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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작품 불태운 201㎝의 ‘거인’ 화가 존 발데사리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작품 불태운 201㎝의 ‘거인’ 화가 존 발데사리

    글자 그대로 ‘재미있는(hilarious)’ 사람이었다. 키가 201㎝나 됐던 미국 화가 겸 미술교육가 존 발데사리 얘기다. 1970년 여름 어느날, 그는 20년 가까이 그려온 수천 점의 작품들을 돌아봤다. 20대였던 1950년대에 그린 작품들은 전통에 얽매어 있었고, 자신이 어떤 예술가인지 알아보는 과정에 그려낸 습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그림을 모두 불태우고 새롭게 자신의 길을 걷자고 결심했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근처로 가져가 모두 태웠다. 재들은 책 모양 크기의 상자 10개에 담아 서가에 꽂아두는 한편, 몇 개로는 다른 재들과 섞어 쿠키 반죽을 만드는 데 넣었다. 구워진 쿠키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했다. 발데사리는 몇년 뒤 인터뷰를 통해 “창의적이려면 때로는 아주 파괴적이어야 한다”며 “불사조가 재 속에서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낡은 예술 작품에 집착하는 것은 죽음을 선고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일년 뒤에는 세상에 “더 이상 지루한 예술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괴팍한 화가가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여든여덟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 약속을 지켰다고 영국 BBC가 12일 뒤늦게 보도했다. 유수 통신사들은 지난 7일 그의 별세를 알렸는데 BBC가 닷새나 뒤늦게 부음을 전했다. 고인은 1931년 6월 17일 멕시코 국경 도시 티후아나에서 가까운 캘리포니아주 내셔널 시티에서 태어났다. 샌디에이고에서 예술과 예술교육을 전공한 뒤 중학교, 커뮤니티 칼리지,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교편을 차례로 잡았다. 여름에는 지방 관청이 운영하던 청소년 범죄자 교실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1970년 그림들을 태우기 전부터 실험은 시작됐다. 문자 만으로 작품을 꾸미거나 문자와 이미지를 결합해 꾸몄다. 일부러 캔버스에다 사진을 프린트해놓고 “잘못(WRONG)”이라고 적기도 했다. 아래 ‘팔고 싶은 예술가를 위한 조언들’을 보면 현대 상업 예술을 마음껏 조롱하기도 했다.그는 명문 예술학교 칼아츠,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등 예술 교육가로 이름을 날렸다. 사진과 그림, 문자, 인식 가능한 물체나 인체 기관의 모습 등을 독특한 방법으로 결합해 새로운 멀티미디어 작품으로 빚어냈다. 몇몇 비평가는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개념(컨셉트) 미술가임에 틀림없다”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에 그로부터 국가 예술 훈장을 받았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직전에는 평생 업적 부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국내에선 그의 작품 20여점을 소개한 개인전이 2015년 서울 PKM 갤러리에서 열린 적이 있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등에 소장됐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큐레이터 케이트 폴레는 BBC 인터뷰를 통해 “그는 예술가 직업에 매우 진지했다. 하지만 예술 자체, 예술계를 심각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그는 어떤 게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겐 ‘그저 가서 봐요. 좋아하지 않는 건 상관 없어요, 그냥 가서 봐요, 결국은 뭔가를 당신을 다독일 거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1970년대 칼아츠 학생이었으며 나중에 친구가 된 데이비드 살레는 키가 컸다는 사실 때문에라도 “예술계에서 가장 크고 진지한 작가란 특장”을 안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살레는 생전의 고인이 “여러분이 즐기기 전에 뭔가를 아는 것을 요구하도록 작업하지 않았다. 그는 낱말들과 이미지들을 섞었지만 여러분이 굳이 퍼즐의 밑바닥을 알아내려고 열심히 굴 필요가 없게 했다. 그는 여러분을 시험하려 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을 통해 예술의 즐거움을 알리는 것이 발데사리의 열정이었으며 그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갤러리스트 마리안 굿먼은 BBC 인터뷰를 통해 “그는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안겼다. 그는 학생들이 유명한 화가가 되는 데 정말로 도움이 됐다. 사람들은 그와 함께 하면 공부에 몰두했고, 그가 가르치는 모든 것이 그들의 피와 살이 됐다”고 했다. 2009년 말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을 때도 그는 자신이 예술 경력의 가을에 들어섰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년 뒤에도 그는 완전히 다른 컬렉션을 선보이려 시도했고, 그 결과물이 2013년 러시아 모스크바의 개러지 현대 미술관 전시로 이어졌다. 살레는 “몇십 년 전만 해도 콜렉터들은 아마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의 컨셉트 예술 작품을 구매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발데사리의 작품을 사보겠다며 줄을 서고 있다. 존의 반골 기질에도, 어쩌면 그 기질 때문에 그의 작품은 확고한 진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신한대, 아동청소년 비전 찾기 프로젝트 ‘우미드림파인더’ 발대식 개최

    신한대, 아동청소년 비전 찾기 프로젝트 ‘우미드림파인더’ 발대식 개최

    신한대학교(총장 강성종)는 13일 그랜드 하얏트 인천 호텔에서 우미건설(대표 이석준)과 공동으로 산재 및 다문화 가정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비전 찾기 프로젝트인‘제 2차 우미드림파인더’프로그램 발대식을 개최했다.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중에서 선발된 참가학생들의 설렘과 기대 속에서 오늘 진행된 발대식은 오리엔테이션 및 안전교육에 이어, 팀 빌딩 및 아이스브레이킹, 이호재 우미건설 상무의 인사말, 기념촬영 등으로 구성됐다.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우미드림파인더(Woomi Dream Finder)는 산재 및 다문화 가정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비전 찾기를 통해 진로 탐색, 성취 동기 습득, 미래 비전 확립 등을 지원하기 위해 우미건설과 신한대가 공동으로 기획했으며, 오는 18일까지 국내 비전캠프와 해외 비전캠프로 나뉘어 진행된다. 국내 비전캠프에서는 전문가 특강, 진로 탐색을 위한 Strong 진로발달검사, GST가드너 진로강점검사, 코칭 및 멘토링 등과 같은 국내 최고 수준의 진로·적성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베트남 하노이와 하롱베이에서 진행되는 해외 비전캠프는 3박 5일간의 일정으로 해외진출 국내기업 및 현지 대학을 방문하고,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며, 팀별 과제 활동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특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베트남 다문화 가정 아동청소년들은 부모님의 나라인 베트남 방문과 문화 체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미래 성장가능성이 큰 베트남 산업현장을 둘러보며 꿈을 키울 수 있게 된다. 또한 캠프 기간 중 활동 성과가 우수한 팀에 대해서는 포상이 주어지고, 참가자 전원에게 소정의 장학금도 지급된다. 이번 프로그램을 공동 주최한 신한대 사회적가치추진단 이현 교수는 “오늘 시작하는 우미드림파인더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학생들이 진로를 설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고, 창의성과 글로벌 마인드를 함양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우리가 보살펴야할 아동청소년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본인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41년 동안 ‘러시’ 드럼 두들긴 닐 퍼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41년 동안 ‘러시’ 드럼 두들긴 닐 퍼트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 캐나다 록그룹 ‘러시’의 드러머였으며 많은 곡의 가사를 쓴 닐 퍼트가 3년 6개월의 뇌암과 싸운 끝에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45년 동안 고인이 몸 담은 러시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퍼트가 뇌암의 일종인 교모세포종(Glioblastoma)에 스러지고 말았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11일 전했다.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아들 뷰가 모두 이 병에 목숨을 잃었다고 미국 일간 USA 투데이는 전했다. 유족들의 대변인도 미국 잡지 롤링스톤에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유족으로는 사진작가 부인 캐리 넛트올과 딸 올리비아를 남겼다. 이 잡지가 뽑은 역대 최고의 드러머 네 번째를 차지한 퍼트는 기술적으로 아주 빼어났으며 특히 공연 무대를 탁월하게 장악하는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뮤지션들과 팬들 모두 사랑한 드러머이기도 했다. 1968년 싱어 겸 베이시스트 게디 리와 기타리스트 알렉스 라이프슨, 드러머 존 럿시가 결성한 러시에 퍼트는 럿시를 대신해 1974년 합류했다. 처음에는 하드록을 위주로 하다 나중에 차츰 재즈록 쪽으로 옮겨갔다. 40년 넘게 장수한 밴드의 일원이었다. 퍼트는 2015년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은퇴했는데 세월이 자신을 “게임 아웃”시켰다고 토로했다.힙합 그룹 더 룻츠의 드러머 퀘스트러브는 퍼트가 드럼 세트에 앉아 있는 흑백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조의를 표했다. 덴마크 출신의 메탈리카 드러머 라스 울리히도 인스타그램에 퍼트의 영감을 받아 드러머의 길을 걸었다고 토로했다. 이 3인조 밴드는 ‘더 스피릿 오브 라디오 앤드 톰 소여’ 등 수많은 히트곡들과 함께 미국에서만 2500만장의 앨범 판매를 기록했다. 을 남겼다. 2013년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많은 이들이 트위터에 추모의 글을 올리고 있는데 그룹 키스의 리더 진 시몬즈는 “친절한 영혼”을 지녔던 인물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배우로 많은 음악영화에 출연했으며 2001년 데뷔한 ‘터네이셔스 디(Tenacious D)’ 멤버인 잭 블랙도 “장인이 많이 그리울 것이다. 닐 퍼트 영면(RIP)을”이란 트윗을 날렸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레전드를 잃었다. 그의 영향력과 유산은 캐나다와 전 세계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오일 머니 덕에 50년 왕좌 지킨 카부스 오만 국왕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오일 머니 덕에 50년 왕좌 지킨 카부스 오만 국왕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50년을 한결같이 이슬람 왕국 오만을 통치한 카부스 빈사이드 알사이드(80) 국왕(술탄)이 세상을 떠났다. 아랍권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술탄이었으며 슬하에 자녀가 없는데도 후계를 정하지 않았다. 오만 국영 매체들은 트위터 계정으로 그가 10일(이하 현지시간) 저녁에 승하했다고 다음날 새벽에 알렸다. “신이 그를 곁에 두기로 했다”는 멋진 표현도 눈에 띈다. 그는 재발한 결장암을 치료하고 건강 검진도 받을 겸 지난달 말 벨기에를 방문했다가 예정을 앞당겨 귀국한 일이 있다. 그의 병세가 위중해져 왕위 계승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결국 정하지 않았다. 카부스 국왕은 1970년 영국의 도움을 받아 무혈 쿠데타로 부친을 퇴위시키고 즉위한 뒤 50년 가까이 통치했다. 마침 유전 개발이 시작돼 오일 머니 덕에 나라를 통치하는 데 힘들 일이 없었다. 오만의 술탄국 기본법 6조에 따르면 술탄이 공석이 된 지 사흘 안에 새로운 술탄을 뽑아야 하는데 왕실은 곧바로 하이삼 빈타리크 알사이드 문화부 장관을 새 국왕으로 뽑았다. 그는 11일 국영TV로 방영된 연설을 통해 모든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외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펴 전임 국왕의 길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카부스 전 국왕의 사촌이기도 하다. 당초 역시 같은 사촌지간인 아사드 빈타리크 알사이드 부총리, 시하브 빈타리크 알사이드 전 해군 사령관과 각축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곧바로 승계가 순탄하게 이뤄졌다.술탄국 기본법 6조에 따르면 왕실은 술탄이 공석이 된 지 사흘 안에 후임 술탄을 골라야 한다.왕족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국방평의회, 최고법원 원장, 국가자문위원회와 국가위원회가 모여 술탄이 후계자를 적어 넣어둔 봉투를 열어 지명된 이를 새 국왕으로 정하는데 1979년 카부스 전 국왕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던 봉투를 이날 열어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나라의 술탄은 거의 전지전능한 통치자다. 총리를 비롯해 육군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재무부 장관, 외교부 장관을 모두 겸했다. 460만 국민 가운데 해외에서 이주한 사람이 43%나 된다. 스물아홉 살에 선대 국왕 사이드 빈타이무르를 퇴위시켰는데 그의 부친은 은둔형에 극보수였다. 국민들이 라디오도 듣지 못하게 했고 선글라스도 끼지 못하게 했다. 자신이 국민들의 결혼, 교육, 출국 등까지 모든 것을 결정했다. 그나마 카부스는 실권을 장악하자 근대적인 의미의 정부를 출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또 당시만 해도 포장된 도로가 10㎞ 밖에 되지 않았고 학교가 세 군데 밖에 없었던 나라를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초기 몇년은 이웃 예멘의 마르크스주의 민주공화국 지원을 받는 남부 도파르 부족들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데 영국 특수부대의 손을 빌렸다. 중립 외교 정책을 펴 2013년 미국과 이란의 핵합의 비밀 협상을 주선해 2년 뒤 협정 체결에로 이끈 것도 카부스 국왕이었다. 카리스마도 있었고 나라를 이끌 비전도 겸비했다. 해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절대군주여서 반대 목소리를 잔인하게 눌렀다. 2011년 아랍의 봄 때 수천명이 거리를 점거하고 임금 인상, 더 많은 일자리, 부패 척결을 요구하자 보안군을 동원하고 최루탄, 고무탄, 실탄을 발사해 2명이 죽고 수십명이 다치고 수백명이 기소됐다. 죄명은 불법 집회 개최와 국왕 모독이었다. 그나마 카부스 국왕은 부패죄를 씌워 오래 재임한 각료들을 제거하고 국가자문위원회의 권한을 확대하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언하는 개혁 군주의 모습을 과시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모습은 생색 뿐이었다. 그의 정부는 비판적인 신문잡지를 폐간하고 책을 몰수하고 활동가들을 고문했다고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는 고발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월드피플+] NASA서 방학 인턴한 美 고등학생, 새 행성 발견

    [월드피플+] NASA서 방학 인턴한 美 고등학생, 새 행성 발견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여름 인턴을 했던 고등학생이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데 큰 공을 세워 현지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ABC, CBS뉴스 등 현지언론은 'TOI 1338 b'라 명명된 새 행성을 발견한 고등학생 울프 쿠키어(17)의 사연을 전했다. 뉴욕에 위치한 스카스 데일 고등학교 학생인 울프는 지난해 여름방학 중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NASA의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에서 인턴십을 가졌다. NASA의 실력있는 연구원들과 우주를 탐사하는 흔치않은 기회를 얻은 것. 울프에게 떨어진 업무는 TESS를 통해 얻어진 별 밝기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 TESS는(Transiting Exoplanet Survey Satellite)는 NASA가 운영 중인 우주망원경으로 지금까지 큰 업적을 남긴 케플러 우주망원경의 후임이다. 케플러보다 관측범위가 400배는 더 넓는 TESS는 행성이 별(항성) 앞으로 지날 때 별의 밝기가 약간 감소하는 식현상(transit)을 이용해 행성의 존재 유무를 확인한다.인턴 당시 울프는 TOI 1338이라 불리는 쌍성계에서 미묘한 빛의 변화를 찾아냈고 이를 NASA 연구원들에게 보고한 후 함께 연구에 들어갔다. 그리고 울프가 발견한 것이 실제로 새로운 행성으로 확인돼 최근 하와이에서 열린 미 천문학 학회에서 논문으로 발표됐다. 지구에서 약 1300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TOI 1338는 두개의 항성으로 이루어진 쌍성계다. 이 두개의 항성을 돌고있는 행성이 바로 TOI 1338 b로,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타투인'의 현실판인 셈이다. 지구보다 6.9배 정도 큰 TOI 1338 b는 각각 지구 시간으로 93, 95일 동안 두 항성을 돈다. NASA에 따르면 TOI 1338과 같은 쌍성계는 우주에 많지만 실제로 찾는 것은 어렵고 특히 이곳에서 식현상을 통해 행성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렵다.     울프는 "발견한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지만 데이터가 진실임을 말하고 있었다"면서 "내부적으로 여러차례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인턴십이 끝날 무렵 행성이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밝혔다. 이어 "NASA의 인턴십은 나에게 큰 기회였으며 앞으로도 그곳의 멘토들에게 큰 도움을 받고싶다"고 덧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울프는 대학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할 계획으로 이미 프린스턴 대학의 입학허가를 받았으나 아직 진학 결정은 하지 않았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청년, 농촌으로 가다…‘시골가면 어떻게 살아?’

    청년, 농촌으로 가다…‘시골가면 어떻게 살아?’

    퇴근길 버스 차창에 비친 자신의 우울한 얼굴을 본 어느 날, 두 사람은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한 사람은 배낭을 메고 무작정 충남 홍성으로 내려와 컨테이너 집을 구했고, 또 한 사람은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홍성의 농가주택에 새 둥지를 틀었다. 도시의 생활은 숨이 막혔고, ‘살고자’ 그들은 귀촌을 선택했다. 충남 홍성에서 만나 ‘로컬스토리’란 미디어 주식회사를 꾸린 정명진(39) 씨와 서혜림(40) 씨의 얘기다. 도시도 아닌 농촌에서 갓 창업한 청년들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한 달에 20만 원을 받는 달도, 80만 원을 받아 가는 달도 있었다. 셋이서 마을의 빈집을 빌려 시작한 협동조합은 귀촌한 청년들과 귀촌 1.5세대(부모가 귀촌) 청년 9명이 운영하는 어엿한 주식회사가 됐다. 이들은 귀촌 청년들과 함께 지역의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만든다. 청년이 지역을 성장시키고, 그렇게 성장한 지역이 청년을 성장시키는 생태계의 선순환을 꿈꾼다. 그들에게 물었다. “농사짓지 않고 청년이 농촌에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홍성에는 어떻게 내려오게 됐나요. “(서혜림)홍성에 처음 온 건 2015년 8월이었어요. 처음 와본 홍성이 마음에 들어 9월에 배낭 하나 메고 와서 살 곳을 찾았죠. 그렇게 찾은 집이 컨테이너 집이었어요. 그곳에서 8개월을 살았어요. 서울에선 영어 강사를 했어요.” -홍성에 연고가 있었나요. “(서혜림)아니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지역이에요. 귀농·귀촌·유기농·청년 등의 키워드로 검색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많고 유기농을 하는 지역을 찾고 있었거든요. 홍성이 딱 좋았고, 이곳 사람들과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 2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죠. 솔직히 다 지겨웠거든요. 서울에서 또 다른 직업을 찾을 생각은 안 했어요. 외국에 나가 살거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TV프로그램을 보다가 목수가 하고 싶다는 거예요. 남편도 영어 강사였거든요. ‘외국에 나가 살 게 뭐 있나, 시골로 가서 목수를 하자’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추진력 있는 부부지요?” -명진씨는 어떻게 홍성에 살게 됐어요? “(정명진) 혜림씨는 이사온지 4~5년밖에 안됐지만 저는 홍성에 산지 10년이 됐어요. 서울에선 기자를 했어요. 당시 다니던 회사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마침 아내가 귀농 운동본부 사이트에서 구인 공고를 본 거예요. ‘농사하면서 기자 하실 분 구합니다’라는 홍성 신문의 공고였어요. ‘아니, 정말 농사지으면서 기자까지 할 수 있는거야?’ 귀가 쫑긋했죠. 한마디로 낚여서 내려왔어요. 예전에 있던 언론사에서는 남북관계 등 거시적인 것을 주로 다뤘거든요. 그러다 보니 진짜 사람 사는 모습을 글로 옮기고 싶다는 갈증이 일었어요. 아내도 30년을 산 도시를 떠나고 싶어했고요. 모든 게 맞아떨어졌어요.” -내려온 뒤에는 어떻게 살았나요. “(서혜림)1년 정도는 한량처럼 살았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그 1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일종의 안식년 같은 한 해였어요. 그 한 해가 있어 살아갈 힘이 생겼어요. 대신 한 달간은 벌이가 없었죠. 이후에는 돈을 벌려고 6개월간 농장에서 일했어요. 그때 나는 농사 등 몸으로 하는 일은 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죠. 무릎이 심하게 붓고 응급실 실려갈 상황이 되고서 귀농은 포기했어요. 대신 이곳에서 다른 일을 찾아 귀촌을 한 거죠.” “(정명진)농사를 지으며 기자가 하고 싶었는데, 결국 저도 농사는 못 지었어요. 신문사는 2015년 8월에 그만뒀어요. 예전보다는 더 사람 냄새 나는 기사를 썼지만 신문이라는 틀에 갇히니 다양한 시도를 하지 못했어요. 좀 더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싶었어요. 새로운 미디어를 지역에 접목시키는 일도 하고 싶었고요. 지역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데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어요. 그때 혜림씨를 만났어요. 글을 쓰는 나와 영상을 하는 친구, 그리고 행사 기획을 하는 혜림씨와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그게 바로 로컬스토리의 시작이군요. “(서혜림)사무실도 없어서 매일 카페에 모여 일했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지치는 거예요. 그래서 딱 3평짜리 사무실을 빌렸죠. “(정명진)처음에는 한 달에 20만 원 받아가는 달도 있고, 80만 원 받는 달도 있었어요. 서로 일한 만큼 월급을 가져가기도 하고 20만 원, 30만 원씩 나눠갖기도 했어요. 그러다 200만 원짜리 일을 받고선 감동해서 다 울었어요. 농촌에선 마을 만들기 사업이라는 걸 하는데, 충남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에서 우리에게 일을 준거죠. 그 뒤론 매달 월급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일이 들어왔어요. 홍성군 홍동면에 지역 공동체 금융조직인 ‘도토리회’라고 있거든요. 회원들 공동출자로 협동기금을 만들고 그 자금으로 공익적인 마을 사업이나 생활에 필요한 급전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곳이에요. 그곳에서 1000만 원을 빌려 1년 뒤 1300만 원의 흑자를 냈어요.” -홍동면에는 그런 협동조합이 많은가 봐요. “(정명진)작은 마을인데 그런 협동조합 등 주민조직이 50여 개 있어요. 시골의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죠. 귀농, 귀촌이 많고 청년들도 많아요.” “(서혜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청년들이 살아갈 인프라가 부족해 안타까웠어요. 사람이 살려면 얼마나 필요한 게 많아요. 청년들은 이곳에서 연애도 해야 하고 취업도 해야 하고 결혼해선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해요. 그런 인프라 자체가 부족해요. 지역 콘텐츠는 너무 천편일률적이에요. ‘00사과’, ‘00한우’처럼 예전의 콘텐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지역이 청년들에게, 또 외지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알고보니 외국보다 좋네?’ 이런 생각이 들게 말이죠.” -말하자면 청년이 살 수 있는 지역 생태계 만들기를 고민하기 시작한 거군요. “(정명진)로컬스토리의 목표를 ‘지역과 청년이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자’로 정했어요. 시골에선 농사를 짓지 않는 한 청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안돼요. 일자리가 많은 게 아니잖아요. 돈이 있다면 땅을 사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겠지만, 청년들은 그런 재산이 없잖아요. 게다가 농사도 아무나 짓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농사를 짓지 않는 청년들은 농촌을 떠나야 할까요? 귀농하지 않고 귀촌한 청년들이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농사는 짓지 않지만, 농촌에서 살고 싶은 청년들의 이야기. 그게 로컬스토리가 처음 만든 콘텐츠였어요. 지역은 미디어 역량이 많이 떨어져요. 하지만 귀촌한 청년들은 미디어에 밝죠. 그런 청년의 재능이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죠. 청년이 지역을 성장시키고, 성장한 지역이 청년을 돕는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뤄보자 결심했어요.” -지역에서 관심을 많이 두던가요? “(서혜림)‘우리 동네는 시골이지만, 로컬스토리 같은 회사가 있어’라고 마을 분이 자랑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청년들이 귀촌해서 사는, 그만큼 매력있는 지역이라는 자부심이 엿보였어요. 우리의 존재 자체가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니 뿌듯했죠. 그래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소 2주에 한 번씩은 ‘로컬스토리 뭐하나’라는 콘텐츠를 올려요. 그만큼 관심을 많이 두시거든요. 한 번은 한 농가를 인터뷰하고 그분의 정보를 노출했더니 갑자기 그 농가의 농산물 판매량이 증가한 거예요. 장문의 감사 편지를 받았죠.”-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것 외에 또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정명진)마을 주민들 글쓰기 교육도 해요. 마을에서 살아온 기억을 주제로 수필 한 편씩 쓰기를 한 적이 있어요. 평생 글이라고는 써보지 않았던 분들이 교육 시간에 자신이 쓴 수필을 모아 책을 냈어요. 고기도 삶고 국수도 삶아 우리끼리 출판기념회도 하고 낭독회도 했어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글을 모르는 할머니셨는데, 글쓰기 수업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을 하신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날 글쓰기 수료증이 나왔는데, 무척 좋아하시면서 자신이 죽을 때 그 수료증을 관에 넣어달라고 하셨어요. 그만큼 배움에 대한 한이 깊으셨던 거죠.” -창업할 땐 어떤 점이 어려웠나요. “(정명진)우리의 첫 사무실은 빈 시골집이었어요. 2만 평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었죠. 이곳에 우리 나름대로 작업실을 꾸렸는데, 기본적으로 영상을 만들려면 비디오 제작 사업 신고를 해야 해요. 이걸 하려면 건축물 대장, 임대차 계약서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 빈집은 너무 오래전에 지어진 거라 건축물 대장이 없는 거예요. 귀촌한 청년들이 시골의 빈집을 얼마든지 사무실로 활용해 쓸 수 있는 데 말이죠. 그런 작은 것부터 힘들었어요.” “(서혜림)창업 과정을 안내해주는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창업하고서 일을 하려면 행정적으로 각종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걸 하나부터 열까지 찾아야 해요. 처음에는 그게 가장 어려웠어요. 도시는 선배도 많고 네트워크도 많아 물어가며 할 수 있는데, 시골은 그런 게 없어요.” -귀촌한 청년이 마을에 잘 안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명진)우선 인사를 잘해야 해요. 그러면 ‘쟤들은 서울에서 왔는데 예의가 참 바르다’라고 좋게 보시거든요. 다만 도시에서 살다 귀촌한 청년들과 지역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살아온 방식도, 생활 방식도 달라요. 처음부터 너무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이런 면에서 서로 부딪히는 게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서로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게 좋아요. 그러면서 마을에서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예를 들면 서류 쓰는 일 등을 도와드리면서 가까워지면 돼요.” -귀촌한 선배로서, 귀촌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정명진)무작정 귀촌하는 것보다 먼저 일자리를 알아보고 내려오세요. 일자리가 없다면 오래 머물 수가 없어요. 시골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일당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육체노동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하면 탈이 나요. 단단히 각오해야 해요.” “(서혜림)지금 도시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무작정 사표를 내고 귀촌할 게 아니라 일단 휴직을 하고서 한 달 살기를 해보세요. 그리고 나서 결심이 서면 사표를 내세요. 무작정 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이민 준비하듯이 준비한다 생각하면 될 거예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요. “(정명진)로컬스토리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청년과 지역 생태계의 선순환’이란 비전을 실천하며 살고 싶어요. 이 지역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성과와 가치를 만들어내느냐, 그게 로컬스토리의 힘이 될 거예요. 지역 청년들에게 좀 더 나은 일자리가 제공돼야 지역에서의 삶이 지속 가능해져요. 기껏 귀촌했는데 삶은 개선되지 않고 똑같이 박봉에 시달린다면 지속 가능성이 없는 거잖아요. 로컬스토리에는 우리처럼 귀촌한 청년들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좀 더 큰 프로젝트를 하며 급여도 많이 줄 수 있는 안정된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서혜림)지역의 가치, 그리고 청년을 성장시키는 가치, 미디어 기업으로서의 자질을 쌓아가고 싶어요. 지역의 작지만 강한 기업, 우리가 추구할 방향이에요.” 홍성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울산 콘텐츠 스타트업 역량 강화 투자유치 지원

    울산 콘텐츠 스타트업을 위한 투자유치 사업이 추진된다. 울산시와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은 울산콘텐츠코리아랩(U-CKL) 사업의 하나로 문화 콘텐츠 분야 스타트업 투자유치 역량을 높이고 자생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스타트업 투자유치 지원 사업에 나선다고 10일 밝혔다. 이 사업은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의 모든 영역이 대상이다. 울산에 사업장이 있고 창업 3년 이내 스타트업이 지원 대상이다. 서류와 발표 심사를 거쳐 우수 4개 팀을 선발한다. 선발된 팀은 기업설명회(IR) 피칭 교육과 사업화 컨설팅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 데모데이를 거쳐 투자유치를 위한 상담 기회도 얻는다. 또 투자자 평가 결과에 따라 대상 300만원, 최우수상 150만원, 우수상 100만원, 장려상 50만원의 상금도 받는다.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은 오는 27일까지 신청 받는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별들의 전쟁’서 만난 형제

    ‘별들의 전쟁’서 만난 형제

    국내 농구 팬들이 고대하던 농구 대통령 두 아들의 맞대결이 마침내 성사됐다. 오는 19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리는 2019~20시즌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다. 한국농구연맹(KBL)은 9일 허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장남 허웅(원주 DB)과 차남 허훈(부산 kt)이 서로 다른 팀으로 맞대결을 펼치는 올스타전 드래프트 결과를 발표했다. 드래프트는 팬투표 1, 2위를 차지한 허훈과 김시래(창원 LG)가 팬 투표 상위 24명을 대상으로 각각 ‘팀 허훈’, ‘팀 김시래’ 멤버를 번갈아 선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허훈은 가장 먼저 전주 KCC의 가드 이정현을 팀에 합류시켰고, 김시래는 서울 SK의 포워드 최준용을 선택하며 멍군을 불렀다. 이어 허훈이 DB의 센터 김종규를 뽑자 김시래는 SK 가드 김선형으로 응수했다. 이후 픽 순서가 바뀌자 김시래가 냉큼 허웅을 택해 형제 맞대결이 성사됐다. 김시래의 특별 멘토 자격으로 드래프트에 참여한 허 전 감독이 형제 대결을 적극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허훈은 베스트5의 마지막 자리로 KCC의 센터 라건아를 뽑았다. 허웅이 2014년, 허훈이 2017년에 프로 데뷔를 했지만 형제의 맞대결은 허웅이 상무에서 제대한 뒤인 2018~19시즌 5라운드와 6라운드에서야 성사됐다. 당시 1승1패를 나눠 가졌지만 개인 성적으로는 형이 동생에게 한 수 가르쳐 줬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상황이 다르다. 동생의 기량이 만개해 국내 선수 평균득점 1위(16.1점), 어시스트 1위(7.3개)를 달리는 등 최우수선수(MVP)급 활약을 펼치고 있다. 팬들은 두 형제의 재대결을 원했지만 1·2라운드에서는 형이, 3·4라운드에서는 동생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대결이 미뤄져 왔다. 때마침 올스타전을 앞두고 허웅이 부상에서 복귀했다. 갈비뼈 부상을 당한 김시래가 코트를 누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 올스타전의 최대 관심사는 형제 맞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학교판 미생’ 블랙독, 기간제 쌤을 울리다

    ‘학교판 미생’ 블랙독, 기간제 쌤을 울리다

    정교사·기간제 생생 묘사에 공감 댓글 봇물 러브라인 대신 라미란·서현진 ‘워맨스’ 눈길기간제 교사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려 내고 있는 tvN 월화드라마 ‘블랙독’ 이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12월 3%대 시청률에서 시작해, 지난 7일 방송된 8회에서는 5%대 시청률로 반환점을 돌았다.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를 섬세하게 조명하며 ‘학교판 미생’이라는 호평도 나온다. ‘블랙독’은 학생, 교실을 중심에 뒀던 기존 학원물과 달리 교무실을 주요 무대로 한다. 정교사가 아닌 기간제 교사 고하늘(서현진 분)을 중심으로 권력과 차별, 세력다툼이 존재하는 ‘조직으로서의 학교’를 다룬다는 점이 새롭다. 정교사와 기간제가 따로 밥을 먹거나, 5개월짜리 ‘쪼개기 계약’을 강요받는 모습은 비정규직 차별이라는 사회문제와도 겹친다. 학교에 계속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이들은 바늘구멍인 정교사 자리를 얻기 위한 자발적 복종도 마다하지 않는다. 방송 후 게시판에는 “기간제 10년차로 너무 눈물난다”, “계약직 직장인인데 현실은 더하다”는 공감 댓글이 쏟아진다. 학생부 종합전형, 입학사정관제도 등 교육 제도도 정면으로 다룬다. 강남 학교들 중 가장 인기가 없는 대치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입학사정관을 찾아가 ‘영업’을 하고, 교육청이 금지한 우열반을 부활시키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이 와중에 스펙 쌓기나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학생들은 공교육의 틀 안에서 내신을 따려고 고군분투한다. 우열반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고, 친구의 참고서를 몰래 카메라로 찍기도 한다. 지난해 jtbc ‘스카이캐슬’이 상류층의 ‘미친 교육열’을 통해 대입 제도를 비판했다면, 블랙독은 학교 내 다양한 계층과 주체들의 분투를 통해 더 광범위한 현실을 조명한다.학교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사실적인 공간과 진짜 교사 같은 배우들의 연기는 현실감을 높인다. 제작진은 실제 학교의 모습을 살리기 위해 1000평 규모 세트장과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오가며 촬영 중이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박주연 작가는 실제로 기간제 교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교사와 교육 공무원 자문도 얻는다. 진학부장 박성순(라미란 분)이 고하늘의 멘토로서 성장의 조력자가 되면서 러브라인 대신 ‘워맨스’가 자리했다. ‘미생’의 오 과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가 찾으려는 건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다. 김건홍 CP는 “고하늘을 포함한 모든 선생님들이 그 모습은 다르지만 참된 스승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삼총사 의기투합… 목공소 옆 갤러리 열다

    삼총사 의기투합… 목공소 옆 갤러리 열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사거리 인근에 있는 ‘목공거리’는 1960년대부터 문짝과 가구를 만드는 목공소가 하나둘 생겨 한때 40여곳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재개발 사업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단 두 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철거를 앞두고 빈 가게들이 폐허처럼 방치된 이 황량한 거리에 난데없이 갤러리가 들어섰다. 지난해 12월 중순 문을 연 ‘갤러리 유진목공소’다. 목공거리를 지키는 두 곳 중 한 곳인 유진목공소는 청와대 상춘재의 전통 문창살 99짝 교체를 담당했던 전통 창호 전문 목공소다. 55년 경력의 윤대오 사장과 아들 종현씨가 운영한다. 갤러리는 유진목공소와 붙어 있다. 원래는 10여년간 독학으로 회화 작업을 해 온 종현씨가 보일러 설비업체가 있던 이웃 가게를 빌려 작업실 겸 개인 전시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설비업체가 빠져나간 어지러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이 어쩌다 갤러리가 됐을까.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공동 대표 체제다. 목수 윤종현(37), 미술평론가 반이정(50), 중학교 과학교사 이민재(53) 등 분야가 다른 세 사람이 같이 운영한다.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한 이민재와 미술비평이 본업인 반이정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만 윤종현과는 1년 반 전에 처음 인연이 닿았다. “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던 종현씨가 어느 날 장문의 메일을 보냈어요. 본인 작업에 대한 멘토링을 받고 싶다고. 이후 가끔 만나서 전시회에 동행하고, 창작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분을 쌓게 됐어요.”(반이정) “그림에 대한 열망만 가득했지 늘 혼자 작업해서 외로웠어요. 반이정 선생님을 알게 된 뒤 다른 작가들과 소통하고, 전시장에 함께 가서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윤종현) 반이정은 지난해 목공소 옆 작업실을 처음 방문하고선 울퉁불퉁한 벽면과 조명이 뜯겨진 천장이 그대로 노출된 독특한 공간에 반해 갤러리 설립을 제안했다. 전시기획자로도 활동하는 그는 “과거 전성기를 누렸으나 어느 순간 잊혀진 중견 작가나 주목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도 조명받지 못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로까지 연계하는 상업 화랑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민재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갤러리의 필요성을 고민했다. “이 거리가 재개발 때문에 사라진다는 게 너무 아쉬웠고, 문화인프라가 부족한 이 지역 주민들이 가까이서 즐길 만한 문화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미술이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만 향유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갤러리 유진목공소는 개관전으로 윤종현의 첫 개인전 ‘그녀에게’(1월 25일까지)를 열고 있다. 회화, 드로잉, 목조각, 사진 콜라주 등 40여점이 전시됐다. 미술 전공은커녕 동네 화실조차 제대로 다녀본 적 없는 윤종현이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실연의 상처였다. 2010년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그녀를 잊지 않기 위해 마음가는 대로 캔버스에 붓칠을 했다. 그가 지금까지 그린 회화 대부분이 ‘그녀’의 얼굴이다.아버지 곁에서 목수로 일한 지 10년이 됐지만 그 전까지 윤종현은 굴곡 많은 청춘을 보냈다. 영화감독이 하고 싶어 10대 후반 고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충무로로 뛰어들었다. 영화 조명팀에서 5년을 일한 뒤엔 수행자의 뜻을 품고 해인사와 불국사에서 1년 반을 지냈다. 절을 나오고서도 수년간 방황은 거듭됐다. 그 사이 만성조울증으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네 차례 입원하기도 했다. 윤종현은 회화 작업에 더해 아버지에게서 익힌 목공 기술이 반영된 입체 작품 제작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목조각 2점은 반이정과 아이디어를 상담하고 공유한 결과물이다. 그는 “이왕이면 아버지가 평생 해오신 전통 창호를 응용한 작품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X세대의 우울 대변한 엘리자베스 워첼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X세대의 우울 대변한 엘리자베스 워첼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스물일곱 살이던 1994년 우울증과 약물중독으로 힘겨웠던 나날을 돌아본 ‘프로잭 네이션(Prozac Nation’)’을 발표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발돋움한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워첼이 쉰셋으로 짧은 삶을 마쳤다. 남편 짐 프리드는 유방암과 오랫동안 싸워온 부인이 7일(현지시간) 뉴욕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영국 BBC가 미국 매체들을 인용해 전했다. 고인의 대표작 ‘프로잭 네이션’은 극단의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그를 투사로 존중한 반면, 다른 쪽에서는 자기 탐닉이 심했다고 비판했다. 자해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마약이나 난잡한 성생활 등이 곧잘 묘사됐다. 하지만 그녀를 X세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어준 것도 사실이었다, 고인은 2012년 BBC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이 “성장”을 다뤘을 뿐이라고 밝혔다.고인은 이 밖에 ‘Bitch: In Praise of Difficult Women)’와 ‘More, Now, Again: A Memoir of Addiction)’ 등을 내놓았다. 또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에세이를 곧잘 실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2015년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유방암에 걸렸으며 항암 치료를 받고 두 쪽 모두 절제했다고 고백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고 NYT 매거진과 ‘뉴요커’ 편집자로 일해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렸을 것 같은 워첼은 유대인 결손 가정 출신이었다. 두 살 때 이혼한 부모는 양육비를 갖고 죽을 듯이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잠이나 청하는 부류였고, 유대인 혈통의 어머니는 소리를 질러대는 쪽이었다. 그녀는 잠만 자는 아버지 옆에서 혼자 노는 아이였다. 백화점에서 일하며 홀로 키우던 어머니는 딸을 캠프에 보내려고 아둥바둥했고, 딸은 수면제 프로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정형성 우울증, 다시 말해 어떤 약도 처방할 수 없는 우울증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걸핏하면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고 서른한 살에 요절한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년)를 흠모해 자살 소동을 벌였다. 소셜미디어에서 추모의 글이 잇따르고있다. 에린 블랙모어 기자는 “엘리자베스 워첼의 90년대에 끼친 영향을 제대로 옮기기란 불가능하다. 그녀의 글은 사과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날것에다 정직했다. 그녀는 X세대의 여성성, 공감, 분노를 아주 특별한 형태로 보여줬다”고 적었다. 여배우 미아 패로는 고인을 “똑똑하고 복잡하며 매력 넘치고 재미있으면서 친절했던 인물”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와 반역] 늙은 꼰대가 젊은 꼰대에게

    [조영학의 번역와 반역] 늙은 꼰대가 젊은 꼰대에게

    나 때만 해도 ‘꼰대’는 ‘잔소리를 자주 하는 어른이나 교사’를 뜻했다. 드문 풍경도 아니었다. 아버지 친구들이 놀러 오면 남의 자녀를 무릎까지 꿇리고 한바탕 연설을 하고, 행여 교무실에 불려가면 풀려날 때쯤 귀에 딱지가 앉았다. 꼰대라는 별명도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괜한 반발심에 “누구누구 꼰대”라고 별명처럼 부르기는 했어도 어른의 훈계를 노골적으로 경시하거나 인격까지 의심했던 것은 아니다. 유교 전통에 군사문화의 유산까지 남은 데다 삶의 경험과 지혜를 배울 곳도 요즘과 달리 마땅치 않던 시절이다. 꼰대 특유의 화법이라는, “나 때는 말이야”(Latte is a horse)로 시작했으니 나도 꼰대를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실제로도 꼰대의 전형,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꼰대짓’ 정도는 “왕년에 다 해 본” 꼰대 중의 꼰대로서 ‘차세대 꼰대들’에게 ‘맨스플레인’을 시전하겠다는 의도로 봐도 무방하다. 영국 방송 BBC는 코리아의 꼰대(KKONDAE)를 소개하며 “저 혼자 잘나고 저 혼자 옳은 데다 앞뒤로 꽉 막힌 어른”(more self-entitled, self-righteous, and stubborn…older person)이라 정의했다. 꼰대가 국경을 넘어 국제적 명성까지 얻은 셈이나 사실 꼰대가 나이순은 아닐 것이다. “저 혼자 잘나고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 어디 늙은이뿐이겠는가. ‘꼰대의 발견-꼰대 탈출 프로젝트’의 저자는 젊은 꼰대가 “과거보다 권위주의적이고 서열과 위계를 당연시한다.…어쩌면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사회가…만들어 낸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우리 때보다 꼰대짓이 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젊은 꼰대(젊꼰)가 과거를 동경하고 복사하는 이른바 ‘므두셀라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처럼 열린 사회라면 그것만으로도 위험하다. 말 그대로 괴물이 될 수도 있다. 고려대 윤인진 교수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래전의 서열 문화, 이른바 꼰대 문화를 젊은 세대가 별다른 대안 없이 답습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젊은 꼰대인 ‘젊꼰’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보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1) 사소한 갑질, 꼰대질도 훤히 드러나는 시대인지라, 2) 현실적으로 대상도 마땅치 않은 데 반해, 3) 갑질 욕구는 늙은 꼰대(늙꼰) 못지않다는 얘기다. 젊꼰의 꼰대질이 종종 익명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에서 여혐으로 나타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충고와 지적을 즐기느냐, 남의 사생활을 캐묻느냐” 등등 나름대로 ‘꼰대의 자가 진단법’이 있지만, 막상 자신을 대입해 보면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누가 자신에게 돌을 던지랴!). 아니, 어쩌면 예상외로 쉬울 수도 있겠다. 혹시 여러분이 ‘페미’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들거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나 영화를 향해 눈을 흘긴다면 ‘나는 100퍼센트 젊꼰’이라 자신해도 좋다. 모든 꼰대가 여성혐오는 아니겠지만 (남녀 상관없이) 여혐이 꼰대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꼰대의 뿌리에는 유구한 가부장제의 역사가 있다. “내가 무조건 옳으니 인류여, 나로 하여금 세상을 구원하게 하라.” 자신은 마지막 람보가 돼 세상과 약자를 지키고 싶겠지만 실제로는 ‘총알탄 사나이’나 ‘벌거벗은 임금’처럼 황당무계한 민낯의 마초 꼰대로 보일 뿐이다.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 기후전쟁을 이끌고 핀란드에서는 34세 여성 총리가 취임하는 마당에 여혐이라니. 사실 어딘가 막장 코미디 같기도 하다. 꼰대는 나이가 아니라 세상과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결정한다. 우리야 구시대라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지금 ‘닫힌 인간, 막힌 인간’을 이해하고 존중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다 해 봐서 아는데 꼰대가 되느냐 멘토가 되느냐는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 2020년, 차별과 반목이 아니라 공감과 배려의 시대가 열렸다. 젊은이들이 부디 우리 늙꼰을 밟고 열린 시대의 열린 꼰대로 거듭나기를 빌어 본다.
  • 계명문화대 문화기획자 36명 배출

    계명문화대가 지역맞춤 문화기획자 양성과정 36명 수료식을 가졌다. 대구시와 대구문화재단이 후원하고 계명문화대학교가 운영한 문화기획자 양성학교는 지역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은 문화예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계명문화대가 처음으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문화를 품고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테마를 가지고 기본학기(72시간)와 심화학기(39시간)로 구분해 수업을 진행했다. 기본학기에는“문화기획자가 반드시 필요한 까닭”을 비롯한 대구지역 문화예술 지형도 등을 기획입문과정으로 다뤘다. 또한, 전시기획, 공연기획, 공동체기획, 축제기획 등 네 개의 테마로 구분해 각 테마별 총론과 기획사례 등과 발상의 전환, 스토리텔링 기법, 틀림없이 기사화되는 홍보기법 등 문화기획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주요 이슈는 분야별 전문가들의 특강으로 구성해 진행했다. 심화학기에는 교육생들이 제안한 문화기획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룹별 강의와 멘토링으로 이뤄졌으며, 문화탐방 6회(미술관 관람, 소극장오페라, 연극공연 관람 등)와 문화기획 챌린지 캠프 등 문화현장 수업도 병행해 진행했다. 또 문화기획 양성과정의 실습교육으로 교육생들의 애장품 전시회를 계명문화대 문화관 전시실에서 개최했다. 이 전시회에는 계명문화대학교 박승호 총장님의 애장품 2점과 문화기획자 양성학교 교육생들이 개인적으로 아껴두고 간직하고 있던 미술품은 물론 전시하고 싶었던 개인의 보물, 또 가족 간의 사연이나 추억이 담긴 애장품 70여점을 전시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MJ와 겨뤘던 빈스 카터,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NBA 코트에

    MJ와 겨뤘던 빈스 카터,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NBA 코트에

    레전드 중의 레전드 마이클 조던(57)과 함께 뛰었던 그가 여전히 미국프로농구(NBA) 코트에서 2002년대를 맞았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 빈스 카터(43·애틀랜타 호크스) 얘기다. 그는 지난 5일(한국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스테이트팜 아레나로 불러 들인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홈경기 벤치에 앉아 있다 코트에 들어가 18분을 뛰었다. 1999년 만 스물둘 나이에 NBA 무대에 데뷔한 카터로선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까지 10년의 성상을 네 차례나 버텨낸 셈이다. 물론 NBA 역사에 최초이며 유일하다. NBA의 스물두 번째 시즌을 맞는 것도 그가 처음이다. 토론토와 뉴저지 시절 꾸준히 올스타로 선정되며 활약했고 30대 중반부터 올랜도, 피닉스, 댈러스, 멤피스, 새크라멘토, 애틀랜타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었지만 녹슬지 않은 기량을 유지하며 역대 최장수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가 처음 신인 드래프트에 나서 전체 5순위로 뽑힌 이후 태어난 NBA 현역 선수들은 팀 동료 브루노 페르난도, 트래 영, 케빈 후에터, 캠 레디시 등 넷을 포함해 모두 서른여섯 명이다. 카터는 야후 스포츠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직도 이 근방을 얼쩡거리며 이 수준에서 경쟁한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하킴 올라주원(57)과 한 팀이었을 때 사진과 트래 영(22)과 찍은 사진을 함께 본다. 옛날에 친구였는데 지금은 구단 감독이나 코치가 된 이들과 말을 걸고 손을 맞잡는다. 옛날엔 마이클 조던과 겨뤘고, 지금은 트래 영 같은 오늘의 스타들과 겨룬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끝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열심히 경기를 하는 것 같다. 나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을지 상상도 못했다. 15년이면 끝일줄 알았는데 여전히 몸은 좋고 7년을 더 버텼다. 믿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가 NBA 새 역사를 쓴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에 애틀랜타 복귀를 위한 일년 계약에 서명하면서 스물두 번째 시즌을 맞은 최초의 선수가 됐다. 스물한 시즌을 맞은 선수들은 더크 노비츠키, 케빈 가넷, 케빈 윌리스, 로버트 패리시 등 넷이다. 카터는 또 1500경기 이상 출장, 여덟 차례 NBA 올스타, 1999년 올해의 루키상,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 마흔 살 선수로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3점슛 3개 성공한 최초의 선수(2017년 4월 22일 샌안토니오와의 서부 콘퍼런스 1라운드 경기), 전후반 통틀어 3점슛 최다(8개) 성공한 선수(2001년 5월 11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동부 콘퍼런스 준결승 경기) 등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카터는 2019~2020시즌에 앞서 이번 시즌이 마지막 무대라며 은퇴를 예고한 바 있다. NBA 사무국도 올스타전에서 카터를 초청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올스타전에서는 노비츠키가 은퇴 시즌에 초청됐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보졸레 누보를 세계에 알린 조르주 뒤뵈프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보졸레 누보를 세계에 알린 조르주 뒤뵈프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갓 수확한 포도로 담궈 재빨리 숙성시켜 마시는 붉은 와인 ‘보졸레 누보’를 지구촌에 유행시킨 ‘보졸레의 황제’ 조르주 뒤뵈프가 86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고인의 며느리 안느는 그가 4일 오후 6시(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동부 로마네슈 또랭 마을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고 AFP 통신에 밝혔다. 이 마을에는 그가 1993년에 세운 와인 테마파크 ‘하모 뒤뵈프’가 있어 지금도 테마 투어 관광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까지 프랑스는 와인 주산지로 이름이 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뒤뵈프가 열정적으로 보졸레 누보를 프로모션해 11월 셋째주 목요일에 전 세계에서 한꺼번에 와인 병을 따는 축제를 벌이게 했다. 그 정도로 20세기 와인 유통업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원래 보졸레 누보는 2차 세계대전 뒤 보졸레 지방 사람들이 그 해에 생산된 포도로 즉석에서 만들어 마셨던 데에서 시작되었다. 파리나 리옹 등에서 나치 독일을 피해 온 이들이 이 햇와인을 즐기다 돌아가서 그 맛을 그리워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50년대 뒤뵈프는 와인 생산업자들의 모임 루크랭 모코나이스 보졸레를 만들어 지역 와인들을 프로모션하기 시작했다. 이 모임을 통해 와인 유통업자들, 레스토랑들과의 강력한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1964년 자신의 와이너리인 조르주 뒤뵈프 와인을 창업했다. 그는 전통적인 와인 주조 기법을 접목했는데 와인 숙성 상태를 엄격하게 모니터링하고 위생 관리를 거의 병원처럼 엄격하게 했다. 와이너리는 다른 지역들에서도 성장했고 그러면서도 보졸레 누보를 끊임없이 프로모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보졸레 누보는 보졸레와 보졸레 빌라주 등급으로 나오는데, 적포도 품종인 가메로 탄산 침용 방식으로 만든다. 밀폐된 발효조에 포도를 송이째 넣고 탄산가스를 가득 채워 발효시킨 뒤 일반 양조법으로 4~6주 동안 후딱 만든다. 이렇게 양조하면 떫은맛과 신맛은 적고, 딸기와 크렌베리 등 과일 향이 짙은 상큼한 와인이 된다. 보졸레 햇와인은 누보와 프리뫼르로 구분해 유통되는데 누보는 출시한 다음 해 수확일인 8월 31일까지, 프리뫼르는 출시한 다음 해 1월 31일까지만 유통한다. 1980년대 내내 보졸레 누보 축제들을 열어 미슐랭 스타 등급 레스토랑 등 각계 유명인들을 초청해 입소문이 나게 했다. 2018년 아들 프랑크에게 회사를 물려줬는데 한 해 3000만 병을 제작해 각국에 판매하고 있었다. 인터 보졸레 회장인 도미니크 피론 회장은 뒤뵈프야말로 보졸레가 전 세계에 깃발을 펄럭이게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말하며 “그는 뛰어난 코, 직관, 모두보다 한발 앞선 인물이었다”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오늘의 NBA 일군 데이비드 스턴 “은퇴”를 싫어한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오늘의 NBA 일군 데이비드 스턴 “은퇴”를 싫어한

    미국프로농구(NBA)를 글로벌 스포츠로 키운 데이비드 스턴 전 커미셔너가 78세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12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수술을 받고 집중 치료를 받아온 스턴 전 커미셔너가 새해 첫날 부인 다이앤을 비롯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뉴욕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AP 통신 등이 전했다. 룻거스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출신 스턴은 1960년대 리그를 대변하던 유명 법무법인에서 일하다 NBA와 인연을 맺었다. 1978년 고문이 됐고, 1980년 행정 부회장에 오른 뒤 1984년 2월 NBA 제4대 커미셔너에 취임했다. 2014년 2월까지 정확히 하루도 빠지지 않는 30년 동안 조직을 이끈 역대 최장수 커미셔너로 2004년 23개이던 NBA 구단을 지금의 30개로 늘렸다. 그 중의 하나인 토론토 랩터스는 지난해 6월 NBA 파이널을 처음 제패하는 성과를 올렸다. “은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일을 끔찍하게 싫어해 리그 사무국 직원도 입에 올리면 혼쭐을 냈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트레이닝 캠프와 시범 경기를 열어 NBA가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나가게 만들었다. 커미셔너로 일하는 동안 NBA는 50억 달러(약 5조 7800억원) 이상의 산업으로 발전했다. 또 리그에 도핑 테스트, 샐러리 캡(연봉 상한선) 제도, 복장 규정 등을 도입했고, 매년 100경기 이상이 미국 아닌 나라에서 열리게 됐고, 200개국 이상에서 40개 언어로 NBA 경기를 TV로 시청할 수 있게 했다. 그의 뒤를 이은 애덤 실버 커미셔너는 “데이비드가 있어 NBA는 진정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그는 역대 가장 위대한 스포츠 커미셔너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리더였다. NBA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데이비드의 비전, 관대함, 열정의 수혜자”라고 말했다. 생전에 그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 했던 일은 1970년대 약물에 쩔어 있던 흑인 선수들을 계도해 약물을 끊게 하고 미국 주류사회의 유명인으로 만든 일이었다. 늘 토론에 열려 있어 도핑 테스트, 샐러리 캡, 복장 규정 등을 만들기 전에 열린 자세로 폭넓은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또 매일 아침 신문을 보며 전날 경기 결과를 어떻게 다뤘는지 꼼꼼히 읽었다. 매직 존슨,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제임스 르브론 등 이름만 대면 전 세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유명인 선수들을 길러냈다. 또 1997년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와 NBA D리그(지금의 G리그)를 만들었다. 그는 선수들과 심판들을 보호하는 데도 앞장섰다. 2004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선수들이 디트로이트 팬들과 드잡이를 벌였을 때나 2007년 팀 도너히가 판정을 맡은 경기에 베팅한 사실 때문에 미 연방수사국(FBI) 수사를 받자 맹렬히 구명운동에 앞장선 일로 유명하다. 또 높은 톤의 목소리에 침을 튀기며 기사를 함부로 쓰는 기자들을 공개적으로 공박한 일로 이름높다. 하지만 리그 사무국 직원들과 단체협상을 하며 원칙을 양보하지 않아 1998년과 2011년 일손 부족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2005년 NBA 케어 프로그램을 만들어 5년 안에 1억 달러 이상을 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던과 존슨, 래리 버드가 함께 뛰던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을 따게 하면서 NBA를 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 2014년 나이스미스 추모 농구 명예의전당에 입회한 그는 부인과 두 아들 앤드루와 에릭을 남겼다. bsnim@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블레이드 러너‘의 LA 그려낸 시드 미드 86세로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블레이드 러너‘의 LA 그려낸 시드 미드 86세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미래의 배경 제작을 담당했던 ‘비주얼 아티스트’ 시드 미드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미드는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의 자택에서 3년 동안 앓아온 림프암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그는 다음달 예술감독조합의 제24회 시상식에서 윌리엄 캐머론 멘지스 상을 수상하려던 참이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미드의 페이스북에는 ‘시드 미드 1933~2019’라는 문구가 걸렸다. 공상 과학물 ‘에일리언’, ‘트론’, ‘스타트렉: 모션 픽쳐’ 등의 영화 제작에 참여한 미드는 원래 자동차와 전자업계 디자이너로 출발했다. 영화로 방향을 돌리기 전까지 포드, 크라이슬러, 소니, 필립스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미드는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작품 ‘블레이드 러너’에서 2019년 로스앤젤레스를 암울하게 그려내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고인은 2015년 커브드(Curbed)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현재 2500피트쯤에 있는데 3000피트를 위로 올리자고 생각했다. 그 뒤 윗 도시와 아랫 도시로 나눠진다고 꾸몄다. 길거리 높이는 지하가 된다. 그리고 고귀한 사람들은 거기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모든 높은 건물들은 스카이 로비를 갖고 있고, 누구도 30층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렇게 삶의 양식이 조직된다고 봤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에까지 ‘미션 임파서블 3’, ‘엘리시움’, 해리슨 포드와 라이언 고슬링이 공연한 ‘블레이드 러너 2049’,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투모로랜드’ 등의 제작에 참여하다 지난 9월 은퇴했다. 미드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자동차와 영화인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테슬라 창립자인 엘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평온히 잠드세요. 당신의 예술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라고 적었고, ‘오토라인’ 발행인 존 맥엘로이도 “미드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이자 미래학자였다”고 추모했다. 앞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아트 디렉터 넬슨 코츠는 지난달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콘셉트 예술가이자 산업 디자이너”라고 치켜세웠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앙골라 법원 “전 대통령 딸 이사벨 도스 산토스 재산 압류 명령”

    앙골라 법원 “전 대통령 딸 이사벨 도스 산토스 재산 압류 명령”

    앙골라 법원이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전직 대통령의 딸이자 억만장자 이사벨 도스 산토스(46)의 재산과 은행 계좌를 압류하라고 명령했다고 영국 BBC가 31일 전했다. 주앙 로렌수 현 정부는 반부패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30년을 집권한 도스 산토스 가문의 부패가 심각하다고 보고 이사벨과 그녀의 공범들이 부패로 빼앗아간 10억 달러(약 1조 1560억원)를 회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앙골라는 원유가 많이 나와 부유한 아프리카 국가로 분류되고 있지만 다수 국민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사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여겨지는데 그녀의 재산은 미국 잡지 포브스에 의해 22억 달러(약 2조 8900억원)로 평가됐다. 현재 해외에 살고 있는 이사벨은 목숨이 위협받는다며 앙골라에서 이주해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앙골라와 포르투갈의 케이블 텔레비전 회사 Nos SGPS 등 수많은 기업들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앙골라 법원은 이사벨의 앙골라 은행 계좌를 동결하고 텔레콤 재벌 유니텔과 포멘토 드 앙골라(BFA) 은행, 국영 통신사 등 앙골라 기업들의 지분을 압류하라고 명령했다. 이사벨은 30일 트위터에다 법원 명령에 대해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않은 채 “우리 팀에게 고요하면서도 확신에 찬 메시지를 남기려 한다. 우리는 일상 업무에 매일 앙골라를 위해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길은 멀고, 진실이 곧 드러날 것이다. 함께 뭉쳐 더 강하게 싸우자”라고 적었다. 이사벨은 2016년 아버지로부터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의 회장으로 임명되면서 국내외에서 커다란 논란이 됐으나 이듬해 8월 로렌수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해임됐다. 오빠 호세 필로메노 도스 산토스는 현재 앙골랑에서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그와 공범들이 ‘서버린 웰스 펀드’ 책임자로 있을 때 5억 달러를 나라 밖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은 무죄라고 항변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동부여성발전센터, 기관 특화사업 ‘먹거리 교육 전문강사 양성과정’ 운영

    동부여성발전센터, 기관 특화사업 ‘먹거리 교육 전문강사 양성과정’ 운영

    서울특별시 동부여성발전센터는 기관특화사업의 일환으로 지역연계 일자리발굴 사업인 ‘먹거리 교육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운영 중이다. 먹거리 교육 전문강사 양성과정은 급변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먹거리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건강하고 바른 식생활 문화가치를 전파할 ‘먹거리 교육 전문강사’를 양성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경제 분야 여성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기획됐다. 동부여성발전센터는 지난 10월 28일 총 22명의 교육생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 이래 이달 9일 첫 수료생을 배출했다. 교육 수료생에게는 멘토링 지원을 통해 지역 사회적경제네트워크와 연계해 지역에서의 활동을 도모하고 있다.직무교육과 현장실습 위주로 진행된 본 교육 프로그램은 먹거리 관련 주제별 커리큘럼과 전문 강사진으로 전문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직무전문, 현장실습은 물론 강사스킬 관련 교육 내용을 추가해 강사로서 갖춰야 할 이론과 현장의 체험, 실제 강사가 되기 위한 교안작성 및 실제 수업을 진행한다. 또한 취∙창업 수요 조사를 통해 강사취업, 사회적기업창업, 개인창업 등 관심 영역별 그룹멘토링 및 1:1 개별면담, 그룹상담을 진행해 실질적인 취∙창업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강의스킬 향상을 위해 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먹거리관련 강의를 진행하는 한편, 그룹별 활동을 통해 강의스킬을 높이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지속적인 그룹별 활동 지원을 위해 동아리 형태의 학습모임을 구성하고, 이를 통해 실무 콘텐츠 및 스킬 역량을 강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동부여성발전센터 최선희 센터장은 “본 사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요한 아이템이 될 건강한 먹거리와 환경에 대해 관심과 함께 전문강사 분야에 도전을 원하는 여성분들을 위한 교육과정”이라며 “관련 분야 취창업을 위한 탄탄한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특별시 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는 2020년에도 서울시 기관특화시범사업을 통해 다양한 니즈의 취창업준비생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시, 굿네이버스와 진행한 ‘아동참여 정책토론회’ 성료

    서울시, 굿네이버스와 진행한 ‘아동참여 정책토론회’ 성료

    서울특별시청(시장 박원순)이 지난 26일 서울시 인재개발원에서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회장 양진옥)와 함께 개최한 ‘아동참여 정책토론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서울시 인재개발원에서 아동이 직접 만든 정책을 주제로 한 이번 토론회는 아동·청소년의 참여권을 증진하고 정치 참여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마련된 자리다. 아동정책의결기구 12개 정당의 정책 발표 및 각계 전문가가 참여해 토론을 진행한 이번 현장에는 서울시 내 150명의 아동의원과 멘토단으로 구성된 아동정책의결기구 학생들이 참여했다. 지난 9월 위촉된 아동정책의결기구는 굿네이버스의 각 지부와 연계하여 아동권리 침해 상황 모니터링과 권리증진을 위한 정책 제언 등 아동권리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 특히 지난달에 개최된 아동정책박람회 ‘아동참여 ARENA’에서는 아동정책의결기구의 12개 정당이 직접 부스를 운영해 시민들에게 이들의 정책을 알리고 투표를 독려하는 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이날 아동정책의결기구 학생들은 본 토론에 앞서 아동의원 대표의 성명서 낭독과 토론을 통해 아동정책 실현의 필요성을 전했다. 1부는 기호 1번 새싹당, 기호 11번 비(非)당, 기호 8번 놀숨권리당, 기호 10번 권리서당의 ‘아동의 여가와 건강 및 역량증진’, 2부는 기호 7번 보행안전당, 기호 12번 아동평화당, 기호 2번 아이안전하당, 기호 4번 아동안전담당의 ‘놀이터에서의 안전권리 침해 상황’, 3부는 기호 3번 움직이당, 기호 5번 바른통학로당, 기호 6번 참치마요당, 기호 9번 권리학당의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안전 구성됐다. 이후 각계 전문가를 비롯한 자문위원 8인이 참여하여 12가지 정책을 바탕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토론자들은 아동정책의결기구 활동에 대한 의견을 나눈 뒤 해당 정책에 대한 실질적 방안을 모색하며 아동정책의결기구가 제안한 정책의 전문성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했다. 토론회에서 다룬 정책들은 추후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정책제언보고서로 구체화하여 서울시에 전달될 예정이다. 양진옥 굿네이버스 회장은 “아동·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권리 침해 상황을 조사하고 정책을 만들고 제안하는 과정이 이번 토론회를 더욱 뜻깊은 시간으로 만들었다”며 “실제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발표된 이번 정책들이 아동이 존중받고 행복한 서울시를 만드는 발판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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