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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망언인가(외언내언)

    일제가 조선강점이후 첫번째 착수한 전국 규모의 사업이 「토지조사」였다.합방직후 토지조사국을 만들었고 1918년말까지 계속된 이 조사작업은 식민지 경제수탈의 근간이었다.수많은 조선인 지주가 땅을 빼앗기고 더 많은 소작인들이 농토를 잃었다.역둔토 14만5천정보가 국유화되었고 4만6천여정보의 민간인 농토가 총독부소유로 바뀌었다. 토지조사 7년만에 조선에서 일본인의 토지경영은 10배로 늘어났고 면적도 4배나 증가한다.1930년 조선의 쌀생산고는 1천3백51만섬,이중 40%인 5백42만섬을 일본으로 빼돌렸다.조선인들은 만주에서 들여온 좁쌀과 콩깻묵을 식량으로 삼아야 했다.농업생산이 경제의 대종을 차지하던 때였으니 조선의 경제전체를 약탈해 간 것이다. 그뿐인가.6백여만명의 노동인력을 징용이란 이름으로 끌고갔으며 태평양전쟁중에는 50만명의 젊은이를 징병으로 사지에 몰아넣었다.심지어는 부녀자와 어린 여학생까지 종군위안부로 끌어간 일제다.그 만행을 조선인들은 36년동안 겪고 지켜 보았다. 그런데도 일본은 전후 과거역사에 대한 사죄는 건성으로 해넘기고 기회있을 때마다 식민지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망언을 되풀이해왔다.「식민지 지배가 한국에 도움이 됐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각료까지 등장했으니까. 우리에겐 광복50년,일인에겐 패전50년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문부상에 취임한 시마무라(도촌의신)는 「망언행진」을 또 되풀이했다.『태평양전쟁은 일본의 침략전쟁이 아니며 따라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보수 우익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지만 그런 망언을 들으며 「일본인의 왜소한 심리」에 분노와 함께 연민을 느낀다. 『전쟁에서의 죄악과 옳지 않았던 일을 공평하게 판단하려면 역사의 진실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는 바이츠제커 전 독일대통령의 최근 일본방문 강연은 옹졸한 일인의 망언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 시마무라 망언/일,조기진화 총력/무라야마 총리 “유감”표명

    ◎한국에 진의 설명… 파문 최소화 노력/“과거 반성” 공식입장 거듭 강조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시마무라 요시노부(도촌의신) 신임 문부상의 망언 파동과 관련,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는 10일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한편 한국정부에 발언의 진의 등을 설명,파문을 조기진화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날 노사카 고켄(야판호현) 관방장관과 대책을 협의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히면서 『내각의 방침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고 말해 지난해 총리가 소신표명 연설에서 밝힌 전쟁관과 과거반성이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시마무라 문부상은 이날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대전에 있어 우리나라의 침략행위나 식민지 지배 등이 수많은 사람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초래한데 대해 깊이 반성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침략성을 부인한 9일 망언을 일부 수정했다. 그는 이어 『나 자신은 경험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며 인간을 어리석게만드는가,그 결과는 지극히 비참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와 관련,노사카 관방장관은 이날 시마무라 장관의 기자회견에 앞서 그를 총리관저로 불러 『진의가 어떻든 아시아 여러나라가 다르게 받아들인다면 (아시아제국과 일본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게 된다.유의해 주기 바란다』고 엄중 주의를 주었다. 노사카 장관은 그러나 시마무라 장관의 진퇴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대처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어 사임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 자세를 보였다.
  • 일 문부상의 망언 추태/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을 방문중인 독일의 바이츠재커 전대통령은 최근의 도쿄강연에서 일본은 과거에 대해 눈을 닫지 말라고 충고했다.과거에 눈을 닫는 자는 현재에 대해서도 장님이 되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8월 한 여름에 던져진 그의 말은 일본에게는 적지않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이 8월 일본이 침략사에 있어 첫 과실로 한국을 병합했는가 하면 끝내 침략 한길을 걷다가 연합군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의 양심」으로 불리는 그의 말도 일부 일본인에게는 「쇠귀에 경읽기」인 듯하다.특히 9일 상오 새 각료로 임명된지 하루도 안돼 망언을 내뱉은 시마무라 요시노부(도촌의신)새 문부상의 경우는 「저런 사람이 어떻게 2세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문부상을…」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한심하다.그렇지 않아도 망언을 걱정한 무라야마 총리는 과거를 반성한다는 취지의 소신표명발언을 복사해 8일 저녁 신임각료에게 나눠주면서 언동에 조심을 당부했던 터였다. 시마무라의 발언은 「거듭해서 사죄할 필요가 없다.1940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일본인구의 70%를 넘는다」 「서로 침략하는 것이 전쟁이다.일본만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잘못했다면 국제공헌하든가 보상하는 것이 전향적인 것 아닌가」라는 말로 요약된다. 회사 사원이 70%가 넘게 바뀌었다고 회사의 권리 의무가 변동되는가.잘못에 대한 용서와 화해는 가해자의 진심과 성의있는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이 방법으로 이만큼 하면 되는 것이라고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문이 확대되자 그는 10일 「설명이 부족했다.발언이 오해를 받아 한국을 자극한 것은 유감이라고 생각한다.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가 많은 사람에게 참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을 준데 대해 깊이 반성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변명했다. 올해들어 망언으로 한국인들을 분노케 했던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파벌소속인 그는 하루 사이에 1백80도 말을 바꾸는 기민함을 보이고 있다. 그가 변명으로 늘어 놓은 말이 진심으로 믿기길 바란다면 「기민함」보다는 자신의 망언소동에 대해 단호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 일본에선…/한국 문화의 확산(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9)

    ◎일인들,가라오케서 우리가요 열창/TV엔 조용필·계은숙 등 심심찮게 출연/풍물놀이판·영화제 등 열리면 관객들 몰려/청소년층은 한국에 “무지”… 교류통한 저변확대 바람직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저녁이 찾아오면 한국 음식점과 술집들이 모여 있는 도쿄 아카사카의 거리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곳곳에 네온사인이 켜지고 분위기는 술렁거린다.거품경제 뒤 경기는 풀리지 않고 있지만 곳곳의 가라오케에는 그래도 노래가 흐른다. ○문화저항감 낮은편 이들 가라오케에는 「가수무 아푸게(가슴 아프게),가수무 아푸게」를 열창하는 일본인들이 곧잘 눈에 띈다.돌아와요 부산항에라든가,만남·노란 샤쓰입은 사나이·한 오백년·칠갑산·나들이 등등 한국의 인기가요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일본인들을 주위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신주쿠 닛포리 등 한국인들이 밀집 거주하는 지역은 물론,한국인들의 발길이 잦지 않은 뒷골목의 가라오케에도 한국노래는 준비돼 있고 불린다. 유선방송망으로 화면과 반주를 제공받는 가라오케에는 한국 노래가 웬만한 것은 다 구비돼 있다.특히 노란 샤쓰입은 사나이는 가끔 망언에 가까운 발언으로 한국인의 감정을 아슬아슬하게 만들지만 5공 당시의 한국 지도층과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총리가 잘 불렀던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외국문화에 대한 흡수력이 뛰어나다.관심도 많다.이곳저곳의 전시장 등에서는 외국 미술품 전시회가 끊임없이 개최된다.구미는 물론 동남아나 아랍·아프리카의 문화 소개도 활발하다.또 우리가 일본문화에 대해 갖고 있는 저항감보다는 일본인들이 한국문화에 대해 갖고 있는 저항감은 대단히 낮다.이 때문에 계은숙 등 한국가수들이 일본에 거주하면서 활동할 수 있고 조용필과 나훈아·패티김 등이 일본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이다.일본 TV에서는 한국 가수들의 출연을 심심찮게 볼 수 있기도 하다. ○탈춤수강생도 많아 노래만이 아니다.한국의 「진수」라면 영화든 전통문화든 열심히 보고 듣고 즐기는 일본인들이 꽤 있다. 서울특파원을 지낸 도쿄신문의 야마모토 유지씨는 서편제를 울면서 보았다는 말을 가끔 한다.「아리 아리랑 아리 아리랑」을 부르면서 주인공들이 비탈길을 내려오는 장면이라든가 마지막에 눈먼 누이와 동생이 밤새 소리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말한다.회사원 호사카 다다시씨도 서편제를 몇번이나 봤다고 말한다.그는 서울 경주는 자주 다녀 봤지만 서편제를 본 뒤 소리의 고향인 호남지역이 꼭 가보고 싶어져 올해초 남원까지 다녀왔다. 서편제는 지난해 봄 도쿄 삼백인극장이 「한국영화제」를 열었을 때도 일본인들의 관심을 꽤 불러 일으켰었다. 또 주일한국문화원이 개최하고 있는 한국영화 영사회에 나오거나 한국영화 비디오를 대출해 가는 일본인은 연 1만6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기도 하다.주미 한국문화원과 비교하면 한국문화를 접하려 하는 저변층이 한결 넓다는 것이 이곳 문화원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한국문화의 「진수」에 대한 관심은 이어진다. 지난달 8일부터 2주 동안 제11회 「도쿄의 여름」 음악제가 열렸다.일본 등 여러나라의 전통음악과 문화가 소개되는 가운데 한국의 봉산탈춤은 무려 이틀 동안 스케줄이 잡혔다.4백50여석을 꽉 메운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자막을 보면서 탈춤을 감상했다.이날 공연에 앞서 간단한 설명을 한 이두현 서울대명예교수는 『77년부터 4번째 공연이지만 점점 관중이 늘고 있다.봉산탈춤을 배우려는 일본인들도 많다.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도쿄풍물패의 김영삼대표는 『4년전 일본에 올 때보다 한국문화의 저변이 넓어진 것을 느낀다』면서 『한국문화의 소개에는 돈과 언어의 벽이 아직 높지만 한국문화의 진수가 일본에 오면 한국에 관심있는 일본인들은 기를 쓰고 보려고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김대표는 『4년 동안 도쿄에서 활동하다 보니 일본인들이 한국 전통문화의 역동성과 힘에 반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덧붙인다.이런 유의 한국 문화소개는 일본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또 비즈니스가 되고 있다.특히 광복 50주년을 맞는 이번 8월에는 이곳저곳에서 각종 발표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말한다고 해서 일본에 「한국풍」이 불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한국을 알고 접하고 노래 한 곡쯤 부르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다.특히 청소년들은 한국 자체를 잘 알지 못한다.이곳에 오래 근무한 한 한국외교관은 「청소년 1백명 가운데 한국을 아는 사람은 2∼3명,아는 사람 1백명 가운데 한국대중문화나 전통문화를 조금이라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1명 이하』라고 말한다. ○트로트외에는 빈약 왜 그런가.한국대중문화의 경우 일본시장에 대한 침투력이 빈약하다.정서가 비슷한 트로트풍 가요 등은 쉽게 들어오고 있지만 재즈·팝·영화 등 젊은이들이 즐길 만한 것은 우리 수준이 매우 낮거나 일본 것을 모방한 것들이 많다.흥미를 유발키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사실과 달리 한국이 일본문화의 유입을 전면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면서 문화의 쌍방향 교류에 많은 장애가 되고 있기도 하다.한국만큼 일본문화가 많이 침투한 나라도 드물다.다만 영화 등 일부만 제한을 가하고 있다.그러나 문화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일본문화가 아주 못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인상지워져 있다.문화는 교류다.그릇된 인상으로 말미암아 한국문화의 일본 전파도 장애를 받고 있다.
  • “대일협력 하더라도 경계 필요” 81%

    ◎고대 신문방송연,2천명 의식조사 결과/관계개선 위한 일 과제,사과·보상·과거청산순/식민통치 “우리에게도 책임” 67%·“일 책임” 29% 한국 국민들은 과거청산에 소극적인 일본을 미워하지만,현실적인 필요에서 양국관계는 개선될 것으로 보고있다.또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에서 우리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으며,진정한 과거청산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연구소(소장 오택섭)가 광복50주년과 한일수교3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일본은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64.6%),가장 경계해야할 나라(56.9%)로 지목돼 아직까지 반일감정이 여전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10년후 한일관계의 개선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51%가 「가까이 해야 한다」고 답변,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을 나타냈다.「현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도 43.1%에 이르렀지만,「멀리해야 한다」는 답변은 6% 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앞으로 일본에 대해 취할 태도에 대해서는 81%가 「협력은 하더라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대답했으며,「과거를 잊고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16.5%였다. 한국민들이 반일감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일본이 과거의 식민통치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68.5%)고 판단하기 때문이다.일본이 반성하지 않았다고 보는 이유로는 형식적인 과거사 사과(28%),역사왜곡(19%),망언(14.3%),충분한 배상이 없다(13.3%)등을 들었다. 이에 따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측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진정한 사과(29.8%) 물질적 피해보상(14%) 과거청산(11.4%) 무역역조해결(9.4%) 올바른 역사교육(8.4%)등을 지목했다.또 한국측에서 해야 할 일로는 상호이해(43.4%) 과거청산 (19.4%) 당당하게 맞섬(9.7%) 국력강화(9.3%)를 들었다. 과거청산을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경우,한국이 취할 태도에 대해서는 「국력을 키워 일본을 앞질러야 한다」는 견해가 45.6%로 가장 많았고,「어쨌든 대일관계를 양호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32.6%에 이르렀다.일제 식민통치의 책임에 대해서는,「일본에 책임이 있지만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55.6%로 가장 많았고,「힘없던 우리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11.4%로 나타났다.이같은 자기반성론은 젊은 연령층,고학력일수록 높게 나타났다.「일본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의견은 29.2%였다.전후 세대에게도 식민통치의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57.7%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한국민들은 이와함께 일본에 대한 경계심도 여전해,앞으로 일본이 군사대국화(58%)하고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69.7%)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이에 따라 경제(39.7) 정치(19.8) 군사(17.1)적인 측면에서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 가운데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 나라로도 일본을 지목한 응답자가 64.8%로 가장 많았다.응답자의 절반이 『한반도가 통일되면 강대국이 돼 위협을 받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3월부터 4월10일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성별,지역별,연령별 인구 비례에 따라 2천명을 대상으로 선정,실시됐으며 신뢰수준은 95%이다.
  • 일 전·현 각료/잇단 「침략 미화」 망언

    ◎오쿠노 전 법무·시마무라 문부상 발언 파문/“동아 해방전쟁” “사과 불필요” 강변/“대일신뢰 저해행위… 유감”­우리 정부 【도쿄 외신 종합】 일본의 전현직 각료들이 또다시 2차대전당시 일본의 침략을 옹호하는 망언을 해 비난을 사고 있다.오쿠노 세이스케 일본 전법무상(82)은 9일 2차대전중 일본의 역할에 대해 사람들이 『미국의 세뇌로 인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결코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쿠노는 지지통신과의 회견에서 『일부 일본인이 중국과 한국이(전쟁중 일본군에 의해 당한 고통과 관련해) 말하는 것에 동정을 보이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차대전 참전자이며 지난 80년 법무상을 지낸 오쿠노는 『일본은 미국­영국 동맹군에 의해 전쟁 선포를 강요당해 방어전쟁을 치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은 백인에 의해 식민지화된 대동아를 해방,안정된 삶을 가져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연정의 내각개편으로 새로 취임한 시마무라 요시노부(도촌의신) 문부상(자민당)도 9일 과거 전쟁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망언을 늘어 놓았다. 시마무라 문부상은 무라야마 총리로부터 임명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서로 침략을 하는 것이 전쟁』이라고 전제한뒤 『전쟁에서 이긴 측이 상대방을 침략했다고 말해지는 것이 아니냐』고 강변했다. 한편 이에 앞서 무라야마 일본총리는 새로 입각한 각료들에게 일본의 과거 전쟁 책임과 관련해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줄 것을 요구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외무부 “우려” 표명 외무부는 9일 시마무라 일본 문부상의 침략전쟁 호도 발언에 대해 『일본 정치인에 의한 거듭되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은 아시아 근린국가들의 일본에 대한 신뢰를 크게 저해하는 행위』라며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외무부 당국자는 『올바른 역사인식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관계구축에 불가결한 요소임에 비추어 볼 때 일본의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문부상이 이러한 역사인식을갖고 있다는데 더욱 문제의 심각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신당/민주/「괴문서」 공방전 가열

    ◎“「4천억」 초점 흐리려는 음모”… 결백 강조­신당/“DJ 정치자금관련 새정보있다” 으름장­민주당 「전직대통령 가·차명 계좌설」 파문에 맞물려 터진 가칭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상임고문을 겨냥한 괴문서 파동과 관련,신당과 민주당 사이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신당측은 민주당이 괴문서의 출처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고 내용의 사실 여부만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고 판단,원색적인 비난을 시작했고 이에 맞서 민주당측도 검찰조사가 야권 정치자금에까지 확대돼야 한다며 공세의 고삐를 더욱 죄고 나섰다. ○…새정치국민회의는 9일 문제의 괴문서가 뜻밖에 파문을 일으키자 「괜한 오해를 살」 공식적 대응은 자제하면서도 사안별로 허구성을 지적하는 등 결백을 주장했다. 김상임고문은 이날 『괴문서에는 포항제철 박태준회장으로부터 1백50억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1백50원도 받은 바 없고 쓴 커피 한잔조차 얻어 마신 적이 없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고문은 또 『박전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지난 92년12월9일은 박전회장이 이미국내에 체류하지 않은 시점』이라며 『괴문서는 첫머리부터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박지원 대변인은 『팩시밀리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발신자를 삭제하는 주도면밀함과 표현상의 기술문제 등을 볼 때 공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한 뒤 『증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괴문서에 과잉반응,전직대통령 비자금설에 대한 검찰의 수사초점을 흐리려는 음모에 말려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대변인은 이어 『일부 야당이 팩시밀리를 통해 괴문서를 여러 곳에 보내는 등 공작기관의 음모에 동조하고 있다』고 민주당을 비난한 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같은 일을 하는지 한심한 노릇』이라고 개탄했다. 동교동 가신 출신의 한화갑 의원은 『괴문서가 이기택씨의 팩시밀리를 통해 전국적으로 발송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누가 누구의 청부업자인지는 분명해졌다』고 이총재를 「청부업자」로 몰아붙인 뒤 『이기택씨는 한달에 꽃값만 천만원 이상씩 당비로 지출했고 심지어 자기 자동차 수리비나 자택의 정원 잔디 깎는 비용까지도 당비로 지출할 정도였다』고 원색적으로비난했다. ○…민주당은 김상임고문의 정치자금에 대한 괴문서 파동이 신당의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안길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부각시키는 데 진력하고 있다.이 파동이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도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는 생각이다.이런 맥락에서 9일에는 대변인 뿐 아니라 이기택 총재비서실까지 나서 김상임고문에 대한 공세를 계속했다. 이규택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잇따른 여야정치지도자의 비자금 의혹으로 정치적 대란을 맞이 했다』면서 검찰조사가 괴문서 파동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양문희 총재비서실장은 새정치 국민회의의 한화갑의원이 이총재를 비난하고 나선데 대해 『이성을 잃은 단세포적 망언』이라며 신당측을 자극하고 나섰다. 또다른 관계자는 『괴문서와 별도로 우리도 김고문의 정치자금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신당측이 이번 사건을 수신제가의 계기로 삼지 않고 비열한 인신공격을 계속할 때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 외언내언

    지금은 「독립공원」으로 바뀐 서대문구 현저동 101 「서대문감옥」.그곳은 우리민족에게 수난의 현장이자 민족정기의 발원지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성지다. 일제 강점기에 얼마나 많은 우리 독립투사가 이곳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마침내 처형까지 당했는가.19 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이후 악명 높은 「서대문감옥」에서 사형당하거나 옥사(옥사)한 애국지사는 1백여명을 헤아린다. 원한의 대상이었던 서대문형무소가 폐쇄되고 독립공원으로 조성되면서 김구·안창호·손병희선생등 수많은 독립지사가 수감됐던 옥사와 유관순열사가 모진 고문끝에 순국한 여옥사,애국투사들이 처형된 사형장등이 고스란히 복원됐다.1백동의 건물중 일제때부터 있던 9­13호 감방(5동)과 고문장소이던 보안과 건물,사형집행장도 퇴락한 판잣집 그대로 남겨두었다. 우리의 후손에게 역사의 산 교육작으로 남겨주기 위해서다. 91년 복원공사를 위해 발굴작업중 발견된 보안과청사 지하감방은 유관순열사가 일경의 모진 악형끝에 숨진 비밀감방.옥중에서 밤마다 만세를 불렀던 열여섯 처녀의 그 드높은 기상은 얼마나 장한 것인가.백범 김구선생도 35세때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세우려다 검거돼 17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됐었고 이승만박사도 구한말 만민공동회사건으로 이곳에 갇힌 적이 있다. 광복의 성지인 이곳 독립공원에서 5일 「광복 50주년 서대문감옥 순국선열위령 추모대회」가 순국선열유족회 주최로 열린다. 이 추모대회에 일제의 죄과를 참회하기 위한 1백여명의 일본인도 참석할 예정.이들은 일제치하에서 많은 한국의 애국지사가 투옥과 고문으로 희생되었음을 사죄하면서 『일부 몰지각한 일본 정치인의 범죄사실은폐·미화에 통분을 느낀다』고 참회한다는 것.종전후 줄곧 사죄와 망언을 되풀이해온 일인들이다. 이제 진정한 참화와 사죄가 나올 때가 아닌가.
  • 달라진 일인 관광행태(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

    ◎역사·문화탐방 늘어… 하루 3천명 입국/민족감정 표현 자제… 불신은 여전 지난달 27일 하오 3시쯤 김포국제공항 신청사에 한 중년 신사와 고만고만한 세 어린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북해도 신문기자로 13년간 일하고 있다는 일본인 준 수가와라씨(37·일본 홋카이도 히로시마타운 거주)는 휴가를 이용,한국땅을 처음 밟았다며 함께 데리고 온 국민학교에 다니는 세자녀를 차례로 소개했다. 수가와라씨 가족은 김포공항에서 잠시 머물다 같은날 하오 부산발 비행기에 올랐다.한·일간의 특수했던 역사를 더듬어 보기 위해서는 옛날 일본의 한국관문이었던 부산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그는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때 처음 들어온 부산주변의 여러 유적지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본의 식민통치를 옹호한 와타나베 전일본외상의 발언을 「망언」이라고 규탄한 한국언론의 태도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밝힌 그는 백제문화유적물이 비교적 많이 있는 부여·공주등도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26일 하오 3시30분쯤 김포국제공항 신청사 관광공사 종합안내 데스크 앞에서는 고도리씨(33·회사원)등 일본관광객 2명이 서울지도를 펴놓은 채 숙박업소 명부를 뒤적이고 있었다.나흘동안 값비싼 호텔에 투숙할 만한 여력이 되지않아 저렴한 숙박업소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관광공사 안내원의 권유로 TV와 에어컨시설이 모두 구비되어 있고 하루숙박비가 2만원 하는 종로1가 P여관에서 숙박하며 관광을 즐겼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하루 평균 4천여명.이 가운데 75%인 3천여명이 일본인 관광객이다. 한국관광의 해였던 지난해 정부가 일본인관광객에게 무사증(노비자)입국을 허용하면서부터 부쩍 늘고 있다. 관광형태도 다양하다.일본문화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백제,신라의 유적지를 찾는 역사·문화유적 관람등의 「문화관광」,제주등지에서의 골프관광 등은 꾸준한 관광상품.피부마사지를 받으려는 속칭 「때밀이 관광」도 적지않다.최근들어서는 엔고에 편승,서울 남대문·동대문 시장등지에서 쇼핑을 하기위한 「장사형 관광」도 성행하고 있다.특히 엔화 강세가 계속되면서 일본의 온천 휴양지등은 한산한데 비해 경주등 우리나라 관광지는 일본인들로 북적대고 있다. 최근 한국관광을 마치고 귀국한 일본 교직자 한국수학여행시찰단 일행 29명은 백제문화유적지가 많은 부여·공주권 역사유적지를 둘러보았다. 니가타 상업고교 가치야마 교장(59)등 일행은 한강유람선을 타고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면서 한국의 발전한 모습에 감탄했으며 공주박물관과 부여국립박물관 견학에서는 도자기등 전시유물을 보며 『아! 우리 것이랑 똑같다』고 일본문화가 백제에서 유래됐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 견학에서는 「왜 이것을 철거하는 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으며 독립기념관 4관인 「3·1운동관」을 둘러볼 때에는 일본군의 잔인한 탄압장면에 잠시 눈을 돌리기도 했다. 가치야마 교장은 『일본에 돌아가면 학생들에게 양국의 역사적 관계를 있는 그대로 알려,앞으로 한·일관계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홋카이도비라토리 고교 미야치 료이치 교장(55)도 『양국의 인적교류가 더욱 많아져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때 우리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던 일부 일본 관광객들의 기생관광은 크게 수그러들었지만 아직도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관광객들을 전문적으로 안내하는 한 안내원은 『입국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일본관광객을 기다리다 허탕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이 경우 대부분 마중나온 현지처와 함께 미리 빠져나갔다고 보면 틀림 없다』고 귀띔했다. 일본관광객들은 한국관광에서 바가지요금을 의식,대부분 모범택시를 이용하고 수돗물은 마시지 않는다.또 정치적 사안에 대해선 말을 하지않고 공산주의 관련 서적도 갖고 다니지 않으며 「조선」이라는 말도 좀처럼 꺼내질 않는다. 일본 관광협회에서 이렇게 교육을 받은 탓이다.한·일 국민간의 마찰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일본인 역시 우리를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국관광공사에서는 올해를 「한국 재발견의 해」로 정하고 3백9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이 가운데 절반인 1백85만명을 일본관광객으로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한국관광공사 해외진흥부 일본부의 김응상(37)과장은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지도는 매우 낮다』면서 『일본관광객들과 가장 먼저 부딪치는 여행사 가이드·호텔 종업원·택시기사 등은 물론 시민들의 친절한 안내와 따뜻한 미소가 불편했던 한·일 두민족간의 감정의 앙금을 없애는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부 강철수(31)과장대리도 『날이 갈수록 우리와의 접촉이 늘어나는 일본인들을 감정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보다 냉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앞서야 할때』라고 강조하고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데서 양국민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일본을 극복하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한·일 「협력과 경쟁」의 당당한 관계 정립해야(사설)

    ◎광복 50년 수교 30년 금년은 광복 50주년이자 한·일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지난 22일은 바로 그 한·일수교 30돌이 되는 날이었다. 김일성사망 1주기를 앞두고 연이어 이루어진 북핵타결 및 쌀제공의 극적 성사에 이어 일본의 대북쌀제공 및 수교움직임도 한·미와 경쟁하듯 활발해지고 있다.세계유일의 분단·냉전지대로 남아있는 한반도에도 마침내 화해·공존의 탈냉전 새바람은 불기 시작한 것인가.주목되고 기대되는 가운데 맞고있는 각별한 광복 50주년이자 한·일수교 30돌인 것이다. ○한반도의 탈냉전 기운속에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관계에 관한조약」의 성립은 격렬한 찬반논란의 혼돈을 겪었으며 3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엇갈리는 평가와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동시에 갖는 2중성의 불가피한 결과다.한·일수교 및 관계정상화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요구하는 필연의 과정이었다.그것은 우리경제와 안보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그러나 그 성립과정과 내용 및 그 이후의 일본행동은 우리의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선 한·일조약의 성립과 수교가 우리경제발전과 안보,그리고 동북아안정에 미친 직간접의 긍정적 영향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불만스런 내용과 액수였지만 총6억달러의 청구권자금 등은 분단의 장애와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야 했던 우리경제에 도움을 준것이 사실이다.수교에 따른 인적·물적 교류의 급속한 확대 또한 우리의 성장발전을 위한 촉진제역할을 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경제 기여 평가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한·일기본조약과 일본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것은 조약자체의 내용과 성립과정은 물론 일본의 경제대국답지 못한 지나친 국가이기주의적 처신 때문이다.당시 우리는 약하고 다급한 입장이었으며 강하고 여유있던 입장의 일본은 이같은 우리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함으로써 불공정하고 굴욕스럽기까지 한 조약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더 우리를 실망시키고 분노케 하는 것은 국왕까지 동원된 일본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입에 발린 형식적 사과·사죄,그리고는 본심을 말하는 우파들의 연이은 망언들과의 교차였다.종전 50주년을 맞아 채택하려 했던 의회의 「부전 및 사죄결의」의 무의미화 및 실종은 일본의 숨겨졌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일 자신과 민족적 긍지를 우리는 일본이 하루속히 참다운 반성속에 아시아 선린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김영삼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본에 대해 대범하고 관대한 태도를 보여온 것도 그런 취지에서 일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지난날의 감정에 연연하고만 있어선 안되며 자신감과 민족적 긍지를 갖고 당당하게 협력하며 경쟁해 나가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적은 수교30주년을 맞는 오늘의 우리가 되새겨야 할 대일관이다. 탈냉전후의 일본은 이전의 일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미국에 대해서도 문자그대로 「아니오」를 말하기 시작 했다.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더 이상 「죄지은 이웃」이 아닌 일본의 모습을 보여준다.지금당장 우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북쌀제공 및 수교를 서두르고 있다.한반도문제에 대한 발언권강화를 노리는 움직임이다.우리가 직면한 하나의 현실이다.수교 3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도 이제 새로운 현실인식과 호혜의 원칙을 기초로 「당당하게 협력하고 경쟁하는」 대등한 보통국가적 대일관계를 주도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일,부도덕 국가 오명 벗어야 동시에 일본도 이제는 반성할줄 모르는 부도덕 국가의 오명을 벗어던져야 한다.독일의 나치스 청산처럼 반성과사죄 할것은 분명히 함으로써 일제의 망령을 깨끗이 청산하고 국가적 도덕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그래야만 경제대국이자 잠재적 군사대국으로서 진정한 세계적 지도국이 될 수 있으며 동북아의 안정에도 확실하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야마시타 신타로 주한 일대사 인터뷰(한·일수교 30년)

    ◎“한·일 이젠 수평적 협력파트너”/“다수 일본인들 과거 침략행위 깊이 반성/한국서도 일본을 있는그대로 보았으면” 한·일기본조약 체결 3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사는 22일 야마시타 신타로 주한일본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양국관계의 변화와 전망을 들어봤다. ­한·일 양국관계의 30년전과 오늘을 비교해 주십시오. ▲먼저 일본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양국간 우호관계의 가일층의 개선과 강화를 외교정책의 중요항목중의 하나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일관계는 정상화이후 30년동안에 인적교류·경제교류 등 다방면에서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긴밀해져 왔습니다. 일본을 찾은 한국인 여행자수는 작년에 1백23만여명으로 국교정상화가 이뤄진지 얼마 안되는 지난 68년에 비해 30배를 넘어선 한편,한국을 찾은 일본인 여행자수는 1백62만5천여명으로 68년에 비해 66배나 됐습니다.양국간의 교역규모도 94년에 3백89억달러에 이르러 과거 30년사이 1백80배나 늘어났으며 일본정부의 자금협력도 무상자금이 78년까지 1천3백30억엔,유상자금이 90년까지 6천억엔에 달했습니다. 더욱이 양국의 경제관계는 양적 확대만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기술고도화에 따라 대등하고 수평적인 협력 파트너로 질적 발전을 하여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됐습니다.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일본 지도자층의 망언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민주주의 사회인 일본에서는 개개인이 저마다의 견해를 가지고 이를 표명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으며,이는 역사인식면에서도 자신의 체험 등을 바탕으로 한 역사관이 존재하므로 일본정부나 국민 대다수의 의견과는 다른 견해들도 표명되는 적이 있었습니다.나로서는 한국인 여러분의 심정을 일본인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늘 노력해온 터이나,일본에서 이런 한국인의 정서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발언들이 이따금 나오고 있는데 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비록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압도적 다수의 일본국민은 과거 일본의 침략행위나 식민지 지배가 수많은 아시아인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하며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세계평화 창조에 진력해가겠다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일본정부로서도 이와 같은 대다수 일본국민의 인식을 토대로 깊은 반성과 사죄의 뜻을 거듭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전후청산은 끝났다고 봅니까. ▲자칫 오해가 있는 듯 합니다만,2차대전과 관련된 배상 및 재산청구권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2국간 평화조약 및 기타 관련조약 등에 의거,성실히 대응해 왔으며,한국과의 관계에서도 65년의 기본조약,청구권 경제협력협정 등에 따라 법적으로는 해결이 끝난 상태입니다. 그보다도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이 일본에 던지고 있는 것은 역사인식 문제라고 나는 생각합니다.이와 관련해 무라야마 총리는 역사의 교훈을 미래에 살려나가기 위해 아시아 근린제국과의 과거사를 직시하고 올바로 이를 후세에 전하며 아시아 각국과의 상호이해와 상호신뢰를 증진시켜 간다는 뜻아래 전후 50년이 되는 올해부터 「평화우호 교류계획」을 추진해가겠다는 것을 천명했습니다.이 계획은 역사연구를 지원촉진하고 각국과의 교류를 강화해가는 자주적인 노력이며 이는 곧 한국등 각국의 일본 신뢰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진정한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위해 양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선진국 진입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이제 두 나라만의 협력이나 현안 해결에 머무르지 않고 국제사회 전체에 관련된 과제를 향한 협력을 지향해야 합니다.환경문제에의 대처,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나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협력이 그 한 예입니다.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는 한·일협력관계의 확충 및 강화가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라는 의미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한편 이러한 협력이야말로 상호신뢰관계를 그 전제로 하는 만큼,양국국민의 상대국에 대한 인식이 실체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일본측으로서는 과거를 솔직히 직시하고 역사인식을 심화시킬 노력이 중요한 반면,한국측으로서도 현재의 일본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줄 압니다. 가령 한국언론에는 여전히 일본이 군사대국화나 핵무장을 지향하고 있는 듯한 논조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그러나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일본을 둘러싼 국제환경을 불안정하고 긴장된 상태에 빠뜨릴 따름으로 각국과의 상호의존 속에서만 살아나갈 수 있는 일본에는 아무런 이득도 되지 못합니다.더구나 핵무장은 NPT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은 북한의 핵문제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또 양국이 상대국의 실체에 맞는 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균형있는 정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양국 언론의 책임과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가깝고도 먼 이웃(한·일수교 30년)

    ◎수교 19년뒤에야 한국정상 “공식 방일”/66년 무역협정 서명… 경제협력 “물꼬”/빈번한 교류속 일 지도층 잇단 망언 65년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한일 양국간에는 모두 17차례의 정상간 왕래가 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공식 방일이 추진된 것은 72년이다.박정희 대통령이 11월23일 공식 방일하기로 예정됐었으나,국내의 반일감정이 수그러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취소됐다.박대통령은 18년에 이르는 재임기간동안 한번도 일본을 공식방문하지 않았다. 우리 대통령의 공식 방일이 성사된 것은 12년 뒤인 84년에 이르러서였다.이 해 9월6일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히로히토 국왕을 만났다.이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도 90년과 94년 각각 일본을 방문했다. 수교전에도 대통령의 방일은 있었다.이승만 대통령은 48년과 50·53년 등 세차례 일본을 비공식 방문,요시다 총리 등과 면담하기도 했다.또 61년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경로에 일본을 비공식 방문,이케다 총리와 면담을 가졌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일본 총리는 사토 총리로 67년 6월30일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공식방한한 첫 일본 총리는 나카소네 총리로 83년 1월11일 서울에 와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이후 88년 다케시타,91년 가이후,92년 미야자와,93년 호소카와 총리의 방한이 이어졌다. 비공식과 실무 방문을 포함하면,한국의 대통령은 모두 7차례 일본을 방문했으며,일본의 총리는 10차례 방한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66년 3월 한일간의 무역협정이 서명,발표됨으로써 본격적인 경제 관계도 시작됐다. 이 해 9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장기영 전부총리와 후지야마 일 경제기획청장관이 참석하는 한일경제각료 간담회가 열렸다.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80년대 말까지 크게 확대되어 왔으나,90년대초에 들어 무역·투자·기술협력 등의 분야에서 감소세를 보이다 최근 회복세를 찾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역불균형 심화가 지속적으로 양국간 현안이 됐는데,65년 1억 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는 80년대 후반에 50억 달러를 초과하기 시작했으며,92년에는 79억 달러를 기록했다. 경제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67년 정기 각료회의가 시작된 뒤,양국 외무장관 회담,고위외교정책협의회,한·일 어업공동위원회,문화교류실무자회의 등의 한·일 정부간의 정기회담으로 자리잡았다. 또 한일의원연맹과 한일친선협회,한일협력위원회,한일경제협회,한일협회,한일여성친선협회,한일문화교류기금 등의 민간 친선단체가 발족되기도 했다. 65년 1만명에 불과하던 양국간 인적교류는 지난해 2백70만명으로 늘어났다.일본이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은 68만8천명이다.최근에는 재일교포와 일본인과의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90년 통계에 따르면,재일교포의 총혼인건수 1만3천9백34건 가운데 동포간 혼인은 15.8%에 불과하며,일본여자와 결혼한 교포남성이 19.5%,일본남자와 결혼한 교포여성이 64.2%였다.일본에 귀한한 재일교포는 50년이래 17만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관계 발전의 한편에서는 일본측의 망언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일본의 고위각료급에서만도 해마다 일일이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의 망언을 쏟아냈다.대표적인 것이 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그에 대한 86년 후지오 문부상의 망언으로 양국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다.정부는 이해 9월 예정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연기하며 후지오의 망언에 엄중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서도 어김없이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 외상이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을 함으로써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발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도쿄의 평가와 과제/“국교정상화 한국발전에 크게 기여”/위안부 등 개인배상문제 불씨 잠복/재일동포3세 법적지위개선도 현안 한국과 일본은 22일로 한·일기본조약 서명 30주년을 맞는다. 국교가 정상화된 지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본에는 한국에 대한 우월감이,한국은 일본에 대해 피해의식이 남아 있다.또 「김대중납치사건」 「문세광 사건」 망언파동 등으로 한일관계는 곡절도 많이 겪었다. 한일관계는 양국 정치에 있어 「늘 쉽게 구사할 수 있는 정략적 카드」로 악용당한 사례도 많이 있다. 하지만한일국교정상화가 냉전체제하에서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한국의 경제발전,일본의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안정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양국에 크게 공헌한 점이 있다는 데 대해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진다.특히 일본에서는 국교정상화가 한국에 보다 많은 플러스가 됐다고 말하는 학자,평론가들이 많다. 초대 주일대사를 지낸 김동조전외무장관은 한일국교정상화와 관련,『냉전구조하에서 정치적으로 아시아,넓게는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으로서도 피폐해진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조약체결로 얻은 자금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도쿄신문 20일자).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이 한국경제 발전에 대해 도움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일사학자 강재언교수도 높이 평가한다.하지만 강교수는 강조하는 점이 조금 다르다.그는 우선 일본으로부터 무상공여 3억달러 등 모두 8억달러의 자금은 식민지 피해에 따라 당연히 받을 몫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강교수는 또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배상을 받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특권층을살찌운 반면 한국은 깨끗하게 경제건설에 활용됐다』고 말해 자금이 들어온 일본보다는 활용한 한국의 노력에 비중을 두었다. 그는 반면 「식민지지배 책임문제」 등이 분명하게 밝혀진 위에 국교정상화가 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돈이 급하고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부분이 애매하게 처리된채 기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여러가지 문제들이 남게 됐다고 말한다.남은 문제들 가운데는 일본의 진정한 과거반성,한일기본조약의 해석,재일동포 3세이하의 법적 지위 문제,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배상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서명 이동원 전외무/“국력 길러 일 우월의식 극복을/과거에 매달려 역사흐름 놓치지 말길/패전 극복 일의 창조적 노력 본받을만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이동원 전외무장관(현 국제학술원이사장)은 21일 국교정상화 30주년에 즈음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말고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인터뷰 내용.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당사자로서 30주년을 맞는 감회와 기본조약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한·일 국교정상화회담은 거의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전후 세계사에서 가장 길었던 외교협상이었습니다.그만큼 양국간의 적대감과 갈등이 깊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약에 서명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식민지지배에 대한 청산을 분명히 하지않고 경제협력을 우선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역사는 변화하는 것입니다.변화없이는 발전도 없습니다.한·일기본조약은 그 시대의 역사적 변화의 흐름을 활용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당시 미국의 지원하에 새로운 일본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한국도 새로 태어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과거의 역사는 물론 잊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전후청산은 끝났다고 생각합니까.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의원의 「전후50년국회결의」 채택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과거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독일과 같은 자세가 부족합니다.일본은 국수주의적 환상에서 깨어나 이웃국가들과 함께 공존·번영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그러나 불행히도 아시아의 후진성을 이용,우월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강합니다.공존의 시대에 배타주의적 우월의식을 고집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어둡다고 봅니다.일본도 중국·한국·아세안등 아시아 이웃국가들의 역동적인 변화를 잘 인식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국교정상화후에도 일본지도층의 망언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변국가를 멸시하는 일본의 배타주의적 우월의식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의 의식속에는 아시아를 깔보는 경향이 강하게 배어있습니다.그러나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창조적 노력과 국력배양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2차대전후 일본은 전쟁폐허의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일본은 그러나 미국에 머리숙이며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경제부흥을 위해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특히 선진기술을 그대로 모방하지않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일본적인 알파」를 추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그러한 「창조적」 노력이 오늘과 같은 경제대국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일본것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그친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이 점점 깊어져왔습니다.작은 것이라도 「한국적 알파」를 추가하려는 창조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한국을 보는 일본의 시각이 변했다고 봅니까.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한국을 얕보는 본질적인 인식은 크게 변하지않은 것 같습니다. ­식민지지배를 배경으로 한 한·일간의 특수관계에서 이제는 보통의 이웃국가관계로 바뀌어야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과거가 미래를 구속하는 상황이 더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광복 50주년이 됐습니다.일본에도 한국에도 식민지이후 세대가 중심이 되고 있기때문에 한국도 이제는 냉정한국제정치논리에 대비하여야합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양국은 경제뿐만아니라 정치·문화등 각분야에서 더욱 밀접하고 복잡한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그러나 한국은 반일감정을 극복하고 기술·정보등 경제분야의 발전을 통해 일본과의 격차를 줄여야합니다.물론 일본과는 경제규모에서 대등할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질적인 대등함을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합니다.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국력이 뒷받침되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남·북·일 새 3각관계(한·일수교 30년)

    ◎일의 「남·북 줄타기 외교」 대비해야/대북 수교협상 자세따라 한·일갈등 소지/끊이지않는 「망언」… 선린의 앞날 불투명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한일양국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에 서명한 이후 양국 관계는 발전과 퇴보를 되풀이하고 있다.지난 30년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65년 2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간 무역액은 그동안 2백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3백89억 달러를 기록했다.양국간 인적 교류도 65년 1만명에서 지난해 2백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국이 이웃국가로서 결속력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한국쪽에선 「동반자」보다는 「반일감정」이나 「망언」이,일본쪽에선 「혐한」「추한 한국인」이란 단어가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한다. 지난 연말 한국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이 여느해 보다 강하게 새해를 맞는 흥분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 것을 본 일이 있다.광복 50년(일본에는 종전 50년이다),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1995년의 역사성이 양국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팔을 걷어붙일만한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몇차례 천명했듯 95년을 과거를 극복,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당국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의욕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일본과의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것 같은 공식행사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이를 반민간 단체로 볼 수 있는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으로 넘겼다.그러나 연맹측이 계획했던 행사조차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서울,부산 공연은 문화체육부의 불허로 무산됐으며,한일청소년회관의 건립계획도 변경됐다.이달 일본에서,오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것 정도가 확실히결정됐을 뿐이다. 의원연맹측이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계속 기대를 걸만한 사업이다. 양국 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차원에서 시각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한일 관계를 양자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 내에서라면 한일 양국의 이익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양국은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국가발전 전략을 꾀하고 있으며,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 이념도 같다. 일본 관계를 다루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김철수후보를 적극 지원하거나,우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익이 일치하는 구조 속에서도 양국 국민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일본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괴롭지만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미래는 없다』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군대 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 문제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이지만,일본측은 어느것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의원연맹의 지철민 사무총장은 올해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등 여당연합과 신진당이 추진하던 일본 국회의 과거사죄와 부전결의가 결국 신진당이 불참한 채 반성과 평화추구라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때를 맞춰 터져나온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외무장관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이 아직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대북 쌀 제공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자세는 우리 국민과 정부 당국자들이 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 우려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가.일본은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한국민은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이끌어낸뒤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저울질하는 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며 이문을 챙기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올해가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서가 아니라,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에,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본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는 또 한차례 갈등하며 후퇴의 시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측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월 고베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구호물자를 보낸 바 있다.전문가들은 광복후 50년이 지나고 양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교체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양국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인식을 전세대보다는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낮에는 반일,밤에는 친일」이라는 식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은 있다」의 저자 서현섭씨(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는 『한일관계의 지난 50년은 두나라 국민이 무시(DISREGARD)→불신(DISTRUST)→혐오(DISLIKE)라는 3D를 만들어온 세월』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의 50년은 세 단어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DIS」 세글자를 떼어버리고 상호인정(REGARD)→신뢰(TRUST)→선린(LIKE)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관계 30년 일지 ▲1965년 6·22=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서명 ▲8·28=한일협정 반대 학생 데모 및 위수령 발동 ▲12·18=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발효 및 주한·주일대사관 상호개설 ▲1966년 1·17=한일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발효 ▲5·27=일본 문화재 2천3백28점 반환 ▲19 67년 6·30=사토 에이사쿠 일본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취임식 참석 ▲1970년 6·16=한일 정기여객선(부관페리호) 취항 ▲1971년 2·5=일·북 재일교포 북송합의서 조인 ▲1973년 8·8=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1974년 8·15=조총련계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 ▲1975년 9·15=조총련계 동포 성묘단 모국 방문 ▲1982년 7·26=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외교 문제 비화 ▲1983년 1·11=나카소네 일총리 첫 공식 방한 ▲1984년 9·6=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일 ▲1986년 5·18=일,대한 2백해리 어업수역 선포 ▲7·24=후지오 문부상 교과서 왜곡관련 망언 ▲1990년 5·24=노태우대통령 방일 ▲9·24=가네마루 자민당부총재 등 3당 대표 방북,일북수교 원칙 합의 ▲1991년 1·9=가이후 총리 방한,한일 우호협력 3원칙 발표 ▲1992년 7·6=일본정부 종군위안부 조사결과 발표,정부관여 인정 ▲11·8=노태우 대통령 실무 방일 ▲1993년 10·4=사할린 동포 관련,한일 실무협의회 ▲11·6=호소카와총리 실무 방한 ▲1994년 3·24=김영삼대통령 방일 ▲7·23=무라야마 총리 방한 ▲1995년 1·19=한국정부,고베지진에 구호품 전달 ▲6·5=와타나베 전외상 한일합방 관련 망언 ▲6·14=일본의회 과거 반성,평화 추구 결의 ◎지표로 본 양국관계/교역규모 급속 증가… 1백85배 늘어/경기둔화·국민감정 악화… 90년초 주춤/대일 누적적자 1천억불 시정 과제로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80년대 말까지 교역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90년대 초 국내 경기둔화와 노사분규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그러다 엔고에 힘입어 지난 해부터 기계류와 부품을 중심으로 산업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30년간 누적돼 온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수출은 4천4백만달러였다.이것이 지난 해에는 1백35억2천만달러로 늘었고,대일 수입도 1억6천만달러에서 2백53억9천만달러로 커졌다.교역규모만 1백85배 신장한 셈이다. 반면 교역확대속에 65년 1억2천만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가 86년 50억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 해에는 1백억달러 돌파(1백18억6천만달러)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까지 남겼다.그간의 누적적자만 이미 1천억달러를 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교정상화 이후 계속 늘던 대일 수출은 89년 1백35억달러를 고비로 줄기 시작,92년 1백16억달러로 떨어졌다.수입도 91년 2백11억달러에서 92년 1백9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투자가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92년 건수기준 30.5%,금액기준 17.3%로 82∼86년 평균(건수 47.7%,금액 49.6%)에 못미쳤다.고임금으로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악화돼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93년 초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국민감정과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뒤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해제하는 등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역액이 92년 3백11억달러에서 지난 해 3백89억달러로,일본의 한국투자는 92년 72건,1억5천달러에서 지난 해 1백32건,4억2천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교역형태도 기계류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다 경공업제품을 생산,제3국에 파는 「산업간 교역형태」에서 반도체와 철강 등 중화학제품을 서로 주고받는 「산업내 교역」으로 바뀌었다.일본으로서도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일본기업들의 투자도 저임금을 겨냥한 해외 생산기지화 전략에서 전략적 제휴형태로,기술협력도 한국의 일방적 기술이전 요구가 아닌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류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엔고 지속과 세계경제의 지역주의화,미국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무역마찰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협력의 끈을 단단히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기업을 적극 유치,대일역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양국관계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성숙돼 갈 것이다.
  • 와타나베 공직사퇴/일 민간단체서 촉구

    【도쿄 연합】 일본 마쓰야마시의 민간단체인 「새로운 침략자를 만드는 전쟁찬미 결의 반대 모임」(대표 추야미지자)은 16일 항의문을 통해 한일합방조약이 원만하게 체결됐다고 망언한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부총리는 의원직 등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 일본… 상처낸 자리 쑤시고 되후비고(박갑천 칼럼)

    『누에와 같다』는 일본말이 있다.「누에」는 딱새과에 속하는 호랑지빠귀를 이르는 한편으로 전설상의 괴상한 동물을 뜻하기도 한다.『누에같다』고 할때는 후자쪽이다. 「헤이케모노가다리」(평가물어:권4)에 무장이며 가인인 미나모토노요리마사(원뢰정)가 누에를 쏘아죽였다는 얘기가 나온다.이 괴물의 모습은 이렇다. 즉,머리는 원숭이요 몸뚱이는 너구리이며 꼬리는 뱀이고 손발은 호랑이인바 우는소리가 호랑지빠귀 비슷했다.이괴물 따라 정체불명인 사람,아리송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기이한 느낌을 주는 사람을 『누에같다』며 빗대었다. 그말그대로 누에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나라가 일본이다.아리송하게 처신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들에게는 또 「우미센 야마센」(해천산천)이란말도 있다.뱀이 『바다에 천년,산에천년』살면 용이 된다는 말을 줄여서 쓰는 것인데 그렇게 풍상을 겪는사이 교지가 발달했음을 이른다.그 「우미센 야마센」의 나라가 일본아닌가 한다. 「망언」으로 표현되는 「소리」를 한두번 나달거린 것이 아니다.구보다(구보전관일낭)로부터 치자면 정부요로의 사람이 한 것만도 열번은 넘는 것 아닐는지.그들이 낸 상처를 헤집는 살똥스런 화살이다.아프고 분해서 소리치면 「그래?그럼 약을 주지」 하는양 「사과」한다.그러고서 조금있다가 또후벼댄다.이짓을 몇십년 계속해온다.당하는 우리의 대응은 어떤가.그들이 들쑤시면 왁자하게 단세포적 반응을 일으키다가 이내 사그라든다. 이웃나라끼리는 침략하고 침략당하고 하는게 대체적인 세계사의 흐름이다.하건만 한일관계는 좀 유별나다.한국은 일방적으로 당해만 오는 것이니 말이다.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은 그들을 그느르며 은혜를 베푼 나라.그 은혜를 원수로 갚아내려오는 일본이다.그맥락 따라 시나리오라도 써놓은 듯이 침략합리화발언을 뜨문뜨문 내뱉는다.「누에」낯짝이다. 며칠전 같은날짜 신문에 난 독일 콜총리의 나치학살에 대한 발언과 일본연립여당의 「전후결의안」표현의 차이는 엄청나다.전자의 솔직함에 비겨 후자는「우미센 야마센」의 말재주.이웃집이 고약할때 내가 떠나면 되지만 이웃나라 보기싫다고 나라가 떠날 수도 없다.그들 속담대로 『독사새끼는 독사(마무시노고와 마무시)』.그런 독사의 용골대질을 당하며 살아가야 할 처지가 괴롭다. 「헤이케모노가다리」 첫머리에는 노자의 말을 빈 『오만한 헤이케(평가)는 오래 못간다』는 대목이 있다.이말을 천지신명 앞에서 곱씹어봐야 할 일본이다.
  • 「부전」등 알맹이 뺀채 “겉치레반성”/일여당「전후결의안」합의 의미

    ◎침략·식민지 지배 범죄책임 회피/연정붕괴 우려 「물타기 결의」 변질 산고 끝이라고 꼭 옥동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본 연립여당이 6일 밤 간사장·서기장급 회담을 열어 오랫동안 논란이 벌어져온 전후 50주년 국회결의안에 합의했다.자민당내 우익정치가를 비롯한 우익세력의 집요한 반대로 무산될 뻔한 결의가 연립여당 안에서 합의에 이른 것은 사회당이 강공을 펼치고 연립정권의 붕괴를 우려해 자민당이 양보한 결과다.또 와타나베의원의 망언에 대해 한국이 단호하게 반발한 것도 합의를 촉진시켰다.이제 남은 절차는 야당인 신진당과 협의를 거쳐 중·참의원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이다. 합의안이 산고 끝에 나왔지만 그 내용은 피해당사국 주민에게 실망스러운 것들이다.합의안에는 자민당이 반대해온 「침략행위」·「식민지지배」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하지만 당초 내건 「사죄」나 「부전결의」라는 말은 모두 빠졌다.결의안의 제목은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에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가 돼버렸다.「침략행위」라는 말도 「침략적 행위」라고 바뀌었다.외무성이 영어로 번역하면 「Acts of Aggression」으로 똑같다고 유권해석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한자어권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물타기수법」에 불과하다.많은 역사가가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내용에 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본총리들이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를 반성한다』고 말한 것보다도 후퇴한 형태다. 또 일본의 책임을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세계 근대사에 있었던 식민지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집착해 우리나라가 이런 행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비켜나갔다.일본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일본 국회의 결의안이 서구 제국주의국가보다는 아시아국들을 향한 선언이라는 성격이 강한데도 책임부분을 모호하게 만든 것이다. 국회결의가 되더라도 중요한 것은 후속조치다.결의는 법적인 효력을 갖는 문서가 아니다.단지 선언일 뿐이다. 결의내용이 비록 형편없어도 성의 있는 후속조치가 따른다면 일본이 어느정도 반성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여당안을 마련하는 논의과정에서 보듯이 일본의 지도층에는 과거반성을 거부하는 자들이 두껍게 포진하고 있다.후속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 침략 사죄관련 주요 발언 ▲히로히토(유인) 일왕=금세기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84.9.6 전두환 대통령 방일 만찬사) ▲아키히토(명인) 일왕=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90.5.24 노태우대통령 방일 만찬사) ▲가이후(해부) 총리=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한다.(90.5.24 노태우대통령 방일 회담) ▲호소카와(세천) 총리=2차대전은 침략전쟁이었으며 잘못된 전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과 함께 분명한 매듭을 짓고 평화와 국제협조를 위해 책임을 다해 나갈 생각이다.(93.8.10 취임기자회견) ▲하타 쓰토무(우전목) 총리=일본은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에게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과 슬품을 가져다 줬다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94.5.10 참의원 본회의 소신표명연설) ▲무라야마(촌산부시) 총리=우리나라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데 대해 깊은 반성에 입각,부전 결의하에서 세계평화창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94.8 전후 50년을 향한 담화)
  • 일 전후결의안/“전쟁만행 사죄 회피”/NYT 비판

    ◎“모호한 표현으로 의미 축소” 【뉴욕=이건영 특파원】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7일 일본 연립정부가 합의한 전후 50주년 국회결의안 내용이 진정한 사죄라기보다는 뜻을 모호하게 만들어 해석하기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도록 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이 결의안이 아시아의 이웃국가들을 안심시킬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일본정부가 결의안 문안에 과거의 침략행위와 관련해 「후회」와 「사죄」라는 용어를 빼고 「반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반성」은 일본에서 어린아이가 숙제를 잊어버렸을 때 갖는 느낌 정도로 사소한 의미라고 지적했다.이 신문은 와타나베 미치오 전일본외상의 망언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한편 일본의 침략행위를 뉘우치지 않는데 대한 반감이 한국과 중국국민이 일본을 불신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으며 다수의 아시아국가들이 일본의 재무장을 원치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보도했다.
  • “아시아지배”일야욕 변하지않았다/이창순 국제1부·차장급(서울논단)

    일본의 역사인식은 늘 세계적인 불신을 받아왔다.그 불신의 원류는 일본인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일본은 아시아국가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고통을 안겨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역사인식의 윤리적 불감증이 보편화되어 왔다. 일본의 윤리적 불감증은 연립여당이 6일 합의한 국회의 「부전결의안」에서 다시 입증됐다.연립여당 대표들은 이날 많은 논란을 벌여온 국회부전결의 「여당안」에 합의했다.그러나 합의내용이 과거의 침략행위를 사죄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던 당초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여당안은 부전이라는 말 자체를 빼버려 부전결의는 이미 아니다.사죄라는 말도 연정내 협의과정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과거사를 그대로 덮어둔채 미래만을 강조하려는 책략임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그러한 책략이 논의되던 같은날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이스라엘 학살기념관을 방문한 후 『독일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나치학살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콜 총리는 나치의 학살을 둑일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잔악한 행위라고 인정하고 스스로 역사앞에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속에 존재하는 침략과 잔악행위 등을 은폐하려는 끈질긴 작업을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다.일부 세력은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고 오히려 미화하기까지 한다.우리는 그러한 왜곡된 역사인식을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발언에서 다시 본다. 그는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이다.일본이 한국을 식민지 지배한 일은 없다』는 망언을 공식석상에서 서슴없이 밝혔다.그러나 역사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그의 발언은 와타나베 한사람의 생각이 아니다.그는 일본 보수세력의 유력한 지도자중의 한명이며 대부분의 보수세력들이 그와 같은 왜곡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그러한 보수세력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친한파임을 내세워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일본의 전후사는 역사를 왜곡하는 그러한 망언의 역사라할 만큼 일본 지도층들의 망언은 계속 되풀이돼 왔다.일본의 망언은 1953년 한·일회담 일본측 대표인 구보다 간이치로의 발언으로부터 시작된다.그는 한·일회담에서 『일본의 식민통치는 한국에 유익했으며 한국점령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일본의 전형적인 「식민통치 은혜론」을 편 것이다.그의 발언은 당시 일본정부와 지도층의 적극적인 옹호를 받았다. 구보다 발언을 능가하는 망언은 65년 한·일회담 대표인 다카스기 신이치에 의해 행해졌다.그는 『식민지 지배를 20년쯤 더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너무나 파렴치한 망언을 했다.일본지도층의 망언은 84년 당시 문부상이었던 후지오 마사오와 88년 국토청장관이었던 오쿠노 세이스케에 의해 이어졌다. 일본지도층의 망언은 90년대에 들어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나가노 시게토 당시 법상은 94년 5월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정당행위였으며 남경대학살은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다.일본의 망언은 그밖에도 수없이 많다. 일본의 되풀이되는 이러한 망언은 돌발적인 현상이 아니다.그 밑바닥에는 아시아를 경시하는 일본인들의 위험한 역사인식이 깔려 있다.일본은 그러한 망언을 통해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정당화하고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일본민족의 우월주의를 심어주고 있다. 일본의 그러한 역사인식은 「치고 빠지기식」의 망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그대로 나타난다.일본의 정치·경제·학계 등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분담」으로 망언을 되풀이하고는 그것이 문제가 되면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유감표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편리한 이중적 태도를 반복해오고 있다. 일본 지도층과 보수세력들의 이러한 배타적 민족우월주의는 앞으로도 결코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그러한 일본은 지금 종전 50주년을 맞아 전후청산을 마무리하고 아시아와의 새로운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정한 사죄위에서만이 참된 선린관계는직도 먼 미래의 일로 남아있는 듯하다. 전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과거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오늘의 아시아 현실은 또 하나의 비극일지 모른다.그러나 더 큰 비극의 위험은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일본의 야욕은 오늘도 크게 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일본의 변화를 냉정히 인식하고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일본은 여전히 먼나라처럼 느껴진다.
  • 일 연립여당 「종전 50년」결의안

    일본 연립여당이 전후(전후)50년에 즈음한 국회결의안이란 것을 마련했다.작년 6월 자민·사회당등의 연립정권 발족당시 채택키로 합의한지 1년만의 일이다.그러나 「과거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미래의 평화결의를 다짐한다」는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일본은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결의안 같다는 것이 우리가 받는 인상이다. 우선 이결의안 채택을 둘러싸고 지난 1년동안 일본에서 전개된 우여곡절은 한마디로 불쾌하고 실망적인 것이었다.누구의 요청에 따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작한 일이었다.그럼에도 사회당본부 화염병투척 등 우익들의 반대는 완강했으며 결과적으로 마련된 결의안은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것으로 후퇴하고 말았다.자민당을 비롯,일본정계에 일제)와 침략전쟁이 정당했다고 신봉하는 우익세력이 얼마나 뿌리깊게 남아 있는가를 재확인하는 역설적인 기회였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기대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그동안 국왕과 총리등의 입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수없이 해왔으며 그 이상이 나올 수 없는일본의 속성과 한계를 알기 때문이었다.그럼에도 우리가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그동안의 수준에서도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결의안 내용은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사죄 및 다시는 않겠다는 다짐보다는 한마디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변명과 정당화에 급급하고 있다.그당시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은 세계열강 모두가 추구한 보편적 시대상황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간접적인 자기변명과 정당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의라면 왜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그것은 한국 등 아시아 이웃들의 지난 상처를 달래고 공존공영의 미래를 함께 개척해 나가자는 일본국회의 전후 50주년 결의안에 걸맞는 내용은 아니다.와타나베망언과 함께 일본제국주의·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와타나베 사과와 사실/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올해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가 응징된 지 50주년을 맞는 해다. 아시아 여러나라의 국민들은 올해가 「밝은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랐다.가장 쓰라린 경험을 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과거보다는 미래를 개척하자』는 말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온 터이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고 있는 요즘 일본에서의 움직임은 주변국들이 충분히 우려해야 할만큼 거꾸로 가고 있다.지난해 연립정권을 세우며 스스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국회에서의 부전결의는 우익세력의 반대로 이미 그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다.자민당 등 일부 우익세력이 반대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말들을 보면서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본의 역사인식에 있어서 윤리적 불감증은 지난 3일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의 발언에서 다시 한번 입증됐다.친한파라는 그는 『한일합방조약은 원만히 체결된 것으로 무력에 의한 것은 아니다』,『일본이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지만 식민지 지배를 한 적은 없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와타나베는 5일 파문이확산되자 서둘러 사과했다.그의 「코멘트」는 이렇다.『원만히라는 단어를 취소하고 사과한다.일본이 36년동안의 조선반도 통치기간동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 점을…인정한다.내 발언의 취지는 한일합방조약이 「이미 무효」라는 65년도 한일기본관계조약을 뒤집어서는 안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일본어로 오와비라는 말로 사과한다고 했다.오와비는 사죄에는 못미친다.미안하게 됐다는 뉘앙스가 강하다.일본에서 사과한다고 할 때 오와비라는 말을 자주 쓰기 때문에 이에 대해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하지만 내용을 보자.그는 그저 「원만히」만 취소했다.무력에 의하지 않았다는,사실과 다른 말은 그대로다.또 식민지지배가 아니라 통치했을 뿐이라는 기본 인식도 그대로다.그의 「사과」는 과거 여러번 되풀이됐던 망언들과 마찬가지로 말만의 사과일 뿐이다. 와타나베식 사과에서 보듯이 일본의 지도층은 과거 침략의 역사,만행의 역사를 반성,새출발을 위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그러면서 미래를 함께 개척하자고 강조한다.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응시하고 있는 사이 그들은 다시 과거사를 뒤집으려 하곤한다.바로 일본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때문에 여러가지 낙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지역에는 긴장이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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