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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다피 아들 한니발, 작년 3박4일간 한국 밤문화 즐겼다

    카다피 아들 한니발, 작년 3박4일간 한국 밤문화 즐겼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의 다섯째 아들 한니발(35)이 지난해 비밀리에 한국에 와 3박4일간 밤문화를 즐기고 갔다고 한겨레신문이 2일자로 보도했다. 한니발은 유럽에서 각종 말썽을 일으켜 세계적인 사고 뭉치로 알려져 있다.  이 신문은 1일 국내 의전업체 관계자의 말을 인용, “지난 해 2월 한니발이 3박4일 한국에서 머물렀고, 외국 협력업체로부터 갑자기 VVIP가 방문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잘 모셔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한니발은 중국 상하이로 가던 중 한국에 체류했다. 첫날 숙소에 도착한 한니발은 최고급 ㄱ호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밤 10시에 갑자기 숙소를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의전담당자는 그의 숙소를 급히 다른 ㄱ호텔로 옮겼다. 의전 담당자는 “한니발이 낮에는 이 호텔 객실에 머물고 밤에만 시내를 다녔다.”고 전했다.  또 의전업체가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에 저녁식사 예약을 했지만 한니발은 “내 수준에 맞지 않는 식당”이라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 사태는 이 레스토랑의 매니저가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과 사인을 보여주고 나서야 마무리 됐다.  이 신문은 특히 한니발이 한국의 밤 문화를 체험하겠다고 요구해 의전담당자가 곤욕을 치렀다고 밝혔다. 한니발은 서울 강남의 유명 나이트클럽을 방문했고,여기서 ‘부킹’을 요구했다. 의전담당자는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밤새도록 영어 대화가 가능한 여성을 찾아다녔다.”고 털어놨다.  한니발은 한국 체류 마지막 날엔 상하이의 폭설로 항공편이 결항되자 배편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의전업체는 하루 더 묵어달라고 설득한 뒤 ‘난타’ 공연장 VIP석 한줄을 예약했지만, 한니발이 A석을 고집해 자리를 옮기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 신문은 한니발이 경찰 폭행(2001년 이탈리아), 과속 운전(2004년 프랑스), 호텔 권총 난동(2005년 프랑스), 호텔 종업원 폭행(2008년 스위스), 부인 폭행 혐의(2009년 영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말썽을 피워 외교적 문제까지 일으킨 바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깔깔깔]

    ●비 개그 가수 ‘비’의 매니저는? 비만관리 엘리베이터 사고에서 ‘비’만 빠져 나왔다면? 비만탈출 ‘비’를 누른 가수는? 클릭 비 어릴 때 가수 ‘비’는? 아이비 ‘비’와 내가 목장에서 소를 세면? 비엔나 소세지 ●깔깔깔 퀴즈 세계에서 가장 두렵고 잔인한 총은? 눈총 세월을 속이는 약은? 염색약 제비족에게 최초로 당한 여자는? 놀부 마누라 미역 장수가 제일 좋아하는 산은? 출산 먹고살기 위해 찾는 책은? 호구지책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은? 윙크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사람은? 마네킹 홈런 치면 절대 안 되는 운동은? 탁구 새 발의 피로 팔자 고친 사나이는? 흥부 잠수기록 세계 1인자는? 심청
  • 피자배달원이 주문 끊긴 단골 생명 구해 화제

    피자배달원이 주문 끊긴 단골 생명 구해 화제

    열심히 피자를 시켜먹던 노인이 피자배달원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 노인과 배달원 사이에 보이지 않게 엮인 줄이 생명줄이 된 셈이다. 인간의 정이 느껴지는 스토리가 전개된 곳은 미국 테네시 주의 멤피스. 도미노피자 배달원과 3년간 매일 빠지지 않고 피자를 시켜먹던 단골손님이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수잔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배달원이 문득 단골 진 윌슨을 기억한 건 지난 21일(현지시간). 매일 오던 주문전화가 끊기면서다. 매일 피자를 시키던 윌슨으로부터 전화 오지 않자 수잔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수잔은 매니저에게 “매일 피자를 시키던 윌슨이 3일째 주문을 하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느냐.”면서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수잔은 이웃들에게 “윌슨을 보지 못했는가.”라고 물었지만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불길한 생각이 든 수잔은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은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윌슨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경찰은 급히 응급차를 불러 윌슨을 병원으로 후송했다. 경찰에 따르면 윌슨이 쓰러진 건 지난 19일. 피자주문이 중단된 바로 그날이다. 독거하는 윌슨은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전화기까지 가기엔 기력이 안 됐다. 경찰은 “배달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다.”면서 “피자와 배달원이 생명을 건지게 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윌슨은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회복 중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관세청 세계로 ‘비상’

    관세청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속의 관세청’으로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위치에서, 국제관세행정 표준을 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23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세계관세기구(WCO)에 세관협력기금(CCF·Customs Cooperation Fund)을 출연하는 한편 WCO 정식직원(officer)도 처음으로 파견한다. 우리나라가 첫 출자하는 CCF는 100만 달러로 177개 회원국 중 5위에 해당한다. 관세청이 매년 WCO에 내는 30만 달러의 분담금과 별도로 무역 규모 세계 9위 국가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한국 주도로 개도국세관 AEO교육 관세청은 출연금을 수출·입종합인증업체(AEO·Authorized Economic Operator) 확대에 활용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주도로 개도국 세관을 대상으로 AEO에 대한 교육, 훈련 등을 실시해 확산키로 했다. 우리나라 관세공무원이 국제기구에 채용돼 임금을 받는 첫 사례도 나온다. CCF를 운용할 펀드매니저 2명이 3월부터 WCO에서 파견 근무한다. 현재 WCO에는 과장급 ‘관세관’이 파견돼 있는데 우리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파견관은 3년간 근무하게 되며 관세청은 서기관(4급) 중에서 우수 공무원을 선발키로 했다. ●WCO 리서치분야 전문관도 도전 또 WCO가 공모하는 리서치분야 전문관에도 도전한다. 파견관과 마찬가지로 4급 간부 중 베스트 공무원을 내보낸다는 계획이다. 전문관 채용기간은 5년이며 성과에 따라 승진도 가능해 WCO에 한국인 고위직 탄생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4월 WCO 아·태지역훈련센터로 지정된 관세국경관리연수원에 국제교수부를 신설해 개도국 세관 공무원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다. 윤영선 관세청장은 “WCO는 국제협약과 표준 제정, 품목분류 등을 결정하는 국제기구로 세계 각국이 재정지원 및 인력 파견에 나서고 있다.”면서 “CCF 출연 및 정직원 파견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장혁·김희애 주연 SBS ‘마이더스’, 11.5%로 산뜻한 출발

    장혁·김희애 주연 SBS ‘마이더스’, 11.5%로 산뜻한 출발

     장혁과 김희애,이민정이 주연한 SBS TV의 새 월화 드라마 ‘마이더스’(극본 최완규,연출 강신효)가 22일 시청률 11.5%로 산뜻한 출발을 했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는 23일 ‘마이더스’는 전날 전국 시청률 11.5%,서울의 시청률 12.9%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같은 시간 방송된 MBC TV ‘짝패’는 14.3%, KBS 2TV ‘드림하이’는 17.9%를 기록했다.  ‘마이더스’는 재벌가를 배경으로 돈과 욕망,사랑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다. 최완규 작가는 ‘주몽’ ‘올인’ ‘허준’ 등을 집필했다.  지난해 ‘추노’로 KBS 연기대상을 받은 장혁이 펀드매니저 출신의 천재 변호사 김도현을 맡고,‘내 남자의 여자’ 이후 4년 만에 컴백한 김희애가 재벌가 상속녀이자 유능한 사업가인 유인혜를 연기한다.  첫회에서는 각각 엘리트와 야심찬 사업가의 옷을 입은 장혁과 김희애의 변신이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조성모 “소속사, 살인교사 버금가는 폭행·폭언” 진실은?

    조성모 “소속사, 살인교사 버금가는 폭행·폭언” 진실은?

     소속사로부터 3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가수 조성모가 “소속사 에스플러스의 대표 구모씨에게 폭행과 폭언, 협박을 당했다.”며 형사고발 방침을 밝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조성모 측 채종훈 변호사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에스플러스는 부적절하고 수준 낮은 매니지먼트로 조성모의 이미지와 명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을뿐 아니라 인격적으로 심한 모욕을 주는 등 심리적·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안겼다.”고 밝혔다.  채 변호사는 “구 대표는 지난해 1월 조성모와 계약이 성사되자 이전과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며 심한 모욕감을 주는 욕설과 폭언, 폭행 등을 일삼았다.”면서 “4월에는 합의 없이 자기가 판권을 갖고 있는 드라마 OST에 무조건 참여하라고 협박했고 이에 따른 가창료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구 대표가 일본 매니지먼트에 많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고 했지만 실은 한류스타 홈페이지 관리 대행과 모회사를 통해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한류 이벤트가 주된 사업이었으며, 여기에 조성모가 크게 실망했다.”고 전했다. 이어 “소속사가 유료로 모집한 일본 팬클럽을 허술하게 관리하고, 일본 팬들에게 각각 3만원어치 녹차를 파는 등 이미지에도 상당한 타격을 줬다.”고 했다.  채 변호사는 “뮤직비디오 촬영 및 앨범 준비 그리고 방송 활동 중에도 구 대표의 끊임없는 협박과 무리한 요구로 조성모는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든 압박을 받았다.”면서 “심지어 조성모의 매니저를 폭행하고 조성모에게 살인교사를 방불케 하는 폭언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구 대표의 폭행, 폭언을 입증할 자료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성모측은 “조성모가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는 소속사의 주장도 반박했다. 채 변호사는 “에스플러스는 합의과정 중 사전 통보 없이 소송을 하고, 한달 전까지 양측이 조정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냈다.”면서 “더 이상 대화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판단, 조만간 구 대표를 형사고발하고 강력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에스플러스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조성모 측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면서 “오해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며 공식적인 내용은 변호사를 통해 다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에스플러스는 지난 18일 “조성모가 3년간의 전속계약 의무를 저버린 채 지난해 6월부터 회사 임직원과 연락을 끊고 동의없이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1만여 한국팬 영혼 울린 ‘원더풀 투나잇’

    1만여 한국팬 영혼 울린 ‘원더풀 투나잇’

    별다른 밑반찬도 내지 않고 단품으로 승부를 보는 맛집들이 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지난 1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둘째아들 김정철의 싱가포르 원정 관람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영국 출신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66)의 내한공연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어설픈 한국말 인사 대신 곡부터 연주20일 서울 송파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흔히들 내한공연을 온 팝스타들이 ‘립서비스’로 내놓는 어설픈 한국말 인사나 ‘만나서 정말 반갑다’는 식의 치레는 없었다. 다짜고짜 첫 곡 ‘키 투 더 하이웨이’(Key To The Highway)를 뽑아내더니 ‘생큐~ 굿 이브닝’이라고 한 게 그의 가장 긴 멘트였다. 무대 위에는 푸른색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 트레이드 마크인 뿔테안경을 쓴 그를 중심으로 두명의 건반 주자와 드러머. 베이스기타, 두명의 여성코러스가 전부였다. 주최 측이 대형화면으로 내보내는 장면 역시 ‘기타의 신’의 손놀림을 클로즈업할 뿐 화려한 무대장치나 오케스트라 협연 등 ‘액세서리’는 없었다. 단지 노련한 세션맨의 도움을 받은 클랩턴과 그의 음악이 전부였다. 이것만으로도 울림을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1997년과 2007년에 이어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살아있는 거장’의 무심한 듯한 목소리와 울부짖는 기타에 1만여명의 팬들은 넋을 잃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목을 축일 때와 기타를 바꿔 메는 시간을 제외하면 120분 동안 숨도 돌리지 않았다. 그룹 ‘야드버즈’와 ‘크림’의 멤버로 두번, 솔로 아티스트로 한번 등 남들은 한 차례도 이름을 올리기가 어렵다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세번 헌액된 그답게 완벽한 무대를 연출했다. 조금씩 들떠가던 체조경기장에 불을 지핀 것은 5번째 곡으로 ‘아이 샷 더 셰리프’( I Shot the Sheriff)를 부르면서다. 후반부에 이르러 ‘레일라’(Layla)와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 ‘비포 유 어큐스 미’(Before You Accuse Me) 등 히트곡을 쏟아내자 공연장은 터져나갈듯 달아올랐다. 다섯살짜리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만든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은 이날도 부르지 않았다. ●“서울공연에도 김정철 오나” 전화 한편 싱가포르 공연(14일)에 김정철 일행을 취재하려는 일본 취재진이 몰려 분위기가 흐려진 탓에 클랩턴의 매니저가 15일 주최 측인 나인엔터테인먼트에 “혹시 김정철이 한국에도 오는 것 아니냐.”고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클랩턴은 내한한 뒤로는 이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았고, 이날 공연도 관중들의 기립 박수 속에 무사히 끝났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홍수아 “엉뚱발랄녀에서 이제 차도녀로… 이 작품이 터닝포인트”

    홍수아 “엉뚱발랄녀에서 이제 차도녀로… 이 작품이 터닝포인트”

    프로야구팀 두산 베어스의 명예 선발투수 1호, ‘홍드로’라 불리며 ‘연예인 개념 시구’의 붐을 일으킨 홍수아가 모처럼 드라마로 돌아온다. MBC 새 일일드라마 ‘남자를 믿었네’에서 털털하고 발랄한 신세대 여성(정미) 역할을 맡은 것. SBS 예능 프로그램 ‘영웅호걸’에 출연 중인 그의 드라마 복귀는 2년 만이다. 28일 첫 방송을 앞두고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지난 15일 예기치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예능 프로에서 비보잉 체험을 하던 중 허리를 다쳐 응급실에 실려간 것. 인터뷰 날짜 이틀 전이었다. 드라마 촬영보다 인터뷰를 ‘펑크’낼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는 프로답게 진통제를 맞아가며 밤샘 드라마 촬영은 물론, 17일 약속장소인 서울 태평로 카페에 정확히 나타났다. 몸 상태부터 묻자 “우리 팀이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집중하다 허리를 다쳤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홍수아는 ‘내 사랑 금지옥엽’ 이후 2년 동안이나 드라마에서 ‘부름’을 받지 못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컸을 터. ‘영웅호걸’에서 “연기가 너무 하고 싶다.”고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 모습을 본 MBC의 한 여성 PD가 홍수아를 ‘남자를 믿었네’ 연출팀에 강력 추천했다. 홍수아의 ‘연기 앓이’도 마음에 와 닿았지만 신세대적인 솔직함이 드라마 속 정미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판단에서였다. 허리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가도 정미 얘기가 나오면 홍수아는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시트콤 ‘논스톱 5’ 등에서 보여드렸던 철부지 어린 아이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도시적이고 솔직한, 당찬 여성의 모습이에요. 성숙한 이미지를 보여드릴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 많이 설레기도 해요.” 홍수아는 “데뷔 7년 만에 키스신도 처음 찍었다.”며 수줍어했다. “진짜 너무 떨렸어요. 다행히 상대 역인 김동욱씨가 키스신 경험이 있어 잘 이끌어주더라고요. 그런데 첫 키스신임에도 촬영 전에 스태프들이 건네준 떡볶이를 먹고 찍었어요.” “동욱 오빠에게 미안하다.”며 까르르 웃는 홍수아. 고등학생 때 데뷔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연애다운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단다. 마냥 밝은 그녀이지만 상처도 많고 아픔도 컸다. 예전 매니저에게 사기당해 모든 수입을 빼앗긴 적도 있다. “어린 나이에 사기당해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얼마 전 방송 프로에서 일일교사로 나선 적이 있는데 곧 사회에 나갈 고3 친구들은 저처럼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솔직하게 당시 일화를 공개했습니다. 속으론 슬펐지만 더 크게 웃었어요. 학생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언니는 거지다’라고 해놓고는 수업 끝난 뒤 혼자서 많이 울었어요.” 이 방송이 나가고 ‘홍수아 사기’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조금은 창피했단다. 괜히 털어놓았나 싶기도 하고, 사기와 무관한 지금의 소속사에 혼나기도 했다. “그래도 인간 홍수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다.”는 그는 앞으로 어떤 캐릭터든 소화해 낼 수 있는 카멜레온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롤모델은 전도연.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부러운 사람은 가수 아이유란다. “요즘은 확실히 아이돌이 대세예요. 어린 친구들이 정말 인기가 많아요. 부럽죠. 저는 ‘영웅호걸’에서 맨날 인기투표 꼴찌예요.” 또 다시 까르르 웃는 홍수아. 예쁘게 보이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드넓은 운동장에서 개념 시구를 보여줬던 ‘홍드로’가 아이유 못지않은 ‘대세녀’가 되길 기대해 본다. 글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MBC ‘나는 가수다’ 음원·방청 후기 유출…인터넷 관심 후끈

    MBC ‘나는 가수다’ 음원·방청 후기 유출…인터넷 관심 후끈

     다음달 6일부터 방송될 예정인 MBC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가 녹화된 음원과 출연진, 선곡 등이 유출돼 제작진을 당황케 하고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인 이 프로는 지난 14일 비공개로 녹화됐다.  한 네티즌은 지난 14일 첫방송 녹화를 아이폰으로 녹음한 것으로 보이는 김건모의 노래 일부분을 디시인사이드 가요 갤러리에 올렸다. MC를 맡은 가수 이소라의 음성과 진행 부분도 짧지만 함께 올렸다.  이외에도 커뮤니티사이트와 트위터 등에도 참가 가수 등을 알 수 있는 방청 후기가 올라오는 등 상당 부분의 내용이 알려졌다. 녹화에는 김건모, 윤도현, 박정현, 김범수, 백지영, 정엽 등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출연했다.  진행 방식은 가수들과 이들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개그맨들이 1대1로 짝을 이뤄 지정곡을 연습하고, 평가단이 노래 점수를 매겨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가수가 탈락하면 새 가수가 그 자리를 메우는 서바이벌게임 방식이다.  후기를 접한 네티즌들은 “가창력에 지금까지 짜릿하다. 정말 최고의 가수들이다.”란 반응을 보여 프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참여 가수들은 자신의 노래와 전혀 다른 장르의 곡을 배당 받는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혈투’ 주연 진구 “백지라서 러브콜 받죠”

    ‘혈투’ 주연 진구 “백지라서 러브콜 받죠”

    영화 ‘마더’, ‘트럭’, ‘비열한 거리’를 본 관객이라면 그의 강렬한 눈빛을 쉽사리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배우 진구(31)다. 봉준호, 김지운, 유하 등 유명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충무로의 젊은 피’로 통하는 그가 이번엔 사극 ‘혈투’(24일 개봉)에서 또 다른 매력을 뿜어냈다. ‘혈투’는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쓴 박훈정 작가의 감독 데뷔작. 조선 광해군 11년,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대패하고 적진 한가운데 고립된 3인의 조선군 도영(진구), 헌명(박희순), 두수(고창석)가 적이 아닌 서로를 겨눈 채 혈투를 벌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진구를 만났다. →죽마고우에게 배신당한 뒤 복수심에 불타는 도영 역을 맡았는데. -대본이 좋고 악역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출연을 결심했다. 세 명 중에 아무나 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솔직히 도영 역은 피하고 싶었다. 양반가 자제였다가 친구의 배신으로 몰락한 인물의 분노 등 복잡한 내면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 성격은 친구에게 배신 당해도 금세 잊어버리고 마는, 긍정적인 편이다. →배신과 복수라는 코드가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혈투’만의 차별점은.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설전을 벌일 수 있는 토론용 영화다. 2인자의 설움을 지우기 위해 권력을 좇는 헌명이나 몰락한 양반가 자제 도영, 양반들로 인해 억울한 군역을 치르게 된 천민 두수 등 시대 상황은 다르지만, 관객들은 각자 살아온 과거에 따라서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해 이야기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만주 벌판을 피해 세 주인공이 몸을 피한 객잔(밀실)에서의 긴장감과 액션이 인상적이다. -눈보라 장면은 세트장에 소금밭을 만들어 촬영했는데, 모공 속에 소금이 침투하고 탈수 현상이 일어나 셋 다 링거를 맞기도 했다. 여름에 무거운 옷을 입고 가발을 쓴 데다 피 분장을 위한 물엿이 땀, 소금과 뒤섞여 고생 좀 했다. →연기파 배우 세 명이 모였으니 말 그대로 ‘혈투’가 벌어졌을 것 같다. -친해져야 독한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낮에는 액션, 밤에는 음주로 우애를 다졌다. 셋 다 현장에선 ‘수다맨’이었는데, 의외로 희순이 형이 가장 웃기고 창석이 형이 가장 진지했다. 형들은 내가 마음껏 연기하도록 배려해 줬다. 그런데 영화가 나온 것을 보니 두 분이 욕심을 내지 않아도 빛이 나더라. 어떤 장면에서 남을 이겨야겠다는 경쟁심은 MBC 청춘시트콤 ‘논스톱5’(2005)를 찍으면서 버렸다. 젊은 친구들이 서로 튀려고 욕심부리는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그렇게 빨리 비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계기가 있었나. -데뷔작인 2003년 ‘올인’에서 이병헌의 아역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시기였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자 인기가 사그라들더니 아예 거품처럼 없어졌다. 연기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맛본 것이다. 그때부터 인기란 거품이란 것을 깨닫고 욕심이나 기대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작이 바로 영화 ‘비열한 거리’(2006)였나. -지금은 소속사 대표가 된 당시 매니저를 통해 ‘진구는 TV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방송사 고위간부의 말을 전해 듣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영화계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고 연기를 하다보니 그동안 갖고 싶었던 돈, 명예 같은 것들이 내 눈앞에 와 있었다. →‘조연으로 사는 법’을 일찌감치 터득했나 보다. -조연은 아무리 잘해도 주연보다 더 많이 나올 수는 없다. ‘비열한 거리’를 찍을 때 조연답게 주인공인 조인성을 충실히 받쳐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랬더니 점차 연기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충무로 유명 감독들의 출연 제의가 유독 많았다.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백지라서 (감독들이) 그림을 그리는 재미가 있으신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은 배우마다 자신이 원하는 연기를 하도록 유도하는 편이다. 김지운 감독은 배우가 이해 못하는 장면이 있으면 확실하게 답을 주는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스타일이다. 이번에 작업한 박훈정 감독은 마음이 급하고 호불호가 확실한 것이 나와 성향이 가장 비슷해 행복했다. →앞서 작업한 선배 배우들에 대한 느낌은. -‘트럭’을 함께 찍은 (유)해진 형은 인상과 달리 무척 섬세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현재 ‘모비딕’을 함께 찍고 있는 (황)정민 형은 주변 사람들이 피곤하다고 느낄 만큼 ‘디테일의 신’이다. →아버지가 ’투캅스3‘ 등을 찍은 유명한 촬영감독(진영호)이다. 배우 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정반대다. 아버지가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반대를 많이 하셨다. 끼도 없고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니 영화를 하고 싶으면 연출이나 촬영을 하라고 하셨다. 지금은 배우로서 인정해주시지만, 모니터할 때 칭찬 위주로 하시는 편이라 별로 도움은 안 된다.(웃음) →반항아적 이미지 때문에 손해본 적은 없나. -덕 본 게 더 많다. 배우들이 술자리에서 종종 싸움에 휘말리곤 하는데, 강한 인상 때문인지 내게는 시비 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예전엔 여성 팬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 ‘연기파 미남’이라는 말도 곧잘 들어 더 나이 들기 전에 멜로 영화도 찍고 싶다는 진구. 2009년 ‘마더’로 각종 남우조연상을 휩쓴 그에게 이젠 주연상을 노려볼 만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언젠간 타겠지만 혹시 안 타도 상관 없다.”고 했다. 크든 작든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들어오는 것에 감사하단다. 그는 진정 스크린에서 놀 줄 아는 배우였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고전톡톡 다시읽기] (54) 이기영 ‘고향’

    [고전톡톡 다시읽기] (54) 이기영 ‘고향’

    1930년대 조선의 농촌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맞는다. 하지만 대공장, 철도, 전신은 ‘농민’을 ‘개명(開明)’하게 한 것이 아니라, 소작농과 임노동자로 전락시킨다. 이러한 계급분화와 함께 일본에서 건너온 ‘사회주의’는 3·1운동 이후 식어 버린 혁명의 열기를 다시금 점화시키고 있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정점’이라 불리는 이기영의 ‘고향’(1933)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계몽의 꿈은 스러지고 ‘원터’는 조선의 여느 마을과 다름없이 가난하다. 그곳의 농민들은 수백년간 대대로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왔지만, 술지게미로 보릿고개를 연명하고, 한낮의 볕조차 피할 수 없는 움막에 살고 있다. 그곳으로 도쿄 유학을 마친 ‘김희준’이라는 청년이 귀향한다. 그는 ‘금융조합 서기나 면서기와 같이 돈냥 깨나 되는’ 직업을 얻을 수도 있었지만, “고토(苦土)에 진리의 경종을 울린다.”는 거창한 ‘계몽의 꿈’을 안고 돌아온 것이다 희준은 곧장 기미년 이후 놀이터로 전락해 버린 청년회를 재건하고, 노동야학을 세워 농민들에게 한글과 산수를 가르친다. 혹자는 별 소득도 없는 일에 힘을 쓰는 그를 “식자의 우환”이라며 비웃지만, 매사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희준은 곧 마을의 구심점이 된다. 심지어 인동과 같은 젊은 농군들은 ‘실천을 동반한 그의 이론’에 감화받기까지 한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나날이 몰락해 가는 집안과 조혼(早婚)으로 인한 아내와의 불화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고, 농민들은 여전히 ‘숙명적 인생관’이라는 묵은 사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임노동’의 확산으로 인해 굳건히 세워진 사람들 간의 ‘울타리’였다. 화폐 법칙이 지배함에 따라 두레, 쥐불놀이와 같은 공동체의 장은 사라져 갔고, 사람들은 자신의 잇속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콩 몇 포기에 생사를 오가는 싸움이 일어나고, 돈 몇 푼을 빌려 주지 않아 마을 사람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적 결핍’ 속에서 희준은 ‘계몽의 선각자’가 아니라 단지 ‘주의’가 다른 별난 사람이 되었고, 그의 행동은 ‘동정의 산물’로 치부되었다. 심지어 희준에게 가장 우호적이었던 김선달까지 청년회 일을 부잣집 자제들의 심심풀이라며 폄하해 버린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농민과의 거리를 실감하게 된 희준은 자신의 인텔리 근성을 자책함과 동시에 농민들의 무기력과 청년 회원들의 이기심을 탓하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계몽의 길’이었건만 그 길은 마침내 자신에게도, 타인들에게도 상처와 깊은 골만을 남긴 채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두레, ‘되라’에서 ‘되기’로 그 와중에 희준은 ‘두레’라는 재래의 풍속과 마주친다. 그동안 언제나 ‘제안하던’ 희준이 농번기로 인하여 청년회가 중단된 순간 거꾸로 두레를 ‘제안받은’ 것이다. 그러자 희준은 곧장 청년회와 야학 활동을 통해 형성된 인맥을 활용하여 두레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 축제에 필요한 장구·징·꽹과리 등을 장만한다. 이 속에서 희준은 기존의 만남과는 전혀 다른 만남을 경험한다. 야학과 청년회에서 희준은 언제나 그 장을 주도하는 ‘선도자’였다. 하지만 두레에서 희준의 역할은 선도자가 아닌 만남을 조직하는 ‘매니저’가 되었다. 청춘남녀의 중신아비가 되어 주기도 하고, 숨은 재주꾼을 찾아내 두레라는 축제의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렇다고 대열을 이끄는 중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다쟁이에 불과했던 김선달은 상쇠잡이가 되어 신나게 풍물패를 이끌었고, 마을 최고의 얼뜨기 쇠득이는 신명 나는 춤으로 춤판을 주도한다. 악기를 든 이, 심지어 음식을 마련하는 이까지 앞을 다투어 두레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느닷없이 벌어진 흥겨운 축제는 삽시간에 서로의 울타리 속에 갇혀있던 이들을 화해하게 만든다. 희준 역시 그 속에서 ‘희생’과 ‘헌신’이라는 짐을 내려놓고, 사람들과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춘다. “두레가 난 뒤로 마을 사람들의 기분은 한껏 통일된다.” 그 결과 마을 사람들과 ‘인텔리’ 희준의 관계는 삽시간에 좁혀지고, 희준은 비로소 그들에게 자신이 품었던 꿈과 이념을 자연스레 토로할 수 있었다. 그제야 원터 사람들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두레를 통하여 희준과 농민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계몽의 ‘되라’에서, 변신의 ‘되기’로의 변화. 희준은 이제 농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아니라 농민들 속에서 그들과 어우러져 매순간 새롭게 변신하는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 된다. ●일상, 축제, 그리고 혁명 두레를 통한 연대의 힘은 수해를 맞아 다시금 폭발한다. ‘소작료’를 두고 마름과 한판 ‘소작쟁의’가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굳건해 보였던 연대감은 먹을 것이 떨어지고, 변통할 돈이 사라지자 곧 깨어진다. 그러자 희준은 두레 때와 같이 인맥을 적극 활용하여 지주를 만나 소작료 협상에 나서는 한편 농민들과 마름을 설득하러 다닌다. 사심 없는 열정과 친화력에 촉발 받아서일까? 곧 소작쟁의를 포기할 듯 보였던 마을 사람들이 각자의 관계와 능력을 발휘하여 공동의 연합전선을 구축한다. 공장에 취업한 노동자들은 임금을 농민들에게 기꺼이 내놓고, 비교적 넉넉한 농민들은 분배받은 자신의 몫을 양보한다. 심지어 마름의 수족이었던 이까지 연락책이 되어 농민에게 힘을 보탠다. 결정적으로 지금은 어엿한 노동자가 된 마름 댁 딸 갑숙이가 철없는 시절 저지른 부적절한 ‘혼전 관계’를 희준에게 무기로 내놓는다. 이는 여전히 양반 행색을 하며 사는 자신의 아버지, 마름 안승학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이로써 길고 긴 소작쟁의는 농민들의 승리로 끝이 난다. 원터 사람들이 소작쟁의를 통해 얻은 것은 단지 소작료 감면만이 아니었다. 두레의 신명에 힘입어 소작쟁의에서 모든 사람들은 중심이자 배경이 되었다. 그 속에서 공동체적 유대감은 되살아났고,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경이로움을 체험한다. 일상과 축제, 그리고 투쟁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비로소 혁명은 이념도, 판타지도 아닌 ‘현실’이 된다. ‘고향’이 사회주의와 리얼리즘을 동시에 성취하는 혁명 소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우준 수유+너머 연구원
  • 중국 톱스타 판빙빙 갑부와의 열애설 휩싸여

    중국 5대 미녀로 꼽히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판빙빙이 중국 갑부와의 열애설에 휩싸였다.하지만 그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12일 중국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판빙빙의 열애설 상대는 중국 갑부인 무샤오광. 그는 상하이의 유명한 사교클럽 151 사장이다. 자산이 무려 한화로 900억원대에 이르는 부자다. 지난 2007년부터는 판빙빙의 매니저를 했다. 하지만 판빙빙은 지난 달 28일 열린 명품브랜드 오픈행사에서 무샤오광에게 줄 밸런타인 데이 선물을 샀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무샤오광은 내 남자친구가 아닌데 왜 선물을 주냐.”며 열애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언론들은 브랜드 오픈행사 후 무샤오광이 자연스럽게 판빙빙의 손을 잡고 나가는 장면을 들어 둘 사이의 관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버럭’ 박희상 우리캐피탈 감독

    [피플 인 스포츠] ‘버럭’ 박희상 우리캐피탈 감독

    “더 빨리 때리란 말이야!” 11일 서울 장충체육관. 고함이 코트를 번개같이 가른다. 그 주인공은 박희상(39) 우리캐피탈 감독. 요즘 프로배구판에서 단연 화제가 되는 ‘샤우팅’이다. 로커가 혼신의 힘을 다해 고음을 내듯 작전타임 때마다 박 감독이 선수들에게 열정적으로 지시하는 장면이 TV중계에 잡힌 뒤 이슈가 됐다. ‘버럭 희상’이란 별명도 덩달아 생겼다. “저도 힘들어요, 목 아프고. 하지만 제가 생동감 있게 해야 선수들도 힘이 나고 집중도 하죠.” 코트에서 만난 박 감독은 겸연쩍게 웃는다. 웃는 모습은 현역 때와 똑같다. 공수에 두루 능해 ‘배구도사’란 애칭을 얻었던 그는 깔끔한 플레이로 인기몰이를 했다. 이미지 관리하려면 소리는 그만 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이미지가 중요한가요, 이기는 게 중요하죠.”란 답이 돌아온다. 사실 그의 샤우팅은 승부욕 때문이다. 박 감독은 “이기고 싶다.”고 했다. “이기려고 훈련해서 시합하는 거잖아요. 승패는 종이 한장 차이지만 그 조그만 차이를 극복해서 이기는 게 프로의 목적이죠.” 이기든 지든 경기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박 감독은 ‘응징’을 한다. “선수별로 시합 때 안 됐던 부분을 다시 연습합니다. 될 때까지 하고 또 해요.” 욕심이 있으니 몸으로 뛴다. 박 감독은 연습 때 16명의 선수들에게 공을 직접 때려준다. 하루에 500~600개 남짓 된다. 어깨가 아파 파스를 붙이기도 한다. 선수들에게 체력으로 지지 않으려고 틈날 때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산도 탄다. 박 감독의 승부욕은 ‘첫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다. 2008년 창단된 신생팀 우리캐피탈은 감독 박희상의 첫 무대다. 2003년 은퇴한 뒤 2008년 7월 우리캐피탈 수석 코치로 프로배구판에 다시 돌아왔다. 어깨와 무릎 부상으로 예상보다 빨리 은퇴해야 했던 그로서는 사무치게 그리운 곳이었다. 박 감독은 은퇴한 뒤 인하대 코치를 1년 반 하다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 발권 매니저로 4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배구가 너무 하고 싶었죠. 하지만 코치 제의를 받았을 때 두렵기도 했어요. 선수는 열정만 있으면 되지만 지도자는 공부해야 하잖아요. 감독 대행이 됐을 때도 무한한 책임감을 느꼈죠. 이 친구들과 저는 이제 같은 목적이 있어요.” 우리캐피탈에 4라운드, 특히 12일 대한항공전은 올 시즌을 결판 짓는 승부처다. 대한항공전에서 졌는데 13일 삼성화재가 현대캐피탈을 이기게 되면 우리캐피탈은 5위로 고꾸라지게 된다. 박 감독은 “올스타전 휴식기 동안 4라운드의 중요성을 인식시켰어요. 외국인 선수 없이 팀이 이만큼 해준 것도 고맙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려면 7~8승은 더해야 합니다.”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박 감독은 올스타전 휴식기 동안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했다고 한다. 올 시즌 우리캐피탈은 유독 다 잡은 경기를 많이 놓쳤다. 지난해 12월 12일 현대캐피탈, 지난달 2일과 27일 상무신협과 LIG손보와의 경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졌다. 박철우가 살아난 삼성화재가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뼈아픈 점이다. “이제부터는 한 게임 한 게임 놓칠 수가 없습니다. 조그만 실수도 용납이 안 되는 거죠. 최선을 다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팬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글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한국 갈 길은 제조업… 금융업 미래동력 삼는건 어리석어”

    “한국 갈 길은 제조업… 금융업 미래동력 삼는건 어리석어”

    경제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저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상식’에 거침없이 메스를 댔다. 장 교수는 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여야 정치권이 벌이기 시작한 복지 논쟁은 장기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는 남녀 임금격차와 같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여야 간 진지한 고민과 대화를 주문했다. “한국 경제의 방향은 금융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라며 강도 높은 금융 규제를 역설하기도 했다. 1990년부터 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국가의 역할’,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더 이상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일부에선 ‘성장동력이 없어진다, 먹을 게 안 보인다, 제조업 시대는 끝났으니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설비투자하고 기술개발하고 노동자를 훈련시키는 게 힘들고 귀찮으니까 그런 거다. 정부나 재계가 ‘금융업 해서 쉽게 먹고 살 수 있는데 우리가 왜 이 고생하나’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제조업이 끝났다는 담론을 확산시킨다. 국가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성장률 자체는 낮아지는 게 맞지만 한국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단기간에 급격히 떨어졌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금융업은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로비로 규제를 완화한 탓에 생겨난 허상에 불과하다. 이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야 한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경제규모가 비슷한 나라들이 FTA를 맺는 건 비판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 규모와 수준이 두 배쯤 차이나는 상대와 FTA를 맺으면 문제가 다르다. 한국이 미국이나 유럽연합(EU)과 FTA를 맺는다면 대다수 중소기업과 농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성장 잠재력을 꺾어 버릴 것으로 본다. →기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주식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외환위기 이전 은행 중심의 경제시스템을 되살려야 한다. 지금의 주식시장 중심 시스템, 주주자본주의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은행의 기업대출이 전체 대출의 80%를 넘을 정도였다. 외환위기 이후 몇 년만에 은행이 기업대출은 기피하고 소비자한테 주택을 담보로 대출해준 뒤 문제가 발생하면 차압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돈벌려 한다. 주식시장도 개편해야 한다. 지금 주식시장은 기업에서 돈을 빼가는 장치가 돼 버렸다. 거기다 인수합병(M&A)을 자유화하면서 세계에서 M&A가 가장 쉬운 나라가 됐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산업정책’이라는 말 자체가 관치경제의 요소를 담은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과거엔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유치산업을 선별하고 집중 지원했다. 이에 대해 관치경제라는 비판이 많지만, 정부가 선별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절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느냐이다. 현재 가장 취약한 분야가 부품소재 산업이다. 이 분야는 고도로 특화되고 전문화된 영역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나서서 제조업, 특히 고급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이 강조되고 있는데. -‘상생하자’고 말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먼저 대기업의 불공정 경쟁을 강력 규제해야 한다. 한국은 과거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편으로 특정 영역에서 대기업에게 진입 규제를 가했다. 나름대로 사회안전망 구실을 했는데 그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 해법은 두 가지다. 예전 방식으로 되돌아가서 재벌이 특정 업종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거나,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도록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세금도 내기 싫고 규제를 받기도 싫다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으로 되돌아가자는 말이냐’는 비판도 있다. -‘그럼 박정희가 잘했단 말이냐’라는 식으로 질문하는 자체가 아직도 군부독재의 망령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다. 이건 잘했지만 저건 못했다는 걸 용납 못하는 이분법이야말로 박정희와 군사독재가 남긴 가장 해로운 유산이다. 그건 마치 북한에 대해 한 가지라도 긍정 평가하면 친북 낙인을 찍는 식이다. 박정희 경제의 ‘성공’을 말하는 건 독재를 찬양하는 게 결코 아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주주중심경제로 가야하는 것인가. -재벌 총수의 횡령을 막자는 걸 비판한 적은 없다. 다만 소액주주운동은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주식으로 돈을 버는 펀드매니저가 ‘우리도 끼워달라’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서 참여연대가 주도한 소액주주운동은 주주자본주의 논리로 재벌을 비판하니까 특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주주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인식시키는 역효과를 냈다. 내 입장은 참여연대가 좋은 일을 했지만 장기적으로 한국뿐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해로운 논리를 정의로운 논리로 잘못 인식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걸 비판하는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은 물 건너간 것인가. -노무현 정부 당시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했을 때는 국제투기자본이 한국 경제를 잠식하고 재벌조차 경영권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재벌 자체도 금융자본화 경향이 가속화됐고 정부도 그런 흐름에 동조한다. 하지만 복지국가를 얘기하면 진보진영에서도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지금은 복지가 대세가 됐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정신 자체는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본다. 이대로 두면 재벌이 제조업은 버려둔 채 금융자본으로 변신하거나 외국 금융자본에 다 먹힌다.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복지국가가 돼야 개인도 더 잘 살 수 있다는 합의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복지가 안 되고 미래가 불안하니까 우수한 인재가 의대와 법대로만 몰리고 출산을 기피하고 사교육 광풍이 분다.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동력은 말 그대로 모든 국민이지 특정 계급이나 집단이 될 수가 없다. 일단 무상복지라는 용어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상급식을 부자복지라고 비난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부자가 세금을 한푼이라도 더 내니까 부자도 엄연히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부자복지라고 하면서 왜 의무교육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지 묻고 싶다. 용어 문제를 뺀다면 민주당의 ‘3+1 복지정책’(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반값 등록금)은 좋은 방향이라고 본다.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정부·여당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복지정책만 얘기하지만 그건 지속 가능성이 없다. 결국 부자한테 돈을 빼앗아 빈곤층에게 나눠주는 식이 되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거부감과 조세저항만 높이게 된다. →대처 전 총리가 영국병을 고쳤다는데. -신자유주의자가 대처리즘을 선전하면서 영국병을 얘기하지만 그건 실체가 없는 신화일 뿐이다. 경제성장률만 봐도 대처 이전과 이후에 차이가 없다. 과감하게 복지지출을 삭감하고 감세를 했다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공기업 민영화의 폐해는 유럽에서 가장 뒤진 철도시설과 설비투자 기피로 나타났다. 빈부격차도 대단히 악화됐다. 영국은 지금 앞으로 뭐 먹고 사나 걱정하는 신세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당장은 이뤄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계속 얘기하고 싶은 것 두 가지를 꼽고 싶다. 먼저 우리나라가 부끄러운 세계 1위, 최소한 OECD 가입국 가운데 1위를 하고 있는 남녀 임금격차, 주당 노동 시간과 두 번째로 낮은 복지 지출 등에서 앞으로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10년 전만 해도 깨질 것 같지 않던 한국의 남아선호 현상이 무너진 걸 보면 앞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선진국과 저개발국을 모두 경험한 우리나라가 양자 사이에서 적극적인 중재자 구실을 한다면 지구적 차원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데 좀 더 빠른 진전이 있을 것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월가는 부패로 몰락하는 세계 금융의 심장

    미국 연방 검찰이 세계 금융의 심장으로 불리는 월스트리트에 대해 “부패사업 모델로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9일(현지시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는 월스트리트 내부자 거래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프릿 바라라 연방 검사를 인용, “월스트리트의 문제는 개인의 부정이 아니라, 사업 모델 차원의 문제”라고 전했다.  바라라 검사는 전날 3명의 헤지펀드 매니저를 정보원을 공유하고 기술업체들의 비밀 정보를 함께 수집한 혐의로 기소했다. 기소된 3명 중에는 스티븐 A.코언의 SAC 캐피털어드바이저스의 전 매니저 2명이 포함돼 있다. 바라라 검사는 “월스트리트에 불법 거래가 만연해 있다.”고 개탄하며 “피의자들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범죄 기업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IHT는 “이들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컴퓨터 본체를 파괴하고, 깊은 밤에 쓰레기 트럭에 내다버리기도 했다.”면서 “지난 16개월 동안 바라라 검사는 내부자 거래 혐의로 46명을 기소했고, 이들 중 29명이 유죄를 인정했다.”고 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13가지”...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13가지”...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경제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를 기록중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저자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상식’에 거침없는 메스를 들이댔다.  장 교수는 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금융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며,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편다면 성장여력도 충분하다.”면서 “한·미 FTA가 오히려 성장동력을 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부터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국가의 역할>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파헤친 ‘상식의 오류’를 주제별로 질문·답변 형식으로 구성했다.    ●고도성장은 옛날 얘기일 뿐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에서 보듯 현재 한국 경제는 지표와 체감이 괴리되는 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제는 과거 같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주장도 많다. 일각에서는 ‘통큰치킨’ 논란에서 보듯 과거 과감한 설비 투자로 경제 성장에 이바지했던 재벌기업이 이제는 중소 자영업 영역까지 진출하는 것도 한국경제가 성장여력을 없어지면서 나타나는 제 살 깎아먹기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부에선 끊임없이 ‘성장동력이 없어진다, 먹을 게 안보인다’ 하는 비관론을 펴면서 ‘제조업 시대는 끝났으니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가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근거가 아주 없진 않겠지만, 단순하게 말한다면 성장동력을 찾기 귀찮으니까 자꾸 그런 얘길 하는 것이다. 국가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률 자체는 낮아지는게 맞다. 만약 경제 수준이 높아져서 자연스럽게 성장이 둔화되는 것이라면 그 추세가 완만해야 하는데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까지 6% 정도였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떨어졌다. 이건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면서 추진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개혁’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증거다.  ‘중국이 쫓아온다’는 샌드위치론도 말도 안되는 궤변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와 제일 못하는 나라를 빼고는 세상 모든 나라가 언제나 샌드위치 신세다. 중국이 어려운 경쟁 상대라는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가령 태국은 1990년대까지 노동집약을 무기로 한국을 추적했지만 크게 걱정할 게 없다. 임금이 낮은 대신 기술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상대적인 임금 수준도 낮고 기술력도 일정 수준 이상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고 게임 끝났다고 볼 게 아니다. 왜 쫒아오는 국가만 걱정하고 도망가는 국가는 무서워하지 않는지 반문하고 싶다.  중국 추적 때문에 이제는 금융업과 서비스업으로 가자는 얘기가 많지만 그 분야는 이미 선진국들이 단단히 똬리 틀고 앉아 있다. 금융업이 겉보기엔 좋아보여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금융혁신이란 사실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로비를 통해 규제를 완화한 덕분에 생겨난 허상에 불과하다. 그런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더구나 정부가 정말 심각하게 금융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우겠다면 과거 고도성장기처럼 수십년짜리 목표를 세우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금융허브라는게 지금처럼 적당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부나 재계가 ‘금융업 해서 쉽게 먹고 살 수 있는데 우리가 왜 이 고생하나’ 하는 생각하니까 자꾸 제조업 끝났다는 담론을 확산시킨다. 결국 설비투자하고 기술개발하고 노동자들을 훈련시키는게 힘들고 귀찮으니까 성장동력 없어진다는 얘기가 자꾸 나온다. 언제는 경제여건이 쉬워서 경제발전했나? 언제는 선진국들이 낮잠 자는 틈에 경제성장했나? 충분히 할 수 있다. 불과 수십년 전에 우리는 전쟁으로 모든 게 잿더미가 된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960년대 포항제철 건설할 때를 생각해보자. 전세계가 다 미쳤다고 비웃었지만 결국 해냈다.        ●경제성장을 위해 한미 FTA를 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EU FTA 등 적극적인 FTA 정책을 추진하면서 FTA가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경제규모가 비슷한 나라끼리 FTA를 체결하는 것까지 비판할 생각은 없다. 서로 시장도 커지고 경쟁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규모와 수준에서 차이가 큰 나라와 FTA를 하게 되면 문제가 다르다. 한국은 현재 국민소득도 그렇고 많은 분야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생산성이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한마디로 시기상조다. 한국이 미국이나 EU와 FTA를 한다면 자동차나 전자 등 일부 분야는 이득을 좀 볼지 모르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이나 농업 등에선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부품소재를 비롯해 한국이 GDP 4만불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산업들의 성장 잠재력을 꺾어 버릴 것으로 본다. 한국이 언제는 FTA 덕분에 고도성장했나. 남들이 미쳤다고 비웃어도 기를 쓰고 기술개발해서 성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미FTA가 갖는 장밋빛 미래를 홍보하는 글을 읽어봐도 한미FTA가 경제성장에 미미한 도움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국책연구기관에서 한미FTA 타결시 1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2% 증가라고 했다가 그것밖에 안되느냐는 비판이 나오니까 나중에는 6%로 전망치를 바꾼 전례가 있다. 경제학 예측에서는 변수를 어떻게 가정하고 어떤 모델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조차도 한미FTA 명분으로 삼기엔 한참 부족하다.        ●기업자금조달 위해 주식시장 활성화해야 한다?    ▶돈줄이 막혔다고 하소연하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주식시장에서 기업 자금조달이 이뤄지지 않고 과거 개발 독재 당시처럼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간접금융방식도 없어진 지금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  -외환위기 이전 방식은 은행중심 경제 시스템인 반면 지금은 주식시장 중심 시스템이다 (@@@) ‘기왕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되돌리느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좋은 게 있으면 되살려야 한다. 주식시장을 활성화할 필요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외환위기 이전 은행중심 경제시스템을 되살려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은행은 기업대출을 기피하고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구실을 전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을 떠올려보자. 우리나라 은행은 기업대출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제일은행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에는 총대출금 중 80% 정도가 기업대출이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몇 년만에 가계대출이 85% 정도가 돼 버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게 뭘까. 지금 은행들은 엄청나게 손쉽게 돈을 벌고 있다. 소비자한테 주택을 담보로 잡고 대출해준 뒤 문제가 발생하면 차압하는 방식으로 은행이 쉽게 돈벌게 해줘선 안된다.  주식시장도 개편해야 한다. 1972년부터 1991년 사이에 한국의 투자자본 조달에서 주식발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13.4%로 영국(7.0%)이나 미국(-4.9%)보다도 훨씬 높았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은 기업에서 돈을 빼가는 장치가 돼 버렸다. 거기다 인수합병(M&A)을 자유화하면서 세계에서 M&A가 가장 쉬운 나라가 돼 버렸다. 이제는 대기업조차 과거처럼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외국자본이 단기간에 몰려왔다 나가는 과정에서 거시경제까지 불안해진다. 이제는 M&A를 좀 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포이즌필이나 스웨덴·벨기에처럼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수도 있다. 독일식으로 노조 대표가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골고루 참고하면 된다. 구체적인 방법은 더 논의해야 겠지만 기존 선진국 장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산업정책은 관치경제다?    ▶과거처럼 정부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방식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사회적 동의를 얻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정부는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유치산업을 ‘선별’하고 집중 지원했다. 이에 대해 ‘관치경제’라는 비판이 많았다. 선별적 정책이 나쁘다는 얘길 많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업도 항상 선별을 한다. 모든 계열사에 똑같이 지원하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 정부가 선별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적절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느냐이다. 경제발전 단계와 정책목표에 따라 지원방식이나 지원방향은 달라지게 돼 있다. 개입 방식도 은행을 통할수도 있고 연구개발 지원을 통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규모의 경제를 이용한 대규모 조립가공산업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대기업에게 은행대출을 집중해줬다. 지금 단계에선 부품소재산업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소기업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물론 초기자본이 많이 필요한 에너지 같은 분야는 대기업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이 ‘상생’해야 한다?    ▶현재 대기업이나 수출 기업은 엄청난 성장세를 이어가는 반면 중소기업이나 내수 기업은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소기업을 보기도 어려워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제도적 대안이 절실해 보인다.  -1966년 상위 10대 재벌 중 세 곳만이 1974년 상위 10위 안에 남았다. 1974년 상위 10위 기업 중에서 1980년에도 상위 10위 안에 들었던 기업은 5곳에 불과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그런 구조변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는 몇 가지 차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첫째, 대기업들이 불공정 경쟁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쟁 상대가 될 만한 기업이 성장하는 걸 막는다거나, 하청기업이 기술 개발하면 납품단가를 깎아서 싹을 잘라 버리는 행태가 존재한다. 규제를 통해 그걸 막아야 한다. 단순히 ‘상생하자’고 말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이 잘 이뤄지는데 마음씨가 착해서 그런게 아니다. 정부가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 규제를 강화해서 대기업 행태에 제동을 건 덕분이다.  그 다음에는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제일 취약한게 부품소재 산업이다. 우리나라 무역적자 가운데 일본과 무역하면서 발생하는 적자가 제일 많은데 그 대부분이 부품소재산업에서 경쟁력이 없어서 발생한다. 더구나 이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품소재 수입의존도가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최근 다시 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은 어림없다. 문제는 부품소재산업은 고도로 특화되고 전문화된 영역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보거나 중소기업들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나서서 고급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필요한 부분에서 꼭 개발해야 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서 기술개발하도록 보조금을 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세번째, 정치적 차원을 봐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에 침투하는 현상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지만 한국은 양상이 더 심각하다. 거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과거 사회통합과 평등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복지제도에 제약이 많을 때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편으로 편 정책이 바로 특정 영역에서 대기업에게 진입 규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에 식당이나 치킨집이 그렇게 많은 것도 과거 그런 방식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계 유지를 도모해준 덕분이었다. 이게 나름대로 사회안전망 구실을 해왔는데 그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예전 방식으로 되돌아가서 재벌들이 특정 업종에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거나 그게 아니라면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고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다.  서비스업이 생산성이 낮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데 재벌이 진출하면 생산성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처럼 복지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선 경쟁에서 탈락하면 끝장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죽기살기로 저항하고 결국 생산성도 못 높이고 갈등만 첨예해지는 것이다. 내 주장은 차라리 대기업에게 진입을 허용하는 대신 대기업과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 그 재원으로 기본생활권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식으로 일괄타결하자는 것이다. 지금 대기업들은 세금도 내기 싫고 옛날처럼 사업규제를 받기도 싫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은 척결대상이다?    ▶민주화 이후 박정희 정부의 산업정책과 개발계획은 독재시대의 유산으로 취급받으면서 ‘개방과 자유화’가 대세가 됐다. 이를 꾸준히 비판해온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박정희 독재시대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 박정희가 잘했단 말이냐’ 하는 식으로 질문하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가 아직도 군부독재의 망령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런건 잘했지만 이런건 못했다는 걸 용납을 못하는 자세, 그런 이분법이야말로 박정희와 그 이후 군사독재가 남긴 가장 해로운 유산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그건 마치 북한에 대해 한 가지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친북 낙인을 찍는 식이다. 그것부터 벗어나야 한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의 ‘성공’을 말하는 건 독재를 찬양하는게 결코 아니다. 사실 민감한 문제라는 건 잘 안다. 당시 투옥되는 등 피해를 본 분드링 많다. 선뜻 용납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이분법을 극복할 때만이 군부독재 유산이 청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경제민주화 위해 주주중심 경영해야한다?    ▶재벌을 비판하는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가 ‘극히 일부 주식만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꾸준히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며 참여연대 등이 벌인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최근 ‘회사 돈 빼돌리는 총수를 고발하는 시민단체 활동이 뭐가 잘못됐다는 말일까’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재벌 총수의 횡령을 막자는 걸 비판한 적이 한번도 없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강조하는 건 소액주주운동은 국제적 맥락에서 봤을 때 주식으로 돈을 버는 펀드매니저들이 ‘우리도 끼워달라’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국에서 1980년대부터 주주자본주의와 소액주주운동이 강화됐는데 그 이후 기업이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비율이 계속 높아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처음에는 전문경영인들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 소액주주운동의 명분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문경영인들의 연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 미국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선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을 사회운동으로 승화시키면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주주자본주의 시대에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써서 재벌을 비판하니까 특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주주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인식시키는 역효과를 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주주자본주의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그걸 조심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비판을 한 건데, 박정희 문제 못지않게 재벌문제도 민감하니까 재벌옹호론자로 오해를 산다. 내 입장은 참여연대가 좋은 일을 했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뿐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해로운 논리를 정의로운 논리로 잘못 인식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걸 비판하는 것이다.        ●사회적대타협은 물넌거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을 통해 국가·자본·노동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제성장과 복지국가를 달성하자는 주장을 펴왔다. 그 제안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는지.  -현실적 조건을 바탕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 얘길 처음 했던 때는 외국 투기자본이 한국 경제를 잠식하고 재벌조차도 경영권에 위협을 느끼던 때였다. 지금은 그 조건이 많이 달라졌다. 재벌들 자체도 금융자본화 경향이 가속화됐고 정부도 그런 흐름에 동조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6년 전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복지국가를 목표로 제시했을 때 개혁·진보진영에서도 많은 이들이 현실성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어떤가. 복지국가는 기본 전제로 깔고 방법론을 갖고 논쟁하고 있다. 그걸 지렛대로 정치적 타협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당시 구상했던 사회적 대타협은 힘들겠지만 정신 자체는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본다. 물론 구체적인 방식은 계속 바뀌는 조건 속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재벌들 예뻐서 이러는게 아니다. 지금같은 식으로 그냥 놔두면 재벌들이 제조업은 버려둔 채 금융자본으로 변신하거나 외국 금융자본에게 다 먹히게 된다.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 자본의 출처가 러시아 마피아인지 이탈리아 마피아인지도 불분명한 투자자본이 국내에 들어올 것이다. 그때는 누구와 싸워야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것보다는 정씨 재벌 이씨 재벌처럼 눈에 보이는 대상과 싸우는게 낫다. 자본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재벌들과 타협하는게 낫다. 재벌들 미우니까 재벌 해체하고 외국자본 들여와 견제하도록 하겠다는 발상은 다같이 죽자는 것밖에 안된다.        ●복지제도가 경제성장 가로막는다?    ▶‘더 나은 자본주의’로서 ‘복지국가’를 강조하기만 그 길로 가기 위한 ‘동력’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복지국가의 주체 혹은 동력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그 문제를 지적하시는 분들은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시나리오를 얘기해주길 바라시겠지만 내가 보기에 동력은 말 그대로 모든 국민이라고밖에 얘길 못하겠다. 현실적 조건을 봐야 한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복지국가 담론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건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정치세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이 스웨덴처럼 노조 조직률이 80%를 웃도는 나라도 아닌 상황에서 노동 중심으로 복지국가 하자고 해서는 얘기가 먹히질 않는다. 특정집단이 논의 끌어갈 상황이 아니고, 둘째로 논의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도 우리가 주체다 하는 식으로 얘길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입지가 좁아진다. 중요한 건 국민들이 마음만 바꾸면 안 될 일도 된다는 점이다. 그게 민주국가가 위대한 점 아니겠는가.        ●복지정책은 빈곤층만 대상으로 해야 한다?    ▶무상복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3+1 복지정책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포퓰리즘과 세금폭탄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다.  -일단 ‘무상’이라는 용어는 문제가 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가가치세 등 세금을 낸다. 반면 의무급식에 대해 ‘부자복지’라고 비난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부자들이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내니까 부자들도 엄연히 복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부자복지’를 문제삼으려면 왜 의무교육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는지 묻고 싶다.  용어 문제를 빼고 민주당이 내세우는 3+1 복지정책은 좋은 방향이라고 본다. 나는 보편적 복지확대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은 빈곤층을 대상으로한 복지정책만 얘기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결국 부자한테 돈을 뺏어서 빈곤층에게 나눠주는 식이 되기 때문에 미국처럼 복지에 대한 거부감과 조세저항만 높아지게 된다.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복지를 잘해야 개인도 더 잘 살 수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가령 복지가 안 돼서 미래가 불안하니까 우수한 인재들이 안정성 높은 직업을 갖기 위해 의대와 법대로 몰리면서 이공대 기초학문 분야가 어려움에 빠졌다. 복지제도가 없으면 장기적으로 국가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복지가 안되니까 저출산문제가 가중되고, 복지가 안되니까 자녀들에게 엄청난 사교육을 시키려는 과열 경쟁이 벌어진다. 복지가 안되니까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다.        ●대처 총리가 영국병 고쳤다?    ▶영국은 석유산업과 금융업, 프리미어리그를 빼고는 제조업 기반이 무너졌다. 특히 대처 총리의 감세와 복지지출 삭감 등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논거로 자주 거론된다. 제조업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영국 사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시장근본주의,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분들이 ‘대처리즘’을 많이 얘기한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영국병’이란 것은 영국병이란 건 그들이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영국병은 실체도 없고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당장 경제성장률을 보자.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영국 경제성장률이 1인당 2% 안팎이다. 대처 총리 등장 이후인 1990년대 평균 경제 성장률이 2.2%이다. 변화가 없다.  대처가 과감하게 복지 삭감했다거나 세금을 엄청나게 깎았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대처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봐도 복지지출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최고소득세율을 엄청나게 깎은 건 맞지만 그건 극히 일부 고소득자에게만 해당될 뿐이고 또 간접세 비중이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세수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특별히 더 작은 정부가 된 것도 아니다.  대처가 노조를 꺾고 세금은 깎고 금융업 키운 것을 두고 영국을 살렸다고 하지만 따지고보면 대처야말로 영국병의 원인이다. 공기업 민영화의 폐해는 유럽에서 가장 뒤진 철도시설과 설비투자 기피로 나타나고 있다. 빈부격차도 대단히 악화됐다. 영국의 소득분포 최상위 1%가 차지하는 소득 비율이 1975년에 5.37%였는데 1998년에는 9.57%가 됐다. 대처 총리 정책으로 제조업은 다 무너지고 금융 분야만 강해졌지만 그마저도 미국발 금융위기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영국은 지금 앞으로 뭐 먹고 사나 걱정하는 신세다. 물론 대처 이전에 영국 노조에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순 없다. 가령 산업별 노조가 아니라 직능별 노조가 많다보니 한 직장에 노조가 대여섯 개씩 있는 경우도 있었다. 경영진이 노조들과 협상을 마무리해도 노조 하나만 거부해도 파업이 터지는 식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에서 말했듯이 노조가 강했을 때와 노조가 약해진 이후 경제성장률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 대처가 노조를 희생양삼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제와서 어떻게 하느냐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책 속표지에 쓴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메모가 화제다. 이 메모에서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라고 썼다.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것 두세 가지를 꼽아달라.  -먼저 우리나라에 우선 한정시켜 보자면, 우리나라가 부끄러운 세계 1위 (최소한 OECD 1위)를 하고 있는 남녀 임금격차, 주당 노동 시간, 복지 지출(OECD 꼴찌에서 2위, 꼴찌는 국민소득이 우리의 반도 안 되는 멕시코) 등 분야에서도 앞으로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변화가 자동으로 오는 것은 아니고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정말 깨질 것 같지 않던 한국의 남아선호 현상이 깨진 것을 보면 앞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꼭 있을 것으로 믿는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전에 <사다리 걷어차기>나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이야기했듯이 선진국이 후진국을 압박하는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지금 세계 경제 구조의 변화 속에서 선진국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그런 속에서 후진국 지위를 방금 벗어나 아직도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두 세계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우리나라가 이 문제에 있어 좀 더 적극적으로 중재자의 역할을 떠맡는다면 이 문제에 있어서 좀 더 빠른 진전이 있을 것이다. 분발을 촉구하고 싶다.        ●경제학은 계량분석만 잘하면 된다?    ▶한국 사회과학계는 미국식 영향으로 계량분석에만 치중하면서 현실 현실 설명력을 잃고 대중들과 괴리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그런 고민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온다. 너무 수학이나 통계 쪽으로만 발전하니까 방향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배우긴 하는데 왜 배우는지 잊어버린 셈이다. 영미 경제학계에서도 교육방법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논의가 있다. 왜 배우는지도 모르면서 계량분석만 배워서는 나중에 길을 잃어버린다. 뭘 배울지 목표를 정하고 큰 그림을 배우고 시작을 해야 하는데 테크닉만 배우니까 그것에 빠져 버리는거다.    ▶그동안 제도경제학에 입각해 한국과 세계 경제를 분석하는데 천착해 왔다. 한국에선 낯선 분야인 제도경제학을 소개해달라.  -쉽게 말해 ‘덜 추상화한다’는게 가장 큰 특징이다. 주류경제학은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추상적인 논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제도경제학은 현실을 좀 더 복합적인 제도의 망과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본다. 기업을 놓고 보면 국가별 차이와 역사적 맥락에 따라 조직형태나 사회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고 접근한다. 역사적 비교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현실을 봐야지 이론만 보면 상상력을 제약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많이 드는 예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자유무역을 중시하면서도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고 대부분 주택을 국가가 공급하고 GDP에서 공공부문 비중도 엄청나게 크다. 어떤 단일한 경제이론으로도 싱가포르를 설명하지 못한다. 현실을 보지 않으면 특정 이론에만 빠지게 되고 그런 눈으로 싱가포르 보면 제대로 설명을 못하게 된다.  사실 제도경제학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제도가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할 정도로 대단히 범위가 넓다. 일반적인 흐름은 제도가 경제에 어떤 영향 미치는지,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이다. 나는 거기에 더해 제도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 미치는가를 많이 보려고 한다. 개인은 물론 자유의지가 있고 개인 선택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선택에 영향 미치는 건 어떤 제도적 환경에서 살아가는지에 따라 굉장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스웨덴과 한국에서 똑같이 정부 역할 축소를 말하더라도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같은 환경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관념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부고]‘전설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 의문사

    [부고]‘전설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 의문사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 록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가 세상을 떠났다. 59세. 게리 무어의 매니저 애덤 파슨스는 무어가 6일(현지 시간) 스페인의 코스타델솔에 있는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짤막한 성명을 냈다. 무어는 스페인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이었으며 정확한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속했던 밴드 ‘신 리지’(Thin Lizzy)의 드러머 브라이언 다우니는 “엄청난 충격”이라고 말했다. 1952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무어는 1970년 더블린에서 결성된 록 밴드 스키드 로(Skid Row)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한 뒤 1973년 신 리지에 합류, ‘나이트라이프’(Nightlife)와 ‘블랙 로즈’(Black Rose) 앨범에 참여했다. 솔로 활동은 1979년 시작했다. 이후 비비 킹, 앨버트 콜린스와 함께한 앨범 ‘애프터 아워스’(After Hours)와 ‘블루스 얼라이브’(Blues Alive), 잭 브루스와 진저 베이커가 참여한 ‘어라운드 더 넥스트 드림’(Around The Next Dream) 등을 통해 블루스 음악의 진수를 들려줬다. 대표곡으로는 ‘스틸 갓 더 블루스’(Still Got The Blues) ‘파리지엔 워크웨이스’(Parisenne Walkways) ‘신스 아이 멧 유 베이비’(Since I Met You Baby) 등이 있다. 케이블TV MBC라이프 ‘수요예술무대’는 9일 밤 11시 게리 무어 추모 방송을 내보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신용협동기구는 지금] “산업銀 등 정책은행 재편 한국형 글로벌 IB 육성 대형 프로젝트 수주 지원”

    [신용협동기구는 지금] “산업銀 등 정책은행 재편 한국형 글로벌 IB 육성 대형 프로젝트 수주 지원”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우리 기업의 초대형 글로벌 프로젝트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형 글로벌 투자은행(IB)을 반드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6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 2주년을 맞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시장의 주도에 의해 시장 친화적으로 자본시장법을 전면 개편해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하는 모멘텀을 마련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증권업, 자산운용업, 선물업, 종금업, 신탁업이라는 자본시장 관련 5개 업종의 벽을 허물고 겸영을 허용하는 자본시장법은 2007년 8월 제정, 2009년 2월 4일 시행됐다. 김 위원장은 “원전 등 세계적인 초대형 프로젝트에는 꼭 한국 기업 이름이 들어가는데 기술이나 가격이 아니라 파이낸싱(자금 조달)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 가지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먼저 공공 부문에선 수출입은행, 수출보험공사, 정책금융공사,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재편을 통한 대형화 및 기능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간 부문에선 금융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글로벌 IB 수준의 대형 금융회사의 육성을 과제로 제시했다. 연기금과 사모투자펀드 역할 활성화는 세번째 방향. 김 위원장은 “IB 활성화는 대규모 해외사업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인 혁신형 기업에 대한 모험 자본(risk capital)의 중개 기능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라며 힘 있는 IB가 없으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본시장법을 만들 때) 세계적인 IB가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는데 기대 이하라 자성을 금치 못한다.”면서 “이번에는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심정으로 대형 금융사가 출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등 규제 혁신을 통해 비즈니스가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4년부터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차관보, 제1차관 등을 역임하며 자본시장법 입안과 제정을 주도한 김 위원장은 “규제를 없애자는 게 당초 취지였는데 글로벌 금융 위기로 규제가 많이 들어갔다.”고 돌이키며 “이제 시장이 안정되고 체력도 갖췄기 때문에 본연의 목표와 방향으로 진일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지나친 규제 일변도는 바람직 하지 않다고 하면서도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일부 시장을 겨냥해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그는 “최근 퇴직 연금이나 자문형 랩 등의 과당 경쟁은 실망스럽다.”면서 “열어놓은 자유를 속박할 생각은 없지만 당국의 인내심을 시험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전설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스페인 휴가 중 사망

    전설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스페인 휴가 중 사망

    전설적인 록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가 5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지난 6일(현지 시간) 스페인 남부의 코스타 델 솔 해안에 위치한 리조트 호텔방에서 무어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고 그의 매니저 애덤 파슨스의 말을 인용해 6일 보도했다.  무어는 스페인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이었으며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날 말라가 인근 지역에서 부검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어는1952년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지역에서 태어났다. 1970년 더블린에서 결성된 록 밴드 스키드 로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한 뒤 1973년 씬 리지에 합류, ‘나이트라이프(Nightlife)’와 ‘블랙 로즈(Black Rose)’ 앨범에 참여했다. 과거 1970~80년대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을 번갈아가며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그가 속했던 씬 리지의 드러머 브라이언 다우니는 “엄청난 충격”이라고 말했고 무어의 바통을 이어받은 밴드 기타리스트 스코트 고햄은 그가 “위대한 연주자이자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대표곡은 ‘엠티 룸(Empty Room)’ ‘스틸 갓 더 블루스(Still Got The Blues)’ ‘파리지엔 워크웨이스(Parisenne Walkways)’ ‘신스 아이 멧 유 베이비(Since I Met You Baby)’ 등이 있다. 지난 해에는 처음이자 마지막 내한공연을 가져 국내 음악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2AM 조권, ‘깝권’의 속사정 눈물고백

    2AM 조권, ‘깝권’의 속사정 눈물고백

    그룹 2AM 멤버 조권이 눈물을 보이며 데뷔 초 살인스케줄을 소화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을 고백했다. 조권은 지난 1일 방송된 SBS ‘강심장’에 출연해 8년간 기약 없이 이어진 연습생 시절 겪은 마음고생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방송에서 조권은 “연습생을 거쳐 데뷔한 날, 처음 번 돈 20만원을 들고 신나게 집에 갔다. 그런데 어머니가 한 겨울에 찬물로 머리를 감고 계시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조권 가족이 살던 지하 단칸방은 보일러가 망가진 상태였고 하루가 멀다하게 빚쟁이들이 찾아와 해코지를 하던 때였다. 어머니는 고막까지 다쳐 소리를 못들을 정도. 조권은 “데뷔를 했는데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매니저한테 가능한 모든 예능과 행사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며 “간혹 팬들이 무리한 스케줄이라며 회사에 항의했지만 사실은 그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그렇게 이를 악물고 ‘깝권’으로 방송에 출연한 결과 광고 출연 제의가 밀려들었고 10년 만에 부모님께 집을 선물할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방송직후 네티즌들은 “장하다 조권” “네 노래에서는 라일락 향기가 나” “고생하고 큰 아이들에게서는 반짝반짝 빛이난다” “나까지 울컥해서 울 뻔 했다” 등 다양한 소감을 전했다. 사진=SBS ‘강심장’’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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