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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

    발달장애 아들 둔 허강원씨의 삶그날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가명)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불혹의 나이에 키가 150㎝에서 멈춰버린 큰 아들은 질뚝거렸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렸다.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들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한씨는 2015년 4월 15일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당시 41)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지난 7월 31일, 허씨를 서울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세상과 등진 그의 삶이 달라진 건 크게 없어 보였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잖아. 노력도 많이 했고…. 지나간 일이니까”라며 애써 태연했다. 긴 설득 끝에 그의 집 앞에서 지난 삶에 대해 들었다. 아내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 청소일을 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어 때마침 그는 혼자였다. 허씨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여지는 남겼다. 노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때 예감했어. 차라리 죽었어야 했어.” 큰아들은 아내가 임신한 지 9개월째 되는 날 태어났다. 수술할 돈이 없어 산파에게 부탁했다. 어렵사리 아이는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왔지만,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산파는 도망갔고, 아내가 급한 맘에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렸다. 기적처럼 큰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렵게 살아났지만 아이는 약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섯 살이 됐지만 서지 못했다.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1급이라고 했다. “요즘 눈으로 생각해 보면 장애를 둔 아이를 키우는 게 짜증 날 일도 아니잖아. 근데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허씨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다. 25살 경기 동두천 내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전역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28살 아내와 혼인해 다음해 큰아들을 가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중랑구 근처 면도칼 공장에서 일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가진 기술이 없으니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큰아들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인천 부평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을 포기하던 때다. 10개월쯤 지나서였을까. 특수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밥을 대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야속했다. “나아지는 것 없다”는 말에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없는 살림에 매달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러 가며 학교를 보냈지만,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발달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머리는 알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잘하는 건 집에서 텔레비전 보기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텔레비전을 틀어 주면 온종일 봤다. 말은 대충 알아들었고, 간신히 걸어 똥오줌은 가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흘린 김칫국물을 닦고, 국물이 묻은 옷을 벗기고, 발버둥 치는 몸을 씻기는 일은 40여년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큰아들이 어렸을 땐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이웃도,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또래들이 태권도복 입고 태권도장 가는 모습을 보잖아요. 우리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찔찔찔 하는데, 사람 눈 뒤집히지. 행복할 수가 있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비관했다. 남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언제나 단정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남들은 늘 추하게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큰아들 밥 차려 주고 거두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냥 큰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얘기의 끝은 늘 아들, 딸, 며느리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소심해졌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에게도 형은 굴레였다.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했다. 부모의 마음은 미어졌다. “부모들 모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이었다. 결국 돌보는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를 센터에 보내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씨 내외는 경제적으로 늘 허덕였다. 맞벌이를 해 봐야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빌딩 청소일을 해 왔고, 허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2교대 근무 탓에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금방 그만뒀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딱 떨어뜨렸어.”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 허씨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식사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더니 뇌경색이 발견됐다. 이미 고혈압과 협심증, 류머티즘 관절염, 척추 디스크,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뇌출혈은 느낌이 달랐다. 곧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큰아들은 누가 돌봐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걷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팽팽하던 긴장의 사슬은 톡 끊어졌다. “아들을 망치로 내리쳤소. 규남이는 내가 데리고 갑니다. 정선희 당신을 만나 한평생 잘 지냈소. 규남이에겐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소이다.”(유서 전문)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쯤, 아내가 일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망치로 아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회한이 몰아치기 전에 유서를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알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파트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중간쯤 갔을까. 허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질긴 목숨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허씨는 3일간 혼수상태를 오갔지만, 끝내 깨어났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허씨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수십년간 정성 들여 보살펴 온 점을 인정했다. 고령이고 지병이 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 맏아들을 살해했다는 점 등도 참작했다. 그는 돈 때문에 큰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월 1만~2만원씩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그런 애들 불쌍하잖아….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이나마 못 하겠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불혹의 장애아들 돌보던 뇌경색 부친 “가자, 같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불혹의 장애아들 돌보던 뇌경색 부친 “가자, 같이”

    ●발달장애 자식에게 둔기 든 애끊는 父情 그날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 아들의 몸뚱이만이 아니었다. 허강원(73·가명)씨의 실낱같은 희망도 함께였다. 발달장애(지적장애 1급·다운증후군)로 불혹의 나이에 키가 150㎝에서 멈춰버린 큰 아들은 질뚝거렸지만 걸어는 다녔다. 아들이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이상의 의미였다. 대소변을 혼자서 가리고, 밥이 있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한계치이기도 했다. 허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밥 먹자”고 큰아들을 불렀다. 큰아들은 기우뚱하더니 서지 못하고 엎드렸다. 식탁으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밤잠 못 이루며 끙끙댔던 고민들이 명쾌해졌다. ‘그래 같이 죽자’. 한씨는 2015년 4월 15일 집 안방에서 자던 큰아들(당시 41)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간병이라는 게 매스컴에 나오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달라.” 유난히 태양이 뜨겁던 지난 7월 31일, 허씨를 서울 그의 집 앞에서 마주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세상과 등진 그의 삶이 달라진 건 크게 없어 보였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잖아. 노력도 많이 했고…. 지나간 일이니까”라며 애써 태연했다. 긴 설득 끝에 그의 집 앞에서 지난 삶에 대해 들었다. 아내는 강남구의 한 빌딩에 청소일을 하러 갔고, 작은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어 때마침 그는 혼자였다. 허씨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여지는 남겼다. 노인의 얼굴에 쓴웃음이 내려앉았다. “그래. 그때 예감했어. 차라리 죽었어야 했어.” 큰아들은 아내가 임신한 지 9개월째 되는 날 태어났다. 수술할 돈이 없어 산파에게 부탁했다. 어렵사리 아이는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왔지만,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산파는 도망갔고, 아내가 급한 맘에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렸다. 기적처럼 큰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렵게 살아났지만 아이는 약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다. 다섯 살이 됐지만 서지 못했다.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1급이라고 했다. “요즘 눈으로 생각해 보면 장애를 둔 아이를 키우는 게 짜증 날 일도 아니잖아. 근데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장애 아들 돌본 40여년, 살아도 산 게 아니었어허씨는 강원도 대관령에서 나고 자랐다. 25살 경기 동두천 내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고, 전역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28살 아내와 혼인해 다음해 큰아들을 가졌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 중랑구 근처 면도칼 공장에서 일했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가진 기술이 없으니 막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없이 살았지만 큰아들의 장애가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집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없어 수소문 끝에 인천 부평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부모들이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을 포기하던 때다. 10개월쯤 지나서였을까. 특수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에게 밥을 대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야속했다. “나아지는 것 없다”는 말에 작은 희망조차 사라졌다. 없는 살림에 매달 쌀 한 가마니 값을 치러 가며 학교를 보냈지만,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발달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머리는 알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가 잘하는 건 집에서 텔레비전 보기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텔레비전을 틀어 주면 온종일 봤다. 말은 대충 알아들었고, 간신히 걸어 똥오줌은 가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이가 흘린 김칫국물을 닦고, 국물이 묻은 옷을 벗기고, 발버둥 치는 몸을 씻기는 일은 40여년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큰아들을 돌보느라 나들이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니 일을 마치고 퇴근해도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큰아들이 어렸을 땐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선 이웃도, 친구도 모두 사라졌다. “또래들이 태권도복 입고 태권도장 가는 모습을 보잖아요. 우리 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찔찔찔 하는데, 사람 눈 뒤집히지. 행복할 수가 있나.” 우울증이 찾아왔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리며 비관했다. 남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술도 담배도 끊었다. 이게 벌써 수십년 전이다. 언제나 단정하게 보이려고 했지만, 남들은 늘 추하게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큰아들 밥 차려 주고 거두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냥 큰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공원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얘기의 끝은 늘 아들, 딸, 며느리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없어서 소심해졌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에게도 형은 굴레였다.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했다. 부모의 마음은 미어졌다. “부모들 모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거야.”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었다. 돈을 뜻하는 손짓이었다. 결국 돌보는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아이를 센터에 보내는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허씨 내외는 경제적으로 늘 허덕였다. 맞벌이를 해 봐야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빌딩 청소일을 해 왔고, 허씨는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2교대 근무 탓에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금방 그만뒀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딱 떨어뜨렸어.”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1년 전 허씨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식사를 하다가 손에 힘이 없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더니 뇌경색이 발견됐다. 이미 고혈압과 협심증, 류머티즘 관절염, 척추 디스크, 수면장애 등을 앓고 있었지만 뇌출혈은 느낌이 달랐다. 곧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큰아들은 누가 돌봐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잘못된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믿음도 생겼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걷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팽팽하던 긴장의 사슬은 톡 끊어졌다. “아들을 망치로 내리쳤소. 규남이는 내가 데리고 갑니다. 정선희 당신을 만나 한평생 잘 지냈소. 규남이에겐 입이 열개여도 할 말이 없소이다.”(유서 전문)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쯤, 아내가 일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망치로 아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회한이 몰아치기 전에 유서를 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알을 들이켰다. 정신을 잃기 전에 아파트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중간쯤 갔을까. 허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질긴 목숨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남편을 발견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허씨는 3일간 혼수상태를 오갔지만, 끝내 깨어났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법원은 허씨가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을 수십년간 정성 들여 보살펴 온 점을 인정했다. 고령이고 지병이 있고, 남은 가족을 생각해 맏아들을 살해했다는 점 등도 참작했다. 그는 돈 때문에 큰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월 1만~2만원씩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내가 어려움을 겪어 봤으니까. 그런 애들 불쌍하잖아…. 집사람이 일을 그만두면 이나마 못 하겠죠.”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중산층이 사라지고 난 후…

    중산층이 사라지고 난 후…

    순수한듯, 자극적이며 중독적인 필력 죽음 향해 살아가기 급급한 인간의 삶 승자·패자 양극화된 이분법 세상 그려아내가 임신할 무렵 두 집 살림을 차린 대기업 회장의 아들, 시아버지와 남편을 제치고 기업을 손에 넣겠다고 마음먹은 금수저 며느리, 기업 회장 아들과 사귀며 화려한 ‘톱’의 세계를 꿈꾸게 된 평범한 젊은 여성. 김사과(34) 작가가 2013년 ‘천국에서’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 ‘뉴(N.E.W.)’(문학과지성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막장 드라마’에서 본 듯 익숙하다. 작가는 부와 권력을 좇는 그들의 욕망보다 그들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소설은 대기업 오손그룹을 이끄는 정대철 회장 일가 사람들과 우연히 이들과 얽히게 된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아버지인 정 회장의 카리스마에 눌려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지용은 겉은 멀쩡하지만 어쩐지 의뭉스럽다. 학벌과 미모, 집안 등 삼박자를 고루 갖춘 최영주는 정지용과 정략결혼을 하지만 이내 자신 앞에 놓인 절망적인 삶에 괴로워한다. 두 사람이 신혼집을 마련한 아파트에 우연히 입주한 이하나는 정지용의 유혹에 이끌려 그의 내연녀가 되고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중독된다. 미국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작 ‘천국에서’를 통해 몰락하는 중산층의 삶을 묘사하고 난 뒤, 정말로 중산층이 사라져버리고 나면 남는 풍경은 어떨지 궁금했다”면서 “승자와 패자, 먹는 자와 먹히는 자로 양극화된, 흑과 백의 완벽한 이분법의 세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집필 계기를 설명했다. ‘200평짜리 최고급 펜트하우스’에 사는 상류계층과 ‘5평짜리 서민용 원룸’에 사는 하류계층의 배경과 특징은 다르지만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극단적으로 순응한다는 점에서 같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곤경에 처해 있지만 곤경의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기보다는 그저 가능한 한 빨리, 스마트하게 그 곤경에서 빠져나오는 데 몰두한다”면서 “그 수단으로서 하는 행동들이 누군가의 눈에는 유령처럼 보일 수도 있을 만큼 괴상한 방식이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나가려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그려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불륜 치정극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듯하다가 후반부에서 작가 특유의 파괴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정지용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자신을 위해 제발 죽어 달라고 호소한다. 최영주는 지용의 후계자인 아이를 제 손으로 죽이고, 아이 잃은 슬픔을 태연하게 연기한다. 정지용에게 삶을 송두리째 ‘잡아먹힌’ 이하나의 왼쪽 팔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잘린다. 돈과 물질에 집착하는 시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를 꼬집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그보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간 종족은 대체로 비이성적이고, 공격적이며, 단기적인 사고를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따라서 진보주의자들이 말하듯 세상이 점점 더 나아진다는 개념은 사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느낍니다. 그저 죽음을 향해 매일매일을 살아가기에 급급할 뿐이죠.” 세상을 향한 분노를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가 특유의 형식 실험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편하게 술술 읽히지만 현 세태를 조명하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여러 가지 심각한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순수한 즐거움, 순도 높은 쾌락에 가깝기를 바랍니다. 텔레비전, 극장, 스마트폰이 줄 수 없는 복잡하고 세련된 수준의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경험으로서의 독서를 제공하는 것이 저의 작가로서의 야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신소이, 시어머니와 쇼핑 ‘너무 다른 취향’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신소이, 시어머니와 쇼핑 ‘너무 다른 취향’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시댁 곡성에 방문한 지형-형균 부부의 특별한 이벤트와 시어머니와 쇼핑에 나선 며느리 신소이, 그리고 시누이 방문 그 다음날을 맞이한 시즈카의 모습이 그려진다. 첫 이야기로는 곡성 시댁에 방문한 지영-형균의 모습이 담긴다. 오랜만에 시댁에 방문한 초보 며느리 민지영은 시아버지의 오랜 소원을 들어드리려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한다. 지영은 시할머니와 시할아버지까지 대가족이 총출동하는 ‘가족사진’ 촬영을 준비한다. 일일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자처한 지영 덕에 화목한 분위기 속에 촬영은 이어진다. 하지만 어떤 일로 인해 급히 언짢아진 시아버지는 촬영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다음은 시어머니와 첫 쇼핑 데이트에 나선 할말은 하는 며느리 신소이의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시어머니와의 첫 데이트부터 뒤늦게 도착한 소이는 애교 넘치는 사과로 시어머니의 마음을 돌려보려 한다. 이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쇼핑에 의류 쇼핑몰 CEO인 소이는 다양한 옷을 시어머니에게 추천해 보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취향에 시어머니는 추천 받은 옷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시어머니가 선택한 의상이 공개될 예정. 뒤이어 두 사람은 이불 매장 구경에 나선다. 구경하던 중 단정하고 가지런한 이불을 바라보던 시어머니는 급기야 폭발하고, 소이는 반론에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쇼핑을 마무리한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시작하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이에게 시어머니는 단호한 조언을 건넨다. 시어머니는 다시 ‘윤우의 어항사건’을 언급하고, 소이의 대처법이 방송을 통해 공개된다. 마지막으로 시누이의 기습 방문을 맞이한 일본인 며느리 시즈카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지난 밤 시누이 불시의 방문으로 인해 가족들은 자정이 넘어 잠이 들게 된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시즈카는 다시 일을 시작한다. 아침 메뉴는 간밤의 막걸리-치킨 파티로 해장이 필요한 시누이로 인해 ‘간단한 콩나물국’이 정해지고, 집에는 ‘콩나물’이 없어 시즈카는 이를 사러 집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시즈카가 외출하는 동안 시누이가 허락 없이 특별 손님을 초대하고, 이 손님의 정체는 방송을 통해 공개된다. 사진=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세미의 인생수업] 닭 두 덩어리

    [유세미의 인생수업] 닭 두 덩어리

    “말도 말어. 내가 그 생각하면 아직도 속에서 천불이 나. 생일인지 뭔지 앞으로 또 하자고 하면 이 집구석 싹 다 엎어 불고 말테니께.”생일상 잘 받아 먹었느냐고 축하 인사 한번 건넸다가 날벼락마냥 화풀이당한 친구는 어안이 벙벙하다. 사실 친구한테 퍼부을 일은 아닌데 미안하다는 소리도 안 나온다. 그날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꼭지가 뜨거워지는 박복자 여사. 몇 해 전부터 생일이면 즐겁기는커녕 나이 먹는 서글픔에 절로 한숨 나오는데 올해는 아들 내외 때문에 마음이 더 상했다. 그 전에도 어미 생일을 잘 챙긴다 여기지 않았건만 이번에는 전화하는 품새부터 부아를 돋운다. “어머니 생일 어떻게 할까요?” 심드렁한 며느리 음색에 서운함이 먼저 가슴에 얹힌다. ‘어떻게 하긴? 내 생일상 내가 차리랴?’ 목구멍까지 솟구친 말을 꿀꺽 삼키고 있으니 따발총처럼 떠드는 며느리는 이미 일정을 결정한 뒤였다. “아이들 학원 때문에 생신날에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구요. 그냥 이번 토요일에 미리 저녁 먹는 걸로 하죠 뭐. 전화드릴게요.”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그녀, 죄 없는 남편에게 괜한 심통이다. 시어미 알기를 오뉴월 식은 밥덩이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둥 처음부터 남편이라는 사람이 저리 무심하니 애들까지 닮아서 한통속이라는 둥 미운 남편만 가자미눈으로 째려보다 머리 싸매고 휙 드러누워 버렸다. 그래도 저녁 먹자는 토요일 오후부터 박복자 여사는 부산하게 공들여 화장하고 오랜만에 머리도 정성껏 매만졌다. 생일 아닌가. 그러나 오후 6시가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혼자 끌탕하던 그녀가 오후부터 곱게 차려 입은 채 벌서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려는 순간 며느리에게 전화가 왔다. 근처 찜닭 집으로 예약했으니 7시에 식당으로 오라나. “나 참 기가 막혀서. 부모 알기를 대체 어떻게 아는 건지. 남이랑 약속해도 그렇게 무성의하게 하겠냔 말야. 찜닭 먹겠다고 차려 입고 주렁주렁 걸고 달고 나선 내가 우세스러워서 원.” 이미 마음 상한 박복자 여사가 찜닭이 마음에 들 리 없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다. “대체 그게 무슨 맛인지…. 닭 두 덩어리를 물었다 놨다 먹는 흉내만 내다 일어섰네.” 겨우 식사만 마치고 자식들이 서둘러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허전할 수 없다. 허청허청 걷는 걸음마다 어느덧 선득한 밤바람이다. 말하면 세금 붙는 줄 아는 남편이 그제서야 입을 뗀다. “애들한테 서운해 말어. 건강하게 새끼들 잘 키우고 제 밥벌이 하고 살면 고마운 거지. 난 아침에 눈떠 애들 생각하면 그저 고맙고 대견해.” 이 양반이 누구 염장을 지르나. 40년 같이 살며 마누라 생일 한번 변변히 챙기지 않은 당신이 할 소리냐고 막 따지려는 순간 그녀의 말을 남편이 또 가로막는다. “이 험한 세상에 내 아이들이 그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훌륭해. 그거면 됐어. 세상 철없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부모가 돼서 밤낮없이 직장에, 집안일에 달음질치는 거 보면 안타깝지. 그래도 다 이겨 내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잖은가.” 남편이 늙긴 늙은 모양이다. 눈가에 언뜻 물기가 비친다. “마누라를 그렇게 좀 가엾게 여겨 보쇼”라며 못 본 척 고개 돌리고 그녀는 앞서 걷는다. 그러고 보니 추석이 낼모레다. 이번 명절은 야채값이 다락같이 올라서 상을 차릴 수나 있나 벌써 겁부터 난다. 배추 사다 김치라도 미리 해놔야 애들이 와서 먹을 텐데. 아들이 좋아하는 새우장도 좀 만들고 집에 갈 때 들려 보낼 밑반찬은 뭘로 하나. 투덜거리던 마음은 그새 잊고 우리의 박복자 여사 벌써부터 마음이 급하다.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독박 간병, 살인 충동마저 부르는 악몽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독박 간병, 살인 충동마저 부르는 악몽

    가족 간병인 325명 설문조사아픈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 10명 중 3명이 간병의 어려움 때문에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으려고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간병 기간이 7년 이상 길어지거나 간병 시간이 하루 평균 8시간을 넘어갈 때 한계에 부딪혔다고 느끼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심화됐다. 서울신문이 지난 7~8월 한국치매협회, 뇌질환환우모임 등과 공동으로 가족 간병인 325명을 대상으로 간병의 어려움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5.7%가 “간병으로 신체와 정신 모두 한계에 몰리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자주 그렇다 59.4%, 가끔 그렇다 36.3%)고 답했다. 살인 내지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답한 응답자도 29.2%에 이르렀다. 이들은 ‘간병으로 인한 정신적·신체적 한계’(60.2%·복수 응답), ‘경제적 어려움의 심화’(50.6%), ‘미래에 대한 불안감’(45.8%) 등이 몰려올 때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매우 자주 5.4%, 종종 23.8%)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는 간병을 하는 가족 중 상당수가 간병 살인 또는 간병 자살의 위험에 놓여 있다는 신호로,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건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임을 보여 준다. [7년차] ●간병인 45% 극단적 생각 우선 전체 응답자 가운데 1년 이상 간병으로 환자를 돌본 응답자는 67.4%에 이르렀으며, 10년 이상 간병 중인 사람들도 20.6%나 됐다. 치매나 뇌혈관 질환 같은 만성질환이나 자폐증, 발달장애의 특성상 환자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서 간병이 몇 년씩 장기화할 때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간병 기간별로 살펴보면, 간병을 시작한 지 1년 이하의 응답자들에서는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으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중이 21.1%로 나타났다. 하지만 간병 기간이 7년 이상 된 응답자들에서는 극단적인 생각을 해 본 비율이 45%로 두 배 이상 훌쩍 뛰었다. 간병 시간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간병에 매달린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44.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간병 시간이 8시간을 넘어가면 살인 및 자살 충동도 급격히 증가했다. 환자를 돌보는 시간이 하루 8시간 미만인 응답자들에게선 살인 및 자살 충동이 평균 20.4%로 나타난 데 반해 하루 8~10시간 간병을 하는 응답자들에게선 46.3%, 10시간 이상 간병을 하는 응답자들에게선 35.6%로 나타났다. 특히 환자를 죽이거나 같이 죽으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의 60.9%는 본인 외에는 환자를 돌볼 사람이 없는 이른바 ‘독박 간병’을 하고 있었다. 간병 가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악몽 같은 현실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간병 가족의 어려움을 5가지 항목으로 나눠 각각 힘든 정도를 1~5점(낮음→높음)까지 나타내도록 했다. 그 결과 환자 가족들은 ‘간병은 끝이 없다’(평균 4.3점)를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이어 ‘비싼 약값, 치료비에 경제적으로 궁핍해진다’(3.7점), ‘하루 대부분 시간을 간병에 할애한다’(3.7점),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3.6점), ‘간병 방법을 잘 모르겠다’(3.0점) 순이었다. 종일 환자의 손발 노릇을 하다 보니 간병인들의 수면 부족도 심각했다. 76.9%는 불면증이나 수면 부족을 호소했다. 또 10명 가운데 7명 이상(71%)이 간병 이후 자신의 건강도 나빠졌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체력 저하(60.5%·복수 응답)와 우울증 등 정신질환(57.0%)이 많았다.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세계치매학회에서 치매 환자의 보호자가 우울증이나 심혈관계 질환 등으로 사망할 확률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면서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고령 환자뿐만 아니라 이를 간병하는 가족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도 중요하지만 간병하는 가족을 위한 상담이나 교육, 지원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82%] ●간병인 10명 중 8명이 여성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여성(82.8%)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2017년)에 따르면 주 수발자의 71.7%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딸이나 며느리가 부모 또는 시부모를 간병하는 비중이 절반(49.2%)에 달했다. 가족 간병인의 마음을 치료하는 PTC(Powerful Tools for Caregivers)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이성희 마음살림 가족지원협회 대표는 “한국 정서상 부모를 어떻게든 직접 모셔야 한다는 인식이 커 주로 장남이나 그 며느리가 간병을 떠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과정에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가족 갈등이나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면서 “집안에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모인 가운데 가족 회의를 통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남성이 직접 간병을 맡는 경우 평소 집안일 등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현실을 부정하기까지 한다”고 덧붙였다. 설문 응답자들은 우선적으로 ‘환자 가족 휴가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꼽았다(48.2%·복수 응답). 환자 가족 휴가 제도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일정 기간은 간병의 굴레에서 벗어나 쉴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이 기간 간병인이나 도우미를 파견하거나 단기보호시설에서 환자를 돌보는 제도다. 이어 취업, 현금 지원 등 경제적 도움(46.4%), 전문요양시설 확대(42.3%), 환자 가족의 정신적, 정서적 지지와 상담(32.7%), 요양보호사 지원 확대(27.4%), 유급 간병휴직(22.6%) 순으로 필요하다고 답했다. 현재 정부는 노인돌봄종합서비스 차원에서 1년에 최대 6일간 치매환자에 한해 가족휴가지원 제도를 운영 중이다. 장기요양 1~2등급 환자의 경우 24시간 방문요양 서비스를, 1~2등급을 제외한 치매환자들은 단기보호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용자 수는 115명에 불과하다. 휴가지원 대상이 치매에 한정돼 있고, 휴가를 신청해도 환자를 맡아줄 시설을 찾기 힘들다(전국 204곳)는 것이 보호자들의 불만이다. 이 밖에도 응답자들은 중증 장애인 전문 돌봄 제도를 비롯해 가족 간병 수가제 도입, 반찬 배달 지원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가족요양보호사 제도처럼 가족 간병인에게 허용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가족 간병을 하는 경우 하루 1시간씩 월 20일간 노동을 인정하고 급여를 지급한다. 하지만 장애인의 신체활동이나 가사 및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운 일부 도서지역을 제외하고는 가족이 활동지원사 역할을 하고 급여를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24시] ●하루종일 붙어서 돌봐야 뇌질환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자녀를 둔 오모(52·여)씨는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모가 아니면 어디가 불편한지 알아차릴 수 없는 최중증 장애인이다 보니 24시간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부부가 생계도 아이가 잠든 시간에 교대로 나가 잠깐 일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가 있지만 장애가 심한 경우에는 부모가 직접 돌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를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1일부터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휴게시간(8시간 근로 중 1시간)을 보장하기로 하면서 휴게시간에 한해 가족이 활동지원사를 대체하는 방안을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향후 모니터링을 통해 가족 허용 여부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탐사기획부 -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제이블랙 “마리는 100점 만점에 200점, 맹목적으로 사랑해”[화보]

    제이블랙 “마리는 100점 만점에 200점, 맹목적으로 사랑해”[화보]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서 결혼 5년 차 부부로 달달한 매력을 보여준 댄서 부부 제이블랙과 bnt가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총 세 가지 콘셉트로 진행된 촬영에서는 모던한 화이트와 블랙 의상으로 카리스마 있는 비주얼을 자아냈다. 이어진 촬영에서는 브라운과 핑크 컬러 블록이 돋보이는 의상으로 개성 있는 무드를 연출했다. 마지막 촬영에서는 체크 슈트와 화려한 패턴의 점프 슈트에 볼드한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더해 감각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촬영이 끝나고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가식 없이 솔직한 대답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가장 먼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방송 이후 근황에 대한 질문에 제이블랙은 “요즘엔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는 가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알아봐 주셔서 너무 행복하죠. 그에 따른 다른 활동도 줄곧 이어지고 있어서 제가 진짜 원했던 것들을 이루고 있어요. 댄서가 연예인이길 바랐거든요. 그 꿈을 이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며 솔직한 대답을 전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땠냐는 질문에 마리는 “뮤지컬 같은 ‘댄스컬’ 공연이 있었어요. 공연 준비를 위해 여러 팀이 모였는데 거기서 만나게 됐고 눈이 맞았죠. 처음엔 살짝 내숭도 떨었어요”라고 답했고 제이블랙은 “처음에는 제가 먼저 접근을 시도했죠. 마리가 그때 당시 무릎이 안 좋아서 많이 아팠었는데 겁먹고 우는 모습을 보고 키도 크고 굉장히 강한 외모를 가진 여자가 너무 아기처럼 울어서 거기에 반전매력을 느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며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 이들에게 처음부터 존댓말 사용을 했냐고 묻자 제이블랙은 “예전에는 선후배로 만났으니까 마리는 저한테 존칭을 쓰고 저 같은 경우는 편하게 불렀어요.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제가 장난 반 애교 반 애정표현처럼 사용하던 게 습관이 돼서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어요. 지금은 존댓말이 더 편해요”라고 답했다. 현재 스트릿 댄서 최정상의 위치에 있는 제이블랙은 군 제대 후 스트릿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고 또래 친구들이 심사위원을 볼 나이에 시작한 터라 조급함이 있었다고. 또한 “유명해질수록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게 되니까 만족하게 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영상에서 저를 봤을 때와 실제로 춤추는 모습을 봤을 때 혹여 차이가 크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계속 따라붙기도 해요. 20대 초반 때 보다는 신체적인 트러블이 많고 아직은 춤을 출 때 어느 정도의 체력이 소진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보니 춤 문화를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죠”라고 덧붙였다. 춤에 관해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마리는 “어느 정도는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같은 춤을 춰도 약간은 다른, 어렸을 때부터 그런 부분을 알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라며 솔직한 대답을 전했다. 이에 제이블랙은 “마리는 천재에요. 6살이나 어리지만, 이 나이에 명예와 재력까지 갖춘 모습을 보고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감탄스럽고 부러워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춤을 추는 댄서, 안무를 창작하는 안무가 등의 활동을 하고 이들에게 두 개의 범주는 엄연히 다를 것 같다고 묻자 “단순히 댄서 겸 안무가가 아니라 안무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댄서가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춤추는 것이 부족해 안무를 창작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댄서들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자극적인 동작들만 껴 맞추는 격이라 인식을 많이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며 소신있는 답변을 전하기도 했다. 파워풀한 제이블랙과 동시에 걸리시한 댄스를 선보이는 제이핑크로 활약하고 있는 제이블랙은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스러운 면이 자극적이었는지 걸리쉬 댄스라는 명칭이 붙게 되면서 이슈가 된 것 같아요. 거기에 마리가 제대로 해보라며 여장을 시켰거든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어요. 블랙은 계속 해왔던 캐릭터고 핑크는 하자마자 엄청난 화제가 됐어요. 블랙이는 그렇게 노력해도 힘들었는데 핑크는 여왕이 됐죠”라고 설명했다. 결혼 생활을 공개하는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출연 계기에 대해서 제이블랙은 “ 매일 매일 춤만 추는 게 아닌 인간적인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목소리도 들려드리고 싶고 성격도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댄서로서 사랑받는 것도 좋지만 인간으로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라고 답했고 마리는 “두려웠던 부분도 있었지만 다양한 방면으로 리얼리티 방송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연 결정을 하게 됐어요”라고 전했다. 리얼리티 방송 후 소감이 어땠냐고 묻자 마리는 “둘이 있을 때는 둘이니까 상관이 없는데 녹화를 하고 난 후 제 모습을 보는데 애교 부리는 부분은 정말 못 봐주겠더라고요. 그래서 카메라 있을 때는 자제 해야지 하고 많이 의식해서 하지 않은 건데 아무래도 둘이 있을 때 나오는 말투 같은 건 눈 뜨고 못 보겠더라고요. 정말 창피했어요”라며 웃음 섞인 대답을 전하기도 했다. 서로에게 점수를 주자면 각각 몇 점이냐는 질문에 제이블랙은 “마리는 당연히 100점이고 점수를 더 줘야 해요. 200점!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어떠한 이유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사랑해야 하니까 사랑하는, 맹목적인 사랑이에요”라며 애정을 과시했다. 어떤 부분에서 결혼 결심이 들었냐는 질문에 마리는 “항상 어떤 일이 있어도 휘청거리는 저와는 달리 잘 헤쳐나가고 유동적인 사고방식으로 이겨내는 법을 알더라고요.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현명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부분을 배우고 닮고 싶어서 결혼을 결심했죠. 어찌 보면 저와 다른 모습에 결혼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6년의 연애, 5년의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서로가 결혼할 줄은 몰랐었다는 제이블랙과 마리. 이에 제이블랙은 “한 번 헤어진 적은 있었는데 제가 결혼 상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마리 생활의 패턴을 보면서 저와는 달리 약간 게을러 보였던 거죠. 그런데 만약 결혼하게 되면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마리한테 헤어지자고 했죠. 그러고 나서 펑펑 울었어요. 그래서 여섯시간 만에 다시 만났죠. 저희 나름에는 너무 길었던 시간이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서로가 배려하는 법을 알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들의 결혼 생활을 예쁘게 봐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 제이블랙은 “지금 제자들에게도 이야기 해주는 부분인데 여자의 고유한 특성이 있고 남자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특성을 이해해주라고 하고 싶어요. 남자가 갖기 힘든 관심을 가져주고, 여자 입장에서는 남자가 가진 특성을 이해되지 않더라도 이해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서로 용납이 안 되는 서로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두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된다고 생각해요”라며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하기도 했다. 파격적인 스타일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받냐는 물음에는 “저희가 하는 게 흑인들의 전유물이고 그 감성을 맞추려다 보니 흑인 헤어스타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힙합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저 또한 거기서 영감을 받죠. 예전부터 봐왔던 뮤직비디오에서 영감받기도 하고 섹시한 비주얼을 기억해뒀다 하기도 하고요. 요즘은 sns 상에 다양한 정보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스타일이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앞으로 어떤 분야에 도전하고 싶냐고 묻자 제이블랙은 “저는 연기요. 막연한 꿈이지만 영화에 너무 출연해보고 싶어요. 물론 연기를 했던 사람이 아니라 섣부르게 도전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조심스럽고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배워서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분야에요”라고 전했고 마리는 “모델 학생들을 오랫동안 가르쳐봤기도 했고 패션위크에서 런웨이를 보면서 좀 색다르게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었거든요. 그리고 글도 써보고 싶어요. 심심하고 울적할 때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는 에세이도 좋고.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라며 열정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제자 중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마리는 “현아요. 강하고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아티스트 중에 한 명이에요.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친구예요. 그룹 여자 아이들에 있는 전소연이라는 친구도 예뻐하는데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지만 타고난 재능이 너무 좋아서 아끼는 친구예요”라고 답했고 제이블랙은 “아이돌과 함께한 작업은 거의 없는데 얼마 전에 펜타곤 친구들이랑 작업을 한 번 했거든요. 너무 열심히 해줘서 예뻐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던 이라는 친구가 정말 잘해줘서 기억에 남아요”라고 전했다. 제2의 제이블랙과 마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는 물음에 마리는 “제일 중요한 것은 믿음이고 노력이잖아요. 우리가 늘 진부하게 말하는 것들, 꿈과 희망 그리고 믿음 같은 것들이 정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순수하게 그런 것들을 잃지 않아야 꿈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라고 전했고 제이블랙은 “실패해도 상관없다면 얼마든지 시작해도 된다고 봐요. 실패가 두려우면 시작하지 않는 게 맞아요. 실패할지언정 행복할 것이고 그런 정신이라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진솔한 답변을 전하기도 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간병살인 154人의 고백] 나와 54년 함께한 임자, 미안해

    [간병살인 154人의 고백] 나와 54년 함께한 임자, 미안해

    “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그런 것 같아요….” 2016년 9월 경기도 한 경찰서에 중년 남성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신고했다. 출동한 형사들은 안방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이일자(당시 86세·가명)씨를 발견했다. 이미 숨을 거둔 이씨 목에는 삭흔(索痕·목 졸린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씨의 남편 정수천(89·가명)씨는 다른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곁에는 텅 빈 수면제 통이 나뒹굴고 있었다. “평소처럼 아침에 인사를 드리러 부모님 방에 갔더니 어머니가 눈을 뜨지 않는 거예요. 급히 아버지한테 말했더니…. ‘내가 그랬다’고 하셨어요.” 정씨와 함께 사는 아들 정이준(54·가명)씨가 울먹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형사들이 정씨에게 이것저것 물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수면제 30알을 한꺼번에 삼켜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수갑을 채우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형사들이 양쪽에서 부축해 경찰서로 데려가는 동안 노인은 다짐하듯 나지막이 읊조렸다. “임자 잘됐어…. 이제 나도 죽어야겠어.” 정씨는 자신이 54년 해로한 아내를 살해했다고 담담하게 인정했다. 다른 말은 없었다. 후회한다거나 선처해 달라는 말도 없었다. 다만 조사 내내 노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고 담당 형사는 회상했다. 아들은 “도대체 왜 그랬냐”며 울부짖었다. 정씨 아내는 3년 전부터 치매와 퇴행성 척추질환을 앓아 거의 누워 지냈다. 정씨도 천식과 폐기종(폐 안에 큰 공기주머니가 생기는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상태가 심해져 하루가 다르게 아내를 돌보기가 어려워졌다.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걸 느꼈어. 내가 먼저 죽으면 아내는 아들 내외에게 큰 짐이 될 수밖에 없어. 그래서 아내와 함께 가려고 했어.” 정씨는 황해도가 고향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황정민)처럼 격변의 시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서 공부하다 1·4 후퇴 때 남하하지 못하고 북한군에 강제 징용됐다. 이후 국군에게 붙잡히자 북송을 거부하고 반공포로로 석방돼 남한에 남았다. 부모는 물론 친척도 북한에 있었다. 가진 거라곤 몸뚱아리 하나였다.서울 한 대학병원 원무과에 취직했지만 서른이 넘도록 반려자를 찾지 못했다. 지인이 아내를 만나 보라며 중매를 섰다. 평양 출신인 아내는 정씨와 잘 통했다. 청각장애가 있었지만 다정다감했다. 정씨는 1962년 마침내 가정을 꾸렸고, 딸 둘과 아들 하나를 차례로 낳았다. 결혼 후에는 처가와 함께 서울 종로에서 그릇 장사를 하며 돈도 꽤 모았다.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1986년 정씨는 귀농했다. 서울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해였다. 여행을 다니다 눈여겨봤던 서울 근교에 아담한 집을 지었다. 작은 텃밭을 일구고, 평소 길러보고 싶었던 페르시안 고양이도 키웠다. 아들이 서울서 하던 사업을 접고 들어와 살면서 세 식구가 오순도순 여생을 즐겼다.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아 들이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이었다. 의사는 2년 반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낫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한 알에 2만 4000원인 약을 하루 네 번씩 먹여 보라고 했다. 약값만 한 달에 300만원. 이미 은퇴한 정씨에겐 큰 부담이었다. 아들도 대리운전과 관공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며 치료비를 보탰지만 가세는 빠르게 기울었다. 다행히 아들은 의사의 예상을 깨고 차츰 병을 극복했다. 2011년에는 필리핀 여성과 늦깎이 결혼을 해 정씨에게 손자도 안겼다. 하지만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치매 증세가 있던 아내가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것이다. 2014년 일이었다. 정씨는 종일 아내의 간병에 매달려야 했고, 치료비 마련을 위해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쓰레기를 줍는 공공근로는 여든이 넘은 정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였다. 텃밭을 담보로 빌린 빚은 점점 불어나 1억원을 넘겼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자 아내의 증세는 점점 악화됐다. 종일 누워만 있는 게 지겨운지 집 곳곳을 기어다니며 대소변을 흘렸다.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아들 내외 방문 앞에서 알 수 없는 괴성을 질렀다. 하는 수 없이 요양원에 입소시켰지만, 석 달 만에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아내가 피골이 맞닿을 정도로 체중이 급격히 빠졌기 때문이다. 종종 병문안을 가면 “날 버리지 말라”고 애원하며 붙잡았다. 집에 온 아내는 상반신까지 마비 증세가 번져 왼팔을 제외하곤 움직일 수 없었다. 정씨는 불면증을 앓았다. 처방받은 수면제를 몇 알씩 삼켜도 도통 잠을 잘 수 없었다. 지병인 천식이 악화하면서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 끝없는 악몽이 반복된 2년은 20년 같았다. 자신보다 며느리가 아내 간병을 하는 날이 늘어났다. 뒤늦게 얻은 아이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는 아들 내외에게 미안했다. 아들 내외가 아직 곤히 잠든 새벽 5시. 수면제를 한 주먹 가득 움켜쥐고 꿀꺽꿀꺽 삼키고서 아내에게 다가갔다. 넥타이를 목에 감고 떨리는 손으로 잡아당겼다. ‘임자…미안해…. 조금만 참으면 아프지 않을 거야…. 이제 아이들한테 ‘짐’ 되지 말고 저승 가서 같이 마음 편히 지내자.’ “정씨는 아내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았고 자녀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병원비를 버는 등 가족 중 누구보다 아내를 위해 애쓴 것으로 보인다. 정씨도 큰 고통을 겪고 여생 동안 큰 죄책감과 회한을 안고 살 것으로 보인다. 아내와 평생 사이좋게 살아온 점, 지금껏 죄 없이 선량하게 살아온 점 등을 종합하면 실형 선고는 가혹하다.” 경찰과 검찰은 정씨를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하고 재판에 넘겼다.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정씨를 구속하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대신 딸이 책임지고 정씨를 재판에 출석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재판부도 정씨를 수감하는 건 무리라고 보고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날 이후 아버지랑 말을 나눈 적이 없어요. 어머니 기일 때도 마찬가지예요. 생각해 보면 자식인 제가 죄인입니다.”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은 왜 아버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최근 아내와 아이를 친정인 필리핀으로 보내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몇 푼 되지 않지만, 박박 긁어 모아 생활비를 보내고 있어요. 그럼 아이는 지금 집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습니다. 같이 살 수 없는 건 마음 아프지만 필리핀에서 크는 게 아이를 위한 길이에요.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겠죠? 아버지도…그런 마음이었겠죠.” 정씨는 지금 아내가 떠난 방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살고 있다. 폐렴이 악화했다. “많이 외로우실 거예요. 며느리나 손자도 없고 제가 일 나가면 줄곧 혼자 계시거든요. 오후에 3시간 정도 들르는 요양보호사가 아버지가 만나는 세상 사람 전부입니다. 병환을 털고 일어나신다면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이야기 나누실 자리라도 마련해 볼까 해요.” 취재 기간 내내 정씨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어 대화하기 힘든 상태였다. 잠시 상태가 호전돼 호흡기를 떼고 기자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다시 나지막이 읊조렸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했겠어. 잘 갔지 뭐…. 나도 빨리 죽어야지…. 늙으면 죽어야지.”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전원주 또 며느리에 불만 토로 “살 맛이 안 난다”...며느리 대답은?

    전원주 또 며느리에 불만 토로 “살 맛이 안 난다”...며느리 대답은?

    방송인 전원주가 며느리에 불만을 토로했다. 전원주는 앞서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며느리를 언급한 바 있다. 31일 오전 방송된 KBS1 ‘아침마당’에는 전원주가 출연해 며느리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옛날에는 저도 큰소리 뻥뻥 치면서 ‘반찬 이거 해와’ 했는데 이제 며느리 눈치를 본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얼마 전에 방송국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인터뷰를 했다. 나중에 작가가 전화와서 ‘며느님이 며칠 촬영하냐고 물어보더니 2~3일 찍는다고 하니 안 한다고 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전원주는 “그거 때문에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그냥 참고 말았는데 요즘 내가 며느리 눈치를 보고 살아 살맛이 안 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를 들은 며느리 김해현은 “어머니가 이렇게 서운해하는지 몰랐다. 집에서 촬영하다 보면 청소도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게 많다. 저도 나이가 들다 보니까 힘이 들더라.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한편 전원주는 앞서 ‘아침마당’에 출연해 며느리에 못마땅한 심경을 내비친 바 있다. 그는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우리 때는 시어머니가 못 마땅해도 ‘네’ 하면서 조심했다. 요즘은 또박또박 대든다”라며 “야단 치려고 하면 며느리는 목소리 깔고 ‘어머니, 그게 아니고요. 모르셔서 그러는데요’라고 하는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며느리 살이’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 집도 이제 옛날처럼 마음대로 못 간다. 모처럼 가면 비밀번호 바꿔서 못 들어간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나는 북파 공작원, 암호명은 ‘흑금성’…남북합작 애니콜 CF광고 성사시켜

    “나는 북파 공작원, 암호명은 ‘흑금성’…남북합작 애니콜 CF광고 성사시켜

    북파 공작원을 소재로 한 영화 ‘공작’의 실제모델 박채서(64)씨를 만났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북한 핵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대북사업가로 위장한 채 중국과 북한을 무대로 활동한 안전기획부의 대북공작원이다. 1997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으며 이효리, 조명애가 나온 최초의 남북합작 광고도 성사시켰다. 공작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상황과 영화 등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27일 본사 9층 대회의실에서 했다.→영화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아내와 큰딸이 교도소로 면회 와서 내 얘기를 CJ에서 영화로 만들겠다고 제안했다고 하더라. 처음에 거부했다. 단순 용기만 갖고 할 수 없는 일 아니냐. 그런데 이미경 부회장이 원치 않던 외유를 나가야 할 정도로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도 영화 제작을 하겠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수감 중 작성한 노트기록이 토대가 됐다. →리 참사(영화에서 이성민이 연기한 리명운의 실재 인물)는 어떤 사람인가. -리철은 북한의 몇 안 되는 자본주의 전공자다. 김일성대를 졸업했으며 박사논문이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이다. 1954년생으로 나와 동갑이라 쉽게 친구가 됐다. 리철은 아들이 둘이고, 나는 딸만 둘이다. ‘사돈 맺자’는 농담도 했다. →2005년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나오는 남북합작 광고인 애니콜 사업 전에 추진하던 ‘남남북녀 결혼작전’은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지금 못지않게 힘들었다. 대량 탈북자가 나오고, 이에 북한이 반발해 미사일을 쏘는 등 대화가 안 됐다. 햇볕정책을 계승했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자문요청이 오더라. 북측은 미사일 쏘다가 평화 모드로 가려면 명분이 필요하다며 이벤트를 만들자고 하더라. 2002년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 개막식에 북측 기수단으로 와 한국에서 인기 있던 조명애를 내 지인 중 한 분이 며느리 삼고 싶다고 말한 게 생각나 추진하게 됐다. 베이징에서 양가 상견례도 했다. 그런데 국정원이 방해했다. 신랑 어머니를 만나 ‘조명애는 기쁨조인데 결혼이 웬 말이냐’고 한 것이었다. 이벤트 무산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 3일 뒤 고영구 원장이 기관보고를 했던 것 같다. 비슷하게 나를 비난하는 보고에 대통령은 노발대발했다. 이 사건으로 원장은 강력경고 조치를 받고, 나머지 주요 간부들은 인사조치됐다. →결혼 무산으로 애니콜 광고는 힘들었겠다. -공작 실패에 대비해 늘 예비 계획을 세운다. 남남북녀 결혼작전이 무산되면서 내가 하면 또 국정원이 방해하니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고 해 애니콜 광고는 성사됐다. 삼성을 소개받았다. 다 돼 있더라. 감독이 차은택씨였다. 모델은 이효리고. 최고기업, 최고상품, 최고모델 콘셉트였다. 나머진 북한 몫이었다. 그런데 제동이 걸리더라. (광고 촬영지인) 상해로 갔는데 조명애가 도저히 촬영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 결혼이 미뤄진 충격으로 밥도 안 먹고 말이 없더라. 마음병을 앓은 것이다. 조명애는 ‘평양의 신데렐라’였다. 갑자기 남쪽으로 시집가야 하는 상황에 가족회의를 열고 “나 하나 시집가서 우리 가족이 잘산다면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더라. 그런데 남자를 만나 보니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딱딱한 북한 남자와 달리 함께 놀러 갈 때 손도 잡아주는 등 싹싹한 매너남이었다. 게다가 시아버지 될 사람은 핸드백, 신발, 바바리 코트 등 온갖 명품을 다 사줬다. 가족 용돈도 따로 준비하고 예술단 단장, 부단장 선물도 따로 줬다. 조명애가 예비 시아버지를 만난 다음날 무용단에 출근하면 그날 오전 업무는 마비된다고 하더라. 서로 옷 입어 보느라고 말이다. 예술단 부탁으로 20인승 출퇴근 버스도 사줬다. 2년간 쓸 타이어와 유류비도 지원했다. 촬영이 힘들 것 같아 시아버지가 될 뻔한 사람을 급히 오라고 했다. 이 양반이 오자, 소파에 말없이 앉아 있던 조명애가 벌떡 일어나 달려가 우는데,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우리도 다 울었다. 촬영은 일주일 동안 약 먹이고, 알로에 바르고, 얼굴 뾰루지 등은 화장술로 커버해서 끝냈다.→조명애는 그 이후 결혼했나. -소설 잘 쓰는 언론에서 북한군 장교와 결혼했다는데 거짓말이다. 완전히 폐인 됐다. 원래는 광고 찍고 나서 식당 같은 것을 마련해 중국에서 살게 할 계획이었다. 제가 2010년 보안법 위반사건으로 체포되기 전까지 들은 얘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떤가. -1997년 6월에 만났다. 유순한 편이다. 예능을 좋아해서인지 독하지 못하다. 김정일이 후계자를 정할 때, 자기 닮아 순한 김정철 대신 독한 김정은을 시켰다. →한·미 합동부대 있을 때 미군과 업무 협조는 잘됐나. -처음 3개월간은 많이 싸웠다. 양주 선물 등 온갖 유혹을 거절하고 한·미공조의정서에 따라 원칙대로 일했다. 오산공군기지는 통제가 안 된다. 전용기가 아무거나 싣고 온다. 나 보고 골프용품 거저 줄 테니까 하라고 하더라. 당시 골프채 등은 비쌌다. 안 했다. 결국 미군이 나를 인정해 미 대사관 등 우리나라의 어떤 미국시설도 24시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통행카드를 주더라. 이게 네 장뿐인데 대통령, 국방부 장관, 안기부장과 내가 받았다. 미국이나 북한을 나쁘게 버릇 들인 건 우리다. 우리나라에 ‘까만 눈 미국인’이 많더라. 미국에 가지도 않고 시민권은 갖고 있더라. 거래하기 위해서다. 각계각층에 다 있더라. 대학원 석사과정 때 일인데 조선 주둔 일본대위가 쓴 일본어로 된 비망록을 봤다. 명망 있는 독립운동가들은 회유작전에 바로 서약서 쓰고 넘어와 실망하게 되는 반면, 갖은 고문과 협박에도 굽히지 않는 조선인에 대해서는 존경한다고 적고 있더라.→북한의 정보수집력은 어떤가. -신상옥·최은희가 1978년에 납북됐다가 8년뒤 탈북했는데 당시 수사관들이 물었다. 베를린영화제 참석 때 왜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북 정보력에 겁이 나 애기 못 했다고 했다. 하루 전 남한 대통령이 결재한 것이라며 서류를 보여 주는데 실제로 그 날짜에 결재한 서류였다고 한다. 그러니 누구를 믿어야 할지,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는 거다. 사례를 더 들자면 1999년 평안북도 금창리에 숨겨진 지하 핵시설이 있다고 보도되면서 난리 난 적이 있다. 우리 공작원이 조선족을 시켜 흙을 파니, 우라늄이 검출됐다는 것인데 미국도 이를 믿은 것이다. 미국이 현장사찰을 했으나 핵 관련 움직임은 찾지 못했다. 빈 동굴뿐이었다. 왜 그랬냐. 북한 역공작에 당한 거다. 북한에서 돈 주고 우라늄을 넣어준 거다. →1994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사업에 미국의 공작이 있었다는 건 무슨 말인가. -북 핵무기 개발 자료를 1992년에 내가 입수했다. 미국 장비 등의 지원을 받아서 알게 된 것이라 미국에 보고했다. 난 당연히 그 사항이 김영삼(YS) 대통령에게도 보고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안 됐더라. 당시 YS는 북한에 쌀을 주려고 난리 칠 때였다. 만약 핵무기 개발 사실을 알았다면 막았다고 본다. 이어 1994년에 북핵 위기가 벌어진다. 북한의 신포에 한국형 경수로 2기를 건설하는데 재원의 70%인 32억여 달러를 우리가 부담한다. 여기엔 미 중앙정보국의 공작이 있었다. 평양을 다녀왔다는 한 재미목사가 YS에게 긴급 보고를 한다. 북이 서해 5도를 잠수함으로 봉쇄, 무력으로 점령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YS는 재미목사를 잘 만났다. 대통령이 놀라 해군참모총장을 긴급호출하고 제주도가 제일 취약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어 북측의 회담 요구를 받아들여 경수로 건설사업비를 떠안는다. 미국이 YS가 재미목사를 잘 만나주고 위기의식, 안보 개념이 없다는 걸 알고 공작한 거다. 서해 5도는 수심이 낮다. 잠수함 봉쇄가 말이 안 된다. 첩보 가치도 없었다. 보안이 최고 생명인데 어떻게 재미목사가 기습공격을 아느냐. →이명박 정부 시절, 북에서 대남파에 대한 공개 처형이 많았는데 우리 측에서 움직임이 있었나. -대남파는 빨치산세력에 맞설 실용주의자들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30~40명씩 공개 처형 등 다 숙청됐다. 숙청 자료를 우리 정보기관에서 줬다. 과거 10년 동안 남북교류하면서 뒷돈 준 자료를 다 준 거다. 한 예로 본명이 권민인 권영욱이라는 김일성대 나오고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항상 북측 대표단장으로 나온 유연한 사고의 실용주의자, 그 친구도 날짜별로 돈 받은 게 나와 숙청됐다. 사는 아파트 바닥을 파 보니 비닐에 쌓인 8만 달러 꾸러미들이 나왔다. 그런 식으로 대남파들이 결딴나면서 북한 내 강경파를 견제할 세력이 없어진 것이다. 난 절대 국정원이 자의적으로 그런 자료를 주지 않았다고 본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무대책·무대응이었다. 기본적으로 미국을 통한 정책이었다.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 실패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전에 북한에서 정책실패는 한 번도 없었다. 화폐개혁은 가진 자들의 돈을 뺏으려고 한 거다. 장성택도 모르게 말이다. 20분의1로 화폐가치를 낮췄다가 한 달 만에 원상복귀했다. 기득권세력의 저항 때문이었다. 개혁 전에는 베이징에서 북한 사람들에게 “김정일이가~”라고 말하면, 이 사람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반발했다. 그러데 화폐개혁이 되자 “개XX” 등 욕이란 욕은 다하더라. 뭘 의미하느냐. 화폐개혁 실패라지만, 기득권이 흔들린 거다. 볼셰비키 혁명, 중국 공산당 혁명 주도세력은 노동자나 농민이 아닌 엘리트다. 모택동은 호남성 제일갑부였다. 형식만 노동자, 농민이지 가진 사람, 엘리트 그룹이 주도했다. 북한의 엘리트 변화를 우리가 뒷받침해야 한다. →3차 남북 정상회담 전망은. -미국은 북이 비핵화하면 제재를 풀겠다는 것인데 북은 점진적으로 비핵화하자고 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를 못 받겠다고 한다. 일방적 행동 강요는 강압이다. 북 강경파들이 절대 받지 않는다. 김정은이 맘대로 못한다. 김정일은 아버지로부터 정식 후계자 교육을 받고 17년간 당 지도부를 장악했다. 당·정·군의 인사를 다 했다. 그런데도 김일성 사후 주석궁에 바로 못 들어갔다. 왜냐하면 호위총사령부는 자기 사람들이 아니라 반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은 후계자 내정 2~3년 만에 아버지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권력을 승계해 지지기반이 약하다. 빨치산 세력은 손 못 대고 군부, 문화계 등 분야별로 중간층 중심으로 100인 그룹을 만들어 자신의 호위세력으로 만들었다. 이 그룹이 200인으로 늘어났다는 얘기가 있다. 이들 눈에 벗어나면 김정은은 죽는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고창환-시즈카 부부, 시누이 막말 논란 “네가 여우같이 생겨서..”

    고창환-시즈카 부부, 시누이 막말 논란 “네가 여우같이 생겨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출연한 시즈카 시누이의 막말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29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뮤지컬 난타 배우 고창환과 일본인 아내 시즈카 부부가 시누이를 만난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늦은 저녁 고창환 시즈카 부부의 집에 시누이가 갑자기 방문했다. 두 사람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고창환은 치킨과 막걸리를 사러 나갔고 시즈카는 술상을 차렸다. 시즈카의 시누이는 고창환에게 “창환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누나는 안중에도 없고 소홀히 했다. 그래서 울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결혼하기 전에도 배신감이 들었다. 결혼한다니까 누나는 안중에도 없고 소홀히 대하는 것 같아 감정이 격해지더라”라며 동생의 결혼이 서운했다고 말했다. 또 시누이는 시즈카에게는 “처음 봤을 때 진짜 여우같이 생겼더라. 뭐로 우리 창환이를 꼬셔서 저렇게 만들었나 싶었다”고 말해 시즈카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시누이는 “너는 일본 사람이잖아. 대답은 할 줄 아는데 착 달라붙는 맛이 없었다. 창환이가 얄미워 죽겠는데 네가 인사만 딱 하고 무시하니까 더 얄미웠다”라며 “‘일본 사람이어도 그렇지 인사만 하면 땡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좋아서 결혼했을까 이해가 안 갔다”고 막말을 이어갔다. 이후 고창환은 인터뷰에서 “누나가 친누나가 아니다. 사정이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았다. 나는 친누나라고 생각했다”며 어릴 적 한집에서 자라 더 애틋한 사촌 누나임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런 누나가 동생이 결혼하는데 그런 감정을 갖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패널들을 경악케 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박해미 남편 음주운전’...가족 때문에 구설 오른 스타들★

    ‘박해미 남편 음주운전’...가족 때문에 구설 오른 스타들★

    똑 부러진 며느리. 시어머니에게 또박또박 ‘호박고구마’를 가르치는 당찬 며느리. ‘박해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오케이~!’ 언제나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그의 모습에 많은 팬 역시 긍정적 기운을 얻곤 했다. 지난 27일 발생한 박해미 남편 황민의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그런 박해미 이미지를 한순간에 실추시켰다. 박해미는 이번 사건으로 새 뮤지컬 ‘오! 캐롤’ 출연도 고사하고 있다. 이미 2회분 공연을 다른 배우로 대체해 둔 상태다. 이번 박해미 사례와 같이 가족이 문제를 일으켜 구설에 오른 연예인은 한 둘이 아니다. 성실하게 활동하며 쌓아온 그간의 노력에 오점을 남긴 스타 가족의 사건 사고를 되짚어 봤다. ■ 장윤정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젊은 나이에 트로트 가수로 활동을 시작한 장윤정은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간드러진 목소리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빼어난 노래 실력 만큼이나 유쾌한 입담도 그의 인기를 더하는 데 한몫했다. 승승장구하던 장윤정은 ‘가족사’가 알려지며 많은 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특히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고백했던 그는 갑작스러운 엄마, 동생의 폭로로 ‘거짓말쟁이’로 몰리기도 했다. 장윤정은 2013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엄마와 남동생이 자신이 10년간 번 수익을 모두 탕진했고, 그 이유로 엄마와 아버지가 이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엄마 육흥복 씨와 동생은 언론매체 인터뷰를 자청, 장윤정이 언급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딸이 매정하게 인연을 끊었다”고 폭로했다. 한동안 계속된 논란은 장윤정이 KBS 도종완 아나운서와 결혼해 새 가정을 이루면서 잠잠해지는 듯했으나 올해 6월 육흥복 씨가 4억 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 한 번 관심이 쏠렸다. 장윤정은 둘째를 임신 중인 상태지만, 얄궂은 가정사는 그의 행복에 또 걸림돌이 됐다. ■ 조혜정 ‘조재현의 딸’은 빛에서 그림자가 돼 버렸다. 배우로 성장하는 그에게 대배우인 아빠는 큰 치부가 아닐 수 없다. 조혜정은 2014년 OCN 드라마 ‘신의 퀴즈 시즌 4’로 데뷔했다. 당시 크게 이름을 알리지 못했지만, 이듬해 SBS 예능 ‘아빠를 부탁해’에 아빠인 배우 조재현과 함께 출연하며 대중의 눈에 들었다. 귀여운 외모와 애교 있는 말투가 그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했다. 아빠의 인지도 탓에 ‘금수저 논란’은 피할 수 없었지만, MBC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 KBS2 드라마 ‘고백 부부’에 출연하면서 연기력 논란을 불식시키며 배우로서 성장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올 초, 조재현은 성 추문에 휩싸이며 출연 중인 드라마에서도 하차했다. 그의 딸 조혜정은 차기작은커녕 SNS 활동을 중단하고, 얼굴조차 비추지 않고 있다. 그의 노력에 아빠가 잿밥을 뿌린 셈이다. 사실상 활동을 중단한 조혜정의 방송 복귀 여부도 불투명하다. 대선배로서 빛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아빠는 결국 그를 가리는 그림자가 돼 버렸다.■ 차승원, 윤손하 자식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 했던 연예인도 있다. 차승원은 20여 년 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당시, 아내가 전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3살배기 아들 차노아를 ‘마음으로 낳은 아들’로 받아들였다. 2014년이 돼서야 차노아의 친아버지이자, 아내의 전남편이 명예훼손 소송을 걸면서 친자 논란이 불거지며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누구보다 아들 사랑이 지극했던 차승원은 아들이 대마초 흡연, 성폭행 혐의에 휩싸였을 때도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는 당시 “배우이기 이전에 훌륭하지 못한 아버지로서 가슴 깊이 사죄드린다. 아버지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 통탄하고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사과했다. 이후 차노아 성폭행 혐의는 무혐의 판결을, 대마초 혐의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윤손하는 지난해 아들이 집단 학교 폭력 사건에 연루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그의 거짓 해명이 대중의 공분을 샀다. 윤손하 아들은 서울 유명 사립초등학교인 숭의초등학교에 재학 중으로, 학교에서 발생한 집단 폭력 사건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관련 보도가 나오자 윤손하는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지만 결국 “변명한 것을 반성한다”며 출연 중인 드라마에서도 하차했다. 아들의 죄가 밝혀지면서 파문이 커지자 윤손하는 결국 아들을 데리고 캐나다행을 택했다. 이민은 아니라고 했지만, 복귀 시점 등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최근에는 일본 홈쇼핑 채널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아내의 맛’ 함소원♥진화, 중국 시월드 환영식 공개 ‘놀람 그 자체’

    ‘아내의 맛’ 함소원♥진화, 중국 시월드 환영식 공개 ‘놀람 그 자체’

    ‘아내의 맛’ 함소원, 진화 부부가 중국 시월드의 놀라운 환영식 현장을 공개한다. 28일 방송되는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이하 ‘아내의 맛’)에서는 결혼 후 처음으로 중국 시댁을 방문하게 된 함소원, 진화 부부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풍채당당 시어머니와 똑 닮은 이모들이 총출동한 ‘대모 어벤저스’의 요리 향연과 함께, 2000km도 마다하고 함소원을 보기 위해 달려온 수십 명의 친척들이 준비한 붉은 봉투 세리머니가 펼쳐져 안방극장을 들썩인다. 무엇보다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중국 칭다오까지 600km를 날아간 함소원, 진화 부부는 집으로 이동 중 몰아치는 태풍에 맞닥트렸던 상황. 더욱이 시댁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칭다오 공항에서 무려 4시간을 더 이동해야 가운데, 태풍으로 인해 고속도로까지 통제가 되면서, 난관에 부딪쳤다. 패널들의 걱정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처음부터 조마조마한 ‘함진 부부’의 ‘시댁 방문기’가 시작된 것. 뿐만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시댁에는 멀리서 오는 아들 며느리를 보기 위해 중국 흑룡강부터 내몽골, 지난, 쯔보 등등 기본 100km부터, 많게는 2000km 떨어진 거리에서 찾아온 일가친척 수십 명이 모여들어 함소원을 당황하게 했다. 특히 친척들 소개만 1시간이 걸린 것도 모자라, 시댁 어른들이 준비한 ‘새 며느리 대 환영 세리모니’를 통해 끝이 안 보일 정도의 붉은 봉투 수여식이 시작된 것. 얼떨떨해하면서도 두 손이 가득 차도록 이어지는 ‘흥빠오 전달식’에 참여하고 있는 함소원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거기에 풍채당당한 시어머니를 ‘복붙’한 것처럼 똑 닮은 통 큰 이모들이 총출동, 만들어내는 요리 향연은 함소원을 놀라게 만들었다. 시어머니와 통 큰 이모들이 가히 ‘대모 어벤저스’라고 할 만한 포스로 쌍 웍, 쌍 칼을 들고 14가지에 달하는 중식 요리를 뚝딱 만들어낸 것. 중국 가정식 마라롱샤부터 전가복, 잉어볶음, 돼지족발, 잣옥수수 볶음, 보기만 해도 깜찍한 캐릭터 만두까지, 수준급 요리솜씨로 완성한 ‘며느리 환영 밥상’이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중국 시월드의 남다른 환영에 감동했던 함소원은 곧이어 친척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선물을 꺼내 마음을 전했던 터. 과연 시댁 식구들은 함소원의 선물에 만족했을지, 초보 며느리의 험난한 ‘중국 시월드 적응기’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작진은 “제주도에서 접했던 중국 시월드는 맛배기에 불가했을 정도로, 예측불가 정통 중국 대륙식 환영식이 펼쳐질 것”이라며 “함소원은 물론 함께 했던 제작진들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정을 드러내는, 그 놀랍고 감동적인 현장을 함께 해달라”고 전했다. 한편, TV조선 ‘아내의 맛’은 28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TV조선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시즈카 첫 등장, 한밤중 찾아 온 불청객은 누구?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시즈카 첫 등장, 한밤중 찾아 온 불청객은 누구?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 글로벌 며느리, 일본인 시즈카의 모습이 공개된다. 22일 방송되는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여덟 번째 방송에서는 당당한 며느리 소이와 카리스마 작렬 역대급 시어머니의 그 두 번째 이야기가 공개된다.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방문 소식에 급하게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소이, 저녁 식사 중 시어머니의 불만 토로가 시작됐다. 며느리 소이는 연속으로 이어지는 시어머니의 명언(?)을 당차게 반격한다. 긴장감이 감도는 저녁 식사 시간 속 결말은 어떻게 될지 방송에서 밝혀진다. 며칠 후 소이네 가족은 시어머니와 생애 첫 등산 나들이를 하게 된다. 등산 후 함께 먹을 도시락을 손수 준비하던 소이는 예상보다 늦어진 준비시간 탓에 시어머니와의 약속에 늦게 되고, 수차례 재촉에도 감감무소식인 소이♥현준 부부로 인해 참다 못한 시어머니는 돌직구 발언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이네 가족이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등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오늘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어 마리♥제이블랙 부부와 시부모님이 단체 꽃단장에 나선 사연이 이어진다.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함께 받으며 시부모님과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기로 한 마리 부부. 그런데, 제이블랙과 시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도중 마리가 “저 아버님 때문에 한 번 울었었어요!“라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이에 듣고 있던 시어머니까지 눈물을 보이게 된다. 마리와 시어머니의 코끝을 찡하게 만든 시아버지의 한마디가 방송을 통해 공개된다. 이날 방송에서는 글로벌 며느리가 등장을 예고했다. 베테랑 난타 배우 고창환의 일본인 아내 시즈카가 그 주인공이다. 6살 하나,1살 소라 두 딸을 둔 시즈카의 ‘규칙적인’ 하루 관찰기가 방송된다. 공개된 그녀의 모습은 호랑이 엄마의 모습이었다. 항상 배고픈(?) 첫째 딸 하나를 엄격하게 훈육하는 육아 스킬 공개와 더불어 요리, 청소, 목욕, 아이들의 잠자리 준비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시즈카와 뭔가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 남편 고창환의 모습이 펼쳐질 예정이다.한편 모든 게 평소와 똑같은 하루가 될 줄 알았으나, 한밤 중 시즈카 네를 찾아온 불청객의 모습도 방송을 통해 공개된다. 한편,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22일 오후 8시 55분에 방송된다. 사진제공=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왜 이리 늙었냐” “통일 되면 단 1분이라도 같이 살자”

    “왜 이리 늙었냐” “통일 되면 단 1분이라도 같이 살자”

    모친 사진 보고 “엄마네, 아이고 아부지” “나 빼닮았지?” “첫눈에 동생 알아봤어”2년 10개월 만에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남측 이산가족 89명과 동반 가족 등 197명은 20일 오후 3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서 북측 가족 185명과 첫 단체 상봉을 가졌다.김혜자(75·여)씨는 북측 동생 김은하(75)씨가 준비해 온 모친 사진을 보자 “엄마 맞다. 아이고 아부지”라며 동생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문현숙(91·여)씨는 한복을 입은 북측 여동생 영숙(79)씨와 광숙(65)씨를 만나 “왜 이렇게 늙었냐. 어렸을 때 모습이 많이 사라졌네. 눈이 많이 컸잖아 네가”라고 웃으며 말하다 점차 울음으로 바뀌었다. 김병오(88)씨의 북측 여동생 순옥(81)씨는 의과대학을 다니던 시절 사진을 보여 주며 “오빠, 나 평양의과대학 졸업한 여의사야”라고 오빠를 안심시킨 후 “통일 돼서 단 1분이라도 같이 살다 죽자 오빠”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황우석(89)씨는 세 살 때 헤어졌던 북측 딸 영숙(71)씨와 만나 “영숙이야? 살아줘서 고맙다”며 손을 잡았다. 이기순(91)씨는 북측 아들 강선(75)씨와 만나 가족관계를 확인한 뒤 “내 아들이 맞아. 내 아들”이라며 기뻐했다. 이씨는 “어때? 나랑 아들이랑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라고 취재진에 물은 뒤 “그렇지, 그렇지. 똑같지!”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함성찬(93)씨도 북측 동생 동찬(79)씨를 만나 “딱 첫눈에 내 동생인 줄 알았어. 어머니를 애가 쏙 빼다박았어”라며 손을 잡고 웃었다. 동생 동찬씨도 “나도 형인 줄 바로 알았습네다”라고 화답했다. 최고령 상봉자인 백성규(101)씨를 만난 북측 며느리 김명순(71)씨와 손녀 백영옥(48)씨는 거동이 어려운 백씨의 휠체어 옆에서 어깨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가족의 사연도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진수(87)씨는 지난 1월 북측 여동생이 사망해 북측 조카 손명철(45)씨와 조카며느리 박혜숙(35)씨를 대신 만났다. 김씨는 취재진에게 “금년 1월에 갔다고 하대. 나는 아직 살았는데”라고 했다. 북측 조카와 만난 송영부(92·여)씨가 갑자기 기력이 떨어진다고 호소해 의료진의 긴급 진단을 받기도 했다. 행사에는 국군포로와 전시납북자 등 특수이산가족 중 여섯 가족이 참여했다. 최기호(83)씨는 납북된 맏형 최영호(2002년 사망)씨의 두 딸 선옥(56)·광옥(53)씨가 가져온 형의 사진을 보며 “보물이 생겼다”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북·미 관계를 두고 남북 이산가족 간에 잠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차제근(84)씨는 북측 조카 차성일(50)씨가 “큰아버지, 미국 놈들을 내보내야 해. 싱가포르 회담 이행을 안 한단 말예요”라고 했다. 차씨가 “6·25 난 것이 김일성이 내려와서 그렇다”고 하자 성일씨는 “그건 거짓말이라요. 6·25는 미국 놈들이 전쟁한 거예요. 우리는 우리 힘으로 싸웠습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차씨는 “그래. 그건 잘한 거야”라고 웃으며 논쟁을 수습했다. 주정례(86·여)씨의 북측 조카 주영애(52·여)씨는 김일성 표창을 테이블에 갑자기 꺼내 놓아 남측 지원 요원과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산가족들은 2시간 동안의 단체 상봉 이후 북측이 주최한 환영 만찬에서 다시 회포를 풀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방북 89명 중 7명만 자녀 만나… “시간 없다, 수시로 상봉해야”

    방북 89명 중 7명만 자녀 만나… “시간 없다, 수시로 상봉해야”

    방북 87% 80대 이상… 2명 100세 이상 절반 이상 조카·며느리 등과 만남 그쳐 文대통령 “인도적 사업중 최우선 사항” 한적, 북측과 면회소 상시 운영 등 논의금강산호텔에서 70년 만에 이산가족을 만난 남측 방북단 89명의 평균 나이는 무려 86.1세였다. 부자 상봉을 한 경우는 7명(7.9%)에 불과했다. 빠른 고령화로 이산가족에게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상봉의 정례화 및 대규모화, 화상 상봉, 편지 왕래, 고향 방문 등의 방안이 절실하며 이를 위해 남북 관계의 지속적인 진전이 필요한 상황이다.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95세 어르신이 이번에 상봉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하자 이제 끝났다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보도를 봤다”며 “저 역시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 그 슬픔과 안타까움을 깊이 공감한다. 정말로 시간이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최근 5년 동안 3600여명이 매년 돌아가셨고 올해 상반기에만 3000명 넘게 세상을 떠났다”며 “그분들이 헤어진 가족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천추의 한을 안고 생을 마감하신 것은 남과 북의 정부 모두에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전체 이산가족 신청자는 13만 2603명이었다. 지난달 말까지 7만 5425명(56.9%)이 세상을 떠났다. 또 이들의 사망연령은 80대가 45.2%로 가장 많았다.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5만 6862명) 중 62.6%가 80세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이산가족 상봉 확대가 시급하다. 이날 이산가족을 만난 방북단 89명 중에도 77명(86.5%)이 80대 이상이었다. 100세 이상도 2명 포함됐다. 또 급격한 고령화로 형제나 자식을 만나는 경우가 줄고 한 다리 건너 상봉이 이뤄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실제 이날 상봉에서 단 7명이 북측에 사는 아들이나 딸 8명을 만났다. 26명이 북측의 형제·자매(이복 포함) 35명을 마주했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50명은 북측의 조카, 조카손자, 형수, 매부, 5촌 등을 만났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계기로 정기 상봉행사, 전면적 생사 확인, 화상 상봉, 상시 상봉, 서신 교환, 고향 방문 등의 ‘상봉 확대 방안’을 북측과 협의한다. 또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건설 당시의 취지대로 상시 운영하는 것을 논의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을 더욱 확대하고 속도를 내는 것은 남과 북이 해야 하는 인도적 사업 중에서도 최우선적인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오랜 시간 기다려왔는데...” 상봉직전 숨진 안타까운 사연들

    “오랜 시간 기다려왔는데...” 상봉직전 숨진 안타까운 사연들

    오랜 기간 헤어진 혈육간 만남을 고대해 왔지만, 상봉 직전 이승을 하직한 가족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허비고 있다. 20일 금강산에서 시작된 이산가족 상봉에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어머니와 여동생만 고향인 황해도 연백에 남겨둔 채 피난길에 오른 김진수(87) 씨는 올해 1월 여동생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북측의 조카 손명철(45) 씨와 조카며느리 박혜숙(35)를 대신 만나게 됐다. 김씨는 상봉 전 취재진과 만나 “금년 1월에 갔다고 하대… 나는 아직 살았는데”라며 말끝을 잊지 못했다. 이어 “부모님이 어떻게 살다 가셨는지 묻고 싶다”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조카인 만큼 “지금으로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러움도 내비쳤다. 2000년부터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한 조옥현(78)씨와 남동생 조복현(69)씨도 6·25전쟁 때 헤어진 북측의 둘째 오빠가 올해 사망해 대신 둘째 오빠의 자녀들을 만나게 됐다. 조씨는 “한적에서 연락받기 전 동생 복현이가 전화해 ‘큰형이 살아있으면 85세다’라고 말했다”면서 “그래서 북한에서 오빠들이 살아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얼마 있다가 적십자에서 전화가 왔다”고 안타까워했다. 동생 복현씨는 “아버지와 형님 생사확인만이라도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만나게 되니 완전히 로또 맞은 기분”이라며 “(조카들에게) 자손이 또 있는지, 아버지 산소는 어디 있는지, 제사는 지내는지 등 질문할 것을 수첩에 적어놨다”고 말했다. 공동취재단·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전참시’ 이영자, 셰프 향한 짝사랑 단념? “신메뉴 나오면 한 번 더..”

    ‘전참시’ 이영자, 셰프 향한 짝사랑 단념? “신메뉴 나오면 한 번 더..”

    ‘전참시’ 이영자가 짝사랑하는 셰프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지난 18일 방송된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에서는 이영자가 짝사랑하는 셰프의 가게를 재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해당 가게 셰프는 “오랜만에 오신 것 같다”며 반겼고, 이영자는 “저번에도 한 번 지나가는데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 말하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이영자는 “오늘은 뚫어지게 나를 봐도 된다. 화장을 했다”라는 말을 하며 핑크빛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영자는 이어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셨냐”라며 반응을 살폈고, 셰프는 “며느리 언제 들어오냐고 하시더라”고 답했다. 이영자는 “혹시나 셰프님이 방송 보고 떡 줄 사람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라고 생각할까 봐 그렇더라. 러브보다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있다.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을 이야기 해주면 소개 해주겠다”라며 말했다. 강아지상을 좋아한다는 셰프의 말에 이영자는 김숙과 송은이를 추천했고, 셰프는 “송은이 씨는 스타일은 좋으시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라며 거절했다. 송은이보다 나이가 많은 이영자는 셰프의 나이를 알고는 마음을 단념했다. 하지만 출연진들이 핑크빛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하자 “그럼 신메뉴 오므라이스 나오면 그거 먹으러 한 번 더 가겠다”라고 말해 모두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진=MBC ’전참시‘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산가족 상봉단 오늘 속초 모여···내일 꿈에 그리던 北가족과 만나

    이산가족 상봉단 오늘 속초 모여···내일 꿈에 그리던 北가족과 만나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남측 가족들이 북측 가족들과의 간절한 만남을 하루 앞둔 19일 강원도 속초에 모인다. 통일부에 따르면 20∼22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1회차 상봉행사에 참여하는 남측 이산가족 89명과 이들의 동행가족 187명은 이날 오후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방북 교육을 받은 뒤 기대와 설렘 속에 하룻밤을 보낸다. 이산가족들은 20일 오전 8시 30분쯤 한화리조트에서 버스를 타고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나러 금강산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를 위해 방북하는 인원은 이산가족 89명과 이들의 동행가족, 지원 인원, 취재진 등 560여 명이다. 이들은 강원도 고성의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거쳐 북측 통행검사소에서 심사를 받고서 낮 12시 30분쯤 금강산 온정각에 도착한다. 이전 행사 때까지는 전원이 버스에서 내려 통행 검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거동이 불편한 상봉자의 경우 버스에 탑승한 채로 통행 검사를 받도록 남북 간 합의가 이뤄졌다. 이산가족들은 마침내 이날 오후 3시쯤 금강산 호텔에서 열리는 ‘단체상봉’을 통해 극적인 대면을 하게 된다. 가족마다 헤어진 시점은 다르지만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기준으로 본다면 65년 만에 재회하는 셈이다. 가족들은 2박 3일동안 모두 6회, 11시간에 걸쳐 상봉한다.단체상봉∼환영만찬∼개별상봉∼객실중식∼단체상봉∼작별상봉 및 공동중식 순서로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두 번째 날에는 2시간의 개별상봉에 이어 1시간 동안 객실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남북의 가족이 오붓하게 따로 식사하는 건 이번 행사가 처음이다.1차 상봉에 나서는 남측 방문단의 최고령자는 101세의 백성규 할아버지로, 북측의 며느리와 손녀를 만날 예정이다.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개최되는 것은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앞서 남북은 6월 적십자회담 당시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8월 20∼26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이후 양측은 생사확인 의뢰서(7월 3일),생사확인 결과가 담긴 회보서(7월 25일), 최종 상봉 대상자 명단(8월 4일)을 순차적으로 교환하고 상봉시설 개보수 등 상봉 행사를 준비했다. 행사는 남측 이산가족 89명이 북측 가족과 상봉하는 1차(20∼22일)와 북측 이산가족 83명이 남측 가족과 만나는 2차(24∼26일)로 나뉘어 진행된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지금까지 대면상봉 20회와 화상상봉 7회가 실시됐다.지금까지 남북 총 4677가족, 2만 3519명이 상봉의 감격을 느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노현정 정대선 부부, 현대家 제사 참석 때마다 이슈되는 이유는?

    노현정 정대선 부부, 현대家 제사 참석 때마다 이슈되는 이유는?

    노현정 전 아나운서와 정대선 현대 비에스앤씨 사장 부부가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돼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 정대선 현대 비에스앤씨 사장의 부인 노현정 전 아나운서가 16일 오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부인 고 변중석 여사 11주기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포착됐다.노현정 전 아나운서는 단아하게 쪽진 머리에 화이트 저고리, 옥빛 치마를 입고 등장했다. 환하게 웃는 모습도 보였다. 두 사람이 제사에 참석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7주기 제사에 참석하는 모습이 포착돼 이슈가 됐으며 지난해에도 해당 두 제사에 참석하는 모습이 어김 없이 포착된 바 있다. 노현정은 늘 단아하고 고운 자태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대가의 제사가 해마다 이슈가 되는 것은 인기 아나운서에서 재벌가 며느리가 된 노현정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한편 2003년 KBS 29기 공채 아나운서 출신인 노현정 전 아나운서는 2006년 정대선 사장과 결혼한 후 KBS를 퇴사했으며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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