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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여행 상품 판매량 증가로 분주한 여행사

    [서울포토]여행 상품 판매량 증가로 분주한 여행사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해외 입국자의 격리 의무를 면제한다고 밝힌 이후 국내 주요 여행사의 상품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는 28일 오전 서울 중구 참좋은여행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2022.3.28
  • “내가 간다 하와이”… 해외여행 서적 판매 28% 늘었다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의무를 면제하기로 하는 등 출입국이 쉬워지자 해외여행 서적을 찾는 독자가 늘고 있다. 2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보건당국이 격리면제 지침을 발표한 지난 11일부터 24일까지 2주 동안 해외여행 분야 책 판매량은 직전 2주(2월 25일∼3월 10일)에 비해 28.5%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여행 관련 서적 판매량이 1.2%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으로 본 인기 여행지 1순위는 하와이였다. 최근 1주일간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은 여행 가이드북 ‘리얼 하와이’였고, 또 다른 가이드북 ‘하와이 셀프트래블’이 4위에 올랐다. 프랑스 작가 장 크리스토프 뤼팽의 산티아고 순례기 ‘불멸의 산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등의 외국 여행기도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들은 기존에 나온 책을 손보거나 신간을 펴내고 있다. 하와이, 괌 등 인기 여행지 가이드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달라진 출입국 규정과 폐업·휴업 등 현지 정보를 반영한 개정판이 올 들어 잇따라 나왔다. 조대현 작가의 ‘뉴노멀, 산티아고 순례길 가이드북’ 등 코로나19 유행으로 막혔다가 재개방된 관광 명소를 다시 다녀와 새로 쓴 책들도 출간됐다. 하와이 가이드북을 내는 한 출판사는 “여행길이 막혀 있을 때 현지 사정이 계속 바뀌었다”며 “책에 수록된 모든 명소, 맛집, 상점을 하나도 빠짐없이 새로 조사했다”고 전했다.  
  • 입국 격리 면제에 인천공항 북적

    입국 격리 면제에 인천공항 북적

    27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에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지난 11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입국자의 격리 의무가 면제되면서 국내 주요 여행사들의 해외 여행 상품 판매량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격리 의무 면제에 해외여행 책 판매↑…인기여행지는 하와이

    격리 의무 면제에 해외여행 책 판매↑…인기여행지는 하와이

    백신 접종한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의무가 면제되는 등 출입국 문턱이 낮아지면서 해외여행 서적을 찾는 독자가 증가하고 있다. 2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정부가 격리면제 지침을 발표한 지난 11일부터 24일까지 2주 동안 해외여행 분야 책 판매량은 직전 2주(지난달 25일∼이달 10일)에 비해 28.5% 늘어났다. 같은 기간 국내여행 관련 서적 판매량은 1.2%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을 감안하면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인다. 책으로 본 인기 여행지는 하와이다. 최근 1주일간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은 여행 가이드북 ‘리얼 하와이’였고 또다른 가이드북 ‘하와이 셀프트래블’이 4위다. 프랑스 작가 장 크리스토프 뤼팽의 산티아고 순례기 ‘불멸의 산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등 외국 여행기도 인기다. 출판사들은 출입국 규제 완화에 맞춰 기존에 나온 책을 손보거나 신간을 내고 있다. 하와이·괌 등 인기 여행지 가이드북은 팬데믹으로 달라진 출입국 규정과 팬데믹 기간 폐업·휴업 등 현지 정보를 반영한 개정판이 올 들어 잇따라 출간됐다. 하와이 가이드북을 내는 한 출판사는 “여행길이 막혀 있을 때 현지 사정이 쉼 없이 바뀌었다”며 “책에 수록된 모든 명소·맛집·상점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수조사했다”고 전했다.
  • 美 ‘러 친구’ 中에 당근과 채찍… 관세면제 부활, 수출통제 압박

    美 ‘러 친구’ 中에 당근과 채찍… 관세면제 부활, 수출통제 압박

    중국이 ‘러시아를 도우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미국의 압박에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꺼내 들었다. 미 정부는 일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예외 조치를 부활시켜 달래기에 나서는 동시에 “중국이 러시아에 반도체를 수출하면 (해당 업체는)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23일(현지시간) “2021년부터 고율 관세가 되살아난 549개 품목 가운데 352개에 대해 ‘관세 부과 예외’ 조항을 다시 적용한다”고 밝혔다. 7.5~25%의 관세를 부과받던 중국산 수산물과 화학제품, 공기정화기, 의료기기, 농기계 등에 대한 관세가 면제된다. 지난해 10월 12일부터 소급 적용돼 올해 말까지 이어진다. 반도체와 차량용 배터리 등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을 선언한 제품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USTR은 “이번 결정은 다른 기관과 충분히 상의해 숙고한 끝에 내려졌다”며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물가상승률 추세를 잡기 위한 조치임을 시사했다. 2018년 3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다. 우리가 쉽게 승리할 것”이라며 중국산 제품에 무더기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미 경제 곳곳에서 부작용이 생겨나자 2200여개 품목에 한시적 관세 면제를 허용했다. 이들 대부분은 2019년에 기한이 끝났지만 549개 품목은 산업계 요청으로 지난해 말까지 혜택이 이어졌다. 이번에 USTR이 352개를 추려 또다시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애초 바이든 행정부는 이 카드를 지렛대 삼아 중국과 ‘밀고 당기기’를 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대만과 신장위구르자치구·홍콩 문제를 두고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진척이 없었다. 그럼에도 미 당국이 관세 면제 의사를 표명한 것은 중국을 러시아로부터 떼어 놓고자 ‘유인책’을 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번 조치는 미중 무역전쟁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베이징은 크게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줴팅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4일 “대중 고율 관세가 모두 사라져 양국 관계가 정상 궤도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도 “미중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은 ‘경고장’도 함께 보냈다. 이날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기업도 우리의 수출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라며 “그들(중국 기업)이 러시아에 반도체를 팔고 있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차단해 회사 문을 닫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중신궈지(SMIC) 등을 겨냥한 발언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이 러시아의 대금 결제를 용이하게 도와주는지, 수출 통제에 반하는 시도를 하는지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거들었다.
  • 美, ‘러시아 친구’ 中에 ‘당근과 채찍’..관세 면제 부활 ·수출통제 압박

    美, ‘러시아 친구’ 中에 ‘당근과 채찍’..관세 면제 부활 ·수출통제 압박

    중국이 ‘러시아를 도우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미국의 압박에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꺼내 들었다. 미 정부가 일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예외 조치를 부활해 달래기에 나선 동시에 “중국이 러시아에 반도체를 수출하면 (해당 업체는)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23일(현지시간) “2021년부터 고율 관세가 되살아난 549개 품목 가운데 352개에 대해 ‘관세 부과 예외’ 조항을 다시 적용한다”고 밝혔다. 7.5~25%의 관세를 부과받던 중국산 수산물과 화학제품, 공기정화기, 의료기기, 농기계 등에 대한 관세가 면제된다. 지난해 10월 12일부터 소급 적용돼 올해 말까지 이어진다. 반도체와 차량용 배터리 등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을 선언한 제품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USTR은 “이번 결정은 다른 기관과 충분히 상의해 숙고한 끝에 내려졌다”며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물가상승률 추세를 잡기 위한 조치임을 시사했다. 2018년 3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다. 우리가 쉽게 승리할 것”이라며 중국산 제품에 무더기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미 경제 곳곳에서 부작용이 생겨나자 2200여개 품목에 한시적 관세 면제를 허용했다. 이들 대부분은 2019년에 기한이 끝났지만 549개 품목은 산업계 요청으로 지난해 말까지 혜택이 이어졌다. 이번에 USTR이 352개를 추려 또다시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애초 바이든 행정부는 이 카드를 지렛대 삼아 중국과 ‘밀고 당기기’를 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대만과 신장위구르자치구·홍콩 문제를 두고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진척이 없었다. 그럼에도 미 당국이 관세 면제 의사를 표명한 것은 중국을 러시아로부터 떼 놓고자 ‘유인책’을 제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번 조치는 미중 무역전쟁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베이징은 크게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줴팅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4일 “대중 고율 관세가 모두 사라져 양국 관계가 정상 궤도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도 “미중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은 ‘경고장’도 함께 보냈다. 이날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기업도 우리의 수출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뜻”이라며 “그들(중국 기업)이 러시아에 반도체를 팔고 있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차단해 회사 문을 닫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중신궈지(SMIC) 등을 겨냥한 발언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이 러시아의 대금 결제를 용이하게 도와주는지, 수출통제에 반하는 시도를 하는지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거들었다.
  • 위안부 손배소 항소심 재판에 ‘브라질 판례’ 등장한 까닭은

    위안부 손배소 항소심 재판에 ‘브라질 판례’ 등장한 까닭은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는 것은 국제인권법의 요청입니다.” 국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첫 재판에서 피해자 측은 “일본국을 한국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각하한 1심 판결이 국제인권법의 의미를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서울고법 민사33부(부장 구회근·박성윤·김유경)는 24일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와 유족 15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일본 정부 측은 1심과 마찬가지로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국가면제가 적용돼 한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소송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을 의미한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는 “1심은 오랫동안 인류가 축적한 국제인권법의 존재와 의의를 간과한 문제가 있다”며 항소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면제의 예외 여부를 심리해야 하는데 원심에서 이에 대한 심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관련 전문가를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단 취지에 따라 피해자에게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하는 개별 손해배상 청구권이 인정돼야 하고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이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국가면제가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제인권법 발달로 국가면제 법리 적용에 변화가 있다는 점도 피해자 측이 내세운 근거다. 특히 지난해 8월 브라질 연방 최고재판소의 판례가 언급됐다. 이 변호사는 “브라질 최고재판소는 국가면제를 배척하는 판결을 하면서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 판결을 인용했다”고 밝혔다. 브라질 최고재판소는 해당 판결문에 “국가면제는 인권침해 피해자와 가족이 가해자의 책임을 추궁할 가능성을 부정함으로써 연방헌법과 세계인권선언, 국제인권규약이 보장한 사법 접근 권리를 방해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도 상반된 판결이 있었고 국제관습법과 관련된 것이어서 재판부도 전문가라고 할 수 없다”며 국제법 전문가를 증인으로 불러 견해를 듣기로 했다. 이 사건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두 번째 소송으로 2016년 12월 소장이 접수됐다. 고 배춘희 할머니 유족이 참여한 1차 소송의 1심이 “일본 정부는 원고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면서 승소 판결한 것과 달리 이 사건 1심에서는 청구를 각하해 피해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두 재판부는 국가면제의 적용 여부를 두고 엇갈린 판단을 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 권리 구제라는 중요한 기본 원칙은 국제조약과 국제관습법에 의해 이미 보호되고 있다”면서 “국가면제라는 국가 중심적 질서를 양보하고 인권 보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 KRX 금 거래 차익에 비과세… 부가세 10%도 면제 [양은희 PB의 생활 속 재테크]

    KRX 금 거래 차익에 비과세… 부가세 10%도 면제 [양은희 PB의 생활 속 재테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지난 8일 123.70달러를 기록한 뒤 15일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22일 기준 109.27달러를 기록하는 등 최근까지 100달러 이상을 넘는 고공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 미국 은행 JP모건체이스는 러시아산 원유 공급 차질이 지속될 경우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85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국제 금 가격도 연초와 비교해 7% 이상 올랐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안전자산인 금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소맥·밀 등 곡물 가격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소맥·옥수수와 같은 농산물을 수출하는 주요 국가다. 금 투자를 고려한다면 한국거래소(KRX)가 운영하는 금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을 추천한다. KRX 금 시장에서는 개인 투자자도 한국조폐공사가 품질을 인증한 순도 99.99%의 금을 1g 단위로 사고팔 수 있다. 금 현물거래에 따른 수수료율이 낮고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나 휴대전화로 주식과 같은 방식으로 매매할 수 있다. 금 시세 차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금 거래에 따른 10% 부가가치세도 면제된다. KRX에서 사들인 금은 실물로도 수령할 수 있다. 다만 매입한 평균 가격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 골드바 주문 제조에 따른 2만원 내외의 인출비용이 발생한다. 금 투자의 또 다른 방법으로 금 상장지수펀드(ETF)가 있다. ETF는 특정 지수와 연동해 수익률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 펀드로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거래된다. 이 밖에도 에너지, 비철금속, 농산품, 귀금속 등 주요 원자재에 대한 ETF도 있다. 국내외 상장된 원자재 ETF에는 원유·금·은·구리·팔라듐·농산물 등의 지수 연계 상품이 있다. 원자재 ETF에 투자할 땐 운용 규모가 크고 거래량이 많은 종목을 선택해야 한다. 거래량이 많아야 실질 가격과 차이가 크지 않게 거래돼서다. 글로벌 제조업 및 공급망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원재료와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원유 의존도가 높은 만큼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다만 다양한 원자재 상품에 투자자산의 10% 이내에서 분산 투자할 것을 추천한다. 한국투자증권 송파PB센터 영업팀장
  • 울진 역대급 초대형 산불 피해 복구비용 3480억원 추산

    울진 역대급 초대형 산불 피해 복구비용 3480억원 추산

    역대급 초대형 산불로 큰 피해가 난 경북 울진지역 산림 등을 복구하는 데 3400억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23일 경북도에 따르면 중앙 합동 조사단이 울진 산불 피해 현황을 조사한 결과 1689억 2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피해 신고액 1766억 7000만원보다 77억 4900만원이 감소한 것이다. 이 가운데 산림 피해액은 1327억 1300만원이다. 이에 따른 복구비용은 산림 2954억 8500만원 등 3483억 3000만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복구계획은 다음 달 초 확정될 예정이다. 산불로 울진 지역 산림 1만 8463㏊가 잿더미가 됐고 주택 257채가 불에 타는 등 공공 및 사유 시설에서 큰 피해가 났다. 이재민은 219세대 335명이 발생했다. 경북도는 중앙 중심의 수습복구지원단 운영과 동시에 경제살리기 대책을 추가로 추진해 복구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도는 이재민 임시조립주택과 건축 지원, 긴급복지지원비와 생활안정지원금 지원, 농기계 우선 임대 및 임대료 면제 등에 나섰고 산림피해 복구 방안도 최대한 빨리 마련하기로 했다. 또 지역 사랑 상품권 할인율을 상향(10→15%)하고 울진에서 휴가 보내기 캠페인 전개 등 관광 활성화 대책 시행, 농산물 판매운동 등을 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 등 다양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 대법 ‘쪼개기 공사 수주’에 제동, “내용·방법 같다면 동일한 공사”

    대법 ‘쪼개기 공사 수주’에 제동, “내용·방법 같다면 동일한 공사”

    대형 공사의 경우 작업 구역과 일정이 분리돼 있어도 그 내용과 방법이 같다면 하나의 같은 공사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건설업 등록 의무를 면제받고자 미등록 업체가 대형 공사를 여러 건으로 ‘쪼개기 수주’ 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3일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으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에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차 공사는 3개의 계약으로 2차 공사는 10개의 계약으로 분할해 공사계약을 체결하기는 했으나 각 공사계약에서 정한 공사는 그 계약 당사자, 공사 대상 목적물, 공사 내용 및 방법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공사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2013년 5월부터 건설업 등록 없이 방수공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적용되던 건설산업기본법 제9조 제1항은 공사예정금액이 1500만원 미만인 ‘경미한 공사’는 미등록업체도 수주가 가능하도록 했다. 반면 1500만원 이상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국토교통부에 건설업 등록을 해야 했다. A씨는 2014년 11월 B아파트가 10개 동에 대한 방수공사 사업공고를 내자 총사업비 8155만원으로 견적서를 제출했다. 본인이 맡을 수 있는 범위를 넘은 것이다. 당시 아파트 입주민 사이에서는 A씨가 건설업 미등록업체라는 점을 들어 아파트 방수공사에 반대하는 의견도 나왔다. 그럼에도 A씨는 아파트 자치관리회와 ‘쪼개기 수주’ 방식으로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2015년 4월 1차로 965만원의 계약서 3개를 작성했다. 같은 해 5월에는 2차로 350만~660만원의 10개 계약으로 나눠 계약서를 작성했다. 미등록업체가 수주할 수 없는 대규모 공사를 총 13개 소규모 공사로 쪼갠 것이다. 1심은 이를 유죄로 판단했으나 2심에서는 무죄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동일한 공사를 2건 이상의 계약으로 분할 발주한 경우 각 분할된 공사가 시간적·공간적으로 분리돼 진행되면 ‘경미한 공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 권성동 “安, 총리까지 가진 않을 것…욕심으로 비치지 않겠나”

    권성동 “安, 총리까지 가진 않을 것…욕심으로 비치지 않겠나”

    “총리 생각 있으면 위원장 안맡았을 것”“좋은자리 다 차지하면 문제 발생” “권력은 어쨌든 간에 나눠 가져야 하는 것”2013년 김용준 인수위원장 지명 사례 있어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차기 정부 국무총리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데 대해 ”인수위원장을 하면서 또 국무총리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권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같이 밝혔다. 권 의원은 ”인수위원장을 하면서 또 국무총리를 하기에는…역대 그런 경우가 있었나? 그런 경우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만약 안 위원장이 국무총리 생각이 있었다면 인수위원장을 맡지 않았을 것으로 저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요직을 연속해서 맡는 것 자체가 좀 너무 과도한 욕심을 부린 것으로 비치지 않겠나“라며 ”저는 단순히 그런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는 ”국무총리를 원했다면 인수위원장을 안 맡고 다른 분에게 기회를 줬을 것“이라며 ”권력은 어쨌든 간에 나눠 가져야 하는 것이다. 특정인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하려고 하면 오히려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 의원의 기억과는 달리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새 정부 첫 총리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명한 바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자녀들의 병역면제 의혹 등이 불거지며 총리직에서 낙마했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박 전 대통령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저와 함께 새 정부를 이끌어갈 국무총리 후보자는 현재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고 계시는 분”이라며 “김 총리 지명자는 헌법재판소 소장을 역임하면서 평생 법관으로서 국가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확고한 소신과 원칙을 지키시는데 앞장서 오신 분”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권 의원은 ‘그러면 안 위원장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저는 모르죠. 본인이 그런 계획에 따라서 움직이겠죠“라고 답했다. 진행자의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권 의원은 ”그 부분은 그만하자. 제가 안철수 대표의 측근도 아니고 복심도 아니니까“라며 화제를 돌렸다. 그간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는 안 위원장을 비롯해 지역균형특별위원장을 맡은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국민통합특별위원회를 총괄하는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 등 인수위 인사들이 거론됐다.
  • [특파원 칼럼] 새 정부, ‘경제안보 시대’에 대응하라/이경주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새 정부, ‘경제안보 시대’에 대응하라/이경주 워싱턴특파원

    외교와 통상의 벽이 무너지는 ‘경제안보’의 시대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아픈 건 수출통제 및 금융망 배제 등 서방의 전례 없는 경제제재다. 미 상무부가 전 세계 반도체 부족 문제를 풀겠다며 나선 뒤에는 대중 견제가 있다. 과거 한국의 통상은 강대국의 수입 확대 압박을 막아 내고 한국 기업을 위해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들의 비약적 성장으로 이런 역할은 비중이 줄고 있다. 워싱턴 현지에서 보면 미 행정부는 한국 기업과 수시로 직접 소통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반도체 공급망 회의마다 삼성전자를 부른다. SK 현지 공장은 미 정관계 인사들의 단골 방문 장소다. 외교와 통상의 양면을 적절히 활용하며 최강대국의 힘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미국의 태도는 보다 노골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스트벨트의 근로자들을 포섭해 당선됐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의 표심을 되찾아 정권을 잡았다. 극단에 있는 두 대통령이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한목소리로 일자리 확대와 공장 유치를 주장하고, 동맹들에는 줄 서기를 압박한다. 최근 한국 정부는 10주년이 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한미 경제동맹’의 상징으로 강조했지만, 미국은 그다지 축하할 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외려 미국은 한국으로의 수출 증대와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를 강조했다. 중국도 매한가지다. 우리는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에게서 경제 보복을 당했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요소수 부족 사태로 시세가 월등히 비싼 미국에서 요소수를 긁어모으는 난리도 겪었다. 외교와 통상은 더이상 분리하기 힘들다.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대표적이다. 국내 일각에서는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가 함께 키를 쥐고 있다’며 순수한 경제공동체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IPEF는 애초 설계부터 백악관 외교안보 인사들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 대응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축 형성이 주목적으로 보인다. 신흥국을 끌어들일 가장 매력적인 통상 카드인 ‘관세 인하 항목’도 빠져 있다. 워싱턴의 풍향계인 한국 대기업들도 ‘경제안보 시대’를 맞아 외교안보 전문가를 영입하고 있다. 이달 업무를 시작한 LG워싱턴사무소 공동소장은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이끈 조 헤이긴 전 백악관 부비서실장이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는 삼성전자 북미법인 대외협력팀장이 됐다. 스티븐 비건 전 대북특별대표(국무부 부장관)는 포스코 고문이다. 그러니 윤석열 정부는 외교와 통상을 기존보다는 더 통합적인 틀로 바라봤으면 한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미국의 시스템은 생각보다 기계적이다. 대러 수출 통제에 동참하는 국가는 자동적으로 해외직접제품규칙(FDPR)에서 면제되고, 동참하지 않으면 FDPR 적용을 받는다. 미국이 한국만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협상의 여지도 없다. 우리는 미국과 철강의 대미 수출 물량(쿼터) 제한 조치에 대해 재협상을 벌이려 하지만, 이 역시 개별 사안으로 접근하면 미국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간 쿼터 자체가 없어 재협상을 벌인 유럽연합(EU)과 일본에 비해 한국은 쿼터 내에서 수출해 왔다. 새 정부의 시작과 더불어 누가 어떻게 경제안보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종합하며 지휘할 것이냐를 고민할 때다.
  • 與 “군사 작전하듯” 野 “구권력 정치공세”

    與 “군사 작전하듯” 野 “구권력 정치공세”

    여야가 2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논란을 두고 난타전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안보 공백’ 우려를 집중 부각했고, 국민의힘은 ‘정치 공세’라고 맞섰다. 이날 국방위에서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윤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과거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이런 데서도 상상하지 못할, 군사 작전하듯이 졸속으로 이전하는 것에 큰 문제가 있고 안보 공백을 반드시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합동참모본부 차장 출신의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유사시에 전방에서 교전이 붙었다면, 제가 있을 때는 합참벙커로 다 갔다. 국방부 지하실 운영 안 했다”면서 국방부가 합참 건물로 이전해도 안보 공백이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국민들의 반대 의견이 높다는 점도 부각했다. 김병기 의원은 “오늘 여론조사를 보니 58.1% 대 33.1%로 ‘옮기지 않는 게 좋겠다’는 여론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어제 오전만 해도 청와대에선 ‘윤 당선인의 의지가 지켜지길 원한다’고 했다가, 오후엔 안보 공백 이유로 예산 편성을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이전 비용을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 김민기 민주당 의원은 “인수위원회가 이사 비용을 496억원으로 잡았던데 말도 안 된다. 이는 (예비타당성 면제를 위해) 500억원 이하로, 답에다 문제를 맞춘 것”이라며 “굉장한 꼼수이고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지 않을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인수위에서 작성한 문서가 아니고 행정안전부에서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서 만든 문서가 496억원이다”라고 맞대응했다.
  • 인수위 보고 준비하는 국토부…주택공급·규제완화에 집중

    인수위 보고 준비하는 국토부…주택공급·규제완화에 집중

    24일 또는 25일 인수위 업무보고주택가 하향안정 국면이나 여전히 불안윤 당선인, 250만호 공급 로드맵도 담아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공무원 파견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에 존재감이 밀려 자존심이 상한 국토교통부가 이번 주 인수위에 업무보고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임기 5년 내 250만호’ 주택 공급 계획과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완화 방안 등에 집중할 방침이다. 22일 인수위와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국토부의 인수위 업무보고는 24일이나 25일에 이뤄진다. 인수위 업무보고는 크게 현안 보고와 공약 이행계획 보고로 나눠진다. 현안 보고에는 주택시장 동향 등 국토부 담당 업무 중 주요 현안에 대한 내용이 담긴다. 또, 공약 이행계획에는 윤 당선인의 공약 중 국토부 소관 정책을 어떻게 시행할지 구체적인 방안도 담는다. 부동산 정책의 주무 부처인 국토부의 최대 현안은 주택 매매·전세 시장의 안정이다. 국토부는 기본적으로 주택시장이 하향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여전히 국지적 불안 요소는 남아 있어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수위 보고서에서 강조할 전망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올해 1월 넷째 주 -0.01%로, 2020년 5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하락으로 전환된 뒤 8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는 등 연초부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선 이후 부동산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 아파트값이 하락세를 멈추고 보합으로 전환되는 등 불안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공약 이행계획 보고에는 이런 시장 동향과 함께 집값 안정을 위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공급 계획, 새 정부의 공약 이행 방안 등이 상세히 담길 전망이다. 윤 당선인의 대표적인 부동산 공약인 임기 내 주택 250만호 공급과 관련해 실현 가능성을 분석한 내용도 보고서에 담길 전망이다. 또, 구체적인 공급 계획과 일정 등이 담긴 ‘로드맵’도 보고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청년층을 위한 청년원가주택 30만호 공급 계획이나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반값 주택인 ‘역세권 첫 집’ 20만호 공급 계획에 대한 검토 의견도 포함된다. 재건축 등 정비사업 관련 규제 완화 방안도 보고 대상이다. 윤 당선인은 수요가 많은 서울 등 도심에 충분한 주택이 공급되도록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등의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준공 30년이 지난 노후 공동주택에 대해서는 정밀안전진단 면제를 추진하고 현 정부가 높여 놓은 안전진단 평가 기준을 낮추는 등 재건축 규제의 허들을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 [시론] 인플레이션과의 소리 없는 전쟁/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시론] 인플레이션과의 소리 없는 전쟁/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인플레이션 바람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미국의 2월 소비자물가(CPI)가 전년 동월보다 7.9% 상승하면서 1982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하고 유럽연합(EU)의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사상 최대치(5.6%)를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의 글로벌화 현상이 뚜렷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세도 누그러들지 않으며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글로벌 인플레이션 현상의 주요인은 ‘수요 견인’(Demand-pull)이었다. 세계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단기간 폭증하면서 수급 불안이 인플레이션을 촉발시켰다. 자동차 반도체 공급난과 해상운임 상승세가 대표적인 사례로 아직도 해결이 난망하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비용 견인’(Cost-push)의 영향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전으로 치달으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하고 니켈, 알루미늄 등 러시아 생산 비중이 큰 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원자재 조달 비용의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중장기적으로 고착화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첫째로 느리지만 분명한 경기 회복 시그널을 꼽을 수 있다. 세계 경제는 오미크론 확산 등으로 다소 움츠러든 모습이지만 여전히 반등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주요국들이 조금씩 경제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3월부터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 필리핀 등 격리 면제국 간의 하늘길도 열리고 있다. 억눌린 스프링이 강하게 튀어오르듯 각국의 본격적인 경제 정상화는 강력한 회복력으로 총수요를 늘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탄소중립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부담 역시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탄소중립은 더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우리 정부도 탄소중립을 위해 지난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2030을 수립하고 산업계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이 기준을 충족하려면 주력 산업마다 막대한 제반 비용이 소요된다. 석유화학 업계가 나프타 원료를 수소나 바이오 원료로 전환하는 비용은 약 89조원에 이른다. 철강(71조원), 반도체(17조원), 시멘트(10조원) 등 기타 고탄소 배출 산업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몫으로 남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소비자가 함께 부담해야 할 몫이다. 마지막 요인은 미중 분쟁,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대립이 확산되고 장기화될 경우 공급망 리스크가 높아지고 원자재 조달 비용의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은 일차적으로 중국, 베트남 등 주요 생산국의 수출입 물가를 끌어올리겠지만 결국 글로벌 공급망을 거쳐 최종 소비재 수입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는 이미 인플레이션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 연준은 이번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예정대로 기준 금리 0.25% 포인트 인상을 단행했고, 올해 6차례 추가 인상을 통해 연말까지 2% 수준으로 금리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금리 인상 타이밍을 저울질하고 있다. 우리 경제도 최근 물가 상승세와 미국 금리 인상에 대비해 지난 1월까지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며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고 중간재 수입 비중이 50%가 넘는 우리 무역 구조는 인플레이션에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민관 협력을 통한 효율적인 공급망 구조를 세워 원가 상승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산업 부문별로도 리스크 관리에 힘써야 한다.
  • [박철현의 이방사회] 靑 이전 계획, 잘 따져봐야/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박철현의 이방사회] 靑 이전 계획, 잘 따져봐야/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코로나 시국이 본격화되기 전인 2019년 본사 사무실을 이전했다. 원래는 자사 건물 두 개 층을 쓰고 있었는데, 그 빌딩을 팔면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 했다. 새 건물주는 임대료를 깎아 줄 테니 계속 있으라 했지만, 할인된 임대료가 새로 알아본 곳의 임대료보다 비싸기도 했고, 무엇보다 회사가 성장 중이었다. 본사를 찾는 거래처 손님이 계속 늘어나 번듯한 곳으로 이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회의록을 뒤져 보니 이사 결정을 내린 시기가 2019년 4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본사로 이사한 후 처음으로 임대료를 지불한 건 10월로 돼 있다. 처음 2개월은 새 사무실을 줄곧 찾았다.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났는데, 미리 입주해 있던 회사의 계약 기간이 2개월 남아 있어 기다려야 했다. 그들이 나간 후 임대료 면제 기간을 두 달 받아 사무실을 꾸몄다. 40평도 안 되는 사무실 이전이었는데 6개월이 걸린 셈이다.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한국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평균 몇 개월씩 걸리는 것 같다. 이게 아마 보통 사람들의 이사에 대한 감각이 아닐까 싶다. 갑자기 이사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급작스러운 청와대 이전 계획 때문이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청와대 영내엔 단 하루도 발을 딛지 않겠다는 당선인의 강력한 신념이 지난 일요일 기자회견을 통해 표출됐다. 그는 5월 10일엔 무조건 청와대를 개방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으며, 이번 건을 둘러싸고 여론조사 등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일단 들어가면 참모들에게 둘러싸여 국민과 소통이 안 된다는 이상한 이유를 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지만, 아무리 좋게 해석한들 결국 “나는 청와대 경내에서 대통령 업무를 단 하루도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무속, 미신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통 사람의 상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회사 사무실 하나 옮기는 데도 몇 개월이 걸리고, 새로운 곳을 찾을 때까진 기존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이번 건 역시 보통의 감각이라면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있으니 일단 청와대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청와대 이전을 준비하는 게 순리에 맞다. 그런 상식을 모조리 무시한 채 청와대 이전은 지도자의 신념, 철학이니까 여론조사는 안 할 것이며 나아가 용산 앞 가족공원에서는 시위마저 금지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명분도 이상하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청와대를 돌려준다 했는데, 왜 여론조사는 안 하고 시위는 금지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일본의 총리 공관은 2012년 이후 비어 있었다. 아베 전 총리는 사저에서, 스가 전 총리는 도쿄 아카사카 의원회관에서 관저로 출퇴근했다. 작년 12월 기시다 총리가 10여년 만에 다시 들어갔지만 아무 문제 없이 일만 잘하고 있다. 윤 당선인도 이상한 조언이나 헛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일반 국민의 상식에 부응하는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거치길 바란다.
  • 사회적기업 쑥쑥… “관악은 일자리 메카”

    사회적기업 쑥쑥… “관악은 일자리 메카”

    대규모 ‘벤처밸리’를 조성해 민간 일자리를 흡수하고 있는 서울 관악구가 이번에는 사회적 기업을 통한 ‘착한 일자리’ 만들기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벤처밸리를 통해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을 유치하는 동시에 취약계층 등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까지 확충해 베드타운에 머물렀던 도시를 ‘일자리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21일 관악구에 따르면 구는 최근 수립한 ‘2022년 사회적경제 활성화 종합계획’을 바탕으로 올해부터 사회적 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한다. 사회적 기업 등의 발굴, 판로 개척, 홍보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이들의 안정적인 성장을 도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지역 내에는 현재 230여개의 사회적경제 기업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구는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통한 주민과의 상생’이라는 비전을 내세웠다. 먼저 ‘관악구 사회적경제 통합지원센터’를 지속적으로 운영해 사회적경제 조직의 설립부터 운영까지 효율적·안정적으로 지원하고 사회적경제 기업이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이들 기업에 업무 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는 공간지원 사업과 경영 지원 및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재정지원 사업도 확대 추진한다. 구청 홈페이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지역 내 전광판 등을 통해 각종 분야별 사회적경제 지원사업도 적극 홍보할 예정이다. 사회적경제 시설에 공유 개념을 도입한 창작공간 ‘이루다 창업공작소’에선 주민들에게 창업 교육과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협동조합 설립에 관심 있는 주민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도 시행한다. 구는 이 같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이 지역 전체의 창업 생태계 활성화 정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관악S밸리’로 분류되는 낙성대동, 대학동 일대가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로 지정돼 민간 일자리 증가가 기대된다. 이곳에 입주한 벤처기업들은 재산세 및 취득세가 37.5% 감면되고, 개발부담금·교통유발부담금 등의 각종 부담금이 면제되는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된다. 구는 관내 벤처·창업 기업의 투자유치 기회 확대를 위해 ‘관악S밸리 데모데이’를 오는 6월 첫 회를 시작으로 12월까지 총 6회 개최할 예정이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사회적경제 기업이 지역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사설] 지방선거 노려 보유세 대폭 완화 추진하는 민주당

    [사설] 지방선거 노려 보유세 대폭 완화 추진하는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 1주택 실수요자에 대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지난 18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논의했다고 한다. 종부세 면제까지 거론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정부가 23일 보유세 부담을 지난해 수준으로 묶는 방안을 발표한다는데 민주당은 한 술 더 뜬 파격적 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보유세 인상이 너무 가파른 만큼 속도 조절의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당정의 보유세 완화 추진은 그동안의 과세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민주당은 지난 5년간 아파트값 폭등을 잡겠다며 보유세와 거래세를 동시에 무차별적으로 올렸다. 양도소득세, 재산세, 종부세 세율 조정과 세금 부과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비율 현실화도 밀어붙였다. ‘세금폭탄론’에 대해선 극히 일부만 해당되는데 세 부담 우려가 과장됐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다 대통령 선거 직전 재산세 동결 등을 허둥지둥 내놓더니 선거에 패한 뒤엔 기존 과세 기조를 뒤집겠다는 것이다. 6월 지방선거라도 이겨 보려는 원칙 없는 갈팡질팡 행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주당 방안은 시장 정상화에도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시장은 지난해 가을 이후 6개월째 ‘거래절벽’ 상태다. 보유세와 거래세를 동시에 과하게 올린 데다 임대차 3법까지 작용해 거래가 꽁꽁 묶여 있어서다. 집주인들은 보유세 부담에 집을 내놓고 싶어도 ‘거래세 폭탄’이 무서워 이도 저도 못 한다. 따라서 지금은 보유세 완화보다는 거래세를 낮춰 거래에 숨통을 틔우는 게 급선무다. 많은 선진국들은 이런 이유로 고보유세·저거래세의 부동산세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땜질 처방을 내놓을 게 아니라 집값 안정과 시장 정상화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부터 재설계하기 바란다.
  • [데스크 시각] ‘밥그릇 싸움’ 할 때가 아니다/김미경 경제부장

    [데스크 시각] ‘밥그릇 싸움’ 할 때가 아니다/김미경 경제부장

    대선이 끝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또 ‘밥그릇 싸움’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앞으로 5년, 아니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이 대러 제재에 나서면서 화두가 된 것은 미국의 대러 수출통제 조치인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적용 대상국에서 예외가 되느냐였다. 그런데 ‘물 샐 틈 없다’는 한미동맹에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우리나라가 예외 대상국이 되기까지는 유럽연합(EU)·일본·영국·캐나다·호주 등 32개국이 면제된 뒤 일주일이나 걸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정부조직법상 통상교섭과 경제외교를 각각 나눠 맡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간 엇박자가 이 같은 참사를 불러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외교부는 경제안보 차원에서 미국의 대러 제재 동참을 추진했지만 국내 업계에 미칠 악영향 등을 고려한 산업부와 기획재정부가 미적거리면서 협상이 지연됐고, 결국 산업부와 기재부 고위 당국자들이 부랴부랴 미국을 방문해 뒤늦게 예외 대상국에 겨우 포함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 같은 상황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과 인수위, 관계 부처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는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의 외교부 복귀 필요성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특히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공청회 한 번 없이 통상교섭 기능을 산업부로 빼앗긴 외교부는 지난 9년간 통상과 경제외교가 서로 다른 부처에서 따로 이뤄지면서 벌어진 부작용을 막기 위해 통상교섭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통상산업부→외교통상부→산업통상자원부에서 또 어떻게 바뀔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부처 조직을 떼었다 붙였다 또는 부처명 간판 바꾸기 수준이 아니어야 함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새 더 격화한 미중 간 반도체 등 공급망 경쟁과 한중 간 요소수 사태 등은 통상교섭과 외교안보가 복합된 고차원적 경제안보가 얼마나 중요해졌는지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미국·EU·일본 등은 경제안보 조직 강화 등을 통해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경제안보가 중요하다고 하니 산업부와 외교부가 각자 자기 팔만 흔들고 기재부도 신설된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통해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등 복마전 양상이다. 이제는 통상 중 무역(산업부)과 교섭(외교부) 기능을 나눠 각각 더 잘할 수 있는 부처에 맡겨야 한다. 특히 산업부 내 한직으로 전락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통상교섭 인력을 외교부가 다시 키워 블록화 시대 생존을 위한 경제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대외적으로 경제안보 강화가 중시되는 만큼 국내적으로는 저출산·고령화 등에 대응하기 위한 복지정책이 새 정부에서 더욱 정교하게 짜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초고령 시대 노인 빈곤 해소 및 안정적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공·사적 연금을 포함한 ‘포괄적 연금통계’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데, 기재부 산하 외청인 통계청이 주도하다 보니 국세청 등 다른 기관들의 비협조로 난항을 겪고 있다. ‘데이터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국가통계는 퇴직·과세·교육·일자리·주택 등 부처별로 흩어져 데이터 기반 연계 정책 추진이 어렵다. 통계청이 추진하는 ‘K통계체계’는 경제 외 사회·복지·환경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만큼 국무총리 산하 ‘통계데이터처’로 개편해 각 기관 통계를 연계·공유하는 디지털 플랫폼 역할을 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이들 외에도 조직 개편 필요성이 적지 않다. 인수위 출범에 맞춰 정책 경험 없이 탁상공론만 하는 학계의 조직 개편안 보고서가 또 넘친다.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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