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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공헌 특집] KT - 정보소외층 찾아가 IT기술 지식나눔

    [사회공헌 특집] KT - 정보소외층 찾아가 IT기술 지식나눔

    KT의 사회공헌활동은 ‘정보기술(IT) 나눔’, 임직원의 봉사활동인 ‘사랑나눔’, 건물을 리모델링해 공연장으로 꾸민 ‘문화나눔’, 환경보호를 위한 ‘그린 나눔’으로 이뤄졌다. 2007년 출범한 IT 서포터스가 대표적이다. 컴퓨터나 IT 관련 자격증을 가진 직원 400여명이 정보 소외계층을 찾아가 정보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 임직원 2만 6000여명으로 구성된 ‘KT 사랑의 봉사단’은 추석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소외된 이웃을 돕는 한편 재해 피해복구 활동도 펼치고 있다. ‘청각장애아 소리찾기’라는 캠페인을 전개해 지금까지 280명의 청소년에게 소리를 되찾아 주었다. 저소득층·맞벌이 부부 자녀의 방과후 학습도 지원하고 있으며 KT 공부방 봉사활동 및 IPTV 무료 제공으로 학습격차 해소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누구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300여평에 이르는 기존 광화문 사옥 1층을 ‘KT 아트홀’로 리모델링해 공연장으로 개방했다. 입장료 1000원은 전액 저소득층 청각장애 청소년들의 ‘소리찾기 캠페인’에 사용되고 있다. 또 환경보호를 위해 자연과 문화유산을 영구보존하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2005년 8월 강원 정선 제장마을에 전통가옥인 ‘동강사랑’(東江舍廊)을 만들었고 인천 강화도 초지리의 매화마름 군락지 보전활동도 펼치고 있다. KT 이석채 회장은 2009년 CSR(사회적책임) 보고서에서 “KT는 기업의 성과를 국민과 투명하게 공유해 진정한 신뢰를 구축하고, 나눌수록 커지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석가탑서 最古문양 비단 발견

    석가탑서 最古문양 비단 발견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양의 비단이 나왔다. 그동안 청동으로 알려졌던 ‘청동제 비천상’은 금동제인 것으로, 은제 매화판은 청동제라는 사실도 새로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6일 최근 보존처리 작업을 완료한 석가탑 발견 유물에서 8세기 문양 비단의 조각 더미를 비롯, 통일신라·고려 시대 유물 수백 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고대 비단 중 문양이 확인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1966년 도굴사건을 계기로 탑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석가탑 내 발견 유물은 1967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었다. 그러다 박물관은 2007년부터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보존처리와 정리·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뭉쳐져 있던 흙덩이에서 조각 난 상태의 문양 비단이 발견됐다. 이들은 금(錦), 나(羅), 주(紬), 능() 등의 직제 방식이 혼재돼 있었으며, 이어 붙인 조각에서는 위아래로 늘어선 마름모꼴이 반복되는 문양이 확인됐다. 비단은 석가탑 내 사리함을 쌌던 것들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다양한 재질의 구슬 370여점과 불국사 석가탑의 중수(重修)과정을 기록한 중수문서 등도 발견됐다. 또 다라니로 알려졌던 종이뭉치는 향을 담은 봉투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편 이 석가탑 내 발견유물 일체는 17일 조계종으로 이관돼 한국불교역사박물관에 보관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도시와 산] (37) 경주 남산

    [도시와 산] (37) 경주 남산

    천년 고도 경북 경주에서 남산을 올라보지 않았다면 경주를 봤다고 할 수 없다. 남산이 신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곳이 남산 서쪽 기슭 우거진 소나무 숲 속에 있는 나정이다. 진한의 6부촌장이 신라를 건국하기 위해회의를 한 곳도 나정이다. 신라의 종말을 가져온 포석정도 남산에 깃들어 있다. 신라 55대 경애왕은 이곳에서 신하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즐기다 불시에 쳐들어온 후백제 견훤에게 죽임을 당하고 천년 신라는 막을 내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포석정이 유흥 장소로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주장이 있다.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57) 소장은 “포석정은 제례의식을 행한 곳이다. 경애왕이 술 마시고 놀다가 죽은 게 아니라 신라의 장래를 위해 하늘에 기도를 드리다 변을 당했다. 화랑세기에도 이런 내용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남산 연구를 위해 1999년 공직을 박차고 나왔다. ●신라의 시작·끝 역사 산기슭에 고스란히 남산만큼 자연과 문화유산이 조화를 이룬 곳은 드물다. 신라 화랑들의 훈련장이기도 했다. 신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혼이 깃들었다고 이곳에 불국토를 세우려 했다. 이를 증명하듯 골짜기마다 석불과 석탑이, 봉우리마다 절터가 있다. 절터 150곳과 석불·마애불 129기, 탑 99기, 석등 22기, 왕릉 13기, 고분 37기 등 모두 694개에 이른다. 산 그 자체가 거대한 문화재다. 2005년 바위절벽 불상이 발견되는 등 지금도 계속 문화유적이 나타나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흔적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남산을 일컬어 ‘산속의 노천박물관’이라 한다. 이 때문에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1985년에는 산 전체가 사적 311호로 지정됐다. 2000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경주시가 2052년까지 54년 계획으로 1200억원을 들여 남산을 살리는 계획을 추진하는 것도 이 산이 품은 자연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매우 커서다. ●불상 대부분 8세기 중반 이후 세워져 남산에 왜 문화유적이 많은 걸까. 왕족과 귀족들이 불국사, 천황사, 황룡사 등 큰 절집에서 예불을 올릴 때 민초들은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의 불상은 대부분 이름 없는 석공들이 무딘 정을 들고 마음을 새겼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석굴암처럼 완벽하고 잘생긴 석불은 그리 많지 않다. 미완의 작품이 많다. 불상의 뒷모습 처리도 깔끔하지 않다. 동네 아저씨 같은 서글서글한 부처상이나 옆집 아줌마 같은 넉넉한 보살상, 깊이 새기지 못하고 절벽에 윤곽만 새겨놓은 선각불 등이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그래서 정일근 시인은 경주 남산이란 시에서 남산을 ‘신라인의 마음을 싣고 흘러가는 한척의 배’라고 표현했다. 마지막 신라인으로 불리는 향토사학자 고(故) 윤경렬 선생은 “남산을 보지 않고서는 신라를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소장은 “남산의 불상은 대부분 8세기 중반 이후 새겨졌다. 이전에는 왕권이 안정돼 백성들이 남산에서 불상을 새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후 국가통제가 약화되면서 남산의 불상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산 불상을 백성들만 새겼다고 볼 수 없다. 먹고사는 데 여유가 있어야 불상 새길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런 면에서 귀족들도 남산을 찾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망산의 남산 향한 절개 고속도로가 끊어 남산은 돌산이다. 동서로 4㎞, 남북으로 8㎞로 뻗은 이 산에는 2개 봉우리가 오롯이 마주 보고 있다. 금오봉(해발 468m)과 고위봉(494m)이다. ‘고위’는 주변 봉우리보다 높다고, ‘금오’는 황금빛 거북 모양의 봉우리라고 해 붙여졌다. 남산은 어느 동네에나 다 있다. 경주 남산도 임금이 있는 반월성의 남쪽에 있다고 붙여졌다. 남산은 재미난 탄생 비화가 있다. 옛날 부부신이 경주에 내려왔다. 이들은 경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면서 사랑을 속삭였다. 이때 빨래를 하던 동네 아낙네들이 거대한 부부신을 보고 “산봐라.”라고 외쳤다. 깜짝 놀란 부부신은 그 자리에 굳어서 남신은 남산이, 여신은 망산이 됐다고 한다. 망산은 주변 많은 산의 유혹에도 끄떡없이 남산만 바라보는 지조를 지켰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망산의 상당 부분이 잘려나가 남산에 대한 일편단심은 지킬 수 없게 됐다. ●남산의 주봉은 금오봉 남산의 등산로는 다양하다. 이 중 가장 많이 오르는 코스가 삼릉에서 냉골계곡으로 오르는 코스다. 삼릉은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능을 지칭한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여름에도 찬바람이 분다는 냉골계곡을 따라 오르면, 상선암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제법 경사지지만 길지는 않다. 상선암 위에는 몸통뿐인 마가석가여래좌상이 있다. 능선을 따라가면 고위봉보다 높이는 낮지만 주봉인 금오봉에 도착한다. 능선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다 오른쪽 용장골로 내려서는 길. 벼랑 끄트머리엔 산 전체를 기단 삼아 세워진 용장사지 3층석탑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래쪽 등성이에는 황남빵을 쌓아놓은 듯 삼륜대석불좌상이 있고, 옆쪽 바위벽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용장사지는 옛 영화를 상징하는 안내판만 덩그러니 세워진 채 적막하다. 산대나무 터널을 지나 용장계곡을 통해 하산한다. 가족들과 함께 남산을 찾은 정모(47·대구 수성구 지산동)씨는 “남산에 10번째 왔는데 알면 알수록 풍성한 느낌이 드는 명산”이라고 말했다. 연간 남산 탐방객은 60만명에 이른다. 법정탐방로는 7개이지만 샛길이 100여개라 탐방객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공원 경주사무소는 지난달 30일 동남산과 삼릉 등 2개 지점에 뒤늦게 전자계측기를 비치했으나 어림도 없다. 법정탐방로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주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남산에 드리운 조선 그림자 경북 경주 남산이 신라의 문화유적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조선의 그림자도 드리워 있다. 남산에서 가장 큰 절집 용장사다. 지금은 안내판만 있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책을 다 불사른 뒤 평생을 유랑했던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생육신인 김시습은 이 절에서 30세 때부터 7년간 머물며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창작했다. 금오신화는 설화를 소설형식으로 이끌어 올린 것인데 여기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은 ‘만복사의 저포 놀이’, ‘이생이 담너머를 엿보다’, ‘부벽정에서 취하여 놀다’, ‘남염부주 이야기’, ‘용궁잔치에 초대받은 이야기’ 등이다. 이 소설은 귀신과의 사랑, 염라왕과의 토론, 용궁에서의 생활 등을 다뤘다. 김시습은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자 ‘설잠’이라는 이름으로 중이 돼 방랑의 길을 떠났다. 10년간 떠돌아다니다가 세조 10년(1465) 경주에 도착, 용장사에 정착한다. 매월당도 용장사 앞에 매화가 있어 지은 이름이라 한다. 세조가 김시습의 거처를 알고 데리고 오도록 했으나 응하지 않으려고 용장사 건너편 골짜기로 몸을 숨겼다. 그래서 이 골짜기를 은적골이라고 한다. 37세 때에 경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온 뒤 성종 12년(1481) 47세 때 환속해 안씨와 결혼했다. 성종 24년(1493) 충남 홍산에 있는 무량사에서 일생을 마치니 59세였다. 용장사 위쪽에는 삼층석탑이 있다. 군데군데 깨진 삼층석탑은 자체로야 별다를 게 없지만, 바위에 올라서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는 탑의 모습은 병풍처럼 펼쳐진 산의 능선과 어우러지며 위엄을 갖추고 있다. 삼층석탑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란다.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은 “모든 석탑은 하층 기단이 있는데 이 삼층석탑만은 암봉에다 바로 앉혀 놓았다. 따라서 암봉이 하층 기단인 셈이다. 암봉이 해발 350m는 되니 세계 최고의 석탑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경주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24) 자양동 양꼬치거리

    [테마 스토리 서울] (24) 자양동 양꼬치거리

    9일 저녁 광진구 자양동 중국음식문화거리. 한 무리의 중국인들이 중국 향신료와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양꼬치구이집으로 몰려들어 갔다.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한강둔치 방면으로 50m쯤 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이 골목은 일명 ‘양꼬치거리’로 유명한 신(新)차이나타운이다. 약 600m골목길을 따라가 보면 ‘阿里郞羊肉(아리랑양육관)’, ‘梅花飯店(매화반점)’, ‘中國食品(중국식품)’ 등 한자로 된 간판들이 즐비하다. 중국 음식점만 해도 70여곳에 달한다. 이 곳의 대표 음식은 단연 양꼬치구이. 삼겹살과 비슷한 가격으로 1인분에 8000원~1만원 수준이다. 중국에서 파는 양꼬치와 달리 숯불에 구워 기름도 적고 향신료의 강렬한 향도 덜하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금씩 맛도 ‘퓨전화’됐다. 1인분을 시키면 8개의 꼬치가 나오는데 쇠꼬치에 양고기를 꿰어 지글지글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중국 맥주인 ‘칭다오 맥주’도 입맛을 돋운다. 이때문에 1년 전부터는 유독 한국인들이 많이 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8년 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중국동포 김영옥(42·여)씨는 “처음엔 중국인이나 조선족들이 주를 이뤘는데 근래 들어 한국 손님 비율이 70%를 넘는 것 같다.”면서 “한국인과 중국인이 예전과 달리 점점 서로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어우러지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양꼬치구이집을 찾은 손님들 중에는 한국 사람이 눈에 많이 띄었다. 중국인과 몽골인들이 중간중간 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술을 마시다 자연스럽게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중국인 주인을 ‘이모’라 부르며 농담을 주고받는 단골 한국손님들도 여럿 있었다. 한국과 중국이 ‘양꼬치구이를 통해’ 부쩍 가까워진 듯했다. 과거 자양동은 성수동 일대 공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등 외국인들이 싼 월셋방을 찾아 모여들던 곳. 최근엔 건국대와 한양대 등으로 유학온 중국 학생까지 늘면서 지금의 ‘신차이나타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현재 자양동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인근 화양동까지 합쳐 약 8000명에 이른다. 대부분 중국인이나 동포가 많다. 주로 인근 공장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편리한 교통과 싼 집값, 많은 유동인구 등은 매력적인 입지요인이다. 고향음식이 생각나 일주일에 두어 번은 이곳을 찾는다는 중국인 정흥위(22·여)씨는 “중국사람이 오면 본토 그대로의 맛대로 요리를 해 주기 때문에 며칠만 지나도 이곳 음식이 생각나 자주 들른다.”면서 “여기 오면 고향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한국 사람들과도 왠지 스스럼없이 편하게 어울릴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전주 도심에 대형수목원 조성

    전북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일대에 대형 수목원이 조성된다. 전주시는 내년부터 2015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삼천동에 50㏊ 규모의 대형 수목원을 만든다고 9일 밝혔다. 수목원은 천년의 숲, 전통의 숲, 치유의 숲, 생명의 숲, 미래의 숲 등 크게 5개 개념으로 구성된다. 천년의 숲은 숲의 영원성과 번영을 상징화한 것으로 수백년 된 나무를 모은 노거(巨)명목원, 소나무 군락지인 전통 소나무원, 천연기념물로 구성된 천연기념물원, 참나무동산, 야생열매원 등을 갖추게 된다. 전통의 숲은 오랫동안 우리의 생활문화와 함께 해온 나무를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대나무 군락지인 죽림원, 한지의 원료로 쓰이는 닥나무의 집단 재배지인 닥나무원, 매화 등을 심어놓은 사군자원, 동구나무원, 마을숲원으로 만들어진다. 치유의 숲은 스트레스로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쉬게 하는 휴식공간으로 산림치유원, 명상원, 약용식물원, 치유정원으로 짜진다. 이밖에 생명의 숲은 자연의 원시성을 보여주는 생태습지원, 암석원, 활엽수원, 침엽수원으로 구성되고 미래의 숲은 야생화 냉실 및 온실, 아열대원, 야생변이 식물원으로 만들어진다. 식물을 연구하고 생산하는 묘목장과 연구동, 방문객을 위한 비지터센터, 주차장 등도 마련된다. 이름은 가장 한국적인 땅이라는 뜻을 따 ‘전주 천년 한지(韓地) 수목원’으로 잠정 결정했다. 이지성 예술도시국장은 “도심에 대형 수목원이 들어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가장 한국적이면서 전통적인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사고] 제15회 서울광고대상 수상작 발표

    [사고] 제15회 서울광고대상 수상작 발표

    광고산업 발전과 광고인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한 ‘제15회 서울광고대상’에서 삼성의 ‘두근두근 Tomorrow’ 캠페인이 대상을 차지했다. 서울광고대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조병량 한양대 광고홍보학부 교수)는 지난 11일 심사에서 작품 총 30점과 올해의 광고인상 1인을 선정했다. 기업PR대상은 SK(주)의 ‘당신이 행복입니다’ 캠페인이 선정됐으며, 최우수상에는 SK텔레콤의 ‘콜럼버스’편이 이름을 올렸다. 광고인상의 영예는 정상국 LG 부사장이 안았다. 수상작과 수상소감, 심사평은 오는 27일 서울신문 지면에 소개된다. ●시상식 11월 27일(금) 오후 3시, 서울 중구 태평로1가 25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 ●심사위원 조병량, 김충현(서강대 언론대학원 교수), 김광규(한국브랜드협회장), 김은호(본사 상무이사), 박선화(간사·본사 광고마케팅국장)
  • 藝人 황진이 소리극으로 태어난다

    藝人 황진이 소리극으로 태어난다

    ‘그윽한 매화 향내 맡으면 내 모습이 보이나요/내 사랑 그대 내일이면 우리 서로 헤어져야 하나요/그대를 그리워하는 내 모습은 물결처럼 출렁거려요.’ 국립국악원이 공연하는 소리극 ‘황진이’의 노래 중 한 대목이다. 원시는 황진이가 소세양을 그리워하며 쓴 한시 ‘송별소양곡’. ‘매화가지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梅花入笛香)/내일 아침 그대, 나 이별 후(明朝相別後)/정은 물결따라 멀리멀리 가리라(情與碧波長)’ 부분을 애틋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해하기 쉬운 노랫말로 다시 불렀다. 조선시대 예인(藝人) 황진이가 나눈 지란지교의 사랑을 재조명한 소리극 ‘황진이’는 경기·서도 소리를 중심으로 정가, 민속·불교 무용, 선비들의 놀이문화 등 한국의 전통 문화가 집결된 공연물이다. 박일훈 국립국악원장은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조선시대를 풍미하며 문학과 예술에 뛰어났던 인물인 황진이야말로 한국의 대표성을 띤 작품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면서 “만능예술가였던 황진이를 다룬 아름다운 소리극을 단발성이 아니라 꾸준한 수정 과정을 거쳐 국립국악원의 대표브랜드 공연으로 안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 틀은 기존의 것을 따른다. 기생으로 입문해 선비들과 교류하며 송도의 지족선사를 파계시키고 벽계수에게 망신을 주다가 도학이 높은 서경덕을 만나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여기에 국립국악원의 역량을 하나로 모았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무용단, 정악단, 객원 등 60여명이 참여해 경기·서도민요, 정가(正歌) 등 소리를 중심으로 교방무, 입춤, 장구춤, 승무, 바라춤 등 전통무용과 불교무용을 펼친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문학 대결이 돋보인 시회(詩會)를 비롯해 서예, 동양화 등도 가미됐다. 서예와 그림은 영상으로 비춰주며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주목할 부분은 아름다운 노래로 재탄생한 황진이의 시들이다. 경기·서도 민요의 화성을 기본으로 작곡가 김대성이 현대적이고 세련된 음악으로 작곡했다.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등 주요 국악기와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등 서양악기가 어우러진다. 가사는 ‘청산리 벽계수야’, ‘상사몽’ 등 시조 8편과 서경덕의 ‘동지음’, ‘마음이 어린 후니’ 등 시 4편까지 총 13개 한시들을 전달력 있게 풀어썼다. 연출은 창극과 뮤지컬, 오페라, 연극 등을 수십 편 만든 김효경이 맡았다. 극본은 김용범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작사, 스토리텔링, 스크립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작업으로 만들어냈다. 경기민요 이수자인 최수정과 국립국악원 정악단원 이정규가 각각 황진이와 서경덕으로 열연한다. 소리극 ‘황진이’는 26~29일 서울 서초동 예악당에서 공연한다. (02)580-3300.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작은 옹달샘처럼 맑았던 작가의 정신세계 오롯이

    작은 옹달샘처럼 맑았던 작가의 정신세계 오롯이

    ‘계수나무’라고 불리는 어린이 박계수는 매화나무와 대화를 하고, 두루미와 참나무, 물레방앗간 등 만나는 모든 것에 ‘안녕’하고 인사를 나누고 돌아다니는 엉뚱한 개구쟁이다. 폐병에 걸린 어머니가 병원에서 요양하고 있어 외할머니집에서 자라던 계수나무는 눈오는 어느날 삼촌 손에 끌려 할아버지집으로 옮겨간다. 다도해의 작은 포구인 ‘배들이’에 위치한 할아버지 집에는 이복형인 정수와 정부인이라는 정수형의 어머니, 그리고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도시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의 흔적이 있다. ‘작은 각시’였던 어머니를 어린 마음에 안쓰러워하면서도 계수나무는 외부의 어두움에 지지 않고 천진스럽다. 노래를 찾아 돌아다니는 정신나간 연신네가 있고, 간이 떨어지면 거미줄로 묶어준다고 하고 우리 애인이 입맞춤해서 붉어진 동백꽃이 핀다고 주장하는 바보 고봉이, 다리를 저는 산지기이자 욕쟁이 용골댁 등을 품어내는 넉넉한 마을 인심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읍내로 시집간 애인을 못잊어 살인을 저지른 순애 삼촌이나, 가슴이 뜨겁던 시절에 수평선 너머 환희와 낭만의 도시가 있는 줄 알았으나 어릿광대처럼 남의 얼굴로 살아버린 것을 깨달은 병든 아저씨를 통해 인생의 어두운 면도 만난다. 어느날 불어닥친 해일로 진흙탕이 된 논과 밭, 할아버지 집, ‘우리 동네’를 보면서 계수나무는 두 다리에 힘을 불끈 싣는다. 그루터기 매화나무에서 피어난 흰 매화처럼 다시 삶을 일궈내겠다고 말이다. 1946년 전남 순천 바닷가에서 태어난 고(故) 정채봉 작가가 투병생활 중에 쓴 장편 동화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샘터 펴냄)를 마지막으로 6년 동안 진행된 ‘샘터정채봉전집’이 마무리됐다. 모두 29권. 고인은 지난 200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종찬 어린이문학평론가가 이 마지막 동화를 두고 “여우가 죽을 때 고향으로 머리를 둔다는 ‘수구초심’처럼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고향의 이야기를 그렸다.”면서 “환경파괴와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고를 뜻하는 해일로 마을을 쓸어버리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내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달속의 옥토끼들처럼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계수나무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준다. 생전에 정 작가는 자연에서 멀어진 세상의 질서에 안타까워하며 “왜 지금 아이들은 신비의 세계를 버려두고 비극의 어른들 세상으로 서둘러 달려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하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안개는 소리내지 않은 새’와 같은 주옥같은 표현들, 작은 옹달샘같이 맑았던 작가의 정신세계를 직접 만날 수 있다. 98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촛불회고록 ‘박비향’ 출간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지난해 한·미 쇠고기 협상 이후 발생한 ‘촛불시위’ 과정에서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 ‘박비향’을 1일 출간했다. ‘대한민국의 밀물시대를 여는 정운천의 희망가’란 부제가 붙었다.책 제목은 ‘불시일번 한철골(不是一番 寒徹骨) 쟁득매화 박비향(爭得梅花 撲鼻香)’이란 옛 시구에서 따왔다. ‘추위가 한 번 뼛속에 사무치지 않으면 코끝을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어찌 얻으랴.’라는 뜻으로, 촛불시위를 겪은 정 전 장관이 앞으로 한국 농업에 더 큰 보탬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셈이다. 정 전 장관은 책에서 장관이 되기까지 농업인으로서의 인생역정,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 사즉생의 심정으로 소통하기 위해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을 찾았던 뒷이야기, MBC PD 수첩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한 경위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 “中 매화당 은닉자금” 속여 3400조원 위조채권 사기

    수천조원 상당의 위조 유로·달러 채권과 모조지폐를 중국 국민당 비밀조직인 ‘매화당(梅花黨)’의 은닉 재산이라고 속여 투자를 권유해 자영업자 등으로부터 거액을 가로챈 사기단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13일 중국에서 반입한 외국 채권의 처분 비용을 대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속여 조모(42)씨 등 3명으로부터 17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위조유가증권행사 등)로 김모(62·여), 한모(60)씨를 구속하고 백모(53)씨 등 일당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등은 2007년 5월쯤 중국에서 위조채권과 모조지폐를 대량으로 들여온 뒤 자영업자인 조씨를 만나 “매화당이 관리하는 채권을 전문 처분 기관에 맡겨 현금화할 계획인데 기관에 의뢰할 자금 2억원을 대면 30억원을 돌려주겠다.”고 투자를 권유했다. 이들은 조씨에게 위조한 3400조원 상당의 유로 채권과 1600억원 상당의 달러 채권을 보여 줬다. 또 채권을 처분해 마련한 자금이라며 1000억원이 입금된 예금 통장, 수천 장의 100만달러와 100만유로 지폐, 국내 은행이 발행한 1억원 채권 84장도 제시했다. 이들은 치밀한 사기를 위해 매화당이 중국 모처에 금괴 등 보물을 숨기고 있다며 ‘기밀건(機密件)’이라는 보물지도와 보물창고 내부를 촬영한 CD 등을 보여 주기도 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이 보여준 채권과 CD, 지도, 지폐 등은 모두 중국에서 만들어진 가짜로 밝혀졌다.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동성애 논란’ TEN “문신은 패션…동성애는 글쎄” (인터뷰)

    ‘동성애 논란’ TEN “문신은 패션…동성애는 글쎄” (인터뷰)

    등의 매화문신으로 화제가 됐고 한 장의 사진으로 동성애 논란에 휩싸인 신인여성듀오 TEN. 화젯거리만 놓고 보면 데뷔 몇 년차 가수도 부럽지 않은 그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 “매화문신? 장미넝쿨도 있다.” TEN 멤버 하나의 등에는 붉은색 매화와 함께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이라는 한시가 씌어있다. 여기에 작품자의 이름과 낙관까지 이건 뭐 한 폭의 동양화다. 설명을 들어봤다. “처음에는 사군자인 ‘매난국죽(梅蘭菊竹)’을 다 하고 싶었어요. 하나만 하라는 주위의 만류로 국화만 하려고 했는데 피부색이 맞지 않아 결국 매화로 바꾸게 됐죠.”(하나) 문신은 자신만의 개성표현이라고 강조한 하나는 “문신이 하나 더 있다. 장미넝쿨 문양인데 치골에서부터 조금 더 아래쪽까지 연결돼 있다.”며 문신 윗부분만을 살짝 공개해 아쉬움을 남겼다. ◆ “동성애? 레즈비언이라는 오해 많이 받아.” “이성보다 동성이 더 좋냐?” 대놓고 묻자 송이가 화들짝 놀란다. “남자 좋아하죠.(웃음) 친구들한테 검색해보라는 문자 받고 알았어요. 깜짝 놀랐어요.”(송이) 송이와 달리 하나는 “캐나다에 살 때도 레즈비언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남자 만날 일이 별로 없어서 여자들하고만 어울렸더니 그랬던 것 같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나의 말을 듣던 송이는 한술 더 떠 “엄격하신 아버지가 통금시간을 정해 놓으셔서 남자친구 사귈 틈도 없었다.”며 거짓말 같은 진실을 털어놨다. ◆ “섹시는 기본… 컨셉은 ‘으쌰으쌰’” 개성표현이라던 문신은 일시적인 화제. 동성애 역시 그저 그런 잠깐의 논란. 이제 슬슬 그들의 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된 것 같아 섹시한 그들에게 콘셉트가 섹시냐고 물었다. 이에 랩을 맡은 하나는 “섹시는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일 뿐이고 우리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유쾌함을 선사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전했다. 이어 보컬 담당인 송이는 “정통 트로트는 아니고 시원한 안무와 신나는 랩이 가미된, 20대부터 40대까지 두루 좋아할 만한 노래”라고 자신 있게 설명했다. 오는 10일 앨범이 발매된다는 TEN은 “19일 KBS 2TV ‘뮤직뱅크’에서의 첫 데뷔 무대를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고 전해 그 말이 과연 진짜인지 첫 무대가 기대된다.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울릉도 내수전 옛길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울릉도 내수전 옛길

    울릉도에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은 서둘러야겠다. 울릉도 일주도로에서 유일한 흙길인 내수전∼섬목 구간 4.4㎞가 내년부터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길을 내수전 옛길이라 부르는데, 예로부터 북면 사람들이 행정 중심지인 도동에 드나들던 길이었다. 울릉도의 험준한 동쪽 해안을 끼고 돌며 깊은 원시림 속으로 이어진 내수전 옛길은 풍광이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성인봉 나리분지, 도동∼저동 해안도로, 대풍감 코스 등과 더불어 울릉도 최고의 걷기여행 코스로 꼽힌다. ●가는 길과 맛집 묵호와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가 다닌다. 대아해운고속 홈페이지(www.daea.com)나 전화로 출항 요일과 시간을 확인한다. 울릉도까지는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3시간. 문의 대아해운(포항 054-242-5111, 묵호 033-531-5891, 울릉 054-791-0801). 저동항 활어센터에서 저렴하고 싱싱한 활어회와 오징어를 먹을 수 있다. 현지 교통은 우산버스(054-791-7910)가 다닌다. ●집어등이 은은하게 비추는 저동항의 정취 내수전 옛길이 시작하는 곳은 울릉도 오징어잡이 전진기지인 저동항이다. 저동항은 도동항에 비해 한결 조용하고 운치있는 항구다. 이곳에 숙소를 잡으면 집어등이 밤바다를 비추는 저동 특유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선창 노점에서 싱싱한 오징어회에 술 한 잔 곁들이면 울릉도 매력에 홀딱 빠져버릴 것이다. “내수전 전망대는 내수전에서 30분밖에 안 걸려요.” 전망대로 가는 팍팍한 포장도로는 40분을 넘게 걸어도 끝없이 이어진다. 길을 알려준 분식집 아저씨가 착각했거나 그의 걸음이 무지하게 빠른가 보다. 내수전 약수터의 톡 쏘는 물맛에 힘을 얻어 간신히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다. 내수전 전망대는 울릉도 동쪽 해안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남쪽으로 저동항, 왼쪽(북쪽)으로는 걸어야 할 석포마을 일대가 장쾌하게 펼쳐진다. 특히 석포와 섬목 일대는 마치 열대우림처럼 나무들이 빽빽하고, 바다 쪽으로 내려갈수록 험준한 해안절벽을 이루고 있다. 과연! 아직까지 포장도로가 생기지 못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울릉도의 해안도로는 1963년 공사를 시작해 2001년에 완공되었는데, 내수전에서 섬목까지 4.4.㎞ 구간은 지형이 워낙 험하기도 하거니와 생태계 보전을 위해 흙길 그대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부터 울릉도 일주도로가 국가지원 지방도로로 승격됨에 따라 도로포장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본격적인 흙길이 시작된다. 모퉁이를 한 굽이 돌아서자 길섶에는 고사리류들이 지천으로 깔렸고, 아름드리 섬고로쇠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길은 평탄한 산비탈을 타고 도는데 중간중간 내려다보이는 죽도와 바다 경치가 아름답다. 내수전 옛길의 중간 지점인 정매화곡쉼터에는 말오줌나무흰꽃이 만개해 화려한 산제비나비들을 불러 모은다. 이곳은 섬을 걸어 다니던 시절, 1962∼1981년 이효영씨 부부가 살면서 폭설과 악천후를 만나 곤경에 빠진 섬 주민과 관광객 300여명을 구한 따뜻한 미담이 깃든 곳이다. 쉼터를 지나면 삼거리다. 여기서 와달리로 가는 길로 내려서면 안 된다. 해안의 아름다운 마을이었던 와달리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길도 끊겨 위험하다. 삼거리를 지나면 길은 슬며시 오르막으로 이어지면서 북면 경계를 넘는다. 이어 제법 가파른 고개를 넘으면 솔숲이 나오면서 포장도로를 만나게 된다. 여기가 자게골 입구 삼거리. 이정표를 따라 죽암 마을로 내려가도 되지만, 석포 마을을 둘러가는 것이 정석이다. ●짙은 에메랄드빛 파도가 부서지는 삼선암 이제 길은 포장도로를 따르지만 호젓하고 바다가 잘 보여 걷기 좋다. 띄엄띄엄 집들이 자리잡은 석포마을은 겨울이면 마을버스도 다니지 못하는 오지다. 하지만 더덕과 미역취 등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잘 자라고 인심도 좋아 정들면 떠나지 못한다고 해서 정들포라고 부른다. 석포에서 선창 해안까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려와야 한다. 지그재그 내려오며 충격을 줄여보지만, 한동안 무릎 고생을 피할 수는 없다. 터벅터벅 40분쯤 내려오면 석포전망대로 가는 갈림길이다. 여기서 전망대까지는 왕복 40분 거리다. 석포전망대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망루를 설치했을 정도로 조망이 좋은 곳이다. 짙은 에메랄드빛 망망대해와 더불어 북면의 명소인 삼선암, 관음도 등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20분쯤 더 가면 선창에서 바다를 만난다. 이제 울릉도 최고의 절경인 북면 해안이 이어진다. 우선 섬목까지 걸어갔다가 되돌아 나오며 관음도, 삼선암 등을 구경하는 것이 좋다. 바다 풍광에 반한 세 명의 선녀가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삼선암 앞은 울릉도에서 가장 황홀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뾰족한 바위 하나가 기둥처럼 솟은 일선암을 지나 천부에 도착하면서 걷기는 끝이 난다. 천부에서 도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고, 가까운 나리분지에 들어가 하룻밤 묵어도 좋다. 저동에서 내수전 전망대, 석포전망대를 거쳐 천부까지는 약 10㎞, 5∼6시간쯤 걸린다. 저동에서 내수전 전망대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해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좋겠다. 여행전문작가 ●가는 길과 맛집 묵호와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가 다닌다. 대아해운고속 홈페이지(www.daea.com)나 전화로 출항 요일과 시간을 확인한다. 울릉도까지는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3시간. 문의 대아해운(포항 054-242-5111, 묵호 033-531-5891, 울릉 054-791-0801). 저동항 활어센터에서 저렴하고 싱싱한 활어회와 오징어를 먹을 수 있다. 현지 교통은 우산버스(054-791-7910)가 다닌다.
  • 오세훈 서울시장 초청 강연회

    한국지방발전연구원(이사장 윤여준)은 24일 오후 5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초청해 ‘창의 문화도시, 서울의 비전과 전략’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연다.
  • 고전 산수화의 재해석

    고전 산수화의 재해석

    추계예술대 석철주(59· 동양화) 교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6살 때다. 서울 인왕산 밑자락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목수일을 봐주던 집들 중에 청전(靑田) 이상범(1889~1972)의 집도 있었다. 야구선수로 막 이름을 날리던 아들이 부상으로 체육인의 길을 중도에 포기하고 낙심하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청전에게 아들을 부탁했다. 청천은 석 교수집으로 넘어와 아무 말도 없이 난 한그루를 쳐서 넘겨 줬다. 이른바 채본 하나를 받아든 것이다.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기를 한달, 연습한 화선지를 모아 청전에게 가지고 갔다. 청전은 화선지를 넘겨 보면서 어디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도 없이 “아, 이건 아주 잘 됐다.”고만 했다. 그런 식으로 청전이 몰(歿)했던 1972년 봄까지 6년 간 도제식으로 동양화 공부를 했다.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대학진학을 생각했고 실행했던 시기는 그의 나이 27살 때. 추계대학 동양화과 같은 학번 동기 여학생들은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렇게 오랫동안 동양화에, 먹물에 푹 담그고 있었기에 그의 그림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어도 동양화의 향기가 물씬하다. 서울 소격동 학구재에서 오는 8월20일까지 구관, 신관 1· 2· 3층 전관에서 열리는 석철주 개인전은 서양 안료로 그려낸 동양화다. 특히 구관에 걸린 그림의 소재는 겸재 정선(1676~1759)의 ‘박연폭포’, 조희룡(1789~1866)의 ‘매화서옥도’, 전기(1825~1854)의 ‘매화초옥도’, 강희언(1710~1784)의 ‘인왕산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 한국화의 고전들이다. 이들 고전의 원작은 작품의 크기가 대체적으로 반절로 접은 신문지만한데, 석 교수는 이것을 10배에서 20배씩 키웠다. 그랬더니 박연폭포의 줄기는 더욱 장중해지고, 매화 한 줄기를 서안 위에 올려 놓고 들여다 보는 선비의 품성은 더욱 고매해 보인다. 고전을 재해석해 아크릴화로 그려낸 석 교수는 잊혀져 가는 한국 고전 산수화의 아름다움을 전면에 내세우고,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1980년대 ‘탈춤’ 연작을 시작으로 1990년대에는 항아리를 소재로 한 ‘생활일기-옹기’ 연작, 2000년대 ‘생활일기-식물이미지’ 연작에 이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고, 사람들과 공유하길 기대하는 것이다. 한국화는 먹물이나 석채, 종이 등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편견에서도 그는 자유롭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것도 1990년 개인전부터였다. 당시 옹기에 있는 무늬를 그려야 했는데 실감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캔버스에 아크릴로 독을 그린 후, 독쟁이들이 손가락으로 유약을 훑어내 그림(지두화)을 그리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안료를 훑어 내며 그린 것이 계기였다. 학고재 본관 뒤편의 신관에서는 도자기와 화분 등의 ‘자연의 기억’ 연작을 긁어 내기 기법을 이용해 그렸다. 캔버스 위에 바탕 작업을 대여섯 차례 한 뒤, 전체 물감을 다시 올려 대나무나 혁필, 판화 제작 도구인 스퀴즈(고무) 등으로 긁어 내는 것이다. 마치 어릴 적 미술 시간에 여러가지 색깔을 칠한 뒤 검은 색으로 도화지 전체를 입혀 동전 등으로 긁어 냈던 기법을 연상하면 되겠다. 바탕 작업을 몇차례 했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깊이가 달라지는데 흐릿한 화분과 꽃, 풀들의 모습이 꿈 속처럼 아련한 것이 인상적이다. 8월1~10일에는 휴관. (02)720-1524.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섬이 된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섬이 된다

    여행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을까. 각박한 일상을 떠나 느릿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유에 좀더 의미를 둘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잊고 있었던 것, 혹은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떠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섬을 찾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길은 어느새 설렌다. 많은 방향표들을 거치며 미지의 장소를 찾아가듯 다다른 곳은 나와 섬 사이의 간격을 실감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한 발자국씩 내딛은 길들이 어느새 연육교를 건너 소백산 끝자락에 위치한 무섬마을의 시간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연육교를 건너 처음 마주한 무섬마을의 첫 느낌은 마음속으로 나지막한 탄성을 지르게 했다. 100년 이상된 가옥들이 즐비한 이곳은 무성필름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혹은 오래된 소설 속에 묘사된 것 같은 풍경이 물씬 풍기는 마을이었다. 마을에 점점 가까워지면 질수록 나는 고요에 놀라고 마을이 펼쳐놓은 시간들에 놀랐다. 그렇듯 나에게 허락된 여유는 과거로의 여행에 몸을 싣고 천천히 시간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원래 이름이라고 한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섬 전체 3면을 감싸고 있고 넓게 펼쳐진 모래 해변 위에 한옥들이 어우러진 채 떠 있는 형상이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1666년 무렵부터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세대를 거쳐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함께 살아오면서 이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한때는 1200여 명이 살았던 마을이지만 지금은 20여 가구 40여 명만이 남아 있다. 마을 입구 어귀에 위치한 정자를 비롯해 전통가옥, 그리고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 골목과 담장을 나눠가지며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영주판 ‘하회마을’이라고도 불리어지듯 안동 하회마을과 지형적으로도 비슷해 천혜의 환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마을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으며 때 묻지 않은 시간 여기저기에는 바람, 새소리, 물소리가 소란스럽게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또한 무섬마을은 시인 조지훈의 처가가 있던 곳이다. 이곳의 아름다운 정취를 바라보며 이별과 아픔을 읊조린 그의 시, <별리(別離)>가 쓰여진 곳이기도 한데, 이곳의 풍경을 배경으로 떠올리며 한 행 한 행 구절을 읊조리니 어느새 시인의 심성에 가 닿아 있는 듯하다.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넘어로/ 나즉히 흰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저고리 다홍치마 자락에/ 말없이 슬픔이 쌓여 오느니/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듯 끊질듯 고운 미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을 바라보다/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자주고름에 소리없이 맺히는 이슬방울/ 이제 님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 빈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 가지/ 꺽어서 채찍삼고 가옵신 님아 - 조지훈, 「별리(別離)」 전문 자연의 소리 가득한 이곳의 분위기와 조우한다면 꼭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시 한 소절 멋들어지게 읊조리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곳은 《이어도》 《금당벽화》로 유명한 소설가 정한숙의 단편소설 <고가>의 배경이 되기도 한 마을이다. 솟구쳐 흐르는 물줄기모양 뻗어 내린 소백산 준령이 어쩌다 여기서 맥이 끊기며 마치 범이 꼬리를 사리듯 돌려 맺혔다. 그 맺어진 데서 다시 잔잔한 구릉이 좌우로 퍼진 한복판에 큰 마을이 있으니 세칭 이 골을 김씨 마을이라 한다./ 필재의 집은 이 마을의 종가(宗家)요. 그는 종손이다./ 필재의 집 앞마당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 나서면 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중략>…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은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그의 주옥같은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도입부를 읽고 있으면 강으로 둘러싸인 풍경을 바라보며 묘사해 나가는 작가의 행간 속에서 마을을 돌아가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이곳은 희미한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시간 속에 뚜렷이 각인시켜 놓는다. 시와 소설의 배경으로 쓰여질 만큼 마음의 여유와 영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이 마을의 지형은 풍수지리학으로는 매화꽃이 피는 매화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 형국이라 하여 길지로 꼽힌다고 한다. 당대의 예술가들이 받았던 마을의 기를, 나도 같은 자리에서 한껏 받아 보고 싶은 소망이었는지 노트를 꺼내서 뭐라도 적어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날이 어둑해지도록 좁은 골목과 낮은 지붕들이 길을 불러들인다.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박천립 가옥과 만죽재 고택 등을 거쳐 마을 한바퀴를 돌다보면, 담장 옆으로 피어 있는 야생화와 처마, 그리고 누군가 세워둔 자전거의 휴식과 마주하기도 한다. 또한 흙길을 걷다보면 앞마당 빨랫줄에 널어진 옷가지들이 소박하고 정겨운 오후의 풍경이 되어 자연스럽게 스치기도 한다. 삼삼오오 모여서 밭일을 나가시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 아, 고요와 적막이 나의 시선을 이렇게 붙잡을 수 있었구나. 그러고 보면 그동안 너무 많은 소음에 무감각하게 살아온 것 같다. 이곳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문득 두려워지기도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걸어간 곳은 솟대가 내려다보는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길이 150 미터 길이의 외나무다리다. 주민들이 직접 나무를 다듬어 만든 외나무다리는 장마 때면 휩쓸려 떠내려가기 일쑤라고 한다. 하지만 직접 복원하기를 반복하며 해마다 ‘외나무다리’ 축제도 열고 있다. 아련한 시간여행을 하는 나와 저 건너 육지 사이의 마음의 통로라고 해야 할까. 한 사람 정도 겨우 올라설 수 있는 좁은 외나무다리는 내성천을 가로질러 연결되어 있는데, 반짝이는 물이랑을 내려다보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이것 역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풍경이다. 느릿느릿 건너가는 구름도, 모래해변 위 물새의 발자국도, 이 마을에서의 시간은 너무도 평화롭기만 하다. 하지만 이곳에도 어느덧 방문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았지만 이제는 좀더 많은 관광객들을 가까이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을 입구 왼편,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한옥전통마을 공사가 1년 후인 올 11월에 맞춰 완공되기 위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마땅한 민박이나 음식점 하나 없어서 불편해 했던 여행객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시간을 좀더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좋은 변화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모습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들기도 한다. 전통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면서 오래도록 널리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이곳을 찾은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IC 주변에서 인삼순대와 막걸리 한 잔, 그리고 계절마다 각각 다른 정취를 펼쳐놓는 영주 소백산의 산행과 더덕즙을 곁들인다면 경북 영주에서의 여행은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시설 좋고 편리한 곳에서 누리는 여행은 이곳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조금 불편하고 무료할 수도 있는 시간이 온통 우리를 초대한다. 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집을 떠나 낯선 곳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여행의 선물이다. 녹음이 더욱 짙어지는 계절, 일상의 무거움을 비워버리고 천천히 첫 발걸음을 떼어보는 것이 어떨지. 섬 안시아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섬이 된다. 탯줄이 연육교처럼 놓인 어머니 자궁은 내겐 육지였다. 허공을 달려온 빗방울조차도 너라는 육지 사이에는 간격이 필요하다. 오랜 잠수처럼 숨막히던 내 사랑도 그 때문이었으리. 그 간격이 때론 우리를 무모하게 만든다. 잠시 모래 위에 내려앉은 새들도 너와의 거리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섬과 육지 사이 일곱 색색의 탯줄이 놓인다. 네게로, 시간 속으로,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글 · 사진 안시아 시인
  • 태초를 고이 간직한 원시의 섬을 그렸죠

    태초를 고이 간직한 원시의 섬을 그렸죠

    소설가 윤후명의 한 해는 집뜰에서 기른 원추리 나물을 먹으면서 시작된다. 강의가 없는 날의 생활이란 글쓰기, 그리고 화초 돌보기가 전부다. 식물학 실용서를 냈을 정도로 화초를 사랑하는 그의 뜰에는 능소화, 매화가 돌아가며 피고 진다. 그만큼 그는 자연에 가까운 작가다. 이번에는 그가 “태초를 간직한 원시의 섬을 그렸다.”면서 ‘지심도’ 를 테마로 한 문학그림집을 들고 나타났다. ‘지심도 사랑을 품다’(교보문고 펴냄)에는 그의 전공인 소설뿐 아니라 시, 동화, 에세이 그리고 화가들이 작업한 그림까지 함께 실려 있다. ●소설은 물론 시·동화·에세이에 그림까지 지난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지심도와의 인연부터 털어놨다. 지심도는 경남 거제도 옆에 붙은 작은 섬. 83년 여름, 한 기업의 초대로 처음 거제도에 갔다가 원시림을 품고 있던 지심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지심(只心), 다만 마음뿐이란 그 뜻이 참 멋지죠. 거기 매혹된 뒤로 무슨 일을 할 때면 지심도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그 이후로 작가는 아직도 기회가 될 때마다 그곳을 찾는다. 하지만 개발의 손이 뻗치면서 지심도도 이제는 예전같지 않다. “그곳에는 정말 마음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만 갔으면 했는데…”라고 작가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그렇게 세월에 변한 섬을 뒤로 하고, 그의 마음 속의 지심도는 이제 작품으로 남게 됐다. 작품 속 지심도는 ‘팔색조’와 ‘엉겅퀴꽃’으로 대변된다. 팔색조는 지심도에서 처음으로 본 새다. 그리고 ‘사랑과 함께 피어난 / 너의 모습 / 언제나 그대로 피어 있다 / 꽃이 졌는데도 / 그대로 피어 있다 / 사랑이 / 꽃 피고 지는 사이를 오가며 / 그 사이를 하나로 맺은 것이다’(‘사랑의 맺음’ 중)처럼 그린 엉겅퀴꽃은 거제수용소를 보며 ‘아픔·고통’의 이미지를 새로 갖게 됐다. 동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도 엉겅퀴꽃 이야기다. 화가 김점선씨의 요청으로 쓴 작품. “2007년쯤 같이 작업을 하자고 하던 걸 차일피일 미뤘는데, 그새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부랴부랴 작업을 시작했지만, 그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어요.”라고 사연을 설명한 그는 “그래도 작품은 읽어보고 갔다.”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그러면서 “화가와 문인들은 ‘보여주기’라는 점에서 비슷해서 교류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에 자신도 ‘문학과 미술의 만남’이란 모임도 꾸리고 있고, 10년 가까이 그림도 그렸다. 책에도 다른 15명 화가들과 나란히 자신의 그림을 실었다. ●“다음엔 우주까지 아우를 사랑 이야기 쓸 것” 하지만 역시 본업은 문학. 한 책에다 여러 장르를 묶은 그는 “장르마다 느낌이 다르기에 다른 작가들도 이런 작업을 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시와 소설은 서로를 해치는 게 아니라 보완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작품들은 전체가 하나의 글”이라는 생각으로 다음에는 “우리 문화의 원류, 그리고 우주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쓰겠다고 한다. 귀띔하기를 “삼국유사의 ‘거타지 설화’가 소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출간과 관련해 18일 거제도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작가·화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낭독회가 열리고, 또 책에 실린 그림들이 새달 17일까지 거제시 장승포동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섬, 지심도’展이란 이름으로 전시된다. 글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고현정 마력 폭발 “이것이 미실이다!”

    고현정 마력 폭발 “이것이 미실이다!”

    미실 고현정의 카리스마가 다시 한 번 불을 뿜었다. 지난 14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16회에서 미실은 ‘책력(冊曆)’을 통해 하늘을 관장하는듯 한 위세를 보이며 이것이 바로 ‘사다함의 매화’라고 털어놓는다. 실제로 ‘사다함의 매화’란 일 년 동안의 절기 변화를 적은 책인 ‘책력’을 의미 하지만 미실은 그 사실을 숨기고 자신의 뜻에 따라 기후마저 변하는 듯 행동해 세력을 확장하려 한다. 또 미실은 유신랑(엄태웅)을 자신의 사람이 되라고 회유하지만 단번에 거절당한다. 미실은 유신랑이 떠난 후 “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어. 저런 자는 처음” 이라고 말하며 “유신, 덕만에게 인리(人理: 하늘에서 내린 인덕)가 있구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담겼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미실에게 맞서는 세력의 중심이 된 유신랑. 미실은 이런 유신랑과 가야 출신 김서현(정성모)공을 압박하기 위해 위천제를 열어 가야 출신 세력을 서라벌에서 밀어내려는 술수를 펼쳤다. ‘선덕여왕’은 조만간 덕만(이요원)의 신분이 밝혀질 것과 문노(정호빈), 미실에게 버려진 아들 비담(김남길)의 등장을 예고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편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 중인 ‘선덕여왕’은 14일 방송된 16회가 31.7%(TNS미디어코리아 기준)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진제공 = MBC ‘선덕여왕’ 캡쳐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시 통해 자연에 사는 맛 느껴보세요”

    “한시 통해 자연에 사는 맛 느껴보세요”

    한시를 시인이나 학자가 아닌 스님이 풀어내면 어떻게 될까. 한시에세이 ‘맑은 바람 드는 집’(아름다운인연 펴냄)을 출간한 흥선(53) 스님은 시구 하나하나에 매달리지 않았다. 14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스님은 “한시는 매개일 뿐 그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책을 낸 소감을 밝혔다. 책은 77편의 한시와 함께 에세이를 실었지만, 시가 주는 낭만적 흥취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꽃을 이야기면서도 ‘어찌 하면 / 임께 드려 / 고래들을 / 모두 베어 / 천하를 편케 할까’(유호인, ‘검’) 같은 구절을 인용하고는 몰상식한 정치를 뒤집을 ‘상식의 칼’에 대해 논하는 식이다. 책은 그가 11년째 관장 소임을 맡아온 직지사 성보박물관 홈페이지에 올린 글 중 뽑아 묶은 것이다. 그는 “출판홍수 속에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책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두렵다.”고 말하지만 7년 반 동안 쓴 170여편 중 일부만 골랐으니 정수를 뽑아낸 셈이다. 스님의 한시 사랑은 출가와 동시에 시작됐다. 승가에 들어오자 한문과 선시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는데, 개인적인 취미와도 맞아 가까이 두고 읽기 시작한 게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는 “한시를 늘 접하지 못하는 건 번역이나 작품선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책에는 쉬우면서도 좋은 시, 특히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에 사는 맛을 전할 수 있는 작품을 골랐다고 한다.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에 따라 4개로 나눈 것도 이 때문이다. 실린 작품들도 매화, 대나무, 봄, 눈 등을 노래한 게 많다. 무엇보다 책의 백미는 스님이 직접 쓴 단아한 글체의 한시와 펜글씨로 쓴 번역시. 스님은 “기계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손의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면서 “손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싶어서 인터넷에 올릴 때부터도 펜글씨를 함께 써 올렸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열린세상] ‘니체’와 ‘나체’ 그리고 ‘사다함의 매화’/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열린세상] ‘니체’와 ‘나체’ 그리고 ‘사다함의 매화’/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시중에 이런 유머가 있다. 전직 대통령들과 이명박 대통령이 함께한 자리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쓴 저자가 누구인가를 물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을 생각한 후에 ‘니체’라고 대답하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것을 커닝하여 ‘나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점잖지 않게 나체가 뭐냐.”라고 하면서 ‘누드’라고 말하였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말을 써야지” 하면서 ‘벌거숭이’라고 답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망설이고 있을 때, 도올 김용옥이 나서서 이런 경우에는 여러 사람들이 말한 것이 정답이라고 했다. 사실적 진리의 측면에서 보면 니체가 정답이다. 그러나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말한 승상 조고(趙高)와 같은 절대 권력자나, 혹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다수결의 원칙에서 보면 나체 시리즈가 정답으로 취해질 수도 있다. 조고의 경우처럼 강요된 거짓 진리는 권력이 해체되면서 효력이 상실되지만, 스스로 거짓 진리를 옳다고 믿을 경우에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지는 고치기가 쉽지 않다. 한때 유럽인들은 몽골군을 동방의 ‘사제왕 요한’의 군대로 오인한 적이 있었다. 이슬람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1146년에 예루살렘 왕국의 동북방 도시 에데사(현 터키 동남부 우르파)가 초토화되고, 4만명 이상의 기독교 주민들이 희생되면서부터 유럽인들은 동방의 사제왕 요한이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91년 후인 1236년, 칭기즈칸의 셋째아들로서 제2대 칸에 오른 오코타이는 자신의 조카 바투에게 유럽 침공을 명하였다. 바투의 12만 몽골군은 1240년에 러시아 전역을 장악했으며, 이듬해에는 폴란드와 독일의 연합군 2만명을 괴멸하고 헝가리 전역을 초토화하였다. 사제왕 요한에 대한 유럽인들의 근거 없는 신앙은 몽골군이 이슬람의 유럽 침공을 저지할 원군이라고 착각하게 함으로써 치명적인 피해를 불러왔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이 같은 치명적 오해들이 준동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원폭과 미사일 발사 실험 비용의 출처를 밝히려는 정부를 비난하고, 수일간 계속되었던 사이버 테러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북한을 비호하고 나섰다. 금강산 관광객이 총살되고 개성공단 관계자가 체포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남북경색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리고 있다. 선거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성립된 정부의 정책기조를 야권에서 전면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반하는 처사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치인들은 집권한 후에 자신들의 포부를 펼치면 될 것이다. 야권, 특히 민주당은 현 정부의 주요 공약을 모조리 폐기하고, 우리 사회를 민주와 독재, 좌파와 우파의 대결장으로 재단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부터 대의민주정치의 근간에 충실하고 국회의 담론 규칙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약(藥)과 독(毒)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모든 주장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도(道)와 덕(德)과 법(法)을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좌도(左道)나 우도(右道) 한쪽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극단을 피하여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을 삭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함으로써 가장 현명한 선택에 이르고자 하는 중도(中道)나 중용(中庸)의 길은 그만큼 험난하다. 사제왕 요한과 같은 허구는 기망(欺妄)을 초래하는 유사종교적 코드일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권력유지의 비법으로 삼고 있는 ‘사다함의 매화’와 같은 요술상자도 부질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오직 성실하게 논의하고 이성적으로 타협하고 정성을 다하여 설득한 후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투표에 부치는 방식으로 정치일정을 진행시켜야 한다. ‘니체’가 ‘나체’가 되더라도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학자와 언론의 몫이고, 잘못된 것을 선거로써 바로잡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 제천 학현리 “매실 가로수로 돈 버네”

    제천 학현리 “매실 가로수로 돈 버네”

    시골마을 주민들이 매화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12일 충북 제천시에 따르면 청풍면 학현리 주민들은 2003년에 ‘아름마을 가꾸기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받은 정부 지원금으로 도로변과 공한지에 매화나무 2490그루를 심었다. 주민들은 해마다 주변 잡초제거 등 매화나무를 정성스럽게 가꿔 2008년부터 수확에 나섰다. 처음에는 매실 수확량이 2t에 불과해 소득이 500만원에 그쳤지만 올해는 수확량이 10t에 달해 최근 2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을 올렸다. 학현리에서 생산되는 매실은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확과 동시에 전량이 판매되고 있다. 이장 김동춘(54)씨는 “학현리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 매실을 생산하는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며 “한번 구입한 사람들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예약주문이 밀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매실이 불티나게 팔리자 내년에는 매화나무 일부를 외지인들에게 분양할 예정이다. 매화나무를 가꾸기 위해 외지인들이 마을을 방문해 민박시설 등을 이용하면 더 큰 농가소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인근에 위치한 청풍호를 찾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매실따기와 매실주 담그기 체험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계획도 갖고 있다. 제천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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