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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 전 세계 알린 외국인… 그가 살던 ‘딜쿠샤’

    3·1운동 전 세계 알린 외국인… 그가 살던 ‘딜쿠샤’

    ‘한국인들이 독립을 선언하다’(Koreans Declare for Indepedence) 1919년 3월 13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AP통신을 통해 한국의 독립선언서를 소개한 이는 다름 아닌 미국인 사업가 앨버트 테일러(1875~1948). 덕분에 실린 뉴욕타임스 기사는 3·1운동을 처음 전한 영어권 기사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앨버트와 한국의 인연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1919~2015)는 3·1운동 전날인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났다. 당시 독립선언서를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쇄했는데 간호사들은 일본 순사의 감시를 피하고자 외국인 병실에 독립선언서를 숨겼다. 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앨버트가 동생을 통해 독립선언서를 외국으로 빼돌린 덕분에 한국의 독립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다.서울 종로구 행촌동에는 이들이 살던 집이 있다. 이름은 딜쿠샤.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란 뜻이다. 2017년 8월 국가등록문화재 제687호로 지정됐다. 지난 7일 개막해 30일 국립정동극장에서 마지막 공연을 앞둔 뮤지컬 ‘딜쿠샤’는 이 집에 얽힌 사연을 따뜻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지난해 ‘창작ing’를 통해 국립정동극장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로 제작했다. 브루스가 인왕산 자락에 있던 딜쿠샤를 그리워하며 금자와 편지를 주고받는 내용을 바탕으로 딜쿠샤에 얽힌 격동의 근현대사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브루스가 태어났을 때 간호사가 독립선언서를 숨겼던 일부터 시작해 한국전쟁에도 무사히 살아남고 이후 여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실제 이야기들이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 하나둘 소개된다. 배우들은 1인 다역을 소화하며 100년 넘게 집을 다녀간 사람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놓는다. 한국과 인연이 각별한 집이지만 딜쿠샤는 오래도록 잊혀진 집이기도 했다. 한때는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사옥인 것 같다는 오해가 있었는데 문화재 지정을 위해 조사하던 과정에서 ‘DILKUSHA 1923’이라 새긴 명판이 발견되면서 잃어버렸던 이름을 다시 찾는 일도 있었다. 불과 5년 전인 2018년까지도 사람이 살았던 집이기도 하다.‘딜쿠샤’의 무대 구조는 단순하지만 이 집에서 벌어진 다양한 일을 풍성하게 표현해냈다. 아름다운 넘버들과 편지라는 매체가 주는 애틋한 감성, 복작복작하게 어우러져 살아가던 따뜻한 정까지. ‘딜쿠샤’는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의 온기를 채우는 작품이다. “당신은 살면서 언제 이 집이 가장 그리웠어요?”라는 금자의 질문에 “지금”이라는 브루스. 그의 말은 저마다 가슴 속에 품은 그립고도 따뜻한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관객들은 딜쿠샤를 통해 물리적 장소로서의 집이 아니라 기다리고 지켜주는 존재로서의 집과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딜쿠샤’는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기획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KBS 다큐공감-희망의 궁전 딜쿠샤’를 보고 매료되어 무대화하게 됐다”면서 “사람의 따뜻한 온기로 마음을 채우고 싶은 분들이 찾아와 희망의 메시지를 받아 가셨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브루스는 미군 입대를 위해 집을 떠난 지 66년 만인 2006년 가족들과 함께 딜쿠샤를 찾았다. 2015년 세상을 떠난 그의 생전 마지막 딜쿠샤 방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딸 제니퍼는 2016년 한국을 찾아 조부모의 유품 349점을 기증했다. 지금 딜쿠샤는 테일러 부부가 거주할 당시 모습을 재현해 전시실로 운영하고 있다.
  • 단재 신채호 선생 며느리 이덕남 여사 별세

    단재 신채호 선생 며느리 이덕남 여사 별세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며느리인 이덕남 여사가 지난 24일 오후 11시쯤 별세했다. 79세. 딸 신지원씨는 26일 “어머니가 지병을 앓으셨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고인은 신채호 선생과 부인 박자혜씨의 외아들이자 유일한 혈육인 신수범(1921~1991)씨의 부인이다. 신채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언론인으로 영국인 베델, 양기탁·박은식 등 우국지사와 함께 1904년 창간한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에서 주필로 활동했고 황성신문에 논설을 집필하기도 했다.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일제가 만든 호적 제도에 따른 호적부 등재를 거부한 탓에 무국적 상태로 있다가 2008년에야 국적을 회복했다. 고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신채호 등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의 국적 회복 운동에 앞장섰다. 2017년에는 서울, 청주에 각각 설립·운영됐던 단재기념사업회를 통합했고 최근까지 사업회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유족으로는 자녀 상원·지원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의료원, 발인은 27일 오전 10시, 장지는 인천가족공원이다. (02)2276-7693
  • [B컷용산]호스가즈에 울려퍼진 아리랑…되돌아본 英 국빈의 날

    [B컷용산]호스가즈에 울려퍼진 아리랑…되돌아본 英 국빈의 날

    ‘B컷 용산’은 ‘A컷’ 지면 기사에서 다루지 못한 용산 대통령실 현장 이야기를 온라인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결과인 A컷에서 벗어나, 과정 이야기와 풍성한 사진을 담아 B컷을 보여드립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왕실 환대는 따뜻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 공식환영식이 열린 21일(현지시간) 호스가즈 (Horse Guards) 광장은 ‘영국다운’ 쌀쌀한 날씨 속에 진행됐지만, 영국 왕실의 환대만큼은 더없이 따뜻했다. 이날 정오쯤 숙소로 마중 나온 윌리엄 왕세자 부부가 직접 윤 대통령 부부의 숙소를 찾아 호스가즈까지 영접하면서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윤 대통령이 찰스 3세 국왕과 함께 왕실 근위대를 사열할 때는 군악대가 민요 ‘아리랑’을 연주했다. 멀리에서는 ‘로열 살루트’(왕의 예포) 41발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열이 끝날 때쯤 공식환영식의 대미를 장식할 왕실의 ‘황금마차’ 7대가 차례로 등장해 한국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태우고 버킹엄궁 오찬장으로 이동했다. ‘1호 마차’는 윤 대통령과 찰스 3세를, ‘2호 마차’는 김건희 여사와 카밀라 여왕을 각각 태웠고, ‘7호 마차’에 최상목 경제수석까지 각 마차들은 대통령실과 영국 왕실의 주요 인사들을 차례로 태우고 호스가즈를 떠났다.셰익스피어, 처칠, 토인비 담은 英 의회연설 이날 윤 대통령은 찰스 3세와의 오·만찬과 더불어 또하나의 ‘빅이벤트’인 의회 연설을 소화했다. “영국이 비틀스, 퀸, 해리 포터,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은 BTS,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 그리고 손흥민의 오른발이 있다.” 윤 대통령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명대사를 오마주한듯한 발언으로 영국 의회를 웃게 만들었고, 한영 양국의 인연을 강조하는 대목에선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어니스트 베델을 비롯해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선교사 존 로스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에서 따온 연설문 제목 ‘도전을 기회로 바꿔줄 양국의 우정’을 비롯해 윈스턴 처칠과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을 인용하는 등 연설문 곳곳에는 영국인들을 향한 ‘맞춤형 콘텐츠’가 눈에 띄었다. 만찬 테이블에 오른 한영 소프트파워 “영국에 대니 보일이 있다면 한국에는 봉준호가 있고, 제임스 본드엔 오징어 게임이, 비틀스의 ‘렛잇비’에는 BTS의 ‘다이나마이트’가 있습니다.” 국빈 만찬에서 찰스 3세는 환영사를 통해 자국의 대중문화와 함께 한국의 문화도 한껏 띄웠다. 이에 윤 대통령은 “학창시절 비틀스와 퀸, 엘튼 존에 열광했다”고 화답했다. 이밖에도 BTS, 콜드플레이 등 양국 스타들의 이름이 환영사에서 거론됐다. 국빈 만찬의 핵심 화두가 소프트파워였다고 할만한 장면이었다. 찰스 3세는 “양국의 문화는 전세계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소프트파워를 초강력 파워로 바꾸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날 만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주요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블랙핑크, 토트넘 홋스퍼FC 위민 축구 선수 조소현, 영국남자 유튜버 올리버 켄달, 박소희 디자이너 등 K팝 스타와 스포츠스타, 인플루언서 등도 함께하며 이번 영국 국빈 방문의 주요한 키워드가 ‘소프트파워’임을 재확인시켰다.
  • [사설] 베델에서 블랙핑크로… 한영 새 시대의 막이 올랐다

    [사설] 베델에서 블랙핑크로… 한영 새 시대의 막이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 국빈 방문을 통해 채택한 ‘다우닝가 합의(어코드)’는 양국이 진정한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 거듭나게 됐다는 의의를 지닌다. 양국은 외교·국방 장관급 ‘2+2 회의’ 신설 등 45개 과제를 이행하기로 했다. 올해로 수교 140년을 맞은 두 나라의 인연은 1883년 조영수호통상조약 체결로 시작됐다. 당시는 불평등조약이었지만, 한국이 영국 선교사들의 헌신과 6·25 전쟁 파병 등 도움의 손길 속에 성장해 온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 대등한 위치에서 글로벌 차원의 협력을 논의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영국 의회에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한국의 독립운동에 기여한 어니스트 베델 기자를 언급했다. 베델은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 윤 대통령의 방문에 앞서 런던 시내 광고 영상에 베델과 신보가 소개된 것은 한영 우호관계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6·25 전쟁 때 영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8만여명을 파병한 것도 두 나라 인연이 각별함을 보여 준다. 2024년은 베델이 신보를 창간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두 나라 수교 이후 140년이 흐르면서 한국의 위상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될 정도로 높아졌다. K컬처의 파워는 이미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한국의 걸그룹 블랙핑크에게 직접 대영제국훈장(MBE)을 수여한 것은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보여 준다. 영국의 비틀스, 해리포터, 퀸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그리고 손흥민의 나라가 된 것이다. 양국이 140년에 걸친 우호협력의 역사를 넘어 문화예술 분야 협력으로 새 시대의 지평을 넓혀 나가길 기대한다.
  • 정부, 친일파 이기용 후손 땅 부당이득금 소송 승소

    정부, 친일파 이기용 후손 땅 부당이득금 소송 승소

    정부가 친일파 이기용(1889~1961)의 손자들이 소유한 2억원 상당의 토지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이원석)는 22일 이기용의 손자 A씨 등 2명에게 각각 1억 466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정부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이기용은 흥선대원군의 큰형인 흥녕군 이창응(1809~1828)의 장손으로 1911년 매일신보에 한일합병 1주년을 기념하는 축사를 게재하고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 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친일행적을 펼쳤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됐다. 법무부는 2021년 이기용과 이규원, 홍승목, 이해승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4명의 후손이 소유한 27억원 상당 토지 11필지(8만 5094㎡)의 소유권이전등기 및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기용 후손이 소유한 필지는 경기 남양주시 이패동 2필지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국가귀속에관한특별법 제2조 2항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1904년 2월)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 받은 재산은 국가에 귀속된다.
  • 베델이 창간한 ‘서울신문’ 전신… 尹, 韓英 오랜 우호의 상징으로 강조

    베델이 창간한 ‘서울신문’ 전신… 尹, 韓英 오랜 우호의 상징으로 강조

    양기탁·박은식 등 우국지사와 창간치외법권 지위 활용 항일투쟁 앞장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영국 의회 연설에서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와 이를 창간한 브리스톨 출신 어니스트 베델 기자를 언급하며 양국의 오래된 우호적 관계를 강조했다. 대한매일신보는 당시 항일 투쟁에 앞장선 민족 정론지였다. 영국인 베델은 러일 전쟁 직후 데일리 클로니클 특파원으로 한국에 들어와 1904년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등 우국지사들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영국인 대표가 있었기에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치외법권적 지위를 활용해 일제 침략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채보상운동 등을 전개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5년 영문판과 국문판(한문 혼용)으로 발행됐고 1907년부터 한글판도 창간돼 3종류로 나왔다. 일제 탄압에 옥고를 치르며 건강을 해친 베델은 1909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 양기탁 지사의 손을 잡고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후 대한매일신보는 일본 조선총독부의 강압으로 국문판 기관지 ‘매일신보’로 전락하는 불행한 역사를 겪었지만, 1945년 광복 이후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꾸고 지령과 창간정신을 계승해 이어졌다. 2024년은 베델이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지 120년이 되는 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2월 영국 런던에서 베델의 손자인 토머스 오언 베델을 만나 “대한매일신보가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다”며 서울신문 인쇄본을 선물한 바 있다.
  • 英의회 선 尹 “양국 새 전환점… 침략·도발 맞서 연대”

    英의회 선 尹 “양국 새 전환점… 침략·도발 맞서 연대”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영국 의회 연설에서 “역동적인 창조의 역사를 써 내려온 한국과 영국이 긴밀히 연대해 세상의 많은 도전에 함께 응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사태 등 국제정세와 디지털 격차, 공급망 등으로 인한 국제사회 분열 및 격차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은 영국, 그리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불법적인 침략과 도발에 맞서 싸우며 국제규범과 국제질서를 수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영어로 진행한 이날 연설에서 “브리스톨 출신 어니스트 베델 기자는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3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의 독립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의 전신이자 한국 최초의 신문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과 세브란스 병원의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 등을 언급하며 140주년을 맞이한 한영 관계의 오랜 우정을 부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또한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양국 관계가 새롭게 도약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국빈 방문 계기로 체결하는 ‘한영 어코드’(합의)를 기반으로 이제 양국은 진정한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 다시 태어난다”며 “보다 개방되고 자유로운 국제질서를 영국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다. 영국과 함께 인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번영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양국 협력 지평은 디지털, 인공지능(AI), 사이버안보, 원전, 방산, 바이오, 우주, 반도체, 해상풍력 등으로 크게 확장돼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영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영 양국은 기존의 ‘포괄적·창조적 동반자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내용의 ‘다우닝가 합의’(DSA·Downing Street Accord)를 채택한다. 찰스 3세 국왕 즉위 후 영국이 국빈으로 초청한 첫 해외 정상인 윤 대통령은 이날 영국 왕실의 공식 환영식을 시작으로 국빈 오찬 등 일정을 소화한 뒤 자유민주주의의 산실인 영국 의회에서 연설했다.
  • 尹, 한국대통령 첫 英의회 연설…“영국과 함께 인·태 정치·경제적 안보 튼튼히”

    尹, 한국대통령 첫 英의회 연설…“영국과 함께 인·태 정치·경제적 안보 튼튼히”

    윤석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한국은 영국과 함께 인도 태평양 지역의 정치적 안보와 경제 안보를 튼튼히 하는 데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영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 의회 연설에서 “한국은 영국, 그리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불법적인 침략과 도발에 맞서 싸우며 국제규범과 국제질서를 수호해 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연설문 제목은 ‘도전을 기회로 바꿔줄 양국의 우정’으로 윤 대통령은 영국 의회 및 국민과 교감을 높이기 위해 영어로 연설했다. 윤 대통령은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양국 관계가 새롭게 도약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올해 봄 한미 연합훈련에 영국군이 처음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한영 간 정보 공유, 사이버 안보 협력 체계가 새롭게 구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 대처, 가상화폐 탈취, 기술 해킹 등 국제사회의 사이버 범죄에 대한 양국 공조 강화 의지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북한 핵 위협, 공급망 불안정, 이상 기후, 디지털 분야의 격차 등을 현 세계의 위기 요인으로 지적했다. 이어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은 도전과 응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고 발전한다’고 했다”며 “역동적인 창조의 역사를 써 내려온 한국과 영국이 긴밀히 연대해 세상의 많은 도전에 함께 응전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제 분야 협력의 현황과 비전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의 교역과 투자는 금융, 유통, 서비스, 생명공학 등에 걸쳐 활발히 이루어져 왔으며, 2021년 한영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이후 더욱 활성화됐다”며 “이번에 한영 FTA 개선 협상을 개시해 공급망과 디지털 무역의 협력 기반을 다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국빈 방문 계기에 체결하는 ‘한영 어코드’를 기반으로 양국은 진정한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 다시 태어난다”며 “양국의 협력 지평은 디지털·AI(인공지능), 사이버 안보, 원전, 방산, 바이오, 우주, 반도체, 해상풍력, 청정에너지, 해양 분야 등으로 크게 확장돼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9월 자유, 공정, 안전, 혁신, 연대의 다섯 가지 원칙을 담은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했다”며 “한국 정부는 영국이 제안한 AI 안전네트워크 및 유엔의 AI 고위급 자문기구와 긴밀히 협력해 AI 디지털 규범 정립을 위한 국제사회의 소통과 협력을 견인해 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연설 전반부에서는 영국이 세계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에 미친 영향력을 평가하며 양국 관계를 조망했다. 윤 대통령은 “‘의회의 어머니’인 영국 의회에 서게 돼 매우 영광”이라며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이 주도한 산업혁명은 생산양식과 경제 패러다임의 혁신을 통해 종래 인류 역사에서 겪어보지 못한 초고속의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한국은 유럽 국가 중에서 영국과 최초로 1883년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고 말한 뒤 과거 한국에 도움을 준 인물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 1887년 신약성서를 한국어로 최초 번역한 스코틀랜드 출신 존 로스,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한국의 독립에 앞장섰던 브리스틀 출신 어니스트 베델 기자, 1916년 세브란스 병원 수의학자로 한국에서 장학회를 설립했던 워릭셔 출신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 등이다. 윤 대통령은 “1950년에도 영국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며 “공산 세력의 침공으로 대한민국의 명운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영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8만명의 군대를 파병해 이 중 천 명이 넘는 청년들이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영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도움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기적과도 같은 성공 신화를 써내려 와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반도체, 디지털 기술, 문화 콘텐츠를 선도하는 경제강국, 문화강국이 됐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윈스턴 처칠 수상은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라고 했다”며 “양국이 창조적 동반자로서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여할 때로 국제사회의 자유, 평화, 번영을 증진하는 데 함께 힘을 모아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절을 인용해 “우리의 우정이 행복을 불러오고, 우리가 마주한 도전을 기회로 바꿔주리라”라며 “위대한 영국과 영국인들에게 신의 가호가 깃들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 [씨줄날줄] 한영(韓英)의 가교 베델/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영(韓英)의 가교 베델/서동철 논설위원

    한말의 영국은 한국인에게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다른 서구 열강과 경쟁을 벌인 것이 그 하나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의 남하에 맞서 일본과 공조한 것은 대한제국의 운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대한제국에서 활동한 몇몇 영국 언론인은 제국주의의 국권 침탈 움직임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정론(正論)을 폈다. 한말의 최대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발행한 어니스트 베델이 대표적이다. 조선과 영국은 1883년 조영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조약 원안은 영국이 권익보장 강화를 요구하며 거부했고, 결국 ‘영국 군함이 조선 어디나 정박할 수 있고 선원이 상륙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로 담겨 비준됐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은 1885~1887년 남해안의 전략적 요충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고 ‘포트해밀턴’이라는 이름의 군항으로 활용했다. 한영 관계의 ‘아픈 손가락’이다. 베델은 역사를 통틀어 한국인들에게 가장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은 영국인이다. 영국 신문 특파원으로 대한제국에 왔던 베델은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진 의혈 청년이었다. 배설(裴說)이라는 한국 이름도 가졌던 그는 37살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면서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맞아 런던 시내 광고 영상에 대한매일신보와 베델이 소개됐다고 한다. 19세기 말에는 ‘반(半)문명국’으로 비쳤던 한국이다. 140년 전 불평등조약마저 감수했던 나라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됐고, 그 대통령이 찰스 왕의 첫 번째 국빈으로 찾아갔으니 영국의 감회도 없지 않겠다. 2024년은 베델이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지 120년이 되는 해다. 정부는 베델과 대한매일신보를 기리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베델의 존재를 영국에 널리 알리고 고향 브리스틀에 흉상을 세우는 것도 그 하나다. 단순히 한 언론인에 대한 기념물을 넘어 한영 관계의 미래를 굳건히 하는 상징물이 될 것이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힌 베델의 정신적 귀향이라는 의미도 크다. 아직도 베델의 존재를 모르는 영국 국민과 브리스틀 시민이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 尹 국빈방문 맞아… 英 런던에 등장한 ‘대한매일신보’

    尹 국빈방문 맞아… 英 런던에 등장한 ‘대한매일신보’

    20일부터 시작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을 맞아 한영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광고 영상이 수도 런던 시내에 방영되기 시작했다고 대통령실이 19일 전했다. 이번 광고는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을 소개하며 한영 우호 관계가 한국 언론의 근현대사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 줬다. ‘기억을 공유하고 함께 미래를 준비합니다’를 주제로 대통령실 해외홍보비서관실이 제작한 광고 영상은 42초 분량으로, 한영 관계를 만남·관심·연대·추모·소통·기쁨의 시간 등 여섯 장면으로 요약했다. ‘만남의 시간’은 1883년 한영 수교의 순간을, ‘연대의 시간’은 영국의 한국전 8만 1000여명 파병을 각각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또 ‘관심의 시간’ 부분에서는 대한매일신보 지면을 통한 베델의 을사늑약과 일제의 한반도 강점 보도가 조명됐다. 이 밖에 런던 코리아 페스티벌과 2019년 방탄소년단(BTS)의 런던 공연 장면 등도 영상에 소개됐다. 대통령실은 이번 광고가 “올해 수교 140주년을 맞은 한국과 영국이 역사와 기억을 공유하며 함께 싸웠고, 함께 울고 웃은 깊은 관계임을 보여 주기 위해 제작됐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번 영국 국빈 방문 계기에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다층적으로 확장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힌 데 따라 이러한 의지를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랜 기간 협력을 통해 함께 발전한 두 나라 관계의 의미를 한국과 영국 국민이 다시 한번 느끼고 미래 비전을 함께 설계해 보자는 취지에서 광고 영상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 한·영 수교 140주년 영상에 등장한 베델과 대한매일신보 [서울포토]

    한·영 수교 140주년 영상에 등장한 베델과 대한매일신보 [서울포토]

    20일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공개된 한영 수교 140주년 기념 광고 영상에 어니스트 베델과 대한매일신보가 소개됐다. ‘한영 수교 140주년, 기억을 공유하고 함께 미래를 준비합니다’를 주제로 하는 42초 분량의 영상은 지난 17일부터 런던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한국문화원 창문의 대형 LED 스크린과 각종 온라인 채널을 통해 상영되고 있다. 이 영상은 한영 관계를 만남, 관심, 연대, 추모, 소통, 기쁨의 여섯 장면으로 구성됐다. ‘만남’은 1883년 한영 수교, ‘연대’는 영국의 한국전 8만여 명 파병, ‘기쁨’은 2019년 BTS의 런던 공연 장면을 보여주는 등 양국 관계의 의미 있는 순간들을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양국 수교 140주년을 맞아 오랜 기간 협력을 통해 함께 발전한 두 나라 관계의 의미를 한국과 영국 국민들이 다시 한번 느끼고 미래 비전을 함께 설계하자는 취지에서 영상을 기획했다”고 전했다.
  • 尹 “세종대왕의 한글 정신은 자유·평등·번영과 일맥상통”

    尹 “세종대왕의 한글 정신은 자유·평등·번영과 일맥상통”

    尹, 한글날 앞두고 국립한글박물관 깜짝 방문“한글은 다양 계층 사람들 평등 사용한 글자” 윤석열 대통령은 5일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아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정신은 현대 우리 대한민국의 지향점인 자유, 평등, 번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강조했다.윤 대통령은 이날 제577돌 한글날(10월 9일)을 앞두고 박물관을 깜짝 방문해 유호선 학예연구관의 안내에 따라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 상설 전시를 둘러보고 이같이 말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전시에서 훈민정음해례본과 언해본, 정조 한글어찰첩,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인 ‘말모이’, 근대 한글소설, 대한매일신보, 독립신문 등 한글의 변천사를 관람했다. 윤 대통령은 관람을 마친 뒤 “세종대왕은 모든 사람이 한글을 통해 신분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랐다”면서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여성만 사용했다는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실제 한글은 왕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용한 글자였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각종 분쟁을 한글로 해결했다는 자료를 언급하면서 “조선시대에도 송사를 한글로 작성했다는 것은 관공서에서도 한글이 많이 쓰였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한문을 못 배운 사람들도 한글로 호소할 수 있게 되면서 평등의 가치를 실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한글의 현대적 가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디지털 시대에 가장 유리한 문자가 알파벳과 한글이고, 한글이 우리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한글이 대한민국 번영의 밑거름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조선시대에는 한글이 있었기에 중국의 한자 영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윤 대통령은 박물관에서 광명시 예빛유치원과 하남시 명성 어린이집의 어린이들과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했고, 강동구 꿈미학교 3학년 학생들을 만나 “한글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윤 대통령이 방문한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 4일부터 ‘2023 한글주간’을 맞이해 ‘미래를 두드리는 한글의 힘’을 주제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탐라국 추정 유적 복원될까… 제주시 원도심에서 탐라시대 ‘칠성대’ 뒤늦게 발굴

    탐라국 추정 유적 복원될까… 제주시 원도심에서 탐라시대 ‘칠성대’ 뒤늦게 발굴

    제주시 원도심에 탐라국(耽羅國) 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칠성대’ 유적이 발굴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제주도내 3개 고고학 관련 연구소와 제주 도시재생센터는 지난 2018년~2022년 제주시 한짓골(제주시 이도1동 1491-1번지 일대) 3개구역을 분담 조사한 결과 탐라시대 칠성대 추정 유구 및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고 16일 밝혔다. 탐라 칠성대는 탐라개국 시기에 도성 안 7개소에 북두칠성의 형태로 축조한 유적으로 탐라의 건국이념과 신앙, 도성의 설계와 성주, 성주청(星主廳) 등 당시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한짓골 제1구역에서는 칠성대로 추정되는 원형의 유구와 제실(祭室)터로 판단되는 팔각형의 유구, 제단석, 우물터 등이 발굴됐다. 특히 탐라시대(5세기)때 지어진 유적으로 추정되며 제물로 바친 것으로 추정되는 말, 사슴, 멧돼지 등 동물 뼈가 1000여점이 발굴됐다.30년간 이 칠성대 연구에 힘써 온 강문규 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은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1926년에 순종임금이 승하했을 때 망곡제(1926년 5월 11일 자 ‘매일신보’ (현 서울신문)보도)를 지낸 유구로 추정되는 타원형 유적으로 윗부분은 건물을 지으면서 잘려 나가고, 밑부분 약 10m정도 남아 있었다”면서 “아쉽게도 현재 이 3개구역 중 제1구역에서 집중 출토됐으나 현재 제주시공영주차장 지하에 흙으로 덮어 보존 처리돼 버렸다”고 밝혔다. 강 소장은 “당시 제주시에 직접 요청해 발굴현장 앞에 칠성대(첫번째 별자리가 있는 유적지)라는 표석도 세웠다”면서 “공영주차장을 만들다가 발굴된 상황이지만 중요 유적임에도 고증절차도 거치지 않고 흙으로 덮어버린 점은 매우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는 “탐라의 핵심적인 유적으로 북두칠성을 모방해 도시를 세웠다는 점에서 안개처럼 덮여 있던 탐라사를 밝혀줄 유적이어서 의미가 깊다”면서 “당시엔 마치 목걸이가 생겼을 때는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지만, 줄이 끊어져 흩어져 있다가 하나씩 나올 때는 어떤 의미인 줄 모르는 상황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칠성대에 관한 기록은 ‘제주성내고적도’ 김석익의 ‘탐라기년’, 만농 홍정표의 ‘탐라사에 관한 기고’등의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2012년 이곳에 칠성대 표석이 세워졌고 주변 골목에는 북두칠성의 눈을 뜻하는 두목골, 제터길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일각에선 민선 8기 제주도정의 역사문화공약의 일환으로 탐라문화권사업 추진을 내세운 상황에서 탐라국의 실체 확인을 통한 정체성의 확립과 제주의 자존감 확산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홍명환 도시재생센터장은 “탐라시대 주거지 등 대규모 유적이 발굴된 것으로 200여구가 발견된 국내 최대 규모 선사시대 유적지인 삼양동 유적과 필적할 만하다”면서 “1500년 넘게 이어졌던 탐라인의 결속과 번영을 기원했던 상징공간인 칠성대에 대해 더 적극적인 연구와 해석, 복원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재 1구역을 제외한 2.3구역은 업무용 복합건물 및 숙박시설 예정지여서 언제든 파괴될 우려가 농후하다. 유적지에 포함된 인근 사유지는 건축으로 인한 파괴 우려가 높은 상황이어서 이들 부지를 매입하는 방안도 시급한 실정이다. 1500여년 만에 깨어났다가 잠든 유적이 복원을 거쳐 다시 햇빛을 볼 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인천송현초 여학생 13명,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동원 기록 드러나

    인천송현초 여학생 13명,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동원 기록 드러나

    일제강점기인 1944년 인천 동구 송현공립국민학교(현 인천 송현초) 1회 졸업생인 여학생 13명이 근로정신대로 일본 본토에 강제동원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매일신보 1944년 7월 4일자 3면 기사에 따르면 인천부(현 인천시)의 여자 근로정신대 모집에 따라 송현국민학교에서 졸업생 중 27명이 응모, 13명이 합격했다고 기록됐다. 해당 학부모들은 축하 의미로 돈을 모아 일본에 가게 될 여학생 한 명당 5원씩 줬지만 학생들이 국방헌금하겠다며, 이 학교 이와오(岩尾) 교장에게 절차를 의뢰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같은 면 다른 기사에는 이 학생들이 함께 동원된 인천 지역 다른 학교 학생들과 7월 2일 서울에서 시가행진을 한 후 일본으로 떠났다고 소식을 전했다. 기사엔 ‘인천 두 곳의 우수한 여성 OO명을 선정했다’고 기록, 송현국민학교 13명과 인근 학교 학생들이 함께 동원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3세 소녀를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여자정신근로령’은 1944년 8월 23일 공포·실시됐다. 그러나 칙령 공포 이전부터 추진되고 있었던 걸 이 기사는 보여준다. 매일신보는 일제강점기 동안 발행된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이 기사를 통해 자신과 가족들이 원해서 근로정신대를 지원했으며, 전쟁에 나가는 상황에서 돈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일제의 정책을 미화했다. 해당 기사를 발굴한 더불어민주당 허종식(인천동구 미추홀갑) 국회의원은 “초등학교 정도 교육을 받은 여학생은 ‘여자정신근로령’으로, 중등학교 학생들은 ‘학도동원비상조치요강’으로 인천의 학생들이 국·내외로 일본의 전쟁에 동원시켰다”며 “특히, 동구와 미추홀구는 일제강점기 대규모 군수공업지대로 조성됐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동원 실태에 대해선 거의 파악되지 않고 있어 후속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 “문화유산은 ‘기억의 창고’… 전 세계가 누려야 할 역사” [임형주의 임의 동행]

    “문화유산은 ‘기억의 창고’… 전 세계가 누려야 할 역사” [임형주의 임의 동행]

    서울 중구 정동길을 따라가다 국립정동극장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건물이 하나 나온다. 1899년 대한제국 황실도서관으로 태어난 덕수궁 중명전이다. 경운궁(덕수궁의 옛 이름)에 화재가 나면서 1904년 이곳이 고종의 임시 거처가 됐다. 이듬해 11월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된 곳도 이곳이다. 한일강제병합 이후 외국인들의 사교클럽 장소로 쓰이다가 불이 나면서 외벽만 남긴 채 소실됐다. 이후 민간이 소유하던 건물을 2006년 정부가 사들였고, 문화재청이 대한제국 당시 모습으로 복원해 국민에게 돌려줬다. 건물 2층에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들어와 있다. 개발과 무지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우리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기 위한 기관이 이 건물에 자리한 건 당연하다. 통한의 역사라도 잊지 말고 제대로 알아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인식을 실천하고 있다. ●‘월 1만원’ 회비… 문화유산 매입·관리 이곳에서 만난 김종규(84)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또한 그런 책임감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기억이라고 하는 건 기록으로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모습을 기억 창고처럼 해놔야 하는 거예요. 숭례문도, 경복궁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도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누려야 하는 역사인 거죠. 이 모든 걸 보존하는 일을 정부가 어떻게 다 해요. 그래서 우리가 힘쓰는 거지.” 2007년 문화재청 산하기관으로 설립된 문화유산국민신탁은 민간의 모금으로 보존 위기에 처한 우리 문화유산을 매입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보성 ‘보성여관’을 복원한 것을 시작으로, 이상(1910~1937) 시인이 21년간 살았던 서울 통인동 집과 경주지역 교육 및 문화재 복원에 힘썼던 고청 윤경렬의 옛집을 매입하고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을 개관했다.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고 항일운동을 했던 서민호 선생의 유택 전남 고흥 죽산재도 관리하는 등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기관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데는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들의 힘이 크다. 매달 1만원 이상 회비를 내는 회원이 지난해 9월 1만 5000명을 돌파했고, 현재 1만 6000여명에 달한다. 김 이사장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회원 가입을 독려한다. 월 1만원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을 설파하면서. “너무 많이 내면 부담이 돼서 금방 그만두고 싶어지니 1만원 이상은 못 내게 한다”는 게 철칙이다.●문화·출판계 촘촘한 인맥 가진 ‘거목’ ‘문화계 마당발’로 유명한 그는 이젠 “최선을 다해서 ‘문화유산 지킴이’로 살 수 있다는 게 굉장한 영광이며 축복”이라고 했다. 4년 전쯤 한 문화계 인사를 회원 가입시킨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런 감정의 배경을 에둘러 말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분께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가입하라니까 ‘이 나이에 무슨’이라고 하는 거예요. 젊은이들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지만 우린 하루라도 빨리 가입해서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했죠. 나중에 염라대왕 앞에 가서 ‘가장 잘한 일이 뭐 있나’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대에 남겨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잖아요.” 너스레를 떨며 껄껄 웃는 모습에 경외감이 이는 것은, 60년 가까이 지치지 않고 한국 문화계를 위해 헌신한 모습이 겹쳐 보여서다. ‘세계문학전집’(100권), ‘세계사상전집’(36권), ‘한국문학전집’(60권) 등 1960~80년대 지식인의 필독서를 낸 삼성출판사 창업주가 그의 형 김봉규씨다. 1964년 삼성출판사를 창립하자 김 이사장은 부산지사에서 출판일을 시작했다. 삼성출판사 사장을 거쳐 1992년 회장에 올랐다. 1990년엔 국내 유일의 출판 전문 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을 세웠다. 박물관에는 국보 제265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보물 제758호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 국보와 보물 10점을 포함해 한국 근현대 출판물, 고활자, 도록 등 10만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문화재위원,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에 대한 공로로 문화예술계 국민훈장 모란장, 은관문화훈장, 문화부 장관 표창, 대통령 표창, 한국출판학회상,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을 수상했다. ‘출판계의 대부’라는 또 다른 수식어를 증명하듯,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연도 읊었다. 김대중 정부 때 차일석 서울신문 사장과 플라자호텔 뒤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일부터 꺼냈다. “그 자리에서 ‘3대 메이저 신문 사장을 지낸 분과 함께하니 아주 밥맛 당긴다’고 했지. 서울신문과 대한매일신보 사장에, 전엔 국민일보 대표도 했으니 3대지. 그분이 ‘누가 출판쟁이 아니랄까 봐’ 그러면서 웃더라고.” 서울신문이 1998~2003년 대한매일로 제호를 변경한 일부터 차 전 사장의 선대인 차남수 선생과 사촌인 극작가 차범석 선생, 전남 목포와의 인연을 술술 풀어냈다. 서울신문이 내놓은 주간지 ‘선데이 서울’로 소재를 옮겨가더니, “선데이 서울을 성인잡지 정도로 보는데, 절대 그리 볼 게 아니다. 선데이 서울은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할 만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대표적으로 ‘선데이 서울’에 ‘걸레스님’,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던 중광(1934~2002)의 인터뷰가 나온 걸 언급하며 “매체에 여러 가지를 담아내고 파격을 추구할 수 있는 게 선진 언론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신문은 매우 앞서간 매체였다”고 평가했다. 1974년 국어학자 신기철·신용철 형제가 ‘새우리말 큰사전’을 낼 수 있었던 것에도 서울신문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의 ‘조선말큰사전’ 정보를 듣고 한국엔 우리말을 정리한 사전이 없다는 데 체면이 구겨지자 부랴부랴 서울신문에 사전을 발행하라는 지시를 했다. 당시 김종규(김 이사장과 이름이 같으나 한자가 다른) 서울신문 사장이 삼성출판사에 도움을 요청했다. 은행 대출과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기부 등으로 자금을 마련해 4000쪽에 육박하는 국어사전을 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서울신문이 우리나라의 체면을 살렸다는 걸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이야기를 듣노라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삼성출판사 편집고문으로 ‘문학사상’을 창간한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의 각별한 인연이나, 명창 임방울 선생의 공연 이야기 등이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이어졌다. 산수(傘壽)를 넘어선 나이에도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거다. “내 시간은 지금 여기, 내가 있는 지금 이곳에 흐르고 있잖아요. 내일이 어디 있어.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이지.” ●사회에 되돌려주는 ‘세 번째 30년’ 그는 모두의 인생은 단 하나로,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담아 말했다. 스스로를 두고 한 말이기도 하고, 모든 이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모토로 삼는 말을 들려줬다. “인생을 90세까지로 볼 때 첫 30년은 배움으로 채우고 다음 30년은 생업에 전력을 쏟으며 그 이후 30년은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고 늘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난 사회에 되돌려주는 30년에 들어가 있어요. 그동안 내가 만들어놓은 것을 주변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나눠줄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그는 다시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지금 우리한테는 우리 문화를 잘 보호하고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어요.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지방 어느 마을에 가도 만날 수 있는 당산나무조차 정말 소중한 유산인 거죠.” 올해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을 2만명까지 늘리고, 답사와 문화 강좌도 많이 하면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노력을 꾸준히 할 계획이다. “앞으로 할 일들이 많습니다. 고맙게도 열심히 잘 따라주고 노력하는 우리 직원들과 함께 할 일이죠. 아마도 이러다 보면 90세가 아닌 100세까지 거뜬히 닿지 않을까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 2016년 필자가 문화유산국민신탁의 첫 홍보대사로 위촉되며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 그대로다. 그는 이렇듯 밀도 높은 순수함으로 문화를 사랑하며 한껏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와 같은 문화인으로 나이 들어가기를 꿈꾸게 한다. 임형주 팝페라 테너
  • [토요일의 서재]거, ‘괴담’ 읽기 딱 좋은 날씨네!

    [토요일의 서재]거, ‘괴담’ 읽기 딱 좋은 날씨네!

    화창한 봄날은 괴담을 읽기에 좋다. 안개 낀 으스스한 날, 혹은 싸늘한 한기가 감도는 날 읽으면 너무 무서우니까. 우리와는 다른 존재에 관한 이야기, 괴담과 관련한 책들 가운데 최신작을 서가에서 스르륵 빼 왔다.의지할 가족도 없는 가난한 노인 김감역은 ‘구룡산 느티나무에 종이를 걸고 오면 술자리에 초대하겠다’는 친구들 말에 느티나무로 향하고, 마침 나무에 목을 매고 있던 여인을 발견하고 구해준다. 이를 계기로 둘은 함께 살면서 자식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 김감역이 병에 걸렸고, 아내와 아들들의 정성스러운 간호 속에 잠들었다 깨어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느티나무 뿌리를 배고 있는 김감역의 입에는 말똥과 개똥이 물려 있었다. ‘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1927년 8월 9일 자에 실린 이야기다. 도깨비에게 홀리면 하룻밤도 몇십년과 같다는 내용이다. 당시 매일신보는 3면에 ‘괴담’ 면을 만들어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당시로선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한국 근대 괴담집’(소명출판)은 당시 실린 괴담 시리즈를 한데 모았다. 그저 괴담을 수록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괴담이 하나의 서사 장르가 되기까지를 분석했다. ‘매일신보’는 1927년부터 23회에 걸쳐 모두 15편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했다. 1930년에는 ‘괴기행각’ 란을 만들어 20편의 괴담을 연재했고, 1936년에는 한 면 전체에 ‘괴담특집’을 기획해 3편의 괴담을 함께 보여주기도 했다. 이전 시대에도 괴담은 있었지만,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하나의 장르적 인식을 바탕으로 괴담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매일신보가 처음이었다. 특히 삽화를 통해 귀신이나 도깨비의 모습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재현했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들과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신문이라는 근대 미디어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 장르로 자리 잡는다. 이번엔 조선시대로 가보자. ‘한성요괴상점’(씨엘비북스)은 마포장터 외진 골목에 등장한 요상한 상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어느 날 새벽 화염 속에서 눈을 뜬 최한기는 겨우 집에서 빠져나와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한성요괴상점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상점은 쑥대밭이 됐다. 부모님의 행방도 묘연한데, 그는 어머니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말을 힌트 삼아 매화나무 아래에서 청동 함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열두 마리의 요괴를 잡아 요괴 화첩에 봉인할 때까지는 부모의 복수에 나서지 말라는 당부가 담긴 아버지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한성요괴상점의 새로운 주인이 된 최한기는 아버지의 당부대로 요괴 화첩을 완성하고 원수를 찾아 복수하기로 다짐한다. 두억시니, 무두귀, 귀구, 금저, 청목자 등 우리 전통 요괴들이 등장한다. 인간적이면서도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한국형 요괴를 소재로 탄탄한 이야기에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묘사까지, 남대문과 종로 거리 등 옛 한성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날렵하고 상쾌한 활극이다.괴담 하면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 제25회 일본 호러소설대상을 받은 ‘후회하는 소녀와 축제의 밤’(알에이치코리아)은 독특한 구성으로 주목받는 괴담 소설이다. 아키타케 사라다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1화는 인적이 끊긴 구교사에서 나무 바닥판을 뒤집는 기이한 존재와 맞닥뜨린 사카구치의 이야기다. 그는 처음에는 기분 탓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다음 날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같은 장소에 갔다가 ‘그것’이 발밑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2화는 매일 밤 지네의 모습을 한 거대 생물체로부터 도망치는 소년의 이야기다. 겁에 질려 떨고 있던 소년은 일순간 이불 속에서 정적을 뚫고 나오는 ‘그것’의 기척을 느낀다. 이렇게 모두 4편의 단편을 실었다. 각기 다른 주인공을 화자로 설정해 그들에게 어떤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이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마쓰리비 사야가 공통으로 등장한다. 마지막 4화 ‘축제 날 밤에’에는 각 이야기에서 나왔던 인물들이 모두 등장한다. 단편과 중단편을 복합한 새로운 시도 속에서 일본 특유의 괴이한 이야기가 숨을 죽이게 만든다.
  • [단독] “영웅의 헌신, 제복의 희생… 보훈부 승격은 이분들 더 존중하는 일”

    [단독] “영웅의 헌신, 제복의 희생… 보훈부 승격은 이분들 더 존중하는 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서울신문과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부 승격 의미를 강조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존중하고 예우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는 튼튼한 기초”라고 말했다. 박 처장은 1988년 외무고시(22회), 1993년 사법시험(35회)을 통해 외교부와 검찰청에서 모두 일해 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제18·1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022년 5월 보훈처장으로 취임했다.-국가보훈부 승격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6월 국가보훈부가 공식 출범한다. 본회의 통과에 이어 3·1절을 하루 앞둔 오늘 국무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의결돼 의미가 크다. 보훈부 승격은 ‘일류보훈’을 국정운영 최우선과제로 삼은 윤석열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인 동시에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여야 가리지 않고 동참해 준 덕분이다. 보훈은 대한민국 번영을 위한 사활적 가치를 지닌 핵심 기능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존중하고 기억하고 예우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보훈부가 출범하면 국민들이 느낄 변화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정책 대상이 국가유공자와 제대군인에서 의무복무자와 일반 국민까지 확대된다. 특히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보훈교육과 캠페인을 활발하게 전개해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가 사회 전반에 문화로 자리잡도록 하고, 이를 통해 국가정체성 확립과 튼튼한 안보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제복에 대한 존중’을 확산시키는 것을 앞으로 추진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군인, 경찰, 소방, 해양경찰, 교정 등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존경보다는 폄하와 조롱의 대상일 때가 더 많았다. 이제는 보훈부가 앞장서서 제복을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 바꿔 나갈 것이다.” -국가보훈부 설립을 계기로 보훈과 관련한 업무를 조정하는 문제가 현안이 될 듯하다. 특히 국방부 소관으로 돼 있는 서울현충원이나 전쟁기념관은 보훈부로 이관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 “현재 보훈처는 12개 국립묘지 가운데 대전현충원 등 11곳을 관리하고 있다. 유일하게 서울현충원만 국방부가 관리하고 있는데, 이는 보훈가족 등 국민들께도 상당한 혼란과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국립묘지는 국가유공자의 마지막 안식처이기 때문에 최고 예우와 품격을 갖추고 통일된 관리·운영체계로 유가족들께 안장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전쟁기념관 역시 국가보훈 관점에서 운영하는 게 취지에 맞다고 본다. 다만 전쟁기념관을 이관하려면 전쟁기념사업회법을 개정해 사업회 소관을 변경해야 한다. 현재 보훈처는 독립기념관과 전국 기념관 100곳, 현충시설 2173곳을 관리하고 있다. 앞으로 이관을 통해 전쟁기념관을 국가수호 관련 기념관의 컨트롤타워로 육성해 독립기념관과 함께 보훈선양의 중심기관으로 운영한다는 구상이다. 중요한 건 관계부처와 생산적인 협의를 거쳐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최근 영국을 방문해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한 어니스트 베델 동상 건립 계획을 밝혔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는 한영 수교 140주년이다. 언론활동을 통해 일제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린 베델 선생의 헌신은 한국과 영국을 잇는 가교로서 부족함이 없다. 베델 선생은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영국 신문 특파원으로 한국에 왔다가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뉴스를 창간했다. 옥고까지 치르며 건강을 해치는 바람에 1909년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묻혔다. 정부에서도 베델 선생의 활동을 인정해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베델 선생의 고귀한 정신과 업적이 영국에서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생이 나고 자란 브리스틀에 동상 건립을 계획했다. 최근 마빈 리스 브리스틀 시장과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에게 협조 요청 서한문을 보냈다. 올해는 동상 건립을 위한 예산 반영을 한 뒤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브리스틀 광장에 베델 선생 동상을 세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인 ‘유진 초이’의 모델인 황기환 지사, 연해주 독립운동 거목이었던 최재형 선생 부인 유해를 고국으로 모시는 준비가 한창인데. “황기환 지사는 미국 유학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군으로 참전했고, 이후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 활동 등 미국과 유럽에서 조국 독립을 세계 각국에 호소하는 활약을 했다. 1923년 4월 17일 40세에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서거해 뉴욕 마운트 올리벳 묘지에 안장됐다. 보훈처는 2013년부터 유해 봉환을 추진해 왔지만 유족이 없다 보니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은 끝에 순국 100년이 되는 올해 유해를 고국으로 모실 수 있게 됐다. 늦어도 4월 초에는 유해를 국내로 모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아울러 보훈처는 최재형 선생처럼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를 배우자의 유골과 함께 안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이 개정되면 현재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최재형 선생 부인 묘를 이장해 최재형 선생 위패와 합장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최근 영국·이스라엘 방문을 비롯해 보훈을 주제로 다양한 외국 인사들을 활발히 만나고 있다. 외국 사례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면. “용산호국보훈공원 조성을 위해 세계적인 위상을 갖고 있는 영국 국립추모수목원, 이스라엘의 대표 추모시설인 야드바과 국립현충기념관 등을 현지조사했다. 보훈의 가치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하나로 결집하는지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의 국가정체성 교육프로그램인 ‘셸라흐’가 인상적이었다. 셸라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개인과 연결시켜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교육과정인데, 중·고등학교 필수 교육과정이며 대학입학시험 과목으로도 운영된다.” -보훈대상자 의료서비스 문제는 오랜 현안이다. 코로나19 치료와 돌봄에 공공의료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보훈병원은 사실상 의미 있는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보훈·위탁병원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보훈 대상자들이 일반 병·의원을 더 많이 이용하는 실정이다. 의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민간 위탁병원 규모를 2021년 기준 518곳에서 2027년까지 1140곳으로 두 배 이상 늘리고 보훈병원이 없는 권역에서도 보훈병원에 준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 공공병원을 ‘준보훈병원’으로 지정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보훈병원을 노인질환, 중증 외상,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보훈 특화질환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성화 병원으로 육성하도록 할 계획이다.”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이 누가 될지도 관심사다. 초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데. “장관 지명은 인사권자가 결정할 사안이라 내가 답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앞으로 장관 후보자가 지명되면 인사청문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보훈부 출범을 차질 없이 준비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을 실천할 수 있는 보훈부가 되는 게 차기 장관이 누가 되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 [단독] “서울현충원, 보훈부가 맡아야 … 내년 英에 베델 동상 건립”

    [단독] “서울현충원, 보훈부가 맡아야 … 내년 英에 베델 동상 건립”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오는 6월 국가보훈부가 공식 출범하게 되면서 서울현충원과 전쟁기념관 등 보훈 관련 업무를 보훈부로 이관하는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3·1절을 하루 앞둔 이날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보훈’이라는 취지에 기반한 업무 조정을 강조하며 서울현충원과 전쟁기념관을 비롯해 국방부와 보훈처에 중복돼 있는 제대군인 관련 업무 등을 보훈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처장은 현재 초대 보훈부 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3개월 동안 국가보훈부 출범 준비를 총괄하게 된 박 처장은 보훈부 승격에 대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존중하고 예우하는 국가 의무를 다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관계 부처는 물론 국회까지 생산적인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12개 국립묘지 가운데 서울현충원만 국방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국가유공자에게 최고 예우를 하고 통일된 관리·운영 체계로 유가족들께 안장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방부 소관 전쟁기념관에 대해서도 “국가보훈 관점에서 운영하는 게 기념관 취지에도 부합한다”며 “국가 수호 관련 기념관의 컨트롤타워로 육성해 독립기념관과 함께 보훈선양의 중심 기관으로 운영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 처장은 1904년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한 어니스트 베델 선생 동상 건립 관련 구체적 계획도 공개했다. 그는 “내년 하반기까지 베델 선생 고향인 영국 브리스톨 광장에 동상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최근 브리스톨시장과 주한영국대사에게 협조 요청 서한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박 처장은 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실제 모델인 독립운동가 황기환 지사 유해를 순국 100주년에 맞춰 4월에 국내로 봉환하고, 현재 키르기스스탄에 묻힌 연해주 독립운동의 거목 최재형 선생 부인 유해를 광복절에 맞춰 국내로 봉환해 최재형 선생 위패와 함께 국립현충원에 봉안할 계획이라고 했다.
  • 3·1 운동 맨처음 해외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딜쿠샤 이야기

    3·1 운동 맨처음 해외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딜쿠샤 이야기

    딜쿠샤(Dilkusha, 힌두어로 이상향이란 뜻)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 이름이다. 서울 종로구 행촌동의 인왕산 자락, 권율 장군의 생가 느티나무 건너편에 지금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붉은색 벽돌로 지은 지하 1층에 2층 건물로 총 면적은 624㎡정도다. 1923년 이 집을 짓고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살았던 주인은 미국의 광산기업인이자 언론인 앨버트 와일드 테일러(1875∼1948)와 부인 메리 테일러다. 집 이름은 물론 테일러 부부가 붙였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 중에서도 구성과 외관이 매우 독특하다. 화강석 기저부 위에 붉은 벽돌을 세워 교차하면서 쌓는 흔치 않은 방식으로 지어졌다. 테일러 부부와 딜쿠샤 얘기를 갑자기 꺼낸 것은 그가 1919년 3·1 운동을 해외에 맨처음 알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마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삼일절을 맞아 앨버트 테일러의 삶을 기리는 4분 길이의 영상을 제작해 배포했다고 28일 밝혔다. 서 교수의 영상은 우연히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미국으로 반출해 3·1 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취재해 보도한 테일러의 삶을 상세히 다룬다. 서 교수는 “외국인으로 대한민국 독립에 기여한 분들이 많다”며 “이번 일을 시작으로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국내외에 널리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에서 금광과 무역 사업을 하던 앨버트 테일러는 미국 통신사 UPI의 서울 특파원으로 임명돼 일했다. 그는 민족대표 33명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뒤 동생을 통해 몰래 독립선언서를 외국으로 보내 보도되게 했다. 테일러는 그 뒤에도 일본군이 수원 제암리에서 주민들을 집단 학살한 사건을 취재하는 한편, 일본 총독을 찾아가 조선인 학살에 대해 항의했다. 이런 사건들로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 복역하기도 했으며 1941년 자택에 감금됐다가 이듬해 미국으로 추방됐다. 1948년 미국에서 사망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서울외국인묘지공원에 안장됐다. 딜쿠샤는 현재 우리 정부 기획재정부 소유로 돼 있다. 원래 이곳은 어니스트 베델이 양기탁 등과 함께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 사옥으로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된 곳이란 의미도 있다. 서울시는 1995년부터 딜쿠샤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으나, 건물 기초에 새겨진 ‘딜쿠샤 1923’와 건물의 역사가 확실히 규명되지 않아 진행되지 못했다. 그랬다가 2006년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한국을 찾아 상세한 건축 역사를 전달해 전기를 만들었다. 2016년 2월 서울시와 문화재청, 종로구가 ‘딜쿠샤 보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딜쿠샤는 원형 복원돼 3∙1 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 전면 개방됐다. 당시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가 한국을 찾아 앨버트 테일러 부부의 유품 등 394점을 서울시에 기증해 지금도 이곳을 찾으면 일부를 구경할 수 있다.
  • 독립운동가 15인 모습 컬러 사진으로 만난다

    독립운동가 15인 모습 컬러 사진으로 만난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 김구, 이토 히로부미를 단죄한 안중근,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일제 침략을 고발했던 어니스트 베델 등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15인의 모습을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색채(컬러)사진으로 만나 볼 수 있게 된다. 국가보훈처는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흑백사진을 컬러사진으로 복원한 영상을 28일부터 서울 광화문광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광판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인 4월 11일까지 송출한다고 27일 밝혔다. 흑백사진이 복원되는 독립운동가는 김구, 김좌진, 베델, 송진우, 안중근, 안창호, 유관순, 윤동주, 윤봉길, 이승만, 이회영, 조소앙, 최재형, 한용운, 호머 헐버트 등 15명이다. 영상에서는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김구)”,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안중근)”,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민족을 구하게 하시오(베델)” 등 독립운동가들의 어록도 공개된다. 보훈처는 독립운동가들의 흑백 인물사진에 대한 색채 복원을 통해 후손 등에게 액자 증정을 추진하는 한편 영상으로도 제작해 국민에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애국선열들이 흘린 피와 땀 위에 오늘의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이 서 있음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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