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매듭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유료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밀레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아베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오보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230
  • 포천 여중생 끝내 주검으로

    지난해 11월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연락이 끊긴 엄모(15·포천D중 2년)양이 실종 96일 만인 8일 집에서 6㎞쯤 떨어진 식당 앞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의 수사에 허점이 제기되고 있다. ●시체 발견 엄양은 이날 오전 10시15분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 축석낚시터 맞은 편 옹달샘가든 앞 배수로에서 옷이 모두 벗겨진 채 웅크린 상태로 숨져 있었다.시체 발견 장소는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넘어가는 축석검문소로부터 광릉수목원 방향으로 800m쯤 떨어진 곳이다.엄양은 지름 60㎝,길이 7.6m의 배수관 안에 있었다.실종 당시 입고 있던 교복과 속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였다.엄양을 발견한 경찰은 “실종자 수색을 하는데 배수로에 사람의 발자국이 보여 가까이 가보니 옷이 벗겨진 여자 변사체가 있었다.”고 말했다.경찰은 인근에서 콘돔과 체모가 붙어 있는 휴지를 발견,이 사건과의 연관성을 캐고 있다.시체는 얼굴에서 가슴까지 심하게 부패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결박이나 목졸림 등의 외상 흔적은 일단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엄양의 부모는 오른쪽 팔의 화상 흉터와 아랫배에 난 맹장수술 자국을 보고 엄양임을 확인했다. ●유족 등 주변 표정 엄양의 어머니 이모(42)씨는 딸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그렇게도 선생님이 되겠다던 꿈을 접고 어찌 이렇게 어이없이 갔니?”라고 오열하며 끝내 쓰러졌다.실신한 이씨는 소흘읍 송우리 병원으로 옮겨졌다.엄양의 시신이 안치된 송우리 병원에는 엄양의 옛 급우 4명이 찾아와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실종 당일인 지난해 11월5일 엄양을 마지막으로 본 조모(15)양은 “실종된 날이 마침 수능 시험일이어서 지금도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면서 “헤어질 때 내일 보자며 말한 게 귀에 생생한데….”라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엄양 친구들은 또 “(엄양이) 각종 동아리 활동을 하며 친구들과 한번도 다투지 않을 정도로 착하고 밝은 성격이어서 모두들 좋아했다.”라고 아쉬워했다. ●경찰수사 및 문제점 경찰은 시체 상태로 미뤄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고 시체가 발견된 배수로 일대에서 유류품 수색작업을 벌이는 한편 정밀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기로 했다. 엄양은 지난해 11월5일 오후 6시20분쯤 학교수업을 마치고 귀가중 실종됐다.같은 달 28일 의정부시 민락동 도로 확장공사 현장 인근 계곡 쓰레기더미에서 휴대전화와 가방 등 유류품이 발견됐다. 경찰은 사건발생 직후 3명의 형사로 전담반을 구성하고 엄양 아버지가 근무하는 관내 육군 모부대 장병들까지 동원,수색을 폈으나 성과가 없자 단순 가출에 무게를 둬왔다.엄양 가족들과 엄양이 다니던 D중 교사,학생들이 평소 엄양의 성격이나 생활태도로 보아 가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인접 파주의 윤락가를 뒤지는 등 가출 가능성을 의식한 수사를 폈다.엄양이 실종된 집과 학교 사이에서 시체발견 장소는 6㎞ 떨어진 곳이다.유류품이 발견됐던 곳도 8㎞에 불과해 초기에 수색을 치밀하게 폈더라면 사건을 초기에 매듭지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포천 한만교기자 mghann@˝
  • 6일 개봉 '베이직’숨가쁜 뒤집기 눈을 뗄수 없다

    반전없는 영화에 맥이 풀리는 관객이라면 6일 개봉하는 ‘베이직(The Basic)’이 반가울 것이다.그 속엔 숱한 뒤집기 장치가 숨어 있어 원없이 퍼즐을 푸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남미 파나마의 정글 속을 한대의 헬리콥터가 날아간다.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밀림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하던 미국 특수부대 요원 6명이 총격전을 벌여 4명이 죽고 2명만 생환한다.생존자 던바 일병과 켄달 소위는 수사관 오스본(코니 닐슨)대위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한다.급기야 특수부대원 출신 수사관 하디(존 트래볼타)가 투입된다.조금씩 말문을 연 두 사람은 혹독한 훈련으로 ‘저승 사자’라 불린 부대장 웨스트(새뮤얼 잭슨)하사관에 대해 쌓인 반감 등으로 4명이 서로 총격전을 벌였다고 진술한다.하지만 누가 누구를 쐈는지 등에 대한 증언은 완전히 다르다.무슨 일이 벌어졌고 누구 말이 진실일까? 영화는 두 사람을 취조하는 과정 곳곳에 감춰둔 다양한 반전을 따라 숨가쁘게 이어진다.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부대내 마약 거래 음모의 연기도 모락모락 피어나고,증인인 켄달 소위가 독살되는 등 갈수록 의혹이 증폭된다. 출연 배우들과 제작진은 모두 액션에서 인정받은 이들.존 트래볼타와 새뮤얼 잭슨이 주연을 맡았다.‘다이하드1,3’의 존 맥티어넌 감독에 제작은 ‘터미네이터1,2’의 마이크 매더보이와 ‘다이하드 3’의 마이클 테드로스가 손잡아 ‘꿈의 액션팀’을 구성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부족함보다 못한 법.잦은 반전은 오히려 그 효과를 반감시킨다.특히 마지막에 모든 것을 뒤집을 때는 반전의 묘미가 뚝 떨어지고 허탈한 느낌마저 준다.‘이렇게까지 비틀 필요가 있었나?’라는 거부감이 들 정도다. 그렇지만 영화의 미덕은 부인할 수 없다.생존자들의 잇단 회상신을 빠르게 교차시키면서 보여주는 속도감과 통쾌한 액션은 ‘베이직’의 매력이다.또 12시간 안에 수사를 매듭지어야 하는 상황 설정과 꼬리를 무는 궁금증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긴박감도 별미다. 이종수기자 vielee@˝
  • '출범 한달’ 초조한 특검

    1차 조사기간을 60일로 정하고 지난달 6일 출범한 ‘대통령 측근 비리’ 특별수사팀은 출범 한달 동안 49곳을 압수수색하고,31명을 출국금지 조치했다.계좌추적은 이미 100여건을 넘어섰다.그러나 아직 뚜렷한 수사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검은 그동안 썬앤문 그룹이 노무현 대통령측에 건넨 의혹을 받고 있는 ‘95억원 제공설’의 유일한 단서인 녹취록 분석 결과 사실상 ‘근거 없음’으로 결론내렸다.이원호 청주 키스나이트 사장이 50억원을 노 대통령측에 전달했다는 의혹도 계좌추적 결과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특검 대상인 세 가지 의혹 사건 가운데 두 사건이 검찰의 수사 결과와 비슷하게 매듭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부산지역 기업들로부터 300억원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은 특검법에 명시된 수사 범위가 너무 넓어 부산지역 기업체에 대한 계좌추적에서 맴돌고 있다. 김진흥 특검은 이와 관련,최근 “이달 중순까지 어떻게든지 모양새를 갖춘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양승천 특검보는 “이미 저인망으로 훑은 바다의 주변에서 저인망에서 빠져나간 고기를 잡는 격”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이 특검보는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데 대해 “다 고장난 레코드판 같다.”며 답답해했다.이준범 특검보는 “야구에서 홈런만 생각하지 말고 투수가 스트라이크아웃 잡는 것도 생각해 달라.”며 부담감을 내비쳤다. 한편 특검은 4일 썬앤문 그룹 의혹 사건과 관련,농협에서 사기대출 받은 115억여원 가운데 계몽사 인수대금을 뺀 나머지 자금의 행방을 쫓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우승 특검보는 “사기대출금의 절반 정도가 계몽사로 들어가 약속어음 결제대금으로 쓰였으며,당초 약정한 약속어음보다 많은 어음이 지급된 것을 확인했다.”면서 “약속어음이 최종 지급된 인물을 가려내기 위해 계좌추적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이를 위해 이날 김성래(구속) 전 썬앤문 그룹 부회장과 정모(구속)씨,경리담당 이사인 이모씨를 비롯한 간부 3명 등 모두 5명을 소환,계몽사 인수 당시의 정황과 대출 외압계획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계몽사 전 회장인 홍모씨에 대해서도 출국금지를 요청했다.또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 서울 평창동 집을 판 김모씨를 불러 매매대금으로 사용된 수표의 출처를 조사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유럽 사로잡은 ‘우리 전통공예품’/11일부터 일주일간 ‘공예진흥원’서

    ‘한국공예 유럽진출을 위한 특별전’은 이름보다 내용이 더욱 특별하다.‘유럽진출’을 내걸었지만,오히려 유럽에서 이미 호평받고 있는 우리 전통 공예품을 한국땅에서,한국사람에게 ‘사후평가’를 받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특별전은 오는 11∼17일 서울 인사동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는 전통공예인들의 모임인 한국공예예술가협회가 주최한다.이들은 22명의 개발요원을 선정하여 그동안 전통적인 기법과 재료를 쓰되,유럽인들의 취향과 생활방식에 맞도록 디자인한 230여종의 공예품을 새로 개발했다.시대적 요구를 작품에 적극 반영한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재현에 머무르는 장인들보다 오히려 창조적이다. 이렇게 개발한 공예품으로 2000년부터 프랑스 파리,벨기에 브뤼셀,네덜란드 호르쿰,이탈리아 밀라노 등지에서 3년 동안 15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시연·전시·체험·판매행사를 가졌다.합죽선과 매듭,나전칠기 등 순수한 전통 공예품 30여점을 비롯한 전시품들은 유럽인들에게 호평을 받았고,자개명함집(사진)과 자개손거울,자수손가방 등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특별전은 ‘전통공예는 디자인이 고루하고,괜찮아 보이는 것은 너무 비싸다.’는 일반인의 인식을 상당 부분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주최측은 유럽인들을 사로잡은 우리 전통공예품이 ‘당연히’ 한국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또 전시품 모두를 팔지는 않지만,판매용으로 내놓을 일부 소품은 큰 부담이 없는 가격표가 붙을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번 특별전은 우리 전통공예인들에게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을 보는 안목을 심어주는 것이 목적이다.이를 위해 우리 공예품뿐 아니라 유럽 각국의 공예품 600여점도 함께 전시한다. 나전칠기 장인인 이칠룡 공예예술가협회장은 “해외 박람회에 참가해보면 우리 전시관은 중국은 물론 베트남보다도 초라한 것이 현실”이라면서 “그러나 우리 공예품은 예술성과 품질이 뛰어난 만큼 정부차원의 지원만 뒷받침되면 조만간 훌륭한 문화상품으로 유럽시장에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이부영 “민정수석은 뭘했나”/‘민경찬 의혹’ 조속수사 촉구

    열린우리당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은 3일 노무현 대통령 사돈 민경찬씨의 거액 펀드 모금 의혹과 관련,“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청와대 민정수석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대단히 의아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질타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이 여권 관계자로부터 직격탄을 맞은 것은 처음이다. 이 의원은 상임중앙위 회의를 마친 뒤 가진 브리핑에서 “이런 엄청난 자금이 모이도록 수수방관까지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민씨가 계약도 하지 않고 거액을 모은 것은 국민적 의혹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면서 “하루빨리 수사할 게 있으면 수사하고 사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조속히 문제를 매듭지어 줄 것을 책임 당국에 촉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이날 지도부 차원에서 민씨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자고 제안했으나,“피해자가 없고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시점에서 그런 것을 우리가 거론하는 게 맞느냐.”는 반론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박영선 대변인은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일단언론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만큼 입장을 밝히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민주 밑도끝도 없는 의혹 제기”靑 화났다

    민주당 김경재 의원이 제기한 ‘노무현 캠프 불법자금 50억원 수수 의혹’에 대해 30일 여권이 강경 대응을 선언하고 나섰다. “모른다.”는 식으로 맞대응을 피했던 청와대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 명의로 김 의원을 검찰에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윤태영 대변인은 “김 의원의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날조된 것”이라면서 “김 의원이 노 대통령을 직접 거명한 만큼 원활한 국정수행을 위해 신속히 진위를 가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고소키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산지역 기업들로부터 300억원을 받았다느니,썬앤문으로부터 50억원을 수수했다느니 하는 밑도끝도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그런 가운데 노 대통령은 특검까지 수용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도 직접 대통령을 당사자로 거명했다.”면서 “김 의원은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이번 김 의원의 주장으로 기업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도 김 의원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이평수 수석부대변인은 “대선당시 노 후보 캠프에 있던 우리당 관계자를 통해 진상을 파악한 결과 김 의원의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면서 “조만간 당 법률구조위원회를 통해 김 의원을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동영 의장은 민주당이 자신의 2002년 대선후보 경선자금 공개를 요구한 것과 관련,“공개하느냐 안 하느냐 차원을 떠나 공직선거와 당내 경선 등 모든 선거 참가자들을 죄인시하고 범죄시스템에 넣으려는 민주당의 시각은 올바르지 못하다.”면서 “경선과정에서 검은 돈을 받은 것이 문제이지,경선제도 자체는 좋은 것으로 경선출마자를 모두 죄악시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 의장은 “나도 혼이 많이 났다.매도 많이 맞았고,열번도 넘게 사과했다.나는 법률적으로 매듭지었지만 다시 한번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거듭 머리를 숙였다.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구속방침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훌륭하고 따뜻한 분인데 안타깝다.우리 사회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최근의 진통이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9)연기스님 前상사리(하)

    스님,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할 시간이군요.인도에서 연을 타고 오셨다는 그 연기 스님께서 화엄사를 창건했다는 지금까지의 견해를 부정할 수 있는 증거는 없습니다.불갑사를 마라난타 존자가 창건한 경우처럼 화엄사 또한 백제에 포교하러 온 인도 승려에 의해 544년(백제 성왕22) 창건되고,29대 법왕이 미륵사,금산사를 지으면서 미륵신앙의 힘으로 신라의 공격을 극복하기 위해 국력을 집결시킬 때 화엄사에도 많은 승려와 함께 재정적 지원을 했다는 기록은 진실인 듯 싶습니다.따라서 화엄사 창건과 신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확인된 셈입니다. ●화엄십찰 지정은 백제 유민 회유 목적 스님, 화엄사가 신라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백제 정복 후 백여 년 동안 계속된 백제인들의 저항과 이를 다스리기 위해 고안된 화엄십찰 정책 때문이었습니다.옛 백제 땅에 있던 사찰로서 화엄십찰로 지정되고 국력을 기울여 화엄사상 도량이 된 것은 전주 귀신사,계룡산 갑사,구례 화엄사였지요.셋 중에서 구례 화엄사를 중시한 것은 구례가 예부터 신라와 백제의 국경도시로서 군사 거점이기도 했지만 하동,순천,진주,사천,함양,산청,합천으로 이어지는 곳으로서 민심의 동향에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구례는 옛 마한과 진한시대에도 두 나라의 국경으로 그때는 석주관(石住關)이라 불렀다 하더군요.삼한시대 이후 백제 땅이 되면서 구차례현(仇次禮縣)으로 지명이 바뀌었고,757년 신라의 전국 지명 개편 때 구례가 되었다 합니다.백제 유민들을 회유하기 위한 화엄십찰 지정과 화엄사상 전개에는 의상대사의 공헌이 아주 컸습니다.702년에 의상이 죽은 뒤에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계속되었는데,가장 큰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백제 정복 100년을 전후한 760년 무렵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화엄사를 중심으로 화엄사상 정책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통일 신라 정부가 매우 큰 공력을 기울인 것은 백제 출신으로서 존경받는 승려를 책임자로 정하는 문제였습니다.요즘 우리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북한과의 남북회담 때 남측 수석대표를 정할 때 북한에 고향을 두었거나 부모 형제가 있는 사람을 선정하는 경우와 같았습니다.통일 신라 정부는 이미 금산사의 진표율사를 통하여 그 같은 경험을 한 뒤이기도 해서 적임자를 찾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그때 여러 경로를 통하여 천거된 사람 중에 전라도 흥덕현(興德縣)이 고향이면서 경주 황룡사에서 화엄경을 강론하고 있는 연기(緣起)라는 승려가 있었습니다.또한 그는 754년 8월부터 화엄경 사경(寫經)을 시작하여 755년 2월에 완성함으로써 세간의 불자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고 있기도 했지요.그가 사경한 화엄경은 699년에 한문으로 번역된 주본(周本)80화엄이었습니다. ●연기 스님 고향은 고창군 흥덕면 그를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어머니도 비구니였다는 점이었습니다.아드님이 출가하여 사문이 되자 어머니는 그 아드님에게서 계를 받고 사문이 되었는데 그런 뒤부터는 아들이 아닌 스님으로 존경하면서 모셨다고 합니다.아들은 일찍부터 백제 유민들의 원한에 사무친 삶을 해원시켜 주려는 꿈을 꾸어 왔고,그런 아들의 고귀한 마음을 알고 있던 어머니는 아들이 출가하자 그 아들을 돕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던 것이지요.아들의 꿈이 어머니의 꿈으로 더욱 진솔해진 것입니다. 스님,제가 36년 전 겨울 화엄사로 갔던 이유는 바로 흥덕현이 고향인 그 연기 스님을 뵙기 위해서였습니다.내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던 계급 혁명을 위한 여러 행동들과 사회적 불안을 바로 이해하고 싶어서였습니다.그때 저의 그 같은 생각은 그 뒤에도 한참을 더 내 안에서 번민하며 살았습니다.그러다가 인연 연(緣)자 연기 스님의 생애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졌습니다.연기 스님의 고향이었던 흥덕현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흥덕현은 원래 백제영토였다더군요.백제 때는 상칠현(上柒縣)이라 불렀는데,신라에 복속된 뒤 백제 때 이름과 비슷하게 발음되는 상질(尙質)로 고쳤으며,고려 때에는 장덕현(章德縣)이 되었는데 충선왕의 이름 장(璋)과 음이 같다 하여 다시 흥덕으로 바꾸었다 하더군요. 연기 스님이 백제 유민들로부터 크게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화엄사를 맡게 되었고,그때부터 화엄사는본연의 화엄사상 도량으로 거듭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화엄경 사경도 화엄사서 만들었을수도 스님, 저의 생각으로는 스님께서 경주 황룡사에서 마치셨다는 그 화엄경 사경 작업도 어쩌면 황룡사가 아닌 화엄사에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깁니다.왜냐하면 백제의 역사를 신라기(新羅紀)로 정리한 통일신라와 그 이후 사가들의 신라 중심 사고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보다는 스님께서 이룩해 내신 저 불멸의 정신사인 ‘화엄석경(華嚴石經)’을 완성하기에 앞서 이 불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하고 점검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화엄십찰을 정책적으로 고안해 낸 것은 통일신라의 핵심 권력자들이었지만 화엄사상이 구체적으로 펼쳐지기 위해서는 옛 백제 땅인 전라도와 충청도 사람들의 절대적인 참여와 지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그러기 위해 연기 스님은 다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일을 고안해 내셨습니다.돌에다 화엄경을 새기는 일이었지요. ●옛 백제땅 돌며 평등사상 설법 불사가 시작되기 전에 연기 스님은 옛 백제 땅을 돌면서 화엄사상을 설법했지요.우주 모든 사물은 어느 하나라도 홀로 생겨 나거나 존재할 수 없으며,모든 것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고 대립하며 대립을 초월하여 다시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라고 설파했습니다.따라서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는 것이므로 신라인과 백제인의 갈등과 투쟁과 죽임도 어느 한쪽에만 원인이 있고 책임이 있지 않다는 것,끊임없는 대결보다는 대결을 뛰어넘어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길이 화엄사상임을 가르쳤습니다.적대감정을 해소하고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길을 절규했습니다.모든 사람은 본래 평등하지만 각자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과 그 두려움으로 해서 생기는 고통 때문에 평등이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그 실현을 위해서는 먼저 참회하고 서로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그런 다음 1만 4000여 장의 돌로 다듬은 석판을 만들고,그 석판 위에다 진본 60화엄경을 새겨 넣는 대장정을 시작하셨지요.모두 51만 자로 된 화엄경을 다섯 명의 서예가에게석판 위에 옮겨 적게 한 다음 석공들이 정으로 음각하는 순서를 밟았지요.글씨를 쓰고,음각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연기 스님께서는 화엄사로 모여 든 수많은 불자들과 함께 기도를 하거나 법회를 열어 화엄신앙의 원력으로 마음에 쌓인 증오와 원한을 씻어내기 시작했습니다.이 소문은 널리 퍼져나갔습니다.옛 백제 땅 민중들은 여러 날 동안에 걸쳐 화엄사로 몰려들었습니다.일년 넘는 동안에 모여든 사람은 수십 만 명이었습니다.화엄사를 향하여 오는 동안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하여 그토록 견고하게 자리잡았던 분노와 두려움들이 어느새 많이 풀어지고 녹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절에 머무는 동안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남아 있던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려 갔습니다. 연기 스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붙잡고 말씀하셨습니다.어머니의 인자함으로 자식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용서하고 다독여 안아서 기어코 사람의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식으로 키우듯이 먼저 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두려움을 깨우친 다음 남을 용서하라고 하셨지요. 그렇게만든 화엄석경을 장륙전(丈六殿) 사방 벽에다 장엄했습니다.장륙전은 뒷날 각황전으로 이름이 바뀝니다만 우리나라 최초로 화엄사상의 이상인 평등과 자유로움의 궁전으로 태어났습니다.이렇듯 어머니와 아들은 백제 유민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증오와 저주를 씻어내고 안에다 두려움 없는 행복이 깃들게 했습니다.두 분이 죽고 난 뒤 백제 유민들은 두 분의 작지만 위대한 생애를 탑으로 승화시켜 솔바람 청청한 지리산 언덕에 세우고 효대라 불렀습니다.효대라는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효대가 생겨났습니다.스님,그것이 바로 연기(緣起)였습니다.
  • “3월 주총서 경영권 분쟁 매듭”/취임 100일 현정은 현대 회장 “KCC와 타협은 없다”

    “3월 정기주총에서 경영권 문제가 매듭지어질 것입니다.” 취임 100일을 맞은 현정은(사진) 현대그룹 회장은 2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자신했다. 그는 KCC(금강고려화학)와의 타협 가능성에 대해 “타협할 생각은 없고 정상영 명예회장이 원상태로 돌려놓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경영권을 놓고 벌이는 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에서 타협은 곧 경영권 포기를 의미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현 회장은 특히 “다음달 11일로 예정된 증권거래선물위원회가 ‘5%룰’을 위반한 KCC측 지분 20.78% 전체에 대해 처분명령을 내릴 것으로 믿는다.”며 “금융당국이 법대로 조치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선례가 돼 앞으로 적대적 M&A(인수·합병)가 난무하더라도 당국이 어떻게 대처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현 회장은 “범현대가(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5.3% 보유)도 (경영권 분쟁에서)중립을 지킬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3월 주총에서 경영권 분쟁은 매듭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강현욱지사 곧 우리당 입당

    강현욱 전북지사가 이르면 이번주 중 민주당을 탈당,열린우리당에 입당할 전망이다.또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태영 전남지사의 민주당 탈당 및 무소속 잔류설도 나오고 있다.열린우리당이 영남권 공략을 위해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영입한 데 이어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되는 호남권에 대해서도 ‘올인 전략’을 본격화한 것으로 관측돼 정치권에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26일 “수일 전 강 지사를 만나 입당 문제를 논의했다.”면서 “이른 시일내에 답변을 주기로 했다.”고 말해 강 지사의 입당가능성을 시사했다.강 지사는 지난 21일 민생투어차 전북을 방문한 정 의장과 만나 입당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지사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나의 정치적인 입지와 개인적인 문제를 연계하지 않고 전북의 발전을 위해 뛰는 당을 선택할 수 있다.”고 우리당입당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박양수 사무처장은 “광주·전남 지역 자치단체장들이 무소속인 상태에서 이번 총선을 치르도록 하자는 게 당 방침”이라고소개한 뒤,“이미 상당부분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오는 31일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해당지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주 임송학 박현갑기자 eagleduo@
  • [사설] 정개특위 분노한 민심 반영해야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과연 정치개혁을 바라는 분노의 민심을 듣고 있는지 묻고싶다.설연휴가 끝난 어제 정개특위는 의원 정수와 선거구 인구 상·하한선에 대한 조율에 착수했으나 서로 의견차만 확인한 채 끝냈다고 한다.불법 정치자금 때문에 8명의 의원이 수감중인데다,한나라당 서청원 전 대표와 열린우리당 이재정 전 의원 등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나가 언제 사법처리될지 전전긍긍하는 정치권의 현주소를 지켜보면서도 개혁을 미루고 있으니 답답함을 넘어 딱한 생각마저 든다. 설 민심은 정치권에 대한 혐오와 불신,냉소로 가득차 있었다고 전한 것이 정치권이다.이대로 가다간 정치권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면서 과감한 인적·제도적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한 당사자들이 바로 의원들 자신이다.그런데 처음 매달리는 일이 총선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계산 뿐이니 실망스럽다.한나라당은 총선 이후 권력구조 변경을 위한 개헌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가 하면,불법 대선자금과 측근비리 국회 청문회를 놓고 4당이 또 한바탕 치열한 정치공방을 벌일 기세이다.이대로 가다간 정치개혁은 아마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기 십상이다.정치개혁한다고 호들갑을 떨다가,결국 시간에 쫓겨 선거구 조정 등 위헌조항만 간신히 처리하고 서둘러 총선에 돌입할 공산이 크다고 봐야 한다.지구당 폐지나 선거연령 문제,정치신인들의 경쟁기회 보장,정치자금 모금 한도 조정 등 쟁점은 근본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적당한 선에서 매듭지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설 민심의 소재는 분명하다.정치권이 더이상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달려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먼저 정치개혁특위부터 소속 정당 이해를 떠나 거듭나야 한다.깨끗한 정치를 바라는 민심을 개혁입법에 소신껏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나아가 기득권에 연연하지 말고 참신하고 도덕적인 인물들의 자발적인 정치참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존 제도를 혁파하길 바란다.
  • [사설] ‘총선 징발론’ 오래 끌 일 아니다

    이달 말쯤 차관급 인사에 이어 다음 달 중순 전에 개각과 청와대 수석들에 대한 인사가 단행될 모양이다.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를 확인했으니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졌다.지난해 12월28일 단행된 소폭 개각 당시 ‘총선 징발을 위한 2단계 개각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았는데,결국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총선 ‘올인’ 전략이 비판의 도마에 오른 터이다.하긴 정치권 전체가 올인의 형국이 되어버렸지만,국정 최고책임자인 노 대통령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분위기 쇄신용’ 개각은 하지 않고 있으나,이미 ‘찔끔 개각’이라는 비판을 받고있는 중이다.그런 판에 청와대와 내각이 총선의 종속변수처럼 비쳐지고 있으니,우리나라에는 총선밖에 없는 모양이라는 자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연두회견 때 밝혔듯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장관들의 자발적인 출마를 막을 길은 없다.그러나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의 총선출마가 굳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누가 ‘총선징발은 없다.’는 대통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려 하겠는가.벌써부터 총선 이후 또 대규모 개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청와대와 내각이 총선 때문에 계속 흔들리는 상황이니 어떻게 경제살리기에 힘을 모으고,공무원들이 국정개혁을 위해 마음을 다잡겠는가.가뜩이나 대통령 재신임 문제에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측근비리 의혹 특검까지 겹쳐 정국불안이 가속화되면서 국정혼선이 거듭된 지 오래다. 노 대통령이 어제 장관들과 북악산 등반에서 ‘젊은 한국’을 외치며 새해 힘찬 출발을 다짐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이제 총선징발론을 조속히 매듭짓고 서민들이 희망을 갖도록 경제회복에 진력할 때다.특히 이번 개각이 총선용 한시 내각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그 이후에도 계속 책임지는 믿음의 진용으로 국민들에게 평가받도록 짜여져야 할 것이다.
  • [사설] 경제 살리기 대통령이 나서야

    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전경련 회장단과 오찬을 갖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계의 건의를 들었다.또 공교롭게도 이날 경제·경영 교수 500명이 이례적으로 ‘경제 시국성명’을 발표했다.‘경제 살리기’가 제1핵심 과제라는 재계와 학계의 고언을 대통령은 귀담아 듣고 직접 나서 실천할 때가 됐다.시국성명에서 총체적인 인식을 얻은 뒤 재계와의 간담회 내용에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취하면 좋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무엇보다 현재 경제 인식과 관련해 교수들이 성명에서 ‘정부의 경제 리더십 실종’을 성토한 대목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교수들은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로 경제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이어 “리더십 대신 변덕스러움과 이기적인 이해단체의 투쟁과 인기영합적인 정책이,그리고 국가시스템을 고민할 자리엔 아마추어적인 열정이 있을 뿐”이라고 진단했다.정부는 지난 1년간 각종 이해 조정과 정책 집행에서 저평가를 받은 점을 반성해야 한다. 사실 규제 완화나 불안심리 제거 등의 재계 건의사항은 기회있을 때마다 나온 단골메뉴이다.재계가 노래부르다시피 해온 규제완화가 그렇게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미진했던 원인과 배경을 정부는 따져봐야 한다.이에 따라 규제의 필요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불안심리 해소와 관련,재계나 교수들은 모두 신속하게 대선자금 수사를 끝내도록 촉구한 반면 노 대통령은 “불투명한 정책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대통령은 “검찰수사에 영향을 줄 수도 없으며 수사가 진행돼도 외국의 경우 경제에 주는 영향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하되 속도를 높여 빠른 시일안에 조기 매듭짓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또 국민들은 대통령이 직접 경제 현안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새로 선출된 민주노총 위원장이 중단된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노조와 재계간의 대타협을 정부가 앞장서 도출해내길 기대한다.
  • “자원봉사, 동작구처럼만 해라”

    서울 동작구(구청장 김우중)는 노량진동 325의 5번지 434평에 자원봉사센터를 착공했다고 19일 밝혔다. 옛 선조들의 ‘품앗이’를 응용한 자원봉사은행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최근 이를 사단법인화한데 이어 기초자치단체로는 드물게 발빠른 조치다. 건물은 지하 2층,지상 3층 규모다.건평 120여평인 지상 1층에는 다목적실과 강당,60평 남짓한 2층엔 사무공간을 마련한다.민원인이나 자원봉사자들이 곧바로 자동차를 몰고 일을 볼 수 있도록 주차장을 만들어놓는 등 배려도 잊지 않았다. 지상 3층에는 자료실,소회의실을 조성한다.지하 1층 120여평엔 물리치료실과 맞벌이,또는 모자가정 등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탁아소를 개설한다.공사는 늦어도 연말쯤 매듭지을 방침이다. 구는 199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주민들에게 여력이 있을 때 자원봉사를 하도록 주선한 뒤,나중에 본인이 필요할 경우 그만큼 시간을 충당받는 ‘사랑나눔 통장’을 운영해 각 지자치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사단법인 동작자원봉사은행에는 등록한 회원만 1만 8000명 가까이 된다.연인원 9만 6000여명이다.이들이 자원봉사 통장에 ‘저축’한 시간만 해도 37만여 시간이나 된다.한 명에 21시간꼴이다. 김우중 구청장은 “자원봉사자가 늘어나는 추세인데도 지금까지는 상도동 문화복지센터 사무실 몇 칸에서 더부살이하다시피 하는 등 지원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면서 “독립건물의 신축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고 종합적인 창구 개설로 신속하게 수혜자를 발굴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北 “美서 적대정책 포기땐 핵철폐”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북한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4단계 행동방안을 문서로 밝혀 주목된다.이른바 ‘동시행동에 입각한 일괄타결안’으로 북한 외무성의 이근 미주국 부국장이 지난해 12월 미 국가정책센터(CNP)에 ‘핵 문제 해결의 제반요소들’이라는 제목으로 보냈다. 특히 2차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한·미,미·중간 고위급 실무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리기 시작한 13일 이같은 제안이 공개돼 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북한은 CNP에 보낸 문서에서 미국이 동시행동에 따른 일괄타결안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면 핵의 완전철폐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일괄 타결안의 큰 틀은 북한의 ‘핵 포기 의사표명’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의 교환이다.미국이 강조해 온 핵 폐기 성명에 상응한 불가침 보장과는 밑그림이 다르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에 3가지를 포함시켰다.▲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불가침 보장을 믿을 만한 방식으로 제공하고 ▲북·미간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한국·일본 등 다른 나라와의 경제거래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괄타결안 실행에 북한은 4가지 행동순서를 제시했다.이근 부국장은 미국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며 다음 6자회담에서 첫번째 단계에만 합의해도 회담이 지속될 기초는 마련된 셈이라고 밝혔다. 즉 북한이 핵 폐기를 선언하고 핵 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고 대북 정치·경제·군사적 제재와 봉쇄를 푸는 한편 주변국들이 북한에 중유나 전력 등의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것. 두 번째 단계는 미국이 대북 불가침을 문서로 보장하고 전력 손실을 보상하면 북한은 핵 동결과 동시에 핵 시설 및 물질에 대한 사찰과 감시를 허용한다.세 번째 단계는 북·미,북·일간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미사일 문제를 해결한다. 네 번째로는 경수로 건설을 매듭짓는 것과 동시에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해제한다. 안전보장 문제를 두 번째 단계에 포함시킨 것은 북한의 전력 및 경제문제가 극도로 심각함을 반영한다. mip@
  • 정책진단/ ‘원전센터 추진지원단’ 구성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원전센터) 설치 문제 등 24개 사회갈등현안 가운데 아직까지 해결 또는 처리방침이 확정되지 않은 미해결 과제들에 대해 정부가 ‘매듭풀기’에 본격 착수했다. 13일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미해결 과제는 참여정부가 지난해 추진하기로 한 24개 갈등현안 중 해결 또는 처리방침이 확정된 19개 과제를 제외한 원전센터 건립과 퇴직연금제도 도입,평택항 및 부산신항 항만명칭 문제,한탄강댐 건설,비정규직 근로자 보호 등을 말한다. ●원전센터 부지신청 이달말 공고 무엇보다 정부는 원전센터 건립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부안사태를 조기에 매듭짓기 위해 이달 말쯤 추가 부지신청 기획안을 마련해 공고할 방침이다. 또 정부 내에 ‘원전센터 추진지원단’을 구성해 원전센터 사업을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국무조정실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에서 입지선정 절차 등을 마련 중에 있다.”면서 “이달 중으로 원전센터 추가 유치신청 공고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핵대책위)가 다음달 중순에 실시할 예정인 ‘주민투표’를 수용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현재 주민투표에 대해 찬·반 주민들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전제,“주민투표가 효력을 지니려면 자치단체장이나 시·군·구의회가 주도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나머지도 상반기중 일단락 나머지 미해결 과제도 이해 당사자들이 첨예하게 맞서 있어 해결점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상반기 중으로 입법을 추진하거나 이견조율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퇴직연금제도 도입은 지난해 입법예고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대해 현재 노동부에서 각계 의견을 검토·조율 중이다. 조만간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 등을 거쳐 정부 입장을 확정한 뒤 상반기 중으로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명칭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평택항과 부산신항의 경우 자치단체의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되,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항만정책심의회’ 등을 통해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경기도 평택시의 ‘평택항’에 맞서 당진군은 ‘평택·당진항’으로,부산시의 ‘부산신항’에 맞서 경남도는 ‘부산·진해신항’으로 각각 명칭변경을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경영계와 노동계의 이견으로 공전 중인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입법’의 경우 조만간 국무회 의에 상정할 계획이다. 철원지역 주민들의 백지화 요구에 막혀 있는 한탄강댐은 철원지역 숙원사업인 경원선 연결 등과 연계해 풀어나갈 계획이다. 조현석기자 hyun68@
  • 자전적 소설에 담긴 ‘나와 사회’/평론가 방민호교수의 ‘꽃을 잃고‘·‘구보씨의 얼굴’

    ‘꽃을 잃고 나는 쓴다’ ‘구보 씨의 얼굴’ 근대를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개인에 대한 자각’이다.소장 평론가 방민호(국민대) 교수는 그 양상을 소설에서 나타나는 사회와 개인의 거리를 중심으로 찾으려 시도한다. ‘한국의 자전적 소설’이란 부제 아래 북폴리오에서 펴낸 ‘꽃을 잃고 나는 쓴다’‘구보 씨의 얼굴’ 등 두권에는 다음의 문제의식을 담은 첫 결실이다.“서양의 작가는 사회나 시대를 총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개인의 존재를 드러내는데 일본에서는 작가가 자신을 직접 문제적 개인으로 묘사한다.그러면 한국의 현대소설에서는 사회와 개인의 문제가 어떻게 나타날까?” 저자의 첫 해석은 한국의 자전적 소설들이 작가 자신의 표현·해명에 머물지 않고 당대 사회의 성격이나 양상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꽃을…’는 그에 걸맞은 작품을 분석한 것으로 강경애의 ‘원고료 이백 원’,이기영의 ‘오매 둔 아버지’,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이광수의 ‘육장기’,이상의 ‘실화’,한설야의 ‘태양’,김남천의 ‘등불’ 등의 작품과 분석논문을 소개한다. 자전 소설의 두번째 모습은 ‘구보 씨의 얼굴’에 담았다.저자에 따르면 우리 현대문학의 자전적 소설이 양도 풍부하지만 그 속에서 개인을 드러내는 수준이나 방식도 다양하다는 것이다.그 예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비롯,최서해의 ‘백금’,김유정의 ‘형’,안회남의 ‘고향’,이태준 ‘손거부', 김동인 ‘가신 어머님’ 등을 거론한다. 두 권의 모색에서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매듭짓는다.“한국의 자전적 소설은 ‘나’와 ‘우리’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일제 시대 한국 문학인의 내면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비애와 상실의 기록이다.” 이번 연구에 이어 저자는 1948년 이후 발표된 자전 소설의 얼굴을 그릴 예정이다. 이종수기자 vielee@
  • “호남중진 수도권 출마를”민주도 물갈이 갈등

    민주당도 호남 중진과 수도권 소장파간 물갈이 논쟁이 증폭되고 있다. 6일에는 구파인 조재환 의원이 ‘호남 물갈이’를 제기한 소장파에 반격의 칼을 빼들었다.그는 “호남 물갈이론은 해당 행위며 민주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비난한 뒤 지도부의 ‘살신성인’을 주장했다.조순형 대표와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이 비례대표로 자리를 옮기고 김경재·이낙연·강운태·김효석 의원 등도 수도권에서 싸워야 하며,김영환 대변인은 불모지인 충북 괴산으로 지역구를 옮기라는 주문이었다. 김경재 상임중앙위원도 “물갈이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건 개인의 문제이지 윽박지를 문제가 아니다.”며 인위적인 인적청산을 반대했다. 이에 김 대변인은 “한때 충북 청주 출마도 생각해 봤다.”면서 “그러나 내가 이인제 의원처럼 충청권에서 돌파구가 된다면 당을 살리기 위해 희생도 고려해 보겠지만 찻잔 속 태풍처럼 반향도 없이 나만 떨어진다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이어 “차떼기 정당도 저렇게 몸부림치는데 우리 당도 인적 쇄신이 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라고 방어막을 쳤다. 한나라당이 영남권 중진의 대거 물갈이를 공언하며 ‘사퇴 도미노’를 일으키는 데 대해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서로 등만 떠밀지 정작 나갈 사람은 별로 없다는 데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강운태 총장은 “127개 사고지구당을 정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새 인물을 수혈하고 국민참여 경선과 여론조사 등을 통해 지구당위원장의 기득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이날 중앙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이미 결의한 바 있는 ‘총선 전 위원장 사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는 등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정경기자 olive@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 한나라 오세훈의원 오늘 불출마 선언

    한나라당 소장파 오세훈(사진·강남 을) 의원이 6일 기자회견을 갖고 16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당내 중진들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으로,공천심사 등을 앞두고 파란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기사 4면 오 의원은 5일 오후 기자와 만나 “당내 5·6공 세력의 퇴진을 처음 요구했을 때 그들에게 잘못이 있어 물러가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시대소임을 다 했고,건전한 보수세력에 마이너스적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에 용퇴를 주장한 것이었다.”면서 “당시 젊은 나도 물러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었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지구당 위원장과 당청년위원장직을 사퇴할 때 당내에서 ‘정치쇼’라는 비아냥이 있었으나 그때부터 총선 불출마 선언을 위한 순서를 밟아왔던 것”이라며 “대선자금 수사와 당무감사문건 유출파문 등 일련의 사건에서 소장파로서의 역할을 어느정도 마쳤다고 판단했다.”며 결단의 배경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오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따라 당내 ‘5·6공세력’으로지목받아온 의원들과 불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진의원들의 거취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용퇴론’을 주장해온 미래연대 등 소장파의원들의 입지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지운기자 jj@
  • “기업투자 곧 가시화될 것”박병원 재경부차관보 문답

    내년도 경제살림을 짠 재정경제부 박병원(朴炳元·사진) 차관보는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키워드”라고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내년도 경제운용 계획의 최우선순위가 투자활성화인가,일자리 창출인가. -운용계획을 짜면서 가장 고심했던 대목이 그 부분이다.고심끝에 최대 역점은 일자리 창출에 두되,투자 활성화를 전진배치했다.기업투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일자리도 창출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투자활성화 등 많은 방안을 내놓았지만 손에 잡히는 내용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근본적으로 거시경제 여건이 별로 바뀐 게 없지 않은가.내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설비투자와 소비 부진 해소가 급선무인 만큼 이미 추진중인 사업을 차질없이 매듭짓는 일이 크다.그리고 120여개나 되는 토지 관련 법률을 한 개 법률로 통합하는 것은 엄청난 작업이다.이같은 토지규제 완화 및 일원화는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크게 자극할 것이다.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으로 서비스업을 선택했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인가. -서비스업 활성화는 올초부터 (정부가)계속 해왔던 얘기다.마침 IMF 연례협의단도 같은 견해를 표방했을 따름이다. 거시경제 정책기조를 ‘확장’으로 유지한다고 했지만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깎였다.경기를 부양할 실탄이 없지 않은가.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서 심의하는 과정에서 소폭이나마 증액됐다. 투자는 내년 상반기,소비는 하반기부터 살아나 연간 전체로 5% 성장을 제시했는데 너무 낙관적 아닌가.기업투자는 4월 총선이 지나야 하는 만큼 하반기부터나 회복세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수출 호조로 주문량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기업들이 생산라인 증설 등 투자를 하는 대신 야간근무를 늘리고 있다.하지만 투자압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이같은 방식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기업들이 결국 조만간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본다. 안미현기자 hyun@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