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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세의 만화경] 독도가 우리 땅이라면

    [이현세의 만화경] 독도가 우리 땅이라면

    3·1절이 있는 이 달은 우리 민족에겐 의미가 남다른 달이다. 삼천리 강산에서 수많은 선조들이 만세를 부른다고 목이 잘리고, 태극기 흔든다고 손목이 잘린 달이다. 하필이면 그런 3월에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일본이 억지 쓰는 탓에 이 나라 삼천리 강산은 다시 벌집 쑤셔 놓은 꼴이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제 땅도 못지키는 꼴이 되었을까…. 20년쯤 전이다. 일제 때 강제로 끌려가서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가 된 위안부를 두고 강제동원이 아니라 돈을 받고 스스로 성전에 참여했다는 일본 우익들의 발언에 분노해서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 나는 학도병 얘기를 그렸다. 그 만화가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였다. 그러나 며칠 봄철에 들불 일듯이 들끓던 극일의 목소리는 이내 잠잠해졌고 이 만화는 이웃국가를 필요이상으로 자극한다는 이유로 심의에서 관동군 막사에 일장기도 못 그리게 했다. 그리고 10여년쯤 전, 이번에는 일본이 교과서에 이 땅을 침략하고 수탈한 기록을 삭제 왜곡시키고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슬쩍 흘려서 우리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이때는 나는 내 속의 불길을 감추지 못하고 ‘남벌’이라는 만화를 그렸다. 남쪽 일본을 벌한다는 다소 과격한 제목의 이 만화는 석유 자원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전쟁에 돌입하고 결국 북한과 손을 잡아 일본과 전면전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때도 여론은 며칠 가지 못했고 정부나 정치인들의 대응도 국민 감정무마용 정도로 끝이 났다. 그리고 이 만화는 신문연재 시에 무슨 이유에선지 북한 잠수함의 인공기가 삭제되었고 지나친 민족주의와 군국주의를 부채질한다고 S대 학생들과 모 평론가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는 아니다. 그리고 10년 뒤 오늘, 독도문제를 가지고 일본은 다시 돌아왔다. 일본의 망언은 묘하게도 10년의 주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것을 의도적인 일본의 공습이라고 본다. 독도는 분명 공습을 받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본은 이 공습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독도는 외로운 우리의 땅이다. 독도는 우리에게 천대받고 무시당한, 그래서 서글픈 땅이다. 신라시대 때 겨우 호적에 올려진 독도는 조선시대까지 홀로 무인고도로 버려져 있다가 한일병합때 그래도 자식이라는 죄로 같이 일본에 끌려갔다. 그러다 한·일수교때는 피해보상금을 받아내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해서 자국부모로부터 폭사당할 뻔했다. 세월이 흘러 잘 먹고 잘 살던 이 땅에 느닷없이 IMF가 왔을 때도 돈을 빌리기 위해 서로 사용하지 말자는 공창의 매춘부 꼴을 당했고, 그 뒤로는 제 나라 우표에 독도 그림을 넣는데도 일본의 눈치를 봐야 하고 제 땅인데도 함부로 못 가고 근처에서 고기도 잡지 못하는 땅이 되어버렸다. 독도는 이렇게 애물단지였다. 제 자식을 이렇게 귀여워하지 않으니, 아시아의 동네 깡패 같은 일본은 이제 룸살롱 주인이 되어서 동네 명사가 되고 제 편을 끌어들여서, 독도는 제 딸이라고 마구 우기고 다닌다. 그러다 그 딸이 로또 복권에 당첨되었다. 독도의 바다아래 엄청난 무공해 에너지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일이 갈수록 태산이다. 일본은 과거 깡패시절에 대해서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고 없던 역사도 만들어서 족보에 올리며 자신도 삼청 교육대에 끌려가서 원폭을 맞고 희생당했노라고 억지를 쓰고 다닌다. 동네 장터의 돈과 힘에 주눅이 들어 쉬쉬하던 못난 부모는 이제 와서 안달이 났다.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 집이 없고 공부를 시키지 않으면 자식들의 미래가 없다. 도둑이 담을 넘어오면 피를 흘려서 싸움을 해야 한다. 기억하기도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사건이었지만 몇 년 전에 집에 떼강도가 들어왔다. 어머니가 목숨을 잃어가며 그 떼강도들을 막아주어서 우리가족은 모두 무사했다. 한 가정을 지키는 데도 이렇게 피와 땀이 필요하다. 영토도 마찬가지다. 피 흘리고 지키지 않으면 국경선은 언제나 바뀐다. 우리의 국경선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는 유구한 우리의 역사 속에 기록되어 있다. 그 속에는 목숨을 걸고 독도를 지킨 영광의 시대도 있고 독도를 포기한 더러운 시대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제 땅을 양보하고 세계화를 위해 역사 교과서를 던져버린 작금의 우리에겐 독도의 미래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진리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 [옴부즈맨칼럼] 독도 문제와 미디어의 역할/박상건 서울여대 겸임교수

    메시지의 반복효과는 하나의 표상으로 굳어진다. 좀체 흔들리지 않는다 하여 고정관념이라고 부른다. 정확하고 사실적인 것에 근거하면 신념이 되지만 과장되고 부정확한 메시지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낳고, 이러한 편견이 차별을 만든다. 차별은 다시 분열과 갈등을 낳는다. 미디어가 생산하는 메시지 효과는 그만큼 대단하다. 지난 16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가결한 뒤 우리 언론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흥분하는 국민 속에 묻혀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선정적이었다. 일본의 독도망언이 나올 때마다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일본 대사관 앞 시위, 화형식, 혈서, 할복, 궐기대회, 정부의 유감 표명, 한·일관계 냉각기, 일본의 유감 표명으로 일단락된다. 이러한 결과는 일본의 결자해지처럼 보이지만 애당초 조직적, 전략적으로 펴는 조직이론이나 PR이론을 통해 파괴적인 목표를 겨냥한 것처럼 보인다. 이슈를 만들고 쟁점 안에서 여론이 소용돌이치면 해결사처럼 문제를 만든 장본인이 나서서 해결하고 몫을 챙기는 것 말이다. 그렇게 일본은 ‘독도’를 통해 우리의 움직임을, 한국을 거점으로 한 우방의 움직임을 읽어내면서 자신들의 의중을 지구촌에 읽히고 싶은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북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던 날에 ‘독도 도발’이라는 불청객을 맞았다. 우방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평양방송은 ‘변하지 않는 일본의 독도 강탈 야망’이라는 비난 방송을 했다. 반면에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가,1977년에 납치됐던 일본여성 요쿠타 메구미의 유골이 가짜라고 발표했을 때 우리 언론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북한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12월8일 KBS 뉴스9),“DNA 조사결과 다른 사람의 것으로 판명됐다.”(MBC 뉴스데스크),“북한이 전해준 유골이 엉뚱한 다른 사람의 것으로 판명됐다.”(SBS 8시 뉴스) ,“北,日정부가 유골감정 날조,對北제재론 거세질 듯”(2005년 1월27일 C일보) 등 사실 확인과정 없이 일제히 일본 관방장관의 발언만 부각했다. 이후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지가 올 2월2일자에 “유골을 감정했던 데이쿄 대학의 요시이 도미오 교수가 유골 샘플이 이물질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고 보도했고,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가짜 유골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지만 국내 언론들은 이러한 사실의 보도에 별 비중을 두지 않았다. 차제에 남북, 북·일, 한·일 문제를 접근하는 보도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언론은 독도 고증자료들이 1787년 5월 프랑스,1787년 5월 영국,1940년 독일,1854년 러시아 푸차친 해군 중장의 언급 등 세계 곳곳에 있음에도 해외 탐사보도를 시도하지 않았다. 굳이 ‘죽도(竹島)’를 고집하는 쪽에 포커스를 맞출 이유가 무엇인가. 시쳇말로 PR는 잠재적 소비자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중국 또한 언제 ‘제2의 동북공정’을 운운하며 역사 왜곡의 의중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지금 지구촌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미디어는 지뢰처럼 파묻혀 잠복중인 문제들을 발굴하는 문화적 기능과 동원 기능에 충실할 때이다.“독도, 이제는 차분하고 내실있게”(3월21일 서울신문 사설)다지자. 민족과 국가 문제 앞에서 언론과 정부, 기업이 따로 있을 수 없다. 해외 제휴 언론사와의 공동기획,IT강국의 첨병인 네티즌을 묶어내는 여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언론은 사회의 거울이다. 언론이 해외로 눈 돌리지 않으면 수용자도 우물 안에서 거울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북한 대통령’으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선자로, 동계올림픽 개최 후보지 평창을 평양으로, 태극기를 인공기로 보도하는 외국 언론들의 해프닝은 계속될 것이다. ‘독도 사랑’으로 뭉친 저력, 이제는 지구촌을 향한 ‘대한민국 사랑’으로 나갈 때이다. 박상건 서울여대 겸임교수
  • [17일 TV 하이라이트]

    ●피플 세상 속으로(KBS1 오후 7시30분) 현대판 김삿갓이라 불리는 올해 예순 한 살의 김만희씨. 그는 지난 30년간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우리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정처없이 떠돌며 별난 인생을 살고 있는 김만희씨, 그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진정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유쾌한 두뇌검색(SBS 오후 7시5분) 동물들이 펼치는 진기명기와 깜찍한 재주를 살펴 본다. 마술사 최현우가 캔이 삼킨 비스킷을 손 위에다 펼쳐 보이고, 카드에서는 수많은 동전이 쏟아진다. 또 완전범죄를 꿈꾸는 범인과 탐정의 치열한 두뇌대결도 펼쳐진다. 최정훈 교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깜짝실험도 눈길을 끈다. ●생방송 쟁점토론(YTN 오후 3시5분) 일본의 계속되는 망언과 역사왜곡으로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쓰는가 하면, 과거 식민지배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 날조하고 있다. 위기의 한·일관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 것인가. 그 해법을 찾아 본다. ●시네마 천국(EBS 오후 10시50분) 정착을 거부하고 떠남의 과정을 멈추지 않는 영화 속 주인공들. 익숙한 공간을 떠날 수밖에 없게 하는 다양한 떠남과 여정의 경험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영화 속의 다양한 떠돌이들의 모습을 통해 변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삶을 만난다. ●즐거운 문화읽기(MBC 오전 11시) 장차현실씨는 ‘여성’과 ‘장애’를 화두로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다.‘마님 난봉군’을 통해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소재인 ‘섹스’를 여성의 시각으로 유쾌하고 즐겁게 그려낸 그를 만나본다. 또 동양화가 한기창·김종구씨를 찾아 전통의 참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40분) 손이 저절로 움직여 피아노를 연주하고, 진아의 마음속 소리까지 들리자 우형은 놀란다. 하지만 우형은 진아가 준규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준규에게 진아를 소개시켜 준다. 한편, 호구 일당은 마법전사의 후예를 공격하기 위해 장미와 마패를 인질로 삼을 방법을 궁리하는데….
  • [한·일 독도 파고] 경북도 “시마네현과 결연 취소”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 처리를 하루 앞둔 15일 강도 높은 반일 시위가 하루종일 이어졌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 28개 단체로 이뤄진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청년학생본부’는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남북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모든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공동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다카노 주한 일본대사의 사진을 붙인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역사왜곡 중단하라.’고 적힌 종이비행기 30여개를 대사관 안으로 날렸다. 서울흥사단과 독도재경향우회는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독도 망언을 한 일본대사를 외교상 기피인물로 규정, 공관 직무를 종료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파공작원(HID)·애국청년동지회 회원 100여명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유관순, 윤봉길, 안중근 의사의 대형 사진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인 뒤 고이즈미 총리의 사진과 일장기가 붙은 피켓을 불태웠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대사관을 비롯한 관련 시설에 20개 중대를 배치했다. 대한민국독도향우회 회장단은 시마네현 의회 의장단과 면담하고,16일 본회의장에서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 의결을 막기 위해 이날 일본으로 출국했다. 한편 독도를 관할하는 경북도는 조례안이 가결되면 시마네현과의 자매결연을 취소하고, 도립 경도대학과 시마네현립 대학의 교류도 중단키로 했다. 도의회는 시마네현의회와 1997년 체결한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파기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 야욕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계획이다. 이효용·대구 한찬규기자 utility@seoul.co.kr
  • [의회] “日 독도 망언 철회하라”

    일본의 독도야욕에는 지방의회가 맞선다. 최근 일본의 잇따른 독도 관련 망언에 전국의 지방의회가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국 16개 광역시·도의회 의장들의 협의체인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회장 임동규 서울시의회의장)는 지난 11일 대구에서 올해 첫 임시회를 열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야욕 규탄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최근 일본정부와 시마네현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려는 억지를 하루빨리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5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에 앞서 전국의 234개 기초의회의장들도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회장 이재창 서울강남구의회의장)의 정기총회를 통해 일본의 독도 침탈야욕을 비난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특히 경북도의회와 울릉군의회는 일본의 자치단체와 체결된 자매결연을 취소하고 독도전담기구 구성에 들어가는 등 보다 강력한 반대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밖에도 독도 이장직을 맡고 있는 서울시의회 최재익 의원은 각종 언론매체와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독도 주권수호를 호소하는 등 전국의 지방의회와 의원들이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에 강력히 대처하고 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서울광장] 독도 ‘벌떼외교’로 지키자/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독도 ‘벌떼외교’로 지키자/이목희 논설위원

    독도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사실상 없다. 독도를 둘러싼 전쟁 발발을 다룬 소설이 있긴 하지만, 무력으로 풀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영토가 분명한데 국제사법재판소(ICJ) 판단에 맡기자는 것도 웃기는 얘기다. 또 외교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내 땅을 갖고 왜 남과 소유권을 논의하는가. 억만금을 줘도 양보할 수 없는 게 영토주권이다. 일본이 억지를 부리는 근거는 지난 세기에 있었던 두가지 사건에 있다.1905년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시킨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2차대전 패전 처리를 규정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의 소속이 불명확하게 마무리됐다.1905년은 우리가 국권을 빼앗겼을 때고,1951년은 한국전쟁이 진행중이었다. 한국이 정신없는 틈을 타서 일방적 고시 및 국제로비를 통한 물타기가 진행된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같은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한 일본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전쟁,ICJ회부, 협상을 통한 일본의 양보, 그 어느 것도 우리 세대에선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고도의 선전전, 심리전으로 대세를 장악하는 쪽이 이긴다. 독도에 관해 그동안 한국은 ‘부자 몸조심’이었다. 우리의 해경 경비대가 파견돼 독도를 지키고 있다. 주변 12해리 영해와 영공도 광복 후 50년 이상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되도록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시간을 보내자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그럴듯해 보였다.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의 항의가 훗날을 내다본 외교적 수사를 넘어서고 있다. 독도와 다케시마를 함께 표기한 해외사이트가 지난해 7월 622개에서 지금은 2180개로 늘어난 것을 어찌봐야 하겠는가. 미 중앙정보국(CIA) 연감은 매년 일본측의 주장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었다. 일본의 ‘독도 분쟁지역화’ 기도가 범정부 차원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망언·망동은 그 일환으로 여겨진다. 이제 정부는 독도와 관련,‘소극 대응(Low Key)’ 정책을 버릴 조짐이다. 그렇더라도 정책의 완급은 조절해야 한다. 한·일간 외교분쟁 사실만 부각되면서 실리는 없는 조치를 골라내는 혜안이 필요하다. 대사 소환·추방보다는 독도의 영유권을 더 확실히 하는 쪽이 나을 것 같다. 동해(East Sea)·일본해(Sea of Japan) 명칭 분쟁은 한국이 독도 논란을 헤쳐나가는데 시사점을 준다. 일본은 한반도 식민통치 기간인 1920년대 국제수로기구(IHO)의 전신인 국제수로국에 동해를 일본해로 등록시켰다.1980년대까지는 국제지도 및 책자에서 일본해 표기가 압도적이었던 배경이 된다. 한국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를 시정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등 민간의 적극 동참에 힘입어 지금은 동해와 일본해가 엇비슷하게 병기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일본의 독도 논란 점화는 동해 명칭에서 밀린데 자극받은 측면이 있다. 동해 명칭에서의 부분 성공을 독도에선 일본에 내주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잠시 들끓었다가 잠잠해지는 ‘냄비외교’로는 국제 선전전에서 서서히 밀리게 된다. 우리가 경제·외교 등 국제적 영향력에서 일본보다 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장점이 있다. 바로 애국심이다. 일본은 우파들이 앞장서는 형국이지만, 한국은 전 국민이 한 마음이다. 외교통상부에만 맡기지 말자. 반크와 같은 민간조직을 수십개 만들고, 국민 개인이 직접 나서야 한다.IT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보자. 독도를 분쟁지역이라고 표기하는 지도, 책자, 문건을 만드는 외국 행정기관, 언론사, 출판사 사이트를 다운시켜 버리자. 항의편지, 전화 등 4800만이 나서 ‘벌떼외교’를 펼쳐보자.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정부, 독도문제·日 교과서 왜곡 “분리 대응”

    정부, 독도문제·日 교과서 왜곡 “분리 대응”

    4년전 일본 극우 교과서에 대한 대응으로 본국으로 소환됐던 최상용 당시 주일 한국대사가 “(주일)대사소환은 아무런 외교적 실익이 없다.”고 정부에 정식 건의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최 전 대사는 지난 주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관련 주요 국장들이 모여 일련의 대일문제를 협의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소환 이후 일본에 돌아가 겪었던 경험 등을 토대로 이같이 건의했으며, 정부는 여러 상황 등을 종합 고려해 주일대사 소환은 검토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와 관련,“한·일관계가 어려울수록 주일대사의 할 일이 더 많은 것 아니냐.”면서 “게다가 (대사 소환은) 다카노 주일 대사가 정무협의차 귀국한 데 대한 맞대응처럼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해 현재로서는 소환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는 지난달 23일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망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뒤 대외 활동을 자제해왔으며, 지난 13일 본국 지시에 따라 귀국했다. 당국자는 이에 대해 “다카노 대사가 우리 정부에 귀국 사실을 얘기했고 실무차원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이 전달됐다.”면서 “최근 한국의 상황과 한일·관계를 외무상과 그 윗선의 고위층에 보고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독도문제와 교과서 왜곡은 분리해 대응키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독도는 엄연히 우리 땅인 만큼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지만, 교과서는 일본도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면서 “이 문제는 일본인들 스스로 시정해야 한다.”고 말해 교과서 왜곡에 대한 외교적 조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내비쳤다. 이지운 구혜영기자 jj@seoul.co.kr
  • [사설] 독도 영유권 강화조치 필요하다

    최근 독도와 일본 우익교과서 문제가 겹쳐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지만 두 사안은 성격이 다르다. 역사왜곡 교과서 시정은 1차적으로 일본의 양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도는 한국땅으로 우리가 관할하고 있다. 일본이 뭐라고 해도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대응책이 얼마든지 있다. 떠들수록 손해라는 인식을 일본측이 갖게 해야 한다. 그것은 실효적 영유권을 강화하는 조치를 단계별로 마련해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그동안 정부는 독도에 일반인이 들어가는 것을 통제해왔다. 학술조사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경북지사,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은 뒤 상륙이 가능했다. 자연보호를 이유로 내세웠으나 일본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하지 않으려는 이러한 ‘무대응 정책’에 변화조짐이 있다. 일본이 독도와 관련된 도발을 계속한다면 일반인이 상륙해 관광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싫든, 좋든 독도 문제는 현안으로 떠올랐다. 일본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리면 국제적으로 영토 분쟁지역이라고 치부된다. 일본측이 독도 관련 망언이나 행동을 하면 우리의 영유권을 한층 강화하는 실질적 조치로 맞서는 것이 당연하다. 일반인의 관광허용은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선박 접안시설 완비, 독도개발특별법 제정, 관광특구 지정 등이 필요한지도 추가로 검토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주민을 상주시켜 유인도로 만드는 방안을 강구하고,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기점으로 선포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일본측에 경고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이 단기간에 이뤄져 한·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는 것은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려면 일본의 자세변화가 필요하다.16일로 예정된 시마네현 의회의 ‘독도의 날’ 제정안 처리부터 중단되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독도 문제를 부풀리려는 내부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그 또한 거둬들여야 양국 관계가 미래로 갈 수 있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2)일본의 끝나지 않은 해양 정복욕

    아, 우리가 즐겨써 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 조차도 큐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지난 10일. 일본 시마네현의회 총무위원회가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한다는 조례안을 가결시켰다. 대통령과 한국 외무부가 아무리 ‘내 마누라론’을 주장하고, 침묵으로 묵살하고, 소극으로 일관해도 일은 끝내 벌어진 것이다. 사실 흥분할 것도 없다. 사태는 예정된 수순을 따랐을 뿐이므로. 주한 일본대사의 당당한 영유권 주장, 아사히신문 경비행기의 독도 진입작전, 게다가 한승조·지만원을 비롯한 국내 극우인사들의 맞불작전까지, 돌이켜 보면 우연은 하나도 없다. 영토분쟁을 표면화시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기 위한 일본 지도부의 야욕이 마각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19세기 에도막부, 홋카이도 식민화 ‘다케시마’ 주장은 망언이 아니며, 망언은 실제로 없으니 망언이란 말을 써서도 안된다. 체계적이며, 장기지속적인 심대한 해양정책에서 비롯된 국가의지의 또다른 표현일 뿐 결코 돌출발언은 아니다. 일본의 노골적인 행태는 가히 고삐 풀린 망아지 수준이되, 관·민 합동으로 질서정연하게 치고 빠지면서 주연·조연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등 화려한 연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시네마현의 조례 제정을 일본 정부가 만류했다고 하나 전혀 믿을 게 못된다. 양동작전일 뿐이다.‘식민지근대화론’의 미몽에 취해 선전·선동을 일삼던 지식인들을 비롯, 차제에 지난 수백년간 일본이 아시아 바다에 남긴 족적을 단계적으로 살펴 감고계금(鑑古戒今)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19세기에 에도(江戶) 막부는 ‘숲속의 사람들’ 아이누족의 영토였던 북해도, 즉 홋카이도를 식민화한다. 일단의 식민경영 세력이 ‘숲의 섬’을 치고 들어갔다. 그 후 100여년이 지난 오늘, 보호구역에 갇힌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아이누들은 박제화되어 일본에서도 차별받는 2만여명의 혼혈아로 잔존할 따름이다. 일본은 홋카이도에 이어 사할린으로 손길을 뻗친다. 러시아와 북방 4개 도서 반환문제로 시끌벅적하지만, 사실 러시아도 북방 영토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이 없는 나라다. 차르 시절, 코사크 기병대를 앞세워 동진을 거듭해 사하·축치·에벤키·캄챠달 등이 살던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던 그들 아닌가. 일본은 이어 남쪽의 류쿠(우리측 사료에는 유구로 기록됨)를 병합한다. 오키나와는 일본이 붙인 이름이고 본래는 류쿠국이었다. 독립 왕국으로 중국은 물론 조선과도 문물교류를 활발히 하며 조공·중계무역에 힘써 문화가 크게 번성한 나라였다. 무역선 활동 범주가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인도 등 서남아시아까지 뻗친 해상국가였다. 그러나 도쿠가와 바쿠후 성립 6년째 되던 1609년 규슈 남부의 번주인 사쓰마한(薩摩藩)은 3000군사로 류쿠를 점령한다. 단, 정략적 입장을 취해 국제무역에서 엄청난 차익을 남기는 사탕수수 같은 경제적 수탈은 감행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 방관·조절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후 류쿠는 일면 일본에 수탈당하면서도 중국에 조공의 예를 갖추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불행한 역사의 시작이다. 사실 사스마한의 점령 이전에도 류쿠는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려 왔으니, 류쿠와 일본의 악연은 해묵은 것이다. 그러던 일본은 1879년 드디어 ‘류쿠 처분’을 단행한다. 이로써 독립왕국 류쿠는 오키나와현으로 강등되어 일본에 병합된 이래 오늘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의 해양식민화 정책은 전략적 포석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집요하게 기다리며 정확히 잡아먹을 시기를 노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日정부, 남양군도 침략행위 전면 부정 1874년 청·일전쟁의 전후 보상으로 타이완을 챙긴 것은 교과서에 나온 상식.‘대륙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긴 셈이 되었지만 사실은 그 중국이 타이완을 팔아넘길 자격이 있는지도 되물어야 한다. 타이완에는 푸젠(福建) 등 남부에서 이주해 온 중국인도 많았지만 이른바 타이완 원주민인 토착 타이완족이 살고 있었다. 일본의 타이완총독부가 설치되면서 그들의 운명 역시 아이누처럼 박제화되고 만다. 타이완총독부에서 갈고 닦은 식민경영의 노하우가 이후 고스란히 조선총독부로 전수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의 해양식민화가 홋카이도, 사할린, 류쿠, 타이완 같은 섬 정도에 그친 것은 아니다.1919년 파리강화회의 결과 일본은 사이판, 괌 등이 속한 이른바 남양군도를 자치령으로 분배받는다. 세계열강의 태평양 분할정책에서 그 지분을 챙긴 것. 남양군도는 서태평양 적도 이북의 작은 섬인 미크로네시아의 동쪽 끝 카리바시와 서쪽의 괌을 제외한 엄청나게 드넓은 바다.19세기말 이래로 독일이 지배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일본의 남양제도 위임통치령이 되었고,1947∼1986년에는 국제연합의 위임을 받은 미국의 태평양 신탁통치제도가 되었으니, 태평양은 태평과는 무관한 격동의 바다였다. 일본인들은 남양군도로 들어가 설탕, 술, 수산가공품 같은 사업을 펼쳤으며 한때 사이판의 일본인이 10만을 헤아리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패전 후 최초로 오는 6월 극우인사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대동하고 남태평양의 미국령 사이판을 찾아 일본군 전몰자들을 추모할 계획이다. 남양군도에 대한 침략행위의 전면 부정이 자행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일왕이 선 격이다. 당연히 대표적 극우언론인 산케이는 일왕의 사이판 방문 소식에 ‘감격해 하며’ 이를 전면에 도배하는 충성을 과시했다.‘위령의 여행’으로 묘사하면서 ‘남양군도’를 지배하던 향수를 노골적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팔라우의 수도인 코로(Koror) 외곽으로 빠지다 보면 코발트빛 바다 위에 ‘아이고 브리지’가 떠있다. 머나먼 팔라우까지 징용왔던 한국인들이 기아와 고통 속에 ‘아이고’를 연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오죽하면 ‘아이고다리’로 명명되었겠는가. 정신대로 끌려온 나이 어린 여성들이 하루에 수십명씩의 일본군을 상대하며 피를 토하고 죽어간 남양군도로 ‘신의 아들’이 ‘위령 여행’을 떠날 것이 분명한 즉, 야스쿠니신사 참배에서 격을 높여 다시 대양으로 진출하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이른바 태평양전쟁이라 칭한 데서 알 수 있듯 세계대전의 본질은 해양패권의 각축이다. 일본은 실질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사이판과 괌은 물론 필리핀, 팔라우, 티니안, 얍, 뉴기니 같은 섬, 그리고 서진을 거듭하여 인도네시와, 말레이시아 등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식탐을 과시했다. 우리의 인식은 대륙 지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해양이라는 거대한 또 하나의 영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기다리다 덮치기… 집요한 日 해양정책 일본은 세계열강의 해양 재편성에 기초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국제해양법 신질서에 매우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남쪽으로 눈길을 돌려 기왕에 문제가 되어온 조어도, 일명 센카쿠열도 문제로 중국과 심각한 해양분쟁을 일으킨지 오래다. 미래의 해양자원을 염두에 넣는다면 일본이 조어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너무도 확실하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 손톱만 한 바위에 불과한 오키노도리시마(沖鳥島)로 명명하고 자기 영토에 포함시켰다. 해양과학자들까지 동원해 섬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 침대만 한 섬 하나에 290억엔을 퍼부었다. 이로써 자신의 영토(38만㎢)보다도 넓은 40만㎢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하게 된 것. 나아가서 태평양 복판에 떠있는 미나미도리까지 영토로 선포했다. 이렇듯 일본은 해양 영토에 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니 독도가 어찌 그들의 눈독에서 빠질 수 있었으랴. 이런 만행이 대중국 포위전략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 없이 가능할까. 미국 역시 ‘해양제국’이다. 일제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태평양전쟁에 개입하는 단서가 마련되지만, 기실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테프트밀약을 통해 섬 국가인 필리핀과 반도국가인 한반도를 ‘빅딜’하는 국제적 공모에 가담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태평양의 섬은 거의 없다. 태평양은 공해가 분명하지만 미국과 일본이 ‘대주주’행세를 하고 있다. 오키노도리시마와 미나미도리는 남양군도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일본이 만들어낸 ‘바다 땅따먹기’의 야심작이 아니겠는가. 근래 일본 정부는 해양권 확보에 노골적이다. 경제산업성, 외무성, 국토교통성 등이 주동이 된 연락회의가 공개적으로 열린다. 숨길 게 없다는 식이다. 독도 영유권까지 인정받는다면 일본은 전체적으로 405만㎢의 배타적 경제수역, 즉 일본 영토의 10배를 뛰어넘는 방대한 해양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제주도 한경면에는 일본군이 옥쇄를 대비해 만든 거미줄처럼 얽힌 가마오름땅굴이 있다. 버려졌던 이 땅굴은 한 개인의 희생적 노력으로 현재 평화박물관이 되어 있다. 이곳 이영근 관장은 “현재 공개된 굴은 극히 일부로, 모두 바다를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땅굴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와 일본군 알트르비행장을 벗어난 송악산 해변에도 미군기를 겨냥했던 동굴들이 줄지어 있다. 태평양전쟁의 구체적인 해안진지가 한반도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같은 ‘평화’라도 韓·日 인식 달라 가미카제 특공대가 출격을 감행했던 규슈 남쪽 가고시마현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란(指宿) 바닷가에도 같은 이름의 ‘평화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년병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모정을 빙자한 최루성 역사 회고만 존재할 뿐 전쟁 자체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같은 ‘평화’를 거론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는 상상을 초월한다.‘제국의 바다’를 잊지 못하는 일본의 추억만들기가 계속되는 한 ‘현해탄’의 파고도 계속 높아질 것이다. 아, 우리가 즐겨 써온 그 ‘현해탄’이란 이름조차도 규슈 북부의 특정 해변에서 비롯된 것이니, 식민 극복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가슴으로 느낀다. 독도는 이같이 거대한 해류 위에 돌출된 시금석이리라. 독도를 독도 문제로만 국한할 경우, 결코 해양 패권의 세계사적 드라마를 읽지 못할 것이니,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일이다. 해방 60주년, 일본은 20세기형 제국의 바다를 21세기에 다시 ‘신장개업’했다.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선 청와대와 외무부의 공식 입장 및 향후 일정부터 듣고 싶다. 또 ‘내 마누라타령’으로 일관하면서 질질 끌려다니다 끝내 국제사법재판소 법정마당까지 끌려가 내 영토를 약취당하고 말 것인가.
  • [일본 교과서 왜곡 파장] 악화일로 치닫는 韓·日관계

    [일본 교과서 왜곡 파장] 악화일로 치닫는 韓·日관계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지난달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지정 조례안 상정에 이어 주한일본 대사의 독도 영유권 주장 망언, 일본 언론사 경비행기의 독도상공 진입시도, 일본 해경 초계기의 독도 근접 비행 등으로 국민 감정이 폭발 직전 상태다. 여기에 왜곡 교과서 문제까지 더해졌다. 정부는 지금까지는 냉정을 지키겠다는 자세였다. 일단 지난 11∼13일로 예정됐던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방일 일정만 미뤄놓은 상태다. 그러나 ‘미온 대처’라는 비난 속에 정부도 마냥 차분함을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국 관계는 우선 오는 16일 ‘다케시마의 날’ 제정 여부가 1차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국민 감정상 정부는 대사소환이라는 강경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반기문 외교장관은 최근 “영토문제는 한·일관계 보다 상위개념”이라고 강조해 놓았다. 이 문제를 잘 넘기더라도 2차로 교과서 문제가 남는다. 다음달 초 일본 문부성의 검정 결과 발표가 예정돼 있다. 정부는 뜻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정책적 변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예컨대 각종 규제로 묶어 놓은 일반인의 독도 방문을 완전 개방하는 것을 포함, 좀 더 강경한 방안들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그간 나름대로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에 ‘경고’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교과서 문제는 공식적으로 수정을 요구하면 일본내 보수세력의 반발을 일으켜, 일본 정부의 발을 묶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비공식적으로 협조를 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두가지 당면 과제가 최상의 시나리오로 해결되더라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외교소식통은 11일 “향후 4∼5개월간은 일본 내에서 군국주의적 우익과 반대 진영간의 상당한 캠페인전이 예상된다.”고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치인의 망발 등 추가 악재의 돌출은 양국 정부의 입지를 더욱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한·일 우정의 해’는 사실상의 파탄을 맞을 수도 있다.180여건의 영화·스포츠·공연 청소년 및 지역·학술 교류 행사가 제대로 치러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행사가 열리더라도 참여 열기 부족으로 취지를 살리기 힘들어진다. 또한 정부로서는 많지도 않은 대일(對日) ‘지렛대’를 써야 하는 데다, 북핵 문제 등에서 3차 6자회담에서처럼 일본의 협조를 구하기 어려워지는 현실적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한 일본 전문가는 “최근 일본의 지식인 역시 한국과 점차 거리감을 느끼는 등 양국이 멀어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일자 영자지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에는 ‘일본 국민은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연설에 대해 “동맹국인 한국이 북한·중국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섭섭함을 토로하는 일본 학자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데스크시각] 독도와 남북한 접점찾기/한종태 국제부장

    1976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유제두와 와지마 고이치의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당시 챔피언으로 2차 방어전에 나섰던 유제두는 와지마의 끊임없는 잽에 주먹 한번 제대로 날려 보지 못하고 15회 KO패로 챔피언 벨트를 넘겨주고 만다. 물론 유제두의 약물 의혹이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우향우’ 움직임이 심상찮다. 올해 들어 부쩍 국가주의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정교분리 원칙을 완화하려는 쪽으로 평화헌법을 개정한다느니, 근·현대사를 다룰 때 피해국인 한국·중국 등 인근 아시아 국가를 배려토록 한 근린제국 조항을 없애야 한다느니 등등. 그야말로 군국주의 부활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다. 한·일 양국간에 한창 시끄러운 독도 영유권 분쟁도 그 연장선이다. 지난달 주한 일본대사가 버젓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망언을 내뱉더니, 시마네현 의회 총무위원회는 어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제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의 ‘망동’은 급기야 아사히 신문 소속 경비행기가 독도 인근 상공 진입을 시도하고, 해상초계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8마일까지 접근하는 ‘믿기 어려운’ 사건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독도를 비롯, 센카쿠 제도(중국·타이완), 북방 4개 섬 분쟁(러시아) 등 주변국을 상대로 ‘일부러’ 영토 싸움을 걸고 있다. 메이지유신 후 국제법에 눈을 뜬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 등의 제소에 대비, 자료나 명분 축적용으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게 일반론이다. 매년 3월쯤 주기적으로 “다케시마를 왜 한국이 불법점령했느냐.”며 우리 정부에 공문을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소극적 대응이 전체적인 기조였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우리의 고유 영토이고, 또 실효적 지배권도 갖고 있어 괜히 분쟁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외교통상부는 망언 당사자인 일본대사 대신 그 밑의 공사를 ‘소환’도 아닌,‘초치’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잽(명분 쌓기)도 계속 맞다 보면 쓰러지게 되는 법이다. 더욱이 일본은 지방정부와 대사관을 한 축으로 하고, 유엔과 미·일동맹 등을 이용한 강대국 외교를 또다른 축으로 삼아 체계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독도 영유권 주장→독도 분쟁화 추진→독도문제 유엔총회 상정→군사위기 및 유엔 안보리 개입→국제사법재판소 회부→판결 불복→군사분쟁’으로 요약되는 일본의 단계별 독도분쟁 시나리오가 나도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의 속셈이 분명할진대 이제부터는 우리도 적극적 대응과 실천적 행동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 한·일정상회담에서 독도문제를 공식 의제로 삼는다든지, 민·관합동 독도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그런 점에서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그제 “독도는 국토·주권과 관련된 문제로 한·일관계보다 상위개념”이라고 밝힌 것은 잘한 일이다. 때마침 북한도 독도문제에 강력히 대처하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신성한 영토를 강탈하려는 날강도적인 책동”,“조선반도 재침의 전주곡”이라며 고강도의 비난을 퍼붓고 있어서다. 정부는 북한의 이같은 대응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핵 6자회담의 중단으로 한반도에 한랭전선이 형성돼 있는 마당에 독도문제를 지렛대 삼아 남북한이 한 마음으로 대응하고 공동 사업까지 펼쳐 나간다면 ‘공통분모’가 하나 더 생기지 않을까. 대일 국민감정이 든든한 후원세력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종태 국제부장 jthan@seoul.co.kr
  • [열린세상] 식민지근대화론의 커밍아웃/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본 우익성향의 잡지에 “일제의 식민지배는 축복”이라는 논지의 글을 기고해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대부분의 네티즌, 언론, 시민단체가 그의 주장을 맹공하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그의 ‘식민지 미화론’은 소위 일본발 ‘망언’보다 훨씬 수위가 높고 표현과 논리도 거칠다. 각계의 대응도 거칠고 폭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논란에 끼는 것은 유쾌하지 않지만, 파문이 일어난 뒤 오히려 “공론화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반응에서 보아 사회와 학계에 끼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돼 한마디 거들기로 한다. 식민지배 문제에 초점을 맞춘 여론의 질타와는 달리 한 교수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의 의미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적 발판을 붕괴시키고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을 무력화해 좌파세력의 장기집권을 꾀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정치학자다운 판단이지만 동시에 그가 어떠한 정치적 입장에 서 있는지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구집권을 꾀한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론’으로 분식(粉飾)한 그에게, 노무현 정권의 탄생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었을 것이다. 극단적 수구냉전 사상에 젖어 있는 그는 노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을 좌파적·친북적인 것으로 보고, 일련의 민주개혁 입법을 좌파세력의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공격한다. 이처럼 그의 주장은 노무현 정권과 정책에 대한 증오감에서 기인한다. 노정권을 공격하고 박정희 독재권력을 옹호하는 연장선상에서, 일제 식민지배에 의한 근대화 찬양, 러시아가 아닌 일본에 의한 병합의 불가피성을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전도된 역사의식은 일본 극우 인사들에게서 자주 나오고,‘수탈을 위한 개발론’이라는 학술적 주장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한국사회의 이른바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이 일제치하에서 항일 독립운동보다도 크거나 작게 일본에 협력한 자들”이라는 점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친일행위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옹호, 자랑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이것이 그의 경험적 인식은 아니겠지만 그가 옹호하는 집단을 대변한 효과는 충분하다. 민족을 억압하고 일본에 협력한 자들이 대한민국에서도 버젓이 기득권층으로서 권력과 부를 독점했다면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닌가. 기득권층의 경제력 독점에 의해 심각해진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독점했던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야 최소한 박정희 개발독재의 경제적 효과만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역사와 사회를 보는 관점이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관점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옳은지 그른지는 개인의 주체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 교수의 역사관과 세계관은 인권과 평화를 추구하는 관점은 분명 아니다. 반공과 반북만이 모든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오늘의 상황을 자신이 자주 언급하는 국제정세의 측면에서 보지 않고 오직 냉전시대의 맹목적 반공주의에 매달리고 있다. 반공을 위해서는 민족의 희생도 감수한다. 나는 이번 파문을 보면서 그가 객관성·학문성을 들먹이면서도 주장 전체가 들뜬 적대적 감정에 충만해 있는 점이나, 그의 주장이 소위 망언의 종합판 같은 성격을 지닌 점보다도, 한국의 명망 있는 전문지식인이 친일행위 옹호의 금기를 과감하게 깼다는 점에 걱정이 앞선다. 사실 최근 학계에서는 탈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이 신학설인 양 주목받아 왔다. 식민지 경험 내지 파시즘을 근대화의 길로 인정하는 근대화론의 해묵은 이론을 가지고 일제 식민지의 경제적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렇지만 식민지 민중에 대한 억압과 수탈이 없었다고 하지는 않았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식민지 미화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극구 발뺌해 왔다. 그러나 이번 한 교수의 식민지 미화론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커밍아웃’이 어떠한 모습일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술적 형식을 띤 보다 충격적인 식민지 미화론의 출현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 [기고] 한·일 역사교과서 부교재 출간 환영/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와 일본교직원조합 히로시마지부가 3년 전부터 공동으로 개발해온 역사교과서 부교재가 3월 초 양국에서 동시에 출간된다고 한다. 양국 정부에서 역사교과서의 공동연구를 한다고 하지만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 그 합일점을 찾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때 보수수구 세력을 견제해 오던 양국의 교원단체가 연대해 민중의 관점에서 기술한 부교재를 선보인다고 하니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사실 일본 정부는 역사교과서 문제를 ‘국가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현 고이즈미 내각의 행보에 맞추어 나카야마 나리아키 현 문부과학상이 일본 역사교과서에 자학적인 내용이 많다고 연이어 망언을 하는 현실은 그 사실을 여실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국가주의’는 결코 ‘상호주의’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맥락이 맞닿아 있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더욱이 그것은 일반 민중의 개성을 말살하고서라도 관철시켜온 그들의 독특한 이데올로기 논리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메이지유신 후 제국주의 행보를 가속화하던 일본은 국가와 왕에 대한 절대복종을 강요했음은 물론 그를 위해 일반 민중의 사상과 자유를 철저히 억압했다. 오로지 팽창주의로 일관하며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치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그들은 혹독하게 민중을 탄압했던 것이다. 한반도 지배, 국가주의, 일왕 절대화의 일본 정부정책에 반기를 들고 일왕 암살을 기도하려 한 고토쿠 슈스이 등 12명을 ‘대역 사건’이라며 즉시 처형한 점으로 보아도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은 오로지 일왕 절대화와 ‘국가주의’를 위해 극도로 제한되며 언론과 사상활동도 탄압의 대상이 된다. 한반도의 식민지화가 일본 내의 이런 일련의 사건과 동시에 진행되었거니와 ‘국가주의’를 내세워 일본 내 양심세력과 민중을 탄압한 데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국가주의’를 일본과의 관계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러·일전쟁 당시 한때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던 일본 근대의 문호 나쓰메 소세키도 오죽하면 강연을 통해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개인주의’를 강조하며 “어떤 사람은 지금의 일본은 꼭 국가주의가 아니면 자립할 수 없는 것처럼 선전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주의 요소를 유린하지 않으면 국가가 망할 것처럼 주창하는 자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일은 결코 있을 리가 없습니다.”라고 설파하였겠는가. 어쩌면 역사교과서 문제는 ‘국가주의’를 강조하며 끊임없이 보수로 회귀하고 있는 현 고이즈미 정권과 자민당 체제하 정부 차원에서의 타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일 관계에 있어서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시점을 지닌 현안만큼 풀어헤치기 어려운 난제는 없기 때문이다. 한·일협정 관련 문서 공개 건이나 군위안부 및 원폭피해자 배상문제만 보더라도 한·일 관계를 정부 입장에서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난관에 봉착하는 일인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국 지성을 대표하는 민간 교원단체가 연대해 개가를 올린 만큼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다. 현재 일본 내에는 ‘9조(條)의 회’‘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워크 21’‘시민의 교과서 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양심세력이 한국의 여러 단체와 연대를 모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교과서, 헌법개정과 자위대 파견, 이라크전쟁 문제에 공동대처하고 있다.‘국가주의’ 체제하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놓고 권력과 투쟁하며 그들의 주장을 줄기차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역사교과서 부교재 출간을 계기로 양국간의 민간단체가 다시 연대해 산적한 현안의 활로를 개척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 “日식민지배는 축복” 한국지식인의 망언

    “日식민지배는 축복” 한국지식인의 망언

    |도쿄 이춘규특파원|한승조(75)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극우 성향 잡지 기고문을 통해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원망하기보다는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 물의를 빚고 있다. 한 교수는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 자매지인 월간 ‘정론(正論)’ 4월호에 기고한 ‘공산주의ㆍ좌파 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병합을 재평가하자’는 글에서 “당시 국제정세와 열강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면 한국이 러시아에 점거ㆍ병탄(倂呑)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음을 알 수 있다.”며 일제가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은 것을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하는 이유의 하나는 양국의 인종적 또는 문화적인 뿌리가 같기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한국의 민족문화가 일제 통치를 거쳐 더욱 성장하고 발전, 강화됐다.”며 “역사나 어학, 문학 등 한국학 연구의 기초를 세워준 것도 일본인 학자와 그들의 제자 한국인이 아니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이런 의견에 대해 흥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여 객관성을 중시하는 것이 정당한 학문의 자세”라며 “일제가 한글 교육을 폐지하고 국어 사용과 연구를 금지했다고 하지만 2차대전이 끝난 후 한국어 문학이 큰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견줘 “러시아나 미국, 영국 등의 지배를 받았더라면 문화적 뿌리가 너무 달라 민족문화 성장과 심화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한국의 좌파 세력이 적대시하는 대상은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이다. 그들 대부분은 일제 치하에서 항일 독립운동보다는 크든 작든 일본에 협력한 자들이었다.”며 “이들을 모두 친일파로 추궁해 정치적으로 무능화시키고 좌파 세력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려는 것이 ‘일제 강점하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성(性)도 혁명의 무기로 활용하자는 말이 있다.”면서 “전쟁 중 여성을 군인의 성적 위안물로 삼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며, 그것도 일시적이고 예외적 현상이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기고문이 보도된 후 “일본의 식민지배로 오히려 민족의식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며 소신에 따라 쓴 것임을 거듭 밝혔다.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했으며 현재 ‘자유시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taein@seoul.co.kr
  • “대통령 3·1절 기념사 시의적절”

    여야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 “시의적절하고 단호한 메시지”라고 환영했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은 “최근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 망언’에서 보듯 일본의 역사 의식은 독선적이고 후진적”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가원수가 일본의 적극적인 과거사 규명과 사과 및 배상을 촉구한 것은 필연적이고 시의적절한 요구였다.”고 말했다. 임 대변인은 이어 “정부가 민간인의 대일 청구권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것 역시 정부가 공식적으로 원칙을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은 “야당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면서도 독도 영유권 주장과 관련해 “대통령이 일본의 주권침해에 대해선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3·1절에 울린 ‘독도의 분노’

    3·1절에 울린 ‘독도의 분노’

    제86돌 3·1절을 맞은 1일 삼일정신을 기리고 순국열사들의 넋을 달래는 기념행사가 전국에서 이어졌다. 이날 오전 서울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는 애국지사와 광복회원을 비롯한 정부인사 및 각계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3·1절 기념식이 열렸다. 대한민국 광복회는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해 3·1운동의 진원지가 된 종로 탑골공원의 태각비 앞에서 독립운동으로 희생된 선열을 기리는 추모식을 가졌다. ●광복회 민족대표 33인 추모 독도에서는 낮 12시 울릉군의회 의원과 군민 등 175명이 태극기를 들고 참석한 가운데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을 규탄하는 ‘범 군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동도 선착장에서 열린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주한 일본 대사의 ‘독도영유권 망언’을 규탄했다. 참석자들은 대회가 끝난 뒤 500여개 고무풍선에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드리워 일본쪽으로 날려보냈다. 부산지역 요트 동호회원 등 6명은 이날 오후 일본의 독도 관련 망언을 규탄하는 의미에서 이날 부산에서 요트를 타고 독도로 출발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단체전국연합은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피해자 지원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대국민 호소문’에서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은 48만명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전체를 공개하라.”면서 “민관이 합심해 보상에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태평양유족회는 탑골공원 앞 인도에서 3·1절 기념행사를 가졌다. 진보와 보수 성향 단체들도 각각 3·1절 행사를 진행했다. 보수 성향의 단체들로 이루어진 국민행동본부는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5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북한해방 3·1 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현 정부의 일방적 대북 지원은 독재를 옹호하는 반민족적 행위이며 친북좌익세력은 김정일의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통일연대 회원 300여명은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명동성당까지 3.2㎞ 구간에서 ‘민족자주 3·1만세 행진’을 펼쳤다. 또 3·1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주민 29명이 일본군에 학살된 경기 화성시 제암리에서는 당시 참상을 재현한 마당극 ‘아!제암리 만세’가 공연됐다. 또 하남시 여성회는 시청광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3·1절 기념행사’를 열고,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경찰은 이날 전국 24개소에서 7만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1절 기념행사가 열렸다고 밝혔다. ●홈피·블로그 ‘사이버 태극기’ 물결 한편 사이버 세상에서도 태극기의 물결은 이어졌다. 이날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고구려 지킴이’ 회원 70여명은 서울 명동에서 태극기 문양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애국가와 만세삼창을 한 뒤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었다. 싸이월드와 네이버 회원들은 각자의 미니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사이버 태극기’를 게양하고 3·1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온라인게임사인 ‘엠게임’은 무협 게임 속에 ‘독도는 우리땅’이란 현수막과 태극기를 내걸었다. 이날 정오에는 게임 이용자들이 동시에 ‘3·1절 만세삼창’을 하는 깜짝 이벤트도 벌였다. 이효용 박지윤기자 utility@seoul.co.kr
  • [사설] 日, 과거사 추가 성의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배상’과 ‘개인청구권 해결’을 거론했다. 이승만 정권 이후 어떤 대통령보다 강한 어법을 사용한 것은 충격적이다. 임기중 한·일 과거사 문제를 쟁점화하지 않겠다던 노 대통령을 이렇게 만든 일본측의 책임을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2차대전 승전국이 아니므로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배상’은 물론 ‘보상’조차 안 된다는 게 일본측의 논리였다.‘경협자금·독립축하금’ 등의 명목으로 포괄적 보상을 일부 했을 뿐이다.1965년 한·일협정도 그런 기조 위에 체결됐다. 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진실규명, 진심 어린 사과, 그리고 배상이 있어야 화해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일반론으로 보기에는 의미심장하다. 양국 정부가 정교하지 못한 대응을 한다면 양국 관계는 극단적으로 볼 때 한·일협정 이전으로 되돌아갈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 정부가 당장 한·일협정의 전면개정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독도 망언, 교과서 왜곡에 군비증강까지 일본의 우경화가 심한 데 대한 최상의 경고라고 이해된다. 일본이 역사왜곡을 중지하고, 한·일협정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스스로 바로잡는 게 서로에게 최선이다. 일본 민주당 등 야3당은 엊그제 종군위안부 명예회복법안을 제출했다. 집권 자민당은 소극적인데, 그래선 안 된다. 종군위안부뿐 아니라 원폭피해자 등 협정에서 누락된 부분은 자체입법으로 보상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징병·징용 배상도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원론적 주장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독일은 지난 2000년 입법을 통해 강제징용 외국인노동자 보상책을 만들었다. 유수한 기업들이 보상기금 마련에 참여함으로써 회사 이미지를 높여 해외 판로개척에 도움을 받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희망하는 일본 정부나, 군국주의 비호로 성장한 일본 대기업들은 독일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일본에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 점은 유감스럽다. 기념사에서 독도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이 옳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정부는 일본의 변화만을 기다리지 말고 입법을 통해 일제 피해자를 지원하고, 한·일협정의 추가·보완 가능성을 적극 타진해야 할 것이다.
  • ‘한일 우정의 해’ 금 가나

    ‘한일 우정의 해’ 금 가나

    한·일 관계의 뇌관은 항상 ‘독도’에 있어왔다. 보다 못한 국회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국회 문광위는 지난달 28일 ‘한·일 우정의 해 문화교류행사’의 재검토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며 쉽지 않은 싸움의 선봉에 섰다. 독도를 국제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정부의 무대응 전략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왔던 정치권이 칼을 빼든 셈이다. 결의안을 제출한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은 “남의 땅을 제 땅이라고 우기는 망언을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형식적 문화교류, 겉으로만의 우정은 지속될 수 없다.”면서 다카노 대사 소환 필요성을 주장했다. 결의안은 또한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 상정의 즉각 철회와 우리 정부의 ‘독도의 날’ 제정 촉구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결의안으로 인해 ‘한·일 우정의 행사’ 자체가 백지화되는 일은 없을 전망이다. 문광위에 참석한 정동채 문화관광장관은 “독도는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영유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일이 외교적 분쟁으로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무대응 입장을 재확인하며 정부간 행사를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영구 영토학회 부회장

    김영구 영토학회 부회장

    “일본의 ‘도발’을 묵인하면 우리나라의 독도 영유권은 사라지고 맙니다.” 국제법을 전공한 한국영토학회 김영구(66·전 해양대 법학부 교수) 부회장이 28일 독특한 ‘독도해법’을 제시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최근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제정과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대사의 망언 등 잇따른 일본의 공격적인 주장에 적극적인 역공을 취해야 한다는 게 논거의 요지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독도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일본의 공세와 엇비슷하거나 더 높은 강도로 맞대응하다 보면 국제분쟁으로 비화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 때는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김 부회장의 견해는 아직은 소수설인 셈이다. 그러나 김 부회장은 “서울 한복판에서 주일대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망언을 했는데도 외교부 담당국장이 일본측 공사를 부른데 그친 것은 국제법적으로 ‘묵인’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하더라도 국제법상 분쟁을 해결할 때는 국가의 적극적인 의사 표시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경쟁국가의 도전적인 행위나 주장에 대해 누구나 기대할 수 있는 대응조치를 하지 않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 결과적으로 경쟁국가의 행위가 가속력을 갖게 하는 행위를 국제법에서는 ‘묵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지난 1962년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영유권 분쟁사건인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례를 들었다.1908년 프랑스에서 발행된 지도에서 이 사원은 캄보디아 영토에 위치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태국이 측량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지도에 착오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국경수비대를 배치했다. 이 때문에 사원의 영유권 분쟁은 국제사법재판소로 이어졌고 “태국이 잘못 제작된 지도의 효력을 부인하려면 부정확함이 판명된 후 즉시 대응하지 않았으므로 태국은 지도를 묵인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김 부회장은 “시마네현은 지방자치단체이므로 일본 국가차원의 의사표시라고 볼 수 없듯이 우리가 독도수비대를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국제법상 효력이 없다.”면서 “전세계에 일본의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을 조목조목 알리고 독도개발법 등을 제정해 합리적으로 활용, 각종 행정적인 조치로 독도의 영토권을 행사하는 실적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말말말˙˙˙

    이런 식이면 한·일 우정의 해는 없다.-이미경 국회 문광위원장이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주한 일본대사의 발언과 관련,“한 나라를 대표한다는 대사가 망언을 하는 비정상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 형식적 문화교류, 겉으로만의 우정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게 저의 확고한 견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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