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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혁의 중동을 가다] (하) 아부다비에 부는 변화의 바람

    [변혁의 중동을 가다] (하) 아부다비에 부는 변화의 바람

    |아부다비 최종찬특파원|아랍에미리트(UAE)의 제1도시이며 수도인 아부다비는 두바이에서 서쪽으로 160km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1시간30분밖에 안 되는 거리다. 두바이에서 시작하는 8차선 고속도로인 셰이크 자이드 로드를 타고 가면 아부다비가 나온다. 국경표지판은 없지만 나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면 아부다비 땅에 들어온 것이다. 도로변과 중앙분리대에는 2m 간격으로 나무들이 촘촘하게 심어져 있었다. 야자나무와 어린 묘목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무를 관리하는 인부들이 무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다는 사막 한가운데서 보는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풍경이었다. 자세히 보면 나무와 나무 사이에 검정호스가 깔려 있었다. 그 호스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구멍을 통해 아침과 저녁에 물을 공급한다.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물을 인위적으로 주지않으면 나무들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가이드 정영미(35)씨는 “이 물은 바닷물을 담수화해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는 UAE 초대국왕인 세이크 자이드의 국토 녹지화 프로젝트에 따른 결과다. 그는 오일머니로 벌어들인 돈 가운데 1억 50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 현재 국토 전체의 80%에 관목, 나무, 잔디밭이 조성돼 있다. ●나무 많고 차량소통 원활한 ‘인간적인 도시´ 아부다비 도심에 들어서자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20년 이상된 건물들도 많고 고층빌딩들도 두바이에 비하면 절반 크기였다. 대신 나무들은 몇배나 많고 차량소통도 원활했다. 번잡하고 어수선한 두바이에 비하면 조용하고 정돈돼 있었다. 또한 도심 가까이에 에메랄드빛 아라비아걸프해가 있어 녹색의 가로수들과 조화를 이뤄 이국적인 멋을 내고 있었다. 8성급 호텔인 에미리트호텔에서 18개월째 객실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송이(25)씨는 “한국 사람들은 두바이를 보지 않으면 중동구경을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아부다비가 휠씬 정이 간다.”고 말했다. 아부다비 유일의 한국음식점인 한국관 주인 황긍순(73)씨는 “아부다비는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워도 한국 돈으로 2만원정도면 충분하다.”며 “교통체증도 범죄도 없어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한 곳”이라고 거들었다. 물론 아부다비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곳곳에서 망치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높이 경쟁하듯 고층빌딩들이 들어서고 큰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전망 좋은 집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자연섬을 개발하고 고속도로와 항구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바이처럼 개발만을 우선시하지 않았다. 환경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아부다비 공기업인 TDIC는 이런 개발전략을 수행한다. 자연자원을 보존하면서 아부다비의 유산과 문화를 강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두바이식 ‘개발 지상주의´ 지양 바셈 데르카위(35) TDIC 홍보담당 부이사는 “두바이의 발전을 반면교사로 삼아 아부다비 개발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환경, 안전, 에너지 등을 고려한 발전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TDIC는 2개의 대형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하나는 자연섬을 통째로 개발하는 사디야트 아일랜드 프로젝트다. 아부다비 본토에서 500m 떨어진 사디야트는 버뮤다의 절반크기로 27㎢의 자연섬이다. 총 공사비 27억달러를 들여 2018년까지 레저, 문화, 주거 삼박자를 갖춘 복합문화주거단지를 건립한다. 특히 7개구역 가운데 하나인 문화구역에는 세계최대 규모의 루브르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이상 2012∼2013년 오픈), 파리 소르본 대학 분교를 유치한다. ●“속도 꽉찬 알토란 도시 될 것” 또 하나는 8개의 섬을 복합휴양단지로 개발하는 데저트 아일랜즈 프로젝트다. 30억달러를 투입해 환경생태학적 개념으로 개발된다. 예컨대 도심으로부터 250㎞ 떨어져 있는 시르 바스 야니 섬은 여러 야생동물과 350만그루가 넘는 나무들로 우거져 있는 점을 고려해 카약과 등반, 하이킹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같은 회사 직원인 마라 칼리드 알 카시미(30)도 “두바이는 최고점에 달했지만 아부다비는 이제 기지개를 켠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도심에서 만난 사미라 요니스 알-가페리(28)는 “두바이가 콘텐츠를 바탕으로 외자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면 아부다비는 풍부한 재산을 지렛대로 한 고품질 전략을 쓰고 있다.”며 “겉만 화려한 두바이보다 속도 알토란 같이 만드는 아부다비의 앞날이 더 유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UAE 원유생산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1인당 GDP가 4만 5000달러로 세계 최고 갑부도시인 아부다비가 형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동생인 두바이의 그늘을 벗어나 세계문화 허브로서 자리매김할 꿈을 차근차근 실현해 가고 있는 것이다. siinjc@seoul.co.kr ■스카이라인 화려한 두바이의 두 얼굴 “부자들 쇼핑의 천국” vs “허상 덩어리… 비싼물가 문제” |두바이 최종찬특파원|두바이 하늘은 모래바람으로 뒤덮여 있었다.5일째 계속되고 있었다. 모래바람은 2월에 잦은데 최근 기상이변으로 6월에도 나타난 것이었다. 두바이도 기상이변을 못 비켜가는 모양이었다. 모래바람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두바이의 스카이라인은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7성급인 버드 알 아랍 호텔의 위용은 간 곳이 없었다. 인간의 기술도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서울의 6배 크기인 두바이 거리는 인공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주요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고급 빌라들은 거의 같은 모양 같은 크기였다. 누가 바벨탑이 될 것인가를 놓고 내기하는 듯한 고층 건물들의 색다른 디자인에서 그런 냄새는 더욱 풍겼다. 두바이는 한낮에 40도를 넘는 폭염 때문에 거리는 한산했다. 폭염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외국인 건축노동자들이었다. 인도나 파키스탄, 서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철근을 박고 콘크리트를 다지고 있었다. 반면 아라비아걸프해에 있는 해변에 가면 수영복을 입은 서양사람들이 파도와 씨름을 하며 다른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두바이 최대 쇼핑물인 에미리트몰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한달동안 계속되는 쇼핑 페스티벌이라는 바겐세일 때문이다. 상점마다 60∼70%를 할인한다는 안내문구가 적혀 있었다. 두바이 현지인들은 돈이 많기 때문에 고가의 물건도 주저없이 산다. 실제로 전통옷을 차려입은 여성이 4000디르함(약 113만원)이 넘는 의류를 수십 벌을 사는 것을 목격했다. 이곳에서 만난 스코틀랜드인 알렉스 데이비드선(60)은 “두바이는 세상 만물의 전시장이며 쇼핑 천국”이라고 말했다. 카타르에서 온 압둘라 알 몬디(40)는 “두바이 쇼핑몰은 중동 부자들의 친목잔치 장소”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두바이가 명성에 걸맞은 곳인가에 대한 견해는 갈렸다. 사막 사파리투어 전문가이드인 아크바드 칸(32)은 “두바이에는 범죄도 없고 사업하기도 좋은 기회의 땅”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반면 부동산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는 호주 출신의 라네사(22)는 “두바이는 문화가 없으며 모든 것이 허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카르푸에서 만난 상사원부인인 정춘희(42)씨는 “두바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와 터무니없이 높은 주택 임대료 등 문제점이 많은데 세계 언론들이 장점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전략문제연구소 미디어국장 “TV·신문 24시간 모니터링 대통령 등 최상부에 보고” |아부다비 최종찬특파원|“매일 아침 세계 주요 뉴스를 스크린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 대통령 등 최상층부 4명에게 보고합니다.” 아부다비 전략문제연구소 모하메드 압둘라 알-알리 미디어국장은 연구소의 중요 역할 하나를 이렇게 밝혔다.1994년 3월14일 설립된 이 연구소는 UAE와 걸프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사회, 경제 이슈와 주제, 발전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를 한다. 그동안 40차례의 국제회의, 강연, 세미나를 개최했다. 연구성과를 담은 570권의 책도 출간했다. 전체직원은 300명이며 그중 70명이 미디어국에서 일한다. 그는 “세계 주요 방송과 라디오를 모니터링한다.”며 “350개 TV채널과 179개 라디오채널을 24시간 모니터링해서 중요뉴스를 취합한다.”고 밝혔다. 이어 “매일 아침 350개 신문도 모니터링해 중요 내용을 간추린다.”고 덧붙였다. 지역정보 수집을 위해 러시아, 중국, 일본 등 14개국에 직원을 상주시키고 있다. 그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취합된 뉴스는 보고서로 만들어져 UAE 중요 인사 800명에게 페이퍼형태로 보내고 동시에 SMS메시지로도 보낸다.”고 강조했다. 상층부의 지시에 따라 여론조사도 가끔 한다는 그는 “한국관련 기사는 영어와 아랍어로 번역된 내용을 취합하며 동시에 한국에 있는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는다.”고 밝혔다. siinjc@seoul.co.kr
  • [깔깔깔]

    ●망치질 값 공장의 복잡한 기계가 멎어버렸다. 엔지니어들이 원인을 규명하려고 기를 쓰고 덤볐으나 허사였다. 전문가를 불러왔다. 그가 기계를 잠시 만지작거리고 나서 망치로 한두 군데를 탁탁 치니 기계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100만원을 청구해 오자 공장장은 입이 딱 벌어졌다. “아니 망치질을 몇 번인가 한 것뿐인데…. 어디 명세서를 뽑아봐요.”전문가는 계산서 아래쪽에 다음과 같이 적어 넣었다. “망치질 값 1000원, 어디를 망치질할 것인가를 알아내는 값 99만 9000원.”●억울합니다. 어떤 남자가 자동차를 훔친 혐의로 경찰서에 잡혀 왔다. “당신 뭐 땜에 남의 차를 훔친 거지?” 그러자 남자는 억울하다는 듯 신경질 적으로 대답했다. “난, 훔친 게 아닙니다. 묘지 앞에 세워져 있기에 임자가 죽은 줄 알았다고요.”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광화문 복원 진두지휘 신응수 대목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광화문 복원 진두지휘 신응수 대목장

    ‘어라, 광화문이 사라졌네!’‘그럼, 언제 다시 나타나지?’ 서울 도심의 한복판, 세종로에 왔다가 광화문이 없어진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이곳을 지날 때면 저절로 고개를 돌려 깜쪽같이 사라진 광화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터이다. 지난 9월28일자 서울신문에는 훈훈한 기사가 단독보도돼 눈길을 끌었다. 광화문 복원을 총지휘할 도편수 자리를 놓고 벌이던 전통 건축분야의 양대 산맥의 한판 승부에 대한 내용이다. 형님뻘인 전흥수(70) 대목장이 신응수(66) 대목장에게 도편수 자리를 아름답게 양보했다는 것이다. 전 대목장은 추석 연휴 직전에 신 대목장과 만나 “우리끼리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가 아니냐.”면서 물러서겠다는 뜻을 알렸다. 신 대목장은 전 대목장의 어려운 결정에 고마움을 표시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전 대목장은 “그 사람(신 대목장)이라면 광화문 복원을 제대로 해낼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로써 광화문 복원공사의 도편수(목수 우두머리) 자리는 신 대목장이 맡게 됐다. ●18년간 경복궁 복원사업 이끌어 신 대목장은 1991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지금까지 18년동안 경복궁 복원사업을 대부분 진두지휘해 왔다. 또한 앞으로 2년동안 광화문 복원까지 맡게 됐으니 천년궁궐 재현의 대역사는 사실상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 경복궁 함화당 복원공사 현장에서 신 대목장을 만났다. 명함을 내밀었더니 돌아온 명함이 특이하다. 근정전 사진 위에 ‘성재(誠齋) 申鷹秀’라고 적혀 있었다. 하늘을 나는 매응(鷹)? 의아해 하자 “향나무 숲에서 매가 날아오르는 어머님 태몽 때문에 매응자로 했고 성재는 경복궁 복원사업 초창기때 한 서예가 선생이 집을 정성스레 잘 지으라며 지어준 호”라고 설명했다. 먼저 전 대목장과 만남에 대한 얘기를 슬쩍 꺼냈더니 “그 분과는 친하게 지내고 있다.(전 대목장은)기능인들이 화합이 잘 안되는데 그러면 되겠느냐고 하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광화문 복원공사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산림청과 문화재청의 도움을 받아 국유림과 사유림 등에서 적합한 목재를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마 동해안쪽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적송)가 선택될 것 같으며 천년궁궐을 짓기 위해서는 좋은 나무가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대들보인 경우 소나무 수령이 300∼400년정도 돼야 한다는 그는 “일제때 좋은 나무들이 마구 남벌돼 나무 구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높이 18m, 직경 70㎝이상의 적송을 찾기가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올 겨울부터 목수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나무를 구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궁궐 복원 공사에는 뭐니뭐니해도 철저한 고증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광화문 복원공사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수 30여명이 투입된다고 밝혔다. 현재 경복궁 복원공사 사업은 모두 5단계 중 4단계를 마친 상태. 이 가운데 광화문 복원사업이 최종단계로 경복궁 재현의 화룡점정인 셈이다. 그가 맡은 경복궁 복원사업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함화당을 비롯해 ‘침전지역’‘동궁지역’‘태원전 권역’‘건청궁’‘근정전’ 등이다. 광화문의 경우 본문 외에 군사방, 수문장청, 영군직소 등이 포함된다.2009년까지 목재만 450만재, 기와 150만장, 비용 1789억원이 투입되며 전각 등 총 93동이 복원되는 대단위 공사다. 신 대목장 개인적으로는 꼬박 20년을 경복궁에서 출퇴근하게 되는데 그 대미를 광화문으로 장식하게 된다. 그는 “문무백관의 조회와 국가의식을 거행했던 근정전은 우리 고건축의 백미”라고 극찬하면서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140년전의 건축기법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고 또한 광화문도 이와 비슷한 건축기법이라고 귀띔했다. 근정전 복원은 2000년부터 3년 10개월 걸렸다. “광화문 복원공사는 예정된 2009년 말 이전에 끝낼 수 있습니다. 목조는 잘 관리만 하면 천년수명이기 때문에 광화문 또한 이제 새로운 천년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지요.” 그는 중졸학력으로 당대 최고의 목수자리까지 올랐다. 올해로 꼭 50년째 목수인생을 맞고 있는 그는 1942년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서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병천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와 신강수 한테 망치질을 배우며 일찍 밥벌이 전선에 뛰어들었다. 말 그대로 먹고 살 수 있는 기술 한가지만 배우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그러다보니 목수들의 양말 세탁 등 온갖 심부름과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들보용은 소나무 수령 300~400년 돼야 그러던 1960년 명인 이광규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이때 봉원사 요사 및 종각 공사에 참여했다. 이듬해에는 스승의 스승 조원재를 만나 남대문 중수 공사에 동참했다. 1965년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오대산 월정사 대웅전, 진주성 촉성문, 서울 숭인동 청룡사 대웅전, 용인 호암장 신축 공사 등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대목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1975년 수원성 장안문 복원공사 때에는 도편수로 독립하면서 1983년까지 밀양군 무안면 홍제사 법당, 서울 삼청동 총리공간, 서울 필동 한국의 집, 경주 안압지 1∼3건물, 단양 구인사 사천왕문, 부여 삼충사 영당 및 내외삼문, 울산 동축사 대웅전 및 산신각, 유성 현충원 현충문, 부여 무량사 극락전 보수 공사 등을 맡으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중졸 학력으로 50년째 목수… 당대 최고 도편수 자리에 1982년 청와대 영빈관인 상춘재를 신축할 때 도편수를 맡았다. 한겨울에 30여명의 목수들과 함께 새벽 여섯시에 청와대로 출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상춘재는 4개월 만에 완공됐다. 이와 관련 “아마 가장 빨리 지은 한옥이 아니겠느냐.”고 술회했다. 이 같은 인연이 있어서인지 1989년 청와대 대통령관저의 신축공사까지 맡게 된다. 그는 평소 “좋은 적송을 구하는 사람이 좋은 건축을 하는 것”이라고 늘 주장해왔다.1980년대 초반 강원도의 적송 많은 산 50만 평이 매물로 나오자 주저 없이 사들여 좋은 재료를 현장에 공급하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바탕이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인 경복궁 보수공사의 도편수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복궁 복원공사가 다 마무리되면 평소의 꿈인 우리나라 전통건축 박물관을 지을 예정이다. 슬하에 2남3녀를 두었으며 큰아들이 목재소를 운영하면서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신 대목장은 우리나라 고건축의 대가인 조원재, 이광규로 이어지는 대목장 계보를 잇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42년 충북 청원 출생 ▲58년 충남 병천중학교 졸업 ▲58∼60년 신강수, 박광석 문하에서 한옥 주택 신축 공사 ▲75∼78년 수원성곽 장안물, 창용문 복원 공사(도편수 신응수) ▲79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신축 공사 ▲82∼83년 청와대 상춘재 신축 공사 ▲88년 경복궁 만춘전 복원 공사 ▲89∼90년 청와대 대통령관저 신축 공사 ▲91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 74호 대목장 보유자 ▲91∼95년 경복궁 침전지역 복원 공사(강녕전, 교태전, 경성전, 연생전, 웅지당, 연길당, 함원전, 흠경각, 동서행각, 건순각, 양의문, 함흥각 등) ▲96∼98년 경복궁 동궁지역 자선당, 비현각, 회랑 복원 공사 ▲97∼99년 경복궁 자경전, 창덕궁 돈화문 보수 공사, 경복궁 경회루 보수 공사 ▲97∼2001년 경복궁 흥례문 권역 복원 공사(흥례문, 유화문 및 화랑) ▲2000∼04년 창덕궁 규장각 옥당, 약방, 영의사, 검서청, 양지당, 봉모당 복원 공사, 경복궁 근정전 보수공사 ▲04∼현재 경복궁 건청궁(장안당, 곤녕합, 복수당 外 13동) 복원공사 # 수상 만해예술상 수상(99년), 옥관문화훈장(2002년) 등 # 주요 저서 ‘천년 궁궐을 짓는다’‘목수’‘경복궁 근정전’ 등
  • 英 노숙자 32억대 그림에 망치질

    英 노숙자 32억대 그림에 망치질

    영국의 박물관에 걸린 32억원짜리 18세기 그림이 느닷없이 박물관에 뛰어든 노숙자가 함부로 망치질을 하는 바람에 망가졌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 인터넷판은 10일 마크 패튼(44)이란 노숙자가 최근 영국 국립초상화박물관에 전시된 시가 170만파운드(약 32억원)짜리 유화를 망치로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패튼은 폐관시간 직전 박물관 보안요원들이 관람객을 퇴장시키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황을 틈타 가방에 망치를 숨기고 들어와 초상화를 여러 차례 내리쳤다. 망가진 그림은 영국 미술계의 거장인 조슈아 레이놀즈(1723∼1792)가 1775년 동시대 시인 겸 평론가인 새뮤얼 존슨을 그린 초상화다.‘눈을 가늘게 뜬 샘(새뮤얼의 애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림이 망치 세례를 받으면서 캔버스가 뚫리는 등 심각하게 훼손됐고, 현재 복원작업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박물관측의 설명이다. 패튼의 범행 동기와 존슨의 작품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초상화박물관은 런던 폭탄테러 미수사건 뒤 관람객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등 안전조치를 시행하다가 최근 이를 중단해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품 훼손사건은 과거에도 종종 발생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지난달엔 프랑스에서 한 여성 관람객이 100만파운드(약 18억원)에 이르는 미국의 작가 사이 툼블리의 작품에 키스를 해 립스틱을 묻혀 훼손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출신 예술가라는 이 여성은 키스 자국을 남긴 이유를 묻자 “예술에 대한 열정을 이기지 못해서”라며 “작가가 남겨놓은 하얀 캔버스에 찍힌 붉은 립스틱은 예술의 힘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제주 ‘三無 전통’ 되살린다

    제주 ‘三無 전통’ 되살린다

    ‘대문 없던 때가 살기 좋았어요.’ 26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 마을. 장석진(48) 이장은 굳게 닫혀 있던 자신의 집 철제 대문 두 짝을 떼내기 시작했다. 망치질 몇 번에 집 안과 밖을 가로막고 있던 철제대문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은 “옛날처럼 이웃간에 믿고 살아야지요. 우리집도 곧 대문을 떼낼 겁니다.”라며 박수를 보냈다. 400여명의 주민이 도란도란 모여 농사를 짓고 사는 제주의 한 시골마을이 예부터 대문, 도둑, 거지가 없다고 해 붙여진 제주의 ‘삼무(三無)정신’을 되살리자고 나선 것이다. 예로부터 제주 사람은 근면, 절약, 상부상조를 미덕으로 삼아, 도적질을 하거나 구걸을 하지 않고 집에 대문도 없이 살았다. 집 입구 정주석에 집주인의 외출 등을 알리는 ‘정낭’이란 긴 나무를 걸쳐 두면 그만이었다. 상명리 주민들은 3월부터 사라진 삼무를 되살리고 옛 정취가 물씬 나는 가장 제주다운 마을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130가구 중 120가구가 대문을 없애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이달 말까지 56가구를 대상으로 대문 철거 작업을 우선 실시하고 10월까지 마을의 대문을 모두 없앤다. 장 이장은 “처음에는 멀쩡한 대문을 떼내자는 데 다들 반대했다.”고 말했다. 한림읍도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 정주석과 정낭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 40만원을 가구마다 지원하기로 했다. 강영호 한림읍장은 “주민들이 어려운 결정을 했다.”면서 “앞으로 상명리 대문 없는 마을을 관광자원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람, 돌, 여자가 많다고 해 붙여진 삼다도(三多島)라는 제주의 별칭은 올 연말쯤에는 옛말이 될 전망이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자장커 신작 ‘스틸 라이프’

    자장커의 2006년작 ‘스틸 라이프’의 원제는 ‘세 협곡의 좋은 사람(三峽好人)’. 그 제목이 사람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어제목 ‘스틸 라이프(Still life)’는 정물화 같은 전체적인 풍경을 암시한다. 영화에는 이 두 가지 성격이 함께 조합돼 있다.‘복잡한 인간사가 이다지도 고요히 그려질 수 있다니….’ 영화 마디마디 그런 탄복이 절로 배어나오는 작품이다. 영화는 댐 속으로 곧 사라지고 말 도시, 중국의 ‘싼샤’를 배경으로 한다. 중국의 싼샤댐은 지난해 양쯔강 중상류에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의 댐. 잊혀질만 하면 신문 국제면을 장식하곤 한다. 이곳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때, 한 남자와 여자가 당도한다. 남자는 16년 전 자신을 떠난 아내를 찾기 위해 들어왔고, 여자는 2년 전 일하러 떠난 뒤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온 것이다. 둘은 영화 속에서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다만 관객으로 하여금 둘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도록 하는 감정선을 연출할 뿐이다. 인간이란 죽지 않는 한 만나게 되는 법. 중요한 건 만남이 아니다.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파괴하는 도시 싼샤. 수십층 건물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돌벽이 망치질 아래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런 가운데 천진난만했던 소년마저 처참한 죽음을 당하는 이 도시는 그래서인지 늘 정적이 죽음처럼 깔린다. 하지만 이런 무지막지한 행태가 거꾸로 깨달음을 안겨준 것일까. 남자는 아내를 만나 재결합을 제안하고, 여자는 남편에 대한 미련을 접고 새 반려자를 향해 걸어간다. 자장커는 전작 ‘세계(2004)’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희미하게나마 삶의 희망을 남겨둔다. 그가 희망을 제시하는 방식은 마치 동양화에서 난의 마지막 잎을 치듯 아스라하면서도 명징하다. 자장커는 싼샤의 노동자들을 그리는 화가를 다큐(‘동’,2006)에 담기 위해 싼샤에 왔다가 극영화 ‘스틸 라이프’까지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소무’‘플랫폼’ 등 그의 작품은 중국 사회의 변모를 처연하리만치 차분하고 예리하게 잡아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스틸 라이프’는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14일 개봉 예정.12세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이색거리 탐방] 중구 신당1동 대장간 거리

    [이색거리 탐방] 중구 신당1동 대장간 거리

    4일 중구 신당1동 한양공고 인근의 쌍림공작소. 서울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중 한 곳이다. 탕, 탕, 탕…. 임병희(77) 할아버지의 망치질 소리가 적막한 대장간을 울리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망치질 소리에 가게를 기웃거리다가 이내 가던 걸음을 서두른다. “우리가 마지막이야. 내 대에서 대장간 일이 끝나겠지.(대장간 일을)배우려는 사람도 없고, 누가 이런 험한 일을 하려고 하겠어.” 한국전쟁 이후 이곳에 터를 잡아 60년 대장장이로 살아온 임 할아버지가 내뱉은 독백이다. 한때 ‘대장장이 마을’으로 불렸던 중구 쌍림동 ‘대장고개’. 일제시대 때에는 쌍림동∼충무로5가 고개에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100곳이 넘는 대장간이 고개 언저리 좌우로 늘어서서 대장고개, 혹은 ‘풀무질고개’로 불렸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광희문 끝자락에 10여곳만이 남아 옛 영화의 흔적만을 보여주고 있다. 남아 있는 대장간들도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달라진 모습을 드러낸다. 시설이 기계식으로 바뀌어 ‘손품’은 덜 들어 보이지만 예전에 봤던 대장간과는 꽤 거리가 있다. 간판 이름도 대장간이 아니라 철공소다. 대장간 하면 당연히 있어야 할 ‘풀무’가 없다. 풀무는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다. 손으로 돌리는 손풀무와 발로 밟아 바람을 일으키는 발풀무가 있다. 지금은 전동기로 불을 피운다. 그나마 지핀 불을 담는 화덕만이 대장간 분위기를 풍긴다. 임 할아버지는 “전통적 대장간이 사라진지 오래됐다.”면서 “덕분에 힘든 일은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우진철공소 관계자는 “30년 전에는 10㎏짜리 망치로 13시간 이상 일을 했다.”면서 “요즘 그렇게 일하면 미친 소리 듣겠지만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고 했다. 대장간에서 주로 생산하는 것은 농기구나 건축 도구, 문고리 등의 간단한 수제품들이다. 예전보다 제품 수는 대폭 줄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이곳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나마 수제를 찾는 단골 손님들 덕분에 명맥을 유지한다고 한다. 이곳 대장장이의 평균 연령은 60대. 가장 젊은(?) 대장장이가 50대 후반.30년 이상 망치질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다. 망치질도 리듬을 탄다. 다들 후계자가 없어 ‘1인 사장’이다. 직원이자 사장인 셈이다. 대장간과의 인연도 갖가지다. 임 할아버지처럼 한국전쟁으로 흘러들어온 이가 있는가 하면 대장간 일이 싫어 뛰쳐나갔다가 배운 게 이 짓이라서 결국 다시 돌아온 이도 있다. 광주철공소 관계자는 “어쩔 수 없는 거고, 다 운명이지. 그래도 밥 빌어먹지 않고 살려면 이 짓이라도 해야지.”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망치질로 자식 4명의 대학 공부와 결혼을 시켰다는 임 할아버지는 “대장간 일로 60년간 입에 풀칠했으니 서운한 것도 아쉬운 것도 없지만 대장간 일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허전하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드라마 ‘열아홉 순정’ 옥금역 배우 김미경

    드라마 ‘열아홉 순정’ 옥금역 배우 김미경

    “드라마속 엄마도 사람인데 화내고 질투하고 악악거리며 싸우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고무줄 바지를 입고 시아버지와 시동생들,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는 엄마가 있다. 언뜻 생각하면 헌신적이고 지고지순할 것 같은데, 행동이나 말투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청률 40%를 돌파한 KBS 1TV 인기 일일드라마 ‘열아홉 순정’에서 배우 김미경(44)이 열연하는 대가족 며느리이자 엄마인 옥금 역. 너무나 현실적인 우리네 엄마 모습 그 자체다. 1985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이래 91년 드라마 ‘카이스트’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시청자들과 만나온 그를 경기도 일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후배들과 함께 연기를 이야기하고 대본을 읽는 등 작업실로 쓴다는 그곳에서 2시간여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베테랑 배우의 연기관과 꿈을 들어봤다. ●“엄마들 응원에 힘 얻어요.” ‘…순정’에서 그가 연기하는 옥금은 극중 유일하게 누구한테나 화를 내고 툴툴거리는,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고교 동창이 시어머니가 돼 시부모와 부딪치고, 원치 않는 며느리를 얻어 못마땅해 하는 등 가족들과 하루도 쉬지 않고 갈등을 겪는다. 그가 툭 던지는 대사와 행동 모두가 그를 대가족의 피곤한 며느리이자 엄마로 만들어 버린다. “드라마속 엄마는 부잣집 철없는 엄마거나 지고지순한 캐릭터가 많은데, 진짜 엄마의 모습을 연기하고 싶었어요. 여자가 아닌 엄마로서 느끼고 받아들이는 최대한을 표현하려 하지만 아직도 60%정도만 보여주는 것 같아요.” 가족을 아우르는 비중있는 역할인 만큼 연기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지만, 사실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는 고민도 많았다고. “대본을 받아 보니 매일 싸우는, 웃을 일이 없는 역할이더라고요. 옥금처럼 우울한 모습으로 변할까봐 걱정이에요(웃음). 특히 여자들끼리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거나 고민하며 드러눕는 모습 등은 실제 제 성격과 너무 달라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지요.” 젊은 시청자들은 “신세대 며느리를 괴롭히는, 골치 아프고 고리타분한 엄마”라며 싫어하지만 엄마들 사이에서는 인기 최고이다. 그는 “엄마 시청자들은 같은 엄마 입장에서 지지해 주고,‘더 세게 나가라.’며 응원도 해줘요. 제 속에 있는 옥금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더 끄집어 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극중 커플들의 다소 비현실적인 사랑에 대해 그는 “사랑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그들의 감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원수 같은 고교 동창을 결국 시어머니로 받아들인 옥금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며 웃었다. ●‘태왕사신기’에서 대장장이로 그는 내년 상반기 방송 예정인 송지나·김종학 콤비의 MBC 역사드라마 ‘태왕사신기’를 통해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한다. 광개토대왕(배용준 분)에게 최고의 갑옷을 만들어 주는, 세상에서 무서울 것 없는 대장장이 바손 역을 맡아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연극을 하면서 친분을 쌓은 송지나 작가의 작품에만 4번째 출연이다. “송 작가는 참 매서운 사람이에요. 새로운 배우를 발굴할 줄 알죠.‘카이스트’ 출연 이후 서로 신뢰감이 생겼고, 이번 역할도 제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글을 써주고 있어요.” 그러나 베테랑인 그도 사극 촬영은 힘들다고 털어놨다. 제주도와 부여·나주·완도·익산 등지를 돌며 하루 종일 산속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밤새 망치질을 하며 바손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내년 초까지 드라마 촬영으로 바쁘게 보낼 것 같다는 그는 연극 공연의 꿈도 접지 않았다고 했다. “연극이든 드라마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노골적인 리얼리즘을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감추거나 걸러내지 않고 실생활을 그대로 보여 주는 작품 말이죠. 드라마 출연 이후 틈틈이 습작한 글이 7편이 됐는데, 이들 중 몇편이 리얼리즘 드라마로 탄생할 날이 올지 모르겠어요.(웃음)” 글 사진 일산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서울의 마지막 ‘모팔모 야장’ 박경원씨 부자

    서울의 마지막 ‘모팔모 야장’ 박경원씨 부자

    “땅, 땅, 땅.” 화덕을 응시하던 백발의 노인이 벌겋게 달구어진 길다란 쇠막대를 집어 든다. 능숙한 솜씨로 구부리고 망치질하기를 몇번, 곧 손잡이가 생기고 집게가 모양을 드러낸다.“작지만 직접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 연탄집게나 곡괭이 같은 것이 제일 어려워. 쇠도 때릴수록 손맛이 나거든. 이렇게 손으로 모양을 만드는 연장들은 쓰는 사람 손에도 착착 감기지.” 시간을 몇십년 되돌리기라도 한 듯 옛 대장간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 시외버스터미널 뒤쪽에 자리잡은 불광대장간.50년이 넘도록 대장 일을 하고 있는 박경원(68)씨가 19일에도 불과 쇠를 다루는 일터이다. ●젊은이들 3D 기피 제자가 없어 세평 남짓한 허름한 대장간에는 기계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쇠를 화덕에 넣어 달군 뒤 뽑아서 모루에 놓고 망치질을 하는 전통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가 처음 대장간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 전쟁 당시 피란을 갔을 때였다. 고작 열네살이었던 박씨는 대장간에서 낫자루를 자르는 허드렛일을 해주면서 주린 배를 채웠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인 강원도 철원으로 돌아갔지만 농사가 잘 되지 않아 1년 만에 서울로 올라와 미아리고개 근처에 있는 대장간에 막내로 들어갔다. 화덕에 들어 있는 칼을 보다 졸아서 칼이 다 녹아버리면 스승의 손에 들려 있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았다. 그렇게 울면서 어깨 너머로 조금씩 일을 배웠다. 몇년 뒤 대장간이 모여 있는 을지로로 간 박씨는 그곳의 대장간에서 솜씨를 인정받게 된다. 다른 대장장이 선배들에게 술을 사주며 기술을 연마했다. 처음 풀무질을 시작한 지 12년 만이었다.40∼50대에나 망치를 집을 수 있는 대장장이 세계에서는 신동으로 대접받은 셈이었다. 당시 박씨가 받았던 월급은 1400원. 신발 한 켤레가 바로 1400원인 시절에 그것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박씨는 곧 독립을 하게 됐다. 왕십리 중앙시장에서 허름한 리어카를 사서 꾸미고 진흙으로 화덕을 만들어 싣고 다니며 망치질을 했다. 장마철이라도 되면 한달 장사를 공치기 일쑤였지만, 부인까지 나서 대장일을 도운 끝에 불광동에 대장간을 차리게 됐다. 지금은 전만큼 대장간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과도 하나라도 써본 손님은 꼭 다시 찾아온다. 돌을 다루는 석공이나 연탄 배달부도 연장이 손에 꼭 맞는다며 단골로 애용하는 집이다. 요새는 주말농장을 가꾸는 주부들이 호미를 사가기도 하고, 벌초 철에는 가위도 잘 팔린다. 지금 내놓고 파는 연장은 칼과 망치 등 50여가지 정도이지만, 구석구석에 만들어 놓은 ‘작품’들은 수천가지에 이른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쇠를 만지는 박씨에게 제자는 없다. 요즘 세상에 힘든 불일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칼·망치등 50여가지 연장팔아 대신 아들 상범(37)씨가 아버지를 도와 가업을 잇고 있다. 전통방식대로만 쇠를 다루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수백번 때려서 조직을 촘촘하고 치밀하게 만든 쇠와 거푸집에서 그냥 찍어내는 쇠가 어떻게 같겠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요새는 박씨 부자에게 지역축제에서 망치질을 보여 달라는 주문도 부쩍 많아졌다. 하지만 그건 절대 대장장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 박씨의 지론. “나는 사람이 쓰는 연장을 만드는 대장장이야. 시대가 바뀌면 연장도 따라 바뀌는 것이지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바뀌는 연장을 계속 만들어야지.” 잠시 쉬면서 기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박씨 부자는 화덕에 넣어 놓은 쇠가 알맞게 익었다며 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란히 망치와 집게를 잡고 쇠를 뽑는 부자의 뒷모습에서 화덕만큼이나 뜨거운 ‘얼’이 엿보였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거리 미술관 속으로] (1) 해머링 맨

    [거리 미술관 속으로] (1) 해머링 맨

    서울 시내 곳곳에 설치된 거리 예술품이 3000여점이 넘는다는 사실을 아시나요?게다가 서울시에서 올해 말부터 예술성 높은 작품을 매년 수십∼수백여점씩 거리에 설치한다고 하네요. 서울 도심이 거대한 미술관이 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알면 알수록, 아는 만큼 재미있는 거리 예술의 세계에 초대합니다. 거리 미술관은 주1회(수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종로구 신문로를 지나다 보면 자연스레 시야에 들어오는 조형물이 있다. 흥국생명 본사 건물 곁에 자리한 ‘해머링 맨(망치질하는 사람)’이다. 우선 육중한 몸집에 시선이 압도되고, 사람을 형상화한 몸짓에 눈길이 끌린다. 이 검은 거인은 미국 작가 조너선 보롭스키의 작품이다. 브롭스키는 해머링 맨을 통해 일하는 근로자와 노동의 신성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망치를 내려치는 해머링 맨은 종종걸음을 치는 우리들의 모습인 셈이다. 해머링 맨은 1979년 뉴욕의 폴라 쿠퍼 갤러리에서 첫 선을 보인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스위스 바젤, 미국 시애틀, 댈러스 등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은 해머링 맨이 설치된 세계 7번째 도시다. 각국의 해머링 맨들은 이름은 같지만 일란성 쌍둥이들은 아니다.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나이 순으로는 서울의 해머링 맨이 막내지만 몸무게는 단연 1등이다. 키가 22m에 무게가 무려 50t이나 나간다고 한다. 그렇다고 덩치만 큰 거인으로 얕보면 안 된다. 효율성도 갖췄다. 서울의 해머링 맨은 50초에 한 번씩 팔을 움직여 망치질을 하는데 그 속도가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그런데도 관리·운영비는 가장 저렴하게 든다고 한다. 다른 나라 해머링 맨들의 구동시스템이 팔에 달려 있는데 비해 서울의 해머링맨은 발바닥에 설치돼 있어 관리가 훨씬 용이하다고 한다. 우리의 해머링 맨을 자세히 보면 유독 울퉁불퉁한 측면 굴곡이 눈에 띈다.2002년 당시 해머링 맨 설치를 총괄했던 허정민 흥국생명 홍보팀장은 “우리나라를 방문한 작가가 남북 분단 상황을 주목해 지정학적으로 굴곡진 우리 현실을 몸의 굴곡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국이 하수상한 요즘 해머링 맨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생활의 지혜] 나무에 수월하게 못박기

    망치질이 미숙하여 못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면 못에다 기름이나 비누를 한번 칠해 보자. 미끌미끌해진 못이 신기할 정도로 잘 박힌다.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7)천년의 삶을 이어온 고도, 모로코의 페스

    [이슬람 문명과 도시] (17)천년의 삶을 이어온 고도, 모로코의 페스

    페스(Fes)는 1200여년 동안의 세월을 거슬러,809년에 도시가 건설될 당시 옛 삶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페스는 흔히 ‘시간이 멈춰버린 중세의 도시’라고 불리는데, 그만큼 중세시대 도시의 원형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던 90년대나 귀국 뒤 연구차 몇 번이나 다시 방문했을 때나, 페스는 언제나 변함없이 천년 고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었다. 동시에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치열하고 뜨거운 삶을 살아온 페스 사람들의 숨소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시 찾은 8월에도 페스는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겨 주었다. 오늘날 페스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뉜다. 신시가지는 프랑스 식민지배 아래 프랑스인이 건설한 현대식 구역인 반면,‘페스 알 발리’라 불리는 구시가는 중세에 건설된 오래된 구역이다. 페스의 구시가는 거미줄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이 무려 300㎞ 이상 펼쳐져 미로를 이루고, 이 안에는 모스크, 쿠란 학교, 아랍전통시장 수크,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연 염색장 등이 몰려 있다. 이곳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지어졌고 그 뒤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먼저 구시가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페스 성벽의 언덕에 올라 구시가의 두 구역, 안달루스와 카라윈 구역을 내려다 봤다. 스페인 안달루스에 살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주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페스에 안달루스 구역을 만들었고, 이곳에 자신들이 가진 모든 예술적 재능을 쏟아 부어 페스의 건축물들을 그리도 아름답게 장식했다. 또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위한 아랍인들의 열정은 튀니지 카이로완을 떠나 이곳 페스로 향하게 했고, 그들은 이곳에 카라윈 구역을 만들었다. 카라윈 구역에다 많은 모스크와 쿠란 학교를 지어 이슬람을 전파했다. 특히 카라윈 모스크와 카라윈 이슬람 신학교는 페스를 북아프리카 이슬람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구시가에 들어서자 시간은 갑자기 멈추어 버린 듯 중세로 되돌아 갔다. 안내자 없이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처럼 얽힌 길, 그 길은 폭이 두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다. 이 골목은 온갖 것들로 가득차 있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당나귀들, 끊임없이 소리치는 상인들의 목소리, 가죽제품 상점들마다 풍겨나는 양가죽 냄새들, 골목마다 들려오는 아이들의 쿠란 읽는 우렁찬 목소리, 예배시간을 알리는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아잔 소리들, 찻집에서 풍기는 아랍 커피와 박하 차의 향기, 대장간과 그릇가게에서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 이 풍경은 바로 중세 이슬람 최고의 문명도시였던 페스의 옛 모습 그대로이리라. 이러한 살아 있는 중세 모습은 유네스코의 관심을 끌었고,1981년 일찌감치 페스의 구시가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를 계기로 페스는 단지 모로코뿐만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유산임을 인정받았다. 지금 모로코와 유네스코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페스를 중세의 도시원형 그대로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페스 알 발리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앙에 위치한 이드리스 2세의 사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드리스 2세는 모로코 최초의 이슬람 왕국 이드리스왕조(789∼926)를 건설한 이드리스 1세의 후계자이다. 페스를 왕국의 수도로 정한 뒤 도시의 원형을 완성한 사람이다. 그래서 모로코 사람들은 그를 페스의 ‘수호성인’으로 기리며 ‘자위야’라는 사당과 모스크를 지어 바쳤다. 그 다음 발길이 닿은 곳은 온통 푸른 기와로 뒤덮여 있는 카라윈 모스크. 북아프리카 이슬람의 중심지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슬람‘대학’으로써 더 의미 깊고 유명한 곳이다. 튀니지의 자이툰 대학, 이집트의 알아즈하르 대학과 함께 10세기에 건설된 세계 최초의 대학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14세기 카라윈대학의 도서관은 3만권의 장서와 1만 필의 필사본 두루마리를 소장하고 있었을 정도라 하니 가히 최고(最古)에 걸맞은 규모이자, 학문의 중심지다운 규모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역사가 ‘이븐 칼둔’이 이곳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철학자 ‘이븐 루쉬드’도 여기서 사색에 잠겼다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을 따라 온갖 상점과 건물을 구경하며 중세에 빠져들 무렵, 갑자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 생각났다. 어릴 적 읽었던 그 책에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왜 도적 두목이 알리바바 집 대문에 표시해서 알리바바가 눈치 채게 했냐는 것이다. 머릿속에 기억해 뒀다가 밤에 몰래 습격하면 그만인데. 그런데 이 페스의 골목을 한번이라도 둘러본다면 이 의문은 금세 우스운 것이 되고 만다. 좁디 좁은데다 얽히고 설킨 골목은 모두가 비슷한 형태고, 골목을 끼고 있는 그 수많은 집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한 크기와 모양인데다, 대문마저도 생김새가 거의 똑같다. 아무리 눈썰미 좋은 도적 두목이라 해도 밤에 몰래 찾으려면 대문에다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직접 보고 겪고 느끼지 않는 한 다른 세계와 문화에 대한 이해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페스의 좁은 골목길에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골목마다 퍼져 나오는 가죽 냄새를 따라 가니 과연 온갖 가죽제품을 진열해둔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한 가게로 들어가니 한쪽에는 가죽제품이 진열되어 있고 다른 쪽에서는 가죽 손질이 한창이었다. 좁은 통로를 따라 테라스에 오르니 수백 개의 통에 여러 색으로 천연 염색하는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염색과정은 중세에 해왔던 방식 그대로, 모두 일일이 사람의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다. 양이나 염소 가죽들이 숙련공들의 능숙한 손길을 따라 형형색색의 가죽들로 바뀌고 염색된 가죽들은 건물의 벽과 지붕과 바닥에 빼곡히 널려 건조되고 있었다. 이 일련의 과정으로 풍기는 냄새는 페스의 구시가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래서 ‘페스의 냄새’라 불린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 냄새를 피하려 건너편 테라스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박하 잎을 코에다 대고 있다. 그러면서도 염색하는 광경에 대한 호기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목을 길게 빼고는 이쪽을 건너다 본다. 눈은 경이로움을 좇고 코는 냄새를 피하려는 이런 모습은 어쩌면 이렇게 우리 인간의 이중성과 닮았던가. 안내하던 모로코 대학생은 이런 말을 건넸다.“페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한 부류는 너무 아름다운 페스의 모습과 중세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페스 사람들의 진지한 삶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페스를 가득 채운 가죽염색의 역겨운 냄새와 양고기 굽는 자욱한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이들은 페스가 너무 지저분한 도시라고 비난하면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얘기하죠.” 우리는 과연 어느 쪽인가. 세계는 한 가족이라는 세계화 시대, 우리는 과연 이들을 얼마나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남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일까. 페스를 방문하고 떠나던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4) 빙그레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4) 빙그레

    “집을 지으려면 아귀가 맞아야 하잖아요. 위원장, 아귀가 잘 맞게 협조해 주세요.”(정수용 빙그레 사장) “사장님, 못질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힘을 빼고 리듬을 타세요.”(허성수 노조 위원장) 지난 2004년 8월 초 ‘사랑의 집짓기 운동’이 펼쳐진 몽골 수흐바트르지역. 흰색 안전모와 장갑을 낀 정 사장과 허 위원장이 새벽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뚝딱뚝딱 망치질을 했다. 뼈대만 있던 집이 이들의 못질, 톱질을 거치면서 벽면이 완성되고 지붕이 덮였다. 노사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노조 협력 유도 ‘스킨십 경영´ 효과 바나나맛 우유, 요플레, 투게더, 더위사냥…. 빙그레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들이다. 이런 대박 상품들은 노사 화합에서 나왔다. 정 사장은 “노조의 헌신적인 협력이 있었기에 히트 상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며 공(功)을 모두 노조에 돌렸다.1987년 이후 19년째 ‘무분규’를 이어가고 있는 빙그레를 찾았다. 한여름 뙤약볕 열기가 후끈한 지난 9일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빙그레 도농공장. 공장에 들어서자 달큼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게 했다.‘더위사냥’과 ‘투게더’ 등의 원료가 섞인 냄새였다.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허 노조 위원장은 검게 그을린 얼굴에 머리가 밤송이처럼 자라 있었다. 굳센 ‘투사’의 이미지였다. 지난 1일 타결된 올해 임금협상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줬다. 임금 협상은 지난 6월 초 시작됐다. 몇 차례의 교섭이 진행됐지만 노사는 평행선이었다. 허 위원장이 삭발을 하면서 교섭 분위기가 험악했다.‘살벌한’ 교섭이 몇 차례 더 진행됐다. 하지만 ‘파국만은 막자.’는 것이 노사간의 속내였다. 밀고 당기기를 몇 차례, 큰 어려움 없이 5.8% 임금 인상에 합의 도장을 찍었다. 허 위원장은 “아무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수년 동안 순간순간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결과”라고 전했다. ●86년 파업때 영업망 완전붕괴 교훈 19년 무분규 역사를 쓰고 있는 빙그레의 노조는 약하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1976년 노조 설립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파업이 86년에 있었다. 강동원 노조 부위원장은 “당시 3일간의 파업으로 전국의 영업망이 완전히 붕괴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붕괴된 영업망을 정상궤도에 올리는 데는 무려 2년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노조는 당시 파업 피해를 실감했다. 파국을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때 형성됐다. 그래도 2000년 이전에는 교섭기간이 5∼6개월이나 걸렸다. 회사도 순탄치만은 않았다.1992년 한화그룹에서 분리·독립할 당시 부채비율은 무려 4183%에 달했다. 부채비율이 낮아지나 싶더니 98년 IMF가 덮쳤다. 회사가 존망의 기로에 섰다. 부채 비율이 350%에 달했을 때 노조가 앞장서 상여금을 반납했다. 이에 회사도 월급을 제 날짜에 꼬박꼬박 맞췄다.2003년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던 라면 사업을 철수했다. 다행히 2004년 말 부채가 53.7%로 떨어졌다.92년 3000여명에 이르던 인력도 1700여명으로 줄였다. 드디어 지난해에는 5424억원의 매출에 387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독립경영 10여년 만에 식품업계의 ‘작은 거인’으로 거듭났다는 평을 받았다. 환골탈태에는 노조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다. 노조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회사는 ‘열린 경영’과 ‘스킨십 경영’을 들고 나왔다. 빙그레는 도농(남양주)·김해·광주(경기도)·논산에 사업장이 흩어져 있지만 단일 노조를 갖고 있다. 본사 노조는 도농공장에 있다. 사업장별로 특성이 달라 쟁점도 다르다. 협의회 의결사항은 게시판과 전자메일로 전직원들에게 알려준다. 또 회사는 노조에게 생산, 영업 및 수금 등의 경영정보를 경영진과 똑같이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라면 사업을 철수할 때도 노사가 수개월간 머리를 맞댔다.‘구조조정=노사갈등’이란 싸움의 등식이 깨진 이유다. ●92년 한화서 분리 10여년만에 제자리 또 노사는 사업장마다 두달에 한번씩 산행을 한다. 윤정용 도농공장장은 “몸으로 부딪치는 스킨십이 있어야 노사가 서로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10월이면 노사가 함께 마라톤도 한다. 허 위원장은 “자주 부딪치다 보니 사무직과 영업직의 고충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2001년 김호연 회장이 시작했던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도 노사가 해마다 함께 참여하고 있다. 허 위원장은 “사회 봉사활동을 하니 뿌듯하고 회사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빙그레라는 ‘큰 집’을 짓는 노사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남양주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3父子 3년째 ‘사랑의 집짓기’

    4일 오후 전북 군산시 개정면 통사리에 건축중인 ‘사랑의 집’ 현장. 서하은(20·대학생), 성은(18·고교생)군이 폭염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망치질을 하고 있다. 이들은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아버지 서시윤(49·회사원)씨와 3일부터 5일까지 휴가봉사에 나섰다. 하은군은 2004년 온 가족이 천안에서 열린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자원봉사에 처음 참여한 것을 계기로 대입 수험준비에 바빴던 지난해에도, 대학에서 처음 맞이한 올해 방학에도 군산으로 달려왔다. 그는 “난생 처음 막노동을 했지만 힘들게 지은 집에 어려운 이웃이 들어가 산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제법 숙련됐다.’는 칭찬까지 받아 형제는 허드렛일도 일도 마다하지 않고 집짓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 형제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생각”이라며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꼭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라파즈석고보드 울산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시윤씨 역시 달콤한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아들들과 함께 해비타트에 자원했다. 그는 “날씨가 너무 더워 힘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많은 대화를 하며 부대끼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 YMCA의 장애인을 위한 차량이동 자원봉사를 5년째 해오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어머니(48)는 회사일이 바빠 올해는 동참하지 못했단다. 이달 완공 예정인 통사리 문화마을 사랑의 집에는 군산지역 저소득 무주택자 8가구가 입주한다.군산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깔깔깔]

    ●노하우 공장의 기계가 멎어버렸다. 엔지니어들이 원인을 규명하려고 기를 쓰고 덤볐으나 허사였다. 수소문해 전문가를 불렀다. 그가 기계를 잠시 만지작거리고 망치로 한두 군데를 탁탁 치니 기계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전문가가 수리비로 100만원을 청구해오자 공장장은 입이 딱 벌어졌다. “아니 망치질을 몇 번 한 것뿐인데…. 어디 명세서를 뽑아봐요.” 전문가는 계산서 아래쪽에 다음과 같이 적어 넣었다. “망치질값 1000원, 어디를 망치질할 것인가 알아내는 값 99만 9000원.”●물과 술 어느 주정뱅이가 금주론자 앞에서 물이 술보다 훨씬 해롭다며 열변을 토했다. 금주론자가 너무 어이가 없어 증거를 들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주정뱅이가 말하길, “내 말을 못 믿겠거든 우선 홍수를 생각해보라고!”
  • [코드로 읽는책] 아름다운 노년/지미 카터 지음

    ‘가장 성공적인 전직 대통령, 대통령을 거치지 말고 바로 전직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았을 사람, 대통령 일보다는 목수 일을 더 잘하는 사람….’ 제39대 미국 대통령인 지미 카터가 자신에 대해 내린 솔직한 평가다. 실제 그는 대통령으로 일할 때보다 은퇴한 뒤 더 다양하면서도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해내고 있다. 백악관을 떠난 뒤 부인 로절린과 함께 카터 센터를 설립해 국제적 분쟁지역을 돌며 평화의 사절로 활동하기도 하고,‘사랑의 집짓기’운동에 참여하는 등 대통령의 ‘권위’가 아닌 ‘명예’를 이용해 존경받을 만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1년 한국에서 열린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서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사다리에 올라 땀을 뻘뻘 흘리며 망치질을 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 모습은 우리네 ‘전직 대통령들’이 보여준 은퇴후 모습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름다운 노년(Sharing Good Times’(김은령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하며 일과 여가에 대해 이야기한 산문집이다. 지금까지 주로 역사나 정치,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설과 시집, 회고록 등 무거운 주제에 대해 글을 써 온 그는 이 책에서 좀더 친근하고 즐거운 경험을 풀어 놓는다. 이제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된 그는 마치 손자에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듯 조근조근 소소한 옛 기억들과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회고한다. 자신이 태어난 작은 농촌 마을 소년에서 해군사관학교 생도로, 주지사로, 대통령으로, 인권운동가로 조지아주 한적한 숲과 뉴올리언스, 워싱턴, 킬리만자로와 후지산, 한반도의 평양과 서울 등을 오가며 경험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소박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이니 그 순간을 절대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책을 통해 부인 로절린과 인생을 함께 해 오며 나눴던 즐겁고 슬펐던 경험은 물론 이혼 위기 등 심각했던 순간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들려준다. ‘노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것인가?’‘은퇴한 뒤 더 보람있고 멋진 인생을 사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참고가 될 듯하다.9800원.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영국문화원의 영어맞춤학습

    영국문화원의 영어맞춤학습

    1934년 발족한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은‘영국의 창(窓)’이다. 영국문화원은 이제 세계 110개 나라에서 영국문화를 알리고 있다. 한국의 영국문화원은 1973년 8월 이후 영어학습, 유학주선, 문화교류 등의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구 육지면적의 4분의1, 세계 인구의 6분의 1을 지배하던 18세기 대영제국은 사라졌지만, 훨씬 더 많은 나라에서 영국 문화의 해를 밝히고 있는 영국문화원을 찾았다. 설치조각 ‘망치질하는 사람’이 눈길을 끄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의 흥국생명 빌딩 4층에는 한국 속 작은 영국이 있다. 주한영국문화원은 영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원스톱 서비스센터’를 보는 듯하다. ●어린이·대학생·직장인 위한 강좌 다양 영국문화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어학센터. 세계 공통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영어의 모국(母國)이라는 자부심으로 영어를 가르친다.‘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 안에 영어를 습득하는가.’보다는 ‘어떻게 하면 언어의 이론과 실생활이 접목되도록 가르치는가.’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실있게 가르치려 노력한다. 어학센터의 영어강좌는 ‘정기코스’,‘특별코스’,‘시험준비반’,‘비즈니스코스’로 크게 4가지 형태다. 정기코스 성인반은 영어 구사 능력에 따라 15개반으로 나누어 ‘말하기’,‘듣기’,‘읽기’,‘쓰기’를 가르친다. 일주일에 4차례, 한 강의에 90분씩 7주 동안 진행한다. 한 반의 정원은 16명. 현재 성인반에 등록한 사람은 1200여명이다. 어린이 영어교실에서는 1000여명의 초등학생이 영어를 배우고 있다. 일반학원과는 달리 책임감을 갖고 지도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어린이 영어교실의 전 과정을 마치려면 4년이 걸린다.90%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시작해 4∼5학년 때까지 다닌다. 일주일에 2차례, 한 강의에 90분씩 7주 동안 수업한다. 전 세계 영국문화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어린이 예술 경연대회’도 수업과정의 하나이다. 해마다 6∼7월에 수업시간에 그린 그림을 영국에 보내 각국 어린이들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겨룬다. 입상한 그림은 영국문화원이 전 세계에서 발행하는 달력에 실린다. 한국 어린이들은 최근 3∼4년 동안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특별코스에는 논문을 영어로 쓰려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위한 ‘학위과정 준비 영작문반(Academic Writing)’과 영국 유학이 결정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국의 대학생활과 문화를 가르치는 ‘유학준비반’이 있다.BBC뉴스나 영국의 신문·잡지를 보고 영국 사회·문화 현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사토론반(Current Affairs)’은 수강생의 재등록률이 100%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아나운서, 작가 등 방송계 종사자들이 즐겨 찾는 강좌이다. ‘시험준비반’은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연방국가의 대학, 대학원에 진학할 때 필요한 IELTS(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시험 대비반도 운영한다. 영연방국가에서 TOEIC처럼 통용되는 영어능력평가인 FCE(First Certificate Exam)준비반도 있다. ‘비즈니스코스’는 직장인과 취업준비생들에게 인기다. 프리젠테이션, 보고서, 이메일, 이력서 등 공식문서를 영어로 작성하는 방법을 공부한다. 토요일 하루 6시간,2주 동안 강의하는 집중코스도 있어 공식적인 자리에서 당장 영어로 발표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영국문화원은 ‘초·중·고 영어교사 무료연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서울시 교육청과 함께 교사경력 15년 이상의 중·고 영어교사 6명을 선발해 영국 네스포트-텔보트(Neath Port-Talbot)지방교육청 산하 6개 학교를 방문하는 연수기회를 주었다. 참여 교사들은 3주 동안 영국의 교육을 직접 보고 한국문화에 대해 영어로 강의하는 기회도 가졌다. 올해는 인천시 교육청과 함께 교사를 선발해 연수를 진행한다.5월에는 과학고와 외국어고 유학담당 교사를 영국 주요대학에 초청하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실험성 강한 현대문화 흐름 전파 영국문화원은 현대 영국문화를 전파하는 창구 역할도 맡는다. 비틀스나 스팅처럼 대중적인 스타나 예술인보다는 특정단체나 개인이 소개하기에는 부담이 큰 실험적인 영국 문화를 알리는 데 비중을 둔다. 지난해 4월에는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조너선 반브룩의 작품을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브룩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미제국주의를 맹렬히 비난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현대무용과 인도 전통춤을 결합한 영국 아크람칸 무용단의 공연을 서울 세계무용축제 개막공연으로 올리기도 했다. 오는 3월31일부터 4월2일까지는 인체의 움직임으로 삶을 표현하는 영국 DV8의 피지컬 시어터 공연을 LG아트센터에서 소개한다. 179년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과학강연’도 2001년부터 한국에 소개해 과학분야 교류협력에도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 노벨상 수상자와 유명 과학자들이 공연적 요소를 가미한 실험으로 과학 원리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지난해 8월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출발! 우주로 떠나는 시공여행’에는 5000여명의 청중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 오는 8월에도 ‘남극의 생물체’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릴 예정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포나파 원장 추천 영어학습법 “지금까지는 현대 영국 문화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과학 분야에서도 영국과 한국이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나가겠습니다.” 쇼바 포나파(56) 주한영국문화원장은 “한국은 생명공학(BT)과 정보기술(IT) 분야의 강국인 만큼 영국문화원은 두 나라 과학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나파 원장은 붐바이대학 사학과 출신인 인도계 영국인.1977년 영국문화원에 들어간 뒤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로 활동했다. 영어 교육과 관련, 포나파 원장은 “한국은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면서 “모든 일을 ‘빨리빨리’ 이루어낸 탓인지 영어도 단시간에 습득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은 영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너무 빠른 시간 안에 완성하겠다는 생각은 문제”라면서 “언어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체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포나파 원장은 특히 “영국의 부모는 아이들이 요리나 운동을 잘하면 칭찬하고 즐거워하지만 한국의 부모는 오로지 공부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한국의 부모는 자식에 대한 기대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런 점에서 경기도와 서울의 영어마을은 영어를 배우면서 균형감각을 살릴 수 있는 바람직한 교육기관이라는 것이다. 포나파 원장은 “한국인들의 영어에 대한 열망이 큰 만큼 영국문화원은 영어의 모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책임감 있게 영어교육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미국과 영국의 영어가 다르기 때문에 영국식 영어를 배우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일부 한국인의 생각에는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영어는 이미 전세계인의 언어인 만큼 호주, 캐나다, 필리핀 등에서 사용하는 영어의 발음, 억양, 문법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라면서 “미국은 이민자를 자국에 동화시키기 위해 영어를 가르치지만 영국은 영어를 세계에 전파시키기 위해 가르친다.”고 강조했다. 포나파 원장은 한류(韓流)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영화, 가요, 드라마 등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는 아시아 어느 국가보다 우수하다.”면서 “한류를 지속시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류를 한국의 브랜드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방법을 체계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각국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으려면 정부 또는 특정 기업만 나서서는 되지 않는다.”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함께 움직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美대사관 지원 프로그램 영국문화원 말고도 외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또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후원하는 yes(young English speakers)프로그램이 그것이다.yes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미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해 9월에 시작됐다. 한국인 변호사와 Tesol(Teachers of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자격증을 가진 한국인 영어강사 등 4명이 주축이 되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수업 참여자들이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놓고 자유토론하는 형식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와 같이 시의성있는 주제나 재즈의 역사와 같이 사회·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가 선정된다. 미국대사관에서는 각 주제를 강의할 수 있는 전문강사나 대사관 직원을 주선한다. 보통 50∼60명의 회원이 참여한 가운데 매달 셋째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정기모임을 갖는다. 참여자는 대학생, 대학원생, 젊은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태평양시대위원회 김동길 위원장의 도움으로 서대문구 대신동 태평양회관을 모임 장소로 사용한다. 회원 가운데 10여명은 ‘yes+’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한 달에 한 차례 모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회원들이 일주일에 한 차례 모여 심층적인 영어토론을 벌인다. 이들의 정기모임은 용산구 남영동 미국대사관 자료정보센터에서 열린다. 자료정보센터에서는 미국정부의 국제관계, 안보, 인권 등 각종 현안과 관련된 최신 보고서, 연설문, 기자회견문 등을 제공한다. yes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는 미국 연수기회도 주어진다. 참여한 대학생 8명을 선정, 이달말에 9박10일의 무료 미국 연수를 실시한다. 국무성과 같은 미국 정부 기관과 유명 대학 등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다. yes프로그램의 1기 활동은 지난달로 막을 내렸고 오는 3월부터는 인터넷 독립신문(www.independent.co.kr)을 통해 2기 회원을 모집한다.(02)397-4666.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빌딩 X파일]흥국생명 본사

    [빌딩 X파일]흥국생명 본사

    점심시간 광화문은 한때의 허기를 달래려는 직장인들로 북적댄다. 이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엄마 손을 붙잡은 어린이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이들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 보니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에 있는 흥국생명 본사 건물이다. 경희궁(옛 서울고 자리)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는 흥국생명 본사 빌딩에는 업무시설과 문화시설이 조화를 이루며 입주한 것이 특징이다. 건물은 지하 7층, 지상 24층 규모로 지난 2000년 1월 완공됐다. 건물 내·외벽은 물론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까지 유리로 되어 있어 세련된 느낌과 개방감이 느껴진다. 어린이들이 향하던 곳은 이 건물 4∼5층에 위치한 주한 영국문화원이다. 이곳에는 7∼12세 어린이와 18세 이상 성인을 위한 다양한 영어강좌가 개설된다. 자료실이 있어 비즈니스, 문화, 교육 등에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열람하거나 빌릴 수 있다.(02)3702-0600. 3층에는 일본 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가 있다. 영국문화원과 비슷한 기능을 가진 센터에서는 일본에 관한 다양한 서적이나 영상자료 등을 접할 수 있다. 강연회나 일본영화 상영회도 자주 열려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는 인기가 높다.(02)397-2820. 건물 1층 로비에는 모그룹인 태광그룹 계열 일주학술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일주아트하우스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미디어아트 갤러리와 아카이브(자료보관소)에서는 컴퓨터,VCR,DVD, 인터넷 등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최신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지하 2층에는 예술영화 상영관으로 유명한 시네큐브·아트큐브가 있다. 주요 상영관에서 외면당하는 거장의 예술영화나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유명작을 손쉽게 접할 수 있어 영화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하 1층과 2층은 패밀리 레스토랑과 카페, 꽃가게, 푸드코트 등과 연결돼 있다. 빌딩 최고층부에는 골드만삭스,ING베어링, 시티증권, 톰슨 파이낸셜 등 외국계 금융기관이 입주해 있다. 개성공단 사업지원단, 현대종합상사, 탈북민 친목단체인 숭의동지회 등 북한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기업 및 단체 등이 있는 것도 이채롭다. 건물 동쪽 옆에는 일하는 기쁨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미국 조각가 조너선 보롭스키 작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이 22m 높이로 서 있다. 로비에 설치된 강익중 작 ‘아름다운 강산’도 설치예술의 수작으로 손꼽힌다. 가로·세로 3인치짜리 정사각형의 나무조각 8040개를 벽화형태로 가로 300줄, 세로 25줄로 이어 붙인 이 작품의 크기는 가로 31.73m, 세로 2.65m에 이른다. 우리나라 자연, 문화, 일상의 다양한 이미지 위에 세계 각국의 언어가 덧칠돼 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송필용展’ 학고재화랑서 13일까지

    네 명의 국선(國仙)이 뱃놀이를 하다 절경에 취해 삼일 동안 돌아가는 걸 잊었다는 삼일포,암벽을 따라 쏟아지는 물이 마치 봉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 해 이름이 붙은 비봉폭포,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 위에 널어 놓은 듯하다는 토왕폭포….중견 서양화가 송필용(47)이 서울 인사동 학고재 화랑에서 전시중인 물 그림 목록들이다.노련한 목수가 단 한번의 망치질로 못을 박듯 거침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작가가 물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거친 자리도 불편한 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흐르는 물의 넉넉함,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그 정신을 배우라는 것이다. 송필용의 물 그림은 우리 전통회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그림 속 흰 폭포수와 바위는 겸재의 ‘박연폭포’나 단원의 ‘구룡폭포’가 지닌 강렬하면서도 단순한 아름다움을 연상케 한다. 또 ‘삼일포’ 그림의 요점인 정자는 동양화적인 선묘로 그 멋을 더한다. 옛 선비들은 폭포를 직접 보지 않더라도 서재에 관폭도를 그려놓고 바라봄으로써 물을 즐기고 또 깨달음을 얻었다.이번에 선보인 ‘관폭-변산에서’와 ‘관폭-지리산에서’는 바로 그런 전통회화의 관폭도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산뜻한 쪽빛과 옥색으로 가득한 송필용의 물 그림은 맑고 신비롭다.생명의 기운이 넘친다.우리로 하여금 ‘흐르는 물처럼’ 살고 싶게 만드는 그림들이다.전시는 13일까지.(02)739-4937.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세상속으로] 서울역앞 ‘파출소’ 통해본 세태

    “늙은이가 엿이라도 팔아서 목구멍에 풀칠 좀 하겄다고 서울 올라왔어.평생 농사짓다 망한 것도 서러운디 야박하게 딱지를 끊고 그려.” 토요일인 27일 밤 11시10분쯤 서울 남대문경찰서 동부지구대(옛 서울역전 파출소)에서는 전북 정읍에서 상경한 이모(70·농업)씨가 자식뻘되는 경찰관을 붙잡고 선처를 호소하고 있었다. 지하철 4호선 서울역 승강장에서 망치질을 하며 엿을 팔다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잡혀온 것.이씨는 “농사도 못짓고 몸도 아파 이제는 이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고 하소연했지만 3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이씨는 농촌 생활이 갈수록 힘들어 얼마전부터 서울과 정읍을 며칠씩 오가며 엿을 팔았다고 했다. 지난해 8월 ‘파출소’에서 ‘지구대’로 이름은 바뀌었지만,이곳은 여전히 서민의 힘겨운 삶과 세태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농촌서 온 노숙자 1주일에 2∼3명 최근 이씨처럼 농촌에서 푼돈이나 벌겠다고 상경한 뒤 이곳 신세를 지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지구대 직원들은 환란위기 때 ‘IMF노숙자’가 쏟아져 나온 것처럼 요즘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했다.지구대장 이용성(52)경위는 “농촌경제 파탄으로 무작정 상경했다가 일을 구하지 못해 귀향도 못하고 노숙하며 발만 동동 구르는 딱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지난 겨울부터 예전에는 없던 이같은 신종 노숙자가 1주일에 2~3명씩 꾸준히 생겨난다.”고 말했다. ●“더 큰 도둑은 여의도 있는데 왜 우리만…” 서울역 인근의 노숙자들이 걸핏하면 문을 두드리는 곳도 동부지구대.지난 26일 오후 8시32분쯤 만취한 노숙자 서모(43)씨가 지구대에 들러 무작정 “죄가 있으니 나를 잡아가 달라.”고 소리지르며 20분 남짓 소란을 피웠다.배 고프고 갈 곳 없으니 유치장이나 감옥에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김동식(50)경사는 “힘들게 살아가는 노숙자들에게 벌금을 물려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불편을 겪는 시민들이 있으니 단속은 해야 한다.”라면서 “요즘엔 노상방뇨나 소란 등 경범죄로 단속하려고 하면 노숙자들이 ‘더 큰 도둑은 국회에 모여 있는데 왜 이런 것 가지고 그러냐.’고 항의해 난감할 때가 많다.”고 씁쓸해했다. ●무임승차권 발급 올들어 176명 무임승차권을 얻으려는 ‘딱한 사람’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여비와 연고가 없는 노약자나 장애인,지갑을 분실한 사람 등이 무료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서울역에 의뢰해 무임승차권을 내주는 것은 ‘서울역전 파출소’만의 오랜 전통.하지만 지구대측은 경기불황이 계속되면서 무조건 무임승차를 요구하며 떼 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실제 무임승차권이 발급된 건수는 올들어 지금까지 176장으로, 300만원 어치에 이른다.이 가운데 ‘귀향 노숙자’가 41명으로 4분의1정도를 차지한다. 지난 26일 낮 1시쯤에는 군산에서 일용직 노동을 했다는 한모(51)씨가 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섰다.한씨는 “지방에 하도 일이 없어 며칠전 상경했는데 일도 못 구하고 이제 1000원짜리 몇장만 달랑 남았다.”면서 “군산으로 내려가게 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27일 오후 10시43분쯤에는 술에 취한 김모(50·여)씨가 세살배기 외손자와 함께 와서 “사흘 전 친척집에 놀러왔는데 내려갈 차비가 없다.”면서 “가정주부가 돈이 없어 집에 못 내려갈 판인데 왜 무임승차권 하나 못 끊어주냐.”고 20분 남짓 떠들었다.경찰은 대구에 있는 김씨의 남편에게 연락해 후불제로 귀향토록 조치했다. 무임승차 비용은 결국 국민의 혈세에서 충당되기 때문에 발급 여부를 결정하는 지구대 직원들의 눈은 거의 ‘인간 거짓말탐지기’ 수준.박순기(48)경사는 “일부 노숙자들은 무임승차권을 건네주면,그것을 다른 승객에게 팔아 소주를 사 마시곤 한다.”면서 “얘기를 나눠보고 정말 딱한 사정이 있는 사람에게만 무임승차권을 발급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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