통해 SKC를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golders@seoul ● 최씨가 며느리·딸 ‘경영불참 불문율’ 국내 재벌가에서 며느리들을 경영에 참여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SK가(家)는 이보다 한 술 더 떠 딸들까지 아예 배제한다. 한 임원의 얘기다 “최종현 회장이 한번은 가족 회의를 열고 최씨가의 여성은 딸이든, 며느리든 경영 참여는 안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남자만 경영에 참여시키기로 한 거죠. 그래서 큰 집(최종건가)과 작은 집(최종현가)의 5남 5녀 가운데 ‘대표선수’ 5명(윤원, 신원, 창원, 태원, 재원)만 경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런 불문율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요.” 큰 집 조카들까지 포함해 10남매의 가장 역할을 했던 고 최종현 회장(그는 생전에 형의 3남 4녀와 자신의 2남 1녀를 합한 ‘5남 5녀의 아버지’로 자처했음)이 기업 경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며느리와 딸들을 경영진에 참여시키지 않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화 한토막. 최 회장이 병마와 막바지 씨름할 때였다. 하루는 저녁 식탁에 앉았는 데 큰 아들(최태원 SK㈜ 회장)이 보이지 않자, 큰 며느리(노소영 관장)에게 “오늘도 못 온대.”라고 물었다. 노 관장은 시아버지에게 어리광 부리듯 “네∼”라고 답했다. 이어 “요새 그 사람 얼굴 보기도 어려워요.” 그러자 최 회장은 무뚝뚝하게 “사업을 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니. 사업이란 장난이 아니다. 전력투구해야 한다. 사업을 위해서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최씨가의 맏며느리인 김채헌(51·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부인)씨는 최씨 2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집안 안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항상 소리 안나게 일을 처리한다는 평이다. 시동생 얘기다.“집안을 화목하게 하는 데 형수님으로서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하는 일은 없지만 애들도 어느 정도 커서 이제는 뭔가 해 보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시동생의 평은 이렇다 “워낙 말이 없고, 착하기만 합니다. 마음도 대단히 여리고요.” 노소영(4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최씨가의 며느리 가운데 가장 활동적인 편이며,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긴다.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예술쪽에 관심이 많다. 최태원 회장도 노 관장의 바깥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 지인은 “최 회장과 성격이 비슷한 데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대단히 합리적인 분”이라며 “서로 바쁘기는 해도 주말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며, 테니스를 치거나 요리를 하는 등 부부 금슬이 대단히 좋다.”고 설명했다. 시아버지인 최종현 회장은 큰 며느리를 어떻게 봤을까. “저래도 아이들 교육은 잘 시킨단 말이야. 제 시어머니(고 박계희 여사)를 닮은 데도 많고….”고 최 회장과 50년 지기인 언론인 홍사중씨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겉으로는 제법 쌀쌀하면서도 조금도 표리가 없고, 야무지게 집안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뜻으로 최 회장이 며느리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최재원 SK엔론 부회장 부인인 채서영(41)씨는 야무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집 사람이 좀 바쁘죠. 그래서 저는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가능한 한 골프를 치지 않으려고 해요. 집안 일은 좀 거드는 편인데…. 와이프 눈에는 많이 부족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만 쓰는 주방용 칼이 있으면 된 것 아닙니까.”라며 웃는다. 최창원 SK케미칼 부사장 부인 최유경(38)씨는 치과의사다. 개업을 않고 가끔씩 지인들 병원에서 일손을 거들고 있다. golders@seoul.co.kr .co.kr
  • “용기있는 멋진男 돼 온다더니… ”

    “용기있는 멋진男 돼 온다더니… ”

    19일 새벽 내무반 총기 난사로 아까운 목숨을 앗긴 희생자들의 ‘싸이월드’(www.cyworld.com) 미니홈피에 네티즌들의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건강했던 생전 모습을 찍은 사진과 여느 군인처럼 제대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어 보는 사람의 눈시울을 적셨다. 4만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다녀간 박의원 상병 미니홈피에는 제대일을 알리는 ‘2006.05.10’이라는 숫자와 군번줄 사진이 등록돼 있다. 올 4월 휴가 때 친누나와 함께 군복을 입고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공개해 보는 사람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박 상병의 지인들과 네티즌 1500여명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친구 태경식씨는 “인터넷 뉴스로 확인해 봤는데…네 이름이 있더라.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다니….”라며 애통해했다. “편지 많이 써줘요. 나 전화, 면회 안 되잖아요.”라는 글을 남겨둔 이건욱 상병 미니홈피도 이날 밤까지 1만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방문했다. 이 상병은 지난달 7일 자신의 미니홈피에다 “이제 살빼기 돌입!3개월간 노력해서 멋진 몸매 만들어 오겠음∼ 빠잇!”라며 평생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겼다. 이 상병의 친구 김민희씨는 “건욱아!이제 네 마지막 모습 보려고 친구들이랑 의정부 가련다. 많이 안 울려고 노력 중인데 어떻게 될진 모르겠구나.”라고 안타까워했다. 이태련 상병의 미니홈피에도 “용기있는 멋진 남자가 돼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주인을 잃은 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날 밤까지 6000명이 넘는 네티즌이 방문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김종명 중위와 조정웅, 김인창, 차유철 상병도 사고가 나기 전 미니홈피에 자신들의 소속 부대를 밝히고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올려 놓았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서로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방문해 방명록에 글을 남기거나 휴가 나간 전우의 안부를 묻는 등 돈독한 우정을 나눴던 것으로 보여 네티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날 사건소식을 접한 부모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재발방지 대책과 군내폭력 근절을 촉구했다. 강원도 양구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는 아들을 둔 이모(50)씨는 “숨진 김종명 중위처럼 아들도 학군단 출신이어서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면서 “아들이 오늘 외박을 나왔다 들어갔는데 부대에 가서 몸조심하고 부대원 관리에 각별히 신경쓰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Love & Wedding] 김대호·고수민

    [Love & Wedding] 김대호·고수민

    1995년 12월30일. 이듬해 1월로 예정된 입대를 앞두고 대학생활과 입대 전의 생활을 정리하고 있던 중, 예기치 못한 자리에서 발랄하고 귀여운 그녀를 만나게 됐다. 입대하기 전이라 그녀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아 마음을 비우자는 다짐을 했으나,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입대 일주일전 그녀의 “보고 있어도 보고싶다, 그러나…”라는 말에 가슴이 쓰라려 입대하는 날 새벽까지 잠 한숨 못 자고 고민하던 난 훈련소로 따라와준 그녀가 한없이 고마웠고 그리워졌다. 입대 뒤, 편지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을 키웠다. 그녀는 나와 4시간을 함께 있고자 10시간을 투자해 강원도 양구까지 몇차례나 면회오는 등 나의 군 생활을 뒷바라지했다. 그렇게 2년 2개월의 기다림과 사랑의 시간이 흘러갔다. 복학 뒤 캠퍼스 커플은 아니었지만 거의 캠퍼스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뒤 그녀의 대학원 입학과 나의 바쁜 회사생활로 서로가 지쳤던 탓인지 2002년 7년 동안 키워온 사랑에 위기가 왔고, 소중한 시간들이 묻혀버리는 듯했다. 결국 참기 힘든 2년간의 이별의 시간. 무수한 고민과 많은 아픔 끝에 결국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을 확인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별 전의 열정어린 사랑보다는 진한 정과 서로의 깊은 마음을 느끼며, 자신의 발전보다는 상대방의 발전을 기원했다. 또한 분위기 좋은 카페보다는 길커피를 즐기며, 외모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며 서로를 감싸안게 됐다. 만난 지 정확히 9년이 되는 2004년 12월30일 “만난지 3287일 기념 파티하자.”고 불러낸 그녀에게 난 추억어린 수십장의 사진과 사진마다의 편지, 그리고 목걸이를 전하며 “나랑 살자. 이쁘게 이쁘게 같이 만들면서 살자.”라는 프로포즈를 날렸다.2005년 6월16일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수민이와 대호는 또 하나의 삶, 그리고 하나의 긴 여행. 그리고, 서로의 꿈을 하나로 모아 정진해 나아가야 하는 그런 인생항로를 그리고자 한다. 꽃다운 대학 1년때 멋모르고 만나 오랜 연애 끝에 시집오게 된 우리 예비 아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주신 부모님, 예비 장모님께 무한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랑과, 많은 행복을 위해 달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그리고 이렇게 바로 오늘이 바로 우리 사랑의 시작임을 알리며….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50년 ‘목소리 인생’ 성우 고은정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50년 ‘목소리 인생’ 성우 고은정씨

    ‘목소리의 마술사’가 있다. 반세기 동안 격동의 현대사를 ‘목소리’ 하나로 관통했다. 질곡의 50년 세월속에 가느다란 성대의 떨림으로 감동과 추억의 파노라마를 무수히 연출했다. 타고난 ‘천(千)의 목소리’는 대중들의 가슴을 쥐락펴락했다. 암울했던 1960∼70년대, 라디오의 ‘연속방송극’과 ‘추억의 영화’ 등 무려 1000여편에 출연했다. 엄앵란 문희 남정임 정윤희 등 내로라하는 당대 여배우들의 목소리를 도맡아 ‘얼굴없이’ 많은 인기를 누렸다. 뿐만 아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권 주변에서 이꼴저꼴 다 보면서 연설과 다큐멘터리 대역(代役) 등을 해 흥미진진한 야화도 간직하고 있다. ●‘여자의용군 예술대’ 자원입대 고은정(70)씨.1954년 12월 KBS 성우 공채 1기로 출발,50년 ‘목소리 인생’을 걸어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12월과 올 4월 단막극을 직접 쓰고 출연까지 했다. 최근에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모호텔 정원에서 만났다. 먼저 해마다 6월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고 고백했다. 다름 아닌 6·25에 참전했던 것.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며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50년 11월 어느날. 수도여중 3학년 재학 중이었다. 학생들 사이에는 ‘국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고, 금방 통일된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고은정은 친구들과 모여 “서울고와 용산고 학생들도 학도의용군에 뽑혀 북진대열에 합류하는데 우리 여학생이라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며칠 뒤 고은정은 단짝 친구 3명과 함께 여자의용군에 자원입대했다. 훈련막사는 서울 충무로의 일신초등학교(현 극동빌딩 자리). 때마침 한성여고 밴드부와 동덕여고 무용반 학생들도 와 있었다. 가칭 ‘여자의용군 예술대’가 결성됐다. 고은정의 군번은 0995862. 훈련은 주로 아침 일찍 남산을 한바퀴 돌아오는 것이었다. 20일쯤 지나자 외출허가가 떨어졌다. 이때 가족들이 “난리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귀대하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러나 “어떻게 외출나왔다가 안 들어가느냐.”며 귀대했다. 그런데 동료 3분의1가량이 귀대하지 않았다. 남은 예술대원은 20여명. 이튿날 예술대원은 부산으로 떠나기 위해 겨울용 잠바와 담요 한장씩을 들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수백명의 남자군인 틈에 끼어 무개화차에 막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신성모 국방장관이 나타나 “왜 여자들을 지붕 없는 차에 태우느냐.”고 호통을 쳤다. 할 수 없이 다음날 별도의 트럭을 이용해 인천항을 거쳐 함정(LST)을 타고 3일 만에 부산항에 당도했다.(관련자료에 따르면 50년 9월 여군교육대가 부산에서 결성됐으며, 군부대와 병원 등의 위문을 위해 군악 및 예술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군번 0995862 육군 제대 부산에 도착한 예술대원은 영도초등학교의 임시막사에서 지냈다. 며칠 뒤 크리스마스 이브때 고은정은 면회 온 목사의 도움으로 십수권의 책을 장만할 수 있었다. 워낙 책을 좋아한 데다 병원위문을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숙소 앞에 ‘소공녀의 방’이라는 문패를 달았다. 그러던 51년 2월 부대에서 휴가를 다녀오란다. 딱히 갈 곳이 없어 지난번 도움을 받은 목사가 있는 대구로 향했다. 때마침 목사는 제주도의 피란민들을 위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고은정도 목사와 함께 떠났다. 도착했더니 돌아올 여객선 사정이 여의치 않은 데다 목사의 강력한 권유로 부대복귀를 하지 못했다. 고은정은 관계요로를 통해 이같은 사정을 전한 뒤 그해 2월 제주 오현중에 설치된 피란민학교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이와 관련, 고씨는 “얼마전 육군에 확인해 보니 군번도 있고 제대처리돼 있었다.”면서 당시 입대했던 친구들을 가끔 만나 추억담을 나눈다고 귀띔했다. # 에피소드 1. 74년 8월14일이었다. 영화 ‘맹물로 가는 자동차’ 더빙을 하느라 밤을 새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꿈을 꾸었다. 고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로 초청했다. 고씨는 의사 동생과 함께 갔다. 육 여사는 진작 보고 싶었다며 “조국을 위해 고생이 많은데 부탁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고씨는 “서울신문에 다니던 오빠가 필화사건으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걱정”이라고 했다. 고씨는 육 여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단골로 등장했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얼마만큼 잤을까. 일어나 방문을 열어 보니 아이들이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탕탕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TV 전원이 꺼졌다.8·15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영부인 피격사건’이었다. 이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육 여사 다큐멘터리에 더욱 많이 출연하게 됐다. 박근혜씨가 영부인 역할을 맡을 때 방송국으로 찾아왔다. 박씨는 “아버지는 고 선생의 목소리가 엄마하고 똑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 뒤 연말마다 청와대에서 금시계를 보내왔다. ●대통령 부인들과 자주 만나 # 에피소드 2. 5·16 직후였다. 동아방송에서 ‘천일야화’라는 대담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다. 하루는 김종필(JP)씨를 초청했다. 시간이 됐는데도 그가 오지 않아 찾아나섰다. 점퍼차람의 한 사람이 방송실 입구에서 “나를 찾는 겁니까.”하고 말했다. 인사를 하자 JP는 “고 선생은 골라쓰는 단어가 아주 달라요.”라고 했다. 인연이 돼 나중에는 JP자택에서 부인과 자주 만나게 됐다. “80년대 초반 민정당 창당대회 때 권정달씨의 부탁으로 봉두완씨와 사회를 같이 보게 됐지요. 이때부터 본의 아니게 정치 언저리에 맴돌게 된 것 같아요. 여성계 대표라는 명분으로 종종 청와대에서 이순자·김옥숙 여사와 식사도 했지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마침 우리 아들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었습니다.” 87년 대선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노태우 후보측에서 63빌딩에서 저녁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갔더니 이종찬씨도 함께 있었다. 노 후보는 목이 꽉 잠겨 있었다. 노씨는 “고 선생, 어떻게 하면 목을 살릴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이종찬씨는 달걀을 먹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고씨는 “소염제를 먹고 당분간 필담으로 대화할 것”을 주문한 뒤 연설 때 5만,10만 관중을 염두에 두지 말고 오직 자신 앞에 있는 마이크를 상대로 감동을 시킬 것을 권했다. 낮은 톤의 목소리가 오히려 장점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어 노 후보가 여성정책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자 “이제와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들 먹혀들지 않기 때문에 선거 때까지 애처가라는 소문만 잔뜩 퍼뜨릴 것”을 주문했다. 전직 대통령의 목소리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설득력은 있으나 노 전 대통령의 현대적 감각에는 뒤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10분 동안 113개의 언어가 틀릴 정도였는데 대통령에 당선돼 ‘우리나라에선 통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지만 발음을 비교적 정확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라고 했다. 고씨는 “스피치는 공인의 덕목 가운데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출강에 여전히 방송활동 고씨는 4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고흥숙.‘흥’자 돌림이다. 막내동생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고흥길(성남시 분당갑)씨. 오빠 고흥욱(72)씨는 청와대 출입을 오래한 기자출신으로 현재 LA에 산다. 얼마전 국제전화를 걸어와 “네가 죽었다는 소문이 났는데 무슨 일이냐.”고 뜬금없이 물어 “아냐, 길은정이 죽은 것을 보고 그러겠지.”하고 대답했단다. 어머니는 5남매를 남겨놓고 30대 나이에 요절했다. 새 장가를 든 아버지도 54년 교통사고로 일찍 명을 달리했다. 새어머니는 5남매를 친자식 이상으로 키웠다. 현재 94세로 분당 아들집에서 산다. 고씨 자신은 59년에 결혼, 이듬해부터 연년생으로 자식 넷을 낳았다. 함께 지내는 둘째딸(44)을 제외하곤 다들 결혼했다. 고씨는 5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해 고비를 맞았지만 요즘은 서울예대 장로신학대 출강과 극동방송에서 매일 10분짜리 방송 등을 하며 정열적으로 일하고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가족사를 쓰고 있어요. 여름방학 때는 밀린 대본을 완성할 예정입니다. 일생을 담은 모노드라마도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36년 서울 출생 ▲ 51년 제주 피란민학교에서 수도여자중학 졸업 ▲ 54년 수도여고 졸업, 숙명여대 영문과 재학시절 KBS 성우공채 1기 ▲ 56년 최초 연속방송극 ‘청실홍실’ 성우 ▲ 58년 연속방송극 ‘산너머 바다건너’에서 상하이 여자 ‘미라’역을 맡아 주목받음. ▲ 이후 ‘장희빈’‘고운정 미운정’‘왕비열전’‘대동강은 알고 있다.’‘불꽃의 소리’‘113수사본부’등 드라마와 영화를 합쳐 1000여편 출연. ▲ 77년 드라마 ‘대니할머니’당선으로 방송작가 데뷔. ▲ 97년 고은정언어예술원 개원 ▲ 98년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 2000년 방송위원회 위원,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장 ■ 방송극본 가을에 온 손님, 불모의 수령, 저녁노을, 사랑의 계절, 두고온 언니에게 등. ■ 소설작품 고운정 미운정, 위험한 체험 등. ■ 상훈 국민훈장동백장(2000년)
  • 시범운영 여주 민영교도소, 재소자 마음 열고 희망 심고

    시범운영 여주 민영교도소, 재소자 마음 열고 희망 심고

    국내 최초의 민영교도소 출범을 앞두고 경기도 여주교도소에서 지난 7일부터 재소자 34명을 대상으로 6개월 일정의 민영교도소 프로그램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시범 운영은 앞으로 민영교도소를 운영할 재단법인 ‘아가페’가 맡았으며, 재소자들의 일과는 종교활동을 위주로 짜여졌다. ●100여평에서 실험 중인 새로운 교정프로그램 민영교도소 시범운영 공간으로 꾸며진 곳은 여주교도소 한쪽 물품보관창고로 쓰이던 100여평이다.20여평의 작은 강의실 2곳과 비슷한 크기의 상담실과 사무실, 화장실 정도만 갖추어져 있다. 민영교도소가 완공돼 본격적으로 민간이 교도소를 운영하면 훨씬 많은 부분이 달라지겠지만 이번 시범 운영은 교육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곳은 일반 교도소와는 내부장식부터 다르다. 강의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난간에 일일이 꽃장식을 해놓았고 곳곳에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다. 창살이 달린 창에는 빨강, 노랑색 셀로판지를 붙여놓아 햇빛이 비치면 비오는 구름이 그려진 벽에 작은 무지개가 만들어진다. 강의실 벽도 한쪽은 초록색으로 칠해져 편안한 느낌을 주고 그 위에 결혼 사진, 어머니의 사진 등 가족사진들이 붙어 있다. “새로운 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갖기를….” “사랑을 베푸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강의실 한쪽에는 이런 참가자들의 희망이 빼곡히 적힌 노란색 메모지가 매달려 있다. ‘사랑’이라고 적힌 강의실에서는 ‘성경 인물탐구’가 한창이었다. 강의를 하던 박성실(48) 목사는 식곤증을 풀어주려는 듯 유머를 섞어가며 재소자들을 가르친다. 박 목사는 “우스운 얘기인데 웃지 않으시네요.”라고 말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한다. 다른 강의실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주제의 강의를 하고 있었다. 박 목사는 “재소자들이 마음을 열고 있고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날짜별 정직, 공동체 등 주제가 있는 프로그램 이번 시범운영에는 자원봉사자 80여명이 재소자들과 일대일로 후견인을 맺어 참여하고 있고 2명은 상근을 하고 있다. 상근 근무자 이상춘(66)씨는 “벽에 걸린 사진 하나도 재소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36년간 교도관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이씨는 “민영교도소가 설립되면 재소자들에게 체계있게 신앙을 가르쳐 탈선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월요일:책임성 ▲화요일:정직성 ▲수요일:인정 ▲목요일:사랑의 공동체 ▲금요일:공동체와 회복 등으로 주제를 바꿔 가며 진행된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재소자 34명은 지원자 50명 중 아가페측의 개별면접을 통해 선발됐다. ●과도한 종교색채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2003년 2월 아가페 재단과 법무부는 위탁운영 계약을 맺고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외룡리 일대 6만 5000평의 부지에 민영교도소 설립을 추진해왔다. 이곳에 형기 1∼7년,2범 이하의 재소자 500명을 수용할 계획이다. 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건립이 미뤄지다 최근 주민들과 아가페측이 건립에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 올 하반기쯤 착공해 2007년초 쯤 문을 연다. 일부에서는 민영교도소 운영방식을 놓고 종교색이 너무 강한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아가페측은 민영교도소가 본격 운영되면 일과시간에는 일반교도소와 같이 작업을 하고 종교활동은 일과시간 후나 일요일에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영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의 생활은 물론 면회 등 외부접촉도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아가페측은 기존과 다른 모양과 색깔의 수의도 디자인하고 있지만 법무부에서는 다른 재소자와의 형평성의 문제로 반대하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퇴역 수송기 타고 데이트?

    퇴역 수송기 타고 데이트?

    공군 제11전투비행단이 사용 연한이 끝난 수송기를 면회실로 활용해 인기를 끌고 있다. 제11전투비행단이 면회실로 활용하고 있는 항공기는 C-54수송기로, 지난 1987년 공군에서 퇴역한 뒤 그동안 대구어린이회관에 전시되다가 6개월간의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최근 장병 면회실로 변신했다. 수송기 면회실은 실제 비행기를 타며 데이트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카페처럼 꾸며져 있어 공군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음료수 판매대와 냉·온풍기가 갖춰져 있고,34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제11전투비행단 군수과장 윤봉구 중령은 “앞으로 반응이 좋을 경우 일반에게도 수송기 면회실을 개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펠레, 아들 마약혐의체포에 눈물

    |상파울루 연합|영원한 축구 황제 펠레가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된 아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7일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펠레는 이날 마약 전담 경찰서를 찾아 마약밀매 혐의로 체포된 아들 에딩요를 면회하고 나온 뒤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마약퇴치를 위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나름대로 사회를 위해 봉사해 왔는데 문제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며 울먹였다. 펠레는 “아들이 마약밀매에 관련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날 아들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말인 줄 알았다.”면서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을 후회하지는 않으며 아들에 대한 사랑도 여전히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펠레는 이어 “아들을 면회하면서 한참 울었다.”면서 “아들에게 죄가 있다면 당연히 처벌받겠지만 현재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만큼 아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로축구 산토스 클럽에서 골키퍼로 활약하기도 한 에딩요는 전날 아침 산토스 시내에서 경찰에 체포됐으며, 경찰은 에딩요 외에도 마약 밀거래 관련자 50여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에딩요는 경찰에서 “마약을 사용한 적은 있지만 마약밀매 조직에 가담한 사실은 없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어떻게 지내세요] 재소자 교화 25년 ‘사형수 대부’ 박삼중 스님

    [어떻게 지내세요] 재소자 교화 25년 ‘사형수 대부’ 박삼중 스님

    “재소자들을 위한 교화활동은 부처님과의 약속입니다.” 박삼중(74·부산 자비사 주지) 스님은 25년째 전국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교화활동을 해오고 있다. 재소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매스컴에 자주 소개해 한때 많은 관심을 끌었다. 또 스님의 끈질긴 노력으로 몇몇 사형수가 무기형으로 감면되는 등 ‘사형수의 대부’ 역할을 해왔다. 근황이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스님은 “바쁜데 부산까지 올 필요가 있느냐.”면서 전화로 한 시간 동안 얘기했다. 스님은 “이제는 되도록 외부에 알리지 않고 묵묵히 (부처님과의)약속을 지키고 있다.”면서 먼저 최근의 일화를 소개해 준다. “6개월 전 마산에서 딸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지요. 어머니도 사체유기를 방조했다는 죄목으로 함께 수감됐어요. 딸은 감옥에서 ‘제발 어머니만큼은 풀어달라.’고 눈물의 편지 수십통을 제게 보내 왔어요. 아들도 구명운동에 나섰고요. 딸과 어머니를 면회했더니 정말 사정이 딱하더군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형제 존폐논란과 관련,“사형수를 많이 만난 입장에서 보면 재판장도 오심을 하는 경우도 있다. 대법관으로 퇴임한 전직 판사도 ‘심리가 많다 보니 그럴 경우도 있었다.’고 고백할 정도”라고 말했다. 또한 “사형수 30명 중 1명 정도는 오심에 의한 희생자”라며 이럴 경우 재판부에서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박탈한 ‘사법살인’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며 사형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거론하면서 “사형수가 될 사람도 유력한 변호사들이 강력하게 변호하면 무기형으로 살아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금까지 300여명의 사형수를 만났다. 다시는 이 땅에서 사형수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흉악한 범죄가 없는 세상을 희망했다. 특히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둔 사형수들은 살아가는 모습이 깨끗하고 편안하게 웃는다.”면서 “그들은 짧은 여생이나마 후회없이 살려고 교도소 안에서 뜨겁게 봉사활동을 한다.”고 체험담을 전했다. 또한 “우리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지만 다들 사형수이며 다만 유예자일 뿐”이라면서 한 사형수는 ‘1000일 기도’를 하며 (죽음을)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경외스러움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유명 교복업체가 기증한 15억원어치의 교복을 전달하기 위해 베트남엘 갔었지요. 한 교도소에 들렀더니 죄수들이 기립박수로 열렬히 환영하더군요. 아울러 베트남 정부의 도움으로 현지에서 베트남전 당시 전사자들을 위한 천도제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해 영국의 한 교도소를 방문했더니 보안과에 여자교도관이 많은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면서 교도소측이 “우린 재소자들을 믿는다.”라고 설명해 더욱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건강관리를 묻자 “당뇨가 좀 있어 열심히 (교도소 등에)다닌다.”면서 늙을수록 일을 해야 살 맛이 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부산 왕상관기자 skwang@seoul.co.kr
  • ‘日패잔병 생존’ 오보인듯

    |도쿄 이춘규특파원|옛 일본군 병사 2명 생존설에 대해 일본 정부 차원의 1차 확인작업이 실패로 끝났다. 일본 정부는 향후 다른 방법으로 확인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에서 옛 일본군 패잔병으로 보이는 일본인 2명이 발견됐다는 정보와 관련, 마닐라 일본대사관은 30일 현지에서 직원들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했다. 최초 정보를 전한 중개자인 일본인 남성(50대 후반)이 “(2명과의 면회) 날짜를 수정하고 싶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도 현지에 파견했던 직원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마닐라 주재 일본대사관은 파견 직원을 마닐라에 돌아오게 한 뒤 중개자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과 동시에 관련정보의 수집을 서두르기로 했다. 호소다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지 파견 직원은 일단 철수시키지만 가능성이 있는 한 본인과 면담해 확인할 수 있도록 계속 중개자와 연락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taein@seoul.co.kr
  • 日 경찰청장관 “한국이 북한정보 협력 안해”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한국과 대북 정보 공유 불가’발언 파장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가고시마(鹿兒島) 한·일 정상회담 직전 일본 경찰청 장관이 한국으로부터 정보협력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요지의 한국 비판 발언을 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우루마 이와오(漆間巖) 일본 경찰청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해 12월 16일 정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인 납치문제를 비롯한 대북 정보협력과 관련,“(한국이)협력해 주지 않게 됐다. 내가 김현희를 만날 때와 상당히 다르다.”고 밝혔다. 우루마 장관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한 이날 발언에서 한국 정부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고 전제하기는 했으나, 한국 당국의 대북 정보 협력태도에 대해 일본 당국의 수뇌부가 갖고 있는 인식과 강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경찰청측은 노 대통령의 방일 하루 전날 이같은 발언이 나온 점을 의식한 듯 일부 일본 언론에 대해 기사화 여부를 확인하고 “한국정부를 비판할 의도는 없으니 신중하게 다뤄 달라.”는 등 민감하게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루마 장관의 대한(對韓) 비판 발언은 교도(共同)통신이 보도했을뿐 다른 일본 언론은 일절 다루지 않았다. 교도통신은 이날 내보낸 기사를 통해 “경찰청은 한국에 있는 탈북자와의 면회를 희망하고 있으나 실현되지 않고 있다.”면서 “배경에는 북한에 배려하는 한국정부의 ‘햇볕 정책’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우루마 장관의 발언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으나 이런 발언을 즉각 본국에 보고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우루마 장관은 일본 경찰청 외사1과장 시절인 1991년 한국을 방문해 대한항공 폭파사건의 김현희를 면회한 뒤 북한의 일본어 교육담당인 ‘이은혜’가 피랍 일본인인 다구치 야에코(실종당시 22세)인 사실을 확인한 인물로 전해져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씨줄날줄] 영 창/우득정 논설위원

    군에 갔다온 사람이면 “저 ×× 영창보내.”라는 말이 얼마나 살벌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옛말에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혹독한 훈련과 고참의 가혹행위도 영창에 비하면 그래도 ‘인간적’이다. 누가 만들어냈는지 모르지만 입소문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사단 헌병대 영창에 끌려가면 그 순간 계급장이 떼어지고 눈앞에 수많은 별들이 난무할 정도로 따귀를 맞는다. 그때 따귀 맞는 정도를 ‘예배당의 종 치듯이’라고 했던 것 같다. 영창 얼차려의 주 종목은 ‘창타기’란다. 그것도 하루에 서너차례씩 원숭이처럼 창살에 매달려 30분 이상을 버텨야 한다. 발이 바닥에 닿기라도 하면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얻어터진다고 했다. 야간경계근무 중 졸거나 술에 취해 사고쳤다가 당직사관에게 걸리면 영창만은 보내지 말아달라고 싹싹 빈다. 남들이 쉬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팬티 차림에 한쪽 발은 전투화, 한쪽 발은 고무신, 알철모를 쓴 채 연병장을 박박 기고 구보하는 ‘군기교육대’가 그래도 낫다. 어느 주말, 면회 온 애인이 남자 친구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는 소설 같은 실화가 옆부대에서 있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최근 당정협의를 갖고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1회에 15일(총 60일)까지 영창에 구금할 수 있는 징계권을 손질하기로 했다고 한다. 헌법상 체포나 구금은 적법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으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야 함에도 영창제도는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아 위헌요소가 있다는 시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들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앞으로는 각 부대에 배치된 인권담당 법무관이 영창 결정의 적법성을 사전 심사하고, 결정에 불복하는 병사에게는 항고 절차를 통해 재심의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다고 한다. 영창제도 폐지에 대해서는 군이 지휘권 약화 우려를 들어 강력 반대했다고 한다. 근신처분이나 휴가제한과 같은 미국식 징계가 징병제인 우리에게는 실효성이 없다는 게 반대 이유다. 하지만 지금도 군 내부규정에는 항고할 수 있도록 돼 있으나 유명무실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초법적인 영창제도는 개선이 아니라 폐지의 대상이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차라리 날 감옥으로…”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한 주부가 건물에 불을 질러 스스로 범죄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허구한 날 노끈에 묶여 매맞는 지옥같은 생활, 차라리 감옥살이가 더 나을 것 같았어요.” 25일 오후 서울 종로경찰서 폭력계 사무실. 경기도 한 도시 상가에 잇따라 불을 지른 30대 주부 김성혜(가명)씨가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설움을 눈물로 토해냈다. 연쇄방화 가해자로 경찰조사를 받게 된 그는 8년 동안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온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이웃들도 못본척… 3차례 신고받은 경찰은 불구속 김씨가 처음 방화를 한 것은 2002년.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다 안방에 있는 이불에 불을 붙였다. 지난해에는 남편의 승용차에 같은 이유로 불을 질렀다. 김씨는 “경찰에 남편을 3차례나 신고했지만, 폭행 정도가 가볍다고 모두 불구속 입건으로 풀려나곤 했다.”면서 “경찰에 알렸다고 더 심하게 폭행을 당한 뒤에는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웃에 이야기해도 모두 모르는 척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윗옷을 들어올려 오른쪽 옆구리의 흉터를 내보이며 “작년에 남편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잠들었다고 흉기로 찔린 상처”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병원에 가지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도 못했다. ●슈퍼·문구점등에 불지른뒤 자수 중매로 만난 남편은 1997년 결혼 직후부터 주먹질을 해댔다고 한다. 김씨가 결혼 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받은 합의금 1억 2000만원을 사업자금으로 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면서부터였다. 계속해서 취직이 되지 않자 남편은 친정에서 돈을 빌려오라고 요구했다. 차츰 금액이 커졌고 얼마 후에는 의처증 증세까지 더해졌다. 김씨는 올 3월 한 공공기관 식당에 취직을 했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 한달을 겨우 채우고 그만뒀다.8살,6살난 두딸 때문에 이혼도 생각할 수 없었다. “남편은 결혼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쳤다며 저를 항상 정신병자 취급했습니다. 수시로 노끈으로 묶어놓고 발길질을 했고,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김씨는 집을 뛰쳐나와 지난 21일 오전 2시10분쯤 경기도 한 도시의 집 근처 슈퍼마켓 창고에 불을 지르고 만 22시간 뒤인 23일 밤 12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늦은 시각이라 범행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오전에 만나자고 했고, 김씨는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들어서자마자 날아오는 남편의 주먹을 피해 다시 집을 나왔다. 오전 4시30분쯤 근처 아파트 상가의 문구점에 또다시 불을 질렀다. 이웃 점포 3곳으로 옮겨붙은 불은 9800여만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김씨는 이날 오전 경찰과 약속한 장소에 나왔다. 김씨는 경찰에서 “애꿎은 분들에게 피해를 입혀 죄송할 뿐”이라면서도 “너무 절박한 심정에 불을 지르면 남편을 피해 감옥에 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고 치를 떨었다. 그는 “남편은 경찰서에 면회를 와서도 ‘집안을 망하게 했으니 나오면 가만히 안 두겠다.’,‘아이들을 내다 버리겠다.’는 협박만 하고 돌아갔다.”면서 “몸이 아픈 큰 딸과 친정에 맡겨놓은 작은 딸이 걱정된다.”고 울먹였다. 김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남편에 대한 고소장을 경찰에 냈으며, 경찰은 26일 남편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김씨는 이날 방화 혐의로 구속됐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내 인생의 등대] 현동훈 서대문구청장

    [내 인생의 등대] 현동훈 서대문구청장

    현동훈(47) 서대문구청장은 아버지 현광조(72)씨의 ‘눈망울’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산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잠자는 시간보다 만화책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동네 형들과 어울리면서 나쁜 짓도 해봤다. 급기야는 학교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런 생활을 보내길 6개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아버지가 만화가게에 들이닥친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 끌고가 회초리로 삼을 사과 궤짝의 판때기를 뜯어 옆에 두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만 했다.‘왜 안때리실까.’하는 조마조마하는 마음에 10여분이 흐른 뒤 아버지는 조용히 나갔다.“아마 때렸으면 만화책을 더 열심히 봤을걸요. 하지만 아버지의 그때 눈망울이 아직도 선해요. 학창시절에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나오는 영화 ‘부메랑’을 보니까 아버지 눈망울의 의미를 알겠더군요.” 영화 ‘부메랑’에서 알랭 들롱은 왕년에 잘나갔던 폭력배였다. 아들 역시 폭력배로 경찰을 죽인 대가로 감옥에 간다. 아들은 면회온 알랭 들롱에게 ‘감옥에서 아버지 부하를 통해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었다.’면서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알랭 들롱은 면회소에서 아무 말 없이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 봅니다. 이 장면이 화면에 꽉 차게 오랫동안 나올 때 울컥 하더군요. 마치 초등학교 때 봤던 우리 아버지의 눈과도 같았죠.‘아들이 잘 되길 바라는데 왜 그럴까.’하는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섞인 눈빛이죠.” 현 구청장은 이후 아버지의 눈망울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많이 다스렸다. 방황을 일찍(?) 겪은 탓인지 현 구청장은 줄곧 모범생으로 지냈다. 술·담배도 대학교에 와서야 아버지에게 직접 배웠다. 아버지는 현 구청장이 대학 졸업 후 사법고시에 미끄러졌을 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집안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3남3녀의 장남인 현 구청장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의 눈을 바라보며 용돈을 꼭 쥐어주곤 했다. 현 구청장의 아버지는 현재 제주도에서 렌터카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렌터카를 닦고 직원들을 맞이한다. 현 구청장은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의 눈망울만큼은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사과 궤짝의 판때기보다도 더 따끔한 회초리가 된다.”면서 “앞으로의 공직 생활에서도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너무 ‘짠’ 라면… 건강위협

    국내 판매순위 1∼10위의 라면 1봉지에 들어 있는 나트륨 함량이 국제기준 하루 필요량의 1.4배에 이른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19일 최근 3년간 라면 판매 상위 11개 제품의 나트륨 함유량을 식품의약품안전청 공인기관인 L연구소에 의뢰 분석한 결과,8개 제품의 나트륨 함유량이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국내 라면 1개의 최대 나트륨 함유량은 2720㎎으로 식약청의 기준치인 3500㎎을 넘지는 않았지만 WHO가 제시한 성인 1일 섭취 기준치 1968㎎을 38% 초과한 수치다. 시판 라면 1봉지의 평균적인 나트륨 함유량은 2075㎎이었다. 면발에서도 전체 나트륨량의 최고 46%가 검출됐다고 환경연합측은 밝혔다. 서울환경연합은 “짠 음식이 많은 우리 식단의 특성상 나트륨의 과잉섭취가 많은데다 한국의 라면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는 나트륨을 과다하게 먹으면 고혈압과 심장병·혈관질환·위염·골격계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며, 성인은 하루에 나트륨 500㎎ 정도만 섭취하면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서울환경연합은 “국내 나트륨 섭취 기준량은 WHO의 1.75배로 높기 때문에 이를 국제 수준으로 낮추고 어린이나 청소년 건강 보호를 위해 ‘나트륨 과다섭취 주의’ 경고문을 식품 겉면에 명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모 라면회사의 관계자는 이같은 환경연합의 주장에 대해 “국민들이 짜거나 맵게 먹는 식성을 감안해 제품을 개발하려는 측면은 있다.”면서 “국제기준에 맞춰 라면맛은 유지하면서도 나트륨 함유량을 낮추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트륨 과다섭취 주의 경고문 표시 여부도 검토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남측 “6자회담 北복귀땐 중요한 제안 할 것”

    남측 “6자회담 北복귀땐 중요한 제안 할 것”

    남북 차관급회담에 참석중인 남한측 대표단은 16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경우 북핵문제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 ‘중요한 제안’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6자회담 조기 복귀를 촉구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이봉조 통일부차관은 이날 개성 자남산여관에서 열린 회담에서 “남북이 지난 1992년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민족공조도, 남북화해도 불가능하다.”면서 “(중요한 제안은) 6자회담이 재개되면 관련국과 협의해 밝힐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제안내용 힐차관보에 전달 정부는 ‘중요한 제안’의 내용을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로 방한 중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전달했으나 미측의 반응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수석대표는 또 “북한측이 핵보유를 주장하고 영변 5㎿ 원자로 가동 중단과 핵연료봉 인출 등 상황을 악화시켰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 보유는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북한측 대표단장인 김만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은 정면 대응하지 않고 경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측은 또 제15차 장관급 회담을 6월에 서울에서 개최하고,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해외 민간단체의 6·15 통일대축전에 당국 대표단을 파견할 것을 제안했다. 비료지원과 관련, 남한측은 예년 수준인 20만t 규모로 즉각적인 지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를 웃도는 규모에 대해서는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추가로 논의할 것을 제의했다. 앞서 남북은 오전 전체회의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대축전에 남북한 당국 대표단을 파견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대표단 구성을 비롯한 절차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이 수석대표는 “다음달 중 장관급회담을 개최한 뒤 순서대로 당국간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며 남북관계 정상화를 거듭 촉구했다. 이와 관련, 양측은 장관급회담 재개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 했으나 구체적인 협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산가족면회소 조속착공도 제의 남한측은 또 6·15 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경의선·동해선 도로연결 개통식을 갖자고 제의하는 한편 광복 60주년을 맞아 제1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갖고 이산가족 면회소를 조속히 착공할 것을 제의했다고 이 수석대표는 전했다. 그는 “북한측은 김일성 조문불허와 충무계획, 작계 5029 등에 대한 재발방지와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편 힐 차관보는 이날 송민순 한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대북 비료지원은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라는 점에서 필요한 곳에 적정하게 지원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특히 북한이 차관급회담을 통해 6자회담에 대한 확신을 갖는 한편 남북관계 진전이 6자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개성 공동취재단·서울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강기훈 유서대필’ 진상 밝혀질까] 진상규명 쟁점은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의 쟁점은 강씨가 전민련 동료였던 고 김기설 당시 사회부장의 유서를 대필했느냐의 여부다. 당시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모두 12차례의 문서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가 감정대상으로 정한 문서들은 당시 언론에 공개된 유서와 김씨가 누나에게 선물로 준 책표지에 기재된 글자, 김씨의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 전민련이 제출한 업무일지, 취업이력서 등과 강기훈씨의 집에서 압수한 화학노트, 강씨가 필사한 운동권 문건들이다. ●강씨 옥중편지 수사과정 제외 왜? 문서감정 과정에서 김씨의 정자체와 속필 감정, 강씨와 김씨의 문서동일 여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박연철 민변 부위원장은 “유서와 전민련 수첩 필체가 동일인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유서와 강씨의 진술서는 다른 글씨라는 것이 육안으로 쉽게 판별된다.”며 수사 과정에서 강씨의 옥중편지가 사본이라는 이유로 제외됐던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전민련 사회국 업무일지도 사건의 진상을 쥐고 있는 핵심적인 자료다. 당시 업무일지는 세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밝혀져, 검찰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인 임무영씨를 유서대필범으로 수사한 것을 두고 대책위측은 강씨가 유서대필범이 아니라는 명확한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측은 검찰이 강씨의 유죄를 인정한 뒤 전민련 등 관계기관이 수집한 30여점의 증거자료를 법원에 제출, 그중 김씨가 남긴 14점의 필적에 대해 증인들이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오로지 국과수 감정인의 감정에만 매달렸다는 부분도 석연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서대필 경위도 꼭 밝혀야할 사안 유서대필 경위도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1991년 4월27일쯤부터 5월8일 사이 서울 모처에서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작성해주었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수사를 총지휘했던 강신욱(대법관)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은 “유서대필 사건은 절차상 아무런 하자도 없었다.”면서 “강씨의 변호인이 20여명이나 되고 변호인이 수시로 강씨를 면회했는데 사건 은폐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토요영화]

    ●역전에 산다(SBS 오후 11시55분) 2002년 두 편의 한국영화가 예상을 깨고 흥행에 성공했다. 연기 침체기에 빠졌던 김승우는 ‘라이터를 켜라’에서 망가진 연기로 활력을 찾았고, 하지원은 임창정과 함께 한 섹시 코미디 ‘색즉시공’을 통해 ‘가위’,‘폰’ 등에서 얻은 호러퀸 이미지를 내던져 버렸다. 이듬해 상승세를 달리던 김승우와 하지원이 만나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는 그러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본 투 킬’ 등의 각본을 썼던 박용운 감독의 데뷔작. 어릴 적 골프 신동에서 현재에는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증권사 영업사원 강승완(김승우)은 조폭 두목 마강성(이문식)의 돈을 잘못 투자한 탓에 쫓기는 신세다. 어느 날 조폭들에게 붙잡혀 신나게 두들겨 맞은 다음, 터널을 지나다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와 마주친 뒤 정신을 잃게 된다. 깨어나 보니 다른 인생이다. 어릴 적 자신이 동경했던 골프 스타가 되어 있는 것. 전광판을 가득 메운 자신의 광고 사진을 보고 어리둥절한 승완에게 다른 세계의 아내 한지영(하지원)이 나타나 다짜고짜 뺨을 때린다.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이혼을 결심했던 지영은 갑자기 착해진 승완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125분. ●아이 엠 샘(MBC 밤 12시) 천재 아역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다코타 패닝의 출세작. 이제 11살이지만 영화 17편(미개봉작 포함)을 소화하고 있는 어엿한 중견 배우다.ER 등 TV시리즈물에 게스트로 나온 것만 26차례.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가 미국에서 상영될 당시 사쓰키의 목소리 역할을 맡기도 했다. 패닝은 지금까지 숀 펜, 덴젤 워싱턴, 로버트 드니로 등 연기파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올 여름에도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톰 크루즈가 함께한 ‘우주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패닝과 장애인 아버지 숀 펜이 펼치는 눈물겨운 부녀애가 비틀스의 노래를 배경 음악으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감독은 ‘코리나, 코리나’(1996),‘스토리 오브 어스’(1999)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제시 넬슨으로 2001년 작품. 지적 장애로 7살 지능을 가진 샘(숀 펜)은 비틀스 노래에서 이름을 딴 딸 루시(다코타 패닝)와 단 둘이 살아간다. 아빠의 지능을 추월하는 것이 두려운 루시가 학교수업을 게을리 하자, 사회복지기관에서 가정방문을 통해 샘이 아빠로서 양육능력이 없다는 선고를 내린다. 주 2회 면회만을 허락받은 샘은 변호사 리타 해리슨(미셸 파이퍼)의 도움으로 딸을 되찾으려고 한다.140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안동환기자의 현장+] 초미숙아 병실 ‘임시아빠’ 체험

    [안동환기자의 현장+] 초미숙아 병실 ‘임시아빠’ 체험

    품에 안은 현이가 젖병을 물리자 오물거리기 시작한다.80㎖의 특수분유도 몇 차례 쉬었다가 삼킬 만큼 힘겨운 듯하다. 타인의 체온을 느꼈는지 현이의 작은 손가락이 기자의 가슴에 머문다. 임신 27주 만인 지난달 760g의 ‘초극소 미숙아’로 세상에 나온 현이. 기자가 이 병동에 들어서 처음 눈을 맞춘 아기이다. 서울 아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39명의 미숙아들이 인큐베이터 안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가냘픈 팔다리를 바동거리지만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아기들의 고통은 ‘뚜∼뚜’거리는 전자음이 대신한다. 제 몸보다도 큰 인공호흡기와 튜브를 입에 문 채 생존 마지노선이라는 ‘22주 500g’을 간신히 넘어선 천사들. 의료진은 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아기’라고 부른다. 기자는 지난 2,3일 이 병원의 신생아 집중치료팀에 참여했다.‘임시 아빠’가 되어 우유를 먹이고 몸무게를 재고 목욕을 도우면서 진짜 아빠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아기들의 눈망울에서 본 것은 절망을 딛고 선 희망이었다. 지난 1월 820g의 몸무게로 태어난 서연이는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의료진의 예상대로라면 매일 죽음에 가까워지는지도 모른다. 미숙아 중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은 서연이는 그러나 ‘기적’으로 불린다. 이날까지 112일을 살고 있어서다. 서연이의 소화기관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장의 길이는 불과 10㎝. 정상이라면 1m가 넘어야 한다. 특수 영양제가 투여되지만 미량만 체내에 흡수된다. 그러고도 서연이의 머리카락은 자라고 있다. 발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의학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서연이에게 의료진은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지난달 병원이 수술비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부모를 설득해 서연이를 수술했다. 그러나 수술 소견은 ‘부정적’이었다.3000만원이 넘는 병원비와 누구보다도 어린것의 고통에 피멍이 들었을 부모는 치료를 포기한다는 뜻을 전했다. 엄마 아빠는 정을 떼려는 듯 면회마저 뜸하다. 안원희(36) 책임간호사는 “잘 버텨주는 서연이가 고맙다.”고 말한다. 서연이는 이 시간에도 홀로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 하루 세 차례 이뤄지는 면회. 아픈 아기를 보는 부모의 얼굴은 ‘웃음반 눈물반’으로 젖어든다. 모유를 먹이고 엄마의 맨 가슴 위에 아기를 올려 체온과 정서를 교감하는 ‘캥거루 캐어(Kangaroo Care)’의 시간이다. 생명을 이루는 두 존재의 끈이 이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제2중환자실을 찾은 박미영(31·가명)씨는 왈칵 눈물이라도 쏟을 듯 목소리가 잠겼다.“은수야 은수야 엄마 왔네. 빨리 이겨내야지. 은수야 눈 떠봐. 엄마 마음 아프게 왜 그래. 은수야 눈 떠봐. 응….”눈을 감은 채 가쁜 숨만 쉬고 있는 은수 곁에서 박씨는 무너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른다. 불과 24주 만인 지난 2월 6분 간격으로 태어난 780g의 범수와 630g의 은수 남매. 범수는 체중 2.1㎏으로 호전됐지만 여동생 은수는 여전히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눈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이미 수술만 두 차례 받은 은수는 미숙아 망막증에다 심장마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박씨 역시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가슴 한 공간에 숨겨든 죄책감을 내비친다.“내 몸이 부실해서 아기가 고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간호사가 말없이 등을 토닥이며 위로한다. 새벽 1시20분. 모니터상에서 한 아기의 심장 박동수가 135에서 47로 급격히 떨어지자 신호음이 울린다. 의료진의 긴급 처치로 안정을 되찾은 아기 앞에서 가슴을 쓸어 내린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의료진이 싸우는 것은 죽음뿐만이 아니다. 차도가 보이지 않는 아기나 기능성 장애가 예상돼 미리부터 아기를 포기하는 보호자를 설득하는 문제가 의료진이 맞닥뜨리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지난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1000g 미만의 초극소 미숙아 가운데 49명은 치료를 포기한 ‘자의 퇴원’에 의해 사망했다. 신생아과 김애란 교수는 “미숙아도 뇌손상만 없으면 정상인으로 성장한다.”면서 “우리가 30%의 희망을 말하고 있는 순간 부모는 70%의 절망만 보며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현실적 문제인 치료비 부담도 의료진이 보호자와 상담할 때마다 부딪히는 말못할 고민거리다. 정작 치료를 완강하게 거부하며 의료진조차 포기한 부모를 설득하는 것은 아기이다. 바동거리는 아기의 눈을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아픈 아기가 엄마의 마음을 돌려 놓는 것이다. 때로는 소생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져도 멋대로 죽음을 선고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 530g의 희망…“모두의 희망으로 자라렴” 3일 오전. 중환자실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지난 1월 26주 만에 530g으로 태어나 모두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은채가 2.5㎏의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날이다. 그동안 기록된 은채의 차트만 100여장. 불과 두달 전까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며 계면활성제, 항생제, 호흡약물, 이뇨제, 영양제 등 온갖 약품을 투여하며 가까스로 삶을 이어온 은채였다. 엄마 김윤경(가명)씨는 40대 초반의 고령 출산자. 은채가 첫 아기인 그녀는 “6개월이 됐는데도 발로 차는 기미가 없어 내심 걱정을 했는데 설마 미숙아로 태어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은채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했다.”고 되돌아봤다. 그녀는 산후조리도 포기한 채 퇴원한 다음날부터 하루 3번씩 면회를 왔다. 은채가 입원한 109일 동안 김씨에게 유일한 기쁨이자 희망은 매일 15∼20g씩 체중이 늘어가는 은채의 모습이었다. 경제적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가 기자에게 내민 진료비 영수증에 적힌 총액은 3723만 1093원. 이 중 본인 부담금은 1601만 3470원이다. 김씨는 “국가적으로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엄마들이 병원비 때문에 도망다니고 아기를 포기하는 현실에서 여전히 출산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조차 부족한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대한민국에서 미숙아의 엄마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들은 병원비와 재활치료로 카드빚을 안게 된 모진 현실에 굴하지 않고 더욱 강한 ‘어머니’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의료진과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기사 속의 아기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sunstory@seoul.co.kr ■ 미숙아 치료 문제점 940g의 미숙아를 낳은 경기도 분당의 어느 산모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아기를 치료할 인큐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대형 병원 10여곳을 수소문했지만 “병상이 꽉 찼다.”는 응답만 들었다. 대당 2억원의 인큐베이터와 인공호홉기, 각종 첨단 생명유지장치 등이 부착된 병상 40개를 보유한 서울아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지난해 신생아 중환자실의 적자만 20억원을 기록했다. 아기 1명이 치료받는 한 병상당 매달 416만원의 적자가 난 셈이다. 산모가 고령화되면서 미숙아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을 치료할 병상과 장비는 태부족이다. 전국적으로 신생아 집중치료를 위한 병상은 850여개가 부족하다. 병상을 늘릴수록 적자가 커지는 병원들이 시설, 장비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생아 치료가 기피 시설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생후 1∼4세까지 국가가 전액 진료비를 부담하는 일본과 미국의 10분의1 수준에 못 미치는 낮은 의료수가 정책은 인프라 구축을 막고 있는 또 하나의 장벽이다.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저출산 사회에서 신생아 의료의 현황과 대책’ 공청회에서도 의료비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사망률이 증가할 것이라는 경고가 터져나왔다. 한국평가연구원 김기찬 원장은 “올해부터 시행된 저출산 대책으로 미숙아의 보호자 부담은 지난해에 비해 570만원 정도가 줄었지만 수가는 변동이 없어 병원 적자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숙아에 대한 재활치료도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미숙아는 치료를 받고 퇴원하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들 대부분은 심장, 폐, 호홉기 질환 등으로 4∼5세까지 재입원을 반복한다. 거의 모든 책임을 미숙아 가정이 전담할 뿐 국가는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sunstory@seoul.co.kr
  • [사회플러스] 신병 면회 ‘입대후 70일’부터

    군에 갓 입대한 신병(新兵)들에 대한 가족·친지들과의 면회제도가 개선된다. 국방부는 그동안 입대 100일이 지나야 가능했던 신병들에 대한 면회제도를 개선, 입대 70일이 지나면 면회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3일 밝혔다. 군은 1998년부터 ‘신병 군인 만들기’ 차원에서 신병들에게 입대 100일까지는 일체의 면회나 외출·외박을 금지해 왔다. 개선된 면회제도는 6월1일을 기준으로 입대 70일이 지난 신병들부터 적용된다. 또 각군 특성에 맞춰 시행해온 위로휴가나 외출·외박 제도는 현행과 같이 유지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자대 배치 전 각 훈련소에서 교육을 수료한 신병들에게 현장 면회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면회객이 없는 신병들의 사기 저하와 가족들의 금전적 부담 등을 고려해 시행치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23일 TV 하이라이트]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30분) 원균은 곤양 탈환을 하기 위한 출전 명령을 내린다. 한백록·이영남을 비롯, 기효근마저도 원균을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원균의 뜻을 꺾기엔 역부족이다. 도도 다카도라는 이순신을 유인하기 위해 원균을 이용한다는 자신의 전략이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믿는다. ●토지(SBS 오후 8시45분) 면회를 간 서희는 길상에게 이제야 자신의 깨달음을 이야기하며 눈물짓는다. 또 다시 쓰러진 용이는 땅이 밟고 싶다는 희망을 말한 채 죽음을 맞는다. 광주학생 운동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시점에 윤국은 서희의 간곡한 부탁으로 앞에 나서지 않지만 두수는 윤국을 미행하며 감시한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20분) 푸른 바다와 초록빛 보리가 어우러진 청산도, 초록빛 벌판이 넓게 펼쳐진 보성 녹차밭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광으로 영화나 CF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남도의 명소. 옛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청산도 보리밭과 보성 녹차밭으로 초록빛 여행을 떠나본다. ●코리아, 코리아(EBS 오후 5시30분) 통일교육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우리의 초등학생들이 북쪽 친구들 교과서 문제 맞히기에 도전해 본다.‘우리말 하나 되기! 맘 하나 말 하나’코너에서는 충청남도 서천의 합전마을을 찾아간다. 재미있는 북쪽의 단어와 속담의 뜻도 맞혀보고 합전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정도 느껴본다. ●토요일(MBC 오후 6시5분) 김국진, 김용만, 박경림이 2008년 올림픽 개최 예정지인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갔다. 첫번째 미션, 천안문에 도착하라. 국진과 용만은 버스와 지하철, 도보 등으로 힘겹게 천안문까지 가고, 사전게임을 이긴 경림은 택시를 타고 간다. 과연 그들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용서(KBS2 오전 9시) 수민은 임신진단 시약을 사가지고 들어오다가 아줌마에게 들킨다. 아줌마는 바로 인영에게 전화를 해 이 사실을 알리고 인영은 형우에게 전화를 해 저녁에 들러 달라고 말한다. 형우와 같이 저녁을 먹던 인영은 태훈이 이야기를 꺼내며 수민이 아이를 가져도 잘 해주라고 말해 형우를 당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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