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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대국 정치소국” 일본/박정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의 2박3일간 한국 방문은 한·일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새삼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의 주의제가 종군위안부문제와 대일무역수지적자 해소에 있었던 만큼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어느때보다 각별했다. 그러나 미야자와총리는 이같은 현안과 양국간 실질협력방안에 대해 원론적인 수사로 일관했다. 빈손으로 서울에 온 그는 「말의 성찬」만 늘어놓았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우선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우리의 입장이 역사의 시계바퀴를 45년이전의 과거로 돌리자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지난 65년 한·일기본조약체결 당시 이 문제는 전혀 사회문제화되지 않았던 만큼 새롭게 조명되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야자와총리는 그럼에도 「사죄」대신에 「사과」라는 표현을 했고 노태우대통령의 응분의 조치 요구에 「적절한 조치」라는 모호한 용어를 썼다. 방한 직전 미야자와총리는 한·일 양국간 미래지향적 선린우호관계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그의 발언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번에 종군위안부등 현안에 대해 보다 겸허한 표현과 구체적 보상문제까지 거론했어야 옳았다. 미야자와총리가 노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가토(가등)관방장관이 「반일감정을 가르치는 역사교육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흔히 일본인은 말로 명분을 차리는 「다테마에(건전)」와 속마음인 「혼네(본음)」가 따로 노는 민족이라고 한다.가토의 「망언」을 보면 미야자와총리의 사과발언이 그들의 「혼네」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또한 90억달러에 이르는 대일무역수지적자에 대해 일측이 구체적인 시정방안을 내놓기보다 「실천계획」을 실무위로 떠넘긴 것은 일단 상황을 모면해 보려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무역적자가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그러나 1천억달러의 흑자를 내는 일본이 우리의 무역역조시정 5개항을 대부분 거부한 것을 보면 일본이 경제대국은 될지언정 정치대국이 되기에는 요원한 것같다.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일본의 자세가 계속되는 한 한일양국간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선린우호관계도,아태지역내 정치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노력에 협조해줄 어느 주변국가도 있지 않음을 일본은 깨우쳐야 할 것이다.
  • 일 관방,정신대등 관련 망언

    ◎“일 감정 가르치는 역사교육 중단” 촉구 【도쿄 AFP 연합 특약】 일본의 정신대 문제와 관련,서울에서 연일 반일데모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토 고이치(가등굉일)일본관방장관은 17일 반일감정을 가르치는 한국의 역사교육을 중단할 것을 한국에 촉구했다. 가토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도 전쟁에 대한 반성을 전달해야 하지만 한국도 미래를 지향하는 쪽으로 역사를 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다른 정부소식통은 『전쟁전 일본이 미국이나 영국에 대해 했던 것처럼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한국의 역사교육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토장관은 또 아시아의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일본의 평화유지군 파병은 군사행동이 아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밀랍인형 철거요청/유족회서 반박성명

    【천안】 독립유공자유족회 충남도지부(지부장 유병성)는 9일 하오 일본측의 독립기념관내 일제 만행 장면 밀랍인형 철거요청과 관련,이를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유족회는 이날 천안시 영성동 유족회 사무실에서 긴급 임시회의를 열고 『일본의 독립기념관내 일제 만행 밀랍인형 철거요구는 한국민의 정서를 무시한 내정간섭이며 침략근성을 버리지 못한 망언』이라며 『일본의 이러한 요구는 최근 일고 있는 정신대의 진상규명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 치사하고 용렬한 「망언」(사설)

    일본 관방장관의 발언은 우리로하여금 일본을 향해 침을 뱉고싶게 한다.이렇게까지 비겁하고 이토록 용렬 할 수가 있을까. 태평양전쟁중 일본군의 종군위안부(정신대)로 동원되었던 한인여성들과 그 유가족에 대한 보상문제에 대해 일본의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갖고 『…노동성을 중심으로 실태를 조사하고 있으나 정부기관이 관여했다는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요컨대 일본정부는 무관하니 보상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중에 『일본순사가 포승줄로 묶어 끌고 갔다』는 증언을 피를 토하듯이 하던 정신대출신 여인의 증언을 우리는 알고 있다.관동군참모의 요구로 이른바 총독부가 나서서 도청→군청→면사무소의 계통을 밟아 「경찰」이 동반하여 공출해간 1만명의 한인여성도 있었다.모두 20만명가까이의 「위안부」가 명단없이 숫자로만 「군수품」으로 일본군기록에 묻혀있었음도 드러났다. 최근에도 미스탠퍼드대학에서 발견된 미군작성의 공문서가 있고,당시의 소위 「노무보국회」 동원부장이었다는 길전청치란 사람의 증언도 있다.그는 한인여성들의 강제연행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일본은 이런 것을 증언의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인가. 일본은 부자가 되었다.어느 정도인가 하면 미국이 국제적으로 누려온 세계1위의 선진대국의 자리를 뺏고싶을 만큼 부자나라가 되었다.부자가 되어가면서 그들은 그들이 저질렀던 야비하고 창피한 전과는 입도 뻥긋하지 않고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피해만을 부각시켰다.그러면서 「평화」의 이미지를 「경제대국」이라는 성토에 심어보려고 애를 쓰고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세계의 지도국은 될 수 없다.일본의 평화의지를 믿어줄 사람들도 없다.「원폭피해」도 호전적 전쟁도발에 의한 자국민 희생의 자초일 뿐 연합군의 책임으로만 떠넘길 일이 아니다. 아직도 진행중인 동구의 개혁과 소련의 개방혼란의 와중에서 그곳 사람들이 지향하는 것은 「아메리카」이고 「달러」이다.양아치같은 아이들이 서방관광객은 물론 황색인종의 일본여행객을 붙들고도 구걸하는 것은 여전히 「추잉껌」과 「1달러 기부미」다.그것은 세계통화로서의 「달러」의 능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자유」와 「정의」그리고 「평화」파수꾼으로서 미국이 분담해온 역할에 대한 세계시민의 신뢰이기도 하고 습관적인 타성이기도 하다. 식민지로 짓밟았던 이민주의 여성을 자국군인들의 전쟁위안부로 수십만명씩 집단유린한 과거를,몇푼의 보상금좀 면해보겠다고 「민간인운운」하는 치사하고 졸렬한 장관을 두고 있는 나라라면 세계의 지도국같은 것은 될 수 없다.이 치사하고 추악한 면모를 향해 성난 얼굴로 침을 뱉고싶다.
  • 일 새 부총리겸 외상 와타나베

    ◎총리 꿈꾸는 야심가… 통산상등 역임/파병위한 개헌 주장… 망언 잦아 물의 빚기도 미야자와내각의 부총리겸 외상에 임명된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68) 자민당전정조회장은 자민당 5대파벌의 하나를 이끌며 차기 총리를 꿈꾸고 있는 야심가로 알려져 있다. 63년 고향 도치기(회목)현에서 중의원에 당선된 이래 10선의 관록을 갖고 있는 와타나베는 73년 국수주의 성격이 강한 정치집단인 「청풍회」를 결성했으며 76년 후생상을 시발로 농수상·대장상·통산상등 각료직을 두루 거쳤다.80년 설립한 「온지회」가 그의 정치기반이 돼 왔으며 87년에는 다케시타 내각에서 정조회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2월 나카소네파를 무난히 인수,와타나베파를 발족시키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한 그는 이번 총재선거에서 예상외로 선전,제2파벌의 영수인 미쓰즈카(삼총박)전외상을 누르고 2위를 차지했었다. 그는 88년 리크루트사건에도 연루되는등 신선한 이미지를 주지못하고 있으며 또한 국내외적인 망언으로 많은 말썽을 빚기도 해 국제적으로 미묘한 입장에 처한 일본외교를 과연 그가 원만하게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자위대파병이 헌법상 문제가 있다면 개헌도 불사해야 한다는 정치대국화 지향의 그가 오는 12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아태경제협력(APEC) 각료회의에서 국제사회에 어떻게 첫선을 보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외언내언

    『정의의 나라가 전쟁에서 언제나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우리는 힘이 모자라 전쟁에서 진 것이다.그러나 조국은 불멸이다.절망하지 말고 근면하라』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총리 도조 히데키(동조영기)가 남긴 유서내용이다.일제가 정의의 나라였음을 강변하고 있다.반성의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일본에는 그를 증오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보다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특히 우익이라는 사람들의 경우 그런 경향이 심한 것을 본다.크레송총리의 일본비판이 화제가 되고 있는 프랑스의 르 피가로신문에 등장한 일본교수들의 발언도 그러한 우익성 망언의 하나,무시해 버릴 수도 있으나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다.◆일본인,특히 우익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같아 염려스럽다.『일본은 독일과는 달리 세계정복이나 인민학살을 구상한 일이 없다.일본군은 군사목표만 공격했으나 미군은 민간인을 폭격했다.한일합방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쳐 「그레이트 브리튼」(영국)이 된 것과 같은 방식이다』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사학자 와타나베 시오시의 주장이다.◆도쿄 교린대의 다쿠보 다다에란 교수는 또 이렇게 말한다.『일본이 군국주의적이고 침략적인 민족주의로 돌아서려면 다음 3가지 조건이 모두 맞아야 한다.구미보호무역주의가 일본경제의 번영을 깨고 지진이 일어나며 한국인이 쳐들어오는 경우가 그것이다』◆이들 조건이 조성되면 일본은 또 한차례 전쟁을 일으킬 것이란 소리가 아닌가.한국인이 쳐들어갈리는 없으나 2개의 조건은 쉽게 갖추어질 가능성이 있다.이 기사가 실린 15일자 서울신문의 외신면엔 크레송 프랑스총리의 허수아비 목을 「닛폰도」로 내리치는 일본인다운 섬찌ㅅ한 우익의 사진모습이 보도되었다.역사는 되풀이 되는가.일본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 “한국 식민통치안했다”…일 학자,또 망언/파리=박강문(특파원코너)

    ◎불지에 비친 대한 굴절시각/“잉글랜드·스코틀랜드 통일과 동일” 어거지/“한국인,일인 미워해 일 침략 가능성” 강변도 와타나베 시오시(역사학자)와 다쿠보 다다에(도쿄 교린대 교수).프랑스의 신문 르 피가로 주말 부록 잡지에 등장한 2명의 일본인이다. 에디트 크레송 총리의 이른바 반일 발언 파문이 있은 뒤,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언론매체들이 『일본의 실상을 재인식하고 프랑스 정부와 국민도 자성해서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방향으로 보도하거나 논평하는 것을 간간이 볼 수 있다.그 가운데 특히 르 피가로지가 국민에게 경각심을 심는 데 가장 적극적이다. 이 신문은 최근 주말 부록 잡지 「르 피가로 마가쟁」에서 「일본을 두려워해야 할 것인가」라는 제목아래 이 문제를 특집으로 다뤘는데 그 내용은 일본의 지성적인 인물 다섯 사람을 인터뷰한 것이다. ○일본 아무 죄도 없다 맨 먼저 등장하는 와타나베는 『일본은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면서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죄악을 모두 부인한다.일본 신우익의 가장 과격한 사상가로 소개되고있는 그는 수정주의 역사학자로서 일본의 인상이 항상 침략자로 서양에 알려져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일본)는 유럽만큼 민주적인 전통을 지니고 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없었다.일본은 독일과는 달리 세계 정복이나 인민 학살을 구상한 일이 없다.우리 군대는 군사목표밖에 공격하지 않았으나 미국은 민간인을 폭격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945년 모두 파시스트처럼 다루어졌다.우리 지도자는 서양인 재판관에 의해 전범으로 재판받았다.전범이 아닌데…』 ○북한은 핵무기 구사 이쯤 읽어 내려오면 특집의 의도가 대충 짐작된다.그런데 뜻밖에도 한국에 관한 언급과 맞닥뜨리게 된다.가혹했던 식민통치에 대한 그의 천연덕스런 답변에는 기가 막힌다.『당신은 식민통치라고 말했는데,이는 서양식 개념이지 일본식 개념은 아니다.우리는 한국과 1905년 합방조약을 맺고 지내왔다.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쳐 그레이트 브리튼이 된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런 와타나베가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는 현상에 대해르 피가로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다쿠보 다다에 교수가 일본의 극우적 변환은 어렵다고 설명하는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일본이 군국적이고 침략적인 민족주의로 돌아서려면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한꺼번에 맞아떨어져야 할 것이다.구미(구미)의 보호무역주의가 일본의 경제 번영을 깨고 지진이 일어나고 한국인이 쳐들어오는 것등…』 첫번째 두번째 조건은 한날 만날 수 있겠지만 마지막 조건은 일어날 가능성이 없겠다고 인터뷰어가 말하자,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전혀 그렇지 않다.한국인은 우리를 미워하고 있는데 북한은 핵무기를 구사할 수 있다.우리의 사담 후세인은 평양에 살고 있고 그 이름은 김일성이다』 다쿠보 교수의 말을 좀더 따라가 보자.『이후로 일본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은 서양이 아니라 이민이다. 도쿄내 합법·불법 이민의 숫자가 이미 1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다.2000년에는 4백만명에 이를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우리 교포들이 걱정되지 않을수 없다.우리 교포가 대다수인 일본의 이민문제를 한마디로 이처럼 간단히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와타나베와 다쿠보는 적절한 자리가 아닌 듯한 데에 한국과 한국인을 멋대로 끌어대 자신의 논리를 장식했다. 나이 서른에 이미 명성이 높다는 철학자 아사다 아키라가 끼여 있지 않았더라면 이 특집은 특파원에게 분노와 실망만을 안겨주었을 것이다.아사다는 일본을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후기산업사회이면서도 원시성을 지니고 있는 「기술원시사회」라고 부른다.그에게는 여기 등장한 다른 일본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편집증(편집증)의 기미가 없다. ○기술원시사회 비판 『일본인은 너무 빨리 자라는 아이들과 같다.일본은 일종의 책임감이 무딘 거인이 되어 버렸다.지성인인 내 역할은 이 「기술원시사회」에서 서구적 개인주의와 우메하라 다케시(종교사학자:원초적 일본성으로의 복귀를 주장)같은 식의 복고주의를 다함께 비판하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일본 다시 보기」를 시작했다.이 일은 일본을 좀더 잘 알기와 프랑스인 자신 돌아보기를 겸한 것이다.양국인의 노동시간·결근율·저축률 비교는 흔히 등장하는 기초 메뉴다.초점은 일본인보다 덜 일하고 덜 저축하고서 어떻게 그들을 이길수 있겠느냐에 맞춰지고 있다. 프랑스 신문의 특집 기사 속에서 이른바 일본 지성들의 굴절 심한 대한시각을 다시 대하면서,제목의 의문문을 우리 처지에서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일본을 두려워해야 할 것인가」.
  • 신민총재 규탄대회/부여서 3천명 모여

    【부여=최용규 기자】 김대중 신민당 총재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김종필 민자당 최고위원이 광역의회 부여지구 공천자마다 2억원씩을 받았다』고 발언한 내용과 관련,충남 부여군내 민자당원 3천여 명이 19일 상오 10시 부여읍 지구당사 앞에 모여 「김대중 망언 규탄대회」를 가졌다. 이들은 이어 김대중씨에 대한 화형식을 가진 뒤 「지역감정의 원흉 김대중」 등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가지를 행진했다.
  • “북한 핵시설 응징” 발언 관련/야,이 국방 해임촉구

    신민 민주 민중당 등 야권 3당은 13일 최근 이종구 국방장관의 「북한핵시설 강력응징」 시사발언을 반민족적 언동이라고 비난하고 이 장관의 즉각 파면·해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신민당의 이재걸 부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는 북한에 대남도발의 구실을 제공해 현 남북관계를 치명적인 상황으로 내몰 수도 있는 중대한 실언』이라고 주장하고 『이 장관은 국가적 중대사를 책임질 위치의 인물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게 신민당의 공통된 인식』이라면서 즉각 해임을 요구했다. 민주당의 장석화 대변인은 『이 장관의 망언으로 모처럼 조성된 남북간의 교류와 신뢰회복 분위기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된다』면서 이 장관의 해임을 촉구했다. 민중당의 정문화 대변인은 『정부는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전쟁분위기를 조성하는 반민족적 반통일적 언동을 한 이 장관을 즉각 파면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 텔아비브 「비겁자 논쟁」/김주혁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중동전이 터지자 어느날 갑자기 미국내 중동 유학생들이 모두 사라졌는데 알고보니 이스라엘 유학생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귀국했고 아랍 유학생들은 징집영장이 날아올까 두려워 도망갔다는 일화를 못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같은 이미지에 부응이라도 하듯 걸프전쟁이 터지고 이스라엘에 대한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이 7차례나 계속됨에 따라 세계 각지로부터 유태인들의 이스라엘 격려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미국내 주요 유태인기구회장단 일행 50여명이 지난달 28일 이스라엘에 도착,격려에 나섰고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도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예정된 협연을 취소하고 유럽에서 이곳으로 직행했다. 그런데 요즘 이스라엘에서는 이같은 분위기에 걸맞지 않는 이색적인 논쟁이 한창이다. 이라크의 핵심공격 목표인 상업중심지 텔아비브 시민 가운데 성지인 예루살렘 등 직접적인 미사일 공격목표가 아닌 안전지대로 가족들과 함께 거처를 임시로 옮긴 사람들이 비겁한 도망자냐 아니냐하는 것이 논쟁의 요지다. 논쟁의 발단은슐로모 라하트 텔아비브 시장과 이츠하크라빈 전 국방장관이 지난 25일 텔아비브를 떠난 시민들을 「도망자」라고 단정하면서 즉시 돌아올 것을 촉구한데서 비롯됐다. 이들 「비겁한 도망자」들은 사태가 더욱 악화돼 생명의 위협이 더 커지면 결국 뒤도 안돌아보고 이스라엘 땅을 떠나고도 남을 사람들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에대해 「도망자」 뿐아니라 텔아비브에 남아있는 「용감한」 시민들도 대다수가 혼자 애국자인체 하는 망언이라며 심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라크에 대해 반격에 나서서 교전이 있게되면 당연히 총을 들고 싸워야겠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자제정책이 시행되고 있는데 아무 대책없이 미사일을 기다리는 것이 정부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 이들의 항변이다. 라하트시장은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어린이들의 신변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한다』고 일단 한발짝 물러섰으나 『이들이 결국은 조국마저 쉽게 버릴 사람들』이라는 주장은 굽히지 않고 있다. 이같은 논쟁을 지켜보면서 이제까지 이스라엘에대해 기자가 갖고있던 강인한 인상이 허상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1백만 시민 가운데 겨우(?) 2만∼3만명만이 피신했는데도 논쟁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 “기자 때문에 나라 망할 것”/경찰 간부의 망언 말썽(조약돌)

    ○…최근의 일가족 4명 생매장사건과 화성지역 9번째 부녀자 연쇄피살사건 등 굵직한 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과 관련,이들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지도한다며 경기도경에 온 치안본부 수사지도관이 「기자망국론」 등 망언을 서슴지 않아 말썽이 되고 있다. 치안본부 수사지도관 마모경감은 지난 17일 화성 부녀자 연쇄피살사건 수사본부에서 수사방향 등을 묻는 기자들에게 『양평사건을 잘 해결해서 내무장관으로부터 진급약속을 받았다』면서 엉뚱하게 양평사건에 대한 공치사만을 늘어 놓다가 『우리나라는 언젠가 기자들 때문에 망할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경찰수사를 방해하는 기자 몇명을 구속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좌충우돌했다.
  • “미 상품 불매운동 전개”/소비자단체협/부당압력 철회ㆍ사과 요구

    과소비억제운동에 대한 미국측의 불만표시에 반발하는 민간소비자 단체들이 미국 정부의 공식사과와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미국상품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성명서를 16일 발표했다.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회장 박금순)는 16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정책협의회를 열고 『범국민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과소비 추방,우리 농산물 먹기운동 등을 관제운동으로 몰아붙여 이의 중단을 요구한 미국 정부의 태도는 지극히 반인권적이며 내정간섭적인 부당한 처사』라며 미측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이들은 또 미국정부가 지난 15일 방한한 리처드 솔로몬 동아태 담당차관보의 망언을 사과하지 않을 경우 미국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개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 외언내언

    『전후 극동 군사재판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2개의 자선단체가 매장한 유기시체만도 15만5천3백37구나 되었고 양자강에도 대량의 시체가 버려졌었다. 지극히 잔혹하게 자행된 이 중국인 학살의 책임을 물어 2차대전 후 열린 극동 군사재판에서 당시의 총사령관이었던 마쓰이가 사형에 처해졌고 그밖의 여럿이 남경법정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일본군에 의한 「남경대학살사건」이 기록된 우리 백과사전의 기록의 일부다. 진격중에 30만,점령 후에 4만2천명이 학살되었다는 기술도 있다. 학살 숫자를 줄이기는 했지만 일본의 퇴역 장교들이 최근에 이르러 「남경대학살」을 스스로 시인하기도 했다. 죄수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살해했다』고 자인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한마디로 『중국인들이 꾸면내 이야기다』라고 부정해버리는 일본지식인이 나왔다. 그것도 그냥 사석에서 해본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반응이 큰 도색잡지와의 회견기사를 통해 그렇게 주장했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써서 일본인들의 국수주의에열광적인 불을 댕겼던 석원신태랑 중의원 의원이 그 주인공. ◆그는 「태양의 계절」이라는 소설로 패전 후 일본에 전후파 물결을 일으켰고 「태양족」이니 「신짱가리」 따위의 머리모양까지 만들어 내게 했던 유행아다. 그가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도 일관된 정신구조를 보이는 것은 흥미를 느끼게 한다. 한때는 환경청 장관이 되어 「넥타이 추방론」을 편적도 있었다. 가능하면 파문을 던져 관심을 모으는 수법 그대로를 초로에 이르도록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사회에 내재된 사고가 이시하라 같은 치기만만한 인사의 표피를 뚫고 돌출된 형국이어서 더욱 불쾌하다. 특히 「망언외교」의 효능까지도 충분히 계산해서 써먹는 그들의 간교함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잊을만 하면 시치미 뚝떼고 퍼뜨리는 해괴한 「망언시리즈탄」의 하나인 이번 것도 치사하고 괘씸하기가 이전의 어느 것만 못하지 않다.
  • 대사와 마술사와 정치인/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대사와 마술사와 정치인이 한자리에 모여 직업상의 기능겨루기를 한다. 물론 가상의 일이지만 「거짓말 대회」라도 좋다. 누가 이기고 질 것인가는 문제밖이다. 직무상 기능의 공통점에 관심이 가는 것이다. 먼저 대사란 무엇인가. 서양의 한 익살을 빌리면 『거짓말을 하기위해 외국에 파견된 정직한 사람』이다. 그럴듯한 간판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하는 외교 「도박판」에 출전하는 공직이라 볼 때 그럴듯한 비유가 된다. 그러고 보니 외교관과 마술사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각각 그 직무(외교와 마술)를 수행할 때 똑같이 실크해트를 쓰는 관례는 전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대사의 공인된 거짓말이나 관객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마술사의 공개적인 속임수는 그 정상이 참작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똑같이 국가사회에 봉사하는 공인으로서의 정치인은 국가가 파견한 거짓말쟁이라는 대사와는 다르다. 제대로 된 정치인은 무엇보다 거짓말을 하지말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치인 최대의 덕목은 바로 정직성이다. 영ㆍ미인들이 그들의 정치적 지도자나 대통령감에게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바로 정직성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어떤 경우건 거짓을 말하거나 약속을 어겨서는 안된다. 수년전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감으로서 유력했던 게리 하트의 급속한 탈락과정을 지켜보던 그의 한 절친한 친구는 『하트가 고향으로 돌아가야했던 원인은 여자 때문이라기 보다 염문설을 부인한 거짓말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거짓과 위약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 청교도들의 도덕적 결백증이 여기서도 엿보인다. 그러나 너무 정직하여 무방비 상태에서 자기 속을 내보였다가는 살아남기 어려운 경쟁터가 바로 정치마당이다. 그 정치판에서 거짓말(식언ㆍ허언)을 부끄러워 않고 헛소리(실언)도 곧잘 하며 막말(망언)도 불사하는 정치인들이 손가락질 받을 때 곧잘 둘러대는 무기가 있다. 즉 『사람들이 믿을 만큼 훌륭한 거짓말이 정치인에게는 필요하다』고 플라톤이 주장했다는 「거짓말」이다. 일본 수상을 지낸 미키(삼목)에게 언젠가 한 친구가 『나는 거짓말하는 정치인이 제일 싫다』고 했다. 그러자 미키는 대뜸 『거짓말 않는 정치인이 어디 있는가,나는 어떻게 하면 「성실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로 늘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청렴결백하다고 해서 별명까지 합쳐 「클린미키」로 통하던 그였다. 나중에 이 말을 전해들은 어느 기업인이 한 말도 재미있다. 『기업의 세계에서는 거짓말이나 위약을 한번만 해도 기업이 망한다. 그런데 정치에서는 그것들을 잘 해야되는 모양이다』 사람 사회란 묘한데가 있어서 거짓말의 경우 그것이 남에게 손해를 끼칠때만 거짓말쟁이로 규탄받게 된다. 다시말해 거짓말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나 동기가 문제로 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기 위해 진실을 왜곡ㆍ은폐할 때에 한해 특히 거짓말이라 여기는게 보통이다. 결과적으로 이익을 주는 거짓말 즉 중의에 의한 거짓말은 일종의 필요악으로까지 치부되는 수도있다. 약속도 그러하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을 전제로 개인과 사회 국가간에는 갖가지의 계약이 체결된다. 그러나 계약 당시의 제반사정이그후 현저하게 변경되어서 당초의 약속대로 이행되는 것이 오히려 현실에 반하고 공평치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땐 계약의 내용을 달라진 사정에 맞추어 변경할 수 있도록 하거나 아예 그 계약을 파기함이 마땅할 수도 있다. 각종 계약에서의 「사정변경의 원칙」이다. 근자에 우리 현실 정치를 크게 왜곡시키면서 시끄럽게 했던 민자당의 이른바 내각제 각서파동은 어느쪽일까. 분쟁의 한쪽 당사자가 서로 다른 상대를 「거짓말쟁이」 「위약자」로 매도하고 너섰다. 분당 직전에 사태는 가까스로 수습됐지만 「사실」은 어디에 있건 어리둥절하고 피곤하고 짜증난 쪽은 국민이었다. 민자당의 각서파동,다시말해 「위약내전」은 약속 당시의 정치지도자들이 심사원려하는 치밀함을 결여했던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약속 당시에 약속 당사자들이 약속사항에 관하여 약속 이행을 신뢰할 수 있게끔 필요한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얘기도 된다. 다시말하면 만일 사정변경으로 그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할 경우 그 파급효과가 어떨 것인가를 계산할수 있는 정치적 혜안을 가졌어야 했던 것이다. 내각제 그 자체가 의회민주주의의 내용과 명분에 가장 근접한 권력구조 형태라는 점에 공감하는 사람은 많다. 또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각기 장단점이 있는 것이고 따라서 권력구조의 변경을 중심으로 한 개헌문제를 놓고 된다느니 안된다느니 할 일도 물론 아니다. 어떤 제도든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고 현행제도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시기에 집권여당이 장기적인 권력구조의 개편문제를 놓고 그것도 분당위기로까지 몰리며 그런 혼란상을 보였어야 하는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약속의 경위와 과정은 어떠했건 공인으로서,공당의 지도자들로서 약속들을 했다면 그에 대한 공적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점 또한 지적돼야 한다. 싫든 좋든 그 난리통을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은 정말 피곤하고 괴로웠다.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정말 그래도 되는가고 야단맞아도 할말 없을 것이다. 그 무렵의 일이다.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로 구성된 「자유지성 3백인회」가 매우 공감을 갖게하는 선언을 발표했었다. 그들은 『국민 여망을 외면하는 무능력 부도덕 정치현상을 개탄한다. 오늘날의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질서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고 역설했다. 그들은 이어 『대통령제냐 내각제냐하는 평면적인 시국접근만으로는 오늘날의 총체적 위기를 궁극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며 『오늘날 가장 시급하고 긴요한 지상과제는 무능력 부도덕 정치를 총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하느냐에 귀착된다』고 지적했다. 여야 정치인들 특히 내분의 홍역을 겪은 민자당 사람들이 귀 기울여 간직할 만한 대목이다.
  • “일왕 사과로 「감정의 골」메워지길”

    ◎“통석의 염”… 일 정계ㆍ언론의 반향/직접적 사죄 아니지만 진전 언론/솔직한 표현… 천황 방한길 터 정계/우파정치인들은 침묵ㆍ공산당선 “위헌” 주장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간 현안의 초점이 되어 왔던 「과거문제」에 관한 아키히토(명인)일왕의 발언내용은 일본언론과 국민들에게 여러가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는 24일 저녁 궁중만찬석상에서의 일왕의 발언은 일본의 책임을 명시한 것으로서 한일양국국민의 감정의 갭을 메울 수 있는 제1보라고 일본언론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아사히(조일)신문은 25일자 2면 해설기사에서 『천황의 발언은 84년 전두환대통령이 방일했을때 소화천황의 발언내용을 답습하면서도 식민지 지배의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확히 하고 「불행한 과거」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나타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한국측이 계속 요구해온 직접적인 「사죄」만은 피했으나 소화일왕의 「참으로 유감」이라는 것보다는 한층 깊은 표현이어서 양국관계는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25년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고 논평했다. 도쿄(동경)신문도 사설을 통해 『헌법상의 제약이 있는 가운데 상당히 진전된 표현으로 「과거」에 언급했다』고 평가하고 『누가 가해자이며 누가 피해자인가를 명확히 나타냈으며 표현도 인간미가 있고 알기 쉬웠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비 온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과거를 씻고 우호협력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향상,사할린거주 한국인의 귀국협력,원폭피해자에의 원조액 증가,과학기술 및 원자력분야에서의 협력 등 많은 과제에 대해 일본정부는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한편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전총리는 『지난 84년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식을 취해 시대의 흐름을 잘 처리했다』고 말하고 『(이 발언으로)천황의 방한은 가능해졌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천황을 정치의 장에 끌어 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등 반발을 보여온 민자당간부들은 냉철한 자세로 언급을 회피했으며 『일본이 무릎을 꿇고 빌라는 말인가』라는 망언을 했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간사장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솔직히 받아 들이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 각 당은 공산당을 제외하고는 노대통령의 방일을 환영함과 동시에 일왕의 발언에 대해 『상징천황으로서의 기분을 솔직히 표현한 것』(사회당 납택부서기장)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당은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의 사죄에 대해서도 『때가 늦었다고는 하나 지금까지 역대 총리의 발언 가운데 가장 진전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민사당은 『일본국민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다. 한국민에게도 그렇게 이해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새로운 한일관계확립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산당은 『천황은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다고 명기하고 있는 헌법에 반하는 것』(김자서기국장)이라고 비판했다. 일왕의 발언은 일반국민들사이에도 이론이 분분하다. 일왕의 발언내용에 「일본의 행위에 의해」라는 구절을 넣을 것을 주장해온 전 방위대학교장 이노키 사사미치(저목정도)씨는 『대단히 만족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소화천황의 발언에는 어느쪽이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확실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던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됐던 불행한 시기」라며 가해자를 명확히 했다. 그런 내용 이하로는 앞으로도 한국대통령이 방일할때마다 문제화될 것이며 그 이상 깊은 내용이어서도 안된다. 나는 안전보장의 관점에서 사죄토록 주장해 왔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이것으로 양국에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할린거주 한국인문제에 간여하고 있는 다카기 겐이치(고복건일)변호사는 『사죄는 명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과거의 잘못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청산ㆍ보상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불충분한 내용일 것이지만 한일간에 남아있는 문제에 대해 일본측이 해결에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고 해석한다면 큰 의미를 갖는다. 어쨌든 구체적인 전후처리를 하는데 새로운 한일관계의 구축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 노대통령 국회연설등 방일 여로 이틀째

    ◎“새 한ㆍ일 관계 토대마련”… 감명깊은 30분/“비장한 결의 담겨 우리들의 가슴 울렸다”/중ㆍ참의원 기립영접… 16차례 뜨거운 박수/가이후,“언필신 행필과”… 양국 신뢰회복 거듭 다짐 ▷일국회◁ ○…노태우대통령은 25일 상오 9시40분쯤 일본중ㆍ참의원의 기립박수속에 사쿠라우치 요시오(앵내의웅) 중의원의장의 안내를 받으며 본회의장에 입장,사쿠라우치 의장의 인삿말이 끝난 뒤 9시45분쯤부터 30분간 준비된 연설원고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는데 연설도중 모두 16차례의 박수가 터져 일본 국회의원들의 관심과 호응을 입증. 일본 의원들의 박수는 특히 「한반도의 통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질실에 바탕한 밝은 미래를 열자」는 부분에서 크게 터져 나왔는데 연설 마지막부분 세 문장에서는 매 문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 외국 정상의 일본 국회연설사상 처음으로 NHK­TV가 일본 전국에 생중계하는 가운데 행한 이날의 연설은 외국 국빈으로는 11번째로 4년전 영국 찰스황태자이래 처음이라는 일본 국회관계자의 전언. ○양원의장 현관마중이날 연설이 있었던 일 중의원 본회의장 전면에는 대형태극기와 일장기가 걸렸고 오른쪽 3층 의원방청석에는 박태준민자당최고위원등 한일 의원 연맹소속 우리나라 국회의원 16명이 자리잡아 경청했는데 연설이 끝난 뒤 일본 의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일 의원들은 박수로 응답.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는 노대통령 입장 7분전쯤 3층 의원방청석에 일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들어와 참석했는데 김여사의 국회방청에는 일본 중의원,참의원 의장 부인이 기모노차림으로 동석. ○…일본 국회측은 이날 노대통령이 상호 9시30분쯤 의사당 정문에 도착하자 중ㆍ참의원의장 부부가 현관까지 나와 노대통령 부부를 영접했는데 이같은 예우는 지금까지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 한국대사관 직원이 귀띔. 한편 노대통령 방일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없다」는 망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오자와(소택) 자민당간사장과 니시오카(서강) 정조회장등 자민당간부 2명이 본회의장 의석에 앉지 않고 3층 일반 방청석에 앉아 눈길을 끌었는데 이들은 박수를 치는 것조차 인색. ○…국회연설이 끝난 뒤 국회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리셉션에서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은 『뜻깊은 연설에 감사드리며 한국의 발전을 위해 축배를 들자』고 건배를 제의했고 노대통령은 『나의 연설이 양국의 새로운 우호협력시대를 여는 데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답례하며 건배를 제의.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은 노대통령의 연설 내용에 대해 『격조높고 차원높은 연설이며 여야의원 모두 가슴속에 깊은 감명으로 연설을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고 쓰치야 참의원의장도 『진심으로 대통령의 말씀은 감명깊었다』고 인사. ▷국회연설 반응◁ ○…노태우대통령의 25일 일본 국회연설에 대해 일본 정계지도자는 물론,사회각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겸허한 가운데 진실을 말한 감명깊은 연설』이라고 격찬하고 『새로운 한일 관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높이 평가.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총리는 『기대했던 이상으로 만장의 박수를 보낸 것은 대통령의 연설이 겸허속에서도 진실을 말한 데 있다고 본다』고 말했고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총리는 『한일 관계의 과거에 관한 부분은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었다』면서 『노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한번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비장한 결의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피력. ○일 각계서 긍정반응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위원장은 『대단한 결의가 담겨있는 대통령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남북통일과 관련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우리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말했고 이시다코 시로(석전행사랑) 공명당위원장은 『한국 역사의 아픔에 대해 우리가 깊은 이해를 갖지 않으면 양국사이에 우호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언급. 오우치(대내) 민사당위원장은 『격조높고 설득력이 있었다』면서도 『이번 대통령 방일과 일본정부의 대응으로 양국 우호관계가 확립되었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이제 막 출발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고 에다 사츠키(강전오월) 사민련대표는 『동아시아 세계의 향상을 위해 마음의 벽을 헐고 금후의 한일 협력을 호소한 데 공감했다』고 피력.「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없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노대통령의 국회연설시에는 의석에 앉지 않고 일반방청석에 앉았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자민당간사장도 『대단히 멋있고 훌륭한 연설로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뒤 『이번 연설로 양국 우호관계를 한층 깊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 정치사회 평론가인 오카이 데루오씨는 『한일간의 선린우호의 이념을 몸으로 직접 호소한 데 큰 의의가 있었다』고 말했고 다주부 다다에 교수(교린대)는 『과거의 어두웠던 시절도 언급했지만 앞으로의 양국관계 구축에 언급한 데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마루베니 상무취체역인 나카무라 류헤이씨는 『연설 가운데 대목은 일본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언급. ▷총리주최만찬◁ ○…이날 하오 7시30분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 내외 주최 만찬은 양국정상이 서로 용비어천가와 논어를 인용하면서 양국간 우의를 다짐해 눈길. 노대통령은 만찬장으로 떠나면서 사진기자들에게 손을 번쩍 쳐들며 일본말로 『수고하십니다』(고쿠로상데스)라고 가볍게 조크를 던졌는데 이때 일본 기자들은 「와」하고 탄성. ○“풍성한 열매를 맺자” 이날 만찬에는 일본측에서 현직각료 대부분,다케시타(죽하)ㆍ나카소네(중증근) 전총리등 75명과 우리측에서 공식수행원 전원,한일 친선단체 회장단 25명등 1백명이 참석. 가이후총리는 만찬사에서 1차 정상회담에 이어 또다시 분명한 사죄의사를 표명한 뒤 논어의 「언필신 행필과」라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양국의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을 다짐. 가이후 총리는 『일본국민들은 예로부터 한국의 문화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간직해 왔다』고 말하고 『일본에 전해오는 갖가지 예술작품에 백제나 신라 혹은 고려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 적지않은 것만 봐도 이 사실은 분명하다』면서 문화교류를 통한 양국국민의 상호이해와 존경이 증진되기를 기원하고 한일 우호를 기원하는 축배를 제의. 노대통령은 답사에서 『우리한일 두 나라는 과거에도,현재에도 그리고 영원한 미래에도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살도록 신이 섭리했다』고 말하고 『이 자리가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여는 시발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 노대통령은 용비어천가중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라는 첫 대목을 소개하면서 『두 나라의 깊은 관계가 풍성한 열매를 가져오게 해야하고 우정의 맑은 물이 끊임없이 샘솟게 해야 한다』고 축배. ▷아카사카정원 산책◁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명인) 일왕 내외는 이날 하오 아카사카(적판)영빈관 뒤에 위치한 아카사카 정원내 어용지주변을 20분간 산책 이날 산책은 당초 일정에 없던 것으로 24일 도쿄 도착후 추가됐는데 어용지주변 3백50m의 산책로를 따라 담소를 나누며 의리를 다져 한일 관계의 밝은 미래를 과시. 아카사카정원은 일왕실의 소유로 매년 봄ㆍ가을 두차례에 걸쳐 일본의 저명한 문화계인사를 초청해 원유회를 개최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데 이날 노대통령의 산책은 지난 5월 중순 아랍에미리트 국왕이 방문한 이래 외국 국빈으로서는 두번째라는 일궁내청측의 설명 ○적십자 유아원 방문 ▷김옥숙여사◁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는 25일 상오 일본 적십자사 유아원을 방문한 데 이어 낮에는 숙소인 영빈관에서 재일 한국부인회 간부와 오찬을 함께하고 하오에는 일본 각계여성들을 접견하는 등 분주한 하루. 김여사는 이날 상오 도쿄시내 일본 적십자사 의료센터 구내에 있는 유아원에 도착,사카다다카시원장의 안내로 유아원 시설들을 돌아보며 일본의 사회복지문제 등에 관심을 표명. 1시간여에 걸친 유아원방문을 마친 김여사가 승용차에 오르려 하자 적십자 의료센터에 있던 환자들과 일반 시민들이 몰려들어 손을 들어 환호,김여사는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답례.
  • “일본식” 쇼비니즘/장수근 국제부차장(오늘의 눈)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일왕의 「사죄」 수준을 놓고 현재 두 나라간에 첨예한 외교적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참으로 유감」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일측 공론에 한국의 불만이 토로되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선까지면 어떻겠는가고 우리 속을 떠보는 보도를 흘리는 국면에까지 이른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가슴 아프게…」 만으로는 과거에 대한 반성언급이 명확하지 않고 또 책임의 주체가 일왕임이 명시되지 않기 때문에 받아 들일 수 없다며 거듭 일본의 성의 있는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같은 외교적 수사를 동원한 일본의 말장난 말고도 근자에 일본에서 돌출하고 있는 「일왕사과 위헌론」등 정치권의 동향과 극우단체의 반한시위등을 보는 우리의 심사는 몹시 착잡하다. 과거는 따지지 않더라도 일본이 우리의 이웃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 그러나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과 일본인들은 그들을 선린으로 여기기에 지나치게 무례하고 오만한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해왔다. 그 숱한 망언이 이를 방증하고있다. 과거 구보타(구보전)를 비롯,『노태우대통령이 일본의 방위정책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란 15일의 이시가와(석천)망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한나라의 주체성과 심지어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극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다. 이같은 망언이 행여 한때 한국을 식민통치했다는 우월감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라면 일본이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 되긴 더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진정 일본이 아키히토 일왕이 노대통령 환영 만찬에서 할 인사말중에 담겨 있듯이 『양국간의 유대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면 과거에 대한 겸허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게 변함없는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거나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는 등의 말로만의 사과가 아닌 가슴으로부터의 사과다. 우리에게 역사가 소중한 까닭은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의 자료로 삼아 다시는 같은 잘못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데 있다. 또 그래서 역사는 그것의 미추를 떠나 객관적으로 기술돼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 대해서는 맹목이 된다』했다. 다가오는 21세기 태평양 시대의 주역을 탐내는 일본인들이 지금 엄계해야할 것은 바로 과거를 분식하고 억지를 부리는 일일 것이다.
  • 「당위」와 「호도」와… 현해탄에 “사죄파고”/서울의 시각

    ◎“주체분명히… 일왕이 직접 솔직하게/과거청산 없인 진정한 동반자관계 기대난” 오는 24일로 예정된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두고 한일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인해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노대통령의 방일시 아키히토(명인)일왕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수준을 놓고 양국정부가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방일까지 불과 열흘도 남지않은 시점에서 이 문제가 원만하게 처리되지 못할 경우 양국간에는 자칫 불편한 관계마저도 초래될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 노대통령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3개국 순방을 연기하면서도 일본방문만은 예정대로 실현시키겠다고 한 것은 다름 아닌 「다가오는 21세기를 맞아 아태시대를 함께 이끌어갈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협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는 첨단과학기술,산업기술협력,통상 등 보다 경제적 실익이 있는 분야로 양국협력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는 정부방침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방된지 45년이지났건만 과거에 대한 협상은 아직 완전하게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달 30일 한일외무장관회담을 통해 재일한국인차별의 상징이면서 역시 과거청산문제의 일환인 지문날인제,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의무 등 이른바 4대악 제도의 개선에 양국간합의를 이끌어낼 때만해도 일왕의 명백한 사과표명문제는 그다지 표면화되지 않은 다분히 「잠복성 이슈」였다. 이 문제는 노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가진 주한일본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일본이 한일 양국간의 과거사에 대해 사과의 주체임을 명확히 해야하며 사과발언도 아키히토일왕에 의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양국간 최대현안으로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일본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4역(간사장ㆍ정조회장ㆍ총무회장 참의원의원회장)이 회동,『한국에 대한 유감표명은 84년 고 히로히토(유인)일왕이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했던 수준 이상을 벗어날 수 없고 특히 이번에는 일왕 대신 가이후(해부)총리가 해야만 한다』고 결론짓고 이같은 의견을 일행정부에 전달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양국간의 국민감정까지 겹쳐 사태는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게 현재의 상황이다. 일왕의 사과수준에 대한 양국간의 입장차이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우리측은 이번 방일에서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사과표명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일본의 상징인 아키히토 일왕이 직접 한국민을 상대로 이를 밝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84년 당시 일왕이 밝힌 『금세기의 한시기에 있어서 양국민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느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표현은 사과가 아닌 유감인데다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는 측의 주체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명백한 사과와 함께 사과의 주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이와관련,일본이 지난 72년 대중국국교 정상화때 발표한 양국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전쟁을 통해 과거 중국인민들에게 끼친 큰 손실에 대해 깊이 책임을 느끼고 깊이 자책한다』고 밝혔다시피 이번에도 일측으로부터 이정도 수준의 사과는 받아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깊은 자책은 분명한 사과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84년 당시의 「유감표명」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또 사과표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이번 기회에 일왕의 사과는 물론 가이후총리의 직접적인 사과표명,그리고 일본의회의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결의까지 얻어낸다는 강도높은 전략을 짜놓고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원경 주일대사와 방일에 따른 최종실무협의차 도일한 김정기외무부아주국장에게 이같은 지침을 시달,일정부측에 전달하도록 해 『과거청산및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일왕의 구체적인 사과가 있어야 할 것』임을 강력 촉구할 방침이다. 만약 이번에도 일측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사과표명을 얻어내지 못할 경우 내년초로 예상되는 일왕의 방한을 심각하게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노대통령은 이번 방일로 인해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고있으며 방일성과에 대한 국내 평가와 관련,자칫 잘못되면 「통치력의 위기국면」까지 초래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지난번 노대통령의 3개국 순방연기 발표때 일본도 연기했어야만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측의 이러한 강경한 방침에 비해 일측은 『천황은 「국민의 상징」이며 헌법상으로도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 존재일 뿐이므로 그의 발언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나아가 가이후총리가 「국민의대표」인 만큼 그가 직접 나서 유감표명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에 대해 『엄청난 경제력 상승에 힘입어 일본도 이제는 타국에 의해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자존심 외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양국간의 이같은 입장차이에도 불구,방일을 전면 취소하는 최악의 카드를 쓰지 않고 방일직전까지 절충을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양국간 협상이 어떻게 결말지어질지는 모르지만 이번에도 일측이 과거청산과 관련,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어물쩡 넘기려 한다면 한일 양국간의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양국민간의 앙금은 더이상 치유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 문제는 해결의 열쇠가 일측에 있기 때문에 전후처리과정에서 유태인 및 이스라엘정부에 대한 완벽한 보상을 한 서독과 같이 일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나설 때만 말 그대로 「양국간의 밝은 미래」로 나아갈 것으로 보여진다. ◎동경의 입장/자민당선 84년 유인발언 수준 고수 압력/죄과 반성않고 경협구실,우회 속셈 오는 24일부터의 노태우대통령 일본공식방문을 불과 1주일 남짓 앞두고 한일 양국간에는 일왕의 「사죄의 말」을 둘러싸고 새로운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핵심은 반성의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군국주의 일본에 강점당해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한국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다 진지하고 명확한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대동아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제국을 전쟁의 참화속에 몰아 넣었던 일본은 과거의 죄과를 반성하기는 커녕 여러가지 이유를 둘러대며 사죄를 거부한다. 강한자 앞에서는 비굴하며 약해 보이는 존재 앞에서는 무차별 짓밟으려 드는 일본인 특유의 교활한 근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적 자존에 직결되는 감정의 문제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안고 있다. 한국측의 요구는 물질적 보상에 있지 않다. 『잘못했다』라는 한마디 사과의 말을 정신적 위자로 바라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대통령도 14일 상오 청와대 정원에서 열린 일본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이같은 뜻을 밝혔다. 노대통령은 임진왜란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예로들며 지난 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때 쇼와(조화)일왕이 표명한 「유감의 뜻」은 『사죄인가 아닌가가 확실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하고 아키히토(명인)일왕이 말할 내용은 쇼와일왕보다 더욱 진전된 사죄표현이 되도록 기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짧은 기간이었지만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잘못되었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사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강한 쪽이 넓은 마음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괜찮습니다. 이제부터는 잘해 나갑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한국국민이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같은 한국측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측은 짜증과 불쾌감까지 나타내며 인색한 반응을 보인다. 자민당의 한 수뇌는 14일 밤 이문제에 관해 『더 깊은 내용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며 애당초 우리들이 이런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이 수뇌는 식민지 지배와 더불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에 의한 임진왜란까지 예를 들며 『히데요시까지 끌어내는 것은 (일본측이)땅에 꿇어 앉아 빌어도 부족하다는 말인가』라는 망언에 가까운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이날 상오 오자와이치로(소택일랑) 간사장을 비롯한 자민당4역은 모임을 갖고 아키히토 일왕이 말할 내용에 관해 『쇼와일왕이 말한 내용보다 더 진전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이를 정부측에 전달했다. 일본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에 관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반성의 빛을 보인다. 그러나 그 반성은 솔직ㆍ명확한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있기 때문에(경제적인)협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민당수뇌의 표현대로 오만한 자세의 그것이다. 올바른 역사인식하의 반성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일본의 「천황」과 총리는 침략행위를 저질렀던 국가에 대해,원수나 수뇌가 방일하거나 자신의 상대국을 방문했을때 「과거의 역사」를 반성한다는 말을 해왔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유감의 뜻」 표명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같은 침략국이었던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몇번이나 반복했던 명확한 「사죄」와는 다르다. 85년 5월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패전 40주년을 기념하는 연방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전쟁과 폭력지배 아래서 억울하게 숨진 많은 사람들을 애도합니다.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앗긴 6백만 유태인,전쟁에 시달렸던 모든 민족,그중에서도 소련ㆍ폴란드의 무수한 사자,레지스탕스의 희생자를 생각하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달랐다. 지난 68년 3월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방일했을때 쇼와일왕은 『귀국과 일본은 함께 아시아의 일원으로서,또 예부터 깊은 관계를 가진 사이로서 우호적인 접촉을 계속해 왔습니다. 지난번의 대단히 불행한 전쟁후에도 이 전통적인 관계는 급속히 회복되었습니다』라며 얼버무렸다. 74년 포드미 대통령의 방일때에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상접하는 양국은 2세기에 걸치는 연대를 통해 여러가지 기복은 있었으나…』라고 전제하고 『한때 참으로 불행한 시대를 가졌던 것은 유감이었습니다』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또 78년 10월 등소평 중국부총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에도 『양국의 오랜 역사 사이에는 한때 불행한 일도 있었습니다만 과거의 것으로 끝나고…』라고 말했다. 일본의 가장 큰 피해국이었던 한국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말로 사죄아닌 사죄를 대신했다. 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을 맞은 쇼와일왕은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 양국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이 전부였다. 일본측이 자신의 죄과에 대한 사죄에 인색하고 있는 것은 이제 세계 초일류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자만때문이라고 외교가에서는 보고 있다. 헌법상 규정의 「상징 천황」 여부를 떠나 일본국민의 정신적 구심체 역할을 맡고 있는 「천황」은 「천황의 이름으로」 저지른 전쟁책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반성의 빛을 보여야만 한다는 것이 도쿄 외교가의 시각이다.
  • “노대통령이 「일 정책」 아는지 의문”/일 장관이 또 망언

    ◎방위청장관 14일 청와대회견 일부내용 비난 【도쿄 연합】 이시가와(석천요삼) 일본방위청장관은 15일 『노태우대통령이 일본의 방위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시가와장관은 이날 각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동북아시아제국은 일본의 군사력이 미군 삭감을 대신하는 것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노대통령의 14일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일본신문들이 전했다.
  • 솔직한 사과와 새 한일관계(사설)

    노태우대통령의 일본 방문시 있어야 할 일본국왕의 일제대한만행 사죄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와 일부 정치인들의 잘못된 인식과 오만무례한 자세에 당혹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당초 우리가 노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하는 일본국왕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한 사죄를 기대한 것은 이번 방일이 21세기를 지향하는 앞으로의 바람직한 새 한일 관계정립에 그 근본 목적이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명확한 과거의 청산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일본 국왕의 사죄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방일시 한차례 사과라는 명목아래 「유감」 표명이 있었으나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분명치 않아 불만이 많았고 한일 양국이 공히 필요로 하는 과거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정부는 당초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이고 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ㆍ캐나다 방문이 연기될 정도로 분주한 상황에서도 일본 방문만은 성사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 방일 10여일을 앞두고 일본쪽에서 한국민으로 하여금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발언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국왕은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죄는 안되고 그래서 총리가 진심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죄,그것도 한국 뿐 아니라 전체 아시아를 상대로 하겠다는 소리가 나오더니 이번엔 국왕의 사죄가 전 전대통령 방일시 히로히토 전 일본국왕이 했던 수준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본 집권자민당의 당론으로 결정되었다는 보도다. 그런가 하면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없다』 『반성하고 있으니까 협력도 하고 있는 것이다』는 등의 망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일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당혹감을 떨칠 수가 없다. 일본국왕은 상징적 존재여서 외교 등 국사에 끌어들여선 안된다면 전 왕은 어떻게 끌어들였는지 묻고 싶다. 그때의 표현에서 진전되어서는 안된다면 왜 다시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정도의 사죄라면 다시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은 핑계요 구실일 뿐이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일제의 그 만행들이 불가피한 것이었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사죄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다만 주변의 눈도 있고 해서 사죄의 흉내만 내겠다는 소리요 움직임으로밖엔 이해가 안된다. 누가 일본국왕의 사죄를 요청했는가. 그것은 일본의 문제다. 「엎드려 머리를 조아릴 것인가」의 여부는 일본이 결정할 문제이며 우리는 그런 일본을 보아가며 우리의 행동을 할 뿐인 것이다. 일본국왕의 사죄보다 더 바람직한 사죄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의 반성이요 사죄다. 그리고 그것은 요구나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다. 국왕의 사죄는 그것이 바로 스스로 우러나오는 사죄의 증거라고 보기 때문에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 일본정부와 일부 정치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언동은 그것이 헛된 기대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한일간에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고 완충역을 해야 할 일본의 이른바 지한파ㆍ친한파 정치인이란 분들이 전혀 도움이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불을 지르고 있는 사실에 더욱 분노를 느낀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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