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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사 급진전… 사건 주내 마무리/이양호 파문­수사 이모저모

    ◎“이 전 장관 1억5천만원 수뢰 사실같다”/다이아 돌려준 소영씨 사법처리서 제외 검찰은 23일 대우중공업 정호신 부사장을 소환하는 등 대우그룹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 이양호 전 국방장관 소환을 앞두고 막바지 수사를 벌였다. ○13억원은 받지 않은듯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이번 주안에 수사를 끝낼 것』이라고 밝혀 수사가 상당히 진전됐음을 시사. 이 관계자는 『권병호씨가 사기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우중공업으로부터 3억원을 받아 그 가운데 1억5천만원을 이전장관에게 건넸다는 것은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고 수사 경과 가운데 일부를 소개. 그러나 이전장관이 대우로부터 추가로 13억원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권씨가 이전장관을 업고 크게 한탕하려 한 것 같은데 이전장관이 13억원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고 설명. ○…안강민 중수부장도 이날 상오 9시30분쯤 결재를 받기 위해 김기수 검찰총장실로 올라가면서 이 사건 수사착수 이후 처음으로 밝은 표정을 지어 수사의 전기가 마련된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안 중수부장은 하오에도 기자들을 만나 『(바둑에 비유)나는 빨리 두는데 상대방이 오래 끈다』고 밝혀 이미 수사의 큰 줄기를 잡았음을 시사. 그는 또 『이 전 장관은 언제든 필요하면 소환할 수 있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 그는 『북경에서 다시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권씨가 오늘도 전화를 걸어왔기에 빨리 귀국하라고 말했다』고 수사 상황을 소개하기도. ○“아직은 참고인 자격” ○…윤영석 대우그룹 총괄회장이 22일에 이어 이날 다시 소환된 것은 정부사장과 대질신문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 검찰 주변에서는 지난 해 3월 권씨에게 3억원을 건네준 경위 등에 대한 윤회장과 정부사장의 진술이 엇갈려 추궁한 결과 뇌물공여의 실체가 일부 드러났을 것이라고 분석. 검찰은 그러나 『이들은 아직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자격』이라며 여전히 신중한 태도. ○…검찰 관계자는 권씨로부터 다이아몬드 반지 등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노소영씨에 대한 사법처리와 관련,『노씨를 조사한 결과 다이아를 받기는 했으나 인사 청탁을 받고 곧 돌려준 것으로 밝혀져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소개. 그는 이어 『노씨를 검찰 외부에서 조사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며 『그러나 21일 낮 외부인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머플러 등을 두른채 한 승용차에 여러명의 여자와 함께 타고 검찰청사로 들어와 한나절 조사를 받은 뒤 저녁에 돌아갔다』고 밝혔다. ○중국에 검사파견 안해 ○…검찰 관계자는 『중국 북경에 체류중인 권씨를 조사하기 위해 수사검사를 파견하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부작용이 많을 것 같아 취소했다』고 밝혀 눈길. 그는 『권씨가 미국 시민권자인데다 중국과 사법 공조체제가 맺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사를 파견할 경우 주권 침해의 오해가 일 소지가 있는 등 긁어 부스럼을 만들 우려가 있다』며 이유를 설명.〈박홍기·김상연 기자〉 ◎계좌추적 어떻게 하나/입출금 계좌번호·예금주 확인뒤/은행거친 수표 배서인 모두 추적/현금인출·사채시장 할인땐 난관 검찰은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의 뇌물수수 의혹을규명하기 위해 이전장관과 주변인물 등 26명 명의의 계좌를 추적,돈의 흐름을 캐고 있다.이 전 장관과 대우중공업이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객관적인 물증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순이다. 율곡사업 비리나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에서 보듯 계좌추적은 수사기관이 뇌물수수 사건을 수사할 때 혐의사실을 잡아떼는 피의자의 방어벽을 허물 수 있는 「전가의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이 현재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하는데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이전장관과 부인 김혜숙씨가 2억5천여만원의 채권을 사고판돈의 출처와 사용처다.이 전 장관의 재산공개 항목에는 이 부분이 누락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좌추적은 시간과 노력 등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때 동원된 「포괄영장」 제도를 활용하더라도 돈이 입출금된 연결계좌 중 최소한 한계좌의 번호나 예금주의 명의를 확보해야 한다. 또 계좌나 예금주의 명의를 확보하더라도 돈의 흐름이 바로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금융기관을 들락거린 수표의 뒷면에 기재된 명의자를 쫓아야 한다.문제의 수표가 여러 금융기관을 거쳤다면 이같은 과정을 수 없이 거쳐야만 비로소 자금의 뿌리를 캘 수 있다.물론 배서인이 모두 실명이라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도중에 현금으로 인출됐거나,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채시장에서 할인 등의 형태로 수표 바꿔치기 등의 수법이 동원됐다면 계좌추적은 곧 벽에 부딪치게 된다.수표의 앞 뒷면을 촬영한 마이크로 필름의 촬영 상태나 보관상태가 나빠 해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같은 난관을 극복하고 돈의 꼬리만 잡아낼 수 있다면 뇌물수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만약 이 전 장관과 주변 인물들이 입출금된 돈의 출처를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면 일단 뇌물로 볼 수 밖에 없다.현재 이 전 장관에 대한 계좌추적은 비교적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박은호 기자〉
  • 건설 소음·진동 규제 강화/자동차 배기장치 검사기준도

    앞으로 대규모 건설공사 등으로 인한 소음과 진동에 대한 규제가 한층 강화된다.또 자동차 정기검사 때 배기가스의 머플러를 변형시키거나 떼어낸 행위도 불합격 사유가 된다.환경부는 22일 이같은 내용의 소음·진동 규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대규모 건설공사처럼 소음과 진동이 심한 사업장을 「건설소음·진동 규제지역」으로,이보다 정도가 덜한 사업장을 「생활소음·진동 규제지역」으로 나눠 규제하는 것을 「생활소음·진동 규제지역」으로 일원화했다. 이로써 전용 공업지역이나 수출공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대부분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 현대자,아주에 자동차 공장/연산 4만대 규모

    현대자동차가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현지 자동차 조립공장을 설립,본격적인 아프리카 시장공략에 나선다. 현대자동차는 14일(현지시간) 보츠와나 가보른시에서 백효휘 부사장을 비롯한 관련 임직원과 조지 크로고바 보츠와나 상공부장관 등 현지 정·재계 인사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간 4만대 생산규모의 보츠와나 현지 조립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이 공장은 현대자동차의 남부 아프리카지역 판매법인인 현대모터디스트리뷰터사와 합작으로 설립되며 오는 98년 1월 완공돼 생산에 들어간다. 생산차종은 엑센트와 아반떼,쏘나타Ⅲ 등 3개 차종이며 점차 생산규모를 늘려나갈 방침이다. 현대는 생산되는 차량의 대부분을 인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수출하고 머플러·타이어·배터리 등 전체 부품의 30% 가량을 현지에서 조달할 예정이다.〈김병헌 기자〉
  • 농가에 소총든 강도/군용 K2 소지/탈영병 추정… 검문강화

    ◎어제 하오 포천서 경기도 포천에서 무장탈영병으로 보이는 20대 남자가 K­2소총을 들고 농가에 들어가 금품을 털어 달아난 사건이 발생,군과 경찰이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등 검거에 나섰다. 28일 하오5시35분쯤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영송리 595 임모씨(58·농업)집에 유탄발사기가 부착된 K­2소총을 든 20대 남자가 침입,임씨와 부인 박해옥씨(57),손녀 2명 등 4명의 손을 넥타이와 머플러로 묶은 뒤 임씨의 주머니에서 현금 25만5천원을 빼앗은뒤 검정색승용차를 타고 서울 방면으로 달아났다. 얼굴을 청색테이프로 가리고 모자를 눌러쓴 범인은 이날 임씨집에 들어와 가족들을 거실 한쪽으로 몰아놓고 실탄이 든 탄창을 보여주며 K­2소총의 노리쇠를 후퇴,전진시키면서 이들을 위협하고 넥타이 등으로 손을 묶었다는 것이다. 임씨는 『범인은 1백75㎝의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20대 중반 청년으로 티셔츠에 점퍼,베이지색 하의 차림이었으며 흰색운동화를 신고 있었다』면서 『노리쇠에서 실탄이 떨어지자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다』고 말했다.
  • 스카프로 가을멋 “한껏”/실크·울 소재,브라운·카키색 유행

    ◎매는 방법 따라 여러 분위기 연출 날씨가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하면서 스카프와 숄·머플러 등을 이용,우아하고 개성있는 멋을 연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스카프류는 멋쟁이 여성들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패션소품으로 매는 방법에따라 여러가지 분위기의 연출이 가능하다. 올 가을 선뵈고 있는 스카프와 머플러의 전반적인 경향은 자연주의로 숲과 낙엽 등에서 따온 브라운·카키·레드 브라운처럼 낡고 바랜듯한 느낌의 색상과 모티브들이 유행의 주종을 이룬다. 소재는 전체적으로 실크와 울등 천연의 고급소재가 많고 니트의류의 유행과 함께 이에 어울리는 니트조직의 머플러도 등장했다. 스카프는 종류와 용도에따라 스카프와 숄·머플러·스톨·판초 등으로 나눈다.이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머리·목·어깨 등에 걸치거나 두르는 다용도의 스카프이고 숄은 정방형·삼각형·장방형으로 된 장식용 어깨덮개다.머플러는 스카프나 스톨과 마찬가지로 목에 두르는 용도이나 천이 두꺼운 본격적인 방한용이다. 스카프와 숄이 우아한 멋을 연출한다면 머플러는 경쾌한 멋을 내는것이 특징.스카프는 옷과 같은 계통의 색이 가장 무난하고 줄 무늬나 체크무늬는 스포티한 복장에,물방울 무늬와 작은 프린트 및 무지무늬는 드레시한 복장에 어울린다.
  • 올겨울 스키복/디자인 다양/유럽풍 유행

    ◎남성은 사파리·여성은 점퍼 스타일 선호/소재/가벼운 특수원단 사용/보온중점·물세탁 가능/색상/분홍·하늘색 나염무늬/고급스런 단색이 주류/국산재킷 15만9천∼22만원·바지 8만7천∼26만원선 겨울 스포츠의 꽃 스키가 점차 대중스포츠로 자리잡으면서 스키복에도 패션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27일 전국의 스키장이 일제히 개장하면서 각 스키장에는 하얀 눈밭위의 화려한 색의 향연이 연출되고 있다.각 백화점과 스키용품상가는 스키용품 특판코너및 일찍부터 할인행사를 마련,대대적인 판촉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스키용품코너를 찾는 소비자들도 지난달 대비 두배정도가 늘었다는 것이 업체관계자들의 설명. 올 겨울 스키복 유행의 두드러진 특징은 디자인과 색상,소재면에서 어느해보다도 더욱 다양해졌다는 점이다.또 각 업체들이 스키의류에 어울리는 장갑 목도리 터들등의 소품세트도 내놔 스키복 패션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색상면에서는 일본패션의 영향을 받은 강렬한 원색이 뒤섞인 화려한 나염무늬와 유럽풍의 고급스러운 단색이 주류.10대와 20대 젊은층에게는 나염의 화려한 무늬가,30대 이상에게는 분홍·하늘색등의 고급스러운 단색이 선호되고 있다. 『재킷의 경우 남성은 풍성한 사파리스타일을,여성들은 경쾌한 느낌을 주는 점퍼스타일을 대체로 구입한다』고 롯데백화점 「벨페」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변희숙씨는 말한다.엉덩이가 큰 여성등 몸매에 자신이 없는 여성은 감춰주는 사파리스타일을 찾는다고. 한편 몸매를 강조하면서 보온효과가 큰 원피스형 스키복은 퇴조추세다.반면재킷과 바지를 따로 구입할 수있는 콤비스타일이 강세.롯데 백화점 「르까프」브랜드 판매원은 『지난해부터 원피스를 찾는 손님은 거의 없어 올해는 국내·수입브랜드 대부분이 원피스형태의 스키복을 대폭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흐름은 재킷이나 바지중 하나가 흠이 생겼을때 따로 따로 구입할 수있어 최근의 패션전반의 실용적인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특히 재킷의 경우 스키장이 아닌 곳에서도 입을 수 있는 겸용디자인이 노소를 막론,선호되고 있다. 또 안과 겉을 바꿔 입을 수 있는 양면및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누빔 속재킷을 부착시킨 이중재킷도 인기다. 소재면에서도 보온재를 가볍게 해 무게를 줄이는 한편 부드럽고 질긴 특수원단을 겉감으로 사용하고 바지에는 양방향으로 신축되는 투웨이스판등을 사용하고 있다.또 재킷안쪽및 폴라티셔츠 모자등에 폴리에스테르를 특수가공,부드러움과 보온성을 강화시키고 물세탁도 가능케한 소재도 새롭게 사용하고 있다. 수입과 국산제품에 따라 가격차가 많다.수입품의 경우 재킷은 30만∼30만5천원,바지는 20만∼22만원선이며 폴라셔츠가 13만5천원선이다.장갑 머플러등의 소품은 3만5천∼4만원선. 국산제품은 이보다 30∼45%정도 싸다.재킷은 15만9천∼22만원.바지는 8만7천∼26만원선이다.
  • 스카프/숄/머플러/세련미 돋보이는 겨울멋 연출

    ◎패션소품 착용 요령·유행경향등을 알아보면/숲이미지 살린 자연주의풍 디자인 유행/롱 스커트위에 스카프 두르면 “화려한 변신”/숄은 느슨하게… 스웨터엔 머플러로 악센트 스카프와 머플러,숄이 패션 소품으로 각광받는 계절이다.옷틈으로 들어오는 찬기운을 막아주는 보온용으로,또 겨울옷의 어두운 분위기를 화려하게 꾸며주는 액세서리로 그만인 이들 패션 소품들은 응용방법에 따라 적은 옷으로 여러벌 옷의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 올겨울 스카프 및 머플러·숄 디자인의 주요 포인트는 낙엽이 쌓인 숲속등의 느낌을 표현한 「자연주의」풍.오래된 건축물의 벽화나 건물양식등에서 따온 디자인도 한목하고 있다.백화점등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소재와 제작업체에 따라 천차만별이나 대체로 실크스카프가 9천5백∼4만5천원대,모직머플러가 1만5천∼9만9천원선에 판매되고 있다. 스카프등은 착용한 옷과의 조화 여부나 매는방법에 따라 자칫 촌스럽거나 투박해 보이기 쉽다.스카프 머플러를 이용,세련된 멋을 연출하는 방법 몇가지를 소개한다. ▷스카프◁①어깨에 걸친후 양끝을 그대로 올려 접어 고리를 낸다음 겹쳐서 브로치로 고정시킨다.특히 우아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주는 타입이다(그림A).②정방향 스카프를 삼각형으로 접은뒤 주름을 잡아 어깨에 걸치고 끝을 보자기 매듯이 한번 매고 다시 직각으로 튼다음 한번더 맨다(두번째 맬때 위로 올린 끝을 밑으로 해 처음 매듭과의 고리사이로 넣어야 사각형으로 예쁘게 매어진다).다음 매듭을 한쪽 어깨위로 돌리고 반대쪽 주름을 내려 모양을 바로 잡는다. ③스카프를 길게 사다리꼴로 접은뒤 두군데 매듭을 매 목에 두르고 다시 매는 방법.니트의류차림에 어울리는 깔끔한 연출법이다.이밖에 스카프는 벨트대신으로 헐렁하게 매거나 모직롱스커트 위에 겹쳐 둘러 입으면 하늘거리는 실크의 우아함이 돋보이는 파티복으로도 그만이다. ▷머플러◁ 머플러는 반으로 접어 목을 두른뒤 접어서 생긴 고리 사이에 자연스런 V자가 되도록 끝부분을 통과시킨다.풍성한 스웨터를 입을때 적당하다. ▷숄◁ 숄은 큰것이 화려하고 과감한 패션연출에 좋으나 키 작은 사람은더욱 작아 보이게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목부위에 단정하게 매기 보다는 스카프 방법 ②과 같이 어깨에 두르듯 느슨하게 걸쳐 매는 것이 한결 멋스럽다.또 커다란 모직 숄을 치마처럼 두르고 벨트를 한뒤 흘러 내리지 않도록 핀으로 고정 해주면 유럽풍의 랩스커트를 연출할 수도 있다.
  • 올겨울 풍성하고 따뜻하게/여성코트 롱스타일 유행

    ◎길이 발목까지… 머플러로 세련미 연출 올 겨울 각 여성의류업체들이 내놓은 코트 신제품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것은 풍성하고 여유로운 롱 스타일이다. 박스형이나 세미A라인으로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이들 코트는 그 길이가 발목까지 오도록 입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패션전반에 흐르고 있는 복고풍과 지난 봄·여름에 이어 자켓 스커트 등 여성 기본의류의 길이가 길어지는 추세가 계속됨에 따라 나타나는 당연한 경향이라고 (주)신원 「씨」디자인팀장 이지은씨는 말한다. 소재와 색상면에서도 이들 코트는 첨단소재가 주는 「튀는」느낌보다는 복고풍의 소재와 자연색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로 준다. 투박하고 거친느낌의 홈스펀이나 최근 유행급상승세를 타고 있는 빗살무늬의 헤링본,검회색위에 히끗히끗해 보이는 조직이 드러나는 캔피소재등이 그것이다. 색상도 지난해 빨강 파랑등의 강렬한 색상군에서 벗어나 오래 입은 듯하면서 친근감을 주는 베이지,갈색톤과 밝은 회색계통이 많이 선보인다.풍성한 가운데 깔끔한 멋을 낼 수있도록 스탠컬러로 처리하거나 남성적이면서 경쾌한 멋을 낸 변형 테일러드컬러도 인기다. 이들 코트는 특히 롱스커트나 통바지,목까지 오는 니트의류와 어울려 자연스러움을 연출할 수 있으며 검은색 폴라셔츠에 베스트를 받쳐 입어도 깔끔한 멋을 낼 수 있다고 이지은 실장은 조언한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통굽이나 앵클부츠등 고전적인 구두와 베레모나 뜨깨모자,중국군 모자,큼직한 머플러를 걸치면 한결 세련된 유행으로 따뜻한 겨울을 날수 있다.
  • “코트에서 모자까지”…/올 가을패션 니트류 붐

    ◎보온성 뛰어나고 활동에도 편리/단순스타일 탈피 겹쳐입기 유행/신체 윤곽 강조하는 자연주의 경향과 맞물려 초겨울의 날씨가 느껴지는 요즘 보온성과 활동성이 뛰어나고 입기에도 투박하지 않은 니트의류가 단연 인기를 끌고있다. 특히 올가을은 가디건이나 셔츠에만 주로 이용되던 니트의류가 코트에까지 확대되고 니트직물의 모자 핸드백등 소품등도 다양하게 활용돼 멋쟁이 여성들의 관심 아이템으로 대두되고 있다. 올 가을니트패션의 가장 큰 특징은 겹쳐입기.니트수트등 단순한 베이직스타일보다는 깔끔한 끝단 처리를 하지 않고 올이 풀린듯 지저분해 보이는 셔츠등 다양한 디자인의 단품을 이용,옷입는 이들의 분위기에 따라 응용한다. 최근 유행되는 연출법은 배꼽까지 오는 셔츠와 긴조끼식의 니트원피스 껴입기,또 니트 풀오버와 함께 긴 니트스커트를 입고 그위에 짧은 니트조끼를 입은 다음 다시 긴 베스트를 겹쳐입는 것 등. 이러한 니트의 대유행은 니트가 편물로 짜여져 신축성이 좋고 구김이 가지 않아 부드럽고 신체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드러내준다는 점이 최근의 자연주의 패션경향과 부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색상도 강한 원색보다는 아이보리 갈색 베이지등의 중간색톤의 자연색깔이 많이 눈에 띈다.문양도 올봄까지 유행하던 꽃무늬가 자취를 감추고 단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식회사 신원의 베스티벨리 디자인실 김영애실장은 『거칠지 않은 여성적인 히피풍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이의 눈에 너무 부담을 주지 않는 연출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깨패드를 사용하지 않는 옷을 겹쳐입음으로써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선의 윤곽을 최대한 살리고 니트로 된 롱 투피스를 입은 위에 긴 니트 조끼나 재킷을 걸쳐입으면 여성스러운 정장 분위기를 표현할 수있다고 조언한다. 이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는 니트 베레모나·머플러·소박한 디자인의 목걸이·굽높은 통굽구두로 전체적으로 더욱 자연스러운 면이 강조되는 아이템이다.
  • 더 부끄러워하자/윤오숙 방송위홍보부장(굄돌)

    대학입시부정에 대한 기사가 연일 거듭 될수록 그 규모와 비례하여 추함을 더해간다.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자식의 장래를 돈으로 사는 눈먼 모정도 그렇고,아들 답안지를 슬쩍 고친 채점교수 아버지도 그렇고,한탕주의에 빠져 대리시험응시로 성실하게 쌓아갈 미래를 불확실한 것으로 망쳐버린 젊은 청춘도 그렇고 이들을 사주한 교사 일당도 그리고,대학발전을 부정한 돈으로 도모한 대학총장도 그렇다.조사경찰에게 자식생각하는 부모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빗나간 모정이나 피해학생에 대한 가책을 갖기보다는 남편출세에 지장을 염려하는 장군 아내의 지어미다운 마음 또한 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 모아 발전을 이룩한들 진정한 상아탑이 될리 없으련만,성실히 공부해온 학생을 불합격시킨 대가로 키워온 거짓의 성에 우리 아들 딸들의 교육이 볼모되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일이다.또한 합격조작으로 불합격된 애들의 실망과 상심을 어떻게 위로하고 보상해야 될까.나 자신의 경험을 돌아 보아도 학교성적이 웬만하여 큰 걱정없이 대학에 합격한 큰 딸과는 달리 공부가 시원치 않은 둘째가 대학에 실패해 재수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피해 학생들의 억울함이 가슴저리게 와 닿는다. 타인의 것이어야 할 합격의 기쁨을 빼앗아 자기 자식에게 안기는 부모들은 그릇된 애정이 자녀들의 순수함을 더럽히고 장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부모 봉양을 위해서라면 용서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식 먹이려고 쌀 한 톨이라도 훔쳤으면 그것은 도적질로 생각했던 옛날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을까? 구속된 관련자들이 손으로,모자로,머플러로 카메라에 노출을 애써 피하는 모습이 그들에게 아직은 양심이,부끄러움이 남아 있다는 증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우리 모두 그들의 허물을 자식 키우는데 용빼는 재주없는 부모된 죄로 슬쩍 동정심이 들지도 모른다.뉴스보도의 표현대로 죄없는 아버지가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공직을 내놓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지도 모른다.그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 자식들에게 자칫 맹목적인 사랑을 줄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담임 선생님께 드린 부끄러운 봉투를,자식의 버릇없음을,정의롭지 못한 마음을,건강한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낸 것을… 무릇 자식 잘못 기른죄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그리고 그들은 더 부끄러워해야 한다.
  • 발레리나 김혜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9)

    ◎도약때 새의 비상 방불… “춤의 요정”/외지,“미감번득이는 탐미주의적 포즈” 격찬/세계적 명성 얻고도 자만하지 않는 노력형/포용력있는 성품… 「사치와 무관한 예수셰계」 추구 꽃잎처럼 여리고 가늘고 향기로운 느낌.한국이 낳은 세계적 발레리나 김혜식씨의 이미지다.곧고 균형잡힌 체격과 세련된 용모,예술가의 찬란한 경력과 연륜,세계적 명성에 비해 그의 어느 구석에서도 자랑과 오만,자부심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알프스 소녀같은 순백한 표정에 말씨도 미소도 웃을때의 눈매도 부드럽다.걸음걸이도 발레리나 특유의 티를 내지않는다. 그러나 목선과 어깨선 조용히 앉아있거나 책을 읽을때 주스를 따를 때도 그에게선 어쩔수 없이 일가를 이룬 한 발레리나로서의 기품이 엿보인다. 잔잔한 리듬이 밴 발동작과 우아한 스텝은 그가 국립발레단 시절 「레 실피드」에서 보여준 「공기의 정령」,또는 몸속에 쇼팽의 선율이 흐르는 듯한 물결같은 움직임이다. 일명 「백색발레」(aballetblanc)로 불리는 「레 실피드」에서의 아라베스크와 절정을 향한 앙트리샤는 그의 많은 묘기중에서도 눈부시게 뛰어난 테크닉으로 손꼽힌다.특히 그의 도약은 그림자무게만큼이나 가벼울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 곧잘 새의 비상(비상)에 비유되곤 한다. 한발로 선채 한 다리와 한팔을 마음껏 뒤로 뻗치는 앙트리샤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신문과 댄스 전문지등에서 일찍이 「미감이 번뜩이는 탐미주의적 포즈」로 호평된바 있다. 외지 보도에서 그는 언제나 「혜식(Haeshik)」으로 불리고 한국의 임성남 사사를 밝히는등 최근의 「댄스 티처나우」지(92년 1월호)는 「서울에서 온 김혜식」특집기사속에서 「잠자는 미녀」의 「오로라」,또는 「봄의 요정」에서의 「요정(Fairy)」자체로 그의 춤을 표현하고 있다. ○임성남씨에 사사 그는 무대위에서 「사랑스럽고 감미롭고 고혹적」이다.그러나 이 글을 쓴 무용 평론가 레슬리 프라이드맨은 그의 무용가로서의 이면에는 「고집이 세고 책임감이 강하고 주어진 일에 대한 확고한 판단력과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완벽주의가 도사려 있다」고 밝힌다. 이대 무용과에서 같이 무용을 공부한 미스코리아 출신 오현주씨는 「예술가적 양심과 도덕성,세계적 수준의 발레 기교와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동시에 갖추었으나 언제나 온순하고 겸손하고 관대하다」고 친구를 자랑한다. 그의 관대함과 포용력은 이번 국립발레단 새단장 내정때 이를 질투하고 항의하는 전화를 받고도 수화기를 든채로 코를 골고 잔 이야기가 잘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그의 국립발레단 새단장은 새삼스럽게 거론된 것은 아니다.3년전부터 해마다 동아무용콩쿠르 심사위원자격으로 서울에 올때마다 스승인 임성남씨의 간곡한 권유가 있었고 무용계에서도 양식있는 실력자의 출현을 당연히 환영하는 빛이었다. 「임성남씨가 은퇴하더라도 김혜식이 있으니 안심」이라는 반응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너무 깊이 외국무대에 뿌리를 내린 그로서는 거미줄같은 스케줄에 얽매여서 이를 뿌리치고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지난 16년간 교수로 몸담아온 프레스노대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았다.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농공학교수인 부군 김주익씨와의 섬세하고도 다각적인 의논끝에 「나를 키워준 고국에 대한 감사의 차원」에서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입장이었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 김혜식은 서울에서 태어났다.아버지 김응순씨(70년 작고)는 고대출신으로 오랫동안 교통부 해운국장으로 재직,비교적 건강하고 구김살없는 환경에서 명랑하게 자란 편이다.집안에 무용을 하는 사람은 없다.다만 사촌언니이며 문단의 중진인 시인 김양식씨가 김혜식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발레리나의 꿈」을 심어주었다. 성공회 유치원시절부터 춤을 추기 시작하여 이화여중때 일본에서 러시아발레를 전공하고 돌아온 임성남무용연구소에 입소,중학교 3학년때 「꽃의 왈츠」에서 군무로 명동 시공관 무대에 섰고 고3 되던해 「백조의 호수」에서 스승인 임성남씨의 파트너로 본격 무대에 데뷔,「발레 신데렐라」로 떠올라 무용계는 일찍이 김혜식 발레시대를 예고했다. 「타고난 재능보다 부족함을 메운다는 노력」을 신조로 하여 그는 밤낮없이 포즈연습에 매달렸고 하루가 멀다하고 토슈스를 해어뜨리는 딸의 춤을 그의 부친이 말없이 뒷바라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화 「수정 온디누」를 보고 그때부터 막연히 마것 폰테인의 영국 로열발레 진출을 꿈꾸게 되었다. 당시 미국대사관 공보관으로 와있던 미스터 핸더슨은 김혜식의 「백조의 호수」「레 실피드」에서의 연속회전인 푸에테에 반해 뉴욕시티발레·로열발레 뤼스 드 몬테카를로 공연 필름을 구해주었고 새들러스 웰즈의 「불새」공연에서 눈이 핑핑 돌것같은 마것 폰테인의 현란한 선회를 마치 그 자신의 운명을 응시하듯 지켜봤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드디어 그는 67년 5·16장학금을 받아 영국으로 갔고 런던의 로열발레스쿨에 입학,세계적 프린시펄인 줄리아 파론,일리아 워드 도널드 리튼을 차례로 사사,발레스쿨 수료후엔 에롤 에디슨에게서 알레그로 스텝의 보충레슨을 위해 1년간 수업을 연장했다. 그러나 시즌엎이어서 로열발레단 오디션을 놓치는 바람에 「잠자는 미녀」솔로로 니콜라스 베리오소프 감독에게 발탁되어 스위스 취리히발레단에 입단,이 사실은 국내에도 널리 보도되었었다.그는 아름다운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 머물면서 각국에서 모여든 재능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춤출 수 있는 이상 행복하기만 했다. 그때 미국에 살고있던 동생이 그를 만나러 왔다가 「유명 발레리나의 춥고 가난한 생활」을 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하자 『예술은 사치스럽다든가 풍요로운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모든 동작이 정지까지도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만이 우리의 생명』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춤출 때외엔 화장을 하지 않는다.멋진 옷을 탐내지도 않는다.유럽 구석구석을 누비는 투어중에도 이 도시에서 저도시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모든 발레리나들이 그런 것처럼 그도 겨울에 입을 스웨터나 머플러를 뜨개질 하면서 공연 틈틈이 보았던 샛별같은 발레들을 머리속에 그리곤 한다.그중에서도 유럽공연을 가진 캐나다 레그랑 발레 캐나디안의 토슈스를 신지않은 「카르미나 브라나」는 퍽이나 인상적인 무대였다. 그는 이에 자극받아 취리히 발레단과의 3년계약을 끝내고 캐나다 몬트리올 발레단에 입단,오디션에서 2백명중 1명으로 뽑혀 처음엔 세미 솔로이스트,다시 솔로이스트로 올라서 모든 공연에서 「작은 코리안의 센스있는 작품해석,유연한 기량」등의 개인평과 함께 차츰 춤의 요정으로 변신해갔다. ○공연때마다 호평받아 「나이든 모습으로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30세가 되던 72년,워싱턴 DC 케네디센터에서 있었던 록 발레 「토미(Tommy)」공연에 찾아온 김주익씨와 그해 12월20일 프레스노에서 결혼,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농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주익씨는 「무용하는 와이프를 원치않아」결혼과 함께 그곳 신문들은 「프린세스 차밍과의 결혼을 위해 토슈스를 포기한 발레리나」를 대대적으로 보도해주었다.예상치못한 김혜식 발레 포기는 미국은 물론 한국무용계를 크게 놀라게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정주부로 머물면서 뜨개질이나 하고 한밤중에 몰래 일어나 발레 필름에 넋을 빼앗기는 아내를 발견한 김주익씨는 「그는 아내이기전에 한사람의 예술가」임을 뒤늦게 깨달았다.더구나 「이 도시에 세계를 누빈 발레리나가 와있다」는 소문과 함께 결혼 3개월만에 프레스노 시립발레단이 「호두까기인형」「잠자는 미녀」공연에 초청,네 왕자와 더불어 추는 「로즈아다지오는 비길데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란 극찬등 프레스노 시립발레단 초청발레리나겸 안무자로 활약하다 77년 프레스노대 연극무용과 교수로 초빙됐다. 자녀가 없는 이들은 푸들 스카티를 아들삼아 키우면서 친구처럼 남매처럼 오로지 세상에 두사람뿐인 것처럼 누구보다 다정한 부부다. 발레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던 부군도 언제부턴가 발레전문가를 능가하는 발레이론가가 되어 어떤 외조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혜식으로서는 그동안 큰 좌절이나 난관은 없었다.좌절과 난관이 있기 전에 철저한 연습으로 이를 대비했기 때문이다.슬픔이 있었다면 20년 가까이 친자식처럼 키워온 스카티를 지난해 모국방문기간 동안 잃은 일이다.스카티 얘기가 나오면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닮아서 춤을 잘추었는데,바느질 스티치같은 부우레가 얼마나 귀여웠는데』하며 소녀처럼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나 그런 이면에는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과 판단,완벽주의」가 도사려 오는 1월 단장취임에 앞서 지난 3주동안 발레단체의 대대적인 정비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공연스케줄이 짜져야만 2∼3시간씩 하던 연습을 하루 8시간으로 대폭 늘렸다.타성이 된 모든 잘못된 포즈나 폼은 연습을 통해서 고친다는 각오다. 이제 우리는 본격적인 김혜식 발레시대의 출범과 함께 그가 세계무대에서 호평받았던 젤롬로빈스의 「목신의 오후」,조지 발란신의 「알레그로 블리리안」그리고 토슈스 없는 「카르미나 브라나」를 국립극장 무대에서 보게될지도 모른다.그리고 그것은 그의 우상이었던 마것 폰테인의 이미지를 몸속에 간직한 꽃잎과도 깃털과도 같은,김혜식 특유의 미감이 번뜩이는 불멸의 예술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연보 ▲1942년4월 서울출생 김응순씨와 백운정여사의 3남2녀중 셋째(장녀) ▲61년 이화녀고 졸업 ▲57∼64년 임성남 무용연구소 사사 ▲63년 제1회 동아무용콩쿠르 김상 수상 ▲64년 이대 체육대 무용과 졸업 ▲64∼66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66년 5·16장학금과 동아일보 장학금 받아 도영,영국 로열발레 스쿨 수학(RADDIPLOMA) ▲67∼69년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특별연수,스위스 취리히 발레단 차석 무용수 ▲69∼72년 캐나다 몬트리올 발레단 프리마발레리나및 솔로이스트 ▲73∼77년 미캘리포니아 피그가든 댄스아카데미 안무및 지도위원 ▲72∼92년12월 미캘리포니아 주립대 프레스노대 연극무용과 교수 ▲67년 이탈리아 댄스페스티벌 초청예술가 참가 ▲68년 스위스 주네브 댄스페스티벌 초청예술가 ▲69년 캐나다 퀘백주립고교및 대학에서 발레교육과 테크닉을 위한 설기지도 ▲70년 미 자코브스 필로댄스 페스티벌 초청예술가 ▲71년 미 케네디센터 개관기념 공연 참가 ▲73∼74년 미 프레스노 시립발레단 발레리나 「잠자는 미녀」「호두까기인형」공연·안무 ▲77∼92년12월 프레스노대 포타볼댄스 투톱을 위한 안무와 초청발레리나 ▲82·86년 포타볼댄스 투톱의 일본 대만등 순회공연 ▲83년 홍콩아카데미 아트센터 발레실기지도 ▲85∼89년 센트럴 캘리포니아 발레콩쿠르 심사위원 ▲87∼89년 미국대학 발레전공 장학생 선발 콩쿠르 심사위원 ▲90∼92년 동아일보 주최 동아무용 콩쿠르 심사위원 「백조의 호수」「로미오와 줄리엣」「잠자는 미녀」「코델리아」「호두까기인형」「프린스 이글」「연」「아이다」「파우스트」「토미」「파이어버드」「미스줄리」「카르미나 브라나」「더트립」「아루키(ARUKI)」「인터플레이」「알레그로 블리리안트」「세레모니」「레 실피드」「목신의 오후」「봄의 요정」등 수십편.
  • 머플러­숄 착용 화려한 멋 연출

    ◎풍성한 스웨터엔 넓은 머플러로 액센트/어깨에 숄 느슨하게 걸치면 한결 돋보여 움츠러들기 쉬운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주고 화려한 여성미를 돋보이는데도 손색이 없는 머플러와 숄.그러나 착용한 옷과의 조화여부나 매는 방법에 따라서 자칫 투박하고 촌스럽워 보이기 쉽다. 단순함에서 탈피,한껏 제멋을 낼 수있는 멋쟁이 연출법을 알아본다. 풍성한 스웨터 하나만 입을 경우엔 자연스러운 색상과 무늬의 넓고 큰 머플러로 액센트를 준다.머플러는 반으로 접어 목을 두른뒤 접어서 생긴 고리 사이에 자연스런 V자가 되도록 끝부분을 통과시킨다. 머플러연출을 하는데 가장 힘든 옷이 V자 목선의 재킷.3색줄무늬 머플러를 이용해 2가지 색깔이 보이도록 접어 웃옷의 깃에 겹쳐 돌려 매면 재킷의 날렵한 멋을 그대로 살릴수 있다. A라인 코트를 입을 때는 코트의 부드럽게 흐르는 듯한 실루엣을 가능한한 살려주는데 목에 두번 감아 매기 때문에 약간 긴 머플러가 제격이다. 캐주얼 점퍼에는 단순하면서도 발랄한 느낌을 주는 동그란 매듭을 두번 매는 방법이적당한데 매듭이 투박해 보이지 않도록 약간 조여매도록 한다.머플러 무늬의 색깔을 겉옷과 일치시키거나 전체색상을 겉옷과 같은 계열로 하면 지나치게 평상복으로 보이는 것을 방지할수 있다. 숄은 큰것이 화려하고 과감한 패션연출에 좋으나 무게감으로 키작은 사람은 더욱 작아 보이게 하므로 유의해야한다.목부위에 단정하게 매기 보다는 어깨에 두르듯 다소 느슨하게 걸치면 한결 멋스럽다.커다란 숄 한장과 벨트를 이용해 갸날픈 실루엣의 서유럽풍 랩스커트를 간단하게 연출할 수도 있다.이때 흘러내리지 않도록 핀으로 고정을 시켜야 한다.
  • 무용가 정재만씨(이세기의 인물탐구)

    ◎힘차고 광활한 춤사위… 남무의 대가/벽사에 사사한 승무,만개앞둔 꽃망울 연상/“생활이 춤”… 삶의진실 담은 전통 재현 노력/작품구상땐 무작정 거리 헤매… 「구두한켤레」 별명도 □연보 ▲948년3월 경기도 화성출생 ▲72년 경희대 무용학과 졸업 74년 동 대학원 졸업 ▲73∼79년 국립무용단단원 ▲80년 국립국악원 수석무용 ▲80∼87 세종대 무용과 조교수 현재 정재만무용단,남무단대표(정기공연),벽사 춤아카데미 대표,서울예술단 무용감독,한국무용가협 부이사장 「92 춤의해」운영위원,숙명녀대 무용과 교수 국립무용단 무용극 출연 「별의 전설」「왕자호동」「꿈꿈꿈」「시집가는날」등서 주연 해마다 대한민국 무용제·무용예술큰잔치·무형문화재 공연참가 「춤소리」「□」「춤 그 신명」「먼길」「홰」「비천무」「바라춤」「학춤」「승무」「살풀이굿」「학불림굿」「춤4319」「달맞이」「비단타령」「빛과 소리」(88서울올림픽)「자화상」「한량무」「꿈」「광대의 꿈」「북소리사위」「태극선의메아리」「길놀이 마당놀이」뮤지컬 「옹고집전」「양반전」「지신밟기」안무 84년부터 미국·유럽각지역·동남아·호주·남미·이스라엘·연변·북경·상해 백두산 등 각지역 순회공연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중요 무형문화재평가회의 「학무」최우수상,82대한민국 무용제 안무상,84대한민국 무용제 대상,제45회 디종 국제민속예술제 금상 수상 정재만의 춤은 힘차고 광활하다.수평의 폭이 넓고 수직은 하늘로 솟구친다.긴 장삼 얼기설기하여 공간으로 획 뿌리치는 무태에는 비구름이 묻어있다.그리고 움직임 움직임마다에 기쁨과 슬픔,고통과 오뇌가 휘몰아치다 잦아든다. 신라시대 화낭을 연상케 하는 씩씩한 기상과 자신감 넘치는 풍모가 정재만 춤의 특징이다.그가 한번 춤추기 시작하면 그 주술적인 힘에 매료되어 관객은 어깨춤이 절로 나거나 한동안 숨을 멈추게 된다. 특히나 그의 「승무(승무)」는 날이 갈수록 깊은 맛을 더하여 푸른 못속에 뜬 연(연))꽃 봉오리가 만개하려는 찰라다.이제 그는 춤을 알게된 나이다. 15∼16년전쯤 어느 사석(사석)에선가 정재만의 스페인춤을 본적이 있다.그때만해도 조택원이후 송범씨가 그 맥을 이어받았을뿐 남성무용수는 다섯손가락이 넘지않았고 그중에서 정재만은 첫째 둘째를 다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풀이」며 「산조」를 한자리씩 추는 자리에서 유독 구둣발로 바닥을 울리며 등장하더니 그는 「투우사의 노래」를 허밍하면서 정열적인 스탭으로 「투우사의 춤」을 밟아나갔다.한국무용을 하는 사람답지 않은 힘찬 스타카토의 리듬이 돋보이는 춤이었다. 테이블의 붉은 카네이션을 양복주머니에 꽂고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물레타처럼 휘두르며 이리저리 소를 유인하는 동작은 마치 영화 「바렌티노」에서 누레예프의 탱고춤이 어울리듯 그늘진 구석없는 화려한 스페인춤이 더없이 어울려보였다. 춤추기 시작한지 어느덧 30년.그의 이력에는 「송범 문하생·벽사 한영숙전수생·김백봉사사」가 자랑스럽게 따라다닌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그는 일찍이 송범문하에 들어가 전통무의 발디딤새를 배우고 벽사의 「승무」「살풀이」「학무(학춤)」를 전수하여 중요무형문화재 27호인 「승무」 전수조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기전 그는 경기도당굿이 성했던 화성에서 태어나 동네에서 벌어지는 굿판에 몰두한 시절이 있었다.하루종일 굿구경에 빠져있다가 배고파 집에 돌아오면 가난이 기다렸다. 옹기를 굽는 집안에서 9남매중 다섯째인 그는 어쩔 수 없이 불우한 소년기를 보내야했고 그래서 차라리 굿판에나 따라다녔으면 하는게 소원이었다. 본래는 부농이었으나 아버지 정수환씨(70세로 82년 작고)가 남의 빚보증을 서는 바람에 집안이 망해 광성국민학교를 졸업하던해 서울로 이사,위로 큰형과 세 누나와 뿔뿔이 헤어져 그는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방배동 단칸방에 정착했다. 그때는 어머니(김순림여사·78)가 동작동 국립묘지 앞에서 꽃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아직 중학교에 가지못한 그는 낮에는 집안을 치우고 동생들을 돌보다가 저녁밥까지 지어놓고 동작동까지 나가 어머니의 꽃 모판을 받아이고 돌아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그런중에도 틈틈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책을 읽었다.하루는 헌잡지에서 본 조택원씨의가사를 떨쳐입고 춤추는 사진과 일대기를 읽고는 막연하나마 조택원씨처럼 되고싶은 꿈을 꿨었다. 『저앤 공부도 잘하고 재주도 많은데 어디 양자라도 보내어 공부를 계속하게 했으면』 어머니는 설거지에 밥하고 동생이나 돌보는 아들의 고생이 보기 안쓰러운 나머지 동료 꽃장수들에게 그렇게 하소연하곤 했다. 그후 인천으로 출가한 큰누나의 집에 얹혀살면서 여기서도 낮에는 조카들을 봐주고 밤에는 인천대건중학교,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라벌예고에 진학하면서 가정교사,그러다가 가정교사로 있던 주인집의 소개로 필동에 있던 송범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잔심부름과 청소로 학교에 다니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뚜렷한 이목구비에 재빠른 동작을 눈여겨본 송범씨가 그에게 조금씩 춤을 지도했고 그는 한 동작 한 동작을 혼신을 다해 익히면서 스승이 귀가한 후에도 혼자서 밤새도록 마루바닥을 뛰었다.발바닥이 얼얼하게 부어 성할 날이 없었다. ○송범씨 만나 춤과 인연 벽사 한영숙씨의 제자가 된 것은 벽사가 71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였다. 폐쇄적인 당시의 무용인맥에서는 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송범씨는 자신의 문하생을 선뜻 벽사에게 허락해주었다.고 한성준옹으로부터 그의 따님이던 한영숙씨에게 전수된 문화재급의 주옥같은 춤들을 남자무용수로서 전수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벽사의 유일한 남자제자가 된 그는 「승무」「학무」를 비롯,「살풀이」「산조」「훈령무」「태평무」를 차례로 전수받았고 벽사로서도 부친의 춤의 맥을 잇는다는 일념외에도 그를 친아들처럼 믿고 의지했다. 89년 10월 벽사는 눈을 감으면서 그의 춤의 사군자로 일컬어지던 승무·학무·살풀이·태평무의 보존과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살풀이」「태평무」에 대한 당부를 그에게 녹음유언으로 남겼다. 그는 요즘도 공연을 앞두거나 해외에 나갈땐 경기도 남양주군 남한강가에 모신 스승의 산소를 찾아 돗자리를 펴놓고 춤추는 성묘로 보고하기를 잊지 않는다. 지난해엔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승무·학무 보존을 위한 벽사춤아카데미를 청담동 그의 무용연구소에 개설,6월에는 「나의 춤모(모)에게 바친다」 추모공연을 가져 무용계에 훈훈한 미담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송범의 춤의 특징인 수직과 대학·대학원의 지도교수였던 김백봉의 수평,벽사의 곡선을 두루 망라하여 춤에서의 원의 완미를 이룬다는 목표를 세우고있다. 스승이 남긴 승무·학무의 보존을 위해서는 고유의 특성을 훼손·변질시키지 않는데 그치기보다 「삶의 진실에 대한 표현,삶에 대한 유기적 통찰」의 의미를 담아 전통을 재현해낸다는 자세다. 한때 초기의 춤에서 환희와 힘을 과시하면서 극적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의 외롭고 초췌했던 성장기를 은폐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창작무용에 손대기 시작한 80년에 접어들어 그는 씩씩한 우조에서 벗어나 높은 것을 한층 난춰 감동이 배제된 은은한 계면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춤소리」와 「□」은 화려함속에 비감이 느껴지는 수작으로 그는 한작품 작품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시대를 뛰어넘는 불후의 빛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역시 그런 각오로 빚어진 「북소리사위」는 북을 한곳에 고정시키지 않고 춤추는 사람이 5북에서 9북을 다루는 파격적 춤사위로 「거동이 정한(정한)하면서도 흥과 멋이 섬화처럼 빛나는 쾌작」으로 손꼽힌다. ○해마다 전국순회 공연 무용계에 남성무용수가 적은 것을 안타까워한 그는 세종대교수시절 졸업생들을 모아 정재만 남무단을 발족,87년 국립극장에서 창단기념공연을 가진이래 숙명녀대로 옮겨와서도 해마다 방학이면 이들을 이끌고 대전·대구·부산에서 당진·서산·합덕에 이르기까지 지방 구석구석을 찾아 순회공연하는등 안성들만의 「훈령무」와 「학무」 「북소리사위」를 펼치고 있다. 73년부터 6년간 국립무용단의 주역으로 뛸때의 파트너이자 경희대 후배인 박순자씨와 75년에 결혼,박순자씨는 무용극 「시집가는 날」의 여주인공을 끝으로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무용단을 떠났다.자녀는 용진(남·국악고2)형진(여·국민교1)남매. 요즘도 그는 스승들을 사사하던 시절과 똑같이 새벽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연구소에 나가 3시간연습,낮에는 대학강의와 무용감독으로 있는 서울예술단에 출근했다가 하오 6시부터 밤10시반까지 연습,춤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연구소로 달려간다.춤구상을 할때면 무작정 거리를 방황하는 버릇 때문에 「구두 한켤레」란 별명이 붙어있다.한두달에 보통 구두한켤레씩을 해뜨린다는 얘기다. 그의 생활모두는 춤이다.춤과 관련되지 않는 것은 흥미도 관심도 없다.그의 춤의 한 단면만을 본 사람이라면 씩씩하고 남성다운 용모로 인해 그들 솔직하고 사교적인 인물로 착각하기 쉽다. 더구나 「한량춤」에서 보이는 「끼」와 가락은 한량기질이 넘쳐보이기도 한다.물론 아직은 40대중반이어서 그의 춤이 달통의 경지라고는 미리 말할순 없을 것이다.다만 견제가 심한 무용계에서 일관된 침묵과 양보,남과 다투지않는 화합의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만 파고든다. 이따금 옹기장이이던 가난한 부친과 그의 굽던 옹기생각에 온몸이 뜨거워지고 아버지 그리움에 곧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그래서 요즘은 아버지를 위한 창작무 「사금파리」를 구상하고 있다. 남모를 추억과 슬픈 그리움 때문일까.그의 춤추는 손가락 끝에선 피가뚝뚝 흐르는 절규,비스듬히 미끌어지듯 내딛는 보법에는 메마른 눈물과 싱그러운 꽃가루가 동시에 흩날린다. 깊이 숙여쓴 고깔과 백합같은 정화,허공 한끝을 헤매는 속눈썹엔 부세의 번뇌가 향연처럼 타오르고 그의 승무는 지금 속절없는 방황을 헤뜨린듯 하얀 소매끝에서 장한이 적멸된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합장)인양」 동중정을 극도로 자제하여 그속에는 탄식 같은 흐느낌을 소리없이 감추고 있다.
  • 주택가 확성기 사용 제한/19∼9시

    ◎학교·병원주변은 낮시간대/환경처,소음규제안 마련 앞으로 주거지역에서는 하오7시부터 상오9시까지의 밤시간대에는 이동행상의 확성기 사용이 금지된다. 또 학교·도서관·병원주변 50m이내에서는 낮시간대에도 확성기사용이 금지된다. 환경처는 19일 소음공해를 규제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의 규제방안을 마련,각 시도와 경찰청에 단속을 의뢰했다. 이동행상이 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에는 5만∼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환경처는 이와함께 오토바이소음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음을 감안,머플러를 부착하지 않고 오토바이를 운행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50만원이하의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한편 지난 2·4분기 소음도 조사에서는 전국 주요도시 대부분의 주거지역이 기준치가 넘는 소음공해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 겨울 정기바겐세일 10일부터 열흘간/롯데(백화점)

    ◎유명브랜드 겨울의류 가격인하 판매/미도파 새해를 맞은 각 백화점은 지난 한햇동안 고객들이 보내준 성원에 보답하고 희망찬 출발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다채로운 신년맞이 행사를 마련했다.또 대부분의 백화점들은 10일을 전후해 올 첫 바겐세일에 들어간다.이번 겨울 정기 바겐세일에서는 그동안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와 국내 경기 침체로 재고가 쌓인 의류를 비롯해 가정·생활용품·신변잡화용품들을 대폭할인판매한다. ◇롯데=9일까지 92 롯데 신년특집 이벤트행사를 갖는다.각점 지하1층 식품매장에서는 신년 다례회를 마련해 녹차·우롱차·인삼차등 35종의 차를 무료시음·판매하고 비디오를 통해 차마시는 법을 소개한다.10일부터 10일간 본점·잠실점·영등포점에서 동시에 겨울 정기바겐세일이 실시된다.잠실점 10층 그레이프홀에서는 1월말까지 매주 토·일요일 「롯데 스키강좌」를 연다.초보자들에게 스키에 대한 궁금한 사항을 자세히 상담해 주고 중고 스키장비를 무료수선해준다. ◇신세계=본점 미술관에서 7∼12일 세계의 정당·정치포스터 작품전을 연다.영국·미국·프랑스등 민주주의가 발달한 세계 30여개국 50여개정당의 정치·선거 포스터 50여점을 전시하고 올바른 선거홍보의 방향을 제시한다.본점1층 특설매장에서는 9일까지 절약·저축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기 위한 「1인1통장 갖기 캠페인」을 펼친다.통장을 개설한 고객에게 동전 저금통을 선사하며 개설한 통장을 집으로 우송해 준다. ◇미도파=신년 고객들을 위해 유명 브랜드 겨울의류를 가격인하판매하고 머플러·스카프·숄등 중저가 방한패션잡화를 종합전시판매하는 「새아침,새출발」행사를 11일까지 갖는다.가르방 순모머플러 7천5백원,사각숄 9천8백원,실크스카프 1만5천원등. ◇뉴코아=10일까지 특별기획으로 「중저가 신년개막제」를 열어 의류·잡화·가정용품 단품류를 균일가로 묶어 판매한다.요술장갑·각종 액세서리가 9백20원이며 공기대접세트·실크 롱스카프·소가죽 장갑·청바지·블라우스류·아동 바지·사각숄·연필깎이·클래식소품 CD등이 9천2백원 균일가로 판매된다. ◇한신코아=9일까지 저가격상품 92가지를 엄선판매하는 「92품목선언」행사를 연다.폴리패션스카프 9백20원,커피포트 2천5백원,소가죽스커트 1만9천2백원에 판매한다.또 5층 행사장에서는 8일까지 국전심사위원 김태수씨를 초청,신년가훈을 써주는 행사를 갖는다. ◇그랜드=9일까지 각종 균일가상품전을 마련한다.혜성식품 찐빵 6개,볶음멸치 1백g,바나나 1㎏,고등어 3마리,숙녀양말 2족등을 9백20원씩에 판매하며 순모바지,스커트,가디건등을 1만9천2백원에 판매한다.
  • 당시 중대장 이대용씨의 회고:「내가 겪은 6·25」 하

    ◎혹한속 중공군 6개 사단의 포위 돌파/평양서 재편성… 「인해전술」과 싸우며 남하/51년 7월 대대장으로… 금성·금화서 공방전/저격능선 「고지쟁탈」 전투중 미 유학 명령 1950년 10월28일 하오 6시45분.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벌써 어둠이 깔렸다. 제7연대 제1중대는 5대의 트럭에 분승,주둔지인 압록강변을 떠나 초산읍으로 철수했다. 다음날인 29일 새벽 5시쯤 제1대대 수색대를 태운 군용차 한 대가 초산읍에서 다시 남쪽을 향하여 떠났다. 제1대대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하여 북한공산군의 출몰이 염려되는 구용동 남쪽 고개를 수색·점령·확보하기 위해 먼저 떠난 것이다. 그날 아침 6시30분쯤 제7연대 제1대대는 군용트럭을 타고 초산읍을 출발,남쪽으로 내려가 고장에서 연대본부와 합류했다. 이때 중공군은 고장 남쪽에 있는 풍장 일대에서 아군이 남하하는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제2대대와 제3대대는 이들 중공군을 일제히 공격,돌파작전을 개시했다. 우리 공군 전폭기들이 중공군 진지를 강타하면서 제7연대의 돌파작전을 근접지원해주었다. 중공군은 남으로 좀 밀려나는 듯했으나 그들의 두꺼운 포위망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달이 없는 어두운 밤이 됐다. 지형은 폭이 50∼1백50m 가량 되는 좁은 계곡이 길게 남북으로 놓여 있고 계곡 양쪽의 산줄기들은 가파르고 높았다. 이날 밤 12시 정각,중공군은 야간공격을 감행했다. 그들의 야간전투는 혀를 찰 만큼 아주 능숙했다. 얼마 안가서 제7연대의 전방부대가 무너지고,전방에서 흩어진 연대병력은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도로를 따라 북쪽을 향하여 달아나고 있었다. 후방으로 멀리 떨어져서 재편성을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방에서는 이미 다른 중공군 부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숨 돌릴 새없이 달려들었다. 재차 흩어져서 다시 더 먼 후방으로 달려가 보아도 그곳에서도 전황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 제7연대는 중공군 제40군예하 1개 사단과의 첫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다. 중공군은 우선 병력면에서도 우리 제7연대의 약 3배나 됐다. 군용트럭 수백 대와 사단포병 야포 6문,대전차포,기타보급품을 버린 채 제7연대는 낭림산맥의 지맥인 유령산맥 깊은 산중으로 이리저리 흩어져 들어갔다. 중공군은 이 분산병력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악착같이 우리 부대를 추격하며 남쪽으로 통하는 길목을 모두 차단하고 있었다. 중공군과의 싸움에 들어가기 전 필자의 지휘하에 있던 병력은 제1중대원 약 1백60명,배속된 중기관총반원 약 10명,귀순 동화된 북한공산군 포로 남녀 약 25명,간호학생 2명,한국청년단원 약 10명 등 모두 2백명이 넘었으며 이 중 여자 등 비무장인원을 제외한 전투가능 인원은 약 1백85명 정도였다. 필자는 이 전투가능병력 중에서 약 60명을 잃은 채 잔여인원을 이끌고 유령산맥으로 들어갔다. 높은 산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곳은 벌써 깊은 겨울이어서 뜯어 먹을 풀조차 없었다. 중공군을 만나면 싸우기도 하고 피해 달아나기도 하면서 남으로 남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포위망을 계속해서 뚫어봐도 눈에 보이는 것은 중공군뿐이고 아군은 도대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중공군과 만나 교전이 이루어질때마다 아군의 병력은 자꾸 줄어만 들었다. 중공군 6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는 데서 우리 제7연대의 인명피해는 엄청났다. 당시 제7연대에는 8명의 영관급 장교가 있었는데 이 중 6명의 손실이 있었다. 부연대장 최영수 중령,제2대대장 김종수 중령,제1대대 부대대장 조현묵 소령,연대정보주임 김재강 소령 등 4명은 포로가 됐고 제3대대장 조한섭 소령은 전사했으며 연대작전주임 조윤재 소령은 무참히 학살당했다. 포위망을 뚫고 용케도 살아나온 사람은 연대장 임부택 대령과 제1대대장 김용배 중령 두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김용배 중령은 그후 전사했다. 더욱이 장병들의 손실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내가 덕천지방 동쪽 송정리에서 대동강을 건너 남중리의 적군과 최후의 교전을 갖고 포위망을 뚫은 뒤 제6사단 사령부에 도착,사단장 장도영 준장에게 신고를 한 것은 그해 11월9일 오후 3시경이었다. 나는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나와 사단장에게 첫번째로 신고식을 갖는 장교가 된 것이다. 군악이 울려 퍼졌다. 군인 20명을 3렬 횡대로 하여 세워놓고 마지막에 서울적십자병원 간호학생 2명을 세웠다. 중대장인 나는 3렬횡대의 6보 앞 중앙에 섰다. 나는 사단장에게 다음과 같이 신고했다. 『경례! 바로! 제7연대 제1중대장,이대용 대위는 적포위망을 돌파하고 사병 20명,민간인 간호학생 2명을 지휘하여 1950년 11월9일 사단사령부에 도착했기에 이에 삼가 신고합니다. 경례! 바로!』 사단장의 위로와 격려사가 있었다. 군예대 여자 가수가 나의 목에 하늘색 머플러를 걸어주었다. 사단사령부에서 할당해주는 민중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서울적십자병원 간호학생 박태숙·정정훈양에게 하사관 1명을 딸려 서울로 떠나 보냈다. 깨끗이 보호하고 온 처녀들이 도중에서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든든한 하사관을 경호원으로 배정,서울까지 가게 한 것이다. 11월22일까지 제7연대장 임부택 대령과 김용배 중령이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왔고 후방에서 신병들과 육군종합학교 출신 신임 소위들이 보충돼 제7연대는 11월25일 재편성을 했다. 병력숫자로는 제7연대가 제대로 모습을 갖춘 셈이었다. 재편성이 끝나기가 바쁘게 제7연대는 덕천 남쪽 북창으로 이동하여 중공군과 대결하게 됐다. 북창과 가창 사이에 있는 미럭고개에서 큰 접전이 벌어졌으나 신병들인 아군이 중공군의 공격을 견뎌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공군의 진격은 계속되었고 우리 제7연대는 평양 상원 서흥 시변리 삭녕 전곡을 거쳐 다시 38선에 배치되었다. 북한공산군이 남침한 1950년도 저물어 갔다. 그해 12월31일 밤이었다. 중공군의 대공세에 밀린 제7연대 제1중대는 동두천 의정부를 거쳐 서울 북방 창동에 배치되었다. 해를 넘겨 1951년 1월6일 경기도 광주를 거쳐 백암리로 가는 도중에 나는 제1대대 부대대장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대대장 대리로 제1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영하의 매서운 바람이 살을 에듯이 불어댔다. 1·4후퇴라고 일컬어지는 설상의 피란민대열이 남으로 남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중공군도 각종 보급품들이 달리고 장티푸스까지 만연하자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이다. 중공군은 양지리 북쪽에서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제7연대는 그동안 중공군과 싸우면서도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엔 대단한 적군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도 별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불패의 군대가 아니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그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약 2개월간 제1대대를 지휘하고 나서 대대장이 새로 부임함에 따라 부대대장 직책을 수행하게 되었다. 용문산지구 전투,춘천지구 전투,구만리지구 전투,풍산리지구 전투,백암리지구 전투를 끝으로 나는 그해 7월9일 제7연대를 떠나 제2사단 제32연대 제1대대장으로 부임했다. 같은 해 10월27일에는 제32연대 제3대대장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금화지구 파조봉­이실골 전투,금성지구 전투를 하면서 제32연대 제3대대는 금성 바로 앞산인 424고지까지 1개 소대를 진출시켰다. 여기서 중공군과 매일같이 폭격전과 수색전으로 투덕거리며 한겨울을 보냈다. 미군과 교대하고 금화 쪽으로 빠져나왔다. 제32연대는 제3대대는 금화 동북방에 있는 저격능선에 배치됐고 한국군에도 임시계급제도가 도입되어 일선 보병대대장들에게는 1952년 3월부터 모두 육군중령 계급이 부여됐다. 저격능선은 지형상 항상 긴장상태에서 적과 공방임무를 수행해야 했달. 그러던 중 나는 미 육군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2년여의 전진을 씻고 부산항에서 미국행 군용수송선을 탄 것이 1952년 9월2일이다. 이때의 군복은 카키색 군복이고 모자도 카키색 군모였다. 6·25가 일어났을 때,내가 춘천도서관으로 가던 때의 군복도 카키색 군복,모자도 카키색 군모였다. 카키색 군복으로 맞이한 나의 6·25는 카키색 군복으로 막을 내렸다.
  • 전 전대통령,연희동 오던 날

    ◎769일만의 “환속”… 은은한 찬불가 마중/“그동안 배려로 인생 새로 깨달아” 출발인사/“대통령 보필 잘하라” 청와대 참모에 당부도/전직의원등 1백명과 악수뒤 사저 안으로/“송구영신” 글귀넣은 난초화분 보내/노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2년1개월여의 백담사 은둔생활을 마치고 30일 상오9시 하산,이날 하오2시 연희동 사저로 귀가. 지난 88년 11월23일 5공비리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 뒤 강원도 인제군의 자그마한 산사인 백담사로 「유배」돼 숱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반승반속의 생활을 해온 전전대통령 내외는 정확히 7백69일만에 「환속」한 셈. 전전대통령으로서는 지난 12월31일 국회 5공·광주 특위합동청문회에 출석,증언한후 백담사로 돌아간지 만 1년만에 다시 서울 땅을 밟은 셈인데 지난해의 굳은 얼굴과 달리 비교적 밝은 표정. ○주민에 손들어 답례 ▷연희동 사저 도착◁ ○…전전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여사를 태운 서울2 두6759호 베이지색 그랜저승용차가 백담사에서 4백여리 길을 달려와 먼지를 뒤집어 쓴채이날 하오1시54분 연희2동 사저입구 골목길에 도착하자 주위에 모여있던 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 검은색 오버코트에 미색 머플러를 두른 전전대통령은 미소를 띠며 차에서 내리자마자 몸을 돌려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승용차 옆에 대기하고 있던 최석립 대통령 경호실차장,김원환 서울시경국장과 악수를 하며 『고생했다』고 노고를 치하. 전전대통령은 오랜 산사생활과 29일 밤 잠을 설쳤는지 약간 여윈 모습이었으며 검은색 오버코트에 물방울무늬의 검은색 머플러를 한 이여사는 엷은 화장을 했고 사저로의 귀환이 기쁜듯 시종 웃는 얼굴. 전씨부부는 서울 조계사와 수국사 연합합창단 69명이 부르는 찬불가 「나의 연꽃」 「보현 행원」의 은은한 합창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가운데 골목길에 늘어서 대기하고 있던 주민대표·스님대표 및 이한동의원 등 현직의원,김용갑씨 등 전직각료,유흥수씨 등 전직의원 등 모두 1백여명의 환영인사들과 6분여 동안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 전전대통령은 주민대표들에게는 『일요일인데 쉬지않고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스님들에게는 『바쁘실텐데… 추운데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고 했고 전현직 의원들과 전직 각료들에게는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고만 인사를 했는데 김정례 전 보사장관에게는 어깨를 두드렸다. 이어 전씨부부는 불교합창단이 있는 곳으로 가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는데 집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과의 일체 대화를 나누지 않고 하오2시 정각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가 아쉬움을 남겼다. 전전대통령은 집안에 들어가기 직전 『집에 돌아오신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기자질문에 말없이 미소만 띈채 대문안으로 들어갔는데 사전에 기자들과의 만남은 일체 계획하지 않았었다는 후문. ▷노대통령 안부 전달◁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하오1시40분쯤 붉은 꽃이 화사하게 핀 난초화분을 연희동으로 보내 전전대통령의 귀환을 환영했는데,화분리본에 「송구영신」의 글귀를 써넣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 비서실쪽에서는 지난 27일 백담사를 다녀온 김영일 사정 수석비서관이 영접나와 전전대통령에게 인사한 후 집안으로 들어가 노대통령의 간절한 「안부말씀」을 전달. 노대통령은 하오3시30분쯤 정해창 대통령 비서실장을 김수석과 함께 다시 연희동으로 보내 자신의 「기쁨 마음」을 간곡히 전언. 전전대통령은 안현태 전 경호실장 등 측근들과 함께 정실장으로부터 노대통령의 「안부말씀」을 전해 듣고 자신의 경험을 피력하면서 『잔여임기가 2년이지만 나머지 1년은 선거 등으로 경황이 없기 마련』이라며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이 노대통령을 잘 보필하여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는데 노대통령과의 짙은 「우정」이 넘쳐흐르는 분위기였다고. ○아침부터 친척 모여 ▷영접인사들◁ ○…이날 전전대통령의 연희동 집 귀환을 앞두고 자택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친인척들의 출입이 잦았으며 상당수의 신·구 정치인들이 인사차 찾아와 눈길. 이날 상오 전전대통령의 친형 전기환씨 부부와 처남 이창석씨 부부,동서 김상구 전 의원 부부 등이 전전대통령을 맞을 준비로 여러차례 집을 들락거렸고 5공출신의 정치인들로는 김용갑 전 총무처장관이 이날 정오 무렵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이한동·정동성·권해옥·이원조·이학봉·강성모의원(이상 민자)과 권익현·김정례·권정달·유흥수·이영일·홍우준·이대순·한갑수·김정남 전 의원 등이 눈에 띄었고 이원홍·이상의·김주호·이해원 전 장관 등과 고명승 전 보안사령관 등의 인사들도 연희동 자택에서 미리 기다리다 전전대통령을 영접. ○“막상 떠나니 섭섭” ▷백담사 출발◁ ○…전전대통령 내외는 30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새벽4시에 새벽예불을 올린 뒤 상오8시쯤 대웅전인 극락보전에서 차남 재용씨와 막내아들 재만씨 등 가족들과 신흥사 혜법주지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조계종 스님 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하산예불」. 전전대통령은 하산예불이 끝난 뒤 상오8시30분쯤 「서울귀환에 즈음해 국민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발표문을 보도진에게 배포한 뒤 백담사 출발에 앞서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전전대통령은 『감개무량하시지 않습니까』라는 기자들의 물음에 『감개무량할 것 까지는 없고…』라고 말끝을 흐린 뒤 『남들이 서울로 돌아가게 돼 기쁘겠다고 하지만 막상 이곳을 떠나자니 섭섭한 마음도 있다』고 소회를 피력. ○…전전대통령 내외는 상오9시 정각 백담사를 출발,귀경길을 재촉. 백담사는 백담사 일주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분 서울 귀환 환송」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거는 한편 전전대통령 내외가 거처하던 만해당의 문마다 자물쇠를 채워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등 「환송」에 신경을 쓰는 모습. 전전대통령 내외는 이에 앞서 29일 저녁 가족과 장세동 전 안기부장,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허문도 전 통일원장관,이양우변호사,민정기비서관 등 「백담사 캠프」와 귀경이후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는 한편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김도후 백담사 주지 등과 가족예불을 드리고 만찬을 함께 하며 지난 2년여 동안의 산사생활을 회고하며 환담. ○차량행렬 2백여m ▷귀경연도◁ ○…상오9시에 백담사를 떠난 전전대통령의 차량행렬은 원통∼인제∼홍천∼양평∼구리∼워커힐∼올림픽대로∼양화대교 등을 거쳐 약 5시간만인 하오2시께 연희동 사저에 도착. 전전대통령의 하산행렬은 민정기 비서관이 탄 로열프린스 승용차가 선도했고 이어 선도경호차량,전전대통령 차량 순으로 뒤를 이었는데 전전대통령 승용차 뒤편엔 안전경호실장,이량우 고문변호사 등 측근 차량,장남 재국씨 부부 등 가족·친지차량,서총무원장 등 조계종 차량을 포함해 20여대의 차량이 줄을 이어 대열의 길이가 2백여m에 이를 정도. 11시50분께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근처의 파라다이스호텔에 도착한 전전대통령 일행은 전전대통령의 제의로 복지리로 점심식사를 들며 휴식을 취하기도. ○대학생들,반대시위 ▷연희동 주변◁ ○…이날 전전대통령의 연희동 사저 주변에는 20개 중대 2천4백여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어 긴장된 분위기. 경찰은 이날 하오1시55분쯤 전전대통령 내외가 무사히 이곳에 도착해 집안으로 들어가자 비로소 안도하는 모습들. ○…이날 전전대통령의 사저 골목입구에는 이웃사촌 명의의 『수현이 할아버지 할머니 환가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주민일동 명의의 『건강한 모습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눈길. 또 연희2동 부녀회 회원 1백여명은 골목입구의 어린이놀이터에 쌀막걸리 육개장밥 등을 준비해와 환영나온 주민들을 접대하기도. ○…연세대 학생 50여명은 이날 하오1시10분쯤 학교 교문앞에 모여 전전대통령 내외의 환가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10여분 남짓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은 유인물에서 『현정권이 전씨를 다시 불러들인 것은 5공으로 회귀하려는 국민 기만행위이며 민주세력에 대해 탄압을 가중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산사생활 감사 표시 ▷백담사 주변◁ 전전대통령이 막상 2년1개월여만에 「삭풍의 광야」로 불리는 이곳 백담사를 떠나자 현지 주민들은 대체로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여 인정에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 백담사 홍천 총무스님(40)은 전전대통령이 전날밤 만해당에서 차를 나눈 자리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해 입산을 하도록 배려해 준 여러분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만약 내가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처럼 값진 새삶을 알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라며 산사생활에 감사를 표시했다고 전언.
  • 「빨간머플러」노병들 40년만의 재회

    ◎어제 강릉기지서 6ㆍ25참전용사 환영회/김정렬 초대 총장등 80여명 첫출격지 집합/「승호리철교」폭파등 무용담 후배들과 나눠 자연스럽게 가슴위에 엊혀졌던 손들이 어느틈엔가 잇따라 거수경례도 바뀌었다. 그리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길지않은 동안 노병들은 40년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31일 상오 공군 강릉기지에서는 김정렬초대공군 참모총장 등 6명의 역대참모총장과 이곳 기지에서 출격했던 왕년의 전투조종사와 정비사ㆍ무장사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ㆍ25참전공군용사초청 환영회」가 열렸다. 강릉기지는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51년 10월1일 미공군에서 독립,한국공군최초의 단독출격을 시작해 휴전때까지 모두 7천8백80회의 출격을 기록,혁혁한 전과를 올린 한국공군의 발상지와도 같은 곳이다. 이날 C­130허큘리스수송기로 서울을 출발,환영식장에 내리던 노병들은 뜻밖의 옛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노병들은 꽃다발을 건네주는 초로의 여인3명과 40년전의 쑥스러운 미소가 아닌 환한 웃음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51년당시 강릉여고 2년생이던 김미자씨(56ㆍ강릉시청가 정복지과장)는 『전쟁중이라 생화가 없어 흰종이에 물감을 들여 화환을 만든뒤 6㎞나 떨어진 이곳 비행장까지 걸어와 출격하는 조종사들에게 걸어주었다』면서 『출격했던 비행기가운데 돌아오지 않는 비행기가 있는 날에는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화환을 걸어주며 조종사의 눈에서 눈물을 보아야했다』고 회상했다. 이날 환영식장에는 최신 예 F­16전투기와 국산 F5F제공호 등 모두 6대의 비행기가 노병들을 위해 전시됐으나 이들에게 가장 반가운 것은 물론 자신들이 타던 낡은 F51무스탕기였다. 원산이 고향으로 고향집일대를 폭격할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는 손흥준씨(64ㆍ예비역대령)는 『비록 키가작아 방석을 쌓고서야 조종이 가능했지만 51년10월 처음 무스탕을 탔을때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며 『모든 것이 우리 상황에 맞는 전투기를 우리손으로 만들고 있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라면서 전시된 국산제공호를 타보기도 했다. 노병들은 시범비행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F­5편대의 후배조종사 어깨를 두드리며 옛무용담을 자랑하기도 했다. 편대장 정석환소령(30)은 백발이 성성하 노선배의 격려를 받고 『선배들이 정말 자랑스럽다』면서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밤의 위로연에서 노병들은 미공군이 5백회이상이나 출격했어도 폭파하지 못한 평양 승호리철교를 단3회 출격으로 동강낸 일과 김일성이 금강산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월비산고지를 폭격해 탈환,전승의 기세를 잡은 일 등 영광의 기억들을 자랑했다. 한 후배조종사는 백발의 선배 노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선배들의 기개는 우리들과 우리들 후배의 가슴속에 영원이 살아있을 것입니다』
  • 저수지 남아 변시/머플러에 목 졸려

    【밀양】 9일 하오10시30분쯤 경남 밀양군 부북면 퇴로리 퇴로저수지 수문옆에서 10세가량의 남자 어린이가 머플러에 목이 감겨 숨진채 물에 떠 있는 것을 낚시를 하던 김윤형씨(29ㆍ상업ㆍ부산시 동래구 장전1동)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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