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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 맞아 전한 따뜻한 마음…김우빈, 취약 계층 환자들 위해 1억 기부

    새해 맞아 전한 따뜻한 마음…김우빈, 취약 계층 환자들 위해 1억 기부

    배우 김우빈(34)이 2025년 새해를 맞아 서울아산병원에 1억원을 기부했다는 따뜻한 소식이 전해졌다. 1일 소속사 에이엠엔터테인먼트는 “김우빈이 최근 취약 계층 환자들의 치료비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에 1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 저소득 청소년을 돕기 위해 익명으로 기부를 시작한 김우빈은 매년 서울아산병원을 통해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지원과 소외된 계층을 위해 11년째 꾸준히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김우빈의 누적 기부액은 11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빈은 지난달 크리스마스에도 서울아산병원 소아병동 환아 150여명에게 연말 선물을 보내며 응원을 전했다. 당시 김우빈의 연말 선물을 받았다는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김우빈이 선물했다”면서 머플러와 모자, 동봉된 크리스마스 카드를 공개했다. A씨는 “매번 어린이병원에 기부도 하던데 연말 선물까지”라며 “올해 수술도 하고 입원이 잦아 많이 힘들었는데, 해를 넘겨서까지 병원에 있어야 해서 좀 지쳐있었다. 슬픈 뉴스가 가득해 우울했는데 많은 위로가 됐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김우빈이 전달한 카드에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길 기도할게요. 2025년에는 더 건강하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요. 화이팅!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응원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김우빈은 2008년 서울패션위크에서 모델로 데뷔했고, 2011년 KBS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통해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학교 2013’, ‘상속자들’, 영화 ‘스물’, ‘마스터’ 등으로 활발히 연기해오던 그는 2017년 비인두암 판정을 받고 활동을 중단했다가 2022년 영화 ‘외계+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복귀했다. 김우빈은 올해 공개 예정인 김은숙 작가의 신작 넷플릭스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에 출연한다. 오는 11일에는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팬미팅을 연다.
  • 문재인 “새 아침의 태양처럼 희망 나누자…국민이 사악함 물리칠 것”

    문재인 “새 아침의 태양처럼 희망 나누자…국민이 사악함 물리칠 것”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어둠을 몰아내는 새 아침의 태양처럼 희망과 위로를 나누자”라고 전했다. 1일 문 전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신년 메시지에서 “앞으로 우리 국민이 치러야 할 비용과 후유증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겨낼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는)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한 해였다”며 “망상과 광기의 정치로 인한 날벼락 같은 고통과 항공기 참사로 인한 심연 같은 슬픔 속에서 새해를 맞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국민은 강하다. 사악함을 물리치고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이고, 슬픔을 안전의 교훈으로 간직할 것”이라며 “역사는 언제나 국민의 편”이라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새해 복 많이 받자는 인사가 올해처럼 간절한 때가 없었다”며 “모두 몸도 마음도 건강하자”라고 덧붙였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참으로 비통하다”며 “정부와 관계 당국은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온 국민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는 끝내 최대의 인명피해 참사가 되고 말았다”며 “갑작스러운 사고로 희생된 분들과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정부는 유가족 위로와 지원에도 총력을 기울여달라”고 강조했다.
  • 서강석 송파구청장, 제주항공 여객기 희생자 조문…주민 안전도 살펴

    서강석 송파구청장, 제주항공 여객기 희생자 조문…주민 안전도 살펴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 정문 앞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서 구청장은 헌화와 묵념으로 희생자를 기린 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서 구청장은 이날 공식 일정에 앞서 오전 7시 30분 개인자격으로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해맞이 장소를 찾아 주민 안전을 챙기며 새해를 시작했다. 구는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지난달 30일 해맞이 행사를 취소했다. 그러나 지역 해맞이 명소인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에 주민이 몰릴 것에 대비해 직원과 자원봉사자 등 166명을 동원해 안전대책을 시행했다. 서 구청장은 현장에서 안전 상황을 살핀 후 주민과 새해 인사를 나눴다. 이어 서 구청장은 동작구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2025년 공식 일정을 시작하고 시청 분향소도 찾았다. 한편 송파구는 지난달 30일부터 구청 홈페이지와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희생자 추모 메시지를 올리고 4일까지 이어지는 국가애도기간 동안 주민들이 애도의 시간을 존중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 현대百 정지선 회장 “변화의 파고 맞서 나아가자”…변화 대응 주문 강조

    현대百 정지선 회장 “변화의 파고 맞서 나아가자”…변화 대응 주문 강조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1일 을사년 신년 메시지를 통해 “성장은 실천에서 시작되고 다양한 협력으로 확장되며 서로의 공감으로 완성되듯이, 우리가 서로를 믿고 도우면서 함께 변화의 파고에 맞서 힘차게 나아가자”고 밝혔다. 그는 “우리 그룹이 성장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고객과 시장, 비즈니스 생태계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시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성장의 동인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지선 회장은 “관습적으로 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적용해 가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새로운 시도는 익숙함을 버려야 하는 수고가 따르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갖게 하지만 성장통의 과정을 겪어야만 성공이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동안 시장 변화에 따라 기존사업의 전략에 새로운 변화를 주면서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여 시장을 선도하는 크고 작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 왔다”며 “자신감을 갖고 기존 사업의 차별적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자”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신규 사업에 대한 속도감 있는 추진을 당부했다. 정 회장은 “각 사 대표이사와 임원은 미래성장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큰 책무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다양한 의견수렴과 신속한 판단을 바탕으로 신규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며 경영층의 적극적인 리딩을 주문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오는 2일 전 계열사 1만 5000여명의 임직원 대상으로 온라인 시무식을 연다.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임직원을 위해 사내 온라인과 모바일 그룹웨어(업무관리 프로그램)를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되며 정 회장의 신년 메시지는 그룹 임직원에게 이미지와 모션 그래픽 등을 활용해 공유될 예정이다.
  • 새해부터 ‘확’ 바뀌는 인스타그램…이제 내 딸 누구와 연락하는지 알 수 있다

    새해부터 ‘확’ 바뀌는 인스타그램…이제 내 딸 누구와 연락하는지 알 수 있다

    “2025년부터 청소년 인스타 계정 비공개로 바뀌고 부모님이 디엠(DM·다이렉트메시지)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1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인스타그램을 즐겨쓰는 일부 10대들의 고민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인스타그램이 올해 1월부터 ‘청소년 계정’ 정책을 시행하기로 해서다. 인스타그램 운영사인 메타는 지난해 9월 미국·영국·캐나다·호주 등에서 18세 미만 청소년 사용자를 ‘10대 계정(Teen Accounts)’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올해 1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 10대 계정 기능이 시행될 예정이다. 10대 계정은 기본적으로 비공개된다. DM은 팔로우한 사이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청소년 사용자가 올린 게시물은 팔로우한 관계여야 볼 수 있다. 또한 성적·폭력적 콘텐츠 시청도 불가능하다. 미용 시술 관련 홍보와 같은 콘텐츠 역시 시청이 제한된다. 만약 사용시간이 1시간을 넘어가면 인스타그램을 종료하라는 알림이 뜨게 된다.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진 ‘수면 모드’가 작동해 알림이 울리지 않는다. 10대 사용자가 최근 7일간 메시지를 보낸 대상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한데 청소년들 입장에선 가장 불편할 수 있는 기능으로 꼽힌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대화 내용까지 볼 수 없다. 인스타그램이 지난해 11월 오픈서베이를 통해 국내 Z세대(16~24세) 사용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63.5%가 가장 많이 쓰는 기능으로 DM을 꼽았다. 10대는 같은 응답 비중이 72.5%에 달했다. 카카오톡이나 일반 메시지보다 DM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모든 청소년이 인스타그램 이용에 제한되는 건 아니다. 17~18세 청소년은 계정 관리·감독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보호자가 관리·감독을 설정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계정은 보호자 동의 없이도 계정을 공개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보호자가 관리·감독을 설정하길 원한다면 17~18세 청소년도 ‘청소년 계정’ 정책에 따라 서비스 이용에 제한받는다. 관리·감독을 설정하려면 청소년과 보호자 모두 관리·감독 초대에 동의해야 한다. 인스타그램이 10대 계정을 도입하는 이유는 청소년들이 해로운 콘텐츠나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SNS상의 범죄 사건들이 논란이 되면서 플랫폼 차원에서 자율규제에 나선 것이다. 다만 일부 10대 사용자들이 인스타그램의 강도 높은 안전 조치에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선 10대 계정에 대한 청소년들의 부정적 반응이 적지 않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Z세대의 66.9%는 1순위 SNS로 인스타그램을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청소년 보호를 위해 플랫폼의 자율규제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율규제의 정도에 따라 사용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간과할 수도 없다”며 “SNS는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소통을 근간으로 하는데 청소년들의 사용편의와 부모의 관리·감독 기능 간의 조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 디스토피아/백아온[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시]

    디스토피아/백아온[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시]

    플라스틱 인간을 사랑했다. 손등을 두드리면 가벼운 소리가 나는.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자기가 피우는 카멜 담배의 낙타가 원래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다거나 레몬청을 시지 않게 만드는 법 같은 것들을 말해줬다. 나는 그의 말들을 호리병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그것들로 유리 공예를 하고 싶었다. 매일매일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항상 쇼윈도 불이 꺼지고, 조명 상가들도 문을 닫았다. 집에 돌아가면 투명한 호리병을 한참 바라보다 잠이 들곤 했다. 그의 작은 이야기들을 모아둔 호리병을. 그와 있다 보면, 아주 잠깐이지만, 세상이 진짜라고 믿어졌다. 그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망가진 두 사람이 서로에 의해 회복되는 우울한 로맨스 영화처럼. 우리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면요, 내가 엄마를 찾아볼게요. 어느 날은 그늘에 있기엔 너무 추웠다. 날씨는 좋았지만 바람이 찼다. 당신도 춥지 않아요? 물어보려던 것을 꾹 삼키고 말았다. 나는 그 공원에서 덜덜 떨며 그가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오랜만에 행운목에 물을 주고 왔어요. 행운목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잘 살지요. 나는 가만 듣다가 당신은 왜 이렇게 나에게 관심이 없어요? 나라고 아무런 사연도 없는 줄 알아요? 화가 치밀었다. 그동안 그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사연이 알고 싶었고, 그 역시 나의 사연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길 바랐다. 그늘에서 바깥으로 걸어 나갔고 그는 벤치에 그대로 앉아서 텅 빈 손을 흔들었다. 그를 정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플라스틱 피부에 덧칠된 이목구비와 단 하나의 표정을 보았다. 가까운 미래에 사랑이 있을 거라고 줄곧 생각해 왔는데. 지금껏 그와 나 둘 중 누구도, 서로에게 안기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제조 일자가 쓰인 전구처럼 동시에 빛나고 동시에 꺼지길 바랐다. 저수지에 가서 호리병을 거꾸로 들고 바닥을 두드렸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깨뜨려보려고 주먹을 쥐었을 때, 어디선가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호리병을 그대로 버려둔 채 바깥으로 달려갔다. 도망친 곳에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가 폐기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었다. 내가 가짜였더라도 당신은 적당히 건강하게 지내요. 이따금 사람들과 핑퐁을 치기도 하고. 오래된 불안과 결핍은 나를 더 아쉽게 할 테니까요. 당신의 이마는 부드러웠어요. 나는 그가 닫아준 몇 줄의 감상과 조용한 꿈들을 기억하려고 했다.
  •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고통 넘어 희망, 예술이 그리는 미래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고통 넘어 희망, 예술이 그리는 미래

    ‘발코니 축제’를 기억하는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이탈리아의 아파트 발코니에서는 특별한 축제가 열렸다. 이웃들은 낚싯대를 이용해 잔을 부딪치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와 춤으로 함께했다. 발코니에는 ‘안드라 투토 베네’(모든 것이 잘될 거야)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정해진 시간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나누었다. 악기가 없는 사람들은 프라이팬이나 냄비 뚜껑을 두드려 창의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휴대폰 플래시를 밝게 비춰 서로를 향해 흔들기도 했다. 이러한 축제는 자가 격리와 이동 제한 속에서도 연대감과 희망을 표현한 중요한 의식이었다. 2024년 한국에서는 ‘촛불 축제’가 열렸다. 촛불 집회는 시민 주도의 평화롭고 비폭력적인 정치 참여 문화다. 과거의 차벽이나 물대포 같은 강경 진압 대신 연예인과 음악가가 참여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은 광장을 가득 채워 함성과 떼창으로 하나가 됐다. 특히 2024년의 촛불 축제는 K팝 음악과 결합해 팝 콘서트 같은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했다. 10대·20대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나 로제의 ‘아파트’ 같은 곡을 기성세대도 배우며 함께 노래했다.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이 등장했지만, 분노를 넘어 희망을 노래하는 새로운 집회 문화는 촛불 축제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철학자 니체는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견디게 해 주는 중요한 도구로 ‘예술’을 꼽았다. 그는 예술이 현실의 고통스러운 진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이를 직시하며 버텨 낼 힘을 준다고 보았다. 예술은 단순히 고통을 일시적으로 가리는 도피처가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면서도 이를 극복할 용기를 북돋아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기 상황에서 예술의 치유적 가치는 늘 부각돼 왔다. 예술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개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내면의 평화를 되찾게 한다. 또한 혼란 속에서 잃어버린 중요한 것들을 깨닫게 해 준다. 예술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을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강력한 수단임이 분명하다.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희망찬 목표를 세우고 변화와 성장을 다짐해야 할 시점이지만, 최근 한국을 강타한 여러 악재는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 위기에 더해 항공 사고까지 겹치며 많은 이들이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 더이상의 불행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대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예술의 치유력을 믿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게 하는 것이 예술의 특별한 힘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이 상처를 어루만지고 희망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삶의 변화로 연결하는 것은 결국 개인과 사회의 주체적 노력이다. 그럼에도 불안과 혼란이 가득한 이 시기, 예술이 주는 위로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장인주 무용평론가
  • 정전의 밤/민지인 [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동화]

    정전의 밤/민지인 [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동화]

    늦은 밤, 나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 화면 속 로아를 보며 말했다. “솔, 빛, 언, 니. 따라 해 봐. 솔빛 언니!” 로아는 태어난 지 12개월 된 아현이의 여동생이다. 옆으로 늘인 내 입 모양이 웃겼는지 로아가 양 볼이 빨갛게 웃었다. 내가 아현이한테 영상통화를 거는 이유는 단 하나, 머리털이 새싹처럼 자란 로아가 보고 싶어서다. 아현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로아 있잖아. 엄마 나가니까 좀 전까지 엄청 울었어. 나도 언니인데 완전 서운해.” 아현이는 5학년이 되어 친해진 친구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어린 동생이 있다는 걸 알고 좋아졌다. 외동인 나는 아현이가 부러웠다. 심심할 틈이 없겠지? “어디가 불편한 거 아니야? 배고프거나, 응가를 했던가?” “그런가?” 아현이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는지 깜깜한 화면에 말소리만 들렸다. “진짜네? 으. 냄새. 엄마한테 기저귀 가는 법 좀 물어보고 올게!” 전화를 끊자 밖에서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어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빠가 고무장갑을 털어 개수대 위에 올려놓고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았다. “누구랑 무슨 통화를 그렇게 재밌게 해?” “아현이.” “아현이가 누구더라?” 아현이는 동그란 안경이 잘 어울리는 애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아빠는 깜빡깜빡한다. 작년에 부모님이 이혼한 뒤 나는 아빠와 둘이 산다. 그 이후 아빠는 한숨이 늘었고 나는 말수가 줄었다. 거실로 나가는 그때였다. 순식간에 모든 전등불이 꺼졌다. 에어컨 소리도 멈췄다. 베란다로 갔다. 아파트 전체가 잠든 듯 어둡고 고요했다. 베란다 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주민들도 나처럼 베란다로 나와 양옆을 기웃거렸다. 아빠가 투덜댔다. “이 더운 날 정전이야? 시대가 어느 때인데….” 조금 있다가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파트 주민 여러분. 현재 정전의 원인을 파악 중이니 동요하지 마시고 차분히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빠는 안방에서 손전등을 꺼내 빛이 천장을 향하도록 거실 탁자 위에 세워 두었다. “기다려 보자. 금방 복구될 거야.” 나는 아현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괜찮아? 로아는?” “울고불고 난리 났어. 너희 집도 정전이지?” “응. 엄마한테 전화했어?” “했지. 오는 데 30분은 걸린대. 아빠는 출장 가서 내일 오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기저귀 갈았는데 왜 울지. 잠깐만 지금….” 아현이가 뭘 잘못 눌렀는지 전화가 뚝 끊겼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현재 정전의 원인이 변압기의 용량 부족으로 보입니다. 한 시간 이내로 복구할 예정이오니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침착하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한 시간이라니. 길다. 아빠는 소파에 앉아 애꿎은 노트북 키보드만 두드렸다. 오늘도 남은 회사 일이 많나 보다. 고민 끝에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나 친구네 집 좀 갔다 와도 돼?” “지금은 위험하지.” “친구가 동생이랑 둘만 집에 있는데 걱정돼서. 동생이 애기인데 계속 우나 봐. 응가를 해서 기저귀를 갈아 줬는데도 운대.” 아빠는 노트북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아빠도 같이 가. 꼭 가야 한다면.” 그건 예상에 없었는데… 어쩔 수 없다. 아현이에게 아빠와 집에 가도 되냐고 묻자 집 주소가 적힌 메시지가 왔다. 아현이는 넉살이 좋아서 “아저씨! 다음에 로아랑 집 놀러 가도 되죠?”라며 호들갑을 떨게 분명하다. 그나저나 아현이의 집은 다른 동 18층인데…. 방금 나눈 말들을 주워 담고 싶었다. 우리는 휴대폰만 챙겨 집을 나섰다. 문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쳤다. 우리 집은 12층. 엘리베이터가 멈췄으니 1층까지 걸어 내려가야 한다. 아빠가 검은 반바지를 추켜올리며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켰다. “조심해서 걸어. 뛰지 말고.” “아빠도 조심해.” 며칠 전 아빠는 콧등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났다. 일하다가 다쳤다고 했지만 아빠는 IT 개발자이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술 먹고 고꾸라진 게 틀림없다. 10층으로 내려가는데 밑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망할 놈의 아파트… 이십 년 넘으니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어. 염병.” 나도 모르게 아빠의 팔목을 움켜잡았다. 팔이 축축했다. 아빠는 안심하라는 듯 내 어깨를 두들겼다. 빛을 비춰 보니 강아지 버들이를 끌어안은 1005호 할머니다. 할머니가 버들이를 내려놓자 버들이가 꼬리를 흔들며 컹컹 짖었다. 할머니가 아빠에게 물었다. “이 난리에 어디 가셔?” “급하게 갈 곳이 있어서요.” “아아. 근데 둘이 부녀지간이야?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몰랐네. 호호.” 나는 버들이를 쓰다듬었다. 버들이는 할머니가 노인정에 갔을 때 내가 종종 산책을 시키는 갈색 푸들이다. 내가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를 타면 할머니는 나에게 버들이를 맡겼다. 우리는 버석거리는 나뭇잎을 밟고 화단의 꽃을 구경하며 친구가 되었다. 아빠가 버들이를 만지려 하자 버들이가 이를 드러냈다. 할머니가 말했다. “얘는 남자 어른을 안 좋아해요. 영감이 살아생전 엉덩이를 자꾸 걷어차서 말이야.” “예? 예….” 나는 웃음을 참으며 버들이의 턱을 긁어 주었다. “버들아. 이 사람은 우리 아빠야. 아빠.” 그래도 버들이는 컹컹 짖으며 경계 태세를 갖췄다. 버들이에게 아빠가 야근이 많다고 투덜댔는데 알아들은 걸까? 내려가려는데 할머니가 다시 불렀다. “그런데 12층 아저씨. 한겨울에 애 슬리퍼만 신기지 마요. 예?”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아렸다. 맞다. 지난겨울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다가 할머니한테 혼났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빠가 휙 뒤돌았다. 깜짝 놀라 계단 한 칸을 훅 올랐다. “솔빛. 왜 겨울에 슬리퍼 신고 다녔어. 어?” “슬리퍼가 편해.” “구멍 뚫린 데로 눈이 막 들어왔을 거 아니야.” “그게 좋은데. 구멍으로 눈이 숭숭 들어와서 발이 젖는 거.” “좋다고? 그리고 저 강아지 이름은 어떻게 알아. 사나워 보이던데.” “하나도 안 사나워. 아빠가 낯설어서 그래. 나랑 산책도 하는 사이인걸.” 나는 아빠를 앞질러 내려갔다. 아빠는 위험하다며 나를 등 뒤로 세웠다. 3층에 도착해 모퉁이를 도는 그때였다. “아악!” 아빠가 뭔가와 부딪혀 무릎을 부여잡고 깽깽이걸음을 했다. 빛을 비춰 보니 킥보드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잠시 후 킥보드 앞 현관문이 열렸다. 얼굴을 빼꼼 내민 남자아이는 나보다 키가 한 뼘 작았다. 아빠가 짜증스럽게 입을 열었다. “얘. 여기다가 킥보드를 놓으면….” “어? 우리 학원에서 피아노 제일 잘 치는 누나다!” 빛을 비춰 보니 같은 피아노학원에 다니는 파마머리 남자아이다. 3학년이던가. 내가 피아노 칠 때 창문으로 엿보던 아이. 갑자기 사탕을 한 주먹 주던 아이. 뭔가를 오물거리던 남자아이는 상황을 보더니 집으로 들어가 양손에 자기 주먹만 한 토마토를 들고나왔다. “누나 이거 먹어! 아저씨도 드세요!” 우리는 얼결에 토마토를 받았다. 맞다. 이 아이는 피아노 연습을 안 했을 때 선생님께 사탕이나 초콜릿을 한 움큼 내민다. 잘못을 모면하려는 거다. 내가 잘못한 게 있을 때 아빠에게 학교에서 만든 엉터리 작품을 내미는 것과 똑같다. 남자아이가 집으로 들어간 뒤 아빠의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코에 비하면 멀쩡해. 저번에 회식 끝나고 계단에서 엎어진 거 생각하면….” 아빠가 아차 싶었는지 입술에 힘을 꽉 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줄 알았어.” “뭐, 뭐를?” “술 냄새 없애려고 집 앞에서 탈취제 뿌리는 것도 다 알아. 내가 바보야?” 아빠가 콧잔등을 실룩이니 반창고가 구겨졌다. 아빠는 말을 돌렸다. “근데 쟤 너 좋아하나 보다. 널 보고 얼굴이 환해졌어.” 생각해 보니 아빠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한테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탕을 줬으니까. 안 되는데…. 정말 날 좋아하나? 공동 현관문을 나가니 밤바람이 불었다. 땀으로 끈적해진 몸이 시원했다. 화단을 지나 단지 중앙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각자 미니 선풍기와 부채를 들고 더위를 식혔다. 우리도 그쪽으로 갔다. 아빠가 땀을 닦고는 토마토를 내밀었다. “이것만 먹고 갈까?”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 보니 토마토가 더 빨갛게 보였다. 토마토를 한 입 깨물었다. 새콤달콤했다. 내 옆에 있는 조그만 여자아이가 자기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하늘을 가리켰다. “엄마! 별! 별!” 우리는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별이 더 잘 보였다. 가만히 서서 눈을 감으니 바람 소리, 매미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한 발 가까이 오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 “근데 아까 걔가 고백하면 사귈 거야?” “뭐?” “걔는 공중도덕이 없어. 사과도 안 하고 말이야. 아빠는 반대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토마토 내밀었잖아. 그게 사과야.” “토마토가?” “나도 그래. 저번 주 월요일 날 아빠한테 학교에서 만든 아크릴 무드등 줬잖아. 그날은 아빠가 생일 선물로 사준 무선이어폰이 고장 난 날이었고.” “그랬지.” “이어폰, 친구가 고장 냈다고 했잖아. 사실 내가 고장 낸 거거든. 친구랑 장난치다가 떨어졌는데 내가 밟았어… 미안.” “으이구. 근데 그 무드등 왜 불이 안 들어와? 물어볼까 말까 하다가 말았는데. 혹시 아빠가 고장 냈나?” “그거 처음부터 안 됐어. 내 거만 불량이었나 봐.” “그럼 고쳐 달라고 하지 그랬어. 이따 고쳐 봐야겠네.” 나는 다시 하늘을 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빠한테 하나 더 말하고 싶었다. 아빠가 3층 아이와 나를 오해하니까. “그리고 나 남자 친구 있어.” “뭐? 누구?” “김민찬이라고 있어. 우리 반. 근데 헤어질 거야. 걔 5반 유채린 좋아하는 거 같아.” 그때 아현이에게 ‘언제 오냐’는 톡이 왔다. 그게 구조 신호처럼 느껴져서 입을 쓱 닦고 아빠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빠는 김민찬이 어떤 자식이냐며 중얼댔다. “빨리 가자. 응?” 아현이네 동 앞에 도착했다. 공동 현관문은 정전 때문인지 열려 있었다. 우리는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는 18층. 시작이다! 1층, 2층… 5층에 올라서자 힘에 부쳤다. 아빠는 계단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아빠 옆에 나란히 앉았다. “맨날 앉아만 있어서 그런지 힘들다. 솔빛이는 잘 걷네. 옛날이랑 다르게.” “당연하지. 나 체육 엄청 잘해. 줄넘기도 연속으로 100개 할 수 있어. 몰랐지?” “몰랐네. 이제 너가 앞장서서 가.” 아빠가 올라가는 계단에 불빛을 비췄다. 내가 한 발 내딛는데 아빠가 뒤에서 말했다. “그, 있잖아. 아빠가 솔빛이에 대해 너무 몰라서 미안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이것저것 말 안 한 거 미안해….” 어두우니까 용기가 생겼다. 아빠도 그런 거겠지? 어두운 게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아빠와 내가 비추는 빛이 맞닿자 빛이 길게 이어졌다. 마침내 18층에 도착했다. 문밖까지 로아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았다. 아현이는 손전등으로 빛을 비추고 나는 코끼리 인형을 흔들며 로아를 달랬다. 아빠는 거실 매트 위에 로아를 눕혔다. 그리고 기저귀를 다시 확인했다. “응가가 잘 안 닦여서 불편했나 봐. 그리고 기저귀는 이렇게 바짝 붙이면 안 돼.” 아빠는 로아의 엉덩이를 물티슈로 닦고 기저귀를 다시 갈았다. 아빠가 로아의 등을 토닥이며 아기 침대 위에 눕히자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아빠가 속닥였다. “솔빛이도 어렸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울었다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몰라. 그래서 기저귀 갈기는 항상 아빠 담당이었어.” “솔빛이 애기 때 그렇게 까탈스러웠어요? 너 지금이랑….” 아현이가 시간을 끌더니 힘주어 말했다. “똑같다.” 나는 아현이의 등을 때렸다. 로아는 울다 지쳤는지 새근새근 잠들었다. 아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전등불이 반짝 들어왔다. 우리는 소리 없이 환호했다. 그러다 아빠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아빠의 앞머리가 미역 줄기처럼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아빠는 ‘쉿’ 하고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렸다. 나는 깨금발을 하고 거실 불을 껐다. 우리가 애써 재운 로아가 다시 깨면 안 되니까. 오늘은 나도 로아처럼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폴리 사운드/홍성구[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소설]

    폴리 사운드/홍성구[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소설]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결합된 제품이었다. 이름은 비디오 비전. 검고 매끈한 TV 수상기 밑에 VHS 투입구가 달린 모델이었다. VHS 투입구에 손을 넣었다 빼면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관문처럼 마구 펄럭였다. 나는 그게 마치 누구의 손짓 같아서 그 문이 금세 닫힐 것 같은 조바심에 손을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하지만 매번 편지 한 통 없는 우편함처럼 미지의 그곳은 텅 빈 공백으로 열렸다 닫힐 뿐이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밀어 넣으면 어딘가 멋진 곳으로 안내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집에는 어린이용 비디오테이프는커녕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불량·불법 비디오테이프 하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끈질기게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날은 평소에 뽑혀 있던 케이블이 비디오 비전의 본체와 콘센트 사이에 연결돼 있었다. 미지의 세계 관람권인 비디오테이프는 없었지만, 입장권을 들고서 문 앞에서 돌아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TV 전원을 켰다. 리모컨을 든 나는 놀이공원 앞에 서 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환해진 직사각 화면에는 기대와 다르게 회색의 담벼락이 펼쳐졌다. 황량한 공장의 경계를 드러내는 콘크리트 담. 공장 담벼락 같아서였을까. 소음이 들렸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11번으로 9번으로 7번으로 채널을 바꿔도 소용없었다. 방송이 송출되지 않는 낮 시간대였다. 실망을 금치 못한 나는 리모컨 버튼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서도 전원 버튼 근처는 누르지 않았다. 은밀한 일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색 소음이 진동하였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멍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들어 버렸다. 회색 소음과는 다른 소음을. 삐-------이. 삐—————————익. 회색 소음보다 높고 날카로운 소음이었다. 귀에 거슬려 TV를 끄려다 소음의 정체에 의문이 생겼다. 회색 소음은 회색 화면에 어울리는, 공중에 스크래치가 그어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높고 날카로운 소음은 회색 스크래치와 이질적이었다. 저 소음을 방송국에서 보낸 것일까. TV 스피커에 귀를 갖다 대고 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TV 스피커에서 높고 날카로운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기가 귓가를 스치는 정도로 시작되는 데시벨은 금세 한여름 매미 떼의 데시벨로 거세지고는 했다. 나는 당연히 아버지와 누나도 소음에 시달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TV를 볼 때 별다른 말이나 반응이 없었다. 소음을 듣지 못하는 건 수리기사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하게 생긴, 그리 크지 않은 귀를 스피커에 갖다 댄 수리기사는 고개를 몇 번 갸웃했다. 수리기사의 고갯짓에 아버지는 그것 보라는 눈빛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초조해져서 열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매미 떼가 맹렬히 힘줄을 튕길 때 지금이라고 외쳤다. 수리기사는 평범한 귀를 다시 스피커에 밀착했고 아버지도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소음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를 예민한 아이로 치부하며 미안하다고 말했고, 수리기사는 공구함 한 번 열지 않았다며 출장비를 사양했다. 거실에 혼자 남은 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매미의 합주를 들었다. 이렇듯 분명히 울리는 소리를 나만 듣는다는 게 답답하거나 억울하기보다는 어쩐지 서글펐다. 그때였을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명백히 혼자라고 느꼈다. 사운드 디자이너라고 하면 고민 없이 부풀어 오른 질문들이 날아든다. 음악하세요, 아니 디자이너니까 미술 쪽인가. 사운드를 디자인화하나요, 디자인을 사운드화하나요. 청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공감각의 예술인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고요한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잠자리를 몰래 잡아채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포획의 목적은 잠자리가 아니다. 잠자리의 소리다. 그물망에 든 잠자리를 조심히 빼서 사각의 채집통에 넣어 두고 귀를 연다. 잠자리의 날개끼리 충돌해서 나는 타닥타닥 소리. 그 소리는 점점 허물을 벗어 잠자리에서 탈피한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잠자리의 소리를 다른 무언가의 소리와 연결하는 사람이다. 대개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사실 뭘 어떻게 인위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사물에 있는 것을 튀어나오도록 하면 된다. 숨어 있는 물성이 드러나도록 상황을 마련하는 게 나의 일이다. 적막한 설산을 걸을 때는 굵은 소금이 뿌려진 바닥을 밟으며 밀가루 포대를 손으로 주무른다. 수풀이 바람에 휘날릴 때는 릴테이프 더미를 양손 사이에 놓고 비빈다. 중세 시대의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릴 때는 콘크리트 벽돌들을 포개어 놓고 두 벽돌을 맷돌 돌리듯이 간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 있는 것을 끄집어내면 된다. 채집하고 발견하는 셈이다. 순서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채집하려면 발견이 우선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채집이 먼저이다. 채집한 후에야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극에 매달려 있던 때였다. 그 작업은 현대에서는 접하기 힘든 소리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활시위가 당겨지는 소리였다. 적을 물리치겠다는 일념하에서 적장을 향해 팽팽해진 활시위의 탄력과 긴장을 어떻게 해야 소리로 튀어나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활시위와 연결할 수 있는 사물이 떠오르지 않아 활 자체로 가능할지 시도해 봤다. 하지만 실제로 눈을 밟는 것보다 소금을 밟는 소리가 사람들 머릿속의 눈 발자국 소리에 더 가깝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수풀보다 릴테이프가 더 실감 나는 것이다. 활을 아무리 팽팽히 당겨도 소용없었다. 내가 당긴 활시위에서는 음률이 없는, 맥 빠진 거문고 줄 소리가 났다. 가죽가방과 고무장갑 따위를 비틀고 늘려도 소득은 없었다. 뭘, 그렇게 발길질당한 강아지마냥 낑낑대요? 고무장갑의 탄성 한계 때문에 경련을 일으키는 두 팔을 채아가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과 믹싱 작업을 맡고 있는 채아는 내 입에서 난다는 소리를 자주 타박했다. 힘을 쓸 때나 뭔가에 몰두할 때나 밥을 먹을 때도 개 같다고 했다. 선배에게 개 같다니 참 맹랑한 말이지만, 나는 내가 소리를 낸다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남의 소리는 그렇게 잘 들으면서 어떻게 자기 소리는 못 들을 수 있어요. 무슨 소리를 내냐고 반문했을 때, 채아는 내 직업적 소양이 의심된다며 따졌다. 가벼운 발길질이 아냐. 늘씬하게 얻어맞은 것 같아. 무심결에 또 어떤 소리를 냈을까. 궁금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숨 꼴딱거릴 것처럼 혀 내밀고 있지 말고 수분 보충 좀 해요. 선배를 계속 개 취급하는 못된 버르장머리에 대해 한마디 하려다가 채아가 건네는 맥주캔을 넙죽 받았다. 거절하기에는 맥주캔의 표면이 얼음장처럼 시원했다. 나는 모래가 쌓여 있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게, 이럴 때는 백사장 같네. 나는 손으로 모래를 뒤적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래 옆에는 나무 옆에는 대리석 옆에는 소금 바닥이 있었다. 왜요? 휴가 못 가는 삶이 처량해요? 채아가 자신의 맥주를 들고 옆에 앉았다. 채아는 엉뚱하게 넘겨짚는 구석이 있었지만, 캐묻지 않고 넘겨짚는 포즈를 취한다는 점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파트너였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의 독성이 빈속을 찔렀다. 불법을 저지른 듯한 짜릿함. 백사장이 아닌 모랫바닥에서라도 잠시 쉬고 싶었다. 나는 금세 침묵에 이르렀고 내 마음을 넘겨짚었는지 채아도 보조를 맞췄다. 창고라고 불리는 작업실에는 철가방, 문손잡이, 깡통, 톱, 바이올린 활, 구두, 로프, 용수철, 자동차 문짝이 나름의 질서 속에 존재했다. 스스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지만, 물성을 깨우는 힘에 연주하는 악기들. 악기들은 지휘자가 없다는 듯 고요했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에게 고요는 휴식 또는 죽음과 같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러나 곧 수면의 문턱을 넘다 정강이가 쾅, 부딪혔다. 뭐야. 미안해요. 블루투스가 꺼진 줄 모르고 볼륨을 키웠네. 끌게요. 아니야, 끄지 마. 본능적으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가가자 채아는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채아가 무안할 만큼 거친 손길로 스마트폰을 뺏어 들었다. 화면 속 영상에서 판다 한 마리가 죽순을 맛있게 뜯고 있었다. 선배도 얘 알아요? 선배가 알 정도면 푸바오가 인기긴 인긴가 보네. 나는 스마트폰을 던지듯이 채아에게 떠넘기고 진열장을 뒤적였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을 찾아 꺼낼 때는 낮게 탄성이 배어 나왔다. 갑자기 죽도는 왜 꺼낸 거예요? 나는 채아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샷건마이크 앞에 섰다. 대나무로는 텅텅, 비어 있는 소리만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판다의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한 턱은 예상치 못한 대나무의 물성을 깨우고 있었다. 판다가 씹는 게 죽순이 아니라 겉과 속이 단단한 뼛조각처럼 느껴졌다. 죽도를 두어 번 바닥에 내려쳤다. 탁탁. 대나무를 다른 사물에 부딪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죽도를 감싸고 있는 줄을 칼로 끊어 버리고 붙어 있는 네 쪽의 대나무에 칼집을 내어 서로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떨어진 대나무들을 한 손에 감싸고 가볍게 비볐다. 부드득. 귀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죽도를 샷건마이크에 더 가까이 대고 온 힘을 다해 두 손으로 대나무들을 비볐다. 부드드드드드드득. 대나무에서 소리가 튀어 올랐고, 활시위를 당기는 팽팽한 팔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물의 성질은 마찰에 의해 드러난다. 우리가 외부와 마찰을 빚을 때 나를 인식하는 것처럼. 소리를 발견한 쾌감에 대나무를 비비는 나의 팔뚝은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사극 작업이 끝나고 몇 개월 뒤에 스튜디오를 그만두었다. 사극은 흥행에 성공했고 입소문이 났는지 작업 물량이 컨베이어벨트처럼 이어졌다. 줄지어 운반되는 의뢰를 수하물로 적재하고 물품을 의뢰서에 맞게 포장한 후에 다시 컨베이어벨트로 출하하는 기계적인 시간이 계속됐다. 과로나 질식이 원인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소리를 단순 제조하는 업자가 되리라는 두려움이 찾아들었다.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기존에 녹음해 둔 파일들을 대강 믹싱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나는 발자국 소리에도 캐릭터가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인을 만나러 달리는 그리움이 실감되도록 수십 번을 달리고 또 달리고, 도회적인 세련 아찔한 피로 흔들리는 일상이 전해지도록 하이힐을 신고 균형을 잡던 시간이 떠올랐다. 당분간 멈춰야 했다. 휴가를 가랬더니 휴식에 들어가네. 채아는 내가 내민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물끄러미 보았다. 채아의 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머뭇거림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뭔가를 넘겨짚었는지 다가와서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나는 계획하지 않고 쉬는 계획을 세웠다. 눈이 감길 때 자고 눈이 떠질 때 일어나고 때가 이르거나 늦게 식사하고 술을 가볍게 또는 취하도록 마시고 느릿느릿 산책하고 레고 블록으로 별이 빛나는 밤을 조립했다. 집 근처를 돌거나 여행을 떠나서 풀벌레, 지하 터널, 경운기, 야적장, 항만, 오일장, 밤바다에 붐마이크를 갖다 댔다. 녹음 파일들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았고, 녹음한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시간은 왜곡 없이 흘렀고 나는 날짜와 요일 감각을 잃었다. 일상에 파동이 없었다. 파동이 없으므로 외부에 닿는 주파수도 없을 터였다. 송신하지 않고 수신하지 않는 생활. 나는 자유로이 고립되었다고 느꼈다. 누나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돌아가셨다. 누나의 말에 잠시 정적이 돌았다. 누나와는 일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하는 사이였으므로 액정 화면에 뜬 두 글자에 나는 이미 예감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한 말은 고작 알겠다, 였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조촐했다. 친척은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어서 코빼기도 볼 수 없었고, 아버지가 은퇴한 지 십여 년쯤 지나서 대표이사가 보내는 화환조차 없었다. 나는 주로 국화가 장식된 제단 옆에 앉아 있었고, 한 번쯤 봤거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맞절했다. 둘째 날 오후, 누나가 식탁으로 나를 불렀다. 주변 식장은 조문객들로 붐볐지만 장례 도우미를 제외하고는 누나와 나만 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누나는 대뜸 앉으라고 말했다. 누나는 군말하는 법 없이 할 말만 하는 사람이므로 나는 군말 없이 누나와 마주 앉았다. 일 미터쯤의 간격조차 어색한 사이였지만 누나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기억 속 어느 날에는 없었을 주름과 기미가 보여 열 살의 터울이 새삼스러웠다. 미처 상의하지 못한 장례 절차에 대해 말하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내게 누나는 구겨진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반으로 접힌 편지 봉투는 살짝 불룩했다. 너한테 필요할 거다. 누나의 단정에 나는 편지 봉투에 든 것을 꺼냈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카세트테이프였다. 겉면 라벨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고 손때와 볼펜 얼룩이 낀 낡은 상태였다. 카세트테이프를 보자마자 나는 그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고, 누나의 말처럼 내게 필요하리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나는 일산으로 이사했다.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지 않은 땅에 창고가 딸린 농가주택이 비어 있었다. 창고를 작업실로 쓰면 되겠다는 심산에 덜컥 결정을 내렸다. 파동 없는 삶의 관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벗어나려고 했다기보다는 벗어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빚은 진동이 나를 다시 작업실로 이끌었다. 나는 일산의 공사장, 분리수거장,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물건들은 모두 채집하였다. 농기구와 농약, 비료 포대 등이 있었을 창고는 각목, 글러브, 밥솥, 스케이트보드, LP, 유리컵, 프라이팬, 사기그릇, 고무 팩 등이 있는 작업실로 탈바꿈되었다. 작업실의 윤곽이 자리잡힌 날, 양쪽에 테이프 플레이어가 장착된 더블 데크 카세트 플레이어를 진열장에서 꺼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발견한 괜찮은 매물이었다. 예상외로 쓸 일이 없다가 이사 오기 전에 쓰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편지 봉투에 담긴 테이프가 자리를 바꿔 플레이어에 담겼다. 달칵, 버튼이 눌리면서 테이프는 돌아가고 슥삭슥삭, 과도에 사과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큼큼. 부스럭 부스럭. 이게 맞나. 탕. 텅. 아, 아.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통기타를 쳤다. 장롱 위에 뿌연 먼지를 덮어쓴 커버에 담겨 있던 통기타이리라. 나는 아버지가 통기타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린 나는 연주되지 않고 진열되지 않은 채 장롱 위에 방치된 통기타의 존재성이 의아했다. 통기타의 쓸모를 알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연주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으면서 나는 통기타는 방치되었던 것이 아니라 안치되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하였다. 가슴에 묻어 둔 열망이 장롱 위에 놓이는 방식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 눈에 보이면 마음이 근질거리고 눈에 안 보이면 마음이 서걱여서 대강의 형태로 보이게 놓아둔 것은 아닌지. 동그란 스피커에서 가리워진 길이 울려 퍼졌다. 아버지의 노래는 후렴에 이르러 그대를 애타게 불렀지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길을 터 줄 그대를 더 호출하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는 여기까지 들었다. 나는 마음먹은 대로 더 듣기로 한다. 여보세요. 아버지의 음성이 저랬구나. 아버지가 스피커에서 멀리 떨어졌는지 통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1분도 지나지 않아 통화는 끝났고 아버지는 다시 통기타를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줄 한 번 튕기지 못하고 통기타를 놓쳤다.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통기타는 소음을 일으켰지만, 뒤이어 터져 나온 소리에 소음은 배경음으로 밀려났다. 격렬한 기침 소리. 콜록콜록, 쿨룩쿨룩 따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진동하였다. 숨이 차고 흉통에 경련하는 병색이 선명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생전에는 들은 기억이 없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기타 소리를 들었다면 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다감하지 않았고 나는 살갑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나는 왜 그리 아버지의 소리에 둔감했을까. 일시 멈춤 버튼을 눌렀다.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이 끝났고,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이 남았다. 휴지(休止)가 필요했다. 커피를 끓이러 싱크대 쪽으로 향하는데, 양은 주전자가 발에 차여 시끄러웠다. 주전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째그랑 일을 벌여 놓고, 뭐하는 거야 째쟁쨍. 작업실에 쌓인 도구들이 매립지에 버려진 고물처럼 낡아 보였다. 이대로 뒀다가는 달걀 썩는 듯한 매립지 냄새가 진동할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아, 이게 누구신가요? 나를 헌신짝으로 만든 그분 아닌가요? 채아와 거의 일 년 만의 통화였다. 가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서로 생존을 확인하는 용도일 뿐이었다. 버려지긴 누가 버려져. 내가 도망친 거지. 그럼, 멀리 가버릴 것이지 웬일로 연락했어요? 나, 얼마 전에 일산으로 이사했어. 일산? 왜? 거기로 왜 갔는데요? 이제는 잭을 다시 만나 볼까 하고. 누구요? 잭? 아, 난 또 누구라고. 잭 폴리? 내 말뜻을 알아들은 채아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이제는 도망가지 말아요.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답했다. 앞으로는 도망가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채아에게 연락한 첫 번째 이유였다. 채아에게 알리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 또 프리하게 때려치우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두 번째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일감 때문이었다. 나는 일을 할 때 의뢰인과의 소통은 채아에게 맡겼었다. 소리만 잘 만들면 그만이라는 게 대외적인 사유였지만, 인맥이라든지 비즈니스적 관계에 반응하는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채아는 메신저로서 역할을 잘했고 사교적이어서 업계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때가 묻은 것인지, 생계의 절박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채아를 통하면 일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다행스럽게 채아는 나를 넘겨짚었다. 채아의 주선으로 맡은 첫 복귀작은 돌침대 광고였다. 별 다섯 개가 돌침대에 박히는 효과음을 내 주세요. 광고 제작사 측에서 보내 준 영상에 등장한 돌침대 사장은 이마에 별 다섯 개를 달고 손가락 다섯 개를 좍 펴고 있었다. 별이 돌침대에 박히는 일은 당연히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관념에 있을 법한 소리를 뽑아내야 했다. 별이라는 거대 물질이 흔들림 없이 단단한 돌침대와 부딪치는 상황이었다. 자동차 문짝을 해머로 치고 외날의 서양톱을 바이올린 활로 켜서 고음부를 녹음했고, 샌드백에 아령을 두들기고 대리석 바닥에 모래주머니를 떨어뜨려서 저음부를 녹음했다. 녹음된 고음과 저음을 믹싱하니 별이 우주에서 날아와 돌에 꽂히는 듯한 효과음이 완성되었다. 광고는 마케팅 비용의 한계로 공중파에서는 송출되지 못하고 케이블TV의 프리미엄 시간대가 아닌 아침과 낮에 방영되었다. 하지만 빨간 별 다섯 개를 이마에 박은 돌침대 사장이 인터넷상의 밈이 되어 제품의 매출이 대폭 올랐다. 그 덕분에 돌침대 하나가 작업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광고 이후로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단막극 등의 의뢰가 들어왔고, 지루하거나 지치지 않을 정도의 딱 알맞은 속도로 작업이 이어졌다. 내게 맡겨지는 작업이 폭설로 쌓이거나 진눈깨비로 흩날리지 않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의 잔설로 덮이던 즈음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스팸이겠거니 무시하려는데, 부재중 통화가 2건 찍히고도 벨은 멈추지 않았다. 광고성 전화라고 하기에는 상도덕이 없다고 할 정도의 집요함이었다. 보이스 피싱도 이렇게 한 번호를 공략하지 않을 텐데. 집 나간 가족을 찾는 연락인가. 죄송합니다. 이채아 디자이너님이 이렇게 해야 받으실 거라고 하셔서. 젊은 여자는 사과부터 했다. 문자는 언제 확인할지 모르니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라고 하는 채아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럼, 채아를 통해 연락하면 되지 않나. 회장님께서 직접 연락드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회장이라는 말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요새는 낯 모르는 아무 행인에게 선생님이라고 한다는데, 회장님이야 등산회, 친목회 등 각종 모임으로 인해 길거리에 널린 직위가 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여자의 절제된 말투와 주변의 정제된 소음이 여자가 말하는 회장이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회장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필, 왜 저인가요. 회장님은 사극 마니아이십니다. 사극이라면 영화든 드라마든 가리지 않는 회장이 내가 디자인한 활 소리에 감탄했고, 수소문한 끝에 내가 일하던 스튜디오를 알아내고 채아를 통해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사연의 개연성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회장이 의뢰한 작업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회장이 투자하는 사극 영화에 사운드를 디자인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금세 납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장은 사극과 관련이 없고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운드를 디자인하기를 바랐다. 작업은 간단했고 받는 금액은 과도했다. 이 정도의 일로 그 정도의 돈을 받는 건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뭔가 대단한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그런 제안을 할 리가 없을 텐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회장 비서의 말은 곧이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몇 차례 거절하다가 일을 맡기로 했다. 결국 회장이 거부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액수가 아니었다. 회장은 왜 그렇게 큰돈을 들여서까지 이 작업을 성사하려는 것일까. 회장에게 필요한 소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 게 문제였다. 영상은 3분 30초 정도로 짧았다. 그것은 20대 초반의 여자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브이로그처럼 보였는데, 별다른 촬영이나 편집 기술이 동원되지 않은 평범한 영상이었다. 여자의 브이로그는 시종일관 무성(無聲)으로 진행되었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촬영할 때 음소거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었을 것이다. 소거된 음(音)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고 아이섀도 브러시가 화장대에 떨어지고 헤어드라이어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옷장 속 옷을 뒤적거리다 여러 벌에서 한 벌을 꺼내는. 실감 나게 소리를 입히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였고, 도대체 어디에서 상상력을 펼쳐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반나절 만에 작업을 끝냈고 바로 보내기가 민망해 이틀 묵혔다가 보냈다. 소리가 빈 부분이 있다고 하십니다. 비서의 말에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소리가 비어 있다? 알맹이가 드문 과자 봉지를 질소로 과포장했다는 비난처럼 들렸다. 사실, 과포장이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비서를 통한 회장의 의사는 내가 과포장하는 성의조차 없이 볼품없고 납작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화가 났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만한 도발이었다. 몇 번이나 비서에게 연락해서 계약금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대로 그만두는 건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다. 회장의 말은 자존심을 긁었지만,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마음을 돌려놨다. 다른 급한 작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이 일을 끝내기로 했다. 브이로그를 여러 번 돌려 봤다.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세부를 살폈다. 내가 놓친 게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췄지만, 어디가 비어 있다는 것인지 그 공백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영상에서 일어나는 충돌, 마찰 등의 물리 작용에는 그에 합당한 소리-내 판단으로는 그렇다-가 들렸다. 회장은 인식하는데 나는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내가 영상을 보고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소리는 화면 밖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나 곧 주저앉았다. 무성으로 촬영된 영상의 화면 밖 소리를 듣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회장은 무엇을 지적한 걸까. 혹시 비어 있다는 것은 있어야 할 소리가 없다는 게 아니라 소리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 아닐까. 영상 속 여자, 누굽니까? 대뜸 던진 말에 비서는 평소와 다르게 뜸을 들였다. 질문하지 않는 데에 동의하신 것 아니었나요? 그랬다. 계약서에 있던 내용이다. 그랬죠.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어요. 제 소리가 실감 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소리의 주체를 모르고 만들었는데 소리에 어떻게 실감이 있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회장님의 뜻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빈 소리를 메꿀 방법은 없겠죠.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틀 후에 비서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내 질문에 대한 회장 측의 답은 이랬다. 그녀는 수백 개의 딤플로 뒤덮인 골프공 같습니다. 겉은 매끄러우면서 울퉁불퉁합니다. 속은 타이어를 만드는 고무처럼 질기고 튼튼합니다. 그녀는 가볍지만 단단합니다. 간단히 한 손에 올릴 수 있지만 그 세계는 견고해서 함부로 부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본질은 공이어서 굴릴 수 있고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닥에 부딪혀도 농구공처럼 통통 튀기지는 않습니다. 드라이버를 풀 스윙하면 그녀는 멀어집니다. 드라이버와 마찰을 일으키고 그 반발력으로 멀어지는 그녀는 딤플의 수만큼 더 멀리 날아갑니다. 수많은 딤플로 비거리는 늘어납니다. 주인공을 알고 싶다는데 웬 골프공 타령이람. 초보자를 위한 골프 교본도 아니고 무슨 저의로 알쏭달쏭하게 의미를 엮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계약서 조항을 어긴 데 대한 장난성 조롱으로 읽혔다. 그러나 몇 번씩 읽으면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그녀는 왜 공일까. 많고 많은 공 중에서 왜 하필 골프공일까. 골프공을 뒤덮고 있다는 딤플이 무엇인지 찾아봤다. 딤플은 골프공 표면에 오목하게 파인 홈으로 일반적으로 골프공에는 300~500개의 딤플이 파여 있다. 드라이버 스윙으로 날아가는 골프공에는 공기 저항이 생기는데, 공기 저항은 골프공 앞뒤 표면의 압력 차에 의해 발생한다. 이때 딤플은 주위에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고 이로 인해 공기가 뒤섞여 공 뒤쪽 압력이 떨어지지 않아 비거리를 늘린다. 흠집이 난 골프공의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 골프공에 흠집을 내어 사용한 것이 딤플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골프공의 겉과 속. 가벼움과 단단함. 딤플과 비거리. 비로소 나는 비서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상상력이 필요했다. 나는 그녀 캐릭터에 집중했다. 골프공 같은 그녀를 수없이 떠올렸다. 작지만 단단하고 가볍지만 통통 튀지 않는. 캐릭터가 머릿속에 그려지자 그녀에게 합당한 소리가 튀어나오는 듯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입에서 계속 딤플이 맴돌았다. 딤플은 보조개라는 뜻이 있지만 외모의 특징을 표현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흠집이 많다는 뜻일까. 하지만 딤플은 비거리를 늘린다고 했으므로 결함의 의미로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목하게 파인 흠집이 결함이 아니라면,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었다. 상처. 나는 상처의 비거리를 생각했다. 그녀는 문을 (힘없이 덜컥 탁) 여닫으며 방에 들어선다. 암막 커튼이 처진 방에 (딸깍) 빛을 부른다. 그녀의 손이 화장대 의자를 (그윽) 끌어당기고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흔들린다. 초점 없는 화면이 360도로 돌아가고-슬픔이 블랙홀로 빠져드는 것 같다-스마트폰을 (드득) 거치대에 고정시키고 다시 돌아온 화면에서 수건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녀는 화장대의 거울을 응시하다가-그녀의 얼굴은 뒤통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헤어드라이어 버튼을 (틱탁) 누른다. (경쾌함 없이 심란하고 무거운 위이잉) 헤어드라이어는 돌아가고 그녀의 손길에 머리카락이 부서진다. 이윽고 헤어드라이어의 작동은 (탁) 멈추고 상반신을 거울 쪽으로 수그린 그녀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러다가 (툭) 아이섀도 브러시가 화장대에 떨어진다. 그녀는 브러시를 집다가 다시 (툭) 떨군다. 화장을 멈춘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듯 (드윽) 의자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트특) 거치대에서 뽑아 손에 든다. 옷장을 (탕) 열고 (드르륵) 옷을 휘적이다가 고른 하나를 침대에 (툭) 던져 놓는다. 나는 그녀의 영상에 소리를 입혔고 소리에 그녀의 상처가 묻어나도록 노력하였다. 볼륨과 톤을 조정하여 모든 음은 낮고 둔탁하였다. 그녀가 찍은 영상에 대한 작업은 끝났지만, 작업이 모두 끝나지는 않았다. 회장 측에서 보낸 파일에는 부가 영상이 있었다. CH 02 2023/10/30 11:27:11 그녀가 잔디밭 위 돌길을 걷는다. CH 01 2023/10/30 11:27:15 ~ 11:28:07 그녀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CCTV 화면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일 듯한 장면이었다.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CCTV 화면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리가 있지 않을까, 궁리하였다. 특히, 대문의 화면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번 채널의 카메라에서 그녀는 잠깐 나타났다가 대문을 열고 나간 뒤로 볼 수 없다. 대문 위에 포치가 있어 그녀는 흔적 없이 사라진 것 같다. 여기에서는 그녀의 멀어지는 발소리만 남게 될까. 1분이 채 되지 않는 마지막 부분을 돌리고 또 돌려봤다. 그러다가 영상이 끝나기 몇 초 앞두고 그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작업을 마친 지 2주가 지나서였다. 이번에는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나와 통화하였다. 회장은 정중하게 집으로 초대하면서 감사의 의미임을 분명히 했다. 회장 집 대문 앞에 도착한 나는 벨을 누르려다가 경사진 이면도로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몇 발짝 걸은 후에 뒤를 돌아 위를 올려다봤다. ㄱ자 형태 집의 가로획에 해당하는 곳 벽면에 CCTV가 부착되어 있었다. 노트북으로 봤던 1번 채널 화면의 각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CCTV 쪽에 고정한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데, 옆으로 그녀의 멀어지는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해의 시선이 거둬지는 시각이었다. 나는 그녀를 배웅하듯이 잠시 서서 그녀의 비거리가 얼마쯤이었을지 생각했다. 2번 채널 화면에서 그녀가 걷던 잔디밭 위 돌길의 끝에 현관문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섰다. 회랑 같은 널따란 복도의 끝 오른편에 낮은 계단이 놓여 있었다. 아래로 깊고 편평하게 펼쳐지는 공간이 높은 층고와 어우러져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을 자아냈다. 정면으로 보이는 통유리창을 왼편에 둔 소파에 회장이 앉아 있었다. 회장은 나를 통유리창을 마주 보고 있는 소파에 앉게 했다. 벨로드미코프, 좋아하시나요? 꽤 긴장했던 탓인지 실내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회장의 말로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 들어 본 적 있는 운율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회장은 의외라는 듯 팔걸이에 올려 둔 손을 턱에 대고 입을 오므렸다. 입 주변의 주름이 엷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가요? 나는 벨로드미코프를 들으려고 저런 짓도 한 사람이오. 회장은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전봇대가 서 있었다. 나만을 위한 전봇대를 설치한 거요. 공동 전봇대는 남들과 전기를 공유하는 탓에 아무리 좋은 오디오에서도 이런저런 노이즈가 들리길래 정원에다 저렇게 세워 놨어요. 그랬더니 벨로드미코프가 내 앞에서 연주하는 것 같더구려. 화구 박스가 매립된 벽난로 옆에 오디오, 앰프, 스피커가 양쪽으로 놓여 있었다. 얼핏 봐도 고가의 장비임을 눈치채게 하는 것들이었다. 회장은 오디오와 벨로드미코프에 관한 말을 늘어놓았다. 사운드에 대한 회장의 마니아적 열성은 순수한 애호와 성공한 자의 과시 사이를 오고 가는 듯했다. 어색함을 눅이는 커피가 잔 바닥에 엷은 띠를 남기고 있을 즈음 회장은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급한 작업이 있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의뢰인을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게 나에게는 예외적인 일이었고, 차 한잔 마시는 정도가 예외의 한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장은 이번 초대의 메인을 거절하면 어떡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고 나서 사업가답게 상대방이 거절하기 힘들도록 다시 제안하였다. 그럼, 식사 후 대접하려던 위스키 한 잔쯤 구경하시는 게 어때요. 과실향이 은은히 퍼지다가 끝에 스모키향이 감도는 위스키였다. 회장은 위스키 애호가이기도 한 듯했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설파하면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위스키를 마셨다. 어느덧 회장은 세 번째 잔에 접어들었고 내 위스키 잔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화면의 철 덜그럭거리는 소리, 덜그럭대다 쿵쿵거리는 소리, 그건 뭡니까? 굳게 닫혀 있던 가게 문에 철제 셔터가 열릴 때처럼 회장의 표정이 빗장을 푼 듯했다. 거래와 계약으로 묶여 있는 관계성을 술이 허물어뜨렸는지 말투도 다소 부드러워졌다. 마지막 영상 속의 여자는 대문을 나서는데,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상의 49초 지점에서 그녀가 나타납니다. 그림자로 나타난 그녀는 3초 뒤 모습을 감춥니다. 대문을 열고 나가는데 2초, 대문에서 CCTV가 보이는 지점까지 3초, 그림자로 보이는 부분이 3초, 영상의 총길이가 52초니까 그녀는 대문 앞에서 44초를 머물렀을 겁니다. 회장은 들고 있던 위스키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유리들이 따깍, 울렸다. 그 머무름은 머뭇거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멀리 떠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마 미련이 조금 남았겠죠. 대문을 손으로, 발로, 툭툭, 그래서 덜그럭거리고 쿵쿵거리지 않았을까요. 회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 느슨해진 상반신을 바로잡았다. 집의 창고를 수리하는 날이었소. 대문 앞에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있길래 인부 하나가 부주의했구나, 생각했지. 그런데 대문에 누가 시멘트 묻은 발로 찬 것 같은 자국이 있었소. 그것도 인부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업체 사장을 나무란 기억이 나오. 그 애의 흔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소. 냉정히 떠난 줄 알았지. 머뭇거렸을 줄은. 이제부터 그 애가 집을 떠나기 전에 미련이 남아 머뭇거렸다고 생각할 거요. 그래야 나 자신을 더 나무랄 수 있을 거 아니오. 나는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오. 하지만 그 애가 떠날 때까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그 애의 소리를 듣지 못했소. 마지막 위스키 잔은 다 비워지지 않았다. 회장 집을 나서려고 할 때, 각얼음들이 녹으면서 달그락. 달그락. 천장 높은 거실을 울렸다. 아버지가 남긴 카세트테이프의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을 들은 다음날,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의 다른 면을 들었다. 테이프에는 아무것도 녹음되지 않은 듯 한동안 테이프 감기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가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아버지, 지금 뭐하세요. 누나였다. 녹음하면 들릴까 해서. 아들내미 예민한 거 하루 이틀이에요. 걔가 지금 시위하는 거라니까요. 자기만 힘든 줄 아나. 그래도 혹시 모르잖니. 아버지와 누나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다시 테이프 감기는 소리만 들렸다. 아버지는 TV 스피커에 카세트를 대고 TV에서 나는지 모를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나에게 들렸던 TV 소음을 아버지와 누나는 듣지 못했다.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10대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영역의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만 들을 수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열아홉 살인 누나는 왜 못 듣나, 의아했다. TV 스피커에서 나오는 고주파 소음을 나만 들은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와 누나의 생각처럼 나의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환청이 들린 것일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왜 하필 그날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음이 그날부터 들렸을까. 그날은 어머니가 영영 집을 떠난 날이다. 나는 마치 들을 수 있기라도 한 듯 카세트 플레이어의 스피커에 귀를 가까이 댄다.
  • 광명시, 새해부터 환경교육플랫폼 ‘에코런’ 운영

    광명시, 새해부터 환경교육플랫폼 ‘에코런’ 운영

    경기 광명시가 새해부터 지역 환경교육 통합 관리 플랫폼(gmecolearn.or.kr)을 운영한다고 31일 밝혔다. 환경교육플랫폼 에코런은 환경을 배운다는 의미(eco-learn)와 환경을 위해 실천하자는 의미(eco-run)를 담고 있다. 시는 단순히 교육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에 그치지 않고,시민들이 배우고,실천하고,함께 움직이는 환경교육의 허브가 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플랫폼은 ▲환경교육뱅크 ▲생태탐사활동 ▲소통마당 등으로 구성돼,광명시 환경교육 자원과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우선 ‘환경교육뱅크’에서는 시민들과 환경교육 관계자들이 환경교육 강사, 기관‧단체, 프로그램, 교육자료 정보를 주제와 대상별로 검색할 수 있다. 또한 센터의 교구 대여를 원하는 경우 교육에 필요한 교구를 확인하고 이용할 수 있다. ‘생태탐사활동’은 시민들과 함께 지역 생태계의 소중한 가치를 함께 기록하는 공간이다. 시민들이 광명시에서 직접 관찰한 생물자원의 정보와 사진을 올리면 센터에서 확인 후 생태지도에 반영한다. 아울러 지역 생태자원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인 생태질문방도 마련된다. ‘소통마당’은 공지사항, 환경 소식, 프로그램 후기 등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시민들과 환경교육 활동가, 단체 간 연계와 협력이 강화되고 시민들의 탄소중립 실천 활동을 독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승원 시장은 “에코런이 단순 정보 제공을 넘어 시민들이 환경 문제를 배우고 실생활에서 실천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중심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시민들과 함께 배우고 행동하며, 탄소중립과 생태계 보전을 위한 선도적인 환경교육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알리익스프레스, 수수료 면제 끝…2월부터 유료 전환

    알리익스프레스, 수수료 면제 끝…2월부터 유료 전환

    알리익스프레스가 내년 2월 입점사 대상으로 시행한 수수료 면제 정책을 종료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알리익스프레스는 2025년 2월 1일부터 기존 입점사를 대상으로 수수료를 받는다고 31일 밝혔다. 알리익스프레스는 2023년 10월 한국 전용 상품관인 ‘케이베뉴(K-Venue)’를 론칭하면서 입점사 대상으로 수수료 면제 정책을 시행해왔다. 다만 수수료는 업계 최저 수준이라고 알리익스프레스 측은 설명했다. 내년 2월 1일 이후 신규 가입하는 판매자는 입점일 기준 90일, 약 3개월 동안은 수수료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연간 판매액(GMV)이 5억 원 이하인 중소기업 판매자는 운영하는 스토어 한 개에 대해서 최대 1년까지 50%의 수수료를 돌려준다. 알리익스프레스는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고 판매자와 소비자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재투자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는 것이라 설명했다. 케이베뉴의 성장으로 판매자와 상품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투자를 통해 플랫폼 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판매자와 소비자의 서비스 경험을 향상시킨다는 방침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케이베뉴에서 1000억 원 상당의 쇼핑 보조금을 지원하는 ‘1000억 페스타’와 같은 판매자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도 이어갈 계획이다. 최근 고객 센터의 판매자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했고 지난 16일부터 온라인 인스턴스 메시지 방식을 적용하면서 편의성을 강화했다.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 코리아 대표는 “알리익스프레스는 빠르게 성장하고 진화하는 시장에 적응하면서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를 향상시키고 판매자와 소비자 경험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도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가 동반 성장하는 상생형 플랫폼을 만들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애 낳아라” 계속 전화…집 찾아 “마지막 생리 언제?” 묻는 中

    “애 낳아라” 계속 전화…집 찾아 “마지막 생리 언제?” 묻는 中

    심각한 저출산 위기에 빠진 중국이 이를 해결하고자 전국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방정부는 가임기 여성에게 전화해 임신 계획을 묻거나 산전 검진을 권유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출산 시 금전적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출산율 상승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 25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저장성에서는 둘째 아이 출산 시 최대 10만 위안(약 2000만 원)의 보조금을 제공한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수도 베이징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대학에 ‘사랑과 결혼’ 교육 과정을 개설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산시성 시안시 주민들은 중국판 밸런타인 데이 ‘칠석절’에 정부로부터 “적절한 나이에 달콤한 사랑을 만나 결혼하길 기원한다. 중국 혈통을 이어나가자”라는 자동 음성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인민일보는 출산이 여성 건강에 유익하며 암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캠페인은 단순한 권유를 넘어 사생활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공무원들이 가임기 여성의 집을 찾아가 임신 여부를 묻거나 생리 주기와 마지막 생리 날짜를 확인하는 사례를 보도했다. 공무원들의 출산 독려는 임신 기간에도 이어져, 여성들은 임신 사실을 지역 보건소에 등록해야 하고 낙태를 원할 경우 가족계획 부서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28세 여성 양위미씨는 혼인신고를 하던 중 정부로부터 무료 산모 비타민을 제공받으며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여겼으나, 이후 공무원들이 집을 방문해 아기와 사진을 찍자며 사생활을 침해하자 불쾌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NYT는 “정부의 잔소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뿐만 아니라 육아 비용과 경력 단절을 우려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높아지는 출산율 장벽, 실효성은 의문 중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1.0명으로 하락하며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높은 생활비, 사교육비 부담, 청년 실업률 등 경제적 어려움과 맞물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청년들은 과거보다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추었지만 결혼과 출산을 필수 요소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가족계획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청년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로 보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이러한 캠페인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중국 인구 통계 전문가 왕펑 교수는 “중국 정부는 과거 강압적 정책으로 출산을 억제할 수 있었지만, 출산을 장려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제”라며 “높은 생활비와 경력 단절 우려를 해결하지 않는 한 출산율 반등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 “우리 같이 졸업사진 찍기로 했잖아”…소꿉친구 잃은 여중생들 ‘눈물바다’

    “우리 같이 졸업사진 찍기로 했잖아”…소꿉친구 잃은 여중생들 ‘눈물바다’

    “같이 졸업사진 찍기로 했는데…사소한 일상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 같아요” 3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30일 오후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는 여중생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참사로 변을 당한 중학교 3학년 A양의 소꿉친구 5명은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여러 번이고 흐느꼈다. 합동분향소에 헌화·묵념하는 것으로 3년 지기 친구를 기렸지만, 연락해도 닿지 않는 휴대전화 메시지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한참 동안 분향소를 서성이던 이들은 A양과 다른 반이지만, 같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죽마고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두 달 후 열리는 졸업식에서 6명이 모여 단체 사진을 함께 찍자는 A양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돼 안타까워했다. A양의 소꿉친구들은 사고 당일 학교 교사로부터 친구의 허망한 죽음을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소꿉친구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현실에 휴대전화 속 A양의 사진만 보며 마음을 진정했다. A양의 친구 김모(16)양은 “중학교도 같이 졸업하고, 졸업사진도 같이 찍기로 했다”며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소한 일상들이 한순간 무너져 내린 것만 같다”고 털어놨다. 일면식은 없지만, 희생자들의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접한 시민들도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이들은 건네받은 국화꽃 한송이를 헌화했고 두 눈을 감은 채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한 시민은 “차가운 공항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유가족들을 생각하며 오게 됐다”며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언니, 동생이었을 희생자들의 허망한 죽음에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정부는 29일부터 1월 4일까지 7일간을 전남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서울, 세종 등 전국 17개 시도와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8시 5·18 민주광장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는 오후 3시 기준 700여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애도 기간으로 정한 다음 달 4일까지 오전 8시~오후 10시 운영된다. 지난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착륙 중 활주로 외벽에 충돌한 뒤 화재가 발생해 179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수색 초기 구조된 승무원 2명(남성 1명, 여성 1명)을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여객기에는 한국인 173명과 태국인 2명을 포함해 모두 175명이 탑승했고, 승무원은 6명이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정부 수반의 대행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과 송구한 마음”이라며 “전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들은 조기를 게양하고, 공직자는 애도 리본을 달겠다”고 전했다. 이어 “국토교통부에 설치된 중앙사고수습본부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등과 함께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여 책임소재를 밝히고, 유족과 국민께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며 “향후 비참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 [세종로의 아침] 두 대통령의 몰락

    [세종로의 아침] 두 대통령의 몰락

    48.56% 득표로 당선된 국가 최고 권력자가 ‘비상계엄령 선포’라는 근현대사의 용어를 45년 만에 소환했을 때, 기자는 한국을 떠나 미뤄 뒀던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접한 고국의 비상사태는 현실감이 없었고, 유튜브 실시간 중계로 지켜본 군인들의 국회 진입 모습은 한 편의 부조리극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울린 업무 카톡방 메시지에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허구가 아닌 ‘실제 상황’임을 깨닫는 현실감이 돌아왔다. 계엄사령부가 내린 포고령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엄포가 담겼고, 카톡방 폐쇄 가능성에 대비해 정권의 힘이 닿지 못하는 러시아산 메신저 ‘텔레그램 피난’이 이어졌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지켜보는 국민이야말로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을 테다. 지난 대선을 앞뒀을 당시 법조팀을 떠나 재계를 취재하는 산업부로 막 자리를 옮긴 탓에 ‘검찰 기자가 보기에 이번 대선은 어떻게 될 거 같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에서 너는 누구를 더 싫어하느냐를 묻는 것이었다. “누구를 지지함을 떠나 누군가의 인신을 구속하고 그들의 삶을 나락으로 밀어내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던 분이 국가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살리는 자리’에 맞을지는 의문입니다.” 나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국민은 야당을 향한 ‘경고성 계엄’이라는 궤변을 통해 그릇된 신념을 가진 자가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공동체가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를 체득하는 중이다. 극우층만 바라보며 군불을 때고 있는 대통령에 정치혐오와 좌우 대립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고, 원화 가치는 한 달 새 5%가량 고꾸라지면서 환율은 1500원에 근접하고 있다. 그릇된 신념과 확신에 찬 지도자의 모습을 공교롭게도 정권의 찍어내기 희생양임을 호소하는 ‘체육 대통령’에게서도 읽을 수 있었다. 채용 비리를 비롯한 각종 비위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최근 3연임 도전을 공식화하는 자리에서 약 80분을 자기 변론에 할애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을 타깃으로 한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국무조정실 정부 합동 공직복무점검단 조사, 경찰과 검찰의 수사에 이은 최근 감사원의 체육회 감사 착수를 아울러 언급하며 “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날 압박하며 악마화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체육계도, 나도 더 물러날 룸(공간)이 없다”는 말로 출마 배경을 밝혔다. 2016년 통합체육회 출범 당시 선거에서 당선돼 올해까지 8년간 체육회를 이끈 이 회장은 체육회 재정을 확충하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와 2024 파리올림픽 종합순위 8위 달성을 끌어낸 점 등을 자신의 공로로 치켜올렸다. 문체부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출범은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만이 완수할 수 있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국가스포츠정책위는 문체부의 주된 기능 중 하나인 국가 체육 정책과 행정을 떼어내 별도의 독립 기구로 이관하자는 취지로, 이 회장의 이번 체육회 선거 핵심 공약이기도 하다. 검·경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잠행을 이어 오던 이 회장은 최근 정세가 계엄 후폭풍으로 대통령 및 주요 국무위원 탄핵 국면으로 전환되자 이참에 자신을 ‘무도한 정권’의 대척점에 놓고 체육 개혁을 완수할 투사 포지션을 잡은 모양이다. 올림픽 금메달과 국제대회 우승과 같은 일부의 성과에만 집착해 출신 대학이나 종목별로 밀어주는 끼리끼리 문화와 선수 인권 보호에는 눈감았던 그의 과오를 들추며 ‘이제는 바꿔야 할 때’를 외치는 체육계 내부 목소리도 한낱 정치적 구호로 무시한다. 대통령이든 체육 대통령이든 구성원의 신뢰를 잃은 지도자는 한시라도 빨리 그 직에서 내려오는 게 공동체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박성국 문화체육부 차장
  • 계엄 성공했다면… 한국도 이런 내전 겪었을까 [영화 프리뷰]

    계엄 성공했다면… 한국도 이런 내전 겪었을까 [영화 프리뷰]

    극단적 분열에 두 동강 난 美 그려내 국내 상황과 맞물려 경종 울리는 듯 기자회견을 앞둔 대통령이 자신의 연설문 일부를 중얼거리며 흡족한 듯 미소 짓는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그는 준엄한 표정으로 “우린 이제 역사상 위대한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며 자화자찬한다. 정부군이 군대를 동원해 시민들을 제압하고 미국 곳곳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31일 개봉하는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극단적 분열로 최악의 내전이 벌어진 미국의 모습을 기자들의 눈으로 비춘다. 정부와 반군이 서로 무차별 폭격을 이어 갈 무렵, 베테랑 종군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 분)와 조엘(와그너 모라 분), 새미(스티븐 헨더슨 분), 그리고 리를 동경하는 신입 기자 제시(케일리 스페이니 분)는 내전을 일으킨 대통령을 인터뷰하고자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DC로 향한다. 영화는 이들의 1379㎞ 여정을 따라가면서 내전의 참혹함을 보여 준다. 정부가 무너진 곳에는 사람들의 폭력만 자리잡았다. 길거리에는 주검이 넘쳐나고, 건물은 폭격에 무너졌다. 가게를 약탈한 이들을 붙잡아 매달아 놓은 이가 있는가 하면 군인들은 자기 마음대로 사람들을 죽이기도 한다. 이런 내전을 촉발한 이가 다름 아닌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얼마 전 비상계엄을 겪은 우리에게 이 영화는 그저 영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엘은 “대통령을 만나면 미 연방수사국(FBI)을 해체하고, 국민을 공습한 이유를 묻겠다”고 주먹을 쥔다. 미치광이 지도자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벌이는 일의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반군을 분리주의자로 몰아붙이고 “국가에 충성하는 이들이 승리한다”며 분열을 부추긴다. 합의된 원칙으로 세워진 초강대국 미국조차도 정치에 따라 무장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계엄을 겪은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통용될 터다.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한 앨릭스 갈런드 감독은 “분노와 걱정이 혼재된 상태에서 작품을 썼다. 대본을 쓸 때 느꼈던 당혹감은 (영화를 완성한 후에도)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실을 알리는 이들 덕분에 내전의 참상은 기록되고 전달된다. 영화 속 기자들의 카메라는 총알이 빗발치고, 포탄이 터지고, 피를 흘리는 내전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기자들은 총격전을 벌이는 군인들에게 바짝 붙어 셔터를 누른다. 군인들이 총을 쏘고 잠시 멈춘 순간을 비집고 들어가 셔터를 누르는 모습은 영락없이 ‘카메라=총’임을 보여 준다. 셔터를 누른 이후를 정지화면으로 잡아내 마치 사진처럼 보여 주는 숏들이 인상적이다. 시가지 액션을 비롯해 헬기와 탱크 등의 폭격을 과장 없이 담아내 오히려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영화 하이라이트인 반군의 백악관 진입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내전을 촉발한 미치광이 대통령의 최후가 그저 씁쓸하게 다가온다. 분열이 만연한 이 시대에 마치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109분. 15세 이상 관람가.
  • 비대위 띄운 권영세 “계엄·탄핵 국민께 깊이 사과”… 국민의힘, 첫 공식 사과

    비대위 띄운 권영세 “계엄·탄핵 국민께 깊이 사과”… 국민의힘, 첫 공식 사과

    권영세 국민의힘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 드린 점을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비대위 출범을 알렸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 16일 만에 국민의힘에서 나온 첫 공식 사과다. ‘권영세 비대위’는 탄핵에 공개 찬성한 김재섭(초선·서울 도봉갑) 의원을 조직부총장으로 발탁하며 화합을 예고했다. 다만 친한(친한동훈)계 가운데서는 계파색이 비교적 강하지 않은 의원만 일부 포함됐다. 권 위원장은 이날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의결로 공식 임명됐다. 애초 대국민 사과를 직접 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취임사를 서면으로 대신했다. 권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처절하게 반성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서는 “사법이 할 일은 사법에 맡겨 놓고 국회는 국회의 역할을 할 때”라며 “정중히 요청드린다. 입법 폭거를 멈춰 달라”고 촉구했다. 비대위 인선도 마무리됐다. 비대위원으로는 3선 임이자(경북 상주·문경), 재선 최형두(경남 창원 마산합포), 초선 김용태(경기 포천·가평), 최보윤(비례) 의원을 택했다. 임 의원은 노동전문가로 당의 궂은일에 앞장서 왔고 대구·경북(TK) 정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최형두 의원은 계파색이 옅은 인물로 분류된다. ‘90년생’ 김용태 의원은 이준석 지도부의 청년최고위원, 황우여 비대위를 거쳐 세 번째 지도부가 됐다. 최보윤 의원은 사법연수원 시절 사고로 지체 장애 판정을 받은 후 사회적 약자 보호 활동에 앞장선 인물로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최보윤 의원은 친한계로 분류되지만 계파색이 짙지는 않다. 권 위원장은 당 살림과 조직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에 3선 이양수(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 의원을 택했다. 이 의원과 함께 당 조직을 총괄하는 조직부총장에는 김재섭 의원이 발탁됐다. 권영세 비대위의 성공 가늠자로 여겨졌던 탄핵 찬성파 포용 메시지와 더불어 험지 도봉에서 승리한 ‘김재섭 모델’을 수도권으로 확장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전략기획부총장에는 친윤(친윤석열)계 조정훈(재선, 서울 마포갑) 의원을 기용해 균형을 맞췄다. 권 위원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에는 강명구(초선, 경북 구미을) 의원이 임명됐다. 강 의원은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을 지냈고 한동훈 전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내란 자백”이라고 하자 가장 거칠게 항의했던 인물이다. 수석대변인에는 신동욱(초선, 서울 서초을) 의원을 임명했고, 비대위 당연직인 김상훈(4선, 대구 서구) 정책위의장은 유임됐다. 친한계 주진우(초선, 부산 해운대갑) 법률자문위원장도 유임됐다. 다만 이번 인선에는 강성 목소리를 냈던 친한계 핵심들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친한계 일부를 받아들이되 지도부 내 갈등은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비대위가 현역의원으로만 꾸려지자 일부 원외위원장들은 31일 상임전국위에서 임명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며 추가 인선을 요구했다.
  • 바이든 “깊은 슬픔”… 찰스 3세 “나와 아내는 애도한다”

    바이든 “깊은 슬픔”… 찰스 3세 “나와 아내는 애도한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대해 세계 각국의 애도와 위로가 이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이번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동맹으로서 미국 국민은 한국 국민과 우정의 유대를 공유한다. 이번 비극으로 영향을 받은 분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모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성명에서 “아내와 나는 무안에서 극심한 인명 피해가 난 끔찍한 항공 사고에 대해 알게 돼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모든 희생자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전했다. 중남미 볼리비아 외교부도 성명을 내고 “제주항공 항공기 사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생존자들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며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과 연대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멕시코와 칠레, 페루 등도 외교부와 주한 공관 등을 통해 일제히 “깊은 위로와 연대”를 표했다.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서는 30일 ‘#한국 여객기 화재로 179명 사망’이라는 해시태그 관련 게시물이 8억 1000만건 조회됐으며 12시간 동안 검색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 네티즌들은 암 완치 기념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는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어머니 등의 사연에 주목하며 ‘수많은 인명이 희생돼 슬프다’, ‘희생자들의 영면을 기원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은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 등 다수의 추모 글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영국 가디언은 “전 세계가 한국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 이번 비극은 (비상계엄 사태와 함께) 한국의 2024년을 정의하게 될 두 사건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공주 도착했는가?”… 끝내 답이 없는 가족

    “공주 도착했는가?”… 끝내 답이 없는 가족

    제주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 피해자 유족들은 마지막으로 고인과 주고받은 연락만 하염없이 지켜보며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유족의 카카오톡 가족 대화방(사진)에는 수신자가 카톡을 읽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는 ‘숫자 1’ 표시만 속절없이 떠 있었다. 무안공항에서 만난 김모(61)씨는 ‘공주’라고 저장한 딸과 나눈 대화창만 들여다봤다. 김씨의 딸은 사고가 벌어지기 전날인 지난 28일 밤 “오늘 새벽에 비행기 타용.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쯤?”이라는 카톡을 가족대화방에 올렸다. 이후 김씨가 “공주 도착했는가?”라고 연락했지만 딸은 끝내 이 메시지에 답하지 못했다. 이번 사고로 아들과 며느리, 6살 손자를 잃은 최모(64)씨의 휴대전화에도 아들과의 마지막 대화가 남아 있다. 가족대화방에서 최씨의 아들은 “오늘 밤에 돌아갑니다. 엄마도 경주 잘 갔어”라고 물었다. 최씨는 “아들이 어제 출발 전 보낸 카톡이 마지막이다”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 한국에 시집온 40대, 엄마 보러오던 20대… 태국도 울음바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숨진 179명 가운데 태국인 탑승객 2명은 가족과의 만남을 위해 태국과 한국을 오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30일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따니 상그랏 주한 태국대사는 사고가 난 제주항공 7C2216편에 탑승한 태국인 여성 45세 A씨와 22세 여성 B씨가 숨졌다고 밝혔다. A씨는 7년 전쯤 일을 하러 한국으로 와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매년 한 차례 고향을 방문했던 A씨는 이달 초 남편과 함께 태국 치앙마이를 여행하고 고향에 머물렀다. 지난 14일쯤 남편이 먼저 귀국했고 A씨는 따로 귀국하다 유명을 달리했다. A씨의 아버지(77)는 인터뷰에서 “승객 중 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기절할 뻔했다”며 “뉴스에만 나오는 사고를 당하는 것이 딸일 것이란 생각은 못 했다”고 말했다. 또 A씨가 태국을 떠나기 전 점심식사를 함께하자고 했지만 들어주지 못했다며 “딸이 화가 나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흐느꼈다. 방콕대 항공경영학과 4학년으로 승무원을 꿈꾸던 B씨는 10여년 전쯤 새 가정을 꾸려 한국에서 지내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두 번째로 한국을 오던 길이었다. B씨의 삼촌은 “그녀는 우리의 자랑이었다”며 슬퍼했다. B씨 어머니는 29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탑승했다는 B씨의 메시지를 받은 뒤 공항에서 딸을 기다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이날 “태국인 2명을 포함한 수많은 소중한 생명을 잃어 가슴이 아프다”며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유가족 지원 등을 위해 주한 태국대사관 및 주태국 한국대사관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집에 가서 보자’ 메시지는 마지막 인사가 됐습니다

    ‘집에 가서 보자’ 메시지는 마지막 인사가 됐습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이틀째인 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관광객들로 붐벼야 할 세밑이지만, 공항 안은 오열과 절규가 가득했다. 토끼 머리띠를 한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30대 여성은 아이를 보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차가운 공항 바닥에 주저앉은 70대 노인은 ‘신원 확인’ 안내 방송이 나올 때마다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번 참사로 부친의 팔순을 맞아 여행을 떠난 일가족 9명이 변을 당했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두 아들과 비행기를 탄 아버지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 사망자 179명 중 164명에 대한 신원 확인 절차가 마무리됐다. 일부 희생자는 지문 감식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시신 훼손이 심하거나 어린이 등의 경우 신원 확인에 다소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고인이 남긴 ‘집에 가서 보자’는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은 이제 가족들이 한평생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 마지막 인사가 됐다. 서울신문은 유가족과 지인 인터뷰를 바탕으로 가슴 아픈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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