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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이슈] 국가 이미지 바꾸기 사활

    [월드이슈] 국가 이미지 바꾸기 사활

    미국과 중국, 중동 국가 등 세계 각국이 너나 할 것 없이 국가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 미국과 중동 국가들은 9·11테러 이후 국제사회에서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 국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최고통치자의 최측근을 총책임자로 임명하는가 하면, 미국내 영향력 있는 홍보회사들을 앞다퉈 고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공자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정보기술(IT)산업과 세계적인 브랜드 육성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번 고정된 국가 이미지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웬만한 경제적·외교적 노력으로는 바꾸기 힘든 ‘무형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 미국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 이후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 지역에서 국가 이미지 실추 현상이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자 대외적인 홍보 외교(Public Diplomacy)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미국인들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조지 부시 대통령을 좀 봐라.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부시에 대한 신의 복수가 분명하다.” 워싱턴포스트가 25일자에서 전한 이집트의 택시운전사 파루 히켈의 이같은 말이 중동인들의 평균적인 정서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라크전 이후 확산되는 중동의 반미·반 부시 정서를 차단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올해초 2기 정부를 구성하면서 지난 2000년 및 2004년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본부의 홍보를 총괄했던 캐런 휴스를 대외적인 홍보업무를 담당하는 국무부 홍보담당 차관으로 임명했다. 이달 들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 휴스 차관은 우선 미국이 ‘긍정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세계에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에 따라 휴스는 세계 각국에서 미국에 대한 여론을 수시로 파악하고 대응까지 할 수 있도록 ‘신속대응팀’을 구성했다고 한다. 휴스는 또 각국에 주재하는 미국 대사들의 발언도 그녀가 제시하는 ‘발언 요지’와 일치하도록 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휴스 차관은 중동지역을 첫 출장지로 선택해 이번주부터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터키를 순방 중이다. 순방에는 미국과 중동지역 국가의 기자들이 대규모로 수행, 그녀와 미국의 홍보외교에 대한 관심도를 반영했다. 휴스 차관은 26일 아마드 나지프 이집트 총리와 회담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보장하려고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정책목표가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휴스 차관은 이틀간의 카이로 체류 중 이슬람 교육기관 알 아즈하르를 대표하는 수니파 지도자 셰이크 탄타위와 콥틱교 교황인 셰누다 3세 등 종교계 지도자들도 만났다. 그러나 휴스 차관은 수행기자들에게 “중동인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다.”면서 “우선 몇몇 사람들과 대화의 끈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현실적인 단기 목표치를 제시했다. 휴스 차관에게 최근 들어 새롭게 떨어진 임무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들춰낸 미국 사회의 인종, 빈곤 문제와 미 정부의 무기력한 재난대처 능력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대응하는 것이다. 휴스 차관은 일단 대외적으로는 “외국 언론이 미 정부의 노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공세적으로 반응했다. 아울러 대내적으로는 미 정부 기관과 군의 구호 지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dawn@seoul.co.kr ■ 중국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화민족 부흥의 기치를 치켜든 중국이 국가 이미지 제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전세계에 각인된 ‘중국제는 싸구려’란 통념을 벗어던지는 한편 중화민족의 강렬한 이미지를 심기 위함이다. 장기적으로 ‘팍스 시니카(중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을 실현하기 위한 중국의 야심찬 청사진의 일환이다. 세계적인 브랜드 보유를 위해 세계 유명 브랜드의 구매 전략을 선택했다. 최근 중국의 레노보 그룹이 IBM에서 개인컴퓨터 브랜드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단시일 내 브랜드 인지도와 중국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최근 전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중국의 ‘기업사냥’과도 맥이 닿는다. 주문자 생산방식(OEM) 위주의 세계 하청 생산기지에 머물지 않고 고부가가치 위주로 자국의 경제구조를 재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감지된다. 동시에 중국은 자체 디자인과 마케팅 노력으로 ‘토종 브랜드’ 개발에 전력 질주 중이다. 장시간의 노력과 자금이 소요되고 성공도 장담할 수 없지만 ‘중국산은 고가품’이란 확실한 이미지를 심겠다는 자세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중국 상무부는 내년까지 집중 육성할 ‘국가 대표 브랜드’로 하이얼 칭다오(淸島)맥주, 전통제약기업인 둥런탕(東仁堂) 등 191개 토종 기업을 선정, 발표했다. 전기·전자가 71개로 가장 많고, 의류 경공업 화공 의료 등 모두 6개 부문에 걸쳐 있다. 토종 브랜드 자동차 수출 지원을 위해 독자 브랜드를 보유한 완성차 및 부품업체 가운데 100사 선정에 착수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에 선정된 중국 브랜드에 대해 내년까지 각종 지원혜택을 제공키로 했다. 중국 브랜드 육성책은 지난 2003년 당 16기 3중전회에서 통과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개선을 위한 결정’에서 비롯됐다. 중국 지도부가 독자 브랜드 육성을 통해 대외교역 성장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중국은 문화 브랜드로 ‘공자(孔子)학원’을 택했다. 중국 문화원의 별칭인 ‘공자학원’은 지난해 말 서울에서 문을 열었다. 프랑스, 이집트, 몰타에 이어 세계 4번째이자 아시아 최초의 개원이다. 목적은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자국 언어를 가르치고 중국 문화를 보급하는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중국 제4세대 지도부는 국력 신장에 걸맞은 ‘중화사상’의 전세계 확산을 원하고 있다. 공자학원을 앞세워 평화적 부상을 강조하는 중국의 외교정책인 ‘화평굴기(和平 起)’의 문화 외교를 관철시키려는 의도가 짙다. 이를 위해 전세계에 100개의 ‘공자학원’을 설립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공자학원은 현지인에게 자국 문화는 물론 정치 이념과 각종 정책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친중파(親中派)를 육성한다는 전략적 접근법이다. oilman@seoul.co.kr ■ 중동 중동 국가들이 ‘테러리즘’ 내지는 ‘과격주의’를 연상시키는 국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오일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 아라비아 등 오일달러가 넘쳐나는 일부 중동 국가들은 수년전부터 미국의 홍보(PR)전문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미국 내에서의 자국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수백만∼수천만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한 시리아마저 재정 사정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 사장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내 홍보회사를 고용해 국가 이미지 홍보전략에 가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 국가들은 그동안 미 PR회사들을 고용, 미 의회에 대한 로비 활동을 강화하고 미국의 지도층 인사들과의 ‘연줄’을 돈독히 하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중동 국가들의 대미 홍보전략의 우선순위가 국가 이미지 제고로 바뀌었고,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대미 홍보를 한층 강화했다. 특히 9·11테러 이후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고 있으며, 테러리즘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쿠웨이트는 뉴욕의 PR회사인 페퍼컴을 고용해 국가 이미지 제고에 전력하고 있다. 쿠웨이트 정부는 쿠웨이트 출신 감독이 제작한 9·11테러 관련 다큐멘터리의 미국내 홍보를 이 회사에 전담케 했다. 쿠웨이트 정부는 미국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한 이 다큐멘터리의 미국내 상영을 직접 지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9·11테러 직후인 2002년 한해 동안 대미 홍보전략에만 15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사우디는 미 버지니아주에 있는 PR회사인 코르비스 커뮤니케이션즈를 고용해 대미 홍보를 전담시켰다. 코르비스는 사우디가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고 있으며 중동 평화 정책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신문과 라디오 광고로 제작,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시리아의 행보다. 이라크 내 저항세력에 대한 지원 의혹과 이란과의 관계, 레바논에 대한 영향력 확대 등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울 대로 껄끄러워진 시리아가 미국내 이미지 제고에 뒤늦게 가세했다. 최근 일부 언론들은 시리아가 미국의 PR회사인 뉴브리지 스트레티지스를 고용했다고 보도했다. 주미 시리아대사관은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이 없으며 대미 홍보전략에 쓸 예산도 없다며 보도내용을 즉각 부인했다. 하지만 주미 시리아대사가 부시 대통령과 오랜 친분관계가 있는 조 올보 뉴브리지 스트레티지스 사장을 여러 차례 사적으로 만나 조언을 구했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시리아 정부가 미국내 부정적 여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의 언론감시단체인 미디어와 민주주의센터의 선임연구원 다이앤 파세타는 “사우디 등이 공격적으로 국가 홍보에 나섰지만 효과는 단언하기 어렵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부그룹

    국내 10대 그룹이 대부분 1930∼1940년대 출범한 것과 달리 동부는 이보다 한 세대가량 늦은 산업화시대인 1969년, 대학생인 김준기 회장이 세운 후발기업이었다. 선발 창업 기업은 사업참여 기회가 많았지만 동부는 후발기업이어서 사업참여에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우·율산 등 60년대 말을 전후해 함께 등장했던 기업들이 부실 문제로 몰락한 것과 달리 동부는 성장과 안정을 기치로 삼아 꾸준히 사세를 키워 현재 재계 순위 12위까지 끌어올렸다. ●사우디 최초·최대의 사업단지인 주베일에서 신화를 창조하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니 죽으려 했다. 공사도 시작하기 전에 나라에 큰 손해를 끼친다는 죄스러운 마음에서 눈앞이 깜깜했다. 중동 진출 꿈은 날아가고 동부건설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양주를 한병이나 마셨다. 이 탑에 올라가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죽으려니 그동안의 고생이 너무 아까웠다. 이탈리아 말도 모르면서 이탈리아 귀신들 속에서 고생할 것 같다는 쓴웃음도 나왔다. 그리고 죽더라도 고국에 돌아가서 죽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죽기로 마음 먹으니 다시 한번 부딪쳐 보자는 각오가 섰다.” 1974년. 동부의 중동 진출 시발탄인 주베일 해군기지 공사를 내정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입찰받자 회사와 국가에 큰 손해를 끼치게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김 회장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유복한 집안에서 고생 없이 자란 덕에 김 회장의 창업은 밥벌이와 무관했지만 그렇다고 그룹을 이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죽는 대신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섰다. 발주처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재입찰을 성사시키면서 동부의 중동시대를 본격 개막했다. 김 회장이 현장 반장이 되어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을 전세 택시로 오가며 말뚝을 박고 공사를 지휘했다. 사우디 최대의 산업단지인 주베일에 한국 건설 업체로서는 최초로 동부건설이 대형 복합공사(4800만달러)를 따냈고, 그 이후 1억달러 이상의 대형 공사를 수주했다. 사우디 제다 해군기지, 사우디 국방부 청사, 리야드 국제공항 등 중동지역 공사를 잇따라 따냈다. 그 때 벌어들인 돈이 오늘날의 동부를 일군 종자돈인 일명 ‘오일 머니’다. 건설사 창업 10년도 안돼 도급 순위가 1978년 6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부강한 미국에서 착안한 기업가의 길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던 1969년. 만 24세의 나이로 직원 셋을 데리고 동부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했다. 군제대 후 선진국 시찰단의 일원으로 40일간 미국을 돌아보고 그는 자본주의의 위대성과 시장경제체제의 합리성에 눈뜨게 된다. 좋은 기업을 만들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젊은 포부에서 동부의 창업 이념은 ‘좋은 기업’이다. 건설업은 리스크가 크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나 설비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창업 업종으로 삼았다. 당시 회사 이름은 아름답게 솟아오른다는 뜻의 ‘미륭’. 오늘날 동부의 전신이다. 창업자금 2500만원은 여러 친지들을 설득해 간신히 꾼 돈이다. 아버지 김진만(87) 전 의원은 대학 재학중인 어린 아들이 사업하는 것을 반대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한 아버지 김 전 의원은 김 회장이 창업한 1960년대 후반, 여당의 당 4역으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동부의 창업 과정에 아버지의 후광 이야기가 운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7선 의원인 김 전 의원은 지금도 민족중흥동지회장이란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김 회장은 동부그룹을 창업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았겠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정치는 후광으로 가능하지만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평가받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라고 말한다. 김 전 의원은 1972년 항명파동으로 당권의 핵심에서 멀어져 간 인물이고, 오늘날 동부그룹을 이룬 결정적 기반은 1975∼1983년 중동에서 벌어들인 외화였기 때문이다. 1980년 전두환 군부 정권은 권력에 의존해 축재 혐의가 있는 정치인을 조사, 재산을 몰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의원으로 인해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연루된 적도 있다. 아들인 김 회장은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동부건설 계열 3사가 직면한 일대 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동부의 창업 과정과 김 전 의원이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당시 미륭)를 창업한 1969년 당시 이미 600여 선발 업체들이 포진한 상태였고 도급 순위에 따라 수주 한도가 정해졌기 때문에 미륭은 정부 발주 공사는 넘보지도 못했다.”며 후광설을 일축했다. 그는 또 “그래서 요즘 말로 우리만의 틈새시장인 이른바 ‘블루오션’을 개발해 성공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영국대사관·독일문화원·용산미군기지와 같은 주한미군 공사·연세대 이공대 건물 등 외국인 및 민간 발주 공사를 집중 공략했다. 특히 이는 국제적인 공사 표준이 엄격하게 요구되던 사우디 건설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이룬 밑거름이 됐다고 덧붙였다. ●계획된 사업다각화로 재계 10위권 진입 5남3녀 가운데 장남인 그는 서울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 회장 일가는 경기고와도 인연이 깊다. 광복후 청년운동을 펼쳤던 그의 숙부 고 김진팔씨가 경기고 27회, 김 회장이 60회, 그의 아들 김남호(30)씨가 90회 졸업생으로 3대가 경기고를 졸업했다. 지난 6월 말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에는 김 회장 재학 당시 화학 선생님이자 남호씨의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송길상씨가 주례를 맡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 중 사업을 가장 크게 하고 있는 사람 역시 김 회장이다. 동창들은 김 회장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도 잘했지만 술·담배는 물론 주먹도 무지 센 친구였다.”고 회고한다. 김 회장의 경기고 동기동창 중에는 고려대학교 어윤대 총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 최창영 고려아연 회장, 최경원 전 법무장관, 원정일 전 법무차관, 송옥환 전 과학기술부 차관, 양수길 전 OECD 대사, 한남규 전 중앙일보 부사장, 손욱 전 삼성SDI 사장, 이연수 전 외환은행부행장 등 쟁쟁한 유명인사가 많다. 동부그룹에서는 김 회장에 대해 “일밖에 모르는 탁월한 기업가” 라고 정의한다. 일을 위해 그 좋아하던 술·담배도 끊고 걸음걸이까지 바꿨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서를 즐기고 골프는 거의 치지 않는다. 주요 사업현안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얻을 때까지 임직원들과 마라톤 회의를 벌인다. 논리에서 밀리지도 않고 지독하다 싶을 만큼 마음 먹은 일은 꼭 이뤄내고 마는 성격이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건설·운송사업에 머물던 동부가 10위권 그룹으로 거듭난 것도 동부가 중동신화를 창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집념, 탁월한 전략, 추진력, 리더십의 결과라는 평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실 기업들을 속속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킨 주인공이 바로 김 회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다각화는 초기부터 큰 밑그림을 갖고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예컨대 1984년 ‘장영자 사건’ 여파로 부도가 난 일신제강을 인수,4000여억원을 투입해 민간 최대의 냉연강판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이어 1998년 1조 3000억원을 들여 아산만에 제2 냉연공장을 건설, 오늘날 동부제강을 세계적인 냉연철강회사로 탈바꿈시켰다. 80년대에는 울산석유화학·영남화학을 인수, 양사를 합병해 동부화학(현 동부한농화학)으로 출범시켰고,1983년에는 만년 적자인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해 오늘날 손해보험업계 ‘빅3’인 동부화재로 거듭나게 했다.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일에 대한 열정만큼 극진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 있는 어머니 고 김숙자씨의 묘소 옆에 별장을 지어놓고 수시로 다녀가고 있다. 사업 구상이나 고민에 빠질 때도 그가 찾는 곳은 늘 어머니 곁이다. 어머니 김씨는 서울 명성여학교에서 유학, 일제시대 삼척 송정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최초의 여교사다.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는 평이다. 동부는 80년대 중동 경기가 악화되기전 이미 중동에서 철수했다. 사우디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로 회사를 속속 설립, 인수하면서 그룹 시대를 열었고 몇 안 되는 친인척들은 이무렵 동부그룹에 들어왔다. 정치인 아버지 슬하에서 이뤄진 혼사들이라 화려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연애 결혼도 이외로 많다. 누나인 김명자(63)씨의 남편인 임주웅(65)씨는 결혼과 함께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해 한국자동차보험 이사, 동부생명보험 사장 등을 지냈다. 누나 김명자씨는 김 회장을 대신해 가족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매형인 임 전 사장의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치약 제조회사였던 동아특산약화학의 창업자인 고 임형복씨다. 임 전 사장의 형인 임주용(71)씨는 동국제강 고 장상태 회장의 막내 동생인 장복혜씨와 결혼했으며 중앙투금 부사장을 지냈다. 임 전 사장의 아들 준석(37)씨의 장인 윤호중씨는 흥아해운 창업주인 고 윤종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큰 동생이자 김진만 옹의 차남인 김택기(55)씨는 90년대 동부화재 사장을 지내면서 만년 적자이던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흑자 전환시켰다. 그러나 정계 진출을 위해 사표를 내고 2000년 4월 16대 민주당 의원(강원 태백 정선)으로 당선됐다.17대 총선에는 낙선했지만 그룹으로 돌아올 계획은 없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요즘은 강원대 초빙교수로 출강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아버지의 정치가 피를 이어받은 사람은 동생 택기씨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부친과 절친했던 이철승(83) 전 의원의 딸인 이양희(49) 성균관대 아동학과 교수와 결혼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김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김무기(52)씨는 80년대 초반 동부그룹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상무, 동부증권 부사장 등을 역임하다 1990년대 말 벤처 창업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지금은 IT전문 경제지인 서울디지털경제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약 중이다. 성격이 호방한 데다 주량이 세고 입담이 뛰어나 그룹 내에서는 일명 ‘핵무기’로 통했다. 자유연애로 만난 부인 이지은(46) 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서울대 문리대 학장을 지낸 고 이종진씨의 딸이다. 친구의 소개로 만났으며 금실이 좋기로 유명하다.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재계 정상에 오르다 동부는 창업에서부터 궤도에 오르기까지 가족·친지·동업자의 동반없이 사업을 했고, 창업자 단독으로 그룹을 일궈낸 보기 드문 사례다. 그룹을 이루는 과정에서 한때 일했던 매형과 동생들은 모두 각자의 길로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은 김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동서지간인 윤대근 동부아남반도체 부회장과 제조부문 회장을 지낸 외삼촌 김형배(71) 고문 둘뿐이다. 김형배 고문은 상공부(현재의 산업자원부 전신)에서 기획관리실장, 경공업 차관보를 거친 경제관료 출신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거쳐 1994년 김 회장의 권유로 동부에 합류했다. 동부제강, 동부한농화학, 동부전자 등 동부 주력 제조업체들의 경영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동서인 윤 부회장은 문교부(현재의 교육부 전신) 장관과 서울대 총장을 지낸 고 윤천주씨의 아들이다. 김 회장의 부인인 김정희(57) 여사의 여동생 김정림(56)씨의 남편이다.70년대 초반 미국 유학 당시부터 그룹 일을 도와 가장 먼저 그룹에 참여한 친·인척으로 꼽히기도 한다. 측근들은 김준기 회장과 윤대근 부회장은 코드가 통해 지금도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소머리 국밥집에서 냄비에 눌어붙은 누릉지를 긁어먹길 좋아하는 등 두 사람의 소탈함이 닮았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윤 부회장에 대해 “인척관계를 떠나 사업상 고락을 함께 해온 동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정이 돈독하다. 김 회장과 윤 부회장의 장인은 고 김상준 삼양염업사 명예회장이다. 고 김 명예회장은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의 형이다. 고 김 명예회장의 2남3녀 중 둘째 딸과 셋째 딸이 나란히 김 회장과 윤 부회장에게 시집간 것이다. 지난 7월 김 회장의 아들 남호씨의 결혼식 당시 식장 맨 앞에 있던 신랑 가족석 옆에 삼양그룹 사람들을 위한 별도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9월 고 김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당시 두 사람이 시종 빈소인 고려대병원을 지키기도 했다. 김 회장의 결혼은 친지의 중매로 이뤄졌다. 동부 관계자는 “창업 이후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던 김 회장에게 중매가 들어왔는데 신부 후보가 알고 보니 김 회장과 중·고등학교 동기인 김병휘(현 한양대 수학과 교수)씨의 동생이었다.”면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인지 자연스런 만남이 지속됐고 혼사도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연세대 기악과 출신의 김정희(57)씨는 김상준 전 삼양염업 회장의 2남3녀 중 차녀다. 주례는 당시 동아일보 고재욱 사장이 맡았다. 이밖에 다른 형제들은 그룹에 관여한 경험조차 없다. 여동생 김명희(58)씨는 ‘여성의 전화’ 창립맴버로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 등 여성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평우(60) 변호사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김 변호사의 양친 모두 유명한 소설가인 고 김동리 선생과 고 손소희 여사다. 김평우 변호사는 김준기 회장과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김흥기(46)씨는 여동생인 희선(45)씨의 소개로 이화여대 수학과 출신인 오남선(46)씨를 만나 연애 결혼했다. 흥기씨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가방을 만들어 수출하는 무역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김희선씨는 농심 신춘호(75) 회장의 둘째 며느리이자 신동윤(47) 율촌화학 사장의 아내다. 이화여대 음대 재학시절 자신이 소개해 오빠의 부인이 된 오남선씨의 주선으로 남편 신 사장을 학교 축제에서 만나 결혼했다. 막내인 김현기(39)씨는 부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상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아직 미혼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현재 동서인 윤 부회장과 외삼촌인 김 고문 이외에 다른 어떤 친인척도 동부그룹에 몸담고 있지 않다.” 면서 “다른 재벌들과 달리 동부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전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핵심경영인들 김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 김준기 회장은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묘비명에 적힌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부리다가 간 사람, 여기 누웠노라.” (Here lies a man who was able to surround himself with men far cleverer than himself.)를 자주 인용한다. 대학 시절 카네기의 ‘부의 복음’을 읽고 그의 경영철학과 인재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묘비명이 자신처럼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경영자의 참모습을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고 ‘사람’중심의 경영철학 및 인재관에 관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김 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도 이를 실천할 것을 독려한다. 2001년 입사한 이명환(61) 현 ㈜동부 부회장의 경우 김 회장이 여러 차례 만나 자신의 기업관 등을 설명하며 동부 합류를 끈질기게 설득해 영입한 케이스. 이 부회장은 67년 삼성에 입사해 삼성전자 종합기획실장, 삼성 비서실 인사담당, 삼성SDS 사장 등을 지냈다. 효성 생활산업 사장, 현대건설이 출자한 인천국제공항철도사업단 사장도 역임했다. 이미 70년대부터 김 회장과 손발을 맞춰 온 백호익(62·건설·물류분야) 부회장, 윤대근(58·소재분야) 부회장은 물론 90년대 말 이후 합류한 장기제(금융분야) 부회장, 신영균(61·화학분야) 부회장 등 오늘날 동부를 이끄는 핵심 전문경영인들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밖에도 2004년 6월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전 삼성화재 부사장), 같은 해 12월 임종성 동부아남반도체 부사장(전 삼성전자 전무), 지난 2월 김홍기 동부정보기술 사장(전 삼성SDS 사장) 등이 삼성에서 영입됐고, 지난 3월 GS건설 출신의 황무성 부사장이 동부의 토목부문 사장으로,4월 GS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을 지낸 김용화씨가 개발부문 사장이 됐다. 이어 5월에는 세계적인 반도체회사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오영환 동부아남반도체 사장, 대림산업 부사장 출신인 하진태 동부건설 부사장, 대림산업 출신인 김용식 동부건설 부사장 등이 영입된 바 있다. jhj@seoul.co.kr ■ ’후계자’ 김남호씨 MBA 유학중 동부의 후계구도는 단순 명확하다.김준기 회장의 승계자가 1남1녀 중 아들인 김남호(30)씨로 일찌감치 정해졌기 때문이다.180㎝나 되는 건장한 체구에 겸손한 태도가 눈에 띈다. 남호씨는 최근 부인 차원영(26)씨와 함게 미국으로 건너갔다.내년 1월부터 뉴욕대학에서 MBA과정을 밟기 위해서다.원영씨는 차경섭(86) 차병원 이사장의 손녀(차광열 포천중문의대 교수 딸)로 지난 6월 남호씨 누나인 주원(32)씨 후배의 소개로 만난지 1년만에 결혼에 골인했다.남호씨는 MBA과정을 끝낸 뒤에도 서울로 돌아오는 대신 한동안 일본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경기고를 졸업한 뒤 미국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귀국해 군복무를 마쳤고 지난 2002년부터 외국계 경영 컨설팅 그룹인 AT커니 한국지사에서 최근까지 근무했다. 서울예고 출신의 원영씨는 영국에서 ‘유니버시티 오브 런던’ 수학과를 나온 재원.그룹의 예비 안주인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향후 남호씨 뒷바라지에 전념중이다. 2,3세에 대한 지분 이양 과정에서 ‘편법 증여’ 등 의혹이 제기되는 일부 재벌들과 달리 동부의 경우 온전히 증여세를 내고 정당하게 지분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지분 이양은 대부분 이뤄졌지만 남호씨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멀었다고 그룹측에선 진단한다. 동부그룹측은 “남호씨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다 김 회장도 평소 남호씨에 대해 국내외 경제 흐름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국제적인 안목을 쌓길 바라고 있다.”면서 “경영 참여는 전혀 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진작에 끝났다.김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아들 남호씨에게 꾸준히 지분을 넘겼고,그 결과 지난 2002년 10월 남호씨가 동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 최대주주가 됐다.동부화재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들인 동부생명,동부증권,동부저축은행,동부투신운용 등 금융계열사들과 동부건설 및 동부아남반도체의 경영권도 확보하고 있다. 또 2004년 8월 김 회장이 아들 남호씨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동부정밀화학 지분을 증여함으로써 남호씨는 동부정밀화학,동부증권,동부제강 등 주요 계열사에서 개인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 사실상 지분 승계 작업을 마무리했다. 딸 주원씨는 동부화재,동부정밀화학,동부제강 등에 대한 지분을 일부 갖고 있으나 경영 참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룹측 설명이다.친구 소개로 만나 1997년 9월 당시 해동화재 김동만(96) 회장의 손자인 김주한(35)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지금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김주한씨는 메릴린치증권 애틀란타 지사에서 자산운용가로 일하고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창작자의 고통과 그 의미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내 마음의 옥탑방’의 작가 박상우가 신작 장편소설 ‘지붕’(지식의숲)을 냈다.2003년 ‘작가수첩’이란 부제를 붙인 산문집 ‘반짝이는 것은 혼자가 아니다’에서 내밀한 작가적 고뇌와 열정을 진솔하게 고백했던 그는 이 소설에서 작가인 주인공 화자를 내세워 창작자의 고통과 창작의 의미를 정면으로 탐색한다. 희곡 작가인 인호는 절친한 친구 석모가 밤낚시를 갔다가 가스에 질식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석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문을 품은 인호는 사건 당일 석모와 함께 있었던 준혁을 의심하게 되고, 그의 애인으로 추정되는 마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다. 인호는 끈질긴 추적으로 국가정보기관에 근무하는 준혁이 석모를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죽음을 방기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 이면에는 유력 정치인의 비리와 이를 빌미로 거액을 챙긴 추악한 거래가 숨어 있다. 소설의 외양은 얼핏 한 친구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추리소설을 연상케 하지만 추리소설 특유의 속도감이나 긴장감보다는 ‘인간의 행위에 개입하는 제3의 존재’ 혹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파헤치려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에 묵직한 추를 달아둔다. ‘처음부터 예정된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인간이 아무리 무작정 움직인다고 해도 그것의 이면에서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61쪽) 언젠가 석모가 이렇게 말했을 때 인호는 그를 비웃으며 자유의지를 강조했었다. 하지만 석모의 죽음에 얽힌 혼돈을 목격한 후 인호는 변한다.‘창작은 인간의 몫이지만 창조는 신의 몫’이라고 여겼던 그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창조자의 작업에 동참한다. 작가는 ‘반짝이는 것은…’에서 ‘캐고 또 뚫어라. 일정한 지점에 도달하면 글의 맥이 보일 것이다. 거기가 글줄이 쏟아져 나오는 지점이다. 그때부터 쏟아지는 글줄은 창작이 아니라 어딘가에 은밀하게 보관되거나 숨겨져 있던 절대자의 소유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고 썼다. 신과 인간, 우연과 필연, 창작과 창조 등 인호의 입을 빌려 작가가 독자 혹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두의 뿌리를 유추케 하는 대목이다.95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논술 길라잡이]시사 키워드/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

    맥아더는 영웅인가, 역적인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놓고 보수·진보 진영이 충돌하고 있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논쟁은 분단 한국을 바라보는 보·혁 양 진영의 시각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진보측은 노무현 대통령이 동상 철거에 반대하자 노 대통령까지 보수파로 몰아세우고 있다. ●철거를 주장하는 이유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미군추방공동대책위원회의 주장은 맥아더가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 민족의 자주성을 짓밟은 장본인이며 한국전쟁 때 대량학살을 지시한 전범이라는 것이다. 맥아더가 ▲‘점령군’으로 들어와 이땅을 일제 식민지에서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시켰고 ▲일제가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 10만여 점에 대한 반환 요구를 미국에 대한 일본의 감정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으며 ▲노근리 양민학살 등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최근 인천에서 열린 ‘한국전쟁의 역사적 재조명과 맥아더의 재평가’라는 토론회에서 주제 발제를 맡은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한국전쟁을 통일전쟁이라며 논쟁에 불을 질렀다. 강 교수는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 강 교수는 한국전쟁을 한반도에서 외국군대가 철수한 이후 한 나라에서 두 개의 정권이 단독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상대방과 무력행위를 일으킨 ‘내전’이라고 규정하면서 누가 침략자인지 따지는 것은 보편적 역사관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작은 전쟁의 연장선인 6·25전쟁은 통일전쟁으로, 분단을 주도한 미국이 원인제공자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에서 최소한 4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맥아더에 대해 ▲2차 대전 종결후 조선분단 집행 ▲식민지 점령 총독 ▲유엔 승인범위를 무시하고 38선을 넘어 북진 감행 등의 이유를 들어 미국에서도 평가가 달라졌듯이 전쟁 영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철거에 반대 보수진영은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으로 한국을 구출한 은인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가르쳐 온 내용이다. 반대쪽 사람들은 철거하려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김일성 동상을 세우려는 사람들이라고 몰아세운다.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번영은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어떻게 볼 것인가 맥아더는 어떤 인물인가, 특히 우리에게는?어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실체에 대한 진실이 하나라도 평가는 두가지 이상이 나오기 마련이다. 맥아더 또한 마찬가지다. 둘 이상의 평가가 나오는 또다른 이유는 어떤 사람이든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맥아더는 2차대전의 영웅이고 인천상륙작전의 이끈 장군이면서도 중국군을 과소 평가하고 원자탄 사용을 주장한 과오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도 맥아더의 실체가 무엇이냐에 대한 평가를 달리 내릴 수 있다. 분단의 주범인가 아니면 한국을 적화에서 구해낸 영웅인가 하는 것이다.2차대전이 끝난 뒤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전승국들의 나눠먹기로 약소국 한국은 분단되고 말았다.6·25는 이념의 대결이 전쟁으로 비화된 것으로 그것을 내전으로 보든 보지 않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입장에서는 미국 등 우방의 도움을 받아 공산화를 저지한 것은 사실이다. 맥아더는 그 과정에서 분단을 주도한 인물도 아니고 혼자서 북한군을 막아낸 사람도 아니다. 다만 군인으로서 지시를 받아, 더러는 자신의 판단 아래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또한 북한을 남한과 동등한 실체로 인정하는 관점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6·25를 내전으로 보고 맥아더가 통일을 가로막았다는 주장이 그런 것이다. 이는 우리의 법체제하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나 이데올로기에 따른 체제의 대립도 영원할 수는 없다. 6·25에 개입하고 통일을 방해한 중국은 오늘에는 한국과 아주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북한 또한 마찬가지다. 영원히 대립하는 적국이 아니라 통일을 향해 화해하고 함께 걸어야할 동반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맥아더를 신성시하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 시대적 변화에 맞춰 맥아더의 실체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행동으로 상대방을 묵살하고 보자는 태도에 앞서 토론과 연구를 통해 실체에 함께 접근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포인트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이 왜 제기됐는지, 극단적인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어떻게 봐야 하며,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신연숙칼럼] 반가운 수목장 논의

    [신연숙칼럼] 반가운 수목장 논의

    추석명절 때 우리도 수목장(樹木葬)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대화를 가족들과 나눴다. 신문에 난 산림청의 수목장에 대한 시민의식 설문조사 분석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명절을 보내고 나니 서울시의 산골공원 조성계획 소식이 들려온다. 수목장 논의가 당분간 활성화될 것 같은 예감이다. 수목장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반갑다. 이유는 수목장 자체에 대한 호감도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의 화급한 과제인 장묘문화 개선, 혹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사실 전통적인 장묘문화인 매장제도가 한계에 부딪쳐 변화를 겪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대안으로 제시돼 온 화장과 납골시설은 부지 확보가 어려워 시설 부족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공동시설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심하다. 서울의 한 가톨릭 성당은 성당 안에 납골당 설치를 추진했다가 지역주민들에게 신도들이 감금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주민들은 납골당이 주변의 교육환경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집값하락을 우려한 님비현상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납골당이 기피시설이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교육환경과 교통난 같은 표면적 주장 말고 정말 이런 시설을 기피하게 되는 정서적 원인에 대한 민속학자, 종교학자들의 분석은 들어볼 만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혐오감, 부정(不淨)의식 때문이란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포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죽음은 원령(怨靈)이고 무서운 살(煞)이며, 부정이라고 생각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죽음은 외면의 대상이었고 묘지 등 죽음을 위한 시설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조상들은 심지어 부고장 한 장도 부정탄다며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바람직한 것일까. 문화나 관습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시점에서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된다. 외국의 많은 사례와 현재의 상황이 변화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 가보면 마을 가까이에 있는 공동묘지를 예쁘게 가꿔놓고 공원처럼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태국에는 마을 한가운데에 결혼식장처럼 장례식장이 있고 일본에는 주택가납골시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들 시설들은 우리의 기피시설들이 당당히 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데 대한 경이로움과 함께 이 나라 사람들의 세계관을 저울질해 보게 한다. 죽음을 멀리하는 우리와 달리 일상 속에서 죽음을 대면하는 그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삶의 1회성을 자각하여 더욱 성실하고 치열하며 겸손하게 살지 않을까. 삶이 고단하다고 우리처럼 자살률이 높아지기보다 감사하고 겸허하게 희망의 끈을 붙잡지 않을까. 수목장은 화장을 한 후 골분을 나무밑에 뿌리거나 묻는다. 망자의 이름표가 붙은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며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수목장이 널리 보급된다면 장묘문화는 물론 우리의 생사관에도 변화가 오지 않을까 한다.‘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거나 ‘죽은 정승이 산 개보다 못하다.’는 전통적 속담처럼 현세적인 삶에만 집착하는 삶에서 넓게 보고 준비하는 여유있는 삶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수목장 담론의 활성화는 지난 6월 죽음학회의 창립과도 맥이 통한다. 묘지난 해소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논설실장 yshin@seoul.co.kr
  • 5순도순 송편만들기

    5순도순 송편만들기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 미당 서정주는 추석 전날 밤의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한가위 전날 가족이 둘러 앉아 송편을 빚으며 덕담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오랜 미풍양속. 하지만 요즘은 송편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이번 추석에는 온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정성껏 송편을 만들어 보자. 예쁜 송편 콘테스트도 하고,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조상께 감사하는 마음도 가져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추석. 일년 동안 정성껏 농사를 지어 조상께 먼저 예를 올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 날이다. ●가족간의 정이 넘치고 남양주 덕소에 사는 김동철(46·그룹4FALCK)씨 집에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마당까지 흘러나왔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중이었다. “태헌아 송편을 예쁘게 빚어봐. 꼭 너처럼 만들면 어떻게.”라며 아들을 놀리는 아빠,“내 송편은 통통해서 더 맛있어!”라고 외치는 태헌(9·월문초 2년)에게서 행복이 뚝뚝 묻어난다. 할머니 최정숙(70)씨가 “태헌이 솜씨가 대단한데! 손으로 동글동글 굴려서 속을 넣고 만들면 예쁜 송편이 되는 거야.”라며 손자에게 한 수 가르쳐준다.“그래 우리 윤혜는 어쩜 이렇게 예쁘게 송편을 빚니. 시집가도 되겠어.”라고 손녀를 칭찬한다.“할머니, 나 열한살이야. 그리고 할머니랑, 아빠 엄마랑 살 거란 말이야!”라는 윤혜(11·월문초 5년). “태헌아 그래도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신부를 얻는다고 했어. 아빠 봐. 저렇게 송편을 예쁘게 빚으니까 엄마처럼 예쁜 신부를 얻은 거야.”엄마 현승자(45)씨의 말에 온 가족이 웃었다.“자, 송편에 침 튀기지 마!” ●송편에서 배우는 조상의 지혜 추석송편은 ‘오려송편’이라 불렸다. 첫 수확한 햅쌀로 빚은 송편이란 의미에서다. 송편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고려시대부터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은 생성, 성장, 소멸의 단계를 거치는데, 그것은 곡식이 생성, 성장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추석 차례 때 송편을 올리는 것은 하늘의 열매라는 뜻이다. 반면 과일은 땅의 열매, 토란은 땅 밑의 열매로 하늘, 땅 위, 땅 밑의 열매를 모두 조상님께 드린다는 뜻이 담겼다. 반월형의 송편은 꽉 찬 달이 아니라 앞으로 하루하루 채워진다는 의미에서 동그랗게 만들지 않고 일부러 반달모양으로 만들었다. 솔잎을 깔고 송편을 찌는데도 이유가 있다. 송편이 서로 달라붙지 않아 모양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송편에 솔향이 배어 향긋하고 맛을 더해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솔잎이 지닌 항균 효과이다. 식물은 미생물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살균물질을 발산하는데, 이를 통칭해 피톤치드라 한다. 소나무는 보통나무보다 10배 정도나 강한 피톤치드를 발산한다. 그래서 세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고 상하는 것을 막는다. ■ 보기좋고 먹기좋은 떡 만들기 어머니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송편, 그리워만 하지 말고 한번 도전해 보자. 양을 많이 해야 했던 지난 시절, 어머니의 송편만들기는 ‘노동’이었지만 우리가 만드는 송편은 ‘놀이’가 될 수 있다. F&C Korea(www.fnckorea.com)의 김수진(50)원장이 We의 독자들을 위해 예쁜 송편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색깔을 입히자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처럼 송편에도 색을 입히면 보기에 좋고 훨씬 맛있다. 반죽을 할 때 치자를 넣은 노란송편, 오미자를 넣은 분홍송편, 쑥이나 녹차가루를 넣은 녹색송편 등 다양한 색깔의 송편을 차례상에 올린다면 부모님의 칭찬으로 더욱 풍성한 추석이 될 것이다. 만드는 법도 간단하다. 오미자나 치자를 아주 적은 물로 진하게 우려낸 후 설탕이나 꿀 등을 살짝 섞어 뜨거운 물과 함께 반죽하면 된다. 또 쑥은 쌀과 함께 빻는 것이 좋다. 진하게 우려낸 포도나 홍차 등도 넣으면 정말 예쁘고 먹음직한 송편이 된다. 요령:치자나 오미자를 아주 진하게 우려내야 색깔이 예쁘다는 것, 반죽이 되직해지도록 물의 양을 조금 적게 조절해야 한다. ■ 정성은 듬뿍 시간은 후다닥 송편 만들기 송편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쌀가루를 곱게 갈아 반죽해서 찌면 된다. 여기에 쑥, 치자나 오미자, 녹차 등을 넣고 반죽을 하면 녹색, 노랑, 분홍 등 다양한 색상을 낼 수 있다. 송편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반죽을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송편이 쫀득쫀득하고 갈라지지 않는다. 반죽을 위한 재료는 쌀한 되(800g으로 약 4컵. 만드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송편 30∼40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 소금·참기름 약간씩만 있으면 준비 끝. (1)물에 불려 곱게 빻은 쌀가루를 고운 체에 한번 내린다. (2)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 잘 녹인다. (3)체에 내린 쌀가루에 뜨거운 소금물을 조금씩 흘려 부어가며 반죽한다. 쌀가루는 밀가루와 달리 반드시 뜨거운 물로 반죽을 하는 것은 기본이며, 물을 아주 조금씩 넣어가며 반죽을 해야 한다. 물이 조금만 많아도 반죽이 질어진다. 요령:이때 식용유를 조금 넣으면 갈라짐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식성에 따라 설탕이나 꿀을 넣어도 좋다. (4)약간 반죽이 되다 싶을 때까지 물을 조금씩 넣고 손으로 치댄다. 많이 치대면 치댈수록 부드럽고 쫄깃해진다. (5)덩어리가 없고 표면이 매끈하게 되면 반죽을 둥글게 뭉쳐 젖은 거즈나 비닐에 넣어 1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송편 반죽을 다했으면 ‘소’를 만든다. 소는 더 간단하다.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 다르지만 깨나 콩, 밤 등을 넣는다. 적당히 삶거나 갈아 설탕, 꿀과 섞으면 된다. 이렇게 반죽과 소가 만들어지면 본격적인 송편 만들기에 나선다. (1)반죽을 밤알만큼 떼어 손바닥 위에 올리고 돌돌 굴려가며 동그랗게 모양을 만든다. (2)경단 모양의 반죽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옴폭 들어가게 모양을 만든다. (3)소를 넣고 잘 아물린다. (4)다시 손바닥에 올리고 돌돌 굴려가면 동그랗게 만든다. (5)동그랗게 만든 것을 손으로 잡고 모양을 내면 된다. (6)이렇게 송편을 다 빚었으면 찜통에 솔잎을 깔고 쪄내면 된다. 요령:찔 때는 꼭 물이 끓기 시작할 때 송편을 넣어야 한다.20분 정도 찌면 된다. 찐 송편을 바로 꺼내 참기름을 살짝 발라준다. 송편끼리 붙는 것을 막고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서다. ■ 임금님이 드셨던 꽃송편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다는 꽃송편은 일반 송편보다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가위에 한번쯤은 멋을 부려보자. 오색의 반죽을 장식을 한 후 이쑤시개로 누르거나 모양을 만들어 주는 것이 포인트.
  • [씨줄날줄] 맥아더와 아이크/이목희 논설위원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철거 논란을 보면서 짝사랑의 허망함을 느낀다. 맥아더는 아이젠하워와 함께 20세기 미국 군인을 대표한다. 미국민의 애정은 50여년전 아이젠하워쪽으로 결론났다. 맥아더에게는 이성적 평가가 주를 이룬다. 미국민에게 그는 전쟁에서 지략을 보였으되, 정치야욕은 달성하지 못한 인물일 뿐이다. 맥아더를 둘러싼 한국내 애증(愛憎) 대립은 어이없는 짝사랑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비친다. 여러 문헌과 증언을 보면 맥아더는 전쟁을 즐겼다. 맥아더가 기분나빠 한 것은 미국 수뇌부의 유럽 중시정책이었다.2차대전 당시 맥아더는 태평양지역 사령관으로 일본과의 전쟁을 지휘했다. 나치와 싸운 유럽지역 연합군사령관은 아이젠하워였다. 아이젠하워는 한때 맥아더의 부하였지만, 전쟁 동안 더 각광받았다. 미국민은 정신적 고향인 유럽 전쟁에 우선 신경을 썼다. 한국전쟁은 ‘영웅 경쟁’을 뒤집을 기회를 맥아더에게 제공했다. 맥아더가 문민통치에 항거하며, 만주 폭격 등 동북아에서 전면전을 주장하는 무리수를 택한 배경이 된다.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맥아더의 인기는 한때 상당했다. 하지만 곧 냉정을 되찾은 미국민은 아시아에서 필요 이상의 피를 흘릴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 휴전을 내건 아이젠하워는 2차대전 후 특별히 인기있었던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는다.“나는 아이크(아이젠하워의 애칭)를 사랑한다.”는 구호는 가장 호소력있는 정치구호로 꼽히고 있다. 맥아더동상 논쟁의 원인 제공은 이승만 정부와 이후 군사정권이 했다. 미국에서도 냉정한 평가를 받는 그를 과도하게 미화했다. 미국 국익과 스스로의 야심 때문에 한국전쟁에 몰두한 그를 자유민주주의 수호자인 듯 만든 것은 잘못이다. 결과적으로 한반도 공산화를 막는 데 기여를 했으나 그가 한국의 영웅이 될 수는 없다. 나치로부터 유럽을 해방시킨 아이젠하워는 미국의 영웅이지, 유럽의 영웅은 아니다. 그렇다고 맥아더를 살인마, 양민학살자로 매도하는 일이 옳아 보이지 않는다. 어떤 문헌에도 그가 양민학살을 지시했다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과도한 미화에 대한 반작용이겠지만, 동상철거 주장 또한 국제사회에서 촌스러운 짓이다. 그를 역사속 인물로 담담히 보고 동상 논란을 끝냈으면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한부총리, 금리인상 반대 시사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현 시점에서의 금리인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한 부총리는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경기회복이 분명하고 가시적이라는 확실한 판단이 섰을 때에 금융통화위원회가 통화정책을 조정(금리인상)하는 데에 합리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은행과의 이견은 없으며 금통위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한은과 금통위가 금리를 조정하는 데에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사항은 물가안정”이라고 강조했다. 한 부총리는 “현재 농산물 등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5∼3.5%보다도 훨씬 낮은 2%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한은은 물가를 살핀 뒤 다른 요소들을 감안해 통화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인 물가가 안정된 만큼 금리를 현 단계에서는 올릴 필요가 없다는 재경부의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한 부총리는 또 소주 및 액화천연가스(LNG) 세율 인상과 관련,“세수 부족 때문에 이들 세율을 올리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추진하겠으나 국회에서 세출 삭감 등의 다른 대안이 있는지 검토하고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재경부 관계자는 “소주세나 LNG세를 대체할 세수가 확보된다면 둘 모두나 하나를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는 열린우리당이 소주 세율 인상은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일각에서 제기된 부가가치세 세율조정에 대해 한 부총리는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거나 논의한 바는 없으나 장기과제로 계속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서울광장] ‘사람’이 빠진 집값 전쟁/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사람’이 빠진 집값 전쟁/우득정 논설위원

    올초 경기도 분당의 40평형대 아파트로 이사한 A씨는 요즘 심사가 몹시 불편하다. 남들은 집값이 폭등하기 직전 넓은 평형으로 이사해 떼돈을 벌었다고 부러워하지만 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행복의 척도에 대해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방 4칸짜리 아파트를 가지면서 비로소 자신만의 공간인 방 한칸을 챙겼다. 결혼 이후 줄곧 갈망했던 나만의 공간이다. 게다가 홀로 사시는 장모님이 딸집에 왔다가 머무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장모님의 유일한 소일 도구인 TV를 따로 설치한 탓이다. 이사 전에는 장모님의 딸집 방문은 대개 하룻밤을 넘기지 못했다. 밤이면 안방을 내주고 아들 방으로 흩어지는 딸 부부가 부담이 됐고,TV채널권을 두고 손자들과 다투기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장모 취향에 맞춰 꾸민 사위방에서 다리를 쭉 뻗고 TV를 보다가 졸리면 언제든지 자면 된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부동산 종합대책 ‘완결편’을 내놓았다. 미니 신도시 건설이라는 공급 확대책도 있지만 대책의 핵심은 2003년 ‘10·29대책’ 이래 일관되게 추진해온 수요억제책이다.1가구 다주택 소유자뿐 아니라 중대형 평형 주택 보유자는 모두 투기적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세금을 대폭 올렸다. 세금이 부담되면 작은 집으로 옮겨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생활하다 보면 자녀의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방 수는 달라진다. 엄마의 품에 있을 때, 친구들과 어울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때에는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교에 진학하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자녀를 위한 별도의 공간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안방이 있는데 남편을 위한 방이 따로 필요하냐는 지적이 있을지 모르나 안방은 어디까지나 아내의 공간이다. 직장 사무실 역시 경쟁의 공간이지 나만을 위한 공간은 아닌 것이다. 중산층이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 결혼 초에는 20평형대 아파트에서 시작했다가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에는 30평형대,40대 후반에는 40평형대로 집을 넓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별도의 공간 필요성과 맥을 같이한다. 자녀들이 군에 가거나 출가하면 다시 주택 규모가 줄어드는 것도 같은 이치다. 특히 사회보장제도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과거에는 집 규모 축소는 바로 노후 생계수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집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행복척도가 ‘배부른’ 푸념처럼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고시한 최저 주거기준은 4인가족 기준으로 37㎡(11.2평)다. 생계비로 따진다면 최저생계비인 셈이다. 반면 일본은 44㎡(13.3평), 프랑스는 56㎡(17평)다. 시민단체들은 신세대의 체형 확대 및 컴퓨터 등 사이버기기 구비율 증가 등을 감안할 때 최저 주거기준이 너무 낮다고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했다. 따라서 이러한 최저 주거기준을 놓고 볼 때 중산층이 꿈꾸는 주거공간 행복척도는 결코 과도한 욕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집을 투기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세력에게는 반드시 철퇴를 가해야 한다. 세금 융단폭격을 통해서라도 이들의 불로소득은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 하지만 집에서 나만의 공간을 가지려는 욕망까지 투기로 몰아선 곤란하다. 주5일제가 확산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가장이든 맞벌이 부부든 홀로 있고픈 욕구도 커지고 있다. 자산가치로만 평가되는 주거공간 개념에 행복지수도 제목소리를 낼 날을 기대해 본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입주권課稅’ 강북재개발도 찬바람

    ‘입주권課稅’ 강북재개발도 찬바람

    주택 시장이 움츠러들고 있다. 나름대로 시장이 형성된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투자도 입주권을 주택으로 간주, 양도세 중과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발표 이후 치명타를 입게 됐다. 서울 강남 아파트값 상승세가 멈추고 신규 아파트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어닥쳤다. ●입주권 양도세 부과, 재개발 투자 위축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입주권을 주택으로 간주, 양도세를 물리겠다는 발표가 나오자 부동산중개업소에서는 “주택 투기 수요의 맥을 끊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주택 시장에서 재개발·재건축 아파트는 말이 투자이지 투기에 가까웠다. 재건축 아파트나 재개발 입주권은 사업 시행인가 이후 철거되면 멸실 주택이 돼 주택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일반 아파트와 재건축 아파트를 각각 소유 1가구2주택자도 재건축 아파트가 헐리고 나면 1가구1주택자로 분류돼 비과세 혜택을 받았다. 때문에 ‘직업 투기꾼’은 물론 일반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투자 대상이었다. 현재 일반 분양분을 뺀 조합원 입주권은 2∼3년 뒤 아파트 입주가 확정된 상품이라는 점에서 거래 제한없이 일반 아파트처럼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서울 강북 재개발 주택 투자 열기가 상당 부분 가라앉을 것으로 보이며, 아직 불씨가 살아있는 재건축 투자도 잠재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1가구2주택 이상 소유자에 대해 양도세가 무겁게 부과되는 2007년 이전에 입주권 매물이 대거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강보합세를 유지하던 뉴타운 등 재개발 예정지역 집값도 이번 조치로 주춤하고 있다. 아현 뉴타운에 소형 빌라 5채를 사들인 김성철씨는 “입주권 거래로 한몫 잡으려고 했는데, 입주권을 주택으로 간주해 양도세를 무겁게 물리면 투자 가치가 사라질 것이 뻔하다.”면서 “더 떨어지기 전에 되팔아야겠다.”고 말했다. ●청약시장 찬바람, 업체 공급 미뤄 신규 아파트 청약시장도 썰렁해졌다.‘8·31 대책’이후 진행된 서울 동시분양 아파트 청약에서는 대거 미달사태가 빚어졌다.3순위자에게까지 청약기회가 주어졌지만 주인을 상당수 맞지 못했다. 서울 강남 대형 업체 아파트도 겨우 미달을 넘어설 정도다. 마감된 아파트도 과거와 달리 청약경쟁률이 낮아 실제 계약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강도 높은 ‘8·31대책’이 투기 수요는 물론 실수요자들의 발길을 잡아놓아 청약시장이 위축됐다.”고 말했다. 예년 같으면 가을 성수기를 맞아 아파트 공급에 앞다퉈 나설 업체들이 머뭇거리고 있다. 다음달 초 실시될 서울 9차 동시분양에 아파트를 내놓겠다고 신청한 업체는 6개 업체,598가구에 불과하다. 송파·거여·마천동 일대 주택 호가 상승도 일단 멈췄고 실제 거래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집값 불안을 촉발시킨 강남권과 과천 재건축 아파트값도 하락세를 굳히고 있다. 분당 신도시, 용인 아파트값도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 (2)지분·경영권 ‘교통정리’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 (2)지분·경영권 ‘교통정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기업이다. 최근 두산그룹이 형제간 분쟁에 휩싸이는 등 재계 일각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친족간 지분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잡음없는 형제경영은 박인천 창업주 회장이 생전에 그룹경영 원칙을 세우고,2세들이 이를 충실히 따른데서 비롯됐다. 박 회장은 2세들의 지분 분배와 관련해 ▲여러 사람이 관여하면 분란이 생기기 쉬우므로 남자들에게만 상속하고 ▲4자(5남 가운데 4남 종구씨를 제외한 성용·정구·삼구·찬구씨)합의 경영 형태로 형제간 합의아래 회장을 선임하고 ▲주요 사안에 대해서도 4자 합의가 최우선이지만 합의가 안되면 다수결 원칙에 따르고 그래도 결정나지 않으면 가장 손윗사람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동생에게 물려주겠다” 1984년 그룹 총수에 취임한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평소에도 입버릇처럼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주겠다.”며 형제경영 실천의지를 보였다. 박 명예회장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는 실제로 65세가 되던 1996년 그룹창사 50주년을 맞아 동생 정구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이후 정구 회장이 65세이던 2002년 폐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뜨자 3남인 삼구 현 회장이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결국 그룹의 두 형제는 65세에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는 전통이 우연히 만들어진 셈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61세인 삼구 회장이 65세가 되는 2009년에 회장직을 4남인 찬구(58)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에게 넘겨줄지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룹 관계자들은 박 회장이 동생 찬구 부회장에게 회장직을 이양하는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10대 기업으로 키워내 성용 명예회장은 박인천 창업회장의 49재를 지낸 1984년 8월3일 제2대 그룹 회장으로 조용히 취임했다. 선친이 타계한 지 얼마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성격대로 요란한 취임행사나 이미지 구축을 위한 경영전략 발표도 일절 갖지 않았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했던 박 명예회장은 일찍부터 그룹 경영을 자문해 왔다. 그러다가 1973년 10월 부친의 ‘명령’에 따라 교단을 떠나 금호실업 사장으로 본격적인 경영참여를 시작했다. 이후 1979년 10월 그룹 부회장을 거쳐 10년만에 그룹 총수를 맡게 된 것이다. 성용 회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경영이론에 밝은 ‘총수’였다.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버클리대에서 조교수로 일했다. 당시 3회 이상 논문 게재시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다던 세계적인 논문 권위지인 ‘인터내셔널 이코노믹 리뷰’에 두 차례에 걸쳐 논문이 실리는 등 미국에서 계량경제학자로 왕성한 연구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해외 고급두뇌 유치정책에 따라 1968년 귀국행 보따리를 쌌다. 성용 회장은 부친의 권유로 정부에 몸담게 된다. 창업주 회장이 버스조합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요금인상 문제로 당시 알고 지내던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학렬 경제수석을 만나 성용 회장을 소개했고 그 자리에서 비서관으로 채용케 했다. 그는 대통령 경제비서관, 부총리 특별보좌관으로 재직하다 1971년 평소 원해 왔던 학계로 다시 옮겼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며 부총리를 지낸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 전 부총리 등과 함께 경제학계의 탄탄한 학맥인 ‘서강학파’를 형성했다. 이 때 교단에서 만난 제자들을 회사에 입사시키기도 했다. 박상환 금호생명 부사장 등이 박 명예회장의 ‘애제자’들이다. 이러한 박 명예회장의 독특한 경력은 당시 재계의 2세 경영인 중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이 오히려 그룹을 경영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 광범위한 인맥들을 형성했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이 취임한 1984년 그룹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1980년 초 일어난 삼양타이어 분리파동과 때마침 불어닥친 경기불황의 여파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이론의 대가로서 현실 경영인으로서는 결심하기 힘든 단안을 내린다. 한보철강의 전신인 극동철강과 금호섬유를 매각하고, 삼양타이어와 금호실업을 통합해 상호를 ㈜금호로 바꿨다. 흑자기업인 광주고속은 금호건설을 합병했고, 금호화학과 한국합성고무를 합쳐 금호석유화학으로 재탄생시켰다. 취임 당시 9개사인 계열사를 4개로 줄이고, 비주력부문을 과감히 매각하는 등 경영내실화에 박차를 가했다. 또 석유화학분야를 그룹 주력 업종으로 성장시켰다. 당시에는 ‘구조조정’이라는 말 대신 ‘합리화’라는 표현을 썼다. 박 명예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한국경제의 최대 화두였던 구조조정의 선구자인 셈이다. 박 명예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키면서 취임 당시 69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대로 끌어올리는 등 금호아시아나를 국내 10대 그룹 반열에 올려놓았다. ●두 세발 먼저 앞서간 이상적인 경영인 박 명예회장은 현실에 치우치기보다는 이상적인 경영관을 실현하려고 애썼다. 지금은 누구나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가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예상을 했고, 집앞까지 배달해 주는 택배회사의 성공을 예견했다. 장성지 금호아시아나그룹 상무는 “명예회장님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인터넷을 능수능란하게 다뤄 임원들에게 이메일로 지시사항을 보내놓고 답신 시간을 일일이 확인하셨다.”면서 “어떤 전자서류는 새벽 2,3시에도 결재하셨다.”고 회고했다. 박 명예회장의 이상적인 경영스타일은 음악, 미술 등 문화사업으로 이어졌다.1990년 금호 현악4중주단을 창단하고, 고가의 세계적인 명품 고악기를 사들여 한국을 빛낼 가능성이 높은 연주자에게 무상으로 대여해줬다. 비수익사업에 힘을 쏟는 박 명예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 기업도 미국의 카네기재단이나 일본의 소니그룹처럼 사회문화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며 “당장은 돈이 부담스럽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룹 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박 명예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난 뒤 1998년 예술의전당 이사장과 2002년 통영 국제음악제 이사장을 맡는 등 문화·예술 사업에 전념했다. 199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02년에는 기업메세나 대상(대통령상)을 받았다. 박 명예회장의 예술사랑 덕분에 지난 5월 장례식에서는 예술인들이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 더 애통해 했다. 박 명예회장의 친구인 이승윤 전 부총리는 “박 회장은 단순히 선친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2세 기업인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지닌 뛰어난 전문경영인이었다.”고 회고했다. ●발로 뛰는 경영인 박 명예회장은 1993년부터 동생 고 박정구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명예회장은 “미국 CEO들은 환갑만 지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며 동생에게 총수직을 맡아줄 것을 수차례 요구했다. 형의 요구를 고사하던 정구 회장은 1996년 그룹 창사 50주년이 되는 해 박 명예회장이 “65세에 회장직을 물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히자 회장직에 올랐다. 순조로운 경영권 이양에 대한 보답 차원이었는지는 몰라도 정구 회장의 형에 대한 예우는 남달랐다. 성용 명예회장은 그룹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문화·예술 사업 등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곧잘 제기했다. 수요와 공급 원칙에 철저히 따르는 동생 정구 회장으로선 형의 제안이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시죠.”라며 무조건 따랐다. 그러나 정구 회장은 형과는 사뭇 다른 경영스타일을 보였다. 경제 이론을 중요시했던 형과 달리 본능적인 감각과 불도저식 추진력을 발휘하는 현장중심의 경영방식을 택했다. 이는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자마자 22세에 광주여객 영업과장으로 회사에 몸 담으며 철저히 경영수업을 받아온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정구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아주생명을 인수, 금호생명으로 변경해 보험업에 진출했다. 강원 설악과 전남 화순, 경남 충무, 제주 남원에 잇달아 콘도를 개장, 미래의 유망분야인 관광·레저사업 부문을 확대했다. 정구 회장이 재임때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중국 진출이었다. 항공·타이어·고속버스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했다. 정구 회장의 불도저식 경영은 1997년 이후 IMF 위기에서도 발휘됐다. 계열사간 합병·지분매각·청산 등을 통해 한계사업과 비주력사업부문을 과감히 접었다.1997년 당시 32개였던 계열사를 2001년 15개로 축소했다. 자본유치, 부동산 및 유가증권 매각, 유상증자 등을 통해 97년 말 966%에 달했던 그룹 부채비율을 2001년 말 360%로 낮추는 등 재무구조를 개선시켰다. 대부분의 그룹 임직원들은 3대 정구 회장이 풍부한 경험과 의리를 앞세우며 선 굵은 경영을 펼쳤던 경영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폭탄주’를 즐기던 정구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IMF 파고를 넘었지만 2002년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셋째아들 정구 회장에 이어 4대 회장에 취임한 삼구 회장은 5남3녀중에서도 아버지 박인천 회장을 가장 닮은 아들로 꼽힌다. 수리에 밝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나이에 비해 생각하는 것이 젊어 ‘영원한 39(삼구)세’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높은 결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해 한번 결정하면 물러서지 않는 원칙론자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성격은 그룹 창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내는 업적을 이뤄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약관 22세의 나이에 한국합성고무를 차릴 정도로 경영인으로서의 ‘끼’를 발휘했다. 그룹 총수이면서도 재무·관리·세무회계 등에 정통해 그룹의 세세한 재무상태까지도 훤히 꿰고 있다. 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고문은 “회장님이 업무면에서는 섬세하고 치밀해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지만 형님들을 모시거나 동생들을 보살피는 데는 넓은 포용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형들을 생각하는 박 회장의 정성은 극진했다.2004년 박성용 명예회장이 세계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독일의 몽블랑 문화재단으로부터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받자 밤 11시에 형에게 달려가 깜짝 축하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웬만한 주요 행사에는 바로 아래 동생인 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을 반드시 동행토록 해 사소한 의사결정때도 동생의 의견을 듣는다. 삼구 회장은 잔정이 많다는 게 그룹 임직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1998년 당시 아시아나 사장이던 삼구 회장은 IMF를 맞아 전년도 입사자들이 1년간 무급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행사장에서 5분간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린 사실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룹 제2의 중흥기 맞아 2002년 9월2일에 4대 회장에 취임한 삼구 회장은 IMF 이후 2004년까지 4조 9961억원의 구조조정 실적을 이뤄내는 자구노력으로 기업을 회생시켰다. 이 구조조정 기간에 공적자금을 지원받지 않고, 직원 감축없이 그룹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2004년에는 사상 최대 실적인 매출액 8조 5447억원, 경상이익 8140억원을 달성했다. 박 회장은 앞으로도 항공·고속 등 운수분야와 타이어, 석유화학 계열, 관광·레저, 금융 등의 기존 사업분야는 경영합리화를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물류·레저사업을 상호 연계,2010년까지 재계 5위에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뒤에서 묵묵히 보좌하는 4남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은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통계학과를 졸업해 수치에 밝고 경제의 맥을 잘 짚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혹시 형인 삼구 회장에게 누가될까봐 뒤에서 묵묵히 돕고 있다. 전공을 살려 회사내의 재무상황을 꼼꼼히 챙기고 재무구조 개선에 앞장서 왔다. 찬구 부회장은 지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는 비전경영실의 사장을 겸직하며 그룹에서 추진되고 있는 구조조정 사안들을 일일이 챙겼다. 그는 유연한 조직체계 및 관리체계를 구축해 금호석유화학을 합성고무부문에서 국내시장 점유율 1위, 세계 4위의 생산능력을 보유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문 CEO 아시아나항공 박찬법(60) 사장은 2001년 1월 대표이사직에 취임해 대규모 흑자 전환, 세계 최대의 항공제휴망인 ‘스타얼라이언스’ 가입 등의 성과를 올렸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다. 금호타이어 오세철(58) 사장은 1974년 금호타이어 입사 후 연구·생산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이다.‘현장중시’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금호산업 건설사업부 신훈(60) 사장은 지난 2002년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2004년 상장사 중 최고의 주가상승률을 이뤄냈다. 금호산업 고속사업부 이원태(60) 사장은 그룹내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로 통한다.1993년부터 금호아시아나의 중국사업 전진기지인 북경대표처에서 근무하며 타이어, 항공, 고속 등 그룹의 중국 진출을 이끌었다. 금호석유화학 김흥기(59) 사장은 1973년 금호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한 뒤 재무담당임원을 두루 거친 그룹내 재무전문가다. 금호피앤비화학 류명렬(59) 사장은 비상경영을 통한 획기적인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속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흑자로 전환시켰다. 금호폴리켐 기옥(56) 사장은 재무통으로 금호타이어 경리부에서 출발해 회장부속실 근무중 아시아나항공 설립과 함께 직원 1호로 발탁되기도 했다. 금호미쓰이화학 김성기(61) 사장은 오랜 기간 미국 법인과 금호 미국 현지법인에서 수출·마케팅 업무를 담당한 미국 전문가다. 금호렌터카 김성산(59) 사장은 1960년 광주고속에 입사하여 40년간 장기근속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산증인이다. 금호페이퍼텍 이삼섭(55) 사장은 종합무역상사인 금호실업에 입사, 금호건설을 거친 후 비전경영실부사장을 지냈다. 타이어, 항공, 고속, 건설, 화학 등 그룹 전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아시아나IDT 박근식(59) 사장은 IT출신이 아니지만 2003년부터 그룹 IT전문회사인 아시아나IDT대표를 맡고 있다. 사이버대학 IT관련 학과에 다니는 노력 끝에 전문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복합물류 김종호(57) 사장은 외국어에 능통해 해외영업을 총괄하는 등 타이어 해외수출의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인천공항에너지 류병률(59) 사장은 아시아나항공 서울지점장과 여객담당 임원 등 영업에서만 10년이상 근무한 영업통이다. 금호생명 박병욱(58) 사장은 한양대에서 ‘회사 시책이 보험설계사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이론과 실무에 능한 수재형 CEO다. 금호종금 이기수(56) 사장은 30여년간 경리·자금분야에서 실무와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아시아나CC 김창규(52) 대표이사 상무는 금호산업 레저사업부 대표도 겸직하고 있다. 그룹 전략경영본부 오남수(57) 사장은 현재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고 있는 그룹 전략경영본부의 실무 총괄 책임자다.1997년 시작한 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에 줄곧 몸담아 왔다. 재계에서 손꼽히는 와인 애호가 및 전문가로 최근에는 ‘어너더 와인, 어너더 테이스트(Another Wine,Another Taste)’란 제목의 와인 가이드 포켓북을 발간하기도 했다 jrlee@seoul.co.kr ■ 재벌 혼맥의 허브… 삼성·LG등 사돈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와 2세인 5남3녀는 자식들의 혼사에 각별히 신경써 화려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가(家)는 2,3세들의 혼인을 통해 삼성,LG, 대우, 대상그룹과 사돈을 맺는 등 ‘재벌가 혼맥의 허브’로 부상했다. 박 창업주 회장의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아들 재영(35)씨를 구자훈 LG화재 회장 3녀인 문정(30)씨와 결혼시켰다. 재영씨의 장인인 구자훈(58) 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손밑 동생 철회(75년 작고)씨의 3남이다. 박 명예회장과 구 회장이 자식들의 혼사로 인해 ‘사돈’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가의 장손인 재영씨의 처고모부인 박용훈(63)씨는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두산그룹과도 혼맥으로 연결돼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박 부회장은 박우병 전 두산산업 사장의 장남이다. 2남 정구 회장의 장녀 은형(35)씨도 김우중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36·포천아도니스CC 사장)씨와 혼인해 일가를 이뤘다. 금호아시아나가의 혼맥은 뭐니뭐니해도 3녀 현주(52)씨를 통해 빛을 발한다. 현주씨는 임창욱(56) 대상그룹 명예회장에게 시집갔다. 또 큰 딸인 임세령(28)씨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37) 삼성전자 상무와 결혼시켰다. 세령씨와 이재용 상무간의 결혼은 호남 집안인 금호아시아나가와 대상그룹, 영남집안인 삼성가가 사돈을 맺었다는 점에서 재계의 화제가 됐다. 또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그룹이 혼맥으로 합쳐졌다는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세령씨는 시어머니인 홍라희(60) 여사가 보광그룹의 장녀여서 홍석현(52) 전 중앙일보 회장과 홍석규(49) 보광그룹 회장을 시외삼촌으로 모시고 있다. 특히 박현주씨는 금호아시아나가가 남자들에게만 지분을 상속한다는 대원칙을 고수해 친정에서는 경영참가가 원천 봉쇄됐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하고 있다. 박씨는 대상그룹 계열인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대표로 활발한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어 9월13일 대상그룹의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등기임원에 선임될 예정이다. 옥중에 있는 남편 대신 시댁의 회사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여 이목이 쏠리고 있다. jrlee@seoul.co.kr ■ 3대째 이어지는 원칙금호아시아나그룹의 철저한 동등지분 원칙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장자승계 원칙이 일반적인 다른 그룹과 달리 창업 2세 가구별로 똑같은 지분을 확보, 경영권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 등 금호 경영에 참여한 4형제는 공교롭게도 아들을 1명씩 두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달 4일 고 박 명예회장이 보유해온 계열사 지분 전량을 장남인 재영(35)씨가 상속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박성용-정구-삼구-찬구로 이어져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경영 체제가 3세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분구조는 특이하다.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을 기준으로 창업 2∼3세들의 지분구조가 9.24%로 똑같다.2세 경영인 중 회사 경영과 무관한 5남 종구(국무총리실 경제조정관)씨를 빼고는 4명의 형제가 동일한 지분을 갖고 있다. 2세들이 작고하면 이 지분은 고스란히 3세 경영인들에게 상속돼 지분구조를 둘러싼 분란이 생길 틈이 없다. 재영씨는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의 보통주 136만 2512주와 우선주 8만 3251주, 금호산업의 보통주 35만 5000주, 금호종합금융의 보통주 3만 9070주, 금호페이퍼텍의 보통주 2585주와 우선주 4만 1087주를 받았다. 이로써 재영씨는 금호석유화학 지분 9.24%를 소유하게 됐다.2002년 작고한 정구 회장의 장남 철완(27)씨도 부친 지분 9.24%를 그대로 상속받았다. 이로써 사촌지간인 재영씨와 철완씨는 나란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주주로 떠올랐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의 최대 주주는 자사주 19.8%를 보유한 금호석유화학이고 재영, 철완씨는 2대 주주가 된 것이다. 이들은 금호산업과 금호종합금융의 지분도 똑같이 보유하고 있다. 금호산업 지분은 42.49%를 보유한 금호석유화학이 최대 주주로 있으며 재영, 철완씨가 1.87%씩 갖고 있다. 두 사람은 금호종합금융의 지분도 1%씩 보유했다. 이처럼 철저한 동등지분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창업 2세 형제들이 그룹 지분을 똑같이 나눠 갖고 형제경영을 하는 것처럼 3세도 이같은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뜻에서다. 금호아시아나가(家) 3세들의 경영참여 시점도 관심거리다. 재영씨는 미국 LA에서 경영과는 동떨어진 영화 공부를 하고 있고, 철완씨는 국내에 있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 관계자는 “재영씨와 철완씨가 지분 승계로 대주주가 됐지만 당분간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코드로 읽는책]세계종교로 보는 죽음의 의미/조 바우커 지음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끝에는 종교가 있다. 종교는 일반적으로 죽음을 부정하고 영원한 생명을 제시하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죽음과 불멸에 대해 종교가 가장 많은 말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대의 대표적인 종교학자인 조 바우커가 쓴 ‘세계종교로 보는 죽음의 의미’(청년사 펴냄, 박규태·유기쁨 옮김)는 종교의 기원이 죽음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됐다는 통상적인 이해를 뒤집는다. 그동안 종교학자들이 펴낸 죽음에 관한 책들과 맥을 달리하는 것. 저자는 종교가 영원한 생명을 제시한다는 ‘보상설’을 반박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죽음에 대한 세계종교의 해석들을 보여준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의 교의와 의례에 대한 꼼꼼한 분석을 통해 죽음에 대한 세계종교의 해석들이 마르크스나 프로이트 등 사상가들이 주장한 보상설로 환원될 수 없을 만큼 풍부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과연 죽음이 없다면 종교도 없었을까.’이다. 이같은 문제의식은 종교의 기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각 종교의 뿌리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탐색하고 죽음의 궁극적인 의미를 성찰한다. 저자는 희브리 성서와 초기 불교, 신·구약성서, 힌두교 베다 등은 결고 보상이나 사후세계의 실체를 말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오히려 사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래된 종교사는 종교의 기원이 사후의 가치 있는 삶을 제공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여기에서 종교의 기원을 이론적으로 일반화해 탐색해온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이론의 맹점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종교로부터 사후 보상을 제거해야만 죽음에 대한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죽음의 본질은 무엇일까. 오래된 종교적 시도들은 보상개념보다는 ‘희생’에보다 근본적인 의미를 둔다고 강조한다. 유대교 경전은 ‘피흘림’을, 기독교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불교는 민속신앙의 희생 제의를 탈바꿈시켜 일찍이 희생이라는 범주를 죽음과 연결시켰다. 저자의 또다른 질문은 죽음에 대한 세속적인 해석과 종교적인 해석이 어떻게 만나는지다. 이를 풀기 위해 많은 현대과학 담론을 끌어들이고 고고학과 인류학·현상학 등 인접 학문의 다양한 죽음담론을 펼친다. 이 결과 저자는 ‘희생’이야말로 양쪽 해석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두 해석은 생명의 필요조건인 죽음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 서로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종교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남과 동시에 동서양 종교 전통의 해박한 지식 속에 빠져들게 하는 책.1만 8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제발 살아만…” 한 엄마의 아들찾아 3만리

    ‘아들 찾아 3만리….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중국 대륙의 한 젊은 여성이 지난달 30일 남편이 팔아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제발 우리 아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안타깝게 호소하고 있다고 중국 난팡두스바오(南方都市報)가 1일 보도했다. 그 애절한 사연의 주인공은 광둥(廣東)성 허위안(河源)시 룽촨(龍川)현에 사는 왕메이전(王美珍·28·여).지난 2003년 2월 현 남편인 천(陳)모와 결혼,단란한 가정을 꾸렸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서로 다투는 일이 잦아졌으며,심할 때는 천이 왕을 심하게 구타해 왕의 온 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지난해 6월 왕은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하지만 남편의 간단없는 ‘가정 폭력’을 이기지 못한 왕은 지난 4월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돌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고,보따리를 싸서 광둥성의 성도(省都)인 광저우(廣州) 인근의 포산(佛山)으로 떠났다. 그런데 왕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3개월 정도가 지난 7월 시아주버니로부터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갔는데,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맥이 탁 풀린 왕은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남편 친구를 비롯해 알만한 사람들 모두에게 달려가 물어봤으나 남편과 아들의 행방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한달여 뒤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낙담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즈음,남편으로부터 아들을 500 위안(약 6만 5000원)을 받고 팔아버렸다는 전화를 받고는 억장이 무너졌다. 이에 그녀는 곧바로 공장을 사표를 던지고 아들을 찾아 나섰다.왕은 길거리로 나가 아들의 사진과 연락처 등을 담은 전단지를 돌리며 아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그래서 지금은 매일 남편이 아들을 팔아버렸다는 위안강(元崗)공원 등에 나가 곧 나타날 아들을 그리워하며 한숨짓고 있다. 인터넷부
  • [새영화] 오늘개봉 ‘게스 후?’

    [새영화] 오늘개봉 ‘게스 후?’

    2일 개봉하는 케빈 로드니 설리반 감독의 영화 ‘게스 후?’(Guess Who)는 흑인과 백인간의 신경전과 화해가 스토리 전개의 중심축이다. 흑인 집안에 백인 사위가 들어오면서 생겨나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코미디로 녹였다. 결혼 25주년을 앞둔 중년의 흑인 남자 펄시 존스(버니 맥)는 혼기가 꽉 찬 딸의 사윗감으로 소박한 조건을 지녔다. 그저 멀쩡한 직업에 운동을 조금 하면 되고, 제시 잭슨 목사나 빌 코스비처럼 미국 사회에서 모범적인 흑인이면 더욱 좋다. 어느 날 딸 테레사(조 살 다나)가 사윗감 사이먼(애시톤 커처)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 순간 펄시의 눈은 휘둥그레진다. 얼굴 색깔이 검은색이 아닌 것. 게다가 운동에 ‘운’자도 모르고, 직장도 잃은 ‘백수’다. 펄시는 사이먼이 영 마뜩지 않다. 결국 펄시는 사이먼을 쫓아내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영화속에는 흑인 장인과 백인 사위간의 미묘한 갈등이 잘 버무려져 있다. 관객의 배꼽을 잡아빼는 대사와 행동, 잔잔한 감동을 주는 상황설정 등은 관객의 흥미를 이끈다. 그러나 극 초반의 긴장감은 뒤로 갈수록 느슨해지는 것이 흠. 흑-백 커플간의 밀고 당기는 얼개가 뒤로 갈수록 성글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호연과 다양하게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은 충분한 재미로 다가온다.12세 이상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무슨 영화 볼까]

    ●불량공주 모모코(2일 개봉) 장르/등급 코미디/15세 감독/배우 나카시마 데쓰야/후카다 교코·쓰치야 안나 줄거리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목숨 건 16세 소녀, 동갑내기 스쿠터 폭주족의 우정. 20자평 황당무계하지만 이보다 더 재기발랄할 수 없는 이야기. ●아일랜드 장르/등급 SF/12세 감독/배우 마이클 베이/이완 맥그리거·스칼렛 요한슨 줄거리 장기제공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들의 ‘시스템 탈출기’ 20자평 액션이 화려한 SF, 그러나 생각보다 약한 철학적 메시지. ●그녀는 요술쟁이 장르/등급 코미디/12세 감독/배우 노라 에프론/니콜 키드먼·윌 페렐 줄거리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움직이던 미녀 요술쟁이, 달콤쌉싸름한 인간세상 적 응기. 20자평 니콜 키드먼으로 빛나는, 그러나 그녀를 빼면 시체(?)인 영화. ●크림슨 리버 2(1일 개봉) 장르/등급 미스터리 액션/15세 감독/배우 올리비에 다한/장 르노·브누아 마지멜 줄거리 성서의 비밀을 단서로 살인사건의 진실을 캐는 수사극. 20자평 근사한 재료, 평범하게 주저앉은 미스터리. 창대한 시작, 미미한 끝. ●게스 후(2일 개봉)장르/등급 드라마/12세 감독/배우 케빈 로드니 설리반/베니 맥·애쉬튼 커처 줄거리 흑인 집안에 들어온 백인 예비사위의 좌충우돌 ‘사랑 쟁취기’. 20자평 색다른(?) 장인과 사위의 신경전은 재미만발, 남녀주인공의 로맨스 강도는 기대치 이하. ●박수칠 때 떠나라 장르/등급 미스터리 드라마/15세 감독/배우 장진/차승원·신하균·김지수 줄거리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48시간의 살인 수사극. 20자평 차승원, 신하균의 에너지가 스크린에서 ‘이글이글’. ●웰컴 투 동막골 장르/등급 드라마/12세 감독/배우 박광현/정재영·신하균·강혜정 줄거리 전쟁도 비켜간 산골마을에서 엮는 국군, 인민군, 미군의 가슴 찡한 동거담. 20자평 넉넉한 산골 풍광, 푸진 웃음, 찡한 감동. 그러나 하염없이 느린 걸음.
  •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5) 천연염색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5) 천연염색

    ‘살짝 물들인 듯한 쪽빛 명주색의 새벽’,‘홍화로 잘 염색한 모시를 닮은 저녁노을’(詩 : ‘노을의 연가’에서 ). 우리 하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천연의 식물에서 색소를 추출하여 수많은 색을 창출한 우리민족의 감각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색채문화는 유구하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천연의 재료로 채색되어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은 풀꽃으로 물을 들여 옷을 입었다. 한해살이 쪽으로 청(淸)을 내고, 괴화로 황(黃)을, 잇꽃으로 홍(紅)을 물들였다. 거기에 소귀나무 열매인 양매로 흑(黑)을 내고 옷감색인 백(白)을 포함해 오방색으로 생활 속에서 멋을 부렸다. 거의 모든 천연염료는 약재나 식용으로 사용되므로 이를 소재로 염색을 할 경우 독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약리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2000여년 동안 우리민족과 숨결을 같이했던 천연염색은 색상면에서 보면 일반적인 화학염색에 비해 은은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첨가하는 매염(媒染)제의 종류와 양에 따라 색이 미묘하게 변하면서 포근한 느낌을 안겨준다. 가슴이 아리도록 우리의 정서에 깊이 파고드는 힘을 갖고 있다. 천연염색은 자연의 숨결을 간직한 전통색채의 마술(魔術)인 것이다. 사진 글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염색장 중요 무형문화재 115호 정관채씨 “합성염료 때문에 우리 것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지만 우리생명의 본향이 전통인 걸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한 때 중학교 미술교사였던 정관채(48·염색장,2001년 중요 무형문화재 115호 지정)씨는 고향인 나주에 공방을 짓고 쪽을 재배하며 염색장의 맥을 잇고 있다. 쪽염색을 배우려는 수강생이 늘어나는 것이 큰 보람이다.“치자나 쪽으로 물들인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게 될 외국인들을 상상해 보세요.” 제자 대부분이 한복제작자, 대학강사, 디자이너들이다. 그들이 좋은 작품을 내도록 도와서 전통염색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게 꿈이란다. “농사에 들이는 정성과 자연에서 잠시 색을 빌리겠다는 겸손함이 있어야 고운 마음의 색깔을 낼 수 있지요.” 직접 농사를 지어 염료를 수확하는 정씨는 재능보다 물들이는 사람의 마음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여자배구 스타 ‘나는 작은새’ 조혜정씨

    [어떻게 지내세요] 여자배구 스타 ‘나는 작은새’ 조혜정씨

    “요즘 우리나라 여자배구 수준이 옛날보다 오히려 뒤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가끔 경기장을 찾을 때면 절로 몸이 들썩거려지곤 합니다.” 왕년의 여자배구 슈퍼스타 조혜정(53)씨.164㎝의 작은 키로 강한 스파이크를 시원스럽게 날려 ‘나는 작은새’로 각인돼 있다. 그는 특히 1970년대 초·중반 한국 여자 스포츠를 세계무대로 끌어올린 견인차로 스포츠사에 기록된다. 대표팀에 있는 동안 73년 월드컵과 74년 세계선수권 3위를 거쳐 우리나라 구기종목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인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아울러 당시 국내 여자배구를 뜨겁게 달군 주인공이기도 했다. 최대 라이벌전인 대농과 유공의 시합이 벌어지는 날이면 서울 장충체육관에 구름관중이 몰려들곤 했다. 조혜정을 비롯해 유경화 윤영내 유정혜 정순옥 변경자 박인실 김화복 등을 보기 위해서였다.‘얼짱 미모’에다 파워 넘치는 이들의 플레이는 단연 압권이었다. 여자경기가 끝나면 관중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이어 열린 남자경기를 맥빠지게 할 정도였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윤봉길기념관 뒤뜰에서 만났다. 때마침 대한체육회에 볼 일이 있어 서울에 잠시 올라온 터에 짬을 내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조씨는 “서울에 오면 유경화네 집(양재동)에서 항상 머문다.”고 했다. 근황을 묻자 “얼마전 대구에서 운영하던 ‘조가냉면집’을 그만두고 강원도 원주의 한솔 오크밸리에 기거하고 있다.”고 했다. 프로골퍼로 활약 중인 맏딸 조윤희(22)의 뒷바라지에 전념하기 위해서란다. 또한 “냉면집 하는 것보다 딸을 좋은 선수로 키워서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훨씬 낫지 않으냐.”며 웃는다. 조윤희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98년 미국으로 골프유학을 떠났으며 3년 전 국내 프로무대에 복귀했다. 호쾌한 장타력으로 2003년 SBS최강전 준우승을 차지했으며,3년째 상금랭킹 10위권을 넘나들고 있다. 조씨는 2년 후 딸의 LPGA(미국 여자프로골프) 진출에 ‘올인’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조씨 집안은 보기드문 스포츠 가족. 남편 조창수씨는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감독대행을 거쳐 지금은 대구 경북고 야구팀 감독을 맡고 있다. 둘째딸 윤지도 아직 중학생이지만 아마추어 골프선수로 언니의 뒤를 열심히 따르고 있다. 조씨 역시 한때는 핸디 80대 초반의 골프실력을 과시했으나 요즘은 골프채를 전혀 들지 않는다. 어머니로서 두 딸이 LPGA에서 성공할 때까지 모질게 뒷바라지하겠다는 각오에서다. 남편과는 국세청 배구팀 시절에 주위 소개로 만나 인연이 됐다. 조씨는 우리나라 여자배구의 수준에 대해 “체력은 좋아졌으나 기술은 과거에 훨씬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유소년을 육성할 지도자뿐만 아니라 팀 수도 적어져 오히려 도태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배구가 발전하려면 축구의 박지성이나 야구의 박찬호 같은 인재를 발굴해 세계무대의 스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씨는 두 달에 한번꼴로 만나는 ‘몬트리올 모임’을 통해 동료들과 우정을 다지고 또 후배들에게 이같은 질책과 주문을 한다고 했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LG·LG전자 지분 내다판 소버린

    LG·LG전자 지분 내다판 소버린

    소버린자산운용이 ㈜LG와 LG전자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한국 증시에서 발을 뺐다.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변경한 지 20일만에 이뤄진 것으로 전체 지분보유 기간은 대략 6개월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우선 소버린이 한국시장 철수를 위한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혹은 LG의 투자금을 회수할 정도로 만만한 먹잇감이 등장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23일 거래소와 LG에 따르면 소버린측은 개장전 시간외 매매를 통해 ㈜LG와 LG전자 지분 각각 7%(1207만 9200주),7.2%(1006만 660주)를 매각했다. 매각 가격은 ㈜LG 2만 4910원,LG전자 6만 2000원선. 지난 2월 매입 가격을 놓고 보면 ㈜LG에서 513억여원의 차익을 남겼지만,LG전자에서 1015억여원의 손실을 입어 총 502억원을 손해봤다. ●왜 팔았나 SK㈜ 지분 매각으로 1조원에 가까운 이득을 챙긴 데 이어 ㈜LG와 LG전자에 대한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로 변경하면서 소버린측의 LG지분 매각은 어느 정도 예견이 됐다. 그러나 LG 지배구조의 우수성을 토해내며 ‘장기투자’를 공언했던 소버린측 행보를 감안하면 6개월만에 전량 매각한 것은 의외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한국 철수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 투자를 주도했던 제임스 피터 대표가 최근 사임한 배경에는 소버린의 투자 전략 재편과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또 LG의 실재 가치가 예상보다 적으면서 소버린측이 손절매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특히 주가를 끌어올릴 만한 호재가 없던 데다 경영 간섭에 나설 여지가 SK와 크게 달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소버린이 새로운 투자대상을 발견하고, 그곳에 투자하기 위해 LG로부터 자금을 회수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LG에서는 500억원 손실 소버린은 SK㈜에서 8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올린 것과 달리 LG 투자에서는 오히려 손실을 봤다.㈜LG 주식거래를 통해 513억원의 차익을 올렸지만 LG전자 주식 거래로는 1015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전체적으로는 502억원의 손실을 본 셈이다. 소버린이 LG에서 짭짤한 재미를 보지 못한 이유로는 ㈜LG의 경우 구본무 회장과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대주주 지분이 51.49%에 달하고,LG전자도 지주회사인 ㈜LG가 지분 36%를 확보하고 있어 경영권에 도전하기 어려웠던 점을 꼽는다. 대주주의 지분이 적어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SK㈜와 달리 지주사 체제인 LG에서는 ‘소버린의 수법’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버린이 남긴 것도 적지 않다. 일부 외국계 언론과 투자기관은 소버린이 한국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노력한 ‘공로자’로 평하기도 한다. 또 업계에서는 일련의 ‘소버린 사태’를 교훈삼아 국내 주요 기업들이 지배구조 투명성과 배당 성향을 높여 국내외 우호 주주를 늘리는 방식으로 경영권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삭막한 세상 구원은 없는가?

    이남희(47)의 장편소설 ‘세상의 친절’(문이당)이 보여주는 세상은 제목과 달리 전혀 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비정하고, 살벌한 풍경들로 넘쳐난다. 이는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에/너희는 발가벗은 아이로 태어났다’로 시작해서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을/너흰 온통 딱지와 흠집에 뒤덮여 떠나간다/두 줌의 흙이 던져질 때는/거의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했었다’로 끝나는 브레히트의 시 ‘세상의 친절’이 전하는 섬뜩한 현실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 한가닥 위안이나 작은 희망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삭막한 세상에 대한 직시(直視)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기간제 교사 승재와 그를 흠모하는 여고생 유리. 승재는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했고, 학창시절엔 성적인 폭력으로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겪었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불행한 성장과정은 그에게 지킬박사와 하이드같은 이중 자아를 갖게 했다. 유리 역시 암투병 중인 아버지와 바람난 엄마 사이에서 소외된 존재다. 유리는 신도시 학교로 전학온 첫날 승재가 자신에게 보였던 사소한 친절에 감동해 그를 흠모하게 된다. 우연히 승재의 뒤를 밟게 된 유리는 점점 그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간다. 하지만 유리의 친절은 승재가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미수사건의 범인임을 증명하는 단서가 되고, 승재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결국 목을 맨다. 미로같은 세상에서 구원의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랭보의 시구를 인용한 작가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그러나 도움의 손길같은 것은 없다. 새로운 시간이란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엄정한 것이다.’ 1986년 ‘여성동아’ 장편공모에 ‘저 석양빛’이 당선돼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는 ‘사십세’‘플라스틱 섹스’‘황홀’등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이면의 황폐화된 인간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90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시론] 부동산 대책,그 뒤가 중요하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시론] 부동산 대책,그 뒤가 중요하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부동산 시장 안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만큼은 놀랄 만하다. 어지간하면 시장의 힘에 두 손을 들만도 한데, 그 수많은 부동산 대책이 시장 앞에 맥을 못 추면서도, 그럴 때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는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투기와의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인지, 또한 그 끝에서의 승리자가 누가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정부가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8월말 내놓기로 되어 있는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 종합대책, 그 내용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예측하고 있다. 다시 말해 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유 재산권이라는 절대 불가침의 큰 틀을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시장 안정 대책이라기보다는 투기억제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투기를 잡자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실수요자와 투기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부동산 거래의 실명제가 확립되어야 하며, 실거래 가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허점을 이용한 투기 양상이 근절될 수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시장 투명성은 보장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 정부가 발표할 부동산 대책도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투기가 근절되고 시장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미시적인 대책과 더불어,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다른 경제 정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시중 부동 자금이 어떤 식으로든 흡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과도한 유동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작년 하반기에 발표된 정부의 종합투자계획 중 투기를 유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재고해 보아야 한다. 이 계획의 주된 내용들이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행정중심 복합 도시 이전, 기업도시 육성 등 건설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정책은 불과 1∼2년 전만 해도 수도권에 국한되었던 부동산 투기 현상을 지방으로 확산시켰다는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8월말 발표될 예정인 정부의 대책에 이러한 큰 부분까지 고려된 정책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중 자금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저금리 기조를 포기해야 하는데 이는 그나마 미약한 경기 분위기를 망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건설 경기의 무리한 부양을 멈춘다는 것은 최근 내수의 유일한 성장축인 건설 투자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동산 투기 억제와 단기적 경기 회복 그 어느 것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만약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경제 정책을 포함한 모든 정책들 중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면, 이번 8월에 발표되는 투기 억제책 그 이후의 다른 경제 정책들의 뒷받침이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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