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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 기고] 누가 北風 수혜자인가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오점이 있다면,그것은 안보와 통일문제가 추악한 국내 정치문제로 악용되어 왔다는 사실이다.그간 권력 정당성을 제대로갖추지 못했던 정권들은 예외없이 심각한 정치적 위기 또는 정치적 선택 앞에서 안보위협을 단골메뉴로 활용해왔다.또 그같은 얕은 짓이 효과를 내기도했었다.군사통치시대에 이같은 짓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특히 선거때가 되면 북한의 이상(異常)징후를 확대해석하여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널리 알려 정치 목적에 이것을 악용했었다.실제로 북한의 무모한 짓이 집권세력에게 크나큰 혜택을 주기도 했다.그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이다. 여기에 재미를 본 세력은 선거철이 되어 사태가 불리하다 싶으면 으레 북풍이 불기를 은근히 고대한다.어떻게 하든 북풍이 불어오도록 하고 싶어 한다. 이런 일로 국가안보의 책임자가 감옥에 가기도 했다.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총선이 한달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별안간 북풍이 어설프게 불기 시작했다.이번에는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북풍진작의 계기로 삼고 있다.국민의 신성한 주권행사를 앞두고 우리를 참으로 슬프게 하는 이같은 일이 왜 생기는 것일까? 통일·평화·안보와 같은 중대한 문제는 전 민족적인 관심사요,전 국민적염원이요,초당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저급한 당리당략으로 악용되어온 것이 바로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알리는 신호라고 한다면 왜 이같은 부끄러운 일이 선거때마다 생기는 것일까?그 이유는 너무나 뚜렷하다.안보위협과 북풍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는 세력이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지난날 누가 그 혜택을 보았는지를 살펴보면분명해진다. 첫째,냉전을 재생산해내야만 기득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세력이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보았다.1976년 월남이 패망하자 박정희 정권은 이것을한반도 안보위협의 징후로 확대시켜 그의 유신철권정치를 강화했다.자유당시절의 학도호국단을 부활시켜 학원을 병영화하려 했고,모든 인권·민주화운동을 압살하려 했다. 둘째로,당국과 집권세력이 혜택을 보았다.안보위협을 빙자하여 정통성 없는권력을 그들은 어김없이 재창출했다.그러기에 지난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야당이 집권당이 될 수가 없었다.여당은 그것으로 영원히 여당일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북풍으로 혜택을 본 세력은 냉전 수구세력이었다.거기에는 군·관·산(軍·官·産)의 기득권층 뿐만 아니라 언론과 종교의 기득권층도 가세했다.한마디로 이들은 오늘의 세계사 흐름과 개혁의 흐름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반역사(反歷史)세력이기도 하다.그러기에 북풍으로 억울하게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자명해진다.인권,민주화,평화,정의와 같은 보편적 원칙과 가치를 분단된 특수상황에서도 꾸준히 지켜나가려 했던 세력이 항상 억울한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그런데 총선을 한달 앞둔 이 시점에서 참으로 웃지 못할 희한한 비극이 연출되고 있다.그것은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에 대해 정치권에서 촉발시키고 있는 신북풍론이다. 이것이 희한한 것은 명백하다.북풍공격을 시작한 집단이 야당이라는 사실이다.야당이 냉전 재생산에 앞장선다는 것이 지난날 경험에 비추어 신기하기는하다.그러나 참으로 진부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역설은 무엇을 뜻하는가? 무엇보다도 집권세력이 제도적으로는 집권했으되,실제로는 특히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야당같은 입장에 머물고 있다는뜻이다.현재 집권당이 해방후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고 자랑하지만 그들이 야당때 집권세력과 냉전수구세력으로부터 부당하게 당했던 매카시즘적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그리고 지금의 야당은 옛날 집권당의 냉전적 정치문화를 고스란히 이월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희극적 비극인가.왜 이같은 웃지 못할 아이러니가 생겼는가.여러요인들이 있겠지만 그중 한가지만 지적한다면 그것은 오늘의 집권세력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집권한 뒤 오늘까지 2년 이상 원칙없이 정치적 편의에 따라 냉전세력과 정치적 동거를 줄기차게 즐겼기 때문이다.그러기에 냉전세력이 안심하고 햇볕정책을 비난하는 것이다. 한완상 상지대학 총장 전통일부총리
  • 총선연대 ‘갈 길이 멀다’

    출범 17일째를 맞은 총선연대가 내우외환(內憂外患)을 극복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가장 괴로운 문제는 정치권의 ‘음모론’이다. 총선연대는 처음에는 “대응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는다”며 ‘무대응의 대응’전략을 구사했다. 집요한 공격이 계속되자 법적 대응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보류하기로 했다. 총선연대는 시민단체의 도덕성을 위협하는 음모론에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맞대응하다가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신중론’을 택했다. 박원순(朴元淳)공동상임집행위원장은 28일 “음모론은 미국의 매카시즘처럼정치권에서도 물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모론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지지도가 변함이 없는 것도 음모론이 거짓이라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집안 단속’도 쉬운 일이 아니다.참여 단체가 475개나 돼 이견이 없을 수 없다. 27일 여성유권자연맹과 여정치세력민주연대가 ‘총선 출마 예정 여성 29명의 전원 당선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 것이 한 예다. 이들 단체는 총선연대가 발끈하자 요구사항을 철회한 데 이어 총선연대를 탈퇴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28일 오전 있었던 상임공동대표단 및 상입집행위원장단 연석회의에서도 “개별 단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상부로 전달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문제점이 제기됐다. 총선연대는 이런 안팎의 문제를 논의한 끝에 정치권과는 거리를 유지하고,지역 조직을 정비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그동안 시민단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정치적으로이용하려 한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며 일정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장원(張元)대변인은 “빠른 시일 안에 내부 윤리강령을 제정,이를 어기는단체는 제명하고 참여 단체간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강조했다. 총선연대는 31일부터 공동대표단을 전국에 순회토록 해 지역 조직을 정비하고 민심을 수렴할 방침이다. 장택동기자 taecks@
  • [대한시론] 국가적 ‘언론대책’은 ‘언론개혁’ 뿐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언론대책문건’ 폭로로 촉발된 여야 대결은 갈수록 증폭돼 급기야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장외투쟁으로 끌고나감으로써 국회가 마비되기에 이르렀다. 이번 사태에 관한 한 집권 ‘국민회의’는 대결의 단초가 된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의 ‘언론대책 문건’이 나오게 된 경위와 그것이 실제로 정부·여당의 당면 언론정책에 어느 정도 활용됐는지에 대한 사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검찰수사에 진실하게 협조해야 할 것이다.그리고 ‘진실’에 바탕해 경우에 따라서는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까지 감수할 각오를 해야만 ‘국민의정부’라는 이름에 걸맞은 도덕성과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보여준 몇 가지 정치행태는 참으로 개탄스럽다.정형근 의원은 그가 제기해 발생한 ‘언론대책문건’을 둘러싼 여야 대결과정에서 이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빨치산’‘빨갱이’란 단어들을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낡은 냉전시대의 사상논쟁을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가 지난날 군사독재정권 시절 공안검사로서 또는 안기부 고위간부로서 얼마나 많은 민주인사들의 인권을 탄압했는지를 새삼 들먹일 생각은 없으나,세계 제2차대전 이후 시작된 냉전이데올로기가 세기말과 함께 세계적으로 마감되고 있는 이 시기에도 한국사회에 매카시즘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행태는 지탄받지 않으면 안된다.정형근 의원이야말로 그가 상대방을 공격할 때 사용한 용어를 그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면,맹목적 반공주의에 서 있는 ‘선전·선동정치인’인 것이다. 또 정형근 의원이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의 ‘언론대책문건’을 입수한 과정에서 드러난 평화방송 이도준 기자와의 커넥션도 심상치만은 않다.그가 심심찮게 터뜨리는 폭로문건들이 이와 같은 음습한 각종 커넥션들에 의한 것이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근본적 문제는 다른 데 있다.우리의 정치권에 아직도 ‘언론대책’ 문건 같은 것이 나돌고 그 문건 하나로 ‘예산국회’가헛바퀴를 돌게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권력과 언론간 수평관계를 확립하지 못했고 언론의 자유가국민의 자유도,언론인 개개인의 자유도 아닌,언론사 사주의 자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정치민주화의 징표는 물론 여야의 공정한 집권경쟁일 터이다. 이 ‘공정성’은 공정한 게임의 룰이 여야 아니 모든 정치집단에 차별없이적용돼야 한다.그리고 그중 하나가 언론의 권력으로부터 독립임은 말할 것도 없다.그러므로 어떤 정당이 집권을 하든 여야 경쟁에서 언론을 이용하거나통제함으로써 이득을 취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언론을 ‘중립코너’쯤으로치부하라는 말이다. 문제는 지금과 같이 언론사와 언론사주들이 탈세,불공정 거래,부채경영 등으로 너무나 많은 약점에 노출돼 있는 한 언론에 대한 압력이나 ‘협조요청’의 유혹은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우리 시민사회가 ‘언론개혁’을 요구하고 그것에 언론사 지배주주의 소유제한 규정,소유와 경영의 분리,방송편성권,신문편집자율권 보장 등을 제도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도 권력이나 대자본에 의한 압력으로부터 언론을 독립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정부나 여당의 언론에 대한 지배나 통제로 인해 공정한 정치적 경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장외투쟁보다는 국회로 돌아와‘언론개혁’을 위한 입법에 당의 힘을 모으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지금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민주적 통합방송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 등 각종 언론관계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해나가는 것임을 여야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진정한 국가적 ‘언론대책’은‘언론개혁’뿐이다. [成裕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 [오늘의 눈] 아쉬움 남긴 野부산집회

    지난 4일 한나라당은 부산에서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었다.현 정권의 ‘언론탄압’을 국민에게 직접 알리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날 장외집회의 이유다. 중앙당의 ‘총동원령’ 때문인지 대회가 열린 부산역 광장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한나라당은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을 보여주고 있는 현장”이라고 흡족해 했다. 야당이 정권의 잘못을 지적하고 독주를 막는 ‘견제자’로서 역할을 해야한다는 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다.경우에 따라서는 장외집회 등 강경투쟁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부산대회는 몇가지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먼저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감정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대회장 곳곳에 걸린 ‘부산사람 똘똘 뭉쳐’나 ‘부산경제 다 죽이는’으로 시작되는대형 플래카드가 그것을 대변했다.연사들마다 부산이 지역적 피해를 받고 있다는 식의 발언으로 일관했다.‘공당(公黨)’임을 자부하면서 지역감정 청산을 외쳐오던 한나라당의 공식적 목소리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느낌이다. 또하나는 정형근(鄭亨根)의원이 제기한 케케묵은 ‘색깔논쟁’이다. 정의원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향해 공산당의 선전선동수법을 사용하느니,지리산 빨치산수법을 사용하느니 하며 독설(毒舌)을 서슴지 않았다.이어 간첩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말까지 ‘험악한 색깔 발언’을 쏟아냈다. 문제의 ‘언론 문건’을 폭로,어려운 지경을 자초한 정의원으로서는 이 사건을 다루는 여권과 사법당국의 태도가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또 점점 불리해져 가는 여론에 한껏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된 정의원의 마지막 몸부림으로 이해하기에는 ‘도’가 지나친 듯하다.중세의 ‘마녀사냥’이나 냉전시대의 ‘매카시즘’까지 연상시키는 발언인 탓이다. 한나라당이 부산대회를 평가하면서 이런 문제점들을 외면한다면 이는 ‘아전인수’격인 해석이라 아니할 수 없다.이날 대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냉철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날 모인 사람들중 순수하게 참여한 부산시민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한나라당은 이날 모인 사람들의 함성이 국민의목소리라고 여기는 ‘자기 최면’에 빠져서는 안된다. [박준석 정치팀기자]pjs@
  • [20세기 문명기행] 2. 인간의 시대, 대중의 시대

    20세기가 열리고 역사의 무대에 새 얼굴이 등장했다.대중이라는 인간군(群)이었다. 지난 100년을 이끌어온 역사의 동력으로,때로는 무기력한 군상의 동의어(同義語)로 대중은 ‘인간의 시대’라는 종착역을 향해 질주해왔다.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협소한 계급적 울타리의 ‘민중’을 넘어서 포괄적 의미의 대중의 탄생과 승리를 가져온,에릭 홉스봄의 말대로 ‘금세기의 중심적 사건’이었다. 대중은 인도,터키 등에서 열병처럼 번진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전후 유럽의신 사회운동,미국의 반핵·반전운동을 끌어가는 주력군이었다.소외됐던 대중은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면서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로 탈바꿈해갔다. 폴란드 자유노조의 승리,잇단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87년 한국의 ‘6월 항쟁’을 이끌어낸 힘도 분노한 대중이었다. 그들은 경제의 주역으로도 나섰다.대량생산,대량소비는 이들 대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소비주체로서 대중은 자본주의와 그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이런 폭발적 힘,그 이면에는 무력하고 탈색된 군중으로서,대량소비의 대상으로서의 우울한 모습도 숨길 수 없었다.대중정치,대중문화,대중매체에 이르기까지 대중과의 수많은 결합체가 만들어지면서 대중의 소외도 한편으로 빠르게 진전되어 갔다. 대중화 시대를 이끈 요술상자,라디오의 정시방송이 미국에서 시작된 20년을 전후로 TV,영화,컴퓨터는 대중을 발전시키기도 하고,혹은 대중을 어리석게퇴보시켜온 상징물이었다. 이런 대중의 시대를 또 한번 뒤집어 보면 어떤 모습일까.그것은 인류가 태초부터 목표로 삼아온 인간 본위의 삶,즉 인본(人本)지향의 모습이었다. 인류의 대다수는 19세기까지 봉건적·전통적 틀에 얽매여 있었다.미국에선노예제가,한국에선 반상제(班常制)가 공동체의 내용과 형식을 꽁꽁 묶어놓고 있었다.20세기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속박을 푸는 인간의 시대로 변모했다. 세계 곳곳에서 신분제의 사슬이 풀리고 세상의 절반인 여성과 흑인,어린이들에게 권리가 주어졌다.1918년 영국은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75년 멕시코에서 유엔 세계여성대회가 열렸다.흑인의 인종차별도 점차철폐됐다.63년 워싱턴에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30만 흑인 대중 앞에서 흑인의 자유를 선언했다. 그러나 위대한 대중의 시대는 인류에게 공헌을 한 시대만은 아니었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예언했듯 대중은 소수에게 이용되는 세뇌된 우중(愚衆)으로 전락하기도 했다.이탈리아의 무솔리니,나치 독일의 히틀러는대중을 교묘하게 통제하고 억압하면서 사악하게 대중을 변모시켰다.냉전의비극인 50년대초 미국의 매카시즘도 소수가 대중을 부추킨 광기의 산물이었다. 20세기는 여러가지 지표로 볼 때 분명 대중의 정치·경제적 권리가 확대되고 인간의 삶이 개선됐다.그러나 형식적 권리만 확장됐을 뿐 실질적 권리가완전히 보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비관론(앤서니 기든스)도 적잖다.무한경쟁이란 억압의 새 틀에 놓여진 신 인류,노동시장에 철저히 종속된 위기의 시대라는 해석이다. 심각한 불안정과 영속적 위기의 시대에 살면서(미카엘 스튀르머) 대중이길거부하는 몸짓도 있다.어떤 해법도 제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대중에 머물기보다는 자아와 주체의 발견과 실현에 적극적인 ‘소중’(少衆)으로 분화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일 미국 앰허스트.노벨상 수상자 7명 등 세계의 석학 100여명이 ‘인도주의자 선언 2000’을 발표했다.폴 쿠르츠 교수(미 버팔로대학)는 선언문에서 미래가 암울하고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21세기는 ‘더 나은 세상’이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들의 전망대로 신 인류는 새 세기에 과연 희망과 행복을 기대해도 좋을까. 황성기기자 marry01@ * 오늘의 한국을 일군 피플파워 ‘탑골공원’‘4·19’‘빛고을’‘6·29’….한국 20세기 역사 고비고비의 상징어들이다.그 단어들 속에서 꿈틀거리는 에너지는 바로 사회모순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대중의 승화체 ‘민중’. 전반기를 일제의 혹독한 식민지상태로,후반기를 남북으로 분단돼 대립하며불행한 한 세기를 보낸 한국의 오늘을 있게한 힘은 바로 근대사회의 태동과함께 전면에 나선 민중이었다. 이땅에서 사회개혁의 주역으로 대중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봉건의 암운이가시지 않은 때.봉건사회의 해체와 함께 태동하기 시작한 민중은 한반도를침탈한 외세와 집권층의 부패에 맞서 뭉치기 시작했다.1894년 동학 농민운동은 20세기 한국사에서 대중의 힘을 처음으로 담아안은 사건이다. 이후 한국의 대중,민중들은 1919년 3·1운동 등 반외세 운동으로 결집했고60년 4·19혁명,64년 6·3 굴욕적 대일 외교 반대시위,70년대 노동자 항쟁및 계엄반대 시위,79년의 부마항쟁,그리고 80년 광주민주항쟁에 이르렀다.‘한사람의 열걸음 보다 열사람의 한걸음…’ 80년 광주 항쟁의 아픔을 겪고 난지식인 그룹이 처절하게 경험한 대 원칙도 ‘대중과 함께하는 운동’이었다. 이것이 87년의 6·29선언,나아가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김수정기자 crystal@
  • [특별시론] 색깔론 세력의 반역사주의

    요즘 우리사회에 참으로 기묘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치 해방이후 친일파들이 독재정권을 등에 업고 설쳐대듯이,그런 비슷한 양상이다. 군사독재정권시대에 민주화를 가로막고 인권을 탄압해온 하수인들,공안출신,부패관리,타락한 언론인들이 ‘천사의 옷’으로 갈아입고 이른바 비판세력이 되고 있다. 이들은 김대중대통령의 ‘용서와 화해’무드에 교묘히 편승하면서 야당이란 방패로,언론이란 명분으로,지식인이란 구실로 개혁과 남북화해에 제동을 건다. 제동을 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되돌리려 든다. 국가부도위기를 불러온 YS의 정치재개를 비판하기보다 엉뚱하게 3김청산으로 DJ를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작전을 펴고,정경유착과 문어발 선단경영,재산해외도피,IMF환란을 초래한 재벌에 대한 개혁을 “김대통령의 이념적 지향점에 국민이 불안하다”면서 사회주의적 노선인 것처럼 물고 늘어진다. 유엔 인권위를 비롯,양심있는 국민 사이에 보안법의 독소조항 개폐는 상식처럼돼 있는데도 이를 두고 색깔론을 전개한다. 해방후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함으로써 정의로운 민주사회 건설에 실패했듯이 DJ정부 역시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하면서 사세를 늘리고 영향력을 키워온반민주세력,언론,지식인을 청산하지 못함으로써 개혁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있다. 군사독재의 음습한 늪에서 인적·물적 기반을 키워온 이들은 DJ집권과 함께 기득권 상실과 자신들의 힘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며 국민의 정부에 상처를입히고 DJ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에 모든 역량을 동원한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첫째,국보법 개정이 ‘북측 주장을 정부가 수용’하는것인가. 노태우정부의 7·7선언 이후 우리 정부는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기본합의서의 제1조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보안법 제2조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다. 또 제7조의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이적표현물 소지,제8조의 회합·통신,제10조의 불고지 조항 등은 변화하는 현실에 맞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국내외의 비판이 따른다. 남북관계는 경수로 건설,금강산 관광,4자회담,차관급회담,기업의 남북합작투자,물품교역,종교·언론·체육인 방북 등보안법 제정 당시와는 상상도 못할 변화가 일고 있다. 이런 법조항을 고치자는 것이 공산주의자란 말인가? 둘째,독재정권과 유착하여 권력유지비를 대고 천문학적인 부채를 국민부담으로 떠넘기면서 책임도 지지 않는 일부 재벌을 개혁하지 않고는 건전한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재벌의 개혁이 사회주의적 처사라면,2차대전후 일본재벌을 해체시킨 맥아더장군은 공산주의의 수괴쯤 된다는 것일까. 재벌을 통해 정치자금을 뜯어쓰거나 재벌의 광고를 통해 사세를 키워온 집단이 아니고는 한국재벌의 변태성을 고치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이다. 셋째,언론의 자세문제다. 3김청산론을 펴면서 자신들이 속한 언론사의 세습과 족벌체제는 왜 침묵하는가. 외부의 부패는 질타하면서 왜 내부의 부패는외면하는가. 국세청을 동원하여 수백억원을 모으고 그것을 측근들이 몇억원씩 나눠쓴 것과 장관부인들의 고급옷 사건의 죄질은 어느쪽이더 나쁜가. 언론의 비판의 잣대는 이중적이어도 되는가. 넷째,군사독재에 부역해온 지식인들의 카멜레온같은 행동은 묵살하더라도진보적·양심적 지식인들의 처신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가개혁의 큰 흐름과 방향에는 침묵하면서 일부 비리·비행을 총체적인 부패로 몰아치는 비판활동은 근시(近視)지식인의 행태가 아닌가. 더구나 입만 열면 보안법 철폐와 재벌개혁을 외쳐온 지식인·사회단체·학생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상대를 용공으로 모는 매카시즘에 침묵하는 이유는또 무엇일까. 이같은 침묵과 방관 속에서 수구세력은 여론을 좌지우지하며개혁을 가로막는다. 청산의 대상이 개혁세력을 청산하고자 하는 한국적 파토스는 자칫하면 역사를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몰아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걸핏하면 ‘이념적정체성’ 운운하면서 상대를 용공으로 모는 수구세력과 왜곡 언론을 방치하고는 역사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현상을 초래한 데는 DJ정권의 책임이 크다. 역사적 청산작업을외면한채 어설픈 온정주의에서 개혁의 동반자로 삼으려다가 역습을 당하게된 것이다. ‘강권통치 앞에서는 비굴하고 온건한 정권에는 난폭한’ 일부 언론의 전횡이 바뀌지 않고서는 남북평화공존도,재벌개혁도,부패청산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다수 지식인과 정부는 그걸 모르는 것 같다. kimsu@
  • [아직도’색깔’공방인가] 野제기 문제점과 각계 반응

    또다시 ‘색깔론’이 정치권의 개혁논의를 주춤거리게 하고 있다.국가보안법을 손질하고 재벌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하려는 여권의 노력을 ‘용공’으로몰아붙이려는 게 이번 색깔론의 요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각계의 전문가들은 색깔론 제기를 ‘일종의 ’매카시즘의 망령’으로 보는 분위기다.정부의 다각적인 개혁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나아가 정치적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정치권 일각의 비뚤어진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박원순(朴元淳)변호사는 20일 “색깔론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정리했다.“21세기를 맞아 과거의 잘못을 정리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이러고 있을 때냐”며 개탄했다.더욱이 21세기 민족간 화해의 정치를 바라는 시점에 국보법개정에 대한 ‘반발’은 “해도 너무 한다”는것이 박변호사의 견해다. 김민하(金玟河)중앙대 교수(교총회장)는 ‘상황변화론’을 들면서 “50∼60년대 매카시즘을 상기시키는 전근대적인 생각”이라고 색깔론 제기에 문제를제기했다. 김교수는 “국민의 의식도,상황도 변했고 남북관계도 굉장한 변화의 시대를걸어왔다”고 전제,“지금은 색깔론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동질성회복을 위해 여야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라고 충고했다. 재벌개혁도 더 이상 물을 것이 없는 ‘시대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색깔론은한마디로 세계사의 도도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강정인(姜正仁)서강대교수(정치학)는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발하는 세력이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는 보안법을 개정하면 과거 정권이나 공안담당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는 셈이 되고 ‘과거’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비치기에 그런 것 같다”며 색깔론 제기 배경을 설명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의 색깔론 제기에 시민단체들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정치개혁 시민연대의 김석수(金石洙)사무처장은 “국보법 개정이 친북논의로정의되는 것은 과거 독재정권의 매카시즘”이라면서 “야당의 주장대로라면한국은 세계사회에서 반(反)인권적인 국가로 남거나 북한과 일전불사(一戰不辭)해야할 판이 아니냐”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의 고계현(高桂鉉)시민입법국장은 “IMF환란을 일으킨 재벌을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키우자는 개혁론이 색깔론으로 매도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여야는 정치적 시비와 공세로 국민을 호도하지 말라”고강조했다.민주개혁국민연합은 논평에서 “시장을 왜곡하는 재벌에 정부가 개입해 공정경쟁을 유도하려는 개혁은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합법적 행위”라면서 야당이 시대변화와 국민여망을 직시할 것을 촉구했다. 유민기자 rm0609@
  • [김삼웅 칼럼] DJP협력의 역사인식

    한국현대사에서 지도자들의 협력이 절실할 때 분열함으로써 국가의 진운에큰 타격을 입힌 경우가 적지 않았다.정치지도자들의 갈등과 반목이 역사를그르친 사례가 크게 네 차례나 있었다.첫번째는 여운형과 송진우다. 해방직후 이들이 손을 잡았다면 건국준비위원회의 좌경화를 막고 임시정부를 봉대하여 정통성 있는 정권을 수립했을지 모른다. 여운형은 해방직전부터 송진우에게 민족해방에 대비할 것을 제의했다.측근을 보내 제휴를 희망하고, 해방당일에는 직접 자택을 방문하여 함께 일할 것을 간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송진우가 여운형의 거듭되는 합작요청을 거절한 것은 일제협력의 자격지심과 들러리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 결과 해방정국은 엉뚱하게 흘러가고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암살당했다. 두번째는 해방공간에서 이승만과 김구의 분열이다. 두사람이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대의(大義) 아래 협력했다면 독립운동세력이 중심이 되는 정통성을갖춘 정부가 수립되고 친일파는 발붙일 곳을 상실했을 것이다. 당시 이승만과 김구는국민의 희망이었고 신화적 존재였다. 두 영수가 개인자격으로 귀국했지만 국민은 힘을 합해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정부를 세워줄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두 영수의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는 한민당과 인민공화국이 각기두 사람을 영수급으로 추대한데서도 드러난다. 만약 이승만이 집권 후 김구를 보호하고 후계로 삼아 제2대 대통령으로 지원했다면,그리하여 김구가 북한측과 새로운 남북협상을 시도했다면 6·25전쟁과 자유당의 12년 폭정은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세번째는 4월혁명으로 집권한 윤보선과 장면의 분열이다. 구파의 윤대통령과 신파의 장총리는 민주당의 한 뿌리이면서도 학생혁명이 갖다바친 정권을독식하고자 꼴사나운 이전투구를 벌였다. 내각제 대통령인 윤보선의 책임이컸다.힘을 모아 이승만정권의 부패와 사회악을 청산하며 경제건설과 민주발전에 전력해야 하는데도 권력다툼으로 1년여 만에 군사쿠데타를 맞아 탈권당하고 30여년의 군사통치가 자행되었다. 네번째는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이다. 1980년 ‘서울의 봄’때 양김이 협력했다면 신군부의 쿠데타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 6월항쟁 이후 후보단일화에 성공했다면 노태우정권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 헌정의 파행과 양민학살,그리고 전·노씨의 천문학적 부패의 사슬이 끼어들지는못했을 것이다. 역대 지도자들이 협력보다는 분열을 일삼아온 데 비해 김대중대통령과 김종필총리는 협력하여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IMF국난을 극복하면서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두사람의 협력은 민주화세력의 본류와 근대화세력의 본류가 합류하는, 한국정치사(사상사)에서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 5·16이래 갈등과 대립관계를 지속해온 두 세력이 공동정권을 수립한 것은 근현대사에서 개화와 쇄국, 독립운동과 친일매족, 통일정부와 분단정부, 민주화와근대화의 대립선상에서 처음으로 합치점을 찾았다는 의미가 부여된다.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들, 예컨대 40년 특정지역의 패권주의가 소외지역으로교체되었다든가, 반세기의 지배구조가 바뀌었다는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하겠다. 또 진보(상대적)진영과 보수(상대적)진영이 협력함으로써 ‘용공 매카시즘’을 극복하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펴게되고 민족민주운동의 희생자들이 재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DJP협력의 진정한 가치는 신의냐 대의냐,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를 뛰어넘는, 협력해야 할때 협력할 줄 모르는 우리 지도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처음으로바로잡는 ‘역사인식’이라 하겠다. 칠순을 넘긴 두 지도자와 측근들이 항상이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 한국언론재단 ‘남북교류시대 북한보도’ 출간

    한국언론재단은 최근 남북 화해·협력시대에 부응하는 남북관계 보도를 위한 연구보고서인 ‘남북교류시대 북한 보도’를 출간했다. 보고서는 새정부의 햇볕정책 추진으로 가속화된 남북간 교류·협력 추세에맞춰 우리 언론의 북한보도 관행을 신랄히 비판했다. 언론의 냉전적·반통일적 시각을 90∼98년까지의 북한관련 오보와 왜곡·편파 보도사례들을 소개하면서 꼬집은 것이다.그 연장선상에서 그 동안의 ‘사시적(斜視的)인’ 보도관행을 바로잡는 개선방향도 제시했다. 보고서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한국 언론은 정치·이데올로기적으로 냉전 패러다임이 지배적이었을 때 역시 냉전적 사고로 북한과 통일문제를 다뤄왔다.그러한 냉전적 보도 틀은 이념적으로 획일적·경직적이거나 ‘적이 아니면 동지’식의 이분법적 구도였다. 반면 과거 동서독간은 물론 중국과 대만 언론의 상호보도는 전반적으로 정경분리원칙과 ‘무이념’전략으로 특징지어진다.상대방을 긍정적이라고까지는 못해도 객관적으로 보도하려는 태도가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우세했다.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북한보도는 미국내 공화당 강경파가주도하는 보수적 틀에 의해 결정된다.따라서 한국언론이 이들 미국언론의 냉전적 보도를 부분적으로 발췌·인용,부풀리기를 자행하는 보도행태를 보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반통일 시각을 엿보게 한다. 분명한 사실은 기존의 냉전적 사고와 적대적 보도태도는 남북간의 신뢰구축과 이질성 극복에 도움이 안된다는 점이다.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당국이 남한의 일부 보수 언론에 대해 취재를 거부하거나 비난해 온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보도방식은 북한의 호전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반문명적이고 후진적인 이미지를 조장했다.그래서 통일회의론 내지 통일경계론,통일비용론같은 반북·반통일적 여론을 만들어왔다. 金大中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따른 남북교류시대를 맞이해 언론보도는 과거에 비해 다양한 접근방식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최근에 있었던 북한의 잠수정침투사건은 언론이 햇볕정책과 냉전 틀의 양극을 오가며 동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전적 보도 틀은 해방 이후50여년에 걸쳐 작동해 왔다.때문에 언론과 언론인의 자발적이고 의도적인 변화 노력 없이는 개선되지 않을 만큼 냉전논리는 체질화·관행화되어 있다. 햇볕론이 상호주의를 초월하는 포용책인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도 폐쇄적 북한체제의 개방을 대가로 요구하기보다는 먼저 신뢰를 얻고자 하는 대승적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새정부의 햇볕정책은 기존의 반공논리로 북한과 통일문제를 다루어온 보수 언론에 대해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변화의 방향은먼저 반공주의와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통일과 평화지향적 공존의논리로 탈바꿈하는 일이다.이와 함께 냉전 패러다임에서 탈냉전의 패러다임으로,이분법적 매카시즘에서 이념 스펙트럼의 확장과 개방으로 전환하는 일이 긴요하다.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자유부인’의 정치사회적 접근(1회)

    휴전 직후인 1954년 1월 1일부터 8월6일까지 ‘서울신문’에 215회(많은 연구서와 논문들이 8월 9일까지 251회라고 하나 잘못임)에 걸쳐 연재되었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은두 달 남짓만에 서울법대 황산덕교수가 “대학교수를양공주에 굴복시키고 대학교수 부인을 대학생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스탈린의 흉내”를 내는 작가의 고집으로 “중공군 50만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는 공격으로 야기된 논쟁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왜 하필 중공군 50만명인가란 문제는 한국전 때 참전했던 중국인민해방군의 숫자가 적게는 10만부터 많게는 100만명 설까지 분분한데 당시에는 대략 50만명으로 잡았던 데서 유래한 것 같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대목은 공격자가 매카시즘적 수사법을 태연하게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말하자면 이 소설의 작가는 ‘빨갱이’같은 한국사회 파괴범이라는 은유가 스며있어 휴전 직후의 상황에서는 끔찍한 사상적 표적사격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역사는 ‘자유부인’이 중공군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전후사회 체제를 공고히 다져준 유엔군과 같은 역할을 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지라 굳이 이 냉전체제의 낡은 논쟁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다만 황교수가 제기한 문제 때문에 ‘자유부인’이 윤리적인 측면에서만 논의되어 왔다는 점은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황교수가 첫 공격의 화살을 쏜 것은 ‘대학신문’ 1954년 3월 1일자였다.그러니까 ‘자유부인’의 장태연 교수가 아내를 찾아온 이웃집의 미군부대 타이피스트(황교수는 그녀를 양공주라 했다) 박은미양을 맞아 “감색 스커트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은미의 하얀 종아리”에 “별안간 가슴이 설레었다”는 유명한 장면이 나오고(이 소설 중 가장 에로틱한 장면인데 그 싱거움이라니!),그녀의 전화를 받고 아내가 사 준 약혼기념 회중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곤 돈 3,000원을 갖고 나갔으나 그녀가 낸 돈으로 영화를 한 편 보았으며,아내가 돌아오지 않은 밤 열 시 넘은 시각에 자신도 모르게 백지에다 박은미란 이름을 낙서하는 이야기가 2월 28일 경까지의 내용이다. 장교수의 아내 오선영은 옆집 대학생 신춘호의 방에서 춤을 배우던 중 “입술을 고요히 스쳐”가자 “그의 미지근한 태도에 오히려 불만”을 느끼는가하면 두 번째엔 짙은 포옹과 탱고 스텝으로 발전하며,화장품 상점 파리양행관리인으로 취직해 사기꾼 백광진과 사장 한태석을 번갈아가며 만나는 게 2월 말일 까지의 줄거리다. 1950년대 중반 무렵의 한국사회는 이혼율이 0.27%(1955년도 수치)에다 댄스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70여 여성을 농락한 박인수 사건(1954)이 터졌던가 하면 부산 피난 국회에서 개정된 간통쌍벌죄 형법의 첫 고소 사건(1954)이세인의 시선을 끄는 등에서 엿볼수 있듯이 윤리의 붕괴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었다.다만 춤다운 춤을 추자면 해군 장교구락부에나 가야할 정도로 사회적인 시설은 미비했었음을 이 소설은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황교수의 우려와는 달리 논쟁 이후의 소설 전개에서 장교수는 박은미를 처음 보았을 때의 에로티시즘에서 오히려 후퇴해 버렸는데,‘교수’의위신 세우기에 작가가 협조한 흔적이 역력하다.오선영은 신춘호와 세 번,한태석과 한 번,도합 네 번이나 육체관계 직전까지의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아이들이 부르러 오거가 오빠나 남편이 불쑥 나타나는가 하면 본처가 미행하다가 현장을 덮치는 등 번번이 방해 당하고 만다. 결국 ‘자유부인’은 ‘자유를 꿈꾸는 부인’으로 자유의 미수에 그치고 말았는데도 세인들은 이 소설의 윤리적인 측면만을 주시해 왔다.그러나 작가는 신춘호의 뺨을 쓸어주는 오선영을 “젊은 대학생이 제멋대로 씨부리는 말을 그대로 믿고” 황홀해 하는 어리석음을 꼬집으며 결국은 가정의 소중함을깨닫는 귀가형 결말로 대미를 장식하지 않았는가. [任軒永 문학평론가]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한하운 문화 빨치산사건(3회)

    이 무슨 야바우인가.당국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겠다던 바로 이튿날인 1953년 11월21일,이성주(李成株)내무부 치안국장은 한하운이 좌익이 아니라고 언명한다.그 사흘 뒤(11.24) 치안국은 한하운사건 조사경위를 밝혔는데 당시거의 모든 신문들이 그 발표요지를 기사화했으나 ‘서울신문’은 침묵하고있다.두 간부의 사직사유가 관계당국에 의하여 부당했음이 밝혀진 찰나였던지라 차마 그 기사를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비교적 냉정했던 ‘동아일보’(53.11.25)는 수사발표를 두가지로 요약 정리해준다.그 첫째는 한하운의 가공인물론으로 이 점은 의심의 여지없이 ‘한하운 시초’를 낸 장본인으로 밝혀졌다고 해명하며,참고로 본명이 한태영(韓泰永)인 그의 간략한 생애와 시 창작의 계기를 밝힌다.두번째는 수사의 초점이 바로 시 ‘데모’에 모아졌음을 밝힌다.원작에 있던 ‘물구비 제일 앞서 핏빛 깃발이 간다/뒤에 뒤를 줄대어/목쉰 조선사람들이 간다.’는 연과 4련 둘째줄에 ‘쌀을 달라! 자유를 달라!는’이란 구절이 말썽이었다.특히 ‘핏빛깃발’은 바로‘적기가’를 연상하는 대목으로 수사의 초점일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이 대목에서 한하운은 자신의 원작엔 그런 구절이 없었는데 편자(이병철)가 임의로 고친 것이라 발뺌했다고 전한다.수사당국은 이 시인의 진술을 믿지도 부인하지도 않은 채 계속 조사하겠다고만 밝혔으나 이제 한하운이 가고 없는 터라 그 진위는 가릴 길이 없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데모’의 원작이 이미 1949년 월간 ‘신천지’에 실렸었고 그게 다시 첫 시집 ‘한하운 시초’에 게재되었으며,그로부터 4년 뒤에 재판이 나왔다는 사실이다.아무리 자신의 작품에 무관심했다 해도 만약 그게원작이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었을 터이다. 다만 이 문제의 시 한편이 매카시즘의 세례를 받은 뒤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그는 1955년 시인 박거영이 경영하던 인간사에서 두번째 시집 ‘보리피리’를 낸 이듬해 6월15일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한하운 시전집’을 냈는데 여기서 시 ‘데모’는 원작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즉 위의 원작에 있던 구절을 삭제해버린 한편 끝 구절 ‘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를 ‘지나가고’로 고친다.이어 맨끝에다‘아 문둥이는 죽고 싶어라’를 첨부했는데 이 구절이야말로 당시 그가 겪었던 설움을 한마디로 토해낸 아픔의 부피를 전해준다.이것만으로도 그는‘자유대한’에서 살아가는 데 부족함을 느꼈던지 시 말미에다 ‘註 ooo(1946.3.13일 함흥학생사건에 바치는 노래)’라고 조심스럽게 사족을 달고 있다. 그렇다고 한하운의 불안의식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1960년 8월15일 신흥출판사 간행 자작시 해설 ‘황토길’에서 그는 ‘데모’의 배경이었던 함흥 시절을 조목조목 풀이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는 매카시즘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가 느껴진다.이후 시집부터 시 뒤에 붙었던 [주]항목이 부제로 승진하여 앞머리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시 ‘데모’는 원상복구가 필요하다.그래서 한하운의 문둥이의 서러움이 단순한 그 자신만의 아픔이 아니라 모든 나환자의 고통임을,아니 문둥이처럼버림받은 국민대중의 아픔임을 밝혀주는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그를‘빨갱이’로 몰아세웠던 언론은 관계당국의 수사발표 뒤 어떻게 했을까.‘평화신문’은 한하운이 방문하여 ‘병신인 나를 더 괴롭게 하는 의도를 알고 싶다고 전제하며’ 그 자신이 이병철로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고 말했다고 쓰면서도 시종 이런 변명이 자기가 쓰고도 월북하고 없는 이병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를 조사중이라고 꼬리를 잡고 늘어졌다.바로한하운으로 하여금 ‘데모’의 원작을 훼손시키게 한 요인이다.누군들 1953년 휴전 직후의 매카시즘 체제 아래서 이보다 더 말끔한 양심을 유지할 수있었을까.양심의 문둥이들이 육체의 문둥이에게 내린 린치에 다름아니었다.任軒永 문학평론가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9회)

    정음사에서 ‘한하운 시초’ 재판을 발행하자 관계당국은 예기치 않게 판매금지와 압수조치를 취했는데 그 사연인즉 이랬다.“세간에 커다란 물의와 비난을 자아낸 가운데 전국 각 서점에서 팔리고 있던 문제의 ‘한하운 시초’는 정부수립 이전 이미 좌익 선동서적이란 낙인을 찍었던 것으로서 동 서적의 재판발행에 즈음하여 당국의 태도가 자못 주목되어 오던 바 경남경찰국에서는 치안국의 명에 의하여 지난 8월 초순 이래예의 내사를 거듭해 오던 바 드디어 일제히 압수하였다고 하는데 앞으로도수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태양신문’ 53.8.24). 한하운이 시인으로 등단한 시기나 시집을 낸 것이 정부수립 이후인 1949년이란 점으로 볼 때 이 기사는 터무니없다.더구나 주간지 ‘신문의 신문’은 8월 1일자에서 그를 ‘문화 빨치산’으로낙인 찍어버려 악성 루머는 그가 유령인물로 문둥이로 위장해 좌익활동을 하고있다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하운’이란 호마저 국가 멸망의 저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시 전체가 적기가를 닮았다는 비난이 돌출된 바로이런 시점에서 문제의 ‘서울신문’ 특종이 나가자 금새 ‘태양신문’이 조목조목 따져가며 한하운과 그 주변 인물들(이리 농림학교 동창생 K씨,옛 연인 M양 등)은 물론이고 시인 박거영(朴巨影),조영암(趙靈巖),작가 최태응(崔泰應)과 시집을 내준 정음사 최영해(崔暎海)사장까지 모두에게 좌익과 연관된 비밀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민족적인 미움을 주자 -- 적기가 ‘한하운 시초’와 그 배후자]란 제목으로 1953년 11월 5∼8일까지 4회에 걸쳐 연재된 이 글의 필자는 이정선(李貞善) 평화신문 문화부장이었다.한하운같은 문둥이 서정시인을 투철한 빨치산 운동가로 분장시켜 현대 한국언론사에서 매카시즘의 한 표본이 된 이 글은 열정적인 반공의식으로 충만하여 시집 ‘한하운 시초’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정선에 의하면 “간 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마디/머리를 긁다가 땅위에 떨어진다”(‘손가락 한마디’)고 쓴 이유 조차도 “당국에 대하여 문둥이와 빨갱이를 판별 못하도록 하자는 농간이 있는 것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한하운의 시 ‘데모’‘명동거리 1’ 등과 이병철의 ‘한하운 시초를 엮으면서’란 선자의 말 중 한 두 구절씩을 인용하여 “공산주의 프로파간디스트”로 짜맞춰 부각시켰다.물론 한하운을 발굴한 시인 이병철을 거론하여 이제 그가 월북하여 사라진자리에다 조영암을 동원하여 이병철이 했던 말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고꼬집으면서 한하운과 그 배후세력의 가차없는 수사를 촉구했다.이 글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정음사 최영해 사장이 서울신문 취체역(이사)이며,한하운의 시를 한국 대표시의 하나라고 소개한 ‘현대시 감상’의 저자 장만영은 서울신문 출판국장이란 사실까지 거론하여 은근히 서울신문 전체의좌경화 이미지를 덧칠해냈다. 한하운을 좌경분자로 보게 된 배경 설명에서 이정선은 “그 당시 필자와 ‘신문의 신문’ 발행인 최흥조(崔興朝)씨와 그리고 아동문학가 김영일(金英一)등 세사람”이 모여 “‘한하운 시초’의 발간은 문화빨치산의 남침”이며,더구나 이병철의 글 내용을 살짝 고쳐 조영암의 이름으로 쓴 ‘후기’가 “민족적인 것으로 캄푸라쥬하여 전국 서점에 배본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신각도의 북한괴뢰들의 대남공작으로 간파하여야 한다”는 견해에 일치했었다고역설했다. 여기까지의 사건 개요를 요약하면 이렇다.한하운 시집 재판이 나온 게 6월,반공투사 셋은 잽싸게 각기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신문의 신문’(최흥조),‘태양신문’(김영일은 당시 태양신문 발행 주간지 ‘소년태양’에 근무),‘평화신문’을 통해 여론화 했는데 중과부적인 ‘서울신문’은 특종을 한지 3일만에 두 간부의 목만 억울하게 자르고 말았다.바로 그날 관계당국은 한하운을 본격 수사한다고 발표(11.20.실은 이미 11월 초부터 내사)했고,몇몇 언론의 고발에 국가기관이 본격적으로 개입하자 관망하던 언론들도 일제히 수사착수 기사를 쓰게 돼 이제 거지 한하운의 운명은 수사권에 당그라니 매달리게 되었다.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8회)

    매카시즘적 풍조가 문학인의 창작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 구체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은 1953년 휴전 직후였다.주인공은 나환자시인으로 명성을 올린 한하운이었고,사건 전말은 일부 언론매체가 그의 시집 ‘한하운시초(詩抄)’를 ‘적기가(赤旗歌)’같은 선동시로 몰아치면서 “민족적인 미움을 주자” 고 매도한 데서 발단됐다.‘빽’도 돈도 없었던 이 문둥이 시인은 졸지에 언론이 만든 ‘문화 빨치산’으로 취급 당해 관련 기관으로 불려 다니며 고초를 겪은 뒤 자신의 시를 고쳐쓰지 않으면 안될 딱한처지임을 절감하게 되었다.그는 원작에 되도록 손이 덜 가도록 몇 행을 빼고는 마지막에 한 줄을 첨가한 뒤 시 뒤에다 주(註)를 붙여 창작 배경을 변호해야만 되었다. 그날 이후 한하운이란 이름으로 나와있는 각종 시집이나 연구논문,각종 전집이나 시선집에도 원작은 간 데 없고 빨갱이로 몰려 부득이 고쳐 쓸 수 밖에 없었던 시작품을 고스란히 얌전하게 옮겨쓰고 있다.시에 못지 않게 문둥이라는 신체적인 조건에다 애달픈 로맨스로 더유명했던 한하운은 문학사의이채로운 존재로서 삽화적으로만 다뤄지면서 정작 그의 사회인식이나 역사적 활동은 도외시 당해왔다.바로 그 단적인 예가 시 ‘데모’ 개작 한 편에 축약되어 나타난다. 우선 현존 시집에 실린 시 ‘데모’(1)와 발표 당시의 원작(2) 전문을 소개한다. (1) ‘데모-함흥학생사건에 바치는 노래’“뛰어들고 싶어라/ 뛰어들고 싶어라.// 풍덩실 저 강물 속으로/ 물구비 파도 소리와 함께/만세 소리와 함께 흐르고 싶어라.// 모두들 성한 사람들 저이끼리만 /아우성 소리 바다 소리.//아 바다 소리와 함께 부서지고 싶어라/죽고 싶어라 죽고 싶어라/ 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아 문둥이는죽고 싶어라.” (2) ‘데모’ “뛰어 들고 싶어라/뛰어 들고 싶어라.// 풍덩실 저 강물 속으로/ 물구비파도소리와 함께/ 만세 소리와 함께 흐르고 싶어라.// 물구비 제일 앞서 핏빛 깃발이 간다/ 뒤에 뒤를 줄대어/ 목 쉰 조선사람들이 간다.// 모두들 성한 사람들 저이끼리만/쌀을 달라! 자유를 달라!는/아우성 소리 바다소리.//아 바다소리와함께 부서지고 싶어라/죽고 싶어라 죽고 싶어라/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 (1)은 현재 시판 중인 시집에 실린 것으로 부제는 1946년 3월 13일 함흥 학생시위 사건이다.한하운 자신도 이를 구경하다가 연행 당해 병보석으로 출옥했으나 다시 반국가 사범으로 투옥,역시 병세 악화로 석방,나병 치료약을 구하러 월남했다가 귀향 중 피체 당했다. 그리고 이감 중 원산에서 탈옥하여월남한 것이 1947년 8월이었다고 자전적 시 해설서인 ‘황토길’에서 밝힌다. (2)는 해방직후 최대의 종합월간지였던 서울신문 발행 ‘신천지’ 1949년 4월호에 월북시인 이병철의 추천사와 함께 실린 등단 당시의 작품이다.이것은 정음사에서 같은 해 5월30일에 낸 시집 ‘한하운 시초’에 그대로 실렸고,이어 1953년 6월 30일 재판본에도 그대로 게재되었다. 한편 ‘서울신문’은 1953년 10월 17일 ‘하운 서울에 오다-레프라왕자 환자 수용을 지휘’란 제목의 기사를 작품 ‘보리피리’와 함께 게재했다.사회부 오소백(吳蘇白)부장과 문제안(文濟安)차장의 사임으로까지 비화되었던 이 사건이야말로 매카시즘이 문학만이 아니라 언론계에도 암적으로 작용했음을 엿보게 한다.문제의 기사는 “4만5천명의 나병환자를 지도하는 문둥이의 왕자가 서울에 나타나서 서울 거리를 방황하는 나병환자들을 시 위생과의 협조아래 수용하기 시작했다”를 서두로 시인이자 나환자로서의 그의 각종 사회봉사활동을 간략히 소개한 뒤 “더욱이 한하운 시집으로 말미암아 문단에 여러 가지 파문이 던져지고 더구나 일부 신문에서는 마치 한하운이란 사람은유령과 같은 가상인물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는 지금 한씨의 출현은 나병환자들에게는 물론 문단과 일반에게도 크나 큰 센세이션이 아닐 수 없다.”고 그특종성을 부각시켜 사진까지 게재했다. 任軒永문학평론가
  • 민간 주도 범개혁운동 닻 올랐다/‘민주개혁 국민연합’ 어제 출범

    ◎정치권 개편·재벌개혁 등 제시 민간차원의 민주개혁추진 범국민운동체인 ‘민주개혁 국민연합’(상임대표 金祥根 목사 등)이 14일 서울 중구 정동 문화예술회관에서 시민·재야단체 인사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에서 “여야 정권교체로 권위주의 시대의 적폐를 청산할 기회를 맞았지만 부패한 특권세력들이 온갖 수단으로 국민의 개혁 열망에 저항하고 있다”면서 “4월혁명,6월민주항쟁 등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해 민(民)의 자율과 창의,독립성에 기초한 국민적 개혁운동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수구세력들이 정경유착,지역주의,매카시즘 등을 통해 개혁의 대상과 방향을 호도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사회진보와 평화통일을 향한 대장정이 중단된다면 우리 사회는 부정부패,빈부의 양극화,남북대결구조 심화 등 암담한 21세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연합은 주요사업 과제로 ●정치권 개편 및 선거제도 등 각종 정치제도 개혁 ●공적 기관의 구조개혁 및 공공부분의 부정부패 척결 ●재벌 및 금융,조세개혁을 통한 경제분야의 전근대적 요소 철폐와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의 복지 증진 ●남북 화해 및 통일 촉진 사업 등을 제시했다. 이날 창립대회에선 金祥根 목사,李昌馥 자주평화민족회의 상임의장 등 8명을 상임대표로,金觀錫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전 회장,李泳禧 한양대 명예교수 등 7명을 상임고문으로 선임했다.
  • ‘崔章集 교수 논문’ 월간조선 販禁결정 반응

    ◎“발췌왜곡은 언론자유 아닌 언론 폭력”/사회단체 “당연한 조치” 일제히 환영/대책위,조선일보 불매운동 강력 전개 崔章集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고려대 정외과 교수)의 논문을 보도한 월간조선에 대해 법원이 판매 및 배포금지 결정을 내리자 고려대와 시민단체는 당연한 조치라며 환영했다. 고려대 대책위원회는 ‘조선일보 왜곡보도 근절을 위한 고려대 연석회의’(회장 김준형·고대대학원 총학생회장)를 오는 16일 열기로 하는 등 앞으로의 활동 일정 마련에 분주했다. 대책위 소속 위원들은 지난 10월16일 대책위가 결성된 뒤 27일만에 내려진 결정을 환영하며 학내 뿐 아니라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강화할 것을 결정했다. 대책위는 조선일보 불매운동을 강력히 전개하여 조선일보의 반성을 촉구할 계획이다. 조선일보사가 일제시대에 저질렀던 친일기사 등 과거 행적에 대한 고발형식의 전시회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오는 30일에는 조선일보사를 추가 방문,항의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PC통신 동호인들로 구성된 ‘언론개혁 통신연대’(대표 김동필·29)도 동호인들간 연대를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金씨는 “월간조선의 왜곡보도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정당하다고 본다”면서 “조선일보의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여러 단체와 협의하여 유인물과 전단지를 배포하고 통신상에도 조선일보의 왜곡보도 자료를 폭로할 계획”임을 밝혔다. 시민단체도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13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불교방송 7층에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경실련,참여연대,전교조 등 20여개 단체가 대책활동 간담회를 갖기로 합의했다. 경실련 魏枰良 연구위원(38)은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학문자유의 기본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판결이라 생각한다”면서 “우리 사회는 이제 좌·우 대립을 넘어 개혁·반개혁의 새로운 구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林崇澤 사무총장(48)은 “문제점을 여러번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일단 이번 조치를 환영한다”면서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19개 문제항목 중 16개에서 이겼으니 자신들의 승리라고 아전인수(我田引水)적 해석을 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동”혹세 무민의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柳初夏 민교협의장(50·충북대 철학과 교수)은 “이번 사건은 국민적 동력을 집중하고 합의해야 할 시점에 불필요한 논쟁을 종식시켜준데 의미가 있다”면서 “정치권,언론,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 본질의 하나인 사상의 자유 원칙을 존중해야 하고 이에 반하는 수구세력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金起式 사무국장(33)은 “언론이 검증한다는 명목으로 학문적 성과를 부분 발췌하여 왜곡하는 것은 일종의 언론 폭력이다”고 규정하면서 “이번 판결은 언론 자유의 범위를 벗어난 것임을 명확히 해준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 李敏壽 대외협력부국장(37)은 “법원의 결정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라면서 “조선일보사가 崔교수의 저작에 대해 필요에 따라 짜집기하는 등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을 적극적으로 바로 잡는 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소송 법적절차는/崔 교수측 ‘가처분’으로 정당성 확보/재판부 결정 번복 가능성 희박/명예훼손·사상검증 자유 맞서 조선일보사가 지난 11일 법원이 내린 ‘월간조선 11월호’ 발행·판매 및 배포 금지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키로 함에 따라 崔章集 교수의 논문해석을 둘러싼 법정공방이 2라운드로 접어들게 됐다. 이의신청은 잠정적인 조치를 취하는 가처분 결정에 불복,정식 재판을 통해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하는 절차다. 심리는 이번 결정을 내린 서울지법 민사합의51부(재판장 申暎澈 부장판사)가 맡는다. 다음달 초부터 열릴 이의신청 공판에서는 “공인에 대한 언론의 사상검증은 헌법도 보장한 자유”라는 조선일보측 주장과 “사실을 왜곡해 명예를 훼손한 행위까지 언론의 자유로 볼 수 없다”는 崔章集 교수측 주장이 맞설 것으로 보인다. 또 ‘6·25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 등 문제가 된 10군데에 대한 견해를 밝힐 정치학자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과정에서도 설전이 예상된다. 정치학자의 증언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증인의 중립성’ 여부가 논쟁거리로 부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가처분 결정을 내린 재판부가 자신의 결정을 뒤집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쨌든 양측은 이의신청 판결에 대해 서울고법에 항소할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崔교수측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같은 법원 민사합의25부(재판장 李性龍 부장판사)에서 따로 진행된다. 심리에서는 월간조선 기사로 인해 崔교수의 명예가 훼손됐는지와 훼손됐으면 그 위자료는 얼마인지를 결정한다. 崔교수가 승소할 경우 위자료 액수는 보도 경위,매체의 영향력,기사 분량,월간조선 11월호의 판매 정도 등을 감안해 결정된다. 이의신청과 손해배상 소송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가처분 결정을 얻어낸 崔교수측이 한층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상태다. ◎‘崔 교수논문’ 논쟁 전말/월간조선 ‘좌파적 시각’ 게재에 시민단체 등 “매카시즘” 강력 비난/崔교수측 손해배상 소송/국내 외 학자·단체들 조선일보 비난성명 봇물 崔章集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고려대 정외과 교수)의 논문에 대한 논쟁은 조선일보가 10월 18일 발간한 월간조선 11월호에 ‘崔章集 교수의 충격적 한국전쟁관’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월간조선은 96년 10월 출판된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이란 崔교수의 저서에 들어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하나의 이해’란 논문을 문제삼았다. 이 논문은 崔교수가 90년 9월 ‘한국전쟁 연구’란 책에 발표한 것으로,월간조선은 ‘6·25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 ‘南進은 민족해방전쟁,北進은 가공할 사태’라는 소제목 아래 崔교수의 논문이 좌파적 시각에서 쓰였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은 또 93년 4월에 발간된 ‘한국민주주의의 이론’이란 崔교수의 책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崔교수가 “한국전쟁은 미국이 金日成으로 하여금 남침을 하도록 유도한 결과로 일어났다”는 내용의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을 “한국 정치학의 연구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이면서 커다란 영향을 미친,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미치게 될 매우 복합적인책”이라고 칭찬했다는 것이다. 崔교수는 월간조선의 보도가 논문 가운데 일부 내용만을 발췌해 왜곡했다며 지난달 23일 서울지법에 월간조선 11월호의 배포금지 가처분신청과 5억원 상당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崔교수는 24일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월간조선은 金日成의 6·25 개전 결정과 관련해 전후 맥락을 빼버린 채 ‘역사적 결단’이라고 인용함으로써 마치 내가 이를 찬양한 것처럼 표현하고,심지어 조선일보는 내가 쓰지도 않은 단어인 ‘위대한 결단’이라고까지 표현했다”고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연일 사설과 기고,우익단체들의 崔교수에 대한 비난 등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에 비례해 국내외 학자와 시민단체들의 조선일보에 대한 비난도 강도가 점점 높아졌다. 정치학회는 성명을 통해 “월간조선의 기사는 공정한 인용에 바탕한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논지의 부당한 왜곡에 근거한 이념적 폭력”이라며 매카시즘적 마녀사냥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민주노총 등은 “월간조선이 崔교수의 논문을 왜곡보도해 사상논쟁을 유발하고 용공조작을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정치연구회,민족예술인총연합,국민승리21,4월혁명회 등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단체의 성명이 줄을 이었다. 특히 미국 UCLA의 신기욱 교수(사회학)와 존 던컨 교수(동아시아 언어문화사) 등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의 한국학 학자 22명이 성명을 통해 “(조선일보 보도는) 냉전시대에나 통할 단순 흑백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1월 3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성명을 냈고,국민승리21은 조선일보사 사옥 앞에서 규탄집회를 가졌다. 6일에는 경실련,흥사단,환경운동연합 등 50여개 시민단체가 가입한 한국시민단체협의회가 조선일보사의 사상검증 시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언론개혁통신연대,고려대대책위 등 4개 단체는 이날 조선일보 앞에서 규탄집회를 가졌다.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우익단체들의 성명도 잇따랐다. 대한민국 건국 50주년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국가 정통성을 부인하는 崔章集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崔교수의 논문 논쟁은 11일 법원이 월간조선 11월호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지 않는 한 배포할 수 없도록 판결을 내림에 따라 1라운드는 崔교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논문 논쟁 일지 ▲10월18일 ­월간조선 11월호,‘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崔章集의 충격적 한국전쟁관’이라는 기사에서 崔교수의 사상문제 제기. ▲10월20일 ­崔교수,월간조선 보도에 대한 반박문 발표. ▲10월23일 ­崔교수,서울지법에 월간조선 11월호 배포 금지 가처분신청 및 약 5억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 제기. ▲10월26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와 고려대 정외과교수,조선일보 비난성명 발표 ▲10월27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조선일보의 과거 행적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 발표. ▲10월2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조선일보의 사상 시비중단을 촉구하는 성명 발표. ▲10월30일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의 학자 22명,조선일보의냉전적 사고를 비판하는 성명 발표. ▲10월31일 ­예비역 영관 장교 모임인 대한청죽회,‘崔章集 건국사관 규탄 결의대회’ 개최. ▲11월2일 ­언론개혁시민연대,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참여연대,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학술단체협의회 등 5개 단체,‘崔章集 교수의 현대사 연구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태도­실태와 문제점’이라는 토론회 개최. ▲11월11일 ­서울지법,월간조선 11월호 배포 금지 결정.
  • 새로쓴 言官史官(金三雄 칼럼)

    언론인 출신의 사학자 千寬宇 선생은 ‘언관과 사관’이란 글에서 현대의 언론인은 왕조시대의 사관과 같다고 했다. 임금의 말 한마디로 생명이 좌우되기도 하는 시대,그 속에서도 할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언관의 책임이라는 것,그는 언관의 기개를 서거정(徐居正)의 말을 빌어 “항뇌정(抗雷霆) 도부월(蹈斧鉞) 이불사(而不辭)”(벼락이 떨어져도 목에 칼이 들어가도 서슴지 않는다)라고 썼다. 추상열일과 같은 언관의 기개다.조선왕조가 끊임없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도 500년 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언관과 사관의 기개 때문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과 함께 역사를 쓰는 사가들의 기개 또한 대단하였다.단재 신채호 선생이 31세때인 1910년 국치 4개월 전에 안창호·이갑 등과 망명길을 떠나면서 가져간 책이 있다.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東史綱目)’필사본이다. 동사강목은 안정복이 22년간에 걸쳐 완성한 노작으로 단군조선부터 고려말까지를 다룬 실학기의 대표적 역사서다. 단재는 이 책을 짊어지고 고국을 떠나 만주·노령연해주·중국땅을 전전하면서 우리 고대유적과 유물,사서(史書)를 두루 섭렵했다. 단재는 이 책을 자료로 삼고 연구를 거듭하여 ‘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등을 집필하였다. 안정복이 단재의 스승인 셈이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역사가의 중요한 원칙으로 ①계통을 밝힐 것 ②찬탄자와 반역자를 엄하게 평할 것 ③시비를 바르게 내릴 것 ④충절을 높이 평가할 것 ⑤법제를 상세히 살필 것을 들었다. 안정복의 다섯가지 원칙은 언론인이 지켜야 할 수칙이기도 하다. 오늘의 언론인은 어제의 언관이고 내일의 사관이기 때문이다. 언관이고 사관인 언론인은 모름지기 역사를 의식하면서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한다. 군사독재시절부터 길들여진 냉전논리와 수구세력과의 유착 커넥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젖어온 안보상업주의 멘탈리티를 깨뜨려야 한다. 남북이 차츰 화해와 교류의 물꼬를 트고 서유럽국가들의 정치이념 지도가 바뀌는 터에 냉전의식과 매카시즘으로 중세기적 마녀사냥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히틀러 피아노 건반 언론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앙그리프(Hangriff:공격)’란 신문을 창간하면서 “신문은 피아노 건반이다”고 썼다. 히틀러는 이를 받아서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천국도 지옥으로 느끼게 하고 반대로 더없이 비참한 생활을 낙원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은 나치즘적 언론관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양심세력을 모해하는 글쓰기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 나치가 패망한 지 반세기도 더 지났는데 언제까지 ‘피아노 건반’식의 글쓰기를 한다면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레이몽 아롱의 비판정신 ‘지식인의 아편’을 쓴 레이몽 아롱은 지식인의 비판활동의 유형으로 기술적 비판, 논리적 비판,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들면서, 어떤 유형의 비판활동이든 양심과 진실의 전제가 아니면 비판의 자격이 주어질 수 없다고 했다. 언론인과 지식인은 레이몽 아롱이 지적한 양비론의 기술적 비판이나 길들여진 냉전논리의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지양하고 당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리적 비판정신을 따라야 한다. 개혁과 민족화해 ‘시대정신’으로 모아지는 때에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식의 언론활동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그리하여 선배 언관과 사관에 부끄럽지 않은 언론인으로 개혁과 민족화해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
  • 崔章集 교수 옹호여론 비등

    ◎국민화합시민연­‘최 교수 인권유린’ C일보 사과해야/한국 정치학회­학자의 학문적 성과를 작위적 재단/고대 총학생회­왜곡언론 불매운동·항의전화 계획 崔章集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고려대 정치학과교수)의 한국 현대사관련 저술 내용이 북한에 유리하게 평가되었다고 보도한 ‘월간조선’에 대해 시민단체와 학계의 비난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국민화합시민연대(공동대표 張潤煥)와 국민화합운동연합(사무총장 奇世春)은 26일 성명을 발표,“‘월간조선’은 정치학자의 연구논문을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잣대로 공격하며 학문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면서 나아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2의 건국운동이 마치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운동인 양 의심하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매카시즘적인 의심과 시대착오적 여론조작을 통해 체제부정 논리를 유포하고 있다”면서 “매카시즘적 논쟁을 즉각 중단하고 崔교수의 인권을 유린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정치학회(회장 白榮哲)도 최근 발표한 성명서에서 “‘월간조선’의 기사는 사실 및 논지의 중대한 왜곡이자 이데올로기적 인신공격이라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문제의 기사는 오랫동안 한국정치를 가르치고 연구해온 학자의 학문적 성과를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작위적으로 재단하여 문제삼고 崔교수가 마치 친북적인 학자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고려대학교 정외과 교수들도 “‘월간조선’의 기사는 단어와 자구의 선택적 인용과 표현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崔교수의 논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본다”면서 “주관적 잣대에 따라 崔교수의 사상을 공격하고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대학원 총학생회도 “이번 보도는 학문적 저술에 대해 의도적인 왜곡을 가함으로써 한 교수 차원이 아닌 전체의 학문적 성과와 발전을 왜곡하고 있다”며 불매운동과 항의전화운동 등을 펴겠다고 밝혔다.
  • 매카시 망령 무엇을 노리나/金三雄 상무·주필(時論)

    우리 시대의 대표적 정치학자로 꼽히는 崔章集 교수의 사상이 의심스럽단다.지금까지는 멀쩡하다가 金大中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그의 사상이 도마위에 올랐다. ○일부 언론 ‘사상 칼춤’ 그것도 검찰이나 정보기관이 아닌 월간조선이 칼질을 시작했다. 5년전 金泳三정권 초기 총리 겸 통일원장관에 취임한 韓完相 교수를 사상 문제를 제기하여 결국 퇴진시킨 바 있는 일부 언론이 다시 ‘사상 칼춤’을 추고 나섰다. 金泳三 정권은 韓부총리의 퇴진을 계기로 개혁이 좌초되면서 수구세력에 둘러싸여 참담한 국정실패를 가져왔다. 이런 경험을 가진 국민들은 崔교수에 대한 ‘사상 칼춤’이 무엇을 노리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1950년대 미국사회에 용공선풍을 일으켰던 매카시는 교묘한 과장법으로 상대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 정보관련기록의 ‘반역’을 ‘반역자’로 묘사하고, ‘피의자’는 ‘중요한 피조사자’,‘러시아 이름을 가진 세명’은 ‘러시아인 3명’, ‘고위관리’는 ‘고위 관리들’,‘첩보원’은 ‘첩보원들’로 조작하였다. 그리고 ‘소련의 포섭대상’은 ‘소련의 첩보원’,‘친공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바꿔서 활용했다. 또 ‘자유주의적’이란 문구는 ‘공산주의 성향이 강한’이란 표현으로,‘공산주의 동조자’는 ‘활동중인 공산주의자’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단어를 조작하여 억지 공산주의자로 만든 것이다. 이런 결과 로젠버그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이 반역죄로 기소되어 처형되고, 원자탄제조를 지휘했던 오펜하이어 박사마저 반역죄로 몰려 처벌받게 되었다. ○반공 내용 철저 외면 그러나 허위나 조작이 오래 가기는 힘들다. 웰치 변호사의 끈질긴 추적으로 덜미가 잡힌 매카시는 병역사실의 조작등 개인 비리까지 드러나 탄핵되면서 미국사회의 매카시선풍은 사라졌다. 한국사회의 매카시즘은 아직도 기승을 부린다. 월간조선의 崔교수에 대한 모해는 언론 매카시즘의 전형이다. “학자의 학문적 성과를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특정 문구를 작위적으로 재단하여 문제삼고 崔교수가 마치 친북적인 학자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한국정치학회 성명)는 바로 그대로이다. 학자의 연구성과, 특히 대통령자문위원장의 논문이 조명되고 바판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논문의 전체를 비판해야지 단어 몇개 문장 몇 구절을 토막쳐서 문제를 삼는것은 정당한 비판의 자세가 아니다. 월간조선은 崔교수의 글에서 “6·25 최대희생자는 북한민중” 등 몇 구절을 뽑아서 사상에 붉은색을 칠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반공적 내용은 철저히 외면한다. 예컨대 “주체사상은 불가오류의 김일성 유일체제를 강화하는 대중동원의 이념적 기제로서 작용하여 왔다. 이제 주체사상은 민중이 오직 하나의 정점에 의해 지도되고 동원의 대상으로 설정되는 민중소외, 민중대상화의 기능을 탈피하여 문자 그대로 민중주체의 민중자율성의 원칙과 이념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한국전쟁의 한 해석’) 이 구절은 북한의 가장 아픈 대목이다. 이 내용만 떼어내 읽으면 崔교수는 극우적 반공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정권 상처내기 외도 월간조선의목표는 崔교수가 아니라 金大中 정권이다. “崔교수가 관계한 ‘제2건국운동’은 어디로 가나”란 광고문에서 나타나듯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제2건국운동, 나아가 金大中 정권에 용공의 너울을 씌워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정부를 비판하고 학자를 비판하는 행위는 언론의 본질이다. 하지만 비판이 비판의 정당성을 얻으려면 공정성과 사실성에 입각해야 한다. “학자의 학술 연구를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해 견강부회식으로 왜곡하여 매도하는 것은 학자의 인권과 명예에 대한 침해”(한국정치학회)이며, “언론이 표피적으로 왜곡된 사실로써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崔교수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으려는”(김학준 인천대총장) 매카시즘이다. 한국언론과 정계일각에 똬리를 튼 매카시 망령을 박멸하는 길은 없는가.
  • 월간조선 ‘崔章集 교수 이념시비’ 파문 확산

    ◎“의도된 신매카니즘” 비판 봇물/쓸데없는 사상논쟁 국가적 손해 초래/기득권측 개혁 저항·상업적 이익 꾀해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고려대 崔章集 교수의 학술적 성과를 둘러싸고 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崔교수에 대한 월간조선의 보도가 언론사의 ‘의도된’ 신(新)매카시즘적인 행태”라고 비판하고 있다.다른 정치학회 회원들도 崔교수가 대통령 자문기구의 위원장임을 문제삼아 현 정권의 사상문제를 쟁점화하려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학계 일각에서는 “쓸데없는 사상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국가에 상처만 남기고 해당언론사에 대한 상업적 이익만 안겨줄 뿐”이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각계의 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23일 한국정치학회(회장 백영철)는 “崔교수가 6·25를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고 했다”는 월간조선 보도와 관련,성명서를 내는 등 지식층 각계에서 월간조선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성명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정치학회는 22일 긴급 상임위원 회의를 23일자로 정리하면서 “월간조선 보도행태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강한 톤의 성명을 냈다.정치학회는 “학자의 학술연구를 특정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해 견강부회식으로 왜곡,매도하는 것은 학자의 인권과 명예에 대한 침해”라면서 이같이 비판했다. 19개 시민단체 모임인 정치개혁시민연대(공동대표 孫鳳鎬)도 22일자 성명에서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층의 반격은 항상 사상문제를 매개로 한 매카시즘 형태로 나타났다”면서 “기득권층이 개혁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崔교수의 사상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면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명지대 정외과 申律교수는 “월간조선 보도태도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뿐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요·유도하려는 신매카시즘적 발상이며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악용한 고전적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은 문민정부 시절 당시 韓完相 통일원장관,金正男 교문수석에 대해서도 사상·이념을 문제삼아 ‘사상시비’를 제기·확대시킨 바 있다. ◎정치학회 성명 요지/“견강부회식 매도이며 이념적 폭력” 우리는 문제의 기사가 사실 및 논지의 중대한 왜곡이자 이데올로기적 인신공격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한다.학문적 성과를 전체 맥락과 관계없이 특정 문구를 작위적으로 재단해 문제삼고 최교수가 마치 친북적인 학자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학술연구를 특정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해 견강부회식으로 왜곡하여 매도하는 것은 학자의 인권·명예에 대한 침해임은 물론 자유로운 창의에 바탕한 학문자유와 학문활동,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인다.문제의 기사는 기본논지의 공정한 인용에 바탕한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논지의 부당한 왜곡에 바탕한 것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지적·이념적 폭력이다.이는 학자들의 자유로운 의견제시를 막아 학문활동을 위축시키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한국정치학회는 학문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월간조선에 대해 사실및 논지 왜곡에 근거한 매카시즘적 마녀사냥을 중단할 것과 문제의 기사에 대한 적절한 정정과 사과를 촉구한다. 한국정치학회 회장 ◎崔章集 교수 인터뷰/“개혁 불이익 우려한 기득권 언론의 공격”/사회분위기 이제는 그같은 행태 용납 않을것 崔章集 고려대 교수(정치학)는 23일 현대사 연구 논문을 둘러싼 월간조선과의 이념 시비에 대해 “개혁이 가져올 불이익을 우려하는 기득권 언론의 공격”이라면서 “이제 사회 분위기는 그같은 왜곡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崔교수는 “이런 왜곡 시비가 통용되면 학문의 영역이 침해받고,정부의 개혁 의지도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념 시비에 대한 입장은. ▲한마디로 황당하다.개인적으로는 비판이 있으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그러나 이번 같은 일이 통용되면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공부하는 학자들의 학문 영역이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 ­월간조선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정권이 교체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자 기득권의 이익이 흔들리고 있다.그 때문에 일부 언론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돼 어떤 피해의식이 생긴 것 같다.개혁이 가져올지 모르는 불이익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차원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왜 崔교수의 논문이 쟁점이 된 것으로 생각하나. ▲정부의 개혁적인 인사들을 선별 선택해서 집중 공략하는 것 같다.정부를 취약하게 만들려고 흔들고,개혁의 의지를 약화시키자는 생각일 것이다. 정의와 개혁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부패하지 않으니 이념밖에는 무기가 없을 것이다.우리사회의 취약한 부분이 이념인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崔교수의 논문에 오해받을 대목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것은 논문을 과장 해석한 것이 아니고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무슨 이념을 가진 진보와 보수의 대결 같은 게 아니다.일방적으로 말도 안되는 공격을 하는 것이다.언론으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며,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문민정부 초에도 韓完相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과 金正男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이 이념 시비로 물러난 바 있는데. ▲그 때와는 다르다.다른 언론 매체들도 그 때와 달리 신중한 것 아닌가. ­향후 대응 방향은. ▲소속해 있는 정치학회와 사회과학계,더 나아가 지식인 사회가 격분하고 있다.그들은 이번 논란을 언론의 횡포,폭력이라고 생각한다.사회 분위기를 보면,이미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없다.
  • 법의 괴물인가,축복인가/朴元淳 변호사(서울광장)

    “과거 공산주의를 대신해 성을 대상으로 삼은 또 다른 매카시즘”이자 “미국식 법절차가 만들어낸 하나의 괴물”.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성추문과 관련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 보고서에 대해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이렇게 냉혹하게 비판했다. 백악관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스타 특별검사가 임명되면서 임무로 부여받은 화이트워터사건은 이 445쪽짜리 방대한 보고서에 단 두번쯤 언급되고 나머지 대부분이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에 집중되어 있음을 비판하면서 백악관측은 스타 특별검사의 대통령 흠집내기라는 ‘불순한 의도’를 드러내고자 한다. ○실세 겨눈 특별검사 칼날 그러나 르몽드의 혹평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그것은 미국의 엄정한 제도적 견제 장치와 도덕성의 저력이다.막강한 미국정부의 권한,여러 주들의 연방체제,다인종사회의 갈등,이 모든 미국의 문제를 그토록 엄정한 견제와 감시,높은 도덕성의 요구없이 어떻게 조정되고 진화될 수 있겠는가.특별검사제는 미국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와 비리을 향해 겨누고 있는 비수와 같은 것이다. 닉슨을 비롯한 적지 않은 공직자들이 이 비수에 찔려 비운의 길을 걸었다.그것은 미국식 법절차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도덕과 윤리를 지키고 있는 ‘파수병’이다. 4년6개월동안 무려 4,000만달러를 쏟아부으면서 대통령의 ‘배꼽아래 일’마저도 끝없이 추적하여 ‘음란문서’를 만들어내도록 허용하고 있는 미국의 법제도는 차라리 축복이다.대통령에게 보고되고 백악관에서 토론되고 작성되는 모든 문서를 보존하고 이를 국가재산으로 후손에게 그대로 넘기도록 하는 대통령기록보존법은 하나의 문명이다.온갖 소송으로 미국 정부를 포함한 각계를 괴롭히는 80만명에 이르는 변호사들도 궁극적으로 그 사회의 게임의 룰과 합리성과 생산성을 담보하는 전사들이다.이 모든 제도들의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국의 안정과 부강은 이런 제도들에 빚지고 있는 바 크다. 우리도 전직 대통령들을 감옥에도 넣고 마음대로 욕하는 시대를 맞았다.현직 대통령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험담을 공개석상에서 마구 하는 사람이 나오는 시대가되었다.그러나 검찰권은 권력을 잃은 전직대통령과 전직 장관,권력의 빛바랜 야당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만 매섭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권력의 실세,대통령과 여당에게도 매서울 수 있는 검찰이 되는 날이 있을까. 우리의 역사와 경험이 가르쳐주고 있는 바,그것은 특별검사제 뿐이다. 야당으로서 편파적인 검찰권 행사의 해를 가장 많이 보았던 국민회의가 특별검사제의 열렬한 옹호자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그런데 이제 가해자였던 한나라당은 야당이 되었고 국민회의는 여당이 되었다.한나라당은 특별검사제를 요구하고 있고 국민회의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제도에 의한 司正 보장을 진정으로 깨끗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권력의 이양이 있고 난후에도 떳떳하기 위해서는 지금 특별검사의 매서운 칼날에 몸을 맡겨 두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지금 새정부에 충성하는 검찰이 몇년 후 매서운 칼날이 되어 돌아올 것은 뻔한 일이다. 이제 우리도 대통령의 사정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도에 의해서 사정이 이루어지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더 이상 정치에 의해 사법적 정의가 오염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 수는 없다.우리도 ‘법절차가 만들어낸 괴물’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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