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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명절 설거지/이용원 수석논설위원

    결혼해 분가한 뒤 한동안은 명절 전날 새벽에 온 식구가 형 집에 갔다. 아침을 먹고 어머니가 두 며느리를 인솔해 장보러 가시면 짐꾼 노릇 하는 것과, 형과 함께 놀며 쉬며 날밤을 치는 것이 내가 기여하는 몫이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크니까 학원이다 뭐다 해서 하루 전 출발이 어려워졌다. 대신 아내가 상에 올릴 음식 몇가지를 해서 당일 새벽 가는 걸로 업무를 분담했다. 그러다 보니 짐꾼 노릇도 날밤 치기도 손을 떠나 차례 지내면서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생각 난 것이 설거지였다. 사실 음식 장만에 고생한 형수와 아내가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께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단박에 거절하셨다.“며느리들이 있는데 아들이 부엌일 하는 꼴은 못 본다.”고 말씀하셨다. 매사에 진취적이신 어머니의 반응으로선 의외였다. 그러기를 여러해, 이제는 형수도 아내도 쉰을 넘었다. 이번 설에는 설거지를 허락하실까. 차례 지내는 동안 할 일 따로 없는 내 마음을 알아주셔야 할 텐데.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며느리 의원님도 명절 스트레스

    며느리 의원님도 명절 스트레스

    여성 국회의원들의 명절나기는 어떤 모습일까. 평상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뉴스메이커인 이들도 명절에는 며느리와 딸, 아내 등 보통 여성의 자리를 실감하게 된다.‘텃밭 관리’까지 더해지면 여성의원들에게 명절은 이중·삼중고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설 대신 신정을 쇠거나 음식 장만을 나눠 하는 등 ‘자기만의 색깔’로 명절을 보내는 여성 의원들이 많아졌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6일 여성 의원들의 설 풍경을 미리 들여다봤다. 열린우리당 윤원호 의원은 남편이 3대 독자라 1년에 치르는 제사만 아홉차례. 연휴가 길든 짧든 무조건 시댁에 가야 한다. 올해도 17일 오후에 내려가 밤새 명절 준비를 하고 18일 오전에는 떡국을 끓여낸다. 그는 “30년간 하다보니 이골이 났다.”며 웃어보였다. 같은 당 이은영 의원의 시댁은 태백이다. 멀고 험한 길이지만 결혼생활 27년간 명절이면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시댁에 갔다. 이 의원은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여성운동을 하면서 풀어냈다.”고 귀띔했다.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명절을 온몸으로 느끼는 여성 국회의원은 내가 유일하다.(웃음)”고 주장했다. 지역구 여성의원 10명 가운데 명절 부담이 비교적 덜한 수도권 지역을 빼면 ‘유부녀·지방’ 여성의원은 김 의원(부산 연제구)밖에 없다. 김 의원은 설 명절 때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역구 시장 방문과 가족의 설 제수용품 준비를 한꺼번에 하는 ‘1타2득 작전’을 쓴다. 매해 설 명절에 손을 데가면서 떡국 1000그릇 나눔 운동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명절만큼은 며느리, 딸 노릇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설날 당일에는 서울 암사동 시댁에, 다음날에는 친정인 경기도 안양에 갈 예정이다. 심 의원은 “둘째 며느리인데 평소 집안일을 돕지 못해 시댁 형님에게 가장 미안하다.”면서 “그래서 명절에 시댁에 가면 부엌으로 들어가 부엌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맏며느리인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은 동서들과 음식을 분담해 설 당일 만난다. 하지만 명절이면 딸의 ‘이유 있는’ 항의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남자가 먼저 절하고, 음식도 시어머니와 남자 친척들이 한 상에 앉아 먹는 문화에 분개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딸의 반기 덕분에 지금은 맏아들만 빼고 같은 상에서 동등하게 식사를 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같은 당 서혜석 의원도 동서들과 음식을 나누어 장만해 설 당일 경기도 일산 시댁에서 모인다. 서 의원은 “사회생활을 오래해서 ‘정치인 며느리’를 이해해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양력 설을 쇤다. 이번 명절에는 책도 읽고 가족들과 많은 대화도 나눌 예정이다. 전 의원은 “분주한 명절을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혜영 나길회 김기용기자 koohy@seoul.co.kr
  • 손자보고 약혼하고…언제나 열일곱살

    손자보고 약혼하고…언제나 열일곱살

    13년만의 금의환향-한때 유행가 「나는 열일곱살예요」로「팬」의 심금을 뒤흔들었던 가수 박단마씨(46)가 한국을 떠난지 13년만에 5월 26일 귀국했다. 『고국이 그리워도 무서워서 못왔어요. 지금도 거리에 나가면 돌팔매가 날아올줄 알았어요. 놀랄만큼 너무 많이 달라졌군요』-유창한 한국말을 빼놓고는 박단마씨의 모습도 너무 많이 변해 있다. 거리에 나가니까 미국여잔줄 알더라는 박단마씨는 자신의 말처럼 그녀의 모습은 거의 「아메리카나이즈」했다. 큼직한 눈모습, 오똑한 코, 커다란 입, 자세히 뜯어보면 옛날의 그얼굴 그대로지만 옷차림, 화장, 「매너」가 풍기는 인상이 한국 여인의 그것과는 딴판이다. 미국인 남편과 미국적의 아들, 미국인 며느리 그리고 2살반 된 미국태생 손자가 있는 미국속의 생활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놀랄만한 일은 46세(본인은 그렇게 말하지만 친지는 3세쯤 더 되는 것으로 귀띔)라는 연령에 비해 너무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굴엔 실오라기만큼도 주름살이 없다.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측근의 찬사에 그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미국에서는 20대 처녀로 알고 있어요. 27세쯤으로 보고 있다나요.-』 한국에서 그가 「히트」시킨 노래가 『나는 열일곱살이에요.』그의 노래제목처럼 항상 열일곱 처녀로 있는 것일까? 아닌게 아니라 박단마씨는 『얼마전에 그 곳 미국인과 약혼(約婚)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24세의 아들, 21세의 며느리 그리고 2살반 된 손자가 있는 「할머니」라고 그녀는 결코 생각키지 않을 듯하다. 신랑 될 사람은? 이 질문에 그녀는 숨김없이 『아주 마음씨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보다 10년 연상인 「보브」란 사람. 박단마씨의 아들 「리키」박 씨와 함께 자동차상을 하는 사람이란다. 약혼기간은 상당히 지났지만 결혼은 심사숙고중. 『이번에 결혼하면 이제는 죽을때까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혼하겠다』는 것. 그녀는 『마지막 결혼』이라고 표현했다. 이 「마지막 결혼」이란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묘한 여운을 풍긴다. 박단마씨의 파란많은 애정생활을 집약하는 것 같은 느낌. 13년전, 당시 가요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박단마씨는 10세난 혼혈아 아들을 앞세우고 도망치듯 모국을 떠났다. 아들의 아버지가 미군(당시 헌병중위)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아들을 임신 시킨 뒤 한국을 떠난 「리키」중위는 아들이 10세가 되도록 오지 않았다. 『거리에 나가면 돌이 날아 왔어요. 무서워서 살 수가 없었죠』 『아들이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트기라고 따돌려 놓기 때문에-결국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결심이 선거죠』 울면서 떠났던 그 때를 회상하면서 그녀는 말을 잊었다. 13년 동안 한번도 오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거란다. 미국에 오는 고국사람들 편에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는 소식을 들어도 믿어지지 않았단다. 『지금도 사실은 혼자 외출하기가 겁나요』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그녀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던가는 짐작할 수 있는 일. 10세 아들과의 「정처없는 도미생활」도 이제는 확실한 기반이 잡힌 것 같다. 자동차상을 하고 있는 아들은 「캘리포니아」에서 4만「달러」짜리 집을 갖고 있고 월수입 3천「달러」 이상. 미국 사회에서도 중류급 이상이다. 아들 며느리와 별거, 「할리우드」근교 「아파트」에서 살고있는 그녀는 지금도 내키면 무대에 서서 노랠 부르지만 그 수입 아니라도 삶을 즐길 여유는 갖고 있다는 이야기. 그녀가 사진으로 보이는 「아파트」의 실내장식은 연예인의 그것답게 화려하고 아늑했다. 작년말엔 「유럽」일주 공연의 연예단에서 초청을 받았으나 귀국준비 때문에 거절했다는 것. 『앞으로도 얼마든지 떠날 기회가 있다』고 자신에 차있는 말씨다. 가느다란 청음(淸音), 소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이 질문에 박단마는 『성대는 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는 목소리가 굵어진 대신 훨씬 박력있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그녀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귀국공연과 「레코드」취입을 통해서 곧 알 수 있게될 것 같다. 1개월 가량 머무를 예정이던 그녀는 서울 시민회관 공연과 박춘석(朴椿石)씨와 약속한 「레코드」취입을 위해 7월말까지 체류할 예정. 그와 같은 또래의 가수는 사실상 거의 퇴역한 지금이지만 박단마씨는 전혀 그럴 기색이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노래는 이제부터」라는 말투다. 『처음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는 막연했어요 거기서 6개월동안 공연하고 「로스앤젤리스」로 갔는데 그 땐 더욱 막막하더군요』 박단마씨가 두 번째 결혼한 상대가 이 「로스앤젤리스」에서 「호텔」을 경영하던 미국인이었다. 『거리에 나가야 아는 사람도 없고 길도 모르고 일할데도 없고-그런 때 친절을 베풀어주니 천주처럼 믿게 되더군요』 한국에서 맺어진 「리키」중위와는 그뒤 「샌프란시스코」서 만났단다. 무척 서로 그리워 했지만 그땐 이미 늦은 몸들. 「리키」씨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돼있고 박단마씨 또한 새 살림을 차린 뒤였다. 현재의 약혼자 「보브」씨는 『나같은 미인은 이 세상에 또 없는줄 알고 있다』고 자랑할만큼 그녀는 소녀적이다. -미국인 며느리는? 『아들이 나를 좋아하니까 며느리도 퍽 따르고 있어요. 한국에 오겠다고 열심히 한국말을 배우고 있어요. 손자 녀석도 한국말을 곧잘 한답니다』 그의 아들 「리키·주니어」역시 10세때 떠난 한국을 잊지 못한다고 자랑했다. 이번에도 동반하고 싶었지만 『내가 먼저 가보고-』다음으로 약속했다는 것. [선데이서울 70년 6월 7일호 제3권 23호 통권 제 88호]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4)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4)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바뀐 이후 섬 전체는 개발이 가속화되어 민속촌이 아니고선 옛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제주시에서 남서쪽 직선거리로 15㎞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수암 마을. 제주시와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해안 일주도로에서 멀리 있는 까닭에 개발이 늦어졌다. 돌로 담을 쌓고, 초가를 짓고, 돌하르방을 만들었던 제주사람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원래 물이 용출되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마을 이름이 유수암(流水岩). 마을로 들어서자 샘물이 나오는 공동빨래터에서 동네아낙들이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집에 거의 세탁기가 있어 빨래하는 모습을 보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마치 잃어버린 시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신기한 광경을 보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기자에게 아흔의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카랑카랑한 강위원 할머니의 말이 떨어진다. “늙은이 찍엉 뭣에 쿠꽝?” 며느리를 집에 들여도 시어머니랑 각자 살림을 할 정도로 생활력이 강한 제주의 여인네들. 허벅(제주방언. 물을 길어 나르는 동이)에 지고온 빨랫감을 물에 헹군 뒤 양손에 잡고 쥐어짜는 손아귀에선 억센 섬여인의 힘이 느껴진다. 예로부터 빨래터는 방망이를 두드리며 삶의 고단함을 해소하는 곳이자 옹기종기 모여 이웃간의 정을 나누며 동네의 이 소문 저 소문을 전하던 곳이다. 한동안 이방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녀들만의 진짜 사투리 대화로 시끌벅적하다. 마을 정중앙을 흐르는 유수암천에서 내려오는 첫물은 받아서 음용으로 쓴다. 그리고 흘러 내려온 다음 물은 몸을 씻는 데 사용하고 세 번째는 빨래를 하는 데 사용하는데 물쓰는 일을 마치 곡식 아끼듯 한단다. 집과 밭의 둘레에 나지막이 둘러쳐진 전통 돌담은 거친 제주바람을 꿋꿋이 이겨내며 주민들과 수십년 동안 정겨운 동거를 해오고 있다. 돌을 다루는 장인 정신과 돌을 이용하는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듯 느껴졌다. 대부분의 마을 농가는 감귤을 재배한다. 최근 들어서는 귤값이 폭락해 귤농사를 접고 감자를 재배하거나 목축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단다. 조랑말은 제주의 중산간 지역에서 반야생 상태로 서식하며 긴 세월 동안 제주 환경에 적응하여 온 작은 말이다. 자그마한 체격으로 환경에 대한 강한 적응력과 지구력을 갖고 있어 흔히 제주민에 비유되기도 한다. 마을에는 외지인들도 들어와 산다. 전직 은행 간부 출신인 문주용(60)씨는 새삶의 터전을 관광 마을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펜션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유채도 같이 재배하고 있다. 기존의 유채에 있던 독성을 없앤 개량 유채품종을 키워 마을 전체가 노란 유채물결로 덮이는 꿈을 꾼단다. 원래 제주도에는 한라산 주변에 주택들이 발달하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4·3사건 이후 마을 전체를 중산간 마을 아래로 이주시키는 바람에 위로는 마을이 거의 없다. 유수암리는 해발 300m 정도의 중산간 마을로서 섬 전체가 개발로 인해 점차 원형을 잃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제주도 특유의 풍물과 마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돌이 한데 어우러져 ‘제주의 향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수암 마을. 그곳에선 유구한 ‘탐라 역사’의 숨결과 향기가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진 글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어린이책꽃이]

    ●이주헌 아저씨의 날아다니는 미술관 여행(이주헌 지음, 상상공방 펴냄) 미술관이라는 말은 미술박물관의 준말이다. 미술관은 박물관의 일종이다. 박물관을 의미하는 영어 뮤지엄은 그리스어 무세이온(museion)에서 온 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홉가지 학예의 여신(뮤즈)의 전당이라는 뜻이다. 동화 형식의 재치있는 글을 통해 그림 지식과 미술관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는 책. 반 고흐·고갱·세잔 등 후기인상파, 쇠라·시냐크 등 신인상파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9500원.●건축가 김수근 공간을 디자인하다(황두진 지음, 나무숲 펴냄) 서울의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가회동, 재동, 삼청동, 원서동 등을 아우르는 지역. 지금도 한옥이 많이 보존돼 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건축가 김수근은 이 북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나의 집은 서울의 북촌”이라고 할 정도로 북촌을 사랑한 그는 서울에서 사는 동안 여러번 이사를 하면서도 늘 북촌을 벗어나지 않았다. 올림픽체조경기장, 경동교회, 한계령휴게소, 청주박물관 등의 실물사진을 통해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몄다.1만 2000원.●수라간에 간 홍길동, 음식의 역사를 배우다(김선희 지음, 파란자전거 펴냄) 육당 최남선은 곰탕과 설렁탕이 고려시대 몽골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몽골의 ‘슐루’라는 음식과 이름·요리법 등 여러가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 그러나 일반적으로 설렁탕은 조선의 ‘선농단’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임금과 정승판서가 음력 2월 동대문밖(현재 제기동) 선농단에서 1년동안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유래된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음식의 역사를 살핀 음식역사 동화.8700원.●흙속의 작은 우주(앨빈 실버스타인 등 지음, 김수영 옮김, 사계절 펴냄) 산이 낙엽으로 뒤덮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의 양을 토양동물들이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지렁이, 톡토기, 쥐며느리, 개미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낙엽을 먹은 지렁이는 배설을 통해 2㎜이하로, 톡토기는 수십 마이크로미터 크기로 분해한다. 동물의 배설물은 ‘자연 쓰레기’중 상당한 양을 차지한다. 똥풍뎅이류는 배설물만을 전문으로 처리한다. 어린이를 위한 토양동물 이야기.9800원.
  • “비상금 통장·터주단지 다 찍어 실었네유”

    “비상금 통장·터주단지 다 찍어 실었네유”

    “아 글쎄, 서랍장까지 모두 뒤져서 일일이 사진을 찍었다니까요. 딸이나 며느리라도 같이 살았다면 속옷 같은 것은 어쩔 뻔했는지, 원….”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에 사는 김명호(72)씨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주 펴낸 ‘김명호 씨댁 생활재 조사보고서’를 24일 받아들고는 “이름 석자만 올라있어도 영광인데, 책 한권에 온통 우리집 얘기가 실려 있으니 기분이 좋다.”며 기뻐했다. 생활재(生活財)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갖추는 생활용품을 뜻한다. 김씨는 “뭐 저런 것을 다 집에 갖다 놓고 사느냐고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노인정에 가서 자랑하는 것은 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라며 웃었다. 부인 강신성(71)씨는 “박물관에서 조사를 나오면 어떻게 나 혼자서 밥을 먹겠느냐는 생각으로 담북장 끓여 점심 한끼 차리곤 했을 뿐”이라면서 “이렇게 책이 되어 나올 줄 생각이냐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강씨는 지금은 대전시에 편입된 충남 대덕군 진잠면 용계리 옥살미 출신으로 1955년 김씨와 결혼해 2남2녀를 낳았다. 반곡리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역이다. 민속박물관은 김씨네 생활재 말고도 ▲민속지 ▲영상민속지 ▲민가(民家) 등 반곡리를 대상으로 한 4권의 조사보고서를 집중적으로 펴냈다. 예정지역 50여개 마을을 모두 조사한 ‘인류·민속분야 문화유산 지표조사’보고서 7권도 별도로 발간했다. 반곡리에는 모두 176가구가 산다. 김씨 집이 집중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그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데다 집을 보호하는 성주, 아이를 기원하는 삼신전대, 집터를 지키는 터주단지를 아직도 모시고 있는 만큼 생활재를 함부로 버리거나 바꾸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속박물관은 2005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김씨집을 조사했다. 안채·사랑채·창고채의 장롱·서랍·선반 속과 뒤뜰 장독의 내용물까지 조사해 모두 5000여점이 사진과 함께 보고서에 실렸다. 김씨 집에는 부부만 아는 비밀공간이 있는데, 조사팀의 배려로 보고서에는 담기지 않았다. 김씨는 “우리 아이들도 아직은 눈치를 못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비상금이 ‘쬐금’ 들어있는 예금통장까지 모두 찾아내 촬영했다.”고 조사의 철저함에 감탄했다. 이미 토지보상까지 받아 조만간 반곡리를 떠나야 하는 김씨는 “밤중에 자리에 들면 고향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면서 “나이라도 젊으면 땅값이 조금이라도 싼 논산이나 서천으로 나가 농사를 다시 시작해 보겠지만, 이제는 세월이 없다.”고 서운해했다. 부인 강씨는 “아파트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부터 큰 속 썩는다.”면서 “작은 아들네가 애 낳는다고 해서 가보니 아파트는 열통 터져서 못살겠더라.”고 한숨지었다. 글 연기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강학중 가족클리닉] 시어머니만 챙기는 남편 야속해요

    Q4남매 중 막내 외아들로 태어난 우리 남편이 매주 시댁을 찾아가 시어머니와 자고 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자식을 키워온 시어머니는 그렇게 끔찍이 챙기면서 장인, 장모는 나몰라라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별 문제가 없는데 시어머니 얘기만 하면 버럭 화를 내고 싸웠다하면 1주일 내내 말도 안 합니다.8살,6살된 우리 아이들은 아빠만 찾는데 아빠 역할도 챙겨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남편은 도대체 누구랑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문혜숙·가명 33세)- A한 가정을 이루고 두 아이의 아빠와 한 여성의 남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분화’가 안 되고 지나치게 어머니와 밀착이 되어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군요. 더러는 이런 남편을 둘도 없는 효자라고 칭찬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문제로 아내와의 갈등을 일으키고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소홀하다면 바람직한 효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효도는 우리가 계속 계승해 나가야 할 덕목이긴 하지만 아랫사람의 의무만을 강조하는 일방적인 효도가 아니라 이 시대에 맞는 진정한 효도의 의미를 재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4남매를 혼자서 키워 주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 안쓰러움, 의무감, 죄책감 등 남편이 시어머니에 대해서 느끼는 복잡한 심정을 먼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주 시댁에 가는 것이 지나치다면 격주나 한 달에 한 번씩으로 횟수를 조절해 보십시오. 또한 매번 자고 오는 것이 마음에 걸리면 그날 갔다 그날 돌아오는 것으로 조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홀로 사시는 어머님에 대한 도리는 아들만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니만큼 누나들과 분담하는 것도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 시어머니가 서운해 하시기도 하고 며느리에 대한 불만도 나타내시겠지만 시어머니를 조금도 서운하게 하지 않고 문제를 푸는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결혼 전의,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도 아들이 결혼한 후에는 조정이 되어야 합니다. 아들로서의 도리만 지나치게 챙기는 남편 때문에 다툼도 많았으리라고 보는데 본인의 서운함과 불만을 어떻게 표현하셨는지도 되돌아 보십시오. 자기 나름대로 효도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을 비난하거나 공격한 적은 없는지, 그리고 남편 또한 며느리로서의 도리도 안 하는 못된 여자로 아내를 몰아세운 적은 없는지 대화를 통해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도했던 방법들이 비효과적이거나 잘못되었다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문제가 더 커지기만 할 뿐입니다. 아내가 못 다한 도리를 나라도 더 잘 해야지 하는 마음에 남편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남편이 요구하고 불평하기 전에 내가 먼저 시어머니께 전화도 드리고 찾아뵐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그리고 친정 부모님께 소홀한 남편에게 나의 서운한 감정을 부드럽게 전하고 기분 좋게 요청해 보십시오. 내 부모님께 잘 하는 아내를 위해 처가에 좀 더 잘 하려고 노력하는 남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두 분 사이에는 별 문제가 없다니 조금만 노력하신다면 지금의 갈등이 오히려 더 큰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길섶에서] 가장의 서열/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가족과 함께 TV에서 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개가 주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오직 하나며, 그 다음 서열은 개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식구도 나름의 기준으로 서열을 매긴다고 한다. 프로가 끝난 뒤 가족간에 때아닌 서열 논쟁이 벌어졌다.1위는 애완견과 늘 같이 있는 아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다큐멘터리대로라면 2위는 애완견이고,3위를 놓고 딸과 아들이 서로 자신이라고 우긴다. 그러면 5위는 가장인 나라는 얘기 아닌가. 시중에도 비슷한 유머가 있다. 시골 노인이 서울의 아들집에 몇달 묵어보니 대충 서열 파악이 되더라고 한다. 며느리가 1위, 손자·손녀가 2∼3위,4위는 애완견,5위는 아들이라는 것이다. 객에 불과한 할아버지는 당연히 꼴찌다. 그래서 이 유머는 노인이 시골로 돌아가면서 아들에게 “5번아 6번은 간다.”는 쪽지를 남기는 것으로 끝난다. 요즘 가장의 위상을 대변하는 것 같아 일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명색이 가장인데 개보다도 서열이 뒤진다는 것이 서럽다. 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kimhj@seoul.co.kr
  • “그렇게 오고 싶던 곳… 가슴 뭉클해요”

    “그렇게 오고 싶던 곳… 가슴 뭉클해요”

    “아무 생각도 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거든. 근데 막상 형님 이름을 보니까 가슴이 막혀서….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막막해져.” 10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서울현충원에 안치된 형을 찾은 권 바오로(76) 할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어갔다. 옆을 지키던 부인 이 모니카(69) 할머니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부는 고향인 경북 선산을 떠나 경상도, 인천 등지를 떠돌다가 10년 전 경남 산청군 성심원에 안착했다. 그사이 한번쯤 형이 있는 이곳을 찾을 법도 했건만 그러지 못했다.‘한센병’을 앓은 탓이다. “온 지 20년이나 돼서….”라며 명단을 더듬다가 형의 이름을 발견한 권 할아버지는 “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해.”라며 입을 다물었다. 이날 권 할아버지처럼 십수년만에 서울을 찾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10명. 모두 한센병력을 가지고 있다. 노인복지시설 성심원은 “죽기 전에 살거나 놀던 곳을 가보고 싶다.”는 이들의 바람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했다. 서울은 8번째로 찾은 곳이다. 서울 종로가 고향인 최 루시아(80) 할머니는 무려 43년만에 서울땅을 밟았다.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인 최 할머니는 “명동성당을 가장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갈 수 있게 됐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연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 알려져 딸이나 사위들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운 것이다. 병이 옮을까 성심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으로 보낸 3남매는 모두 장성해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사위들은 최 할머니가 한센병력을 가진 사실을 모르고 있다. 30년만에 서울을 찾은 박 세레나(70) 할머니도 “건물도 높고 길도 넓고…. 많이 변했네.”라며 좋아하면서도 자식들 얘기에는 “사는 게 어려워서 자주 보지 못해.”라고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8살 때 고아원으로 보냈던 딸의 결혼식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자신이 한센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들과 동행한 성심원 임재순 가정사팀장은 “모두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사위나 며느리, 손자, 손녀들에게 아예 죽은 것으로 된 분들도 있다. 요즘 한센병은 독감보다도 못한 것인데 아직까지 편견의 벽에 부딪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날 국립묘지를 들르고, 한강 유람선, 남산 케이블카를 타며 기억과 상상 속에 남아 있는 서울의 모습을 하나하나 바꿔갔다. 저녁에는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가족과 후원 봉사자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11일에는 청와대와 명동성당, 청계천, 탑골공원 등을 둘러본 뒤 성심원으로 돌아간다. 글 사진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신문읽기 ‘평생소원’ 이루다

    신문읽기 ‘평생소원’ 이루다

    “받아쓰세요.‘베짱이는 후회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뚝뚝’은 소리가 세니까 쌍디귿이죠.” 1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평생학습센터 한글교실 중급반. 심인복(42) 강사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받아쓰기 문제를 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 31명이 숨소리도 죽이고 연필을 굴린다. 진지함이 교실을 달군다. “자 이제, 책의 문제를 따라 읽고 답을 적어봐요.‘베짱이가 무엇을 뉘우쳤나요.’” 저마다 손을 번쩍 들고 답을 얘기한다.“배가 고픈 거요.”“노래만 부른 거요.”“일하지 않은 거요.”어르신의 천진함이 교실에 퍼진다. ●우리는 지금 문맹탈출 중 배움의 기회를 놓쳐 반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어르신 120명이 문맹(文盲) 탈출 중이다. 관악구 평생학습센터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 초·중·고급반에서다. 남학생은 3명뿐이고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연령은 5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일주일에 2차례씩 등교해 한글과 기초산수, 생활영어·한문을 배운다. 고급반인 이명희(67) 할머니는 “내 이름을 내가 쓸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구구단을 외우고 계산기 사용법을 배우는데 얼마나 신기한지. 요즘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 평생학습센터는 2004년 9월 한글교실을 열었다. 지역 주민 1만명이 초등학교 미졸업자로 조사돼 문맹 탈출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그러나 수강생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두렵다고, 창피하다고 꼭꼭 숨어 있기 때문이었다. ●주민 1만명이 문맹 그래서 복지관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글을 쓸 줄 모르는 성인을 발견하면 한글교실로 이끌었다. 평생학습센터 문예교육담당 오윤나씨는 “문맹을 고백하고 배우기 시작하면 한글교육의 80%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명희 할머니도 며느리의 손에 이끌려 처음 한글교실을 찾았다.“겁나서 배우지 않으려고 했지. 며느리가 해보자고 용기를 북돋워줘서…. 처음 글씨를 쓰려고 하는데 얼마나 손이 부들부들 떨리던지.” 그러나 용기만 내면 어르신들은 몇 개월 만에 한글을 술술 쓰고 읽었다.“난생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생결단’을 낼 각오로 공부하세요. 자연스레 실력이 쑥쑥 자랍니다.”심 강사의 설명이다. 한글교실 초급반에선 단어와 문장을, 중급반에선 띄어쓰기와 받침을, 고급반에선 문법을 가르친다. 최근에 관악구의 지원을 받아 성인을 위한 초·중·고교 한글교재도 발간했다.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와 그림, 예문, 노랫말로 꾸몄다. 이순재(68) 할아버지는 “신문을 읽고, 내 손으로 은행 돈을 찾고…. 평생 소원을 다 이뤘다.”면서 “다른 까막눈들도 나처럼 용기를 내서 새 인생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기고] 올케와 며느리,그리고 도련님,아가씨의 호칭/최기호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한글학회 이사

    한국여성민우회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여성비하 호칭을 바꾸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가족 관계에서 쓰이는 여러 호칭 속에 불평등하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숨어 있다는 주장이다. 민우회는 이미 말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온전하지 못한 의미를 주는 ‘편부모’ 대신 ‘한부모’로 바꿔 쓰자고 제안하여 부모가 다 있지 않은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일도 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번 여성비하 호칭 바꾸기는 잘못된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올케, 며느리, 아가씨, 도련님, 형님 등의 어휘 선정 문제이다. 잘못된 주장이나 가설을 그대로 믿고 맹종하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셈이 된다. 특히 어원은 객관적이고 문헌의 고증이 되어야 믿을 수 있는 학설이 되는 것이다. 호사가나 전문가가 아닌 재야 필자들이 억측으로 내놓는 수많은 주장을 가려 쓸 줄 알아야 한다. 민우회에서 ‘올케’의 어원은 ‘오라비의 겨집’에서 유래한 비칭으로 ‘오라비의 계집’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올케의 어원은 ‘두시언해’ 등에 나타나는 오라비(오빠)에 겨집(아내)이 합쳐져서 ‘오랍겨집’이 되었고, 그것이 축약되어 ‘올케(올겨집)’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올케는 ‘오빠의 아내’를 지칭하는 보통의 말이며 ‘겨집´ 또한 여성을 비하하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옛날에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을 ‘겨집’이라고 지칭했다. 이것이 의미변화를 일으켜서 ‘계집’이 되었다.‘마누라’라는 말도 옛날에는 임금이나 상전에게 붙이던 아주 높임말이었는데 점점 변하여 지금은 아내를 낮춰 부르는 말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며느리’는 기생한다는 뜻의 ‘며늘’과 ‘아이’가 합쳐진 말로 ‘내 아들에 딸려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라는 의미이니 철저한 남존여비 사상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했다. 며느리는 며늘/미늘/마늘+아이의 구조에서 어원을 주장하는 이가 천소영이다. 그러나 며늘/미늘/마늘이 기생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옛 기록이 없다.‘며느리’의 ‘리’를 ‘아이’로 해석하는 것도 근거가 없는 틀린 해석이다. 그리고 며느리를 메(진지, 밥)+나르(다)+이로 분석한 이가 백문식이다. 그는 며느리를 제사 때 음식(제삿밥+메) 나르는 사람으로 보았지만 이것도 아무런 증거 자료가 없다. 틀린 어원설을 가지고 여성비칭을 설명하려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문헌자료인 ‘왜어류해’에는 ‘며 리’가 보이고,‘훈몽자회’에는 ‘며느리’가 보이며,‘가곡원류’에는 ‘며 ’이 보이고,‘청구영언’에는 ‘며늘아기’가 보인다. 이들 자료에서는 여성 비하호칭이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 민우회는 또 결혼한 여자가 남편의 여동생이나 남동생을 부를 때 사용하는 ‘아가씨’와 ‘도련님’을 문제삼고 있다. 과거에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극존칭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극존칭에 문제는 있지만 현재는 극존칭을 거의 쓰지 않으며 여기에 여성 비하의 의미는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호칭어와 지칭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가령 자기 아내를 부를 때 ‘여보’라고 하면 호칭어가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내를 ‘내 집사람’이라고 말하면 지칭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호칭어에서 역사성을 알아야 이해할 수가 있다. 서양은 수렵사회이고 수평사회이며 부부중심사회로 직접호칭이 발달하였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이며 수직사회이고 부모자녀 중심사회로 간접호칭이 발달하였다. 서양은 대통령이나 아버지에게도 ‘너(you)’라고 부를 수 있고,‘부시’라고 직접 이름을 부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대통령이나 아버지 이름을 직접 부를 수도 없고 ‘너’라고 직접 호칭했다가는 난리가 나는 것이다. 최기호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한글학회 이사
  • 미스·강원도청(江原道廳) 한명희(韓明熙)양-5분데이트(81)

    미스·강원도청(江原道廳) 한명희(韓明熙)양-5분데이트(81)

    신사가 뽑은「퀸」84호의 아가씨는 한명희(韓明熙)양. 부리부리한 눈매, 뜸직한 체구의 47년생이다. 학력은 성심여대(聖心女大)를 2년에서 중퇴했고. 학교를 그만두자 곧장 택한 직장이 바로 강원도청(江原道廳). 2년째 계속 도청 내무국장실에 근무하고 있는 성실한 아가씨이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한 때 축구선수를 지내기도 했던 한상헌(韓相憲)씨(48). 1남2녀중에 맏이답게 체격도 뜸직하고 성격도 부드러워 동생들의 상담역을 많이 한다고. 직장에서의 별명은「맏며느리」. 혼담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취미는「스포츠」. 아버지를 따라 한겨울에는「스케이트」를, 여름에는 수영을, 또한 봄 가을에는 등산을 즐긴다는「스포츠」만능 아가씨이다. 즐겨듣는 노래는「언체인드·멜로디」. 체구가 풍겨주는 인상과는 달리 식성은 꽤 까다롭다. 육류(肉類)는 전혀 먹지 않고 냉면이나 산뜻한 야채요리만을 먹는다고. 좋아하는 빛깔은 검정색 계통의 것들. 비교적 큰 체구를 감출 수 있어 검은색이 마음에 든단다. 『결혼은 항상 스스로의 일에 충실할 줄 아는 남성으로 서로 마음에 드는 상대만 나타난다면…』 언제든지 OK란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 생존한 대원군 맏며느리 李씨마마

    생존한 대원군 맏며느리 李씨마마

    무엇이 비운(悲運)인가? 파란 많은 근세사(近世史)속의 이왕가(李王家)와 함께 「마지막 전하(殿下)」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종지부를 찍어버렸을때, 옛 왕가의 제일 높은 마마 노락당(老樂堂) 李씨(87·대원군(大院君)의 맏며느리=완흥군(完興君)부인)는 「만사가 귀찮다…」고 손을 저으며 자리에 누워버렸다.「뉴스」의 유궁(幽宮)처럼 언제나 육중한 문을 굳게 닫아버린 운현궁, 그 안방 노락당에 잠입, 처음 공개하는 이 모습. 만인지상(萬人之上)이던 이왕가, 그중에도 옛 왕족들의 「안방」에서는 왜 늘 「뉴스」의 촉각을 피해왔을까? 관심을 둔 기자들이 해방 이후부터 줄곧 사양의 「안방마마」들에게 신경을 썼지만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어낸 일이 없었다. 더욱이 이은(李垠) -> 이구(李玖)씨의 낙선재 신관(新舘)쪽 현대파(現代派)보다 고종(高宗)황제의 생가(生家)이며 대원위 대감이 팔도강산을 호령했던 운현궁(蕓峴宮)쪽은 너무 깊숙해서 안방잠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대원위 대감의 맏며느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어? 「감춰진 사실」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그때마다 말못할 감회를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5월2일 하오 2시. 신문사 취재차에 고종황제의 손자며느리 한 분을 태우고 운현궁 옆 여도 골목에 멀찌감치 차를 세웠다. 운현궁에서 신문사차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이면 대문간서부터 「출입(出入)사절」을 당할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차 안에 앉은 채 기회를 노리기 1시간 30분. 대원군이 거처하던 사랑채 노안당을 거쳐 뒤채의 이노당(二老堂 -여기엔 대원군의 애손(愛孫) 이준용(李俊容)공의 부인 이씨가 기거했음), 이씨마마가 계시는 노락당에 들어갈때까지 좀처럼 집안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나선재에서는 한참 영친왕(英親王)의 빈소가 벌어져 붐비는데 유궁(幽宮)같은 운현궁 안은 쓸쓸하고 조용할 뿐이다. 노락당 이씨는 마지막 전하 이은씨의 부음을 듣고 슬픔에 잠겨 두꺼운 요 위에 누워 계셨다. 방안은 약 5평. 잉어가 그려진 두폭짜리 병풍 하나와 조그만 의자가 몰락한 왕가의 현실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을뿐, 덩그맣게 큰 집안에 가난이 엿보인다. 무조건 이씨 마마에게 큰절부터 올리고 방 가운데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동안 이씨 마마를 위로하기 위해 80객 노부인 2,3명이 소복을 하고 찾아왔다가 돌아갔지만 이분들이 누군지는 알 길이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운현궁 이씨마마는 당신에게 출입하는 사람이나 친구의 이름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싫어하신다고 한다. -마마, 기념으로 사진 한 장만… 『이제껏 내 사진을 밖에 찍어 내보낸 일이 없소. 안 찍겠소』 -그러나 이왕가 에서는 어제 마지막 전하까지 가셨습니다. 마마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한 장만… 『내 늙은 얼굴을 찍고 싶지 않소』 그러나 대원군의 맏며느리이며 고종황제의 형수가 되는 이씨 마마가 「70년대 서울」의 공기를 오늘날까지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모로 따지든 「기록」이 될만 하다고 몇 번이나 간청했다. 뒷날을 위해서 당신의 모습을 한번만 「카메라」에 담자고 해도 거절. 나중에는 조카 며느리와 죽기전에 기념사진 한 장 찍어둔다는 전제밑에 반승낙을 한다. (이 때 모시고 있던 부인들이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이씨마마에게 귀띔했지만) 이씨마마는 영친왕의 죽음, 자신의 앞일등 알 수 없는 노후를 생각했음인지 심경변화를 일으켜 「사진만 찍는다」 고 일어나 앉아 머리에 빗질을하고 나더니 하얀 광목저고리를 위에 입는다. 「플래시」를 눌러 사진을 찍었다. -요즘 무슨 음식을 즐겨 잡수십니까? 『미음』 한마디 하고서는 다시 요 위에 몸을 뉘며 『기사는 절대 쓰지말라』고 입을 봉해 버린다. -대원군이 살아 계셨을 때 운현궁에 시집을 오셨죠? 『……』 -요즘 나도는 시아버님 대원군의 모습이나 민비(閔妃)의 모습은 틀린 데라도 혹시 없읍니까? 『……』 묻는 기자를 물끄러미 누워서 쳐다볼 뿐 모두들 묵묵부답(黙黙不答). -저희들이 누군줄 아십니까? 『처음보는 얼굴들인걸』 -영친왕 이은 전하를 마마가 처음 보신 것은? 『여섯살 때 내가 무릎 위에 안고 있었소』 -오늘의 느낌은? 『만사가 귀찮소!』 벌써 이동안에 기자(記者) 잠입을 눈치채고 바깥채에 누가 연락했는지 방안으로 불쑥 들어와 「카메라」를 노려 보는 사랑채 남자일꾼(?)은 사뭇 시빗조다. 『누구냐?』 『무슨일로 여기까지 들어왔냐?』 잠입 불과 7분. 할수없이 뜰안으로 이씨 마마에게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뛰어 나왔다. 이렇게 운현궁을 비롯한 왕족 주변이 미묘하게 「차가운」데는 몇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의친왕(議親王) 이강(李剛)공의 아들간에는 무슨 일에선지 「차가움」이 감돌고 운현궁 쪽에서는 억대가 넘는 재산관리를 놓고 왕족간에 뒷공론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영휘원(永徽園)의 엄비(嚴妃) 무덤에서는 몇 년째 시제(時祭) 한번 못올리고 있으며, 어느 고종황제의 손자는 방 한칸조차 없어서 사당(祀堂) 「시멘트」 바닥 위로 쫓겨나서 잠을 자고 있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날아가는 새를 쳐다보기만 해도 죽지를 떨었다는 운현궁의 10년세도. 오늘날은 방한칸 없이 내쫓겨 비운의 몰락을 울고 있는 왕족들. 마마 이씨의 심정은 지금 어떨까? 산하(山河)가 함께 울 만한 슬픔이, 이야기가, 목격담이, 이면사(裏面史)가 이뤄진 뜰안에 살면서도 입을 열지 않으니 어쩌랴.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 [30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 설산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곳. 겨울금강산, 설봉산으로 안내한다. 천하제일의 명산을 찾는 길에는 계절이 따로 없다. 겨울 금강산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명불허전, 순백의 눈꽃세상이다. 북한 들녘의 소박한 겨울풍경이 마음을 사로잡고 맑고 깨끗한 설경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효도우미 0700(EBS 오후 5시20분) 북한에 두고온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 탈북자의 눈물. 먼 타국에서 서러운 오늘을 사는 외국인 며느리들의 그리움. 거지왕이라는 이름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고인이 된 김춘삼씨. 그 자녀들이 말하는 내 아버지 등 각박한 오늘을 사는 자식들의 이야기.‘불효자는 웁니다’를 통해서 만나본다.   ●사랑도 미움도(SBS 오전 8시30분) 병원에서 재혁은 민호가 쏟은 음료수에 옷이 젖는다. 이에 민호는 자기 엄마한테 옷을 맡기자고 한다. 재혁은 예의가 아니라며 자리를 뜬다. 한편, 인주는 화보를 찍자는 승표 말에 건성으로 대답해 승표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다 재혁과 식사를 같이 하게 된 인주는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누나(MBC 오후 7시55분) 건우고모는 임신한 유순을 부러워하면서도 조카를 위하는 마음에 뭔가를 자꾸 사다 준다. 고모는 건우엄마에게 입맛이 없다며 김치 익은 게 먹고 싶다며 달라고 한다. 신김치를 먹는 고모를 보며 고모부는 혹 애가 선 게 아니냐고 묻는다. 한편, 승주가 건우를 못잊고 괴로워하자 민준기는 건우에게 만나자고 연락한다.   ●소문난 칠공주(KBS2 오후 7시55분) 미칠이 임신 5개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명자는 당장 집으로 가자며 억지로 미칠의 손을 이끈다. 미칠은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런 미칠의 모습에 화가 난 명자는 곧바로 일한의 사무실로 찾아간다. 한편, 소라가 엄마라고 불러준 것에 기분이 좋아진 덕칠은 처음으로 아이들과 외식을 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KBS1 오전 10시) 레게음악과 블루마운틴, 사탕수수, 그리고 아름다운 카리브해로 기억되는 나라, 자메이카. 쿠바 남쪽으로 9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달걀모양의 섬은 1만 1000㎢로 한반도의 20분의1밖에 안 되는 작은 크기. 지형과 식물의 다양함을 자랑한다. 카리브해의 붉은 진주, 자메이카로 떠나본다.
  • [2006 희망 키우는 아이들] (9) 과학자 꿈 ‘祖孫가정’ 장현이

    [2006 희망 키우는 아이들] (9) 과학자 꿈 ‘祖孫가정’ 장현이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부모의 가출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장현(10·광주 K초등학교 3년)이는 “새해 떡국먹고 한 살 더 먹게 돼 너무 좋다.”면서 “하루 빨리 어른이 돼서 할머니를 편안히 모시고 싶다.”고 새해 소망을 밝혔다. 장현이는 한참 예민한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때론 우주선을 타고 드넓은 창공을 나는 꿈을 꾼다.”는 장현이는 “빌 게이츠와 같은 유명한 컴퓨터 공학자나 우주선 설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꿈을 이루려면 어릴적부터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고 있다. 여느 집 아이처럼 학원을 찾아다니거나 과외 선생님을 댈 형편도 아니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학과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 47만원으로 두 식구 생활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해 나가지만 그의 꿈은 하늘처럼 높다. 교과목 중 수학이 제일 흥미진진하다는 장현이는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분야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끌린단다.“세계에서 성능이 가장 뛰어난 우주선이나 컴퓨터를 만들고 싶다.” 장현이는 학교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엄마·아빠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느 결손가정 자녀와 달리 심성도 올곧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논리적인 수학공부가 제일 좋아” 할머니 임모(68)씨는 아들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이혼하는 바람에 핏덩이나 다름없던 한 살배기 손자를 맡아 10년째 길렀지만 아들과 며느리로부터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장현이는 최근에야 꿈에도 그리던 부모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더 이상 상황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할머니는 얼마 전에야 손자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할머니는 “그 얘기를 들은 장현이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을 봤을 땐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며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일을 척척 해내는 손자가 대견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 보조금 47만원으로 두 식구가 생계를 이어간다. 할머니는 “손자가 반듯하게 자라는 것을 볼 때까지만 살았으면 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할머니 건강 걱정하는 대견스러운 손자 딱한 사연을 전해들은 학원에서 장현이의 수강료를 면제해 주자 “자존심이 유달리 강한 손자가 이를 알까봐 쉬쉬하고 있다.”고 할머니는 조심스러워했다. 장현이는 몸이 아픈 할머니를 배려하는 마음도 남다르다.“할머니가 약을 안 드셔도 건강해 질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한다.”며 “빨리 커서 할머니가 편히 쉬도록 해드리고 싶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글 사진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강학중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결혼 약속한 남자와 종교가 달라요

    Q5년째 사귀고 있는 오빠와 결혼을 약속했는데 종교 문제로 고민입니다. 우리 집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데 오빠네는 제사에 철저하고 점이나 궁합도 보는 불교 집안입니다. 불교 신자인 오빠는 저를 따라 교회에 2년간 열심히 다니고 있는데 오빠네 집에서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삼형제 중 막내인 오빠를 우리 집에서는 제가 좋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반대는 안 하지만 역시 종교 문제 때문에 조금은 불만이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혜나·가명·29세- A결혼을 앞두고 마음이 많이 무겁겠네요, 그러나 결혼을 약속한 남성이 혜나씨의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애쓴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혜나씨 부모님 역시 다소 불만은 있지만 반대는 안 하신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분의 사랑과 믿음입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면서 갈등을 함께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상대방의 종교도 소중한 것이니까요. 우선 남자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참 예뻐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부모님이 그 사실을 모르신다니 언젠가는 조심스럽게 그 얘기를 해야겠지요. 자신의 종교에 철저한 집안일수록 종교 문제로 인한 갈등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결혼하고 나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예상되는 문제를 과소평가했다가 결혼 생활 내내 그 문제로 고통 받는 경우가 없도록 불씨가 될 것 같은 일은 미리 대화를 통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부부나 가족이 같은 종교 아래에서 진실된 신앙심을 키워 나가는 것이겠지만 부부나 가족의 종교가 반드시 같아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부모 되실 분이 이해를 하실 수 있도록 시간과 인내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또 시댁의 문화에 맞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제사 때 절을 하느냐 안 하느냐 같은 문제인데 비록 자신이 기독교인이지만 시댁의 종교나 문화가 절을 해야 하는 분위기라면 자신의 원칙을 잠시 양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경우가 1년 중 또 며칠이나 되겠습니까? 친정 부모님께서 다소 열린 사고 방식을 가지고 계신 듯한데 혜나씨가 자신의 종교를 바꾸실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또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지요. 지금 두 분의 고민은 언뜻 종교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두 사람의 가치관이나 욕구가 상반될 때 그것을 어떻게 조정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행히 장남이 아니라 막내라니 문제가 다소 가벼울 수도 있으리라 보며 종교 문제가 아닌 다른 일로는 속 썩이는 며느리가 아니라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대견한 며느리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신다면 시부모 되실 분들도 마음의 문을 여시지 않을까요. 아무쪼록 두 분이 마음을 터놓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부부간의 사랑과 믿음을 키워 나가시길 바랍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
  • “여대생 미인이 왜 나빠”

    “여대생 미인이 왜 나빠”

    올해 「미스·코리어」진(眞)으로 뽑힌 유영애(劉永愛)양(20)이 재학중인 숙명여대(淑明女大)에서 제적(除籍)당할 운명에 놓여있다. 재학중에는 미인대회, TV 「탤런트」 또는 「모델」로 나가지 못한다는 학칙에 걸린 것. 미인다사(美人多事) 랄까? 지난 해엔 「미스」아닌 「미스·코리어」로 말썽이더니 올해엔 학칙이 말썽. 지난 4월 6일 「미스·코리어」본선대회에서 「미스·경기(京畿)」의 자격으로 출전한 유 양은 애교만점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께 부탁 드릴 일이 있어요. 딸을 낳으시거든 숙대(淑大)에 넣으시고 며느리는 꼭 숙대 출신을 고르셔요』 숙대재학생의 숙대PR에 관중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한 숙대PR가 아니었다. 바로 대회 2시간전. 「미스·코리어」에의 꿈에 부푼 유 양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출전 미녀들의 대기장소인 대원(大元)「호텔」에서 유 양은 화장을 하다 말고 전화를 받았다. 『나 숙대학생처장인데 유 양 본선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숙대는 더 다닐 생각 말아요. 아시겠죠? 그러니 유 양이 잘 알아서 처리해요』 전화는 끊겼다. 숙대쪽으로부터 유 양에게 이런 협박(?)이 있기는 이미 여러 차례. 그러니까 대회 2시간전 걸려온 전화는 최후통첩인 셈이었다. 전화가 끝나고 약 30분뒤 이번엔 숙대쪽이 보낸 공식 사절이 대원「호텔」에 나타났다. 이번 대회에 가짜 숙대생이 한명 있었으며, 「미스·경북(慶北)」으로 출전한 A양은 가명으로, 유 양은 본명으로 출전했다. 대원「호텔」에 나타난 숙대조교 역시 학생처장의 말과 같은 말을 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숙대쪽의 협박(?)보다는 미(美)의 정상을 향한 집념이 더 강했든지 유 양은 본선대회에 나갔고 끝내는 올해 「미스·코리어」진으로 뽑혔다. 새 「미스·코리어」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4월 16일 유 양의 집에 다시 속달우편이 도착했다. 4월 18일까지 자퇴원을 내지 않으면 총장 재량으로 유 양을 제적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유 양과 함께 「미스·경북」으로 출전했던 A양은 이미 출석일수(出席日數) 미달이란 명목으로 숙대에서 제적 당했다. 유 양은 자퇴원을 쓰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막상 「펜」을 잡고 보니 『저 크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살아오신 홀 어머님 생각이 나서』 자퇴원을 쓸 수가 없었다고. 「미스·코리어」 선발대회를 주관한 H사 쪽에서 유양을 돕기 위해 앞장 섰다. 지난해 「미스·코리어」인 임현정양은 현재 숙대 영문과 3학년에 재학중. H사쪽은 숙대까지 「미스·코리어」 선발대회 출전을 막는 경우 「미스·코리어」 의 질적 저하를 들며 숙대쪽의 재고를 요청했다. 그러나 숙대쪽은 학업에 충실해야 할 여대생이 미의 여왕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결과적으로 대학재학생이 「미스·코리어」 선발대회 「스폰서」 기업체의 광고 「모델」 로 까지 전락하는 것을 두고 볼수 없다고 팽팽히 맞서있다. 한편 『재학중에는 미인대회, TV「탤런트」 또는 「모델」등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학칙도 말썽거리. 숙대학칙엔 이런 명문(明文) 규정이 없다. 그러나 숙대쪽은 69년 9월부터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숙대의 공식태도를 밝혀 왔으니 불문율(不文律)이 돼있다는 주장. 그러나 유 양의 가족쪽은 『합법적인 입시를 통해 숙대에 들어간 이상 성적불량 혹은 출석일수미달등 학칙을 어기는 행위가 없는 이상 총장재량에 의한 제적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아버지 없는(6·25때 작고(作故)) 유 양을 8살때부터 고교졸업때까지 맡아 키운 유 양의 외조부(外祖父) 박종우(朴鍾禹)씨는 『어떻게 키운 외손년데 학교 못 다니게 하느냐?』면서 화를 벌컥 냈다. 『미인이라고 학교 못 다니게 하면 이 세상 미인은 모두 멍텅구리 되라는 말이냐? 지난 해에도 「미스·코리어」가 숙대에서 나왔다는데 그 아가씨는 학교 다니게 하고 우리 외손녀는 못 다니게 하다니 그런 법이 있느냐?』고. 유 양의 홀어머니 박정애(朴正曖)여사는 『학교에서 자퇴원 내라고 속달이 왔을때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어요.「미스·코리어」 된 뒤에 공부를 잘 못했다거나 결석을 많이 했다면 몰라도 .「미스·코리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학교를 못 다니게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해요』라고 학교당국의 재고를 바랐다. 당사자인 유 양은 『어떤 교수님은 자퇴할 필요가 없다. 또 어떤 교수님은 자퇴하라고 하니 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주위에서 어떤 분들은 딴 학교로 전학을 하라거나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2년 공부를 마치고 오라고 해요. 그러나 다니던 우리 학교를 두고 왜 딴학교로 옮겨야 하나요?』 유 양의 학교성적은 우수한 편. 1학년때 성적이 평균 B학점. 유 양의 희망은 대학졸업뒤 여고 무용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숙대1학년때 교직과목 4학점은 모두 A. 유 양의 말로는 『절 공부시키려고 어머님이 너무 애쓰시는것 같아 2학년때는 더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타려 했는데…』하며 말끝을 흐린다. 유 양은 「미스·코리어」가 되었다고 『절대로 학교 공부나 몸가짐이 전보다 소홀해 지지 않을 것이니 학업을 계속케 해달라』 고 호소. 유 양의 희망은 올여름 있을 「미스·유니버스」선발대회에 참석해야 하니까 이번 한 학기만은 휴학계를 받아주었으면 하는것. 이런 유 양쪽의 주장에 대해 숙대쪽의 입장도 사뭇 강경하다. 숙대 윤(尹)학생처장은 『지난해 까지만 해도 숙대는 재학생의 「미스·코리어」출전을 허용해 왔어요. 그러나 이대(梨大)등 다른 여대가 모두 불허(不許)하고 있는 것을 숙대만 허용하고 있다고 학부형들의 비난이 많았어요. 게다가 학업에 전념해야 할 여대생이 「뷰티·콘테스트」에 나가고 신문광고에 오르내리는 걸 찬성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난 9월부터 여러차례 학생들에게「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경고해 두었어요. 이미 불문율이 되어 버렸죠』라고 공식태도를 밝혔다. 앞으로 이 문제는 숙대 교수회의의 의결을 거쳐 확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의 교수들이 유 양을 동정하고 있어 과연 제적이 되느냐는 두고 볼 문제.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盧대통령 “高총리 기용 실패한 인사”

    盧대통령 “高총리 기용 실패한 인사”

    노무현 대통령은 21일 참여정부의 초대 총리를 지낸 대권 주자인 고건 전 총리의 기용에 대해 “결과적으로 실패해 버린 인사”라고 밝혔다. 또 “고건 총리가 다리가 되어서 그 (사회지도층) 쪽하고 나하고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랬는데 오히려 저하고 저희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왕따가 되는 그런 체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중간에 선 사람이 양쪽을 끌어당기질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그런 결과가 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고 총리를 통해 보수와 진보의 가교 역할을 기대했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는 설명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통 상임위원회에서 고 전 총리를 겨냥,“하여튼 실패한 인사다.”라고 밝혀, 정국에 적잖은 파장을 미치고 있다. 회의에는 관계자 350여명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의 포용 인사는 제가 김근태씨나 정동영씨를 내각에 기용한 그 정도하고 비슷한 수준인데, 저는 비슷하게 하고도 인사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사니까 힘들다.”면서 “링컨 흉내 좀 낼려고 해 봤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재미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2002년 대선 당시 당내 경선주자로 이른바 ‘정적’이었던 열린우리당 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을 입각시킨 배경인 셈이다. 노 대통령은 정치 상황과 낮은 지지율을 의식한 듯 “달라질 것은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터질 때는 터지더라도 다르게 할 건 다르게 하겠다.”면서 “그게 단임 정신이다.”라고 역설했다. 나아가 “저는 국가의 미래라고 생각해서 그냥 그렇게 싸잡아가기로 했다.”면서 국정 운영에 변화를 꾀하지 않을 뜻임을 내비쳤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반대 주장과 관련,“자기 군대(의) 작전통제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놓고 ‘나 국방 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그런 것이냐.”면서 “작통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내고,(이것은) 자기들(의) 직무유기 아니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더욱이 “(전직 국방장관들을 향해) 모든 것이 노무현 하는 것(을)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닌가.”라고 전제한 뒤 “흔들어라 이거지요. 흔들어라. 난데없이 굴러 들어온 놈(노 대통령을 지칭). 예, 그렇게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노무현 대통령 민주평통 상임위원회의 연설 전문 1년에 한 번 이렇게 함께 보는 아주 소중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세 분 건의말씀도 잘 들었습니다.내용이 참 좋습니다.우선 수준이 전문가 수준입니다.말하자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직접 정책 보조를 받거나 또는 내각을 통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그 사람들의,그 전문가들의 수준에 조금도 못지 않는 아주 전문적 수준의 것이 들어 있습니다.그러나 한편으로 뜨끔한 데가 있습니다.대통령으로서 가슴이 뜨끔한 데가 있지요.전체 내용에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비판한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그런데도 뜨끔합니다. 첫 번째 뜨끔한 이유는,세 분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아주 구체적인 특별한 내용 이외에는 정책 기조가 똑같은 방향에 서 있는데,왜 같은 말씀을 또 반복하실까,이런 의문이 하나 생기고요. 두 번째는 건의 중에 원칙이라든지 신뢰라든지,또는 일관성,국민적 합의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이 말씀이라는 것은 이 점에 있어서 우려가 있다 하는 것을 표명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잘 알아들었습니다.제가 구구하게 변명 드리거나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그런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제가 뜨끔했다라고 하는 첫 번째 문제에 관해서는 모든 정책이 우리가 지향한다고 다 그대로 되는 것 아닙니다.그래서 그리로 가려고 하지만 막히는 수도 있고 또 부득이 돌아가야 되는 수도 있고 지체되는 수도 있습니다.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에 관해서는 조금 변명할랍니다.변명하기 전에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저도 요즘 제 아내하고 한 이틀에 한 번씩 말다툼을 합니다.저더러 아내가 자꾸 신문 보래요.저도 신문을 직접 보기도 하고,또 신문을 요약 분석한 보고를 따로 보고받기도 하는데,신문 보고 나가서 참모들하고 대화를 하면 자꾸 엇나간다.결국 나중에 맞추어보면 제가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긴장하더라도 정보가 입력이 되는데,이것은 몇 날 몇 시,어느 자리에서 누구에게 들은 얘기이고,이건 몇 날 몇 시에 어느 보고서에서 본 얘기고,이것은 어느 신문에서 본 얘기고,이게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정보라는 것은 접수되면서 일정하게 그럴 듯하다 싶어서 반응이 딱 일어나면 그냥 자기의 기억으로 입력되어 버리는 것이지요.입력되어 버리고 그런 인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그 인식을 가지고 있다가 그 일을 책임지고 있는 참모하고 만나서 얘기해 보면 이게 말이 앞뒤가 안 맞습니다.우리 안보실 참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여러 차례 그런 것을 반복하고 한 다음에는 요즘은 좀 늦더라도 좋으니까 좀 기다립니다.안보실의 보고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신문이나 이런 것은 구문으로 다시 참고삼아 정리하는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됐을 때 제 판단이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그러면 주는 것만 받아먹고 시민들의 폭넓은 다양한 정보는 차단되는 것 아니냐 그런 우려가 있습니다.그래서 신문,방송,인터넷,이 모든 정보를 정부가 전부 다 실시간 전부 정리를 합니다.정리를 해서 그 중에서 정부의 정책에 관련된 기사로서 그 말이 맞다,사실도 맞고 때로는 의견이 맞고,그럴 때에는 그것을 전부 정리를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한 다음에 잘못된 것은 전부 고칩니다.이것은 언제까지 시행령을 고치겠다,이것은 언제까지 법을 고쳐야 되니까 입법 조치를 취하겠다,이것은 예산 조치하겠다,이것은 우리가 그냥 처분으로서 알아서 하겠다,전부 보고서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쓰면 그것을 우리 정책실에서,국무조정실에서 1차적으로 체크하고 정책실에서도 체크하고,국정홍보실에서는 기사의 건수를 전부 체크해서 주간 보고를 저한테 하게 되어 있습니다.요즘은 제가 너무 바빠서 비서실장이 한 번 더 챙겨보고 월간 보고로 하게 해달라고 좀 줄였습니다.시스템이 안착됐기 때문이지요. 틀린 보도면 어떻게 하냐,대강 어름한 것은 그냥 넘어가고,좀 심하고 명백한 것은 반드시 정정보도를 청구합니다.정정 요청하고,듣지 않으면 정정 보도 신청을 냅니다.신청해서 안 되면 소송까지 가서 청구까지 합니다.물론 정정보도도 있고 반론도 있고 합니다.그 다음에 항의도 있고요.항의 정도로 하고 끝내는 것 있고,그다음에 절반 맞고 절반이 한 쪽이 엉성해서 오해가 생길 소지가 있는 것은 해명을 달아줍니다.이 활동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결과를 제가 전부 수렴해 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대통령이 정보 흘려버린다,그렇게는 아닙니다.그리고 개인이 혼자 이 신문 저 신문 뒤적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체계적이고 완벽하지요. 그래서 이제 신문기자들이 글을 쓸 때 굉장히 조심합니다.사실을 확인하는 습관이 점차점차 붙어갑니다.함부로 쓰지 않습니다.대신에 괘씸하거든요.옛날에 공무원들은 안 그랬는데,요즘 공무원들은 또박또박 말대꾸를 한단 말입니다.옛날의 장관님들은 기사가 뭐가 나갔든 간에 장관이 ‘편지 잘 받았네.언제 술이나 한잔하지.’ 이렇게,설사 술 안 사더라도.인사를 이렇게 하고 넘어가는데,요즘은 장관은 안 나오고 과장,국장,사무관 이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당신 기사를 그거 정확하지 않소,또박또박 따지게 괘씸하게 됐단 말이지요.어쩌겠습니까? 철저히 파는 거지요.정말 먼지 나는 것 없나? 잘못된 것 없나? 철저하게 파지요.별수 있습니까? 공무원들 정신 바짝 차려야지요.대통령이 일일이 다니면서 감사원장한테 감사 좀 잘하라고 장관 보고 내부 감사 잘하라고 이렇게 할 필요가 없지요.기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철저히 챙겨주니까요.그렇습니다.괜찮은 시스템 아닙니까? 수없이 있는데,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그것입니다.제가 제일하고 싶었던 것이 원칙입니다.그런데 지금 국민들한테 원칙 없는 정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슬픕니다.그러나 어쩔 수 있습니까? 슬프다 말하고 또 노여워하면 그것도 문제가 되고 그렇지요. 제가 좀 그렇습니다.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어디 가서 항상 강연할 때 절대로 빠트리지 않는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신뢰입니다.민주주의 못 해도 신뢰가 있으면 사회가 유지되고,민주주의 해도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가 유지될 수가 없다.그러므로 신뢰를 나는 우리 사회적 가치의 최상의 위치에 있는 가치로 본다,항상 그렇게 얘기를 하고 다녔습니다.그런데 정책 신뢰성이 계속 문제가 되니까 이 또한 제가 또 부끄러운 일입니다. 일관성,이건 같은 것이지요.일관성과 신뢰라는 것은 사실은 비슷하게 맞붙어있는 것이지요.생명이지요.국민적 합의 뭐 이런 등등 다 이런 것인데,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소위 원칙들이,제가 가장 존중하고 꼭 실현하고 싶었던 참여정부의 최대의 목표가 지금 이렇게 지적받고 흔들리고 있습니다.좀 더 노력하겠습니다.아니면 좀 더 다른 데 냉정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이건 뭐 숙제입니다.저는 결코 승복하지 않습니다.승복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도 없습니다. 건의 주신 부분에 대해 사실 다 좋은 말씀입니다.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고 말씀이 나온 김에,나온 계기에 한번 얘기 해보자.원칙이라는 것 말이지요.상호주의,거기에 대칭되는 원칙은 뭘까요? 일방주의 아니겠습니까? 문법상 그렇습니다.그런데 참여정부의,상호주의에 대응하는 참여정부의 정책은 실용주의입니다.왜냐하면 상호주의라는 것은 형식적이고 경직된 원칙이 될 수 있습니다.남북관계를 해나가는 데 조건이 다르고 서로의 처치가 너무 다른데,생각도 다르고 다른데,상호주의 해서,어떤 분이 말씀하는 것처럼 니가 한 대 때리면 나도 한 대 때리고,이게 상호주의 아니겠어? 간단하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남북관계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고 하고자 하는 목표,평화,신뢰,이런 목적에 맞느냐,맞지 않느냐를 놓고 그때그때 우리가 판단해야지,그냥 상호주의라는 원칙에 묶어두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결코 일방주의적 퍼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목표를 놓고 신뢰를 확보하고,결국은 남북간에 대화로서 보다 큰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유익하냐,그래서 실용주의,상호주의에 대응하는 정책 개념은 실용주의라고 이해해 주십시오. 저는 대북 송금 사건의 수사의 법률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저는 명시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시한 적도 없습니다.이것이 많은 논란되고 있습니다만,남북 간에 대화와 교류에 있어서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이 투명성이기 때문에 저는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추세가 투명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비록 통치 행위라 할지라도 투명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고 합법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어서 제가 이 점은 참여정부부터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해서 수용했습니다. 사실은 남북관계 형성에 있어서 초법적인 통치 행위가 성립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그러나 단 하나 그것은 국민들이 수용해 줄 때만 최고 통치권자의 초법적인 통치 행위를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마당이면 어려운 것 아니냐,그 당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잘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그 당시 저의 선택이었다.이것도 하나의 원칙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지금 이제 그동안에 몇 번 작은 일들은 있었습니다.원칙을 가지고,북한에서 대화를 중단했을 때 한국도 중단해 버리고 일방적 통보가 왔을 때 내가 거절하라고 명령하고 했습니다.한 번은 거절했는데,우리 통일부라는 데가 그렇습니다.통일부가 어쩌든지 일이 되게 하려는 부이기 때문에,명시적으로 지시를 해도 아 이건 좀 다릅니다.하고 해석을 조금 달리해 가지고 어지간하면 대화를 끊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저는 그 점을 크게 문책하지 않았습니다.문책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문책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대북 지원이 중단되어 있습니다.이것은 원칙이기도 하고,원칙이라기보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지금 대북 지원을 끊고 있는 것은 인도주의 원칙 또 무슨 상호주의 원칙,이런 원칙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겠다,그 판단이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동시행동원칙이나 정부,민간 분리 원칙,다 동의합니다.동의하고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또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해야 된다는 정 민 위원님,비핵 공영,이런 이름을 쓰진 않지만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이 점에 대해서는 좀 공포해 가지고 좋은 이름을 한번 우리도 차용,이대로 차용하든지 한번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냉전 구조 해체와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큰 틀의 합의를 북핵 문제 해결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9.19 공동선언에 보면 바로 이 문제가 다 같이 들어 있습니다.평화 체제에 관한,평화체제협상에 관한 조항도 들어 있고,또 동북아 다자 안보 체제까지 언급되어 있습니다.그래서 9.19 공동선언을 그것이 지금 그냥 저렇게 표류하고 있으니까 아무 가치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새로운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동북아 다자 안보 체제라는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때 9.19성명이 나왔다.그 뒤에 미국이 한발 물러서고,물러섰다기보다 BDA 문제가 딱 걸렸는데,참 저도 해석하기 어렵습니다.중국에서 9.19 성명을 서명하고 있는데,그 2,3일 전에 미국 재무부에서는 이미 방코델타아시아에 대한 계좌 동결 조치를 해 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지금 보기에는 국무부가 미처 몰랐던 것 아닌가,북경에서 모르는 상태에서 그 하루 이틀 전에 제재는 나와 버렸고,나온 것을 풀지 못하고 여기까지 와 버린 것 아닌가 이렇게 볼 수도 있고,또 나쁘게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이렇게 볼 수도 있고,어떻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또 한편 보면 재무부하고 국무부 사이에 이 점에 관해서 원칙에 관한 해석이 많이 달라서 정치적 유연성을 좀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니냐,재무부는 법대로 가자 이런 것처럼 추측이 됩니다만,잘 알 수가 없다.여러 가지들이 있지요. 그래서 이제 좀 9 19 선언이 그냥 탄생하자마자 땅에 묻혀버렸지만,또 봄이 오면 싹이 트고 올라오면서 바로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와 평화구축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의 다자안보체제,또는 평화체제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 방향으로 가겠다. 그다음에 우리 신뢰 말씀도 주시고,일관성 말씀,합의,말씀 다 주셔서 그렇다.이렇게 노력을 하겠다.대북 정책 협의체제,소위 각계각층의 대표적 지도자들 또는 원로들 하는데,제일 어려운 것이 이분들 모아놓으면 서로 통화가 안 됩니다.말을 다르게 쓰고 있거든요.우리가 좌우대립을 너무 심하게 겪었고 전쟁까지 치르고 독재라는 세월을 거치는 동안,식민지,좌우대결,군사 독재,이것 하는 동안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게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개념이 달라서요.참 좋은 얘기인데,이것을 못하고 있는 거지요. 제가 이것 한번 해 보자고 맨 처음에 고건 총리를 기용했었지요.그래서 고건 총리가 다리가 되어서 그 쪽하고 나하고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랬는데,오히려 저하고 저희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왕따가 되는 그런 체제에 있는 것이지요.중간에 선 사람이 양쪽을 끌어당기질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그런 결과가 되기도 하고요,하여튼 실패한 인사다.결과적으로 실패해 버린 인사지요. 링컨 대통령의 포용 인사가 제가 김근태씨나 정동영씨를 내각에 기용한 그 정도하고 비슷한 수준이다.링컨 대통령 책에 오래 오래 남고 남들이 연설할 때마다 그 분 포용인사 했다고 인용했는데,저는 비슷하게 하고도 인사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사니까 (일동 웃음 ) 힘들다.링컨 흉내 좀 내려고 해 봤는데 ,잘 그게 잘 안 되네요.재미가 별로 없다. 하여튼 그렇게 말씀드리고요.시간이 좀 괜찮냐? 좀 더 말씀을 드릴까요? 우리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거든요.우리 정부 또는 우리나라에서 이 사안은 통일외교안보정책 사안입니다.큰 틀에 있어서 안보의 영역에 포섭되는 일이라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지요.안보 문제와 하여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표리관계가 있는 것이지요.우리가 통일을 왜 해야 되냐,더 잘 살기 위해서 더 사람답기 위해서 이런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만,보다 더 절실한 것은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첫 번째이고 ,일단 평화가 확보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이고,그 다음에 그를 통해서 우리가 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면 더 좋은 것이고요. 한 핏줄을 같이 하고,말을 같이 쓰고,문화를 함께하는 사람이 하나로 함께 통합되어서 사는 것이 보다 사람답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통일해야 되는 것이지요.그런데 그래서 평화다.평화라는 것이 안보의 핵심 개념이거든요. 왜 안보가 뭐냐,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안보의 목적이고 평화도 안보의 목적 아닙니까? 그러나 고유의 의미에서 우리가 안보라고 얘기할 때는 평화,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적 활동이지요.전쟁에게 이기는 것보다는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지요.그렇지 않겠나? 그래서 평화를 지향하는 안보,이걸 좀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다.전쟁에서 이기는 안보,그것보다는 그렇게 평화를 지향하는 안보라는 개념을 확실히 하면 좋겠고요. 어떻게 할거냐,대화를 지향하는 안보를 해야 된다.안보를 위해서 끊임없이 대결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대결,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상대를 경계하게 되는 것이지요.그래서 상대를 경계하는데 거기에 적대적 감정이 들어가고 불신이 들어가고 또,그렇지요.적대감 감정과 불신이 들어가는 것입니다.안보가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인지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느냐,적이 공격했을 때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수준,나는 털끝도 안 다치고,아니면 거의 껍질이나 약간 벗겨지고 찰과상 정도 입거나 타박상 정도 입고 완전히 제압하는 수준,그러면 확실하지요.안보를 위한 대비가 확실하지요. 그다음에 이제 적어도 저쪽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격을 해서 이길 수 없다,싸움을 해서 이길 수 없고 따라서 점령할 수 없고,따라서 지배할 수도 없다,이 단계를 한번 생각해 보자.이겨도 점령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냐? 점령해도 지배하지 못하면 전쟁을 일으킨 보람이 어디에 있겠냐? 그러면 그 가능성이 없으면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전쟁 시작 안 할 거다,그래서 이기지 못할 수준이면 되지 않겠느냐,한 대 때릴려고 하다가 한 대 반을 맞을 형편이면,붙었는데 팔 하나 부러트렸는데,자기 팔은 두 개 부러져버렸다,이 정도면 제정신 가진 사람이면 안 하지 않겠느냐,목적을 어디까지,목적을 어디에 둘 거냐,힘의 비교를 어느 정도에 둘 거냐,그 다음에 그런 것을 판단해 보고 정신없는 짓 안할 것이다.그러면 상대를 평가해 본다 이거지요. 상대가 제정신이 멀쩡한 사람인지,아니면 완전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돌아버린 사람인지,아니면 영 머리가 아주 나쁜 사람인지를 판단해 봐야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전제,이 전제를 할 때 그래서 이 전제가 부도덕한 사람이고 약간 맛이 간 사람이고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이제 비정상인 사람으로 되는 거지요.그래서 제가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패널들이 저한테 ‘노 후보,김정일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오?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예’ 하면 그날로 박살나는 거거든요.아니오 해도 곤란하고,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것이 한국 유일의 정치 풍토,정치 문화 아닌가,그 사람도 판단력은 있겠지요.어떤 기준의 판단력,민주주의 사회 기준의 사고력과 분석력을 가지고 있는 판단력이냐,공산주의 또는 주체사상이라고 하는 그 체제에 거기에 맞는 수준의 그것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 수준에서는 적어도 판단력이 있지 않겠느냐,쉽게 말해서 사람이 저 죽을 짓 하겠냐,이런 것이지요. 궁지에 몰리면,완전히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이런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인데,저 죽을 짓까지 무릅쓸 만큼 돌아버린거냐,아니면 이상한 사람이냐,이것까지 우리는 합의를 못 이루고 있는 거거든요. 우리 한국사회가 그 정도 합의가 안 되는 겁니다.저 사람 제정신 맞아,어떤 사람은 설마 제정신이겠지,어떤 사람은 걔 완전 돌았어,이런 거거든요. 그래서 멀쩡할걸,이러면 그날로 박살이 나는 겁니다.대한민국이 이런 나라거든요.이 기준을 가지고 우리의 안전을 점검하는 것입니다.그런 것이지요? 어느 정도의 전쟁을 예방한다고 할 때,났을 때는 안 다쳐야 하는데 어쨌든 전쟁에 이기더라도 많은 상처를 입지 않습니까? 많은 손실을 입으니까,그러니까 안 나게 해야 하는데,안 나게 하는 그 억지력의 판단 기준이 정상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할 거냐,돌아버린 사람을 기준으로 할거냐,이 문제를 가지고 우리 한국이 얼마만큼 심각하게 싸우고 있는지 아십니까? 지금 신문에 나오고 있는 여러 가지의 무슨 어찌 보면 만화 비슷한 얘기들이 사실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말하자면 제정신 가진 사람이면 지금 한국을 향해서 북에서 한국을,한국에게 도발적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적절하게 관리해 나가면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인데,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저희더러 사상 검증을 하는 거지요.장관 지명해 가지고 국회 청문회 내보내놓으면 6.25가 남침이오 북침이오 묻거든요.제가 한국전쟁 6.25 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할 만한 사고력을 가진 대통령이라는 전제가 붙지 않느냐? 참 억울하거든요.저는 제정신입니다. 이래서 어렵다.모든 것을 전쟁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힘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대화로서 해야 되는 것인데요,이 대화의 전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야 된다.나아가서 존중해야 됩니다.상대방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된다.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됩니다.이런 것을 이른바 철학적으로 상대주의라는 것 아니겠느냐? 관용이라는 말이 한마디로,관용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요.관용,이것이 대화의 전제지요.대화를 통해서 남북문제를 풀어가고 전쟁,주먹질,주먹을 꺼내기 전에 말로 먼저 좀 하고 이것이 대화를 통한 안보 아니겠냐? 그래서 남북간 대화하려고 하는데 인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이거지요.또 우리 국내에서도 대화를 좀 할려고 하니까 인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가치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척사위정론이라고 하는 사상 체계를 가지고 서학 한다고 수백명씩 잡아 죽이고,마침내 1866년경에는 8천명을 잡아 죽였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렇습니다.선비정신 같이 좋은 것은 우리가 이어받아야 되겠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적 사상에 이와 같은 위험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더 돌이켜봐야 된다.성찰해 봐야 된다.성찰해 보고 그것이 끊임없이 사람을 반대편을 죽이는 문화를 만들어 왔거든요. 그래서 사문난적이라고 하고 척사위정,이 두말로 표현되는,철저히 타도해 버리는 문명,문화 이것을 가지고 왔는데,그것을 우리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에 우리 안보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습니다.조용하게 안보하면 되는데,정부가 안보,안보하고 나팔을 계속 불어야 안심이 되는 국민의식,인식,이것 정말 참 힘들다.북한이 미사일을 쐈어요.쐈는데,강원도 북쪽 어디에서 저 함경북도 앞바다 어느 쪽으로 미사일을 쐈는데,한국으로 그 미사일이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 않은가? 다 알고 있는 일이지 않은가? 정치적 정세,안보적 정세가 장기적으로 총체적으로 서서히 변화해 가는 것이지,그날 큰일 나는 것 아니거든요,그날 전쟁 나는 것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 가지고 국민 여러분! 미사일을 쐈습니다.라면 사십시오,( 일동 웃음 ) 방독면 챙기십시오.이것 해야 하느냐? 새벽에 비상을 걸어야 합니까? 아침에 보고를 받았다.보고받고,긴급히 안보상임회의를 소집하자고 했는데,하지마라,하지 맙시다.하지 맙시다,국민들을 놀라게 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그래서 11시에 한번 모이자.관계장관 간담회로 하자.간담회 했다.간담회로 하나 상임위원회로 하나 새벽 5시에 모이나 저녁 11시에 모이나 그 일 처리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예측하는 단계에서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 왜 북 치고,장구치고 국민한테 겁주지 않았냐며,나를 얼마나 구박을 주는지요.조용히 합시다.우리나라 안보 그렇게 북치고,장구치고 요란 떨지 않아도 충분히 한국의 안전을 지켜 낼만한 국력이 있고 군사력이 있다. 저도 와서 국방비 올렸지 않았느냐? 저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은 군비 축소해서 복지에 써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저는 군비 축소 안했다.올렸다.그것은 한국의 군사력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대북 군사력만이 완전한 것이 아니다,한국의 군사력이 약해서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을 당해내지 못할 형편,한반도의 힘의 공백 상태가 생겼을 때 한반도가 임진왜란,청일전쟁,러일전쟁,그렇게 다 전쟁터로 변했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도록 외국 군대가 우리나라에 와서 전쟁놀이 못하게 할 정도의 국방력을 가지고 있어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중국과 일본,미국,이 사이에 중첩적인 잠재적 적대 관계가 동북아시아의 다자안보 체제라든지 또는 동북아시아 공동체라는 이와 같은 새로운 구상을 통해서 전환되기 전까지는 한국은 상호주의의 국방력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거지요.그렇지 않느냐? 그래서 군 국방비를 제가 결코 줄이지 못한다,줄여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그러나 이제 대북 정책 가지고 국민들을 그렇게 밤낮없이 불안스럽게 할 이유는 없다,그렇게 하지 않아도 안보 괜찮다.그러나 저는 지금 이렇게 얘기하고 여러분들께서 이 자리에서 박수를 쳐주셨습니다만,여론조사하실 때는 전부 곱표 치셨을 거다.여론조사 결과 보니까요,네편 내편할 것 없이 전부 잘못했다고 다 곱표 쳐놨는데,정말 정치라는 것이 어렵구나,양심껏 소신껏 뭐 하라 해 쌌는데,양심껏 소신껏 하면 판판이 깨지는 게 정치구나,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이대로 계속갈 수 없다,달라진 것은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터질 때는 터지더라도 다르게 할 건 다르게 하겠다,그게 단임 정신 아니겠느냐? 그렇다. 내가 고향 친구들 만나기 제일 미안하다.고향친구,학교 동창들은 저 대통령 만들려고 다니면서 친구들한테 표 찍으라고 했는데,지금 몰려 가지고 지금 박살이 나고 있으니까,이 친구는 어디 술자리가서 괴롭기 짝이 없지요.그런 애로사항은 있습니다만,그 사람들 체면보다 더 큰 게 저는 국가의 미래라고 생각해서 그냥 그렇게 싸잡아가기로 했습니다.원론적으로 몇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실례를 들어서 말하겠다. 이라크 파병 왜했냐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지요.또 미국하고 왜 껄끄러워졌냐,저는 껄끄러워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맨처음 대통령 당선됐을 때 북핵문제를 놓고 북한에 대한 무력 공격설이 마구 난무했습니다.미국 신문에 우리 한국 신문에.책임 있는 사람들이 말했다 안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신문에 난무하면 그게 국민들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거다.그래서 무력공격 안 된다.얘기했다. 그랬더니 어,그러면 미국하고 일 생기지,우리나라의 안보와 안보 논리를 주도해 왔던 사람들이 큰일났다 이겁니다.노무현이가 미국하고 관계를 탈내겠다.그렇다.그러나 그 이전에 어떻든 전쟁은 안 된다 했다.잘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고요. 왜 그렇게 했냐,우리나라에 여러분이 지금 그런대로 쓸 만한 사람인지 내 스스로가 쓸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옛날 사귀던 친구보고 우리 집에 놀러오라 해 가지고 놀러오면 내가 아직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겁니다.돈 좀 꿔 달라해 가지고 돈 빌려 주면 그거 아주 괜찮은 사람입니다.돈 안 빌려 주면 아 내가 요새 한 물 가는 구나 이렇게 생각해야지요. 한국이 괜찮은 나라라면 여행하는 사람이 많이 오게 되어 있고,괜찮은 나라라면 돈 빌려주는 사람이 있게 되어 있고 투자하는 사람이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대통령 당선됐을 때 투자가 끊어질 거다,돈 빌리러 갔더니 가산금리를 더 내라 한다,이 말은 한국에 돈 빌려 주기 싫다는 것과 같은 거거든요,국가가 돈 빌릴 수 없는 국가가 되면 그때부터 위기로 갑니다. 돈 빌려 달라 해 가지고 안 빌려주면 그때부터 철저히 단속하고 재빨리 신용을 회복하지 못하면 바로 97년 외환위기 같은 사태로 굴러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은 바뀌었고 미국을 한 번도 안 가 본 대통령이고,그런데 전쟁은 난다하고 이런 저런 상황이었다.제가 안팎 곱사등이 됐지요.북핵문제를 가지고 전쟁은 없다 해야 하고 두 번째로는 있거나 없거나 간에 미국하고 관계가 돈독해야 하는 것이지요,제일 처음 묻는 게 그겁디다.전쟁하냐,돈빌려 주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전쟁하냐,그다음에 북한이 붕괴하냐,절대 그런 일없다고 딱 얘기해 놓고 나니까 미국하고 잘 지낼거냐,이렇게 물었습니다. 별 수 있습니까? 미국하고 잘 지낸다는 것 별로 말로 잘 지낸다 괜찮다 하고 또 큰일났다고 하는 두 사람들이 있지요,미국에서 큰일났다 사람들은 노무현 길들이기 프로그램에 들어 있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천지도 없이 겁 없는 대통령이 된 모양인데,맛 좀 보여야지 이래 가지고 ,그래서 한 미관계가 나빠진다,나빠진다 계속 신호보내가지고 노무현 기 좀 꺾어라 이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이 그때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해야 되는 것이 전쟁 없다고,하나는 미국하고 괜찮다는 것이지요.가장 확실한 증명이 이라크 파병 아니냐? 그것은 개인 노무현과 미국과의 관계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미국과의 우호 관계가 동맹관계가 지속적으로 작동하냐 안하냐는 그런 바로메타였기 때문에 이라크 파병을 했습니다.1만명 보내자는 사람 있었어요.오천명 보내자는 사람도 있었고,전투병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또 우리나라에는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그 전쟁의 명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또 많은 분들이 있어서 그래서 비전투 3천명,장사로 치면 장사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한·미동맹이라고 하는 그 목표를 한 미동맹의 안전성 그것에 대한 국제적 신뢰라고 하는 그 목표,그런 것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달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장사 아니겠냐? 2사단 후방 배치,미국이 얘기를 해요.우리나라에서 일부에서 안 된다.인계철선을 가지고 가면 어떻게 하냐,그런데 정부 안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이 있어서 그 말 하지 마시오,미2사단 뒤로 물리시오.물리기로 했습니다.그래서 이제 시비가 많이 붙었어요.한 쪽에는 안보가 불안하다는 것이고,미2사단 물리고 나면 이제 북한이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지요.미국이 자동 개입이 안 되니까 안 도와줄 지 모른다는 것이고,한쪽에서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북한이 전방에 있는 2사단에 즉각 보복할텐데,2사단을 빼고 있으니까 이제 보복할 데가 없어졌으니까 미국이 북한을 때리기 위한 사전준비 작업 아니냐,그래서 2사단 후방배치에 대해서 떨떠름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요,반미주의자들이 있어요.그런데 옮겨야지오.여기에 원칙이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군이 방위력이 얼마만큼 크냐,정직하게 하자,언제 역전된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대개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때 실질적으로 역전된 것으로 보지 않습니까? 이제는 국방력이고 경제력 때문에 그게 85년이라고 잡아보자.85년에 역전됐으면 지금 20년이 지났다.우리가 북한의 국방비에 몇 배인지 숫자를 외우지 못하겠는데,여러 배를 쓰고 있습니다.두 자리 수 아닙니까? 열배도 훨씬 넘네요.열배도 훨씬 넘는데,이게 한해 두해도 아니고 근 20년간 이런 차이가 있는 국방비를 쓰고 있는데,그래도 지금까지 한국의 국방력이 북한보다 약하다면 70년대 어떻게 견디어왔으며,그 많은 돈을 우리 군인들이 다 떡 사 먹었느냐 ,옛날에 국방장관들 나와서 떠드는데 그 사람들 직무유기한 것 아니에요.그 많은 돈을 쓰고도 북한보다 약하다면 직무유기 한거지요? 정직하게 보는 관점에서 국방력을 비교하면 이제 2사단 뒤로 나와도 괜찮다.공짜 비슷한 건데,기왕에 있는 건데,그냥 쓰지,인계철선으로 놔두지 시끄럽게 옮기냐,그렇지요.저도 그렇다.시끄럽게 안하고 넘어가면 좋은데,제가 왜 그걸 옮기냐,옮기는데 동의했냐,심리적 의존 관계,의존상태를 벗어놔야 한다.국민들이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고 하는 의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국방이 되는 것이지,미국한테 매달려 가지고 바지가랑이 매달려 가지고,미국 뒤에 숨어서 형님 백만 믿겠다,이게 자주 국가의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가 있겠냐? 이렇게 해서 되겠냐? 인계철선이란 말자체가 염치가 없지 않냐? 남의 나라 군대를 가지고 왜 우리안보를 가지고 인계철선으로 써야 하냐? 피를 흘려도 우리가 흘려야지요.그런 각오로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져야 무슨 경제적인 일이나 또 그밖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미국이 호주머니 손 넣고 그러면 우리 군대 뺍니다.이렇게 나올 때 이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하고 당당하게 그러지 마십시오 하든지 예 빼십시오 하든지 말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난 나가요 하면 다 까무러지는 판인데,대통령 혼자서 어떻게 미국하고 대등한 대결을 할 수 있겠냐?(일동 박수) 완전하게 대등한 외교는 할 수 없다.미국은 초강대국이다.그런 헛소리는 하면 안 되고 미국의 힘에 상응하는 미국의 세계의 영향력이 상응하는 대우를 해 줘야 합니다.동네 힘 센 사람이 돈 많은 사람들이 길 이렇게 고치자,둑 고치자 산에 나무 심자,하면 어지간한 사람 따라가는 거죠.미국이 주도 하는 질서 이것을 거역할 수 없다.그러나 최소한 자주 국가 독립국가로서의 체면은 유지해야 될 것 아니겠냐? 때때로 한번 씩 배짱이라도 내볼 수 있어야 될 것 아니냐? 근데 2사단 빠지면 다 죽게 생긴 나라에서 다 죽는다고 국민들이 와들와들 사시나무처럼 떠는 나라에서 무슨 대통령이,외교부장관이 미국의 공무원들하고 만나서 대등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겠냐? 심리적인 이 의존관계를 해소해야 된다,그래서 뺐다.좀 있으니까 이제 숫자도 좀 더 줄이자 감축하자,하시오.비공개로 논의하자,공개로 합시다.그러면 연기합시다.그래서 1년 연기해서 감축 논의했습니다.그런데 나중에 결국 감축얘기가 미국 쪽에서 먼저 나왔잖아요? 당신들 자기들이 연기하자 해 놓고 왜 뒤로 그러냐고,그랬더니 또 보니까 우리 쪽에서 연기하자 했다고 옥신각신하는데,수사를 못해봤다.하여튼 그냥 감군 좀 해도 괜찮다. 용산기지 왜 이전하냐,그 땅 비싼 땅입니다.쉽게 얘기해서 엄청 비싼 땅인데,지금 5조 5천억원 정도 들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거기에서 플러스,마이너스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땅 돈 주고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5조 5천억원에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게 미군 부대가 아니고 다른 쓸데없는 잡종지로 누가 있는데 개인이 절대 수용도 안 된다.안 판다하고 버티면 감정해 가지고 돈 주고 살 것 아닙니까? 감정해 가지고 돈 주고 살 것 아닙니까? 감정해 가지고 돈 주고 사면 5조 5천억 나온단 말이지요.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좋은 금싸라기 땅에 미군이 딱 버티고 앉아 가지고 지하철도 못 내고 도로도 못 내고,거기 지금 우리 국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문화시설이나 상업시설 근사한 자리인데,왜 못하냐 이거지요.투자를 해야지요.돈 없어서 안했습니다.김영삼,노태우 대통령이 합의해 놨는데,김영삼 대통령도 돈이 없어서 안 해 버리고,IMF 나서 국민의 정부는 못하고 우리는 한고비 넘어갔으니까 그것도 1년에 내는 것도 아니고 10년씩 걸쳐서 점진적으로 해 가지고 땅 사는 건데,사야지요. 이거면 누가 시비하는 것 없는 것 같습니다만,이것 때문에 평택에서 어떻게 시끄러운지,국민들이 노무현 정부는 왜 이렇게 시끄럽노 하지만,예,할 일은 해야 되지 않겠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국민들 가슴 속에 자주 국가의 상징,자주국가의 상징에 상당한 손상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아무리 우방이라 할지라도 수도 한복판에 그것도 청나라군대가 주둔했던 그 자리에 하필이면 그리 꼭 있어야 되겠느냐,옛날에 우리나라 독립협회가 모화관이 있던 자리를 헐어버리고 독립문을 세운 것은 그것이 현실적이든 아니든 간에 역사적으로 상징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와 같은 역사적 행위 되는 것 아닙니까? 인간은 그야말로 역사적 동물 아닙니까? 용산기지,작통권,명분은 그렇습니다.명분은 자주국가 당연한 이치이지요. 이게 마찬가지입니다.우리가 작전 통제할 만한 실력이 없냐,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 했노,나도 군대 갔다왔고 예비군 훈련까지 다 받았는데,심심하면 사람한테 세금 내라 하고,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그 위의 사람들은 뭐했어,작전통제권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놓고 나 국방 장관이오,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그래서 작통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내고,자기들이 직무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렇게 수치스런 일들을 하고,작통권 돌려받으면 우리 한국군들 잘해요,경제도 잘하고 문화도 잘하고 영화도 잘하고 한국 사람들이 외국 나가보니까 못하는 게 없는데,전화기도 잘 만들고,자도 잘 만들고,배도 잘 만들고 못하는게 없는데 왜 작전통제권만 못한다는 겁니까? 실제로요,남북 간에도 외교가 있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도 외교가 있는데,북한의 유사시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지만 전쟁도 유사시도 있을 수 없지만 그러나 전쟁과 유사시를 항상 우리는 전제하고 준비하고 있는데,중국도 그렇게 준비하지 않겠습니까? 한국군이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을 때 북한과 우리가 대화하는 관계 중국과 우리가 대화할 때 외교상의 대화를 할 때 동북아시아의 안보문제를 놓고 대화를 할 때 그래도 한국이 말발이 좀 있지 않습니까? 작전통제권도 없는 사람이 민간 시설에 폭격 할 것인지 아닌지 그것도 마음대로 결정 못하지 어느 시설에 폭격 할 것인지 그것도 지마음대로 결정 못하는 나라가 그판에 가 가지고 중국한테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북한한테 무슨 할 말이 있어요.이것은 외교상의 실리에 매우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유사시가 없을 거니까 그런 걱정 할 것 뭐 있노,그럴바에야 작통권이니 있기는 왜 있어야 돼요? 여기까지 몰라서 딴소리하는 건지 알고도 딴소리하는 건지 모르지만 나는 그분들이 외교안보의 기본원칙,기본원리조차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명색이 국방부장관을 지낸 사람들이 북한문제,북한의 유사시에 한 중간의 긴밀한 관계가 생긴다는 사실을 모를리 있겠습니까? 그런데 또 알면서 알았다면 왜 작통권 환수를 지금까지도 할 엄두도 안내고 가만있었을까,불가사의한 일입니다.모든 것이 노무현 하는 것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흔들어라 이거지요,흔들어라.난데없이 굴러 들어온 놈.예,그렇게 됐습니다. 전략적 유연성 이 문제의 핵심은 그렇습니다.우리가 이것을 동의하고 안하고 현실적으로 무슨 문제이든 외교적인 문제입니다.중국과의 관계에서 동북아시아의 유사시에 주한미군이 여기에 있더라도 중국 당신들에 대해서 동북아시아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적대적 행위 이런 것에 신중히 하겠다,전략적 유연성은 합의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그때 가서 미리 다 정해 놓을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한국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안 된다.이렇게 되어 있습니다.그러면 동의하는 것은 된다.이런 것입니다.그것이 제일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정해 놔봤자 그때 상황이 어떻게 될지 것인데,그때 우리 한국 국민들이 합의하고 동의하면 OK하면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이고,안 된다하면 못하는 거 그게 가장 좋은 것 아닙니까? 지금 어떻게 정해 놓습니까? 이 문제 가지고 부시 대통령 만나서 토론도 하고 많이 했습니다.다 정리됐습니다.국방개혁의 철학이 있습니다.국방개혁,노태우 대통령때부터 거론되고 김영삼 대통령때도 들먹거리고 국민의 정부에서도 계획까지 짰다가 무산되어 버린 국방개혁,이제 겨우 법이 통과됐습니다.지시해 놓으니까 안 만들어 와요.누가 개혁 좋아하겠습니까? 자기 조직 살 깎는 일인데,그렇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다 만들 수도 없고,결국 국방부,군에서 다 만들어 가지고 국민들 앞에 발표했습니다. 국방개혁 2020,돈 특별이 더 드는 것 없습니다.50만으로 줄입니다.왜 인력을 줄이고 더 줄여야 됩니다.인력을 더 줄일 수 있습니다.왜 인력을 줄이고 무기를 늘리냐,북한 하고만 싸우려면 지상전이 많을 수도 있으니까 떼가 많아야지요.떼거리가 많은 게 제일 좋은 거지요.그러나 우리 안보를 전방위 안보로 생각한다면 떼로 안 된다,사람 밥 먹이고 옷 입히고 막사 짖고 사람한테 들어가는 것 다 아끼고 아주 성능 좋은 무기를 개발해야 된다 그런 것 아닙니까? 국방개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 요새 아이들도 많이 안 낳는데,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놓을 것 아닙니까? 우리 모든 사회 제도를 장가 일찍 가고,시집 일찍 가는,결혼 일찍 가는 제도로 전부 바꿔 줘야 합니다.결혼 빨리 하기 제도,직장에 빨리 할 수 있게 하는 제도 이런 제도로 바꿔 주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다 지체가 되거든요.지금 그 계획세우고 있습니다.장가 빨리 보내는 정책,이런 제도 개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얼마 전에 군 장성들 임명을 하고 차를 한잔하는 자리에서 여보시오,노무현 대통령 되고 난 뒤에 대한민국 군대가 나빠진 게 뭐 있으면 얘기해 보시오,있어도 말 하겠습니까? 설마.말하겠지만 여러분이 대신 한번 얘기를 해 주세요. 대한민국 군대,노무현 대통령이 더 나쁘게 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인사,군 인사를 몇 번씩이나 장성인사를 몇 번씩이나 했는데,신문에 한 줄도 쓸 것이 없어요.요새 신문 기자들 힘들어요,쓸 것이 없어서,그렇지 않습니까? 비행기를 1조 4천억원짜리 공중 조기경보 통제기인가 그것을 사는데 상대방 계약 당사자를 선택,채택 했습니다.1조 4천억 자리 방산 계약을 했는데도,부패니 뒷거래니 한마디도 없지 않습니까? 어때요 군안에서 자살사고 총기사고 많이 났습니다.앞으로 고쳐 가야겠지요.아주 노력해서 빨리 고치겠습니다.문화라는 것은 하루이틀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지금 군인사 군수조달,군내 예산 집행의 투명성,이런 것들은 대폭 달라졌습니다.병영생활 문화도 아주 빠르게 개혁되고 있습니다.지금 민자 유치해 가지고 막사 전부 다 지어서 고치고 해서 군인들 하고 전역 군인들 취업 좀 평등권 문제 걸리기 때문에 애로가 있지만 전역군인들 취업하는 것 대책을 세워줘야 군 구조를 개혁할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전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어떻든 국방부 문민화 이 부분은 민간인 국방장관을 임명하는 문제는 좀 뒤로 미루었습니다.한꺼번에 다 그렇게 해 놓으면 어지러워서 안 될 것 같아서 옛날에 우리 F15기 새로 사가지고 성능 좋다고 막 올라갔다가 확 내려갔다가 중력 차이가 너무 빠르게 나니까 그만 정신을 잃어버려 가지고 바다 밑으로 비행기가 들어가 버렸지 않습니까? 사회개혁도 제가 하는 게 좀 빠른가 봐요,전부 어지럽다고 그래요.그래서 국방부 문민화까지 한꺼번에 해치우면 바다밑에 들어간다면 곤란할 것 같아서 문민화는 다음에 합시다 장관 임명하는 것만 하면 되는 거니까.그런데 중차대한 개혁을 해야 되는 시기에 군인들한테 대해서 대통령이 군인들한테 신뢰를 주고 자발적으로 스스로 해 보시오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문민화로 뒤로 미루고 군 개혁 확실하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잘 될 것입니다.안보 문제 잘 될 것이고 ,그다음에 나머지 여러 가지들이 있는데,여러분 말씀 들어 보시건대,그렇습니다. 노무현이 잘 한다 못한다 말 많고 이것은 왜 이랬냐 그거 다 시어머니가 앉아서 며느리 밥상 차려오는데 잔소리 하려면 잔소리 할거리가 없겠어요? 그만 대강 봐서 그렇게 멍청한 것 같지는 않지요? 대강 대강 짚어야 될 것은 대개 짚고 있는 갑니다.그렇지요? 제말 들어 보니까 그러면 되지요.개인적으로 누구 봐줄 일도 없고 뒷돈 챙길 일도 없고 할 일이 그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국가 잘되게 원칙대로 그것 말고는 할,다른 할 일도 없고 할 방법도 없고 영 멍청하지 않으면 기왕에 뽑아놨는데,국방,외교,안보,통일 이것 저한테 다 이렇게 맡겨줘라 이렇게 여러분 말 좀 한번 해 주십시오. 맡겨놔라…고만…내가 전에 만나봤는데,그거 영 바보 아니더라.대개 들어봤는데 앞뒤 챙길 것은 재고 챙기는 것 같더라,좀 맡겨봐라.부탁합니다.
  • 퍼도 퍼도 줄지않는 사랑

    “지난 여름부터 쌀 걱정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광주시 남구 월산 5동 김모(75)할머니는 일주일에 한번꼴로 동사무소에 들러 이곳에 설치된 ‘쌀뒤주’에서 쌀을 퍼간다. 김씨는 “처음엔 쑥스럽기도 했지만 동사무소 직원들의 따뜻한 배려로 요즘은 맘놓고 쌀을 가져 간다.”며 “어려운 사람들을 남몰래 도와 주는 이들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홀로 살고 있는 박모(71) 할머니도 서구 금호1동 사무소에 설치된 뒤주에서 쌀을 가져다 끼니를 잇는다. 박씨는 자녀들이 경제적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받지 못해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끼니 걱정 없이 사는 덕분인지 고달픈 일상이 훨씬 가볍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광주지역에서 이같은 현대판 ‘운조루(雲鳥樓) 뒤주’가 퍼져 가면서 세밑 훈훈함을 더해 주고 있다. 운조루의 주인이 뒤주를 곳간 뒤채에 마련해 쌀을 퍼가는 사람과 얼굴을 대면하지 않도록 배려한 점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사랑의 쌀뒤주’는 지난 1월 광주시 서구 금호 1동 사무소에 처음 설치됐다. 뒤주 앞엔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말고 따뜻한 밥을 지어 드세요.’란 안내문이 붙었다. 일주일 만에 참여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이어 다른 동사무소로 이 운동이 확산됐고 부녀회·청년회 등 주민 자치조직과 독지가의 도움이 이어졌다. 현재 시내에는 ▲주월동 ▲백운 2동 ▲월산 5동 ▲금호 1동 ▲화정 3동 등 모두 5개 동사무소에 뒤주가 설치돼 있다. 뒤주의 운영 방식도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동사무소에서 설치·운영을 맡았지만 지금은 어려운 이웃의 형편을 공무원들보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주민들이 앞장서고 있다. 남구 월산 5동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사랑의 쌀 나눔 운영위원회’ 구성을 추진 중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영업자·사업가 등 주민들이 쌀을 직접 구입해 뒤주에 붓거나 매달 5만∼10만원의 후원금을 내고 있다. 현재 월산 5동에서는 매월 20㎏들이 쌀 6∼8가마가 소비된다. 한달 40∼50명의 주민이 이용하고 있다. 남구는 이들 뒤주를 ‘효사랑 나눔의 가게’로 이름 붙이고 독지가의 참여확대에 나섰다. 서구 화정 3동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동사무소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 쌀을 건네주고 있다. ■ 운조루의 뒤주는 조선 영조 52년(1776년) 낙안군수 류이주(柳爾胄)가 세운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 곳간에 놓인 뒤주를 일컫는다. 구멍을 여닫는 마개에 ‘누구든 마음대로 쌀을 퍼갈 수 있다.’는 의미의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주인은 이 통나무 뒤주를 곳간에 놓아 편안한 마음으로 쌀을 퍼가도록 배려했다. 주인은 매월 말 뒤주를 열어 보고, 쌀이 남아 있으면,“덕을 베풀어야 집안이 오래간다. 당장에 이 쌀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눠 줘라.”며 며느리에게 호통을 쳤다고 전해진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연말 따뜻한 가족애 담은 광고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임이 많아 유난히 바쁠 때다. 이럴 때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더욱 아련해진다. 이에 맞춘듯 부부, 부자, 시아버지와 며느리 등 가족을 소재로 삼은 광고가 눈에 많이 띈다. 이런 광고는 쉽게 이해되면서도 바로 공감이 가는 생활형이다. 광고회사 웰콤의 이지희 부사장은 18일 “유행의 첨병인 광고계에서 편하게 보고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형 광고가 일상을 예리하게 끄집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금융연합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소재의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맞벌이 부부’편,‘아름다운 노년’편이 하나금융그룹의 대표적 가족 소재 광고이다. ‘맞벌이 부부’편에서는 공원을 가로질러 유모차를 밀고 바쁘게 출근하는 맞벌이 부부의 일상을,‘아름다운 노년’편에서는 노부부가 한가로이 바닷가를 거니는 생활을 그리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유모차를 밀고 갈 때, 또 노부부가 바닷가를 산책할 때 전문가들은 나무 뒤와 수중에서 이들을 위해 금융의 해결책을 찾는다. 느슨해지기 쉬운 광고 구성에 유머러스한 긴장감을 불러넣었다. 동서식품 미떼는 첫 장면부터 빙 둘러앉은 가족들이 나온다. 딸이 노란 머리 숱의 남자친구를 데려오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진다.‘쉬이익∼’ 주전자의 물끓는 소리가 긴장감을 더한다. 물 주전자가 보글보글 끓자 부드러운 초콜릿이 녹아들어가면서 긴장된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진다. 그 때 ‘하우 올드 아 유?(How old are you?·당신 몇 살이야?)’라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질문하는 아버지의 위트있는 멘트가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 SK텔레콤의 고객체험형 매장인 T월드 광고도 재미있다. 한가로운 휴일 장난꾸러기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서 비롯되는 끔찍한(?) 사건이 소재다. 소파에서 편안하게 신문을 읽던 아버지에게 두 동강이 난 휴대전화를 들고 “아빠 두 개!”라고 외치는 아들. 무너져내리는 아빠의 표정이 압권이다.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광고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목소리를 모두 담았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지 못한 꼬마와 드라마를 놓친 엄마의 속상한 마음을 생생한 표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하나TV의 컨셉트를 잘 녹여내고 있다. 교보생명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황당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식사를 하다 며느리를 부른 시아버지 앞에서 며느리는 ARS 상담원처럼 반응한다. 복잡한 서비스를 당혹해하는 노년층이 느낄 수 있는 상황을 깐깐한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관계로 표현했다. 이지희 부사장은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광고 소재로 부각되는 이유는 연말 연시라는 시기적 특성과 함께 여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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