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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中 가장 주시해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존 네그로폰테 미국 국가정보국장(DNI) 지명자는 “미국 정보 당국이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시해야 할 문제는 중국”이라고 말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12일(현지시간) 상원 정보위원회의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력과 그것이 미국의 외교정책에 주는 충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아이들과 손자, 손녀들은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매우 강력한 국가가 되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또 정보 수집을 강화해야 할 분야로 북한 및 이란의 핵 개발 능력과 이라크의 반미 활동을 지목했다. 그는 이라크 침공 전에 정보기관이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과장했다는 지적과 관련,“보는 대로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정보기관들이 수집한 정보를 정치적 목적으로 변형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새로 창설된 국가정보국의 단기적 과제들로 ▲대량살상무기의 근절 ▲대 테러전 지원 ▲미 정보망의 개혁 등을 꼽았다.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중앙정보국(CIA)의 포터 고스 국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것이며,CIA가 수행하는 비밀 작전을 의회에 사전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CIA와 군 정보기관, 법무부간의 정보를 둘러싼 벽을 허무는 등 정보체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미 상·하원이 합동으로 구성한 9·11위원회의 요청으로 신설된 국가정보국장은 미국 15개 정보기관의 인사와 예산을 관장한다. 또 네그로폰테 지명자는 인준되면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일일 정보보고를 하게 된다. 네그로폰테는 공화당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어 이번 주말로 예정된 찬반투표에서 인준이 거의 확실하다.5개국어에 능통한 네그로폰테는 그동안 대사직 5차례를 포함해 상원 인준을 7차례나 통과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인준 청문회에 맞춰 지난 1983년 네그로폰테가 온두라스 주재 미국대사였을 당시 비공식 채널을 통해 인접국 니카라과의 반군을 고무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반정부 활동을 적극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네그로폰테는 당시 미국 하원이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좌파 정부를 전복하려던 우익 반군인 콘트라에 대한 지원을 모두 중단하려 하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CIA 국장에게 콘트라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며 강하게 버틸 것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네그로폰테가 콘트라 반군 비밀무장을 지지했으며, 이를 당시 중미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려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전략의 요체라고 생각했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네그로폰테는 청문회에서 “당시 수행한 모든 일은 법의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38년만에 선보이는 獨오페라 ‘마탄의 사수’ 연습현장

    38년만에 선보이는 獨오페라 ‘마탄의 사수’ 연습현장

    지난 4일 늦은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4층 연습실. 오페라 ‘마탄의 사수’ 피날레 장면을 재연하는 남녀합창단의 우렁찬 합창에 마룻바닥이 진동했다. 한참동안 심각한 얼굴로 지켜만 보던 벽안의 연출가가 벌떡 일어서 박수를 터뜨린다.“아주 잘 하고들 있어요. 다음주에 한번 더 연습하기로 합시다!” ●세계적 연출가 볼프람 메링 이름만으로도 화제 22일부터 26일까지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정은숙)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일 ‘마탄의 사수’는 독일 낭만파 오페라의 전형을 창조한 칼 마리아 폰 베버(1786∼1826)의 대표작. 독일 출신의 세계적 연출가 볼프람 메링이 연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연계의 화제가 되고 있는 무대다. 세계 곳곳을 돌며 꾸준히 연기 및 연출 워크숍을 열어온 메링은 연극학도들에게는 ‘걸어다니는 교과서’쯤으로 통하는 인물.“오페라 무대들이 보통 음악에 치중하게 마련인데, 메링은 마치 연극처럼 배우들의 연기와 심리묘사에 큰 공을 들인다.”는 게 현장 스태프들의 얘기다. 이쯤되면 정작 목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오페라 배우들로서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 피날레 장면에 이어 2막 첫 장을 연습할 때도 그랬다. 메링은 여주인공의 손 동작 하나하나, 표정 변화까지 일일이 바로잡아줄 정도였다. ●여주인공 손동작·표현변화까지 지도 “전형적인 독일 오페라”로 ‘마탄의 사수’를 압축해 표현한 메링은 “문화와 시간을 초월해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표현하는 데 연출의 역점을 둘 것”이라고 했다. 메링은 1969년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서 연극 ‘보이체크’, 오페라 ‘오텔로’‘카르멘’‘예브게니 오네긴’ 등을 연출하기도 했다. ‘마탄의 사수’는 독일의 옛 전설을 바탕으로 1821년 베를린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사냥대회에서 1등을 해야만 사랑하는 여인 아가테를 얻을 수 있는 남자 막스는 백발백중하는 ‘마탄(魔彈)’을 얻고자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 자신의 영혼을 되찾기 위해 막스의 영혼을 악마에게 대신 팔아넘기려는 카스파의 계략에 빠지고만 것이다. 3막의 선굵은 남성합창 ‘사냥꾼의 합창’으로 유명하면서도 정작 국내 관객들에게는 낯선 작품이기도 하다.1967년 국립오페라단이 초연한 이후 전문단체가 공연하기는 근 40년 만이다. 카스파 역의 함석헌(국립오페라단)씨는 “노래로만 채워지는 이탈리아 오페라들과는 달리 독일 오페라는 중간중간 대화가 섞인다.”면서 “독일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배우층이 약한 것도 공연이 뜸했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장의 배우들은 연기연습만큼이나 연출자에게서 발음교정을 받는 데 시간을 더 많이 들인다. ●아가테 역에 함부르크 오페라단의 헬렌 권 공연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대목. 현재 독일 함부르크 오페라단의 프리마 돈나인 세계적 소프라노 헬렌 권(권해선)이 여주인공 아가테를 맡는다. 함부르크 오페라단 관객들이 뽑는 최고 인기 성악가로 해마다 선정돼 온 그는 콜로라투라에서 리릭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음역을 소화해내는 소프라노로 손꼽힌다. 귀국 이튿날인 8일부터 연습에 합류하며, 첫날 22일과 25일 두 차례 무대에 선다. 연출가의 의도대로 철학적 메시지가 깊은 무대미술을 감상하는 재미도 클 듯하다. 주요 공간인 숲을 초자연적 극의 소재, 인간내면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형상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메링은 “나무의 단면을 잘라 벽에 깔고 뿌리는 밖으로 돌출시켰는데, 의식과 무의식 세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장치”라고 말했다. 아가테 역에 더블캐스팅된 소프라노 이화영을 비롯해 박지현·오미선(엔헨), 테너 하석배·김경여(막스), 바리톤 함석헌·이요훈(카스파), 베이스 김인수·이재준(에레미트) 등이 출연한다. 박은성 지휘로 연주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합창은 국립오페라합창단.3만∼15만원.(02)586-5282.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음악 통해 문신 합법화 외칠래요”

    “음악 통해 문신 합법화 외칠래요”

    “3년째 바늘을 잡지도 못하고 있어요. 말이 집행유예죠. 예술의 자유도 없는 한국 사회가 감옥이 아니겠어요.” 서울 대림동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던 문신 작가(타투이스트·Tattoist) 김건원씨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김건원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타투이스트. 중학교 때 좋아하던 록 음악 뮤지션이 새긴 문신을 보고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갔다. 성신여대 서양미술학과에 재학 중이던 98년에는 ‘예술로서의 문신’을 위해 ‘전업’을 선언했다. 김씨는 이후 ‘조폭 마누라’,‘달마야 놀자’ 등 각종 영화에서 문신 분장을 맡았다. 프랑스와 일본 등에서 열린 타투 컨벤션에 초대되는 등 외국까지 이름을 알렸다. 시련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3년 6월. 무면허 의료시술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한 청년이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문신을 받았다가 적발된 게 화근이 됐다. 결국 그해 8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수원지법과 대법원에 항소와 상고를 했지만 모두 기각당했다. 문신만 알던 김씨는 이후 문신 합법화 ‘운동가’로 변모했다. 김씨가 느끼는 가장 큰 벽은 ‘문신은 조폭만 하는 것’이라는 일반의 오해다. 오랜 유교 문화도 걸림돌이고, 정체성의 혼돈에 따른 일탈이 문신으로 반영된다는 편견도 문제다. “연예인과 학생은 물론 교수, 스포츠선수, 은행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제게 문신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의 모습을 결정하고, 몸을 통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강한 매력을 느끼죠. 자기 피부에 영혼을 새기는(Soul on Your Skin) 게 문신인 만큼, 판단력과 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김씨의 앞으로의 계획은 음악 등을 통해 문신의 합법화를 역설하는 것이다. 법적인 해결이 안될 경우 예술을 통해 여론을 우호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다. 오는 5월에는 자작곡을 들고 가수 이상은씨, 전인권씨 등과 함께 타투 뮤직 페스티벌을 열기로 했다. 김씨는 “랩 뮤직을 통해 ‘타투는 타투이스트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메시지를 직접 전할 것”이라면서 “언젠가는 문신도 찢어진 청바지나 피어싱처럼 하나의 문화적 양식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유령이 된 할아버지/킴 푸브 오케손 글

    어린 사내아이 에스본은 갑작스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모든 게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다정했던 할아버지가 길을 가다 심장병으로 돌아가시다니…. 덴마크 작가 킴 푸브 오케손이 지은 ‘유령이 된 할아버지’(김영선 옮김)는 ‘존재’와 ‘죽음’의 의미를 어린이들에게 물처럼 스며들게 하는 그림동화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는 엄마의 위로, 땅 속에 묻혀 흙이 되실 거라는 아빠의 말에도 에스본은 혼돈스럽기만 하다.‘왜 할아버지는 그렇게 떠나셔야만 했을까?’ 생명의 이치를 다룬 동화책은 자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독특한 맛은 죽음이라는 어두운 개념을 팬터지 방식으로 여유있게 접근한다는 데 있다. 한밤중에 에스본의 침실로 유령이 되어 찾아온 할아버지.“뭔가 빠트린 게 있어 왔다.”는 할아버지와 에스본은 그 무언가를 찾아 며칠밤을 가족들 몰래 헤매다닌다. 아침이면 흔적없이 사라지는 할아버지, 간밤에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잠꼬대 같은 말로 엄마아빠를 걱정시키는 에스본. 투명인간처럼 벽을 휙휙 통과하고 입으로 ‘우후후후’ 이상한 소리를 내주기도 하는 유령 할아버지가 에스본은 너무 재미있다. 그러나 천진한 에스본의 표정 뒤로 작가는 묵직한 메시지를 슬그머니 숨겨놨다. 에스본과 함께 집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며 먼 옛일을 주섬주섬 회고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감성 예민한 독자는 금방 코끝이 찡해지고 말 것 같다. 형의 빨간 자전거를 물려받고 신났던 꼬마 할아버지, 할머니와 입맞춤하던 청년 할아버지, 아이(에스본의 아빠)를 안은 그 옛날의 젊은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빠트리고 떠난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린 손자와의 작별인사란 사실을 할아버지가 기억해내실 대목 즈음 에스본의 마음의 키도 부쩍 자란다. 죽음이 삶의 한 자락임을 알게 됐을까. 에스본은 “내일은 유치원에 가야겠다.”며 잠을 청한다. 더는 할아버지를 기다리지 않은 채…. 부드러운 선으로 이어진 파스텔톤의 그림에 이야기의 결이 한결 더 온화해진 느낌이다.6세 이상.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눈을 떴다. 문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암실에 있으면 의식도 시간도 모두 멎었다. 이곳에 온 후 나는 주로 암실에서 지냈다. 둥글게 몸을 말고 바닥에 누워, 불필요한 감각이 퇴화된 심해의 생물처럼 눈과 귀를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촉각이었다. 밀폐된 공간의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았다. 공기는 욕조 속의 더운 물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다.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경쾌한 리듬의 허밍이었다. 멜로디가 귀에 익었다. 가게 안으로 누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힘겹게 팔을 들어 몸 마디마디를 주물렀다. 피가 돌면서 눌려있었던 몸 왼쪽이 저려왔다. 암실 문을 열자 빛이 쏟아졌다. 손그늘을 만들고 부신 눈을 떴다. 딱딱한 알루미늄 가방 위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햇빛 속에 앉아있는 여자는 스스로 빛나고 있는 빛 무더기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빛이 스러지면서 여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는 얼굴빛이 유달리 희었다. 여자가 내 쪽으로 팔을 뻗어 손을 내밀었다. 여자의 팔은 윤곽이 희미했다. 홀로그램의 영상처럼 반쯤은 투명해보였다. 악수를 청하는 것인지 자신을 일으켜 달라는 것인지 몰라 잠시 주춤거리다가 여자의 손을 맞잡았다. 여자는 손아귀 깊숙이 손을 넣고 힘차게 흔들었다. 자칫하면 못 찾고 그냥 돌아갈 뻔했어요. 초행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도시에서 상가가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다리 건너편으로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그쪽에 신시가지가 형성된 후로는 죽은 골목이 돼버렸다. 사진관은 옛 번화가의 뒷골목에 위치했다. 원래는 주택가였는데, 주택을 허물고 상업용 건물을 급조해 형성된 상가였다. 지금은 가게를 연 곳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곳은 구식 양옥의 1층을 개조해 가게로 쓰던 것이어서 밖에서 보면 가정집처럼 보였다. 오기 전에 부동산에 들렀어요. 한 달 전에 이미 매매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건데 저에게 세 놓을 생각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임대를 목적으로 산 집이 아니었다. 여자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중고로 구입한 17분 컬러 현상기가 한 구석에 놓여있을 뿐,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진관을 하려고 산 건물이지만 한 달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암실에서 보냈다. 배가 고프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여자는 얼룩져 더러워진 벽을 따라 걷다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나뭇결을 들여다보았다. 곳곳의 정경들을 기억 속에 새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세밀하게 보았다. 여긴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오래전에 아버지가 여기서 사진관을 했어요. 위층에 살림을 차리고요. 여자의 나이를 가늠해봤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에 언뜻 보면 어려보였지만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와 비슷하거나 한두 살 아래쯤일 것이다. 여기서 함께 지내게 해주세요. 처음엔 그냥 둘러보고만 가려고 했어요. 막상 와보니 여기 있고 싶어지는군요. 세를 놓는 건 싫다고 하셨죠? 대신 일을 하겠어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가게를 열면 가게일도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말끄러미 보았다. 여자의 눈빛 속에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거절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떤 말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 집안일과 병간을 도맡았던 아주머니와 6개월여를 함께 지내본 적은 있지만, 나는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점.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와 그곳에 살고 싶어 한다면 무언가 절박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어딘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태어났다는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와 묏자리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자동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도로의 모퉁이에 나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저기가 느이 아버지가 사진관을 하던 자리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내린 골목은 동굴의 입구처럼 어두웠다. 가로수에 가려 골목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무성한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음산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이 길이 번화가였지. 세가 워낙에 비싸서 느이 아버지가 저 골목 끝에 있는 집을 사서 아래층을 가게로 개조했다.2층에다 신접살림을 차렸고, 너도 거기서 낳았어.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저기서 오래 살았을 게야. 그때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 어름을 언뜻 보고 지나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진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생전의 아버지처럼 사진관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 머릿속은 어두운 골목으로 가득 찼다. 그곳에 가면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의 유순한 흐름을 따라 유유히 나의 생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49재를 치르고 어머니의 무덤에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 이곳은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뽀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무성한 것은 지붕까지 뻗어있는 담쟁이덩굴뿐이었다. 근처의 부동산을 찾아가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곧장 계약서를 썼다. 다니던 잡지사에 사직서를 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사진기자로 일하던 직장이었다. 지구 곳곳의 풍경을 주제로 하는, 사진 중심의 다큐멘터리 잡지였다. 사직서는 그날로 수리되었다. 잡지는 상업성이 강한 잡지들을 출간하는 모(母)기업의 품격을 위해 창간된 것이었다. 전문적인 사진이 실리는 잡지를 다수의 대중은 외면했다. 독자가 많지 않으니 당연 광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기가 침체되자 모기업은 서서히 경영에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권고사직을 당할 형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내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동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통장으로 입금된 퇴직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를 내놓았지만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보험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상자에는 어머니의 결혼 예물과 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세 장의 보험증서가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는 보험증서를 쥐고 오열했다. 오십 몇 년의 삶의 흔적이라기에는 세 장의 종이는 너무도 가볍고 쓸쓸한 것이었다. 2층의 방을 쓰세요. 저는 여기 암실에서 지내면 되니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해선 안 됩니다. 어려운 조건은 아니로군요. 여자는 알루미늄 가방을 메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자연스럽게 밟고 올라갔다.2층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반으로 접히는 휴대용 침대를 암실에 갖다놓고, 내 물건들은 거실에 놓았다. 여자가 식사준비를 했다. 여자는 냉장고 뒤쪽 구석에 쑤셔 넣어두었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여자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처럼 양념통이나 필요한 재료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냈다. 무언가 도와야 할 것 같아서 주위를 서성대던 나는 머쓱해져서 1층으로 내려왔다. 여자가 차린 상은 정갈했다. 냉장고에는 맥주와 인스턴트식품만 가득했었는데, 여자가 차린 밥상에는 찌개에 윤기가 흐르는 밑반찬까지 고루 갖춰져 있었다. 여자의 음식은 어머니가 해주던 것과 맛이 흡사했다. 이 정도면 합격인가요? 여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싱긋 웃었다. 환한 빛이 얼굴 가득 퍼졌다. 이곳에 머무는 대가로는 좀 과분하군요.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갔다. 여자는 늘 조용히 움직였다. 내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나를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암실에서 보냈다. 여자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 했다. 거실로 내어 놓은 옷장 속에는 바싹 마른 옷가지들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여자가 내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거칠게 그린 가게 구조도와 비용에 관한 세목이 적혀 있었다. 사진관을 열었으면 해요. 여자가 건넨 종이를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종이 몇 장으로는 가게의 모습이 요연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내 생각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우선 가게에 있는 17분 현상기는 되팔았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사진관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증명사진이나 간단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갖추고, 현상·인화 서비스를 하면 되겠다 싶어 17분 컬러 현상기를 중고로 구입한 것이었다. 여자는 내 옆으로 바투 다가와 앉아 손끝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계획을 설명했다. 암실은 공간이 꽤 넓으니까 두 개로 나누었으면 해요. 조명기기와 카메라 장비를 구입해서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고요. 표준화된 QSS방식으로는 사진을 기록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기대만 충족시킬 수 있죠.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돼서 현상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암실을 개방해서 수작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차나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곳, 제가 꿈꾸고 있던 사진관이에요. 암실에서 나와 보니 벽에 호두나무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가게 구석에 있던 자동 현상기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무릎을 대고 엎드린 채 기름걸레로 바닥의 나무를 닦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켜켜이 나무의 결이 살아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암실 공사하러 인부들이 올 거예요. 가벽을 세우는 거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조금 시끄러울 거예요. 어디 잠깐 다녀오는 건 어때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내려온 후로는 첫 외출이었다.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SLR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인데, 검은 몸체의 카메라가 낯설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처럼 아니,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가 이물스러워 보였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버스에서 내려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이국의 풍경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풀조차 자라지 않는 들판에 앉아 서서히 땅에 내리고 있는 어둠을 응시했다. 구릉처럼 낮은 산의 언저리에는 스러진 햇빛이 모여 검붉은 노을로 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도 차도 없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사물의 윤곽이 어둠에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피로하지 않았다. 끼니를 걸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몸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불현듯 여자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가게에 걸려 있는 간판에 불이 환했다. 간판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암실카페 - 빛이 스며든 자리’라고 씌어 있었다. 공사가 끝났는지 가게 안은 조용했다. 출입문을 열자 직사각의 탁자 세 개가 보였다. 한쪽 면을 벽에 붙인 탁자에는 어림잡아 20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실과 스튜디오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주방이 들어섰다. 주방은 음료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 수 있는 바bar 형태였다. 주방 옆에는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여닫이 유리문이 달린 업소용 냉장고 안에는 캔음료와 몇 종류의 맥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암실 옆의 공간에는 몇 개의 조명기구가 놓여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꾸며졌다. 스튜디오를 제외한 가게의 정경은 카페에 가까웠다. 늦은 시간에 맥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겠군요. 사진관보다는 호프집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죠. 하지만 저는 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어요. 어두운 방에 스며든 빛의 흔적, 그게 바로 사진이니까요. 여자는 벽의 진열장을 닦고 있었다. 이곳에 카메라를 진열해 놓았으면 해요. 예전에는 사진관에 카메라 진열대가 있었지요. 집집이 가정용 카메라를 구비해놓기 이전에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대여했으니까요. 가방 속에 묵혀두는 것보단 가게로 내오면 오래된 사진관 이미지도 풍기고, 손님들에게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도 보여주고 좋을 것 같은데요. 진열대는 애초부터 카메라를 놓으려고 만든 것 같았다. 천장에 진열대를 비추는 작은 조명이 있었다. 나무판으로 만든 선반 형식의 진열대에는 유리문이 달려 있었는데, 먼지가 새어들지 않도록 틈새에 실리콘으로 패킹 처리가 되어 있었다. 2층에서 카메라들을 가져왔다. 케이스에 넣어 상자에 보관해왔지만, 오랫동안 손을 타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클래식 카메라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오토포커스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부착해 사용했고, 얼마 전까지는 디지털 카메라를 썼다. 내게는 꽤 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유하게 마련이었다. 클래식 카메라는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카메라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되던 해 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내게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이나 카메라처럼 정물적인 것이었다. 어머니는 단 한 대의 카메라도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카메라를 꺼내 닦았다. 그 일은 어머니에게 지난 일을 추억하게 하는 사진첩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카메라를 닦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되풀이되는 추억은, 흐려지지 않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림자는, 사막에 묻힌 수천 년 전의 미라처럼 영원히 썩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어머, 이건 콘탁스II네요. 여자의 음성이 높아졌다.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기 전에는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이걸 썼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주로 갖고 있는 카메라는 니콘FM2였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꽤 괜찮은 제품이었다. 간혹 클래식 기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라이카를 들고 다녔다. 콘탁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카메라는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돌아올 때 구입한 것이라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이 카메라의 각별한 내력을 말했으나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가 2층으로 올라가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앉아있던 가방이었다.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콘탁스와 똑같은 디자인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카메라 앞면에는 키릴문자로 киев라는 로고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 카메라는 1949년에 생산된 키예프 카메라예요. 생산지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지방이지만 부품은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왔지요.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소비에트는 전쟁배상금으로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인 자이스 이콘(Zeiss Ikon)을 요구했어요. 공장의 모든 부품과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우크라이나로 이송됐지요. 파견된 드레스덴의 노동자들이 자이스 이콘의 부품을 조립해서 만들었으니 이 카메라는 콘탁스II와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인 셈이지요. 여자는 수건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닦았다. 카메라를 만지는 여자의 손놀림은 병든 육친의 몸을 닦아주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고 애틋해 보였다. 이 카메라는 제게 존재증명과도 같은 거예요. 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이거든요.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었지요. 월남에서 번 돈으로 이 카메라를 샀어요. 지금이야 회사원의 한 달 월급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돈이면 읍내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해요. 어렵게 구입한 카메라지요. 아버지가 월남에서 부쳐온 돈을 큰아버지가 들고나갔었다니까요. 장사를 해보겠다고요.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읍내의 모든 술집을 뒤졌대요. 동생이 목숨 걸고 번 돈인데 술맛이 나더냐고 꾸짖어 모셔왔대요. 정혼한 사이긴 했지만 결혼 전이고 손위 시숙인데, 어머니는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요. 큰아버지는 하는 일 없이 술과 여자로 평생을 보냈어요. 나쁜 분은 아니에요. 어느 집안에나 그런 무능하고 호방한 큰아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그때 만약 어머니가 큰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더라면 제게 유품 같은 건 남지 않았겠지요. 지금은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저 혼자니까요. 이 카메라 외에는 제 존재를 증명해줄 무엇도 남지 않았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와 비슷한 삶의 내력을 갖고 있는 이 여자가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혈육처럼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이 사진관으로 온 것도 여자가 카메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 막연한 불안감은,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무엇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귀성 어류처럼 내가 태어난 이 사진관으로 흘러들었던 것인지도. 사진관에는 손님이 없었다. 몇 차례 늦은 시각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들어와 맥주를 찾았다. 여자는 암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진관이라고 가게에 대해 설명한 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첫 손님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였다. 주민등록증에 쓸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로 즉석에서 사진을 올린다고 말했다. 여자애는 알고 있다며 한 음절씩 힘주어 말했다.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여자애는 탁자에 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유난히 검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여자애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주었다. 커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여자애가 중얼거리며 코코아를 홀짝거렸다. 여자애는 기름종이로 이마와 콧등의 유분을 닦고, 콤팩트 퍼프로 꼭꼭 눌렀다. “왜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이건 증명사진이니까요. 처음 발급받는 주민등록증이거든요. 원판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사진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주민등록증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숫자와 지명과 이름과 125분의 1초 동안의 모습과 소속된 나라 외에 또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증명이라는 말이 하나의 역설처럼 느껴졌다. 증명이 목적인 플라스틱 카드는 정작 중요한 것은 증명할 수 없었다. “저는 디지털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디지털 사진은 원판이 없잖아요. 디지털 사진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고, 삭제하는 것도 복사도 고치는 것도 쉽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떠도는 이미지들처럼 느껴져요. 상이 음각으로 새겨진 필름의 원판은 이를테면 이미지가 깃드는 집 같은 거죠.” 여자애의 오른쪽 눈 아래에 점이 있었다. 작고 까맣고 윤기가 도는 점이었다. 나는 보정을 원한다면 점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눈 아래에 있는 점은 눈물점이라고 어른들이 빼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저는 이 점이 좋아요. 점도 제 몸의 일부니까요. 사람들은 이 점 때문에 저를 쉽게 기억해요. 아마 아저씨도 그럴걸요.” “사진은 내일 찾으러 와요. 여기서 직접 현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요.” 사진을 담아두는 봉투를 내밀었다. 여자애는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자신의 이름을 썼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씨였다. 여자애는 이현아라는 이름 옆에 한쪽이 지나치게 부푼 하트 문양을 그려 넣고, 내게 찡긋 윙크를 했다. 여자애가 지갑을 꺼냈다. 첫 손님이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 암실도 이용할 수 있나요?” “암실에서 직접 현상할 수도 있고, 현상을 맡길 수도 있어요. 스튜디오도 사용할 수 있고요.” “좋은데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곧 손님이 늘어날 거예요.” 암실에 누워 있다가 몹시 갈증이 나 밖으로 나갔다. 진열대의 조명등만 켜져 있었다. 여자는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고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암실은 깊은 바다 속 같아요.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추운 곳. 암실에서는 눈을 감아도 떠도 온통 농밀한 어둠뿐이에요. 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무서워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거기에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곳에 있나요? 거기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두려움, 고독, 침묵, 약간의 위안, 그리고 나. 암실에 누워 있으면 또 다른 내가 보여요.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예요. 수면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가 바뀐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해요. 암실에 누워있는 나와 나를 응시하는 나 중에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존재하는 걸까.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주변이죠.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당신을 보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에요.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가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주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 거울 속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진 반물질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각각 우주와 반우주를 형성했으며, 이 둘은 서로 맹렬한 속도로 멀어져갔다고 추측했다. 반물질은 물질을 만나는 순간 백만 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로 상쇄되기 때문에 물질계에 있는 우리들은 반물질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맥주잔을 쥐고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싶었다. 여자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었다. 내 손이 여자에게 닿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사진관에 온 두 번째 손님은 가게로 들어와서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잡은 손을 경쾌하게 흔들었다. 그는 이현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눈에 그가 이현아의 오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현아의 증명사진이 든 봉투를 건넸다. “현아 오빤 거 어떻게 아셨어요? 신기하네. 남매지만 닮은 데가 별로 없거든요.” 굳이 닮았다고 한다면 이미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아가 다녀가고 난 후 그 다음 손님이 현재였기 때문이었다. 곧 손님이 늘어날 거라던 현아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예요, 형.” 그는 가방에서 세 통의 필름을 꺼냈다.‘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론으로만 접했던 현상·인화 작업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두 개의 필름을 그에게 다시 건넸다. 외형발색 필름이었다. 외형발색 필름은 유제층 안에 발색제가 없어서 필름제조회사에서만 현상할 수 있었다. 암실 수납장 안에는 약품부터 액정에 불이 들어오는 디지털시계, 라텍스 장갑까지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현재가 알고 있는 것은 암실작업의 일반적 과정뿐이었다. “암실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말 놔요, 형.” 현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암실 작업도 사진 찍는 것과 같아.”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놓는 편이 아니었다. 막상 말을 놓고 보니 현재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서글서글한 눈매 때문인지, 웃음기 많은 얼굴 때문인지 현재에게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없었다. 세이프라이트를 켜자 현재가 암실 문을 닫았다. 작업을 하며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열심히 이론공부를 해도 직접 찍어보기 전에는 실력이 늘지 않잖아. 암실작업도 그래. 온도와 시간을 지킨다고 발색현상이 잘 되는 건 아냐. 날씨나 환경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온과 습도가 다르니까. 적절한 온도와 시간은 암기가 아니라 감이야. 감을 잡으려면 결국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어.” 현재는 인화된 사진을 보며 뿌듯해 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인물사진이었다. 수준급인 사진도 더러 있었지만 사진의 노출이 대부분 오버돼 있었다. 현재는 다음 동호회 모임은 이곳에서 갖기로 했다며, 이제부터는 손님이 꽤 늘어날 거라고 했다. 동호회 사람들은 현재와 비슷했다. 제일 먼저 현재가 현아와 함께 왔고,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암실에서 작업을 하거나 각자의 사진을 돌려보았고, 더러는 일찌감치 술판을 벌이는 치들도 있었다.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이었다. 그들은 나이도 직업도 각색인 듯 보였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거나 현재처럼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격 없이 대했다. 그들은 원래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미라지Mirage’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동호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자연 속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시야를 좁혔다.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물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밤늦도록 돌아가지 않았다.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한 잔 더 해야겠다며 여관방을 잡아 나갔다. 현재가 가게 정리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지만, 돌려보냈다. 가게 문을 닫고 어질러진 탁자를 그대로 놓아둔 채 암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데다가 몸이 몹시 피곤했다. 구석에 접어놓은 침대를 펼치자마자 나는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문소리에 잠이 깼다. 열린 문 사이로 새어든 달빛이 바닥을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자는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내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여자는 내 뺨을 감싸 쥐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여자의 혀가 들어왔다. 여자는 혀로 내 잇바디를 훑었다. 여자의 혀는 복족류의 속살처럼 차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가슴이 더워졌다. 나는 팔로 여자의 등허리를 감고 입을 열어 여자의 혀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잠이 든 체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뜨거워진 가슴을 달랬다. 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걸어 나가 문을 닫았다. 늦게야 일어나 암실에서 나왔다. 여자의 둥근 등이 보였다. 여자는 암실을 등지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가게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여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속의 색소가 다 바랜 것처럼 여자의 얼굴빛이 창백했다. 당신의 사진에는 색이 없군요. 하나같이 흑백사진뿐이에요. 게다가 당신의 사진은 너무 어두워요. 노출이 부족해요. 노출이 모두 -2스톱이군요. 글쎄요. 저는 적정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슬라이드 필름을 쓸 때에는 노출이 오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배웠거든요. 카메라는 어두운 방이죠. 무언가를 찍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와야 해요. 조리개를 조금만 더 열고 셔터 속도를 늦춰요. 햇빛 때문일까.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인 사진을 스크랩하는 여자의 손끝이 투명하게 보였다. 물에 떠 있는 한천질의 자포생물처럼 손가락 아래로 사진이 흐릿하게 비쳤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한 것이 아니었다. 눈과 코와 입술의 윤곽이 희미해져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여자를 봤다.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감았다 뜬 사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탁자를 보자 여자는 여전히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여자를 보자 여자는 싱긋 웃었다. 여자는 자주 사라졌다. 몇 시간 또는 며칠씩 사라지기도 했다. 돌아온 여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가게를 돌봤다. 손님이 점차 늘어서 가게일이 바빴다. 손님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어딘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느새 연기처럼 희미해져 실루엣으로만 넘늘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여자가 완전히 사라지던 날, 현재가 현아와 함께 찾아와 라이트 페인팅 작업을 했다. 사진 관련 잡지에서 루미노그램(Luminogram,光跡사진)에 대한 글을 보고 실제로 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끝에 불이 들어오는 펜 모양의 라이트를 들고 온 현아는 이민 간 친구에게 라이트 페인팅으로 편지를 써서 보낼 거라며 몹시 들떠 있었다. 라이트 페인팅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다. 암실에서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릴리즈를 연결한 후 세이프라이트를 껐다. 셔터 속도를 Blub에 놓았다. 현아는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으며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셔터를 Blub에 맞추고 1 스톱 부족의 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조사하면 글씨를 쓰고 있는 연출자의 모습이 사진에 나온다. 현아의 작업이 끝난 후 여자가 펜라이트를 들었다. 여자는 허공에 대고 천천히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켜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떠있던 라이트펜이 따닥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님들은 여전히 가게로 찾아와 암실을 사용하고 차를 마시고 더러 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누구도 여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여자가 사라진 후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암실로 들어갔다. 암실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어둠 속에 누워있었다. 나는 스스로 어둠 속에 갇혔다. 시간은 여전히 흘렀고, 어두울수록 더욱 명징해지는 의식은 여자에 대한 기억을 쫓고 있었다. 문밖에서 경쾌한 멜로디의 허밍이 들려왔다. 처음 내게로 왔던 날처럼 빛에 둘러싸인 채 여자가 앉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가게 안은 어두웠고 텅 비어 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외로움이 불러낸 환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자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주의 반대편에서 달려온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내가 마음을 열려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현상한 라이트 페인팅 사진을 꺼내보았다. 필름의 마지막 장에는 서정주의 시구가 씌어 있었다. 물 위에 뜬 유성물감처럼 글씨의 획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었다.‘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여자가 서 있었을 사진의 오른쪽 모서리 공간은 검은 어둠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시의 남은 구절을 읊조렸다.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바람처럼 사라진 여자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내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여자가 택한 이별이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담담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언젠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입 맞춘다면, 거리낌 없이 이를 열어 여자가 내민 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자의 둥근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 몸이 완전히 스러지고 난 후 먼먼 내생의 어느 날이어도 좋았다. 진열대에는 여자가 남기고 간 키예프 카메라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옆의 콘탁스를 꺼냈다. 노출을 오버스톱으로 다시 맞추고 뷰파인더에 키예프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여자가 자신의 유일한 존재증명이라고 말했던 키예프 카메라는 내게는 여자에 대한 기억의 증거가 되었다. 이 사진은 어두운 방에 잠시 스며들었던 빛, 그 빛의 흔적을 기록한 한 장의 루미노그램으로 남을 것이다.(끝) ■ 당선소감 제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셨다는 사진관을 스쳐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상가 2층 건물이었지요. 그 후부터였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아버지의 사진관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관을 열고 싶었습니다. 유리로 된 진열장에 오래된 사진기가 들어있는 곳. 증명사진을 찍으러온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웃으세요, 한 마디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곳. 소읍의 탄생과 죽음과 기쁨과 슬픔을 기록하는 곳. 돈을 벌어도 좋고 벌지 못해도 좋은, 그런 사진관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 사진관을 넣어두고 저는 수시로 꺼내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들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사진관 안에는 허약한 식물이 자랐습니다. 제 소설은 결여의 토양에서 결핍의 양분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지닌 게 없어도 너무 지독하게는 살지 말자고 제 마음을 다독일 즈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약한 소설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구효서 선생님!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뻐요. 한결같이 제게 여여한 미소를 보여주셔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가족과 문우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응오씨, 당신은 제 삶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입니다. 저를 존재하게 하는 건 당신이에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승미 ●약력 1974년 강원도 양구 출생 200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9편의 작품은 각기 그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문학도들에게 패기와 정열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의 이름으로건 예술의 이름으로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소설 같은 소설’ 한 편을 적당히 꾸려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닐까. 그러나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소년’‘달을 보고 짖는 개’‘펑크로커 실종기’‘빛이 스며든 자리’ 등 4편이었다. ‘소년’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미래없는 삶을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을 샀지만,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삶에 대한 진실을 움켜 쥘때 문학적 형상화도 함께 따라올 것이다.‘달을 보고 짖는 개’는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솜씨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지만, 주제와 구성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잘 만든 이야기, 그러나 너무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반복되는 낡은 이야기에 새로운 진실이 담기기는 어렵다. ‘펑크로커 실종기’는 누아르 서사의 형식 속에 펑크족들의 생활양태를 담은 소설로 문장이 경쾌하고 구성이 치밀했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그만큼 많았다. 무엇보다도 한 세계의 겉과 속을 심도있게 성찰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문화적 코드들을 조합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펑크족은 펑크족이다.’라는 말 이상의 매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풍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에서 온다. ‘빛이 스며든 자리’는 구렁각시의 민담과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현대의 사진예술론으로 재해석하는 가운데 현실과 환상을 정교하게 봉합해서 꾸며낸 예술가 소설이다.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는 주제의 설정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현길언 황현산
  • [부시 재선] 케리·부시 승패 요인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간의 승부는 누가 선거전의 주도권을 잡느냐의 싸움에서 결정났다. 부시 대통령은 옳든 그르든 초지일관 이라크전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자기의 주제를 갖고 밀어붙였지만, 케리 후보는 독자적이고 뚜렷한 메시지가 없이 부시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는 밋밋한 선거전을 펼쳤다. ●美 사회 주류층 잡는 데 실패 무엇보다 케리 후보는 미국 사회 주류의 마음을 잡는 데 실패했다.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 케리 후보는 미국의 백인 남성들로부터 40%가 넘는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 미국 사회 전체가 보수화하는 추세에서 사회적 소수인 여성과 젊은 층, 유색인종, 진보적 계층의 지지만을 갖고 정권을 잡으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것은 케리 후보뿐만 아니라 상·하원까지 모두 내준 민주당 전체가 당면한 근본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케리 후보의 가장 큰 강점은 ‘부시가 아니라는 점’이라는 말이 선거전 동안 계속 나올 정도로 케리 캠프는 뚜렷한 쟁점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의료보호와 실업 등의 이슈를 갖고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큰 벽 앞에 번번이 막혔다. 케리 후보의 선거 캠프는 민주당 후보 경선 당시부터 위원장이 바뀌는 허약함을 노출해 왔다. 이후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의 ‘인터넷 전사’들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캠프에 유입됐으나 대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와 함께 ‘귀족적’인 케리는 흑인과 히스패닉 등 전통적 지지 계층과의 ‘연대의식’이 적어 고어 전 부통령이 차지한 것만큼의 표를 확보하는 데도 실패했다. ●부시, 2000년 당선 직후 재선대책반 구성 부시 대통령은 2000년 앨 고어 후보에게 신승을 거둔 직후부터 2004년 선거를 대비해 왔다. 칼 로브 백악관 정치보좌관을 중심으로 재선 대책반을 구성,4년 동안 전략과 전술을 마련해 왔다. 그 결과 접전지역인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에서 승리했고, 취약계층인 흑인과 히스패닉 주민들로부터 지난 선거보다 많은 표를 얻어냈다. 동생 젭 부시가 최고의 승부처인 플로리다의 주지사라는 사실은 부시 대통령에게 결정적인 힘이 됐다. “나랏일은 제쳐 두고 재선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됐지만 부시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재선에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정권이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투쟁해서 빼앗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브 보좌관과 켄 멜먼 선거대책본부장을 중심으로 탄탄하게 짜여진 선거조직도 부시 대통령의 강점이었다. dawn@seoul.co.kr
  • 서울현대도예전 대상에 이지혜씨

    서울현대도예전 대상에 이지혜씨

    서울신문과 스포츠서울이 주최하고 한국도자기가 후원한 제24회 서울현대도예공모전에서 도예가 이지혜(30)씨의 작품 ‘우주 Ⅱ’가 대상을 차지했다. 11일 발표된 심사결과에 따르면 우수상은 최중열(47)씨의 ‘허와 실’이 받았으며,특선은 박선신(28)씨의 ‘치유’,이주석(31)씨의 ‘상념’,김종문(38)씨의 ‘자연의 율-생성’,전지현(26)씨의 ‘쉿!,바람소리’,전소영(32)씨의 ‘빛-탄생’에 돌아갔다.입선은 김현주씨 등 33명.대상에는 500만원,우수상에는 200만원,특선에는 1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공모전 심사를 맡은 미술평론가 장동광(숙명여대) 교수는 “올해 심사에서는 신인발굴의 차원에서 도예의 형상성과 개념성을 살린 참신한 작품을 찾는 데 주안점을 뒀다.”며 “특히 대상작 ‘우주 Ⅱ’는 사각형의 몸체 위에 여러 단위소들을 조합,건축적으로 축조한 ‘기념비적 조각성’을 지닌 작품으로 건축적 활용가치도 높다.”고 평가했다.심사는 장 교수를 포함,심사위원장인 김수정 이화여대 교수·노경조 국민대 조형대학장·원경환 홍익대 교수·장수홍 서울대 교수 등 5명이 참여했다. 시상식은 11월29일 오후 5시 서울 태평로 서울갤러리에서 열리며,수상작은 11월29일부터 12월4일까지 서울갤러리 전관에서 전시된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심사평-‘우주Ⅱ’ 독창적 아이콘·상징성 돋보여 1981년 서울도예공모전을 시작한 이래 24년 동안 선각자적 사명감으로 도자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발전을 모색해 온 서울신문에 감사를 드린다. 올해에는 출품작은 많지 않았지만 수준은 오히려 정선된 느낌을 주었다.심사의 주안점은 신인 발굴의 뜻을 살리는 차원에서 새로운 형상성,개념성을 담보한 참신한 작품 찾기에 두었다.심사위원 5명이 공개 토론한 후 1차로 선정한 40점의 입선작 가운데 7점을 특선작으로 정했으며,특선작 중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결정했다. 이 가운데 이지혜의 ‘우주Ⅱ’는 지난해 작품의 미흡한 점을 보완해 입체성과 공간 구성에 주력한 결과,심사위원 대다수의 표를 얻어 별 논란없이 대상작으로 결정됐다.사각형의 몸체 위에 단위소들을 조합한 기념비적 조각성을 지닌 작품이다.검은색의 바탕유약 위에 기하학적,추상적 사인(Sign)들을 다양한 색감으로 조율해 동심과 환상에 찬 교향곡을 들려주는 듯했다.현대적 감각으로 변형시킨 세포와 같은 아이콘(Icon)의 상징성과 변용 가능성,대량 복제성이 산업·건축적으로도 활용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우수상 수상작인 최중열의 ‘허와 실’은 놀라운 기술력과 치밀한 형태 성형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등나무 재질로 짜여진 의자를 보는 듯한 사실적인 표현과 등받이 부분에 요철을 줌으로써 개념적 의도를 극대화했다.장인정신이 주는 깊은 숨결과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는 성취할 수 없는 수작이다. 특선작 전지현의 ‘쉿! 바람소리’는 부조적 형식을 지닌 도자벽화로,구성미와 회화적 감각이 돋보였다.김종문의 ‘자연의 율-생성’은 탄탄한 조형감각과 흙의 고유한 질감을 살려내는 숙련된 기술적 측면이,전소영의 ‘빛-탄생’은 유기적인 형태가 주는 몽환적 분위기와 유약 흩뿌리기가 주는 회화성의 결합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박선신의 ‘치유’는 인간의 두상과 새의 형상을 결합한 설치형식의 작품으로,독특한 유약의 발색효과는 현실의 지평을 넘어선 피안의 세계를 엿보게 했다.이주석의 ‘상념’은 불상의 형태를 지닌 작은 소조작품으로 명상적이면서도 동양적인 형상성을 보여주었으며,응모작의 크기나 형식이 일상의 규범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파기한 수작이었다. 전체적인 경향은 기물보다는 조형미 추구에 편중되었으며 유약의 연구가 미흡한 점이 눈에 띄었다.공모전은 신진을 발굴해 한국 도예의 새 지평을 열어가도록 장려하는데 뜻이 있다.스승과 선배의 지도나 영향력에 의존하거나 비슷한 형식의 변주를 통해 대상을 꿈꾸기보다 진정한 의미에서 도예가의 길을 찾아가려는 마음 가짐을 입선자나 낙선자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김수정 이화여대 교수 장동광 숙명여대 교수 ■인터뷰- 대상 이지혜씨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서울현대도예공모전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도예공모전으로,여기서 대상을 받는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자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도예작가들의 설 자리가 날로 줄고 있는 현실에서 도자예술의 위상과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온 서울현대도예공모전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올해 서울현대도예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지혜씨는 “무릇 예술 일반이 다 그렇지만,도자예술의 경우 작가로서의 활동공간이 너무 비좁아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이씨는 그런 맥락에서 “서울현대도예공모전을 보다 내실화하고 출신 작가들의 모임이나 전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주최측이 좀더 적극적인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홍익대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한 이씨는 “홍대 도예과 교수 네 분 가운데 원경환·우관호·이인진 등 세 분이 서울신문사 현대도예공모전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이씨는 지난해에도 ‘우주’라는 작품으로 서울현대도예공모전에서 특선을 차지했다.올해 대상작 ‘우주 Ⅱ’는 그 연장선상의 작품으로 순수미술적인 측면을 강조한 조형도자다.석고틀에 흙물을 부어 떠내는 ‘슬립 캐스팅’ 작업을 거쳐 수백개의 기학학적인 문양을 상감기법으로 만들어내는 고난도 작업이다. “물레를 차고 전통가마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제 작품을 보고 그게 플라스틱이지 무슨 도자기냐고 합니다.하지만 현대도예의 새로운 감각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저의 모던한 스타일을 좋아하지요.저도 물론 점토를 사용하고 가마작업도 하지만 흙이 지닌 물성이나 마티에르를 강조하기보다는 디자인이나 원색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1950년대 중반,회화와 도자를 접목해 도예를 순수예술의 범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한 미국 도예가 피터 볼커스 등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세라믹 조각’이 시도된 이래 ‘현대미술로서의 도예’를 추구하는 작가들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이씨의 작품 또한 도예의 이런 순수미술적 속성을 적극 수용한다. 이씨는 조형도자 못지않게 테이블 웨어 등 실생활에 필요한 생활도자 작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경기도 파주 헤이리 아트밸리의 한향림 갤러리 전속작가인 그는 “서울현대도예공모전은 조형도자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기능성을 강조하는 생활도자 작가들은 출품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며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처럼 조형부문과 생활부문으로 나눠 공모하는 것도 도자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했다.“조형의지를 표현하는 데 있어 도예만큼 우월한 장르도 없다.”는 이씨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전업작가로서 더욱 일로매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인터뷰-우수상 최중열씨 우수상 최중열씨 “미국의 현대도예 1세대 작가인 루디 오티오 몬태나대 명예교수는 올해 나이가 78세입니다.하지만 그는 지난해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에 출품해 당당히 동상을 차지했습니다.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나이가 좀 들어 도예공모전에 작품을 내면 망신당하기 십상입니다.30대 중반쯤 되면 점잖게 강의나 나가야지 공모전에 출품하는 건 창피하다고 여기는 게 우리 풍토입니다.50대는 물론 40대 응모자도 손에 꼽을 정도예요.” 올해 서울현대도예공모전에서 47세의 ‘고령’으로 우수상을 따낸 최중열씨는 “장인의식이 부족한 우리 예술계의 전반적인 풍토가 예술가들의 손발을 스스로 묶고 있다.”고 개탄했다. 최씨는 서울현대도예공모전의 문을 두드린 지 6년만에 우수상을 받았다.“서울현대도예공모전은 도예작가로서는 꿈의 관문입니다.더구나 신문사와 같은 공적인 권위를 지닌 기관에서 ‘소외 장르’인 도예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것은 작가로서는 더없이 큰 힘이 되지요.” 최씨의 수상작 ‘허와 실’은 10㎝ 정도 크기로 나눈 점토조각 수천개를 대나무 마디처럼 이어 붙여 만든 순수 조형작품.작가는 자신의 작업방식을 ‘마디쌓기’ 기법이라 부른다.“마디를 만들어가는 성형기법은 저만의 독창적인 방식입니다.‘마디쌓기’를 주제로 논문까지 썼지요.앞으로 도예가 최중열의 트레이드마크로 가꿔나갈 작정입니다.” ‘허와 실’에는 탐욕과 욕망이 들끓는 이 시대,대나무 속처럼 마음을 비우고 살자는 작가의 메시지도 담겨 있다. 최씨는 경희대 도예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홍대와 서울대의 벽’을 깨고 서울현대도예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그러니 더욱 감격스럽고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한국 사회가 온통 그렇듯 예술계에서도 ‘제1의 기득권’인 학연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라도 패거리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서울현대도예공모전부터라도 그런 모범을 보여 사회의 경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경기도 광주에서 ‘토원(土元)’이라는 개인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최씨는 대부분의 도예작가들이 그렇듯 조형도자와 생활도자를 병행하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제24회 서울현대도예공모전 입선자 33인 명단 맹안희 김현주 서예나 채효연 배주영 강화정 이승희 장인옥 정미희 김은주 정희성 조미라 김시원 김진미 김자민 윤정선 최연주 남행선 김삼현 윤주철 정혜원 윤경혜 홍승철 유정민 손은정 이난희 전대숙 주성옥 차동기 황연화 이영석 최애리 곽항
  • 좌파 독립운동가 포상 ‘물꼬’

    “소련을 등에 업고 공산주의를 세우려는 세력과 미국을 등에 업고 자본주의 국가를 세우려는 세력이 극한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민족통일과 자주독립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던 김구,여운형,김규식 등 중도통합세력은 패배하고 분열세력들이 득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4월 한 주간지에 기고했던 내용이다.노 대통령은 같은 해 몽양 여운형 선생의 서훈 청원서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서훈은 2002년에 이어 올해에도 거부됐다. 친일행적이 있는 자,광복 이후 공산주의 활동을 한 자는 제외한다는 국가보훈처의 내부지침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여운형 선생은 해방전 독립운동을 했으나 1947년 숨지기 전까지 노동인민당을 창당하는 등 좌익활동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념의 벽을 넘어 과거사 진상규명 의지를 밝히면서 “프랑스 같은 나라는 불과 4∼5년 동안 30만명이 정부로부터 레지스탕스로 공식 인정받고 포상을 받았지만 우리는 1만명 밖에 포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이같이 포상자가 적은 까닭이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서훈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이에 따라 과거사 진상규명의 폭과 범위는 이념의 벽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두가지 메시지를 던졌다.정쟁거리로 삼을 생각이 없다는 언급은 야당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노 대통령은 “명색이 대통령이 된 사람이 이런 중차대한 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지는 않겠다.”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다른 메시지는 경제를 핑계댄 발목잡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노 대통령은 반민특위 같은 때도 경제와 안보를 핑계대서 회피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86∼88년 어수선한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두자릿수 경제성장을 했다고 강조했다.이는 ‘과거사보다는 경제살리기’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여당내 일부 의원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시네마 천국] 이탈리아서 온 성장영화 2편

    [시네마 천국] 이탈리아서 온 성장영화 2편

    ●아임 낫 스케어드 이탈리아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아임 낫 스케어드’(I’m Not Scared·6일 개봉)는 손수건을 챙겨가야 할 영화다.규모는 ‘소품’이지만,감동영화를 찾아온 관객들의 가슴을 푸∼욱 적셔준다. 주인공은 열살짜리 소년.그러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순수하고도 유쾌한 성장영화를 떠올리겠지만,예상을 엎는다. 티없는 동심을 캔버스로 삼되 감독은 그 위에다 어른들의 위선을 얼룩처럼 뚝뚝 떨어뜨려 놓는다. 스크린 위에서 뜻밖에 충돌하는 이미지들에 관객은 오히려 긴장하게 된다. 잃어버린 여동생의 안경을 찾던 미카엘(주세페 크리스티아노)은 마당 한구석에서 이상한 굴을 발견한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같은 또래의 사내아이 필리포가 공포에 질린 채 사슬에 묶여 있다.그날 이후 미카엘은,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동굴 속 누더기 친구와 어른들 몰래 비밀스러운 우정을 나눈다.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이 이상하게 움직인다는 걸 눈치챈 어느날 문득 TV를 보던 미카엘은 필리포가 유괴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로 다른 이미지들의 충돌음에 영화의 메시지는 훨씬 강렬해진다.나른한 햇살,끝없이 펼쳐진 황금들녘을 비추던 카메라가 어둠에 갇힌 창백한 필리포로 옮겨질 때는 스릴러 영화만큼 섬뜩한 느낌이다 필리포의 유괴사실을 알고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미카엘의 천진한 동심은,돈을 노려 유괴를 모의한 동네 어른들의 추악함과 시종 극대비된다. 살바토레 감독은 무인도에 갇힌 군인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지중해’로 국내팬층을 확보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나에게 유일한 어느 시대나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와 사회에 반항을 하게 마련이고,어른들은 흔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사회모순에 온몸으로 싸웠던 유럽의 68세대도 예외는 아니다.이미 안정된 계층으로 편입된 이들은 젊은이들의 반항을 유치한 ‘짓거리’로 치부한다.하지만 그 경중을 누가 잴 수 있을까.성장통은 어느 시대,누구에게든 나름대로의 무게와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이탈리아 영화 ‘나에게 유일한’(But Forever in My Mind·6일 개봉)은 세대간 소통의 벽이 유난히 두꺼운 우리사회의 부모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성장영화.열여섯 아이들의 반란을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시선으로 포착하면서 부모세대와의 비교를 통해 주제의 폭을 한 뼘 더 넓혔다. 실비오와 그의 친구들의 주된 관심사는 성(性).여자친구와의 경험을 말하는 친구를 부러운 듯 쳐다보고,어떻게든 멋지게 보여 여자친구를 만들어보려는 이들은 ‘아메리칸 파이’나 ‘몽정기’의 아이들과 닮아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 흔한 유행물인 섹스코미디와 격을 달리하는 건,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이 담겨있기 때문.학교의 사유화에 반대하며 시위에 나선 학생들과,여자친구를 사귀려고 동분서주하는 실비오.적이 사라진 시대에 아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공허하고 이성을 밝히는 모습 역시 어른들에겐 장난처럼 보이지만,그들의 고민은 실비오의 대사처럼 “생사가 걸린 문제”다.“우린 베트남전 같은 문제에 대항했다.”며 아이들을 나무라는 어른들이 오히려 더 파시스트적이지 않을까. 진지한 주제를 재미있게 포장하는 연출력도 뛰어나다.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돌고 돌아 셰익스피어의 소동극처럼 부풀려지는 과정에선 웃음이 터지고,경찰에게 쫓기는 아이들을 따라가는 카메라엔 속도감이 넘친다.감독은 이탈리아의 신예 가브리엘레 무치노.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儒林(117)-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1999년말 뉴스위크는 20세기가 낳은 유명한 어록을 소개하고 있다.1925년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라고 한 말에서부터 1987년 레이건 미 대통령이 고르바초프에게 “미스터 고르바초프,이 벽(베를린장벽)을 허물어 버립시다.”라고 한 말까지 소개한 이 어록 중에서 백미는 단연 1978년 덩샤오핑이 선언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이다.”는 내용의 ‘흑묘백묘론’이었다.원래 이것은 덩샤오핑의 독창적인 이론은 아니었다.원래 사천지방의 속담인 ‘흑묘황묘(黑猫黃猫)’에서 유래되었는데,이데올로기와 선입관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경제발전의 결과만을 놓고 어떤 정책이나 제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자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경제이론은 마오쩌둥의 ‘잡초론(雜草論)’의 경제이론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던 것이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寧要社會主義的草不要資本主義的苗)”라는 ‘잡초론’으로 문화혁명을 일으켜 중국의 역사를 후퇴시켰으며,“덩샤오핑은 죽어도 회개할 줄 모르는 주자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비난하며 숙청하였던 것이다.결국 덩샤오핑의 ‘고양이론’이 마오쩌둥의 ‘잡초론’을 뒤집어 엎은 이후 중국도처에는 자본주의의 숲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음이니. 나는 천천히 무덤가에서 일어서면서 생각하였다. 결국 조광조의 검은 신과 흰 신도 마찬가지가 아닐 것인가.갖바치의 참언은 ‘검은 신이든 흰 신이든 상관없다.몸에 잘 맞아 편안한 신발이면 좋은 신발인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조광조가 신진사림파이든 대역죄인이든 과격주의자든 실패한 정치가든 그것은 모두 신발의 빛깔에 불과한 것이다.조광조는 안내문에 나와 있던 대로 유교의 정신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하였던 개혁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광조의 유교적 개혁정신은 ‘계심잠(戒心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어느 날 중종은 어전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항상 마음을 경계하고 싶으니 홍문관에서는 이에 합당한 글을 지어 올리도록 하라.” 왕의 어명이 떨어졌으므로 소속관원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짜내어 글을 올렸는데,그 결과 채택된 것은 뜻밖에도 조광조의 글이었다. ‘마음을 경계하는 글’인 ‘계심잠’에는 조광조의 도덕주의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조광조는 이로 인해 중종으로부터 털로 만든 이불까지 하사받는 것이다. 이 계심잠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마음에는 욕심이 있으므로 그 마음의 본체의 영묘한 것이 잠겨져서 사사로운 정에 구속되었음은 능히 유통하지 못하여서 천리가 어두워지고 기운도 또한 막히어서 인륜이 폐해지고 천지만물이 생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하물며 임금은 음란한 소리와 아름다운 맛의 유혹이 날로 앞에 모여들고 또한 권세의 높은 것으로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성상께서 이를 염려하시고 두려워하여 신에게 명하여 마음을 경계하는 글을 지으라 하시니 아아,지극하십니다.신이 감히 뜨거운 정성을 헤쳐 내어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이 될 것을 바라나이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굳세게 자기의 마음을 지켜 신명의 엄숙함을 본 받도록 한다.이렇게 하기를 바꾸지 말고 끊임없이 마음을 닦아라.그리하면 마음의 밝음이 진실로 깨끗하고 그 흐름은 호호(浩浩)할 것이니라.천하 모든 일에 발휘하면 탁연한 밝은 날이라.마음속에 있는 의(義)는 모든 일에 나타나고 인(仁)은 모든 물건에 밝게 비칠 것이다.아아,이 마음을 항상 지니면 선과 악이 분별될 수 있을 것이다.”˝
  • 儒林(117)-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17)-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1999년말 뉴스위크는 20세기가 낳은 유명한 어록을 소개하고 있다.1925년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라고 한 말에서부터 1987년 레이건 미 대통령이 고르바초프에게 “미스터 고르바초프,이 벽(베를린장벽)을 허물어 버립시다.”라고 한 말까지 소개한 이 어록 중에서 백미는 단연 1978년 덩샤오핑이 선언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이다.”는 내용의 ‘흑묘백묘론’이었다.원래 이것은 덩샤오핑의 독창적인 이론은 아니었다.원래 사천지방의 속담인 ‘흑묘황묘(黑猫黃猫)’에서 유래되었는데,이데올로기와 선입관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경제발전의 결과만을 놓고 어떤 정책이나 제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자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경제이론은 마오쩌둥의 ‘잡초론(雜草論)’의 경제이론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던 것이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寧要社會主義的草不要資本主義的苗)”라는 ‘잡초론’으로 문화혁명을 일으켜 중국의 역사를 후퇴시켰으며,“덩샤오핑은 죽어도 회개할 줄 모르는 주자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비난하며 숙청하였던 것이다.결국 덩샤오핑의 ‘고양이론’이 마오쩌둥의 ‘잡초론’을 뒤집어 엎은 이후 중국도처에는 자본주의의 숲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음이니. 나는 천천히 무덤가에서 일어서면서 생각하였다. 결국 조광조의 검은 신과 흰 신도 마찬가지가 아닐 것인가.갖바치의 참언은 ‘검은 신이든 흰 신이든 상관없다.몸에 잘 맞아 편안한 신발이면 좋은 신발인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조광조가 신진사림파이든 대역죄인이든 과격주의자든 실패한 정치가든 그것은 모두 신발의 빛깔에 불과한 것이다.조광조는 안내문에 나와 있던 대로 유교의 정신으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하였던 개혁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광조의 유교적 개혁정신은 ‘계심잠(戒心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어느 날 중종은 어전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항상 마음을 경계하고 싶으니 홍문관에서는 이에 합당한 글을 지어 올리도록 하라.” 왕의 어명이 떨어졌으므로 소속관원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짜내어 글을 올렸는데,그 결과 채택된 것은 뜻밖에도 조광조의 글이었다. ‘마음을 경계하는 글’인 ‘계심잠’에는 조광조의 도덕주의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조광조는 이로 인해 중종으로부터 털로 만든 이불까지 하사받는 것이다. 이 계심잠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마음에는 욕심이 있으므로 그 마음의 본체의 영묘한 것이 잠겨져서 사사로운 정에 구속되었음은 능히 유통하지 못하여서 천리가 어두워지고 기운도 또한 막히어서 인륜이 폐해지고 천지만물이 생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하물며 임금은 음란한 소리와 아름다운 맛의 유혹이 날로 앞에 모여들고 또한 권세의 높은 것으로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성상께서 이를 염려하시고 두려워하여 신에게 명하여 마음을 경계하는 글을 지으라 하시니 아아,지극하십니다.신이 감히 뜨거운 정성을 헤쳐 내어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이 될 것을 바라나이다.” 그러고 나서 조광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굳세게 자기의 마음을 지켜 신명의 엄숙함을 본 받도록 한다.이렇게 하기를 바꾸지 말고 끊임없이 마음을 닦아라.그리하면 마음의 밝음이 진실로 깨끗하고 그 흐름은 호호(浩浩)할 것이니라.천하 모든 일에 발휘하면 탁연한 밝은 날이라.마음속에 있는 의(義)는 모든 일에 나타나고 인(仁)은 모든 물건에 밝게 비칠 것이다.아아,이 마음을 항상 지니면 선과 악이 분별될 수 있을 것이다.”
  • ‘선의 저쪽’ 성황리 일본초연

    지난 12일 밤 도쿄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일본 신국립극장 소극장에서 남미 출신의 극작가 아리엘 돌프만의 신작 ‘디 아더 사이드(The other side·선의 저쪽)’가 극단 미추 손진책 대표의 연출로 세계 초연됐다.이번 공연은 신국립극장이 ‘죽음과 소녀’ ‘과부들’ ‘독자’ 등 저항극 삼부작으로 유명한 아리엘 돌프만에게 희곡을 의뢰하고,처음으로 한국인 연출가를 초빙해 일본 배우들과 작업하는 다국적 공연이어서 기획 단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었다. ‘디 아더 사이드’는 눈에 보이는 현실과 부조리한 가상의 상황을 절묘하게 혼합해 인권과 자유,평화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주장해온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전쟁 중인 국경지대 마을을 통해 획일적인 경계선,즉 모든 이분법적인 사고가 초래하는 폭력성을 비극과 희극의 양면으로 보여준다. 멀리서 들리는 폭탄소리와 집안 여기저기에 쌓인 군용물품이 오랜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는 무대.전쟁 중인 두 나라,토미스와 콘스탄자 출신의 노부부 아톰 로마(시나가와 도루)와 러바나 줄랙(기시다 교코)은 어릴 때 가출한 아들을 기다리며 위험한 국경마을을 떠나지 못한 채 죽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20년을 넘긴 전쟁은 이미 이들에게 일상처럼 익숙한 삶.그럼에도 언젠가 평화가 찾아오고,아들 역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휴전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두 사람을 갈라놓는 경계선이 된다.벽을 뚫고 난데없이 나타난 국경 경비대원이 부부의 집 한가운데에 노란선으로 국경을 긋고,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면서 벌어지는 희극적인 상황들은 현실에 대한 지독한 풍자이다.군인이 아들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아내,이를 부인하는 남편,그리고 아들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행동하는 군인.세 사람의 기묘한 관계는 비단 전쟁으로 인한 국경선뿐만 아니라 인종,성별,종교,이데올로기 등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경계선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손진책 연출가는 이를 두고 “‘갈등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고 분석했다. 음악이나 조명,세트 등 장식적인 요소를 최소화하고 모든 에너지를 오로지 배우의 연기와 대사에 집중해 자칫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극의 중심을 잘 잡아낸 연출이 돋보였다.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지면서 무대 뒤편 무덤 이미지를 형상화한 차가운 철제 조형물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이날 첫 공연은 아리엘 돌프만 부부를 비롯해 한국과 일본의 평론가들,그리고 일반 관객들이 300석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아리엘 돌프만은 “부조리하면서도 현실적인 내 작품의 특징을 아주 잘 드러냈다.”며 만족해했다.현지 연극평론가 이시자와 슈지는 “한국인 연출가라는 점 때문에 경계선의 의미가 분단국가의 특수성에 쏠리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어느 나라,어느 민족에게나 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잘 표현해 놀라웠다.”고 평했다.차범석 전 예술원회장은 “떠들썩하고 요란한 얘기만 횡행하는 요즘 연극계에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작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 아더 사이드’는 28일까지 신국립극장에서 공연되고,오는 9월 영국의 명연출가 피터 홀에 의해 런던에서 재공연된다.내년에는 한국 배우를 캐스팅해 국내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도쿄 이순녀특파원 coral@seoul.co.kr˝
  • ‘양심적 병역거부 모임’ 활동하는 양지운씨

    재료가 좋다고 음식이 맛있는 것은 아니다.적절한 양념과 정성스러운 손맛이 어우러져야 훌륭한 요리가 된다.마찬가지로 목소리만으로 성우가 되는 것은 아니다.피나는 연기 연습과 목소리를가다듬는 노력이 뒤따라야 좋은 성우가 된다. 양지운(52).TV수상기와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목소리의 주인공.마이크 인생 35년 동안 끊임없이 노력하며 어떤 악기보다 맑고 다양한 음색으로 천의 목소리를 내는 얼굴없는 연기자.우리나라 최고의 성우가 누구냐고 물으면 언제나 손꼽히는 사람이다. ●“경상도사투리 교정 영어보다 힘들어” 그가 성우가 된다는 것은 애초에 꿈꾸지 못할 일이었다.경상도 ‘촌놈’으로 태어난 ‘죄 아닌 죄’때문.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2때부터 큰 형이 사는 경기도 의정부로 올라와 줄곧 생활했지만,어릴적부터 몸에 밴 지독한 사투리 만큼은 떨어내기 힘들었다.우연히 고교시절 방송반 생활을 하면서 성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변성기를 지나면서 목소리가 또래들과 다른 ‘걸걸한’음색으로 바뀌더라구요.주위에서는 물론 나 스스로도 성우나 아나운서에 적합한 목소리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현실의 벽은 그의 꿈을 가로막았다.“매일 아침 저녁으로 신문배달과 과외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어렵게 학교를 다녔어요.당시는 중동붐이 일 때였죠.적성과는 상관없이 돈을 잘 번다는 토목 기술자가 되기로 했습니다.”고교 졸업후 한양대 토목공학과에 진학했다.하지만 수업은 거의 듣지 않았다.“학과 공부엔 도통 관심이 없었어요.결국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성우 시험을 준비했죠.”다시 꿈은 찾았지만,역시 ‘사투리’가 걸림돌이었다.성우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표준어 발음이 필수였기 때문.“잠 자는 시간만 빼놓고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 등에 가 하루종일 그들이 말하는 ‘표준말’을 유심히 듣고 따라했죠.영어회화 배우려고 외국인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처럼요.”그런 노력에 힘입어 그는 1969년 TBC 성우 공채(5기)시험에 합격,비로소 어릴적 꿈을 이뤄냈다. ●사람 냄새 나는 ‘600만불의 사나이’ 그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불후의 히트작 ‘600만불의 사나이’와 ‘스타스키와 허치’의 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최고 배우 중 한사람이었던 해리슨 포드와 멜 깁슨의 목소리 연기는 지금까지도 그만의 전매특허다.그의 연기 철학은 뭘까.“더빙 특유의 냄새가 아닌 사람 냄새가 나도록 연기해야 합니다.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말만 갖다 붙이는 것은 ‘죽은 말’이에요.대중이 전혀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없거든요.” 성우는 철저히 ‘아날로그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지금은 모든 작업이 컴퓨터화되고 디지털화되는 바람에 목소리 연기가 전해 주는 ‘신비감’을 더이상 찾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예전엔 더빙하기 전에 모든 성우들이 한데 모여 미리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차례 반복해서 보고 배우들의 눈빛과 동작 하나하나까지 외우며 연습했어요.성우 한명씩 따로따로 녹음해 짜깁기를 하는 지금은 오히려 전체적으로 ‘불협화음’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대중들이 성우의 목소리보다 ‘자막처리’에 더 감동을 받고,점점 성우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자업자득의 결과라고 꼬집는다. 힘든 고비도 있었다.“86년 MBC 라디오 ‘홈런출발’진행을 할 때였죠.당시 태릉 선수촌에서 여대생 자원봉사자가 성폭행을 당한 사건을 조명하는 방송을 했는데,청와대와 보안사에서 찾아와 제작진을 모두 연행해 갔어요.마침 그날이 전두환 대통령이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기념해 청와대에서 만찬을 하는 날이었더라구요.” 주위의 시선 때문에 그는 다행히 풀려났지만,나머지는 모두 해고됐단다. 그는 처음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성우 양지운이 아닌 사회활동가 양지운”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알려졌다시피 그는 물론 아내 윤숙경(49)씨와 3남2녀의 자녀 등 가족 전체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아버지 그는 얼마 전까지 큰 아들 원준(25)씨가 종교적 신념으로 집총을 거부해 3년간 옥살이를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2001년 말부터는 ‘여호와의 증인 양심적 병역 거부자 수형자 부모’ 대표격으로 활동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국가인권위가 출범하자마자 인권침해 사례로 진정서를 제출하고,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냈다.“군대가는 것과 감옥에 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편할까요?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신이 나가서 그러는 것도,종교적 도그마에 빠져서 그러는 것도 아니죠.‘무장해제’라는 진정한 평화를 이뤄내기 위함이에요.”살인이나 강도와 같은 파렴치한 행위도 아닌데 감옥에 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단다.“하루속히 대체복무법이 마련돼야 합니다.총을 잡지 않더라도 사회에 대한 봉사로써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어요.종교적·양심적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한해에 900명씩을 전과자로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 때문에 이달로 예정됐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미뤄져 안타깝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머지 두 아들 원욱(15)과 원석(12)에게는 선택권을 줬단다.“감옥에 있는 형의 모습을 보고나서도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도 형을 따라 저자리에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그저 아들의 신념을 존중할 뿐이죠.” 그는 가정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지금도 매일 방송을 마친뒤 7시전까지 귀가, 온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다.“매주 월요일 8시반에는 ‘가족회의’를 하죠.각자 밖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반성하고 또 자랑도 하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그는 특히 아내에 대해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지금의 아내와는 82년 KBS 동료로 만났다.당시 영화 ‘햄릿’에서 그는 ‘햄릿’역을 아내는 ‘오필리어’역을 맡아 호흡을 맞추면서 사랑이 싹 튼 것.“아내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미안함도 갖고 있어요.저보다 성우로서 자질이 더 뛰어났죠.하지만 저의 꿈을 위해 정작 자신의 꿈은 포기하더라구요.저 하나만 바라보고 희생을 감수했지요.” “이제 성우로서는 더이상 욕심은 없습니다.그저 우리 가족 전체가 건강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목표지요.” 그는 50대라 여기기엔 젊음의 체취가 넘쳤다.그것은 종교적 신념과 가족 사랑 덕분인 것 같았다. ■ 이력 ▲1952년 경남 통영 출생 ▲69년 한양대 토목공학과 입학·중퇴 ▲69년 TBC 성우 공채 5기 ▲85년 제12회 한국방송대상 라디오 연기상 수상 ▲96년 제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성우부문 수상 ▲2001년부터 ‘양심적 병역 거부자’ 대표격으로 활동중 ■ 주요작품 ▲600만불의 사나이▲스타스키와 허치▲두얼굴의 사나이▲탐정 스펜서▲아차부인 재치부인▲MBC 사극 ‘조선왕조 500년’▲SBS드라마 ‘외계인 왕국’외 다수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무대·객석 벽 무너뜨린 ‘댄싱 퀸’

    ‘아바(ABBA)여,다시 한번’.아바 음악과 함께 청춘을 보낸 중장년 세대건,전설속의 팝그룹으로만 기억하는 아바 이후 세대건 상관 없었다.30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아바 음악의 마력에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물론,세대간 벽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난 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올린 뮤지컬 ‘맘마미아’(사진)는 지난해 5월 한국 공연 제작발표회 이후 8개월을 손꼽아 기다려온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일주일간의 프리뷰 공연에서 다져진 완성도있는 무대는 영국 런던 오리지널 공연에 견줘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99년 영국 초연 이후 미국,독일,일본 등 이미 여러 나라에서 흥행성을 검증받았다는 점에서 ‘맘마미아’한국 공연의 성공적인 안착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터다.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혼성그룹 아바의 음악이 지닌 대중성,기발한 아이디어와 더불어 인생의 깊이를 담은 줄거리,기능성과 세련미를 동시에 포용한 무대세트는 ‘맘마미아’를 세계적인 대작으로 꼽는데 부족함이 없게 했다. 때문에 이번 한국 공연의 성공 여부는 우리 배우들의 역량과 우리 관객들이 얼마나 잘 호응해줄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결론적으로 첫 공연은 무대든 객석이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줬다.3주간의 ‘지옥’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주연 배우들의 기량은 예상보다 뛰어났다. 특히 세 여주인공 박해미(도나),전수경(타냐),이경미(로지)의 열연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수차례의 정밀한 번역 과정을 거친 한국어 가사도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매끄러웠다. 관객들의 공도 컸다.여타 뮤지컬과 달리 ‘맘마미아’는 관객이 함께 움직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참여형 공연의 성격이 강하다.1막까지 다소 뻣뻣했던 관객들은 2막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박수 장단을 맞추고,어깨를 들썩이며 공연에 몰입했다.모든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댄싱 퀸’‘워털루’를 합창하는 커튼콜 무대는 본공연을 압도하는 대미로 꼽을 만하다. 그렇다고 ‘맘마미아’가 단지 신나게 즐기기 위한 공연만은 아니다.친근한 노래와 화려한 춤 이면에녹아 있는 감동적인 메시지가 없다면 아마도 이렇게 호응을 얻진 못했을 것이다. 모녀간의 애증,중년 여성들의 우정,그리고 청춘의 자아찾기라는 주제야말로 아바 음악에 버금가는 만국 공통어이기 때문이다.4월18일까지.1588-7890. 이순녀기자 coral@
  • “페미니즘이 행복 선물”‘여자와 남자’ 펴낸 여성학자 박혜란씨

    ‘행복한 페미니스트’이자 아들 세 명을 유명 대학에 입학시킨 어머니로 알려진 여성학자 박혜란(59)씨.그가 39살에 시작한 여성학 연구 20년간의 성과를 재미있게 엮은 책 ‘여자와 남자’를 펴냈다. “세상은 변했다.열정이 넘치는 젊은 층에서는 ‘그동안 도대체 변한 게 뭐냐.남자들 자리는 끄덕없고 여자들 살기는 여전히 팍팍하지 않느냐.맞고 사는 여자들도 줄지 않고 일자리 갖기는 항상 어렵고,게다가 아이 키우기는 더 힘들지 않으냐.’고 불만이지만 내 눈에는 이쯤 바뀐 것만으로도 대견하다.더구나 이 속도라면 앞으로 20년 후는 꽤 괜찮은 세상이 되어 있을 법하지 않으냐?”도전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의 이런 낙관론이 싫을 수도 있겠다.하지만 그는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따끔하게 말하기도 한다.“기성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좁은 현실’의 벽을 뛰어 넘어 새로운 현실에 맞춰 신나게 살기를.‘현실이 그렇잖아요’란 말 따위는 아예 잊어버리기를….”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1996년)’,‘나이듦에 대하여(2001년)’에 이어 세번째 책을 낸이 여성학자의 말에 귀기울여야 할 이유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벗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만나는 사람들은 그를 “페미니스트 같지 않다.”고 말한단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여자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학교를 다니고,직장생활을 하고,전업 주부 생활을 하면서 늘 ‘여자들은 할 수 없어.’라고 되뇌었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한 지난 20년 동안 나는 너무나 괜찮은 여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똑똑하고 심지 깊고 도량 넓은,정말 괜찮은 여자들이 곳곳에서 소리없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거든요.” 그는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에 37년 만에 미국에서 열린 고등학교 동창회도 참석했다고도 말한다.전업 주부였을 때는 자신도 고만고만한 여자들이 모여 도무지 자랑할 게 없는 현실이 지레 질리고,기가 죽어서 자신과 다른 여자들 만나기를 꺼렸다는 것이다.그리고 자신의 동창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에 ‘페미니스트라니까 재수없다.’고 생각했다는 한 친구가 여행이끝날 때쯤 ‘역시 여자는 자신의 일을 가져야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자신의 딸에게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를 제게 물었어요.외계인처럼 서먹했던 우리는 결국 같은 행성의 주민들이었음을 확인하게 됐지요.”그의 말은 부드럽지만 이렇게 강력한 메시지는 담겨 있다.전업 주부와 직장 여성,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넓은 간극을 그는 이렇게 재미있고 따뜻하게 좁혀준다. 페미니즘이 행복을 가르친다는 사실,박혜란씨가 여성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허남주기자
  • 이란 대지진 이모저모/인구20만 도시 완전 폐허로

    26일 진도 6.3의 강진이 엄습한 이란 남동부 밤은 도시 전체가 대규모 폭격을 당한 듯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거리 곳곳에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 있고,지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혹시라도 살아 있는 가족들을 찾아볼까 폐허더미 속을 뒤지며 애타게 울부짖고 있다. 이날 지진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깊이 잠든 새벽 5시에 발생,피해가 더 컸다.특히 진앙지 인근에 위치했던 고대 도시 밤은 대부분의 건물이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았다.이란은 지진이 매우 자주 발생함에도 불구,지진에 대비해 설계된 건물이 거의 없어 1990년에는 3만 5000명의 사망자를 내기도 했을 만큼 지진 발생 때마다 많은 피해를 내고 있다. 피해지역으로 이르는 전화가 불통돼 정부 당국은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현재 위성전화와 무전기를 통해 현장과 교신하고 있다.이곳의 수도와 전기 공급 또한 중단돼 적신월사는 대규모의 구조 손길을 요구하고 있다.적신월사는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국적 규모의 헌혈을 촉구하고 나서 피해 규모가 만만치 않음을 내비쳤다. 현장에서는 구조견을 동원,생존자 수색작업에 돌입했다.그러나 구조장비 등이 턱없이 부족해 구조작업은 매우 느린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란 내무부는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특히 추운 날씨 속에 건물들이 완전히 파괴돼 이재민들이 거처할 곳이 없다는 게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이란 당국은 급한 대로 텐트를 쳐 이재민들을 수용한다는 방침이지만 전기·수도마저 끊긴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확실치 않다. 경찰은 피해지역으로 이르는 모든 도로를 차단,구조팀의 신속한 이동을 돕고 있다.테헤란,에스파한,케르만 등에서 헬리콥터를 이용한 많은 구조요원이 이 지역으로 급파됐다.군당국도 구조에 나섰다.그러나 지진 소식에 인근 거주민들이 친척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밤으로 나서는 바람에 곳곳에서 정체가 일어나고 있다.케르만주 주지사 모하메드 알리 카리미는 집에서 전화가 복구되기를 기다려달라고 촉구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수천명의 사람들은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이번 지진에서 밤에 위치한 병원두 개가 무너졌으며 남은 병원조차 만원을 이뤄 인근 도시로 후송되고 있다. 카리미 주지사는 엄청난 사망자 수 외에도 고대 도시인 밤의 유적이 대부분 없어졌다는 점에서 ‘대재앙’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제사회는 이란 정부에 애도의 뜻을 전하며 인도적 지원 약속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모하메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에게 위로 메시지를 보내 “깊은 애도”를 표시하며 “가능한 모든 인도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독일 외무부와 독일 적십자사도 이란에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독일은 현재 SEEBA라는 해외긴급대응구조팀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도 우선 25만유로를 이란 정부에 긴급 지원하는 한편 잔해 속에 깔린 인명구조를 위해 25명의 구조요원을 이란에 파견키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장 먼저 위로전화를 했다.푸틴 대통령은 모하메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조의를 표했다.이미 구조요원과 장비를 실은 항공기 2대가 이날 오후 이란으로 떠났다.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재난부 장관은 이 항공기에는 수색견을 포함한 4개 구조팀이 탑승했다고 말했다. 전경하기자·외신 lark3@ ■‘밤'은 어떤 도시? 26일 강진으로 완전히 폐허로 변한 밤은 세계 최대 규모의 진흙벽돌 성채로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이란 문화유산의 신비로 꼽혀온 곳. 이슬람교가 도입되기 전인 2000년 전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밤의 벽돌 성채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아 이란의 보물로 불렸다. 벽돌 성채 외에도 이란 전성기이던 16∼17세기에 건설된 38개의 망루도 유명하며,불을 숭상하는 배화교의 사원들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끌어들였다.극동지역과 유럽을 잇는 옛 실크로드의 상업·무역 중심지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바레즈와 카부디 산맥 중간의 평원지대에 자리잡은 데다 오아시스까지 있어 ‘사막의 에메랄드’로 불릴 정도로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기도 했다. 세계 주요 지진 약사 ●2003년 5월21일 알제리 리히터 규모 5.8 강진.2200여명 사망. ●2003년 5월1일 터키 남동부 6.4 강진.167명 사망. ●2003년 2월24일 중국 서부 신장 6.8 강진.최소 266명 사망. ●2002년 6월22일 이란 북서부 6.0 강진.최소 500명 사망. ●2002년 3월25일 아프가니스탄 북부 5.8 강진.1000명 사망. ●2001년 1월26일 인도 7.9 강진.최고 3만명 사망 추정. ●2001년 1월13일 엘살바도르 7.6 강진.700여명 사망.
  • 두개로 찢긴 ‘8·15’/보·혁 수만명씩 도심 동시 대규모 집회

    15일 광복절을 맞아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진보단체 따로,보수단체 따로 수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우려했던 충돌 사태는 빚어지지 않았다.그러나 집회와 행진이 이어지면서 집회장소 주변과 우회도로에서는 극심한 교통혼잡이 빚어졌다. ●진보세력,“한반도 긴장 완화해야” 한총련과 통일연대,여중생범대위 등은 이날 오후 5시 종각네거리에서 1만3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반전평화 8·15 통일대행진’ 행사를 가졌다.통일연대 나창순 상임대표는 개회사에서 “미국은 이라크에 이어 전쟁의 총부리를 한반도로 돌리고 있다.”면서 “전쟁을 막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6·15 공동선언의 뜻대로 민족이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오후 8시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여중생 추모행사에 참석,촛불시위를 벌인 뒤 경희대에 모여 밤 늦게까지 문화행사를 가졌다.한총련은 외세에 대항하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10m 높이의 ‘로보트 태권브이’ 조형물을 들고 나왔고,미 스트라이커 부대의 장갑차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부수는퍼포먼스를 벌였다. 앞서 낮 12시 한총련 소속 대학생 5000여명은 ‘6·15 공동선언 이행’,‘북·미 불가침협정 체결’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마로니에 공원에서 종로 2가 YMCA앞까지 2개 차로를 통해 행진했다.경찰은 부시 미 대통령 모형에 풍선을 던져 터뜨리던 통일연대 회원들로부터 모형을 뺏는 등 성조기·미사일 모형 등 시위용품 100여점의 집회장 반입을 막았으며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 빚어졌다. ●보수단체,“반미·친북 반대” 자유시민연대·자유총연맹·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단체 소속 1만 5000여명이 이날 오후 4시 시청 앞 광장에서 ‘건국 55주년 반핵·반김(김정일) 8·15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실패한 햇볕정책을 답습하지 말고 힘있는 대북정책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이철승 공동대회장은 대회사에서 “반미·친북·부패세력을 다시 몰아내고 선대가 물려준 당당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총궐기하자.”고 밝혔다.북한에서 1년6개월 동안 구호활동을 벌였던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플러첸은 “북한 사람들이 굶는 것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식량을 독재를 위한 무기로 써먹기 때문”이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행사에서 가로 10m,세로 7m 크기의 대형 인공기와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을 형상화한 목판을 태우기도 했다.행사 직후 ‘한총련 비호하는 노무현 정권 타도’ 등 구호를 외치며 서울역까지 행진을 벌인 뒤 정리집회를 갖고 해산했다. 이날 경찰은 두 집회 참가자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차량 360대를 동원,세종로와 시청,용산미군기지 주변에 차량벽을 설치해 집단 이동을 막았다.또 114개 중대 1만 1400여명을 집회 장소와 미 대사관 주변에 배치했다. 이세영 박지연기자 sylee@
  • ‘효순·미선이’ 다시는 없기를 수만명 평화행렬 / ‘여중생1주기’ 전국서 추모의 물결

    13일 효순·미선양을 추모하는 촛불 행렬은 한반도의 평화와 반전을 염원하는 물결이 되어 흘렀다.시청앞과 광화문 등 서울 도심에서는 2만 5000여명이 1주기의 의미를 되살렸다. 대다수 집회 참가자들이 미 대사관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기습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밀고 당기며 몸싸움을 했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이들은 밤 11시쯤 정리집회를 마친 뒤 자진 해산했다. ●경찰,시위대 밤늦도록 숨바꼭질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추모대회를 마친 집회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8시50분쯤 촛불을 들고 일제히 미 대사관 쪽으로 행진을 시도했다.그러나 경찰이 시청옆 태평로를 차단,전경버스와 살수차,병력으로 이중·삼중의 차단벽을 설치하고 이를 막았다. 비슷한 시각 경찰의 경계망을 뚫고 국가인권위원회와 시청 사이 샛길을 통해 광화문네거리로 이동한 한총련 소속 대학생 2000여명은 광화문 우체국과 교보빌딩 사이 차도를 점거한 채 경찰과 대치했다.한때 대학생들이 거세게 밀어붙이자 경찰은 10여 차례 소화기 분말을 뿌리는 등 공방전을 펼쳤다.이 과정에서 일부 대학생과 김낙희(53·여)씨 등이 경찰 방패와 소화기에 부딪혀 머리와 팔 등에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대학생들은 또 소형 종이 성조기 2000여장을 일제히 촛불로 태웠다. 이어 대학생과 민노총 소속 근로자 등 집회 참가자 1만 5000여명이 이곳에서 종로2가까지 차도에 늘어서 구호를 외치거나 문화행사를 가졌다.한총련 소속 대학생 5000여명은 무교동을 통해 안국사거리 쪽으로 행진하며 산발적으로 미 대사관 진입을 시도했다.대학생 300여명은 종로경찰서 부근에서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서울 도심에 모두 98개 중대 1만여명,버스 300여대를 배치해 미 대사관 진출을 원천 봉쇄했다.이날 광주 YMCA 앞길에서도 시민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1주기 추모 문화제’와 촛불행진이 열렸다.경북 포항·구미에서는 종이학 접기와 살풀이춤 등의 행사가 진행되는 등 추모의 열기가 전국을 달궜다. ●“효순·미선의 죽음을 잊지 말자” 촛불행진에 앞서 추모대회가 열린 시청앞 광장 무대 앞에는 가로 20m,세로 50m의 대형 한반도기가 깔렸다.두 여중생을 본뜬 5m 높이의 스티로폼 조각상이 세워진 가운데 자발적으로 참여한 문화인들의 거리예술이 추모 분위기를 고조시켰다.두 여중생을 위한 임시분향소도 설치됐다. 광장 중앙에 모인 참가자 1000여명은 모형 비둘기로 한반도 모양을 만들어 추모 분위기를 고조시켰다.일본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 반환운동을 벌이는 ‘오키나와-한국 민중연대’ 소속 활동가 3명도 ‘非戰(비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참석했다.효순·미선양의 아버지 신현수(49)·심수보(49)씨는 “이렇게 잊지 않고 많은 시민들이 모여줘서 너무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군,해외인사도 애도 참여 주한 미2사단은 이날 오후 사단장 존우드 소장과 지역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사 낭독,찬송,지휘관 조사,고인 및 유가족을 위한 기도순으로 1시간 동안 추모예배를 열었다.리언 J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 한글 사이트(usfk.or.kr)’에 실린 추모사를 통해 “오늘은 두 여중생의 희생에 슬픔과 깊은 애도를 드리고 우리의마음을 모아 한국 사회·친구·이웃에게 다가가는 날”이라면서 “하느님께서 여중생 유가족의 슬픔을 달래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평화위원회는 연대 메시지를 통해 여중생 범대위측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독일·미국·일본·프랑스 등지의 교포들도 현지 시각으로 오후 7시에 맞춰 소규모 모임을 가졌다. 유영규 박지연 이두걸기자 whoami@
  • [LOOK 아시아]4부 21세기 변해야 한다 - 동북아 경제질서 재조명 좌담

    21세기 세계경제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미국·유럽연합(EU)과 함께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이 3대 경제중심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속의 동북아’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한국·중국·일본의 역할은 무엇이고,3각 협력체제가 가능할 것인가,한국의 전략적 목표는 무엇인가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전문가 좌담을 통해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과제 등을 재조명해 본다. ●동북아 시대의 개막 전홍택 부원장 새 정부는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를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채택했다.그 핵심은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허브(Hub)가 되는 것이다.중국은 급속한 발전을 통해 세계 경제의 중심 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동북아의 번영과 정치적 안정,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북아 지역의 네트워크가 보다 확대돼야 한다.이는 단순히 시장개방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갖고 있는 지정학적 장점 등을 활용해서 네트워크의 연결고리 위치를 선점하자는 것이 논의의 요체다. 이석영 부회장 우리가 갖고 있는 조건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인력과 기업의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즉 어떻게 하면 유능한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느냐가 당면한 과제다.패러다임(Paradigm)을 바꿔야 한다.개인소득 1만달러를 돌파하려면 지금까지 알고 행하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김칠두 차관 우리는 개인소득 1만달러에 8년째 머물고 있는데,이제 경제의 성장동력을 찾을 때가 됐다.동북아 시장의 잠재력은 크다.중국의 경제적 가치는 1960년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0%나 되고 있다.우리는 주변국들과 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 ●중국의 허와 실 전 부원장 중국은 시장경제 체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도성장을 하고 있으나 그 나름의 그늘이 있다.오늘날에 와서 거대한 국영기업을 구조조정하려니까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국영기업의 부실채권 등은 금융권의 부담으로 넘어갔다.이 점은 지금 중국 경제의 뇌관과도 같다.정치적으로 중국은 사회주의에서도 드물게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룬 나라이다.하지만 최근 ‘서부대개발’ 사업을 보면 경제논리 보다 여전히 정치논리가 앞서고 있다. 이 부회장 중국은 우리가 1970년대에 겪었던 용광로와도 같은 성장시대를 맞고 있다.고도성장이 끝나면서 우리에게 드러난 문제점이 중국에서도 가시화될 것이다.하지만 빈부격차,인종격차 등 중국 스스로 감내할 문제도 있으나 이는 차후의 문제다.우리가 중국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경쟁 상대국으로 대하면 된다. 김 차관 다소 견해를 달리한다.중국의 지역간,계층간 갈등 문제에 대해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있으나 출장 등을 가보면 최고 지도자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더라.성장 주도의 정책을 펴면서 그것의 역작용이 부각되지 않도록 조직력이나 행정력을 동원,조정할 것이다.규모가 크고 다양한 국가인 만큼 정치와 경제를 합리적으로 분리한 시스템을 갖췄고,권력교체도 어느 민주주의 국가 못지않게 평화적으로 쉽게 이뤄냈다. 전 부원장 중국의 ‘놀라운 리더십’ 외에도 미시적인 제도중에는 우리가 배울 점들이 도처에 있다.베이징대학 등의 고급두뇌 교수들을 보면 교수마다 연봉의 격차가 매우 크다.우리 현실로는 어려운 얘기다.경제특구의 고용계약을 봐도 근로자 각자와 맺은 개별적인 계약이 이미 보편화돼 있다.우리가 중국과 아직은 기술격차가 있다고 해서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한·중·일 경제협력 모색 이 부회장 한·중·일간의 경제협력이 발전해야만 하는 이유는 3개국이 서로 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데 있다.우리가 역동적으로 발전하려면 이웃 일본도 변화·발전해야만 한다.서로가 윈·윈(Win·Win)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이렇게 되려면 서로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아시다시피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도 상당한 불신이 깔려있다.그래서 부드러운 문화적 협력이 우선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독일과 프랑스도 널리 알려진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으나 지금은 유럽연합의 핵심 축으로 잘 협력하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관계를 맺기에 앞서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서로의 관계가 종속적으로변질되지 않을까.”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일본과 경제협력을 한다면 당장의 문제로 대일 무역적자 해소의 어려움,국내 산업의 예속화,농산물의 비관세 문제 등이 고민될 것이다.하지만 장기적으로 우리가 3개국의 리더가 되려면 과감하게 내놓을 것은 내놓아야 한다. 김 차관 지금 3개국은 모두 세계화를 주장하고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외치고 있다.이것이 근본적인 흐름인 것만은 분명하다.지정학적 구조만 보더라도 언젠가 3개국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가능한 부분부터 지금 시작을 해야 한다.이것이 현 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다.3개국이 막바로 테이블에 앉아서 논의하기는 쉽지 않을 테지만 일본과는 FTA 등을 우선 푸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FTA 문제는 그동안 민간과 학계 중심의 논의에 그쳤으나 이제 정부도 참여하는 방향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양국의 기업은 서로 이익이 남는 쪽을 찾으려 할 것이다.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어떤 베이스(Base)를 찾으면 국가간의 관세장벽 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우리는 일본에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고 있으나,부품·소재 산업의 경우 일본측이 먼저 우리의 기술력에 대해 확신을 갖고 생산거점을 아예 한국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우리와 중국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우리의 생산기지가 기업환경이 나은 중국으로 이전하는 상황이다.한·중 관계는 한·일 관계보다 풀기 쉬운 편이다.결국 우리가 중심이 되기 위해선 먼저 얘기를 꺼내고 중간자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국의 경쟁력 강화 전 부원장 우리나라가 동북아 네트워크의 연결고리가 되기 위한 전략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한국이 동북아 경제물류의 중심이 돼야 한다.세계적인 물류 기업을 적극 유치해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둘째 우리는 싱가포르와 달리 물류산업의 구성만으론 발전의 한계가 있다.전통 주력산업의 클러스터(Cluster)를 육성하는 데 소홀해선 안 된다.셋째 경쟁력이 강해지고 있는 서비스업의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기 위해선 이와 관련된 전문 비즈니스 인력을 개발해야 한다.해외의 고급두뇌 유치가 핵심이 될 수 있다.연구개발(R&D)센터,산업제휴단지 등도 조성해야 한다. 이 부회장 이제 ‘제조업 베이스’만으론 어렵다.제조업에다 서비스가 바탕이 되는 구조가 돼야 한다.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내·외국인들이 함께 우리 경제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관치 경제가 민간자율 경제로 옮겨가고 있다.싱가포르는 2018년까지 내다본 장기발전전략을 만들고 있다.우리도 내 임기동안에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선택과 집중을 통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 차관 중국은 경제성장의 방향을 자국에서 조립생산해 다양한 완제품을 만드는 쪽으로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일본은 앞선 기술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의 고부가가치를 추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여기서 우리의 갈 길에 대해 “잘못하면 양국의 중간에 끼어서 제대로 방향도 잡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할 수도 있으나 이는 기우다.우리의 부품·소재산업 등은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산자부는 그가능성을 살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물류 중심의 거점 확보는 남북한과 동·서로 이어지는 1일 생활권이 보장되면 가능하다.인천국제공항이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동북아 경제권의 과제 이 부회장 우리가 동북아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것을 중국이나 일본은 분명히 경계하고 있다.따라서 쓸데없이 말 잔치만 요란한 것은 그들의 불필요한 경계심만 부른 뿐이다.우리가 자연스럽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양보할 것을 양보한다면 그들이 먼저 한국이 중심이 되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정부가 너무 외형적인 부분에 치우쳐 중심을 잃어선 안 된다.물류 규제를 하나 더 풀고,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면 실속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요란만 떨지 말고 반성하자는 말이다. 전 부원장 물류 중심으로 가든,아이덴티티(Identity) 중심으로 하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네트워크의 연결고리가 되자는 것이 결론적인 메시지다.과거 민간차원에서 이뤄지던 경제협력이 FTA라는 공식 채널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논의의 핵심은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여기엔국제정치적 고려와 미·일의 역학적 관계 등에 대한 분석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김 차관 이제는 우리가 함께 이익을 나누지 않으면 더 이상 파이를 키울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주변국에 우리 것을 나누어 주고 배울 것은 배우고,이용할 것은 이용하자는 자세가 필요하다.M&A(기업 매수합병)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고,낫다고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우리가 중심국으로 서는 데 스스로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경제를 아는 사람은 말보다 내용을 하나하나씩 개선하는데 더 큰 무게중심을 둔다.다만 동북아의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데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신중한 고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담 진행·정리 주병철 김경운 기자 kkwoon@
  • [나의 건강보감] 소설가 김주영씨

    조선 봉건왕조가 해체되는 19세기의 격동상을 그린 대하역사소설 ‘객주’는 ‘길’에 생애를 바친 보부상과 그 보부상 집단을 움직였던 객주를 통해 한 시대의 역사를 복원해 낸 우리 문학의 백미다.작품은 길에서 시작해 길에서 끝난다. 이 소설을 낳은 작가 김주영(64)씨도 마찬가지로 ‘길 위에 있는 사람’이다.그는 지금도 마음이 동하면 주저없이 훌쩍 길에 든다.여행벽이다.그는 “내가 세상에 잠기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여행은 또다른 세계와 만나는 소통의 통로다.해서 그 길이 막히면 낙담하고 절망한다.개성을 무대로 한 대하소설 ‘화척’을 집필하다 북한 여행길이 열리지 않자 “상상력만으로 이 글을 쓴다는 것은 독자에 대한 사기”라며 절필선언까지 했던 그다. ●여행묘미 몰랐다면 하찮은 사람 됐을것 “잡다한 세상의 욕심에 짓눌려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훌훌 털고 막막한 오지로 떠나 보라.문명의 역한 냄새가 풍기지 않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고행에 맞서 부대끼다 보면 여정의 어딘가에서 문득 별빛처럼 반짝이는 영감을 얻을 것이다.” 그는 여행의 체험을 값진 자산으로 여긴다.“내가 만약 여행의 묘미를 몰랐다면 뱀과 도룡뇽,청개구리나 잡아먹으며 마음의 탐욕을 키우는,정말 하찮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이렇듯 여행은 그의 삶에 있어 샘이요,자침(磁針)이었다. 이 시대의 걸출한 이야기꾼.그에게는 확실히 보통 사람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그것이 그의 문학을 통해 드러난 토속의 정서이든,생로병사를 문학 아래 두는 강고한 직업의식이든 상관없다.그는 그 ‘다름’으로 한 시대를 관류하는 도도한 물길을 냈다. 한 문학평론가는 그를 두고 이런 평을 남겼다.“그는 고고하게 세속적이며,단아하게 질펀하고,휘영청 올곧은 사람이다.거창한 담론을 말하지 않지만 문학을 통해 시대의 담론을 줄기차게 생산해 왔으며,한번도 그 논의의 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그가 대가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이런 평가에 걸맞게 그의 담론은 경직되지 않아 지루하지 않았으며,유연하되 격조 있었다.그의 사실적인 건강론을 듣자. “세상을 움직이는 섭리 가운데 ‘죽음이 모든 이에게 평등하다.’는 이치는 정말 아름답다.무엇이 이보다 더 평등할 수 있겠으며,이걸 생각하면 누가 죽고 병드는 일에 헛되이 마음을 빼앗기겠는가.” ●건강해야 한다는 강박증은 버려라 그는 누구나가 죽는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건강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훌훌 털어버리라고 권한다.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것이다.“물론 건강한 삶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걸 위해 온갖 혐오스러운 정력제에 탐닉하고 이런저런 약물에 자신의 혼을 온통 내맡긴다면 그게 제대로 된 삶이겠는가.” 죽음까지도 거부하려는 현대인의 역리적 행태에 대한 통렬한 조롱이자 경종이다. 그는 담소 도중 짬짬이 담배를 태웠다.갓 20대 초반,군대에서 배워 지금까지 피웠으니 이를테면 그의 문학과 자취를 함께한 담배다.하루 1갑반 정도를 태우는데,작품이라도 쓸 때면 줄담배라 그나마 정해진 양이 없다.최근의 흐름이 ‘금연’이라고 운을 떼자 “‘건강 때문에 담배를 끊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피우는 사람에게는 해악이 있겠지만 나는 아직 담배 때문에그런 스트레스를 받아보지 않았고,끊기 위해 바둥거리지도 않는다.”고 했다.술도 일단 시작하면 대취하도록 마신다. 그러고도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해장술이나 연일 이어 마시기를 철저히 금하는 자기절제 때문이다.매일 커피도 너댓잔씩 마시지만 그에게 “이것 때문에 내 건강이…”하는 식의 염려는 없다. 그는 타고난 강골이다.“체중이 80∼81㎏인데 여기서 벗어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정도이다.스스로도 내가 지금 이렇게 건강을 지키는 것은 ‘가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벽촌의 곤궁한 부모 슬하에서 감자,고구마로 끼니를 삼고,산나물과 젓갈 등 발효염장류로 뼈를 키운 덕분에 지금도 속 하나는 소처럼 튼실하다.이 대목에서 “나는 도랑치고 가재잡는 삶을 살았다.”며 파안대소했다.가난해서 건강했고,건강해서 별 욕심이 없으니 그나마 순리를 크게 거스르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가난’ 때문에 잠자리·섭생 토속적 섭생도 토속적이다.어려서부터 입에 익은 된장,고추장과 콩나물,시래기,자반고등어가 제격이다.고기는 먹되 애써찾지 않는다.식성이 토속적이라 지금도 침대 대신 온돌을 지킨다.잠자리와 음식이 신토불이라고 했다. 그는 평범한 가운데서 넉넉함을 얻는 생활이 ‘잘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사람들에게 평범하게 사는 일에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의 용량을 넘어 비범해지자면 욕심과 갈등이 배태되고 무언가와 자꾸 충돌하게 된다.”결국 평범한 사람이 평범을 거부하면 고통과 어지러움을 피할 수 없고,이것이 삶을 왜곡하는 단초가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요한 얘기’라며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건강한 삶이 특별한 삶은 아니다.그냥 평범하게 살면서,큰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지나치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에 눈길을 돌려보라.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농부가 이삭을 줍듯 찬찬히,그리고 느릿느릿 이삭을 줍다 보면 나중에는 가히 곡식이라 부를만한 수확을 얻을 것이다.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이것이야말로 내가 지난 시절 체험으로 얻은 경험방(經驗方)이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 ■‘건강 여행’ 이렇게 작가김주영씨에게 여행은 탐사하고 모색하는 학습이며,동시에 그의 문학적 에토스(특성)를 생성하는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일화를 전한다. “언젠가 프랑스의 유명 작가 내외와 자리를 함께했다.서양인은 대체로 콧날이 날카롭고 우뚝한데 그의 콧날은 왠지 두루뭉술했다. 그런 그에게 외모가 동양적이라고 했더니,‘내가 원래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콧날까지 그렇게 변하더라.’며 웃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여행이 신체를 단련시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모나지 않는 품성을 갖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이 고행의 수양이어설까.그는 세상없는 여행이라도 거의 기록을 하지 않는다.모든 현상과 물상을 머리에 담아와 얼마간 내면에서 숙성시킨 뒤 농익은 정서를 지면에 글로 담아내는 식이다.사실,그는 오지 여행을 권하지만 그런 곳을 찾아 떠나기가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모든 ‘좋은 여행’이 그렇듯,오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 임종호 박사는 “오지가 아니라 생활권 인근으로 가볍게떠나는 경우라도 여행은 심신 양면에서 적극 권장할만한 건강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강건한 체력을 길러 주는 것은 물론 목표지향성,인내력,다양한 체험과 정서 순화 등 여행의 장점은 헤아릴 수 없다.”며 “더러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 잡다한 세상일을 잊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심재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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