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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칼럼] 吳越도 같은배 타는데

    파도가 심할 때는 오월(吳越)도 동주(同舟)하고 산길이 험할 때는 승적(僧賊)도 동행한다. 6·25 이래의 국난기에 국민에게 한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국가위기를 불러온 전직대통령들의 행동거지는 참으로 볼썽사납다. 설혹 은원이 따르고 이해가 갈린다고 하더라도 전직대통령끼리,혹은 전·현직 대통령 사이가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와 월왕(越王)구천(句踐)의 관계에야 비할까. 그들도 풍랑이 거셀 때는 함께 같은 배를탓다고 하지 않던가. 시쳇말로 ‘님’이란 글자에 점하나 찍으면 ‘남’이 되고 ‘나’라는 글자에 점하나 바꾸면 ‘너’가 된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 나라에서 쿠데타거나부정선거거나 색맹선거를 통해서 대통령까지 역임했으면 퇴임 후라도 걸맞은 품위를 유지하면서 국민의 고통을 헤아리는 금도를 보이는 것이 본인들에게나 국민에게 좋을 것이다. 전직대통령들은 자신들이 행한 패도와 무능으로 무수한 국민이 희생되고 국가가 IMF 환란에 빠지게 된 죄업을 깨닫는다면 참회하는 심경으로 국난극복에 힘을 보태고 국민통합에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옳다. 또한 그들과 함께 정권의 요직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조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언론도 이제 전직대통령들의 ‘망언시리즈’를 중단토록 자제해야 한다. 전직끼리 또는 현직대통령에 대해 품격없는 욕설과 독설을 흥미위주로 보도하면서 편싸움을 부추긴다면 정치의 희화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솔직히 전두환·노태우·김영삼씨가 대통령직에 오른 데에는 언론·지식인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노태우씨가 김영삼씨를 후계자로 선택한 것은자신과 지도층이 색맹환자였다는 고백은 그런 의미에서 함께 느끼는 바가 많아야 한다. 환란 당시 34억달러이던 외환보유고가 600억달러를 넘어섰고 산업생산·어음부도율 등 각 경제지표가 환란 직전의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 그야말로위기로부터 간신히 벗어나려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직 지나야 할 터널은 길고 어둡다. 실업자는 여전히 150만명을 넘고 학교를 나와도 취업할 일터를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거리에 넘친다. 수출증가율도 더디고공장가동률도 힘겹다. 취약한 산업구조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IMF 경제위기를 극복한 저력이 있고 이를 이끌어온 정통성을 가진 정부가 있다. 우월한 국력을 바탕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펴고 이것이 국제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금강산 뱃길도 열렸다. 주변 4강의 역학관계도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환란위기를 국가발전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내외의 환경인 것이다. 건국 이후 대북관계나 4강관계에 있어서 이보다 더 유리한 시기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활용은 커녕 IMF 격랑속에서 여야끼리,전직끼리,노정(勞政)끼리 싸우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부차와 구천의 치졸한 싸움이 그칠 줄을 모른다. 이와 같은 한심스런 행태는 대부분 지역주의를 볼모로 한다. 아무리 악과무능으로 국가와 국민에 위해를 끼친 지도자라도 그들을 감싸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망언과 망설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 정치의 비극과 정치발전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서 근원한다. 악성지역주의의 함정이고 병폐다. 주막 장기는 곧장 마을 장기판이 되기 십상이고 투전판의 개평꾼은 항상 강경파가 된다. 그렇더라도 훈수를 할 사람이 있고 잠자코 있어야 할 사람이따로 있다. 아무나 장기판에 끼어들어 제돈 잃지 않는다고 개평꾼이 함부로부추겨서는 안된다. 어렵사리 격랑을 헤치면서 환란극복과 지역화합에 노력하는 국민에게 더이상 갈등을 증폭시키는 언동을 삼갔으면 한다. 정작 훈수를 하고 싶고 개평을 뜯고 싶거든 마을사람들에게 지은 죄,주막에 진 외상값이라도 갚고 나서 하면 어떨까. 국민의 80% 이상이 전직들의 행보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한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이제 언론이 나서서 개평꾼들의 치졸한 ‘훈수’를 묵살할 차례다. 새 내각도 출범한 시점에서 국민화합을 위해 ‘전직’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주필 kimsu@
  • “언제 무너질지 모를 나라…” 李총재 발언 파문

    국민회의가 이틀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성토하고 나섰다.6일 이총재의 기자회견 내용이 논란의 초점이었다.특히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나라에 누가 투자하겠는가”라는 이총재의 발언을 도마에 올렸다. 국민회의는 당 3역회의에 이어 고위당직자회의를 열고 이총재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했다.공식적인 취소와 사과도 요구했다.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이총재의 말은 정치 지도자로서 존경받을수 없는 망언”이라며 “서민의 한숨과 눈물,실직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차마 할 수 없는 말이었다”고 강한 톤으로 규탄했다. 손세일(孫世一)총무는 “책임있는 야당의 총재가 나라가 무너지기를 기대하는 듯한 말을 한 것은 유감”이라며 “외국투자가를 내쫓는 듯한 발언은 국가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손총무는 너무 흥분했는지 “이총재는 책임을 지고 할복해야 한다”고까지 했다.정대변인이 파문을 우려해 즉각 “취소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안택수(安澤秀)대변인은 “국정을 잘 보살피라는 이총재의 충고를 망언으로 규정하는 국민회의의 단세포적 판단능력에 환멸을 느낀다”며 “이총재의 말은 국정을 바로잡아야 경제회복에 도움이 되고 그래야 외국자본이 들어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곽태헌기자 tiger@
  • [제2공화국과 張勉](21)對日외교 전략

    장면(張勉)정부가 넘겨받은 해묵은 숙제 가운데 하나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이다.앞서 집권한 이승만(李承晩)은 국시인 ‘반공’ 못잖게 ‘배일(排日)’을 강조했고 국민감정도 일본에는 아직 적대적이었다. 이승만정권 때 한·일회담은 모두 4차례 열렸다.1951년 10월20일 도쿄에서1차회담을 가진 것을 비롯해 53년 4월과 10월 2·3차 회담이 이어졌다.그러나 3차회담에서 일본대표 구보타(久保田)가 “일본의 지배는 한국측에도 유익했다”는 망언을 해 결렬된다.이후 4년여 동안 중단됐다가 58년 4월 4차회담에 들어가지만 일본이 59년 2월 재일교포 북송을 시작하는 바람에 다시 흐지부지된다. 이같은 상태에서 장면정부는 한·일 국교정상화에 적극적으로 임했다.장 총리는 민의원 첫 시정연설에서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양국 회담을재개하고 ▲재일교포에의 경제적 지원,교육지도를 강화하며 ▲교포 자본을국내에 도입하는 길을 열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이어 정일형(鄭一亨)외무장관은 “외교관계 정상화에 필요하다면 총리 또는 외무장관 회담을열 수 있다”고 공표했다. 일본도 즉시 반응을 보였다.장면내각이 출범한 지 열흘 남짓한 60년 9월6일 고사카(小坂)외무장관 일행을 친선사절단으로 파견했다.일본 고위 관리가정식으로 한국땅을 밟기는 일제가 쫓겨간 뒤 처음이었다. 고사카가 방한한 날 오후 양국 외무장관은 회담을 가져 하루빨리 한·일회담을 열기로 합의한다.고사카 일행은 불과 22시간 머물고 돌아갔지만 양국정부가 ‘선린우호’ 방침을 서로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이 시기에 한·일회담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 까닭은 한국·일본 그리고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당시 국제정세를 보면 일본은 55∼56년역사상 최고의 고도성장을 이룩한 뒤 상품 및 자본의 해외진출을 노릴 때였다. 미국도 60년 1월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일본에 동북아 반공망 구축에 한몫을 맡기려 했으므로 한·일 국교정상화를 줄곧 유도했다.이승만정권 때인60년 3월 허터 미 국무장관은 양유찬(梁裕燦)주미대사를 만나 한·일관계에우려를 표명하는 등 직접 관계개선을 촉구할 정도였다. 장면정부도양국 국교정상화가 꼭 필요했다.‘경제 제일주의’를 추진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일본과 국교를 맺어 식민통치에 따른 청구권을 해결하고 국교 수립 이후로 미룬 민간자본 유치도 실현해야 했다.남북이 대치한 상태에서 등 뒤에 있는 일본을 자유우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었다. 양국은 외무장관 회담에서 결정한 5차 회의의 예비회담을 60년 10월25일 도쿄에서 시작했다.한국측 수석대표는 1차회담에도 참석한 유진오(兪鎭午)전고려대총장이 맡았고 엄요섭(嚴堯燮)주일공사,유창순(劉彰順)한국은행부총재 등이 대표단에 동참했다. 한국은 청구권문제에 초점을 맞춰 ‘청구권 8개 항목’을 내놓았다.하지만일본은 장면정부를 애태우려는 듯 개막 다음날 ‘교포 북송’문제를 핑계로북한과 별도의 회담을 시작했다.12월19일에는 이케다(池田)총리가 “한국에정부가 둘 있다는 인식 아래 한·일회담에 임한다”고 국회에서 공표했다. 일본이 ‘북한카드’를 갖고 지연작전을 쓴 탓에 회담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한편 일본은 ‘장면정부는 아직안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회담진행을 의도적으로 늦춘 면도 있다. 61년 초 일본이 경제사절단을 보내겠다고 통보하자 장면정부는 환영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다.그러나 이는 엄청난 반발을 불러온다.정부·여당 연석회의가 ‘국교정상화가 되기 전에라도 일본의 민간차관과 재일교포 재산의 반입을 허용한다’고 결정한 1월22일 밖에서는 ‘반일투쟁위원회’(위원장 劉錫鉉)가 결성된다. 김병로(金炳魯) 변영태(卞榮泰) 등 60여명이 참여한 이 위원회는 “국교수립 전에 경제교류를 하는 것과 일본 경제사절단의 내한을 반대한다”면서 실력저지를 선언한다.신민당(민주당 구파)도 다음날 “장면정부의 대일 외교에 반대하는 범국민운동도 불사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한다.환영위원회는 취소되고 일본 경제사절단의 내한도 무산됐다. 4월26일 정일형 외무장관이 위싱턴에서 러스크 미 국무장관과 회담하고 “한·일 국교정상화는 양국에 이익일 뿐아니라 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공동성명을 발표한다.이어 5월6일 일본에서 노다(野田)를 단장으로 하고 외무부 아시아국장이 수행한 일본 의원단이 방한한다. 사절단이 일본으로 돌아가 정계·사회에 “장면정부는 매우 안정돼 있다”고 보고하고 다닐 무렵 ‘5·16쿠데타’가 발생한다. 박정희(朴正熙)정권은 4년 후인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을 조인한다. 주 관심사인 청구권 금액은 ‘무상 3억,정부차관 2억,민간차관 3억달러’로결정났다.64년의 ‘6·3사태’라는 치열한 국민 저항을 억누르고 얻은 결과였다.박정권의 논리 또한 ‘경제건설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려면 국교정상화가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장면정부에서 일한 인사들 누구나가 아쉬워하는 대목이 청구권문제다.장면정부는 한·일회담 성공을 눈앞에 두었고 그때 타결됐더라면 최소한 청구권금액만큼은 훨씬 늘어났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박정희의 한·일회담 강행을 반대해 의원직을 사퇴한 정일형의 회고록 중 한 부분이다. “외무장관 당시 우리가 12억달러를 요구하고 일본이 8억달러를 주장해 타결을 못보았는데,이제 3억달러에 낙착됐다.이 하나만으로도 박정권이 얼마나 한·일회담을 졸속·저자세로 진행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장면정부는 한·일 국교를 이뤄 청구권을 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개발5개년계획,국토건설사업을 완수하려고 했다.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그들의 주장대로 민주화와 경제개발을 동시에 이루었을지도 모른다.이러한 가정을무시하더라도 장면정부가 최소한 ‘6·3사태’와 같은 폭압을 국민에게 저지르지 않았음은 평가받아야 마땅하다./이용원 기자
  • [대한광장] 지역감정의 실체와 언론개혁

    ‘지역감정’을 우리는 망국적인 병이라고 부른다.그래서 대통령이 할 수만 있다면 무인도에 가져가서 국민들을 편하게 하겠다고까지 했다.며칠후의 기자회견에서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했다.대통령 뿐 아니라 지역감정이 사라져야 한다는 데에는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그런데도 왜 이것이사라지지 않고 망령처럼 배회하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인가. 사실 지역감정이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태초에 지역차별이 있었으며 그것이 특정 지역의 소외를 잉태하였을 뿐이다.차별과 소외를 전제하지 않고 감정을 운운할 수는 없다.예나 지금이나 호남사람들은 지역감정을 품기보다는소외로 인한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다.오히려 누군가가 타 지역 사람들에게호남지역에 대한 감정을 조장해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믿는다. 지금 지역감정으로 분기탱천해 있는 지역이 어디인가.그렇다면 대통령은 무슨 지역감정을 어떻게 푼다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호남지역 사람들은 지금 전혀 예견치 못했던 역차별로 상심해있으며 소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지역감정의 해소는 차별을 시정하여 균형을 잡는데 있다.루머 등에 흔들려이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문제는 일반국민들이 아니라 바로 이 세력들이다.영남지역 사람들도 이들의 의도에 따라 끌려온 셈이다.그 세력이란 바로 야당과 일부 언론이다.작년 초 영남지역에서 있었던 재·보선에서 야당의 중견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망언들을 쏟아낸 적이 있다.‘김대중정부의 호남 싹쓸이 인사로 여러분의 후배 아들이 밀려나고 있다’ ‘한풀이정치의 피해자는 경상도 사람이 될 것이다.경상도 기질이 보통 기질이냐.뭉쳐서 덤벼들지’.이런 식이었다.또 최근에는 영남지역을 돌며 대규모 집회를 열어 불이 붙은 지역감정에 기름을 쏟아 붓고 다녔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양 축을 이루는 한쪽에는 일부 언론이 또아리를 틀고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야당의 장난에 맞장구를 침으로써 힘을 실어주고있는 것이다.그 목적은 간단하다.개혁적인 정부의 위세를 꺾어 언론권력을강화하는 한편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여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자는 것이다.지역감정의 해소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오히려 조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원인은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을 재벌과 족벌이 소유하여 좌지우지하고 있는 데 있다.독점적 소유구조로 인하여 소유주의 영향력이 막대한 결과 편집의 자율성이 부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언론개혁,특히 신문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언론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와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는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며 자율개혁만을 강조하고 있다.단언하건대 언론개혁은 절대 자율적으로는 되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을 자꾸 강조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정부의 개입은 통제를 위한 간섭이 아니라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정당한 조치요 의무다.결코 언론자유의 침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재벌과 언론의 분리,족벌소유의 타파에 있다.그와 더불어 경영의 투명성과 편집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여론의 독과점을 해소해야 한다.이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특정 재벌 내지는 개인의 소유지분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의 법의 개정이다.‘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민의 참여를 위해 주식을 공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이것은 정부가 단안을 내리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언론개혁을 논의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김동민 한일 장신대 교수.언론학
  • 자민련 ‘내각제 갈등’ 심화

    ◎朴 의장 ‘16대 총선후 개헌’ 내비치자 충청인사들 ‘黨人본분 잊었나” 성토 자민련이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 내각제를 둘러싸고 속앓이가 심하다. 당내 충청권과 TK(대구·경북)세력간 갈등의 골이 깊어가는 분위기다. 최근 TK인사들은 ‘내각제 개헌 연기론’을 시사하는 발언을 잇따라 제기했다. 朴泰俊 총재가 몇차례 불을 지폈다. 朴哲彦 부총재도 발을 맞췄다. 지난 13일에는 朴浚圭 국회의장마저 가세했다. 朴의장은 한발 더나가 ‘16대 총선후 개헌론’을 살짝 내비쳤다. 시기를 못박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16대 총선후’라는 시기가 처음으로 언급된 데 의미가 있다. 당내 최대 계파인 충청권 세력은 발끈했다. TK인사들의 연이은 개헌유보론에 위기감이 팽배해지는 기류다. 급기야 14일 의원총회에서 朴의장 성토에 나섰다. 李麟求 의원과 趙永載 의원은 “朴의장을 출당(黜黨)시키든지,스스로 탈당해야 할 것”이라고 흥분했다. 일부 의원들은 朴의장의 발언을 ‘망언(妄言)’이라고 비난했다. 金顯煜 의원은 “당인(黨人)으로서 당론에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면 진위를 파악해 강력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의총을 주재한 金龍煥 수석부총재가 교통정리에 나섰다. 그는 “개진된 의견들을 총재에게 보고하겠다”면서 “원내총무는 진위를 파악,다음 의원총회 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金수석부총재도 화가 단단히 난 듯했다.그는 역시 ‘개헌유보론’을 제기한 한나라당 金潤煥 부총재를 들어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말했다”며 간접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 日 할머니 정신대 사죄/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한 일본 할머니가 여성을 성의 노예로 삼은 일제의 만행을 사죄하는 편지와 함께 500만엔의 돈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보내왔다 한다.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 사과와 국가배상을 한사코 거부하는 일본 정부나 망언을 일삼는 관료들과는 달리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반가운 소식이다. 미키하라라는 성(姓)만 밝힌 이 75세의 할머니는 17세때 일제의 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학순 할머니가 지난 91년 증언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면서 “만행을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일본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작은 성의지만 진실을 되찾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고 편지에 썼다. 김학순 할머니는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처음으로 용기있게 밝혀 위안부문제에 관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지난해 작고한 분이다.일본을 방문해 “나를 17세때로 돌아가게 해주오.당신네 일본사람들이 나의 청춘을 망쳐놓았소”라고 절규했다. 미키하라 할머니는 자신과 같은 또래인 김학순할머니의 절규에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했던 것 같다.일본 전통시 단가를 짓는 시인으로서 남들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 위안부할머니의 고통을 함께 느꼈을 법도 하다.김학순 할머니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두 할머니가 손을 맞잡고 사죄를 청하고 용서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베에 살고 있는 미키하라 할머니는 “좀더 빨리 돈을 보내고 싶었지만 몇년전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 돈 모으는게 늦어졌다”고 말해 더욱 우리를 감동시킨다. 이 할머니처럼 양심적인 일본인들은 많다.일본의 대표적 출판사인 이와나미 서점 사장으로 지난 1월 별세한 야스에 료스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배상을 촉구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다.도쓰카 에쓰로 변호사는 지난 92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처음으로 호소한 일본인으로 그의 열성적인 유엔 활동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지난 96년 ‘올해의 여성상’을 수여하기도 했다.그밖에도 일본 대사관 앞의 수요정신대 시위에 참석한 일본여성,정신대 기념관건립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일본인,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을 낸 일본인 사진작가,일제의 정신대 만행을 참회하며 성금을 거두어 전달한 일본인 개신교 신자와 목회자들도 있다.망언을 일삼아 이웃 국가들의 묵은 상처를 덧내는 일본 정치가들이 이들의 도덕성을 배운다면 21세기의 한·일 관계는 진정한 선린우호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 서명 없는 ‘中·日 공동선언’ 파문/‘과거사’ 갈등의 불씨 내연

    ◎21세기 동반자관계 ‘삐끗’ 【도쿄 黃性淇 특파원】 도쿄(東京)에서 26일 있은 중국과 일본의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중일 공동선언’에 양국 정상의 서명이 빠져있어 파문을 낳고 있다. 일본측은 “당초부터 서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본측의 미흡한 과거사 사죄에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불만을 느꼈기 때문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중국측은 지난 10월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 때 한·일 정상이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일본측이 ‘통절(痛切)한 반성과 사죄’를 명기한 점을 들어 중·일 공동선언도 같은 수준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일본측은 그러나 72년 중·일 공동성명과 78년 우호조약 등 공식문서에 침략의 과거사를 사과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사죄 명기는 곤란하다고 거부했다. 타이완(臺灣) 문제나 경제협력 등 대부분의 외교현안에 합의해 놓았던 두나라는 장주석의 방일 하루 전인 24일에서야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정상회담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구두로 사죄를 표명하되 선언에는 ‘중국침략’과 ‘반성’만을 명기키로 가까스로 절충했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처럼 소극적인 것은 자민당 내 보수세력의 반발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한 외교소식통은 “자유당과 연립정권을 수립키로 한 이후 자민당의 보수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이들은 ‘언제까지 사죄를 해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중·일 공동선언에 두 나라 정상의 서명이 없다고 이 선언의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언에서 합의한 일본의 3,900억엔 엔차관 공여나 중국 내륙개발에 대한 일본정부와 민간기업의 지원 등은 선언발표와 함께 효력이 발생한다.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장쩌민(江澤民) 주석을 불러들여 급격히 가까워지는 미국과 중국관계에 제동을 걸려고 했던 일본으로선 과거사 문제로 용을 그려놓고 마지막으로 눈알을 그려넣는 화룡점정(畵龍點睛)에는 실패한 셈이다. ◎중·일 관계 일지 ▲72년 9월=중·일 공동성명 조인 ▲78년 8월=중·일 평화우호조약 조인 ▲88년 5월=오쿠노(奧野) 국토청장관 “중국에 대한 침략의 의도는 없었다”고 망언. 오쿠노 장관 사임 ▲89년 6월=톈안먼(天安門)사건으로 일본 제3차 엔차관 및 각료급 접촉 동결 ▲91년 8월=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총리 방중 ▲92년 4월=장쩌민(江澤民) 총서기 방일 ▲95년 8월=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전후 50년 담화발표,중국 핵실험 ▲97년 9월=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일본총리 방중 ▲97년 11월=리펑(李鵬) 중국총리 방일 ▲98년 4월=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부주석 방일
  • 日 진보지식인 가토 노리히오 평론집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일본의 자기기만 어디서 나오나/전후 일본인의 이중심리구조 분석/韓·中 등 피해당사국 수렴여부 관심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은 70년대 폴란드의 유태인묘지에서 2차대전의 범죄행위에 대해 사과를 했다.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고려된 것이지만 그는 비가 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렸다. 일본은 얼마전 김대중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식민지 지배의 과거사에 대해 사죄를 했다. 그러나 앞으로 일본에서 이를 뒤집는 발언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상이 2차대전의 범죄행위에 대해 사과를 하고 각료가 식민지배는 한국근대화에 기여했다며 이를 부인하고 사임하는 ‘비틀림’의 나라 일본. 이러한 자기기만과 모순,이중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전후 일본의 이중심리구조를 분석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가토 노리히오의 평론집이 창작과 비평사에서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서은혜 옮김)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이 책의 중심내용이 된 그의 ‘패전후론’(敗戰後論)은 독특한 관점으로 인해 일본 내부에서격론을 불러 일으켰던 평론. 가토는 사죄를 하고 이를 부정하는 실언이 계속되는 것은 역사를 이어받을 주체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후 일본은 패전을 둘러싸고 전쟁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전쟁 및 무력사용을 포기한 평화헌법을 수호하는 진보론자와 대동아 공영권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개헌을 요구하는 보수론자로 양분된다. 전자와 후자는 별개가 아니라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처럼 한쌍이다. 부정한 과거로부터의 새출발은 단절이 아니라 부정한 과거를 끌어안고 시작돼야 한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과거를 감싸안는 대신 과거를 잘라버리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패전을 종전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이를 엿볼수 있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지킬박사의 사과는 튼실하지 못하다. 반쪽(진보­호헌)이 머리를 숙여도 또다른 반쪽(보수­개헌)이 이를 부정하는 절반의 사과가 된다. 이러한 인격분열을 역사의 문제로 치환시키면 세계사,일본사 어느 쪽에도 의심을 품지 않고 한쪽만을 신뢰하고 따르는 존재방식이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현재 일본이 해야할 일은 세계사와 일본사 양쪽 모두와 자신을 관련짓고 그 양자와의 관계 속에서 양쪽을 한줄에 꿰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세계사 속에 자리잡으며 또한 자국사 속에서도 자리매김될 만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세계사와 자국사의 틈새를 살아내는 것,이것이 바로 역사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중구조에 대한 저자의 이러한 시각이 한국,중국 등 피해당사국들에게도 받아 들여질지는 의문이다. 일본인의 심리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사실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 스티븐스 砲殺사건(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7)

    ◎張仁煥·田明雲 의사 의거 추적/“국권회복 활동” 보도 한달뒤 1면톱 게재/“애국지사” 내외 알려 安重根 의사에 영향 1908년 3월23일 일본 통감부의 외교고문 스티븐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張仁煥·田明雲 두 애국지사의 총에 피살된다. 총격은,‘일본의 한국 보호’가 한국인의 바람인듯 공공연히 떠들어댄 그의 망언에서 비롯됐다. 대한매일은 이 사건을 끊이지 않고,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의 열악한 통신체계에도 불구하고 이역만리에서 벌어진 의거를 대한 백성이 자세히 알게됐다. 미국측에 의해 ‘단순살인’쯤으로 치부될 뻔한 사건을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의거로 자리매김,세계만방에 알린 것들은 순전히 대한매일의 공이었다. 스티븐스는 일본의 한국 지배가 정당함을 홍보하고 미국인의 반일감정을 무마하라는 지시를 받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3월21일 기자회견을 가져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한국에 유익한 바가 많다” “한국민은 일본의 보호정치를 환영한다”는 따위의 망언을 거듭했다. 대한매일에 ‘스티븐스 포살(砲殺)사건’이 처음 등장한 것은 3월25일자 뉴욕발 기사였다.‘한국 전 고문 須知分(수지분=스티븐스)씨가 일전에 桑港(상항=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는데,24일(사실은 23일)에 그 여관 앞 마차에서 내릴 때 돌연히 사격하였는데,그 사격자는 상항에 체류하는 한국인이라. 수지분씨가 이 조난 전에 신문기자를 만나 일본의 대한정책을 찬양하되,미국이 필리핀에서 하듯 같은 형태의 귀중사업을 일본이 한국에서 시작한다고 말한 때문이라더라.’ 대한매일의 초기 보도는 전적으로 외신에 의존해야 했으므로 짤막짤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흐름을 보면 결코 이 사건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7일에는 ‘수지분이 큰 상처를 입지 않은 반면 부상한 한인(전명운)은 빈사 상태’이며 ‘저격 이유는 수지분이 휴대한 서류가 미국 대통령과 주미 일본대사에게 넘어가면 한국에 절망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28일에는 국내발로 ‘수지분이 죽어 통감부 관리 일동이 조전을 보냈다’는 부음기사를,29일과 31일에는 뉴욕발로 ‘병상의 한인은 점차 쾌유하며 수지분 사망 소식에 환희하였다’ ‘암살자(장인환)가 기소되었는데 그 변호사는 애국적 광란상태에서 무지각적으로 벌인 범죄라고 변호하였다’는 속보가 잇따랐다. 사건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외신만을 전하는 데 답답했을 대한매일은 드디어 4월17일자 1면 톱으로 상세한 내용을 보도한다. 미국에서 발행된 공동회의 호외를 긴급 입수한 것이다. ‘별보(別報)’라 이름 붙은 이 기사는 평상시와는 달리 ‘수지분 포살 상보’‘질문 수지분’‘전명운·장인환 양씨가 수지분을 포격’‘경고 첨(僉=모든)동포’ 등의 제목을 중간중간 큰 활자로 집어넣었다. 그 내용은, ‘수지분이가 23일 상오 華盛頓(화성돈=워싱턴)으로 향하려고 옥란시 정거장에 당도하며 애국지사 양씨는 뒤쫓아왔던지 일찌감치 대기중이라. 수지분이가 일본 영사와 동반하여 자동차에서 내려올 때 좌우 공격하여 연 3차 포성이 울리는 때에 수지분이가 총에 맞아 쓰러지니 경찰관리가 급히 모여들어 마차에 싣고 병원으로 가더라’는 것이었다. 이어진 ‘경고 첨동포’에서는 ‘우리가 양씨와 함께 죽을 지경에는 미달하였으나 그 애국열성이야 어찌 위로하지 못하리오. 한국독립도 이제 오늘부터요,한국자유도 오늘부터’라고 찬양한 뒤 ‘우리가 각각 주머니를 빌어 독립을 위하여 재판하기를 불가불 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포살 사건’ 보도는 대한매일이 거둔 또하나의 승리였다.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쾌거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1년7개월 후 安重根이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하는 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일제는 이 보도를 대한매일 사장 배설을 고소하는 빌미로 삼았다.
  • 대한매일신보 명논설 4편/인재양성이 국권·인권 회복의 기초라

    ◎일진회 마귀무리 설치고 슬픔 극에/열일곱학생 피여 대한을 복구하리라/국민의 혼은 감히 훼손치 못하리니 梁起鐸 朴殷植 申采浩 張道斌은 대한매일이 태어나 일제에 의해 문을 닫을 때까지 항일과 국권회복의 꿋꿋한 필봉을 지켜낸 분들이다. 양기탁은 ‘총무’로서 편집을 총책임졌고 나머지 셋은 주필을 주고받았다. 이들이 대한매일에 실은 논설 가운데 대표작 하나씩을 소개한다. ◆서우학회 취지서 무릇 사물이 홀로이면 위험하고 모이면 강하며,합하면 이루고 흩어지면 패함은 확고한 이치라. 하물며 지금 세상에 생존경쟁은 천연(天演)이요,우승열패는 공례(公例)라 일컫는 고로 사회단체의 있고없음으로써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며 존망을 판단하나니. 오늘 우리가 이같이 극렬한 풍조에 맞닥뜨려 크게는 국가와 작게는 제 몸·제 집안을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강구해 보면,우리 동포 청년의 교육을 이끌고 장려하여 인재를 양성하며 중지를 계발함이 즉시 국권을 회복하고 인권을 회복하고 신장하는 기초라. 연이나 이처럼 중대한 사업을 진흥하고 확장코자면 공중의 단체력을 필히 갖추어야 할지니 이는 오늘 서우학회가 발기한 이유라. ◆日人何知 일인의 신문잡지가 가끔 우리 신문을 평해 배일(排日)론자라 하여 미친듯이 매도하는데 그중 망언을 하는 자는 심지어 정부의 비밀금을 받아 민심선동의 기관을 만들었다고 무고하는 자도 있도다. 기자 왈 ‘네가 어찌 본보를 알리오,네가 어찌 본보를 알리오.’ 배일한다고 본보에 허물을 씌우더라도 수긍치 아니할지며,배일하지 않는다고 칭송하여도 수긍치 아니할지며,그 중간이라고 평해도 수긍치 아니할지니 오호라,본기자의 붓끝이 너희 일본을 어찌 알리오 마음과 눈에 단지 한국만 있도다.…5조7협(脅,을사조약과 정미7조약이 협박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에 괴이한 조항이 빈번하며 일진회에 마귀무리가 설치고,우리 땅과 정부 의자에 외국인이 날마다 늘어나니 슬픔이 극에 달하는구나. ◆학계의 화(花) 장하도다 열일곱 학생의 손가락 피여,열렬하구나 열일곱 학생의 손가락 피여. 내가 그 피에 춤을 추노니 무릇 한국의 뜻 있는 남녀야,각자 그 피에 춤출지어다. 내가 그 피에 노래하며 그 피에 곡하노니 무릇 한국의 눈물 있는 남녀야 각자 그 피에 노래하고 곡할지어다. 열일곱 학생의 손가락 피는 어떤 피인고. 애국의 피며 시대를 걱정하는 피며 비분강개하는 피며 열광하는 피니,장하구나 열일곱 학생의 손가락 피여 열렬하구나 열입곱 학생의 손가락 피여. …함흥군 풍호리 보창학교 학생 50여명이 모여 연설하다가…그중 17인이‘내가 반드시 우리 대한을 복구하리라’‘내가 삼천리 산하를 되찾으리라’하며 칼로 손가락을 찔러 붉은 피로 그 맹세를 썼다. ◆국민의 혼 중하도다 국민의 혼이여,강하도다 국민의 혼이여. 그 나라의 인민이 수칸 두옥(斗屋=아주 작은 집)을 보전치 못하며 몇마지기 거친 밭을 보전치 못하되 국민의 혼만 지키면 그 나라의 빛을 가히 멸망케 못한다. 그 나라 인민이 새 정신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새 물질을 만들지 못하되 국민의 혼만 지키면 그 나라의 위엄을 가히 떨어뜨리지 못하니 국민의 혼이 어찌 중하지 아니한가.천병만마가 그 나라의 산하는 가히 짓밟되 그 국민의 혼은 감히 흔들지 못하며,웅린(雄隣)호족이 그 나라 인민은 가히 겸박(鉗縛=칼을 씌움)하되 그 국민의 혼은 감히 더럽히고 훼손치 못하나니 국민의 혼이 어찌 강하지 않으리오.
  • 정치현안 언급 일체없어/청와대 오찬 이모저모

    ◎과거사 등 20분간 설명/金 대통령­李會昌 총재 국회 등원 밀착 환담 12일 金大中 대통령이 3부요인과 여야 정당대표를 초청한 청와대 오찬대화는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1시간45분 가량 진행됐다.이날 오찬대화는 지난 8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후 여야 지도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데다 여야간 대치정국 속에서 金대통령과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만났다는 사실 자체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청와대측은 그러나 이날 오찬에 金重權 비서실장과 林東源 외교안보수석만을 배석시켰다.청와대측이 정치인 모임에 거의 고정멤버로 배석시켜왔던 李康來 정무·朴智元 공보수석을 뺀 것은 오찬의 주목적이 金대통령의 방일성과 설명에 있다는 점을 간접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이는 정치상황이 유동적인 상태여서 정치적 대화를 나눌 시기가 아니라는 金대통령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국내 정치문제에 관해서는 일체의 언급이 없었다는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의 전언이다. ▷오찬 대화◁ ○…이날 대화형식은 먼저 金대통령이방일성과를 과거사 정리, 경제협력,대중문화 개방,대북정책 공통 이해,환경·마약을 비롯한 세계적인 협력 등 5개 분야로 나눠 20분동안 설명하고 林외교안보수석이 구체적인 현안성과를 브리핑했다.이어 朴浚圭 국회의장과 趙世衡 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 등이 간단한 촌평(寸評)이나 소감을 피력했다고 朴대변인이 전했다. 청와대측은 기자들의 거듭된 요구에 따라 한나라당 李총재의 발언 내용만을 朴대변인이 林외교안보수석의 설명을 듣고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대통령께서 이번 일본 방문을 통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정립한것에 대해 높이 평가합니다.이번에 (일본은) 양국간 문서를 통해 사죄를 했습니다.그러나 과거를 보면 일본이 또다시 (망언을) 반복하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주의를 요합니다.일본이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하고 좋은 성과를 낸데 대해 대통령께서는 50년만에 이뤄진 정권교체의 결과라고 설명하셨는데,제생각으로는 신정부에 대한 기대인 것 같습니다.앞으로 여야관계 등 국내문제도 잘 풀어가시면 좋겠습니다.어업협정에 대해서는 수산종사자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가 있고,독도문제도 국민들이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는바,기본적으로 그런 분들을 잘 설득했으면 합니다” ▷참석자 환담◁ ○…오찬대화에 앞서 3부요인들과 여야 정당대표 등 참석자들은 오찬장인 백악실옆 대기실에 모여 15분동안 환담을 나눴다.朴의장과 金鍾泌 총리는 시종 한나라당 李총재를 중심으로 박세리 선수,한·일의원 축구대회 등을 화제로 우스개 소리를 건네며 분위기를 유도했다. 한나라당 李총재가 맨 나중에 들어서자 趙대행과 자민련 朴泰俊 총재가 차례로 “협조해줘서 고맙습니다”“오래간만입니다”며 악수를 건넸고,朴의장은 자기와 金총리 사이를 가르키며 “이리 앉으시겠습니까”라고 자리를 안내했다.이어 金총리가 “우스갯 소리 하나 할까요”라며 李총재를 보고 “다른 곳에서 쭉 살아 충청도 분이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데,하는 것을 보니 느리다”고 맨나중에 온 것을 빗대자 李총재는 미소로 답했다. ○…金대통령이 오찬장소인 백악실 입구에 도착하자 李총재를 필두로 金대통령과 낮은목소리로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金대통령은 “추석때는 교통문제가 있고 해서 어제(11일) 성묘를 다녀왔다”며 “나락(벼)이 쓰러지긴 했지만 용인은 올해 대풍인 것 같더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金重權 비서실장이 실직자를 동원한 벼 일으켜세우기 작업현황을 보고했고,朴의장이 한나라당의 국회등원 결정에 대해 “한나라당에게 대통령이 밖에서 외교를 하니 조용히 하자고 했는데,등원까지 이뤄져 잘됐다”고 李총재를 추켜세웠다. 이에 金대통령도 “잘됐죠”라며 李총재에게 몸을 기울여 대화를 주고받았으나 공개되지 않았다.金대통령과 참석자들은 환담이 끝나자 냉채,볶음면,유산슬 등 중국식으로 오찬을 함께 했다. ○…오찬을 끝내면서 李총재는 “좋은 오찬,감사합니다”라고 金대통령에게 인사를 했고,이에 金대통령도 “바쁘신데 자리를 함께해 고맙습니다”고 화답한 뒤 헤어졌다.
  • “日 더이상 망언 없을것”/金 대통령 訪日 성과 설명

    金大中 대통령은 12일 낮 朴浚圭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金鍾泌 국무총리 등 3부요인과 金容俊 헌법재판소장,李容勳 중앙선관위원장,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자민련 朴泰俊 총재,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를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며 방일성과를 설명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 각료 등 공식적으로 책임있는 사람으로부터 망언이 없도록 하겠다고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가 약속했다”고 소개한 뒤 한·일 과거사 정리,경제협력,문화개방,대북정책에 대한 상호이해 등의 방일성과를 설명했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한나라당 李총재는 “이번에 金대통령이 방일을 통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정립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그러나 과거사 반성이 1회성 선언으로 끝나고 위안부문제 등과 관련해 앞으로 변화나 개선없이 망언이 되풀이된다면 이번 회담의 의미가 희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나라당 安商守 대변인이 밝혔다. 한편 朴대변인은 “李총재가 ‘앞으로 여야관계 등 국내문제도 잘 풀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 金 대통령 訪日 결산­日측의 과제

    ◎‘과거사 사죄’ 실질 조치 필요/재일한국인 법적지위 높여야/日皇 방한 여론조성 서두를듯 【도쿄=黃性淇 특파원】 한일 정상회담이 남긴 일본측 과제는 대체로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가 과거의 실질적 청산.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가 처음으로 문서화된 만큼 21세기 두 나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金大中 대통령이 강조했듯 한국국민의 오해를 낳는 일부 정객들의 망언이 사라질 수 있도록 일본정부가 앞장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런 점에서 이달 초 정파와 정당을 초월해 발족한 ‘전쟁진상규명법 제출을 위한 의원연맹’의 활동이 주목된다.민간차원에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한일역사 공동연구를 위한 역사포럼’의 활동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있다. 둘째로 金대통령이 요청한 일황의 조기방한(2002년 월드컵대회 이전)을 꼽을 수 있다.일본내에서도 일황의 방한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만만찮다.일본정부로서도 일황의 방한이 실패할 경우 한일관계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그러나 일본에서 ‘지일파’(知日派)로 평가되는 金대통령의 재임기간중 반드시 일황 방한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해 오부치 내각은 조속한 환경조성에 서두를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으로 재일 한국인의 법적지위 및 우대 향상이다.金대통령이 요청한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문제에 대한 본격적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일본정부는 보고있다. 이미 국회차원에선 민주당과 신당평화 등 야당측이 영주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제출,분위기는 무르익은 상황이다.법무성에서 검토하고 있는 외국인 지문날인제도의 폐지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 金 대통령 訪日 결산­전문가 특별 대담

    ◎“과거사 종결,미래 협력체제 구축을”/戰後 차세대 지도자 인적교류 시급/‘구조조정’ 日 역할 위해 ‘장벽’없애야/日 문화 자정능력 키워야 개방땐 유익 金大中 대통령의 국빈 방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21세기를 새롭게 열어갈 ‘신(新)한·일 공동협력 방안’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지난 한세기 동안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머물렀던 한·일 두나라 관계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吳淇坪 서강대 교수(국제정치학)와 金兌基 단국대 교수(경제학)의 특별대담으로 짚어본다. ▲吳淇坪 교수=외교라는 것은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을 얻어내는 것이다. 이번 金대통령의 방일 외교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 만큼 얻었다고 볼 수 있다.한·일 공동선언의 가장 큰 의미는 양국간 과거청산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하지만 일본은 기본적으로 다원주의 사회다.과거와 같은 망언·돌출발언도 나올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한국이 정치력과 지도력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방일을 계기로 과거사 문제는 이번에 완전히 종결을 짓고 미래지향적으로,21세기적 발상으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래 포럼’ 설립 절실 ▲金兌基 교수=이번 방일이 미래지향적 관계설정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분야에서 ‘말 잔치’와 ‘수사 외교’라는 과거 외교관행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실무진들의 준비부족으로 대통령의 의지와 비전을 뒷받침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미래가 없을 땐 과거가 발목을 잡게되지만 미래에 초점을 맞추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해결방법이 다양해진다.이러한 의미에서 ‘한일 미래포럼’의 설립은 절실하다.앞으로 경제 문화 협력 방안 등 ‘21세기 동반자 관계구축’을 위해선 한·일 미래포럼 등의 상설기구가 주축이 돼야 한다. ▲吳교수=일본의 이번 사과는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과 문건으로 명문화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앞으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에 유익할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은 양국 협력의 기초를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더욱이 한·일 양국 모두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만큼 공동협력 관계가더욱 절실한 상태다. 하지만 현정권이 미국이나 일본 등 어느 일방으로 기우는 외교정책을 펴서는 안된다.내심 일본은 정권출범 이후 현정권이 미국에 편향되고 있지 않나하는 우려감도 표시했다.이번 방일이 일본의 이런 기우를 확실하게 잠재운 효과가 있다.앞으로 한국­미국­일본의 3국협력 체제를 큰 틀로 일본과의 협력방안을 공고히 해야 할 것이다. ▲金교수=과거사 해결을 위해선 진정으로 반성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만 다원 사회인 일본의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사죄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많은 일본 국민들은 지난 65년 국교정상화 협상에서 과거사 문제가 일단락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일본이 이번에 과거사 사죄를 명문화한 것은 큰 진전으로 받아들이고 과거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양국 정치인들이 과거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많았다.일본 극우파는 ‘혐한(嫌韓) 의식’을,일부 한국 정치인들은 ‘반일(反日)감정’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침소봉대(針小棒大)한 측면이 있다.이번 방일을 계기로 양국 지도층들이보다 성숙된 리더십을 키워야 할 것이다. ○對北 동북아 공동대처를 한·일 양국관계는 전후세대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향이 돼야 한다.전후세대들이 양국의 중추세력으로 성장한 만큼 차세대 정치·경제 지도자와의 끊임없는 인적교류가 시급하다. ▲吳교수=최근 타결된 어업협정에 다소 불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우리도 적지않은 실익을 챙겼기 때문에 국민적 설득력을 갖는다.하지만 어업협정의 실효성은 앞으로 두나라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대응은 양국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중국과 일본 미국 러시아 등 동북아 관련국들의 공동협력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며 이런 기조의 연장선상에서 양국의 공동대응이 이뤄져야 한다.다만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가 일본의 극우파들을 상당히 자극했다.이런 측면에서 金대통령이 우리의 대북정책 등 햇볕정책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다. ▲金교수=최근 타결된 한·일 어업협정은 시간적으로 대통령의 방일 일정에 맞췄기 때문에 실익 측면에서 적지않은 손해가 있었다.수년간 끌어왔던 협상치고는 실망스런 측면이 있다. 대북 대응은 무엇보다 동북아 국가들의 공동대처가 선행돼야 한다.앞으로 있을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아 양국의 의지를 천명해야 할 것이다. ▲吳교수=이번 30억달러의 차관 등 경협 보따리는 우리에게도 유리한 조건들이다.과거처럼 옵션이 적기 때문에 IMF체제 극복을 위해서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金교수=이번 방일에서 일본이 풀어낸 ‘경제 보따리’는 사실 기대 이상의 선물은 아니다.오히려 한국의 경제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을 위해 앞으로 일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기대되고 있다.일본이 한국의 제조업체 인수 등 구조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각종 투자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吳교수=일본 문화개방은 단기적으로 문제점도 일어날 수 있다.하지만 폐쇄·고립된 상태에서 살 수 없는 것이 현재의 국제사회다.자정능력을 능동적으로 키우면서 일본문화를 소화할 경우 문화개방은 결과적으로 문화발전에 유리하게 작용될 수도있다. ▲金교수=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전환기로 삼아야 한다.단순히 행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실무 교류·협력이 아니라 스포츠와 문화교류 등 양국 국민들이 참여하는 이벤트를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 ○안보리문제 실익 얻도록 ▲吳교수=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일본이 한때 제의했던 ‘거부권 없는 상임이사국’ 정도는 오히려 환영할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金교수=‘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편협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일본이 유엔 안보리에 진출하도록 돕고 우리도 이에 상응하는 실익을 얻으면 된다.이것이 ‘윈­윈 전략’이다.한국은 세계 강대국을 꿈꾸는 중국과 일본의 조정역할을 수행하면서 양자의 이해관계를 조절해야 동북아 전체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 金 대통령 기자간담 내용

    ◎일 철저한 반성속 사죄 한국민 감정개선 계기/인류관심사 공동대처 등 협력범위 확대 큰 성과 【도쿄=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은 일본 국빈방문 사흘째인 9일 도쿄를 출발하기 앞서 방일 성과를 결산하는 기자간담회를 가졌다.金대통령은 이번 방일이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면서 한·일간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 형성을 위한 양국 지도자와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金대통령의 간담회 모두발언과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두 발언◁ 이번 방일은 과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이나 미국방문에 못지않게 성공적이라고 판단합니다.양국 정상의 공동선언과 행동계획에서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전례없이 분명히 한국에 대한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명시하고 사죄를 표명했습니다.구체적인 협력면에서도 경제협력,한반도 평화와 안보,문화·인적 교류 등 많은 분야에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이번 방일은 단순히 과거사 문제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면에서 대단히 큰 성과를 거뒀고 이것이 핵심이라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일 양국간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세계 인류의 공동 관심사인 인권,환경,범죄,마약,빈곤 등에 공동대처하자고 큰 테두리에 합의한 것도 요합니다.오부치 총리뿐 아니라 일본의 모든 지도자들이 한·일간에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음을 확인한 것도 이번 방일의 소득이자 특색입니다.50년 만에 민주정부를 세운 우리 국민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일본의 높은 평가와 존경,협력이 이번 방일 성과를 가져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문일답◁ ­과거사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중 어디에 더 비중을 뒀습니까. ▲두 문제는 성격이 다릅니다.양쪽 다 같은 비중을 뒀습니다.둘 다 상당히 잘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다시 망언이 나오면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일본에서 한국이 자꾸 사과문제를 제기하는 데 대해 말이 있는데,이는 첫째 일본의 과거 사죄태도가 분명치 않고,가해자와 피해자 인식이 애매했기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또 총리가 사죄했는데도 곧바로 정부여당 중진이 이를 뒤엎는 말을해 결국 사과·반성이 형식에 그치고 알맹이는 바뀌지 않았다는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오부치 총리는 그 점에 특별히 유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민주 국가에서 양국 국민의 비판을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일본 총리가 정부와 국민을 대표,문서로 분명히 한 만큼 일본의 다른 지도자들은 거기에 당연히 구속받을 것입니다. ­아키히토(明仁) 일황을 만나본 인상은 어떻습니까. ▲대단히 겸손하고 성실한 분이고 여러가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한국의 삼국시대,특히 가야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 그 문제에 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황후는 집사람(李姬鎬 여사)이 쓴 ‘나의 사랑 나의 조국’이라는 책도 읽었다고 합니다.천황 내외분이 한국 대통령을 맞기 위해 상당한 정성으로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았습니다. ­아키히토 일황이 방한할 적절한 시점을 어떻게 생각십니까. ▲일본 천황은 과거 전쟁 상대국인 중국과 영국을 모두 방문했는데 이웃나라인 한국을 국교 재개 33년이 되도록 방문하지 않은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이런 상황은 양국 국민의 화목과 융화에도 문제가 있습니다.천황의 방한은 양국의 21세기 동반자 관계와 월드컵대회의 성공적인 공동개최 등 전체적인 목적과 흐름에 플러스가 될 것입니다.양국 국민간 준비가 되는 것을 봐가며 실현시킬 문제입니다. ­국민의 대일 감정은 문서로 해소되기 어려운데 국민을 어떻게 설득,감정의 응어리를 풀도록 하겠습니까. ▲일본이 문서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히 하고 철저한 반성 위에서 사죄한 것은 국민의 대일 비판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상대가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할 경우 금도를 갖고 대하는 게 국민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국민의 협력을 바랍니다.
  • 日 정객 妄言 사라질까/관방장관 ‘입단속’ 피력

    ◎‘양국 협력 긴요’ 저변 확산/자제 요인으로 작용할듯 【도쿄=黃性淇 특파원】 8일의 역사적인 한·일 공동선언이 일본 정객들의 고질적인 ‘망언’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역사의 톱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없도록 공동선언을 소중히 여기겠다”면서 “앞으로 발언 등에 각별히 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의 방일 때마다 일황이나 총리 등이 과거사에 대해 사죄나 사과를 했으나 번번이 일본 각료나 정치인들의 망언이 터지는 통에 한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오히려 격앙시키는 등 방일 성과가 반감된 예가 많았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사죄의 ‘교과서’로 삼았던 95년 ‘무라야마 담화’ 직후 한·일합방조약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망언이 이어져 金泳三정부 때 한·일관계가 한동안 냉랭했던 사례가 잘 말해준다. 최근에는 오부치 내각 출범 직후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농수산상이 종군위안부문제의 일본 교과서 게재와 관련한 망언으로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을앞두고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노나카 장관이 “한·일 공동선언의 정신에 입각,양국 역사에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발언을 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할 것”이라고까지 강조,입단속을 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피력한 것도 이같은 전례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일본 정객들의 망언이 정부의 ‘지침’에 따라 좌지우지될 성격은 아니지만 두 나라 정부가 과거청산을 처음으로 문서화하고 관방장관이 이례적으로 재차 강조하고 나선 만큼 망언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내 한국전문가들도 21세기에 한·일 두 나라의 협력은 서로에게 불가결하다는 인식이 일본 국민의 저변에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런 분위기가 망언을 자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등 우익성향 정객들의 돌출행보가 최대 변수인 셈이다.
  • 도쿄 납치사건과 DJ 심중(청와대 취재수첩)

    일본을 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은 이른바 ‘DJ 도쿄 납치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8일 국회연설과 정상회담 이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의 간단한 언급이 전부다. 그것도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오전 기자회견에서는 원론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고,오후 국회연설에서도 ‘25년 전 도쿄 납치사건을 비롯해 생명을 잃을 뻔하였던 내가…’라며 핵심을 비켜 지나갔을 뿐이다. 지난 8월 서울에서 치러진 생환 25주년 기념미사와 사진전의 열기에 비하면 의외다. 金대통령이 언급을 피하는 이유는 뭘까. 청와대 관계자들은 특별히 새로 말할 게 없다고 설명한다. 지난 80년 서울의 봄,오랜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뒤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그 때의 입장에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한 핵심 관계자도 “대통령이 말씀하신 대로 따르고 있다”고 털어놨다. 金대통령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는 해명이다. 金대통령의 이같은 태도는 한·일관계를 ‘사과와 망언’으로 반복·요약되는 구태의 양자차원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다시말해 희망과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21세기를 앞두고 이제 두나라 관계를 아시아,나아가 범세계적인 차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林東源 외교안보수석도 “이 문제는 한·일 양국 외교관계의 껄끄러움 같은 것”이라며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양국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사실 ‘DJ 납치사건’은 어느 정도 진상이 드러나 있다. 더구나 우리측에서 보면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다. 金대통령이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역사적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 시효중이어서 ‘공’은 일본측에 넘어가 있는 형국이다. 굳이 우리가 먼저 들춰낼 사안이 아닌 것이다.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金대통령의 ‘실리’와 ‘미래 외교’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사죄’ 단어 공식문서에 명기/진일보된 과거사 사과

    ◎일 망언 예방효과 기대/교과서 개정돼야 완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담긴 과거사 사과 표현은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일본 총리의 담화에서 ‘아시아 제국’을 ‘한국민’으로 바꾼 것이다.공동선언에 쓰인 ‘오와비’란 일본어도 무라야마와 하시모토 총리의 과거사 사과 때는 ‘사과’와 ‘사죄’로 병행 해석돼 발표됐지만 이번에는 사죄로만 명기한 것도 진일보한 점이다. 그러나 일본어 사용 강요와 창씨개명,군대위안부 문제를 적시했던 지난 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의 발언과 비교할 때는 다소 구체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특히 과거사 사과가 말이 아닌 공식문서에 담겼다는 점만은 큰 진전이란 평가다.그동안 여러차례 일황과 일본 총리의 과거사 사과가 있었지만 보수우익 각료와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그 의미가 희석돼왔다.이제 공식문서화된 만큼 최소한 일본 정부차원의 망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방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양국이 진정한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선언적 행위보다도 일본의 성실한 자세가 관건이다.과거사 사과는 역사교과서의 개정으로 완수된 다는게 우리의 입장.이번 공동선언에도 젊은 세대에 대한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언급됐지만 양국의 입장은 아직 다르다.우리는 역사교과서 개정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일본은 아직 교과서 개정에 큰 관심이 없다.얼마전 ‘한·일 역사연구촉진공동위원회’설치 때도 일본측이 강력히 주장해 ‘촉진’이란 용어를 넣어야만 했다.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게 아니라 예비작업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주기 위한 의도였다.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과를 해야 하느냐”는 일본의 비아냥도 있지만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만 진정으로 과거사 문제가 종료된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일본 과거사 사과 발언 ▲히로히토 일황 ­금세기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84.9.6 전두환 대통령 방일 만찬사 ▲아키히토 일황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痛惜의 念을 금할수 없다. ­90.5.24 노태우 대통령 방일 만찬사 ▲미야자와 총리 ­과거 한시기 귀국국민들께서 일본의 행위로 말미암아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체험하셨던 사실을 상기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잊지않도록 해야할 것이며 저는 총리로서 다시한번 귀국국민께 반성과 사과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92.1.16 방한 만찬답사 ▲호소카와 총리 ­과거 우리의 식민지 지배시절엔 한반도의 여러분들은, 예를 들어 모국어의 기회를 빼앗기고 타국어의 사용을 강요당하고 창씨개명이라는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군대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 등 각종 문제가 있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 일을 깊이 반성하며 이번기회에 다시한번 陳謝드리는 바이다. ­93.11.16 경주 정상회담 ▲무라야마 총리 ­일본은 멀지않은 과거의 한시기에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에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역사의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한번 통렬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95.8.10 전후 50주년 특별담화 ▲오부치 총리 ­일본이 과거 한 시기에 한국민에 대해 식민지 지배에 의해 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인식,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 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 ­98.10.8 김대중 대통령 방일 공동선언
  • 金 대통령 일본 방문(사설)

    金大中 대통령이 오늘 역사적인 일본 방문길에 오른다. 金대통령의 이번 일본 방문은 한·일 양국이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양국 정상의 공동선언형식으로 명문화한다는 데 특별한 의의가 있다. 두나라간의 불행한 과거사를 깨끗이 정리하고 진정한 동반자로서 한·일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일간의 진정한 협력시대를 열기 위한 전제는 종전 이후 50여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는 과거사문제를 확실히 매듭짓는 일이다. 그리고 과거사의 정리는 일본측이 ‘어디까지 어떻게 하느냐’는 사과의 수준보다는 일본의 진실성이 문제해결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사과의 수준으로만 본다면 그동안 갖가지 형식으로 여러차례 표명한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고통과 피해를 준 데 대해 ‘통렬한 반성’을 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 것이면 받아들일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사과를 해놓고 얼마 안돼 ‘좋은 일을 했다’는 망언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정치지도자들의 입을 통해서만 사과를 했지 일본의 진심은 아니라는 점이 사과요구를 거듭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두나라간의 진정한 협력시대는 일본 국민들이 진심으로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의 마음을 갖는 자세와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金대통령은 한·일관계와 과거사에 대해 과거 대통령들과는 달리 실질적이고도 분명한 인식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金대통령의 이번 방일로 한·일간 진정한 동반자관계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더욱 크게 하는 이유이다. 진정한 동반자로서의 새로운 협력관계야말로 한·일 두나라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의 번영을 위한 길이라 하겠다. 과거사를 매끄럽게 정리하고 새로운 협력관계 확립 의지만 확고하다면 한·일간의 여러가지 현안들은 어렵지않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양국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됐던 어업협정만 보더라도 비록 독도문제가 과제로 남아있고 어민들의 불만이 있긴 하지만 서로 한발짝씩 양보함으로써 대체로 이해할만한 수준에서 타결됐다는 평가이다.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일본의 협조,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일본문화 개방문제등도 새로운 선린 우호정신으로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金대통령의 이번 방일중 국회 연설과 NHK좌담이 또다른 의미에서 관심을 끈다. 金대통령이 일본국민들에게 과거사에 대한 인식과 새로운 한·일관계의 필요성을 직접 설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여·야 대구집회 비난戰/‘지역감정 선동’ 책임 공방

    ◎여­“정치위기 모면위해 경제 죽여도 좋은가”/야­연사들 ‘TK자존심’ 앞세워 與 원색 성토 여야는 한나라당이 지난 26일 대구 두류공원에서 가진 ‘야당파괴 규탄대회’와 29일로 예정된 서울대회를 놓고 공방(攻防)을 계속했다.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27일 “한나라당의 장외집회는 우리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경고하고 “한나라당은 자신이 처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선동하고,그래서 이 나라 경제를 죽여도 좋은지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자민련 대구광역시지부도 “한나라당은 망국적 지역감정 선동을 위한 장외집회를 즉각 중단하고,하루빨리 국회로 돌아와 민행현안 해결에 협조함으로써 역사와 국민 앞에 속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나라당 安商守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대구 대회에서 보여준 열광적 성원은 바로 우레와 같은 민심의 소리였다”면서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이제 민심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국민의 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安대변인은 이어 “지역감정의최대 수혜자인 현정권이 지역감정을 운운하는 것은 웃음거리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통합을 파괴하는 망언”이라고 되레 여권의 책임을 부각시켰다. ○…소속 의원 105명과 당원·시민 등 3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대구대회에서 연사들은 ‘TK(대구·경북)의 자존심’을 앞세워 여권을 집중 성토했다. 李會昌 총재는 “대구·경북은 항상 핍박받고 고난에 허덕이며 권력에 짓눌린 자의 편에 섰다”며 “국민의 순수한 바람을 지역감정으로 모는 오만 불손한 정권과 여당을 응징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金潤煥 전 부총재는 “정치공작과 보복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TK에 대한 모독”이라며 “TK의 자존심과 명예를 위해 한발도 물러설 수 없다”고 ‘TK’를 거듭 강조했다. 이어 姜在涉 대구시지부위원장은 “TK가 조용히 있으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다”고 ‘TK정서’를 자극했다. ○…대회장에는 ‘대구 경북의 자존심,金潤煥을 지키자’‘퇴출 도산 부도 제1지역 TK,넘쳐나는 정부자금 제1지역 호남’‘대구 경북 말살하는 DJ정권 심판하자’는 등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현수막과 피켓이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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