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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후보 부인에 듣는다] (2)권영길후보 부인 강지연씨

    권영길(權永吉·61)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부인 강지연(姜知延·59)씨는 일요일인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한 연립주택 자택에서 기자들을 맞았다.“막 외출을 하려는 중”이라고 양복차림으로 나오는 권 후보 얼굴 뒤로 공간이 모자라 방 가운데까지 서가가 돌출해 있는 서재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는 게 보였다.매듭단추로 앞을 여민 개량한복 차림의 강씨에게선 인내로써 고난을 이겨낸 강인함이 풍겨 나왔다.남편에 대한 신뢰와 함께 민노당의 대선 공약과 쟁점 이슈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거실에 사각상을 펴놓고 앉아 1시간30분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권 후보의 노모가 나와 “수고가 많다.”며 말을 건네기도 했다.대담에는 신연숙 문화에디터와 김경애 동덕여대 교수 겸 본사 명예논설위원이 참여했다. ■결혼과정 ◇권 후보가 오빠의 친구라던데,어떤 점이 좋았나요. 고종사촌 오빠의 경남고 동기예요.오빠가 서울 우리집에서 대학을 다녀 자연히 친구들이 드나들게 됐고,그래서 만나서 대화도 하게 됐는데 (권 후보가)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이좋았습니다.연애감정으로 바뀐 시기는 잘 기억이 안 나네요.진지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50년대 말 당시에 이미 전쟁고아 등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혼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나중에 친구들과 서클을 만들어서 3∼4년을 계속했지요. ◇청혼은 어떻게 하시던가요. 연애를 하자 친정어머니가 극구 말렸어요.저는 있는 집 딸이고,권 후보는 없는 집 외아들에 홀어머니가 계시니,반대할 이유는 충분하죠(웃음)? 하지만 말리니 더 하고 싶고.헤어지지 못하고 시일이 경과하니 어머니께서 지치신 나머지 이젠 거꾸로 ‘빨리 시집가라.’고 하시더라고요.당시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결혼을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결혼을 하게 되면 단꿈을 꾸기 마련인데요,어떤 꿈을 갖고 있었나요. 당시에도 출세를 지향하지는 않았어요.최선을 다하는 삶에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피차 그런 마음에서 선택했죠.부귀영화를 꿈꾸지 않은 것은 제가 어렵지 않게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결혼에 후회를 한 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지만,근본적으로 되돌아보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다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조금 밉지요(웃음). ◇시부의 좌익 경력에 대해 부인이나 친정은 알고 있었나요. 그 당시 산청이라는 곳의 지리적 여건이 누구나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 그런게 문제되지는 않았어요.아무 생각없는 양민도 당하거나 죽거나 했지요.낮에 오는 사람들은 ‘(빨치산들) 먹을 것 주지 않았나.’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희생되고,밤이 되면 반대 상황이 벌어지고….이쪽이나 저쪽이나 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지리산 주변 동네가 다 그랬지요.결혼한 뒤 시댁의 먼 집안어른들까지 시아버지를 칭찬하시더군요.욕할 데가 없는 분이라고….그것 때문에 결혼을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결혼하고 나선 단점도 보였을 텐데요. 사귈 때는 말 수가 적은 것이 매력이였는데,살다보니 재미가 없어 안 좋더라구요.자상하고 세심한 남편은 아니지만,따뜻한 사람이고 그걸 느낄 수 있게 해요.고통 중에도 지지하고 참고 잘 지내고 있는 것도 그런 때문이 아닌가 해요.집안일은 거의 못하지만 정리 같은 것은 스스로 해요.혼자 밥상을 차려먹기도 하고,식사 후에 찬통을 닫아 냉장고에 넣고 그러지요.좋아하는 된장찌개 생선찌개 요리는 곧잘 합니다. ■가정생활과 자녀교육 - 집 담보로 대출받아 생활 ◇남편의 성격은 어떤가요.독단적인 면은 없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아이들 문제만 해도 조언은 하지만 스스로 충분히 생각했는지만 묻고 결정은 아이들에게 맡기고 또 그에 따라줍니다.저에게도 독재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남편이 회사 그만두고 직장 없이 유학갔을 때 불안하지 않았나요.파리에서의 학비는 어떻게 조달했나요. 그저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지요.일단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학비는 모아놓은 돈 조금으로 해결했고요.특파원 시절 남들은 여행도 휴가 받아서 가고 그러던데,우리는 언제나 12월30일∼1월초 신문 안 나올 때만 기차타고 이웃나라 다닌 게 전부예요.그래서 사진배경이 다 겨울밖에 없어요. ◇자녀교육도 모두 성공하신 것 같습니다만 해외 유학에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데요. 딸은 사위와 함께 서울대 박사과정을다니다 사위가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국의 코널대로 갔어요.그것만으로는 생활이 안돼 고생했는데 딸도 이번에 같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게 돼 별 걱정은 없어요. 아들은 결혼할 때 전세를 얻어주었는데 2년 지나니까 ‘부부가 그동안 번돈하고 융자 2000만∼3000만원을 보태 집을 산다.’기에 ‘잘했다.’고 했죠.당초 건축과를 지망했다가 경제학과를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오전 8시 출근에 밤 12시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염증을 느꼈는지,집을 전세주고 그 전세금을 받아서 하고싶던 공부를 다시 하겠다더군요.프랑스에서 실내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제분과 관련된 보도가 나올때의 심정은 어떠했나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해요.우리사회에 호화 해외유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다만 ‘우리는 아닌데…’ 하는 그런 생각을 했죠.그런 것 일일이 섭섭해하면 안됩니다.병 납니다. ◇부부싸움은 하시는가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한번씩 해야 정든다고들 하잖아요.그러나 남들 하는 그런 식으로는 못해봤어요.풀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안될 뿐 아니라 스스로‘나는 이래야 한다.’는 틀 속에 갇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권 후보가 파리특파원에서 돌아와 노조부위원장 나선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나요. 후보의 삶을 보아왔고,어떻게 살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러지는 않았어요.후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비하면 앞으로 살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 길을 가야겠다.”고 하더군요.그 뜻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반대할 수가 없었죠. ◇당시 기자생활은 유신체제를 유지하는 축으로서의 역할이 있었는데. 양심이 허락하지 않은 글을 요구받을 때 고통스럽고 힘겨워하는 것을 봤어요.하지만 자기 양심에 어긋나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고심했어요.그런 것 때문에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지요.언노련에 있을 때 기성 정당에서 “비례대표 1,2번 주겠다.돈 없는 것 아니까 그냥 와라.” 이렇게 한 적도 있고,“지역구를 주겠다.” “노동부장관을 시켜주겠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후보는 시종 일관된 길을 가는 사람이었습니다.만약 흔들렸다면 나도 지지를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 때 갔더라면 하는 생각은 안해보셨나요. 추호도 없었습니다.농담으로는 해봤죠.‘한번 할 말 하고 나오는 것은 어떠냐.’고.그랬더니 ‘기성 정당으로는 실현하고 싶은 것 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자기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절했다고요. ◇후보께서 술은 잘 하시지요. 한번 시작하면 한도없이 마셔요.기자시절 술 마시는 데 대해 바가지를 긁지는 않았는데,왜냐하면 술마시고 들어오면 ‘나의 사랑하는…’ 뭐 이런 말도 하고,평소 안 하던 애정표시를 하거든요.사람도 부드러워지고 하니 바가지를 긁을 필요가 없었지요. ◇생활은 어떻게 하시나요.수입은 있나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쓰고 있어요.당에서는 일절 월급은 없습니다.국고보조금은 정책개발을 위해 쓰고 당 상근직원과 지구당에만 조금씩 나갑니다.그래도 오늘 세 끼 안 굶으면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가 잘하고 있다면 1만원짜리 당비가 많아질 것으로 믿습니다. ◇후원회를 하면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나요. 지금까지 후원회 해서 들어온 돈은 만져본 적도 없습니다.그 돈은 당에 들어가서 운영자금으로 쓰입니다.당원들이 1만원씩 특별당비를 내는데 쓸 수가 있겠습니까. ■개인생활 - 호스피스로 6~7년간 봉사 ◇이화여중·고에 이화여대를 나오셨는데,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서 미래에 대한 꿈은 무엇이었나요.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습니다(웃음). ◇외국서 오래 사셨는데 외국어는 잘하십니까. 불어는 잘은 못해도 입을 여는 데 겁은 없어요.통하기야 하지요.영어보다는 불어가 더 낫습니다. ◇파리에서 학교는 안 다니셨나요. 사실 그림을 좋아해서 졸업후 홍대 미대를 가고 싶었어요.편입도 가능했지만 기회를 놓쳤는데 프랑스에서 기회가 돼서 청강생으로 미술공부를 많이 했지요.재미 있었습니다. ◇여유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인터넷으로 예약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아니면 (권 후보와) 둘이서 동네 호프집에서 맥주를 잘 마셔요.운동은 대모산에 잘 다녔지만 요즘은 시간도 없고 해서 잘 못가요. ◇후보 부인으로서의 득표활동은. 기성정당의 후보 부인은 득표를 위해 많이 방문하고 다니시더군요.사찰이고 어디고 다니면서 시주도 하고 기부도 하다보면 관계가 다져지는 것인데,그런 돈을 쓸 형편이 안됩니다.그래서 인간적으로 가서 도와드리고 할 뿐이지요.그리고 서울에서는 거의 살림만 하고 지역구인 창원에 집이 있어 1년에 3분의2는 그곳에서 지냅니다.창원에서는 당원모임,여성당원과의 활동,노래패 모임 등을 하지요. ◇이전에 사회활동은 많이 하셨습니까. 호스피스로 6∼7년 봉사했는데 오히려 받은 게 너무 많습니다.죽어가는 사람 만나는데 내 가족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했고,후보가 감옥에 갔을 때도‘숨넘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감옥)안에서 건강하게 잘 있는게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정치관 - 진보정당 길닦는 역할 최선 ◇민노당이 군소정당이라서 생각하는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가 당장 뭔가 이뤄내자는 욕심 거두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좋은 세상 만드는 데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진보정당이 이 나라에서 뿌리내려 보수정당과 함께 의견조율을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봐요.그런 역할을 할 날을 위해 우리는 길 닦는 역할로 끝나도 좋다는 그런 생각입니다.실제로 우리가 주장한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상가임대차보호법,이자제한법들이 우리 당에서 제안해 이뤄진 법들입니다. ◇파리에 살면서 유럽의 좌파로부터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까요? 그런 면도 있을 겁니다.정치는 진보와 보수가 다듬어 나가야 합니다.보수내에서 이 당 저 당 나뉘어서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정쟁으로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민을 생각하고,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펴는 정당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민노당의 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창당된 지 2년된 정당으로서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당입니다.저도 당원입니다.민노당은 분회를 거쳐 지회장에게 보고되고,전국에서 이런 것들이 모여 상부로 취합됩니다.여기서 전문가 토론을 거쳐 정책으로 확정됩니다.민노당의 정책은 그런 과정을 거쳐 개발한 것입니다.저도 당원으로서 마땅히 지지합니다. ◇민노당이 공약으로 내건 ‘10억원이상 재산 보유자 부유세 신설’은 어떻게 보시나요. 처음에는 발표를 잘못했다고 생각했어요.강남 주변에 사는 분 대부분이 집한 채에 예금 몇 억 있으면 보유세 대상인줄 알고 있더라고요.알아보니 실제는 그렇지 않더군요.대상은 상위 2만∼5만명 내외가 될 것이라는 게 공신력있는 연구소의 발표 내용이더라고요.이런 점들을 잘 홍보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어제 TV토론에서 신경써서 전달하려 하더군요. ◇남편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평소 말로 자주 꼬집거나 반대 의사를 냈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꼭 필요할 때만 얘기한다고 생각하는지 제 얘기엔 긍정도 하고 잘 받아주는 편입니다.어제도 TV토론 답변방식에 대해 조언했어요. ◇대선에서의 예상 득표는. 많이 얻어야지요.그러나 당원들이 만족하는 수준이면 저도 만족하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권영길 후보가 돼야 하는지 한마디로 말씀하신다면. 세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사람입니다.원하는 세상 만들어줄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강지연씨는누구 - 재벌 외동딸… 파업현장 자주 방문 권영길 후보의 부인 강지연씨는 재벌집 외동딸이다.동방생명(현 삼성생명)창업주인 강의수씨가 바로 그의 부친이다. 권 후보가 좌익이자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소년기를 보낸 반면,부인 강씨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점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태어난 곳은 경북 영천이지만,초등학교부터 줄곧 서울에서 다녔다. 이화여대 재학 중 고종사촌 오빠의 친구로서 알게 된 ‘대학생 권영길’의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순수하고 좋아,집안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지만 선뜻 결혼을 결정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강씨는 친정으로부터 큰 도움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부친이 암으로 병원에 입원,삼성으로 기업이 송두리째 넘어갔고 재산정리도 제대로 못한 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홀어머니 아래 외아들 외동딸의 결혼이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동시에 모시고 살았다.종교는 가톨릭.중학교 때부터 개신교 학교를 다녀 기독교의 봉사와 겸손의 정신을 일찍이 받아들였다.그러나장손의 며느리로서 제사를 받들어야 했고,문규현 신부가 방북한 임수경을 데리고 들어오는걸 보고 감동을 받아 가톨릭을 ‘선택’했다.물론 권 후보가 가톨릭 영세를 받은 사람이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됐다.종교는 고난을 극복하는 큰 힘이 된다고 한다. 현재 3남매의 자녀 중 장녀 혜원씨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남편과 함께 미국 코널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권 후보가 명동성당에서 총파업투쟁을 주도,당국의 수배를 받는 바람에 장녀 결혼식장에는 강씨 혼자갈 수밖에 없어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혜원씨 부부는 같은 성씨의 동성동본이기도 하다. 또 장남 호근씨는 프랑스에서 건축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으며,차남 성근씨는 서강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결혼 이후 남편의 ‘운동가적’ 풍모를 지켜 보면서 세상의 다른 면을 볼수 있게 된 것이 참 다행스럽다고 그녀는 종종 말한다.실제로 그녀의 외모 어디에서도 재벌집 외동딸의 풍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처음엔 어색하던 각종 집회에도 참여하다 보니 익숙해졌고,나중엔 파업현장 어디도 머리띠를두르고 갈 정도가 됐다고 한다.민노당 열성당원이기도 한 그녀는 요즘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민주노동당과 남편인 권 후보에 대한 ‘긍지’로 가득하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대선후보 부인에 듣는다] (1)노무현후보 부인 권양숙씨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한매일은 종합일간지 중 처음으로 주요 대선후보 부인들의 본격 인터뷰를 포함,특집시리즈를 시작합니다.대선후보들의 인간적 면모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후보 부인들입니다.또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있어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대선후보 부인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후보 평가 요소가 될 것입니다.인터뷰는 대한매일 신연숙(辛然淑) 문화에디터와 본사 명예논설위원인 김경애(金慶愛) 동덕여대 교수가 함께 주관했습니다.게재 순서는 특별한 기준 없이 인터뷰 요청에 응한 시점에 따라 결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통령 후보 부인 권양숙(權良淑·55)씨는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언론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먼저 사진 촬영부터 하자고 하자 “선거운동은 하겠는데 사진 찍는 것은 정말 어렵다.”며 어색해 했다.그러나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를통해 조심스러우면서도 뚜렷하게 생각을 털어 놓았고 안정감 있는 태도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다음은 일문일답. ■남편평가 및 자녀교육 ◆노 후보께선 평소 부인께 60∼70점짜리 남편밖에 안돼 부인이 무섭다고 하던데요. 그냥 평범한 가정이면 남편이 가정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텐데 남편은 지금까지 생활 그 자체가 힘든 선택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가정에 많은 시간을 내거나 인자하고 자상할 여건이 못됐습니다.가족들은 서운할 수밖에 없고,노후보는 항상 그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자기 점수가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실제로 저는 점수를 후하게 안 주는데,아들과 딸은 아버지에게 후하게 줍니다.(노 후보에게는)원군(援軍)이 두 명이 있는 셈이죠.(웃음) ◆자녀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을 보니 노 후보께선 좋은 아버지였나 봅니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아침식사는 꼭 함께 했습니다.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식탁에서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본인 얘기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아이들은 제가 공(功)을 많이 들였는데도제 편이 안되더라고요. ◆부부간에 호칭은 어떻게 하십니까. “여보”“당신”이라고 합니다.처음에는 친구처럼 이름을 그냥 불렀습니다.같이 자랐으니까요.“여보”“당신” 소리가 잘 안 나와서 약간 반말로 ‘어∼’라고 할 때도 있었죠.(웃음) ◆노 후보께선 집에서 가사를 도와주거나 쇼핑을 같이 하는지요. 노 후보가 재야활동을 하기 전에는 저 혼자 나가서 쇼핑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하지만 재야활동을 시작하면서 평범한 삶과 가정을 꾸리기가 어렵더라고요.지금은 거의 못한다고 해야 하죠. ◆노 후보께서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로 비치는데 집안에서 가부장적이거나 그런 여성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노 후보가 여성문제에 보수적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질문도 받는데 사실은 아닙니다.어쩌면 그것은 순전히 제 탓이기도 합니다.제가 활동을 많이 안 하니까 ‘혹시 노 후보가 부인의 사회활동을 못하게 막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는 것이죠.하지만 제 성격이 어려서부터 나서서 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실례로 지난 88년부터저희들 선거만 여섯 번을 치렀는데,저는 후보와 같이 움직이면서도 소리없이 표나지 않게 했습니다. ◆노 후보께서 부인에게 사회활동을 해보라고 권유한 적은 없나요. 결혼 당시 경희대 한의대가 설립 초기였습니다.그때 노 후보가 제게 “한의대를 가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또 다른 쪽으로도 공부를 해보라고 했습니다.그런데 아이는 어리고 항상 다른 식구들이랑 같이 살다 보니까,주부가 제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어렵더라고요.집념과 의지도 있어야 하는데 제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딸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손자·손녀를 봐줄 의향이 있습니까. 아들하고 딸에게 “며느리 될 아이와 딸이 계속 일을 할 것 같은데 내가 다 키워주겠다.”고 했습니다.지금도 허락이 된다면 아이는 키워주고 싶습니다.제가 가장 잘하는 분야거든요. ◆자녀들이 바르게 잘 커준 것 같은데요. 아이들이 아주 밝습니다.특출나게 우수하진 않지만 아이들을 밝게 잘 키웠다고 칭찬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체벌을 한 적은 있습니까.저는 가끔씩 야단을 칩니다.용돈을 끊기도 하고,큰아이의 경우 밥을 먹지 않기에 굶기기도 하면서 버릇을 고쳤습니다.그러나 노 후보는 (아이들을)큰소리로 야단치는 것을 못 봤습니다.그런데도 아이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더군요. ◆시댁 일은 많지 않았는지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아무래도 항상 마음을 많이 쓰고,가능하면 어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했지만,(노 후보가)정치인이 돼 서울에 오고부터는 제대로 못했습니다.노 후보도 (이 점을)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노 후보께서 변호사였을 때는 고소득자였는데,정치인이 된 이후에는 경제적 변화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점수를 못받는 것입니다.(웃음)한번 늘린 것을 줄이는 건 힘듭니다.경제소비 규모도 그렇고,키운 것을 줄이려고 하면 고통이 따릅니다.그렇게 풍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생은 안 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 두 분께서는 “작은 별장을 갖고 멋있게 살아보자.”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그 꿈은 안 이뤄진 셈인데요. 변호사를 계속 했더라면 그런 희망을 남편에게 많이 닦달했을 것입니다.(웃음)그러나 남편이 재야활동에 들어서면서부터 식탁에 앉으면 정치·사회 얘기를 계속했고,저도 들으면서 은연중에 물이 들었나 봐요. ■정치관 ◆노 후보께선 사실상 정치적으로 순탄한 길을 걷지는 못했습니다.좌절의 고비 때 심정은 어땠습니까.남편이 정치를 그만뒀으면 하는 생각은 없었는지요. 처음 시작할 때는 두렵기도 하고,정치하는 분이 주위에 없었기 때문에 제가 좀 반대를 했습니다.그런데 낙선한 이유가 사람의 자질이 모자라서기보다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 가니까 ‘호남당’이라고 안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선거 때마다)‘만약에 이번에 낙선하면 정치를 그만두면 되지 않는가.’란 각오로 선택을 따랐습니다.솔직히 선거에서 떨어지면 나는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웃음) ◆지난번 국민경선에서 노 후보가 승리했을 때 기분은 어땠습니까. 노 후보가 1등을 하리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그런데 경선기간 동안 민주당원들의 마음,노사모의 마음,일반 국민들이 정치권을 바라보는 마음을 보게 되면서 벅찬 감격을 느꼈습니다.‘우리 남편이 정치 개혁에 큰 몫을 하고 있구나.’란 생각 때문에 힘들어도 힘든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노 후보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는데요. 저는 (지지율이 치솟을 때도)인기가 끝까지 최상으로 가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민주당이 보궐선거,지방선거에서 일반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고 노 후보의 실수도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노 후보를 중심으로 한 대선 본 게임이 시작되면 노 후보를 바라보는 마음들이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노 후보의 대선 출마를 만류한 적은 없었습니까. 노 후보는 제 남편이기도 하지만,그 이전에 많은 분들과 이념과 정치성향을 같이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제가 ‘하라,하지 말라’는 생각은 접었습니다.이제는 남편이 결정한 대로 따르고 협조할 것입니다. ◆노 후보의 책 가운데 제목이 ‘여보 나 좀 도와줘.’가 있던데요.남편의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요. 사실은 지금도 책 제목 때문에 “사모님 지금도 안 도와주시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제가 안 도와줘서 도와달라는 뜻으로 제목을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94년 당시 재정이 어려워 책 제목이라도 재밌게 하면 책이 좀 팔릴까 해서 노 후보가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역시 그 예상이 적중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웃음) ◆노 후보에게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집에서 제 별명이 ‘뉴스 중독자’입니다.하루종일 방송뉴스와 신문을 보거든요.노 후보에게 필요하면 스크랩은 아니지만 그날그날 내용을 전하기도 하고,노 후보 관련 기사나 좋은 사설이 있으면 보여주기도 합니다.대중연설 때에는 청중들의 반응을 살펴 전하기도 하고,노 후보의 제스처를 모니터해 주기도 하지요. ◆바람직한 퍼스트 레이디로 육영수(陸英修) 여사를 꼽았는데요.어떤 이미지가 맘에 와 닿았습니까. 우리 국민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육 여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청와대 안의 야당’이고,그 다음 봉사활동 아닙니까. ◆앞으로 퍼스트 레이디가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기본적으로는 남편이 초심을 잃지 않고 국정을 잘 다스리도록 내조를 잘해야 하지만,거기에만 머물러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여러 학자나 여성계에서 제게 모델을 줬으면 고맙겠지만,기본적으로 영·유아 탁아문제,방과후 어린이 프로그램,노인문제 등 약하고 소외된 쪽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노 후보께서 대통령이 된다면,자녀 관리는 어떻게 할 계획이십니까. 노 후보는 제도나 감시보다 문화가 바뀌어야 된다고 말합니다.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대통령 아들에게 생길 것이 없다면 (부정부패의)연결고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다행히 아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출발했고,딸도 그냥 예전대로 직장생활을 할 것 같습니다. ■가정생활 - 가족들 모두 독서 즐겨 ◇가족끼리 평소 즐기는 문화생활은 무엇입니까. 아들이나 남편이나 저나 주로 책을 많이 봅니다.운동도 좋아합니다.등산도 좋아하고….예전에 부산에 있을 때는 제가 수영을 굉장히 잘 했습니다.◇노 후보의 건강을 위해 특별히 챙겨주는 것이 있나요. 별로 없습니다.노 후보는 식사를 안 가리고 골고루 잘 합니다.생활도 규칙적으로 참 잘 합니다.자기관리가 철저한 분이죠.아침 5시면 일어나서 맨손체조하고 과식을 절대 안 합니다.건강의 비결인 것 같더라고요. ◇어려웠던 성장기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요. 자기가 몸소 체험한 부분하고 그냥 밖에서 사물을 봤을 때 하고는 느낌과 판단에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노 후보는 사법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신분은 상류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성장기나 자신의 관심분야는 일반대중의 삶입니다.다른 분보다 대중의 정서와 생활상,어려움을 이해하는 데는 가장 많은 자산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 후보께서 국민경선에 참여한 이후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됐는데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노출되는 느낌이었습니다.본인이나 가족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까지….몰랐던 사실까지 알아내 주고,그런 부분이 힘이 들었습니다.하지만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막상본인의 일이 되니까 견디는 과정이 아주 힘들더군요. 정리 김소연 홍원상기자 purple@ ■권양숙씨는 누구 - 평범한 주부… 독실한 불교신자 권양숙씨는 ‘그림자 내조’를 해온 평범한 가정주부다. 집안은 평범하다 못해 불우한 편이었다.어린 시절 아버지 권오석(權五石)씨가 좌익 혐의로 구속돼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1971년 아버지가 옥사하면서 어머니 박덕남(朴德南·82)씨는 일찍 혼자가 됐다. 권씨는 경남 김해시 진영 대창초등학교,부산 혜화여중을 거쳐 부산 계성여상 3학년 때 중퇴했다.수업료를 못 낼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기 때문이었고,곧 부산서 직장생활에 들어갔다. 노무현(盧武鉉) 후보와는 고향 친구사이로 직장생활 중 할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고향에 갔다가 군에서 막 제대한 노 후보를 다시 만나 연인사이로 발전했다.연좌제를 걱정한 노 후보 집안이 완강하게 반대했으나 두 사람은 2년간 열애 끝에 1973년 결혼식을 올렸다.이때 4년여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고시공부하던 노후보를 도와 함께 합격의 기쁨을 나누게 된다. 슬하에 아들 건호(建昊·30·LG전자)씨와 딸 정연(靜姸·28·주한 영국대사관)씨가 있다.둘 다 미혼으로 권씨 명의로 돼있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 45평짜리 빌라에서 모두 함께 살고 있다. 권씨는 독실한 불교신자다.어려서부터 절에 다니는 모친의 영향으로 불교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다. 김해 봉화산 정토암을 자주 찾았으나 1988년 서울에 올라 온 뒤 삼성동 봉은사,능인선원 등을 가끔 찾는다. 권씨의 언니 창좌(昌左·57)씨는 남편과 일찍 사별했다.남동생 기문(奇文·48)씨는 부산지역 모은행 간부이며,여동생 진애(珍愛·52)씨는 가정주부다. 이춘규기자 taein@
  • 안동 宗宅 나를이/ 옛것이 그리워지는 가을....

    안동의 가을은 종택(宗宅)흙마당에 구르는 낙엽에서 시작된다.곱게 비질한 마당엔 높은 하늘만큼이나 깊은 추녀 그늘이 드리우고,석양에 반사돼 반짝거리는 대청 마루에선 수백년의 연륜이 읽힌다.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는 경북 안동.도산서원 등 이곳 서원들이 선비들의 학문의 장이었다면 종택은 이들의 숨결이 깃든 살림공간이었다.옛것이 그리워지는 가을,수백년 역사의 종택이 모여 있는 안동을 찾았다. 안동에서도 한꺼번에 여러 채의 종택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은 풍천면 하회마을.풍산 류(柳)씨가 대대로 살아오는 전형적인 동성(同姓)마을로,겸암 류운룡,그의 동생인 서애 류성룡 등 조선시대의 대유학자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마을 중심에는 풍산 류씨 대종가인 류운룡 선생의 종택인 양진당(養眞堂)이 자리잡고 있다.임진왜란 당시 건축된 500여년 역사의 종택으로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경북 내륙의 적송을 썼다는 기둥과 대들보가 앞으로도 몇백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단단해 보인다. 양진당이라는 이름은 겸암의 6대손인 류영(柳泳)공의아호에서 땄다.류영공이 이 종택을 크게 중수하였고 문중 족보를 완성한 업적이 커서라고 한다.현재 22세째인 종부가 종택을 지킨다. 양진당은 사랑채·안채·행랑채·사당으로 구성돼 있다.사랑채에서 안채로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으며,이 때문에 사랑채 서쪽은 맞배지붕,동쪽은 팔작지붕이 됐다. 양진당과 골목을 마주한 곳에 자리잡은 충효당(忠孝堂)은 서애의 종택이다.청렴했던 서애는 낙향후 규모가 큰 집에서 살 수 없다며 아담한 집에서 살았는데,그의 사후 손자 유원지가 종택을 지었다.살림살이가 그리 넉넉하지 않아 100여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종택 안에는 서애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물전시관이 있다.서애가 관직을 제수받은 교지들,대표 저서인 징비록,착용하던 관복과 갑옷·투구·가죽신·갓 등을 전시했다. 이곳에는 13세 종부인 박필순(86) 할머니와 14세 종부인 며느리 최소희(74) 할머니가 살고 있다.스무살에 출가해 66년째 종택을 지키는 박 할머니의 요즘 일과는 조각보 만들기.옷짓고 남은 베조각을 바느질로 일일이 연결해 다과상이나 밥상을 덮는 조각보를 만들어낸다. “조각 하나는 쓸모 없지만 이렇게 이으면 귀한 살림살이가 돼요.주한 외국대사 등 외국 귀빈들에게 선물로 주면 아이들처럼 좋아하지요.” 수시로 찾아드는 사람들이 귀찮을 법도 하건만 최 할머니는 손수 차를 내며 “찾는 사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요.”라며 명문가 종부다운 넉넉함을 보여준다.하회마을 입구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북촌댁도 원형이 잘 보존된 종택중 하나다.북촌택은 140여년 전 철종 때 99칸집으로 지었으나 지금은 54칸만 남아 있다. 하회마을 말고도 안동엔 불천(不遷)제사를 모시는 명문 종택만 40여곳에 이른다.불천제사란 4대·5대 봉사에 관계없이 큰 업적을 세운 분을 계속 모시는 제사다. 이들 종택 중에서 조선 중기 지은 임하면 의성 김(金)씨 종택,그 지파의 종택인 학봉종택과 지촌종택,도산면 퇴계 이황의 종택,임동면 전주 류(柳)씨 무실종택 등지가 들러볼 만하다. 안동 임창용기자 sdragon@ ■여행 가이드/ 고택서 묵어야 제격-닭찜·헛제삿밥 별미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빠져야 편하다.34번,916번 도로를 차례로 갈아타고 상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하회마을 입구가 나온다.다른 종택들은 하회마을 반대방향으로 34번 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학봉 종택은 924번 도로로 갈아타고 가다가 오른쪽에 있다.의성 김씨 종택은 34번도로를 타고 임하댐 방향으로 40분 정도 달리면 왼쪽으로 나온다.퇴계 종택은 안동시 북쪽 도산서원 위에 자리잡고 있다. ◇숙박-안동에서는 운치있는 고택에서 묵어야 제격이다.의성 김씨 지파 종택인 임동면 박곡리 지례예술촌(054-822-6661),전주 류씨 집성촌의 고택들인 임동면 수곡리의 수애당(054-822-2590)이 묵을 만하다.수애당은 안동시내에서 가까운 점이,지례예술촌은 접근은 불편하지만 한적한 점이 장점이다.요금은 지례예술촌의 경우 깔끔한 한식 메뉴의 아침·저녁 식사를 포함해 1인당3만원(초등생 이하 2만원)이다. ◇먹거리-안동에선 제사음식을 평소에 만들어 먹는 헛제삿밥,닭을 토막내 고춧가루 없는 양념으로 버무려 찐 안동닭찜,남동 연근해에서 잡은 고등어를 염장 처리해 하룻밤 재운 안동간고등어,안동식혜 등이 유명하다.시내 식당에서 헛제삿밥 정식은 5000원,간고등어 정식 6000원,둘이 먹기에 충분한 닭찜은 1만 2000원에 맛볼 수 있다.대부분의 식당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안동식혜는 고두밥에 무·고춧가루·생강즙·엿기름을 섞어 발효시킨 것으로 약간 매콤하면서 시원한 맛이 독특하다.문의 안동시청 문화관광과(054-851-6393).
  • 꽃자줏빛 진사에 취할듯 - 토정 홍재표 도예전

    계혈(鷄血)또는 꽃자줏빛의 진사(辰砂)를 감상할 기회가 생겼다.1970년대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사를 재현한 토정 홍재표의 도예전이 12일까지 법련사 불일미술관에서 열린다.지난 30년간 진사를 재현해 온 토정의 고희기념 전으로,이번에 진사뿐 아니라 백자 청자 분청사기 등을 모두 전시한다. 진사는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유약으로,산화구리가 녹아 있어 선홍빛을 내는 도자기다.날씨가 좋은 날 장작가마에서 13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내야만 전통의 붉은 색을 재현할 수 있기에 도공으로서 최고의 기량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특히 진사는 통진사(전체가 붉은 도자기)뿐만 아니라 가마 속 불꽃에 의한 변화(窯變·요변)로 인해 다양한 무늬가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붉은 색은 불꽃이 닿으면 휘발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이천에 위치한 이조요에서 구워내는 그의 작품들은 큰 아들 성문(44)씨와 며느리·손자 등 온 가족이 공정을 끝까지 책임진다.(02)733-5322. 문소영기자 symun@
  • 김석수서리 지상청문회/ “장남 86년부터 앓아… 軍 면제후도 치료”

    대한매일은 김석수(金碩洙) 총리서리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10월1∼2일)를 앞두고 증인(11명)·참고인(4명)들에게서 각종 의혹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려고 시도했다.하지만 일부 증인은 청문회에서 자세한 내용을 밝히겠다며 증언은 물론 접촉조차 피했다. ■진단서 발급 이화동씨 1988년 김석수 총리서리의 장남(36)에 대한 병사용 진단서를 작성,병역면제 처분을 받게 한 당시 부산 고려신학대학부속병원 이화동(사진·68·현 밀양병원 신경외과 과장)씨는 대한매일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당시 환자의 상태가 군 생활에 부적격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병사용 진단서 발급 이후에도 김 서리의 장남을 치료한 기록을 보여주는 등 ‘허위진단서 발급’ 의혹을 일축했다.김 서리와는 아들 치료를 계기로 몇차례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김서리 장남은 1985년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88년 병사용 진단서를 제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김서리 장남의 ‘질병’과 관련,병사용 진단서를 발급한 이씨를 처음으로 만나 자세한 경위를 들었다.다음은 일문일답. ◆허위진단서 의혹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88년 병사용 진단서 발급은 뇌컴퓨터 단층촬영의 검사결과를 토대로 정확하게 작성했다. 김 서리의 장남은 86년 7월24일 처음 병원을 방문해 뇌단층촬영 등의 검사를 받았다.당시 심한 두통과 현기증을 호소했고,대인관계도 꺼리는 등의 증세를 보였다.그래서 방사선과 주임교수에게 단층촬영을 의뢰했고,그 결과 ‘○○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간기능검사에서도 간세포성 기능장애가 있었다.그래서 입원을 권유했고,보름 가까이 입원치료를 했다.퇴원한 뒤에도 꾸준히 진료했으며,다음해인 87년 12월11일에 다시 뇌단층촬영을 했는데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다.87년의 뇌단층촬영은 다른 방사선과 의사가 실시했다.나는 검사결과를 토대로 진단서를 발급했고,면제판정은 군의관이 판단했다.환자의 상태로 볼 때 군생활에 부적격하다고 생각한다. ◆몇차례 진료했나. 86년에 입원을 포함,6차례 진료 했고,87년 5차례,88년 4차례 했다.88년에는 위장장애 등으로 4차례의 내과진료도 받았다.이후93년과 98년 각 한차례씩 진료했다. ◆어떤 병인가. 의사 입장에서 병명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다만 군복무가 힘든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그렇다고 수술해서 치료할 수 있는 병도 아니며,꾸준히 치료해야 하는 병이다.그래서 진단서 발급 이후에도 만나 상담을 통해 약처방과 영양섭취,규칙적인 생활 등 여러가지를 조언했었다. ◆김 서리의 장남이 미국에서 주유소를 경영한다는데. 사회생활을 전혀 못할 정도의 병은 아니다.큰 무리를 하지 않으면 단순한 업무는 할 수 있다. ◆김 서리와 친분관계는. 처음 김서리의 장남을 진료할 때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다.이후 치료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당시 김서리는 부산지법에 근무했다.동향도 아니며 같은 학교 출신도 아니다. 밀양 조현석기자 hyun68@ ■투기·탈루의혹·해명 김석수 총리 서리의 신고재산에서 ‘투기의혹’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증인들도 대체로 동의한다.그러나 일정한 벌이가 없는 장남이 미국에서 주유소를 경영하고,현금을 1억 5000만원이나 소유하는 등 편법증여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변호사시절 수임료,삼성전자 사외이사 시절 실권주 매매차익,변호사사무실 근무 둘째며느리의 연소득 신고액 800만원 등도 김 서리가 해명해야 할 대목들이다. 다음은 국회에서 채택한 11명의 증인과 4명의 참고인들의 일부 증언 내용이다. ◆권기호 진주세무서 하동지서장-총리 지명자가 소유한 상속 재산은 당시 상속세 부과대상이 아니었다.1950년대 시골의 논·밭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거의 물리지 않았다. ◆김고산(김 서리 사촌동생)씨-현재 형님(김 서리)의 재산은 선산(3필지 약5정보)과 논(1900여평),밭(4필지 면적 모름)등이다.할아버지 때부터 소유한 재산으로 50년대 큰 아버지 별세 후 형님이 상속했다.현재 형님과 공동소유인 집에 살면서 선산을 돌보고 있다.집은 대지 150평 건평 13평 정도다.밭은 거의 산밑에 있어 농사도 짓지 않는 쓸모없는 땅이다.형님이 나에게 넘겼거나 매매한 부동산은 없다. ◆김연석(하동군 자치행정과장 전 고전면장)-김 서리가 부동산 2개 필지를 상속이 아니라 매입한 것으로 돼 있는 것은당시 관행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몇차례 실시된 특별조치법에 의해 소유권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법무사가 등기원인을 ‘매매’로 기록한 것은 당시의 관행이었다. 농촌에서는 증여·상속·매매 등으로 부동산을 취득하고도 소유권을 이전하지 않고 있다가 특별조치법에 따라 소유권등기를 하는 사례가 많다.총리 지명자도 사촌동생에게 소유권 이전등기를 부탁하고 동생이 법무사에게 의뢰,소유권 등기를 하는 과정에서 매매로 기록됐을 가능성이 있다.부동산 가액이 변변치 않아 상속세나 증여세 부과대상이 안 된다.소유권 이전과정에서 등록세와 취득세가 부과됐을 것이다. ◆이선종 삼성전자 경리팀장-(김서리가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실권주를 받아1억 1355만원의 시세차익을 본 경위 등을 물으려 했으나 접촉을 거부함) 삼성전자 홍보팀 김광태 상무는 “국회에서의 증언으로 족하다.국회에서의 답변이 어떻게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론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며 증언거부 사유를 밝혔다. 하동 이정규 김미경기자 jeong@
  • [男男女女] 딸같은 며느리?

    “나는 항상 며느리와 딸처럼 지내려고 생각해 왔다.” 결혼을 앞둔 나에게 시어머님 되실 분이 다정하게 말씀하신다.아들만 둘을 둬서 적적하셨다는 어머님은 사근사근한 며느리를 맞을 꿈에 부풀어 계신 듯하다. 갑자기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나는 엄마에게 과연 어떤 딸이었을까? 지난 2월 카드값 막아야 하니 100만원을 달라고 무턱대고 엄마를 졸랐다.그런가 하면 엄마 생신에는 10만원짜리 선물을 사면서 내 생일에는 스스로 20만원짜리 구두를 골라 신는다.직장 생활한 지 3년이 넘었지만 동네 가게에 심부름이라도 갈라치면 엄마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부모께 드리는 용돈? 가끔 기분 좋으면 차에 기름 넣어 드리는 것이 전부다. 시어머님께도 이런 엄마 노릇을 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시어머님이 원하는 딸 같은 며느리란 어떤 모습일까? 예비신랑에게서 들은 말을 요약해 보면 무뚝뚝한 아들 대신 때때로 안부전화를 드리는 상냥한 말동무,집안의 대소사 때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듬직한 일꾼,맞벌이를 하면서도 신랑에게 따끈한 아침밥을 챙겨주는 헌신적인 주부,명절 때는 모든 음식을 척척 만들어내는 요리사를 ‘딸 같은 며느리’라고 생각하시는 듯하다.그러나 나는 이런 ‘슈퍼우먼’ 딸 노릇을 할 자신이 없다. 이렇게 동상이몽을 꿈꾸는 인공적인 모녀 관계는 애초부터 성공하기 어렵지 않을까.고부 관계는,‘아들’과 ‘남편’이라는 1인2역을 하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맺어진 사회계약적인 관계다.가족이긴 하되 중간다리인 ‘그 남자’가 없으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운이 좋아 서로 마음에 맞으면 친근한 사이가 될 수 있지만,가령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사이가 된다고 해도 누구의 잘못은 아니다.‘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새로 가족이 된 고부가 모녀처럼 특출나게 다정해야 한다면,그 중압감은 상대에게 지나친 기대감을 갖게 할 수 있다.나아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 급격히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다. 고부 사이가 가족으로 거듭나려면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다음 서로가 익숙해질 때까지 참아내야 하지 않을까? 딸 같이 지내자는 말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시어머님은 못내 서운하신 듯하다.그러나 나는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만 말한다. “어머님,우리 엄마가 그랬듯 30년 가까운 애증의 세월을 감당하면서까지 저를 딸로 삼을 준비가 되셨나요,정녕?” 이송하기자
  • 종교단신/ 제2차 고부학교 개설 外

    ■원불교 여성회는 오는 30일부터 새달 14일까지 월·수요일 서울 신내동 유린원광 사회복지관 3층 강당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역할을 학습하는 ‘제2차 고부학교’를 연다.시어머니반 50명,며느리반 50명을 모집하며 참가비는 1만원.(02)-438-4011∼2.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28일 오후2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민족화해 토론회를 개최한다.원주교구 김진형 신부의 ‘민족화해를 위한 교회의 공헌’,서울평신도사도직협의회 민족화해위원회 윤갑구 위원장의 ‘인터넷 화해소’주제발표와 공개토론으로 진행된다.(02)777-2013.
  • 남과여/ 장·차남들의 ‘속앓이’ - 장남 마음 너희들이 알아?

    대한매일 새 기획면 ‘남과여’가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 신설된다.‘남과여’는 최근 급변하고 있는 남녀의 성(性)의식과 결혼관,가족제도의 변화등을 21세기 개인의 행복추구 관점에서 조명한다.특히 이혼과 재혼율이 급증하는 사회현상의 이면을 분석,삶의 방식에 대한 다양한 읽을거리와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장남과 밑의 남자형제들간에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장남과 맏며느리는 “옛날처럼 곳간 열쇠를 물려 받지도 못했는데 책임질 일은 조선시대 수준”이라고 불평이다.부모 모시기를 비롯해 집안 대소사를 치르는 부담을 남동생들과 나누자는 것이다.그러나 남동생 부부들도 할 말은 있다.“혜택은 가장 많이 받고 자랐으면서 정작 ‘장남 의식’은 희박해 우리가 덤터기를 쓴다.”고 아우성이다.할 말 많은 우리시대 장·차남의 서글픈 자화상을 들여다 보자. 2남1녀의 장남인 강철민(34·회사원·경기도 성남시,이하 가명)씨는 요즘 일찍 퇴근해 부인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부인이 전업주부인데도 설거지·청소를 하고 주말에는 외식으로 비위를 맞추고 있다.이유는,지난해 가을 결혼한 남동생이 이번에는 추석 전날이 아니라 당일 아침에 오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직장을 가진 제수가 추석 전날 당직이라서 오기 힘들다고 했다.부모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둘째 며느리를 감싸고 돌았다.강씨의 부인 역시 결혼한 뒤 2년 정도 직장을 계속 다녔지만 명절이나 제사때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가로 향했다.따라서 그녀로서는 추석날 아침에야 오겠다는 동서가 달가울 리 없는 것이다.강씨는 “지금까지 아내가 불만을 말해도 이해하기가 솔직히 힘들었는데 제수씨가 들어 오니 새삼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두고 장남에겐 애환이 중첩된다.형편이 어려워도,말 못할 사정이 있어도 ‘장남의 도리’라는 무거운 책임이 항상 어깨를 누른다.그래서 명절에는 특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장남이 늘고 있다. 2남2녀의 맏이인 박경수(38·회사원·서울 마포구)씨.홀로 대구에서 사시는 어머니가 병환이 나자 형제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생겼다.박씨만 서울에서살고 다른 형제는 모두 어머니집 근처에 모여 살지만 막상 어머니가 편찮자 “서울의 병원이 좋다.”는 핑계로 박씨에게 모셔가기를 바랐다.박씨는 “어머니가 누나 둘의 아이들을 키워주시는 등 남다르게 가깝게 지내셨는데 이럴 때만 장남을 찾는 것이 속상하다.”면서 “큰 아들이지만 재산상속이나 다른 면에서 특별 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여동생만 둘인 김경호(34·자영업·서울 성동구)씨는 무남독녀와 결혼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결혼 전에는 부모가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것이냐면서 1년 넘게 반대했다.처가는 처가대로 “우리는 딸 하나뿐이니 아들 노릇을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두 집에서 맏아들 노릇을 하자니 답답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설이나 추석 전날에 본가인 부산에 갔다가 차례를 물리자마자 처가인 강원도로 발걸음을 돌린다.그나마 시집간 두 여동생이 명절 오후에 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부산과 강원도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면 힘이 빠지지만,조금이라도 힘든 기색을 비치면 부인은 “음식장만도 안하면서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면박을 준다. 그는 “벌써 4년째 명절마다 전국을 헤매고 다니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면서 “맏이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라고 털어놓았다. 이 시대 맏아들들은 말한다.“아우들아,너희가 장남을 아느냐?” 이송하기자 songha@ ■“차남도 할말 있다구요” 김유철(34·회사원·서울 서초구,이하 가명)과장은 이번 추석에도 ‘장염에 걸린’아내를 병원에 입원시킬 예정이다.김과장 부인은 명절 때만 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며 가슴이 답답한 ‘명절증후군’에 시달리지만,사실 장염은 아니다.‘멀쩡한’부인을 입원시키는 이유는 같은 동네에 사는 부모와 형 부부의 따가운 시선 때문.‘나쁜 며느리’로 낙인찍히는 대신 ‘병약한 며느리’를 택했다.이 해프닝은 사실 한살 위인 형과 형수 탓에 벌어졌다. “형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책임감같은 ‘장남의식’은 늘 부족했다.결혼도 차남인 내가 먼저해 형 대신 5년간 집안 대소사를 다 치렀다.형은 2년전 결혼했는데 이번에는 직장다니는 형수의 뒷수발까지 아내가 떠맡았다.아내의 불평을 들어 보면 내가 생각해도 너무해 지난해 추석부터는 아예 병원에 보낸다.” ‘맏 아들·며느리는 천형’이라는 한탄이 드높지만 ‘장남같은 차남’과‘맏며느리같은 둘째(또는 셋째)며느리’의 불평불만도 이처럼 위험수위에 다다랐다.장남으로서 특혜는 챙기고,책임은 동생에게 떠미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이다. 둘째 며느리인 이혜영(40·주부·경기 성남시)씨는 얼마전부터 교회에 다닌다.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시부모가 장남 집을 놔두고 자신의 집으로 제사를 가져오려 하기 때문이다.이씨는 “큰 댁이 집살 때 시부모님들이 논 팔아서 1억원을 보태주셨다.우리가 집살 때는 차남이라고 외면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차남 집으로 제사를 모시겠다면 어쩌냐.”며 고개를 외로 꼰다. ‘아들 있음’도 장·차남 갈등의 원인이다.‘무조건 둘째에게 시집가라.’는 친정어머니의 성화로 둘째 며느리가 된 배경진(35·교사·서울 양천구)씨.그는 첫째는 아들,둘째는 딸로 ‘골라’낳았다.시집에서는 장남이 딸 둘만 낳고 더이상 아기를 갖지 않자,명절 제사를 아들이 있는 배씨네 집으로 옮겨 모신다.배씨는 “장남과 맏며느리가 미안한 마음도 없이 차남에게 덤터기를 씌운다.”고 울상이다.그는 “제사를 가져 오면 시부모님도 모셔야 되는데,아들 낳은 게 죄냐.”고 반문한다. 부모의 ‘편파적인’사랑 역시 분란의 씨앗.차남 김종진(33·큐레이터·경기 성남시)씨는 “최근 아내가 ‘어머님께서 맏며느리만 예뻐한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가슴 아파했다.자라면서 형을 더 챙기는 집안 분위기에 상처를 받은 그로서는 부인의 말이 칼날처럼 가슴을 그은 것이다.차남이나 둘째며느리도 장남처럼 부모를 잘 모시고 싶지만,부모가 ‘그래도 장남이지.’하는 태도를 보여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장남도 힘들겠지만,차남은 차남대로 할 말이 있다.“형님,필요할 때만 장남 노릇 합니까?” 문소영기자
  • [오늘의 눈] 여성근로자 외면하는 노동부

    노동력이 귀하던 시절 우리 여성들은 출산을 하고도 삼칠일(21일)이 채 되기도 전에 몸을 털고 일어나 들일을 나가곤 했다.당장 끼니걱정을 해야 하는 판에 몸조리를 한답시고 마냥 누워 있다간 목구멍에 풀칠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또 잠시라도 누워 있으면 구박을 해대는 시어머니가 무서워 부기도 안 빠진 몸을 이끌고 일어나야 했다.하지만 여권이 향상된 현대사회에서는 출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사회의 공동 관심사가 됐다.따라서 현대의 모든 국가는 출산을 사회적 공동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는 최근 여성근로자들,특히 출산한 여성근로자들의 권익을 나몰라라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아 빈축을 사고 있다. 노동부는 얼마전 육아휴직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여성근로자들을 위해 매월 20만원의 탁아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육아휴직제도가 뿌리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어차피 휴가를 못갈 바에야 탁아수당이라도 받아 가라는 설명이다. 임신 9개월의 민주노총 한 여성간부는 10일 만삭의 몸을 이끌고 국회 앞에서정부의 모성파괴 행위를 규탄하는 1인 시위에 들어갔다. 기업체가 근로자에게 분유값도 안되는 탁아수당 20만원을 주고 육아휴직을 대신하게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노동계는 정부가 이러한 여성근로자들의 피눈물나는 현실을 몰라준다고 성토했다. 노동부의 발상은 ‘모성보호’ 의지를 의심케 한다.대부분의 여성들이 일하는 30명 미만 기업체의 주5일 근무제 시행시기를 못박지 않은 주5일 근무제입법안도 마찬가지다. 노동계는 정부가 주5일 근무제를 서둘러 입법하기 위해 여성근로자들의 권익을 희생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노동부는 이러한 의혹을 털기 위해서라도 여성근로자들의 권익을 위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노동부가 정녕 ‘삼칠일도 안돼서 며느리를 들일 내보내는 시어머니’가 아니라면 말이다. 김용수 사회팀 차장 dragon@
  • “남편을 돈버는 기계로 취급 부인의 20년구박 이혼사유”

    20년 넘게 아내로부터 ‘무능력자’라는 타박을 들으며 돈만 많이 벌어올 것을 강요받던 남편이 법원의 힘을 빌려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9단독 홍이표(洪利杓) 판사는 8일 ”아내가 남편을 한 가정의 가장보다는 돈을 버는 사람으로만 여기고 며느리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서 “아내가 남편이 참기 힘든 모욕적인 말과 행동을 해왔고 남편도 다른 여성을 만나 두 사람의 혼인관계는 더 이상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이혼을 판결했다. 남편 A(50)씨가 아내 B(48)씨를 만난 것은 지난 79년.명문대 출신으로 대기업 임원까지 지낸 A씨는 외관상 능력있는 가장이었지만 아내의 등쌀이 거세지면서 ‘고개숙인 남자’로 전락했다. 91년 A씨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병치레를 하던 어머니를 모실 것을 권유하자 아내는 “시어머니를 집에 데려오면 집 밖에 내놓겠다.”고 거부해 동서들과 심한 불화를 겪어야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
  • 여성공무원 ‘성공요인’ ‘장애요소’ “”업무능력”” “”性차별””/중앙인사위 5급이상 30명 조사

    여성 공무원들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남성 중심적인 행정문화가 관리직 공무원으로 성공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앙인사위원회가 지난달 중앙부처 5급 이상 관리직 여성 공무원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면접 조사 결과 드러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성 공무원들이 관리직 공무원으로 성공하는 데 가장 크게 느끼는 장애요인으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차별 문화’라고 답한 응답자가 41.7%로 가장 많았다.다음은 일과 가정의 업무를 병행하는 어려움(15.5%),네트워크나 정보의 부족(11.9%),홍일점의 수난(11.9%),보직·승진에서의 불이익(9.5%) 등의 순이었다. 여성 공무원들은 여전히 여자라는 이유로 민원업무나 문서수발,차대접 등 보조업무에 치중해 있거나 남성 중심의 ‘인맥문화’에서 제외돼 업무협조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도 조사됐다.또 육아를 중심으로 한 가사부담,친·인척 경조사 챙기기,며느리로서의 역할 수행 등이 직무에 몰두하는 데 지장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여성 공무원들중 관리직 공무원으로 성공한 요인을 묻는 질문에는 업무능력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30.8%로 가장 많았고,다음은 민주적 인간관계(12%),갈등 대처능력(11.3%),여성의식(7.5%),자기주장(6.8%),가족의 전폭적인 지원(6%) 등의 순이었다. 중앙인사위 관계자는 “현재 여성 관리직 공무원의 비율이 4.7%에 머물고 있어 여성관리자의 리더십과 관리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하다.”면서 “2006년까지 여성 관리직 공무원의 비율을 10%로 끌어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종락기자 jrlee@
  • “수해 아프지만 北딸 만나야죠”13일 이산상봉 수해민들

    “가슴에 묻었던 딸을 만날 생각을 하면 수해(水害)의 아픔도 견딜 만합니다.” 오는 13일로 예정된 제5차 이산가족 금강산 상봉에서 큰딸 최순옥(71)씨를 만나는 최승규(93·여·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씨는 지난달 30일 물난리를 당해 강릉시 교동의 둘째 아들 집으로 피신했다. 최씨가 사는 지변동 아파트 일대 주민들은 근처 죽헌저수지가 불어난 물로 붕괴 위험에 직면하고 식수와 전기마저 끊기면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안전한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큰며느리 김구경(64)씨는 6일 “어제 저녁에 전기는 들어왔지만 아파트 승강기가 작동하지 않고,수돗물에서 기름이 뜬 흙물만 나온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흔이 넘은 최씨는 “순옥이를 만나면 옥반지를 선물할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최씨는 농사를 지으며 힘들게 5남매를 키웠으나 아직까지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 걸어다닐 정도로 정정하다. 최씨는 6·25때 강릉여고 졸업반이었던 큰딸이 어느날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자 난리통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여기고 체념했다고 한다. 50년세월을 훌쩍 뛰어 넘은 큰딸의 얼굴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애미 닮았는데 당연하지.”라며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걱정”이라고 말했다.최씨는 “TV에서 이산가족 상봉 장면만 나오면 누이를 생각하며 눈물짓던 큰아들이 지난해 진폐증으로 눈을 감은 것이 원통하다.”며 혼자된 며느리 김씨의 두 손을 꼭 쥐었다. 강릉 연곡면에서 농사를 짓는 김준래(金俊來·73)씨도 이번 수해로 논이 물에 잠기고 집이 파손됐지만 큰형 항래(恒來·78)씨를 만날 생각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큰형은 6·25때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김씨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어 명절 때마다 밥을 차려놓고 형을 기다렸다.”면서 “10년 전 돌아가신 부모님이 얼마나 보고싶어 했는지 모른다.”고 울먹였다.그는 엄청난 수해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형과 헤어진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고 있다.”며 날짜를 꼽았다. 강릉 구혜영 윤창수기자 geo@
  • TV 시청률 순위 / ‘인어아가씨’ 5주째 1위

    MBC 일일연속극 ‘인어아가씨’가 5주째 시청률 순위 정상을 차지하며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SBS ‘야인시대’ 역시 지난 주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며,KBS ‘태양인 이제마’가 뒤를 바짝 추격한 순위는 지난 주와 차이가 없다. 다만 그동안 20%의 시청률을 넘지 못했던 KBS2 ‘내 사랑 누굴까’가 5위로 뛰어올라 눈길을 끈다.극중 윤다훈·이승연 커플이 결혼에 골인한 뒤 며느리(이승연)와 시할머니(여운계)의 갈등구조로 바뀌면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한 것이 인기상승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송하기자 songha@
  • “법이냐 情이냐”손녀 양육권 다툼 친가 판정승

    부모를 잃은 손녀들에 대한 친가와 외가의 갈등으로 빚어진 양육권 다툼에서 법원이 친가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00년 암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여읜 A(11)양 자매는 외가에서 살게 됐다.양쪽 집안은 친가가 법정 후견인으로,외가는 아이들의 양육문제를 맡는 것으로 합의하면서 아이들이 번갈아 양쪽을 오가도록 했다.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자 친가는 “법정 후견인인 우리가 외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데려가겠다.”며 외조부인 B(64)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외가쪽은 “사돈이 평소 A양 부모에게 돈을 요구했고 며느리도 구타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반면 친가는 “생전에 우울증을 앓았던 아이들의 어머니를 구타한 것은 외가”라고 반박하는 등 양가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서울지법 민사합의42부(부장 趙秀賢)는 30일 “A양 자매가 어린데다 외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 외가에 남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구를 무조건 인정하기가 어렵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93세 김승규 할머니 사연, “50년만에 만날 딸… 눈물만이”

    “생전에 딸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다음달 제5차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큰딸 최순옥(71)씨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김승규(93·강원도 강릉시 지변동 덕원아파트) 할머니는 큰딸과 헤어진 6·25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김 할머니는 아흔이 넘은 고령에도 기억력이 좋고 건강한 편이지만 치매증세에 청력도 떨어져 가족들은 할머니의 소원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바라왔다. 그러던 지난 2000년 북한의 최씨가 뜻밖에 상봉 신청을 해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고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만남을 학수고대했다.하지만 번번이 만남에서 누락되자 “살아서는 못 만날 것 같다.”며 기력을 잃어갔다. 며느리 이정숙(48)씨는 “어머니가 방송프로그램인 ‘TV는 사랑을 싣고’를 시청할 때마다 ‘왜 내 딸은 찾아주지 않느냐.’고 매번 물을 때 가장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만남이 성사된다 해도 어머니가 치매증세로 큰딸의 얼굴을 알아나 볼지도 걱정이란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
  • 병풍대치/반격 나선 민주당/추가폭로 ‘맞바람’

    민주당은 병풍(兵風) 논란과 관련한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정권퇴진운동 등에 맞서 ‘각개약진’식의 무차별 반격에 나섰다.민주당은 특히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5대 의혹’에 대한 단계별 추가폭로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23일 국회 대표실에서 ‘5대의혹 진상규명특위 전체회의’를 갖고 5개 소위별 활동상황에 대한 중간보고를 받고 사안별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5대 의혹은 ▲두 아들의 병역비리 및 은폐의혹 ▲97년 대선 때 국세청 동원,불법 모금 의혹 ▲95년 지방선거와 총선 때 안기부 예산횡령 의혹 ▲지난해 최규선의 20만달러 수뢰 의혹 ▲호화빌라 및 며느리의 원정 출산문제 등이다. 이 중 병역의혹은 수사책임자인 서울지검 박영관(朴榮琯) 특수1부장의 유임에 따라 “의혹을 계속 제기하되 수사진행을 지켜보자.”고 방침을 정했다. 민주당이 그 다음으로 거세게 몰아 붙이는 사안은 호화빌라 및 며느리의 미국 원정출산 문제다.배기선(裵基善) 기획위원장은 “형사처벌을 못할지라도 지금은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이 후보가 ‘탈법·불법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집단 또는 개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세풍문제’도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민주당은 22일 이 후보의 서울 가회동 빌라에 대한 뇌물 구입설을 제기했고,이 후보의 군복무 시절 특혜제대 문제를 거론했다.23일 한나라당 의원들의 검찰 청사앞 시위를 불법집회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한나라당과의 공방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도 이날 병역비리와 관련,“범죄도 나쁘지만 그것을 은폐하는 것은 더 나쁘다.”고 거들었다. 배기선 위원장은 “공식논평 발표도 중량감을 주기 위해 사안에 따라 이낙연(李洛淵) 대변인뿐만 아니라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민주당측의 빌라 의혹 제기에 대해 “사실이 아닌 내용을 재탕하고 있다.”고 일축했다.민주당 일각에서도 “가뜩이나 국민들이 최근 정치공방에 진절머리를 내는데 무차별식으로 상대편 약점을 들추는 것은 더욱 외면받는 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동영(鄭東泳) 상임고문은 최근 “정치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면 결국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씨줄날줄] 만경봉호

    부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의 사기를 북돋워 줄 응원단이 만경봉호(萬景峰號)를 타고 온다고 한다.취주 악대와 예술인 등 350명을 태우고 대회가 열리는 부산항에 정박해 대회기간 동안에는 응원단들의 숙소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만경봉호는 청진 선적으로 1971년 8월 첫 취항해 원산과 일본의 니가타(新潟)항을 거의 정기적으로 운항한다.길이 102m,폭 14m의 3500t급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화물선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만경봉호가 단순한 화물선으로 인식되지 않는다.조총련 동포의 조국 방문단을 운송한다는 핑계로 일본을 오가며 조총련과 무언가를 은밀히 주고 받는 루트라는 느낌을 준다.민족의 통합보다는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분열을 조장해왔다는 것이다.일본을 30년 넘게 오가며 4만명에 가까운 북한 방문단을 실어 날랐다지만 그러나 북송된 동포들은 아니었다.1959년 12월 975명이 북송선을 탄 이래 10만명 가까이가 북한으로 갔지만 지금껏 바깥 세상 구경 한번 못하고 있질 않은가. 엊그제 순종식씨 일가가 20t짜리 목선을 타고 사선을 넘어 북한을 탈출해왔다.남녘의 동생들이 눈에 시려 남행을 결행했다고 한다. 북에서 얻은 금싸라기 같은 5남매와 손자들을 파멸로 몰아 넣을 수도 있는줄 알았지만 혈육의 정을 어쩌지는 못했다.그러나 극적인 이산의 극복은 또하나의 이산을 잉태했다.노동당 간부의 딸인 둘째와 셋째 며느리를 따돌리고 왔다고 한다.둘째와 셋째 아들은 아버지의 만남을 위해 아내와 생이별을 해야 했고 그리고 4명의 아이들은 어머니와 또 헤어져야 했다. 만경봉호가 우리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입항할 부산항은 지금부터 반세기 전 흥남 부두를 떠났던 피란민들이 첫발을 디딘 곳이기도 하다.바로 그 사람들을 맞이했던 부산항에 그들을 떠나 보냈던 사람들이 온다.만경봉호의 부산항 입항은 만남의 가교를 놓으려는 몸짓일 것이다.과거의 헤어짐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일 것이다.그러나 과거의 이별을 치유하면서 지금에 뿌려진 이산은 외면하고 있다.부산항에 오는 만경봉호는 순씨의 8살 손녀와 11살 손자의 엄마를 태우고 와야 한다.북한이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요,만경봉호가 검은 그림자를 지우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정인학/ 논설위원
  • 南北 ‘독도’ 공동호소문, ‘통일대회’오늘 학술토론회…일부일정 논란

    남과 북의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8·15 민족통일대회가 15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서울에서 개막돼,민족단합대회와 각종 예술공연 등 일정이 치러졌다. 남북 대표단은 16일 ‘독도의 영유권 수호와 일본의 과거청산을 위한 우리민족의 과제’란 제목의 학술토론회를 갖고,독도 문제와 관련한 남북 최초의 ‘공동호소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앞서 양측 대표단 530여명은 15일 오전 서울 워커힐호텔 잔디밭인 ‘제이드가든’에서 개막식과 민족단합대회를 잇따라 열고 공동호소문을 채택했다. 북측 최휘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비서와 남측 은방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이 번갈아가며 낭독한 공동호소문에서 양측은 “6·15공동선언이야말로 민족이 화해하고 단합하여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치”라며 “우리들은 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6·15선언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사를 거듭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측 최 비서가 낭독한 “남과 북의 통일운동단체들은 금강산에서 청년통일행사는 9월7일부터 8일까지,여성통일행사는9월12일부터 13일까지 진행하기로 하였으며 10월3일 개천절을 비롯한 여러 계기들에 해당 단체들 사이에 통일행사를 진행해 나아가기로 하였다.”는 부분을 놓고 행사후 양측간 논란이 일었다. 남측 대표단은 “날짜를 명시하지 말고 ‘9월 중 개최’라고만 발표키로 개막식 직전에 합의했는데,북측이 일방적으로 북측 초안대로 낭독했다.”고 북측에 항의했다. 이후 사진·미술전 개막을 앞두고는 북측이 준비한 일부 사진과 캡션(사진설명)이 김일성 주석과 북한 체제를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남측이 이의를 제기,작품을 선별해서 전시하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이날 오후 북측 여원구(呂鴛九·74)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은 워커힐호텔에서 부친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의 동생 운홍(74년 작고)씨의 며느리와 손자 등을 만났다. 김상연 박록삼기자 carlos@
  • 일요영화/ 올가미 등

    ●올가미(MBC 밤12시25분)= 고부간 갈등을 소재로 한 스릴러.‘손톱’‘세이 예스’등을 만든 김성홍 감독의 1998년작.최지우가 주연했다.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유별난 시어머니를 ‘올가미’로 지칭하는 은밀한 유행어를 낳았다.남편과 일찍 사별한 진숙은 아들 동우를 각별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어느날 동우에게 결혼할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안 그는 배신감을 느낀다.결혼 후 진숙은 동우의 눈을 피해 며느리인 수진을 괴롭히고,참다 못한 수진은 집을 나간다. ●딥 블루 씨(SBS 오후11시40분)=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상 연구소인 아쿠아티카에서는 상어를 이용해 인간의 손상된 뇌 조직을 살리는 방법이 연구 중이다.그러나 연구결과에 집착한 연구진은 상어 유전자를 불법으로 조작하고 상어는 지능이 높은 살상무기로 변하는데….‘클리프 행어’‘다이하드2’‘드리븐’을 만든 레닌 할린 감독의 1999년작. ●첩혈쌍웅(KBS1 오후11시20분)= 우위썬 감독이 연출하고 저우룬파가 주연한 홍콩 누아르.‘영웅본색’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우위썬 감독 특유의스타일이 이 영화를 통해 완성됐다.특히 교회에서 벌어지는 총격 신과 하늘을 가르는 비둘기떼가 보여주는비감 어린 장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살인청부업자인 샤오좡은 술집에서 청부업자 일당을 없애다가 실수로 술집 가수인 제니의 눈을 다치게 한다.제니는 각막이식 수술을 해야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샤오좡은 죄책감에 제니 주위를 맴돌다가 치한들로부터 제니를 구해주고 가까워진다. 이송하기자 songha@
  • [임영숙칼럼] ‘명예남자’의 고백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김은국(미국명 리처드 김)씨가 오래 전 귀국했을 때였다.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새 작품 ‘잃어버린 이름’을 발간한 후 뉴욕타임스의 서평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뉴욕타임스의 서평이 ‘한국작가 리처드 김’으로 시작됐습니다.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스스로 미국작가라고 생각했어요.영어로 쓴 소설 ‘순교자’로 미국에서 작가가 됐고 계속 그곳에서 활동했으니까요.”‘한국작가 리처드 김’이라는 표현이 쇠망치처럼 그를 강타했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한국인은 한국인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를 이해하게 된 것은 내 자신이 ‘명예남자’였음을 깨달은 이후였다.부장으로 승진하고 자청해서 야근을 하고 나자 사보에 원고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지금은 신문사에서 여기자들의 야근이 당연한 일이지만 10여년전 서울신문 사보는 여기자가 야근을 한 것을 화제거리로 삼았던 것이다.조간신문 부장들은 매일 야간국장 역할을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에 부장이 됐으면 당연히 야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사보 원고 청탁을 받고서야 김은국씨를 뒤늦게 이해하게 됐다.미국 시민권을 지닌 그가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듯이 나는 기자인만큼 동료 남성기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남성이 주류인 기자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여성임을 망각하고 ‘명예남자’가 됐던 것이다.그러나 나는 ‘기자’가 아니라 ‘여기자’라는 엄연한 현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첫 여성총리가 탄생하려다 사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직도 ‘명예남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다시 본다.주류 남성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보는 것이 안전하다는 오랜 경험에 따라 그냥 침묵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실제로 장상 총리서리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던 한 여성은 이같은 ‘명예남자’의 시선에 한숨을 내쉬었다.국회의원들의 일방적인 몰아붙이기와 답변봉쇄 등 청문회의 문제점을 여고동창 모임에서 이야기했더니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친구들이 우정어린 충고를 했다는 것이다.“(장상씨를)옹호하고 싶어도 분위기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너무 열 내지 않는 게 좋다.”고. 한 여성정치학자도 이 문제가 정치권의 극한 대립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계급갈등,진보와 보수의 대립,여성권한 척도 세계 최하위권인 여성지위,이화여대라는 ‘여성 권력’에 대한 반발 등 많은 파장을 드러낸 흥미로운 연구주제라면서도 지금 그에 관한 글을 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언론과 청문회에 비쳐진 장상씨는 병역기피,이중국적,친일,위장전입,부동산투기 등 이른바 기득권층의 일반적인 문제를 두루 지닌 흠결 많은 인물이다.그러나 청문회가 끝난 후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이 “각종 의혹에 의심이 갔지만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었다.”고 말했듯이 그 흠결이 총리로서의 치명적인 결격사유는 아니었다. 내가 듣고 아는 장상씨는 오히려 훌륭한 여성지도자다.최소한 그를 단죄한 국회의원들보다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그는 사과궤짝을 책상 삼아야 했을 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출중하게 자라 명문여대의 총장이 됐고,서로 어른을 안모시려고 하는 요즘세태에 보기 드물게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장애인 아들을 키웠다.그가 월급봉투와 가사를 전적으로 시어머니에게 맡겼고 시어머니는 일하는 며느리를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을 주위사람들은 다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의 해명을 전혀 납득할 수 없었을 뿐더러 불쾌해했다.그가 솔직하지 못하고 늙은 시어머니나 비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청문회에서 도덕성에 대한 의혹을 명쾌하게 씻어내지 못한 게 그의 치명적인 잘못이다.시어머니나 비서가 한 일이라 할지라도 자기 책임으로 인정하고 사과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청문회를 지켜본 여성들은 말한다.“남자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다.”“여성 최고 지도자라도 남성세계에선 비주류일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 장상씨의 실패는 우리 여성들이 남성들이 만든 게임의 규칙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남성 중심 사회에서 ‘명예남자’가 되지 않으면서 남성의 규칙을 어떻게 익히고 활용할 것인가.여성의 머리 위에 있는 ‘유리천장’을 뚫고자 하는 이들이 해결해야 할 어려운과제다. 임영숙/ 미디어연구소장y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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