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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오군란/풍악 탐닉 왕비… 배곯은 오영군 궐기(비록 남가몽:3)

    ◎배우­기생들 매일 궁중에 불러 가무/하늘도 노하여 가뭄에 화적떼 들끓어/백성들은 곤궁하고 국고는 탕진되니/녹봉 밀린 5천여 구식군은 마침내… 고종과 대원군,그리고 민비(뒤의 명성황후).이 세 사람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한국 근대사의 주제는 망국이다.아무리 그 과정이 좋았다 하더라도결과가 망국이었다면 그 역사는 망국사가 되는 것이다.따라서 이 세인물이 얼마나 나라 망치는데 기여하였느냐 하는 혹독한 역사의 책임문제가 당연히 뒤따르게 된다.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게 되겠지만 역사의 책임이란 것은 한 두 사람이 질 문제가 아니다.그렇다고 당대의 모든 국민이 질 문제도 아니다.따라서 특정 다수인이 책임자로 비판받고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다. 민비는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처가 쪽에서 조심스럽게 며느리감으로 고른 규수였으나 불과 7년만에 이 규수에게 시아버지가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으니 두고 두고 후세의 교훈이 되고 있다. ○16세때 왕비 간택돼 입궐 민비는 고종보다 한 살 연상인 1851년생이다.나이는 비록 한 살 위였지만 그 머리와 책략은 10년쯤 위였다.민비의 외모에 대해서는 미인이다,아니다 하는 양론이 있지만 아직 확인할 길은 없다.민비가 왕비로 간택되어 입궐한 것이 1866년 나이 16세때 일이었는데,원자를 낳는데 무려 8년이나 걸렸다.1874년에 가서 겨우 순종을 낳았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그때 빈궁 이씨가 먼저 낳은 왕자가 이미 일곱살이나 되었으니 민비로서는 얼마나 조마조마하였는지 일각이 여삼추였다. 그러나 민비에게 있어 원자의 탄생보다 더한 일은 1874년(갑술) 거의 때를 같이하여 대원군을 대궐에서 몰아낸 일이었다.권불십년이라 했듯이 흥선대원군은 집권한지 꼭 10년만에 하야했고 그 뒤에는 민비가 대원군을 대신하여 근대사의 가장 중요한 20년간의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민비에 대해서는 허다한 일화가 남아 있으나 풍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남가몽’ 이외에 그리 많지 않다.요즘말로 민비는 노래방을 좋아했던 것이다. “상감(고종)이 갑자년(1864)에 즉위한 뒤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까지 19년동안곤궁(민비)은 음악을 지나치게 좋아하시어 배우들을 궁중에 데려다가 노래 부르게 하고 기생들로 하여금 묘기를 부리게 하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그러니 그 상으로 하사한 금품이 수를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이 때문에 백성은 극도로 곤궁해지고 국고는 탕진되어 바닥이 드러났다.그러나 배우들은 배가 불러 죽을 지경이었고 군인들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궁중에서는 비록 태평세월이라 할 수 있었겠으나 민간은 만신창이가 된 빈사의 세상이었다.이 때를 당하여 ‘하늘의 경고(천경)’가 여러번 나타나고 인심이 흩어졌으니 무슨 변란인들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에는 몹시 가물어 논의 벼가 말라죽고 고을마다 화적떼가 들끓었다.그래서 이것을 천경,즉 하늘의 경고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하루는 고삐 풀린 말이 궁궐 안에 뛰어드는 불길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하필이면 이런 때 섣부른 군제개혁을 단행하여 신식군대를 창설하고,구식군대는 5영에서 2영으로 감축하였으니 정리해고당한 구식군대는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더욱이 봉급을 여덟달치나 지급하지 않았으니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그것도 모르고 민비는 배우와 가수들을 궁중에 불러들여 연일 풍악을 즐기고 있었다. ○고삐 풀린 말이 궁궐로 “한 마리 개가 짖으면 두 마리 개가 따라 짖는 법이고 일시에 짖어대면 천백마리가 떼를 지어 짖어대는 법이다.한 사람의 군졸이 주동하여 일어나면 두 사람의 군졸이 제창하여 일어나고 일시에 제창하고 일어나면 5천명의 군졸이 호응하여 일어나게 된다.원래 5영의 군인수는 5천772명이었다.이와 같은 다수의 군중이 들고 일어나면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군료를 여러달 지급받지 못한 군사들의 분통과 원망이 쌓여 동심동력으로 일시에 들고 일어나니 고함지르는 소리와 하나로 합친 형세가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과 같고 비가 거꾸로 쏟아 퍼부어지는 듯했으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쪼개지는 것과도 같았다.” 민비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매천야록’에도 약간 언급되어 나오니 사실인 것 같고 군인들이 궁궐을 향해 돌진하면서 곤궁을 내놓으라고 소리질렀으니 임오군란의 책임 소재가 민비와 민씨 일족에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그러니 임오군란이 일어난 원인중의 하나로 민비의 유흥 취미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병사들이 먼저 선혜청에 들어가 불을 지르니 이때 선혜청의 당상관인 김보현은 당번을 서다가 변을 당했다.탄환이 비오듯 쏟아져서 불길이 하늘을 찌르는데,가련한 김보현은 별안간 이 급작스런 난을 당하여 달아날 곳을 알지 못하고 동분서주,정신을 잃더니 마침내 화염 속에서 타죽었다.아! 슬프도다.어찌 일찍이 기미를 알아차려 퇴청하지 않았는가.이 또한 그칠 곳을 알지 못하여 최선을 다하다가 그런 것이라 하겠다.병사들은 또한 성 안과 밖을 막론하고 권세있는 집이라면 누구할 것 없이 불지르고 총을 쏘았다.그러면서 궁궐 안을 향해 달려들었으니 천지가 솥끓듯 하고 강산이 우뢰소리로 진동하였다.” ○8척 장신 등에 업혀 탈출 사실 김보현의 죽음은 이보다 더 비참하였다.김보현이 병사에게 잡혀 계단 아래 넘어졌을 때,병사들이 창으로 김보현의 입을 찔렀다.그러자 김보현은 이를악물고 창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병사는 당초 죽일 생각이 없었으므로 창을 빼려 했는데 김보현이 끝까지 창끝을 문채 놓아주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찔러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곤궁께서는 크게 놀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어찌해야 할지 알지를 못했다.드디어 옷을 갈아입고 대궐을 빠져나와 어두컴컴한 마을로 달아났다.나라의 운명이 어지러워 어찌할 수 없는 이 때에 어디선지 8척 장신의 사나이가 홀연 나타나더니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위험이 눈앞에 닥쳐왔사오니 황송하오나 빨리 저의 등에 업히소서’ 하고 두번 세번 독촉하였다.경황이 없는지라 누구인지도 모르고 곤궁이 사나이의 등에 업혀 수구문 밖으로 나갔다.이때는 아직 날이 밝지 않았었다.가까스로 가마 한 대를 불러와서 타고 숭례문을 빠져나가 곧바로 남태령 고개를 향해 한강가로 나갔다.” 이 사건은 민비가 첫번째 당하는 변란이었고 그 뒤 10여년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
  • 가진구촌 60대 조선족의 하소연(흑룡강 7천리:24)

    ◎“여기선 잘 먹는데 북의 동생은 굶주린다니…” 가진구촌에 조선족이 산다는 사실을 듣고 오채운 여사의 안내로 찾아갔다.마을 한복판 팔뚝만큼씩 굵은 나무를 일정한 높이로 베어 울타리를 친 한족식 흙 벽돌집이었다.벌써 35년이 됐다는 집은 회칠을 하지 않아서 누런 황토빛인데다 새를 얹은 두터운 이엉이 삿갓처럼 푹 씌여서 가뜩이나 낮은 집이 움막처럼 보였다.논 한마지기 없고 어렵과 콩농사로 산다는 허저족들속에 조선족이 섞여 산다는 것은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부자간에 점심술을 마시던 주인은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안주인은 구들 위에 앉았는데 주름살이 많은 얼굴을 잔뜩 찡그린 것을 보아 병이 있는 모양이다. 주인 전철운(63)씨는 말했다. “저의 부친은 함경도 명천군 삼감면 낙두리가 고향입니다.저는 무원(흑룡강성 무원현)에서 났습니다.할아버지가 러시아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옮겨 왔습니다.나는 무원에서 한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하다가 저 노친을 만나서 결혼을 해서 이리로 왔습니다” 안주인은 장선화(62)씨는 경상북도 영일군 창주면 장길리가 고향이고 1943년,여섯살 나던 해에 중국으로 왔다고 한다.오상현 명락촌(조선족마을)에서 살다가 스물한살에 전씨를 만나 결혼하고 이리로 왔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이 마을에 조선족이 10여호 됐습니다.그러다가 1958년도에 조선으로 전쟁후 복구건설을 지원한다고들 태반이 떠나갔어요.시동생도 그때 갔답니다” ○동생 58년 북으로 떠나 당시 혈기가 왕성했던 전씨의 동생 전영해(57)는 조국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떠났다,얼마전에 식량이 떨어졌으니 구원해 달라는 편지가 왔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인가 뭔가 썼습니다.꼭 잘 살 날이 올 것이라면서 지원을 해달라고 합디다.연변같으면 통행증을 해서 갔다라도 오겠지만 여권을 내서 간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아니어서…” 전씨가 한탄했다. 중국에서는 변경지구에 사는 주민들은 해외에서 온 편지 한 장이면 수속비 200여원을 내고 당일로 통행증을 낼 수 있다.그러나 변경지구 밖의 사람들은 꼭 여권을 내야 한다.그러나 조선에서 여권을 내서 중국으로 친지 방문을 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그래서 두만강이나 압록강 연안에 친척을 둔 사람들은 몰래 국경을 넘어왔다가 돌아가기도 한다. “우리 집 식구가 다섯인데 밭이 7㏊입니다.콩을 심는데 4천500근 소출이납다.콩 한근에 1원 20전.그리고 배 한 척이 있어 고기잡이도 합니다.우리는 배가 터져 죽을 지경인데 동생은 굶주린다고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농사와 어렵수입을 합치면 매년 2만∼3만원을 번다.먹고 사는데는 불편이없지만 조선족이 그리워서 못 살겠다는 것이다.조선족들이 사는 곳으로 옮기려도 이젠 자식들을 이곳에 시집 장가를 갔으니 이 곳 귀신이 될 수 밖에 없단다.큰딸은 동광시 신광촌에 시집가고 둘째 딸은 동강시 박물관장으로 있는 한족 왕씨한테 시집을 갔고 아들 지룡(32)은 본 마을의 허저족 처녀와 7년전에 결혼했다고 한다.결혼시 허저족 며느리 필취영(27)을 맞는 서글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신부한테 치마 저고리를 입혔다는 것이었다.신부에게 한복을 입히기 위해 전씨는 버스와 기차를 타고 수천리 길의 연변에 다녀왔다고 한다. “연변에 갔는데 정말 살기 좋데.한족말을 할 필요가 없더구먼” 전씨는 허저족 며느리와 함께 사는게 불편하지 않은가 하는 나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불편이 없다면 거짓 말이긴 하겠지만 허저족과 조선족이 비슷한게 많아서 괜찮아.허저족들이 예의가 밝고 위생적이고 생회나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전씨를 모시고 오채운 여사의 본가로 갔다.오채운 여사의 부친 오명옥과 전씨는 친구였다.의리를 중히 여기는 허저족들은 친구를 한 번 사귀면 영원히 생사를 같이 하는데 그들 둘은 친 형제나 다를 바 없다고 한다.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아인 오명옥을 전씨의 부친은 친 자식처럼 돌보아 주었다고 한다.그의 결혼식도 전씨네가 도맡아 했다.그래서 오씨는 전씨의 부친을 양부모로 삼아 모셨다고 한다.이미 전씨의 부친은 사망하고 87세 된 모친이 동강시에 생존해 계시는데 오씨네는 생일은 물론 명절같은 때에도 꼭꼭 찾아간다고 한다. ○“애들이 고국 생각 하겠나” 맵고 신 맛의 물고기 생회를 안주하여 60도 배갈을 큰 잔에 부어서 마시고 모두들 얼근히취해서 기분이 나자 노래와 춤판이 벌어졌다.반가운 손님을 모신 술상에서 노래와 춤은 허저족의 예의라고 한다.향문화소 소장으로 있는 오씨의 아들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오채운이 조선말로 ‘도라지’를 부르자 그녀의 언니가 그 곡조에 맞추어 조선족의 춤을 추었다.오채운은 20년전에 북경에서 중앙민족대학을 다닐 때 조선족 학생들과 함께 기숙했으므로 간단한 의사표시를 조선말로 할 수 있고 그녀의 언니는 전씨의 딸과 함께 동강시 가무단에 무용배우로 근무하므로 조선족 춤을 배웠다고 한다.노래와 춤가락속에 술판이 무르 익어갈 무렵 전씨가 눈물 흘렸다. “우리는 친척 하나 없이 여기서 일생을 살았어.조상의 땅이 그립지 않고 혈육이 그립지 않을 수 있나.우리가 죽고나면 한족이나 별 다름이 없는 애들이야 고국생각이나 하겠나” 불타는 전씨의 애향심은 나의 마음을 울렸다.얼어붙은 흑룡강을 따라 눈덮인 평야를 누벼가는 나는 통곡이라도 해야 속이 후련해질 듯 싶었다.
  • 문신 그 육체훼손의 미학/월간 ‘지오’ 3월호 특집기사

    “너희 몸에 먹물로 어떤 무늬도 새기지 말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모세가 유태인들에게 문신을 금지한 후로 유럽에서 문신은 한때 퇴조의 길을 걸었다.그러나 문신은 여전히 결속의 징표로,또 남태평양의 여러 섬나라에서는 아름다움과 힘을 과시하는 최고의 상징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본격 다큐멘터리 잡지 월간 ‘지오’(두비) 3월호는 문신­그 육체훼손의 미학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어 눈길을 끈다. 1769년 당시 폴리네시아 여러 나라들을 여행한 영국인 선장 제임스 쿡은 유럽으로 돌아가 원주민들의 몸에 그려진 화려한 그림에 대해 설명했다.그가 전한 ‘예술적’이라는 의미의 타이티 언어 ‘타타우(tatau)’는 문신이란 뜻의 영어 단어 ‘태투(tattoo)’의 어원이 됐다. 문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인도다.인도에서는 문신술 자체가 규수가 익혀야할 교양과 기예 중 하나로 정해져 있다.특히 여자들의 정수리에 그려진 작은 점,곧 백호상은 순결을 지켜주고 정숙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통한다.또 남인도 케랄라 주의 족장은 신격화 의식을 위해 ‘테이얌’이라는 복장을 해야 한다.죽은 뒤 부족의 정령으로 모셔질 그는 몸 전체를 화려하게 장식해 최고의 지도자라는 표시를 남긴다.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일심동체임을 확인하는 서약 의식으로서의 문신은 우리나라에서도 그 역사가 깊다.대표적인 것이 바로 연인간의 연비다.삼국시대 이후 여염이나 기방에서 행하던 연비는 같은 부위에 같은 문양이나 글귀를 쪼아 먹을 먹여 서로의 몸에 베품으로써 연인끼리 사랑을 맹세하는 일종의 서약식이다.조선 초 성도덕 관념을 흔들었던 어우동 사건이 알려진 것도 연비 문신 때문이었다.성종 당시 뭇 양반들을 거느렸던 어우동의 팔뚝에는 각기 다른 남자와 사랑을 약속한 연비 문신이 여섯 개나 있었다.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의 손자 며느리였던 어우동은 결국 시어머니의 구박과 양반가의 부당한 처사에 “이제부터 당신네들의 노리개가 아닌 한 인간으로 살겠다”고 선언하며 소박을 자청해 집을 나온다.아름다운 사랑의 약속인 연비 풍속도 후에는 ‘곰배팔이 할개눈에 째보년도 팔을쪼을 줄 안다’는 속담이 나올 정도로 천시됐다.우리나라에서는 또 신분을 구별하고 범죄자임을 표시하기 위해 문신을 사용했다.흔히 ‘경칠놈’이라는 욕을 하는데,여기서 경친다의 경은 살갗을 쪼아 입묵을 하는 문신을 뜻한다.혹형을 폐지한 영조 이전까지만 해도 나랏돈이나 세금을 횡령한 관리에게는 오른쪽 팔뚝에 경을 쳐 죽을 때까지 지울 수 없게 했다. 이번 호에서는 또 효과적인 캐릭터 상품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문신에 대해서도 소개한다.인기 여배우 미라 소르비노는 퀼트 문양의 문신을 양손과 등에 새겼고,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아역배우 조나단 리프니키는 오른 팔뚝에 용맹스런 독수리 문신을 지니고 있다.한편 문신은 낯선 이국땅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 사이에서는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로스앤젤레스 빈민가의 멕시칸들 대부분이 왼쪽손등 부위에 3방사형 문신을 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DJ,국내선 처음 명예경박학위

    ◎장·차남 두 며느리 모두 경희대 졸업생/동문 측근 의원·전현직 교수들도 중용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23일 경희대에서 명예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김당선자는 이날 부인 이희호 여사 및 세 명의 손자와 함께 졸업식에 참석,졸업생과 그 가족들로 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김당선자는 인사말에서 “오늘 명예경제학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시대를 극복하는데 큰 격려가 될 것”이라면서 “이제 국민 모두가 경제가 성공하도록 도와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감회를 피력했다. 김당선자는 이날 명예박사학위를 받음으로써 명실상부한 ‘경희대 동문’이 됐지만,이 대학과는 이미 지난 67년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한 인연이 있다.또 장남 홍일씨와 차남 홍업씨가 각각 이 학교 정외과와 경제학과를 다녔고,두 며느리 또한 사범대를 나온 ‘경희대 가족’이다. 김당선자가 이처럼 경희대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이 학교 설립자인 조영식 박사와의 개인적 친분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인연은 또 최재승·정동채 의원 등‘측근’으로 분류되는 경희대 출신들이 김당선자 주위에 포진해 있고,나종일 인수위 행정실장과 양성철 의원 등 현·전직 경희대 교수들을 중용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 영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미 전기작가 키티 켈리의‘로열스’

    ◎1917년부터 80년간의 다큐멘터리 왕실사/찰스­다이애나의 파경 등 가감없이 기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가정교사에게 하루 한시간씩 영국사와 문장학을 배웠을 뿐이다. 때문에 수학이나 과학에 약했고 자연계에 관해서는 개와 말밖에 몰랐다.그녀는 러드야드 키플링과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제외한 그밖의 모든 시들을 싫어했다.어느날 그녀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에 대해 ‘단테란 말(마)의 이름?’이라고 물었다” 영국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로열스’(전2권,키티 켈리 지음·이종인 옮김)가 도서출판 동방미디어에서 나왔다. 키티 켈리는 ‘낸시 레이건:비공식 전기’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베스트셀러 전기작가.켈리는 금세기 들어 윈저 왕가는 비영웅적일 뿐아니라 결손가정화해 ‘미디어를 위한 인형극’으로 전락했다고 꼬집는다. 이 책은 1917년에서 1997년에 이르기까지 80년의 영국왕실사를 다룬다.1917년,독일을 미워하는 영국의 국민정서를 잘 알고 있던 영국왕 조지 5세는 자신의 독일 뿌리를 감추기 위해 왕가의 이름을 하노버에서 윈저로 바꿨다.그는 하룻밤 사이에 바텐베르크,메클렌베르크­스트렐리츠,헤세,베틴 등 독일계 가문의 이름을 왕가의 계통에서 박탈해버리고 영국 이름과 타이틀을 만들어 넣었다. 켈리는 이 책에서 훗날 윈저 공작이 된 에드워드 8세의 느닷없는 양위와 그 뒤를 이어 동생 앨버트 왕자가 조지 6세로 등극하는 과정을 그린다.그리고 영국 왕실에 커다란 안정을 가져온 엘리자베스 왕비를 묘사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곧 현재의 ‘퀸 마더(Queen Mother)’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의 하나다.켈리는 우아한 미소에 강철같은 성품을 지닌 퀸 마더의 생생한 초상을 제시한다. 퀸 마더는 비록 평민 출신이지만 2차대전 당시의 런던 공습때 대피하지 않고 런던에 그대로 체류,왕가의 체통을 지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켈리는 퀸 마더의 출생을 둘러싼 신비를 밝히고 인공수정으로 두 딸을 낳게된 내막도 폭로해 눈길을 끈다. 켈리는 또 조지 6세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2세의 외로운 유년시절과에든버러공 필립과의 결혼,1952년 아버지의 급서로 인한 갑작스런 등극 등을 상세히 다룬다.켈리가 엘리자베스 2세의 생활에 대해 밝힌 구체적인 사항들 중에는 여왕이 냉정하고 무심한 어머니였다는 내용도 있어 자못 충격적이다.그에 의하면 윈저 왕가의 파탄은 여왕이 기능부전한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상당부분 그 원인이 있다. 여왕의 네 자녀 중 셋은 이혼했고 나머지 한명인 막내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바람둥이 남편인 필립 공,속만 썩이는 동생 마거릿 공주, 우유부단한 아들 찰스 왕세자,뻣세기가 남자 못지않은 앤 공주,왕족이 아닌 평민계급에서 데려온 두 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와 사라 퍼거슨….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모든 풍상을 헤치고 이제 2002년 대망의 즉위 50주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여왕의 부군으로 여왕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왕궁내의 실세’ 필립 공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묘사한다.켈리는 필립공이 아직도 가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이 책의 후반에서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파경,둘째 며느리인 요크 공작부인 사라 퍼거슨의 이해할 수 없는 음란한 행동 등을 가감없이 다룬다.이 책은 영국 왕실도 이혼과 결손가정의 증가라는 영국적 사회현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윈저 왕가는 또다시 위기의 시대를 맞았다.왕가를 ‘재창건’해야하는 과업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엘리자베스 여왕­찰스 왕세자­윌리엄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영국 왕실 상황은 빅토리아 여왕­에드워드 왕자­조지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1900년의 빅토리아 말기와 비슷하다.모후인 빅토리아 여왕 사후 에드워드 7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그는 이미 59세의 나이로 평생 여자들의 품에 안겨 샴페인이나 마시며 인생을 탕진한 사람이었다.그가 즉위한지 10년도 못돼 죽자 조지왕자는 조지 5세로 등극,윈저 왕가를 창건했다.영국 왕실은 이제 100년 세월의 간격을 두고 똑같은 운명을 맞고 있다.영국 왕실은 과연 ‘스캔들의 궁전’인가. 그러나 영국 왕실은 그 많은 스캔들과 결점에도 불구하고 역경과 비난을 견뎌내는놀라운 능력을 보여왔다.켈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1천200년 역사의 영국 군주제는 이제 신과 같은 광휘가 부식되었고 또 위축될대로 위축돼 수모를 겪고 있다.그렇지만 장엄함에 대한 매혹과 새로워진 왕권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영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 채무 고민 30대 주부 두딸 살해한뒤 자살

    【안성=김병철 기자】 17일 하오 4시쯤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마정리 동산빌라 A동 402호 윤정학씨(36·회사원) 집 안방에서 연지(6),연경양(3) 등 윤씨의 두 딸이 숨져 있는 것을 윤씨의 시어머니 김순옥씨(65)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며느리가 친정에 전화를 걸어 ‘애들을 죽였다’고 말했다는 사돈의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와 보니 손녀들이 방안에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의 신고를 받고 집 주변을 수색하던 중 5백여m 떨어진 야산에서 나무에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윤씨의 부인 박정남씨(32)를 발견했다. 경찰은 숨진 박씨가 지난 96년 3천여만원의 사채를 얻어 의류점을 냈으나 최근 IMF 한파 등으로 장사가 되지 않아 집 전세금을 압류 당하는 등 채무에 시달려 왔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이를 비관해 두 딸을 목졸라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보고 조사중이다.
  • 김 당선자 경희대서 명예 경박

    ◎67년 경영대학원·70년 대학원 수료/두 아들·며느리도 동문… 각별한 인연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취임식을 이틀 앞 둔 오는 23일 경희대에서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는다.부인 이희호 여사는 경희대가 인류문화의 향상과 사회복지 증진에 기여한 국내외 인사에게 수여하는 대학장을 받는다. 경희대는 9일 “김당선자가 경제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연한 이론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키로 했다”고 밝혔다.이여사는 여성인권신장 등에 기여한 공로를 평가받았다. 김당선자는 경희대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67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했으며 70년에는 일반대학원 경제학과 연구과정을 마쳤다. 장남 홍일씨(국민회의 의원)와 차남 홍업씨는 경희대 정치외교학과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큰 며느리와 둘째 며느리는 모두 사범대 외국어교육과 출신이다. 경희대 설립자이며 경희학원장인 조영식 박사(77)와의 친분도 두텁다. 경희대는 98학년도 대학원 및 학부 졸업식을 오는 23일 함께 거행할 예정이었으나 김당선자의 참석에 따른 경호 및 의전문제를 감안,학부 졸업식을 20일로 앞당겼다.
  • 중 최고배우자는 ‘간판’ 아닌 인품

    ◎50∼70년대 결혼땐 당 간부·군인 인기 1위/최근엔 돈·권세보다 “사랑 전제로한 인성” 【베이징=정종석 특파원】 ‘50년대는 당간부,70년대는 군인,80년대는 졸업장이 있는 사람,그러나 98년에는 인품…’.지난 40여년동안 중국에서의 배우자 선택기준은 이른바 ‘끗발’이나 ‘간판’이 우선이었으나 최근의 한 조사결과는 과거와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최근 신화사 부속 공산주의청년단위원회와 중앙신문학원이 북경시의 보통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교장구 골목의 156가구를 대상으로 공동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 선택기준 1∼3위는 인품,건강,성격이었다.그 다음은 키,용모,직업,학력,재능이었다. 이들 북경인들은 혼인기준에서 먼저 인격을 금보다도 중시했다.다만 시대와 경제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배우자 선택 면에서 맹목적으로 정신만 강조하던 타성에서 벗어나 사랑을 전제로 해서 실제적인 키나 용모,직업 등을 따지고 있다. 혼인기준에서 맨 하위는 뜻밖에도 상대방의 가정환경과 경제소득으로 나타났다.돈 있고 권세있는 가정환경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의 배우자 선택기준으로 선망시되지만 이를 쫓다가 결혼생활을 파탄으로 끝낸 뼈아픈 전례를 이웃에서 봤기 때문이다. 10년전 이 골목에 살면서 간호원으로 일하던 한 아가씨는 고급간부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그러나 결혼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풍파를 만났다.시어머니가 가정부를 해고하고 며느리에게 걸레질과 빨래를 시키는 등 사실상 고용인으로 부렸기 때문이다.그집 식구들의 신분차별 대우로 그녀는 결혼한 지 1년도 못돼 이혼을 하고 만 사실을 교장구사람들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 세살 딸 한때 실어증 보여/외교관 가족 석방 이모저모

    ◎지프서 새활… 피랍전 사둔 라면으로 끼니/납치범들 “미안하다” 사과… 위해는 없어 【서정아·부산=이기철 기자】 예멘의 알하다족에게 납치됐다 9일 풀려난 한국인 3명은 만 나흘간 산속 계곡에서 낯선 부족들에 둘러싸여 추위와 공포에떨며 시간을 보냈다. 알하다족은 ‘여자와 어린이는 보호해야 한다’는 이슬람율법에 따라 이들에게 위해는 가하지 않았으나 허전서기관의 세살바기 딸 규원양은 부족간 갈등으로 총격전이 벌어지자 크게 놀라 실어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허서기관의 부인 유상옥씨는 석방뒤 인터뷰에서 “차로도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산속으로 끌고 갔으나 특별한 위협은 없었다”면서 “그러나 현지 부족간 갈등으로 총격전이 발생했을때 우리 차도 총을 맞았으며 딸은 충격으로 하루반 정도 말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씨는 또 하다족들은 유목민생활을 하면서 원시적으로 생활하고 있었으며 납치당시 타고 있었던 닛산 지프차속에서 생활했다고 전했다. 날씨가 매우 추워 모포를 덮고 있었으며 계곡물로 목을 축이고 납치전사두었던 라면 햄 등을 먹었다. 부족들이 볶음밥 등도 해주었다고 말했다. ○…고용준씨는 “지난 5일 사나 중심가에서 과일을 사기 위해 차를 세운순간 무장한 괴한들이 총을 겨누며 차를 빼앗아 3시간쯤 운전해 알아마스라는 산악지대로 끌고 갔다”고 말했다. 고씨에 따르면 알하다족은 인질에게 “위해는 가하지 않을 것이며 죽이지도 않겠다”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외국인 인질을 일종의 ‘손님’으로 대한다고 했다. 이들이 석방사실을 안 것은 8일 하오. 이곳에서 통신수단으로 사용되는 산정상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통해 유목민들이 알려줬다. 알하다족의 납치동기에 대해서는 부족 소년을 성추행한 예멘인 4명을 처형해달라는 요구를 비롯,지방도시계획,지역개발사업을 해달라는 것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부는 이날 상오 8시40분 현지 우리 대사관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이들의 석방소식을 전해듣고 과거 예멘내 다른 납치사건에 비해 빠른 시일내 풀려났다며 기뻐했다. 외무부는 부산에 있는 허서기관 및 고씨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이들이 안전하게 석방됐다는 소식과 함께 위로의 말을 전했다. 부산 대연동에 살고 있는 허서기관의 아버지 허순씨와 어머니 박옥희씨는 “며느리와 손녀가 며칠안에 풀려나지 않으면 현지에 가려했다”면서 크게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부산 공안동에 살고 있는 고씨의 어머니 최정원씨 등가족들도 “하루가 일년보다도 길었다”면서 “애써 준 현지 대사관과 염려해 준 국민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 탈북 일가 47년만에 혈육 재회/이용운씨 가족 어제 회견

    ◎미 거주 8순노모와 감격의 눈물 지난 8월 일가족 8명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제3국을 거쳐 귀순한 이용운씨(63)가족이 30일 하오 서울 덕수궁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지난 10월과 이달초 두차례에 걸쳐 귀순에 성공한 일가족은 이씨와 부인 이재관씨(58),장녀 애란씨(33)와 외손자 고철혁군(1),장남 학철씨(31·광산 노동자)와 며느리 천정순씨(32·고등중학교 교사)·손자 천군(2),차남 문철씨(29·전신기술자), 차녀 미란씨(26·전화교환수)등 9명이다. 이들의 탈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씨의 어머니 백홍용씨(85)는 이씨의 여동생 2명과 함께 미국에서 귀국,이날 47년만에 뜨거운 가족애를 나누었다. 백씨는 아들을 부둥켜 안고 “살아 있었구나”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부인 이씨는 “최근 북한에서는 주민의 상당수가 ‘타도벌이’로 집을 비우기 때문에 남편이 떠난 뒤에도 주위의 의심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은 직위를 이용해 식량과 물품을 가로채는 안전지도원들의 횡포에 크게 분노하고 있으며 최악의 생활고를 빗대어“쌀·불·물”의 ‘ㄹ’을 따 ‘3ㄹ 부족’이라고 말한다고 이들은 전했다.
  • 김 당선자 며느리 신선연씨/가이아나 명예영사 곧 지명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둘째 며느리이며 홍업씨(48)의 부인인 신선연씨(41·회사원)가 조만간 남미 가이아나의 주한명예영사로 지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 “나에게 한표를” 마지막 호소/D­1:유세 현장

    ◎한나라당­“DJ 부산표의 반만 달라” 호소/국민회의­수도권 9곳 돌며 막판 세몰이/국민신당­영남·충청 넘나들며 민심 유도 ‘D-2’-선거를 이틀앞둔 16일 대선후보들은 서울과 수도권,영·호남 등 전략지역에 총공세를 펼쳤다. ○유세기간 첫 광주방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광주를 거쳐 서울과 수도권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선거운동 기간동안 대선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광주를 찾은 이후보는 이날 상오 송정리역에서 지지당원과 시민 등 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거리유세를 통해 “대통령은 한 지방의 대변인이나 한을 푸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전제하고 “광주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가슴아프고 따뜻한 형제자매”라며 ‘한표’를 호소했다.이후보는 “저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당선되는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으며 김후보가 부산에서 얻는 표의 반만이라도 나에게 달라”고 강조했다.이날 이후보의 광주 유세는 일부 우려와는 달리 별다른 충돌없이 진행됐다. 이어 서울로 직행한 이후보는 지하철 화곡역과신도림역,광명 클리프백화점,관악 로얄웨딩홀앞 광장,어린이 대공원앞 광장,상봉터미널,청량리역 광장 등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거리유세에서 이후보는 “이번 투표는 단순히 인기투표가 아니라 경제난국에 빠진 나라의 미래와 운명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를 판단하는 중대한 결정”이라며 “혼란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표를 줄여 당선될 사람,확실한 후보에게 표를 달라”고 역설했다.이후보의 큰며느리인 이혜영씨도 일부 유세를 지켜봤다. ○경제파탄 책임론 역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성남과 부천,수원,인천 등 수도권 9개 지역을 ‘강행군’하며 막판 세몰이에 나섰다. 김후보는 가는 곳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제2의 김영삼 대통령’으로 몰아세우며 ‘경제파탄 책임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경제를 망친 한나라당이 재집권할 경우 우리 경제는 완전히 거덜이 나게 날 것”이라고 강조한 뒤,“여당이 잘못했으면 야당에게 표를 던져 국민적 심판을 내려야 한다”며정권교체의 당위성을 부각시켰다. ‘초보 운전자론’도 단골 메뉴였다.“이후보가 법관으로 훌륭할지 모르지만 경제에 있어서는 초보 운전자에 불과하다”며 “아슬아슬한 IMF 벼랑길에선 초보 운전자보다는 경제와 외교를 누구보다 잘아는 내가 적임자”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한강의 기적 다시 한번”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팀은 대구·대전을 중심으로 경남북과 충남북을 넘나드는 대장정을 벌이며 막바지 유세전에 총력을 기울였다.재래시장과 상가·역광장을 순회하면서 지역 정서에 맞는 연설과 공약 등을 통해 민심잡기에 주력했으며 특히 이만섭총재와 박찬종 선대위의장이 지원유세에 나서 무게를 실었다. 이후보는 상오 7시부터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출근길 근로자들과 만나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해 듣고 근로자들을 격려하는 거리유세를 시작했다.경산으로 옮겨 재래시장을 돌면서 상인들을 만난뒤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의 연설을 폈다.이후보는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과 경제파탄의 주역에게 이 나라를 맡길수” 없다고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겨냥한 뒤 “집권하면 제2의 새마을운동을 통해제2의 한강의 기적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역설했다.
  • 박물관 대학/이융조 충북대 박물관장(굄돌)

    우리 대학도‘박물관대학’이라는 사회교육 과정을 개설해 이제 3기가 거의 끝나간다.1기 때는 어떤 사람이 올까 하는 의구심이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했지만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박물관대학 강사들이 알찬 강의를 진행해 지역 저명인사와 유지들이 많이 수강하였다. 우리 대학 전 총장,전 도의회 의장,전 부지사,도·시의원들을 비롯하여 우리 학교 교수들도 여러분 강의를 들었다.시어머니와 며느리,부부,동창생들 이같이 와서 들은뒤 갖는 식사 또는 차마시는 시간은 즐겁기만 하다. 게다가 될 수 있는한 강좌와 강사를 매년 새롭게 구성한 결과 1기부터 이번까지 3년을 잇따라 수강하는 사람들도 10명이 넘는다.2시간 반 강의를 들으려고 7∼8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오는 열성적인 수강생도 있다. 올해는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해 이에 동참하는 뜻으로 1학기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2학기에는 중원지방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로 16주씩 강의를 했고 답사도 다녀왔다.과정이 끝나가는 것이 애석해서인지 ‘학생’들은 수료를 기념하는 답사를 하자고 해오는 15일에는 익산 미륵사지와 고창의 고인돌·선운사를 다녀오기로 계획을 짜놓았다. 이들은 앞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파수꾼이 되고 홍보자가 될 것이기에 우리는 수료식에 동문들까지 초청해 새 동문을 맞이하는 상견례도 가질 예정이다.이같은 박물관대학 과정을 여러 대학교 박물관에서 개설해 우리 전통문화와 민족에의 자긍심을 높이는 올바른 교육을 한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미국·일본에서 처럼 자원봉사자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고 안내하는 그날이 멀지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달러 평가절상’이라니…/이규억 산업연구원장(서울광장)

    공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듯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서도 우리는 퍽 무관심한 편이다.매스미디어의 급속한 확산에 따라 오염된 언어가 홍수를 이루고 잘못된 말과 외국어를 모방한 국적불명의 말들이 무분별하게 통용되고 있다. 우리의 언어습관은 어떠하며 오늘의 언어오염은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정보화시대에 걸맞는 문화창달을 위해 언어순화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민족정서가 담긴 순수한 우리말을 보존 발전시키려는 의지는 또 어떠한가.우리 것을 찾아 일구자는 움직임이 사회의 곳곳에서 일고 있지만 우리말의 계승발전을 위한 노력이 미흡하다는 느낌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국적불명 말 무분별 사용 한글전용문제만 해도 그렇다.아름다운 우리말의 보존개발이 당초의 취지였을 터인데 현재는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에 치중하여 오히려 단어의의미만 증발해버린 예가 많다.거리를 달리는 화물자동차의 짐칸마다 ‘전착도장적재함’이라는 표기가 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한자를 제대로 모르니 신문에서조차 ‘일체’를 ‘일절’로 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오늘날 사회전반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한자어를 모두 중국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거꾸로 한자어의 한글표기를 고집한다고 중국문화의 연원적 영향이 제거될 수 있는가.극단적인 예일지 모르나 독일은 게르만문자 대신 로마문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자존심을 버렸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영국도 인도숫자(속칭 아라비아숫자)를 쓰지만 인도에 열등감같은 건 느끼지 않을 것이다.맹목적 한글전용은 지나친 자아의식의 발로일 것이다.우리말의 단어중 명사는 특히 한자어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것을 한글로만 표기하면 그원래의 의미가 제대로 살지 못하거나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또한 우리 고유의 한자어는 사라져가는 마당에 일본식 한자어가 마치 우리말인양 버젓이 행세하고 있음은 무슨 까닭인가.이중에는 헌법,사회,철학 등과 같이 완전히 우리말화된 것도 있지만 특히 전문분야에서 어설픈 일본단어들이 남용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예컨대 ‘절상’은 계산에서 끝자리 수를 버리고 올린다는 말인데무슨 까닭인지 달러화의 가치상승을 평가절상이라고들 한다.경쟁도 원래일본식 한자어이지만 이미 국어화된지 오래인데 최근들어 부쩍 경쟁 대신 ‘경합’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못마땅하다. 일본말을 국어로 착각하고 있는듯 음식점에서 접시를 뜻하는 ‘사라’라는 말이 예사로 쓰여진다.또한 우리나라의 식당에서는 닭을 맵게 요리한 것을 흔히 닭도리탕이라고 하는데 ‘도리’는 일본어로 새를 뜻하는 것이니 결국 닭이라는 말은 두번 쓰는 꼴이다. ○맹목적 한글전용도 문제 부지불식간에 일본식 어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잘못된 경우로 ‘경제를 보다 튼튼하게’ 운운하는 것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는데 우리말에서 ‘보다’는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비교조사이므로 ‘더욱’이라는 말이 적절한 것이다.그럼에도 정부 공식성명에까지 흔히 등장하니 어안이 벙벙하다.일본인 특유의 외교적 어법인 ‘전향적으로 검토하다’는 말도 그 의미가 분명치 않은채 우리의 정책당국자들에 의하여 마구 쓰여지기도 한다. ○우리 말 올바르게 가꿀때 요즘 인사말로 “수고하십시오”라든가 “식사하셨습니까”라고 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손아랫 사람에게나 쓸 법한 말을 윗사람에게 잘못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이다.진지라는 멋있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식사라는 천박한 한자어를 쓰면서 한글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겸손이 지나쳐서인지 우리나라 대신 저희 나라라고 하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요즘의 젊은이들은 남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일컬음에 있어 흔히 아버님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지칭할때 써야 하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경제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에서 문화선진국의 면모가 실종되고 있다.지금이야말로 교육 및 언론기능의 강화를 통해 우리말을 올바르게 가꾸어서 문화선진국을 지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3후보 경제대통령 이미지 심기

    ◎이회창­정책일관성·국가경영의식 강조/김대중­정보통신업체 등 현장방문 격려/이인제­물가안정·주가 3,000P선 공약 경제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신한국당 이회창 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등 대선 후보들이 경제를 살릴수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심는데 주력하고 있다.20일 부산일보·부산 문화방송 주최 대선후보 초청강연회에서도 각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경제회생책을 내놓았다.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는 이날 강연회에서 “위기에 처한 경제를 일으키는데 전심전력해야할 역사의 고비를 맞아 우리 모두 선거를 떠나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호소했다.이후보는“대통령이 나서 금융위기를 타개하는 정부의 비상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금융실명제도 획기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후보는 “경제가 어려워진데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지난 5년동안 경제부총리가 일곱차례나 바뀌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정책의 일관성과 정부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정치적인 인기를 생각하지 않는 책임있는 경영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제위기 극복과 민생안정을 위해 ▲규제철폐 ▲5년내 물가 2∼3%로 안정 ▲시장금리 절반수준으로 인하 ▲산업입지 재조정및 공장용지 공급 확대 ▲3백만명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실천약속으로 제시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이날 대선후보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을 방문한 길에 자갈치시장과 정보통신기기제조업체를 잇따라 방문하는 등 PK(부산·경남)지역의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강행군했다. 김총재는 이날 강연회가 시작되자마자 ”대통령선거에서 3차례 실패한 이유는 영남지역에서 표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대통령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찍지않아도 되지만 제발 지역감정때문에 안찍지는 말라”고 호소했다. 김총재는 이어 “신한국당이 또 다시 ‘우리가 남이가’라면서 지역감정을 이용하려 하는데 그렇다면 김대중이는 러시아사람이냐”고 반문한뒤 “며느리 둘이 경상도 사람이고처도 부산에서 만난데다 김해 김씨니 나는 경상도사람”이라고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이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5곳의 경제현장을 방문,발로 뛰는 ‘일꾼대통령’의 이미지를 심는데 부심했다.아침엔 한이헌 정책위의장,홍재형 경제특보,이용삼 의원 등과 함께 서울 지하철1호선 시청역 주변에서 ‘경제살리기’켐페인을 벌였다.이어 을지로입구의 외환은행 본점을 찾아 외환을 거래하는 딜링룸등을 돌아본 뒤 홍세표 행장 등 관계자들로부터 환율거래상황과 대책을 들었다.하오에는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후보합동강연회에 참석,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치권의 동참을 촉구했다.서면사거리 지하철 공사현장과 부전시장,광복동 상가등지를 찾아 상인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후보는 강연회와 이어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클린턴처럼 용기와 열정으로 우리 경제를 반드시 되살리겠다”고 지지를 호소한 뒤 무역대표부 신설과 3%선의 물가안정,임기내 주가 3천포인트 상승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 정부와 결혼위해 손자납치/비정의 40대 할머니 쇠고랑(조약돌)

    ○…연하의 정부와 결혼하기 위해 친손자를 빼돌려 자신이 낳은 아기라고 건네준 비정의 할머니가 경찰에 붙잡혔다. 인천연수경찰서는 14일 정인숙씨(49·여)에 대해 영아 약취유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13일 하오 9시쯤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동남빌라 자신의 아들 유모씨(27) 집에서 며느리의 산후 조리를 돕다가 태어난지 8일된 손자를 자신의 정부 강모씨(37·택시기사)와 강씨의 어머니에게 “둘 사이에 낳은 아들”이라며 넘겨 줬다는 것. 정씨는 며느리 한모씨(25)가 잠든 사이 손자를 안고 집을 빠져나와 남동구 간석동 강씨 집으로 가 아기를 준 뒤 집으로 돌아와 넥타이로 자신의 손발을 묶은뒤 며느리를 깨워 40대 남녀가 애를 납치해 갔다는 자작극까지 벌였다.〈인천=김학준 기자〉
  • 조선후기 김홍도의 ‘우물가’(한국인의 얼굴:120)

    ◎물긷는 아낙네에 남정내 불쑥/남녀유별 강조한 사회상 표출 조선시대 후기를 살았던 김홍도는 당시 풍속을 잘 그린 화가다.회화에서 풍속화라는 한 장르를 새로운 시작으로 개척하고 또 이 분야 그림에 불을 당긴 화가이기도 했다.풍속화에는 화가 주변의 세정이 짙게 배어들기 마련이다.그래서 민중 친화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비록 궁중에 속한 화원 신분이기는 했으나 시정풍경을 즐겨 화폭에 담았다.그의 풍속화첩에 나오는 ‘우물가’는 그런 조선의 정경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것처럼 구성한 그림이다.남녀유별을 강조한 당시 사회상을 은연중 표출한 이 그림은 여인네들 끼리만 자유로워야할 우물 언저리를 소재로 했다.그런데 불쑥 나타난 남정네가 여인네들 판을 깨놓았다. 그 남정네는 창옷을 입었다기보다는 걸쳤다.그리고 옷섶을 다 열어놓아 배꼽까지 드러났다.힘깨나 쓸만한 체구이나 우물가 여인들이 보기에는 민망한 꼴이다.정말 목이 말라서인지,아니면 부러 끼어들었는지는 모를 일이다.어떻든 내외를 할 수 밖에 없는 아낙의 볼에는 벌써 홍조가 피어났다.필부필부로 인연을 맺어 사는 아낙일 터이지만 얼굴이 퍽이나 곱다. 아낙은 갸름한 얼굴을 했다.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크지는 않으나 오뚝한 코,작게 다문 입이며 나무랄 데가 없다.과장되지 않은 미인이다.수수한 옷차림에 헤어스타일은 큰 머리다.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앞쪽 아낙도 그런 머리다.당시 유행한 머리모양인가 보다.그런데 젊은 아낙 오지랖 아래로 아직은 몽실한 젖무덤이 삐죽 나왔다.치마말기속에 감추어 두어야할 부분이다.그러고 보면 아마도 초산때 첫아들 옥동자를 낳았던 모양이다. 젊은 아낙은 아들까지 낳았으니 큰일 하나는 치른 어느 집 며느리다.그러나 난데없이 우물가에 나타난 무뢰한 앞인지라 아직은 수줍다.옷고름이라도 자근자근 물고싶은 마음이지만 두레박줄을 두손에 쥐었기 때문에 그럴 처지도 아니다.엄청 수줍어하는 아낙 표정에 비해 두레박물을 마시는 남정네는 숭굴스럽다.그래서 묘한 대비를 이룬다.그림의 뜻을 말하는 화의가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남정네는 망건을 쓰고 뒷짐에 갓까지 걸어두었다.막무가내로 우물가를 찾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백면서생의 이력은 지녔을 법하다.남정네 얼굴을 가만히 살피면 우스꽝스러운데가 있다.자라목처럼 목이 밭고 두상도 잘 생기지는 않았다.그 두상에 그 얼굴이라고 눈과 코,입이 별 간격을 두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있다.〈황규호기자〉
  • 나체 결혼식 기사를 읽으면서(박갑천 칼럼)

    잠수복입고 물속에서 올리는 결혼식이 있었나하면 낙하산타고 공중에서 뛰어 내리면서 치르는 결혼식도 있었다.남의 눈에 띄게,화제에 오르게 하려는 뜻이었던 듯하다.한데 외국얘기긴 하지만 이번엔 나체결혼식이 사진을 곁들여 외신을 탄다.신부는 타이완 가오슝(고웅)의 슈샤오단(허효란)이다. 가끔씩 운동경기장에서는 스트리킹이라는 것도 펼쳐지고 웃도리 드러내는 패션쇼도 예사롭게 볼 수 있는 세상이다.실내의 그림모델 말고도 더러는 전위예술가가 혹은 사진모델이 햇볕쨍쨍한 야외에서 벌거벗은 몸매를 뒤스른다.한데 이젠 결혼식 신부까지.나체주의자들이 나체촌에서 올리는 예식도 아닌데.입장료내고 들어간 1천명 하객은 하나같이 검측측한마음 끼뜨릴수 있었던걸까.“여자가 옷을 벗으면 부끄러움도 벗는다(헤로도토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결혼하려면서 할수없이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어야 했던 여인이 비극의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다.그가 루이16세한테 시집간 나이는 15세.그런데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국경에 세워진 임시궁전의 가신들앞에서끙짜놓을 짬도없이 발가벗은채 속속곳까지 갈아 입어야 했다.오스트리아것은 실오라기 하나라도 걸치고 프랑스로 들어갈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나중에 국민들에게 출산하는 몸맨두리까지 보이는 고역을 치른다. 그런경우 말고 옛날에는 임신능력검증을 받기 위해 벗어 보이기도 했던 듯하다.토머스 모어도 그의 〈유토피아〉에서 그걸 주장한다.“사람은 작은집을 하나 사는데도 이것저것 살핀다.한데 일생의 행불행이걸린 아내를 고르면서 얼굴밖에 안보다니.”이말을 뒷받치는 것이 17세기 영국고고학자 J 오브리의 〈짧은목숨〉.결혼전에 신랑아버지가 며느리될 여성의 온몸을 살피고서야 승낙한다는 대목이 보인다.물론 슈샤오단양 결혼식 하객들의 눈길과는 다르다 하겠으나 망상스럽다는 생각 떨치긴 어렵다. E 훅스의 〈세계풍속사〉에는 14세기 초엽께의 뮌헨이나 겐스부르크지방 결혼식 피로연얘기가 나온다.신랑신부와 하객들이 목욕탕에 가서 벌인다는 것.몸과 마음을 맑히기 위해서였다지만 그 광경을 미루어 짐작할만하다.역사는 되풀이한다 했던가.나체신부가 등장했다면 언젠가 그같은 피로연도 나올지 모른다. 남의 얘기라고 함부로 하긴했다.본디 말초신경 건드리는 일이란 더쉽게 번져나는 법.상륙할건가.〈칼럼니스트〉
  • 여,여론 주시하며 전의 다지기/DJ 비자금 파문­신한국 움직임

    ◎강 총장,“정치생명 걸고 DJ 허상 밝히겠다”/“부도덕성 공표 목적… 경제계 타격 최소화”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관리 의혹을 제기한 신한국당은 11일 상오 국회에서 주요당직자회의와 긴급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전의를 다졌다.지도부는 특히 검찰의 조속한 수사와 김총재의 후보직 사퇴와 정계은퇴를 촉구하면서 여론의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었다.여론의 향방에 따라 김총재의 고발시기를 결정하겠다는 복안이다. ○…강삼재 사무총장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이번 일로 당에 누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하면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치를 그만두겠다”면서 “김총재가 비자금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앞으로 3차,4차 발표를 계속해 나가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강총장은 “김총재의 아들과 친인척 명의로 된 또다른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확인중이며 이는 6백70억원과 전혀 다른 비자금”이라면서 “이제 김총재는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질 것이며 저는 당 사무총장으로서 김총재의 허상을 밝히는데 정치생명을걸겠다”고 주장했다. 강총장은 특히 “가증스러운 것은 김총재가 92년 대선이후 정계를 은퇴하면서도 엄청난 정치자금을 소속정당에 넘겨주지 않고 사용으로 썼다는 사실”이라면서 “심지어 자식과 며느리가 비자금을 개인적으로 쓴 증거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강총장은 “김총재는 대통령이 될 자격도 없고 대통령이 되더라도 직무를 수행할 수도 없다”면서 “현재 확보된 자료만으로도 김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즉시 청와대에서 걸어내려 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우리당의 발표로 경제계가 타격을 입어서는 안되며 그럴 의도도 전혀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이사철 대변인이 발표했다.이대변인은 “김총재의 부도덕성과 부정직성을 알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김총재의 비자금 수수 내용을 밝힐수 밖에 없었던 충정을 알아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 대중탕·여관 소재 방화 잇따라 개봉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억수탕’ 18일·‘모텔선인장’ 25일 선봬/억수탕­목욕탕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 모은 코미디물/모텔선인장­여관방서 4계절 벌어지는 네쌍의 정사 그려/두작품 모두 신진감독 데뷔작… 작품 완성도는 떨어져 대중목욕탕과 여관,서로에겐 모든 것이 노출되지만 외부와는 철저히 격리된 공간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한국영화 두편이 잇따라 개봉된다.18일 선보이는 ‘억수탕’(곽경택 감독,제이콤 제작)과 25일 오르는 ‘모텔 선인장’(박기용,우노필름)이 그것. 두 작품은 소재가 특이한데다 패기넘치는 신진감독들의 데뷔작이고,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는 공통점 때문에 기대를 받아왔다.그러나 막상 작품 완성도는 많이 떨어져 실망을 안겼다. ‘억수탕’은 부산의 오래된 목욕탕에서 한낮 1∼2시간새 일어난 작은 ‘사건’들을 모은 코미디. 남탕에서는 영화감독 지망생(김의성 분)과 성병에 걸린 스님,수업을 빼먹고 여탕을 훔쳐보러온 중학생 둘,전형적인 깡패 등 10여명이 갖가지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여탕에도 누드사진작가(방은희),사이가 원만치 않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여장 남자,남편의 선거운동에 나선 여자 등이 모여 사연을 풀어놓거나 엮어간다. 모두가 벌거벗은 채인 이곳에서도 재산정도·외모나 힘의 우열·세대차·성적인 미신 따위가 빚어내는 권력구조와 갈등은 존재한다.손님들의 행태 및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사회의 여러문제를 축약한 것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가면 이같은 긴장은 특별한 계기없이,한순간에 뒤집힌다.‘땡중’은 갑자기 고승으로 둔갑하고,고부갈등은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뒤바뀐다.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느닷없이 착해지고 목욕탕 밖 세상은 장미빛이다.이때쯤이면 관객은,감독의 턱없는 낙천주의에 어리둥절해지기 보다 목욕탕 에피소드가 눈요기를 위한 장치에 불과했음을 눈치채게 된다. ‘모텔 선인장’은 같은 이름의 여관 한 방에서 4계절에 벌어지는 네쌍의 정사를 그린 작품.4가지 에피소드는 모두 ‘섹스와 사랑의 상관성’을 이야기하지만 결론은 ‘섹스가 곧 사랑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첫번째 연인들은 오랫동안 성관계를 가져왔고,이날도 격렬한 행위를 갖는다.남자(정우성)의 애정은 이미 식었는데도 여자(진희경)는 섹스란 수단으로 이를 유지하려 애쓴다.대학 영화과 학생들인 두번째 커플은 실습작품을 찍고자 여관에 온다.그러나 분위기는 어린 그들을 자극해 섹스를 나누게끔 한다.수줍은 섹스를 마치자 그들은 사랑을 시작했다고 착각한다. 사랑에 절망한 남녀(박신양·진희경)는 우연히 만나 여관방에 든다.만취한 그들의 메마른 정사 끝에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다.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떠나간 옛 여인(이미연)은 첫사랑(박신양)을 찾아온다.여자는 섹스가 사랑을 회복시키리라 믿지만,사랑의 상처에 자살을 꿈꾸어온 남자는 사랑을 되살릴수 없음을 깨닫는다. 탄탄한 구조와 주제를 가졌음에도 ‘모텔 선인장’이 실패한 원인은 분명하다.캐스팅의 부조화와 그에 따른 어색한 연기,난삽하기만한 카메라는 처음부터 관객을 짜증으로 몰고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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