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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여기] 우리의 삶은 문화재 아닌가/오상도 문화부 기자

    [지금&여기] 우리의 삶은 문화재 아닌가/오상도 문화부 기자

    상상이나 가는가. 그것은 꿀단지요, 참기름병이었다. 연꽃과 갈대, 국화, 모란, 버드나무는 물론 학이나 구름을 음각 혹은 상감 문양으로 정성스럽게 새겨 유약을 바른 뒤 구워낸 ‘고려청자’ 이야기다. 은은한 비색이 풍기는 화려한 풍채 덕분에 최고 수천 만원을 호가하고, 혹여 손때나 탈까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한 귀한 그릇이다. 풍만하고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 밑으로 내려올수록 우아한 선은 조형적인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평가까지 받아 왔다. 그런 청자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꿀이나 참기름, 술을 담아 보관하던 단순한 용기에 불과했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고려청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진 것은 3년여 전이다. 13세기 초 전라도 강진에서 개경으로 곡물을 싣고 가다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 침몰한 ‘마도 2호선’이 발굴되면서부터다. 선박 내부에서 출토된 도자기는 모두 163점이었는데, 이 중 140점이 청자였다. 또 청자 가운데 매병(梅甁) 2점에는 죽찰(竹札·나무로 만든 이름표)이 달렸다. 여기에는 내용물과 명칭, 받는 사람의 이름이 적혔다. 이를 통해 음각문양이 장식된 매병에는 꿀이, 상감문양이 장식된 매병에는 참기름이 담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망각하지 말아야 할 사실도 있었다. 두점의 청자에 담긴 꿀과 참기름은 고려시대 최고 권력기구인 중방(重房) 도장교인 오문부에게 보냈던 것이다. 지방의 토호나 권력자가 청탁의 대가로 중앙의 권력자에게 은밀히 보내던 뇌물일 수도 있는데, 죽찰을 통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벼·조·메밀·들깨 등의 곡물과 함께 보냈던 선물들이 무려 800여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모조리 드러난 셈이다. 최근 전남 진도 앞바다의 해저 유물 발굴 현장을 다녀왔다.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1000년 넘게 갯벌이 보듬어온 유물들은 당시 삶의 모습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것이다. 철제 솥부터 무늬가 없는 투박한 토기, 다듬잇돌, 동전까지 역사의 파도를 거슬러 올라갔다. 기껏 100년 살다가는 인생인데, 보잘것없는 인간들이 남긴 물건들은 어느 새 역사요, 문화재가 돼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평소 옷매무새 하나 흐트러지지 않게 가다듬을 일이다. 세상에 그야말로 비밀은 없다. 별 생각 없이 내뱉은 욕설이나 남을 비방하는 댓글도 후대에는 사료나 문화재로 전해질 수 있다. 하루하루는 소중한 삶이요, 또 역사다. sdoh@seoul.co.kr
  • 바람도 쉬어가는 억새 명소5선

    바람도 쉬어가는 억새 명소5선

    억새를 찾을 때다. 비슷한 시기 절정을 이루는 단풍이 현란한 빛깔로 장삼이사들의 가슴을 달뜨게 만든다면, 억새는 은은한 빛깔로 달뜬 가슴을 차분하게 가라 앉힌다. 억새는 보는 시간대에 따라 느낌이 사뭇 다르다. 불리는 별칭도 달라진다. 동틀 녘부터 해가 머리 위에 머무는 오후까지는 ‘은억새’라 불린다. 볕에 반사된 억새꽃이 희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다. 해질 무렵엔 황금빛으로 변한다. 이름도 ‘금억새’로 바뀐다. 이는 억새 감상에 적합한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힌트이기도 하다. 전국의 억새 명소를 모았다. 열흘 붉은 단풍은 드물지만, 억새는 달포 넘게 고운 자태를 이어간다. >>‘분지 위 탁트인 전망’ 명성산 억새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세 가지 감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눈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깔을 보고, 귀로는 바람결에 사각대는 노랫소리를 담고, 손으로는 부드러운 억새꽃의 감촉을 느껴야 한다는 거다. 호사가들의 말이긴 하나 따라 해서 나쁠 건 없지 싶다. 수도권에서는 명성산이 첫손에 꼽힌다. 경기 포천과 강원 철원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억새밭은 정상 언저리 능선에 걸쳐 있다. 산정호수 주차장에 차를 두고 등룡폭포 쪽으로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명성산 삼각봉에서 내려온 분지 위에 펼쳐진 억새밭이 장관이다. 면적만 20ha(약 6만 평)에 달한다. 탁 트인 전망이 장쾌하고, 능선 아래로 기암과 초원이 번갈아 펼쳐진다. 발 아래 늘어선 산정호수의 자태도 넉넉하다. 27일까지 명성산억새꽃축제가 열린다. 억새밭에 세워진 빨간 우체통이 이채롭다. 사연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정확히 1년 뒤에 배달된다. 팔각정에선 사물놀이, 댄스스포츠 등 흥겨운 잔치판이 열리고, 산정호수에선 미2사단 군악공연 등이 이어진다. 인근 맛집으로 관인면 냉정리 샘물매운탕이 꼽힌다. 메기매운탕만 파는 집인데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기 때문에 저녁에는 맛보기 힘들다. (031)533-6880. >>‘억새 바다’ 울주군 간월재 울산 울주군의 간월재(900m)는 신불산(1159m)과 간월산(1068m)의 능선이 내려와 만난 자리다. 두 산의 능선을 타고 내려온 억새들이 간월재에서 거대한 억새의 바다를 펼쳐낸다. 바람이 산자락을 간질일 때마다 하얗게 물결치는 모습은 영락없는 파도다. 최근 ‘영남 알프스’의 1000m급 고봉들을 연결한 29.7㎞짜리 ‘하늘억새길’이 선을 보였다. 하지만 당일 여정을 선호하는 수도권 등산객들에겐 간월재에서 신불산 억새평원을 다녀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들머리는 등억리다. 오르는 길은 다소 벅찬 편. 4~5시간 정도 소요된다. 등억리에 온천단지가 조성돼 있다. 산행 피로를 풀기 좋다. 울주까지 가서 슬도(瑟島)를 안 보고 올 수는 없다. 울산시 동구 방어진항 끝에 있는 작은 섬인데, 모래가 굳은 사암으로 이뤄진 무인도다. 섬 주변 바위마다 뚫린 작은 구멍들에 파도가 칠 때마다 차르륵 차르륵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름지어 졌다. 슬도까지 연륙교가 놓여져 있어 쉬이 오갈 수 있다. 작천정 옆 작천정휴게소는 피라미매운탕이 맛있는 집. 삼남면 교동리에 있다. (052)262-1662. 언양읍 외곽엔 언양불고기집들이 몰려 있다. >>‘꽃이 된 밭’ 정선 민둥산 강원권에서는 정선의 민둥산(1119m)이 첫손 꼽힌다. 60만㎡에 이르는 산자락이 죄다 억새밭이다. 정상 언저리엔 나무 한 그루 없다. 예전 화전민이 일구던 밭이 고스란히 억새밭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들머리는 증산초등학교다. 오르는 길은 급경사 코스(2.6㎞)와 완경사 코스(3.2㎞)로 나뉜다. 두 코스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힘든 건 매한가지다. 발구덕 마을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다. 예서 정상까지는 900m 정도에 불과하다. 된비알이 계속되기는 하지만 30분 안팎에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다만 억새꽃축제가 열리는 11월 3일까지는 발구덕 마을로 향한 도로가 통제된다. 정선의 최고 인기 메뉴는 곤드레밥이다. 증산초교 정문 근처 민둥산 가든(033-592-3000), 신동읍 예미리 외곽 도로 앞에 있는 정원광장식당(378-5100), 화암약수 주차장 인근의 두메산골(563-5108) 등이 소문났다. 정선역에서 가까운 동광식당(563-3100)은 황기를 넣어 만든 왕족발과 메밀콧등치기국수를 잘 한다. >>‘서해의 등대’ 홍성 오서산 충남에선 홍성의 오서산(791m)이 가장 앞줄에 선다. 근동에서 가장 높아 ‘서해의 등대’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빼어나다. 정상에 서면 멀리 원산도와 삽시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고, 천수만과 안면도도 손에 잡힐 듯하다. 억새밭은 정상에서 북쪽의 740m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곳곳에 산재한다. 민둥산 등에 견주자면 규모는 작지만 서해와 어우러진 풍광만큼은 어느 억새 명산에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억새밭을 붉게 물들이는 서해 낙조가 빼어나다. 이 풍경과 마주하기 위해 오후 3∼4시에 오르는 등산객들도 많다. 광천읍에서 가까운 담산리 상담마을에서 시작해 정암사를 거쳐 오르는 게 일반적인 산행 코스다. 오서산 동남쪽의 명대계곡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다. 산길이 수려하고 경사도 가파르지 않다. 두 코스 모두 4시간 정도 소요된다. 하산 뒤 보령시의 청라은행마을에 들르는 것도 좋겠다. 수령 100년이 넘는 토종 은행나무 3000여 그루가 마을 곳곳을 감싸고 있다. 26~27일 단풍축제도 열린다. 제철 먹거리를 찾는다면 천수만의 ‘천북 굴단지’가 제격이다. 굴칼국수, 굴밥 등 갖가지 굴 음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쪽빛 바다’ 품은 장흥 천관산 전남 장흥 천관산(723m)은 팔도를 통틀어 억새 명산으로 인기가 높다. 단순히 억새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석같은 기암들이 널렸고, 그 뒤로 크고 작은 섬들을 끌어 안은 쪽빛 바다가 밑그림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억새밭은 동쪽 연대봉과 서쪽 환희대 사이 약 1㎞의 주능선에 펼쳐진다. 장천재∼장안사∼연대봉∼장천재의 원점회귀산행이 억새 탐승에 최적이다. 장흥에선 먹거리를 탐해도 좋다. ‘남해의 보물’ 득량만에서 다양한 갯것들을 쏟아 내기 때문이다. 워낙 먹거리가 다양해 계절을 구분 짓는 게 부질없지만 굳이 꼽자면 석화(굴)와 장흥삼합 등이 앞줄에 선다. 용산면 남포마을에 굴구이집들이 많다. 일출명소로 유명한 소등섬을 보며 굴 구워 먹는 재미가 각별하다. 한우와 키조개, 표고버섯을 함께 먹는 장흥삼합은 장흥 읍내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수문해변의 바지락회무침도 일미다. 싱싱한 바지락을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썩썩 비벼 낸다. 따뜻한 밥에 올려 비벼 놓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가을 향한 일편단심

    가을 향한 일편단심

    먼저 선글라스부터 벗을 일입니다. 아니, 누가 일러주지 않더라도 저절로 그리될 겁니다. 그래야 오대(五臺)의 고운 산색을 온전히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오대산 정상을 물들였던 단풍이 산 아래로 짓쳐 내려 왔습니다. 상원사와 월정사 등 어디라 할 것 없이 현란한 빛깔 일색입니다. 오대산을 일러 다섯 봉우리가 만든 연꽃 봉오리라 한다지요. 그러니 가을 오대산을 붉은 연꽃이라 해도 틀리지는 않겠습니다. ‘첫 단풍 보려면 오대산으로 가라’고 했다. 애초 산사람의 입에서 나왔을 법한 이 말. 요즘은 거의 관용구처럼 여행책자 등에 쓰이고 있다. 지금 단풍 행렬이 오대산을 지나고 있다는데, 그 말뜻 헤아릴 겨를이 있으랴. 무턱대고 오대산을 찾을밖에. 오대산 단풍과 만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는 단풍 산행에 앞서 여러 변수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예컨대 단풍이 월정사까지 내려온 이맘때라면 굳이 오대산 주봉인 비로봉(1565m)까지 힘들여 오를 필요가 없다. 비로봉 부근은 이미 겨울 문턱에 들어섰고, 단풍은 산 아래 상원사 일대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만 다녀와도 훌륭한 단풍 테마 여정이 된다. 좀 더 걷겠다면 상원사를 지나 두로령 정상까지, 혹은 두로령 7부 능선쯤의 북대 미륵암까지 다녀오는 방법도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를 거쳐 북대 미륵암까지 오가는 것만으로도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등산 자체가 목적이라면 상원사까지 버스 등 차량을 이용해 오른 뒤 두로령길~북대암~상왕봉(1491m)~비로봉을 거쳐 상원사로 내려오거나, 상원사에서 곧장 비로봉으로 오른 뒤 원점회귀하면 된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선재길’이다. 오대천 옆으로 446번 지방도가 나기 전, 스님들이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가던 옛길이다. 거리는 9㎞. 단언컨대, 단풍 감상에 ‘최적화’된 길이라 보면 틀림없다. 오대산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면 울창한 전나무 숲길이 시작된다. 이른바 ‘천년의 숲길’이다. 1㎞ 남짓한 숲길 주변엔 아름드리 전나무 1700여 그루가 수직세상을 펼쳐내고 있다. 선재길은 월정사 부도밭을 지나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부터 시작된다. 오대천 위를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숲길이다. 들머리 안내판에 따르면 ‘선재’는 ‘동자’(童子)를 뜻한다.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선재’라는 것. 그러니 이 길 따라 자박자박 걷다 보면 누구라도 ‘선재’가 될 수 있을 터다. 숲 속 옛길은 조붓하다. 나뭇잎이 켜켜이 쌓여 푹신하고, 졸졸대는 계곡물 소리와 산새소리도 정겹다. 숲의 향기는 싱그럽다. 그 속에 깃든 공기 또한 청량하기 그지없다. 선재길은 혼자 걷자니 넓고, 둘이라면 딱 좋을 너비다. 숲길을 걷다 계곡으로 내려서 징검다리를 건너고, 다시 숲길에 드는 과정을 반복하며 상원사까지 이어진다. 여기에 사이사이 섶다리와 나무다리도 놓여졌다. 길섶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늘어섰다. 단풍나무는 붉게 물들었고, 자작나무는 흰 수피를 드러내고 있다. 여태 초록의 기운 여전한 젊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고목들은 세월이 더께로 쌓여 검은 빛을 낸다. 노랗게 잎을 물들인 활엽수도 드문드문 섞여 있다. 해마다 가을철에 오대산이 펼쳐 보인다는 ‘오색단풍’이다. 그 위로 돌 던지면 쨍~하고 부서질 것 같은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더없이 완벽한 산의 자태다. 상원사 앞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상원사로 드는 길, 오른쪽은 두로령으로 향하는 길이다. 상원사 들머리의 관대걸이는 이곳을 즐겨 찾았던 조선의 임금 세조가 의관을 걸어두었던 곳이다. 관대걸이에서 상원사까지는 5분 거리다. 상원사 주변 계곡의 단풍도 빼어나다. 주로 노란빛 단풍이 산죽나무 군락지와 계곡 사이에 펼쳐져 있다. 본격적인 오대산 산행은 상원사를 지나면서 시작된다. 사자암과 적멸보궁을 지나 비로봉까지 다녀온다. 두로령길로 향하는 등산객들도 적지 않다. 원점회귀하는 상원사 코스보다 볼거리가 많은 까닭이다. 거리는 13㎞ 정도다. 북대 미륵암 못 미쳐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상왕봉과 비로봉을 지나 상원사로 내려선다. 소요시간은 4시간 이상. 선재길에 이어 걷자면 7~8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두로령길에서 만나는 단풍은 선재길과 다소 다르다. 선재길 단풍이 강렬한 빛깔과 또렷한 자태의 도회지 여성을 닮았다면, 두로령은 채도가 낮고 수수한 민낯의 시골 아가씨에 가깝다. 드러내는 방식도 마찬가지. 선재길 단풍은 거리낌이 없다. 어디서든 도도한 자태를 뽐낸다. 이에 견줘 두로령 단풍은 보일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운다. 이맘때 평창을 찾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 불발령(1052m)이다. 지난여름 다녀온 이후, 줄곧 단풍 추이를 지켜봤던 곳이다. 불발령은 불발현 혹은 불바래기 등으로 불린다. 일부 현지 주민들은 옛 진한(辰韓)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태기왕이 “불을 밝히라” 명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믿고 있다. 산 중턱 마을의 이름이 ‘화명동’(火明洞)인 걸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지 싶다. 불발령길은 줄곧 흥정계곡을 따라간다. 길이는 약 16㎞. 여기도 불이 붙었다. 불발령의 주인은 붉은 단풍이다. 흥정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단풍나무들이 얼굴을 붉히고 섰다. 흥정계곡엔 유난히 낙엽송 군락이 많다. 오래전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이다. 1968년 이 일대에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계곡 여기저기 마을을 이루고 살던 화전민들도 뿔뿔이 흩어졌는데, 정부가 그들이 살던 마을과 밭 등에 죄다 낙엽송을 식재했던 것이다. 노랗게 변하는 낙엽송 단풍도 볼 만한데, 아직은 이른 편이다. 평창군청의 최일선 문화관광해설사는 “입동 무렵 김장을 담글 때면 노란 낙엽송 잎이 양념 노릇하듯 절인 배추 위로 툭툭 떨어진다”고 했다. 입동이 새달 7일. 그때쯤이면 불발령은 다시 한번 노란 불을 피울 터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33)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을 나와 국도 6호선으로 갈아탄 뒤 월정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곧장 가면 된다. 주차요금을 내면 상원사(332-6666) 앞까지 승용차로 갈 수 있다. 문화재관람료는 3000원, 주차료는 5000원이다. 하지만 선재길을 걷기 위해선 국립공원 매표소나 월정사에 차를 두고 가는 게 낫다. 선재길을 걸은 뒤엔 상원사에서 진부터미널로 가는 군내버스를 이용해 되돌아 나가면 된다. 군내버스는 하루 아홉 차례 진부와 상원사를 오간다. 평창운수 335-6963. 오대산국립공원(odae.knps.or.kr) 관리사무소 332-6417. 불발령을 먼저 들르려면 영동고속도로 장평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수월하다. →잘 곳 태기산 아래 깨끗한 펜션들이 몰려 있다. 불발령 쪽에선 허브솔 펜션이 깨끗하다. 복층식 구조의 목조 가옥으로 가족들이 묵어 가기에 맞춤하다. 334-4445. 흥정계곡 초입의 붓꽃섬 캠핑장도 추천할 만하다. 캠핑 사이트 외에서 펜션 11개 객실을 운영하고 있다. www.irispension.co.kr, 336-1771. →맛집 평창한우마을에서 비교적 싼값에 질 좋은 한우를 맛볼 수 있다. 봉평점 334-9777, 오대산점 332-8311. 메밀요리는 미가연이 널리 알려졌다. 봉평읍에 있다. 335-8805~6. 토담숯불구이는 주인이 직접 기른 한우를 잡아 판다. 아침에 맛보는 백반도 정갈하다. 336-2227.
  • [길섶에서] 부산 밀면/서동철 논설위원

    한 냉면 애호가는 “냉면은 역시 평양냉면이야. 함흥냉면은 그냥 국수지!”하며 메밀로 사리를 만드는 평양냉면 예찬론을 펴곤 했다. 그런데 남북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유명한 평양의 냉면집 옥류관을 다녀온 사람도 늘어났다. 하지만 차림표에 ‘냉면’은 없었다고 한다. 정작 평양에서는 ‘국수’였다. 같은 이치로 북한에서 함흥냉면은 농마국수라고 부른다. 농마는 녹말의 사투리다. 밀면은 6·25전쟁의 부산물이다. 메밀 대신 구호물자로 흔하던 밀가루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녹말이 첨가된 밀면은 평양냉면보다는 함흥냉면의 DNA를 더 많이 물려받은 듯하다. 실제로 밀면은 함남 흥남시 내호리 출신의 실향민이 1954년 부산에서 개업한 내호냉면을 시초로 친다. ‘부산 밀면 이야기’ 전시회가 어제 부산임시수도기념관에서 개막됐다. 내호냉면 스토리며, 밀면을 뽑던 국수틀과 메뉴판, 매출장부도 흥미를 끈다. 서울에서도 아직 제대로 된 냉면 전시회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지역의 역사를 간직하려는 부산 사람들의 노력이 값지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래섬, 메밀꽃 필 무렵

    서래섬, 메밀꽃 필 무렵

    11일 서울 반포 한강공원의 서래섬을 찾은 시민들이 소금을 뿌린 듯 만발한 메밀꽃밭을 걸으며 가을을 즐기고 있다. 서래섬에서는 12일부터 이틀간 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메밀꽃 필 무렵…

    메밀꽃 필 무렵…

    5일 강원 평창군 봉평면 이효석문학관 주변의 메밀밭을 찾은 관광객들이 활짝 핀 메밀꽃을 즐기고 있다. 봉평 메밀꽃 축제는 6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평창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홀로 걷다 보니, 태곳적 신비가…

    홀로 걷다 보니, 태곳적 신비가…

    ‘한국의 지붕’ 강원도 평창 인근엔 산이 많습니다. 산은 높고 골은 깊으니 당연히 빼어난 숲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숲 두 곳을 소개합니다. 한 곳은 낙엽송, 다른 한 곳은 잣나무가 우거진 숲입니다. 발단이야 전혀 달랐지만 두 숲 모두 사람이 조성했다는 점만은 같지요. 봉평읍 인근에 붓꽃섬이 있다. 예부터 붓꽃이 많이 자생했다는 섬이다. 한데 산골짜기 봉평에 웬 섬일까. 붓꽃섬 양옆으로는 무이천과 흥정천이 흐른다. ‘섬’은 두 개천을 경계로 뭍에서 ‘고립’돼 있다. 크기야 턱없이 작아도 하중도(河中島)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 캠핑장이 조성돼 있다. 붓꽃섬 캠핑장이다. 붓꽃의 영어 이름을 따 아이리스 캠핑장 혹은 아트인 아이리스 아일랜드라고 불린다. 캠핑장 대표는 이학박사 박정희(53)씨다. 한데 이곳 주인장, 참 독특하다. 보다 정확히는 스스로 ‘합리’와 ‘원칙’을 정확히 지키려 하는데 보편적인 잣대를 들이대니 다소 유별나 보이는 거다. 우선 여느 캠핑장보다 입장료가 비싸다. 계절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2인 기준으로 1박에 4만원쯤 된다. 게다가 1박 2일은 안 받는다. 최소 2박 이상이어야 한다. 납득이 잘 안 된다면 일반 회사의 ‘휴가 명령제’를 연상하면 알기 쉽다. 허겁지겁 와서는 텐트 펴고 접다 시간 보내지 말고 푹 쉬다 가라는 뜻이다. 아울러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된다. 캠핑 사이트가 남더라도 당일 내주는 법은 없다. 캠퍼의 신분 확인은 필수고 예약료도 받지 않는다. 캠핑장에선 커플보다 가족이 우선시된다. 아이들이나 부모와 함께 오면 알게 모르게 혜택을 준다. 하다못해 유기농 호박 하나라도 선물로 챙겨 준다. 캠핑장 안엔 식당과 매점이 없다. 캠핑장에서 편의시설까지 독식하면 인근 주민들에게 돌아갈 몫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도 유아용만 있을 뿐 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캠핑장 청소 또한 인근 주민들에게 번갈아 맡긴다. 그래야 지역 공동체에 보탬이 된다. 까다롭긴 하지만 장점도 많다. 우선 캠핑 사이트가 넓다. 당연히 캠퍼들 간에 자리 두고 얼굴 붉힐 일 없다.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계절에 따라 고로쇠와 산나물, 표고버섯 등을 채취하거나 감자, 호박 따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전부 무농약으로 재배한 것들이다. 비료조차 치지 않는다. 요즘엔 잣 줍기 체험이 제격이다. 체험장은 캠핑장에서 2㎞쯤 떨어진 잣나무숲이다. 이동 수단은 사륜오토바이(ATV)다. 한데 주인장의 운전 테스트를 먼저 거쳐야 한다. 안전하게 산길 주행을 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오케이 사인이 난다. ‘면허시험’에 떨어지면 ATV는 포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모든 체험 프로그램이 무료라는 점이다. ATV 기름값만 캠퍼가 부담하면 된다. 여느 캠핑장에 견줘 입장료가 비싼 것도 이 때문이다. 잣나무숲은 넓다. 앞산 뒷산 ‘눈에 보이는’ 게 죄다 잣나무다. 숲은 1932년 박 대표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조성됐다. 아들이 태어나면 대량으로 기념식수를 했고 그 아들이 아들을 낳으면 또 잣나무를 심었다. 체험장으로 쓰이는 숲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잣나무 아래에선 표고버섯이 자란다. 가을철 수확기에 들면서 크기가 호떡만큼 커졌다. 잣나무는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다. 편백나무에 이어 두 번째다. 청량한 피톤치드 맡으며 잣, 표고버섯 등을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캠핑장 이용자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잣나무숲에서 흥정계곡을 끼고 돌면 곧 불발령길이다. 일부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알음알음으로 찾는 곳이다. 불발령(1052m)은 옛 진한(辰韓)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의 고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불발현 혹은 불바래기 등으로 불린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태기왕이 “불을 밝히라” 명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일종의 축약어인 셈인데 화공을 펴라는 뜻이었는지, 불을 밝혀 경계를 강화하라는 뜻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산 중턱 마을의 지명이 ‘화명동’(火明洞)인 걸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닌 듯하다. 이 일대엔 태기왕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평창과 횡성이 경계를 이루는 태기산은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신라 박혁거세에게 대항하던 곳이다. 태기산에서 발원한 갑천은 태기왕이 더러워진 갑옷을 씻었다는 곳, 횡성 쪽 어답산은 ‘(태기)왕이 오른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불발령길은 줄곧 흥정계곡을 따라간다. 길이는 약 16㎞. 계곡 초입에 들어선 펜션만 70개 정도다. 그만큼 놀기 좋고 볼 것 많다는 뜻이겠다. 마지막 펜션을 지나면 풍경은 확 바뀐다. 적막강산이다. 한 구비 돌고 나면 그간 사람의 발길이 얼마나 드물었는지 단박에 알 정도다. 과장 좀 보태 태곳적 풍경 속으로 드는 느낌마저 든다. 길은 계곡을 따라 이리저리 휘었다. 나라 안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길이다. 한데 풍경은 다소 이질적이다. 사방을 둘러친 낙엽송들이 미인의 다리처럼 늘씬하게 솟았다. 북미의 어느 숲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낙엽송들은 대개 수령이 비슷하다. 45년 전, 그러니까 이 일대에 화전민 소개령이 내려진 1968년 무렵 식재된 것들이다. 당시 불바래기에 살았던 이동옥(61)씨는 “낙엽송 군락이 곧 마을이 있던 자리”라고 했다. 정부에서 마을을 없앤 뒤 그 자리에 속성수인 낙엽송을 심었다는 것이다. 당시 흥정계곡엔 300여 가구가 여기저기 마을을 이뤄 살았다. 화전 등에서 나온 소출도 제법 많아 “흥정리 이장은 해도 봉평면장은 안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터졌고 주민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현재 모습으로 남게 됐다. 계곡은 하류에 견줘 수량만 다소 줄었을 뿐 넉넉한 자태 그대로다. 가마 타고 불발령 넘던 새색시가 빠져 죽었다는 각시소, 이름조차 없는 3단 폭포 등 간간이 볼거리도 뛰쳐나온다. 불발령 정상에 서면 홍천 너머의 크고 작은 산들이 마루금을 좁힌 채 물결치는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박정렬씨의 모정을 기리는 추모비도 서 있다. 비문에 새겨진 사연이 애틋하다. 1978년 3월 12일, 박씨가 여섯 살짜리 딸과 함께 홍천군 내면의 친정으로 가기 위해 불발령을 넘을 때였다. 돌연 폭설이 쏟아졌다. 박씨는 길을 잃고 헤매다 쓰러졌고, 자신의 옷을 벗어 어린 딸에게 입힌 뒤 숨을 거뒀다. 엄마 품에 안겨 있던 딸은 다행히 목숨을 건져 외지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 장평나들목으로 나와 봉평면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봉평읍내에서 무이예술관 방향으로 2.5㎞ 가면 붓꽃섬 캠핑장이다. 캠핑 사이트는 40면, 펜션은 11개 객실이다. 캠핑과 달리 펜션은 1박이 가능하다. www.irispension.co.kr, 336-1771. 불발령은 아이리스 캠핑장에서 이효석 문학의 숲 방면으로 가다 흥정계곡을 끼고 곧장 가면 된다. →맛집 : 봉평읍내 미가연은 메밀요리 전문점이다. 이대팔메밀국수, 메밀싹육회비빔국수 등 별미를 맛볼 수 있다. 335-8805~6. 토담숯불구이는 주인이 직접 기른 한우를 잡아 파는 곳이다. 아침에 맛보는 백반도 정갈하다. 336-2227. →잘 곳 : 흥정계곡 주변에 펜션들이 늘어서 있다. 이 가운데 허브솔 펜션은 복층식 구조의 목조 가옥으로 가족들이 묵어 가기에 맞춤하다. 334-4445. →주변 볼거리 : 6~22일 효석문화제가 열린다. 시차를 두고 메밀밭을 조성한 만큼 언제 가도 메밀꽃 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335-2323.
  • 보소, 올 한가위 고향 내려오믄 추억 총총 썰어, 인심 푹푹 끓인 시장통 국시 한그릇 먹으러 오소

    보소, 올 한가위 고향 내려오믄 추억 총총 썰어, 인심 푹푹 끓인 시장통 국시 한그릇 먹으러 오소

    시장에 가면 뭐가 좋을까. 우선 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에 따르면 올 한가위 차례상 비용(4인 가족 기준)은 전통시장이 18만 5125원, 대형유통업체는 26만 2941원으로 예상됐다. 전통시장이 30% 가까이 저렴했다. 지역경기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고, 여기저기 기웃대다 군것질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인심은 한 되, 추억은 한 말쯤 챙겨올 수 있다. 이제는 명소가 된 각 지역의 전통시장을 정리했다. 한가위 귀성객들이 가볼 만한 곳들이다. ‘향수 어린 장터’ 장흥 토요시장 예부터 장흥시장은 나주 영산포의 홍어시장, 함평 학다리 우시장 등과 함께 전남 3대 시장으로 유명했다. 2005년엔 시설 보수작업을 거쳐 토요일에만 문을 여는 주말 관광형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이게 주말시장의 효시가 됐다. 그렇다고 평일에 문을 닫는 건 아니다. 소고기집들이 늘어선 시장 뒤편으로 청과물과 해산물 등을 파는 전통시장이 형성돼 있다. 여기 정말 싸다. 그리고 싱싱하다. 올여름 장흥시장에서 3000원에 미나리 한 아름, 2000원에 시장바구니 한가득 콩나물을 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만원의 가치’를 재확인해 보고 싶다면 꼭 장흥시장에 들러보시길. (061)864-7002, 860-0741. ‘콧등치기 국수’ 정선 아리랑시장 강원 정선 아리랑시장은 1966년 개설됐다. 지금은 ‘정선 5일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실제 5일장이 서는 날만 골라 정선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있을 정도다. 매월 2, 7, 12, 17, 22, 27일에 장이 선다. 강원도에서 나는 각종 산나물과 약초는 물론 곤드레나물밥, 콧등치기 국수 등 추억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메밀전병, 메밀전 등 토속적인 먹거리는 반드시 맛보는 게 좋다. 시장 뒤 문화예술회관에선 장날마다 정선아리랑 창극 ‘신들의 소리’ 공연이 열린다. (033)563-6200. ‘아홉 번째 볼거리’ 단양 구경시장 충북 단양 구경시장은 상설시장과 전통 5일장이 공존하는 곳이다. 저 유명한 단양 8경에 더해 아홉 번째 자랑거리라는 상징적인 뜻을 담고 있다. 구경시장은 ‘동국문헌비고’에 1770년쯤 장이 개설됐다는 기록이 나올 만큼 연륜이 깊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자리를 옮겨 현재 단양군 도전리에서 운영되고 있다. 단양은 예부터 토양과 기후 여건이 마늘을 재배하는 데 맞춤하다고 알려졌던 곳이다. 단양육쪽마늘과 관련된 다양한 요리를 장터에서 맛볼 수 있다. 씹을수록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단양 마늘순대와 양념이 독특한 흑마늘 닭강정 등이 별미로 꼽힌다. (043)422-1706. ‘마약 김밥·육회’ 서울 광장시장 1905년 문을 연 뒤 100년이 넘도록 종로를 지켜온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특히 먹거리장터가 발달해 식객들의 발길로 하루 종일 분주하다. 꼬마김밥은 ‘마약김밥’, 돼지고추장구이는 ‘동그랑땡’으로 불리는 것도 재밌다. 서울 토박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빈대떡은 광장시장을 대표하는 먹거리. 신선해서 고소하기까지 한 육회와 큼지막해서 더 먹음직스러운 왕순대 등이 뒤를 잇는다. 여기에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이면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 혜화문에서 흥인지문에 이르는 서울성곽을 한 시간 정도 걷고 광장시장에 가 보자. 적당한 허기에 각종 먹거리가 입에 착착 붙는다. (02)2272-0967. ‘부산 별미 집합소’ 부산 국제시장 해방 후 ‘도떼기시장’으로 출발해 부산 최대의 만물 시장으로 성장한 시장이다. 올해 10월 10일까지 부산관광공사에서 벌이고 있는 ‘부산 그랜드 세일’ 이벤트에 전통시장이 참여하면서 한층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먹자골목이 특히 유명하다. 아리랑거리를 중심으로 비빔당면 골목(충무김밥을 함께 판다)과 팥빙수 골목, 떡볶이 골목이 밀집돼 있다. 밀면과 완당, 냉채족발, 유부전골 등 별미가 즐비하다. ‘1박2일’ 이승기 덕에 이름을 알린 BIFF 거리의 씨앗호떡도 늘 인기 상종가다. 이제는 쇠락한 광복동 고갈비 골목의 남마담집과 할매집에서는 여전히 옛날 추억의 맛을 팔고 있다. (051)600-4511. ‘200m골목 맛집들’ 수원 못골시장 경기 수원의 팔달문 인근에 있는 못골시장은 늘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이다. 채 200m도 안 되는 골목에 87개 점포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못골시장이 이름을 얻게 된 건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프로젝트’ 덕분이다. 못골시장에선 반찬, 정육, 생선 등을 주로 판다. 먹거리도 다양하다. 냉면보다 칼국수와 녹두빈대떡이 유명한 ‘냉면’집, 밤과 단호박, 서리태 등이 가득 든 영양 백설기가 맛있는 떡집 등이다. 인근에 통닭 골목, 수원 화성 등 돌아볼 곳도 많다. (031)246-5638. ‘서해 싱싱함 가득’ 서천 특화시장 충남 서천 특화시장은 2004년 문을 열었다. 수산물동, 일반동, 농산물동, 노점동 등으로 구성됐다. 수산물만 파는 곳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는 않다. 입점한 상점 수로 따지면 청과류 매장이 수산물 매장보다 곱절 가까이 많다. 다만 지역 특성상 서천특화시장 하면 역시 수산물이 첫손 꼽힌다. 홍원항과 마량항, 장항항이 지척이니 늘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난다. 해산물을 맛보려는 이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시장 2층에 20여곳의 식당이 있다. 1층 시장에서 횟감을 사서 올라가면 돈을 받고 회를 떠준다. (041)951-1445. ‘서민의 삶과 낭만’ 춘천 낭만시장 강원 춘천 낭만시장은 서민의 삶과 낭만이 깃든 곳이다. 중앙시장에서 이름이 바뀌며 새 단장했지만, 전해지는 사연과 소박한 풍취는 예전 그대로다. 낭만시장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과 인근 서민이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과 약사리고개를 넘어온 농산물이 모였던 곳이기도 하다. 50년을 넘어선 내장 골목, 닭집, 국숫집 등도 대를 이어 구수한 맛을 지켜간다. 최근엔 시장 구석구석에 벽화를 그리고, 콘서트를 여는 등 문화의 옷을 입기도 했다. 낭만시장에서 간식 골목을 거쳐 근대사와 예술가의 흔적이 서린 망대골목까지 산책에 나서는 것도 좋겠다. (033)250-3068.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어디로 갈까, 9월의 4色 축제

    어디로 갈까, 9월의 4色 축제

    가을의 문턱 9월이다. 선선한 날씨와 맑은 하늘,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 시작됐다. 유례없이 길었던 여름을 보내고 맞은 짧은 가을볕을 어찌 그냥 보낼까. 신발 꿰어 신고, 소풍이라도 가야 할 터다. 나라 안 곳곳에 놀이판이 준비됐다. 평창효석문화제를 첫 주자로 다양한 주제의 가을축제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그 가운데 가볼 만한 축제 4곳을 선별했다. ■메밀천지… ‘문학과 장터’ 6일부터 봉평효석문화제 9월 6~22일 강원 평창의 봉평면 일대에서 이효석문화선양회(www.hyoseok.com) 주관으로 열린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무대다. 실제 저녁 무렵 메밀밭을 돌아보면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은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이효석의 표현이 얼마나 섬세하고 정확한지 알 수 있다. 축제가 열리는 효석문화마을 일대엔 100만㎡가 넘는 메밀꽃밭이 조성된다. 올해는 2개의 큰 마당(이효석 마당, 봉평장 마당) 속에 6개의 존(메밀꽃 문화존, 이효석 문학존, 메밀꽃 소설존, 메밀꽃 포토존, 봉평장 소설존, 충주집 소설존)이 들어찬 형태로 축제공간이 구성된다. 굳이 구분짓자면 이효석 마당은 문화와 문학 체험, 봉평장 마당은 먹거리와 장터 체험 등에 초점을 맞췄다. 메밀꽃 문화존에서는 매주 금·토요일 밤 클래식 콘서트와 주제 공연인 ‘이효석의 꿈’이 펼쳐진다. 경관 조명도 메밀꽃밭을 화려하게 밝힌다. 매주 일요일엔 젊은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메밀꽃밭 콘서트가 열린다. 소설 속 명장면을 재연하는 거리상황극, 개막공연으로 준비된 이 시대 마지막 변사 최영준의 ‘검사와 여선생’ 공연 등도 놓치면 아까운 볼거리다. (033)335-2323. 한편 우리테마투어(www.wrtour.com)는 축제 기간 매주 금~일요일과 추석연휴 기간에 서울시청에서 버스로 출발해서 봉평 효석문화제와 강릉 등을 다녀오는 당일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3만 1900원. (02)733-0882. ■생명축제…청원 들판, 27일부터 친환경 놀이터로 충북 청원군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특산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축제다. 9월 27일~10월 6일 오창과학산업단지 내 송대공원에서 열린다.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약 22만㎡에 이르는 산과 들, 논이 행사장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소풍 나온 듯, 관람객이 자연을 벗 삼아 각종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올해는 특히 야간경관조명과 풍등 날리기, 담요영화제 등 야간 프로그램을 확충했다.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고구마와 땅콩 등을 직접 캐서 가져가는 친환경 농산물 수확체험이다. 청원생명축제 홈페이지(bio.puru.net)에서 예약해야 한다. 현장접수도 받는다. 비용은 고구마 ㎏당 1000원, 땅콩 500g당 1000원이다. 숲속셀프식당도 인기다. 축제장에서 저렴하게 산 친환경 농축산물들을 숲 속에서 바로 요리해 먹을 수 있다. 50여 농촌체험마을에서 내놓은 농특산물과 한우, 오리고기 등 축산물이 대상이다. 청원생명쌀밥집에서는 6년 연속 로하스 인증을 받은 쌀로 가마솥밥을 지어 낸다. 아울러 대장간 체험, 새끼꼬기 체험 등 전통문화 체험과 대나무 물총 만들기, 에어바운스, 페달보트놀이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입장료(어른 기준 5000원)는 전액 지역농산물상품권으로 되돌려 준다. 축제장 안에서 농축산물이나 음식물을 사는 등 현금처럼 쓸 수 있다. 관람객들에겐 생명축제 기간 옛 대통령 전용 별장인 청남대 입장료 2000원 할인, 청원 문의문화재단지 무료입장 등 다양한 할인 혜택도 준다. 청원군축제추진위원회 (043)251-5932~4. ■백제천하…체험 더한 공주·부여 문화제 28일 개막 백제의 수도였던 충남 공주와 부여, 계백 장군이 최후의 일전을 벌인 황산벌의 도시 논산 등에서 9월 28일~10월 6일 동시에 열린다. 축제장을 찾는다면 백제 때 보물급 문화재가 가장 많고 알밤축제, 항공축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마련된 공주를 들머리 삼는 게 좋다. 접근성이 좋은 공주에서 백제문화제를 즐긴 후, 금강과 나란히 달리는 백제큰길을 따라 부여로 이동한다. 개막식과 폐막식은 공주와 부여에서 해마다 번갈아 가며 개최한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화려한 불꽃놀이로 중부권에선 ‘명성이 자자’하다. 개막식과 폐막식은 각각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6시에 시작된다. 백제문화제의 대표 프로그램은 가장 긴 탈 퍼레이드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던 ‘웅진성퍼레이드’, 금강의 밤을 색색의 유등으로 수놓는 ‘백제등불향연’ 등이다. 웅진성퍼레이드는 축제기간의 휴일 저녁에 단 2회 진행된다. 행사 날짜와 장소를 미리 체크해야 한다. 5대 64년간 백제의 왕성이었던 공산성은 축제기간 동안 백제마을이 된다. 백제등불향연은 ‘무령왕 승전식 유등’ 등 200여점의 유등을 금강에 띄우는 프로그램이다. 강변의 공산성과 어우러져 기막힌 야경을 펼쳐낸다. 공주는 밤의 고장이다. 공주알밤축제 또한 백제문화제 기간에 맞춰 공산성 주차장에서 열린다. 인근 밤농장에서 알밤줍기체험을 즐길 수도 있다. 백제문화제(www.baekje.org) 참조. 공주시청 관광과 (041)840-8110~2. ■탈춤세상…안동탈춤, 27일부터 세계인과 ‘덩실’ 전통과 해학이 살아 숨쉬는 경북 안동에서 9월 27일~10월 6일 열린다. 800여년 역사의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모태로 시작해 안동을 국제적인 탈과 탈문화의 중심지로 부각시킨 축제다. 특히 올해는 이스라엘, 러시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중국, 일본 등 15개국 공연단이 참여해 세계적인 탈춤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운흥동 탈춤공원과 하회마을 일대가 주무대다. 국내외 탈춤공연과 세계탈놀이경연대회, 세계 창작탈 공모전, 탈춤 따라 배우기, 세계 탈 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무엇보다 참가자들의 관심을 끄는 건 대동난장 퍼레이드다. 남녀노소 누구나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축제를 만끽할 수 있다. ‘지붕 없는 박물관’ 안동은 하회마을뿐 아니라 안동군자마을, 병산서원과 도산서원, 농암종택 등 곳곳에 종택과 고택들이 즐비하다. 이른 새벽 물안개가 장관인 월영교, 전통콘텐츠박물관, 온뜨레피움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안동풍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헛제사밥과 찜닭, 조상의 지혜가 엿보이는 간고등어, 독특한 풍미를 자아내는 식해, 출출할 때 생각나는 버버리찰떡 등 독특한 먹거리도 빼놓지 말고 맛보는 게 좋겠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www.maskdance.com) 참조. (재)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054)841-6397~8. 글 사진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하동에서 가을을 만나세요

    하동에서 가을을 만나세요

    해마다 가을이면 전국에서 50만~8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경남 하동군 북천면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다음 달 21일부터 10월 16일까지 지리산 자락 농촌 마을인 북천면 직전리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로 7회째다. 직전리 일대에는 마을 앞을 지나는 경전선 철도와 국도 2호선을 사이에 두고 40여㏊에 걸쳐 코스모스와 메밀꽃 단지가 조성됐다. 전국 최대로 올해는 지난해보다 면적이 4㏊ 늘었다. 이 축제는 한적한 시골 마을 앞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꽃단지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비롯해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축제장 경치가 널리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을 농촌 축제로 자리 잡았다. 2008년부터 3년 연속 농림수산식품부 우수 농촌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6년 농어촌 경관보전직불사업의 하나로 마을 앞 논밭에 코스모스와 메밀꽃을 심은 것을 계기로 2007년부터 꽃축제를 시작했다. 자연지형 그대로의 야외 꽃단지에서 각종 전시·체험행사와 꽃밭 음악회, 청소년 가을시 낭송회, 촬영대회 등이 열린다. 450m에 이르는 희귀박 터널을 비롯해 옛 농기구 전시관, 이동 동물원 등 보고 즐길 거리가 많다. 하동군 홍보대사인 배우 변우민이 진행하는 ‘천연염색 우리옷 패션쇼’도 열린다. 축제장 근처에 이병주 문학관이 있다. 꽃단지에서 200여m쯤 떨어진 곳에 작은 시골역인 북천 코스모스역이 있어 부산~진주~북천~순천을 오가는 경전선 열차를 이용해 가을 기차여행의 정취를 즐기며 축제장을 찾을 수 있다. 박광명 북천면장은 “주민들과 면 공무원 등이 합심해 축제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동군은 축제 기간 전후까지 합치면 관광객이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군에 따르면 지난해엔 54만여명이 찾았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세슘 분유의 진실/노주석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세슘 분유의 진실/노주석 선임기자

    얼마 전 한 분유업체가 거대 환경단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겼다는 소식이 전국 각 신문에 실렸다. 법원은 원고 일동후디스의 기업 이미지와 신뢰도가 저하되고 명예가 훼손됐으므로, 피고 환경운동연합은 위자료 8000만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기업이 환경단체에 승소하면서 위자료 배상 판결을 받아낸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공익을 목적으로 소비자 편익의 정보를 발표한 환경단체가 패소한 것은 심상치 않은 ‘사건’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환경운동연합이 시판 중인 분유 5종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의뢰한 결과 일동후디스의 산양분유 1단계에서 방사성 세슘(Cs) 137이 검출(0.391Bq/kg)됐으며 이를 유아가 먹으면 암 발생 등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지난해 8월 배포했다. 언론의 대대적인 극성 보도가 이어졌고 해당 제품의 매출이 동강 났다. 일동후디스 측은 국제 및 국내 기준치의 1000분의1에 불과한 극미량인데도 검출 사실만 강조해 기업 이미지와 회사경영에 치명적인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소를 제기했다. 1년 전 일이지만 TV뉴스에서 본 장면이 생생하다. ‘아기에게 세슘 분유를 먹이고 싶지 않다’ ‘엄마, 세슘 137 먹기 싫어요’라고 적힌 피켓을 든 운동원들이 해당 분유를 바닥에 쏟아버리는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소비자는 감성적인 존재이다. 아기의 먹거리에 세슘이 들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불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환경단체가 제 할 일을 했다고 여겼다. 특히 당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세슘 공포’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사고 인근지역에서 생산된 쌀, 소고기, 메밀, 버섯 등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세슘이 검출됐었다. 지금도 생태 등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괴담’이 떠도는 게 현실이다. 세슘 분유의 진실은 무엇인가? 비록 1심이지만 제조업체의 승소 기사를 보고 나서 머리가 복잡해진다. 대법원 판례는 언론·출판을 통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더라도,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는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으면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설령 증명이 없다고 하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위법성이 없다고 본다. 판결문을 찬찬히 읽어 보면 법원은 환경운동연합 폭로의 공익성은 인정하되, 진실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과학적 사실이 진실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기자는 지난해 10월 ‘기준치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란 칼럼을 통해 식품과 관련된 모든 유해물질의 완벽한 기준치를 제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러한 기준치에 관한 불편한 진실에 편승해 소비자의 불안심리를 부추기는 이른바 ‘기준치 포퓰리즘’은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도 같은 취지라고 본다. 그러나 소비자의 알 권리가 침해받았으며, 세슘 분유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환경운동연합은 항소할 모양이다. 지루한 법정 공방이 또 이어질 것 같다. 법이 정한 기준치의 안전성을 애써 외면하는 외침이 왠지 공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joo@seoul.co.kr
  • 고종황제도 야참으로 후루룩~ 시원·쫄깃한 냉면의 모든것

    고종황제도 야참으로 후루룩~ 시원·쫄깃한 냉면의 모든것

    ‘차게 식힌 국물에 만 국수’. 고유의 음식인 냉면은 이렇게 간략하게 정의되곤 한다. 하지만 쉬이 볼 음식은 아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진찬의궤(進饌儀軌), 부인필지(夫人必知) 등의 기록에 세세하게 냉면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학자들은 이를 통해 냉면은 조선시대부터 즐겨 먹던 음식이라 설명한다. 메밀가루에 녹말을 약간 섞어 반죽해 국수를 만든 뒤 큰 대접에 담고, 편육·소고기볶음·오이채·배채·삶은 달걀 등의 고명을 얹어 먹는다. 고기 육수나 동치미국물을 미리 차게 식혀 두었다가 가만히 부은 후, 식초와 겨자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이를 전통적인 ‘평양냉면’이라 부른다. 쌍벽을 이루는 ‘함흥냉면’도 있다. 면이 질기고 오들오들해 싱싱한 가자미나 홍어 같은 생선으로 회를 쳐 고추장으로 양념해 비벼 먹는다. 그런데 정작 함흥에는 함흥냉면이 없다고 한다. 한 새터민은 함흥냉면이란 말은 남한에 와서 처음 들었다고 할 정도다. 함흥냉면이라는 말은 6·25전쟁 이후 남한에서 인기를 끌던 평양냉면에 대응해 만든 남한식 냉면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MBC ‘다큐스페셜’은 5일 밤 11시 20분 냉면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냉면’을 방송한다. 유난히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한국인 덕분에 냉면은 특별한 미식가가 아니라도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음식 중 하나가 됐다. 역사 속 숨겨진 재미있는 냉면 이야기와 냉면에 관한 오해와 진실, 숨겨진 맛집까지 두루 살펴본다. 유난히 냉면에 관한 기록이 많은 지도자는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이다. 매일 밤 야참으로 냉면을 즐겼는데, 냉면만큼은 ‘후루룩~’ 빨리 먹었다. 황제는 ‘배동치미’로 불면증을 달랬다. 배동치미는 담글 때부터 배를 넣어 달고 시원한 육수에 고명으로 배를 듬뿍 올려 만들었다. 1930년대에는 ‘냉면 배달부’가 있었다. 배달부들은 나무 목판 위에 냉면 열 그릇을 층층히 쌓아 들고 다른 한손엔 육수 주전자를 들고 묘기를 부리듯이 자전거를 타고 배달했다. 모던 보이와 기생들, 밖에서 음식을 사먹는 것을 꺼려했던 양반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야참이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바람이 떠나라 시켰다… 물 만나 여름을 식혔다

    바람이 떠나라 시켰다… 물 만나 여름을 식혔다

    같은 지역이라도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사뭇 달라 보이게 마련입니다. 강원도 평창 하면 겨울철 눈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사방을 둘러친 장쾌한 백두대간의 준령들도 엇비슷한 무게로 뒤를 잇겠지요. 여름이니 ‘물 맑은 곳’에 초점을 맞춰 봅니다. 놀랍게도 듣도 보도 못한 풍경들이 여기저기서 뛰쳐나옵니다. 주민들만 알음알음 찾았거나 자연휴식년제 등에 묶여 있던 곳들이니 깨끗한 건 말할 나위 없습니다. 숨겨진 명소들로 함께 가 보시지요. 더위 사냥에 제격입니다. 평창군 대화면 대화7리에선 ‘땀띠물’이 솟는다. 안내판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몸에 땀띠가 난 사람이 이 물에 몸을 씻으면 그야말로 ‘씻은 듯’ 땀띠가 사라져 이 같은 독특한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설마 땀띠물로 목욕한다고 땀띠가 사라질까만, 땀띠가 생기지 않을 만큼 물이 시원하다는 걸 해학적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게 옳지 싶다. 주민들은 땀띠물을 ‘굴물’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을 둘러친 청룡산 자락의 크고 작은 샘통에서 흘러나온 물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땀띠물이 마르는 법은 없다. 매일 일정량의 물이 연못 여기저기서 솟아오른다. 온도 변화도 거의 없다. 연중 11~13도 사이를 유지한다. 땀띠물은 차다. 족욕장에 앉아 발을 담그면 10초를 버티기 쉽지 않다. 땀띠는 쏙 들어가고 대신 소름이 오드득 돋는다. 주변과의 온도 차도 확연하다. 이는 바로 옆을 흐르는 대화천의 수온이 여름철 18~20도인 것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노천온천과 다름없었을 터. 현지 주민들은 “땀띠물이 여름엔 등목터, 겨울엔 빨래터”였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이 올해 처음 여는 ‘평창 더위사냥 축제’도 땀띠물 공원이 주무대다. 2~11일 열린다. 은어와 송어 맨손 잡기 등 천렵 프로그램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삼굿체험이 관심을 끈다. 감자 등을 바닥에 묻고 흙과 자갈, 나뭇가지 등으로 덮은 뒤 불을 때 익혀 먹는 프로그램이다. 원래 삼굿은 길쌈의 원료가 되는 삼(대마)의 껍질을 쉽게 벗기기 위해 삼을 찌는 구덩이나 솥, 혹은 그 과정 등을 일컫는다. 이걸 감자 등을 쪄 먹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응용한 게 삼굿체험이다. 강변을 따라 걷는 둘레길도 좋다. ‘남산둘레길’과 ‘매화마을 녹색길’이다. 남산둘레길은 솔숲 안쪽으로 난 길이다. 오가며 맡는 진한 솔향이 인상적이다. 평창읍내에서 종부교를 건너면 바로 남산산림욕장이다. ‘솔향기 고운 숲길’ 간판 아래 목재 데크가 들머리다. 길 아래로는 평창강이 시원스레 흐르고, 양옆으로는 붉은 수피의 소나무들이 울울창창하게 하늘을 가리고 있다. 걸어서 접근하기 어려운 강변 산자락에 굵은 소나무들이 매달려 있고, 그 사이로 목재 데크가 놓여져 있다고 보면 알기 쉽다. 이런 길이 7㎞쯤 이어진다. 매화 마을 녹색길은 평창강을 따라 이어진 기암절벽과 동행하는 길이다. 마을의 옛 이름은 절개 마을이다. 마을 앞에 곧추선 절개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름에서 퍼뜩 느껴진다. 산세가 얼마나 가파를지 말이다. 칼로 싹둑 베어낸 듯 절리를 이룬 자태가 멋들어지다. 그 절벽 위로 아양정이란 정자도 세워 뒀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니 부러 찾아야 한다. 평창에서 영월 가는 국도변에 있다. 전체 길이는 4.1㎞다. 핵심 구간은 승용차로도 접근할 수 있다. 사람 손 덜 탄 곳을 찾는다면 원당계곡이 제격이다. 백덕산(1350m)에서 발원해 평창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다. 전체 길이는 6㎞ 남짓. 그 가운데 덕말~용소골 사이 약 2㎞ 구간은 7년여 동안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되다 최근 해제됐다. 계곡물은 차고 맑다. 수량도 풍성한 편. 연한 연둣빛 감도는 계곡물이 쉼 없이 흘러간다. 발만 살짝 담근 채 탁족을 즐겨도 좋겠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피서는 냅다 뛰어들어 계곡과 하나가 되는 것. 원당계곡에선 훌훌 벗어던지고 물에 뛰어드는 게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빼어난 계곡 가운데 온몸 던져 놀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 이런저런 제약 탓에 발끝 하나 담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니 이만하면 대단한 호사다. 영동고속도로 장평 나들목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평창읍에 이른 뒤 뇌운계곡 방향으로 가면 닿는다. 물과는 관련이 없지만, 물가 못지않게 시원한 명소 한 곳 덧붙이자. 육백마지기다. 미탄면 청옥산 정상 아래 있는 고랭지 채소밭이다. 지난달 25일 오후 평창읍 기온이 영상 27도 쯤이었던 것에 견줘 육백마지기는 22도에 머물렀다. 여기에다 바람까지 세차게 부니 반소매 옷차림으로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서늘했다. 천혜의 ‘풍욕장’(風浴場)인 셈이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맛집 평창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평창올림픽시장에서 5일까지 ‘평창메밀부치기축제’가 열린다. ‘부치기’는 부침개를 뜻하는 사투리. 메밀로 만드는 다양한 요리를 체험할 수 있는 축제다. 지난해 처음 열린 뒤 관광객들의 반응이 좋아 올해까지 이어졌다. 평창시장 안엔 모두 11개의 부침개집이 있다. 저마다 ‘수십년 내공’을 자랑하는 집들이다. 어느 집을 들어가도 메밀전병, 김치전 등 담백한 토속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축제 기간에 한해 음식값을 내린다. 김치전 한 장에 500원 정도 받는다. 대신 음식의 양은 줄인다. 적은 예산으로 다양한 음식을 맛보라는 배려다. 평창송어(332-0505·이하 지역번호 033)는 각종 송어 요리로 이름났다. 콩가루에 비벼 먹는 송어회가 특히 맛있다. →잘 곳 가족 단위라면 휘닉스파크(www.phoenixpark.co.kr)를 추천할 만하다. 평창군 홈페이지(www.yes-pc.net)에 다양한 펜션들이 올라 있다. 캠핑장은 솔섬오토캠핑장(333-1001), 물굽이오토캠핑장(010-2127-9737), 계방산오토캠핑장(070-7789-8892) 등이 대표적이다.
  • 지천으로 핀 해바라기 구경오세요

    지천으로 핀 해바라기 구경오세요

    “어서 오십시오. 청보리 들판이 해바라기 꽃밭으로 변했습니다.” 청보리밭 축제로 유명한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이 해바라기 꽃밭으로 변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고창군은 학원농장에서 20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해바라기 꽃잔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학원농장 13㏊(3만 9330평)에는 이달 초순부터 노란 해바라기 꽃이 피기 시작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해바라기 꽃밭은 지난 3~4월 청보리밭 축제가 열렸던 곳으로 보리를 수확한 후 해바라기를 심었다. 해바라기 꽃잔치에서는 해바라기 꽃 따기, 꽃밭 산책, 미로찾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수확한 꽃은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학원농장 진영호 대표는 “해바라기 꽃잔치는 청보리밭 축제와 메밀꽃 잔치로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우리 농장이 기획한 특별 이벤트”라며 “이곳에 오면 청보리 봄기운에 이어 해바라기 여름기운도 담아 가실 수 있다”고 말했다. 학원농장은 2004년 국내 최초로 경관농업을 시작한 곳이다. 봄에는 100만㎡(30만평)에 이르는 드넓은 보리밭, 여름에는 해바라기꽃, 가을에는 메밀꽃이 장관을 이루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창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강원도 막국수

    [손현주의 계절 밥상 여행] 강원도 막국수

    “예전에는 손님이 찾아오면 꼭 밤참을 냈어. 막국수만 한 것이 없었지. 밀가루는 귀해서 생각도 못했고, 메밀로 국수를 뽑았어. 그런데 메밀은 찰기가 없잖아. 무릎 꿇고 엎드려서 녹진하게 치대야 해. 덩어리 덩어리 동그랗게 떼어 나무국수틀에 눌러 면을 빼내지. 반죽보다 중요한 것은 물 온도야. 팔팔 끓이지 않으면 퍼져서 죽이 되어 버리거든. 뜨거운 물에 들어간 면이 두 번째 올라올 때 건져 씻어야 해. 잽싸게 손을 움직여도 순메밀로 뽑은 면은 뚝뚝 끊어져서 올챙이국수처럼 수저로 먹어야 했어.” 팔순을 앞둔 강원도 춘천의 최명희(79) 할머니는 잠시 창가를 내다보았다. 메밀에 얽힌 배고프고 기막힌 과거의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에효, 모든 것이 다 귀했지. 밤에 뽑은 메밀국수를 남겨놨다가 아침에 손님 떠날 때 다시 대접했어. 화롯불에 맑은 장국 끓여서 면 넣고 뜨끈하게 상에 올리면 속 훈훈하게 먹고 길을 떠났지. 전날 술이라도 마셨으면 면수(메밀국수 삶은 물)를 드렸어. 간장 타서 훌훌 마시면 속이 뚫려. 지금 식당에서 내는 면수의 전통은 그렇게 이어진 거야.” 할머니는 대를 잇고 있는 불혹의 아들을 든든하게 쳐다보면서도 고달팠던 시간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눈치였다. 어쩌겠는가, 그땐 그랬는걸. 시집오니 시어머니는 젊은데 입은 아홉이요, 땟거리가 없더란다. 식구들 굶기지 않으려고, 내 식구들 밥상 차려내듯 밤낮 모르고 밥장사를 했는데 그게 어느덧 44년. 세월은 가혹하여 새색시가 백발이 되었다. 어쩌면 강원도의 메밀음식은 할머니의 독백처럼 ‘한’이다. 의병활동하다 산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궜던 산사람들이 장터로 들고 온 곡식이 메밀이었고, 서민들이 다랑이밭 천수답 농사에서 가뭄 들어도 두 달 지나 고맙게도 수확이 가능했던 작물이 메밀이었다. 기실 냉면과 막국수는 겨울에 먹어야 별미라고들 한다. 동치미가 제 온도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계절이 겨울이고 보면 겨울음식이 맞다. 하지만 김치냉장고의 등장으로 발효음식의 계절성은 모호해졌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난 여전히 여름 막국수가 좋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차가운 면은 냉면, 막국수, 밀면 세 가지다. 그 중 현대의 냉면과 막국수는 전분과 밀가루 등을 섞기도 하지만 메밀을 주로 쓰고, 부산 쪽에서 유명한 밀면은 진주식 해물육수에 밀가루 면을 쓴다고 보면 큰 테두리는 그어진다. 강원도권 막국수는 숙성 양념을 쓴 붉은 비빔면이다. 변수는 국물이다. 비빔을 기본으로 하는 막국수는 냉면보다 육수에 대한 관심이 덜하지만 여전히 동치미와 고기육수의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육수는 집안에 따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꿩고기가 두루 쓰이고 동치미와 육수를 섞는 집, 오직 묵은 무만 고집해서 동치미를 담가 쓰는 집이 있다. 면은 메밀과 전분을 섞는데 메밀 함량이 많을수록 끈기가 덜하다. 간혹 순수 국산 메밀을 즉석에서 말아 주는 집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메밀 70~80%를 쓴다. 강원도를 돌던 이날도 주춤주춤 하루 두 끼를 막국수로 먹게 되었다. 춘천토박이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외갓집처럼 한옥을 그대로 살려 오목한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마루 기둥에는 거울이 걸려 있고 방마다 빈 상이 잔칫집처럼 많다. 으레 그렇듯이 막국수와 속 든든한 돼지고기 편육, 감자와 녹두전까지 시켜 놓고 탁주를 고민한다. 술을 부르는 편육 한 점의 애수는 커서 고기를 잘 삶느니, 삼겹살을 쓰다가 뒷다리 살로 부위가 바뀌었느니, 질겨졌다느니 말도 많고 집집마다 쉬쉬 하는 편육 삶기 비법경쟁이 치열하다. 심심하고 별 맛 없는 메밀면에 담백한 편육 한 점 싸 먹는 맛은 유별나기 때문이다. 국수에 풍미를 돋워줄 뿐 아니라 속도 든든히 채워 주니까. 미리 나온 면수를 홀짝홀짝 마신다. 붉은 빛이 돈다. 밍밍하지만 향이 짙다. 음식의 간이 세고 자극적인 것 투성이인 시대에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면수의 맛이 어떻게 사람들의 향수를 파고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마시면서 익숙해질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부침과 편육이 먼저 나왔다. 막국수가 나오기 전 고소한 전을 찢으며 세상 얘기 찧고 까부는 것이 국수집 재미이기도 하다. 시골어머니의 밥상이 생각나는 열무김치는 깊은 맛이 배어 있고, 배추김치는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아 시원하며 아삭아삭 씹힌다. 막국수가 나왔다. 왜 대한민국의 막국수에는 모조리 김가루가 얹어지는지, 묵은 불만이 목젖까지 터져 나온다. 외양은 여느 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체로 양념은 양파와 배를 갈아 바탕을 잡고 여기에 물엿과 고추장, 간장, 설탕, 다진 마늘 등을 섞어 저온 숙성한 것을 쓴다. 갓 뽑은 면발 위에 양념을 두르고는 삶은 달걀이나 채소로 고명을 얹는다. 이곳 사람들은 막국수에 처음부터 육수를 흥건하게 부어 먹지 않는다. 퍽퍽한 면이 비벼질 만큼 육수를 넣고 기호에 따라 식초와 겨자를 곁들인다. 식초는 살균 효과가 있고, 메밀의 차가운 성질을 겨자가 잡아 주니 ‘찬 면’ 집에는 꼭 따라다니는 강력한 기호다. 여기에 거개 동치미를 곁들이는 이유는 무가 메밀의 독성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음식이니 지금처럼 고명과 채소가 올라가는 호사는 생각도 못했다. 그저 면만으로는 별 맛 없으니 양념에 비벼 먹거나 동치미에 말아먹는 속 편한 음식이었고, 고추장이 들어가도 속이 화르르 자극적이지 않다. 입으로 물면 툭툭 끊어져 냉면이나 쫄면처럼 강하지 않고 담백하며 고소하다. 수육 한 점을 면에 감아 씹으니 삼겹살의 감칠맛이 배어 막국수 맛이 더 담백하다. 비벼진 국수가 거의 바닥을 드러낼 즈음 육수를 부어 양념까지 싹싹 비워 마시고 나니 세상일 아무런 욕심도 생기지 않는다. “막국수나 한 그릇 하세” 하는 이 욕심 없는 여름인사가 진정한 막국수의 마음일 것이다. 느리게 해찰할 새도 없이 국수가 나오자마자 붇기 전에 허위허위 젓가락질을 해야 하는 여름 밥. 문득 누군가에게 기별을 넣어 안부를 물어야 하지 않겠나. “덥지? 막국수 한 그릇 하세.” 글 사진 음식평론가 손현주 marrian@naver.com 여행수첩 막국수만큼 개인의 기호가 크게 작용하는 음식도 드물 것이다. 강원 5대 막국수니, 7대 막국수니 손꼽는 맛집은 그래서 조심스럽다. 육수와 메밀의 함량, 편육 삶기에 따라 막국수로드는 ‘미식가 열전’이다. 동해안은 고기육수를, 춘천과 강원 남부는 동치미와 고기육수를 섞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지역은 다르나 고기육수를 쓰는 경기도 여주 천서리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계절맛집(지역번호 033) 춘천 ‘평양막국수’(257-9886) ‘샘밭막국수’(242-1712) ‘유포리막국수’(242-5168) ‘실비막국수’(254-2472) ‘남부막국수’(256-7859) ‘부안막국수’(254-0654) ‘명가막국수’(242-8443), 그 외 지역 양양 ‘영광정메밀국수’(673-5254) ‘범부막국수’(671-0743)
  • 막국수 집만 160여곳… 건강식품으로도 인기

    ‘막국수를 밥처럼, 연중 하루 한 끼 이상 먹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춘천 사람들이다. 그 호반의 도시에 막국수 집만 160여곳이다. 그중에는 서울 사람들이 드나드는 유명한 집들이 있는가 하면 토박이들만 들락거리는 작고 외진 ‘그들만의 단골집’이 있다. 식당들로선 춘천 단골들이 시어머니이고 제일 눈치가 보인다. 막국수는 쉬운 듯하면서도 반죽이나 불의 세기 등 만들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더 삶았느니, 덜 삶았느니, 툭하면 노인들에게 트집 잡히기 일쑤다. 주인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다는 것은 단골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니 춘천 사람들에게 막국수는 송아지 친구나 큰 사돈을 만나 오롯한 그 시절을 거칠게 불러내는 향수다. 문헌을 보면 메밀은 중국에서 들어왔다. 고려시대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처음으로 거론되지만, 조선후기 농서 서명응의 ‘고사십이집’(古事十二集)에 “국수는 본디 밀가루로 만든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든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서민들이 즐겨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훗날 강원도권에서 막국수가 인기를 끈 것은 한국전쟁 이후의 생계형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이야 건강식품으로 각광받지만 옛 어른들에게는 먹고 돌아서면 배고픈, 하지만 밥이 되어 준 구황식품이다. 오죽하면 메밀음식 먹고 뛰지 말라고 했을까. 소화가 잘 되고 탈이 없었다. 특히 메밀은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좋으며 필수아미노산과 칼슘, 철분 등이 많이 들어 있어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데, 루틴(rutine) 성분은 고혈압 등 각종 혈관계 질환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에는 메밀을 수확해서 빻는 과정에 돌이 많이 들어갔어요. 먹다 보면 어석어석 씹히는데, 그게 거친 메밀 맛이기도 해.” 일주일에 서너 번 막국수를 먹는다는 김봉석(76)씨는 “맷돌에 갈아 메밀가루를 만드는 과정에서 껍질이 덜 벗겨진 것을 모아 국수를 만드는 것”이라며 “동치미의 무는 해독작용을 한다”고 선조들의 지혜를 짚어 주었다. 막 빻아낸 국수라서 막국수이고, 면이 뚝뚝 끊어지니 ‘바로, 막’ 먹으라고 하여 막국수라는 것이다.
  • [지방시대] 꽃이 주는 삶의 행복/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지방시대] 꽃이 주는 삶의 행복/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고대 그리스 신 중 제우스의 아들 탄탈로스는 인간에게 좋은 신이다. 탄탈로스는 신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늘 신들의 향연이나 회의에 참가하였으니 그의 오만함은 하늘을 찔렀다. 그는 신들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펠롭스를 죽여 그 고기를 신들에게 먹게 한 다음 인간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뿐만 아니라 신들만 이용하는 넥타르, 술, 혹은 고기를 훔쳐 인간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화가 난 신들이 탄탈로스를 지옥으로 추방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게 했다. 하지만 탄탈로스의 이런 행동으로 인간들은 신들의 삶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바로 이 탄탈로스의 딸 니오베는 아들·딸 열넷을 낳았는데, 그중 막내딸이 클로리스다. 바로 이 클로리스가 꽃과 번영을 주관하는 여신인데, 꽃의 여신이 될 때까지는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테베 사람들은 제우스와 함께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만 낳은 레토 여신을 숭배했다. 니오베는 테베 사람들이 자신을 숭배하면 더 많은 자식을 얻을 것이라며 레토를 자극했다. 화가 난 레토는 아들들에게 니오베의 자식들을 모두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은 바로 니오베의 자식들을 죽이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막내 클로리스만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클로리스를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보고 사랑에 빠져, 그녀를 꽃의 신으로 만들어 주었다. 꽃에 대한 모든 능력을 부여받은 클로리스는 어떤 꽃이든 피고 지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마음만 먹으면 항상 새로운 꽃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 클로리스의 능력에 따라 많은 꽃들이 생겨났으며 모든 꽃은 피고 졌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을 갖고 운동을 하는데 걷기와 달리기가 대세다. 대전시내 3대 하천에도 수변공원과 함께 좋은 길들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그 길을 걷거나 달리다 보면 한 가지 재미가 더해진 것이 있으니 바로 꽃길이다. 대전시 하천관리사업소에서 몇 해 전부터 열중해온 하천 정비사업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3대하천 꽃단지(꽃길) 조성’을 위해 참 많은 예산과 정성을 기울인다.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메밀꽃, 가을에는 코스모스, 그리고 겨울에는 억새와 갈대 길이 조성되어 있으니 운동하는 사람의 눈과 마음이 즐겁다. 전국적으로 꽃 축제를 통해 재정을 충당하는 지역이 적지 않다. 하지만 너무 상업성에 치우쳐 찾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대전의 꽃길은 그런 인위적인 꽃 축제 행사가 아니라 시민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노력이어서 정말 좋다. 탄탈로스는 신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했고, 니오베는 자식이라는 풍요를 주었다. 클로리스는 꽃으로 색다른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했다. 1년 내내 꽃길로 조성된 3대 하천을 걷거나 뛰노라면 사람을 먼저 생각한 신들이 떠오른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행정이 아니겠는가. 대전에 사는 즐거움 중 한 가지로 꽃을 꼽는다면 너무 낭만적인가?
  • [씨줄날줄] 냉면의 역설/서동철 논설위원

    냉면집에 가면 함께 자리한 이들에게 묻는다. “냉면이 어느 계절 음식인 줄 알아?” 고민스럽게 마련이다. 여름철 음식의 대명사인 냉면을 두고 어느 계절 음식이냐니…. 혹시 다른 ‘깊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며 섣불리 “여름”이라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다. 정답은 ‘냉면은 겨울 음식’이다. ‘냉면은 한겨울 밤의 뜨끈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는 맛이 최고’라는 어르신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냉면이 겨울 음식인 이유는 싱겁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여름에는 만들어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시대 서울에는 석빙고가 있어 한여름에도 고관대작에게는 눈곱만큼씩의 얼음을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보석에 버금가게 희귀한 얼음을 국수를 헹구어 먹는 데 쓴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냉면의 역설은 또 있다. 평양냉면의 사리를 구성하는 주재료는 메밀이다. 주성분은 루틴으로, 지방과 콜레스테롤 성분을 인체 밖으로 배출시켜 주는 훌륭한 역할을 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냉면이나 일본의 메밀국수가 세계적으로 뛰어난 건강식품으로 각광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고기는 명절이나 되어야 먹을 수 있던 전통시대 메밀은 당연히 같은 이유로 ‘나쁜 식품’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인 김남천(1911~1953)의 수필 ‘냉면’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한방에서 냉면은 백해(百害)는 있을지언정 일리(一利)도 없는 식품이라고 한다’고…. 메밀은 보릿고개를 넘기 힘겨웠던 시절 건강에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배고픔을 참기 위해 심었던 구황작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영양 과다에 시달리는 현대 사회에서 좋은 먹거리로 위상이 역전된 것이다. 마지막 역설은 조미료다. 이른바 ‘화학 조미료’라고 부르는 글루타민산나트륨이다. 얼마 전 조미료를 쓰지 않는 냉면집을 ‘착한 식당’으로 소개하고자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냉면은 평안도가 고향이지만, 1920년대 이미 서울에 줄지어 냉면집이 생겼을 정도로 일찍부터 대중화됐고, 적지 않은 냉면집이 당시 일본에서 들어온 새롭고 값비싼 화학 조미료 ‘아지노모토’를 쓴다는 사실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부각시켰다는 사실은 아마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진리가 어느 시대에도 똑같은 진리는 아닌 것 같다. 냉면 하나만 봐도 한때의 정설이 시간이 흐르면 역설이 되지 않는가.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를 평생 금과옥조로 여기며 우기면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냉면이 전해 주는 교훈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제21회 공초문학상] “의심 속에서 움트는 詩語… 뜻대로 써지지 않아 불행”

    [제21회 공초문학상] “의심 속에서 움트는 詩語… 뜻대로 써지지 않아 불행”

    “눈물이 많았어요. 눈물로 쓰는 건 다 진짜인 줄 알았어요. 이제 눈물이 다 말라버리니까 눈물로 쓴 것들이 사실은 가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란 과연 무엇일까…. 진짜라는 게 언어에 담길 수는 없는 거잖아요. 진짜를 예술에 담을 수 있는 능력이 저한테는 없는 것 같아요.” 유안진(72) 시인은 고희를 넘기고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탐색하는 작가다. 삶이 여물어도 확신은 흩어지고 의문은 외려 더해진다. “인생이 뭔지 끊임없이 회의하고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 같다”는 시인을 문학평론가 정효구는 “‘진아’(眞我)를 찾기 위해 힘들여 정성을 다한다”고 평한다. 제21회 공초문학상 수상작인 ‘불타는 말의 기하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유리 벽을 지나다가/니가 나니?/걷다가 흠칫 멈춰질 때마다/내가 정말 난가?’ 되묻는다. ‘쉬운 걸 굳이 어렵게 말하고/그럴듯한 거짓말로 참말만 주절대’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왜 나인가, 어떤 게 진짜 나인가 의심할 때가 많아요. 교단에 서는 내가 다르고, 집에서 가면을 벗는 내가 다르죠. 늘 옳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늘 틀린 것도 아니고. 한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가짜는 아닌가, 산다는 게 뭔가 회의가 들어요. 그러니까 자꾸 시가 나오는 것 같아요.”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교육심리학을 전공하고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16권의 시집을 냈다. 적지 않은 성취이건만 지금도 “원하는 대로 써지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토로한다. 그는 “시라는 언어 예술은 비틀고 뒤집고 왜곡시키면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며 시를 ‘둥근 세모꼴’에 비유한다. “메밀은 (중략) 시와 너무 닮았다. 세모꼴 메밀과 속의 둥근 알갱이는 (중략) 창조 의도와 오해의, 신뢰와 의심의, 현실과 이상의, 진실과 허상의, 내심과 외형의, 이 시대와 꿈꾸는 시대 등의 모순 충돌과 갈등을 그대로 닮았다.”(산문집 ‘상처를 꽃으로’ 중) 진짜 자아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시인에게 그 자신은 ‘집’이 아니라 ‘짐’(문학평론가 정효구)이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성취는 ‘둥근 세모꼴’ 삶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자책이나 절망에 그치는 게 아니라 깨달음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철부지도 아니면서 왜 이러고 있지?’ 하고 자문하다가도 ‘의심하고 의심받는 것은 철드는 것’(‘의심의 옹호’)이라고 긍정하고,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면서 허무에 시달리다가도 ‘위대한 허무란/기다릴 게 없는데도 기다리는 것’(‘기다림을 기다린다’)이라고 관조한다. 의심과 회의는 반성으로 이어진다. ‘거꾸로 로꾸거로 생각을 돌려봐도/캄캄한 암흑 속 아몰아몰 아지랑이뿐’(‘거꾸로 로꾸거로’)인 반성의 시간이지만 시인은 끈기 있게 삶을 응시한다. “인생은 한 번 지나면 못 돌아오잖아요. 그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걸 거꾸로 해왔어요. 위선과 위장과 허위로 살았어요. 못 하면서 잘하는 척하려고 했고, 남을 앞지르려고 했어요. 똑똑한 질문 하나 해보겠다고 너무 애를 썼어요. 거꾸로 해온 걸 다시 거꾸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로꾸거’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거꾸로 해봐도 나는 너무 썩은 것 같아요.” 수상작이 실린 시집 ‘걸어서 에덴까지’에서 검은색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흰색이 다른 색을 용납하지 않는 배타적 색인 반면 회의와 후회를 포용하는 검은색은 ‘신의 색채’이기 때문이다. “흰색은 조금만 잘못해도 흔적이 생기잖아요. 흰옷에 묻은 얼룩은 아무리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아요. 하지만 검은색은 잘못과 실수를 모두 받아서 감춰 주죠. 인생은 자기를 때묻히면서 사는 거잖아요. 태양 속에 왜 흑점이 있을까요. 밤이 없으면 대낮이 없듯 검은색은 귀향점인 동시에 시작점인 것 같아요.” ‘내 이맛머리 새치는 언제쯤에야 검어질 것인가’(‘아직도 아직도냐?’) 자문하는 시인은 “나이가 들수록 바보가 되고 싶다”며 해사하게 웃는다. “젊을 때는 잘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과 같아지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실수하는 게 좋다”고 덧붙인다. “손자랑 노는 할아버지를 보세요. 나이든 사람의 근엄한 언어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표정과 손짓을 쓰잖아요. 저는 너무 오만하게 살아왔어요. 인생이 후회스럽죠. 다시 살라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가 되고 바보가 되는 것, 그렇게 낮아지는 게 지순해지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불타는 말의 기하학 쉬운 걸 굳이 어렵게 말하고 그럴듯한 거짓말로 참말만 주절대며 당연함을 완벽하게 증명하고 싶어서 당연하지 않다고 의심해 보다가 문득문득 묻게 된다 유리 벽을 지나다가 니가 나니? 걷다가 흠칫 멈춰질 때마다 내가 정말 난가? 나는 나 아닐지도 몰라 미행하는 그림자가 의문을 부추긴다 제 그림자를 뛰어넘는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확인해야 할 것 같아 일단은 다시 본다 이단엔 생각하고 삼단에는 행동하게 손톱 발톱에서 땀방울이 솟는다 나는 나 아닐 때 가장 나인데 여기 아닌 거기에서 가장 나인데 불타고 난 잿더미가 가장 뜨건 목청인데. ■유안진 시인은…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교육학과, 동 대학원 석사, 미 플로리다 주립대 교육심리학 박사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달하’, ‘봄비 한 주머니’, ‘다보탑을 줍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둥근 세모꼴’,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 특별상, 월탄문학상, 한국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유심문학상, 구상문학상, 간행물윤리위원회상 등 수상
  • 전쟁 흔적 오롯한 양구 두타연·북한이 더 가까운 백령도…

    전쟁 흔적 오롯한 양구 두타연·북한이 더 가까운 백령도…

    6월은 호국의 달이다. 한국관광공사는 ‘내나라 호국·안보여행’이라는 테마로 ‘6월에 가볼 만한 곳’을 선정했다. ‘전쟁의 상처 위에 피어난 청정한 자연, 양구 펀치볼과 두타연’(강원 양구) ‘분단의 현장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다, 연천 안보 관광’(경기 연천) ‘평화와 전쟁, 사랑과 아픔이 공존하는 서해의 보석 백령도’(인천 옹진군) ‘덕이 있는 산에서 만나는 의병의 외침, 무주 덕유산 의병길’(전북 무주) ‘항일운동의 큰 별이 태어난 역사의 땅, 홍성’(충남 홍성) ‘한국전쟁이 남긴 3년의 기록,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경남 거제) 등 6개 지역이다. ▲양구 펀치볼과 두타연 양구는 6·25전쟁 당시 9개 전투가 벌어졌을 만큼 치열한 전장이었다. 어느 곳보다도 ‘통일’이라는 단어를 먼저 곱씹어 보게 하는 곳이다. 양구 제1경은 두타연이다. 2004년 개방되기까지 민간인 통제구역이었던 덕에 싱싱한 자연이 오롯이 남아 있다. 양구군 경제관광과(480-2251, 이하 지역번호 033). 광치막국수(481-4095)는 막국수와 돼지고기 편육을 잘한다. 읍내 동문식당(481-1057)은 값싸고 영양가 높은 콩탕으로 이름났다. ‘특산’ 강된장을 얹어 먹는데, 참 별미다. ▲연천 안보 관광지 연천의 승전OP(Observation Post, 초소)와 1·21무장공비 침투로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우리의 아픈 현실을 웅변하는 곳이다. 1·21무장공비 침투로에는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폭파하기 위해 휴전선을 넘어온 무장 공비 31명이 경계 철책을 뚫고 침투하는 모형물이 전시돼 있다. 연천군 문화관광체육과 관광팀(839-2061, 이하 지역번호 031). 한탄강 오두막골(832-4177)은 가물치 구이로 유명한 집. 얼큰한 민물 새우탕이 곁들여진다. 불탄소가든(834-2770)의 잡고기 매운탕도 맛있다. 재인폭포 아래 있다. ▲서해의 보석 백령도 백령도는 우리 땅의 서쪽 끝이자 북쪽 끝이다. 중국 산둥반도와 190여㎞, 북한의 황해도 장연군과는 10㎞ 떨어져 있다. 백령도와 인천을 오가는 뱃길이 200㎞ 남짓. 서울보다 북한이나 중국과 더 가까운 셈이다. 백령면 민원실(836-3000, 이하 지역번호 032). 백령도 사곶냉면(836-0559)은 3대를 이어온 맛집. 메밀로 뽑은 면발에 평양식의 밍밍한 육수가 일품이다. 돼지고기 편육도 좋고, 짠지떡도 별미다. 짠지떡은 메밀반죽에 볶은 김치를 넣고 만두처럼 빚어낸 떡이다. ▲무주 덕유산 의병길 칠연의총과 칠연폭포를 거쳐 동엽령까지 이어지는 덕유산 의병길은 순국 의병들의 의기를 느끼며 걷는 길이다. 백련사 탐방로는 누구나 쉽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코스. 무주군 관광육성계(320-2547, 이하 지역번호 063). 무주의 자랑은 물 맑은 금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여낸 어죽이다. 읍내 군청 앞의 금강식당(322-0979)과 앞섬다리 부근의 앞섬마을(322-2799), 뒷섬마을의 큰손식당(322-3605) 등이 이름났다. ▲역사의 땅 홍성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백야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 선생은 역사에 길이 남을 항일운동가다. 홍성에는 김좌진 장군과 한용운 선생의 생가와 사당이 마련돼 있다. 두 명소는 6.5㎞ 떨어져 차로 달리면 10분 거리다. 궁리포구와 새조개 축제로 유명한 남당항 등 천수만 인근 포구도 멀지 않다. 홍성군 문화관광과(041-630-1808). 둘레가 40㎞에 이르는 예당호 주변에 민물고기를 갈아 만든 어죽과 시래기를 넣어 끓인 붕어찜 전문 음식점들이 많다. ▲한국전쟁이 남긴 3년의 기록,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한국전쟁 당시 최대 17만 3000명에 달하는 전쟁포로를 수용했던 거제포로수용소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다. 포로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오라마관과 포로수용소 유적박물관, 잔존 유적지 등이 조성돼 있다. 거제 조선테마파크와 도장포 바람의 언덕, 이순신 장군의 옥포대첩기념공원 등도 함께 돌아보는 게 좋겠다. 거제관광안내소(639-4178, 이하 지역번호 055). 백만석(637-6660)은 도다리쑥국과 멍게비빔밥 등으로 입소문이 났다.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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