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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춘… 마음속 잔설은 차갑지만(박갑천 칼럼)

    가벼운/기침에도/허리가 울리더니/엊그제/마파람엔/능금도 바람이 들겠다/저/노곤한 햇볕에/등이 근지러울 곤충처럼/나도/맨발로 토방 아랠/살그머니 내려가고 싶다/“남풍이 ×m의 속도로 불고/곳에 따라서는 한때 눈 또는 비가 내리겠습니다” (노장)가 생각했던 ‘근원으로의 회귀’가 그의 시정신이었다는(평론가 김우정) 신석정 시인의 ‘입춘’전문이다.유난히도 많은 눈을 흩뿌린 올 겨울이었지만 “겨울이오면 봄은 멀지않아”(셸리의‘서풍에 부치는 노래’)다가와버린 입춘.설사 눈발이 날린다해도 “맨발로 토방아래를 살그머니 내려가고 싶어질”만큼 계절은 봄을 가까이 불러들였다.땅속움들도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것이리라.그같은 꿈틀거림을 보게 된다는데서 ‘보다’(현)의 이름꼴(명사형)‘봄’이 ‘봄’(춘)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최창렬) 매화향기 속에 햇살은 달착지근해진 듯하나 마음속 응달 잔설위로부는 된바람끝은 차갑다.이른바 IMF한파라는것 때문인가.이런걸 이르면서 춘래불사춘­봄은 왔으되 봄같지 않다고 했던 모양이다.이글귀는 왕소군을 두고 지은 시속에 나온다.왕소군은 전한 원제때 궁녀로 절세의 미인이었는데 흉노와의 화친정책에 따라 흉노왕에게 시집가게 되자 뜻있는 이가 그불운을 노래했던것.“그 오랑캐땅엔 풀과꽃이 없으니/봄이와도 봄같지 않다”면서.오늘의 우리들 마음속 입춘도 “남풍이 ×m속도로 불지”않아 싱겅싱겅하다. 어느봄날 영의정 채제공이 말을 타고가다가 어떤집 대문에 쓰인 ‘입춘대길’ 춘련을 보고 발길을 멈춘다.그는 그집으로 들어갔다.집주인인 참판 김로경은 잠시 우두망찰한다.아무 기별도 없이 정승이 찾아들었기 때문이다.더구나 당색도 달랐던 터.채정승은 글씨에 끌렸던 것이다.그춘련을 쓴사람은 나중에 천하명필로 되는 그집아들 추사 김정희.그때 일곱살이었다.채정승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지금은 거의 볼수없게 됐지만 지난날엔 그와같이 입춘이면 춘련을 써붙였다.복은 들고 액은 나가란 뜻을 담고서.여러 글귀가 있지만 올해는 다음과 같은 대련을 썼으면싶다.‘소지황김출 개문백복래’(뜰을쓰니 황금이나오고 문을여니 백복이 오는도다)
  • 은둔…유랑…출가 일본의‘방랑문학’/고대 김충영 교수 연구서 펴내

    ◎사이교 등 대표적 3인 삶과 작품세계 일본 고전문학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문인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불교적 무상관에서 출발한 은둔생활을 했거나 아예불교에 귀의해 평생을 출가생활로 보낸 사실을 알 수 있다.특히 헤이안(평안)시대 말기부터 중세에 걸쳐서는 전란이 끊이지 않아 불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이러한 세태 속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문인들은 시대적 유행처럼 출가의 길로 향했다.일본 고전 문학사의 두드러진 흐름 가운데 하나인 ‘방랑문학’의세계를 본격적으로 고찰한 연구서 ‘일본 고전의 방랑문학’(고려대학교 출판부)가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지은이는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김충영 교수. 이 책은 일본 고전문학사상 방랑문학을 대표하는 사이교(서행),제아미(세아미),바쇼(파초) 등 3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다.1118년 호족급의 무사집안에서 태어난 사이교는 표박(표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23세때 속세를 버리고 출가해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평생을 떠돌이 생활로 보낸 방랑 문인이었다. 흔히 ‘꽃과 달의 가인’으로 불리는 사이교는 곳곳을 떠돌며 꽃과 달을 소재로 한 수많은 와카(화가)를 읊었다.와카는 5·7·5·7·7의 5구31음을 정형으로 하는 일본 고유의 시.일본 고전문학에 나오는 ‘꽃’이란 말은 대개 ‘벚꽃’을 가리킨다.이것은 중고시대 중기 이후 궁정의귀족들이 매화 대신 벚꽃을 유달리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경향이다. 제아미는 일본 중세의 무로마치(실정) 초기에 활약했던 문인이자 예능인.일본이 자랑하는 전통예능인 노(능)의 대가인 그는 시인이라기 보다는 극작가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그는 노의 연기자였을 뿐 아니라 노의 대본인 요쿄쿠(요곡)의 작자였다.제아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도심과 집심 사이에서 갈등하며 방황하는 정신적 유랑자가 많다.한 예로 그의 대표작인 ‘이즈츠(정통)’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주인공으로 한 이른바 ‘무겐노(몽환능)’로 오늘날 일본의 노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이즈츠는 대부분의 ‘무겐노’가 그렇듯이 전장과 후장의 이장구성으로 되어있다. 바쇼(1644∼1694)는 5·7·5의 3구 17음으로 운율이 정해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인 하이쿠(배귀)를 대성시킨 시인이다.일본의 근세를 대표하는 문인 가운데 한 명인 그는 사이교의 행적을 흠모해 일생을 유랑생활로 보냈다.일본의 근세는 일본 문학사상 중세와 근대 사이를 구분해 일컫는 말로 에도시대로도 불린다.바쇼에게 담석증이란 지병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하지만 그는 하이쿠가 좋아 방방곳곳을 떠돌며 자연을 읊었다.바쇼는 47세때 교토 북동쪽에 있는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호(비파호)서안에 위치한 가타다(견전) 근처를 여행했다.다음은 이때 남긴 구(귀).[병든 기러기/밤 추위에 떨어져/객지잠인가] 자신을 병든 기러기에 비유한 대목이 늦가을이란 계절의 처량함과 어우러져 객수를 더해준다.
  • 시화호 배수갑문 개방/보트낚시 2명 실종

    2일 하오 4시쯤 경기도 안산시 대부북동 1848 시화호 배수갑문 앞 바다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낚시를 하던 장영환(34·공무원·광명시 하안동),김용원씨(37·시흥시 매화동) 등 2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사고는 한국수자원공사와 농어촌진흥공사가 밀물 때를 맞아 바닷물을 호수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문을 개방하면서 일어났다.
  • 우리 향수(외언내언)

    최근의 향수들은 의상디자이너들이 만든 랑뱅의 아르페지,파투의 조이,코코 샤넬의 샤넬 No5 등이 아직도 향수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가장 양질의 장미유 1파운드(450g)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1백22만 5천송이의 장미가 필요하다.또한 약 1의 순수한 자스민 오일을 뽑으려면 790㎏의 꽃더미가 소요된다.언제부턴가 향수는 패션을 완성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제4의 패션’으로 군림하게 되었고 뭇 선남선녀들은 향수사용을 ‘액체 다이아몬드’로서 선호하게 되었다.화장기없이 갓 세수한 모습이 신선하다는 표현은 옛말이 돼버렸다. 이제 향수는 독특한 개성과 특성의 표현이다.어떤 이들은 장미향기만을,어떤 사람은 라일락향기를 우기기도 하지만 그것도 발전되어 여름에는 상쾌하고 시원한 향을,겨울에는 포근하고 달콤한 향을,파티장소에서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아쿠아 디 지오’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달리시므’,크리스천 디오르의 ‘탕드르 프와종’을 선택하고 날씨가 차가워지자 랭커스터 그룹의 ‘니코스’를 찾고 있다.청소년들은 지방시의 ‘프티상봉’ 향수주머니를 차고 다니는가 하면 나만의 향을 갖기 위한 ‘맞춤 향수’도 있다. 우리도 우리만의 고유향기가 있어왔다.우리의 향은 일찍이 매화의 그윽한 암향이며 이른 새벽 연못에서 전해져오는 연꽃의 문향,안방 문갑에 올려놓은 난초향과 국화 창포 원추리의 꽃이나 꽃대를 말려 베갯속에 넣는 침향 등이 그것이다.지난 94년,제주의 감귤꽃과 유채꽃에서 추출한 향수가 국내 향수 1호로 등장하긴 했지만 이는 차별화 전략으로 제주에서만 판매된 상태다.이번에 전남 구례군이 지리산의 야생화중 가장 향기가 좋은 옥잠화와 원추리꽃 등에서 향기를 뽑아낸 향수를 개발,우리만의 한국적인 향기를 맡을수 있게 됐다니 여간 반갑지 않다.국내화장품시장은 수입품을 포함해서 연간 1천2백억원 규모.그중에서 국산 향수는 5백50억원을 차지한다지만 미국에서의 연간 10억달러에 비하면 턱없는 숫자다.외국향수들의 진하고 야한 향기를 뚫고 풀숲사이에 핀 야생화같은 향기로 전세계 시장을 구석구석 장악하고 차제에 요즘의 혼탁한 우리 세태에도 싱그러운향기를 뿜어줬으면 좋겠다.
  • 본사 김인철 기자 환경부 생태조사단과 인제군 대암산 ‘용늪’가다

    ◎희귀식물 112종 서식… 습지식물의 보고/해발 1,200m·넓이 7천여㎡… 보호습지1호 등록/끈끈이주걱·물매화·금강초롱·민물조개 등 확인 환경부가 지정한 특정식물인 끈끈이주걱과 비로용담 물매화 솔체꽃 동의나물…. 국내 유일의 고층 습원인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용늪은 습지식물의 보고임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95년 환경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용늪에는 습지식물 22종을 비롯,112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환경부 생태조사단이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대암산(1304m)을 찾은 지난 10일 정상 아래 1천2백여m 고지에 펼쳐진 7천490㎡의 용늪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오늘처럼 연중 1백70여일동안 안개가 끼면서 물기가 땅에 스며들고 이로 인한 수압으로 바위가 갈라지면서 천연습지가 생성됐습니다.또 강산성의 물때문에 제대로 썩지 못한 식물 등이 4천1백여년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겹겹이 쌓이면서 습지 지하에 적갈색 퇴적물인 이탄층이 최고 1백80㎝ 두께로 형성돼 있습니다” 조사단과 동행한 충북대 과학교육과강상준 교수의 설명이다. 늪 중앙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전형적인 습지식물인 물매화가 곳곳에서 5장의 단아한 흰색 꽂잎을 자랑하며 조사단을 반겼다. 지난 7월 람사협약(습지보전국제협약)에 가입하면서 보호습지 1호로 등록한 대암산 용늪에는 희귀식물인 대암사초 산사초 가는오이풀 등 습원식물이 흙과 뒤엉켜 생성된 사초기둥이 밭이랑처럼 펼쳐져 있었다.바닥에는 발목이 빠질 만큼 물기를 머금은 스폰지형 물이끼가 촘촘히 깔려 있었다. 늪 한복판에 이르러 늪을 뒤덮고 있는 사초더미를 손으로 가르자 환경부 지정 특정식물인 끈끈이주걱과 북통발이 얼굴을 내밀었다.이들은 빈영양상태의 습지에 살면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로 용늪이 가치를 높여주는 대표적인 희귀식물이다. 이어 또다른 사초더미를 헤치자 이번에는 치마모양의 잎새를 한 처녀치마와 연자주색의 꽂망울을 머금은 비로용담(환경부 지정 희귀식물)이 뒤질새라 모습을 드러냈고 환경부지정 특정식물인 동의나물과 솔체꽂을 비롯,가는 오이풀,자주 가는 오이풀,감자개발나물 등 전형적인 습지식물이 주변 곳곳에서 확인됐다. 용늪 가장자리및 늪 중앙 일부지역에서는 고원식물로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금강초롱을 비롯해 투구꽃 지리강할 칼잎용담 등 다양한 식물이 눈에 띄었다. “귀중한 고산식물인 칼잎용담 금강초롱 등을 포함,철쭉나무 등이 늪의 일부지역에서 심심치않게 발견되는 것은 늪이 육지화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용늪은 본래 큰 용늪과 작은 용늪 두개로 나눠져 있었다.하지만 큰 용늪보다 40m 위쪽에 있었던 작은 용늪은 도로건설로 인한 토사유입으로 이미 잡목이 우거진 숲으로 바뀌어 버렸다. 강교수는 “67년에 처음으로 발견된 대암산 용늪은 77년 관할 군부대에서 늪 중앙에 길이 90m,폭 50m 크기의 스케이트장을 건설하면서 훼손되기 시작해 최근 토사 등의 유입으로 크게 위협받고 있다”면서 “용늪의 건조화및 건지성 식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나무판자로 벽을 만들어 지표수 및 지하수의 유출을 차단,건조한 곳에 물이 닿도록 하는 한편 이탄층이 노출된 일부지역에는 풀을 베어 덮어줘 습지식물의 포자 및 토양의 유출을 막고 온도의 변화를 적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생태조사에서는 도롱뇽과 민물조개 2종,거머리 지렁이 등 몇몇 수서동물이 첫 채집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68년 대학원 재학 시절 용늪을 첫 대면한 이후 30여년동안 수십차례에 걸쳐 용늪을 찾았다는 강교수는 “그동안 용늪에 서식하는 수서동믈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 백제와 소제의 항주(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7)

    ◎서호호반엔 백낙천·소동파의 숨결이/제방 능수버들·복사꽃길 따라 사랑이 움트고/기생시인 소소소무덤에는 젊은연인 발길 이어져 항주는 굳이 문학이 아니어도 중국에선 지상의 낙원으로 불리어 왔다.거기는 서호가 있고 용정차가 있고 항주 비단이 있는가 하면 일찍이 서시를 낳았다. 서호는 1산·2제·3도를 안고 있다.산은 고산,제는 백제와 소제,도는 소영주·호심정·완공돈을 말한다.서호 북에는 비래봉에 영은사·악묘,서호 남에는 전당강에 육화탑이 우뚝서 있다. ○230년간 남송·오월 도읍지 항주는 수려한 산수에 그치지 않는다.정치의 중심으로도 역사를 주도했다.흔히 남송(1127∼1279)의 서울로만 알려졌지만 그보다 앞서 오대때 오월(893∼978)의 서울이었으니,항주의 서울 노릇도 230년을 기록했다.하지만 남송 150년은 북방 이민족과의 대치속에 기형적인 번영을 누렸으니 우리는 그를 편안왕조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땅이 땅이요,사람이 모이는 남중국의 문화성인 만큼 문인도 많았다. 북송때 사단에서 완약파의 집성자요,격률의 창시자로알려진 청진거사 주방언(1057∼1121)을 비롯해 역시 북송때 고산에 은거하여 ‘매화를 아내 삼고 학으로 자식 삼았던 시인’ 임포(967∼1028),그리고 청나라때 시의 해방과 성령을 주장했던 시인이요 이론가였던 원매(1716∼1797),근대의 개량주의 기수로서 사회 비평시를 썼던 시인이요 사상가였던 공자진(1792∼1841) 등이 모두 항주 사람이다. 그럼에도 지금 항주에는 항주의 문인을 기념하기 위한 시설이나 그들의 유적이 많지 많다.고산에 있는 임포의 ‘방학정’과 그 옆의 송나라때 기생시인이던 소소소의 무덤이 고작이다.오히려 항주에서 벼슬을 했거나 항주에서 객거했던 사람들이 그 치적이나 문적을 남기고 있다. 그중에도 당·송 양대를 대표했던 시인 백낙천(772∼846)과 소동파(1037∼1101)가 쌍벽을 이룬다.그들은 시기를 달리한 채 항주에 와서 자사와 지주를 지내며 선정을 베풀고 명작을 남겼다.그들은 항주 사람이 아니면서 항주 관리를 지냈지만 지금 항주의 명승으로 꼽히는 서호에서 한 사람은 동서 1㎞를 가로로 누웠고,한 사람은 남북 2.8㎞를 세로로 누워 있다. 그 동서를 가로지른 복사꽃·버드나무의 방죽을 백제라 한다.세상은 백락천 재임중(822∼824)에 시설했다지만 백제는 본디 백사제.다만 백락천이 재임중 저수와 배수에 공로를 세운지라 그가 이임할 때 항주 시민들이 길을 막고 눈물로 만류했다는 기록이 보인다.특히 백락천의 시 ‘시민의 곁을 떠나며(별주민)’에선 그 정경이 진솔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백락천이 항주를 떠난뒤 그를 기리기 위해 백사제를 백제로 불렀으니 시인을 향한 연모의 정이 이렇게 방죽처럼 단단해진 것이다. 그 남북을 세로로 뻗은 능수버들과 사철 꽃숲의 장막인 소제야말로 소동파가 재임중 서호를 넓히고 그 청결을 위해 서호의 토사를 준설하여 인공 축성한 방제인 것이다. 소제는 여섯 개의 다리를 거느리고 있다.다리마다 경개를 달리하면서 그 시야도 다르다.연꽃인 양 떠있는 섬들을 보면서 숲속을 거닐수 있다.어느새 사랑의 길로 변했지만 봄날 이른 아침 부연 안개속이 제일이란다.그래서 ‘소제춘효’는 서호 10경의 으뜸으로 꼽혔다. 소제가 끝나는 남단에 빨간 창에 하얀 벽의 날듯한 추녀가 더덩실 서있다.거기엔 3m 높이의 화강석 조각으로 소동파가 서 있다.그것만으로도 ‘소동파기념관’임을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청진거사·시인 임포 등 배출 물론 소동파는 송나라 시단의 엄지손가락이다.거기다 항주에서 두번이나 지방장관을 지냈다.한번은 36세때인 1071년에서 74년까지 통판을 지냈고,한번은 54세때인 1089년에서 91년까지 지주를 지냈다.동파는 비록 남방 여러 곳에 유배당하는 불우함을 겪었지만 항주의 재임 5년동안 항주의 재난을 복구하고 수리를 개선하려 소제를 건축,훌륭한 업적과 미담을 남겼다.동파 스스로도 항주를 고향으로 여기면서 서호에 살고 싶다는 감회를 남긴바 있었다. ‘거항적오세,자의본항인.고산귀무가,욕복서호린,’(항주에 오년 살았거늘/스스로 항주사람이라 여기네.고향에는 살 집도 없기로/서호 호반에 깃들고파라.) ○방축끝 소동파기념관 우뚝 지금 항주는 구석마다 동파가 살아 있다.거리에는 ‘동파로’ ‘학사로’의 이름이 있는가 하면 먹거리로‘동파육’ ‘동파어’ 등이 있다.그중에도 항주시청이 1988년,동파 부항 900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이토록 장엄한 기념관을 서호의 남단에 세운 것을 첫 손에 꼽겠다. 그 안에는 동파의 문학과 항주의 치적을 일목요연하게 자료로 전시했는데 특히 명말의 천재화가 팔대산인의 ‘동파조운도’가 인상적이다.조운은 동파가 항주 재임때의 시첩이었다.동파가 항주로부터 다시 유배를 당하자 조운은 죽기로 그를 따르기로 몸부림치다가 드디어 몇년뒤 죽고 말았는데 그 순정을 그린 것이다. 이 밖에 두어가지 문학유적만을 들고 싶다.동파기념관에서 아득히 보이는 작은 섬 ‘호심정’이 있다.그것은 수면에 찰랑거리는 마름이다.때로는 물결에 삼키어져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그 호심정이 이름을 떨친 것은 명말의 대표적인 유미주의 수필가였던 장대(1597∼1676?)가 소흥사람이면서 항주에 객거할 때 쓴 ‘호심정간설’이란 짧은 글이 세상의 사랑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또 하나는 앞에서 말했던 이 고장 출신의 기생 시인 소소소의 무덤이다.서호의 북단,후산으로이어지는 서령교옆에 있다.옛날에는 작은 흙무덤,지금은 날렵한 육각정이 섰다.이름도 ‘모재정’.비록 한낱 노래하는 기생이었지만 그 높은 재주를 기리느라 항주시청이 세워 준 것이다.미색을 기리는 무덤에는 물론 전설이 따랐다.문화혁명 전까지만 해도 항주의 젊은 연인들이 여기 와서 그 흙무덤을 어루만지면 소소소의 영기를 받는다고.그래서 젊은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항주의 시인 용피득씨가 귀띔해 주었다.
  • 임진왜란 당시 무기류 대량발굴/용인 임진산 성터

    ◎조란탄·화살촉 등 포함 경기도박물관(관장 장경호)은 지난 6월4일부터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풍덕천리 산 37 임진산 성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류를 대량 발굴했다고 8일 발표했다.이에 따라 지난 4월 이 지역에서 발견돼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경기도박물관에서 보존처리중인 총통 2점이 당시 사용된 진품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에 발굴된 무기류는 총통에 사용된 총탄인 조란탄을 비롯해 철창과 철칼,매화무늬가 새겨진 칼집의 손칼,총통과 활에 사용된 화살촉 등 당시 전란때 사용된 병기가 일괄적으로 포함돼 있고 진지에 주둔하던 병사들의 청동숟가락과 백자용기가 함께 출토됐다.
  • 멋과 맛 어우러진 일 「정원도시」/시코쿠섬 가가와현 다카마쓰시

    ◎200여년전 조성된 사누키우동의 본고장/세계 최장의 철도겸용 세토대교도 유명 동경,교오도,나라,벳부 등 일본의 유명 관광지를 한번 둘러본 사람이라면 중소도시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괜찮다.다람쥐 쳇바퀴돌듯 명승지를 둘러봐야 한다는 부담감없이 발길 닿는대로 사람들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묘미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시코쿠섬 가가와현의 현청소재지인 다카마쓰시.인구 33만명의 중소도시로 휴양과 관광을 겸한 여정에는 알맞은 곳이다.다듬고 깎는 일본인들의 손길이 도시 전체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깨끗하고 정갈하다.이국적인 체취도 별로 없어 마치 우리나라 시골에 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주변에 볼거리도 많아 적적하지 않다. 시내에 있는 리쓰린(율림)공원은 전형적인 일본 공원이다.밤나무(율)숲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소나무가 대부분이다.100여년간 다듬어져 1745년 완성된 이 공원은 시운산자락의 녹지에 6개의 연못과 13곳의 언덕으로 구성돼 있다.매화,벗꽃,목련,철쭉,창꽃 등 사시사철 피는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학,거북모양을 한 소나무 분재를 만나게 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을 맛볼수 있다.산책로 중간에 있는 다실 기쿠게쓰데이에서는 차를 들며 섬세한 정원기술과 절묘한 공간배치를 음미할수 있다.산책로는 남쪽코스와 북쪽코스 두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1시간30분정도 걸린다.북쪽호수 언덕에서는 공원전체를 한눈에 바라볼수 있어 사진촬영장소로 적격이다. 가가와현은 옛부터 사누키우동이라는 먹거리로 유명하다.중력밀가루와 소금의 절묘한 배분으로 빚어지는 사누키우동은 쫄깃쫄깃하고 차진 맛으로 일품이다.우동의 본고장답게 우동집,우동학교가 1천500여개나 된다.특히 우동학교에서는 손수 우동을 만드는 체험관광을 할수 있다.기술자의 지시에 따라 우동을 직접 제조하고 자신이 만든 우동을 끓여 먹을수 있다. 다카마쓰시의 또하나의 명물은 세토대교.다카마쓰시는 일찌기 일본 본토와 시코쿠섬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해왔는데 지난 88년 이 다리가 개통됨으로써 두 지역은 해로를 거치지 않고 육로로 연결됐다.상층부에는 4차선의도로가,하층부에는 복선식 철로가 있는 이 다리는 길이가 9.4㎞로 도로와 철도 겸용대교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사장교,트러스교,적교 등 6개의 다리로 구성돼 있으며 건설비만 1조1천200억엔이 들었다. 다리 중앙에는 세토대교 기념관이 있어 세토대교 건설과 관련된 내력을 알수 있다.세토대교 주변을 순항하는 유람선도 운행되고 있어 선상 관광을 즐길수 있다. 자녀를 동반한 관광객은 레오마파크를 찾는 것도 좋다.서울랜드처럼 어린이나 어른이 함께 즐길수 있는 놀이공원으로 공간배치도 넉넉하게 돼 있어 여유있게 즐길수 있다.69만㎡의 광대한 지역에 유람버스,우주여행을 체험할수 있는 제트 코스터,회전목마 등의 놀이시설과 이슬람사원,태국의 사원,네팔 왕국의 사원 등 아시아 각국의 유적이 실물 크기로 전시돼 있다. 가가와현 야마모토 토시히로 관광진흥과장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항과 시오노에 온천 등 관광지에 한글로 된 관광안내 책자를 비치해 놓았다』며 『특히 가가와현 사람들은 옛날부터 인정이많기로 널리 알려져 외국인 관광객들을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과 다카마쓰까지는 비행기로 90분이 걸린다.아시아나가 주 3회 운항한다.국내에서는 온누리여행사가 패키지 투어를 실시하고 있다.
  •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문연다

    ◎「희원」 23일 개원식… 24일부터 일반에 공개/석단·정자·연못·담장 옛 지형 그대로 복원 경기도 용인에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사설미술관인 호암미술관이 전통정원 「희원」을 마련,오는 23일 개원식을 가진뒤 24일부터 일반에게 공개한다. 1년간의 공사끝에 모습을 드러낸 「희원」은 우리의 옛 지형을 복원,석단과 정자·연못·담장 등 한국 전통정원의 멋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게 특징.2만평의 대지위에 호암미술관이 수집해 온 신라시대 석탑을 비롯,이름없는 석공들이 만들어낸 불상,벅수,석등 등 석조물이 배치되는 것과 함께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등 4군자와 자생 화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꾸며졌다. 바깥마당과 죽림,간정,소원,주정,객정,전통찻집,전시마당,후원 등으로 꾸며져 이 가운데 죽림과 주정,후원,소원 등에 각각 석물이 34점,51점,26점,12점이 전시되고 전시마당과 간정,전통찻집 주변 등에도 미술관 소장품들이 놓여지게 된다. 울창한 대나무 숲인 죽림은 소원으로로 이어지면서 벅수들의 정겨운 표정이 찾는 이들을 맞게 되며 호암미술관앞 중앙에 자리잡은 1천200여평의 넓은 마당인 주정에는 120평 규모의 연못과 함께 이 미술관의 주요 소장 석조물들이 전시돼 있다.이와 함께 미술관 전면에 펼쳐진 500여평의 잔디 전시마당은 전시와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며 후원은 미술관의 옆면과 뒷면을 차지해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서 있다.
  • 화분증/김남선 영동한의원 원장(전문의 건강칼럼)

    ◎알레르기 초기엔 재채기·코막힘·눈충혈 등 증상/공기오염·스트레스·황사 등 알레르기 증가 요인 목련꽃 봉오리인 신이화는 화분증으로 인한 코막힘을 뚫어주는데 효험이 있다.꽃으로 꽃가루 알레르기 비염인 화분증을 치료한다니 참 역설적이다.신이를 단방으로 달여서 먹여도 효과가 좋지만 소청룡탕에 넣어 쓰면 더욱 탁월한 효과가 있다. 매년 4,5월은 꽃가루 알레르기,즉 화분증 환자가 급증하는 계절이다.이웃나라 일본도 매화가 만발하는 이맘때쯤이면 매화와 삼나무등 꽃가루로 인한 화분증환자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10여년 동안 화분증은 해마다 증가추세라고 보고된 바 있다.폭발적인 자동차의 증가와 이 맘때면 중국으로부터 날아오는 중금속이 섞인 황사도 한몫 한다.또 쇠고기나 돼지고기등 육류나 우유,유제품을 낳이 섭취하게 된 식생활 서구화도 우리 몸을 각종 알레르기를 일으키기 쉬운 체질로 변화시킨다.스트레스도 알레르기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코알레르기나 화분증이 있는 사람은 육류나 유제품의 섭취를 절제하는 것이 좋다.일단 꽃가루알레르기가 시작되면 재채기 콧물과 코막힘,코점막의 가려움증과 눈결막의 충혈과 눈물 눈꼽이 많이 생긴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해지면 코증상 뿐 아니라 기침,가래,호흡곤란 등 기관지 천식의 증상도 일으키는데 이런한 천식을 화분천식으로 부른다.심할때에는 얼굴 피부가 짓무르고 부어오르는 것 외에 두통과 집중력저하 무기력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화분증은 유난히 20대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고 있어 여성호르몬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그러나 요즘은 중.고등학교와 초등학교 어린이들에도 늘고 있다. 화분증을 예방하려면 꽃가루가 많이 날리는 건조하고 바람이 많은 날에는 외출을 삼가고 부득이 나가야 할 때는 마스크를 하거나 안경,모자 등을 써야 한다.평소 화분증이 있는 사람은 소청룡탕에 신이화를 넣어 증상이 있기 전에 미리 복용하는 것도 좋은 예방법이다.
  • 판소리 고수 정화영(이세기의 인물탐구:128)

    ◎구전심수로 익힌 북가락의 명인/“북채만 잡으면 신명” 타고난 「끼」로 연마적공/현란한 장단으로 판소리 애로희락 다스려 창자가 무대에 나와 절을 하고 선창에 들어서기전에 정화영 고수는 벌써 ‘구궁딱’,각을 때리고 손으로 궁편을 치면서 창자의 창을 이끌어내려는 전조를 보인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분명코 봄이로구나’ 이렇게 ‘사철가’가 시작되면 고수의 손놀림은 눈부시게 분주해져서 북채로 매화점이나 소점 대점을 찍고 북의 몸체인 손궁편을 막아치면서 ‘얼쑤’ ‘좋구나’‘좋지’ 입추임새로 박자를 넣기도 한다. 또 창자의 노래가 서름에 복바쳐오를 것을 짐작하여 손으로 궁을 치고 동시에 북채를 굴려서 ‘궁따라딱’ 잔가락치기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전국국악경연서 장원 신명이 솟을때의 번개같은 손놀림은 마파람에 나부끼는 어지러운 갈대인듯 애로희락을 다스리고 흥과 신명을 자재로 고조시킨다. 그런중에도 창자를 능가하기 보다 연주자의 호흡과 음절에 귀를 모아 채편으로 찍고 치고 손으로 밀고 당긴다. 판소리에서북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첫째가 북치는 사람이고 다음이 소리하는 사람’이라는 ‘일고수 이명창’이란 말로 짐작할수 있다. 또 ‘창자는 꽃이고 고수는 나비’라는 말도 있다. 춤장단이나 악기연주도 그렇지만 판소리는 특히나 북장단이 받쳐주지 않으면 변화무쌍한 극적인 음악성을 온전하게 살릴수가 없게 된다. 아무리 절세의 명창이라도 고수의 한순간의 실수가 명성을 살리거나 무너뜨릴수도 있다. 그와 오랜 연주파트너인 가야금의 황병기 교수(이대)는 ‘정화영은 구전심수로 소리북을 익혀온 명고수’로써 ‘우리 전통국악계의 마지막 세대’라고 들려준다. 가난과 천대와 따돌림속에서도 오로지 ‘끼’하나로 버텨온 ‘당대 명인’이라 했다. 물론 그는 예맥으로 대를 잇는 다른 국악인들과는 다르다. 경기도 화성에서 ‘예술’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농가에 태어났으나 농악대가 동네에 들어오면 하루종일 집을 나가 어깨춤을 추면서 따라다녔고 냄비바닥을 쇠젓가락으로 두들기다가 어른들에게 들켜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장구든 북이든 북채를 잡기만하면 신바람나는 장단을 만들어내는 ‘타고난 북잡이 기질’이 아닐수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후 서울로 이사하자 학교공부대신 여성국극단에 미쳐 동양극장이나 계림극장 주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 영천에 살던 서용석씨에게 대금을 배우면서 ‘김’소리가 날까말까한 정도에서 ‘눈썰미가 있다’면서 스승은 명창 박초월문하에 들여보내 주었다. 그때만해도 악기하는 이가 드믄 편이었다. 그는 박명창의 연습반주를 거들다가 17살되던 해 낭자국악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전국을 떠도는 공연으로 평생소원이던 광대의 길에 들어섰다. 21살때 광주예술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금으로 장원, 새파란 젊은이가 ‘대금을 잘 분다’고 해서 원로들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면서 ‘파릇젓대’란 별명으로 활동했다. 춥고 배고픈 유랑생활에서도 그 무렵에 만난 이정업 신용수씨에게 북과 장구장단을 다시 배웠고 한 공연에서 대금을 불고 춤장단 판소리장단을 치는 일인다역의 존재가 되어갔다. 여성국극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이번엔 옥류장이며 대하 청운각 등 요정을 전전하다가 기약없는 유랑생활을 끝내고 78년 뒤늦게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여기서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고법예능보유자인 김동준씨를 만나 직계후계자가 되었고 ‘국악이 한낱 천대받는 예술이 아닌,우리만의 자랑스러운 고유음악’이란 자부심으로 밤을 낮삼아 연마적공을 쌓아 나갔다. 느리고 완만한 진양조,의연하고 안정된 중모리,긴박감으로 몰아치는 자진모리 휘모리, 10분의 8박이 한 악절을 이루는 엇모리에 이르기까지 원형장단 변형장단을 고루 섭렵하고 창자나 연주자의 몸짓하나에서 일장일단을 읽어내는 귀신같은 섬세함을 익힐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84년 국립극장마당에서 열린 ‘수궁가’완창공연에서 스승인 김동준과 번갈아 장단을 맡았을때 15일간이나 계속되는 장기공연에다 완창 5시간이 그로선 견딜수 없었으나 스승은 한결같이 지치는 빛없이 신명을 올리는 것이 하두 신기하여 “선생님께서는 허구헌날 같은 공연이 지루하지도 않으시냐”고 물은 적이 있다. 스승은 제자의 질문에 얼핏 일별하고는 “그건 시간이지나야만 알게 될걸세”했고 10년이 지난후 가사한마디 음하나하나가 제대로 귀에 잡히기 시작하여 언제부턴가 다섯시간,열 시간공연도 무아경의 열락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게 되었다. 북가락은 일정한 공식이 정해져 있지 않고 고수마다 다르게 칠뿐 아니라 같은 고수라도 그날의 기분따라 그때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소리속을 무르익게 터득하면서 비로소 스승과 같은 훌륭한 인간문화재가 될 것을 목표로 정했으나 두 손과 머리와 발끝까지도 전신이 장단에 실리는 경지를 바라보고 있을때 ‘하늘같은 스승’은 타계하고 말았다.3년의 전수과정중 1년을 채우지 못해 인간문화재는 커녕 전수조교의 자격마저 박탈당한 처지다. 손으로 울림을 막아치기도 하고 북채로 엄지점 임지점을 맺고 찍고 굴려치면서 ‘궁당궁 당구당’,현란한 그의 장단에 실리다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 무상한 열반이 깃드는 것을 절로 실감하게 된다. ○「판소리 북연주법」 출간 오죽하면 원로 성경린씨가 ‘그의 북은 장단마다 신기가 붙어 가락이란 가락은 장단에 녹아든다’고 평한다.불우한 방랑생활로 결혼도 사별이나 이별로 실패한 경험이 있고 지금은 약사인 부인 문윤옥씨(52)의 극진한 내조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자녀는 1남2녀. 그는 1년이면 서너차례씩 외국연주,가르치고 주관이 되고 솔선하는 위치에서 ‘북에관한 저서가 전무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판소리 북연주법’을 출간했고 지난 90년에는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제에서 ‘대금산조’ 독주와 오정숙 명인의 ‘심봉사 눈뜨는 장면’의 장단을 맡아 ‘신명이 절로 놀고 생명이 넘치는 북가락’으로 북쪽 관객의 가슴을 녹였다. 그의 장단은 소점이나 매화점을 잔가락치기로 때리거나 손궁과 북채로 합궁 겹궁을 달고 풀다가 일단락을 끝맺을 때의 합박은 ‘궁’소리와 함께 창자의 흥을 서서히 잠재우고 관객의 심장에는 싱싱한 고동을 울려준다. 북을 치면 먼저 북이 알고 ‘북이 소리를 타는 가운데’ 이제 그의 예술은 ‘절대조화’를 뛰어넘어 풍상을 견디는 무극의 경지에서 언젠가 통천하는 시기를 바라보고 있다. □연보 ▲43년 경기도 화성 출생. ▲57년중앙국악예술학원 졸업. ▲60년 박초월 문하 사사후 낭자국악단임단,서용석씨에게 대금사사. ▲78년 국립창극단 입단. ▲78­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김동준판소리고법 사사. ▲78­82년 한국국악협회 고수분과원원장,이사. ▲80년 민속합주단 ‘우리가락 마당’창설 대표. ▲81­84년 ‘우리가락 마당’ 기악발표회 3차례.(세실극장.국립극장,드라마센터). ▲81­현재 국립창극단 ‘박씨전’‘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등 고수 및 대금연주. ▲84년 광주예술제전국국악경연대회장원(대금). ▲84­86년 중앙대 음대 한국음악과 고법강사. ▲85­93년 국립창극단 기악부 악장. ▲85년 ‘춘향전’완창창극(창자 오정숙) 고수(국립극장). ▲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제참가연주. ▲89­93년 단국대 음대 국악과 고법강사. ▲89년 영국 ‘세계민속의 소리’ 심포지움 한국대표. ▲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 한국예술단으로 북한연주(평양 2·8회관) 대금독주 및 오정숙의 ‘심청가’ 고수. ▲90­9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고법김동준전수소 개설운영조교,국립창극단 ‘춘향전’대만연주 고수,미국연주,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주. ▲91년 정화영 판소리고법발표회(국립극장대극장),UN가입 경축사절단미국 카네기홀 공연. ▲93­96년 한국문화통신사 일본 NHK연주 및 핀란드 쿠오모음악제,화란음악제 UN참전용사 기념비 제막식, 네덜란드 전통음악제 등에 안숙선과 동행연주. ▲94­95년 전주대사습전국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 〈저서〉‘판소리 북연주법’ 〈수상〉KBS국악대상(85년),신라문화제대통령상(대금,87년),국악의해 국악보급 공로상(94년)
  • ‘국문학의 원형’ 설화문학 총서 내/김동주씨

    ◎고전 53권서 주제별 뽑아 한국문학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설화문학을 집대성한 총서가 발간됐다.중견 한학자 김동주씨(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는 설화문학 고전적 53책에서 애정,우정·우애,충효·적선보은,풍수지리,일화 등 주제에 따라 이야기를 가려 뽑은 「설화문학총서」(전10권)를 기획,1차로 5권을 펴냈다. 우리 민족은 옛부터 이야기를 즐겨 많은 신화와 전설,민담 등이 전해 내려온다.이 이야기들은 구전되는 구비설화와 필전되는 문헌설화로 나뉘어지며,15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동안 적잖은 설화집들이 편찬됐다.그러나 설화문학은 일반적으로 야담이라 일컬어지며 저속한 읽을거리로만 인식돼 이에 대한 연구나 정리는 미흡했던 것이 학계의 실정. 이번에 설화집들을 분류·번역해 총서로 꾸민 김위원은 『설화문학은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사회·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며 『숨겨진 우리 문학의 발굴이야말로 새로운 민족문학의 텃밭을 일굴 수 있는 귀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총서발간의 의의를 밝혔다. 이번에 나온 5권의 책은 애정편인 제1권 「밝은 달아 수놓은 베개를 엿보지 말아다오」·제2권 「밤바람아 무슨 일로 비단 휘장을 걷느냐」·제3권 「매화는 피리소리에 취하여 향기롭구나」,우정·우애편인 제4권 「사립문 앞에서 친구를 맞아오네」,충효·적선보은편인 제5권 「남아가 한번 눈물을 훔친 뜻은」 등.대부분 권선징악을 강조한 내용으로 우리 민족의 알려지지 않은 생활상을 엿볼수 있다.이들 설화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대소설과 이야기구조를 같이 하는 작품들도 꽤 많다.의리와 정절을 지킨 여성의 이야기인 「춘향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숱하게 발견되며 충효편에는 「심청전」과 닮은 이야기도 있다. 한국문학의 뿌리인 설화문학을 집대성한 「설화문학총서」.
  • 지리산 끝자락 「구례 5일장」/청정 약초·산나물의 장터

    ◎「지리산으로 먹고사는 이들」의 삶의 터전/“식물의 보고” 우슬·인동초 등 약초 수두룩/「팔뚝만한」 더덕 한뿌리 2∼3만원선 거래 지리산 서남쪽자락에 위치한 전남 구례는 예로부터 「지리산으로 먹고 사는」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지역주민 대부분이 지리산에서 나오는 약초·산나물 등 청정 농산물과 임산물을 팔아 생계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구례읍에 위치한 「구례 5일시장」.이곳에는 봄철인 요즘 장날이면 새싹을 갓 틔운 약초와 산나물·야생화를 광주리에 듬북 담아 시장바닥에 줄지어 앉은 아낙네들과 이를 사려는 사람들의 흥정으로 시골시장 정취가 물씬 풍긴다. 장이 서는 3일과 8일이면 좌판을 벌이는 사람만도 60∼70명에 이른다.대부분 지리산을 터전으로 평생을 살아온 아낙네와 할머니들이다. 장터는 화엄사와 피아골에서 구례온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장터 아래쪽에는 채소만 취급하는 채전이 있고 이 중간에 「광주리 좌판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여느 장터에서는 찾기 힘든 각종 지리산 약초와 산나물·야생화등 없는 것이 없을 정도.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산채와 약초는 대략 10여가지이며 야생화도 50여종이 넘는다. 시장에서 좌판을 벌이는 정순분 할머니(65)는 『봄이 되면서 무공해 약초 등을 구하려고 서울과 광주 등지에서 온 구매객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정할머니는 이곳에서 팔리는 것들은 전부가 주민들이 직접 캔 「진짜」 약초라고 전한다. 특히 무공해 건강식품인 자연산 토종만을 고집하는 풍토가 확산되면서 이곳을 찾는 발길은 더 잦아졌다. 최근들어 지리산 산동온천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관광을 겸해 찾는 외래객들이 더욱 많아졌다. 지리산에는 한반도에서 생장하는 식물의 30%인 1천323종이 분포,「식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지리산이란 이름이 들어간 식물만도 23종에 이르고 이곳에서만 자라는 희귀식물은 무려 107종이다. 이곳에서 주로 팔려 나가는 것은 청정 산나물.지역 주민들이 직접 캔 것들로 고사리와 취나물·고들빼기·두릅 등이 주종을 이룬다.사람 손으로 키운 것과는 다른,사실상 약초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장 아낙네들은 자신만이 아는 군락지에서 산나물을 채취,광주리에 담아 나온다.그래서 믿고 살 수 있다. 최근에는 이곳 청정 산나물의 소문이 퍼지면서 대도시 주부들이 몰려들어 몽땅 사가기도 한다.점심먹고 늦게 가면 벌써 장이 파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 산나물은 도회지 시장에 나오는 것과는 종류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코언저리에서 휘감겨 도는 향기는 풋풋하고도 진해 어느 지역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또 윤기가 나거나 겉이 매끄럽지는 않다.그러나 한두번 사본 주부들은 단박에 알아보고 다시 찾는다. 들판에서 갓 뜯어온 쑥과 불미나리·쑥갓·방아잎도 시장 곳곳에 나와 좌판을 풍성하게 한다.한손에 쥘 수 있는 분량이 1천∼2천원선에 거래된다. 구례읍에서 온 김명숙씨(32)는 『그동안 인근 시장에서 채소를 구입,식탁에 올렸으나 최근에는 이곳만을 이용한다』면서 『풋성귀가 싱싱해 살짝 데치거나,무쳐 먹거나 생선과 함께 요리하면 더없이 좋다』고 말했다. 약초도 다양하게 나와 있다. 신선초·우슬·인동초·오미자·유근피·산수유·당귀·작약·목단·두충·결명자·구기자 등이 주류를 이룬다. 신경통과 두통·요통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상인들은 밝혔다. 종종 산삼에 버금가는 동삼이라는 더덕도 나와 횡재(?)를 할 수 있다.보통 손가락 굵기이지만 10년이상 된 어른 팔뚝만한 것도 나온다.이 정도 크기이면 한뿌리당 2만∼3만원선이면 살 수 있다. 칡 또한 좌판시장의 한 얼굴이다.굵기에서부터 효능과 특징 등이 조금씩 다르지만 지리산 칡이라면 전국 어디서든 상인들이 제값을 준다고 한다. 말린 신선초나 인동초 등도 근당 4천∼5천원에 거래된다. 지리산에서 캔 야생화도 많이 나와 눈길을 끈다.야생화 가운데 화분에서 키울수 있는 것들로,70여종에 이른다. 지리산일대의 독특한 기후조건으로 이곳에서 나는 진달래와 철쭉·매화·동백나무 등은 향기는 물론 꽃이 유난히 짙고 아름답다.때문에 상품가치가 상당히 높다. 척박한 토양에서 뿌리를 박고 살아온 식물이어서 활착력도 좋아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구례군은 최근 민간업체와 합작으로 야생화 55종을 분재용으로 개발,시장과 종묘상 등을 통해 일반인에게 값싸게 보급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특별한 기술이나 요령없이도 기를수 있는 장점이 있고,토종꽃이란 점에서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이른 봄에 꽃이 피는 금낭화·할미꽃·앵초·제비꽃·복수초·윤판나물·동의나물·노루귀·피나물 등이 잘 팔리고 있다.
  • 조선전기 「절매삽병도」 동자(한국인의 얼굴:100)

    ◎매화뜰 쌍뿔머리 두 소년 마음은 꽃보다 딴곳에… 조선왕조는 처음부터 고려사회와 차별화한 다른 모습으로 출발했다.정치의 중심도 고려처럼 귀족이 아니었다.과거와 같은 시험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엘리트집단이 정치 한 가운데 서게 되었다.그리하여 문·무과를 합한 양반정치가 15세기에 이미 뿌리를 내렸다.「경국대전」헌법 비슷한 기준법을 만들어 통치의 기초로 삼은 것도 이 때였다. 조선왕조의 문화 역시 정치 마찬가지로 유교사상을 바탕에 깔았기 때문에 불교사회였던 고려와는 성격이 달랐다.그림의 경우도 불화는 회화과목 중심축에서 멀리 벗어나고 말았다.이 시대가 요구한 그림은 종교화가 아니고,감상적 작품이었다.임금도 그림을 말하게 되었고,그림을 잘 그리는 선비도 나왔다.심지어는 상민계층에서도 화가가 배출되었다.그러니까 예술전반에 유교의 합리적 사고가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러한 시대배경속에서 활동한 화가중에는 강희안(1417∼1464년)이 있다.그의 그림에는 인물이 꽤 등장하는데,그 대표적 그림이 「고사관수도」다.그리고낙관을 하지 않았으나,그의 그림이 분명한 몇개의 작품에도 인물을 그렸다.그 하나가 화가 이름앞에 그렇게 전해온다는 의미에서 전자를 붙여놓은 「절매삽병도」다.매화를 꺾어 병에 꽂는 그림이라는 뜻을 가진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그림은 화제대로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가 어려있다.담장 안쪽 화단에서 자란 매화나무는 제법 나이가 들어 고목이 되었다.사랑채 주인이 부러 모양을 내어서인가,매화나무 등결이 울룩불룩 모질게 자랐다.그래도 가지가 돋고 때가 되어 꽃이 피었다.「청구영언」에 실린 「매화가」의 무대로 다가왔다. 「매화야/옛 등걸에/봄철이 돌아온다」라고 한 노래는 누가 이 그림속에 들어가서 지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에 나오는 인물은 어린 동자가 둘.한 아이는 화단에 들어가 매화를 꺾고 다른 아이는 화단 바깥에서 꽃을 꽂아둘 병을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꽃을 꺾는 아이는 어인 일인지 딴전을 부리고 있다.꽃가지에서 눈길을 뗀채 뜰을 내려다 보면서 슬쩍 웃음을 지었다.뜰에 떨어진 매화 한송이가바람결을 따라 맴도는 것이 우스워서일까….병을 받쳐들고 선 동자도 부동자세를 했지만 눈길은 뜰에 가 있다. 동자 둘은 한창 개구쟁이로 놀만한 나이다.쌍뿔머리를 했으나 더벅머리기는 마찬가지다.화단에 들어간 아이는 갸름한 얼굴을 했다.슬쩍 머금은 웃음에도 장난기가 가득 들었다.그러나 붓을 들어 단번에 찍고 그어 그린 얼굴속의 이목구비만큼은 뚜렷했다.집에서 부리는 아래것들 아이인듯 한데,살만 좀 붙었더라면 잘 생긴 얼굴이다.
  • 제주·여수·하동·구례·사천만/남녘 꽃소식 봄마중 재촉

    ◎노란 유채향기에 신혼여행의 추억을­제주/꽃봉우리째 반기는 동백­여수/매화구름에 신선이 된듯­하동/무리져 피는 산수유 참맛­구례/하늘 가리는 벚꽃 황홀경­사천만 봄바람을 타고 꽃소식이 올라온다.남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하루하루 꽃소식을 북으로 밀어올린다.제주에는 이미 들판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노오란 꽃밭에서 노니는 신혼부부들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남해안 절벽 바위벼랑마다 동백꽃이 선홍빛으로 화사한 매무새를 자랑한다.지리산 자락에는 샛노랗게 피어난 산수유가 별천지를 이루고 섬진강가에는 매화가 황홀경을 연출한다.봄철 꽃놀이의 대표격인 벚꽃도 평년보다 1주일 가량 빨리 필 것이라는 소식이다.이미 제주 서귀포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벚꽃은 벚꽃축제로 유명한 진해에서 이달말쯤 만개해 4월8일쯤 서울까지 북상할 것이란다.한번쯤 일상의 때를 훌훌 털어버리고 꽃소식을 따라서 봄마중을 나가 봄직도 하다.꽃향기를 만끽할 만한 곳 몇군데를 소개해본다. ○일출봉서 보면 진경 ◇제주 유채꽃=제주의 봄은 유채꽃에서 시작된다.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피어나는 유채꽃은 3월 초순에 남제주에서 피기 시작해 5월 초순까지 이어진다.유채꽃은 배추 유채꽃과 토종 유채꽃 두 종류가 있는데 배추 유채꽃은 3월에 피어나지만 토종 유채꽃은 4월 하순에 만개한다.남제주군 송악산·산방산 주변과 성산 일출봉 진입로 일대가 군락지로 유명하다.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유난히 더 노랗고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성산 일출봉에 올라가면 아래쪽의 꽃밭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좋다. ◇여수 동백꽃=반도 남단의 미항 여수에서 7백여m의 다리를 지나 오동도에 이르러 산마루에 서면 여수시의 전경과 한려수도의 수려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고 한잎 한잎 지지 않고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지는 동백이 봄나그네를 반긴다.오동도는 절개를 지켜 바다 바위벼랑에서 떨어져 죽은 어부 아내의 순정이 전해져 오는 곳.섬 둘레로 2㎞에 이르는 산책로는 동백과 해송,대나무 등으로 뒤덮여 아늑한 멋을 풍긴다.오동도 동백은 연등할머니가 승천하는 날인 음력 2월20일쯤 만개해 4월 초순까지 절정을 이룬다.해삼 우럭 등 해산물도 제철을 만나 입맛을 돋구어준다. ◇하동 매화=경남 하동군 섬진강가 섬진마을과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라 일대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매화의 별천지를 이룬다.이 동네에 매화가 과연 몇그루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저 매화가 피면 또 한해 봄이 왔구나 생각하고 꽃이 지면 봄이 가는구나 생각한다.매화가 활짝 피는 때는 3월 하순 열흘 가량에 불과해 꽃을 즐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은게 아쉽다.섬진마을 매화는 마치 뭉게구름을 산자락에 깔아놓은듯 하다. ○4월초까지 꽃세상 ◇구례 산수유=옛부터 「산수유의 땅」으로 이름난 전남 구례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는 온통 샛노랗게 피어난 산수유로 그야말로 「꽃세상」을 이룬다.우리나라 산수유 열매 생산량의 60%가 이곳에서 나며 구례 지방 생산량의 85%가 지리산 만복대 기슭에 자리잡은 산동면에서 나올 정도로 산수유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산수유가 이 지방 특산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200여년전 쯤부터.지리산 험산준령에 둘러싸여 논이 적고 밭이 척박해 산수유 나무를 심어 생계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산수유의 아름다움은 무리지어 피어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꽃잎 길이가 2㎜ 정도로 매우 작아 꽃송이 하나 하나의 모습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수백 그루씩 무리지어 자란 산수유나무가 한꺼번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장관을 이룬다. ○3면이 바다로 트여 ◇사천만 벚꽃=벚꽃 하면 우선 진해 군항제를 떠올리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게 흠이다.그러나 남해 사천만 선진공원은 잘 알려지지 않아 벚꽃을 한가로이 즐길수 있다.이 공원은 평소에는 한적한 곳이지만 해마다 벚꽃이 만개하면 하늘을 가리는 황홀경을 연출하는 이색지대이다.공원안에만 700여 그루의 벚꽃나무가 있어 「꽃에 가려 하늘이 안보일 정도」이다.공원입구에서 53계단을 오르면 3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탁트인 공간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 한국무용가 양길순(이세기의 인물탐구)

    ◎영혼이 깃든 춤사위로 무대마다 긴장감…/한동작 일만번씩 연습… 타고난 예살키워/결혼후 매헌 문하로… 경기 도살풀이 맥이어 양길순은 매헌 김숙자의 「경기 도살풀이」 이수자이자 전수교육조교다.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된 살풀이춤 가운데 호남 동살풀이의 맥을 잇는 이매방류와는 달리 김숙자의 도살풀이춤은 경기 무악인 도당굿의 아홉거리중 한 종류다.고개를 끄덕이는 「목젖놀이」가 특징인 이 춤은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리는듯한 나뭇잎사위며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용사위, 학처럼 발끝을 딛고 서는 고고한 학사위가 일품이다. 똑바로 가르마탄 쪽진 머리에 하얀 치마 저고리, 허리를 질끈 동여맨 모습으로 양길순이 무대에 서면 섬뜩한 푸른 귀기가 언뜻 번뜩이고 아직 동작을 이루지 않았는데도 벌써 정중동의 미선이 숨막힐듯 이어진다.서무에서는 짐짓 느리게 거닐다가 세발이 넘는 긴 명주수건을 허공에 뿌리면서 어깨에서 오른팔, 다시 왼팔로 옮기고 때로는 바닥에 던져서 기쁨과 슬픔, 흥과 멋을 달래는 전과정은 삼엄한 천둥속에서 한송이 백매화가 피어나는 이미지다. ○취학전 학원서 춤배워 검은 가사에 흰고깔, 오방장단에 맞춘 「승무」역시 깊고 긴 호흡과 포개고 떼는 보법이 현란하다.긴 날개처럼 펼쳐지는 장삼자락은 뿌리칠때마다 장대한 능선을 그리고, 천수북을 울리면서 연풍대로 휘돌아가는 처연한 의식은 북가락에 실린 오뇌의 흐느낌과 함께 허물많은 세속에서 무상의 열반으로 무한정 빠져들게 한다.발딛음새는 고결하면서도 온누리를 세밀히 다지는듯 하다. 지난 94년 문예회관대극장에서 양길순이 전통춤을 발표했을때 평론가 정병호씨는 「한국춤에 알맞는 맵시있는 양태」란 글에서 「양길순만의 규모있는 매력」을 크게 호평한바 있다.「그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불세출의 명무 김숙자의 살풀이춤 교육조교로서 스승의 도살풀이춤 입춤 부정놀이춤 승무를 추면서도 종래의 전통무용발표회에서 보여준 춤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고유의 고전적 형식을 재창조하여 한국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물론 전통춤사위를 그대로 살리고 보존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면서도 「양길순만의 앙칼지고 결연한 분위기탓에 춤사위사위마다가 제단앞에 선 사제같은 신명을 되살린다」는 것이다. 그와 매헌 김숙자와의 만남은 77년 일본에서 「김숙자 도살풀이춤」공연이 있을때부터 시작된다. 양길순은 본래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으나 약사이던 부친 량원극씨를 따라 4살때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사했고 용산구 후암국민학교에 다니다가 이번엔 부친의 약방이 강원도 홍천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홍천여고를 졸업했다.국민학교다니기전부터 임미자· 김정자무용학원에서 춤추기 시작했고 학교행사때마다 『춤과 노래로 좌중을 사로잡는 재간동이였다』고 어머니 곽오덕씨가 전한다.파조· 이화무용콩쿠르를 비롯 전국학생무용콩쿠르에서 1등상을 수상, 한가지를 가르치면 열가지를 아는 지혜와 눈썰미탓에 주변에선 「장래 범상치않은 무용가탄생」을 점치고 있었다. 경희대 무용과에서 김백봉사사후 국립무용단에 입단, 그러나 무용에의 길은 생각처럼 순탄치 않았다.남들이 개인무용발표회를 갖거나 큰무대의 주역으로 발탁되는 것을 부러워하다가 「무용가로서 최고가 될수 없다면 무용을 그만둔다」는 결심으로 집안의 중매로 만난 재일동포 사업가 이태호씨와 결혼했다.한국을 떠나 오사카에 정착했으나 한국에서 교포위문공연이 올때마다 객석뒤에 숨어서 무대를 지켜보면서 「나는 역시 무용을 떠나서는 살수없는 운명」을 몇번씩이나 재확인할수있었다.그무렵 오사카에 온 「김숙자무용」공연을 보고 「삶의 애환이 깃든 춤으로 보는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살풀이」에 반해 스승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스승은 첫마디에 『아담한 몸맵시에 작고 예쁜 얼굴, 타고난 예살』을 지적하여 쾌히 문하에 받아주었고 그때부터 다시 서울에 돌아와 낙원동에 있던 김숙자무용학원에서 「밤이나 낮이나 스승의 모든 것을 전수」받는데 전념했다. 그는 여유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었으나 스승과 고락을 함께한다는 자세로 하루종일 학원에 머물러 스승을 돕고 보조하는 역할을 해냈다.그리고 「궁색한 티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스승의 자존심」을 존경하여 친부모이상으로 스승을 모시는 모습은 무용계와국악계의 화제가 됐었다.국악계의 원로이던 박귀희 김소희씨는 「실과 바늘」같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당신들같은 스승과 제자는 다시 없다」고 부러워했고 그는 스승의 사랑속에서 자신의 춤경력과 「천부적 소질」을 살려 매헌의 「소중한 후계자」로 자라났다. ○친부모이상 스승 공경 그는 하나의 춤사위를 익히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속에든 모든 것을 쥐어짜고 그것을 손끝으로 발끝으로 어깨로 풀고 뿌리라」던 스승의 말을 어긴 적이 없다.그래서 하나의 동작을 「일만번씩 연습」하고 춤사위가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자연스러운 선으로 흘러나올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릴줄 알게 되었다.무용발표회를 가질때도 마치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듯이 전통 무태와 무작을 살린 완벽한 무대를 준비했고 이생강 윤윤석 김덕수사물놀이패 등 인간문화재급을 초청하여 「음악과 춤의 조화」를 실천하는 화려하고 풍성한 공연을 펼쳤다. 스승이 일찍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관련기관에 이를 호소하는데 앞장서기도 했고 91년 쾰른에서 열린 가우클러페스티발에 다녀오다가 김포공항에서 매헌의 「문화재지정」소식을 듣고는 스승과 제자가 부등켜 안고 통곡한 일화는 무용계의 미담으로 남아있다. ○심금 움직이는 춤으로 지금도 무대에 오를때마다 스승이 계시지않다는 슬픔때문에 그의 큰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넘쳐있고 스승을 기리는 뜻에서 그와같은 살풀이 이수자이며 스승의 딸인 김운선을 친동생처럼 아끼고 감싼다.정의감이 강하고 남에게 폐끼치지 않는 결백한 성격에다 약한 사람의 편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는 죽파류 가야금산조 준인간문화재인 양승희와 송죽같은 우정을 나눈다. 「춤은 아름답고 이쁘게 추는 것이 아니라 심금을 움직이는 춤」이 진실한 춤이며 「스승을 감히 능가할수는 없으나 스승에 접근할수있는 춤」 그리고 「나의 영혼이 깃든 춤」을 춘다는 것이 그의 과제다.흰 명주수건을 들고 무대에 서있는 그자체가 바로 춤이고 싶고 매헌 김숙자­양길순으로 이어지는 춤의 맥을 고결하고 극진하게 지키고 싶은것만이 그의 소원이다. □연보 ▲53년전남 진도 출생 ▲72년 강원도 홍천여고 졸업 ▲76년 경희대 무용과 졸업 ▲77년 국립무용단단원 ▲78년 김숙자무용학원 강사 ▲81년 김숙자무용50년기념공연 ▲84년 양길순전통무용발표회 ▲85년 전주대사습전국대회 장원 ▲86년 86,아시아 문화예술축전 무용제 우수단체선정기념 전국6개도시순회,김숙자선생회갑축하공연 ▲87년 양길순전통무용발표회,자유중국태평양문화기금초청 동남아순회 ▲88년 일본 아사히신문사 「조일우의 회」초청 양길순무용공연 ▲88년 양길순전통무용발표회,서울올림픽개막전야제 축하공연 ▲89년 한길무용회 창작무용극 「바람꽃」발표회 ▲91년 독일 가우클러페스티발 초청공연(쾰른) ▲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 춤」이수자지정,양길순무용단 창단,고김숙자선생 1주기추모공연,「명무전」 대한민국국악제 및 「춤과 그사람 명무」해마다 출연,춤의 해 「춤의 날」초청공연 ▲9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전수조교지정,국악협회무용분과위 부위원장,전주대사습놀이 심사위원,대전 엑스포기념및 명인전공연,94년 94,국악의 해기념 여성국극 「안평대군」 및 서울예술단 「터벌림」안무,한·중·일 문화교류명인전공연 ▲95년 전주대사습놀이 및 서울전통예술보존회 일반대회심사위원 ▲96년 고려대언론대학원수료,국제예능교류협회 학생무용콩쿠르 및 정읍사문화재 전국학생국악대회심사위원,김숙자 선생 5주기추모공연,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기념축하 「살풀이」공연
  • 창작과 비평사간 「역주 백호전집」 1,2권

    ◎조선중기 문인 임제 작품 집대성/칠언절구·산문·소설 등 3년여 걸쳐 정리/「청등론사」·「유여매쟁춘」 등 발굴작도 실어 조선 중기의 문인 백호 임제(1549∼1587)가 남긴 한시와 산문,몽유록계열의 소설 등 문학작품을 집대성한 「역주 백호전집」(신호열·임형택 옮김,전2권)이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왔다. 백호는 방외의 경지까지 넘나들었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성품을 지녔던 시인이자 문신.20세가 될 때까지 주사청루를 배회하다 28세에 알성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그러나 백호는 이내 동서 붕당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전국명산을 떠돈다.평안도 도사가 돼 송도를 지날때,황진이의 무덤가에서 『청초 우거진 골에…』라는 시조를 짓고 제를 지내 조정의 탄핵을 받았던 일은 백호의 호방한 기질을 보여주는 생생한 일화다.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백호는 스스로 자만을 지어 남겼다.『강호상에 풍류 40년 세월에 맑은 이름 얻고도 남아 사람들 놀래었네/이제 학을 타고 티끌세상 벗어나니 천도복숭아 또 새로 익으리』 이번에 나온 「역주 백호전집」에는 「증별」 「고한」 등 칠언절구 200여편,「만흥」 「영회」 등 오언절구 40여편,「몽선요」 「행로난」 등 칠언고시 10여편 등 다양한 장르의 한시가 실렸다.원래의 백호문집에는 누락돼 있던 글들을 모아 속집형태로 꾸민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 속집에는 백호의 유고로 역자들이 새롭게 발굴해 낸 글들이 적잖게 실려있어 시선을 끈다.초패왕 항우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시도한 「청등론사」,봄을 다투는 버들과 매화를 의인화한 「유여매쟁춘」,계절변화의 순리를 노래한 「전동군서」 등이 그것.또 제주도 기행문인 「남명소승」과 의인체 한문소설인 「화사」는 오서와 낙자로 원문이 크게 손상돼 복잡한 교감작업을 거쳐 정본을 확정했다. 백호의 문학유산은 몇몇 시조를 제외하고는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있어 일반독자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역주 백호전집」은 그런 점을 감안,충실한 주석을 달아 백호의 호한한 문학세계를 한층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역자인 임영택씨(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백호는 중세의 어둠속에서방황하던 인물이다.그의 자유와 해방의 인간정신은 「근대」와 아울러 「탈근대」의 진수를 담고 있다.그런만큼 백호의 문학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새롭게 읽혀질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 입춘(외언내언)

    오늘(4일)은 입춘.24절기중 첫번째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아직은 강추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지만 절기는 어느 새 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비록 삭풍과 잔설의 냉기가 감돌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마음은 새 희망으로 용솟음친다.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입춘이 되면 집집마다,마을마다 그해의 풍년과 만사형통을 비는 행사가 푸짐하게 펼쳐졌다.집기둥과 문설주에 「입춘대길」은 물론 「개문만복래」,「수여산 부여해」 같은 조금은 거창하고 웃음짓게 하는 입춘서를 써 붙이기도 했다.얼마나 소박하고 느긋함을 풍기는 정겨운 풍경인가. 입춘이 지나면 얼음밑을 뚫고 흐르는 개울물과 눈속에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는 매화가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정월은 맹춘이니 입춘·우수절기로다/산중간에 빙설은 남았으나/평고광야에 운물이 변하도다」라고 노래한 농가월령가도 그같은 자연의 변화를 일러준다. 이번 겨울은 겨울 같아서 영하 10도가 넘는 매서운 추위가 며칠씩이나 계속됐고 한강이 한때 얼기도 했다.그래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하지만 입춘이 지났다고 추위가 금방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설날추위나 정월대보름추위도 있다. 그러나 이제 추위가 길면 얼마나 길랴.곧 얼음장 깨지는 소리와 함께 봄의 숨결이 대지를 감쌀 것이고 메마른 나무가지에도 물이 오를 것이다.움추렸던 가슴을 펴고 닫혔던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 젖힐 때다.온갖 고통과 시름,좌절과 실의 그리고 비생산적인 모든 것들이 겨울의 그림자와 함께 자취를 감췄으면 한다. 다가오는 봄기운을 마음껏 들이마시면서 크고 우람찬 걸음을 우리 함께 힘차게 내디뎌 보자.
  • 16C중반∼1970년 붓과 묵의 대가전/오늘 인사동 대림화랑서

    ◎이정의 「대나무」∼서동균의 「매화」 등 120점 조선시대 3대화가로 꼽히는 16세기 묵죽화가 탄은 이정(1541∼1622)의 대나무그림부터 지난 78년 타계한 국전 초대작가 죽농 서동균(1902∼1978)의 매화그림까지.서울 인사동의 대림화랑(733­3738)이 17∼29일에 여는 「고금명현유묵전」은 이같이 16세기 중반부터 지난 70년대 중반까지 400여년간 80명 명현의 글씨와 사군자·문인화 120점을 전시한다. 문화유산의 해에 걸맞는 이 전시는 그야말로 붓과 묵의 대가전.1500년대의 이항복·서경우·백광훈·채유후·정광성을 비롯해 1600년대의 유덕장·이하곤·홍명일·김진상·이덕흠·심정주,1700년대의 심사정·강세황·채제공·조희룡·신위·김정희·임희지·홍직필·이영익이 들어 있다.또 1800년대 인물로는 정인보·경봉·김윤식·김성근·윤용구·최익현·김돈희·이남식·서병오·김규진·양기훈·박영효·김태석·이하응·김옥균·유길준·조소앙·오세창·고희동·이완용·이준용,1900년대엔 이응로·손재형·서동균까지 망라돼 있다. 이 자리에는 애국지사와 매국노의 글씨체도 한자리에서 선보이며 나라가 망한 뒤 총독부가 있는 곳을 등지고 살면서 큰 갓을 눌러쓰고 다닌 우국과 울분의 심정이 잘 담긴 석촌 윤용구의 글씨와 그림이 이채롭다. 한편 대림화랑측은 고미술전시로선 드물게 전시도록에 전시품가격을 일일이 명기,관람객에게 공식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 드라마 전문 CATV 「제일방송」/“시청률 높이기” 비상작전

    ◎대만 인기프로 「신월격격」 등 두편 수입/사회적 이슈다툰 「제3의 눈」자체 제작 구랍 3일 삼구그룹에 인수된 케이블TV 드라마채널 제일방송(JBS·36번)이 채널 이미지를 높이고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에 나섰다.새해 첫날부터 24시간 종일방송을 시작한 데 맞춰 대만의 인기외화를 수입,방영하는가 하면 자체기획으로 르포프로그램 「제3의 눈」제작에 돌입한 것. 이번에 제일방송이 수입한 프로그램은 대만의 인기 여류작가 경요(경요)의 드라마 「신월격격」(월·화 상오8시,하오1시·8시)과 「매화낙인」(수·목 상오8시,하오1시·9시)등 두편. 「신월격격」은 청나라 초 단친왕의 딸인 신월이 주인공으로 반란세력에 잡혀 수난을 당하다가 구원병으로 나타난 장군에게 구조된 뒤 그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매화낙인」은 청나라 건륭시대를 배경으로 북경의 한 귀족집안에서 아들을 선호하는 분위기 때문에 딸아이를 다른 집 사내아이와 바꿔친 뒤 벌어지는 사건을 극화했다. 이 두 작품은 최근 대만TV에서 주시청시간대에 방영돼 30%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로 중국·홍콩 등 중국어권 동남아 여성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은 작품.이미 국내에서 한차례 인기를 끈 「판관 포청천」보다 인기도에서 앞서 특히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제3의 눈」은 다수의 논리에 의해 묻혀진 각종 사회적 이슈를 찾아내 이를 기존시각과는 다른 각도에서 짚어본다는 독특한 아이디어에 따라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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