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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해안해변 피서객맞이 준비 끝

    “올여름 피서는 청정 강원 해변으로 오세요.” 강원도내 동해안 100개소의 여름해변이 오는 7월1일 경포·속초 여름해변을 시작으로 10일까지 모두 개장돼 60일간 여름관광객 맞이에 나선다. 강원도 환동해출장소와 동해안 6개 시·군은 주차장 화장실 탈의실 등을 대폭 확충하고 관광객의 안전과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마련하는 등 피서객 맞이 준비를 모두 끝냈다고 31일 밝혔다. 경포의 솔향기 산책로 개설로 좋은 평을 받고 있는 강릉시는 경찰 해경 119구급대와 24시간 종합상황실을 운영해 ‘피서객 안전사고 제로화’를 선언했다. 동해시도 망상해변 일원에 목재데크 산책로를 조성, 아름다운 걷기코스를 제공한다. 속초시는 속초해변에 철제 레일로 된 장애인 해변진입소를 설치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해변을 운영하고 삼척시는 입장료 주차료 텐트 및 파라솔 대여를 무료로 운영해 타 해변과 차별화했다. 고성군은 송지호 오토캠핑장 내 텐트설치용 데크 90개를 추가설치해 야영객유치에 나섰고 양양군은 낙산해변의 불법시설물 철거와 불법행위 단속에 나서 피서객들이 안전한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 도는 무허가건물, 방치된 노후시설 등 경관훼손시설을 정비하고 지역주민의 숙원사업이었던 군철책 철거사업이 올해 마무리됨에 따라 철책 철거지역을 그린존으로 활용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이슈 Q&A] 너무 유명해서 거래도 어려운데 왜 훔칠까

    [이슈 Q&A] 너무 유명해서 거래도 어려운데 왜 훔칠까

    “유명 미술품을 훔치는 짓은 생각보다 훨씬 자극적인 일이다. 미술품 절도범들은 과시욕이 있고, 모험을 즐기는 편이다.” USA투데이는 23일(현지시간) 최근 프랑스에서 잇따라 발생한 미술품 절도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해 ‘미술관 절도범의 심리여행’이라는 문답형식의 글을 게재했다. 앞서 지난 20일 파리 현대미술관에서는 피카소, 마티스의 작품을 비롯해 5억유로에 달하는 그림 5점이 도난당한 데 이어 21일 마르세유의 한 수집가 집에서는 피카소의 석판화 등이 강탈당했다. →너무나 유명해 거래가 쉽지 않은 그림을 왜 훔칠까. -조엘 실버버그 노스웨스턴대 범죄심리학 교수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자극이 된다. 금전적 가치가 엄청나 유괴하는 것보다 우아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또 절도범의 개인적인 성향도 작용한다. 지난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모나리자 도난사건의 경우, 이탈리아인 범인이 “이탈리아 그림이 프랑스에 있는 것이 불만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술품 절도범은 일반인처럼 평범한가. -댄 애리얼리 듀크대 심리행동학 교수 위험을 즐기는 절도범들은 대부분 영리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을 속이는 일까지 가능할 정도다. 겉으로는 일반인과 구분하기 쉽지 않다. →심리적 상태는 . -실버버그 교수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이 있는 사람은 치밀한 계획을 짜서 행동하기 어렵다. 편집증이나 피해망상 정도는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파리현대미술관 사건을 분석한다면. -배리 고든 존스홉킨스대 뇌과학 교수 단독범행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개인소장을 원하는 사람이 배후에서 조정했거나 공범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지능범죄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사전계획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16) 장자의 ‘장자’

    [고전 톡톡 다시 읽기] (16) 장자의 ‘장자’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던 중국의 전국시대 중엽. 초나라 위왕이 한 사나이에게 재상 자리를 약속하고 예물을 보냈다. 이 사나이는 위왕의 제의를 단번에 거절한다.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즐겁게 살지언정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의 속박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내 맘대로 살겠습니다.” 이 사나이, 그 유명한 장자(莊子)다. 이름은 장주(莊周), 송나라 몽(蒙) 지역 출신으로, 노자와 더불어 도가사상의 양대 거목으로 받들어지는 ‘그’ 장자. 장자는 짚신을 엮고, 목덜미는 비쩍 마르고, 얼굴이 누렇게 떴을 정도로 생계가 어려웠다. 곡식을 빌러 다니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온갖 호사를 하다 거룩하게 희생되는 ‘소’보다는 하찮지만 오래 사는 ‘돼지’가 낫고, 안락하고 풍요로운 새장 속의 새보다는 숲 속의 고달픈 새가 낫다고 생각했다. 장자는 국가의 ‘명예로운’ 종이 되기를 거부하고 기꺼이 ‘이름 없는’ 자유민으로 살았다. 장자는 우리가 기대했던 바처럼 현실에서 ‘도피’해 자연 속에 은둔하지 않았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선이 되지도, 혹은 신선처럼 살지도 않았다. 장자는 현실 속에서 현실을 견뎌내며 주류적인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장자의 ‘장자’는 우주상의 생명체들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모든 인위적이고 인간적인 시스템의 망상을 냉철하게 파헤친 우화다. ●만물은 모두 똑같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천하가 다스려지는지’를 묻는다. 장자가 보기에 이 질문은 ‘야비’하다. 천하를 다스린다는 사고는 인간의 오만이다. 서민은 잇속 때문에, 선비는 명예를 좇아, 대부는 가문을 위해, 군주는 천하를 소유하려고 천하를 위하는 척할 뿐이다. 천하를 다스린다는 건, 우주의 생명체들을 자기만의 척도로 균질화하고 등급화하여 그 생명력을 속박하는 일일 뿐이다. 천하의 만물은 그냥 두면 된다. 저마다 알아서 살아간다. 장자는 인간이 이 세계의 중심적인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우주의 생성을 말한다. 만물은 무(無)에서 나왔다. 세상이 있기 전, 있음이 없었던 그 이전, 그 없음조차 없었던 그 이전, 이 세상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었다. 무에서 나온 음양의 두 기운이 운동하면서 천지와 만물이 생겨났다. 저절로 그렇게 생겨난 상태, 그것이 자연이다. 우연한 부딪침에 의해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만물을 그렇게 만든 것은 하늘도 아니요, 신도 아니다. 우발적으로 생성되었다는 점에서 만물은 모두 똑같다. 만물들 사이의 우열은 존재할 수 없다. 인간들이 언어를 만들면서 선악·미추·시비와 같은 경계가 만들어지고, 그 경계에 따라 모든 존재들을 구분하고 차별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관점을 강요함으로써 만물의 존재성은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다. 장자는 세상의 온갖 기준과 통념을 해체한다. 중국 최고의 미녀, 여희와 모장은 인간에겐 아름답다. 그러나 물고기나 새나 순록은 그녀들을 보면 멀리 달아난다. 습지는 미꾸라지에게 알맞은 거처다. 그러나 인간이 습지에 살면 허리병이 생겨 반신불수로 죽는다. 어느 얼굴을 아름답다 하고, 어느 거처를 좋다고 할 수 있는가? 우주적으로 사유하면 이분법의 척도들이 삽시간에 스러진다. 장자는 세상에서 쓸모 있다고 여기는 것이 존재들의 양생에 얼마나 쓸모가 없는지, 쓸모 없다고 버려진 것들이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를 통해 가치를 전도시켜 버린다. 집 짓는 데 쓰이는 나무만 쓸모가 있는 게 아니다. 재목감이 못되어 도끼를 피한 나무는 그 나무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쓸모가 있는가? 인간 위주의 독단적이고 독점적 가치들을 벗어버리고 그 나무 그늘에 누워 소요유(逍遙遊)함이 어떻겠는가? 장자의 제안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만물-되기와 무위(無爲)하기 중심으로부터 탈주하기. 장자는 국가 없이, 권력 없이, 제도 없이도 공생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장자는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고안된 시스템조차 신뢰하지 않았다. 공자와 묵자의 ‘인의와 겸애’조차 긍정하지 않는다. ‘인의와 겸애’가 결국엔 수갑과 차꼬를 채우는 명분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한다. 인의를 내세워 천하와 백성을 소유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강도질로 사람을 죽였던 ‘도척’의 행악보다 더 나쁘다. 도척은 몇 사람을 죽였지만, 요·순 같은 성인은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장자는 묻는다. 요·순임금이 도척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제도 없이, 중심 없이 만물들은 공존할 수 있을까? 공자와 묵자는 대항이념, 대항국가, 대항제도를 내세웠다. 그러나 장자는 절대 중심이 해체된 출구에서 세상을 본다. 만물이 ‘도(道)’에 따라 살면 국가 없이 공생할 수 있다. 도를 따르면 다스림이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장자에게 도란 무엇일까? 길은 다녀서 이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도’는 만물이 저절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길이다. 만물을 주재하는 절대적인 도란 없다. 자연인 채로 살아가는 길, 그것이 만물의 도다. 따라서 도는 어디에도 있다. 도는 땅강아지나 개미에게도 있고, 돌피나 피에도 있고, 기와나 벽돌에도 있고, 오줌과 똥에도 있다. 도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그 현장에서 드러날 뿐이다. 만물은 이렇듯 저마다의 도에 따라 살아간다. 저마다의 도를 해치지 않고 살려주는 때에만 만물은 공생할 수 있다. 따라서 만물이 공생하려면 다른 존재들이 살아가는 법을 온 몸으로 감지해야 한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와 상식으로 무장된 ‘나’를 버리고 대우주가 생성된 그 찰나를 기억하며 다른 존재와 마주쳐야 한다. ●시스템에 의한 자선 없어서 잘 사는 사회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어 팔랑팔랑 날아다녔던 것처럼 나비의 기운장이 장자의 기운장으로 전이되면 장자와 나비 사이의 간격은 사라진다. 장자와 나비는 형체는 분명 서로 다르지만, 그 순간 장자는 나비가 되고, 나비는 장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물화(物化), 곧 ‘만물-되기’다. 만물-되기를 이루면 국가라는 이름의 다스림이 없어도, 시스템에 의한 자선이 베풀어지지 않아도 만물들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저절로 살아가는 천하에 군더더기를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배려한다는 행위 없이도 배려가 이루어지는 세상, 다스린다는 행위가 없는데도 잘 돌아가는 세상, 그런 무위의 세상이 장자가 상상한 공동체다. 국가 없이 살기를 꿈꾸고, 국경 없는 사회를 꿈꾸는 당신에게 ‘장자’는 든든한 벗이 되어줄 것이다. 길진숙 수유+너머 강원 연구원
  • 해수욕장 벌써 피서객잡기 전쟁

    해수욕장 벌써 피서객잡기 전쟁

    “더 감동적이고 더 편리한 우리 고장 해변으로 피서 오세요.” 전국 해수욕장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벌써부터 올여름 피서객을 잡기 위한 채비에 한창이다. 모유수유실에서부터 유비쿼터스 비즈니스 구축까지 다양한 편의시설로 승부수를 던지고 나섰다. 동해안 여름 피서지를 대표하는 강원 강릉 경포해변(7월1일 개장)은 U-헬스케어센터와 미디어 보드를 설치한다. ●경포, 유비쿼터스 비즈니스 구축 이곳에는 무선인터넷 서비스와 실시간 관광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모유수유실과 유모차 및 휠체어를 무료대여하는 등 피서객들에게 적극적인 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동해시는 피서객들이 청정해변을 맘껏 즐길 수 있도록 망상 오토캠핑리조트 해변 일대에 목재 데크로 된 산책로를 조성한다. 삼척 해변은 입장료와 주차비·텐트·파라솔 대여 등이 아예 무료다. 속초시는 속초 해변에 목재 데크와 철제 레일로 된 ‘장애인 해변 진입로’를 설치해 3년째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이곳에서 각종 장애인 단합대회와 수련회까지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고성군은 송지호 오토캠핑장 내에 텐트 설치용 데크 90개를 설치해 야영객 유치에 나서기로 했다. 샤워장에는 전기온수시설을 설치했다. 부산 해운대구는 지난해부터 해운대해수욕장 탈의장에 비타민 샤워기를 설치해 인기다. 1개의 비타민 샤워기에는 오렌지 4000개 분량의 비타민C가 농축된 필터가 들어가 있어 약알카리성의 물을 공급한다. 비타민 샤워기를 이용하면 일광욕과 해수욕으로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를 보호해 피부미용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이곳에서는 미아방지 전자 팔찌 등 유비쿼터스 기술이 접목된 관광 서비스도 제공한다. 부산시가 2008년부터 시범서비스를 실시한 이후 미아 발생 신고시점에서 5분 이내에 아동을 찾는 데 성공하는 등 서비스 효과가 높아 올해는 전자 팔찌 공급을 대폭 늘린다. 해운대해수욕장은 ‘위해성 상어 퇴치기’를 전국 처음 도입해 운영한다. 백상아리 등 상어류가 작은 물고기에서 나오는 아주 약한 전류를 감지해 먹이를 잡아 먹는 것에 착안, 퇴치기 주변에 상어가 접근하면 강력한 전류를 흘려 놀라 도망치게 만드는 원리를 이용했다. ●해운대, 첫 ‘상어퇴치기’ 도입 충남 보령시는 올해 대천해수욕장에 ‘이동식 안전감시탑’을 처음 도입한다. 감시원이 감시탑에 올라가 망원경 등으로 해수욕장을 보다가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무전기로 제트스키에 연락, 달려가 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제주시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이호테우해변을 야간 개장해 인기를 끌자 이를 올해 함덕서우봉해변과 협재해수욕장 등으로 확대한다. 또 제주 지역 전역 해수욕장의 안내방송 서비스를 한국어·영어·일어·중국어 등 4개 국어로 제공한다. 경북 포항시는 최근 포항 북부해수욕장에 스포츠마당을 조성했다. 이 스포츠마당에는 비치발리볼장과 비치풋살장 각 2곳이 있다. 영덕군은 고래불해수욕장에 의료봉사 서비스실과 관광안내소 등을 갖춘 해양관광서비스 센터를 건립 중이며, 대진해수욕장에는 산책로(400m)와 해안데크, 휴게실 등을 조성하고 있다. 임형준 강원도 환동해출장소 연안관리담당은 “전국 해변으로 이어지는 도로 여건이 좋아지면서 피서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어느 해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치단체마다 마을마다 피서객들이 즐기고 추억을 담아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Weekly Health Issue] 복치의학

    [Weekly Health Issue] 복치의학

    한의학 중에서도 배를 살펴서 진단(복진)하는 지류를 복치의학이라고 한다. 인체의 모든 병증이 집약되는 곳이 배(가슴)이며, 이곳을 잘 살피면 모든 질병의 문제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봉건 신분제 사회를 거치면서 사라졌던 전통 복치의학이 회생했다. 상한론에 근거한 2000년 전의 복치의학 명맥이 국내에서 되살아난 것. 최근 복치의학을 복원해 내고 관련 의학회를 창립한 주역인 복치의학회 노영범 회장(부천한의원 원장)을 만나 복치의학의 전모를 살폈다. ●생소하다. 복치의학이란 어떤 의술인가 ‘복치(腹治)의학’이란 ‘복진(腹診)’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한의학이다. 인체의 중요 기관이 자리한 환자의 복부(흉부 포함)를 통해 질병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고법의학이다. 병은 독(毒)에서 비롯되고, 그 독이 모이는 곳이 복부인데, 복진으로 독을 찾아 거기에 맞설 정확한 약독(藥毒)을 투여해 병을 낫게 하는 것이 복치의학의 원리다. 복진은 2000년 전 ‘상한론’이라는 고대 중국 의서에서 발원한 한의학 고유의 진찰법이었지만 신분사회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지 못했던 의사들이 귀족이나 여성의 몸을 만질 수 없어 오랫동안 명맥이 끊겼다. 그러다 근래 뜻있는 한의사들이 이를 복원해 재조명되고 있다. ●복진을 통해 어떻게 질환을 진단하는가 건강한 사람의 배를 눌러보면 힘이 있으면서도 특별하게 아프거나 딱딱한 부위가 없다. 반면 환자의 배를 복진하면 특정 부위가 단단하게 굳어 있거나 눌렀을 때 통증이나 불편함을 호소한다. 예컨대 오른쪽 늑골 아래를 지그시 눌렀을 때 저항감과 함께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 간기능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는 식이다. 복진은 서양의학의 해부학적인 개념과 달리 복부의 긴장도·비율·색깔·복피의 두께와 복부에 나타나는 다양한 징후를 종합해 진단하고, 적절한 약을 처방하는 과정의 총칭이다. ●어떻게 복진이 가능하며, 원리는 무엇인가 예부터 간 비장 폐 심 신장 담 위장 대장 등 인체의 주요 기관을 총칭하는 ‘오장육부’는 한의학적 진단 및 변증원리의 핵심이다. 이 오장육부는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영향을 미치는데, 이 때 특정 장기가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은 오장육부가 정상에서 벗어남으로써 생기는 이상반응이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오장육부를 잘 관찰하면 환자가 가진 문제를 찾아 낼 수 있고, 이를 약독으로 조화롭게 만들어 병증을 제거한다. ●복치의학이 기존 한의학과 어떻게 다른가 복치의학은 기존 한의학과 달리 ‘음양오행’이나 ‘장부 변증’, ‘사상체질 변증’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실제로 만져지거나 환자가 느끼는 증상 가운데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것만을 진단의 근거로 삼는다. 이것이 기존 한의학과의 차이다. 또 추상적 이론에 근거하지 않고 실질적 경험과 연구를 통해 특정 약재가 치료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해 두는 등 일관성과 재현성을 추구하는 것도 기존 한의학과 다른 점이다. ●복치의학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은 어떤 것들인가 복치의학은 병명보다 환자가 가진 복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서양의학적 관점에서 질환을 구분하는 게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인체의 문제가 복진으로 감지되면 반드시 치료된다는 점이다. 이런 복치의 범주를 서양의학적 관점으로 설명한다면 만성통증·비염·소화장애와 만성설사,변비 등 소화기질환·공황장애·정신분열병·아토피 피부염 등에서 뛰어난 치료 성과를 보인다. 특히 신경정신계질환과 면역질환 등 서양의학에서 난치병으로 분류한 질병들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정신분열병 치료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했는데…. 정신분열병을 완치하는 의학은 아직 없으며, 특히 한방 쪽에는 환자조차 거의 없었다. 이런 벽을 넘기 위해 복치의학회에서 2명의 급·만성 정신분열병 환자를 완치한 경과를 학회지와 신경정신과학회에서 발표했으며, 현재 40여명의 정신분열병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이중 3명은 완치됐다. 또 3개월 이상 치료한 정신분열증 환자 20명을 분석한 결과, 70%는 혼란스러운 언어나 불안증·일탈행동이 유의하게 호전됐으며, 20%는 개선되는 조짐만 있을 뿐 아직 불안정한 상태이고, 나머지 10%는 증상이 심해 간혹 환청·환시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복치의학으로 어떻게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가 앞서 말했듯 복치의학은 병명에 의존하지 않는다. 마찬기지로 정신분열병도 오로지 증상에 근거해 치료한다. 한의학적인 정신분열병의 증상은 번경·번조·경광·발광 등인데, 이런 환자를 복진해보면 ‘동(動)’이란 현상이 나타난다. 배꼽 위-아래로 연필심 같은 가는 선이 만들어져 있는데, 만지면 아프고 그 중심으로 샘물이 솟듯 움직임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에 촉칠·용골·모려 등의 약물을 투여하면 ‘동’이 사라지면서 정신분열 증상도 점차 개선된다. ●촉칠·용골 등의 약재가 어떻게 병리작용을 한다는 것인가 촉칠·용골·모려는 임상적으로 교감신경 흥분을 억제하고, 뇌 기능을 활성화하며, 저칼슘혈증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약재는 오래 전부터 고법의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왔다. 단, 지금까지 이런 약재를 정교하게 정신분열병에 적용할 수 있는 ‘스킬’과 ‘매뉴얼’을 몰랐을 뿐이다. 그랬던 것을 복치의학회에서 연구 끝에 새롭게 복원해 냈다. ●치료 예후를 질환별로 설명해 달라. 신경정신과 질환 중에서 우울증·조울증·공황장애·불면증 등은 완치율이 매우 높다. 정신분열병은 만성으로 진행될수록 치료기간이 오래 걸리나 급성은 예후가 매우 좋은 편이다. 망상 및 환각장애 환자는 경과가 비교적 나쁜 편이다. 이 밖에 신체장애·사고장애·감정적 둔마·언어장애·무감동·주의력장애 역시 치료경과가 양호한 편이다. ●이런 복치의학이 현대의학과 어떤 차별성을 갖는가 현대의학의 복진은 내장이나 조직의 해부학적 변화를 통해 병명을 가르고 치료하는 의술로, 병명이 진단과 치료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반면 한방의 복진은 단순히 복부 내장이나 조직의 해부학적 변화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복부의 긴장도·비율·색깔·복피의 두께 등 수 많은 복부의 징후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오장육부와 인체에 과부족한 정도를 판단하고, 이를 바로잡는다. 이 점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Weekly Health Issue] 정신분열병 치료사례

    초진 당시 중3이었던 이모(16)군은 키 171㎝, 체중 52㎏의 마른 체형으로, 가족들의 성적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심각한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부터 공황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흉선암 진단을 받는 힘겨운 상황이 겹치면서 2008년 8월쯤 정신과적 증상이 표면화됐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 등 사고 장애가 있었으며, 아예 집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혼자 방에만 있으려 했다. 한사코 학교 가기도 거부했다. 복진 결과, 배꼽 위-아래에 압통 등 ‘동’의 징후가 뚜렷했다. 이를 근거로 약 3개월 정도 투약한 결과, 동의 징후와 함께 나타났던 증상들이 사라져 지금은 건실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환자는 초진 당시 27세였던 미혼 여성. 10년 전, 고교 재학중이던 17세 때부터 심한 망상장애와 결벽증, 대인기피증, 환청·환시 등의 정신과적 증상으로 일상적인 행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복진 결과, 배꼽 위아래의 압통과 복부 대동맥의 항진, 즉 동의 징후가 확인돼 이후 약 14개월 정도 투약했으며, 필요에 따라 부종과 갈증을 개선하는 약제를 처방했다. 노 회장은 “이후 뚜렷하게 ‘동’의 징후가 약해지면서 현재 망상장애 증상과 환청·환시가 거의 사라지는 등 완치 단계에 다다른 상태”라고 설명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캉유웨이의 대동 세상은

    캉유웨이가 대동서에서 그리고 있는 세상이 유토피아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로 변질돼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는 실제로 인종의 통합을 이야기하며 흑인들을 백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방법 역시 지금에서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시베리아로 이주시키기, 식생활 바꾸기, 다른 인종과 결혼시키기. 그것도 안 되면 후손을 끊어 도태시키기! 다른 것들 사이에는 결코 평등할 수 없다는 그의 믿음은 모두가 같아져야 차별이 없어진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 ‘차이’를 없애버리는 세계. 그러나 그 순간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로 변해버린다. 어떠한 차이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세계. 그것이 캉유웨이가 그리는 대동 세상이었다. 여기서 그의 말을 들어보자. “대동세에는 험난한 지형을 모두 깎아 평탄한 길로 만든다. 예로부터 있어왔던 높은 산, 깊은 계곡, 단절된 사막과 너무 더운 지역, 재난이 있는 곳,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곳, 깊은 밀림, 독사와 맹수가 있는 곳, 야만인들이 서식하는 곳 등을 평정해서 평탄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이런 곳을 정리해서 주거지를 만들고, 터널을 뚫고 길을 내어 도시로 만들고, 마을끼리 서로 통하게 한다. (…) 이런 세상이 이른바 대동세이고, 태평세인 것이다.” 어떤가? 이 글을 읽고 어디서 본 듯한 데자뷔를 느끼지 않으셨는지? 그렇다. 모든 것을 뚫어버려 통하게 하면 된다는 발상이다. 운하를 개발해야 한다는 이들의 논리가 이와 유사하지 않은가? 소위 근대의 기획이 끝까지 가면 결국 도달하는 바가 이런 유토피아이다. 모든 것을 깎고, 뚫고, 통하게 하는 것. 그 속에서 어떤 다른 가치들도 살아남을 수 없다. 실제로 캉유웨이 역시 대동서에서 모든 필요 없는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몸에 나 있는 털들 역시 필요 없으니 밀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정도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일들이 단지 과거 어느 사상가의 망상이었다고 단언하지 말자.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도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경제학계 마이너리티 칼 폴라니 금융위기 이후 그의도덕경제 다시 깨어났다

    경제학계 마이너리티 칼 폴라니 금융위기 이후 그의도덕경제 다시 깨어났다

    미국 금융사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불어닥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뜻밖의 일은 또 하나 있었다. 금융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났음에도 사람들은 위기와 공황이 화두였던 칼 마르크스를 찾지 않았다. 대신 불려 나온 사람은 ‘시장경제 따위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한 적도 없는, 일종의 유토피아적 망상’이라고 선언한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1886~1964)였다. 오래 전 절판된 폴라니의 책 ‘거대한 전환’이 새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다. ●시장경제도 결국 잘살기 위한 도구 아마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는 상황을 끝내고 사회가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는 폴라니의 주장이 마르크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마켓 프로세스 자체가 목적”이라는 하이예크식 자유시장 논리보다 시장경제도 결국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상식도 작용했다. 이번에 출간된 ‘경제인류학을 생각한다’(리처드 윌크·리사 클리젯 지음, 일조각 펴냄)는 폴라니로 상징되는 경제인류학적 논의에 대한 입문서다. 냉정하게 말해 경제학계에서 경제인류학적 논의는 그다지 발언권이 없다. 기존 분과학문 체계에 잘 들어맞지 않는 데다 복잡한 수학 모델을 즐겨 쓰는 현대 경제학 흐름 속에서, 문화와 역사 운운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비쳐질 수 있어서다. “경제인류학 연구를 수행하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자신이 경제인류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언급이나, 척박한 토양 때문에 “이 책과 상호보완해서 읽을 수 있는 문헌이 지극히 적은 현실이 안타깝다.”는 번역자(홍성흡 전남대 교수)의 언급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대형마트보다 동네슈퍼의 생존이 더 중요 경제인류학의 핵심은 ‘시장경제가 현대 인간사회의 핵심이라는 얘기는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가령 폴라니는 경제활동을 교환(exchange)·호혜성(reciprocity)·재분배(redistribution)로 나눈 뒤, 시장경제는 교환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호혜성이나 재분배 같은 전근대적 경제활동을 ‘도덕경제’(Moral Economy)라 부르며 이미 끝난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런 도덕경제적 요소는 아직까지도 교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이는 경제학의 정교한 수학모델 대신 주변을 잠시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대기업들은 준조세라며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자발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벌인다. 대형마트의 경쟁력보다 동네 슈퍼마켓의 생존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폴라니식 표현에 따르면 시장경제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 ‘묻어가는(embedded)’는 것이고, 시장경제가 제 분수를 잊고 점령군처럼 나대면서 ‘악마의 맷돌’이 인간과 사회를 갈아버린 것이다. ●고전경제학에서 문화경제학까지 두루 다뤄 무엇보다 책의 장점은 그간 경제에 대한 논의가 알기 쉽게 총망라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시경제학적 흐름에 대해서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고전경제학을 거쳐 최근 논의되는 제도경제학, 행동경제학, 실험경제학까지 두루 건드린다. 또 사회·정치경제학적 흐름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와 종속이론가들은 물론, 정반대 입장에 서 있는 에밀 뒤르켕이나 구조기능주의자들까지 다뤘다. 문화경제학에서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 인류학자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민족지학자 프란츠 보애스, ‘증여론’으로 유명한 마르셀 모스, ‘두꺼운 서술’(thick description)을 언급한 클리퍼드 기어츠 등이 등장한다. 종착역인 결말에서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까지 끌어들인다. 경제인류학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서구 사회과학 전반을 훑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정신분열증 등 부정적 질환명칭 바뀐다

    일반인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일부 정신질환 명칭이 바뀐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 대한정신분열증학회 등은 ‘정신분열병’의 명칭을 조현증(뇌조현증)이나 통합증(통합실조증)·사고이완증 등으로 바꾸는 문제를 두고 여론을 수렴 중이라고 최근 밝혔다. 전체 인구의 1%가 가진 정신분열병은 비현실감을 느끼고, 환청이나 망상처럼 비현실적 현상을 경험하거나 까닭없이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질환이다. 하지만 정신분열병은 질환의 심각성을 떠나 명칭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피해 문제가 되는 질환이다. 전문가들이 대안으로 검토하는 명칭 중 조현증은 현악기의 줄을 조율한다는 사전적 의미에서 따 온 용어로,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의 모습이 정신분열증으로 혼란을 겪는 환자의 상태를 함축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전문가들은 질환 자체가 뇌의 문제인 만큼 ‘뇌조현증’으로 개명하자는 의견도 내놨다. 통합증은 정신적으로 통합이 잘 안된다는 의미가 담겼으며, 사고이완증은 사고(思考)가 온전하지 못한 환자의 상태를 뜻한다고 학회 관계자는 설명했다. 한편, 신경정신의학회는 이와 별도로 현재의 ‘신경정신과’라는 명칭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로 이름을 바꾸기로 하고, 의료법 개정작업을 추진키로 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생존자 PTSD 치료지원 안된다니…

    국가 유공자로 등록되면 5개 보훈병원에서 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본인은 무료이며 유족은 60% 감면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신분열병·지속성 망상성 장애 등 정신질환만 치료 대상이고 알코올 중독,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등 심리질환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지방 보훈병원은 정신·심리질환자 치료를 위한 전담 병실이나 전문 인력, 상담클리닉조차 없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사진] 진실 간직한채…모습 드러낸 함미 PTSD란 큰 사고나 자연 재해, 전쟁 등 충격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에게 발생하기 쉬운 불안 장애를 뜻한다. 천안함 생존자가 입원해 있는 국군수도병원은 생존자 일부가 극도의 심리적 압박에 시달려 적극적 관찰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치료는 필요한데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국내 재난피해자 심리 전문가인 최남희 서울여자간호대 교수는 “천안함 생존자들에게 가감 없이 말해도 된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난피해자에 대한 심리상담은 2004년 대구 지하철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 도입됐다. 최 교수는 “연구 문헌에 따르면 최소한 5년 이상은 지켜봐야 한다.”며 “머릿속에서 사건을 되풀이해 마음이 굳어져 인식이 왜곡되기 전에 상담에 들어가야 하는 만큼 심리상담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밝혔다. 소방방재청은 PTSD에 대한 자체 교육 등 경찰이나 군인 조직에 비해 열려 있다고 자신한다. PTSD 상담을 민간 재난 피해자까지 포함시키면서 재난피해자 사후관리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만 지원을 담보할 관련 법령은 없다. 반면 미 국방부 산하 PTSD 국립센터는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PTSD에 대해서도 핫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전경하 이재연기자 lark3@seoul.co.kr
  • [고전톡톡 다시 읽기] 프로이트 ‘꿈의 해석’

    [고전톡톡 다시 읽기] 프로이트 ‘꿈의 해석’

    오페라나 뮤지컬에는 중창이란 것이 있다. 두 명이나 세 명, 많게는 대여섯 명의 출연자들이 각자의 생각을 노래하며 화음을 만드는 것이다. 상호간의 유대나 협조, 담합, 흥정, 음모, 대결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극을 전개시키는 묘미가 쏠쏠하다. 모차르트는 연극에서 여러 명이 한꺼번에 지껄이면 소음이 되지만 오페라에서는 멋진 화음이 된다고 했다. 멜로디와 화음은 멋지게 조화되지만 서로 다른 속마음을 드러내는 ‘동상이몽’형 중창은 오페라가 주는 매력의 백미다. 유명한 예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는 두 남녀가 처음 만나 축배를 드는 화려한 2중창인데, 알프레도는 사랑의 미덕을 찬양하면서 자신의 순정을 전하지만, 비올레타는 “사랑은 부질없는 것, 사랑 같은 소릴랑은 말고 술이나 마시며 즐깁시다.”라고 노래를 받는다. 노래는 같지만 서로의 생각은 다른 것이다. ●무의식의 중창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이 꼭 이렇다. 이런 중창이 한 사람에 의해 불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오페라 무대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무의식의 무대에서는 가능하다. 프로이트는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인격을 표출하는 정신분열증이나 적대적인 생각들을 타협시켜 하나의 증상으로 표출하는 신경증에서 이런 무의식의 중창을 발견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신경증자나 정신병자의 무의식적 중창이 현실과 불협화음을 낸다면 ‘정상인’들은 현실과 화음을 내기 위해 무진장 애쓰는 것뿐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연상해 보자. 서로 다른 시간 속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 각기 다른 인물들에 대한 감정과 판단들이 저마다의 선율로 때로는 화음을 때로는 불협화음을 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무의식의 중창을 듣기 위해서는 눈을 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의식이란 자아에 의해 억압되어 좀처럼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는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자아의 도덕적 검열이 약화된 수면 중의 표상활동, 즉 꿈을 통해 무의식의 중창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고대인들의 지혜를 따라, 꿈은 단지 수면 중 자극에 대한 모호하고 쓸모없는 잔상 반응이 아니라 꿈꾼 이의 욕망과 숨겨진 진실을 담고 있는 ‘의미 깊은’ 해석 대상이라고 보았다. 책 제목을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이라 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의 해몽술과 프로이트의 꿈 해석은 다르다. 고대인들은 꿈꾼 이의 정념이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로 본 반면, 프로이트는 꿈을 서로 다른 사건과 대상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의 복합물(complex)로 보았다. 해몽술에서 꿈은 한 가지 의미를 전달하는 ‘아리아’인 반면에 ‘꿈의 해석’에서는 서로 다른 생각들의 ‘중창’인 셈이다. 수면 중의 외부 자극이나 내부 충동에 대한 이미지, 전날의 기억들, 아득히 먼 유아기의 소망들, 평소 억압되어 의식되지 않던 욕망들, 그 억압된 욕망을 감추기 위해 덮개처럼 사용된 생각들이 저마다의 선율로 하나의 꿈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일단 꿈의 내용들을 잘게 쪼개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단편들에서 연상되는 사건과 인물, 배경과 주제, 정서와 욕망들을 추적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불협화음 투성이라 도대체 무슨 얘긴지 모를 중창을 멈추게 하고 출연자들 한 명 한 명의 가사를 따로 들어 보는 것이다. 이렇게 꿈의 다중적인 출처를 밝혀낸 다음에는 그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동조하는지, 혹은 적대하는지 분석해야 한다. ●내 안의 비정상성 프로이트는 꿈을 통해 표출되는 생각들을 두 편으로 나눈다. 한 편은 도덕적이고 합리적인‘자아’에 동조하는 생각들이고, 다른 편은 그 자아에 의해 억압된 ‘이드’(뭐라 말할 수 없어서 ‘그것(Es)’이라 부른 무의식적 욕망의 출처)의 욕망에 관한 생각들이다. 꿈은 자아의 ‘검열’ 기능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평소 억압했던 이드의 욕망이 표현되는 무대인데, 그렇다고 자아의 검열이 완전히 중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억압된 욕망에 관한 생각과 이미지들은 원래 모습대로 드러나지 않고, 별로 억압될 필요가 없는 다른 생각이나 이미지로 대체되기도 하고 혼합되기도 하면서 변형된다. 프로이트는 이런 꿈 형성의 원리로 신경증이나 도착증, 혹은 정신병의 증상을 해석했다. 정상인들이 꿈의 무대에서 무의식적 욕망을 가장된 형태로 표출하는 방식 그대로 신경증자들은 자신의 억압된 욕망을 강박행위나 신체증상으로, 도착증자들은 병리적인 충동행위로, 정신병자들은 망상이나 환각으로 변형시켜 표출하는 것이다. 자아에 의해 억압된 생각(무의식)이 다른 생각으로 대체되거나 혼합된 형태로 표출되는 현상은 비단 꿈이나 병리적인 증상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에게 그것은 모든 인간의 의식 저변에서 항상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신을 학대하는 남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자식에게 전가되거나,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가에 대한 계급적 증오가 억압되었다가 엉뚱하게 외국인 노동자나 여성노동자를 향한 증오로 표출되는 현상에서, 혹은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에 대한 생각이 ‘국가의 적’에 대한 생각으로 응축되는 현상들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무의식의 작동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한 가지 생각은 오직 한 가지 의미만 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하나의 생각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다른 생각을 대체한 것이거나 여러 생각들이 혼합된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보통 꿈속의 생각과 깨어 있을 때의 생각, 비정상인들의 생각과 정상인들의 생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을 긋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런 구별과 분리의 선은 우리 안에 있는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이드 사이의 분리선이 타인을 향해 투사된 것일 뿐이라고 한다. ‘꿈의 해석’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비정상적인 생각들이 정상적인 생각들과 어울려 불협화음을 내는 무의식의 중창을 들을 수 있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박정수 수유+너머 R 연구원
  • 고 최진영, ‘자살 추정’ 긴박했던 25분은...

    고 최진영, ‘자살 추정’ 긴박했던 25분은...

    고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서울 강남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져 현재 영안실에 안치돼 있다.고 최진영이 자살로 추정되는 가운데 자택에서 병원 응급실까지 긴급했던 상황이 알려져 슬픔을 더하고 있다.강남센브란스병원 강성옹 홍보실장은 “29일 14시 45분 사망상태로 응급실에 도착했다.”며 긴박했던 25분간의 이송 상황을 설명 했다.119는 최진영의 신고를 29일 14시 20분에 접수했고 14시 25분 자택에 도착했다. 이어 14시 35분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출발했으며 14시 45분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강성옹 홍보실장은 “오자마자 생체활력증후(호흡, 심박, 동공 등) 측정 후 심폐소생술 시행했으나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장례문제 등은 가족과 추후 논의 예정에 있다.”고 덧붙었다.한편 최진영은 이날 오전 자신의 집에서 자살로 추정, 어머니가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누나 최진실이 자살한 지 1년 5개월 만에 동생 최진영까지 자살하면서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 사진=강정화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모닝 브리핑] 北군부 “급변사태 바라는건 미치광이 발상”

    최근 한·미·중 3국의 안보 전문가들이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해 논의키로 했다는 일부 국내 언론 보도와 관련, 북한군이 “급변사태를 바라는 것은 미치광이의 얼빠진 망상”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제와 남조선 괴뢰 호전광들에게는 우리와 관계 개선 의사가 털끝만큼도 없고, 오직 체제 전복 흉책을 꾸미고 전쟁을 도발할 야욕만 있다는 것이 다시금 명백히 확증됐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자위의 핵 억제력을 더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나눔의 힘, 전문가에게 배운다

    나눔의 힘, 전문가에게 배운다

    서울 서초구의 ‘2010 월요나눔포럼’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매월 셋째 월요일에 진행되는 이 포럼은 생활, 문화, 환경,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눔 전문가들을 초청해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는 기회다. 나눔포럼은 쉽게 접하기 힘든 명사들의 다양하고도 생생한 나눔 사례를 통해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기부와 자원봉사 형태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통해 개개인에게 잠재된 열정과 나눔의 스위치를 켜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해 5월 첫 포럼이 열렸고 현재까지 총 7회에 걸쳐 이혜옥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 강지원 변호사,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등의 강연이 이어졌다. 이달에도 지난 15일 서초동 서울주택문화관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 ‘위대한 시민들-평범한 시민들이 NGO리더가 되기까지’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서는 소외계층과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어깨동무 장현주 대표가 강사로 나섰다. 그는 의료비가 없어 절망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도티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던 평범한 주부들이 함께 뜻을 모아 비영리단체인 어깨동무를 설립한 사연, 결혼 이민자인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가운데 발견했던 희망, 다문화 초등학생을 위한 영어캠프, 창의적인 모금활동, 새터민여성 지원을 위한 프로젝트 개발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참가자들은 자원봉사자의 열정에서 비롯된 파급력 있는 나눔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많은 것을 얻었다는 반응이었다. ‘2010 월요나눔포럼’은 4월19일 환경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춘호 EBS 이사장, 5월17일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장관, 6월21일 김영희 일요일 일요일밤에 PD, 7월19일 황경식 꽃마을한방병원장(예정)의 순서로 각계 인사의 다양한 나눔 사례가 이어진다. 각 포럼에는 지역주민을 비롯하여 자원봉사자, 자원봉사팀 지도자 및 관리자, 자원봉사상담가, 유관기관 실무자 등 약 80명이 참석할 수 있으며, 참가를 희망하는 주민은 서초구 자원봉사센터(www.se ochov.or.kr)로 문의 및 신청하면 된다. 구 관계자는 “자원봉사나 나눔에 관심 있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포럼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면서 “나눔포럼은 선도적으로 활동하는 전문가와 깨어 있는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지적 자극과 자원봉사의 진정성을 나누는 자리”라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유목하듯 떠돌며 사랑을 노래하다

    모든 시(詩)는 길 위에 있다. 길 위의 시가 가 닿는 시선은 머물지도,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해안선이 이어지는 고흥 앞바다 길에서도, 추풍령 고개 휘적휘적 넘는 걸음에도, 아프리카 케냐의 슬픈 골목을 걸으면서도 시의 애잔한 눈길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길 위에 선 시인(詩人)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을 노래한다. 멀리 달아나지도, 잡힐듯 다가서지도 않은 꼭 그만큼의 거리에 있는 그 사랑을 노래한다. 기차로 퇴근하는 길에서도 쉬 잡히지 않은 사랑을 그리며 노랑 꼬리 달린 연을 꼭 품고 다닌다. 그리고 ‘바람 속으로 바람이 불어와’ 마음껏 하늘을 헤엄칠 수 있기를 꿈꾼다. 시인 황학주(56)가 자신의 여덟 번째 시집 ‘노랑꼬리 연’(서정시학 펴냄)으로 다시 한 번 웅숭깊고 섬세한 서정을 풀어냈다. 전남 고흥에서 아프리카로, 강원도 망상역에서 서울 방학동 반지하방으로, 유목하듯 떠돌며 써내려간 61편의 작품들이다. 그는 “이번 시집에도 사랑에 관한 시들이 많다.”면서 “영원한 사랑 같은 말은 간절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시의 몸을 입고 나타나는 것 같다.”고 수줍게 말했다. 길 위에서 스쳐 지나고 떠나버린 모든 것들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내는 매개로 등장하는 것은 기차다. 피서객들 틈바구니에서 힘겨운 삶의 복판에 있는 젊은 어미가 탄 기차는 ‘망상역’을 지나치고, ‘목마름이 심한 별들’을 달고온 사내(은하수역, 저쪽)와 모노레일 협궤에서 간신히 이어지는 위태로운 사랑의 당신과 나(협궤), 그리고 기차 덜컹거리는 사이 떠나버린 누이(수국) 등에 대한 상념으로 이어진다. 또한 ‘갱국’(‘갱’은 다슬기의 방언) 한 그릇으로 돌아본 어머니의 일생은 ‘슬픈 갱도’로 확장된다. 기차는 또한 킬리만자로 코끼리의 슬픔이 담긴 공간(킬리만자로 역)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말 서울문학대상, 서정시학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아프리카 민간구호단체인 ‘피스 프렌드’ 대표로 1년에 3~4차례씩 케냐, 탄자니아 등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셔터 아일랜드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셔터 아일랜드

    ‘셔터 아일랜드’는 미국 보스턴 외곽의 작은 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나흘 반나절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들을 격리 수용한 그곳 병원에서 환자 한 명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연방보안관인 테드(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왼쪽)와 그의 새 파트너 처크가 투입돼, 과거에 아이 세 명을 살해했다는 여인의 자취를 조사한다. 교도소와 다름없는 병원의 비밀스러운 분위기, 의사와 직원들의 불쾌한 대응,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힌 테드는 하루 사이에 수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해 버린다. 그러나 수십년 만에 불어닥친 거대한 허리케인의 광풍은 두 사람이 섬을 떠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데니스 루헤인의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셔터 아일랜드’의 클라이맥스에도 요즘 스릴러의 한 경향인 ‘반전’이 자리하고 있다. 원작소설이 인물·환상·기억·대화를 치밀하게 구성해 놀랄 만한 결말을 구축한 것처럼, 영화는 필름누아르·사회드라마·고딕호러와 섬세한 연기를 결합해 어두컴컴한 미로를 꾸며놓았다. 하지만 그 반전이란 게 조금 예리한 관객이라면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며, 영화 또한 기절초풍할 결말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해줄 마음이 없다.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이번 스릴러를 완성하는 데 역점을 둔 부분은 ‘인물을 향한 끈질긴 자세’다. 그는 뒤틀린 남자가 종말로 치닫는 내내 걸음을 함께한다. 영화화된 루헤인 소설-‘미스틱 리버’, ‘가라, 아이야, 가라’, 그리고 ‘셔터 아일랜드’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상처는 ‘아이에게 가해진 폭력’과 관련되어 있다. 루헤인은 ‘수컷들이 휘두르는 폭력’을 ‘하늘의 선물’이라고 냉혹하게 표현하면서, 그런 형편없는 남자들을 비극의 근원으로 파악한다. ‘셔터 아일랜드’의 배경은 1954년이다. 테디는 2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지옥을 빠져나오자마자 새로운 이념전의 소용돌이와 사회의 위기에 둘러싸인 인물이다. 그 자신부터 거듭되는 폭력의 늪에서 허우적대느라 테디는 가족이 어떤 슬픔을 느끼고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변질되는지 깨닫지 못한다. 극중 정신병자는 우리가 눈길을 돌려야 할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다. 현실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그들은 잘못된 세상의 징후와 같다. 곁의 누군가 미쳐버렸을 때, 그의 광기가 영혼과 몸을 갉아먹게 내버려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미래는 함께 지켜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코세이지는, 슬픔으로 인해 정신적 외상에 시달렸던 여자와 살아남았으나 죄책감에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를 직시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망가지지 않으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의견을 구한다. 그러므로 ‘셔터 아일랜드’가 장르의 게임에 느슨하다고 불평하기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염려를 먼저 생각할 일이다. 영화의 외형은 감독의 자세만큼 강렬하고 열정적이다. 히치콕·투르네르·루튼·레이·풀러가 만든 옛 할리우드 장르영화가 마구 연상되는 고전적인 터치, 컴퓨터그래픽(CG)의 컬러와 역동성이 폭발해 실낙원의 망상을 극대화한 이미지, 전설적인 그룹 ‘더 밴드’의 멤버였던 로비 로버트슨이 직조한 현대음악의 향연 속에서 스코세이지 영화의 풍성함이 쏟아져 내린다. 특히 미술감독 단테 페레티, 촬영감독 로버트 리처드슨과 계속되는 작업은 스코세이지가 꿈의 영화라고 한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세계에 근접하도록 돕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 [심재억 기자의 건강노트] 홀인원 혹은 꿈

    모든 골퍼들이 꿈 꾼다는 홀인원. 파3 홀에서 공을 한 번에 홀 속에 집어넣는 기막힌 행운을 홀인원이라고 합니다. 그걸 왜 행운이라고 하냐 하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맘 먹고 공을 쳐서 단 한번도 홀인원을 기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그게 맘 먹어서 된다면 누가 골프를 어렵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백상어’ 그렉 노먼은 다른 말을 했더군요. “홀인원을 행운이라지만 그건 땀 흘려 연습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일 뿐 정말 간절히 바라고 꾸준히 연습한 사람에게는 행운이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하는 노력의 결과”라고요. 듣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아는 사람 중에 기를 쓰고 복권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사대는 것이 아니라 잘 나오는 숫자를 나름대로 분석도 하고, 터 좋다는 복권방도 찾아다니면서요. 처음엔 좀 그랬는데, 알고 보니 언젠가 덜컥 당첨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얍삽하게 한 다리 걸쳐 놓았습니다. 당첨되면 콩고물 좀 떼어 달라고요.ㅋㅋ. 사는 일이라는 게 희망이 있어야 열정도 솟고 재미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올해에는 열정을 쏟을 희망 하나씩 키워 보면 어떨까요. 그 희망이 웃기는 망상일지라도 당신에게 틀림없이 활력을 줄테니까요. jeshim@seoul.co.kr
  • 두 얼굴의 청춘 아이콘 로버트 패틴슨

    두 얼굴의 청춘 아이콘 로버트 패틴슨

    인기 시리즈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영화 데뷔작 삼아 잠깐 얼굴을 비쳤을 때만 해도 전 세계의 청춘 아이콘으로 급부상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인간 소녀를 사랑하게 된 매력적인 뱀파이어를 연기한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단숨에 톱스타가 된 로버트 패틴슨(24) 이야기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묘한 눈빛과 조각 같은 외모가 그의 매력.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의 뒤를 잇는 섹시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는 올해 멜로물 ‘리멤버 미’와 ‘트와일라잇’의 3편인 ‘이클립스’ 촬영을 끝내놓은 상태. 이어 매들린 스토의 감독 데뷔작인 서부극 ‘언바운드 캡티브스’와 모파상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벨 아미’에 캐스팅되는 등 상한가를 이어가고 있다. 액션 영웅으로의 변신 가능성도 있다. 샘 레이미 감독과 토비 맥과이어가 하차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 ‘스파이더맨’ 4편의 주인공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소문. 패틴슨이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뜨기 전에 출연했던 작품들이 잇달아 국내에서 개봉하고 있어 관심이다. ‘리틀 애쉬-달리가 사랑한 그림’과 ‘하우 투 비’이다. 패틴슨은 두 영화에서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과시하며 그저 얼굴만 잘난 벼락 스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리틀 애쉬’서 동성애 연기까지 지난 14일 개봉한 ‘리틀 애쉬-달리가 사랑한 그림’은 1920~30년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스페인이 배출한 최고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와 최고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 그리고 최고의 영화 감독 루이스 브뉘엘(1900~1983)이 나누는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패틴슨이 맡은 역할은 회화뿐만 아니라 영화, 오브제, 건축 등 20세기 예술에 혁신을 몰고온 초현실주의 작가 달리이다. 천재성이 번뜩이지만 수줍음이 많은 18세의 달리가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에 진학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특히 달리는 로르카와 서로의 재능을 이끌어내고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으며 깊은 교감을 나눈다. 이들은 우정을 뛰어넘어 사랑하는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파격적인 동성애 장면을 접하게 된다. 촬영 당시 20세를 갓 넘겼던 패틴슨은 자기애가 너무나 강한 나머지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고 광기마저 흘러나오는 달리의 내면을 맞춤옷을 입듯 소화해 낸다. 자신이 존경한다는 잭 니콜슨의 연기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원래 패틴슨은 로르카 역을 위한 오디션에 참가했지만, 폴 모리슨 감독 등 제작진을 끈질기게 설득해 달리 역을 따냈다고 한다. 보수적이고, 파시즘으로 물들어가던 기성 세대에 맞서 스페인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혈기 어린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달리의 작품과 로르카의 시가 영화 곳곳을 장식하는 것도 흥미를 북돋우는 부분. 달리와 브뉘엘이 함께 만든 초현실주의 걸작 단편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도 일부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제목인 ‘리틀 애쉬’는 달리의 초창기 그림 제목이다. 영화에서는 로르카가 이 그림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으로 나온다. 112분. 청소년 관람불가. ●제천영화제 매진사례 ‘하우 투 비’서는 루저 모습 패틴슨은 ‘트와일라잇’이 아니었다면 음악을 위해 연기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있는 배우다.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다섯 살 때부터 클래식 기타를 배웠다. 피아노와 기타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 외에도 트럼펫과 색소폰, 하모니카까지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와일라잇’에서 그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에 반하지 않았던 여성 팬은 없었을 듯. 28일 개봉하는 성장 영화 ‘하우 투 비’는 패틴슨의 음악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이다.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소개됐을 때 가장 빨리 매진 사례를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패틴슨이 ‘초킹 온 더 더스트’, ‘두잉 파인’ 등 2곡을 멋들어지게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그가 기타를 너무 잘치는 탓에 올리버 어빙 감독이 캐릭터 설정상 서툴게 연주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패틴슨이 연기하는 20대 청년 아트는 애정 결핍증 환자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과 동정을 바라지만 쉽지 않다. 때문에 언제나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느낀다. 싱어송라이터를 꿈꾸지만 좌절감의 연속이다. 좌충우돌 방황하던 끝에 얻은 해답은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을 멈추는 것. 패틴슨이 영화 말미에 부르는 노래는 바로 깨달음의 노래다.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낸 패틴슨은 2008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다른 작품에서 만날 수 없었던 소심하고 유치하고 구질구질한 패틴슨의 모습을 보는 재미는 덤이다. 85분. 12세 관람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2010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질문하는 소설, 경험하는 콜라주’-김중혁론

    고대 그리스의 부타데스(Butades of Sicyon)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의 기원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 여인이 연인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불빛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벽에 그린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옹기장이였던 여인의 아버지 부타데스가 딸의 그림을 본떠 빚은 점토 형상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대상-그림자-회화-조소’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속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 나아가 예술적 표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적 표현은 사적 욕망의 구체화라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고자 하면 할수록 그 대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퇴적 속에서 예술적 표현의 방식이 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시원(始原)의 욕망과 대상을 그저 희미한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적 영역(oikos)과 공적 영역(polis)의 경계가 깨지면서 발생한 것이 ‘사회’라는 아렌트의 지적대로라면, 이제 우리의 사회는 개인의 욕망조차 자아를 충족시키는 내밀함에서 벗어나 공적 담론의 장 속에서 공익적 측면을 수용하기를 요구한다. 역사의 진행을 개인 욕망의 발현 과정으로 본다면,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 속에서 욕망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가 중요시된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의 개인적 욕망은 때로 성적(性的)인 원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집단적 도덕성으로 재단되기도 한다. 결국, 계량화가 가능해지고 공적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것만이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으면서 순수하고 개인적인 욕망의 발현은 유아기적 망상으로 치부되기에 이른다. 더구나, 매스 미디어의 균질적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 다양한 욕망들은 서열화 속에서 재배치된다. 이제 욕망은 비교우위 없는 순수한 발현을 억압당한 채 잘못된 대상에 고착되거나 인터넷의 작은 화면 속에서 일쑤 신경질적으로 해소된다. 마치, 떠나고 없는 연인의 그림자를 향해 말없음을 타박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말이다. 욕망조차 계열화된 현실에서 소설 행위(쓰기/읽기)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있다. 다양한 욕망이 부딪치는 공간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소설이 이야기와 달리, 이전 시대의 경험들과 분리되어서 후대의 경험으로 확장되거나 조언을 포함하지 않는 고립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소설은 정보가 그랬듯이 상품으로서 자본주의적 유통의 과정으로 포획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소설행위의 의미 역시 정보가 소비되는 방식처럼 한 순간 안에서만 소비되고, 우리의 욕망은 자본주의적 만화경 속에 갇히고 만다. 이 글이 김중혁의 소설(‘펭귄뉴스’(2006), ‘악기들의 도서관’(2008). 두 권의 단편집을 제외한 작품으로는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창작과 비평, 2009년 봄), ‘C1+y=:[8]:’(문학과 사회, 2009년 여름), ‘유리의 도시’(현대문학, 2009년 8월), ‘1F/B1’(문학동네, 2009년 가을) 등이 있다. 단편집에서 작품을 인용할 때에는 작품의 제목과 면수만 밝히기로 한다.)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소설 안에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반복·중첩시켜 가며 소설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소설은 종국에 이르러 개인의 순수한 욕망을 만날 수 있도록 가벼워지고, 이 가벼움은 다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가로지른다. 김중혁의 이러한 작업은 부타데스 이후 멀어져 가고만 있는 개인의 욕망을 직접 대면케 하는 동시에 소설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여겨진다. 김중혁 소설의 근저에는 공통 취향을 가진 두 인물들의 반복과 변주가 배치되어 있다. 이 배치가 그의 소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소설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공통 취향의 공간은 독자들을 무리없이 공감하게 만든다. 이 두 명의 중심인물들은 때로 쉽게 의기투합하기도 하지만(‘무용지물 박물관’), 결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거나 협력의 지점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두 인물들은 만나지도 않거나(‘자동 피아노’), 아니면 아예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비닐광 시대’). 반면에 이럴 때조차 이들은 서로 여전히 “작고 가냘픈”(‘자동 피아노’, 29쪽)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데, 말하자면 두 인물들은 매개물을 통해 가까워진 두 개의 항이 아니라 매개물을 통해 반복되고 변주되는 하나의 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인물들은 ‘여성들의 서사적 비중이 축소된 남성적 유대관계’(신수정)나, ‘전형적인 남성 버디(buddy)소설의 면모’(심진경)로도 파악된다. 하지만 소설적 공간의 의미를 구축하는 이들의 역할에 주목하여 살펴본다면 성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우리는 다만 반복적 이형태(異形態)가 만들어내는 변화에 동참하게 될 뿐이다. 소설 속에서 상대자로 ‘나’와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영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만 나타나는 경우 이러한 변화는 더욱 두드러지는데, 고유명사를 부여받지 않은 대상은 독립적 역할보다는 ‘나-나’로의 반복과 변화를 이끈다. 가령, ‘나와 B’에서 ‘나’는 ‘B’와 음악으로 인해 ‘핵융합’을 한 것처럼 금방 친해진다. 하지만 실제 이 둘의 관계는 ‘B’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행위로 시작되고, 전개된다. 음반 가게 점원인 ‘나’가 음반을 훔치려던 ‘B’를 처음 만난 뒤, 몇 번의 이직을 겪는 ‘나’와 무명 기타리스트에서 주목받는 신인 기타리스트가 되는 ‘B’의 사이를 ‘하나로 합쳐’졌다고 보기에 둘 사이는 느슨하다. 음악이라는 공통 취향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B’는 ‘음반을 두 번 정도 듣고 난 다음엔 음반과 거의 똑같이 기타를 연주’(195쪽)하는 전문가이고, ‘나’는 심장에 무리가 가서 아예 전기기타를 배우기도 힘든 인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는 동영상을 보다가 내 습관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화면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그를 볼 때마다 왼쪽 엄지로 나머지 왼손 손가락들의 끝을 비비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듯 매끄러운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그런 행동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손가락 끝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아니면 굳은살 하나 박여 있지 않은 내 손가락 끝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중략…) 한 달 전 기타를 한 대 샀다.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다. (…중략…) 아직 내 손가락 끝은 너무 무르다. -‘나와 B’, 210~211쪽.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나’ 스스로의 재발견이다. ‘나’는 ‘B’와의 만남으로 인해 이전에는 억압되어 있던 자신 내면의 어떤 지점을 발견하고 다시 이를 통해 내면에 감추어졌던 순수한 욕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갑자기 음악(기타)을 위해 생업을 내팽개치거나 하는 등의 결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무른 손가락 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순간은 우리가 전망을 가지고 억압과 대결을 펼치든, 현실을 비틀어 냉소적 거리를 두든 오히려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적 억압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망이나 목표는 그 자체로 억압되고 조작된 욕망에 노출되어 뒤틀린 결과물이 될 위험성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결말이 보여주는 의미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리거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출발점과는 구별된다. 이제 우리는 조작된 욕망에서 벗어나 본래의 욕망, 즉 시원(始原)의 욕망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김중혁은 이러한 반복과 변주가 주는 새로운 의미의 발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가 자신의 작업에 붙이는 이름(제목)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첫 번째 소설집 ‘펭귄뉴스’에서 우리는 ‘무용지물/ 박물관’, ‘사백 미터/ 마라톤’이라는 제목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기 힘들 것 같은 두 단어가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면서 묘한 호기심과 낯섦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방식의 명명은 두 번째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더욱 늘어난다. ‘자동/피아노’, ‘악기들의/도서관’, ‘유리/방패’, ‘무방향/버스’(제목의 /부호는 인용자) 등이 그것이다. 지적한 제목들은 모두 이질적인 두 단어가 A+B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품을 읽은 뒤 우리는 소설의 내용이 A나 B 어느 한쪽과 관련된 이야기거나, A가 B(혹은 B가 A)를 특별한 방식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설이 전달하는 의미들은 사실, A∩B를 통해 파생되며 이를 통해 A나 B가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나고 그것들의 공통점에 기반하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A‘(또는 B’)가 무한대로 풀려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교집합적 운동이라고 새롭게 불러도 좋을 이와 같은 김중혁의 소설적 전략은, ‘반복(repetition)’과 ‘이접(離接.disjunction)’을 통해 모든 ‘토대’를 집요하게 해체하고자 했던 일련의 운동이 문학적 테두리 안에서 갖는 성과이다. ‘엇박자 D’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이 성과를 분명하게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세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고, 네 사람, 다섯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합창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합창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의 음이 맞질 않았다. 박자도 일치하지 않았다. (…중략…)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로의 음이 달랐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화음 같았다. (…중략…) 22명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유는, 아마도 엇박자 D의 리믹스 덕분일 것이다. 22명의 노랫소리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엇박자 D’, 280~281쪽. 공연기획자인 ‘나’가 20여년 만에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합창단 친구 ‘엇박자 D’를 만나 같이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그 공연에서 ‘나’ 몰래 친구가 준비한 앙코르 장면은 소설속의 ‘나’가 그랬듯 예기치 못한 감동을 준다. 공연을 기획한 ‘엇박자 D’는 합창단 시절, 자발적으로 단장까지 맡을 정도로 유일하게 열성적이었던 친구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의 박치이자 음치’(255쪽)여서 실제 공연 때는 선생님에게 립싱크만을 강요당한다. 그러나 ‘엇박자 D’는 결국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망친 장본인이 된다. 그 뒤 의도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던 ‘엇박자 D’는 전공으로 무성영화를 선택한다. 무성영화를 통해서, 영상과의 필연성에 얽매이지 않는 소리의 자유로움을 깨닫고 위에 언급한 장면을 연출하기까지의 소설적 과정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엇박자 D’의 의도를 알게 된다. 실상, 음치라는 것은 ‘자신이 알아낸 게 아니고 들어서 아는 것’이며 ‘평생 그렇게 세뇌’(270쪽) 당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의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된 것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억압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기준이 음치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억압이 작용하지 않는 시원의 욕망을 만남으로써 주체들이 자유롭게 해방되고 나아가 ‘서로의 소리’를 억압하지 않는 ‘화음’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김중혁이 보여주는 교집합적 운동의 힘이다. 교집합적 운동 속에서 억압되/하지 않는 욕망을 만날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교집합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기이다. 운동성을 상실한 모든 것은 결국 그 힘을 잃고 다시 계열화 속으로 수렴될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이러한 위험은 계시적인 교훈이나 전망으로 구체화되면서, 문학작품이 운동성을 상실한 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아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김중혁은 자신의 소설이 처할 수 있는 이 비극적 운명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여 표준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의 전략이 지속적 운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억압적 현실⇒구체적 전망의 필연성’으로 이어지는 고정적 틀 그 자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망이 다시 억압으로 작동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의 비트(beat)를 억압하기 위한 진압군과 이에 맞선 저항군이 전쟁 중인 현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각각 배경으로 삼은 ‘펭귄뉴스’와 ‘유리방패’처럼 비교적 억압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에서 이러한 의도는 더욱 잘 드러난다. 이는 억압의 체계에 포획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작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 읽힌다. ‘전쟁 중인 현실→무감각한 나→저항군인 그녀→그녀와의 우연한 만남→그녀를 따라 저항군이 되는 나’로 이어지는 ‘펭귄뉴스’의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다소 의외로 ‘그녀’의 죽음을 확인한다. 전쟁 중인 현실조차 ‘지루하고 재미없’(263쪽)는 ‘나’에게 ‘그녀’는 ‘모든 살갗이 곤두서’(274쪽)게 하는 유일한 자극이었기 때문에 그 의외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제 곁에 있던 그녀는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극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감상을 말해야 한다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야겠군요. 어쨌든 극히, 자연스럽게 그녀는 죽었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 ‘펭귄뉴스’, 357쪽. ‘비트’를 매개로 ‘나’와 ‘그녀’ 사이에서 이루어진 교집합적 상태는 필연적으로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지만, 이것 자체가 지속가능한 운동으로의 전환은 아니다. 교집합적 만남을 통해 변화된 주체는 다른 주체와 거리를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자유의 공간 즉, 운동성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 어디에도 ‘반납’할 수 없는 ‘정말 사적인 비트’(357쪽)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비트’는 ‘그녀’와 ‘나’만의 매개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엇박자 D’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쿵쾅’(358쪽)거릴 수 있는 운동으로 변환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지속적인 운동성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파리의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공원은 설계단계에서부터 문학·철학·영화 등의 다양한 비건축적 개념을 적극 끌어들인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통해 오히려 건축의 새로운 발전가능성을 촉발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공원은, 점·선·면의 세 체계를 따라 설계된 각각의 공간이 한 공간 안에서 중첩되고, 분열되고, 해체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어 있다. 설계의도에 따르면, 응집력 있는 구조들을 중첩시켰을 때 하나의 초응집적 거대구조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정될 수 없는 것, 즉 전체성에 반대하는 것이 생겨난다. 결국 이 공간은 반-맥락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실제 공원 내 기능들의 중첩은 고정된 시설물로서의 기능성과 편의성에서 벗어나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간을 탄생시킨다. 일상 언어학에서 말하는 관습적인 절차나 효과로서의 ‘맥락(context)’을 파괴하는 이 공간은 2000년대 우리 소설이 새롭게 만들어 낸 소설적 공간, 이른바 ‘무중력 공간’(이광호)과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소설들은 종래의 작품들에서 기피해 온 이질적인 소재나 인물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공간에 낯섦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소설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 자체가, 중력으로 작용하는 어떠한 억압적 기준 없이 자유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단절적인 대화나 전통적 서사 구성을 거부하는 듯한 문체, 현실과 이질감 없이 섞여 있는 환상적 비현실 또한 그 결과물이자 원동력임은 물론이다. 김중혁의 소설 역시 이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현실과 냉소적인 거리를 두거나 이질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현실들과 겹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는 변별성을 통해 보다 많은 욕망들을 해방시킨다. 따라서 비교적 전통 서사에 충실하게 진행되던 김중혁의 소설은 언제나 결말에 이르러 모든 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마음이 편안해’(‘자동피아노’, 35쪽)지는 경험을 안겨준다. 이때의 ‘가벼움’이 바로 단순한 현실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김중혁만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결과이다. 이 ‘거리두기’ 역시, 앞서 언급한 빌레트 공원에서 폴리(folie)라는 인상적인 개념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프랑스어로 광기, 무분별한 짓이나 말, 정열 등의 의미를 가진 폴리는 이 공원의 설계 단계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점 체계 속의 폴리는 실제 빨간색 철골 구조물들로 형상화되었는데 공원 내에서 쉽게 눈에 뜨이기 때문에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준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이 폴리는 전체 공간을 나누고 분리시키는 동시에 면과 선 체계의 폴리들과는 상호충돌하고 왜곡되어, 애초 설계자의 의도대로 공원전체가 탈통합적인 공간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기준점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모든 것들과의 반복과 중첩, 그리고 다시 그것과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M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M과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얘기를 했지만 그사이 M과 나는 어딘가를 지나온 것 같았다. 어떤 갈림길을 지나온 것 같았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 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유리방패’, 180쪽. 위의 장면 속 ‘나’와 ‘M’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지내면서 취업을 위한 면접시험조차 같이 치른다. 심지어 한 명만 뽑는 회사의 면접시험도 ‘막무가내’로 같이 치르는 이 둘은 전형적인 김중혁 소설의 인물들이다. 이들이 면접시험을 위해 준비했던 일종의 퍼포먼스가 우연히 인터넷 신문에 예술적 시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순식간에 이들은 면접관으로 불려다니는 유명인사가 된다. 서른 번의 입사시험을 치르는 동안 ‘한때 실패에 중독된 인간들’이었던 주인공들이 ‘실패중독자들을 위로해 주는 입장’(178쪽)이 된 것이다. ‘점수를 받는 사람’에서 ‘점수를 주는 사람’(176쪽)으로바뀌게 된 이 발랄한 치환은 현실의 체계를 뒤엎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적 서열구조의 확대·재생산 방식으로 작동하는 공개취업의 기준에 함몰되어온 인물들이 그 틀을 자신들의 힘으로 벗어난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본 경우보다 오히려 짧은 시간 내-‘스무 번째였는지 스물한 번째였는지의 면접관 일을 마치고 나올 때’(178쪽)-에 ‘피곤’을 느끼고 만다. 애초부터 이들의 ‘자리바꿈’은 사실 무분별하게 정보를 생산해 내는 매스미디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벤트’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변화가 억압이 작동하는 체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체계 안에 다시 포획되고 말았음을 느낀 순간, ‘나’는 ‘M’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교집합적 운동이 다시 체계 내에 갇히고 말 때, 김중혁의 ‘거리두기’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운동성을 확보한다. 교집합적 반복과 변주, 그리고 거리두기까지 포괄한 김중혁 소설의 운동성은 작가 특유의 소재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공간과 교직(交織)된다. ‘마니아적인 열정과 감수성’(박진), ‘사물들을 해방시키는 수집광’(김형중), ‘등장인물들의 마니아적 취향과 취미를 개성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물-예술’(심진경) 등으로 평가되는 김중혁의 사물에 대한 애착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 속 소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공업적’ 성격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등장한 ‘정보’의 유통은 후대로 전달되는 경험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따라서 사실이 아닌 이야기에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던 시대에서, 진실과 관련 없이 사건만 난무하는 시대로의 변모를 지적한 벤야민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시간적 확산이 가능한 정보만이 중요시되고, 전생애에 걸쳐 축적된 개인의 경험들이 획득하는 의미와 그 깊이가 외면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때, 수많은 경험들이 구전적인 방식으로 축적되어 있는 이야기를 벤야민은 수공업적 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의 특성을 빗대서 말한 ‘옹기그릇에 남아있는 손흔적’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가치가 아닌 시스템의 오류로 취급될 뿐이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김중혁은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는 동시에 새로운 경험들을 환기시키는 소재들을 사용한다. 마치 벤야민의 ‘이야기’처럼 그의 소재에는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 공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음에서 작가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먼저 살펴보자. “잠수함 설명하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제가 집에 있는 잠수함 모형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비틀스의 영화 ‘Yellow Submarine’에 등장했던 잠수함이에요. 청취자 여러분들이 이걸 직접 만져볼 수 있다면 좀더 이해가 쉬울 텐데 아쉽네요. 전체적인 모습은 입이 툭 튀어나온, 심술 맞은 물고기 같아요. 심술난 것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 한번 만져보세요. 잠수함 앞모습이 바로 그래요. 그리고 몸통은 비늘을 다 긁어낸 물고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미끈하죠. 창문은 왼쪽에 여덟 개, 오른쪽에도 여덟 개가 있어요. 이 창문을 통해서 바닷속 풍경을 보는 거죠. 그리고 꼬리 쪽에는 방향을 조종하는 지느러미 같은 게 달려 있어요. 지느러미 아래쪽에는 잠수함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프로펠러가 두 개 달려 있어요. 프로펠러는 바람개비를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위쪽에는 네 개의 잠망경이 올라와 있는데요, 잠망경은 잠수함이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도 바깥을 볼 수 있도록 기역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굽힐 수 있게 만든 스트로 아세요? 그걸 잠망경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음, 그리고…….” (…중략…) “자, 이제 우리가 잠수함이 한번 돼 볼까요? 제가 자주 하는 놀이인데요. 욕조에 물을 받은 다음 스트로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에겐 그 스트로가 잠망경인 셈입니다.” -‘무용지물 박물관’, 33~34쪽. 대상과 직접적 연관없는 “물고기, 바람개비, 스트로” 등을 동원하여 잠수함을 설명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감각과 경험들 역시 대상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우리에게 ‘잠수함’을 경험적 실체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대상을 보편화시키는 정의(定義)는 ‘무용지물’이 되고, 나아가 감각 주체가 스스로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방법은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과 달리 “통조림”처럼 압축되지 않고 수많은 감각과 경험들이 중첩되면서 위의 긴 인용문에서처럼 필연적으로 비경제적이 된다. 김중혁이 선택한 소재들의 수공업적 성격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즉, 계열화된 체계 안에서 박제된 상태의 사물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는 사물이 바로 작가의 탐구 대상이다. 먼저,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지도가 그것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이 지도는 에스키모들이 ‘기억과 소리’로 만들고 촉각을 동원하여 ‘상상하는 지도’이다. 일반적인 ‘지도’의 제작과 활용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의 반복적인 경험 안에서 유용한 이 지도는 그 자체로 수공업적 소재라 할 수 있다. 이 지도로 인해 ‘나’는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78쪽)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다. 사물에 축적된 수많은 경험들이 ‘나’와 중첩되어 나만의 경험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사물 역시 갇혀있던 가치판단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이와 같은 탐구는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심화되어 나타난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109쪽)는 생각이 든 ‘나’가 우여곡절 끝에 취직하게 된 악기점에서 만든 이 ‘도서관’은 연주가 아니라 ‘그냥 악기 소리만’ 있는 곳이다. 악기는 애초에 인류가 감정표현과 전달의 도구인 신체를 보충하는 보조수단이었다. 여기에 악기를 사용해온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도구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악기가 분류되고 체계화되면서 점점 경험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전문연주자를 필요로 하기에 이른다. 체계 내로 편입되지 않은 개별적 경험들이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차단당한 것이다. 사실상 처음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시되기 직전까지도 사물들은 오직 사용자들의 경험과 경험사이에서만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주의적 체제의 강제성을 보편타당성으로 받아들여 사물들을 분류하고 서열화해 왔던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적 질서로 재편된 박물관 안에서 사물들은 더 이상의 경험을 용납하지 않은 채 개별성을 상실하고, 인간마저 전시물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김중혁의 수공업적 사물에 대한 탐구는 이와 같은 운명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박물관’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체계에서 소외된 모든 것들을 ‘악기도서관’으로 이끈다. 여기서 우리는 ‘긁거나 할퀴거나 두드리거나 뜯거나 쓰다듬거나 꼬집으면서’(127쪽) 억압되/하지 않는 개별적 경험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않냐? 그보다 더 처음으로, 더 처음” -‘유리방패’, 178~179쪽(인용자 재구성). 시원의 욕망을 꿈꾼다는 것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전도되고 억압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기억을 통해 더듬어 가는 ‘처음’은 언제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계하는 데리다는 기원을 아예 결정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부타데스의 딸이 기억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던 순간부터 실제 대상은 무시될 수밖에 없고, 차라리 현존(presence)과 부재 사이의 ‘놀이’ 그 자체가 의미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자본주의는 모든 차이의 진폭과 오류마저 자신의 안으로 포획하는 강력한 보편타당성을 지향하는 체계이다.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이 자체 내의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적 처방만이 유효하게 거론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김중혁의 소설은 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모든 욕망들을 중첩시키면서 멈추지 않고 차이들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는 그 전략으로 모든 경험과 욕망들의 ‘흔적(trace)’이 새겨진 사물을 사용한다. ‘자신만의 생각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괴물에 가까’운 ‘타자기’(‘회색괴물’), 그 어떤 외부조건에도 얽매이지 않고 연주되는 순간마다 ‘자신의 몸을 통째로’ 빌려주는 ‘투명’한 ‘피아노’(‘자동피아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이것이 다시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되는 작업을 하는 디제이들의 ‘비닐레코드’(‘비닐광시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사물들이 만들어 내는 차이들이 결국 무한대의 욕망들에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통해 우리들은 ‘처음’으로 이끌린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최근작인 ‘C1+y=:[8]:’에서 ‘보드빈터’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다. 정글의 특성을 도시에 연결시켜 보다 쾌적한 도심을 만들고자 하는 도시 연구가 ‘나’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도심을 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 공간은 목숨을 걸고 정글을 탐사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이는 목적지로 충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도심 속 길들의 일부분이며, 수많은 익명의 스케이트 보더들이 ‘단 한 번도 신호등을 만나’거나,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도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는 길의 연결일 뿐이다. 이 ‘길’이야말로 도시가 생성되기 이전 개인의 욕망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던 ‘첫 길’이며, 그 ‘처음’은 억압 자체가 무화되고 인류전체의 경험과 개인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원의 욕망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 길 위로 부지런하게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는 작가의 행보에 시선을 고정시킨 이유는 그의 소설행위가 하나의 답변이 아니라 ‘처음’을 향한 지속적인 질문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끝>
  • 강원도 ‘겨울을 팝니다’

    강원도 ‘겨울을 팝니다’

    “강원도 겨울을 팝니다.” 강원도 지자체마다 겨울축제 준비와 홍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해마다 100만명 이상 찾는 화천 산천어축제는 지난 5일부터 화천읍 중앙로에 선등(仙燈) 거리를 조성, 1만 7000개의 산천어등(燈)을 밝혔다. 조명을 보며 소원을 비는 이벤트 점등식에만 6000여명의 관광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21개의 얼음조각과 형형색색의 등을 조화시킨 빙등광장도 함께 문을 열었다. 화천군은 지난달 24일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산천어 맨손잡기, 산천어 시식회 등 축제 홍보행사를 가졌다. 새해 1월9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축제 동안 얼음낚시와 아이스·눈썰매 열차를 비롯해 다양한 눈·얼음 관련 이벤트를 마련한다. 정갑철 화천군수는 “예년보다 알차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한 겨울 축제 준비에 나설 계획이다.”며 “새해에는 동남아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행정력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22일 평창군 진부면 오대천변에서는 송어축제 막이 올랐다. 새해 1월 말까지 평창지역 특산물인 송어를 주제로 다양한 요리와 놀이행사가 펼쳐진다. 대관령 일대에서는 새해 1월16일부터 눈꽃축제가 열린다. 눈·얼음 레포츠뿐만 아니라 팽이치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가 진행된다. 인제군에서는 새해 1월28일부터 소양호 상류 부평리 선착장 일대에서 빙어축제를 연다. 팔딱팔딱 뛰는 빙어를 잡아 고추장에 찍어 먹고, 얼음축구를 펼치는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이어진다. 내설악의 추위 속에서 익어 가는 황태를 주제로 인제군 용대리 황태마을에서는 황태축제가 열린다. 바다와 인접한 고성군 거진항 일대에서는 명태와 겨울바다축제가, 태백산 일대에는 눈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동해안 일대에서는 해맞이행사가 펼쳐진다. 강원 동해안 일대에서만 새해 첫날 100만명 이상이 찾아 해맞이를 즐긴다. 강릉시는 이날 해맞이 명소인 정동진을 비롯한 경포·주문진 등 7곳에서 불꽃놀이와 떡국나누기 행사를 연다. 동해 망상해수욕장, 속초해수욕장, 낙산해수욕장, 고성 통일전망대 등에서는 새해 첫날 희망 연 날리기와 소원지 쓰기, 통일염원 소망풍선 날리기 등 행사를 갖는다. 최명희 강릉시장은 “새해 해맞이 행사는 지역마다 개성 있는 이벤트로 관광객을 맞겠다.”고 말했다. 화천·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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