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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화사회 2題] 노인학대 “아들 더 무섭다”

    지난해 11월 전남의 한 농촌 마을에 걸식 노인이 있다는 신고가 이곳 노인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됐다. 신고를 접수한 직원이 현장 조사를 한 결과 이 노인은 아들(55)의 폭행과 학대를 못견뎌 가출, 인근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기거하며 구걸로 생계를 잇고 있는 J(89·여)씨로 확인됐다. 센터에서 아들에게 수차례 연락했으나 “아들이 아니라 동명이인이다.”거나 “나는 모르는 일이다.”며 부양을 거부해 결국 센터 측은 아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기로 하고 노인을 보호시설에 입소시킨 뒤 아들을 노인학대 혐의로 고발했다.‘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 됐다. 아들에 의한 노부모 학대가 전체 노인 학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2005년 전국 17곳의 노인학대 예방센터에 접수된 학대 사례 2329건을 분석한 결과 아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전체의 50.8%나 됐다고 26일 밝혔다. 이어 며느리 19.7%, 딸 11.5%, 배우자 6.6%, 사위 1.0%, 기타 10.5% 등이었다. 학대 유형별로는 언어폭력과 정서적 학대가 43%로 가장 많았으며, 노인에게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방임이 23%로 뒤를 이었다. 이어 신체적 학대 19%, 금전적 학대 12%, 성적 학대와 자학적 자기방임, 유기 등이 각각 1%로 나타났다. 신고자 유형별로는 가족이 35.8%로 가장 높았으며, 본인 31.7%, 타인 12.5%, 기관 10.2%, 법정 신고의무자 8.3%, 기타 1.6% 등이었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혼불’에 깃든 민족 생명력 기린다

    ‘혼불’에 깃든 민족 생명력 기린다

    장편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1947∼1998)를 기리는 기념관이 25일 전주에서 문을 열었다. ‘혼불 기념사업회’는 2001년부터 국비 등 16억여원을 들여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80여 평 규모의 ‘최명희 문학관’을 건립해 이날 개관식을 가졌다. 지상·지하 각 1층 규모로 마련된 문학관의 본관인 ‘독락재(獨樂齋)’에는 ‘혼불’의 원고 원본과 최씨의 친필 서신, 유품, 최씨의 문학 철학을 담은 영상물 등이 전시됐다. 지하 공간인 ‘비시동락지실(非時同樂之室)’은 문학 강연장과 상설 전시장 등으로 활용된다. 초대 관장인 장성수(58) 전북대 국문과 교수는 “전주는 최명희 작가가 고교 교사와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활동해온 곳”이라며 “문학관은 최 작가가 소설 ‘혼불’에 담아낸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기리는 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명희는 조선시대 남원지역 양반가의 몰락과정과 3대째 종가를 지켜온 며느리의 애환을 그린 대하소설 ‘혼불(10권)’을 17년 동안에 걸쳐 완성해 전북 애향대상과 세계문학상, 단재문학상, 호암상 등을 받았으나 1998년 12월 암으로 타계했다. 전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일요영화] 故신상옥감독 작품 다시 본다

    지난 11일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국 영화계의 거목이자 풍운아였던 고 신상옥 감독을 추모하기 위해 신 감독의 작품이 잇따라 긴급 편성됐다. 스크린을 통해서도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됐다. EBS는 신 감독의 초기 작품 가운데 하나인 ‘지옥화’를 16일 오후 11시 방송한다. 한국전쟁 직후 혼란스러운 서울을 배경으로 한 통속 멜로물이지만 파격적인 소재와 한국전쟁 이후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담아내며 리얼리즘 계열의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남자를 파멸로 몰아가는 팜므파탈 역을 신 감독의 부인 최은희가 맡았다. 원제는 ‘육정(肉情)’이었으나 공모를 통해서 ‘지옥화’라는 이름으로 개봉됐다고 한다. 정사 장면과 추격, 총격 장면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와 부조리한 사회에서 변화되는 젊은이들의 삶을 담은 주제, 영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미군 부대의 물건을 빼돌려 먹고 사는 건달 영식(김학)과 기지촌 양공주 쏘냐(최은희)는 연인처럼 지내는 사이다. 어느 날 영식의 동생 동식(조해원)이 찾아오며 이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쏘냐는 동식을 유혹하고, 동식은 형 때문에 갈등한다. 영식은 미군 물품을 털 계획을 꾸미고 쏘냐는 이런 계획을 경찰에 신고하고 동식과 함께 도망치려고 하는데….1958년작품으로 88분. SBS도 16일 밤 12시55분 ‘시네클럽’에서 당초 편성됐던 멜 깁슨 주연의 ‘매드맥스’ 대신 신 감독의 미개봉작이자 유작이 된 ‘겨울이야기’를 방송한다. 중견 배우 신구와 연극스타 김지숙을 주연으로 2002년 만들어졌으나 극장 개봉을 하지 못했던 작품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정신을 놓은 채 치매에 걸린 노인(신구)을 돌보는 며느리(김지숙)와 그녀의 가족들이 겪게 되는 갈등과 화해, 또 노인이 숨진 뒤 유족이 느끼는 회한을 그리고 있다.100분. 한편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효인)은 추모전을 마련했다.‘거목(巨木)’이라는 제목을 단 이번 행사는 19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내 영상자료원 고전영화관에서 진행된다. 신 감독의 영화 인생 54년 동안 연출했던 75편 가운데 ‘성춘향’(19일) ‘빨간 마후라’(20일) ‘로맨스 빠빠’(21일) ‘벙어리 삼룡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이상 22일) ‘내시’ ‘지옥화’(이상 23일) 등 대표작이 상영된다. 주말에 상영되는 작품은 외국인 관람객을 위해 영문 자막도 서비스하게 된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치매노인 수발 73%가 며느리·딸

    가족이 치매에 걸렸을 때 직접 부양하겠다는 의지는 여성보다 남성이 높았지만, 실제 부양은 여성들이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치매가족협회는 12일 지난 한해 접수된 상담 859건에 대해 분석한 결과, 치매노인 수발자의 72.9%가 여성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분석내용에 따르면, 치매노인을 부양하는 859가정 중 37.8%가 치매노인의 주된 수발자는 며느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딸 20%, 부인 15.1% 등으로 여성이 직접 수발하는 비율이 70%를 웃돌았다. 아들은 12.9%, 남편 12.3% 등 남성이 수발자로 나선 경우는 30%가 채 못 됐다.반면 협회가 지난 한 달간 2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치매노인을 직접 부양하겠다는 의지는 남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영국 여왕 ‘엉덩방아’ 찧은 사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80번째 생일이 오는 21일로 다가옴에 따라 17일자 타임 최신호는 둘째아들인 앤드루 왕자 및 측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소개했다. 1952년 즉위한 이래 여왕은 300만통의 편지를 받았고,110만명의 손님을 접대했으며,129개국을 256번 공식 방문했다. 앤드루 왕자는 여왕이 메모의 작은 실수를 지적하고 공식 연회에서 사진사의 위치를 직접 지정할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나고 유머도 풍부하다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가족들간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왕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새로 고용된 하인이 의자를 뺐다고 한다. 하지만 여왕은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자리에 다시 앉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모든 가족이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으며, 여왕은 울상이 된 하인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지난 1월 여론조사기관 모리(MORI)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9%의 영국인이 공화정으로 바꾸기를 원했다. 이는 1968년에 실시된 같은 조사보다 단지 1%포인트가 늘어난 수치다. 영국인의 68%가 왕실 유지를 원하는 이유는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타블로이드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고’를 저질렀지만, 여왕은 모범적인 행동으로 존경을 얻었기 때문이다. 앤드루 왕자는 “여왕은 결코 영국인을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왕실은 2000년부터 이메일을 사용하고, 매력적인 웹사이트를 구축했다. 직원들에게 휴대용 정보통신 단말기 블랙베리를 나눠주면서 현대화에 빠르게 적응했다.직원들은 열심히 일하는 여왕을 본받아 왕실은 권위적이고 행정편의적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는 왕실 직원들에 대한 처우 개선도 한 요인이다. 왕실은 명예를 드높인 사람에게 수여하는 여왕의 증서도 서예가가 직접 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만들면서 연간 13만 5000달러(약 1억 3000만원)를 절약했다. 지난해 영국 왕실이 쓴 공적 자금은 6400만달러(약 640억원)로 전년보다 2.3% 줄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천벌받을 패륜 며느리

    인천 남동경찰서는 9일 시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존속 살인)로 며느리 A(36·인천)씨를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 11시50분쯤 인천 집에서 “교회에 나가라.”며 꾸짖는 시아버지 B(67)씨의 가슴을 주변에 있던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지난 2월 가출했다가 최근 집으로 돌아온 A씨는 이날 시아버지의 꾸중에 격분,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근대문화유산 훼손 ‘몸살’

    근대문화유산 훼손 ‘몸살’

    전국 곳곳에서 소중한 근대문화재가 훼손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개발과 재산권 행사 등에 따라 근대문화유산이 철거되거나 파손돼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5일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에 따르면 경상북도 시·도 유형문화재 48호인 옛 대구상업학교 본관이 아파트 공사로 인해 훼손될 위험에 처했다. 대구시는 최근 아파트 개발을 이유로 옛 대구상고에 대해 문화재 지정 취소를 요구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2003년 4월 문화재로 지정된 옛 대구상고는 1922년에 지어진 2층짜리 건물로, 근대 상업교육의 요람이자 교육건축물의 중요한 상징물로서 건축사적인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학교 소유·관리자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이 경남기업에 학교 부지를 팔면서 20층짜리 아파트 공사가 시작됐고, 이로 인해 학교 벽옆에 건축 자재물들이 위험하게 쌓여있는 등 문화재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개발을 위해 문화재 지정을 취소하겠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대구시는 문화재 파괴행위를 중단하고 대구상고 본관을 보존해야 하며, 문화재청은 이 건물을 국가 지정문화재로 승격, 보존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근대문화유산 훼손은 소유주의 재산권 행사가 가능한 등록문화재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예고된 옛 대한증권거래소 건물이 철거됐고, 스카라극장도 지난해 말 문화재 등록이 예고된 뒤 소유주에 의해 허물어졌다. 앞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예고된 박목월 생가도 아들과 며느리에 의해 팔린 후 바로 철거됐다. 이와 함께 지난달 근대문화재로 등록예고된 경북 영천 격납고는 이틀만에 소유주에 의해 파손됐다. 영천 격납고는 일제가 2차 대전때 연합군의 공습에 대비, 전투기를 숨기기 위해 만든 시설로, 일제말기 전쟁태세와 전시동원 등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에 따라 근대문화재 등록제를 법적 강제력을 갖춘 지정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과, 근대문화재 소유자에 대한 혜택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황 소장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철거할 때 허가를 받는 철거허가제 도입을 비롯, 현행 세금 감면 확대, 재개발시 용적률 최대 보장 등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여자 학사가수 1호’ 김상희(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여자 학사가수 1호’ 김상희(2)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빨간 선인장’ 같은 서정적인 노래들과 더불어 김상희씨는 지극히 보편적인 소시민의 시각을 담은 경쾌한 노래들로 뭇 선남선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의 ‘3대 걸작 서민가요’를 보면 60년대 당시 청춘남녀의 이상향과는 사뭇 거리가 먼 캐릭터조차 따듯하게 감싸 안는다. 텁수룩한 얼굴이 나이보다 7∼8세 위로 보이지만 그래도 내겐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경상도 청년’, 단벌옷에 넥타이 두 개뿐인 서른한 살 노총각으로 주머니가 텅텅 비어 영화구경 한번 제대로 못할지언정 그래도 듬직하다고 치켜세우는 ‘단벌신사’, 행여나 장가간 게 아닐까 궁금할 정도로 나이 들어 뵈지만 그래도 내일 또 만나질까 기다려진다는 ‘대머리 총각’. 이렇듯 그의 노래는 당시 이상향의 주류에서 한참 비껴난, 일종의 ‘괄호 밖의 남자’들에 대한 따듯한 포용이 물씬 배겨 있다. 이뿐인가. 서울에는 어여쁜 아가씨가 많고 많지만 그래도 순박한 ‘울산 큰애기’가 제일 좋더라 하는 식의 삼돌이의 편지 내용은 또 어떤가. 이렇듯 단순명쾌하고 자신만만한 그녀의 메시지는 ‘만인의 연인’이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러한 범국민적인 지지로 그녀는 68년 ‘연예인 납세실적 1위’라는 전성기를 누린다. 가수 김상희에 대해 특히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70년을 전후해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시도했다는 점.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서 타이틀 롤인 2대(代) ‘아랑’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고,‘성불사의 밤’ ‘그대에게 내 말 전해주’ 등을 담은 가곡음반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또한 작곡가 신중현씨와 손잡고 ‘어떻게 해’를 비롯,‘나만이 걸었네’ ‘파도소리’ 등을 담은 ‘사이키델릭 음반’을 취입하는 등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시도,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한껏 펼쳐보였다는 점이다. 이 즈음 그녀는 또한 ‘월드스타’로 도약한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각각 음반을 발표하게 된 것.70년, 일본에서 ‘EXPO 70’이 열릴 때 그녀는 우리 문화의 기수로 가수 패티김과 함께 파견, 도쿄에서 한 달간 ‘아리랑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일본 측으로부터 음반 취입을 제의받는다. 이 여세로 세계적인 트럼펫 주자인 히노데루 마사와의 합동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고 홍콩, 태국 등 해외공연과 더불어 미국 MGM과도 계약,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 대형가수의 세계무대로의 진출은, 오히려 국내에서 ‘한국가수의 월드스타 출현’이라는 기대와 맞물려 국내에서도 팝송만을 불러 취입, 수출용 음반을 출시하기도 했다. 김상희씨는 현재까지도 가수활동과 더불어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녀 스스로도 가수 활동보다 ‘방송국 월급쟁이’로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할 정도. 어느덧 그녀는 ‘방송 진행은 옷 입는 것같이, 노래는 밥 먹는 것같이’한다고 토로한다.40년 가까이 하다 보니 그만큼 자연스러워졌다는 얘기다. 그녀가 방송 진행자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7년 KBS TV ‘당신의 멜로디’라는 쇼 프로그램. 당시로서는 여성 진행자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담당 PD가 방송이 잘 안되면 사표를 쓰겠다며 방송국 간부들을 설득했다. 그 PD가 바로 지금의 남편인 유훈근씨다. 유PD와는 이듬해인 68년에 결혼했다.4선 의원을 지낸 그녀의 시아버지 유청(柳靑)씨는 광복 후 한민당 전라도당 위원장을 지낸 유직양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인기 가수와 종갓집 7대손 장남이 결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남편 유훈근씨는 KBS PD로 일하다가 MBC에서 뉴스 앵커를 지냈다.79년 MBC 보도부 차장으로 근무할 때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된다.10·26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면복권 되면서 공보비서로 들어가게 된 것. 이 여파일까, 김상희씨는 5공화국 들어서면서 무대에 설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때문에 이화여대 옆에서 반평짜리 공간을 얻어 샌드위치 장사를 하기도 했다. 김상희씨는 연예인 봉사단체 ‘한마음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벌써 30여 년째다. 그래서 전국 각지의 노인 복지시설을 열댓 번쯤은 찾았다고 한다. 주로 남들이 잘 찾지 않는 무허가 시설 같은 데를 주로 가기 때문에 보통 방이 비좁아 악기도 겨우 전자오르간 하나만으로 노래를 해야 할 경우도 다반사. 그래도 돌아올 때는 다들 눈물을 흘리곤 한다. 가수 겸 방송인 김상희씨는 2004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당시 조선극장을 운영하는 상당한 재력가의 딸로, 그리고 4선 의원을 지낸 종갓집 7대손의 맏며느리로 결코 쉽지 않은 가수활동과 방송활동을 병행하면서도 늘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 김상희씨, 그녀는 여전히 ‘만인의 연인’이자 ‘서민들의 변함없는 친구’다. sachilo@empal.com
  • 하인스 워드 방한 첫 회견 “절반의 한국인 이젠 자랑스럽다”

    하인스 워드 방한 첫 회견 “절반의 한국인 이젠 자랑스럽다”

    “한국인으로 받아줘 고맙습니다.” 29년 만에 고향을 찾은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 영웅’인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는 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야경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말해 첫날 밤을 흥분으로 지새웠음을 드러냈다. 이후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 그리고 혼혈아에 대한 관심 등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러나 그의 행동과 말 속엔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선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느낌이 강했다. 게다가 언제나처럼 겸손함이 묻어났다. 세계 언론 앞에서조차 여유 있었던 워드지만 고향인 한국에서의 첫 회견이 긴장되는 듯 간간이 굳게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워드는 서투른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혼혈이기 때문에 절반의 전통이 여기에 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이어 “자라면서는 반이 한국인이란 게 창피했지만 이제는 자랑스럽고, 양국의 전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자 큰 혜택”이라고 말했다. 과거 혼혈인이었기에 받았던 멸시는 이제 과거로 흘려보낸 듯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를 보면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너희들보다 더 한국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 워드는 “한국 방문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며 올해 다시 오겠다.”면서 한국 알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뜻을 내비쳤다. 혼혈인들을 위한 재단 설립 계획도 밝혔다. 그는 “혼혈문제와 관련된 펄벅재단과 연계해 비슷한 재단을 세우는 것을 논의중”이라고 말했다. 또 “인종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혼혈인들에게 꿈을 버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워드는 기자회견 내내 ‘어머니’라는 단어를 수없이 반복했다. 어머니 김영희씨의 한국 사랑도 얘기했다.“어머니는 은퇴하면 많은 시간을 한국에서 지내고 싶어한다.”면서 “지금도 계속 한국에 집을 사달라고 조른다.”고 말했다. 또 결혼하기 전엔 보통 한국 어머니들처럼 한국인 며느리를 원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명문여고 옛언니·동생 관계

    명문여고 옛언니·동생 관계

    자가용 한대를 은퇴한 옛 교장에게 선사했다. 불난 모교 교사(校舍)신축기금을 수십만원씩 기부했다. 모교의 생활관 건립기금으로 4백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있다. 어느 남자동창회들 얘기가 아니다. 근래에 여고(女高)동창생들이 끼리끼리 모여 만든 화제들. 다음은 그래서 수소문해 본 명문여고출신(名門女高出身) 아무개와 아무개 부인들. 꾸준하게 모이기는 배화(培花) 육(陸)여사는 언니와도 동기(同期) 여자들의 경우 출신(出身)과 동창(同窓)을 대학에서보다 여고(女高)에서 꼽는 것이 상례(常例). 「언니」,「그애」의 친밀한 대명사를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못버리는 사이가 여고(女高)동창들이다. 「뭔지 모르게 서로 통하는게 있어서」통성명하고 출신을 캐 보니까 동창이더라고 여자들은 곧잘 무릎을 치면서 감탄한다. 아무리 그처럼「얘,쟤」하면서 모이는 사이라도『여자 셋만 모이면 시끄럽다』는 심술궂은 익살은 저리 가라고 엄청난 일을 척척 해 내고 있다면 통 큰 신사들도 조금은 놀랄 것이다. 은퇴한 교장 이세정 (李世禎)씨에게 진명여고(進明女高)동창생들이 자가용「코로나」1대를 선사한 것이 금년봄, 몇해전 경기여고(京畿女高) 구교사가 불탄뒤 경운회(慶雲會)(동창회)가 동창모금을 해서 교사신축을 도운 것이 2백여만원. 역시 금년봄 숙명여고(淑明女高) 동창회인 숙녀회(淑女會)의「올드·타이머」들이 돈을 모아 해방전의 친한국(親韓國) 일인(日人) 교장 야촌성지조(野村盛之助)씨를 초빙했었는가 하면 배화여고(培花女高) 동창회는 모교돕기 4백만원 적금을 붓고 있다는 소문. 여자들의 눈칫돈으로는 꽤 큰 액수. 모두 명문이니까 시집들을 잘 가서 그렇지 뭐냐고 한다. 배화동창(培花同窓)=우선 팔자지수(指數) 최고로는 작년 10월 70년 창립기념을 가진 배화(培花)를 들 수 있다. 해방전후만 하더라도 김윤경(金允經)씨를 비롯한 애국자들이 은둔생활 겸 교편을 잡던 여학교였기 때문에「미션·스쿨」다운「프라이드」가 있었다. 게다가 아내 최고의 좌(座)인「퍼스트·레이디」육영수(陸英修)여사를 배출한 학교. 육영수여사의 언니 혜수(蕙修)여사도 한살 차이의 동기동창생. 명부에도 나란히 적힌 자매(姉妹)였기 때문에도 유명하다. 1942년 16회인 이 동기들은 전부터도 꽤 열심히 모이는 열성동창들이었다. 알뜰히 기금(基金)을 마련해서 벽촌에 책보내기 운동도 22세부터 25년간 체신부에서 일하면서 공무국장(工務局長), 전기통신시험(電氣通信試驗)소장을 지낸 안동렬(安東烈)씨(며칠전 퇴임)의 부인 김영연(金英蓮), 보광(保光)「알미·사슈」사장 서정호씨 부인 남정길씨. 변호사 고병국(高炳國)씨 부인 김함득(金咸得)씨. 이들을 중심으로 한달에 한번씩 모이는 16회 동창들은 조그만 기금을 마련해서『어깨동무』등 아동잡지를 벽촌국민학교에 보내는 등 복지사업을 소규모 해 왔다. 『공직생활이 시작된 뒤로는 오히려 만날 틈이 없는「퍼스트·레이디」지만 동기생(同期生)의「프라이드」가 그런 보람 있는 일을 찾게 한다』는 한 동창의 얘기. 「올드·타이머」로서 15년전 동창(同窓)교장추대의 움직임까지 있었던 장화순(張和順)씨는 쌍용양회회장(雙龍洋灰會長) 조병준(趙炳俊)씨 부인. 김성곤(金成坤)씨 장녀(長女)와 임송본(林松本)씨 3녀(女)를 며느리로 맞는 다복한 노부부(老夫婦)로 알려져 있다. 김상돈(金相敦)씨 부인 김자혜씨가 장화순씨와는 비슷한 또래의 노장파「엘리트」들. 이호(李澔)법무장관 부인 성낙은(成樂恩)씨 외국어대학(外國語大學)이사장 김여배(金與培)씨 부인 이옥경(李玉慶)씨. 작곡가(作曲家) 김순애(金順愛)씨. 정경화등 음악자녀를 키운 어머니 이원숙(李元淑)씨. 한국민예사(韓國民藝社)여주인 견덕균씨. 의학박사 장재섬(張在暹)씨. 황진주씨. 동창회장 박종옥(朴鐘玉)씨는 낙사회(樂師會)부녀부장. 중앙여중교장 김두원(金斗媛)씨 이들 모두가 쟁쟁한 배화50대(代)다. 문단(文壇)주변에서 배화는 드문 명문으로 꼽히는데 여류(女流)의 중진 장덕조(張德祚)씨가 배화출신인 것을 큰 자랑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명문다운 모습은 문예(文藝)쪽에도 뚜렷하다. 7월초 주부「클럽」의 초대 신사임당상을 받은 서예가(書藝家) 이철경(李喆卿)씨와 그 동생이며 역시 서예가인 이미경씨가 배화출신이다. 한전(韓電)부사장 진의종(陳懿鍾)씨 부인 이학(李鶴)씨도 자신의 서도(書道)로 이름이 알려졌다. 여담이지만 신사임당 본상(本賞)뿐만 아니라 장기(長技)백일장의 수필 서도부문 수상자들까지 배화출신이었다. 수상식(受賞式) 다음날 청와대 초청「파티」에서 육여사는 그것을 무척 흐뭇해 했단다. 외환은행장(外換銀行長) 홍승희(洪升熹)씨 부인 서귀숙(徐貴淑)씨. 상은(商銀)이사 강정한씨 부인 이설자(李雪子)씨. 장경순(張坰淳)국회부의장인 문순자(文順子)씨. 논산훈련소장 박남표(朴南杓)소장 부인 이송자(李松子)씨도 배화출신. 경기(京畿)출신엔 학자가 많아 박사 백여명중 30여명이 경기동창(京畿同窓)=똑똑하고「프라이드」높은 것이 자타공인(自他共認) 사실도 돼 있는 경기출신.『딸은 자랑하고 싶어서 경기 보내지만 며느리는 콧대가 높아서 경기를 피한다』는 속설(俗說)이 예비 시어머니들간에 떠돌 정도다. KS라는 별명으로 서울대학과 붙어 다니는 이름이 경기니까 그런 말들은 본인들의 자존심을 충족시킬지언정 조금도 상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짭짤한 여류학자들을 꼽아보면 거의가 우리 동창 아냐!』라고 자랑한 한 경기출신 여교수의 학계(學界)「리스트」부터 추려보면 배정현(裵廷鉉)씨의 부인이고 숙대가정대학장 농학박사 김삼순(金三淳)씨. 일본체류중인 수학박사 홍임식씨. 최근에 귀국한 농학박사 이미순(李美淳)씨. 부부박사로 3년전 재국당시「매스·콤」의「탤런트」가 되다 시피했던 정치학박사 이범준(李範俊)씨. 윤일선(尹日善)씨의 따님인 사회학박사 윤은구(尹恩球)씨. 아무튼 알려진 여자박사 1백명중 3분지 1인 30여명이 경기여고 출신이라는 숫자가 동창회 명부에 올려져 있다. 이대의 이춘란(李春蘭)씨. 이남덕(李男德)씨. 안인희(安仁姬)씨. 나영균(羅英均)씨. 김세영(金世永)씨등의 실력파교수들. 서강대(西江大)의 김인자(金仁子)씨. 서울대에서는 농대(農大)의 김번옥씨. 사대(師大)의 현기순(玄己順)씨. 중앙대(中央大)의 윤서석(尹瑞石)씨. 서울여대학장이고 대한어머니회 회장인 고황경(高凰京)씨. 성신여사대 부학장 조기흥씨. 창덕(昌德)여고교장 현병진씨. 서울여중교장 최정현씨. 동대분여중교장 김영옥씨. 서울시 장학사 김정애씨. 전 보사부 부녀국장 주정일(朱貞一)씨. 미모의 여류작가 강신재(康信哉)씨. 예능(藝能)과 미모로 이름난 오위영(吳緯泳)씨의 딸 자매들 정주(貞珠) 덕주(悳珠) 현주(賢珠) 제씨가 나란히 경기출신. 실력파「디자이너」「노라·노」씨는 경기라는 딱지가 금상첨화 격의 위광(威光)이며 그가 키워 낸 후배 「디자이너」박충정(朴充貞)씨는 여고후배이기도 하다. 방향을 남편쪽으로 돌리면 체신부장관 김태동(金泰東)씨 부인 이재원(李宰遠)씨. 재무부차관 정소영(鄭韶永)씨 부인 박재옥씨. 외무부차관보 황호을(黃鎬乙)씨 부인이며「피아니스트」인 정영자씨. 차일석(車一錫) 서울시부시장 부인 백영자(白英子)씨. 지금은「카메라」의 초점에서 빗나간 왕년의 인물중에는 송요찬(宋堯讚)씨 부인 권영각(權寧珏)씨가 있고 김유택(金裕澤)씨 부인 박흥덕(朴興德)씨. 전상공부(前商工部)장관 이병호(李丙虎)씨 부인 한경선씨. 전재무부장관 천병규(千炳圭)씨 부인 박용주씨. 前문교부장관 현 고대교수 김상래(金相淶)씨 부인 김인숙씨. 이재학(李在鶴)씨 부인 이정수씨. 장도영(張都暎)씨 부인 백정숙(白亭淑)씨가 있다. [ 선데이서울 69년 8/10 제2권 32호 통권 제46호 ]
  • [미디어플러스] 유선방송·‘SO’ 요금체계등 시청자 불만 폭증

    유선방송과 방송채널 사용사업(SO)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방송위원회가 3일 발간한 ‘2005년도 시청자불만처리보고서’에 따르면 접수된 시청자 불만 총 6088건중 종합유선방송 관련 불만이 2084건으로 가장 많았으며,2004년 대비 69%나 증가했다. 채널 패키지 편성, 요금, 가입자 서비스 등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위성방송도 스카이라이프의 위약금 및 요금 관련 불만 등으로 2004년보다 114%나 증가했다. 지상파방송에 대한 불만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 총 2049건이 접수됐다.MBC가 PD수첩의 황우석 교수 관련 보도에 대한 영향으로 1078건이 접수돼 가장 많았으며,KBS 770건,SBS 305건이 각각 접수됐다.KBS는 ‘생방송 시사투나잇’ 등 시사프로그램의 공정성 문제,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을 때리는 장면 등 방송의 윤리성 문제가,SBS는 드라마 ‘건빵선생과 별사탕’ 등의 방송 소재의 비윤리성 등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 [길섶에서] 어머니의 항아리/이호준 뉴미디어국장

    그녀는 종갓집 며느리였다. 젊어서 홀로 된 뒤 기울어 가는 가세를 잡으려 안간힘을 다했지만, 여자 혼자로는 벅찬 일이었다. 더구나 하나뿐인 아들, 종손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감에 남은 가산도 털어 넣고 말았다. 그녀는 죽기 직전 객지에 있는 아들을 불렀다.“물려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하지만 저 항아리들은 꼭 챙겨다오. 네 할머니와 내가 쓰던 것들이다. 잘 두었다가 네 색시가 생기면 전해다오.” 좀 황당했지만, 아들은 장례를 치른 뒤 항아리를 서울로 싣고 왔다. 그리고 보관하기 좋은 집을 찾아 몇번 이사를 했다. 후배가 들려준 얘기다. 그의 낡은 연립주택 옆집에 총각이 이사를 왔는데, 항아리들이 베란다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문밖까지 진출했더란다. 그걸 치워달라고 갔다가 들은 사연이라는 것이다.“물려준 어머니나 갖고 다니는 아들이나 좀 이상하지 않아요?” 후배의 뒷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자꾸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물려받은 ‘항아리’는 어디로 갔을까. 진짜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사는 건 아닐까. 이호준 뉴미디어국장 sagang@seoul.co.kr
  • [인간시대] 자원봉사자 이춘희 할머니

    [인간시대] 자원봉사자 이춘희 할머니

    “일하다 보면 가끔 고맙다고 간식거리를 내놓지. 그럼 받지 않아. 도와주러 가서 오히려 폐를 끼치면 안되지.” 할머니는 독거노인들과 서로‘형님’‘아우’라 부르며 허물없이 지낸다. 목욕을 같이하고, 때론 함께 목놓아 울며 마음을 나눈다. 식음을 전폐한 노인들에게 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자고 다독인다. “형님, 죽는다는 소릴 왜 자꾸해. 그 힘으로 벌떡 일어나야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오래 살아서 뭐해.” 야무진 손끝으로 다리를 주무르던 자원봉사자 이춘희(71) 할머니가 독거노인의 배쪽으로 손을 뻗더니 간지럼을 태운다. “왜 이려∼.” 누워 있던 노인은 싫지 않은 듯 손을 뿌리친다. “형님한테 벌주는 거여. 왜 이렇게 속을 썩여.” 두 할머니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정겹다. ●20여년 활동… 용산구 자원봉사센터 ‘대모´ 이 할머니는 용산구 자원봉사센터의 대모(大母)다. 활동한 지 20년이 넘은 터라 자원봉사자 100여 명이 어머니처럼, 할머니처럼 그를 따른다. 크고 작은 자원봉사 모임에 빠짐없이 나와 진두 지휘한다. “나이 들어 주책이라고도 말하지만, 내가 행복한 걸 뭐.” 할머니는 ‘프로답게 봉사하라.’고 가르친다. 내일 쓰러지더라도 오늘은 몸 바쳐 일한다는 각오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와주러 갔으면 똑 소리나게 일 해야지.‘야, 저 사람들 몇 만원짜리 일꾼보다 훨씬 낫다.’이런 소리를 들어야지. 왜 공짜라고 대충하려고 하나.” 어영부영 일했다가는 할머니의 잔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할머니가 솔선해 일하니 젊은 봉사자들이 힘들다고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단다. ●“마음 약해져 몸이 아픈 거니까 희망을 심어줘야 해” 할머니는 또 음료수와 과자, 빵 등을 가방에 싸갖고 다닌다. 봉사하다 지치고 목마르면 먹기 위해서다. “일하다 보면 가끔 고맙다고 간식거리를 내놓지. 그럼 받지 않아. 도와주러 가서 오히려 폐를 끼치면 안되지.”그러나 활동이 끝나면 젊은 봉사자들을 음식점으로 데려가 밥을 사준다고 자원봉사센터 직원이 귀띔했다. 일할 때는 엄한 어른이지만, 평소에는 살가운 할머니 그대로다. 할머니는 독거노인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형님’‘아우’라 부르며 허물없이 지내기 때문이다. 목욕을 같이하고, 때론 함께 목놓아 울며 마음을 나눈다. 식음을 전폐한 노인들에게 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자고 다독인다. “희망을 불어 넣어 줘야 해. 몸이 아픈 것도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거거든. 세상이 참 재미나다는 걸 알려서 악착같이 살도록 해야지.” ●말기 암환자에겐 ‘남은 시간´ 정리토록 조언 그의 따뜻한 위로와 야단에 힘을 얻어 오랜 병석에서 떨쳐 일어나는 어르신도 종종 있다. 반대로 암환자를 돌볼 때는 마지막 시간을 잘 정리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암환자를 많이 만나니까 느낌이 오더라고. 병 수발을 들어주다 때가 가까이 왔다 싶으면 얘기해 주지. 이제 갈 준비를 하라고….” 수개월간 환자와 먹고 자며 체득한 감각이다. 그러면 할머니의 충고에 죽음을 두려워하던 환자가 서서히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생을 정리한단다. “가기 전에 고맙다고 그러지. 다들 쉬쉬하는데 형님이 준비하라고 알려줘서 다 정리할 수 있었다고. 그럼 맘이 짠해.” ●대부분 저소득… 염습 등 궂은일 직접 맡아 환자 대부분이 장례 비용도 넉넉하지 않은 저소득층이라 염습도 할머니가 직접한다.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수개월간 형제처럼 지낸 사람들인데, 무슨….”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요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일에 지나치게 무관심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몇 달 전에 지하철 플랫폼에서 발생한 일이다. 밤 11시쯤 할머니가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20대 청년이 술에 취해 들어오는 전철에 머리를 다쳤단다. 청년은 그대로 나뒹굴었다. 할머니가 달려가 쳐다보니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리를 질러댔지. 사람 살리자고. 피 흘리는 사람이 있는 데도 도와줄 생각 없이 다들 지하철을 타더라고.” 지하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청년을 간신히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서도 보호자로 등록해 치료를 받도록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까 밤 1시가 훌쩍 넘었단다. “뭐가 그리 급한지. 뭐 때문에 그리 바쁜지….” 할머니는 답답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행복이 별거야, 건강·끼니 걱정없고 맘 편한 거지” 할머니의 ‘열혈봉사’에 가족들은 어떤 반응일까. “내가 복이 많아요. 며느리들이 손자, 손녀를 다 키우니까 집에서 할 일이 없어. 다들 내 직업이 자원봉사라고 알고 있지.” 할머니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할아버지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게 아쉬울 뿐이란다.“행복이 뭐 별거야. 몸 건강하고, 끼니 걱정없고, 마음 편안하고. 세상에 진 빚만 더 갚고 갔으면 좋겠어.” 할머니는 처음에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별 일도 아닌데 언론에 오르내리면 봉사하기만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기자가 ‘딸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해준다고 생각해 달라.’고 간청하자 마지못해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여느 어머니처럼 다정한 반말로 삶의 지혜를 들려줬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SK·대성·한진… 재벌2세 잇단 결혼

    재벌 2세들의 잇단 결혼소식이 화제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최신원 SKC 회장의 장녀인 유진(28)씨가 ‘5월의 신부’가 된다. 유진씨는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마치고, 지난해 귀국해 신부 수업을 받고 있다.새 신랑은 미국에서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는 구본철(32)씨. 본철씨는 LG 구씨가(家)의 ‘본자’ 돌림과 같은 항렬이다. 부친은 구자동씨로 중견기업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유진-본철 커플은 오는 5월 말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결혼한다. 한진그룹 조씨가(家)도 오는 5월에 ‘새 사람’을 맞는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외아들인 원태(30)씨가 5월21일 하얏트리젠시 인천 호텔에서 김태호 충북대 정보통계학과 교수의 외동딸인 미연(27)씨와 결혼한다. 원태씨는 2004년 대한항공 경영기획팀 차장으로 입사한 뒤 올해 초 부장으로 승진했다. 김 교수는 3대 중앙정보부장과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재춘 5·16민족회 이사장의 장남이며, 신부 미연씨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서울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그룹 김영대 회장의 3남 김신한(31) 대성산업가스 이사도 오는 6월 새 신랑이 된다. 신부는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미국 유학 중에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예비 신부는 상중인 대성가(家)를 수시로 찾아 이미 며느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신한씨는 미국 미시간대 컴퓨터공학 석사 출신으로 이달 초 대성산업가스 이사로 선임돼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LG 구씨가(家)도 곧 경사가 있을 전망이다. 구본무 회장의 장녀 연경(28)씨가 조만간 결혼 날짜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와 미국 유학을 마친 연경씨는 지난해 12월 윤관(31) 블루런벤처스 사장과 약혼식을 치렀다. 윤 사장은 알프스리조트 전 소유주였던 윤태수 회장의 아들이다. 두 사람은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루런벤처스를 이끄는 윤 사장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2000년 입사해 지난해 블루런벤처스의 공동 파트너 자리에 올랐다. 블루런벤처스는 노키아가 최대주주(30%)로 운용자금이 1조원을 넘는 다국적 벤처캐피털업체이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대발견 아이Q(EBS 오후 8시5분) ‘알쏭달쏭 육아극장’에서는 아토피의 정의부터 아토피 극복을 위한 관리와 치료법까지 아토피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알아본다.‘아기실험실’에서는 아이들에게 칭찬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실험을 통해 알아보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칭찬의 적절한 수위 조절법과 효과적으로 칭찬하는 방법도 배운다.   ●진실게임(SBS 오후 8시55분) 실제 제 나이가 맞는 사람을 찾는다. 누가봐도 중학생이지만 알고보니 35세 일등신랑감,172㎝의 청순가련형 13세 꼬마숙녀,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외모의 16세 중학생, 아직도 총각들이 따라 붙는 56세 할머니, 투명한 아기 피부 23세 미스천, 며느리와 함께 다니면 친구로 본다는 45세 아줌마가 등장한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5분) 호수 빙판위에서 벌어지는 아이스하키 대회로 키르기스스탄의 산악지대가 올림픽에 버금가는 열기로 달아올랐다. 추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 곳에서 아이스하키는 오락 이상의 의미다. 키르기스스탄이 아이스하키 강국이 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주민들의 열정은 절대 식지 않을 것 같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MBC 오후 9시55분) 승희에게 정훈은 복실이 혜수를 많이 닮지 않았냐고 묻고, 승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다음날 복실은 승희에게 월급과 휴대전화를 돌려주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하고, 그 때 순옥이 아프다는 조 선생의 전화가 온다. 급히 달려가는 복실을 보며 승희는 차를 직접 운전해 복실과 함께 병원으로 간다.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뼈 건강 프로젝트 칼슘, 흡수율을 높여라! 전국민의 75%가 칼슘 부족에 시달리는 만년 ‘칼슘부족국, 대한민국. 뼈 건강에 필수적인 영양소, 칼슘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흡수율을 높이는 방법을 알아본다. 또 명의클리닉 허승곤 박사의 뇌졸중이야기 3편에서는 허혈성뇌졸중의 예방과 치료에 대해 알아본다.   ●봄의 왈츠(KBS2 오후 9시55분) 재하는 은영이 자신이 찾던 서은영이 아님을 알고 실망한다. 은영의 죽음을 확인한 재하는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이나의 설득으로 음반 활동이 끝날 때까지만 한국에 남아있기로 한다. 한편, 재하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자신 앞에 자꾸 나타나는 은영 때문에 불편하기만 하다.
  • “세상 다 얻은 것 같다” 가족들 눈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용태영 KBS기자가 무사히 풀려났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고통 속에서 하루를 보낸 가족들과 KBS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저녁 중동에서 날아온 ‘낭보’를 접하고 용 기자의 광주 본가(남구 봉선동)에 모여 있던 가족·친지 10여명은 서로 끌어안으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남섭(73)씨는 “국민들이 아들을 걱정해주고 각계각층에서 너무 애를 써준 덕분”이라면서 “아들이 아무 탈 없이 석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머니 김경애(70)씨도 “TV 화면에 나온 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얼굴이 많이 야위어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했다.”면서 “아침에 두바이에 있는 며느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서로 넋이 나가 제대로 말을 가누지 못했던 일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루가 길었다.”라고 말했다.광주 최치봉·서울 홍지민기자 cbchoi@seoul.co.kr
  • ‘저축+투자+보장’ 퓨전 금융상품 인기몰이

    ‘저축+투자+보장’ 퓨전 금융상품 인기몰이

    ‘퓨전 금융상품’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금융상품들이 ‘은행=저축’,‘보험=보장’,‘카드=신용구매’ 등 단순한 기능에서 벗어나 ‘저축+투자’ 등 복합적으로 결합했다. 금융상품에 대한 정보가 널리 확산된 데다, 더 편리하고 혜택이 많지 않으면 주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상품들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삼성화재 등 6곳 통합보험 판매 손해보험업계에선 ‘통합보험’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자동차+운전자+암+자녀’ 보험을 하나로 묶은 상품이다. 한번 가입으로 여러가지 상품의 장점을 모두 누릴 수 있어 편리하고, 전체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게 강점이다. 전문교육을 받은 전담설계사가 여러 상품을 ‘통합관리’하면서, 가입자의 ‘일생관리’를 책임지며 자녀와 부모, 며느리 등 가입자 주변의 ‘세대관리’까지 해준다. 통합보험을 판매 중인 삼성화재,LIG손해, 동부화재, 메리츠화재, 신동아화재, 현대해상 등 손보사 6곳이 지난해 4월부터 올 2월까지 거둔 통합보험 수입보험료(월 판매액)는 7728억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1995억원의 4배를 기록했다. 삼성화재가 2003년 12월 최초의 통합보험으로 선보인 ‘슈퍼보험’은 베스트셀러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상품 1개가 상해·질병관련 37종, 자동차관련 26종, 화재·배상관련 12종 등 총 75개의 보상을 책임진다. 피보험자 범위는 3세대 가족구성원 전원이다. LIG손해의 ‘엘플라워웰빙보험’은 질병의료비 3000만원, 상해의료비 1000만원 등 의료비에 대한 부담감을 더는 데 치중함으로써 국민건강보험과 함께 필수적인 보험으로 인정받는다. 뇌손상 등 ‘중대한 특정상해수술비’와 자동차사고시 ‘자동차보험료 할증지원금’ 담보도 매력적이다. 보험기간도 80세까지 늘렸다. ●‘저축+투자+이벤트’복합예금 은행권에선 저축액의 일정액을 떼어 투자상품에 연계했거나 미리 설정된 조건에 도달하면 고금리 ‘보너스’를 주는 복합예금 상품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이벤트에 관심이 큰 요즘 세대의 취향을 반영했다. 우리은행은 여자프로농구(WKBL) 4회 우승을 기념해 주가지수에 연계한 복합예금 ‘여자프로농구 우승기념 복합예금’을 오는 29일까지 판매한다. 가입액에 제한이 없고 예금기간은 1년이다. 상품 유형은 복합형과 단독형 등 2종류이다. 복합형은 금액의 절반에 연 5.5% 확정금리를 적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원금을 보장하면서 코스피200지수, 포스코지수, 닛케이225지수에 연동해 수익률을 정한다. 단독형은 원금 전액을 주가지수에 투자한다. 외환은행의 ‘이영표 축구사랑 예금’도 대표적인 복합예금. 기본적으로 주가지수 연금예금과 ‘예스 큰 기쁨 예금’을 결합했다. 여기에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 중인 이영표 선수가 골을 넣거나 결정적인 골 도움을 주면 추첨 고객에게 2∼10%포인트 금리를 얹어주고 독일여행 상품권도 준다. 최근 매진 사태를 빚으면서 후속 상품을 계속 내놓고 있다. ●통합보험은 ‘등산용 주머니칼?´ 그러나 퓨전 금융상품에는 몇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통합보험의 경우 손보와 생보 고유상품 사이의 결합이 아직 미진한 편이다. 즉, 손보 통합상품은 자동차보험, 암보험 등을 두루 취급하지만 생보의 종신보험, 치명적질병(CI)보험 등은 별도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만능이 아니다. 생보 상품들은 엄밀히 말해 상품들의 결합이라기 보다 가입조건 등이 자유로운 상품들이다. 또 한번 가입한 뒤에 더 유리한 특약이나 신상품이 나와도 추가 혜택을 받으려면 보험을 해약하는 수밖에 없다. 전담 설계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설계사의 이직이 많은 현실에서 자칫하면 아무도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는 ‘고아계약’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주가지수와 연계된 복합예금 상품도 연계 지수가 상승하면 수익률도 덩달아 높아지지만 만약 상승률이 30%를 넘으면 오히려 수익률이 확정금리와 같거나 그 보다 낮은 저금리 상품으로 ‘전락’하는 함정이 있다. 보험대리점 관계자는 “통합보험은 등산용 주머니칼처럼 온갖 기능을 갖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는 맹점도 있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신증권-양재봉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신증권-양재봉 명예회장家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큰 大 믿을 信’ 하면 대신증권을 단박에 떠올린다. 한때 큰 주목을 받았던 광고 카피가 알반인의 뇌리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한 이름만큼 회사의 규모나 역사는 일반인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대신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여타 대형 증권사와 다른 몇가지 ‘독자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선 재벌 계열이나 은행 계열이 아니면서 40년간 업계 상위권을 지켜왔다.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이후 재벌이나 은행을 끼지 않은 증권사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속에서도 여전히 ‘빅5’ 안에 든다. 대신증권은 또 선진국형 증권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으로 꼽힌다. 증권사 흑판에 분필로 시세를 적던 시절 최초로 ‘전광판’을 도입했다. 이후 ‘온라인 거래의 최강자’란 명성을 얻었고 사이버 누적거래 1위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3세 경영’을 잇게 된다.‘거상(巨商)의 꿈’ 하나로 빈손으로 대신증권을 일군 양재봉(81) 명예회장의 역할을 현재 아들과 며느리, 사위가 잇고 있으며 머지않아 손자가 이 역할을 대물림받을 전망이다. ●빈손 ‘송촌’ 거상의 꿈 양 명예회장은 1925년 전남 나주군 나주읍 송촌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호를 ‘송촌(松村)’으로 지었고 훗날엔 이 명칭을 딴 ‘송촌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가 거상의 꿈을 품기 시작한 것은 송촌을 떠나 당시 ‘수재의 집합소’로 불리던 목포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15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나주에서 간 유일한 합격자’가 된 양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일본인들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공부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꿈도 키웠다. 그의 첫 목표는 한국은행 전신이었던 조선은행 입사였다. 양 명예회장은 “대학 졸업자들도 번번이 낙방하는 판에 상업학교 재학 중에 그 좁은 관문을 뚫어 자부심이 컸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이 때 생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모험에 대한 열망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는 안정된 은행원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거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 장사를 할 기회를 살피며 아이디어만 생기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목포와 나주 일원의 쌀을 사서 부산에 파는 미곡상을 하기도 했고, 양조 사업에도 손을 댔다. 겁없이 뛰어든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다시 조흥은행 신입 은행원의 자리로 돌아와야 했고, 이후 여러 은행을 거치면서도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끊임없는 새 사업 궁리끝에 시작한 극장 사업에서 성공하면서 그는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금융업 경영자로서 본격 나선 것은 한일은행 서울 청량리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1970년대초 무렵이다. 지점장 부임 1년도 안 돼 예금 계수를 2배로 만들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단자회사 설립을 권유받던 양 명예회장은 미원그룹 임대홍 회장, 해태제과 박병규 사장과 함께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했다. 증권 회사 설립은 그로부터 1년 뒤 일본 방문을 계기로 추진한다. 도쿄에 있던 ‘노무라증권연구소’의 선진적 체계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돌아오자마자 증권업 진출을 서둘렀다. 당시 정부는 소규모 증권사 난립을 경계해 새 증권회사 설립 허가를 꺼려했다. 양 명예회장은 75년에 직원 11명의 ‘망해가던’ 증보증권을 전격 인수한다. ●망해가던 증보증권 잘나가는 대신증권으로 증보증권은 경영 실적이 형편없는 하위권 회사였지만 그는 ‘꿈에도 그리던 증권회사를 세웠다.’는 생각에 희망에 넘쳐 있었다. 우선 회사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대신증권’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름을 바꾼 뒤부터 대신증권은 연일 승승장구했다.75년 대기업들이 탐내던 명동 국립극장 입찰에 성공해 ‘주식 투자자들의 베이스 캠프’로 만들었다. 77년 양 명예회장은 대한투자금융 전무이사직을 버리고 대신증권 사장으로 나섰다. 이어 업계 최초로 ‘전광시황 속보판’을 세우는 등 혁신을 거듭한 끝에 업계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양 명예회장에게도 암흑기는 찾아온다. 사장 취임 4개월만에 회사 영업부장이 고객과 회사의 돈을 빼돌려 피해자만 100명에 이르는 대형 금융사고를 일으켰다. 대신증권과 자신의 신뢰에 엄청난 손상을 입힌 사고였다. 그 여파가 얼마나 컸던지 양 명예회장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3년간 시골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며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다시 증권계로 돌아온 것은 81년. 대신증권의 대주주들이 양 명예회장을 찾아와 쓰러져가는 대신증권을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가 대신증권 사장에 복귀했을 때, 회사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다. 그는 “죗값을 치르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흐트러진 임직원들을 단합시키는 것이었다. ‘구두쇠 100일 작전’,‘개미작전’ 등 전 직원의 단합을 유도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짜냈다. 잘 나가던 대한투자금융 주식을 주고 미원 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대신증권 주식을 인수, 최대 주주가 됐고, 회사 재건에 ‘올인’했다. 다행히 80년대 중반 국내 증시는 최고 활황의 시기를 맞이한다. 양 명예회장은 대신증권의 회생에 성공해 84년 대신경제연구소,86년 대신개발금융,87년 대신전산센터,88년 대신투자자문,89년 대신생명보험,90년 송촌문화재단,91년 대신인터내셔널유럽 등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대신을 명실상부한 종합금융그룹으로 만들었다. ●신뢰 중시 경영으로 IMF 극복 하지만 그에겐 또 한번의 어려움이 닥친다.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연 20%대의 살인적인 고금리 상황이 발생해 수많은 기업이 어려움에 빠졌다. 대형 증권사인 동서증권, 고려증권이 환매 사태로 하루아침에 부도에 이르면서 ‘재벌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비재벌 단독 증권사인 대신증권에도 이 분위기는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대신증권은 단기 차입금을 모두 상환해 빚이 없는 상황이었다.90년대 말 펀드 열풍으로 시중의 자금도 증권사로 몰렸다. 하지만 양 명예회장은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 판매를 전면 중지시키고 안전한 국공채 위주의 채권형 펀드만을 취급하라고 지시한다. 예상은 맞았다. 대우그룹 부도, 하이닉스 사태,SK사태 등이 연이어 터지며 회사채로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들은 잇따라 위기를 겪었지만 대신증권은 안전한 국공채를 편입한 수익증권만 판매한 덕에 손실을 입지 않았다. 결국 90년대 초반 업계를 대표하는 5대 대형사의 주인이 모두 바뀔 정도로 부침이 심한 증권업계에서 대신증권은 살아남았다. 양 명예회장이 이처럼 오뚝이처럼 일어선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부문에 대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결단력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전산부문이 증권회사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본 양 명예회장은 전산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초기 집중 투자를 통해 온라인거래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로 인해 99년 이후 온라인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자 대신증권은 또 한번의 중흥기를 맞게 됐다. ●내실화 일군 고 양회문 회장 양 명예회장은 2001년 현업에서 물러나고, 차남인 양회문(2004년 작고, 당시 53세) 전 회장에게 회사 경영을 물려줬다. 양 명예회장의 4남4녀 중 차남인 고 양 회장은 7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신증권 공채 1기로 입사했다.10년동안 지점영업에서부터 인수, 법인, 자산운용, 기획, 인사 등 증권 전부문에 걸쳐 실무경험을 쌓으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고 양 회장은 회장 취임후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재무 구조 정비에 나섰다. 생명, 정보통신 등을 계열 분리하고 대신증권, 투신운용, 경제연구소 중심으로 그룹을 정리했다. 그는 2002년 초 폐암진단을 받은 후 2004년 작고 때까지 약 3년간 초인적인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리더십을 발휘했다. 대신증권이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높은 내실있는 회사로 재탄생한 것은 고 양 회장의 공이 크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양 회장 작고 이후 대신증권을 이끄는 주역은 고 양 회장의 부인이자 양재봉 명예회장의 둘째며느리인 이어룡(52) 회장이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이 회장은 남편이 투병생활을 하던 3년여동안 집중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뒤 2004년 10월 회장에 취임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종종 비교되는 이 회장은 특유의 세심함으로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 달만에 109개 전 영업점을 순회방문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뿐만 아니라 강단도 함께 갖췄다. 최근에는 자본통합시장법 제정에 따라 일본의 SPARX그룹과 자본 및 업무 제휴를 통해 향후 종합금융투자회사로의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대만의 IBTS와 제휴하는 등 외국 금융기관과 국제적인 제휴를 진두지휘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 회장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며 조용히 책읽기를 좋아한다. 남편의 투병 중에는 국내·외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암 관련서적을 섭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서울과학종합대학 최고경영자과정에 다녔다. 동기로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SK텔레콤 김신배 사장이 있다. 이 회장과 함께 대신증권의 제2도약을 이끌 인물로는 양재봉 명예회장의 사위이자 차녀 회금(52)씨의 남편인 노정남(53) 현 대신증권 사장이 있다.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온 노 사장은 지난해 10월 대신증권 사장에 취임했다. 노 사장은 77년 한일은행에 입사한 뒤 29년간 금융업에만 종사해온 탁월한 금융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87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영국 런던사무소장·지점장,IB담당임원, 상품운용본부장, 국제본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99년부터 6년 동안 대신투신운용 대표이사로 재직해 왔다. 런던 소재 코리아유럽 펀드의 이사를 지내는 등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고 강력한 추진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신증권의 1대 주주이자 실질적인 대신증권의 차세대 주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은 양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이어룡 회장의 아들인 홍석(25)·홍준(22)씨다. 장남인 홍석씨는 현재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며, 차남 홍준씨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이다. 홍석씨는 올해안에 대신증권에 입사해 아버지인 고 양회문 회장이 밟았던 것처럼 말단에서부터 시작해 경영 수업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이자 장녀인 정연(27)씨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컨설팅회사 베어링포인트에서 근무하다 현재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단출한 혼맥… 정략결혼은 없다 양재봉 명예회장은 부인 최갑순(78)씨와의 사이에 고 양 회장 외 3남4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연애결혼을 해 평범한 집안에 시집·장가를 갔다. 양 명예회장이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해 정략적 결혼을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송촌 회장 및 전 광주방송 회장을 역임한 장남 회천(57)씨는 대구 교육자 집안 출신의 문홍근(58)씨와 결혼했다. 회천씨는 처음부터 대신그룹에 근무하지 않고 대신전기 등 제조업체를 경영했다. 문홍집(56) 대신경제연구소 사장이 회천씨의 처남이다. 문 사장은 비즈니스 위크에서 아시아를 이끌 50인으로 선정하기도 한 금융 IT부문 한국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대신증권 IT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개발한 온라인거래 시스템인 ‘U-사이보스’는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격찬을 받는 등 전산부문을 한국 최고로 이끈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다. 둘째인 고 양 회장과 현 이어룡 회장 역시 연애결혼을 했다. 이 회장은 충북 괴산 출신으로 부친이 한학자였다. 이 회장 동생인 제봉(43)씨는 대학 교수이고, 제영(41)씨는 대신증권 IB 1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3남인 용호(48)씨는 코스닥 상장 창업투자회사인 대신개발금융회장과 아인스 회장을 역임했다. 아인스는 세계 유명 건축물 모형 전시시설인 경기도 부천의 아인스월드를 운용하는 회사다. 서울시 공무원 집안의 조선미(45)씨와 결혼해 2남1녀를 두고 있다. 4남인 정현(37)씨는 현재 코스닥 상장 금융 IT전문 회사인 대신정보통신 전무이사로 있다. 부인 이현아(30)씨는 조선내화 이훈동 회장의 손녀이자, 민주당 이정일 국회의원의 딸이기도 하다. 장녀 영애(59)씨는 대학때 연애를 통해 만난 나영호(60) 현 경원대 겸임교수와 결혼했다. 재무학 박사인 나씨는 대신경제연구소 사장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은퇴했다. 차녀 회금씨와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도 연애결혼했다. 노 사장은 한국행정연구원장을 역임했던 노정현(77) 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의 친동생이다. 3녀 미경(42)씨는 이시영(46) 현 중앙대 교수와 결혼했다. 이시영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은 뒤 중앙대에서 사회과학대학 상경학부 교수와 동대학 국제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의 부친은 전북지사와 공보부 차관을 지낸 이춘성씨다. 4녀 회경(41)씨는 이재원(46) 현 대신정보통신 대표이사와 결혼했다. 이 대표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93년부터 금융솔루션 업체인 대신정보통신에 근무하고 있다. s123@seoul.co.kr ■ 슬로건 ‘큰大 믿을信’ 어떻게 지었나 대신증권을 오늘의 위치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은 ‘큰大 믿을信’이라는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양재봉 명예회장의 작품이다. 양 회장은 증보증권을 인수해 새 회사를 만들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믿음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신념으로 ‘대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큰 대 믿을 신’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1986년부터다. 당시 증권 산업은 성장하고 있었지만 국민들의 증권사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양 회장은 주식 투자의 대중화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홍보활동을 강화했다. 86년 3월 처음으로 TV CF를 제작했지만 시청자에게는 크게 파고 들지 못했다. 새로운 홍보전략을 구상하던 양 회장은 어느 날 열차를 타고 가던 중 열차바퀴가 레일과 마찰하면서 일어나는 소리가 매우 경쾌하다고 느낀다. 그는 “마치 옛날 서당에서 ‘하늘천 따지’하고 천자문을 읽을 때의 리듬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리가 곧 우리 정서에 잘 맞는 3·3조 가락과 닮았다는 생각에 바로 큰 대 믿을 신 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후 TV 광고에는 ‘큰 대 믿을 신’ 이라는 슬로건을 빠짐없이 사용하게 됐다. 이 슬로건은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증권회사 하면 ‘큰大 믿을信=대신증권’을 떠올리게 할 만큼 히트했다. 이후 ‘큰大 믿을信’은 20여년간 대신증권 광고의 슬로건으로 사용되면서 대신증권을 증권명가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s123@seoul.co.kr ■ 금융통 대거 배출한 ‘증권계 사관학교’ ‘증권업계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신증권은 금융계에서 내로라할 만한 인물들을 숱하게 배출했다. 주택은행장과 중소기업은행장을 지낸 박동희(76)씨, 정해왕(59)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김정태(59) 전 국민은행장, 이강원(56) 한국투자공사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986년 대신경제연구소에 대표이사로 입사한 박 전 중소기업은행장은 대신개발금융, 대신투자자문, 대신증권 대표이사를 거쳐 대신그룹 부회장을 역임했다. 정 금융경제연구원장은 미국 켄터키 주립대에서 경영대 조교수로 있다가 대신경제연구소 상무이사로 입사,89년부터 4년간 대신경제연구소를 이끌었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도 대신증권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조흥은행 출신인 김 전 행장은 양재봉 명예회장이 설립한 대한투자금융에 74년 스카우트됐다. 양 명예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그는 대신증권 비서실장으로 발령났고,80년 34세의 나이로 대신증권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강원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89년 대신증권 국제영업담당 상무이사로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퇴사 후 아시아개발은행을 거쳐 외환은행장, 굿모닝 증권 사장을 역임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이밖에 이준호(61) 대한화재 사장은 77년 대신증권 종합기획실 실장으로 입사한 뒤 이사, 상무이사를 거쳐 94년에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김한(52) 메리츠증권 부회장은 89년 대신증권에 입사한 뒤 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이사직에 올랐다.97년까지 대신증권에서 국제본부장, 인수본부장, 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증권계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s123@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동사무소에서 짝 찾아봐요

    동사무소에서 짝 찾아봐요

    “동사무소에서 총각·처녀의 결혼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결혼정보회사도 아닌데 무료로 맞선을 주선하는 동사무소가 있다. 서울 광진구 중곡2동 주민자치센터. 지난해 6월 결혼 도움방 ‘두리공간’을 열고 결혼 상담을 하고 있다. 지난 2일 김모(86)씨는 두리공간을 찾았다. 그는 “학비 부족으로 대학을 중퇴한 딸이 결혼을 못 했다.”면서 “꼭 딸이 결혼하는 모습을 더 늙기 전에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이 곳에서 결혼 상담을 하는 윤영희 상담실장은 “딸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무료 결혼 상담 중곡 2동의 결혼 상담은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최초다. 주민들의 행복을 챙겨 보겠다는 뜻에서 출발했다. 현재까지 전화상담은 480여건이고 회원은 남성이 41명, 여성이 21명이다. 이 가운데 모두 15쌍이 맞선을 봤으며,8쌍이 교제를 하고 있다. 이곳에는 상업성을 지향하는 결혼정보업체에 실망한 회원이 적지 않다. 박모(30·남)씨는 “업체는 상대 이성을 과대 포장한다.”면서 “실제 만나 보면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또 김모(39·남)씨는 “80만원 내고 겨우 만남을 두 번 가졌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윤영희 실장은 “학력과 신장 등의 이유로 가입이 거절된 뒤 이 곳을 찾은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리공간은 무료상담이다. 상담원들도 자원봉사자이다. 따라서 돈 때문에 맞선에 대해 고민할 이유가 없다. ●홍보하자 회원 급증 현재 두리공간 회원은 모두 62명이다. 여성회원이 부족한 편이다. 장선옥 담당자는 “여성이 남성의 반밖에 안 돼 연결에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최근 강변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홍보물을 부착하자 지난해보다 회원 증가폭이 3배 이상 됐다.”고 말했다. 장 담당자는 “여성회원도 많이 늘 것”이라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가장 주선이 어려운 경우는 학력이 낮은 남성. 회원들의 학력 수준을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학력이 더 높은 경향이 있다. 윤 실장은 그러나 “학력이 낮지만 성실하고 생활력이 강한 남자가 많다.”면서 “학력이 걸림돌이 될 때 안타깝다.”고 전했다. ●현재는 초혼만, 재혼은 내년쯤 가장 많이 걸려오는 전화 상담은 재혼 상담. 보통 전화 상담 가운데 70∼80%가 재혼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다. 하지만 두리공간은 아직 재혼 상담은 시작하지 않았다. 초혼 상담만 받고 있다. 재혼 상담은 이르면 내년쯤 시작할 예정이다. 윤 실장은 “이 곳에서 재혼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면서 “하지만 재혼은 자녀 양육 등 복잡한 문제가 있어 성사에 필요한 요건들을 더 공부한 뒤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상적인 배우상, 성별과 세대 따라 큰 차이 성별과 세대에 따라 따지는 배우자의 조건도 각양각색이다. 부모 세대는 가정환경을 가장 많이 따진다. 가정교육을 잘 받아야 성격도 좋다는 설명이다. 양모(63)씨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가정 교육을 잘 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른 조건은 살면서 변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성은 가정배경 가운데 현실적인 경제적 지원 가능성을 고려한다. 박모(27)씨는 “시댁에서 전세 보증금이라도 지원받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남성은 외모와 나이를 따지지만 나이 많은 총각들은 나이를 더 본다고 한다. 윤 실장은 “2세 걱정을 하는 노총각이 많다.”면서 “상당수가 젊을수록 임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여성의 나이를 본다.”고 지적했다. ●적극성이 성패를 가름한다. 장 담당자는 결혼 성사를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주문한다. 그는 “결혼을 못 한 사람은 연애 경험이 적은 소심한 사람이 많다.”면서 “만남 뒤 소감을 물으면 인상이 나쁘지 않았지만 상대가 말을 많이 하길 바라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떼쓰고… 조르고… 과시하고… “우리 딸 신랑은 적어도 대기업 사원은 돼야지.” 지난 22일 한 60대 중반의 남자가 두리공간에 왔다. 그는 “딸은 최고 신부감인 초등학교 교사다.”면서 “신랑감은 5급 공무원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영희 상담실장이 “○○화재 다니는 남자도 되겠느냐.”고 묻자, 그는 “안 된다. 적어도 ○○에는 다녀야 한다.”고 말한 뒤 나갔다. 맞선을 보려는 사람은 호기심이 많다. 또 성급한 나머지 이런저런 재미있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한 동사무소 직원이 두리공간에 왔다. 그는 “회원들 사진을 보자.”고 졸랐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사진 보기는 허용이 안 된다. 하지만 그는 “같은 동사무소 직원인데 도와달라.”고 졸랐다. 중곡2동사무소에 이런 직원이 3∼4명 더 있다고 한다. 직원 뿐만 아니라 상대방 사진을 보기 전엔 못 간다고 1시간 이상 기다리는 상담자도 적지 않다. 두리공간은 동사무소 직원끼리 입소문이 먼저 났다. 따라서 동사무소 직원한테 듣고 가입한 공무원이 상당수다. 윤 실장은 최근 한 7급 공무원에게 당황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 결혼 성공 여부를 지켜보고 동기 70여명이 가입을 결정키로 했다.”면서 “꼭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한 하사관 군인한테도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또 정식 가입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빨리 소개부터 해 달라는 사람도 있다. 판매업을 하는 김모(36)씨는 재직증명서와 건강진단서 등 제출서류를 안 낸 상황에서,“명절 때까지 부모님께 여자 친구를 데려가기로 했다.”면서 “1순위로 소개 받아야 한다.”고 다그쳤다. 하지만 관련 서류를 받기 전 소개는 안 된다고 달래는 수 밖에 없었다. 가입신청서의 음주량은 부모와 당사자 중 누가 쓰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두리공간은 부모가 신청서를 써도 다시 당사자에게 작성을 부탁한다. 직접 쓸 때 취미와 가치관 등이 더 정확히 나타난다는 것.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가운데 여성의 음주 경우도 늘어난 상황이다. 따라서 직접 쓸 때는 술을 잘 마신다는 여성도 적지 않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부모는 한결같이 “우리 딸은 술 못한다.”고 쓴다. 요즘 남자들은 능력있는 여성을 선호하는 추세인데 오히려 학력이 낮은 며느리를 좋아하는 부모도 있다. 박모(62)씨는 “너무 똑똑한 큰 며느리를 만났더니 우리가 며느리 대접한다.”면서 “작은 며느리는 부족한 면도 있어도 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배우자의 수준차이를 탓하지말라” “청소년 상담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느껴 결혼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윤영희(54) 두리공간 상담실장은 “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가정에서 관심을 받았던 청소년은 바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좋은 가정이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 7개월전 신수철 동장의 부탁을 받고 결혼 상담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현재 8년째 청소년 상담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1998년부터 서울보호관찰소에서 5년 동안 부적응 청소년과 만났고,2000년부터 매주 한 차례 서울가정법원에서 청소년 상담을 하고 있다. 그는 “3년 전 서울가정법원에서 패싸움을 한 청소년들을 만났다.”면서 “이 가운데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한 학생은 현재 부모가 하는 음식점을 돕고 있지만 이혼 가정의 청소년들은 탈선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 가운데 한 분이라도 없는 청소년은 마음 속 상처에서 오는 분노가 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윤 실장은 두리공간 회원에게 좋은 부부관계 유지를 위해 “배우자가 본인과 생각과 환경, 지적 수준 등이 다르다는 걸 탓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상대를 존중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결혼은 나의 필요가 아닌 너를 위해서 하는 것으로 개념을 바꾸라.”면서 “본인이 경제력 등을 못 갖추었다고 배우자가 그걸 채워주기 바라지 말고 그 사람이 못 갖춘 부분을 채우도록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면 상대의 허물이 아닌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오감을 즐겁게 서울성곽

    오감을 즐겁게 서울성곽

    가슴이 탁 트인다. 서울이 오색찬란한 빛을 한껏 뽐낸다. 상큼한 봄바람이 소곤거린다. 소나무 향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 자리에 나그네의 발소리가 밤의 정적을 가른다. 서울성곽 야경은 오감을 즐겁게 한다. 덕분에 직장과 일상사에서 쌓인 피로가 녹아내린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고단한 삶의 지게를 잠시 내려놓고 밤나들이를 떠나보자.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지친 오늘을 위로받고, 내일을 설계하다 보면 어느새 성곽 끝자락에 닿는다. 이끼와 넝쿨에 뒤덮여도 어느 한 곳의 기초가 내려앉지 않았다. 질곡의 역사를 묵묵히 걸어온 옛 조상의 발자취와 닮았다. 조선 600년 세월을 지켜온 성곽이 일제침략기와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무너지고, 찢겨진 것이 아쉬울 뿐이다.2008년까지 성곽을 복원한다는 소식이 반갑다. 역사의 숨결을 다시 느낄 날을 기대해본다. 최근 성북구가 밝힌 성곽의 야간 조명은 또 다른 볼거리다. 길이 1㎞짜리 금빛 용이 서울에 나타난 듯싶다. 굽이굽이 휘어진 성곽이 용의 뒤틀린 모습을 연상시킨다. 해가 기울어 어둑어둑해지자 서울성곽 아래 놓인 조명이 기지개를 켠다. 성곽과 그 사이로 뻗은 나무줄기가 황금 빛으로 태어난다. 나무는 눈꽃처럼 반짝인다. 밤나들이를 떠날 시간이다. 성북구(구청장 서찬교)가 서울성곽 9개 지구 가운데 처음으로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 빛을 밝혔다. 성북초교에서 삼청터널까지 1095m. 서울시는 총 연장 1만 8127m 중 복원된 1만 566m에 2008년까지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할 예정이다. 점등한 서울성곽 성북지구를 토박이 하두호(78) 할아버지와 함께 둘러봤다. 할아버지는 1952년부터 54년 동안 성북 2동에서 살고 있다.6남매를 키워 출가시키고, 아들과 며느리와 지금도 살고 있다. 건축 일을 해온 터라 주변 환경과 건물에 조예가 깊다. ●오후 4시 한성대 입구역 4호선 한성대 입구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빠져 나온다. 길을 건너 마을버스 3을 타고 서울성곽 입구까지 올라간다. 마을버스는 낡은 집들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을 힘겹게 달린다. 성곽이 마주보이는 공터에 버스가 멈춘다. 종점이다. 중앙에 자리한 공중화장실 뒤로 북정노인정이 보인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하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는다. ●오후 4시20분 출발 할아버지는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닐 만한 골목길을 걸으며 성북동을 ‘양과 음이 만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높은 담을 쌓아놓고 문을 걸어 잠그고 호화 주택에 살고있는 부유한 사람과, 항상 대문을 열어놓고 숟가락 수까지 공유하는 가난한 사람이 공존하는 동네란다. 성곽과 맞닿은 가난한 동네는 일제시대부터 초가집이 하나둘씩 들어선 곳이다. 사적지여서 개발이 제한된 탓에 집이 많이 낡았다. 반면 한국전쟁이 끝나고 개발된 성북초교 뒤편에는 호화주택이 들어섰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없이 잘려나간 뒤였다. ●오후 4시30분 성곽 도착 성곽이다. 돌로 만든 성곽은 단단해 보인다. 일제침략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훼손됐다가 1970년대 복원됐다. 성곽 바닥에는 1m 간격으로 조명이 설치돼 있다. 해가 지면 켜졌다가 밤 12시쯤 꺼진다. “은은한 불빛이라 잠잘 때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성곽 옆으로 난 흙길을 따라 내려간다. 눈·비가 많이 오면 질퍽해져 산책이 힘들단다. 3분쯤 걸어가자 성곽을 뚫은 문이 보인다. 성곽을 사이에 두고 종로구와 성북구로 나뉘는데 이 문이 통로 역할을 한다. ●오후 4시35분 와룡공원 종로구로 들어서자 와룡공원이 펼쳐진다. 돌과 시멘트로 닦은 길이 탄탄하다. 종로구 쪽으론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성북구 쪽엔 북한산이 뻗어 있다. 봄이 오면 벚꽃과 진달래가 만발해 절경을 이룬다. 성곽을 오른쪽에 두고 돌계단을 올라가자 산책 나온 동네 어르신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공원 정자에는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정겹다.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찾았다지. 저 정자에 앉아서 찍은 사진도 있더구만.” ●오후 4시50분 전망대 2년여 공사끝에 만들어진 계동산길. 이 곳은 전망대와 같다. 좌우로 서울이 한 눈에 보이고, 성곽이 낮아 아기자기하다. 종로구쪽을 바라보면 성균관대와 창경궁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그 길로 내려가면 감사원과 만난다. 중간에 종묘의 녹지를 감상할 수 있다. 성북구로 향하면 출발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위쪽으로는 더 올라갈 수 없다. 군부대가 주둔한 탓이다. 부대 뒤로는 청와대가 있고, 그 청와대를 인왕상과 북한산이 감싸고 있다. ●오후 5시20분 명륜지구로 내려가기 서울을 내려다 보며 올라오던 길을 내려간다. 한결 여유롭다. 사진을 찍는 연인이 눈에 띈다. 꽃밭에선 푸른 새싹이 고개를 빼들었다. 곳곳에 긴 의자가 있어 한숨 돌리기 좋다. 노부부가 다정히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쉬운 점은 성곽에 적혀 있는 낙서들이다. 누군가의 이름도, 욕설도 있다. ●오후 5시30분 선잠담지 과학 고등학교 뒤에서 성곽은 끊어진다. 성북지구가 끝나는 곳이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어둑해져 성곽 조명이 켜질 때까지 이웃한 문화재를 구경하면 된다. 성북초교 앞 교차로를 건너면 큰 길가에 선잠단지가 나온다.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상고 황제(皇帝)의 황후 서릉씨(西陵氏)를 누에신(蠶神)으로 모시는 곳이다. 뽕나무가 한가득 심어져 있다. 지금도 동네 어른들이 매년 4월에 제사를 지낸다. ●오후 5시50분 성락원 성북초교와 선잠단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성락원이 보인다. 조선말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으로 만들어진 별서(別墅)정원이다.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살려 도심속의 청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구청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6000평이 넘는 저택에는 소나무·참나무·다래나무·등나무 등 우리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가와 산비탈에 우거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낮은 담장 너머로 훔쳐볼 수 있다. ●오후 6시 ‘성북동 비둘기’를 찾아 오르다 보면 호화로운 주택단지가 나온다. 대사관 관저가 모여있는 ‘꿩의 바다마을’이다. 이 일대는 북한산 줄기로 수목이 울창하고 바위가 늘어서 있어 산새, 까치, 비둘기, 꿩들이 많이 살았단다. 시인 김광섭이 이곳 풍경을 주제로 ‘성북동 비둘기’를 지었다. 대사관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호주·스웨덴·칠레·슬로바키아 대사관이 곳곳에 숨어있다. 상당히 넓은 곳이라 적당히 올라갔다 내려와야 힘들지 않다. ●오후 6시30분 간송미술관 성북초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간송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다. 고 전형필 선생이 1938년,33세 때 세웠다. 대지가 4000평이라 도시 속에 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적하고 조용하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평생 모은 수장품을 정리·연구하기 위해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부속기관으로 발족했다. 미술사를 연구하는 곳이라 일년에 두 차례,5월과 10월에만 박물관을 개방한다. 국보급 문화재도 10여 점 소장하고 있다. 허 할아버지는 “경기 광주 부자였던 간송 선생이 한국전쟁 때 가난한 주민들에게 많이 베풀었다.”고 말했다. ●오후 6시50분 이태준가 성북동길로 내려오면 ‘쌍문다리’를 만난다. 이 길은 예전에 다리 두 개가 나란히 놓인 냇가였다. 냇가는 차도로 바뀌었지만 쌍문다리라는 명칭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성북2동 동사무소에 도착하면 바로 붙은 찻집이 보인다. 바로 이태준가다. 이 집은 1900년대 지어진 건평 23.2평의 건물로 개량 한옥의 요소를 잘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한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되는데 이 집은 규모는 작지만 사랑채와 안채를 집약시킨 형태다. 감나무, 사철나무로 꾸민 정원은 아담하다. 찻값은 7000원 안팎. ●오후 7시5분 이재준가 성북동 길을 횡단하면 덕수교회가 보인다. 교회 뒤편으로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이재준가를 만난다. 이 곳도 1990년대 지어진 건평 29.8평의 아담한 집이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의 안채와 이에 부속된 행랑채로 이뤄져 있다. 바깥마당의 우물가 등 집터 주위에 수목은 마당 소나무와 어울려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교회가 관리하는 터라 주로 문이 닫혀 있어 아쉽다. ●오후 7시30분 야간 성곽나들이 어둑해지자 조명이 성곽을 은은하게 비춘다. 성곽에서 1m 떨어진 지점 바닥에서 성곽 위쪽으로 빛을 투사하는 방식이다.3억원을 들였다. 출발점에 다시 오르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세상의 모든 빛이 성곽을 향해 달려오는 듯하다. 가로등 역할도 해 산책하기 좋다. 성곽을 가로질러 종로구로 넘어가자 서울 야경이 펼쳐진다. 멀리 서울타워가 보이고, 승용차들이 꼬리를 물고 집으로 향한다. 종로구쪽 성곽은 조명이 없지만, 가로등이 많다. 허 할아버지가 꿩의 바다마을에서 성곽을 내려다 보라고 추천했다. 승용차를 타고 주택단지 위쪽으로 단숨에 올랐다. 길이 1㎞짜리 금 빛 용이 서울에 나타난 듯싶다. 굽이굽이 휘어진 성곽이 용의 뒤틀린 마디와 닮았다. 금빛 성곽이 성북동의 음과 양을 조용히 비춘다. ●서울성곽 서울 주위를 둘러싼 조선시대 석축 건축물.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등 4대문과 홍화문(동소문·혜화문), 소덕문(서소문), 광희문(수구문·), 창의문(자하문) 등 4소문으로 이어져 있는 서울의 울타리다. 높이 40척(12m)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5만 9500척으로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고 있다. 형태는 타원형. 조선 6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 한 곳의 기초 부문도 내려앉지 않아 우리 조상의 건축 기술을 증명하는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이끼와 넝쿨이 뒤덮인 성곽은 역사의 질곡을 묵묵히 견뎌온 옛 조상의 삶을 느끼게 해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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