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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일 새 3각관계(한·일수교 30년)

    ◎일의 「남·북 줄타기 외교」 대비해야/대북 수교협상 자세따라 한·일갈등 소지/끊이지않는 「망언」… 선린의 앞날 불투명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한일양국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에 서명한 이후 양국 관계는 발전과 퇴보를 되풀이하고 있다.지난 30년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65년 2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간 무역액은 그동안 2백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3백89억 달러를 기록했다.양국간 인적 교류도 65년 1만명에서 지난해 2백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국이 이웃국가로서 결속력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한국쪽에선 「동반자」보다는 「반일감정」이나 「망언」이,일본쪽에선 「혐한」「추한 한국인」이란 단어가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한다. 지난 연말 한국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이 여느해 보다 강하게 새해를 맞는 흥분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 것을 본 일이 있다.광복 50년(일본에는 종전 50년이다),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1995년의 역사성이 양국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팔을 걷어붙일만한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몇차례 천명했듯 95년을 과거를 극복,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당국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의욕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일본과의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것 같은 공식행사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이를 반민간 단체로 볼 수 있는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으로 넘겼다.그러나 연맹측이 계획했던 행사조차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서울,부산 공연은 문화체육부의 불허로 무산됐으며,한일청소년회관의 건립계획도 변경됐다.이달 일본에서,오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것 정도가 확실히결정됐을 뿐이다. 의원연맹측이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계속 기대를 걸만한 사업이다. 양국 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차원에서 시각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한일 관계를 양자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 내에서라면 한일 양국의 이익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양국은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국가발전 전략을 꾀하고 있으며,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 이념도 같다. 일본 관계를 다루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김철수후보를 적극 지원하거나,우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익이 일치하는 구조 속에서도 양국 국민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일본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괴롭지만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미래는 없다』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군대 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 문제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이지만,일본측은 어느것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의원연맹의 지철민 사무총장은 올해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등 여당연합과 신진당이 추진하던 일본 국회의 과거사죄와 부전결의가 결국 신진당이 불참한 채 반성과 평화추구라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때를 맞춰 터져나온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외무장관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이 아직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대북 쌀 제공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자세는 우리 국민과 정부 당국자들이 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 우려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가.일본은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한국민은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이끌어낸뒤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저울질하는 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며 이문을 챙기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올해가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서가 아니라,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에,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본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는 또 한차례 갈등하며 후퇴의 시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측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월 고베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구호물자를 보낸 바 있다.전문가들은 광복후 50년이 지나고 양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교체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양국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인식을 전세대보다는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낮에는 반일,밤에는 친일」이라는 식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은 있다」의 저자 서현섭씨(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는 『한일관계의 지난 50년은 두나라 국민이 무시(DISREGARD)→불신(DISTRUST)→혐오(DISLIKE)라는 3D를 만들어온 세월』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의 50년은 세 단어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DIS」 세글자를 떼어버리고 상호인정(REGARD)→신뢰(TRUST)→선린(LIKE)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관계 30년 일지 ▲1965년 6·22=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서명 ▲8·28=한일협정 반대 학생 데모 및 위수령 발동 ▲12·18=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발효 및 주한·주일대사관 상호개설 ▲1966년 1·17=한일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발효 ▲5·27=일본 문화재 2천3백28점 반환 ▲19 67년 6·30=사토 에이사쿠 일본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취임식 참석 ▲1970년 6·16=한일 정기여객선(부관페리호) 취항 ▲1971년 2·5=일·북 재일교포 북송합의서 조인 ▲1973년 8·8=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1974년 8·15=조총련계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 ▲1975년 9·15=조총련계 동포 성묘단 모국 방문 ▲1982년 7·26=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외교 문제 비화 ▲1983년 1·11=나카소네 일총리 첫 공식 방한 ▲1984년 9·6=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일 ▲1986년 5·18=일,대한 2백해리 어업수역 선포 ▲7·24=후지오 문부상 교과서 왜곡관련 망언 ▲1990년 5·24=노태우대통령 방일 ▲9·24=가네마루 자민당부총재 등 3당 대표 방북,일북수교 원칙 합의 ▲1991년 1·9=가이후 총리 방한,한일 우호협력 3원칙 발표 ▲1992년 7·6=일본정부 종군위안부 조사결과 발표,정부관여 인정 ▲11·8=노태우 대통령 실무 방일 ▲1993년 10·4=사할린 동포 관련,한일 실무협의회 ▲11·6=호소카와총리 실무 방한 ▲1994년 3·24=김영삼대통령 방일 ▲7·23=무라야마 총리 방한 ▲1995년 1·19=한국정부,고베지진에 구호품 전달 ▲6·5=와타나베 전외상 한일합방 관련 망언 ▲6·14=일본의회 과거 반성,평화 추구 결의 ◎지표로 본 양국관계/교역규모 급속 증가… 1백85배 늘어/경기둔화·국민감정 악화… 90년초 주춤/대일 누적적자 1천억불 시정 과제로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80년대 말까지 교역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90년대 초 국내 경기둔화와 노사분규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그러다 엔고에 힘입어 지난 해부터 기계류와 부품을 중심으로 산업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30년간 누적돼 온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수출은 4천4백만달러였다.이것이 지난 해에는 1백35억2천만달러로 늘었고,대일 수입도 1억6천만달러에서 2백53억9천만달러로 커졌다.교역규모만 1백85배 신장한 셈이다. 반면 교역확대속에 65년 1억2천만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가 86년 50억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 해에는 1백억달러 돌파(1백18억6천만달러)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까지 남겼다.그간의 누적적자만 이미 1천억달러를 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교정상화 이후 계속 늘던 대일 수출은 89년 1백35억달러를 고비로 줄기 시작,92년 1백16억달러로 떨어졌다.수입도 91년 2백11억달러에서 92년 1백9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투자가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92년 건수기준 30.5%,금액기준 17.3%로 82∼86년 평균(건수 47.7%,금액 49.6%)에 못미쳤다.고임금으로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악화돼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93년 초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국민감정과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뒤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해제하는 등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역액이 92년 3백11억달러에서 지난 해 3백89억달러로,일본의 한국투자는 92년 72건,1억5천달러에서 지난 해 1백32건,4억2천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교역형태도 기계류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다 경공업제품을 생산,제3국에 파는 「산업간 교역형태」에서 반도체와 철강 등 중화학제품을 서로 주고받는 「산업내 교역」으로 바뀌었다.일본으로서도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일본기업들의 투자도 저임금을 겨냥한 해외 생산기지화 전략에서 전략적 제휴형태로,기술협력도 한국의 일방적 기술이전 요구가 아닌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류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엔고 지속과 세계경제의 지역주의화,미국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무역마찰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협력의 끈을 단단히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기업을 적극 유치,대일역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양국관계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성숙돼 갈 것이다.
  • 와타나베 공직사퇴/일 민간단체서 촉구

    【도쿄 연합】 일본 마쓰야마시의 민간단체인 「새로운 침략자를 만드는 전쟁찬미 결의 반대 모임」(대표 추야미지자)은 16일 항의문을 통해 한일합방조약이 원만하게 체결됐다고 망언한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부총리는 의원직 등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 일본… 상처낸 자리 쑤시고 되후비고(박갑천 칼럼)

    『누에와 같다』는 일본말이 있다.「누에」는 딱새과에 속하는 호랑지빠귀를 이르는 한편으로 전설상의 괴상한 동물을 뜻하기도 한다.『누에같다』고 할때는 후자쪽이다. 「헤이케모노가다리」(평가물어:권4)에 무장이며 가인인 미나모토노요리마사(원뢰정)가 누에를 쏘아죽였다는 얘기가 나온다.이 괴물의 모습은 이렇다. 즉,머리는 원숭이요 몸뚱이는 너구리이며 꼬리는 뱀이고 손발은 호랑이인바 우는소리가 호랑지빠귀 비슷했다.이괴물 따라 정체불명인 사람,아리송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기이한 느낌을 주는 사람을 『누에같다』며 빗대었다. 그말그대로 누에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나라가 일본이다.아리송하게 처신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들에게는 또 「우미센 야마센」(해천산천)이란말도 있다.뱀이 『바다에 천년,산에천년』살면 용이 된다는 말을 줄여서 쓰는 것인데 그렇게 풍상을 겪는사이 교지가 발달했음을 이른다.그 「우미센 야마센」의 나라가 일본아닌가 한다. 「망언」으로 표현되는 「소리」를 한두번 나달거린 것이 아니다.구보다(구보전관일낭)로부터 치자면 정부요로의 사람이 한 것만도 열번은 넘는 것 아닐는지.그들이 낸 상처를 헤집는 살똥스런 화살이다.아프고 분해서 소리치면 「그래?그럼 약을 주지」 하는양 「사과」한다.그러고서 조금있다가 또후벼댄다.이짓을 몇십년 계속해온다.당하는 우리의 대응은 어떤가.그들이 들쑤시면 왁자하게 단세포적 반응을 일으키다가 이내 사그라든다. 이웃나라끼리는 침략하고 침략당하고 하는게 대체적인 세계사의 흐름이다.하건만 한일관계는 좀 유별나다.한국은 일방적으로 당해만 오는 것이니 말이다.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은 그들을 그느르며 은혜를 베푼 나라.그 은혜를 원수로 갚아내려오는 일본이다.그맥락 따라 시나리오라도 써놓은 듯이 침략합리화발언을 뜨문뜨문 내뱉는다.「누에」낯짝이다. 며칠전 같은날짜 신문에 난 독일 콜총리의 나치학살에 대한 발언과 일본연립여당의 「전후결의안」표현의 차이는 엄청나다.전자의 솔직함에 비겨 후자는「우미센 야마센」의 말재주.이웃집이 고약할때 내가 떠나면 되지만 이웃나라 보기싫다고 나라가 떠날 수도 없다.그들 속담대로 『독사새끼는 독사(마무시노고와 마무시)』.그런 독사의 용골대질을 당하며 살아가야 할 처지가 괴롭다. 「헤이케모노가다리」 첫머리에는 노자의 말을 빈 『오만한 헤이케(평가)는 오래 못간다』는 대목이 있다.이말을 천지신명 앞에서 곱씹어봐야 할 일본이다.
  • 일 전후결의안/“전쟁만행 사죄 회피”/NYT 비판

    ◎“모호한 표현으로 의미 축소” 【뉴욕=이건영 특파원】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7일 일본 연립정부가 합의한 전후 50주년 국회결의안 내용이 진정한 사죄라기보다는 뜻을 모호하게 만들어 해석하기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도록 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이 결의안이 아시아의 이웃국가들을 안심시킬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일본정부가 결의안 문안에 과거의 침략행위와 관련해 「후회」와 「사죄」라는 용어를 빼고 「반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반성」은 일본에서 어린아이가 숙제를 잊어버렸을 때 갖는 느낌 정도로 사소한 의미라고 지적했다.이 신문은 와타나베 미치오 전일본외상의 망언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한편 일본의 침략행위를 뉘우치지 않는데 대한 반감이 한국과 중국국민이 일본을 불신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으며 다수의 아시아국가들이 일본의 재무장을 원치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보도했다.
  • 「부전」등 알맹이 뺀채 “겉치레반성”/일여당「전후결의안」합의 의미

    ◎침략·식민지 지배 범죄책임 회피/연정붕괴 우려 「물타기 결의」 변질 산고 끝이라고 꼭 옥동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본 연립여당이 6일 밤 간사장·서기장급 회담을 열어 오랫동안 논란이 벌어져온 전후 50주년 국회결의안에 합의했다.자민당내 우익정치가를 비롯한 우익세력의 집요한 반대로 무산될 뻔한 결의가 연립여당 안에서 합의에 이른 것은 사회당이 강공을 펼치고 연립정권의 붕괴를 우려해 자민당이 양보한 결과다.또 와타나베의원의 망언에 대해 한국이 단호하게 반발한 것도 합의를 촉진시켰다.이제 남은 절차는 야당인 신진당과 협의를 거쳐 중·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이다. 합의안이 산고 끝에 나왔지만 그 내용은 피해당사국 주민에게 실망스러운 것들이다.합의안에는 자민당이 반대해온 「침략행위」·「식민지지배」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하지만 당초 내건 「사죄」나 「부전결의」라는 말은 모두 빠졌다.결의안의 제목은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에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가 돼버렸다.「침략행위」라는 말도 「침략적 행위」라고 바뀌었다.외무성이 영어로 번역하면 「Acts of Aggression」으로 똑같다고 유권해석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한자어권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물타기수법」에 불과하다.많은 역사가가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내용에 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본총리들이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를 반성한다』고 말한 것보다도 후퇴한 형태다. 또 일본의 책임을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세계 근대사에 있었던 식민지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집착해 우리나라가 이런 행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비켜나갔다.일본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일본 국회의 결의안이 서구 제국주의국가보다는 아시아국들을 향한 선언이라는 성격이 강한데도 책임부분을 모호하게 만든 것이다. 국회결의가 되더라도 중요한 것은 후속조치다.결의는 법적인 효력을 갖는 문서가 아니다.단지 선언일 뿐이다. 결의내용이 비록 형편없어도 성의 있는 후속조치가 따른다면 일본이 어느정도 반성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여당안을 마련하는 논의과정에서 보듯이 일본의 지도층에는 과거반성을 거부하는 자들이 두껍게 포진하고 있다.후속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 침략 사죄관련 주요 발언 ▲히로히토(유인) 일왕=금세기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84.9.6 전두환 대통령 방일 만찬사) ▲아키히토(명인) 일왕=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90.5.24 노태우대통령 방일 만찬사) ▲가이후(해부) 총리=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한다.(90.5.24 노태우대통령 방일 회담) ▲호소카와(세천) 총리=2차대전은 침략전쟁이었으며 잘못된 전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과 함께 분명한 매듭을 짓고 평화와 국제협조를 위해 책임을 다해 나갈 생각이다.(93.8.10 취임기자회견) ▲하타 쓰토무(우전목) 총리=일본은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에게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과 슬품을 가져다 줬다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94.5.10 참의원 본회의 소신표명연설) ▲무라야마(촌산부시) 총리=우리나라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데 대해 깊은 반성에 입각,부전 결의하에서 세계평화창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94.8 전후 50년을 향한 담화)
  • “아시아지배”일야욕 변하지않았다/이창순 국제1부·차장급(서울논단)

    일본의 역사인식은 늘 세계적인 불신을 받아왔다.그 불신의 원류는 일본인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일본은 아시아국가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을 안겨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역사인식의 윤리적 불감증이 보편화되어 왔다. 일본의 윤리적 불감증은 연립여당이 6일 합의한 국회의 「부전결의안」에서 다시 입증됐다.연립여당 대표들은 이날 많은 논란을 벌여온 국회부전결의 「여당안」에 합의했다.그러나 합의내용이 과거의 침략행위를 사죄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던 당초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여당안은 부전이라는 말 자체를 빼버려 부전결의는 이미 아니다.사죄라는 말도 연정내 협의과정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과거사를 그대로 덮어둔채 미래만을 강조하려는 책략임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그러한 책략이 논의되던 같은날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이스라엘 학살기념관을 방문한 후 『독일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나치학살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콜 총리는 나치의 학살을 둑일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잔악한 행위라고 인정하고 스스로 역사앞에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속에 존재하는 침략과 잔악행위 등을 은폐하려는 끈질긴 작업을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다.일부 세력은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고 오히려 미화하기까지 한다.우리는 그러한 왜곡된 역사인식을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발언에서 다시 본다. 그는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이다.일본이 한국을 식민지 지배한 일은 없다』는 망언을 공식석상에서 서슴없이 밝혔다.그러나 역사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그의 발언은 와타나베 한사람의 생각이 아니다.그는 일본 보수세력의 유력한 지도자중의 한명이며 대부분의 보수세력들이 그와 같은 왜곡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그러한 보수세력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친한파임을 내세워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일본의 전후사는 역사를 왜곡하는 그러한 망언의 역사라할 만큼 일본 지도층들의 망언은 계속 되풀이돼 왔다.일본의 망언은 1953년 한·일회담 일본측 대표인 구보다 간이치로의 발언으로부터 시작된다.그는 한·일회담에서 『일본의 식민통치는 한국에 유익했으며 한국점령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일본의 전형적인 「식민통치 은혜론」을 편 것이다.그의 발언은 당시 일본정부와 지도층의 적극적인 옹호를 받았다. 구보다 발언을 능가하는 망언은 65년 한·일회담 대표인 다카스기 신이치에 의해 행해졌다.그는 『식민지 지배를 20년쯤 더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너무나 파렴치한 망언을 했다.일본지도층의 망언은 84년 당시 문부상이었던 후지오 마사오와 88년 국토청장관이었던 오쿠노 세이스케에 의해 이어졌다. 일본지도층의 망언은 90년대에 들어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나가노 시게토 당시 법상은 94년 5월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정당행위였으며 남경대학살은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다.일본의 망언은 그밖에도 수없이 많다. 일본의 되풀이되는 이러한 망언은 돌발적인 현상이 아니다.그 밑바닥에는 아시아를 경시하는 일본인들의 위험한 역사인식이 깔려 있다.일본은 그러한 망언을 통해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정당화하고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일본민족의 우월주의를 심어주고 있다. 일본의 그러한 역사인식은 「치고 빠지기식」의 망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그대로 나타난다.일본의 정치·경제·학계 등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분담」으로 망언을 되풀이하고는 그것이 문제가 되면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유감표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편리한 이중적 태도를 반복해오고 있다. 일본 지도층과 보수세력들의 이러한 배타적 민족우월주의는 앞으로도 결코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그러한 일본은 지금 종전 50주년을 맞아 전후청산을 마무리하고 아시아와의 새로운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정한 사죄위에서만이 참된 선린관계는직도 먼 미래의 일로 남아있는 듯하다. 전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과거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오늘의 아시아 현실은 또 하나의 비극일지 모른다.그러나 더 큰 비극의 위험은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일본의 야욕은 오늘도 크게 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일본의 변화를 냉정히 인식하고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일본은 여전히 먼나라처럼 느껴진다.
  • 일 연립여당 「종전 50년」결의안

    일본 연립여당이 전후(전후)50년에 즈음한 국회결의안이란 것을 마련했다.작년 6월 자민·사회당등의 연립정권 발족당시 채택키로 합의한지 1년만의 일이다.그러나 「과거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미래의 평화결의를 다짐한다」는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일본은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결의안 같다는 것이 우리가 받는 인상이다. 우선 이결의안 채택을 둘러싸고 지난 1년동안 일본에서 전개된 우여곡절은 한마디로 불쾌하고 실망적인 것이었다.누구의 요청에 따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작한 일이었다.그럼에도 사회당본부 화염병투척 등 우익들의 반대는 완강했으며 결과적으로 마련된 결의안은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것으로 후퇴하고 말았다.자민당을 비롯,일본정계에 일제)와 침략전쟁이 정당했다고 신봉하는 우익세력이 얼마나 뿌리깊게 남아 있는가를 재확인하는 역설적인 기회였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기대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그동안 국왕과 총리등의 입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수없이 해왔으며 그 이상이 나올 수 없는일본의 속성과 한계를 알기 때문이었다.그럼에도 우리가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그동안의 수준에서도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결의안 내용은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사죄 및 다시는 않겠다는 다짐보다는 한마디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변명과 정당화에 급급하고 있다.그당시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은 세계열강 모두가 추구한 보편적 시대상황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간접적인 자기변명과 정당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의라면 왜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그것은 한국 등 아시아 이웃들의 지난 상처를 달래고 공존공영의 미래를 함께 개척해 나가자는 일본국회의 전후 50주년 결의안에 걸맞는 내용은 아니다.와타나베망언과 함께 일본제국주의·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일 문화원에 화염병/어제 새벽/와타나베 망언규탄/1·2층내부 불타

    ◎대학생 60여명 6일 상오6시15분쯤 서울 종로구 운니동 주한 일본대사관 광보문화원에 서울대와 동국대학생 등 60여명이 몰려가 와타나베의 망언 등을 규탄하며 화염병을 던져 3층 건물의 2층 유리창 30여장이 깨지고 2층 내부 5평과 1층 2평등 모두 7평이 불에 탔다. 불은 건물 외벽을 그을린 뒤 출동한 소방경찰에 의해 5분만에 꺼졌다. 학생들은 이날 지하철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전철역 앞 4차선도로를 점거하고 화염병 30여개를 던진 뒤 「일본군국주의 부활반대」등 구호가 적힌 유인물 60여장을 문화원주변에 뿌렸다. 학생들은 이어 15분 뒤인 6시30분쯤 안국역 지하구내로 들어가 뒤쫓아간 경찰에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 5개를 던지는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민단도 “규탄” 담화 【도쿄 연합】 재일 한국민단 신용상 단장은 6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부총리겸 외상의 망언에 대해 『일본의 식민지정책으로 일본에 정주하게 된 재일 한국인들은 어처구니 없고 주체하지 못할 분노를 느낀다』고 규탄했다.
  • 와타나베 사과와 사실/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올해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가 응징된 지 50주년을 맞는 해다. 아시아 여러나라의 국민들은 올해가 「밝은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랐다.가장 쓰라린 경험을 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과거보다는 미래를 개척하자』는 말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온 터이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고 있는 요즘 일본에서의 움직임은 주변국들이 충분히 우려해야 할만큼 거꾸로 가고 있다.지난해 연립정권을 세우며 스스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국회에서의 부전결의는 우익세력의 반대로 이미 그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다.자민당 등 일부 우익세력이 반대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말들을 보면서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본의 역사인식에 있어서 윤리적 불감증은 지난 3일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발언에서 다시 한번 입증됐다.친한파라는 그는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으로 무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일본이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지만 식민지 지배를 한 적은 없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와타나베는 5일 파문이확산되자 서둘러 사과했다.그의 「코멘트」는 이렇다.『원만히라는 단어를 취소하고 사과한다.일본이 36년동안의 조선반도 통치기간동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 점을…인정한다.내 발언의 취지는 한일합방조약이 「이미 무효」라는 65년도 한일기본관계조약을 뒤집어서는 안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일본어로 오와비라는 말로 사과한다고 했다.오와비는 사죄에는 못미친다.미안하게 됐다는 뉘앙스가 강하다.일본에서 사과한다고 할 때 오와비라는 말을 자주 쓰기 때문에 이에 대해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하지만 내용을 보자.그는 그저 「원만히」만 취소했다.무력에 의하지 않았다는,사실과 다른 말은 그대로다.또 식민지지배가 아니라 통치했을 뿐이라는 기본 인식도 그대로다.그의 「사과」는 과거 여러번 되풀이됐던 망언들과 마찬가지로 말만의 사과일 뿐이다. 와타나베식 사과에서 보듯이 일본의 지도층은 과거 침략의 역사,만행의 역사를 반성,새출발을 위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그러면서 미래를 함께 개척하자고 강조한다.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응시하고 있는 사이 그들은 다시 과거사를 뒤집으려 하곤한다.바로 일본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때문에 여러가지 낙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지역에는 긴장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우호적 강도(외언내언)

    일본의 한국강점은 1870년 일본정부내에서 대두된 「정한론에서부터 비롯된다.대륙진출의 침략정책을 주장한 「정한론」은 청일·러일전쟁을 거치면서 구체화되었고 1905년 마침내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는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체결로 이어진다.1910년 한일합방 이전 나라의 외교권·자주권을 빼앗기고 일본 통감부 설치를 허용한 을사5조약은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소멸을 의미한다. 1905년 11월16일 일본 칙사 이토(이등박문)는 한국정부 대신들을 그의 숙소에 납치해놓고 조약체결을 강요했다.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음날 덕수궁에서 군신회의를 개최토록 했다.궁궐 안팎은 완전 무장한 일본군이 몇겹으로 둘러싸고 있었으며 서울시내 전역을 철통같이 방비한 일군은 각 성문에 야포와 기관총까지 걸어놓고 있었다. 삼엄한 무력시위 속에 대신회의는 하오 8시까지 계속됐으나 일본의 제의를 거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이토와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는 폐회후 돌아가는 대신들을 위협,강제로 회의를 열게 한뒤 11월18일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고종황제의 윤허도 받지 않은 채로. 조약이 체결된 4일후 고종은 미국인 헐버트를 미국무장관에게 보내 한국정부의 입장을 전한다.이 밀서에서 고종은 『짐은 총칼의 위협과 강요 아래 체결된 소위 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한다.짐은 이에 동의한 적도 없고 금후에도 결코 아니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을사조약 체결이후 이를 반대하는 순국항쟁이 국내외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은 조약체결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을사조약은 불과 90년전의 역사적 사실이다.그런데도 와타나베 전일본 외상은 『한일합방조약은 우호적으로 원만히 체결됐다』고 망언을 늘어놓았다.남의 집에 침입한 강도가 『우호적으로 강도짓을 했다』는 거나 무엇이 다른가.일본 정치지도자와 지식인들의 역사왜곡이 언제 바로잡힐 것인지 한심하다.
  • 일제침략사 미화/정치인 망언 비판/중 광영일보

    【북경 연합】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앞두고 일부 일본의 정치인들이 일제 침략행위를 미화하고 있는 망언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겨냥,중국관영 광명일보는 6일 『어떤 호도와 개변으로도 일본 군국주의의 죄행부가 공로부로 탈바꿈할 수는 없다』고 비난했다. 광명일보는 이날 「죄행부가 어떻게 공로부로 바뀔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의 유명정치인인 오쿠노(오야성량)와 나가노(영야무문)가 지난달 29일 도쿄 무도관에서 열렸던 이른바 「아주공생제전」에서 또다시 일제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망언을 늘어놓은 것을 비판했다. ◎와타나베 전외상/역사·수치도 몰라/일지 사설 【도쿄 연합】 일본 아사히(조일)신문은 6일자 사설을 통해 한일합방조약이 원만하게 체결됐다고 밝힌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외상의 망언을 역사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정치가의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아사히는 이 사설에서 와타나베의 발언내용을 그대로 소개하면서 자민당 실력자의 인식수준이 그 정도라면 과거를 반성하는 국회결의를 할 계제가 못된다고 지적했다.
  • 와타나베,망언 사과/“한·일 합방 「원만히 체결」 부분 삭제돼야”

    【도쿄=강석진 특파원】 한일합방 관련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일본 외상은 5일 언론매체들에게 성명서를 배포,자신의 발언에서 한일합방이 『원만히』 체결된 것처럼 시사한데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와타나베 전외상은 이 성명에서 『나는 일본의 36년에 걸친 「한반도 통치기간」중 매우 유감스럽게도 한국인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점을 「개인적으로」 솔직히 인정한다』면서 자신의 발언중에 『「원만히」라는 단어는 삭제돼야 하며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일본이 한반도를 통치한 적은 있어도 「식민지배」를 한적은 없다고 부인했던 대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와타나베 전외상은 또 한일합방조약에 따른 한반도 점령에 대한 『도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 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식민지 지배 깊이반성/일 정부 대변인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정부 대변인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관방장관은 5일 자민당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부총리겸 외상이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하게 맺어졌다고 망언한 데 대해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는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고통을 준 사실이 있었던 만큼 우리는 이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가라시장관은 그러나 와타나베의원의 발언자체에 대해서는 『정부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고 말해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 와타나베 망언은 민족모독이다(사설)

    오늘은 현충일이다.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영령들께 머리 깊이 숙여 절하는 날이다.우리가 오늘 절하고 뵈올 분들 중에는 6·25전쟁에서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유무명의 국군 용사도 있고 일제식민지배하에 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갖 신고를 겪은 독립지사 열사들도 계시다.특히 나라 잃은 설움속에 만리타향을 헤매며 적신을 탄알삼아 침략국의 심장에 타격을 가하려고 생명을 초개같이 버렸던 분들이 묻혀 계시다.광복한지 50년에 이르고도 분단의 운명 때문에 미처 못모신 분들의 유해를 송구해하며 우리는 오늘을 맞고 있다. ○현충일 아침에 듣는 일 망언 바로 그 현충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의 해괴한 망언과 접한다.침략의 야심으로 왕비시해의 만행까지 서슴지않고,옥새찍기를 거부한 국왕을 겁주기 위해 온갖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물리력을 다 동원하여 강압으로 성사시킨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이란 것을 『원만히 체결된 조약』일 뿐이라고 망령되게 우기는 사람이 하필 일본의 외교행정을 대표하던 전임 외무장관이다. 그것은 우발적이고 일과적인 말이 아니다.악의적이고 계획된 민족모독의 망언이다.망언 레이스의 선수가 「와타나베」로 이어졌을 뿐 51년에 「요시다 시게루」를 시작으로 53년에 「구보다」가,64년에는 「오노」가,88년에는 「오쿠노」가 이어 뛰고 오늘 「와타나베」가 또하나의 계주선수로 등장한 망언의 집요함에 우리는 넌더리가 난다. ○일과 아닌 계획적 망언계주 그 집요함이 증명하는 것은 이 나라가 지닌 근원적인 부도덕성이다.와타나베의 교언이 가증스런 것은 『공식문서 어디에도』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 했다는 단어가 씌어있지 않다고 한 대목이다.개인이 볼모상태에서 인정한 문서도 억압이 풀리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바로 잡는다.국가간의 조약들에서 강압이 이뤄진 것은 역사가 바로 잡는다.그것이 국가간의 양식이고 도의다.일본은 그것을 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뒤집기 위한 망언선수를 내세운다. 망언이 있을 때마다 확인되는 것은 앞으로도 그것이 고쳐질 징조가 안보인다는 것이다.총리로부터 주요장관에 이어지는 거물들의 이어달리기가 전외무로까지 이른 망언계주는 우리에게 분노보다 참담한 실망을 안겨준다.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양심을 비치는 거울이다.그것이 일본의 운명이기도 하다. ○도덕적 미성숙의 나라 일본 비록 경제적으로는 거인의 체격을 지녔지만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 역할이 일본에 맡겨질 수 없는 것은 일본이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지적이다.우리는 일본이 그런 나라로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두나라의 운명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일본이 도덕적으로 거듭나 우리곁에 있기를 바란다.그러나 여전히 일본은 선의를 저버린다. 나라사이의 역사도 순환의 원리를 겪는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문명사의 중심이 동북아에 있을 때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그들이 문명의 주도권을 바꿔쥔 서양을 받아들였을 때 한민족은 그들의 흙묻은 발아래 짓밟혔지만 앞으로 다가 오는 태평양 문화권의 시대에는 한국민족이 뼈대 곧은 중심국으로 설 것이다.그 기운은 일본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망언·취소의 놀음도 끝내야 국교정상화 30년을 맞으며 『올바른 역사인식의 바탕으로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정립』하자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제의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영리한 그들도 당연히 알고 있다.그런데 여전히 이런 망언을 뱉어놓는 것은 세계사람들에게 그들의 순화되지 못하는 악의의 본성을 들키는 일이라고 할수 있다. 수치로운 일이다.일본의 생각 깊은 사람들이 나서서 이 소멸될줄 모르는 불순한 인자의 소탕에 힘쓰기를 당부한다.그리고 이제 망언과 취소의 놀음도 여기서 끝내주기 바란다.
  • “「와타나베 망언」 한 일 장래에 장애”/이 총리 유감표명

    ◎일은 반역사적 발언 가볍게 생각말라 이홍구 국무총리는 5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일본외상의 발언과 관련,『우리정부와 국민 모두는 충격과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이총리는 『광복 50주년과 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전승국이든 패전국이든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나라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새기며 다시 한번 반성의 계기로 삼고 있는 때에 나온 일본 지도층인사의 상식을 벗어난 발언은 한·일관계의 장래는 물론 아시아·태평양지역 협력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미래지향적 노력에 상당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총리는 『일본측은 이런 반역사적 발언에 대해 가볍게 생각지 말고 깊은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외무부는 5일 공노명 외무장관이 주재한 실·국장회의에서 와타나베 전외상의 발언취소,또는 해명등 일본내 동향을 지켜보아가며 후속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 와타나베망언 강력 대처/당정방침/“파렴치한 역사왜곡”… 취소 요구

    정부는 4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일본중의원 의원의 한일합방 조약 망언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강력히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논평을 통해 『한일합방조약은 우리민족의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체결되었음이 명백하며 따라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히고 『특히 와타나베의원의 발언은 다시한번 일제 36년 식민지 지배의 쓰라린 역사를 상기시키는 시대착오적인 망언으로 부총리겸 외무부장관까지 역임한 인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무부는 이와 관련,일단 일본정부의 조치여부를 지켜본뒤 체계적인 대응을 해나간다는 방침을 정했다. 민자당의 박범진대변인도 이날 성명을 내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파렴치한 망언을 즉각 취소하고 사과하라』면서 『일본의 일부 지도층이 망언을 계속하는 것은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지역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일 합방조약 우호적 체결/식민지지배 한적 없다”/와타나메 망언 물의 【도쿄=강석진 특파원】 와타나베 미치오(자민) 전회상은 3일 일제의 한반도 강점(1910∼1945)의 근거가 됐던 한일합방조약은 우호적으로 체결됐으며 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지만 식민지 지배한 적은 없다고 망언,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4월 연립여당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바 있으며 최근 북한에 대한 쌀 제공을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적극 추진하고 있는 와타나베 의원은 이날 도치기현의 한 강연우 기자회견에서 『한일합방조약은 무력으로 한 거서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성립됐으며, 식민지 지배라는 단어는 전후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등 어떤 공적 문서에도 씌어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망언 와타나베 응징/광복회

    광복회(회장 김승곤)는 4일 한일 합방을 정당화하는 일본의 와타나베 전외상의 지난 3일 망언과 관련,『역사를 왜곡하는 무양심적·반지성적 인사가 일본 지도층에 포진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광복회는 이날 「와타나베 망언에 대한 입장발표」를 통해 『국권회복을 위해 피흘린 우리 민족의 웅대한 기상과 전세계의 올곧은 양심으로 와타나베를 응징한다』면서 『광복 50주년을 맞아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솔직하고 정당한 반성과 사죄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부전결의」 깨기 의도적 도발/와타나베 망언 왜 나왔나

    ◎「전후50년」 일 사회 보수화기류 팽배/자민 등 세확대 노려 「침략미화」 경쟁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외상의 망언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일본의 총리나 각료 등 지도자들은 50년대 이후 망언을 되풀이해 왔다.최근 들어서는 전후 50주년을 맞아 국회에서 부전·사죄결의를 하자는 연립정권 수립 당시의 약속을 깨기 위해 자민당의 상당수 의원들이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우리만 했느냐,그말을 넣으면 배상요구가 다시 나올 것이다,전쟁희생자들을 욕되게 한다」는 따위의 망언을 공공연히 해대고 있다.일본에는 양심적인 인사들도 많이 있지만 삐뚤어진 역사관을 갖고 과거반성을 거부하는 자들이 이웃나라들이 충분히 우려해야 할 만큼 많다.전후 50주년을 맞아 그들은 더 많은 망언을 쏟아놓을 가능성도 높다.와타나베의 망언은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명치유신 이후 정한론 등을 주장하면서 호시탐탐 한반도 강점을 노렸던 사실,무력을 동원한 강압적 합병,식민지에서의 경제적 수탈과 민족말살 기도,징병·징용에 이어여성들을 데려다가 위안부로 삼고 전쟁말기 대부분 살해한 사실 등은 외면한다.그들은 다케시타,가이후,호소카와 등 역대 총리가 국회답변 등 공식석상에서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사실로부터 후퇴하고 있다.이들은 그러면서 미래를 함께 개척하자고 말한다.가해의 역사는 땅에 묻어버리자는 속셈이다. 와타나베는 특히 외상까지 지낸 인물로서 평소 친한파로 여겨져왔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부전결의를 반대하는 자민당내 의원들가운데는 평소 친한파로 행세해 온 인물들이 많다.이같은 사실은 이제까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자세가 어떤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뒤편에서 늘 과거 역사를 왜곡시키려는 엉뚱한 짓을 전개해 왔다.지난해에는 인체실험을 했던 부대터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인골 1백여구를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검사도 않은 채 화장하기로 결정한 바도 있다.이를 막기 위해선 그들의 가해의 역사,반인류의 만행들에 대한 확실한 뒤처리를 일본에 요구해야만 할 것이다. 와타나베는 지난 3월 연립여당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국교정상화교섭 재개를 합의했고 지난달에는 북한대표단을 만나 쌀문제 협의를 주도하기도 했다.그는 북한에 대한 쌀제공이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무라야마의 연립정권은 그렇지 않아도 국회의 부전결의 채택 문제를 둘러싸고 존립 위기에 처해 있다.어떤 면에서는 일본에서 거세지는 보수화 바람에 편승한 자민당이 이같은 연정의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3일 와타나베의 망언도 이같은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봐야할 것같다.
  • “좌익에 사회혼란 죄과 물어야 안정된다”/건국이념과 정통성

    ◎이철승 민자회공동대표 강연 우리사회의 보수우익단체 가운데 하나인 「자유민주민족회의」가 주최한 광복50주년기념 대강연회가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다음은 이 강연회에서 「자민회」의 공동대표인 이철승씨가 「건국이념과 정통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강연을 요약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통성은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의 광복운동에서 그 뿌리를 두었다.그 정신은 반공반탁 투쟁과 대한민국 수립으로 이어졌고 스탈린의 꼭두각시인 김일성의 6·25 남침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한 호국영령들의 희생으로 승화되었다. 그런데 이 땅에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이 뿌리를 내리고 그 선대들의 거룩한 희생의 혜택으로 국민들이 풍요를 구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과거를 잊기 시작했다.김일성사관의 앞잡이들은 좌익수정주의사관의 전도사 부르스 커밍스와 같은 사이비 학자들의 터무니 없는 주장을 내세워가며 우리의 현대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국내 공산당이 소련의 지령을 받아 저질렀던 제주도 반란·대구폭동·여수 순천 반란사건 등이 민중운동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6·25 남침을 북침이라고 호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우리나라 건국이념의 척추를 부러뜨릴지도 모르는 사태로까지 치닫고 있는 일차적 책임은 후대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지 못한 정부와 기성세대들에게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또한 이와 같은 사태가 역대정권의 독재성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부정할수 없다.그 독재정권하에 반국가적 좌익을 포함한 모든 반정권 세력들이 규합했다.북의 대남 통일전선 전술과 수많은 간첩침투로 지하당인 노동당을 조직했고 과거 보도연맹등의 세력과 그 가족들을 결속시켜 우리 상·하층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다행히 그들 중의 몇몇은 외형으로는 제거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학계·방송·언론계·노동계·문화계에 모두 침투했다.역사교과서 개편준거안 사건은 막을 수 있었지만 또다시 「카프」작가들의 망령이 되살아나 「태백산맥」「남부군」「여명의 눈동자」「모래시계」등과 같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문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민족진영에서는 「태백산맥」을 1년전에 고발했다.그러나 검찰은 그 책이 수백만의 독자를 확보한 지가 이미 오래라는 이유로 그 해독성을 인정하면서도 손을 못대고 있다.최근 김숙희 전교육부장관의 『6·25는 명분 없는 전쟁,그리고 월남파병은 용병이었다』라는 망언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그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즉각 북한 노동신문이 김 전장관을 두둔하는 대대적인 선전 공세를 편 것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우리는 심각히 분석해 보아야 한다. 최근 다행히 일부 유력일간지들이 소련의 6·25의 내막이란 비밀문서와 평양주재 초대 소련대사였던 스티코프의 비망록을 입수해서 그 내용을 폭로했다.스티코프는 19 46년9월 중순부터 대구폭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2차에 걸쳐 일화 총 5백만엔을 박헌영 등에게 지원했고 폭동이 끝난 후에도 소련화로 1백22만루블을 빨치산에게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현재까지 6·25남침이나 대구폭동이 민중의 자생적 항쟁이었다는 좌익의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다. 소련의 강요로백남운의 신민당,여운형의 건민당,박헌영의 공산당이 합쳐서 남로당을 만들어 남한의 폭력 적화를 총지휘 한 것도 드러났다.이제 부르스 커밍스 등의 수정사관을 신봉하던 국내 혁신진보의 탈을 쓴 정치인이나 학자및 좌익이론가들을 그들의 은신처로부터 끌어내어 주사파를 양산하고 학원과 노동계·문화 사회를 혼란케한 죄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우리 사회가 안정이 될수 있다. 지금 탈냉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남북관계는 더 험악한 냉전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김일성이 남긴 유언중에는 『광복 50주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서울에서 경축하자』는 장담을 하다 죽었다.북쪽은 지금 우리 학생및 노동운동권을 총동원하고 선동해서 그 유언을 실천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믿고 있으며 금년에는 그와 같은 책동이 극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여기서 흥청망청하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남북이 함께 망하고 우리 한반도는 19세기말과 같이 또 다시 외세의 간섭을 받는 식민지적인 존재로 타락할 수도 있다.
  • 한·일 두 지식인/상대국 「정치·사회 비평서」 화제

    ◎김용운 한양대명예교수·다나카 일탁식대 교수/왜 일본인…/힘 숭배하는 일인의식 꼬집어/한국정치…/양반정치 문민정부서 맥 이어 한국과 일본에서 지난해 시작된 「출판물을 통한 상대방 깎아내리기」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이같은 경향을 대표하는 책들인 「일본은 없다」와 「추한 한국인」의 속편이 얼마전 양국에서 각각 출판됐고 그밖에 비슷한 성격의 책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이런 가운데 한·일 양국의 지식인이 상대방을 깊이 있게,그리고 점잖게 비평·충고한 책 2권이 최근 국내에서 출간돼 눈길을 끈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가 쓴 「왜 일본인은 오만한가」(한길사 펴냄)와 일본 탁식대학 다나카 아키라(전중 명)교수의 「한국정치를 투시한다」(길안사 간)가 그것. 「왜 일본인은 오만한가」에서 김교수는 일본인의 의식구조가 힘(무력)을 숭상하는데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부한다.곧 「강함」에는 쉽게 굴복하고 약자는 무시하는 것이 일본문화의 본질이라는 분석이다.따라서 일제 때 한국인·중국인에게 저지른 만행을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고위인사의 「망언」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김 교수는 『어제는 복종했으나 오늘은 강해졌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일본식 발상은 결국 국제사회에서 외면당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교수는 이와 함께 한국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책 「추한 한국인」의 문제점에 대해서 깊이 파헤쳤다.「추한 한국인 저자규명 모임」을 이끄는 김 교수는 이 책을 쓴 직접적인 동기가 「추한 한국인」을 읽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그는 책에서 한국인의 「추한」모습으로 인용된 사례들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를 조목조목 따지는 한편 실제 저자인 가세 데아기(가뢰영명)의 실체를 폭로했다. 한편 「한국정치를 투시한다」는 19 61년 이후의 한국정치 상황을 날카롭게 비평한 정치평론서이다.지은이 다나카교수는 어려서 한국에서 지내다 52년 귀국했고,65년 아사히신문 기자로 되돌아와 한국에서 여러해 체류한 지한파 지식인. 그는 한국정치의 전통이 조선의 양반정치에 있다고 보았다.이같은 전통은 「4·19」후의 민주당 정권까지 이어지다 「5·16」으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단절됐으며,문민정부 출범으로 다시 이어진다고 풀이했다. 또 북한에 대해서는 『김일성주의라는 것이,즉 정치적 허구 위에 성립되어 있는 김일성주의 따위가 과연 철학적 비판의 대상으로 될 수 있을까』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지난 92년 일본에서 출간한 내용에 그 이후의 한국상황을 다룬 정치평론을 보완한 것으로,재일 한국인 학자 윤학준씨(63·도쿄 메지로대학 객원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일본인의 눈으로 본 것이라 잘못 이해한 부분도 가끔 눈에 띄지만 지식인의 눈으로 냉철하게,객관적으로 한국정치 흐름을 분석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 향군회·상이군경회 김 전장관 발언 규탄

    재향군인회(회장 장태완)는 12일 김숙희 교육부장관의 해임조치와 관련,성명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이 김장관의 망언에 대해 책임을 물어 해임조치한 것은 적절한 조치로서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대한민국상이군경회(회장 윤재철) 소속 회원과 가족 1천2백여명은 이날 상오 10시30분쯤 서울 강동구 둔촌동 보훈병원에서 전국상이군경체육대회를 하던중 김장관의 발언을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가졌다. 월남전 파병자단체인 「호국 6·25 파월 전상동지회」도 이날 성명을 발표,『용병이란 말은 자유수호를 위해 피흘린 희생자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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