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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광장]정부개혁 논쟁의 낙후성

    2차 정부개혁안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비등했었다.대체적인 논조는 민간경영진단팀이 내놓은 개혁안이 ‘정답’이었는데 정부가 각 부처의 반발로 ‘물타기’를 시도해 하나마나한 개혁안으로 퇴락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개혁 담당자들이나 여론이 공히 신자유주의로 편향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작고 강한 정부’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는 문민정부에서 물려받은 유물이다. 정부의 기획담당자들,각종 정책연구소,사회의 여론주도층은 대부분 이 신자유주의의 주술에 걸려있는 것 같다.민간경영진단팀과 기획예산위의 개혁안이 모두 부처통폐합 및 기구축소를 통한 인원과 예산감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언론도 이 원안을 정답으로 삼고 수정된 최종안을 ‘용두사미’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정부를 확대해 온 구좌익에 맞선 신우익의 신자유주의적 정부축소론은 레이건과 대처시대에 큰 위력을 떨쳤다.그러나 이 신자유주의는 시대착오적 측면 때문에 급격히 퇴조했고 급기야는 신우익의 연쇄적 권력상실로 이어졌다.이 과정에서 클린턴·블레어·슈뢰더 등 신중도세력의 ‘능동적·역동적 정부론’이 신자유주의를 대체했다.따라서 문민정부가 ‘작은 정부’의 슬로건을 채택했을 때도 이 개혁노선은 이미 낡은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시대착오적 주술에 걸려있는 셈이다.인구를 감안할 때 서구의어떤 나라 정부보다 결코 크지 않은 우리 정부의 기구와 인원을 축소하려는것은 그릇된 것이다. 올바른 정부개혁의 기본방향은 ▲정부 서비스 효율의 역동적 제고 ▲시민참여적 민·관합동 행정모델 정착을 통한 정부의 새로운 민주적 정통성 기반마련 ▲세계화에 따른 위험에 맞서는 시민들의 모험능력 제고와 보장을 위한 새로운 적극적 기능 도입 ▲시장논리 활성화를 위한 탈규제와 새로운 규제의 신설일 것이다.즉 정부의 확대 또는 축소가 아니라 ‘능동적·역동적 정부’ 창출을 위한 ‘재구성’이다. 이것은 인원이 남는 부처에서 모자라는 부처로 인원을 재배치하고 공무원을 새로 훈련시키는 것,대민 서비스의 ‘능동적’ 수행과 효율화를 위한 새 업무모델을 발전시키는 것,국가기관의 정통성을 제고하기 위해 시민사회와의동반자 관계에서 민·관 합동행정을 구현해 정부를 민주화하고 정부의 복지기능을 민간에 이양하는 것,행정참여와 일부 복지기능의 수행을 떠맡을 민간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시장을 해치는 행정규제를 철폐하고 시장논리를보호할 새로운 규제를 설정하는 것,세계화에 따른 새로운 대민 서비스를 능동적으로 발굴·수행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그간 각국의 정부는 관료적 재량권의 급팽창,효율저하,부패를 겪으면서 국민의 불신대상으로 전락했다.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민주국가에서 관료의 확대된 재량권이 국민의 눈에 ‘무허가’ 권력으로 비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이로 인해 시민의 행정저항이 심화됐고 정부는 위기적 상황에 빠졌다.70∼80년대 서구에서는 ‘통치불능’이라는 말이 유행했다.정부의 정책공청회가 이해집단들의 실력행사로 무산되고 행정기관의 각종 단속활동이 시민의 일반적 불신을 받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위기 조짐은 오늘날우리 나라에서도예외가 아니다.따라서 정부개혁에서 첫번째 염두에 둘 것은 시민참여적 민·관 합동행정 모델로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을 제고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수정·축소된 최종안도 원안의 관점이 아니라 ‘능동적·역동적 정부의 재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가령 8,000명의 인원 감축 항목은 삭제하고 자꾸 희석되는 개방형 공무원 제도는 더욱 확대하고 민·관 합동행정 모델 등 앞서 열거된 사항들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제2건국위 기획단의 ‘정부혁신방안’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정치외교
  • 영·호남 공무원‘사이버 맞선’ 인기

    대구시 남성 구청공무원이 ‘오작교’를 타고 광주시 여성구청공무원을 만나러 온다. 광주시 광산구청이 지난 8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개설한 ‘사랑의 오작교 사업’이 인기를 끌면서 영호남 남녀 공무원간 직접 만남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광산구가 오작교를 개설한 것은 지역간 교류사업의 하나로 영호남 청춘남녀들을 맺어주기 위해서였다.현재 이 오작교의 ‘견우’에 등록한 남성은 49명,‘직녀’는 21명. 광산구는 당초 영호남 지역의 미혼 공무원들로 제한해 신청을 받을 계획이었지만 사이트가 알려지면서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 또 ‘견우’와 ‘직녀’로 신청을 받아 광산구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초청해 만나게 한다는 계획도 일부 수정됐다.각자 소개난에 이메일주소와 신상명세를 자세하게 적으면서 개별접촉이 활발하다고 관계자는 귀띔한다. 대구 구청의 한 공무원도 오작교를 통해 광주의 여성공무원을 알게 돼 “직접 보러 오겠다”고 전해왔다는 것. 광산구는 지난 28일 지리산에서 신청자들을 초청,맞선을 보게 했으며 오는칠월칠석(8월17일)에도 이들을 위한 공식 만남의 자리를 갖게 할 예정이다.
  • 삼성화재컵 대학배구연맹전

    삼성화재컵 99전국대학배구연맹전 1차대회 패권 다툼이 경희대와 홍익대의대결로 압축됐다. 99슈퍼리그 1차대회 대학부 우승팀인 경희대는 29일 성남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4강전에서 경기대를 3-0(25-20 27-25 25-22)으로 완파하고 8년만에 처음으로 대학연맹전 4강에 올랐다. 이어 열린 경기에서는 조직력을 앞세운 홍익대가 힘과 높이로 맞선 대학강호한양대를 3-1(19-25 25-22 25-15 25-27)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합류했다.
  • [제2공화국과 張勉]- (9) 신구파 대립과 分黨(상)/비교

    李承晩독재체제에 맞선 통합야당 민주당은 1955년 9월19일 탄생한다.이날서울 태평로 시공관은 하루종일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열기로 들끓었다.전국에서 모여든 민주당 대의원 2,000여명이 오전에는 발기인대회를,오후에는 창당대회를 잇달아 열었다.오전 대회에서 鄭一亨의 경과보고에 이어 張勉의 인사말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대한민국을 구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일체의 독재를 배격한다고 정강의 서두에 내걸었습니다.우리는 진실한 민주주의를 살려나가기 위해 공정한 선거와 내각책임제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오후의 창당대회에서는 申翼熙가 민주당 출범의 의의를 밝히는 인사말을 했고 朴順天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는 민주세력의 집결 강화만이 국정쇄신의 방도임을 확신한다”고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창당대회 다음날 민주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최고위원 선거에 들어갔다.대표최고위원 투표에서 申翼熙는 234표를 얻어 49표에 그친 張勉을 누르고 선출됐다.이어 연기명으로 실시한 최고위원 투표 결과 趙炳玉(282표)·張勉(278표)·郭尙勳(262표)·白南薰(111표)이 뽑혔다. 이들 가운데 제헌의회 의장을 지낸 申翼熙,내무장관을 역임한 趙炳玉,민국당 최고위원 출신인 白南薰은 구파였고 총리를 지낸 張勉,국회부의장인 郭尙勳은 신파였다.이밖에 중앙상무위 의장은 成元慶(신파)이 맡았다. 집행기구 16부 부장은 尹潽善(원내총무격인 의원부장)·柳珍山(노동부장)·鄭一亨(섭외부장)·玄錫虎(조직부장) 등으로 구성됐다.구파는 대표최고위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세 자리와 부장 7석,신파는 최고위원 두 자리에 상무위의장과 부장 9석을 차지해 신·구파는 처음부터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출발했다. 민주당 창당후 처음 맞은 큰 이슈는 다음해 치르는 제3대 정·부통령 후보를 뽑는 일이었다.당시 민주당에서 대통령후보로 거론될 만한 인물은 申翼熙·趙炳玉·張勉 세 사람 정도였지만 대세는 申翼熙에게 기울어 있었다.초점은 부통령후보였다.신파는 張勉을 대통령후보로 민다고 공표했으나 내심은부통령후보를 노리고 있었다.구파는 구파대로 ‘대통령후보 申翼熙’를 기정사실로하는 한편 趙炳玉을 부통령후보로 세우려고 물밑작업을 벌였다. 이 문제는 郭尙勳이 적극 나서 해결됐다.郭尙勳은 趙炳玉을 찾아가 “이번에는 당신이 양보합시다.이번에는 누가 보아도 해공(申翼熙)이 적격이니 그를 시켜야 할 것이 아니오? 차후에 입후보하면 내가 적극 지원하겠오”라고설득한다(郭尙勳 회고록에서). 이에 趙炳玉은 “운석(張勉)이 대통령후보 경쟁에 나서지 않도록 책임져라”라는 조건으로 받아들인다.전당대회에서 申翼熙·張勉을 정·부통령 후보로 뽑은 민주당은 신·구파 구분없이 힘을 합쳐 선거운동에 매진한다. 56년 정·부통령 선거는 민주당이 李承晩정권을 누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할 절호의 기회였다.52년의 ‘발췌 개헌’과 56년의 ‘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어진 李承晩의 영구집권 음모와 자유당의 폭정(暴政)에 이미 많은국민이 염증을 느끼는 상태였다.게다가 申翼熙·張勉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민주당이 내건 선거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도 돌풍을 몰고 왔다. 56년 5월2일 한강백사장에서 열린 유세에는 당시로서는 짐작도 못할 30만∼40만 인파가 몰려들었다.그러나 민주당의 손에 들어온 듯하던 대통령 자리는한강백사장 유세 3일 후에 그만 손아귀를 빠져나간다.호남 유세에 나선 申翼熙가 5월5일 열차칸에서 급서한 것이다. 대통령후보 부재에도 불구하고 張勉은 李起鵬을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된다. 이로써 민주당은 창당 9개월 만에 수권 능력을 가진 야당으로서 당당히 자리잡는다.이같은 자리매김은 58년의 제4대 국회의원 선거로 연결돼 민주당은 78석을 확보한다.창당 때의 33석에 비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민주당 위상 강화와 비례해 신·구파 대립도 점차 심해져 갔다.첫 충돌은정·부통령선거 직후에 찾아왔다.56년 7월 金度演·金俊淵·蘇宣奎 등 구파중앙위원 60여명이 연명(連名)해 최고위원 불신임안을 제출한다.이에 최고위원 전원이 사표를 내고 후임자 선출을 논의하게 된다. 신파는 “국민에게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張勉부통령이 당연히 대표최고위원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파는 표대결을 요구한다.투표 결과 대표최고위원에는 趙炳玉이,최고위원에는 郭尙勳·張勉·金俊淵·金度演이 뽑힌다. 일부에서 분당을 거론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 끝에 신·구 양파는 다음해부터 대표 및 최고위원을 중앙상무위가 아닌 전당대회에서 선출한다는 등 몇 가지에 타협하고 수습한다.이후 구파는 부통령인 張勉에게 당의 주도권을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그를 더욱 견제하게 됐고,신파는 張勉을 중심으로 더욱 똘똘 뭉치게 됐다. 59년 11월 전당대회에서 신·구파는 다시 한번 격돌한다.60년 정·부통령선거에 나갈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趙炳玉은 483대480 단 3표차로 張勉에게 신승한다.다음날 대표최고위원 투표에서는 거꾸로 張勉이 趙炳玉을 70여표차로 물리친다.최고위원에는 郭尙勳·白南薰·尹潽善·朴順天이 올랐다. 이 전당대회는 신·구파 사이에 메우기 힘든 골을 파놓았다.대회를 몇달 앞두고부터 양쪽의 경쟁은 한계를 넘어서 각종 추태가 난무했다. 趙炳玉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고 인신공격한 ‘결격사유 10개조’라는 괴문서가 전국 지구당에 배포되는가 하면,경남도당대회가신·구파 당원 간의난투극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신·구파의 격한 대립 속에서도 민주당은 趙炳玉대통령후보,張勉부통령후보 겸 당 대표최고위원 체제로 1960년을 맞는다.56년 申翼熙의 급서로 이루지못한 정권교체의 꿈을 이번에는 꼭 이룬다는 각오와 함께였다. 李容遠 - 신구파 내력과 특징 비교 민주당(民主黨)창당은 자유당의 ‘사사오입’개헌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자유당(自由黨)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重任)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의 제5차 개헌안을 마련한다. 李承晩에게 영구집권의 길을 터주려는 이 개헌안은 1954년 11월27일 국회에서 찬성 135,반대 60표로 부결된다.그러나 이틀뒤 자유당은 수학의 ‘사사오입’규정을 적용하면 개헌 정족수를 통과한 것이라는 궤변으로 헌법개정을공포한다. 이후 열달동안 반(反)李承晩세력은 통합야당 결성에 노력한다.한민당(韓民黨)의 후신인 민주국민당(민국당,民國黨)과 무소속 의원들은 호헌동지회를 결성해 원내교섭단체로 등록한다.여기에는 자유당을 뛰쳐나온 ‘탈당파’의원12명도 가세한다. 당시야당으로서는 민국당이 가장 컸지만 원내의석이 15석에 불과해 다른 야당 세력을 흡수,통합하지는 못했다.따라서 민국당의 발전적 해체를 전제로 55년 12월 신당촉진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러나 신당추진 세력은 곧 의견대립에 부딪친다.민국당의 申翼熙 趙炳玉과재야의 張勉 등 ‘자유민주파’는 좌익에서 전향한 자,독재 또는 부패혐의가 짙은 자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명분으로 혁신계인 曺奉岩과 족청계 李範奭을 배제하려고 한다.반면 張澤相 徐相日 등 ‘민주대동파’는 범야세력의총결집을 주장하며 맞선다. 결국 민주당은 ‘자유민주파’만으로 출발하는데 당시 원내 의석은 33명이었다.이에 비해 자유당은 120여명,무소속은 40여명이었다.‘통합야당’을 표방했는데도 무소속으로 남은 의원이 40여명이나 된 사실은 야당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증거이자,민주당의 포용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당후 민주당은 다시 신·구파로 갈린다.구파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申翼熙 趙炳玉이 중심인물이었다.한민당을 실질적으로 이끈 金性洙가 55년 2월별세한 뒤여서 구파의 대표성은 申翼熙가 갖고 있었다. 반면 신파는 張勉을 지도자로 鄭一亨 朱耀翰 등의 흥사단계(張勉은 흥사단계로 알려졌지만 흥사단에 가입한 일이 없다),吳緯泳 金永善 李相喆 등의 원내자유당계,玄錫虎 李泰鎔의 자유당 탈당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한마디로 구파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구세력’이고 신파는 이를 제외한,새로 야당에 가입한 ‘신세력’이었다.하지만 더욱 중요한 차이점은 신·구파가 출신 배경,사회활동,이념적 지향에서 어느정도 구분지어진다는 점이다. 구파는 대부분 지주집안 출신에 독립운동가나 지사형이었고 상당히 보수적이었다.이에 견줘 신파는 관료·법관·금융계 출신의 전문인이 주류였다.韓昇洲 고려대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구파 지도자 가운데 80%는 처음부터 정계에나섰으나 신파 지도자는 오히려 60%가 행정·관료직으로 출발했다.韓교수는또 “연령을 보아도 구파 지도층은 평균 51세,신파는 48세로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신파의 지도력이 사실상 명확히 젊었다”고 평가했다. 정치행태에서도 달라구파는 비조직적이고 점잖아 “하나하나가 모두 장성같았지만”,신파는 조직적이고 투쟁적이어서 상부의 명령에 일거수일투족이 움직였다.(구파 출신 閔寬植 회고록에서)민주당 신·구파는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가 강한데도 ‘李承晩정권 타도’라는 공동목표아래 힘을 모았다.초기에는 그래도 단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59년 정·부통령 후보 선출을 놓고 대립이 심해졌다.4월혁명이후 정권장악이분명해지자 그때부터는 치열한 정권쟁탈전에 들어간다. 李容遠
  • [외언내언]탈북자 맞선

    지난 2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는‘남남북녀(南男北女) 통일맞선’이라는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북한 출신 미혼 탈북자들과 남한의 미혼 남녀 등 80여명이 모여 자신의 배우자감을 찾는 모임이었다.탈북자 중엔 최초의 대규모 가족 귀순자인 김만철씨의 딸 광숙씨와 여만철씨 딸 금주씨 그리고 귀순 영화배우 김혜영씨 동생순영씨 등도 있었다. 20·30대 미혼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참가한 이번 탈북자 맞선모임은 통일을염원하는 촛불행사를 비롯해 통일전망대 방문 등을 통해 친교와 우의를 다졌다. 이번 남남북녀의 친교행사는 탈북 젊은이들이 한국 생활에서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해소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현재 필자가 출연하고 있는TV프로에서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는 김순영씨도“한국에 와서 가진 행사 가운데 가장 생동감 넘치는 것이었다”고 말한 점을 미루어볼 때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생각된다. 특히 탈북자는 넓은 의미의 난민이기도 하므로 자유와 빵을 찾아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찾은 젊은 탈북자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은좋은 만남의 자리였다고 하겠다.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행복권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매우 바람직한 모임이었다고 여겨진다.최근 들어 탈북젊은이들 일부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한 갈등 속에서 방황하는경우를 감안하면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국에서 노력만 하면 자신의 성공과 가정의 행복을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젊고 패기 있는 탈북 젊은이들이 남한의 미혼 젊은이들과 만나 결혼을 비롯한 인생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우의를 돈독히 다짐으로써 한국 생활에 자신감을 갖게 한 것은행사의 의미를 더해주는 것으로 평가된다.또한 분단 이후 세대간의 민족동질성 회복의 좋은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이렇게 볼 때 이번 통일맞선행사는탈북 젊은 세대들의 이질감과 자괴감을 해소하고 남한 국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이같은 효과를 인식한 주최측은 다음달 2차행사에 이어 내년도에는 남북한교류·협력이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남남북녀 통일맞선행사를 평양에서도 열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서울에서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이번 젊은 탈북자 통일맞선행사가 평양으로 이어질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장청수 논설위원
  • 野, 밀레니엄 후보론으로 與와 차별화

    “새 천년(밀레니엄)을 열어 나갈 인재를 찾아라”여권의 ‘젊은층 수혈론’에 맞선 한나라당의 전략 개념은 ‘밀레니엄 후보론’이다.새로운 시대를열어 나갈 내년 16대 총선 후보에 개혁 성향의 참신한 인사를 포진시키겠다는 발상이다. 당위성 차원에서는 여권의 ‘젊은층 수혈론’과 엇비슷하다.그러나 핵심 구상에서는 차별성을 띠고 있다.당 지도부는 현 정권의 중간평가 형식인 16대총선이 민의(民意)에 의한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야당으로서는단순한 ‘생존’이 아닌 발전적 ‘변신’의 계기가 되는 셈이다. 때문에 지도부는 ‘밀레니엄 후보론’의 전제조건을 당 체질개선과 정체성(正體性)확립을 통한 여당과의 차별화에서 찾고 있다.李會昌총재의 한 핵심측근은 22일 “당 체제나 운영방식이 비민주적이면 아무리 좋은 인재라도 함몰될 수밖에 없다”며 “여든 야든 젊은 피를 수혈하려면 체질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李총재가 최근 16대 총선을 1년 남짓 앞두고 새로운 정치비전과 21세기형 선진정치 구상을 제시하기 위한 작업에 골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李총재는 3·30재보선 이후 민생투어와 각종 강연,미국 방문 등을 통해 정리된 생각을 조금씩 내비칠 작정이다. 지도부는 특히 영입의 폭을 과거 민주화 투쟁 경력자에 국한하기 보다 기업,문화 등 미래지향적인 지식인 그룹쪽으로 넓힌다는 구상이다.특정 인물을염두에 두는 단계는 아니지만 원외위원장으로 鄭泰允 金富謙 沈在哲 鄭鎭燮鄭寅鳳 朴啓東 韓昌熙 李忠範씨,당 주변 인사로 陳永 嚴虎聲변호사,具凡會부대변인,당료 출신인 權奇均씨 등이 꼽힌다. 그러나 후보군(群)의 대폭 물갈이는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자칫 엄청난 홍역과 진통으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李총재쪽은 “교과서적 이상론과 정치 현실,특히 선거 상황과는 괴리가 있다”며 “16대 총선에서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접점을 찾아 ‘신(新)·구(舊)간’ 조화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찬구 ckpark@
  • 비경제부처 장관 간담회

    제2차 정부조직개편의 방향을 논의한 17일의 비경제부처 장관간담회는 전날 경제부처 장관간담회와 마찬가지로 金鍾泌국무총리의 주재로 비공개리에 열렸다. 간담회는 陳념기획예산위원장이 경영진단조정위원회의 조직개편 시안을 설명하고 각 부 장관이 해당부처의 의견을 개진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주요 논점은 ▒국정홍보 강화를 위한 공보실의 보강 혹은 문화관광부로의이전 ▒청와대 또는 총리실 소속의 중앙인사기관 설치 ▒노동부와 보건복지부의 통합 등이었다. 특히 중앙인사기구와 공보실의 소속을 둘러싸고 국민회의 및 자민련 출신기관장간에 의견이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申樂均문화부장관은 공보실의 문화부 이관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으며,吳效鎭공보실장은 현 기구를 확대해 총리실 산하에 계속 둬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공보실의 국·과장은 대부분 간담회장에 들어가 토론의 양상을 살피기도 했다. 또 李起浩노동부장관은 보건복지부의 복지정책은 노동부로 이관되는 것이효율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고,이에 대해 金慕妊보건복지부장관은 현행 틀을 유지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장관들 가운데 일부는 기획예산위가 정부의 3급이상 고위직 30%를 민간에 개방하는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이날도 참석한 장관들은 조직개편에 대한 특별한 결론을 이끌어내지는 않았다. 간담회에는 康仁德통일·洪淳瑛외교통상·朴相千법무·千容宅국방·金杞載행정자치·金慕妊보건복지·李起浩노동·李海瓚교육·申樂均문화관광·崔在旭환경부장관,鄭海주 국무조정실장,金弘大법제처장,崔圭鶴국가보훈처장,朱光逸국민고충처리위원장,金鎭渲비상기획위원장,姜智遠청소년보호위원장,吳效鎭공보실장과 陳념기획예산위원장이 참석했다. 李度運 dawn@
  • [농협개혁](3)부실한 경제사업

    농협의 총체적 부실은 경제사업 부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농협이 농민 상조기관이 아닌 금융기관으로 변질된 것이나,농협이 농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된 것도 결국 경제사업이 형편없이 빈약한 때문이다.앞으로 추진될 협동조합 구조개혁도 이 경제사업 부문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경제사업이란 산지 수매에서부터 소비자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유통사업이나 영농기법 개발과 같은 생산자 지도사업 등을 뜻한다.농협 중앙회의 98년 결산에 따르면 신용사업을 통한 수익이 1조1,526억원인 데 비해 경제사업 수익은 이의 15% 수준인 1,629억원에 불과하다. 농협의 왜곡된 구조와 부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즉,농협의 창립 목적은 농민간의 상부상조를 위해 경제사업을 적극 육성하자는 데 있다.신용사업은 이를 보조하는 차원의 업무다.그러나 현실은 신용사업이 주업이고,경제사업은부업으로 전락했다.농산물 유통 등을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 신용을 다뤄야하는데도 실제로는 돈벌이가 우선이고,농민지원은 뒷전인 것이다. 경제사업의 부실은 농민들이 직접 접하는일선 단위조합에 있어서 더욱 극심하다.상당수의 단위조합들이 마을금고 수준으로 전락한지 오래다.단위조합 평균 수익의 75%가 상호금융이라는 신용사업에서 나온다. 그나마 ‘돈놀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경영난에 허덕이는 단위조합들이수두룩하다.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에 손 댈 여력이 있을 턱이 없다.신용업무를 중앙회가 맡아 경제사업에 주력하는 단위조합을 지원하는 구조가 왜곡돼있는 것이다.농민들이 농협을 ‘고리업자’로 질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농협은 지난해 말 1,332개 단위조합 가운데 39개 조합이 결손상태이고,이가운데 17개 조합만이 자본잠식 상태라고 밝혔다.그러나 감사원 감사결과 퇴직급여와 신용대손 충당금을 결산에 반영할 경우 무려 1,234개 조합이 결손상태에 있고,647개 조합은 전액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이처럼 단위조합이 부실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회원이 1,000명 미만인 조합이 전체의 4분의 1인 306개에 이르는 등 조합이 난립한데다 조합장들의 경영능력 부족때문이다. 경제사업의 부실은 중앙회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서울 양재동과 창동에 있는 물류센터의 경우 유통단계 축소라는 당초의 목적과 달리 37개 매장이 수의계약 형태로 일반사업자에게 임대돼 운영되고 있다.농협과 사업자들이 얻는 수익만큼 생산농민과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셈이다.3개의 물류센터를 운영하는데 자회사가 5개나 설립돼 있는 점도 농협의 방만한 운영실태를 대변한다. 농협 직영의 하나로마트도 규모가 영세한데다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유통시장 개방에 대비,국내외 대형유통업체에 맞선다며 매장수를대폭 늘려가고 있지만,적자매장만 늘어나는 실정이다.감사원 감사에서도 지난 96년 215개이던 적자매장이 97년에는 241개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 [이사람] 경남 진주 秋慶和씨

    “일제탄압에 당당히 맞선 선조들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것은 과거의 아픈치욕을 극복하고 우리의 미래를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선조들의 항일투쟁 흔적을 찾아 12년째 전국을 누비고 있는 秋慶和씨(48·사진·경남 진주시 신안동 705의1).그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어져 가는 독립유공자의 발굴에 미친(?) 요즘 보기드문 의인(義人)이다. 秋씨가 이 작업에 뛰어든 것은 광주대 3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87년.조상의 족보를 찾다가 증조부(秋鏞玖)가 일제때 의병활동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서 부터였다.곧바로 증조부의 행적을 찾아나섰고 이 과정에서 우연히 전라도 의병대장 秋璂燁과 黃俊聖의 항일행적을 발굴,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秋씨는 ‘돈 안되는’ 이 일에 매달렸다.운동화 차림으로 눈속을헤매는 것은 예사였고 수십년전 사망한 사람을 수소문하며,호적을 뒤지고 다니다 간첩으로 오인받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의 이같은 열정은 결혼후에도 이어져 생계는 10년전 결혼한 부인張伊順씨(42)가 꾸려가고 있다.그가 전자회사에서 벌어오는 5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秋씨가 그동안 찾아낸 독립유공자만도 50여명에 이른다.모두가 독립유공자로 추서받은 것도 그의 발굴작업이 얼마나 알찬 것이었나를 말해준다.강원도 춘천의 장총단사건,경북 청도 군용열차사건,전남·북 의병활동상 등 묻혀져 있던 주요 사건들을 발굴했다.그러나 막상 자신의 증조부는 기록이 미비해독립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춘천 장총단사건.安二淳·三淳형제와 馬道賢 朴順九 등 일가 친척들이 춘천과 인제일대에서 10여년간 무장활동을 벌였던 활약상을 발굴,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한 것이다.그는 “겨울방학동안 눈덮인 강원일대를 샅샅이 뒤지며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기 때문에 평생 잊을 수 없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秋씨는 요즘 신간회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일제때 문맹퇴치와 계몽운동에앞장선 청년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작업이다.오는 9월쯤이면 신간회 지회의활동상을 담은 세번째 ‘항일투사열전’을발간할 예정이다.
  • 美-쿠바 때아닌 ‘전화 전쟁’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쿠바 전화국이 25일 0시를 기해 미국과의 접속회선을 일방적으로 차단시키면서 두나라 사이에 때아닌 전화전쟁이 시작됐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96년 미국 민간항공기가 쿠바 미그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데서 시작됐다. 당시 목숨을 잃은 4명의 가족들이 쿠바당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해 1억8,700만달러의 배상판결을 받았으나 쿠바당국은 이를 무시,배상을 해주지 않았다. 이에 미 법정은 미국내 쿠바재산을 압류했고 미국이 98년 쿠바측에 지불해야할 전화비용 6,000∼7,000만 달러가 있음을 발견,이를 압류시켜버렸다. 이에 화가난 쿠바정부가 전화국을 통해 회선차단이란 극단적인 조치로 맞선 것이다.
  • [국민의 정부 국난극복 1년 2] 金대통령 국정운영 스타일

    취임초 국민의 정부의 일부 정책결정 과정을 놓고 ‘혼선’이니,‘갈팡질팡’이니 하는 지적이 있었다.국무회의에서 종군위안부 정부지원금 지급문제를 둘러싸고 국무위원간에 격돌,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회의로 연기하는 일이 벌어졌다.철저한 구조조정과 동시에 실직자 최소화 대책을 거론하는 등얼핏보면 이율배반적으로 비치는 일들도 있었다. 이들 현상은 대부분 金大中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긴 오해들이다.金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은 자로 잰 듯 엄격하다.처음부터 끝까지 논리가 완벽하다.허점이 보이면 끝없이 고치고 다듬는 것이 이른바 ‘DJ 리더십’의 핵이다. 여기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섬세함,획일주의가 아닌 토론문화와 다양성의 선호,노사정협약과 구조조정 5원칙과 같은 사회협약과 약속의 중시….오랜 야당생활과 수많은 독서를 통해 형성된 金대통령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이러한 국정 운영스타일을 반영하듯 金대통령은 국정방향과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먼저 많은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나눈다. 청와대 수석이건,비서관이건 직위를 크게 따지지 않고 야당때부터 도움이 됐던 인사들을 불러 1차 논리적인 검증절차를 거친다.문제점이 발견되면 ‘숙제’를 주고 다시 가다듬는다.YS(金泳三전대통령)와 달리 ‘화끈한’ 것은없어도,좀처럼 큰 실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5대 기업 빅딜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고,대북 3원칙이 국제적 지지 속에서 변화의 싹이 움트고,국무회의와 청와대 오·만찬 간담회에서 비교적 자유스럽게 대화가 오고가는 것도 ‘민주적 토론’과 원칙을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독재에 맞선 민주투사로,공정경쟁을 존중하는 정치인으로 당연한 시스템의변화라는 것이다.간혹 논의 과정에서 정책 초안이 공개됨으로써 혼선을 초래하는 일이 있지만,金대통령이 일관성을 중시하는 지도자임이 분명하다. 창조적 지식기반 국가 건설과 신지식인 운동을 제시한 부분은 미래지향적이고 비전있는 지도자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21세기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앞서 제시함으로써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도 아직은 과제가 남아있다.지난 1년 동안 지역차별의 최대 피해자로서 화합의 정치를 시도하고 있으나 정쟁에 휘말리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총풍·세풍수사와 정치개혁 작업에서 보듯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개혁작업도 곳곳에서 암초에 직면해있다.그의 화합의 리더십을 ‘유약함’으로 보고 도전하는 수구 저항세력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게 엄연한현실이다. 개혁의 길로 여러 집단을 아우르고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통합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金대통령 스스로도 그런 리더십을 꾸준히 추구하고 있다. 梁承賢 yangbak@
  • 외언내언-諸廷坵의원과 현충원

    ‘신부와 벽돌공’은 지난 9일 타계한 諸廷坵의원의 자서전이다.이 책은 12일 국회장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 영결사처럼 “가진 자보다 없는 자,강한자보다 약한 자와 늘 함께 있기를 생활철학으로 삼았으며 독재권력에 맞선민주화 운동가였고 낮은 곳을 향해 정의를 추구하면서 도시 영세민들과 동고동락해온 실천적 지식인이자 깨끗한 정치를 지향했던 올곧은 정치인”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 준다.아울러 그가 온 몸을 던진 치열한 삶으로 수행의길을 걸었던 구도자였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서울 청계천 판자촌의 야학교사(72년)로 시작해 양평동 철거민들과 함께 시흥에 ‘복음자리’ 공동체 마을을 건설(77년)하고 목동·상계동 등지의 강제철거에 맞서 도시빈민 운동을 이끈 공로로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로 선정(86년)됐을 때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뭔가 잘못됐습니다.저는 제 일을 통해받을 상을 이미 다 받은 사람입니다”.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받았다는상은 “가난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이었다.그는 막사이사이상을 ‘천막사이사이상’으로 받아들였다. 복음자리로 이주했던 겨울,돌도 지나지 않은 첫딸이 급성폐렴에 걸렸을 때그는 가난의 위선(?)을 벗는다.“처의 친구 아버지 병원을 찾아 아름이를 살리고 난 후 나는 결코 가난한 판자촌 주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돈이 없는 것은 그들과 같을지 모르지만 돈 아닌 무형의 자산인 중·고·대학의 친구들,친척들…판자촌 주민들 중에 나처럼 무료로 급성폐렴에 걸린자식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그때까지 나는 내가 똑같은 판자촌 주민이요,도시빈민이라는 허구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그릇된 것을 보면 ‘불같고 송곳같은 성질’로 ‘욕쟁이요 싸움꾼’으로 자신을 내던져 부서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 또한 지녔다. “돈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가난을 넘어 가난하게 살 수 있는 힘… 자신을더 철저히 버림으로써 가난에 접근해 가는 적극적인 방법”을 찾은 그는 “더러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정치판”에 “걸레가 되겠다”는 각오로 들어선 다음에도 현실정치의 더러움과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다 갔다.아내와세 딸에게 18평짜리 슬레이트 집 한채와 빚 7천만원,그리고 ‘가짐 없는 자유’라는 가훈을 남기고. 그런 그가 구차한 규정에 묶여 국립현충원에 눕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諸의원 자신은 현충원보다 빈민들 사이에 묻히고 싶어했을지 모르지만..
  • 李昌鎬 삼성화재배 우승 뒷얘기

    세계바둑계의 최강자인 李昌鎬가 지난 8일 막을 내린 제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에서 풍성한 화제거리를 남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우선 덤을 얼마로 할 것인가라는 해묵은 논제에 불을 지핀 것. 이번 대회에서는 흑을 쥔 사람이 승리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있다.1,3국은 마샤오춘(馬曉春) 9단이 이겼고 2,4국은 李 9단이 따냈다.2대2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맞은 5국에서 흑은 李 9단에게 돌아갔다.연장자인 馬 9단이 먼저 백돌을 수북히 올려 놓자 李 9단이 흑돌 두개를 올려 놓아 짝수를 맞춘 것.평소 돌을 하나만 올려놓던 李 9단으로선 뜻밖의 행동.그러나 이는 행운의 여신이 돌부처(李昌鎬의 애칭)에게 미소를 지은 것이나 다름없었다.엎치락 뒤치락 했지만 李 9단의 승리로 끝나 흑번필승의 신화가 다시 확인된 것. 바둑은 실력이 비슷할 경우 흑을 쥔 사람이 절대 유리하다.이른바 먼저 두는 ‘선착의 효’ 때문이다.그래서 백에게 5집반을 덤으로 준다.그러나 덤을 줘도 흑의 승률이 55∼6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李昌鎬와 劉昌赫은 지난해 13차례 맞붙어 李 9단이 8번 이기고 劉 9단이 다섯번 승리했다.劉 9단은 5승 가운데 4번을 흑으로 이겼다.기량차가 거의 없는 정상급 기사간의대국에서 흑의 무게를 느낄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과연 덤은 얼마가 적당할까. 李 9단은 대국이 끝난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평소와 달리 흑,백을 가릴 때 돌 두개를 올려놓은 것은 흑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오늘은 왠지 돌을 2개 올려 놓고 싶었을 뿐”이라며 “결승 다섯판에서 모두 백에게 기회가 있었다”고 말해 흑에 집착하지 않았음을 내비췄다.이어 개인적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덤은 6집반이 적당하다”고 말해 현재의 5호반 공제가 흑에게 유리함을 시사했다. 이번 대국에서 이창호는 새로운 바둑의 길을 가려는 구도자적 자세와 강심장을 선보였다.상금 2억원이 걸린 세계대회 타이틀에서 李 9단은 신수(新手)를 실험했다.특히 결승 5국에서 신수를 구사한 것은 물론 종국을 앞둔 유리한 상황에서도 馬 9단의 패싸움을 받아줘 기를 질리게 했다. 아뭏튼 이번 대회의 결과로 馬 9단은다시 ‘李昌鎬 신드롬’에 시달려야할 것으로 보인다.두사람은 LG배 세계대회에서도 5번 승부를 앞두고 있다.任泰淳
  • 與, 중선거구제 도입 검토

    국민회의가 정치권내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16대 총선에서 중선거구제의 도입을 검토중인 것으로 7일 알려졌다. 국민회의·자민련은 이미 ‘소선거구제를 바탕으로 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놓고 협의를 시작한 상태여서 여권의 중선거구제로의 최종 조율 여부가 주목된다. 金大中대통령은 최근 여권 중진들을 잇달아 만난 자리에서 “지역주의를 깨기위해 몸을 던질 각오를 하라”고 강조했으며 대안의 하나로 이들 중진들과 중선거구제 도입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 盧武鉉부총재는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나부터라도 몸을 던질 것이며 정치권의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호남권 의원들과 자민련이 반대하는 중선거구제의 검토 등 여러 대안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盧부총재는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이같은 얘기들이 나왔다”고 전했다. 盧부총재는 “‘몸을 던진다’는 얘기는 16대 총선에서 종로지역구를 포기하고 부산지역으로 내려가 흐트러진 지역 민심수습에 전념하며 지역주의에맞선다는 얘기”라면서 자신의 국민회의 경남도지부장 내정설을 시인했다.盧부총재가 부산으로 지역구를 옮기더라도 李鍾贊국가정보원장이 종로지역구를 맡지 않고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종로지구당 조직책은 다른 동서화합형 인사가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金대통령은 새해들어 金相賢고문 등 여권 중진들을 잇달아 청와대로 불러면담하는 과정에서 지역주의 해소방안을 집중 논의했으며 이를 위해 현역 의원들이 ‘몸을 던지는’각오를 가질 것을 특별히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은 특히 적절한 시점에 全斗煥·盧泰愚·金泳三 전대통령과 회동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盧부총재는 구체적인 지역주의 해소와 관련한 질문에 “金대통령은 가급적 많은 지역인사를 포용하려는 정책을 구상중”이라고 전제,“하지만 金泳三전대통령문제는 지역주의문제라기보다는 정치발전을 위한 원칙의문제”라고 밝혀 여권의 金전대통령에 대한 처리문제가 주목되고 있다.柳敏 rm0609@
  • 대구 달서구,인터넷 통해 동서화합

    ‘인터넷으로 동서화합을 다진다’ 대구시 달서구가 인터넷을 통한 지역감정 허물기에 나섰다. 달서구는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www.gu.talso.taegu.kr)에 ‘우리는 한 형제·자매’라는 제목의 영·호남 교류 코너를 개설했다. 이 코너에는 달서구와 자매결연한 광주시 북구를 소개하고 지난 10년간 양지역간 교류활동 내용을 담았다. 달서구와 광주 북구는 지난 85년 양지역 새마을부녀회 회원들 사이의 개인적인 만남이 89년 자치단체 간 자매결연으로 발전해 동서교류 활동이 어느지역보다 왕성한 곳. 영·호남 교류 코너에는 교환 식수,새마을지도자 교환 헌혈,처녀총각 맞선행사,특산품 교환 판매 등 지난해 달서구와 광주 북구가 했던 다양한 교류행사가 소개돼 있다.초등학교를 비롯해 약사회,이·미용사회 등 양지역 민간단체간의 교류활동과 지난해부터 시작한 공무원 상호교환근무 행사도 상세하게 실었다.
  • ‘민중의 시인’ 김남주 추모 작업 다채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던 시인 김남주.오는 13일은 그가 48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김남주 시인의 사망 5주기를맞아 다채로운 추모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김씨의 서간집 ‘편지’(이룸)와 미망인 박광숙씨의 수상집 ‘빈 들에 나무를 심다’(푸른숲)가 나온 데 이어 문학동네에서는 김씨의 서정시집 ‘낮달’을 12일에 펴낸다.또 시비(詩碑) 건립이 추진중이며 그를 기리는 문학기행도 예정돼 있다. ‘시인’이라기 보다는 ‘전사’를 자처한 광야의 선지자,비인간적인 이데올로기에 혁명의 순결성으로 맞선 민족주의자,분단시대의 철조망을 걷어차던 선봉대장…. 그에게 시는 단순한 문자놀음이 아니다.그것은 민족현실을 타개하는 변혁의 무기요,시대정신의 광맥을 더듬는 유용한 연장이다.그런 만큼 그에게는 과격한 투사의 이미지가 따라다녔다.그러나 그의 서정 시편들을읽다보면 그가 왜 ‘한국의 하이네’로 불리는가를 대번에 알 수 있다.그는때로 사랑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민중 앞에 선다. “내가 손을 내밀면/내손에와서 고와지는 햇살/내가 볼을 내밀면/내볼에와서 다스워지는 햇살/깊어가는 가을과 함께/자꾸자꾸 자라나/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내 볼에 와서 감기면/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내 입술에와서 닿으면/그녀와 주고 받고는 했던/옛 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창살에 햇살이’ 전문) 시의 행간에는 소월이 어른거리고 영랑이 얼비친다. 시집 ‘낮달’에는 ‘창살에 햇살이’‘물 따라 나도 가면서’‘고뇌의 무덤’‘황소 뒷다리에 붙은 진드기 같은 세상’‘솔연(率然)’등 60여편의 작품이 실렸다. ‘편지’는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을 선고받은 김씨가 투옥생활중 아내에게 보낸 100여통의 편지를 묶은 것.시시각각 옥죄 오는 삶의 벼랑에서도희망을 갈무리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겼다. ‘빈 들에 나무를 심다’는 암으로 남편을 저 세상에 보낸 미망인 박씨가사부곡(思夫曲)삼아 쓴 산문집이다.강화도에서 외아들 토일군과 함께 살아온 5년간의 삶을 들려준다. 한편 민족문학작가회의(02-313-1486)는 오는 20,21일 김남주 문학기행을 떠난다.문학기행은 서울을 출발해 전남 해남의 김남주 생가를 방문한 뒤 광주망월동 묘역에 안장된 김씨 묘지를 참배하는 순서로 진행된다.5월엔 그의 묘지 곁에 시비를 세울 예정이다.金鍾冕 jmkim@
  • 사극 ‘왕과 비’ 역사왜곡 논란

    역사드라마는 역사인가,드라마인가. “역사를 왜곡해선 안된다”는 역사가들의 지적과 “작가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작가들의 견해는 늘 첨예하게 맞서왔다. KBS1TV 대하드라마 ‘왕과 비’의 역사왜곡 여부가 논란이 되고있다.역사평론가 이덕일씨는 월간지 ‘신동아’에 2회에 걸쳐 이 드라마의 역사왜곡을신랄하게 비판했다.거듭된 비판에 작가 정하연씨의 대응도 만만치 않아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신청하는 한편 20여억원의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런 상황이 불거지면서 시청자와 여론의 논란도 점점 더 뜨거워 지고 있다. ‘왕과 비’는 조선 초기,단종부터 세조시대를 담고있는 정치드라마이다.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과정에서 일어난계유정난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다.드라마는 수양대군을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인물이 아니라 왕권과 신권(臣權) 사이에서 흔들리는 권력의 구심점을 왕권으로 지켜 내기 위해 고뇌를 한 왕족으로 그리고 있다.수양대군을 권력욕에 불타 단종을 폐위시킨 매몰찬 권력지향형 인물로 그리기 보다는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수양을 미화한다’는 비판과 함께 계유정난을 옹호하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또 김종서와 황보인이 안평대군과 역모를 꾸몄다는 ‘왕과 비’의 묘사에대해서도 이의가 뒤따르고 있다.만고의 충신으로 알려진 김종서가 왕권에 도전한 적이 없음에도 수양대군에게 ‘당위성을 주기위해’ 충신을 억지로 역적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왕과 비’의 비판은 지난해 8월,‘신동아’에 역사평론가 이덕일씨가 ‘수양대군·전두환 그 닮은꼴 쿠데타’란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 제기됐다.이씨는 올 2월호엔 비판 강도를 더욱 높여 ‘왕과 비,걷어치워라’는 글로 ‘사관과 사료해석에 문제있다’는 지적을 되풀이했다.그는 ‘단종실록’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는만큼 당연히 세조의 입장에서 전개될 수 밖에 없지만 “잘못된 사료의 문제점을 밝힐 줄 모르는 작가와 제작진의 한계가보인다”고 꼬집었다.또 “사육신을 권력욕의 화신으로 난도질했다”고 비판했다.이에대해 작가 정하연씨는 “아직 드라마에 등장하지도 않은 사육신을잘못 그렸다고 비난하는 것은 개인적인 인신공격이자 명예훼손임에 분명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하연씨는 “현재로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해석에 기초해 드라마를 쓸 수 밖에 없으며 그렇게 하고 있다”며 “역사드라마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비난은 이번 기회에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TV드라마의 빗나간 역사관이 시청자에게 그릇된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찬위원인 경희대 김태영교수는 “계유정난에 대해선 복합적인 평가가 있지만 수양의 집권은 쿠데타이며,이는 미화되어선 안된다”고 드라마의 객관적이고,중립적인 역사관을 강조했다. 정사와 야사의 균형을 맞춰 오늘의 정치에 하나의 교훈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던 ‘용의 눈물’도 한편에서는 태종의 공신숙청을 개인적인 배신으로 그려 역사적인 의미를 훼손했다는 비난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왕과 비’가 받고있는 비판역시 특별한 것이 아닐 수 있다.그러나 법적대응으로 맞선 최초의 역사드라마 ‘왕과 비’로 인해 역사와 드라마의 분명한 기준이 서게될 지 두고볼 일이다.許南周yukyung@.
  • 테마기획 새해경제/”지식기반산업 육성” 특별좌담

    “정부 핵심과제 103개선정… 총 120조 투입” 21세기 우리 산업은 어떤 모습이 될까.아울러 국가발전을 이어가려면 어떤 형태의 산업구조가 필요할까.산업자원부와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말 21세기 국가발전전략으로 지식기반 신산업의 육성을 제시했다.중화학공업 중심의 발 전전략에서 지식이 핵심이 되는 지식기반 신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전략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일각에서는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지식기반 신산업의 개념이 모호한데다 구체적인 육성안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다. 자칫 산업구조의 틀을 깨뜨릴 수 있으므로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계속 견지해야 한다고 맞선다. 吳剛鉉 산업자원부 차관보와 朴勝祿 한국 경제연구원 연구위원,禹天植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의 좌담을 통해 쟁점 을 점검하고 바람직한 산업발전전략을 모색해 본다. ?곁丁?鉉차관보 지식기반 신산업은 ‘IMF사태’ 이후 현재의 산업구조와 조 직으로는 우리나라가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현 재산업구조는 대규모 장치산업 및 대량생산 방식 중심인데다 대기업과 중소 업체의 수직체계도 경직돼 있어 지식과 정보산업을 바탕으로 21세기에 대비 하는 새로운 성장주도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겠戴?祿연구위원 그러나 신지식 기반산업은 개념이 애매하다.첨단산업 미래 산업 등 지금까지 써온 말과 구분이 잘 안되며 정부가 산업에 개입하는 근거 가 될 수도 있다.지식이나 정보를 생산요소로 중시한다는 뜻 같은데 우리 산 업사에서 기여도가 컸던 것은 지식과 정보보다는 자본과 노동이었다. ?곈宬멥擥恝П맛㎰? 산업사회에서 21세기 정보화사회로 가는 것은 필연적이 지만 70년대 중화학공업정책과 어떻게 비교할 것이냐가 관건이다.과거에는 정부정책이 단계별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앞으로는 기존 장치산업이 한계 에 부딪쳤을 때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으면 구호만 으로 끝날 수 있다.21세기 산업패러다임은 지금까지와는 분명히 다르다.중화 학공업과 다른 각도에서 면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곁漸耽煥? 지식기반산업에대한 오해는 크게 세가지다.우선 기존 장치산업 을 포기하고 지식기반산업만 육성하자는 걸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그러 나 모든 산업을 지식집약화를 통해 육성하자는 것이다.또 정부가 특정산업 육성에 직접 개입하려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개방화·국제화 체제에 서 정부의 특정산업 육성은 생각하기 힘들다.기존 대기업의 역할이 부정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하지만 좀더 전문화된 역량을 경쟁력이 있는 분야 에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곈敾㎰? 하지만 산업기반에 대한 투자라는 면에서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2002년까지 56조원을 특정산업이 아닌 기반시설에 투입한다는 것이지만 종 래의 정부정책과 다른게 뭐냐고 생각할 수 있다.주력산업이 있고 신산업도 있는 상황에서 산업별로 입체적인 정리가 필요하다.지식기반산업이 어떻게 얽혀가면서 발전할 것인가에 대해 입체적인 구도가 결여돼 다소 현실성이 없 어 보인다.정부안에서 아쉬운 것은 추가 재원이 필요할 때 영역별로 얼마를 써야 할지,돈이 들어가면 어떤 효과가 나올지에대한 분석이 안 돼있다는 것 이다. ?겠湛㎰? 정부가 5년동안 27개 지식기반산업에 집중투자한다고 했는데 과연 지식과 정보가 미래 산업구조에 적합하기 때문인지,단순히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인지 애매하다.개념이 모호하면 정책지원의 타깃이 모호해져 투자 효율 성이 떨어질 수 있다.정부가 예시한 산업은 대개 정보와 기술로 생긴 독점적 이윤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산업들이다.현재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선진국 을 따라잡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곁漸耽煥? 종래 산업정책과 달리 구체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이 는 발전전략으로 제시하는 유도정책 성격이 강한데다 기반구축의 정책이기 때문이다.정부가 주도적으로 지원할 핵심과제 103개는 이미 선정된 상태다. 투자와 관련,앞으로 소요될 120조원 가운데 정부부담은 40% 정도다.테크노파 크나 첨단산업단지 등 산업집적지 조성과 지식창출이나 확산 등 기반확보에 주로 쓰인다.나머지는 주로 민간기업이 투자해야 한다. ?곈敾㎰? 현재 우리나라 주력산업은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이다.석유화학 이나 기계는 낙후돼 있다.이 정도로 우리나라가 다 먹고살 수는 없다.때문에 2010년쯤까지는 기존 경쟁력있는 산업이 돈을 벌면서 낙후산업을 보강해야 한다.2020년에서야 경쟁력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이 첨단과학 상품을 낳을만한 여건이 돼 있느냐 도 의문이다.세금을 걷어서 이를 육성한다면 국민여론이 극소수의 성공자 위 해 지원한다며 악화될 수도 있다. ?곁漸耽煥? 기존 주력산업이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의 많은 부분을 담당한 것 은 사실이다.그러나 앞으로 자동차 조선 등 주력장치산업의 고용과 부가가치 가 크게 증대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산업전반의 지식기반화를 통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서비스업에서도 무수한 고용창출기회가 있고 부가가 치가 창출될 수 있다. ?겠湛㎰? 우리나라는 중화학공업을 통해 성공했다.90년대 초반 중국에 경공 업에서 추월당한 것을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 철강 등에서 커버했다. 이들 산업이 97년 매출의 32%를 차지한다.그러나 이렇게 몇가지로 유지하는 바람에 경제위기가 온 것이다.증권처럼 포트폴리오(위험분산)가 필요하다.그 러나 산자부가 정한 신산업보다는 중간에 한단계가 더 필요하다.바로 자본재 산업이다.이쪽은 중국이 당분간 우리를 못 따라온다.소비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자본재를 육성해서 신성장 산업을 찾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영상산 업과 메카트로닉스 등을 말하지만 미국영화 ‘쥬라기공원’도 영화산업 이전 에 엄청난 자본재가 투입된 것이다. ?곈敾㎰? 중국이 우리에게 안되는 것이 자동차나 반도체다.연관산업이 없기 때문에 10년안에 우리를 따라올 수 없다.마찬가지로 우리도 영화 등으로 경 쟁력을 갖출 수 없다.하루아침에 안된다.제조업이 부실하니까 서비스업을 하 자는 것은 마치 ‘공부 못하니까 운동이나 해라’는 식이 될수 있다.중간 자 본재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해답이 될수 있다.그러나 자본재 산업 육성으로 성공한 나라는 고작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정도다. ?곁漸耽煥? 지식기반산업으로 가면서 산업구조의 유연화,서비스화 등으로 제 조업을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그러나 정보통신 소프트웨어나 전 자상거래 발전은 제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겠湛㎰? 전반적인 산업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드는 40조는 추가적인 돈이 될 수있다.기업·금융 구조조정을 위해 수십조원씩 들어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식기반산업의 하부구조를 육성한다는 게 얼마나 현실적일지 의문이다. ?곈敾㎰? 산업기반을 위해 쓴다고 해도 인력 기술개발 등 구체적인 항목을 제시해야 한다.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지방으로 어떻게 돈을 보낼지다.현행 지원체계 전반을 다시 편성해야 한다. ?곁漸耽煥?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지식기반산업 발전전략은 우리 산업과 경 제가 가야 할 기본방향만을 제시한 것이다.구체화 노력은 정부와 민간이 함 께 해야 한다.지식기반산업은 공급쪽보다 수요 기반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요 를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들이 절실하다. ?겠湛㎰? 과거 정부의 중화학산업정책이 성공했던 것은 규모의 경제가 큰 산 업이므로 정부 개입으로 인한 비효율성을상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앞으로 어떤 산업을 정부주도로 육성한다면 규모의 경제 효과는 없이 비효 율적으로 될 수 있으며 다른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기반조성에만 초점을 맞추기를 바란다. ?곈敾㎰? 일본경제 침체의 근본원인은 지나치게 자기내부 완결적인 구도를 지향한 데 따른 제도의 비효율성이었다.대외연결형 발전구도가 적합하다.미 국 유럽 등지의 다국적 기업이 아시아에 진출중이다.21세기형 기반산업을 조 성하는 데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정리| 陳璟鎬 金泰均 丁升敏 kyoungho@
  • 印尼, 동티모르 독립허용 시사

    동티모르에 과연 봄날은 올 것인가. 인도네시아정부가 지난 76년 동티모르를 강제합병한 이래 27일 처음으로 이지역의 독립가능성을 시사,기대를 모으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알리 알타스 외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동티모르인들이 만약 독립을 원한다면 독립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하비비 대통령도 “국민협의회(MPR)에 동티모르의 독립가능성을 논의하도록 제안할 것”이라고 했다. 포르투갈령에서 인도네시아 27번째주로 강제편입됐던 동티모르에선 그동안유혈 독립투쟁과 이에 맞선 주정부의 인권유린사태로 ‘피와 눈물의 역사’가 계속됐다.특히 지난해 수하르토정권 축출 후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은 더욱 거세져 하비비 정부의 큰 부담이 됐다. 이에 하비비 정부는 동티모르에 광범위한 자치를 부여하겠다고 제의했으나동티모르 주민들은 독립을 요구해왔다. 독립 허용가능성과 함께 인도네시아정부는 이날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지도자인 사나나 구스마오의 석방가능성을 시사,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정작동티모르의 지도자들과 독립투쟁단체들은 이번 발표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반응들. 이들은 “국제사회를 겨냥한 속임수에 불과하다.인도네시아정부는 수시로발표한 것을 수정하고 번복해왔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동티모르 약사]▒1976년 인도네시아에 강제합병.주민 20만명 피살▒1992년 반군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 체포▒1996년 독립운동지도자 카를로스 벨로주교와 호세 라모스 호타 노벨평화상 수상.▒1998년 하비비 대통령 자치보장 제의.동티모르 주민 거부
  • 한나라 마산대회 이모저모(I)

    한나라당이 24일 마산역 앞마당에서 가진 ‘金大中정권의 국정실패 및 불법사찰 규탄대회’를 통해 영남정서에 불을 붙였다.소속의원 70여명을 비롯,1만5,000여명이 참석한 대회장에는 ‘지역경제 파탄 주범 金大中정권을 심판하자’‘일어나라 부산시민이여,삼성자동차를 살리자’등 지역 민심을 자극하는 플래카드 수십여장이 내걸렸다. 전날부터 마산에 머무른 李會昌총재는 인사말에서 ‘위대한 마산·창원 시민,경남도민 여러분’을 여러차례 외치며 “가시밭길에서 정권과 맞선 우리당을 지켜주고 도와달라”고 호소했다.특히 “민주 성지(聖地) 마산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끝까지 싸울 것을 맹세한다”고 강조했다.연설도중 “구속된 동생의 생일이 구랍 31일이었는데 529호 사태 때문에 면회를 가지 못했다”며 목이 잠기기도 했다. 몇몇 연사들은 노골적으로 지역 차별 문제를 거론했다.金浩一의원은 “현정권은 유독 영남에 근거지를 둔 삼성이나 LG만 골라서 뺨을 때리고 있다.한일합섬도 목포나 광주에 공장이 있었다면 퇴출되었겠느냐”며 “마산사람들이직장이 없어 마산역에 이렇게 많이 모였다”고 주장했다.金鍾河중앙위의장은 “한일합섬과 동남은행 퇴출은 ‘영남죽이기’로 현 정권은 국민의 정부가 아니라 특정지역의 정부”라고 말했다. “경상남도를 이렇게 해도 된단 말이냐”(權翊鉉)“집권세력이 경남도민의정의로운 함성을 지역감정이라는 문구로 매도하고 있다”(黃性均)는 발언도뒤를 이었다.대회직후 참석자들은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까지 2㎞남짓 당보를 나눠주며 1시간여동안 가두행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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