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머리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당락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문서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100㎏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이념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1,678
  • [와우! 과학] 우주여행 정말 괜찮을까…몇 달간 체류하면 뇌 부풀어 치매↑

    [와우! 과학] 우주여행 정말 괜찮을까…몇 달간 체류하면 뇌 부풀어 치매↑

    몇 달간 우주에서 중력 없이 체류하는 우주 비행사는 뇌가 부풀어 치매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텍사스대 휴스턴 건강과학센터와 미국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비행센터 등 연구진이 우주 비행사 11명(여성 1명)을 대상으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체류하기 전후와 귀환 뒤 1년간 정기적으로 뇌 MRI 검사를 수행했다.그 결과, 장기간 미세 중력에 노출되는 것이 뇌와 뇌척수액의 부피를 늘리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텍사스대의 래리 크레이머 박사는 “혈액과 뇌척수액은 중력이 미세할 때 하체 쪽으로 쏠리지 않는다”면서 “뇌로 이런 유체가 이동하는 현상은 눈과 뇌 부위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메커니즘(기전)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전에 실제로 아무도 확인하지 못한 우주비행 전에서 후까지 뇌의 백질 부피가 상당히 증가한다는 점을 확인했다”면서 “백질의 팽창은 사실 비행 후 뇌와 뇌척수액을 결합한 체적이 가장 많이 증가한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검사는 또 뇌하수체에도 변화를 준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완두콩 크기의 내분비기관으로 뇌하수체에서 성장부터 체온 조절에 이르기까지 신체에 중요한 호르몬들의 분비를 총괄하는 매우 중요한 곳인데 손상되면 회복 가능성이 낮다. 연구진에 따르면, 뇌하수체는 우주비행 전보다 후에 그 상하 길이가 줄어들어 더 작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뇌하수체의 반구형 윗부분은 미세 중력에 노출되지 않은 우주 비행사들에게서 주로 볼록하게 나타나지만 우주비행 뒤에는 평탄화하거나 오히려 안으로 조금 들어가 오목해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유형의 변형은 높아진 내압에 노출되는 것과 일치한다고 크레이머 박사는 설명했다. 이들 연구자는 또 뇌척수액이 우주비행 전보다 더 빨리 뇌를 통해 흘러가는 것을 관찰했다. 이런 결과를 연구진은 뇌수종(수두증)과 연관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수두증은 뇌실 안이나 두개강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뇌척수액이 고이는 질병으로, 우주 비행사가 아닌 일반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뇌 기능의 저하 등 수두증에 관련한 증상들 역시 지금까지 우주 비행사들에게서 관찰된 적은 없었다. 이들 연구자는 현재 인류가 이웃 행성인 화성으로 9개월 또는 그 이상의 여행을 하기 전 우주선에서 체류하는 동안 겪을 미세 중력의 영향에 대응하는 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들이 조사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인공 중력인데 이는 사람을 앉거나 엎드린 자세에서 회전하도록 하는 커다란 원심분리기를 사용해 만들 수 있다. 또다른 방법은 우주에서 유체가 머리 방향으로 흐르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하지에 음압을 가하는 기술을 조사하고 있다. 크레이머 박사는 이 연구가 우주비행이 아닌 다른 환경 조건에서도 신체가 변하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일반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는 “만일 우리가 우주 비행사들에게 뇌실의 확대를 야기하는 메커니즘을 더 잘 이해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개발할 수 있으면 이런 발견 중 일부는 정상 압력 상태에서 나타나는 수두증 등 다른 관련 질환을 지닌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북미 영상의학학회(RSNA·Radiological Society of North America) 학술지 ‘영상의학’(Radiology) 최신호(14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새끼는 어미 뒤 졸졸…50마리 코끼리 가족 대이동에 도로 마비

    새끼는 어미 뒤 졸졸…50마리 코끼리 가족 대이동에 도로 마비

    코끼리 가족의 대이동에 태국 도로가 마비됐다. 15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태국 방콕에서 코끼리 50여 마리가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도로가 전면 통제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9일 방콕 차층사오 지역 고속도로에 한 무리의 코끼리가 나타났다. 덩치 큰 우두머리를 필두로 한 코끼리떼는 건너편 숲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어미 뒤를 졸졸 쫓는 새끼들도 눈에 띄었다.코끼리떼 등장에 도로를 달리던 차들은 일제히 멈춰 섰고 경찰이 양쪽 도로를 막고 통제에 나섰다. 그 사이 코끼리 가족은 무사히 도로를 통과해 숲으로 이동했다. 수십 명의 구경꾼이 몰려들었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는 눈치였다. 코끼리 가족의 대이동을 촬영한 남성은 “50마리가 넘는 야생 코끼리가 고속도로를 건넜다. 건너편 정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며칠 동안 이 코끼리 가족을 따라다닌 야생동물 관리 당국이 급히 경찰을 불러 도로를 폐쇄했다”고 밝혔다. 또 “주변에 많은 구경꾼이 있었지만 코끼리들은 다행히 동요하지 않았다. 갓길에 차를 대고 나온 구경꾼들도 마지막 한 마리까지 모두 길을 건널 동안 숨죽여 기다렸다. 덕분에 아무 사고 없이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덧붙였다.태국 전역에 서식하는 야생코끼리는 약 1000마리 정도다. 도로나 민가에서 야생코끼리와 마주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사고도 잦다. 이번에 코끼리떼가 목격된 차층사오 지역에서는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 3명이 코끼리떼에 짓밟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농장에서 휴식을 취하다 밤사이 코끼리떼의 습격을 받은 노동자들의 시신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긴 상태로 수습됐다. 10월에는 태국 카오야이 국립공원에서 야생 코끼리가 관광객이 탄 차량을 공격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특히 번식기인 겨울이 되면 민감해진 야생코끼리가 차량이나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야생코끼리를 만나면 놀라게 하지 말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 현장을 빠져나오라고 조언한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씨줄날줄] ‘세월호 보도’와 기자협회의 사과/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세월호 보도’와 기자협회의 사과/박록삼 논설위원

    지난 13일 경기 안산시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컨테이너 회의실. 50여 명의 유가족 앞에서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이 머리를 숙였다. ‘세월호 참사 보도 행태’에 대해 한국기자의 대표자가 한 첫 공식 사과였다. 무려 6년 만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유가족들은 싸늘히 질책했다. “때만 되면 찾아오는 건 안 했으면 좋겠다. 보여 주기식도 아니고….”, “꼭 우리편 돼 달라는 게 아니다. 진실과 정의를 가려 달라는 얘기다.” 부탁도 있었다. “참사 당일 녹음 파일, 취재 기록을 주시면 진상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다.” ‘전원 구조’라는 참담한 오보도, 진도 팽목항에서 발만 구르는 가족들에게 자신들이 본 대로 보도하겠다고 말한 기자들의 헛된 약속도,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주검 앞에서 유족을 밀치고 카메라를 들이댔던 기자들의 무례함도, 틈날 때마다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만 할 것이냐’는 합리를 가장한 일부 언론의 혐오와 냉소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야속함은 켜켜이 쌓여 갔다. 그렇게 다시 4월 16일이 됐다.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는 그 자체로 참혹한 야만이었다. 국가적 참사이자 ‘보도 참사’였다. 하지만 언론의 반성은 충분하지 않았고, 이를 통감하며 책임진 보도책임자도 없었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말 ‘기레기’는 신조어가 아닌 보통명사화하고 있다. 속보 경쟁, 선정적·자극적 보도는 끊이질 않았고, 세월호를 둘러싼 정치인들의 입에 담기 힘든 모욕적 막말이 ‘따옴표 저널리즘’이 돼 보도됐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구조 지연의 이유 등이 규명되지 않은 채 대통령은 탄핵됐고, 새 정부가 탄생했다. 1차, 2차 특별조사위와 선체조사위가 활동했지만, 미흡하다. 마침내 지난해 말 검찰이 특별수사단을 꾸려 재수사에 나섰다. 이번에는 각종 의혹이 규명되길 바란다. 이 와중에 희생자를 기억하려는 작업도 더디고, ‘생명안전공원’ 건설도 공공연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함께 단식하며 진상 규명을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2년 1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갈 길은 멀다. 유가족의 속은 타들어만 간다. 눈빛 초롱했던 단원고 학생들을 엄마, 아빠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뒤늦었지만 언론이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6년 전 그때, 그곳에서 휘갈겨 쓴 취재수첩 한 조각도, 다급히 찍어낸 몇 장의 사진이라도 모으고, 당시 무엇을 잘못했는지 점검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6년 전 편집국·보도국의 기자나 보직부장, 국장들도 당시의 보도와 판단의 명암을 기록해 재난보도의 원칙을 새로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은 진실을 밝히겠다는 실천이 따라와야 완성될 수 있다.
  • 프로야구·테니스·축구… 진짜 현실이 된 가상현실

    프로야구·테니스·축구… 진짜 현실이 된 가상현실

    MLB, 선수 데이터 입력해 가상 시즌 마드리드오픈테니스, 온라인게임으로 한국프로축구는 ‘K리그 랜선 토너먼트’류현진(토론토)이 부진하다. 지난 시즌 전체 1위였던 평균자책점(ERA)이 올해 6.38로 높아졌다. 현재 성적은 1승 2패. 반면 김광현(세인트루이스)은 3경기 선발로 나와 2승 ERA 1.59로 순항하고 있다. 현실의 메이저리그(MLB)는 개막을 미뤘지만 가상의 MLB가 진행 중이다. MLB 전문 통계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가 선수와 팀의 데이터를 대입해 가상 시즌을 치르고 있다. 토론토는 15일 기준 8승 10패, 세인트루이스는 11승 6패를 기록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멈춘 스포츠가 가상 현실로 현실의 선수들을 승부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가상 시즌이 열리는가 하면 현실 대회를 게임으로 대신해 우승자를 가리고 상금까지 준다. 방송 중계는 물론 기사도 쏟아진다.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이 된 코로나19 시대의 진풍경이다. MLB 사무국은 지난 11일부터 30개 구단 대표선수들이 참가하는 야구 게임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각 선수들은 2020시즌 로스터가 적용된 자신의 팀으로 경기를 펼치고, 포스트시즌까지 진행한다. 팬들은 온라인을 통해 게임 대결을 실시간 시청할 수 있다. 우승자는 2만 5000달러(약 3000만원)의 상금을 받아 유소년 클럽에 기부한다.코로나19로 중단된 마드리드오픈 테니스 대회도 27일부터 온라인 대회를 치르기로 하면서 가상 현실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대회 최다 우승자(5회)인 라파엘 나달(스페인)을 비롯해 앤디 머리(영국), 다비드 고팽(벨기에)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출전한다. 대회 조직위는 TV생중계는 물론 해설과 하이라이트 영상 제작, 선수 인터뷰까지 준비해 실제 대회처럼 치를 계획이다. 15만 유로(약 2억원)의 대회 상금은 투어 중단으로 재정난을 겪는 하위 랭커들과 의료진에게 기부된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18~19일 선수들이 참가하는 ‘K리그 랜선 토너먼트 TKL컵’을 개최해 우승자를 가릴 예정이다. 코로나19로 2월 말 개막이 미뤄져 아쉬움이 큰 팬들을 위한 특별 이벤트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가상 현실이 실제 현실에 영향을 준 사례도 있다. 전미스톡자동차경주협회(NASCAR)가 개최한 온라인 대회에서 ‘칩 가나시’ 소속 카일 라슨이 인종차별 발언으로 무기한 자격 정지를 당했다. 현역 레이서들이 참가하고 폭스TV가 생중계한 이 대회에서 라슨이 마이크 테스트 중 내뱉은 인종차별 발언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라슨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과했지만 소속팀은 그를 해고했고 스폰서는 계약을 파기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코로나 경제위기에 빛난 ‘제조업의 힘’

    코로나 경제위기에 빛난 ‘제조업의 힘’

    車·정유 부진해도 관광·항공보다 나아 굴뚝산업 냉대… 요샌 ‘그래도 제조업’코로나19 사태가 제조업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어려운 와중에 국내에서는 그나마 제조업들이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세계적으로 수요가 줄었지만 국내 공장에선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주로 생산한 덕에 3월 수출(10억 2000만 달러)이 지난해 동기보다 11.3% 늘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나 원격개강이 늘면서 컴퓨터 및 주변기기의 3월 수출(12억 3000만 달러) 또한 77.6% 증가했습니다. 디스플레이(16억 4000만 달러)와 반도체(88억 7000만 달러)는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4.4%와 2.7% 감소했지만 어려운 세계 경제 상황에 비춰 보면 선방했습니다. 정보통신기술(ICT) 3월 수출액을 통틀면 160억 달러(약 19조 5100억원)로 지난해보다 1.1% 증가했습니다. 물론 제조업 중에서도 자동차, 정유 등 업황이 좋지 않은 분야가 많지만 그래도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인 관광, 항공, 공연, 영화, 스포츠 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외 공장이 잠시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리는 반면 주요 대기업들의 국내 사업장은 가동률을 낮추더라도 계속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한국은 종업원 1만명당 774대의 산업용 로봇이 설치돼 있어 유럽평균(114대)은 물론이고 제조업 강국인 독일(338대), 일본(327대)보다 자동화율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최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국내 제조사와 그 종사자들을 가리켜 ‘숨은 영웅’이라고 치켜세운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동안 국내 제조업은 환경 오염을 야기하는 ‘굴뚝 산업’이고 부가가치가 낮아 언젠가는 탈피해야 하는 산업군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 100여개에 이르는 마스크 공장이 없었다면 코로나19 방역이 지금처럼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까 의문입니다. 인건비를 아끼고자 공장을 해외로 몽땅 이전했다면 산발적으로 이뤄지는 공장폐쇄와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 때문에 힘겨웠을 것입니다. 여태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지만 요즘 같은 상황에선 ‘그래도 제조업’이란 생각이 머리를 맴돕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6년 전 진도 바다에서 멈췄던 삶… 언제쯤 홀로 설 수 있을까요”

    “6년 전 진도 바다에서 멈췄던 삶… 언제쯤 홀로 설 수 있을까요”

    “잃어버린 제 삶, 저 자신을 되찾고 싶어요.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주에 사는 윤길옥(55)씨의 삶은 ‘그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항우울제와 수면제 등 매일 대여섯 가지 약을 먹어야 겨우 잠이 든다. 항상 불을 켜고 잔다. 컴컴한 곳에 있으면 악몽 같은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에서 맨 마지막으로 탈출한 생존자, 그게 바로 윤씨다.세월호 참사 후 6년이 흘렀지만 생존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숨어야 했다. ‘정부로부터 상당한 보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오해는 생존자들을 더욱 고립시켰다. 사회는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두고 지난 10일 제주 서귀포에서 만난 윤씨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얼마나 아픈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6년 전 오늘, 윤씨가 세월호 3층 선수 쪽 매점에 갔을 때 배가 기울었다. 온수통의 뜨거운 물이 윤씨의 두 발을 덮쳤다. 두 발 모두 화상을 입었지만 윤씨는 학생들을 먼저 대피시켰다. 그렇게 윤씨는 바닷물이 머리 위까지 차오르는 순간 마지막으로 세월호에서 탈출했다. 정부는 2015년 6월 윤씨를 의상자로 인정했다. 윤씨가 다치고, 누군가를 구하고, 사투를 벌이며 탈출할 때 ‘국가’는 없었다. “밖에 나왔더니 기우는 배 객실 유리창 너머로 학생들이 보였어요. 해양경찰이 망치로 유리창을 깼으면 학생들을 많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요.” 2016년까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윤씨는 퇴원 후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30여년 경력의 화물차 운송일이 그에겐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화물차 대신 2017년 새 차를 샀다. 집을 담보로 빚을 내 겨우 마련한 전 재산이었다. 하지만 차 할부금에 기름값, 보험료, 수리비 등 빠져나가는 돈이 버는 것보다 많았다. 빚은 늘어만 갔다. 윤씨는 현재 개인파산 신청을 준비 중이다. 활달했던 성격도 어두워졌다. 윤씨는 “어딜 가도 사람들이랑 말을 잘 섞지 않는다”면서 “예전에는 동네 목욕탕에 가면 2시간은 있었는데, 요즘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샤워만 하고 나온다”고 말했다. 윤씨는 보건소로부터 매달 안부 전화를 받는다. 그는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 자살 충동이 인다”면서 “캄캄한 그곳에서 목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들이켠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괴로워했다.그럼에도 살아남은 이의 삶은 계속돼야 한다. 윤씨가 꿈꾸는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 “약 없이 편하게 자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고 윤씨는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했었는데, 드럼과 기타 연주법을 새로 배우고 싶다”며 “여건이 된다면 예전에 좋아했던 여행도 자주 다니고 싶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윤씨의 바람이다.지난 11일 서귀포에서 만난 또 다른 생존자 오용선(58)씨는 2016년 1월 말까지 항우울제와 수면제 등 7가지 약을 매일 먹었다. 오씨는 “약을 끊으려고 이를 악물고 아등바등 살았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피운 담배도 끊었다.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고통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오씨는 침묵 대신 말하기를 택했다. 그는 “직장 동료들은 내가 세월호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날 배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누가 물으면 다 얘기한다. 그러고 나면 오히려 가슴이 시원해진다”고 말했다. 오씨는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에 사는 생존자 24명의 기억을 기록하고 법률 지원, 심리 치유 지원 등을 하기 위해 지난 2월 만들어진 단체다. 오씨는 “제주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정부와 지자체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사진 제주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개인에게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서울신문은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4·16 제생지)과 함께 제주에 사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전할 예정입니다.
  • ① 막말·무능 야당 ②막장 공천 ③리더십 부재… 통합당 삼켰다

    ① 막말·무능 야당 ②막장 공천 ③리더십 부재… 통합당 삼켰다

    차명진·김대호 등 잇단 막말에 민심 떠나 김형오 사퇴로 공천 뒤집히며 사천 논란 위성정당 명단 놓고 갈등 노출하며 눈살 ‘박근혜 옥중서신’도 중도표 이반 역효과미래통합당의 4·15 총선 패배는 집권 4년차에 흔히 작용하는 정권심판론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전략 실패와 총체적인 리더십 부재의 결과로 평가된다. 공천 혁신에 실패했고 ‘유능한 야당’이라는 신뢰를 주지 못한 데다 선거 막판 막말 실책으로 더불어민주당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참패했다. ●정권 심판보다 강했던 ‘대안 없는 야당’ 통합당은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총선 승리를 자신했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며 정권심판 강도가 더 세질 것이라 내다봤다. 하지만 코로나19에 통합당이 내놓은 메시지라고는 ‘우한 폐렴’, ‘중국인 입국 금지’가 전부로 인식됐다. 정부의 코로나 방역이 국제적인 모범 사례가 되자 통합당은 더 혼란에 빠졌다. 성착취 동영상 관련 중대 범죄인 ‘n번방’ 사건에는 황교안 대표가 “호기심은 다르게 처벌해야”라고 국민 정서에 반하는 실언을 했고, ‘여권 인사 연루설’ 폭로 예고 등 헛발질이 계속됐다. 여권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을 ‘선거 악법’으로 규정하고 만든 비례위성정당 ‘미래한국당’ 준비도 어설펐다. 미래한국당은 1차 공천 명단을 보수 유튜버 일색으로 꾸리고 모(母)정당 영입 인재를 당선권 밖으로 밀어냈다. 이를 수습하는 과정은 속전속결로 황 대표 측근을 지도부로 다시 꾸리는 졸속이었고,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의 모습은커녕 서울 관악갑 김대호 전 후보의 세대 비하, 경기 부천병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막말’은 민심을 떠나게 했다. 통합당의 한 중진 의원은 15일 “질려고 해도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고 총평했다. ●사천·뒤집기 공천… 무너진 공관위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전 공천관리위원장의 등장은 순조로웠다. “한국당은 존재 자체가 민폐”라며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세연 의원까지 공관위에 합류하면서 혁신 공천 기대가 높았다. 공천 초반 하루에 서너 명의 중진 의원들의 자진 불출마를 이끌어 낸 ‘김형오 침묵의 칼’에 현역 컷오프가 지지부진했던 민주당보다 앞서 나갔다. 하지만 공천 작업이 반환점을 돌며 사천(私薦) 논란이 일었다. 현역들이 잘려나간 자리에 김 위원장과 공관위원 측근들이 공천됐다는 논란이다. 김 위원장에게 전권을 약속했던 황 대표도 공천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고, 결국 일부 공천이 최고위와 공관위를 오가며 결과가 뒤집혔다. 공관위의 재심 결과를 황 대표와 최고위가 직권으로 백지화하는 당헌·당규 위배 사례가 계속됐고, 결국 선거를 불과 한 달 남긴 지난달 13일 김 위원장이 사퇴했다. 보수진영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2016년 ‘진박(진실한 친박) 공천’, ‘옥쇄 파동’의 막장 공천이 되풀이된 셈이다. ●못다 건넌 ‘탄핵의 강’ 지난달 4일 오랜 침묵을 깬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도 탄핵의 기억을 일깨워 결과적으로 중도층 표심에 마이너스가 됐다. 통합당의 한 의원은 “3월 첫 주 내내 수도권 후보들은 주민들에게 머리 숙여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게 일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민주당 압승 이끈 양정철 “야인으로 돌아간다”

    민주당 압승 이끈 양정철 “야인으로 돌아간다”

    “총선 결과 두렵지만 당선자들 헌신 믿어이해찬 대표 헌신적 리더십에 경의 표해”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16일 “이제 다시 뒤안길로 가서 저녁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조용히 지내려고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4·15 총선 전략을 주도한 양 원장은 선거가 끝나면 원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의사를 앞서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양 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을 통해 “다시 야인으로 돌아간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총선 결과가 너무 무섭고 두렵지만, 당선된 분들이 국민들께 한없이 낮은 자세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국난 극복에 헌신해 주리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이해찬 대표의 용기와 지혜 덕분이었다”라며 “우리 당은 오래도록 그분의 헌신적 리더십에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목표를 위해 모질게 직진만 하다 보니 당 안팎에 상처를 드린 분들도 있을 것”이라면서 “정중히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한다. 지난 1년여, 취재에 거의 응하지 못한 불찰 또한 양해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양 원장은 이형기 시인이 쓴 ‘낙화’의 한 구절인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을 인용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양 원장이 문 대통령 임기 후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청와대에 들어갈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지만, 양 원장 본인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선을 그은 것으로 전해졌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서울포토] 출구조사 발표에 머리 긁적이는 황교안 대표

    [서울포토] 출구조사 발표에 머리 긁적이는 황교안 대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제21대 총선일인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시청하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2020.4.15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포토] 머리 맞대고 출구조사 지켜보는 고민정 후보 부부

    [포토] 머리 맞대고 출구조사 지켜보는 고민정 후보 부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 15일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가 광진구 본인의 선거사무소에서 출구조사 결과 방송을 지켜보며 배우자 조기영씨와 대화하고 있다. 2020.4.15 연합뉴스
  • 남편 불륜녀 식당 찾아가 난동부린 부인, 2심도 선고유예

    남편 불륜녀 식당 찾아가 난동부린 부인, 2심도 선고유예

    남편과 바람을 피운 여성이 운영하는 식당에 찾아가 물건을 던지고 폭행을 휘두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성이 항소심에서도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배준현)는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원심과 같이 벌금 3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일정기간 동안 재범이 없으면 형 집행을 하지 않는 유죄 판결의 일종이다. A씨는 자신의 남편 B씨가 서울 강남구 소재의 한 식당 주인 C씨와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서 2018년 4월 18일 밤 10시쯤 C씨의 식당을 찾아갔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말다툼에 그치지 않았다. 언쟁이 오가던 중 격분한 A씨는 이튿날(19일) 오전 4시까지 약 5시간 동안 다툼을 벌이다 여러 차례 C씨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유리잔에 담긴 물을 뿌리고, 벽면에 붙은 연예인 사진을 찢은 혐의도 있다. 이날 다툼으로 C씨는 급성경추염좌, 좌측 아래 팔부위의 타박상 등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명 중 5명이 A씨의 상해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만장일치로 벌금형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양형 의견을 제시했다. 1심 재판에서 A씨 측은 “폭행으로 C씨가 상해를 입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범행으로 C씨가 상당한 공포심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고, 피해의 정도도 가볍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CCTV, C씨의 상해진단서, 피해 사진을 보면 A씨의 폭행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A씨는 C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따른 판결 금액을 모두 지급했다”면서 “이 사건 발생에 C씨가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가정이 파탄난 후 A씨가 세 아이를 혼자 양육하고 있는 점을 참작했다”면서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특수상해 혐의에 대해선 “A씨가 철제의자, 수저통 등의 위험한 물건을 스스로 화를 이기지 못해 마구잡이로 던지는 과정에서 우연히 C씨를 향했을 가능성을 온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 또 특수상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부당하다”면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와 항소심이 진행됐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 역시 1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포토] 디카프리오도 반한 모델의 비키니 몸매

    [포토] 디카프리오도 반한 모델의 비키니 몸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슈퍼모델 로레나 레이가 남성잡지 맥심의 미국판 5/6월호 메인화보를 장식했다. 톱 포토그래퍼 쥘 벤시몬과 함께 작업한 레이는 화보촬영에서 과감한 표현력으로 자신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얇고 하늘거리는 시스루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청초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뽐냈다. 180cm의 큰 키와 호리병 몸매 그리고 길고 옅은 갈색 머리와 짙푸른 파란 눈이 매력 포인트인 레이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스페인의 유명 휴양지인 이비자에서 일을 하다 에이전시의 눈에 띄어 모델로 데뷔한 특이한 케이스를 갖고 있다. 패션브랜드 뉴요커와 게스의 모델로 활동하며 자신을 알린 레이는 2018년 세계최고의 란제리 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의 메인모델로 발탁되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보그를 비롯해서 그라치아 등 유명 패션잡지의 커버도 다수 장식했다. 특히 레이는 2017년 25살의 연상인 할리우드 명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염문설에 휩싸여 커다란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레이는 맥심과의 인터뷰에서 “이리나 샤크와 사라 샘파이오가 맥심 커버를 장식한 것을 봤을 때 부러움 뿐 이었다. 내가 커버모델이 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커다란 명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MAXIM, 로레나 레이 SNS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언제쯤 홀로 설 수 있을까요”…고통 여전한 세월호 생존자들

    “언제쯤 홀로 설 수 있을까요”…고통 여전한 세월호 생존자들

    “잃어버린 제 삶, 저 자신을 이제는 되찾고 싶어요.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주에 사는 화물차 운전기사 윤길옥(55)씨의 삶은 6년 전 ‘그날’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항우울제와 수면제 등 매일 대여섯가지 종류의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잘 수 있다. 불은 항상 켜고 잔다. 윤씨는 “컴컴한 곳에 있으면 악몽 같은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해역에 침몰한 세월호에서 맨마지막으로 탈출한 생존자, 그게 바로 윤씨다. 참사 후로 6년이 흘렀다. 생존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지난 2018년 12월 발표된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건강 및 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생존자 66명(단원고 생존자 41명, 일반인 생존자 25명)의 상당수가 우울증과 불면증, 만성두통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생존자들은 참사를 직접 경험한 피해자지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숨겨야 했다. ‘아직도 세월호냐’는 비난과 ‘정부로부터 상당한 보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오해는 생존자들을 더욱 고립시켰다. 사회는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다.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두고 지난 10일 제주 서귀포에서 만난 윤씨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윤길옥씨학생들 탈출 돕고 가까스로 생존발에 화상 입고 2년 가까이 입원퇴원 후 빚·대인관계 축소 고통윤씨가 ‘그날’ 세월호 3층 선미(배꼬리)에 있는 화물차 운전기사 방을 나와 선수(뱃머리) 쪽 매점에 갔을 때 배가 기울었다. 온수통에 있던 뜨거운 물이 윤씨의 두 발을 덮쳤다. 발을 움직일 수 없던 상황에서 학생들을 먼저 대피시킨 윤씨는 바닷물이 머리 위까지 차오를 때 가까스로 배에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얼마 안돼서 배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승객 476명 중 304명(미수습자 5명 포함)이 희생됐다. 정부는 2015년 6월 윤씨를 의상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윤씨가 다치고, 누군가를 구하고, 사투를 벌이며 탈출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없었다. “밖에 나왔더니 기우는 배 객실 유리창 너머로 학생들이 보였어요. 해양경찰이 망치로 유리창을 깼으면 학생들을 많이 살릴 수 있었을텐데….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요.” 그는 가슴을 쳤다. 2016년까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윤씨는 퇴원 후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30여년 경력의 운송일이 그에겐 유일한 생계유지 수단이었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화물차 대신 2017년 새 차를 샀다. 집을 담보로 빚을 내 겨우 마련한 전재산이었다. 하지만 차 할부금에 기름값, 지입차 보험료, 수리비 등 빠져나가는 돈이 버는 것보다 많았다. 빚은 늘어만 갔다. 윤씨는 현재 개인파산 신청을 준비 중이다. 윤씨의 대인관계도 참사 후로 위축됐다. 그는 “원래 성격이 활달했는데 요즘은 어딜 가도 사람들이랑 말을 잘 섞지 않는다”면서 “예전에는 동네 목욕탕에 가면 2시간은 있었는데, 요즘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샤워만 하고 나온다”고 말했다. 실태조사 결과 생존자의 절반가량(48.5%)이 ‘(참사 후) 대인관계에 스트레스가 있다’고 답했다. 운동·절주를 통한 극복 노력 시작앞으로 어떤 삶 살고 싶은지 묻자“약 없이 편하게 자는 게 큰 소원”윤씨는 보건소로부터 매달 안부 전화를 받는다. 그는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 자살 충동이 인다”면서 “캄캄한 그곳에서 목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들이킨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라며 괴로워했다. 퇴원 후인 2016년 3월 말 윤씨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진도군청에서 진도군 팽목항까지 수십㎞를 걸었다. 당시 그가 입었던 노란색 조끼에는 ‘진실을 인양하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후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장소를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2017년 3월 인양된 세월호가 전남 목포신항으로 옮겨진 뒤에 ‘분실물을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제 화물차가 세월호 화물칸 2층에 그대로 보관돼 있었던 거죠. 그런데 안 갔어요. TV를 보다가도 세월호 영상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꺼요. 보기 힘들어요.” 그럼에도 살아남은 이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윤씨는 지난해 7월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참사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만날 마셨던 술도 이제는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이제 사람이 돼보려고 운동을 하고 술을 안 먹고 있다”는 것이 윤씨의 설명이다. 윤씨가 꿈꾸는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 “약 없이도 편하게 잠을 자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윤씨는 취미 활동을 갖고 싶어했다. 그는 “고교 때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했었는데, 드럼과 기타 연주법을 새로 배우고 싶다”면서 “여건만 된다면 예전에 좋아했던 여행도 자주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또 다른 세월호 생존자 오용선씨이 악물고 항우울제·수면제 끊어참사 후 5개월 뒤에 복직했지만트라우마로 복직 보름 만에 퇴사 지난 11일 서귀포에서 만난 또 다른 생존자 오용선(58)씨도 2016년 1월 말까지 항우울제와 수면제 등 7가지 종류의 약을 매일 먹었다. 오씨는 “약을 끊으려고 이를 악물고 악바리처럼 아등바등했다”라고 말했다. 30년 넘게 핀 담배도 끊었다.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오씨도 화물차 운송기사 경력이 30년에 달한다. 오씨는 참사 후 5개월 뒤에 복직했다. 그런데 밤에 운전할 때마다 헛것이 보였다. 야간근무가 불가피한 화물 운송일을 계속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오씨는 보름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지금은 건설 현장에서 화물차로 폐기물을 운반하고 있다. 고통을 잊는 방법으로 오씨는 침묵 대신 말하기를 선택했다. 그는 “직장 동료들이 내가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날 세월호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직장 동료들이 물으면 저는 다 얘기하는 편”이라면서 “저는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하고 후련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큰 목소리로 말한 오씨는 “원래 목소리가 크다”면서 멋쩍게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오씨는 윗옷 지퍼 손잡이를 계속 만지며 말을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2017년 5월인가 6월쯤에 목포신항에 갔었어요. 우리가 탔던 배가 인양됐다고 해서 궁금해서 갔는데,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보려고 했죠. 계속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으니까….” 오씨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지난 2월 ‘4·16 제생지’ 단체 창립제주 생존자 24명 목소리 모은다“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이 치유 첫 관문”오씨는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4·16 제생지)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에 사는 생존자 24명(윤씨와 오씨 포함)의 기억을 기록하고 법률 지원, 심리 치유 지원 등을 위해 지난 2월 만들어진 단체다. 오씨는 “앞으로 제주 생존자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삶을 바라는지 이야기를 듣고, 제주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어떤 안내와 지원이 필요한지를 시·도 또는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치료 및 지원체계는 현재 경기 안산에 집중돼 있다. 오씨는 “제주에 2015년 2월 개소한 제주세월호피해상담소가 있지만 제주도가 병원(제주 연강의료재단)에 위탁 운영하는 방식이라 언제 문을 닫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라면서 “상담소가 문을 닫으면 우린 갈 데가 없다. 필요하다면 트라우마센터 건립도 호소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생존자들이 세월호 참사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그게 제가 제일 바라는 것”이라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피해자 치유와 일상 회복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라고 덧붙였다. 제주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생존자 개인의 노력에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생존자들이 참사 피해자이자 참사로 큰 슬픔을 겪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서울신문은 앞으로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4·16 제생지)과 함께 앞으로 제주에 살고 있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전할 예정입니다.
  • 코로나19 막는 ‘귀신’ 나타났다?! “무서우면 나오지마” (영상)

    코로나19 막는 ‘귀신’ 나타났다?! “무서우면 나오지마” (영상)

    인도네시아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 및 외출 자제를 독려하는 ‘귀신’이 등장했다. 로이터 등 해외 언론의 13일 보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주의 수꼬하르조의 한 마을에는 이달 초부터 목이 졸라매어 진 새하얀 옷을 입고 새하얀 얼굴을 한 ‘귀신’이 마을 입구 벤치에 앉아 있거나 동네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며칠에 한 번씩 갑자기 등장해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이 귀신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자원순찰대원들이다. 이 마을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외출을 자제하는 일이 시급해지자, 경각심과 공포를 조장해 사람들이 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포콩’(pocong)으로 불리는 전설 속 귀신을 ‘소환’하기로 결정했다. 이 귀신은 시신을 묶을 때 사용하는 끈을 머리와 발에 묶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여느 귀신처럼 새하얀 얼굴로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마을 측이 고용한 귀신 자원봉사자들은 무작위로 날짜와 시간을 골라 2인 1조로 마을을 돌아다닌다. 복장 특성상 빠르게 움직일 수 없어서 보는 사람들을 더욱 으스스하게 만드는 이 자원봉사자들은 스스로를 ‘서프라이즈 순찰대’라고 부른다. 귀신 자원봉사대 책임자는 “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외출 자제를 독려하고 싶었다. 묘지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포콩’은 무시무시한 민속 귀신의 대명사”라면서 “우리는 이러한 활동을 시작한 뒤 마을 사람들이 집 안에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본다”고 자평했다. 이어 “손과 발이 묶여 있는 귀신들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야 한다. 또 이러한 활동의 초반에는 오히려 귀신 분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을 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 부작용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 통신은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는 방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그들은 평상시처럼 지내길 원하기 때문에 집에 머무르라는 지시를 따르는 것이 어렵다”면서 “이달 말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원)을 앞둔 만큼,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인도네시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3월24일부터 매일 100명 이상 늘었다. 지난주부터는 매일 200~300명 증가하고 있다. 현재 누적 확진자는 4557명, 사망자는 399명으로 집계됐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신의 뜻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신의 뜻

    외할머니가 키우는 아이인 걸 알고 외할머니 생신 때마다 미역을 사서 자전거 뒷자리에 묶어 주시던 선생님.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제자의 그림 전시장에 찾아오셨다. 36년 만의 만남이었다. 스물 몇 예쁜 처녀는 할머니 수녀님이 돼 있었다. 신의 뜻이라고 하셨다. 이젠 내게 미역을 사 주셔도 갖다드릴 외할머니는 없다고 했더니, 다 신의 뜻이라고 하셨다. 담담하면서 깊은 모습이 예전의 선생님과 다르셨다. 교황청의 명령에 따라 비공식적으로 남북을 왕래하시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선생님께서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 “선생님, 아니 수녀님~ 먼 길 혼자 가시게 해서 죄송해요. 철모르던 시절 선생님 때문에 행복했지만 다 커서야 그게 행복이란 걸 알았지요. 선생님께서 미역을 가방에 넣어 주시면 제가 성질을 부리며 도망가고 그랬는데요. 선생님요, 선생님 가시는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늘 건강하게 행복하기만 하시기를요. 선생님께서 모든 게 다 신의 뜻이라고 하셨지만 이토록 슬픈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선생님, 하늘나라에서 우리 외할머니 만나시거든 저 잘살고 있다고 말씀도 해 주시고 미역국도 함께 끓여 드세요. 선생님 행복하고 고마웠습니다.” 조사 비슷한 걸 써서 SNS에 올리고는 무작정 한강까지 두 시간을 걸어갔다. 청둥오리들이 헤엄쳐 다니는 한강을 종일 바라보았다. 청둥오리 두 마리가 사랑하는 장면을 오래오래 쳐다보았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날 또 다른 생명들은 정열적으로 사랑을 하는 일, 선생님 말씀처럼 다 신의 뜻일 것이다. 허공을 지나가는 바람 속에 북소리가 들린다. 물결의 오선지에 음표처럼 흐르던 청둥오리 한 쌍이 갑자기 목을 움쳤다 폈다 고갯짓을 하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수놈이 먼저 목을 움쳤다가 쑥 편다. 이번에는 곁에 있던 암놈이 목을 움친다. 그때 수놈은 쑥 뽑았던 목을 다시 집어넣는다. 목을 움쳤던 암놈은 다시 목을 살짝 펴고…. 한참을 그렇게 번갈아 가며 서로 목을 움쳤다 폈다 하는, 꽤나 정겨운 사랑의 전희식을 성실하게 치른다. 엷은 막으로 된 바람이 둥둥 울린다. 하객으로 온 부드러운 물결이 박수를 친다. 만인의 축복 속에 둘은 공개적이고 당당한 사랑을 나눈다. 수놈이 암놈에게 올라타 살아온 생의 전부를 밀어 넣을 때, 우주의 한순간이 고요히 떨린다. 이곳으로부터 한 작은 생명의 소용돌이가 시작될 모양이다. 찬란하다. 암놈이 거의 물에 잠길 정도로 둘은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 황홀에 빠진 암놈의 머리에 키스를 퍼붓는 수놈의 열정으로 사방은 뜨겁게 끓는다. 한참 후, 큰일을 치른 수놈이 암놈에게서 떨어져 나오더니 빠른 속도로 암놈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사랑의 의식을 장식하는 마지막 연주일까. 잠시 수놈의 연주를 경청하는 암놈의 고요한 눈빛이 생명을 잉태한 여인의 모습처럼 아름답다. 크게 원을 그리듯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수놈. 사랑을 차지한 자의 가슴 뿌듯한 질주와 온몸으로 사랑받은 자의 고요한 몸짓에 봄날 오후의 강은 질투하듯 볼을 실룩거린다. 물결이 인다. 주변을 차단해 주는 수놈의 시위 속에서 암놈은 그제야 정신을 차려 물에 고개를 처박고 몸을 씻는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 진지하다. 수놈은 암놈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멀어져 가고, 그때 생명의 첫 씨앗을 품은 암놈은 활개를 치며 사랑의 완성을 기뻐한다. 물결마다 남겨진 사랑의 흔적을 따라 물 위를 가다 보면, 사랑이 떠나도 가슴속에 사랑은 남을 것이고, 사랑이 끝나도 사랑은 시작될 것이니 새로운 한 세상이 그렇게 열릴 모양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입원하고 하는 동안에도 세상의 한쪽에서는 새로운 생명 탄생을 위한 뜨거운 사랑이 지속되고 있었다. 돌아가신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 모든 것들은 어쩌면 대자연의 질서, 신의 뜻이리라.
  • 50년, 詩만 보고 달렸다…칠순·팔순, 詩가 터졌다

    50년, 詩만 보고 달렸다…칠순·팔순, 詩가 터졌다

    “‘나 건드리지 마, 또 시(詩) 나온다!’ 친구들을 만날 때 인사말 대신 건넨 농담이 제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이제 시를 그만 써야 할 때도 됐는데. 허허허.” 문학을 천명으로 알고 50여년 외길을 걸어온 한국문인협회 원로시인 이운룡(83·전 중부대 국문과 교수·전북 전주시 중화산동) 박사. 그는 팔십 중반의 나이지만 아직도 시를 써야 삶의 의미를 느끼고 행복한 현재 진행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마음은 문학청년이다. 솟구쳐 오르는 시상을 억누르지 못해 매일 시를 쓴다. 머리는 백발이지만 통 좁은 청바지와 스니커즈 스타일을 좋아하는 ‘멋쟁이 시인’이다. 깨끗한 피부와 살아 있는 눈빛, 힘이 있는 목소리, 밝은 표정에서 건강미가 넘친다. 항상 깔끔한 차림에 활기가 느껴진다. 젊은이도 따라가기 힘든 총기와 지성미가 풍기는 화법은 올곧게 살아온 문인의 향기를 내뿜는다. 이 박사는 ‘삶의 방정식’을 ‘근면’, ‘성실’, ‘정도’, ‘직진’으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시인의 길을 한평생 쉼 없이 달려왔다. 집념과 의지로 밤낮없이 시에 매달려 살았다. 두 번의 암 수술도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문학은 나의 인생이고, 나의 인생이 문학”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을 보낸 농촌의 자연은 꿈을 키웠고, 꿈은 문학을 키웠으며, 문학은 나를 키웠다”면서 “나와 시, 시와 나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한다.그는 1969년 등단한 이후 1355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70~80대에 쓴 것이다. 시인으로서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많은 시를 쉬지 않고 쓸 수 있는 비법은 시상과 영감, 제재가 떠오를 때마다 잊기 전에 메모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주제의식에 따라 언어를 구조화하면서 첨삭을 거듭한다. 시상을 더 정확하고 표상하기 위해서다. 전심전력 언어의 형상화에 투신하면 무르익은 시를 쓰고 후회하는 일을 덜 수 있다. “혈기 넘치는 젊은 시절에는 좋은 시를 쓰려고 고뇌했지만 인생을 숙고하고 성찰하면서 우주의 충만한 존재 문제에 천착하려는 시 정신과 시작 태도가 나이 든 시인의 소명임을 늦게 깨달았지요. 이제야 시가 쉽게 나옵니다.” 이 박사는 2018~2019년 2년 동안 무려 555편의 시를 발표했다. 하루에 0.76편, 나흘에 세 편꼴로 시를 쓴 셈이다. 어떤 날은 하룻밤에 80개의 제재가 떠올랐고 사흘 밤낮 16편의 시를 내리 쓰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집 2권을 한꺼번에 펴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시가 터졌다”고 표현한다. 그는 긍정적 사고와 규칙적인 운동, 문인들과 진솔한 교류, 어릴 적부터 계속해 온 문학활동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목욕과 편식 없는 식사는 건강을 유지하고 일상을 즐기는 그만의 방법이다. 치아 관리도 철저해 아직도 상한 이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시를 쓰는 작업이 마음을 늙지 않게 하는 비결이다. 문학계 후배와 자녀들에게는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 항상 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 정신을 주문한다. 평생 교육자이자 시인으로 살아온 이 박사는 얼핏 ‘금수저’ 같아 보이지만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전북 진안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구름 위로 솟아오른 용이 되라는 뜻으로 운룡(雲龍)이라고 이름을 지어 줬다. 그러나 광복 이후 1946년 진안초등학교에 재입학한 아홉살 소년은 평범한 시골뜨기였다. 그에게 인생의 길라잡이가 돼준 책은 한국전쟁 당시 전주에서 시골로 피란 온 친구의 초등학교 교지였다. 동시 “하늬바람 불어오면/ 전깃줄은 쓰르릉 피리 불고요”라는 구절을 보는 순간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무작정 시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쓴 최초의 동시 ‘달밤’이 학급 문집 ‘글벗’에 수록됐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1959년 전북대 국문과에 진학하면서 이 박사는 시인이 되기 위한 본격적인 담금질을 시작했다. 대학 2학년이던 1962년 10월 경북대 주최 제5회 전국대학생문예작품 현상공모에 ‘기도’가 당선됐다. 이어 1964·1965·1969년 ‘현대문학’에 연 3회 추천되면서 등단에 성공했다. “앞만 보고 뛰어가는 외곬으로 뚫린 성격, 철저한 준비성과 꼼꼼한 정리벽,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긍정적 사고, 끝장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근성이 저의 유일한 자산이지요.” 그가 시인으로서 문학의 앞길을 열기까지 과정은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시대적 상황에 휩쓸리고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지만 오직 정신력 하나로 이겨냈다. 중학생 때부터 학비 마련을 위해 장작 장사를 했고 공사판에서 등짐을 졌다. 대학 시절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바람에 영양실조에 시달렸지만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마쳤다. 가난은 시련과 고통이었으나 성취욕 강한 그는 오히려 성장의 자양분으로 치환했다.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주제넘게 시인이 되기를 꿈꾼 비현실주의자입니다. 시와 함께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었지요.” 이 박사는 오로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했을 뿐 경제적으로는 빵점짜리 가장이었다. 부인이 생활고를 탓하며 바가지를 긁으면 “선비가 돈 버는 것 봤느냐”며 되레 큰소리치고 헛기침을 했다. 이 박사는 전북문인협회장, 초대·2대 전북문학관장을 역임하며 향토문학계에 족적을 남겼다. 그가 22년 동안 이끈 ‘열린시문학회’와 ‘시창작교실’은 전북 지역 문인 배출의 산실 역할을 했다. 그가 닦아 놓은 문학 기반은 전북도 문화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서울신문 향토문화대상 등 수많은 수상 경력이 증명해 준다. “나는 어린 시절 희망대로 여전히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생활력과는 담을 쌓고 살았지요. 저승의 부모님에게는 불효막심이고 형제에겐 자기 이상만 고집해 온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졸장부지요. 어찌 보면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돈도 백(배경)도 없는 촌놈이 문학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불꽃은 가난 속에서 팔순까지 지칠 줄 모르고 문학인으로 담금질하는 에너지원이었다. 또 세 자녀를 낳은 아내가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나, 10년 전 전립선암과 위암 수술로 사경을 헤맬 때도 그를 지탱해 주고 일으켜 준 힘이 됐다. “그동안 옆걸음 치면서 타인의 어깨 너머를 넘보지 못했고 유유자적 느림의 미학도 탐할 수 없었지요. 자녀들도 모두 자리잡아 걱정이 없다 보니 이제야 숨 돌리고 인생과 문학을 정리할 때가 왔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불청객 세월이 가르쳐 준 결과지요.” 이 박사는 한때 이 세상 사람으로 살았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시집 20권, 문학이론서 및 시론서 등 13권의 저서를 남겼다. 이제 소망이 있다면 작은 개인 문학관을 건립하고 자신이 제정한 ‘중산문학상’이 계속 후배 문인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함을 즐기지 못하는 그의 문학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언제까지 문학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이제 그만 써야겠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2022년에 단행본 시집 7권을 합본한 3번째 ‘이운룡 시 전집’과 시론집 ‘시와 비평의 등가성’을 발간할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글 사진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죽을 정도로 괴로워야 검사”…일본 코로나19 검사 실태

    “죽을 정도로 괴로워야 검사”…일본 코로나19 검사 실태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한 일본에서 중증이 아니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실태가 문서를 통해 폭로됐다. 14일 발매된 주간아사히(24일자)는 ‘담당의 외래진단 수순(초진의 경우)’라는 제목의 도쿄도 의사회 문서를 한 의사로부터 제보받아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지난달 26일 작성된 이 문서는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가 처음 병원을 방문했을 때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유전자 검사(PCR)를 하는 기준을 순서도로 제시하고 있다. 이때는 감염자 폭증의 중대 국면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던 시기다. 도쿄도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4일 17명에서 25일 41명으로 늘었고, 26일에도 47명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문서를 제보한 의사는 “이것은 도쿄도 의사회가 도내 개업의에게 배포한 문서”라며 “순서도는 PCR 검사를 받는 대상을 짜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잡한 순서도의 첫머리에는 일본 후생노동성이 홈페이지에서도 공개한 ‘발열 37.5℃ 이상’, ‘권태감’ 등의 기준이 제시돼 있다. 아울러 ‘호흡 곤란’, ‘과다 호흡’, ‘청진시 거품소리’ 등 폐렴 의심 증상이 있으면 혈액 검사와 흉부 X선 검사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심지어 증상이 나타난 것만으로는 검사 대상이 아니었다. 이러한 증상들이 나흘 이상 개선되지 않는 경우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게다가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면 ‘발열 37.5℃ 이상’, ‘동맥혈 산소포화도(SPO2) 93% 이하’, ‘폐렴 증상’이라는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발열 37.5℃ 이상이고 폐렴 증상이 있어도 산소포화도가 93% 이하가 아니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서를 제보한 의사는 산소포화도 93% 기준에 대해 “우리는 통상 98% 정도의 산소포화도로 살아가고 있다”면서 “93%는 ‘쌕쌕’, ‘하하’ 소리를 내며 죽을 정도로 괴로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주간아사히는 “이 기준에 따르면 상당히 위험한 상태까지 증상이 악화하지 않으면 PCR 검사를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엄격한 코로나19 검사 기준을 일선 의사들에게는 제시하면서 일반 시민에게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이중 잣대”라고 문서를 제보한 의사는 비판했다. ‘가능하면 코로나19 검사를 하지 마라’는 후생성의 방침에 보건소도 따르고 있다고 주간아사히는 지적했다. 엄격한 기준에 따라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도쿄도의 양성 판정률은 36.7%에 달했다. 후생성 자료를 보면 지난 1월 15일부터 이달 12일까지 도쿄도에선 5660명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이 중 2080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같은 기간 오사카부에선 검사자 2362명 중 812명(34.4%), 지바현에선 검사자 1743명 중 455명(26.1%)이 각각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 기간 일본 전체에선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탑승자를 제외하고 6만 3132명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7123명(11.3%)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지난 2월 18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일본의 전체 코로나19 검사 건수는 11만 9675건이다. 하루 1000~2000건대이던 검사 건수는 3월 말부터는 3000~7000건대로 늘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여기는 중국] 26년간 머리에 칼날 통째로 박힌 채 살아온 남성

    [여기는 중국] 26년간 머리에 칼날 통째로 박힌 채 살아온 남성

    26년간 머릿속에 칼이 박힌 채 살아야 했던 중국의 한 남성이 현지 의료진의 도움으로 제2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영국 메트로 등 해외 언론의 13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칭하이성 하이옌에 사는 둬르제(76)는 26년 전인 1994년 당시 끔찍한 강도와 맞닥뜨리는 사고를 당했고, 이 과정에서 10㎝ 남짓의 과도 칼날이 머리에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이 남성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이후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만성두통은 물론이고 오른쪽 눈의 시력에도 문제가 생겼지만, 머리에 박힌 칼날을 제거할 수는 없었다. 칼날이 매우 위험한 곳에 박혀 있어서 자칫 이를 제거하다 목숨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칭하이성 전역을 돌며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에 나서줄 의료진을 찾아다녔지만 소용없었다. 현지 의료기술의 한계도 있는 탓에 그는 쉽사리 오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올 초 신경학 전문가인 장휴샹 박사를 만났고, 그를 통해 새 삶을 살 기회를 얻었다. 이후 둬 씨는 의료수준과 환경을 고려해 산둥성 지난시의 병원으로 옮겨졌고, 칼날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한 검사를 받았다. 현지 의료진들은 10㎝ 남짓의 칼날이 통째로 뒷통수 부분에 박혀 있는 것도 모자라, 이 상태로 26년을 살아온 둬 씨의 검사 결과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료진에 따르면 수술 전 둬 씨는 칼날이 뇌의 신경을 손상시킨 탓에 오른쪽 시력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고, 왼쪽 팔과 다리에도 마비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칼날이 두개골을 뚫고 안와(눈구멍) 부근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것이 시신경을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2일과 8일, 신경외과와 이비인후과, 안과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수술이 진행됐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26년 동안 둬 씨를 괴롭히던 두통뿐만 아니라 팔다리의 마비 증상도 사라져 걸을 수 있게 됐다. 거의 볼 수 없었던 오른쪽 눈의 시력도 기적적으로 회복되고 있다. 둬 씨는 “의사 선생님들이 내게 제2의 삶을 선물해주셨다. 20년이 넘도록 계속된 내 악몽은 이제 끝났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코로나19로 입장 제한…아버지 장례식장 못 들어간 딸 사연

    코로나19로 입장 제한…아버지 장례식장 못 들어간 딸 사연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탓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영국 가디언의 13일 보도에 따르면 호주 현지 시간으로 지난 11일, 빅토리아주에서는 코로나19로 한 남성의 장례식이 열렸다. 슬픔에 잠긴 가족들은 장례식이 열리는 교회 앞으로 몰려들었지만, 고인의 딸인 헬렌 콜로보스를 포함한 가족 몇몇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입구를 가로막은 경찰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조문객의 숫자를 일일이 센 뒤, 일정 숫자가 넘자 통제했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경찰 두 명은 장례식장의 통제 인원은 최대 10명인 지침에 따라, 콜로보스 등 일부 가족의 입장을 제한했다. 콜로보스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열리는 교회 밖에서 애도의 뜻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에서 온 가족들이며, 사전에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가족과 밖에 남을 가족을 미리 정해놓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장례식이 진행되는 교회로 경찰관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자 참담함을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그리스 교회에서는 총을 소지한 채 교회당으로 들어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경찰들은 인원을 통제한다는 이유로 총을 든 채 장례식장에 들어왔고, 심지어 고개를 숙이며 조의를 표하지도 않았다”며 “장례식장에서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머리를 숙이고, 고인에게 존경을 표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호주 연방정부는 지난달 말, 코로나19 확산을 늦추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에 따르면 장례식장은 최대 10명, 결혼식장은 최대 5명, 쇼핑센터는 최대 500명까지만 동시 입장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는 합당한 사유 없이 외출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공중보건 명령 2020’을 발동했다. 공중보건 명령을 위반하면 개인에 대해서는 최대 징역 6개월 또는 벌금 1만 1000 호주 달러(약 830만 원)나 징역과 벌금을 동시에 부과할 수 있다. 현지에서는 이미 경찰이 교차로에서 세차를 하던 남성이나 잔디밭에서 홀로 일광욕을 하던 남성 등을 적발한 사례가 나왔다. 한국시간 13일 오후 1시 기준, 호주의 코로나19 확진자는 6322명, 사망자는 61명이다. 사진=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별 통보 여친에게 성관계 영상 유포 협박하고 반려견도 학대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에게 성관계 장면이 담긴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반려견을 잔혹하게 학대한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전북 전주완산경찰서는 14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촬영) 및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A(21)씨를 구속했다. A씨는 지난달 14일 이별을 요구한 여자친구 B씨에게 그동안 몰래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보여주며 “네 친구와 가족에게 다 뿌리고 SNS에도 올리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같은 협박에도 여자친구가 교제를 계속 거부하자 A씨는 지난달 20일 B씨의 집에 찾아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애완견의 머리를 벽돌로 수차례 내려쳤다. 또 B씨가 이를 막기 위해 애완견을 품에 안고 달아나자 뒤쫓아가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A씨의 학대로 B씨의 애완견은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A씨를 상대로 동물 학대 혐의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그러던 중 협박에 시달렸다는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고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A씨의 휴대전화에서 삭제한 관련 영상을 복원했다. A씨는 “헤어지자는 말에 화가 나서 애완견을 때렸다”면서도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혐의가 중하다고 보고 피의자를 구속해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