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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민주보다 경제가 우선”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은 지금 사회주의의 초급 단계에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27일 장문의 글을 내놓았다. 발표 시점이나 장소를 밝히지 않은 채 국영 신화통신이 글을 전재한 형식을 띠었다.5300자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 대단히 이례적이다. ‘사회주의 초급단계의 역사적 임무와 대외정책의 몇가지 문제에 관해’라는 제목의 글은 “지금은 경제발전에 매진할 때”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먹고사는 데 진력하자.’는 새삼스러운 언급을 두고 전문가들은 “정치와 민주화, 제도 등 각 부문에 쏟아지고 있는 각계각층의 요구에 대한 응답”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당 중앙의 공식적인 첫 반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날 “최근 잇따르는 민주화 압력과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개혁 요구에 대한 당국의 공식 반응”이라고 평가했다. 또 원 총리의 글은 물권법과 양극화 문제 등으로 수년전부터 본격화한 좌우 이념논쟁에 대해 당이 내놓는 공식적인, 첫 입장 표명이기도 하다.4세대 지도부의 집권 2기가 시작되는 올 가을 17차 당 대회를 앞두고, 주변 정지작업을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이에 앞서 3월에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치협상회의 등 양회(兩會)에서 표출될 의견들을 향해 당 중앙의 노선과 의중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한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국가의 상황과 역사 단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당이 제시한 과학이론의 기본 근거이며 업무의 주요 전제”로 시작하는 첫 문장은, 역사적 좌표를 인식하라는 촉구와 경고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민주보다는 경제가 우선이며, 지금은 정치개혁을 가속화하거나 확대할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원 총리는 “사회주의 초급단계라는 것은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 제도도 완전히 성숙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산력의 지속적인 발전없이는 사회주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성이나 사회정의를 이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사회 일각에서 제기된 정치와 민주화 문제에도 적극 대응했다.“민주화는 사회주의의 속성이며 우리는 사회주의의 틀 안에서 민주화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자기만의 민주제도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정치개혁은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원칙 아래 경제개혁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이행돼야 하며, 경제발전을 막는 정치제도 개혁에 우선권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원 총리는 “우리는 앞으로 100년간 초급단계의 기본 발전전략을 고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이른바 개혁파 이론가의 하나인 셰타오(謝韜) 전 중국인민대학 부총장은 지난 20일 공산당이 발간하는 주간지에서 “제국주의 몰락 이후 3개의 사회제도가 생겼다.”면서 중국이 지향해야 할 모델로 노르웨이식 사회민주주의를 제시했었다.저우루이진(周瑞金) 전 인민일보 편집인도 이달 초 남방도시보 인터뷰에서 “중국의 안정을 위협하는 경제적, 사회적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 단행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jj@seoul.co.kr
  • [K-리그] K리그 별들의 귀환 “우리가 돌풍의 핵”

    프로축구 K-리그의 인기가 식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2005년 K-리그는 ‘천재’ 박주영의 출현으로 사상 최다 관중(287만 3351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경기수가 늘었던 지난해에는 245만 5484명으로 떨어졌다. 위기 의식이 반영됐는지 14개 팀은 저마다 화끈한 공격 축구를 천명하고 나섰다. 리그 운영 방식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별들의 복귀가 유난히 많아 르네상스가 오는 것 아니냐며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25년째를 맞은 K-리그는 새달 3일 지난해 정규리그챔피언 성남과 FA컵 우승팀 전남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9개월 동안 254경기를 치르는 대장정에 돌입한다. ‘돌아온 별,K-리그 르네상스 이끈다.’ 2007년 K-리그의 화두는 ‘반지의 제왕’ 안정환(31·삼성)과 ‘앙팡 테리블’ 고종수(29·대전)의 귀환이다. 안정환과 고종수는 1990년대 말 이동국(28·미들즈브러)과 함께 K-리그 중흥의 기폭제가 된 대형 스타였다. 특히 이들 세 명이 함께 뛴 1998∼2000년 3년 동안 국내 축구 열기는 유례없이 뜨거웠다.1996년 데뷔한 고종수는 98년 최우수선수(MVP)가 됐고, 이동국은 98년 신인왕, 이동국과 함께 프로에 데뷔한 안정환은 99년 MVP였다. 이동국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떠났지만 이와 동시에 안정환과 고종수가 돌아와 K-리그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한·일월드컵에 이어 독일월드컵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솜씨를 뽐낸 안정환은 그러나,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로 떨어진 뒤스부르크를 떠나 빅리그 잔류를 모색하다 6개월 이상 무적 상태가 됐다. 실전 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표팀에서 제외되는 수모도 맛봤다. 지난달 수원 유니폼을 입으며 7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사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 시절을 제외하면 안정환의 해외 진출은 그다지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5개 팀을 전전하며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소속팀 훈련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안정환의 화려한 부활이 기대되는 이유다. 차범근 수원 감독은 “안정환 영입으로 공격진이 강해져 미드필더와 수비진이 더 안정적으로 가동될 수 있게 됐다.”면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안정환이 멋지게 부활해야 한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천재로 각광받다가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에서 탈락한 뒤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했으나 적응에 실패, 내리막을 걸었던 고종수의 귀환은 더욱 극적이다.2005년 전남에서 방출되며 지난해엔 무적 상태로 그라운드를 밟아보지도 못했다. 이제 대전에 입단한 뒤 올해가 축구 인생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체중을 줄이며 훈련에 매진했다. 오른쪽 무릎 십자 인대 부위에 이상징후가 있어 따로 재활 훈련을 했지만 정밀 검사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명났다. 최윤겸 대전 감독은 “패싱이나 킥, 드리블 능력은 예전 그대로”라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체력과 자신감 회복”이라고 했다. 고종수의 복귀전은 새달 11일 울산과 치르는 홈 개막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사설] 포스텍 수석 졸업생이 의대 가는 현실

    포스텍(옛 포항공대)에 수석으로 입학해 생화학을 전공한 뒤 졸업할 때도 수석을 차지한 여학생이 서울대 의대로 편입한 사실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 학생의 성적은 포스텍이 20년동안 배출한 수석졸업생 가운데서도 두번째로 높은 점수였다고 하니, 본인 스스로 전공 분야 공부에 얼마나 매진했을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서 ‘한국 과학계의 차세대 리더’로 큰 기대를 모았을 테고 그만큼 장래도 보장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과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의대에 편입해 진로를 바꿨으니, 한국 이공계의 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학생은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이공계에선 박사 학위를 따도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다.”고 밝혔다. 진급에 한계가 있고 이른 나이에 잘릴까 봐 걱정하는 선배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울러 학부를 졸업하고 취업해 봐야 ‘허드렛일’이나 한다든지, 대학원에 진학해도 군인이나 다름없이 교수에게 복종해야 하는 분위기도 지적했다. 하나 하나가 이공계 위기를 불러온 우리사회의 풍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발언들이다. 정원이 50명인 서울대 생명과학부 졸업생(예정자 포함) 가운데 지난해 30여명이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에 진학하고자 MEET와 DEET에 응시했다고 한다. 기초과학·공학의 기반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더 늦기 전에 이공계 출신에게도 밝고 안정적인 미래가 보이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 “한국 IT파워 세계에 보여주겠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는 ‘마이크로소프트 이매진컵 2007’ 소프트웨어디자인 부문 한국대표로 세종대의 엔샵605(EN#605)팀이 선정됐다고 25일 밝혔다. 엔샵팀은 상금 300만원과 세계대회 출전자격은 물론 MS 본사 견학 비용 일체를 지원받는다. ‘이매진컵’은 해마다 MS가 후원하는 정보기술(IT) 월드컵이다. 올해로 5회째다. 오는 8월5∼10일 한국에서 개최된다.세계 대학생들이 모여 소프트웨어 디자인, 단편영화, 알고리즘(프로그램 연산), 사진 등 9개 부문에서 총상금 17만달러를 놓고 경합을 벌인다. 이번에 한국대표로 선발된 엔샵605팀의 ‘핑거코드’ 프로그램은 음성신호를 문자로, 문자신호를 진동으로 각각 바꿔 손가락 윗부분을 진동시키는 소프트웨어다. 이 소프트웨어는 음성신호를 진동으로 실시간으로 직접 전달하기 때문에 보고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 대학 강의 등을 무리없이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엔샵605팀은 “전 세계에 한국의 IT파워를 보여주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번 대회의 금상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악 솔루션을 개발한 경북대 ‘미스터 베토벤’팀에, 은상은 UCG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세종대 엔샵 지티엑스(EN# GTX)팀에 돌아갔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주말탐방] 장애인 동계스포츠 열정속으로

    [주말탐방] 장애인 동계스포츠 열정속으로

    앞이 전혀 안 보이는 이금순(17·청주맹학교)에게 은빛 설원은 더이상 캄캄한 곳이 아니다. 지난 22일 봄 기운이 완연한 산 아래와 달리, 살을 에는 칼바람이 몰아친 강원도 정선군 강원랜드 하이원스키장에 마련된 크로스컨트리 1㎞ 코스. 그는 지구력이 떨어지는 일반인도 힘에 벅찰 코스를 거뜬히 완주했다. 목에 건 금메달 빛깔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금순은 1㎞ 코스를 완주한 14명의 정신지체·시각·청각장애인들과 함께 우승 못잖은 감격을 누렸다. 장애와 편견의 벽을 허문 장애인들의 스포츠 열정이 겨울종목에까지 오지랖을 넓히고 있다. 이날 크로스컨트리 경기는 24일 폐막하는 제4회 장애인 동계체전에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도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정식종목인 이 종목 선수 육성이 절실하다. 이날 장애인 선수들의 완주에는 비장애인들의 부축이 필요했다. 또래 스키선수 출신인 길잡이들이 2∼3m 앞에서 코스 방향을 말로 일러줬고, 황지초등학교 축구부 아이들은 줄곧 경적을 불어대 코스로 이끌었다. 정상적인 의사 소통이 어려운 정신지체 2등급 오혜리(15·태백미래학교)는 가벼운 자폐증마저 있어 한순간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참가자 가운데 4분13초로 가장 먼저 들어온 임학수(19·청주맹학교)보다 12분 넘어 꼴찌로 결승점을 통과했지만 가장 큰 갈채와 환호성을 받았다.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르는 혜리는 생전 처음 시상대에도 올라 올림픽 메달리스트처럼 손도 번쩍 들었다. 주위에선 끌어안고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등을 두드렸다. 이충근(35) 교사는 “혜리가 좋아하는 것을 먹이고 달래면서 가르치느라 힘들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코스를 완주해 무척 기쁘다.”고 감격했다. 청주에서 태백 가덕산종합훈련장까지 학생들을 데려와 스키를 가르친 최순일(34) 청주맹학교 감독은 더욱 가슴 벅차했다.“시각장애인 알파인팀도 있지만 시각, 청각장애인들의 한계가 있어 크로스컨트리로 눈을 돌리게 됐다.”며 내년에는 더 나은 성적을 올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23일 춘천 의암빙상장에선 ‘빙상계 초원이’로 불리는 이영석(19·밀알학교)의 총알 질주가 계속됐다. 발달장애(자폐) 2등급인 이영석은 1000m에서 2분00초75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찍이 이영석은 정상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2002년 롯데월드배 300m에서 1위를 차지, 빙상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나가는 아가씨의 손을 덥석 잡거나 링크 조명등을 한번 쳐다보면 꼼짝하지 않아 어머니 김미리(44)씨의 속을 무던히 태웠지만, 지금 이영석의 가슴은 평창 패럴림픽 금메달의 꿈에 부풀어있다. 사연도 가지가지인 이들 장애인 선수들의 꿈은 모두 패럴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 하지만 실업팀이라야 강원도청의 아이스슬레지 하키, 청주시청 사격, 대구 달성군청의 휠체어테니스 세군데뿐이어서 이들이 운동에 몰두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22일 휠체어컬링 부문에 출전한 조애리(23·원주시 종합사회복지관)씨 역시 육가공업체 카운터 일을 보는 등 많은 선수들이 생계 탓에 운동에 매진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현옥(43)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과장은 “연간 2억원 정도면 장애인팀을 육성할 수 있는데도 인식 부족 등으로 안타까운 일이 이어진다.”며 기업 등의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정선·춘천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 국내 비장애인 10명 가운데 4명이 생활체육을 즐기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장애인은 100명 중 4명으로 그 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 운동하고 싶어 집 밖으로 나섰다가 사회복지센터 등의 높은 계단에 좌절하곤 문을 걸어잠그는 일도 빈번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회장 장향숙)의 올해 예산 180억원 가운데 절반 정도가 생활체육에 할애되는 것도 엘리트 선수 발굴과 육성을 위해 장애인 선수의 저변 확대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20%씩은 각각 엘리트 체육과 국제 부문에 쓰고 기관 운용에는 10%가 소요된다. 국고와 체육진흥공단의 기금을 제외하고 기업들의 기부는 꾸준한 신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하다. 무작정 손을 벌리기보다 기업들이 스스로 중요성과 의미를 인식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기업인 손에 기부금 증서를 들게 한 뒤 사진 찍고 신문에 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 선수들과 어울려 경기를 해보게 함으로써 장애와 편견의 벽을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배정충 삼성생명 부회장과 오일호 스포츠토토 사장 등이 장애인들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사진작가 조세현씨도 빼놓을 수 없다. 장애인 스포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선 연예계 스타 못잖은 스타를 길러내고,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생각에 장애인 선수들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드러내는 캘린더 제작에 열과 성을 다했다. 비장애인이 거리낌 없이 장애인을 바라보고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자리를 갖도록 내년부터 시판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현옥 과장은 “평창 패럴림픽이 치러진다면 장애인 동계스포츠 역시 비약적인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며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춘천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아이스슬레지하키의 별 한민수 그는 이번 장애인 동계체전의 도드라진 ‘별’이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떡 벌어진 어깨, 시원시원한 성격 어느 것 하나 스타로서의 자질에 부족한 게 없다.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가 골수염으로 악화돼 왼쪽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한민수(36)는 국내 유일의 아이스슬레지 하키팀인 강원도청팀을 주장이자 ‘맏형’으로 이끌고 있다. 21일 장애인 동계체전과 함께 치러진 전국동계체전 개막식에서 평창올림픽 유치 결의문을 낭독하면서 더 유명세를 치렀다. 아이스하키와 달리 아이스슬레지 하키는 하지(下肢)장애인들이 양날이 달린 썰매를 타고 지치며 퍽을 날려 득점하는 과격한 경기. 일본에선 얼마 전 퍽에 맞아 선수가 숨진 일도 있었다.1분만 뛰어도 지치는 경기 특성상 22명 정도의 선수를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강원도청팀은 11명뿐. 한민수는 8년 이상 장애인 역도선수로 활약했고 2000년에 유럽 장애인들의 경기 모습을 지켜본 고 이성근 감독의 권유로 이 운동을 시작했다. 클럽팀을 만든 지 석달만에 이 감독이 작고하자 이영국(44) 감독이 그 빈자리를 대신했고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장애인팀 육성이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팀이 창단됐다. 얼마 안돼 결실이 맺어졌다. 몇년 전만 해도 0-13,0-8로 국가대표 대결에서 무참하게 무릎을 꿇었던 한국이 지난해 일본 국가대표나 다름없는 나가노의 클럽팀을 맞아 0-3으로 뒤지다 3피어리드에서 4골을 몰아넣으며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것. 한민수는 “일본팀에게 골을 넣어본 것도, 이긴 것도 처음이라 그 감격이 대단했다.”고 돌아봤다. 그의 꿈은 2010년 캐나다 밴쿠버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것.“세계 4위 실력을 인정받는 일본만 꺾으면 동메달도 바라볼 수 있다.”며 실업팀이 많이 생겨 기량을 향상시킬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평창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때쯤, 사이버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회복지와 경기지도, 둘 중의 하나를 제3의 인생으로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7000만 동포가 뒤에 있어 든든”

    “우린 5명에 불과하지만 우리 뒤에는 7000만명이 있는 만큼 전혀 외롭지 않습니다.” 24일 열리는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행사 규탄을 위해 방일하는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명예이장 최재익(52)씨의 각오다. 방일 채비에 바쁜 최씨를 20일 전화로 만났다.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여전히 ‘독도는 우리땅’이었다. 최씨 등 독도수호전국대 회원 5명으로 이뤄진 항의단은 24,25일 양일간 시마네현 한복판에서 ‘독도강탈음모 규탄대회’ ‘다케시마의 날 폐지 촉구 시가행진’ 등을 벌인다. 미니 항의단이지만 최씨는 “우리 뒤에 동포들이 있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최씨는 2005년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 조례가 통과될 때 현(縣) 청사에서 할복을 시도하다 현지 경찰에 연행된 전력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투쟁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당시엔 감정이 앞서 격한 행동을 했지만 너무 강경하게 비쳐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항의단은 스미다 시마네현 지사에게 독도 영유권 토론회를 제의하고, 시마네현 주민들을 상대로 역사왜곡에 따른 독도 편입의 부당성을 홍보할 계획이다. 이미 일어판 책자도 만들어 놓았다. 양식과 상식이 있는 일본 국민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행사장에서 애국가 제창, 일제강점기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 규탄서 낭독, 만세삼창 등의 행사는 가질 계획이다. 최씨는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시킬 때 우리가 묵시적 동의를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항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독도 사랑은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 때 싹텄다. 독도가 우리 수역이 아닌 중간수역에 놓이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따라 1999년 12월31일 부모님, 부인, 아들 등 가족 전원의 본적을 독도리 산 30으로 옮기고 독도수호전국연대 대표의장을 맡았다. 이어 2004년 2월에는 독도에 호적을 둔 주민들의 투표로 독도 명예이장에 뽑혔다. 현재 독도에 호적을 둔 사람은 모두 615가구,2057명에 달한다. 23일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통해 방일하는 최씨는 “일본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매년 시마네현을 찾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씨의 입국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지난해에는 시마네현 요나고공항에서 3시간30분이나 이유 없이 붙들려 있었다. 6대 서울시의원(2002∼2006)을 지낸 최씨는 “일본에 다녀온 후에는 전국의 초·중등학교 학생을 상대로 독도를 제대로 알리는 ‘독도교육’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무대 복귀 신고합니다

    무대 복귀 신고합니다

    연극계가 남녀스타 배우들의 속속 무대 복귀로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 연극은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길러낸 고향이지만 최근 시장의 관심이 영화와 뮤지컬 등에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껴왔던 터이다. 연극의 작품성에다 배우들의 스타성이 결합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남자스타로는 ‘경숙이, 경숙 아버지’로 서울 대학로에서 흥행을 이끄는 조재현과 중견배우 조민기, 영화배우 최민식 등의 출연이 확정됐다. 지난달 25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한 ‘경숙이, 경숙 아버지’에서 ‘경숙 아베’ 역할을 맡고 있는 조재현. 지난해 국내 연극상을 휩쓴 이 연극은 작품의 힘과 ‘에쿠우스’ 이래 3년 만에 복귀한 조재현의 열연에 힘입어 매진사례를 낳고 있다. 최근 ‘사랑과 야망’ 등 TV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과시한 조민기는 3월15∼25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러시아 극작가 체호프의 ‘갈매기’에 출연한다.2004년 체호프 서거 100주년을 맞아 연속으로 올려진 ‘갈매기’ ‘벚꽃동산’ ‘세자매’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3년만의 친정행. 이 연극은 러시아 국보급 연출가 카마 긴카스가 보여줄 독특한 세트로 벌써 화제를 모으고 있다. 조민기는 이 연극 출연을 위해 여섯번에 걸친 오디션을 거쳐 비중 있는 조연 트레고린 역을 따냈다. 영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박찬욱 감독의 근작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최민식도 7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2000년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 이후 무대에 서지 않았던 그의 복귀작은 5월1∼20일 LG아트센터에서 막이 오르는 영국 극작가 마틴 맥도너의 ‘필로맨(Pillow Man)’. 최민식은 자신이 쓴 소설속 살인사건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벌어지자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천재 소설가를 연기한다. 드라마 ‘웨딩’에서 수려한 외모를 자랑한 신예 연기자 송창의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25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졸업’에서 대담한 노출로 화제를 모은 김지숙과 안정된 앙상블을 이뤄 촉망받는 연극 배우로 거듭났다. 여자스타들의 연극무대 복귀도 고무적이다. 지난 연말 김혜자는 ‘셜리 발렌타인’ 이래 5년 만의 복귀작인 실험극단의 ‘다우트’에서 의심에 가득찬 수녀 역할로 연기 변신을 했다. 그는 3월23일부터 4월1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다우트’ 앙코르 공연에도 출연한다. 고두심은 4월12일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막이 오르는 ‘친정엄마’로 7년 만에 연극 무대를 찾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책꽂이]

    ●태평양전쟁의 사상(나카무라 미쓰오 등 지음, 이경훈 등 옮김, 이매진 펴냄) 1941년 12월8일, 일본 해군 항공대와 특수 잠항정이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된 태평양전쟁. 이 전쟁을 주도하던 세력이 그린 ‘큰 그림’이 바로 대동아공영권이다. 이 책은 일본인이 생각하는 전쟁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이 이름을 둘러싼 역사적·지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1차자료다.1940년대 초에 있었던 좌담 ‘근대의 초극’과 ‘세계사적 입장과 일본’,‘총력전의 철학’ 등을 통해 일본정신의 기원을 살펴본다.1만 6500원.●나폴레옹의 영광(리처드 홈즈 지음, 김지원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 프랑스 혁명 기간에 등장한 나폴레옹은 피라미드, 마렝고, 아우스터리츠, 예나, 바그람, 보로디노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나폴레옹 전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런 승리를 바탕으로 당시 나폴레옹의 제국은 포르투갈에서 모스크바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베스트셀러 ‘웰링턴:강철의 공작’을 쓴 저자는 나폴레옹의 탄생부터 몰락까지 흥미진진하게 다룬다.3만 5000원.●보살-유럽과 아시아 문화를 한 몸에 담다(최영순 지음, 운주사 펴냄) 인도에서 탄생한 보살상이 실크로드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여정과 그 과정에서 보살상에 반영된 다양한 문화를 분석. 고대 보살 복식을 전공한 저자에 따르면 보살상이 처음 조성된 인도의 보살은 요즘처럼 보관을 쓰지 않고 터번이나 다른 형태의 관을 썼다. 보살상은 인도의 간다라와 마투라, 두 도시에서 거의 동시에 조성됐다. 저자는 간다라 인근 고대 실크로드 불교 유적지인 바미안 보살의 보관에 사산조 페르시아 왕관 문양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3∼7세기 이란의 화려하고 강력한 문화를 가진 왕조다.7500원.●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김광우 지음, 미술문화 펴냄) 칸딘스키와 클레는 회화의 거장이었을 뿐 아니라 역량있는 교육자이기도 했다.1933년 나치의 점령으로 폐쇄된 독일의 바우하우스에서 함께 재직하며 친구로서, 추상미술을 일군 동반자로서 두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바우하우스는 짧은 기간동안 존속했지만 20세기 가장 유명한 미술학교로 디자인과 산업기술 간의 관계를 확립한 기관. 이 책은 이 두 화가의 예술세계를 다룬다. 칸딘스키는 “색은 키보드이고, 눈은 망치이며, 영혼은 끈이 달린 피아노다.”라는 말을 남겼다.2만 8000원.●바리에떼-문화와 정치의 주변풍경(고종석 지음, 개마고원 펴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저자의 에세이집. 저자는 20세기 역사에서 얻은 교훈은 “모든 순수한 것에 대한 열정이 위험하다는 점”이라며 “세계시민주의의 실천 전략은 불순함의 옹호”이므로 “섞인 것이 아름답다.”고 강조한다. 바리에테(varit)는 프랑스어로 ‘다채로움’이란 뜻.1만 2000원.●화가와 시인(보들레르 지음, 윤영애 옮김, 열화당 펴냄) 보들레르는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 미술평론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보들레르는 때론 앵그르의 완벽한 기교에, 혹은 쿠르베의 힘찬 터치에 매료되고 데생화가 도미에를 찬양하기도 했지만, 그가 가장 감탄한 화가는 외젠 들라크루아였다. 이 책엔 ‘1845년 미술전’ ‘생 쉴피스 성당의 들라크루아 벽화들’ 등 5편의 들라크루아론이 실렸다. 보들레르의 비평은 그 자신의 미학적 보고서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1만 3000원.
  • 3400만명 설 대이동 첫날 곳곳 정체

    3400만명 설 대이동 첫날 곳곳 정체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6일 3400만명이 고향을 찾는 민족대이동이 시작됐다. 예년과 달리 연휴기간이 짧아 고속도로 곳곳에서는 오후들어 본격적인 정체가 시작됐다. 서울 시내 주요 역과 버스터미널, 공항 등은 오전부터 이른 귀성길에 나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고속도로는 이날 하루 평소 금요일(28만대)보다 7만대 정도 많은 35만여대가 수도권을 빠져나가면서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판교IC∼수원, 기흥∼안산 구간이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조남∼발안 구간 등 곳곳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한국도로공사는 “16일 35만여대,17일 33만 3600대가 서울을 빠져나가는 등 짧은 연휴 탓에 귀성길 정체가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귀성길은 17일 오전 9시에서 정오가 가장 혼잡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로공사는 ‘설 연휴 교통혼잡정보 사이트(www.roadplus.com)’를 통해 시간대별·구간별 예상소요시간을 미리 파악한 뒤 귀성·귀경길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열차의 경우 17일 오후 9시 이후 KTX 하행선 특실 좌석 몇 개를 빼고는 16∼17일 경부·호남선 전 열차가 완전 매진됐다. 상행선은 19일 전 열차가 매진됐다. 한국철도공사는 16∼20일 매일 KTX 164편과 새마을호ㆍ무궁화호 547편을 증편, 하루 평균 46만 6000명(평소 29만 3000명)의 승객을 수송할 계획이다. 서울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도 평소보다 1.5배가량 많은 승객들이 찾아 부산과 광주, 동대구 등 주요 도시로 가는 예매·판매율이 90%에 육박했다. 터미널 측은 평소 1106대가 운행되는 경부선 버스를 1786대로,646대가 운행되는 호남선은 1149대로 각각 증편했다. 김포공항은 16∼17일 지방으로 가는 전 노선이 매진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특별수송기간 동안 각각 96편과 28편을 증편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민선4기 8개월 구청장 스타일 보니…

    ‘재기 발랄형, 뚝심형, 초반스퍼트형, 정중동형’민선 4기 출범 8개월여가 되면서 25개 자치구청장들이 제 색깔을 내고 있다. 공무원에서 정치인, 기업인, 법조계 출신까지 다양한 이력만큼이나 이들의 구정 스타일은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선수(選數)나 출신에 따라 공통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기초질서형 구청장 가운데 초선은 11명. 두드러진 특징은 기초질서 확립운동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맹정주 강남구청장이 연초부터 펼치고 있는 ‘꽁초와의 전쟁’이다. 꽁초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5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초기에 “하다 말겠지.”하는 주변의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금은 서울시와 다른 구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호조 성동구청장은 노점상이나 보기 흉한 간판 정비를 줄기차게 추진해 왔다. 그는 왕십리 한양대 앞과 금남시장 노점상과 지하철 5호선 행당역 차량 노점상을 깔끔히 정리했다. 초선 구청장들이 기초질서 운동에 나서는 것은 구청장에 당선되기 전부터 노점이나 간판, 쓰레기 버리기 등 기초질서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재기발랄형 민선 4기 구청장 가운데 공무원 출신은 모두 10명으로 9명이 서울시 출신이다. 이들의 특징은 초·재·삼선을 불문하고 임기 초부터 두각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시청과 자치구에 있으면서 쌓은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노근 노원구청장. 시 본청 근무는 물론 종로·중랑구 등의 부구청장을 거친 데다가 아이디어가 많아 여권문제 등을 여론화해 해결했고, 동부간선도로 확장공사도 이끌어냈다. 박성중 서초구청장도 민원실의 확대와 파격적 인사시스템의 도입으로 주목을 받았다. 재기 발랄형이다. 양대웅 구로구청장도 국제전자포럼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구청장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대부분 재직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한다. 초반스퍼트형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반면 이호조 성동구청장은 많은 아이디어를 냈지만 드러내지 않는 정중동형이다. 김영순 송파구청장은 정치인으로 분류되지만 재기 발랄형으로 꼽힌다. 도시 디자인 개념 도입 등을 내걸어 관심을 끌었다. ■ 뚝심추진형 구청장 가운데 재계나 기업인 출신은 정동일 중구청장과 정송학 광진구청장이 대표적이다. 박장규 용산구청장이나 김우중 동작구청장은 기업인 출신이지만 3선이어서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기업인 출신의 특징은 뚝심이다. 계획을 세우고 밀어붙이는 능력이 뛰어나다. 실제로 정동일 구청장은 세운상가 근처에 220층짜리 고층빌딩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또 정송학 광진구청장은 고구려 프로젝트에 집착하고 있다. 광진구를 고구려 상징도시로 만들고, 진취적인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기업인 구청장은 소상공인의 육성이나 기업 유치 등 경쟁력 강화는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기업인 출신은 아니지만 김도현 강서구청장도 뚝심형으로 분류된다. ■ 암중모색형 재선 또는 삼선 구청장의 특징은 지역 현안이나 숙원사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노재동 은평구청장은 은평뉴타운의 성공적인 수행이나 지역 녹화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3선으로 기업인 출신인 김우중 구청장은 평소 지론이던 상도동길 등의 테마거리화에 집중하고 있다. 박장규 구청장은 ‘칭찬문화’ 확산이라는 이색 캠페인을 펼쳐 화제다. 이와 함께 정치인 전문직 출신 구청장들은 업무 추진 스타일이 부드럽다. 약사 출신인 김충용 종로구청장, 김형수 영등포구청장, 언론인 출신인 신영섭 마포구청장, 변호사 출신인 현동훈 서대문구청장, 정치인 출신인 김효겸 관악구청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가운데 초선 구청장들은 서울시 공무원 출신 구청장에 비해 업무 파악에서 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원칙과 정치철학에 따라 지난해 6개월간 각종 구상들을 다듬어왔다. 올해는 주목의 대상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중반 스퍼트형으로 분류된다.
  • 무술가족의 도둑잡기 “배꼽 빼주마”

    무술가족의 도둑잡기 “배꼽 빼주마”

    영국 찰스 왕세자도 극찬한 무술 코미디 ‘점프’는 만 4살부터 입장이 가능한데다 대사가 없는 비언어극이라 가족용 뮤지컬로 제격이다. 도합 무술 117단의 가족이 사는 집에 어느날 도둑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신세가 된 이 도둑은 이제 탈출하기에 바쁘고, 무술 가족은 도둑잡기에 혈안이다. 온가족이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내용이다. 2005,2006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 런던 웨스트엔드 장기공연에서 매진 사례를 낳은 ‘점프’는 올 한해도 숨가쁘다. 올해부터 매년 봄 웨스트엔드에서 장기공연을 시작하는 데 이어 5∼7월 도쿄, 오사카 공연과 싱가포르 및 모스크바 공연이 예정돼 있다.‘점프’를 보고 몸이 근질근질하다면 이달 26일 종로에 있는 전용극장에서 치러질 오디션에 지원해볼 것. 몸놀림에 특기가 있는 배우지망생이라면 누구나 응모 가능하다. 현재 5팀이 공연을 꾸려가고 있지만, 올해부터 한달이상 장기 해외공연이 이어지는 데다 국내 전용관 공연도 병행돼 제작사는 배우 확충이 시급한 형편이다.(02)722-3995.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 매진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오는 12월 갖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의 패키지 티켓 600장이 매진됐다고 공연기획사 크레디아가 6일 밝혔다. 백건우는 12월8일부터 14일까지 7일 동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8차례에 걸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연주한다는 계획이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현악기+피아노·하프’의 달콤한 화음

    ‘현악기+피아노·하프’의 달콤한 화음

    세계적인 연주자의 내한 공연이 봇물을 이뤄도 좋은 현악사중주단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현악사중주단 연주회는 화려하기보다 학구적인 자리가 되게 마련이어서 공연기획자들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달엔 두개의 뛰어난 현악사중주단이 내한해 팬들을 설레게 한다. 도쿄 스트링 콰르텟과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스트링 콰르텟이다. 하피스트 곽정과 피아니스트 최희연을 각각 참여시킨 ‘닮은 꼴 음악회’를 갖는 것도 진지함 일변도에서 벗어나 관람객들의 흥미를 불어넣어 보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오는 11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도쿄 현악사중주단(02-541-6234)은 1969년 세계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아시아의 힘을 보여주었던 바로 그 단체이다. 처음엔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를 배출한 도호(桐朋)음악학교 출신들로 구성됐지만, 창단 멤버는 이제 제2바이올린의 이케다 기쿠에이 한 사람만 남았다. 비올라의 이소무라 가주히데는 1974년 합류했다. 첼로의 클라이브 그린 스미스가 1999년, 제1바이올린의 마틴 비버가 2002년 가세함에 따라 단원의 국제화가 이뤄졌다. 이들은 ‘파가니니 콰르텟’으로 불리는 스트라디바리를 쓴다. 곽정은 돈 덴과 아널드 백스의 하프와 스트링 콰르텟을 위한 5중주를 연주한다. 곽정은 서울에 이어 13일 홍콩과 20일 일본까지 도쿄 사중주단의 ‘아시아 투어’에 동행한다. 도쿄 사중주단은 하이든의 ‘5도’와 베토벤의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의 3번째곡인 9번을 연주한다. 콘서트헤보우 사중주단(02-747-0072)은 23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과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이름처럼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악장과 수석 단원으로 이뤄졌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과 교분을 쌓은 피아니스트 에마누엘 엑스와 2000년 슈베르트의 ‘송어’로 데뷔했다. 제1바이올린의 리비우 프루나루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2등, 비니야프스키 콩쿠르 우승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고,1997년 동아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인연도 있다. 비올라의 여룬 바우트스트라는 첼리스트 조영창, 첼로의 호후리트 호흐페인도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과 연주한 경험이 있다. 4년 동안에 걸쳐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최희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다. 콘서트헤보우 현악사중주단은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작품 18의 4, 드보르자크의 현악사중주 ‘아메리칸’, 최희연과는 슈만의 아름다운 피아노오중주 작품 44를 연주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따뜻한 남쪽 사기꾼 많아 살기 어려워”

    “사기꾼들이 (재산)다 요절내고, 경기도 광주 산골에 임시 건물 짓고 살고 있어요.” 1987년 2월 귀순해 첫 가족 단위의 탈북 사례를 기록한 김만철(67)씨가 우울한 탈북 20주년을 맞고 있다. 그는 강연 등으로 벌어들인 전재산을 수차례 사기를 당하면서 모두 날리고,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4일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말 “교회에서 알게 된 K씨가 부동산 중개 수수료 명목으로 3000만원을 받아 챙겼다.”면서 K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조사 결과,K씨는 2004년 김씨의 돈으로 부동산 거래를 주선하면서 수수료로 받은 3000만원 가운데 1000만원을 중개인에게 건네지 않았다.검찰은 K씨에게 횡령 혐의를 적용,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귀순 후 강연 활동과 신앙 생활에 매진하던 김씨는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왔다.”는 귀순 소감을 증명하듯 경남 남해에 기도원을 세웠다. 그러나 기도원 운영을 맡았던 목사가 기도원을 담보로 2억원을 대출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하면서 김씨의 남한 생활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결국 기도원을 헐값에 매각하고 어렵게 은행 빚을 갚았지만 김씨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씨는 지인 소개로 거액을 들여 제주도에 부동산 투자를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매입한 땅이 실제 치른 돈에 훨씬 못미쳤다. 그는 “기획 부동산에 사기를 당한 것 같다.”며 추가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8일이 귀순한 지 20년이 되는데…. 소회랄 것은 없고, 사기꾼들이 하도 많아 얼떨떨하고 살기가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광주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부고] 원로 서예가 여초 김응현씨 별세

    한국 서예계의 원로인 여초(如初) 김응현(金應顯)씨가 지난 1일 하오 7시 별세했다.80세. 고인은 지난해 11월 타계한 형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동생 백아(白牙) 김창현(金彰顯)과 함께 서예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서예가 집안이다. 특히 여초 선생은 추사 김정희의 맥을 이은 소전 손재형(1903∼1981), 검여 유희강(1911∼1976) 이래 형 일중 선생과 함께 우리 서예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당뇨와 파킨슨병 등의 합병증으로 10여년 전부터 투병해 왔으며,1996년부터 설악산 백담사 인근에 ‘구룡동천(九龍洞天)’이라는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과 벗삼아 지내왔다. 한달 전부터 당뇨 합병증이 악화해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왔다. 1927년생인 고인은 휘문고와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50∼1960년 국회보 주간을 맡았고, 국회도서관 1호 직원이 되기도 했으나 붓을 놓지 않았다.1956년에는 동방연서회 설립회원으로 참여했고 1969년부터 이사장을 맡아 수천명의 제자들을 길러왔다. 저서로 `동방서예강좌´ `동방서범´ `서연기인´을 내는 등 서법 연구에도 매진했다. 그는 1999년 교통사고로 오른 손목 골절상을 입고 왼손으로 글씨를 써 2000년과 2001년에는 왼손글씨 전시를 한국과 중국에서 열었으며, 회복 후에는 다시 오른손으로 글씨를 써 쌍수 서예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2003년에 광개토대왕 비문 1802자를 쓴 세로 5.3m, 가로 6m의 대작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전·예·해·행·초서 모든 서체에 능했으며 글씨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넘치는 원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며 고졸하면서도 활달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서예계 일각에서는 ‘추사 이후 여초’라는 찬사도 있었다.유족으로는 장남 형년(동방연서회 상임이사), 차남 항년(개인사업), 남희(부산외대 교수), 주희(주부), 삼희(니베아 서울 차장) 등 2남3녀가 있다. 발인은 3일 오전 9시. 빈소 서울대병원. 장지는 경기도 용인의 선영.(02)2072-2016.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007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아이스하키 男 ‘자신감’ 女 ‘허탈감’

    ‘동메달과 노메달의 차이.’ 창춘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남녀 아이스하키팀의 차이는 단지 동메달(남자)을 따내고, 노메달(여)에 그쳤다는 사실 이상으로 간극이 크다. 남자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전국을 통틀어 고작 70∼80명에 불과한 선수로 살림을 꾸리고 있는 여자 아이스하키는 대회 출전 그 자체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남자대표팀은 지난 1일 4강 결승리그 2차전에서 중국에 5-3 역전승, 동메달을 확보했다. 일본이 2승째로 금메달을 예약한 상황에서 한국은 3일 카자흐스탄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은메달까지 넘볼 수 있다. 동계아시안게임 메달은 1990년 삿포로대회 이후 무려 17년 만. 재도약의 날개를 다시 활짝 편 셈이다. 남자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4개 실업팀이 창단되는 등 황금기를 맞기도 했지만,‘외환위기’ 이후 대부분의 팀이 해체됐다. 그러나 10여 년간의 꾸준한 관심과 지원, 그리고 선수들의 의지까지 가세해 ‘빙판 삼국지’로 불리는 한·중·일 리그에 참여하면서 전력을 키운 게 메달의 꿈을 이룬 원동력이 됐다. 반면 올해 9년째를 맞는 여자부의 메달 꿈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한국 아이스하키 80년 역사에 견줘 걸음마도 힘든 처지. 이번 대회 중국에 0-20으로 대패한 데 이어 일본(0-29), 카자흐스탄(0-14), 북한(0-5)전 등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전패를 당했다. 99년 강원(용평)대회와 2003년 아오모리대회에서도 득점은 단 1골, 실격패를 비롯한 실점은 무려 80골이었다. 무력증의 원인은 저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대표팀에 발탁됐다고 전폭적인 지원하에 훈련에 매진할 수 있는 상황은 더욱 아니다. 직장과 학교를 오가며 짬짬이 스틱을 잡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김익희 여자대표팀 감독은 “대학과 실업팀이 없는 탓에 기량을 가진 선수라도 중간에 포기하기 일쑤”라며 한국 여자아이스하키의 어두운 미래를 걱정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우리소설 스웨덴서 ‘오디오북’ 부활

    우리소설 스웨덴서 ‘오디오북’ 부활

    김동인의 ‘감자’, 황순원의 ‘소나기’와 ‘학’, 한말숙의 ‘장마’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들이 스웨덴에서 ‘오디오북’으로 부활했다. 2003년 스웨덴에서 번역출판된 ‘한국단편선집’이 시각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오디오 콤팩트 디스크(CD)’로 제작돼 스웨덴 각지의 도서관에 보급됐다. 스웨덴 유명 성우인 안나 되블링이 직접 녹음한 이 CD는 5시간44분 분량이다. 스웨덴 문화성은 50여년 전부터 30여만명의 시각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해 유명 문학작품을 오디오북으로 제작, 보급해 왔다. 동양권에선 처음으로 한국 단편소설들이 오디오북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오디오북 제작에는 스웨덴의 교포작가 최병은(70)씨가 큰 역할을 했다. 최씨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문학을 스웨덴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등 ‘한국문학 불모지’였던 스웨덴에 우리 문학을 알리는 일에 매진해 왔다. 오디오북의 모태가 된 ‘한국단편선집’도 그의 번역으로 태어났다. 지금까지 최씨가 번역해 현지에 소개한 우리 문학은 조병화(1993년)와 구상(1997년)의 시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수기’(1999년), 고은의 ‘선시집’(2002년) 등이 있다. 지난해에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박완서의 ‘나목’을 소개했다. 여섯 차례에 걸쳐 서정주, 구상, 조병화, 김소월, 이육사, 윤동주 등의 시화전을 현지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스웨덴한인회장을 역임한 최씨는 스톡홀름 문단과 스웨덴 왕가, 정·관계 등에도 발이 넓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등에도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은 시인이 재작년과 지난해 2년 연속 노벨문학상 유력후보에 오른 것도 이런 그의 ‘한국문학 알리기’와 무관치 않다. ‘하얀사슴’(白鹿) 등의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한 최씨는 “북유럽권에서 이제 한국문학의 진가가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면서 “특히 이들 지역에 있는 수만명의 한국인 입양아들에게 한국문학을 읽혀 정체성을 찾게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진실씨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수잔브링크의 아리랑’ 촬영 때 자신의 집을 촬영장소로 제공하는 등 입양아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1968년 단돈 70달러를 들고 유학을 가 현지 대학에서 해양법을 전공한 뒤 석유회사 등에서 근무한 그는 자신의 소설 제목처럼 ‘하얀사슴’이 뛰어노는 연못(백록담)이 있는 제주에 핀란드의 ‘산타마을’(노마노마)을 재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전설과 허구에 불과할 뿐이지만 ‘산타마을’은 연간 6조원의 관광수입을 올립니다. 우리 문학작품에 녹아 있는 전설들을 관광상품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 Ι

    [병자호란 다시 읽기] (4)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 Ι

    1592년의 임진왜란은 병자호란보다 44년이나 먼저 일어났지만, 두 사건은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1583년 군사를 일으켜 주변의 여진족 정복에 나섰던 누르하치에게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것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여진족 안에서 아구다 같은 패자가 나타나는 것을 막으려 했던 명이, 왜란 이후 관심을 조선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누르하치는 명이 한눈을 파는 사이 주변세력에 대한 정복사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조선 또한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누르하치의 실체를 목도하고, 그의 위력을 절감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假道入明을 내걸다 1592년 4월13일.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조선 조정은 상주(尙州)와 충주(忠州)에 각각 이일(李鎰)과 신립(申砬)이 이끄는 병력을 보내 일본군의 북진을 저지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병력수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데다 일본군이 지닌 신무기 조총(鳥銃)의 위력은 실로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더욱이 일본군은 16세기 당시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치르며 전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데 비해, 조선군은 오랫 동안 이어진 평화의 시간을 보내면서 도무지 전쟁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승부는 뻔한 것이었다. 4월28일. 믿었던 신립의 패전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 도성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곧바로 서울을 버려야 한다는 파천론(播遷論)이 등장했다. 이윽고 4월30일. 선조(宣祖)를 모신 행렬은 경복궁을 나와 북으로 피란길에 올랐다. 수행하는 신료들이 채 100명도 되지 않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일본군이 거침없이 북상하고, 조선 국왕이 북으로 쫓겨오고 있다는 소식은 명에도 커다란 고민거리를 안겨 주었다. 같은 해 6월. 조선이 청원사(請援使) 이덕형(李德馨)을 보내 원병 파견을 요청하기 이전부터 명 조정은 이미 일본군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도발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내세운 슬로건은 ‘가도입명(假道入明)’이었다. 조선에서 길을 빌려 요동(遼東)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일본군의 궁극적인 공격목표가 명나라임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명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왜란이 일어난 직후 요동을 비롯한 명 내부에서는 희한한 유언비어가 돌았다.‘조선이 고의로 일본군을 끌어들여 요동을 차지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명 조정은 당연히 원병 파견을 망설였다. 명 조정은 임진왜란 무렵까지, 조선을 결코 만만한 나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조선은 ‘강국 고구려의 후예’였다. 그런데 그 막강했던 고구려의 후예인 조선 국왕이 일본군이 침략하자마자 도성을 버리는가 하면, 조선 어디에서도 일본군에 저항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명의 의구심은 어쩌면 당연했다. 명은 심지어 피란길에 오른 국왕 선조를 ‘가짜’라고 의심했다. 명 조정은 과거 사신을 따라 조선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송국신(宋國臣)이란 인물을 불러들였다. 그가 선조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를 보내 선조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는 ‘해프닝’까지 벌인 이후에야 명은 조선에 군대를 투입했다. ●명군, 조선에 들어오다 일본군이 평양에 입성한 직후인 7월. 명의 원군이 처음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요동도사(遼東都司) 소속의 부총병(副總兵) 조승훈(祖承訓)이 이끄는 3000명의 병력이었다. 그들은 7월17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군이 지키던 평양성을 공격했다가 참패했다.2만명이 넘었던 고니시의 병력에 비해 턱도 없이 모자란 전력으로 무모한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조승훈은 병력 대부분을 잃고 압록강을 건너 도주했다. 그는 명 조정에 ‘조선이 명군에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무리하게 진격을 종용한 것이 패인’이라고 보고했다. 명 조정은 조승훈의 패전 소식에 경악했다. 일본군의 전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그들이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건너오는 상황을 우려했다. 요동과 조선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였다. 요동이 이(齒)라면 조선은 그것을 보호하는 입술(脣)이었다. 만약 조선이 무너지면 일본군은 요동의 벌판으로 밀려들 것이고, 요양(遼陽)과 산해관(山海關)은 물론 북경까지 위협에 노출될 판이었다. 다급해진 명 조정은 병부시랑(兵部侍郞) 송응창(宋應昌)을 요동 방어를 위한 총사령관에 임명하고, 조선에 보낼 병력을 새로 충원하기 시작했다. 요동 출신의 기병만을 투입했다가 일본군의 조총에 혼쭐이 났던 조승훈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강남 출신의 화기수(火器手)들까지 동원할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복건(福建)이나 절강(浙江) 출신의 화기수들이 요동까지 오려면 최소 수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일본군이 조선을 점령하고 압록강을 건너온다면? 명에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명의 병부상서 석성(石星)은 응급 조처를 취했다. 일본인들과 도자기 무역을 했던 경험이 있는 심유경(沈惟敬)을 조선으로 보냈다. 일본군을 평양에 묶어두라는 것이었다. 심유경이 가진 것은 세치 혀뿐이었다. 평양성으로 들어간 심유경은 능수능란하게 유세(遊說)하여 고니시를 구워 삶았다.9월1일부터 50일을 기한으로 휴전이 이루어졌다. 당시 평양성의 일본군이 처한 상황도 열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명,李如松을 투입하고 누르하치를 이용하려 하다 명은 조선에 투입할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이여송(李如松)을 지명했다. 이여송은 이성량(李成梁)의 장남이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북 내륙인 영하(寧夏)에 가있었다.1592년 3월에 일어난 보바이( 拜)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였다. 영하의 반란은 9월에 진압되었다. 이여송은 부리나케 요동으로 달려왔다. 그렇게 분주했던 이여송을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은 무장으로서의 그의 성가(聲價)가 높았음을 시사한다. 1592년 12월. 조선에 다시 들어온 4만 8000명의 명군 가운데는 이여송 말고도 이여백(李如栢) 등 그의 동생들도 끼여 있었다. 송응창은 요동에서 조선으로 들어갈 원정군을 정비하면서 이성량에게 누차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고 자문을 구했다.22년 동안 요동에서 ‘오랑캐’들을 제어하는데 종사했던 이성량의 위상이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명의 원군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1592년 9월, 조선 조정은 북경에서 날아온 소식 때문에 술렁거렸다. 성절사(聖節使) 유몽정(柳夢鼎)이 가져온 자문(咨文)에 ‘누르하치의 병력을 조선에 원군으로 보낸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선조실록’을 보면, 윤두수(尹斗壽)가 누르하치의 군대가 들어오는 순간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명의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심유경이 누르하치를 끌어들여 이이제이(以夷制夷)를 획책한다고 비판하고,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유성룡(柳成龍)의 기록은 조금 다르다. 그는 ‘서애집(西厓集)’에서 ‘당시 건주위(建州衛) 달로(撻虜)가 병력을 이끌고 와 조선을 구원하겠다고 장담했다’고 적었다. 유성룡도 누르하치의 원조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화근’이라 여겨 단호히 반대했다. 누르하치의 본심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 사건을 통해 조선이 건주여진의 실체를 다시 인식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건주여진을 ‘달로’라 지칭한 유성룡의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조선 지식인들은 여진족을 ‘오랑캐’라고 멸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오랑캐’의 원조를 받아들일 지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조선의 반대로 누르하치의 조선 원조는 실현되지 않았다. 누르하치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자신을 견제하고 감시해 왔던 이성량의 아들들이 조선으로 들어가고, 명의 관심이 온통 조선으로 집중된 상황에서 모든 역량을 주변의 여진세력을 공략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무렵, 하늘은 분명 누르하치의 편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Seoul in] 목요예술무대 2년만에 25회 공연

    강동구(구청장 신동우) 주민에게 다양한 예술문화 공연을 제공하기 위해 시작한 ‘강동목요예술무대’가 2년간 25회 공연을 소화했다. 그동안 2만 1700명이 공연장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첫 공연부터 전석 매진을 이어오고 있다. 공연 수입도 8000만원에 이른다. 다음달 1일 3년차 첫 해 공연에는 어린이 가족뮤지컬인 ‘헨젤과 그레텔’이 오른다. 문화체육과 480-1410.
  • [씨줄날줄] ‘사상계’ 복간/이용원 수석논설위원

    100년을 헤아리는 한국 잡지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잡지를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사상계’를 떠올릴 이가 적잖을 것이다. 고 장준하 선생이 1953년 4월호로 창간한 월간 ‘사상계’는 6·25로 폐허가 된 한국의 정신세계를 되살린다는 기치를 내걸고 출발했다. 창간호 초판 3000부가 발간과 동시에 매진되는 등 ‘사상계’는 지식인사회와 학생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민족통일 문제, 민주사상의 함양, 경제발전, 새로운 문화창조, 민족적 자존심의 양성이 이 잡지의 편집방향이었다. 1961년 5·16쿠데타로 박정희 군부정권이 등장하면서 ‘사상계’는 큰 변화를 겪는다. 사상·철학의 전파자 노릇에 머물지 않고 반독재·민주화투쟁의 본산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장준하·함석헌을 비롯한 당대의 양심적인 지성인들이 박정권을 향해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요구하며 매달 포화를 퍼부었고, 이에 따라 탄압도 갈수록 거세어졌다. 그러다가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시 ‘오적’을 실었다는 이유로 박정권은 마침내 ‘사상계’에 폐간 처분을 내린다. 그 ‘사상계’가 오는 8월17일,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한 지 31주기가 되는 날을 맞아 부활한다. 복간의 주역인 장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는 “이 시대에도 ‘사상계’가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밝혔다.“5·16이후 30년 지속된 군사·독재정권의 폐해”가 지난 15년의 민간정부에서 미처 원상복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금 우리사회에는 제대로 된 진보, 제대로 된 보수가 없다면서, 진정한 진보·보수는 물론이고 이 둘을 아우르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새로운 방향은 단순히 중도가 아니라 중용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사상계’는 1950∼1960년대 이 사회의 지성과 양심을 키워낸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사상계’ 폐간이후 이미 37년이 지났다. 옛 독자들은 60대 이상의 나이가 되었고 청·장년층은 ‘사상계’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도 사상과 철학의 혼돈을 겪고 있는 우리사회에 복간되는 ‘사상계’는 어떤 해법을 던져줄까. 오는 8월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해지는 까닭은 세월의 두께 때문일 것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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