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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인사이트] ‘리틀 차베스’ 마두로는 왜 차베스가 되지 못했나

    [글로벌 인사이트] ‘리틀 차베스’ 마두로는 왜 차베스가 되지 못했나

    세기의 장례식이었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장례식이 열린 2013년 3월 8일 수도 카라카스 군사학교 대강당. 생전 차베스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밴드가 연주하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비롯한 중남미 30여개국 정상들은 베네수엘라 국기로 덮인 차베스 전 대통령의 관 옆에 서서 경의를 표했다. 식장 밖 조문 행렬은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다. 차베스가 즐겨 입던 붉은 셔츠를 입은 시민들은 그의 마지막 얼굴을 보기 위해 10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오열했다. 학교는 수업을 멈췄고 상가도 문을 닫았다.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은 “사람들은 마치 아비 잃은 아이들처럼 울고 있었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광경이었다”고 말했다. 나라 밖에서는 차베스가 포퓰리즘 정책을 펼친 독재자인지, 사회주의 혁명가인지에 대해 평가하는 데 관심이 더 많았지만 적어도 베네수엘라 국민이라면 이날 ‘남미 빈민의 영웅’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인구 4분의3 못 먹어서 8.7㎏씩 줄어 2017년 4월, 4년 전 차베스의 죽음에 흐느껴 울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차베스가 직접 지목한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이번에는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그사이 베네수엘라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인구 약 3000만명 가운데 4분의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식량 부족으로 평균 8.7㎏의 체중을 잃었고, 올해 경제성장률은 2013년에 비해 23%나 줄어들 전망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차베스와 친구 사이였던 미국의 좌파 지식인 놈 촘스키마저도 “현재 베네수엘라는 재앙적 상황에 빠져 있으며 마두로 대통령의 사회주의 정책은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참다못한 시민들은 조국을 떠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외국에 난민 망명을 신청한 베네수엘라 국민이 5만 2000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2만 7000여명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베네수엘라는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리틀 차베스’로 불렸던 마두로 대통령은 왜 차베스가 되지 못했을까. ●차베스 석유 수출 이익 국민과 나눠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베네수엘라 경제도 대부분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수출의 96%가 석유이며, 이 돈은 정부 예산과 각종 소비재를 구입하는 데 쓰인다. 그러나 산유국임에도 과거 베네수엘라는 기득권이 석유로부터 얻는 수입을 독점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빈곤층일 정도로 사회적 모순이 심했다. 군인이었던 차베스는 1992년 한 차례 쿠데타에 실패한 이후 1998년 좌파세력을 결집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차베스는 보수세력이 장악한 의회를 무마시키기 위해 이듬해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제정하는 의회인 제헌의회 구성을 승인받았다. 좌파세력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제헌의회를 마련한 차베스 정부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사회주의 조항을 헌법에 명시하고 기존 친미 보수세력이 독점하고 있었던 자국 석유산업부터 국유화했다. 차베스 정부는 국영석유공사(PDVSA)에서 나오는 재원으로 무상복지, 일자리정책 등 각종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실현하며 석유수입을 빈민층과 나눴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이 크게 줄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3년 62.1%였던 빈곤율이 2007년 33.6%로 줄었고 2011년 31.9%로 안정화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도 2003년 3482달러(약 394만원)에서 2011년 1만 2000달러로 증가했다. 차베스는 남미 좌파세력의 리더로, 베네수엘라 서민들에게는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201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차베스는 죽기 전 마지막 공개석상에서 “만약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대선을 다시 치러야 할 경우 니콜라스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달라”며 마두로 당시 부통령을 후계자로 지목했고, 국민은 차베스의 유지를 받들어 그해 4월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세계 경제 무시하고 ‘차베스주의’ 고수 강성 차베스주의자인 마두로 대통령은 전임 차베스의 뜻을 이어 분배정책을 밀고 나갔다. 그러나 상황은 예전 같지 않았다. 가장 큰 난관은 기름값이었다. 차베스 생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던 유가는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등으로 2014년 4월 배럴당 30달러까지 폭락했다. 국가 재정의 절반을 차지하는 석유 수입이 줄어들자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식량 수입은 2013년 대비 70%나 감소했으며 국민 5분의4는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고유가를 믿고 오일 머니로 생산시설이나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정책을 고수한 차베스 정부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화폐 볼리바르의 가치도 크게 하락했다. 낮아진 유가에 공공부문이 방대해지면서 국가 부담이 심각해졌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고 결국 국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결과 막대한 화폐를 찍어냈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뒤따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이 720%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베네수엘라의 외환보유액은 100억 달러(약 11조 2660억원) 미만으로 떨어져 1995년 이후 최저액을 기록했다고 CNN머니는 전했다. 생존 위기에 내몰린 시민들은 2015년 12월 실시된 총선에서 야권 연합인 민주연합회의(MUD)에 과반 의석을 주었다. 차베스 집권 이후 17년 만에 여당이 패배한 것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전임 차베스의 방식대로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 지난달 8일 제헌의회가 국가 최고 권력기관임을 선포하면서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으나 독재 논란만 불러일으켰다. ●조력자 마두로, 리더십 없이 남 탓만 전문가들은 기름값 외에 마두로 대통령의 카리스마 없는 리더십도 베네수엘라의 분열과 혼란을 가져오는 데 한몫했다고 지적한다. 베네수엘라 사회학자 넬리 아레나스는 “포퓰리즘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체제에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데, 마두로는 이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버스 운전사 출신으로 노조 지도자 시절 차베스와 만나 국회의원, 국회의장, 외무장관에 대통령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리더보다는 조력자에 가까웠다. 마두로 대통령이 차베스로부터 신뢰와 애정을 받은 것도 ‘말하기보다는 청취하는 사람’으로 차베스에게 순종하고, 그의 목소리를 경청했기 때문이었다. 한 여당 운동가는 마두로가 후계자로 지명됐을 때 “차베스가 선택한 사람이 마두로라고 했을때 나는 엄청나게 울었다. 우리를 왜 이렇게 어려운 시험에 들게 하는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스로 “나는 차베스와 비교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마두로가 차베스가 되기를 희망할 수 있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고백하며 권력을 이양받은 마두로 대통령은 실제로 집권 기간 차베스 우상화에 집중했고, 친미 세력 및 야권을 적으로 돌리는 이분법적 정치 담론으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려 했다. 마두로가 대통령이 된 후 유가가 급락하며 민생이 파탄 났고, 차베스주의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떨어졌지만 마두로 정부는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부자들 탓으로 돌리기에만 급급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하락하고 있는 세계 경제 상황과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마두로 대통령의 서툰 국가 경영이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몰락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광장’의 노숙인, 역사를 기억하다

    ‘광장’의 노숙인, 역사를 기억하다

    “광장에 갔다 왔어요.”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연출한 연극 ‘노숙의 시’는 대뜸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겨울과 봄, 우리 기억 속에 뜨겁게 자리잡은 바로 그 ‘광장’이다.‘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그는 에두르지 않고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블랙리스트 파동을 겪으며 영욕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최소한의 연극성을 살려 쏟아붓겠다’고 작심했다. 이 연출가는 이번 작품을 “시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시민극”이라고 칭했다. 큰 변화의 물살을 견뎌 내고 새로운 길목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다 같이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다. ‘노숙의 시’는 미국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 ‘동물원 이야기’에서 ‘벤치에서 만난 두 남자의 이야기’라는 큰 틀만 빌려 오고 내용은 지금, 이곳의 이야기로 완전히 고쳐 쓴 것이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벤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제리’와 ‘피터’는 도심 외곽의 한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노숙자 ‘무명씨’와 ‘김씨’로 모습을 바꿨다. 해직 기자 출신의 무명씨는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독일로 망명한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갔다가 아버지를 여읜 뒤 다시 돌아왔지만 1987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실망과 환멸에 또다시 나라를 떠난다. 사람들 사이에서 지껄이고 싶어서 돌아온 그는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매일 저녁 사람들에게 커피를 나눠준다. 그에 반해 실직한 40대 가장 김씨는 벤치를 유일한 삶의 터전으로 삼은 채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돼 있다. 그는 광장에서 벌어진 일을 휴대전화로 들여다보며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는 소시민이다. 각각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세대의 아주 긴 대화가 작품의 전체를 이룬다. 주로 ‘광장’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1장은 직설적으로 표현된다. “저녁 5시쯤이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어둠이 깃들면 하나둘 촛불이 밝혀지면서 축제가 시작되는 거야. (…) 사람들이 모두 광장으로 나와 스스로 역사가 되는 거야”라는 대사가 대표적이다. 2장에서 무명씨가 김씨에게 들려준 ‘하숙집 여주인’과 ‘검둥개’ 이야기는 보다 은유적이다. 하숙집 사람들 위에 봉건영주처럼 군림하던 여주인과 그녀가 키우던 악마 같은 개에 대한 묘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적폐 세력을 떠올리게 한다. 더 나아가 그 검둥개가 “바로 내 그림자”였다고 뒤늦게 깨달은 무명씨의 성찰은 사회 불의에 비겁하게 눈감는 소시민성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에 다름 아니다. 특히 3장에서 등장하는 ‘북쪽 숲’은 주제 의식이 응축된 장소다. 검둥개의 흔적을 씻어 줄 치유의 장소인 숲은 곧 통일의 다른 이름이자 이분법적인 대립이 없는 통합의 시대를 의미한다. 하숙집 여주인과 검둥개, 북쪽 숲이라는 원작 키워드가 지닌 의미에 우리나라의 역사성을 부여한 이 연출가의 시대적 통찰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특별한 무대 전환 없이 긴 호흡의 대사만으로 이뤄진 2인극이다. 자칫 지루하고 난해할 수 있는 연극의 묘미를 살리는 것은 배우 명계남과 오동식의 ‘명품 연기’다. 특히 이 연출가가 ‘명계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역할’, ‘연기를 하지만 연기를 뛰어넘는 진실성, 실재성을 보여 주는 배우’라고 칭송할 정도로 명계남은 무명씨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방대한 대사량에도 흔들림 없는 그의 연기는 몰입도를 높인다. 무명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론 익살스럽게, 때론 격렬한 몸짓으로 반응하는 김씨 역을 맡은 오동식의 섬세한 감정 연기도 극에 힘을 보탠다.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 3만원. (02)763-1268.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진태 “망명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文정부 비판

    김진태 “망명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文정부 비판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망명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김 의원은 29일 국회 법사위의 이유정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가 어떤 활동을 한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닌데 그렇게 많은 정치적인 활동을 했던 분을 굳이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임명권자의 사고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임명권자인 문 대통령을 지적했다. 그는 “41%로 당선된 대통령이 남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한다. ‘인사청문회 결과 보고서가 채택되든 말든 마이웨이 하겠다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지금 지지도가 80 몇 퍼센트라고요? 저는 그거 믿을 수도 없지만, 맨날 말로만 화합하고 같이 가자고 하면서 이런 식으로 일방통행을 하면…”이라며 “숨 좀 쉬고 삽시다. 숨 좀”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아까 보니까 이 후보자가 기고문에 좋은 글들 많이 썼던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며 ‘망명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다’라는 문구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바로 제 심정이라고 마지막 총평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법사위는 29일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은 무산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佛 등 EU 4개국, 사전 심사받은 난민만 망명 허용

    佛 등 EU 4개국, 사전 심사받은 난민만 망명 허용

    유럽연합(EU) 주요 4개국과 아프리카 3개국이 아프리카에서 사전 심사를 통과한 난민만 유럽 망명을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조치가 서유럽으로의 불법 이민자 수 감소, 테러리스트 유입 차단, 밀입국 조직 와해 등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니제르, 차드, 리비아 정상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회담을 갖고 새 난민정책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7개국의 공동선언문에 따르면 난민이 몰리는 니제르와 차드에서 예비 망명제도가 실시된다. 유엔난민기구의 자격을 충족하는 난민을 선별해 니제르와 차드 당국에 등록하고 이들의 합법적인 유럽 이주·정착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유럽 4개국은 불법 이민을 단속하는 리비아 해안경비대를 지원하고 니제르·차드의 국경 통제를 돕기로 했다. 예산 규모, 시행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프리카 난민들의 출발지인 리비아 등지에서 좀더 효율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면서 “내전, 학대를 피해 이주하려는 난민과 그렇지 않은 난민들을 기착지에서 선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번 합의는 불법적인 난민 유입을 막으려는 것”이라면서 “합법적인 난민 신청을 수용한다는 독일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난민들의 정착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불법 이주를 종식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은 고질적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리비아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한 난민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드리스 데비 차드 대통령은 “2015년 이후 리비아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150만명이 유럽으로 이주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리는 최종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하마두 이수푸 니제르 대통령은 “가난이 사람들을 유럽으로 향하게 하고, 인신매매범으로 내몬다”면서 “이들이 범죄행위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농업, 상업과 같은 대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난민구호 단체 관계자는 이날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국가들은 불법과 합법 난민을 나눈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고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중동·아프리카 난민의 폭발적 증가는 서유럽에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지중해를 통해 유럽에 들어간 중동·아프리카 난민은 11만 4000명이다. 2400명은 지중해를 건너다가 목숨을 잃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잉락 친나왓 전 태국 총리 두바이 체류… 英 망명 추진

    잉락 친나왓 전 태국 총리 두바이 체류… 英 망명 추진

    실형이 예상되는 재판을 앞두고 해외로 도피한 잉락 친나왓(50) 전 태국 총리가 현재 두바이에 체류 중이며 곧 영국으로 건너가 망명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AFP통신 등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27일 전했다.치안 관련 조직에 몸담은 이 소식통은 “잉락이 태국에서 개인 비행기를 이용해 싱가포르를 거쳐 두바이로 갔다”면서 “두바이는 친나왓 가문의 가장인 탁신 전 총리의 활동 근거지”라고 밝혔다. 잉락은 현재 오빠인 탁신 전 총리와 함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통은 “탁신은 여동생의 탈출을 오랫동안 준비했으며 동생이 단 하루라도 감옥에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잉락의 최종 목적지는 두바이가 아니라 영국이며 그곳에서 망명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국에 있는 잉락의 외아들도 조만간 영국으로 건너갈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소식통은 “잉락은 탁신이 주택을 소유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영국에 머무르겠지만, 정치적 망명자 지위를 얻으려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방콕포스트는 전했다. 잉락은 총리 재임 중인 2011∼2014년 농가 소득보전을 위해 시장가보다 50%가량 높은 가격에 쌀을 수매하는 정책으로 농촌 지역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군부가 잉락을 쌀 수매 관련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해 5년간 정치 활동을 금지했고, 검찰은 정부의 재정손실과 부정부패를 방치했다며 잉락을 법정에 세웠다. 민사소송에서 350억 바트(약 1조 1700억원)의 벌금을 받고 재산까지 몰수당한 잉락은 지난 25일 형사소송 판결을 앞두고 종적을 감췄다. 태국 대법원은 잉락에 대한 형사소송 선고 공판을 다음달 27일 속개할 예정이며, 잉락이 출석하지 않더라도 궐석재판 형태로 판결문을 낭독할 예정이다. 치안당국의 감시를 받아 온 잉락이 태국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잉락이 군부의 의도적 묵인하에 도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으나 군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전쟁 발발시 김정은 중국으로 비밀 탈출 계획···리설주 따로”

    “전쟁 발발시 김정은 중국으로 비밀 탈출 계획···리설주 따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미국의 공격 등 전쟁이 발생할 경우 중국으로 비밀리에 도주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영국 매체 익스프레스는 20일(현지시간) 인터넷판에서 이같이 보도했다. 지난해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이 이같은 정보를 영국의 비밀정보부 MI5,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에 전달했다는 것이다.이 매체에 따르면 김정은은 중국으로 도주할 때 김락겸 북한 전략군사령관과 김정식 군수공업부 부부장, 리설주와 동행한다. 김락겸 사령관은 ‘괌 포위사격’ 방안을 발표한 인물이고, 김정식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리설주는 김정은의 부인이다. 김정은의 구체적인 ‘중국 탈출’ 방법과 관련해서도 매체는 연료를 가득 채운 전용기가 그의 별장 인근에 있는 5개의 활주로를 통해 이륙할 것이라고 전했다. 비행기는 항상 연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소형 비행기다. 김정은이 중국으로 탈출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김락겸 사령관과 같은 비행기에 타게 된다.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는 김정식과 함께 다른 비행기에 탑승해 북한을 빠져나간다는 시나리오다.김정은은 중국으로 탈출한 후에도 압록강과 인접한 중국의 은신처에서 북한군의 작전을 지휘하게 될 것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핀란드·러시아서도 흉기 공격… 본거지 잃은 IS, 유럽 노렸나

    핀란드서 모로코 출신 10대 난동, 2명 사망…스페인 테러 연관 조사 러 시베리아서도 20대 칼 휘둘러…IS “우리 소행” 경찰 “조사 중” 스페인 수사 당국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발생한 연쇄 테러 공격 용의자를 찾기 위해 대대적 수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핀란드와 러시아에서도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공격이 발생해 유럽이 주말 내내 혼돈에 휩싸였다. 특히 그동안 영국, 프랑스 등을 노린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이제 유럽 전역이 대상인 연쇄 소프트 타깃 테러를 기획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19일 오전 시베리아 한티만시스크 자치구의 수르구트에서 한 남성이 갑자기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러 7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범인은 23세 현지 청년으로 긴급 출동한 경찰에 저항하다 사살됐다. IS는 흉기 공격 이후 약 5시간 뒤 선전매체 아마크통신을 통해 배후를 자처했다. 하지만 러시아 경찰은 테러로 단정하지 않고 범인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 왔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18일에는 핀란드 남부 투르쿠 도심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용의자는 지난해 망명자 신분으로 핀란드에 입국한 모로코 국적의 18세 청년으로 경찰이 쏜 총에 다리를 맞고 체포됐다. 사상자 10명 가운데 사망자 2명과 부상자 6명 등 8명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이 주 공격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핀란드 보안경찰국은 19일 “용의자가 진술을 거부하고 있지만 IS가 이런 방식의 공격을 선동해 왔다는 점에서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 흉기 난동이 정치적 목적을 띤 테러로 확인되면 핀란드에서는 첫 테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21일 용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AP통신은 핀란드 보안경찰국을 인용해 유로폴에서 스페인 연쇄 차량 돌진 테러와 핀란드 투르쿠에서 일어난 흉기 난동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7일 밤과 18일 새벽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캄브릴스에서 일어난 차량 돌진 테러에는 다수의 모로코 청년이 연루돼 있다. 스페인 경찰은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에서 차를 운전했다 달아난 주범이 모로코인인 유네스 아부야쿱(22)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가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도주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프랑스와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스페인 차량 돌진 테러는 애초 자생적 테러리스트였던 ‘외로운 늑대’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됐지만 범인들이 폭탄 공격을 준비한 정황이 확인되고 IS의 성명까지 나오면서 조직적으로 계획된 공격임이 드러났다. 14명의 희생자를 낸 스페인 차량 돌진 테러에 최소 12명이 가담했을 것으로 보이나 아부야쿱을 제외하면 사살되거나 검거됐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당초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작품인 사그리다 파밀리아(성 가족) 성당을 폭발물을 실은 차량으로 파괴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6일 폭발물을 만들다 터지는 사고가 나면서 차량 테러로 바꿨다는 것이다. IS는 지난해부터 선전매체를 통해 추종자들에게 흉기·차량 공격을 반복적으로 선동해 왔다. 테러에서 한발 비켜서 있던 스페인과 핀란드 등에서 잇따라 테러 공격이 벌어지면서 이라크와 시리아 등 본거지에서 입지가 축소된 IS가 유럽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테러에 모로코 출신이 다소 포함된 것에 대해 IS가 유럽과 가까운 북아프리카를 거점 삼아 테러를 획책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테러 공포는 아직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당하지 않은 국가로도 확산되고 있다. 이탈리아 내무부는 이날 테러리즘에 동조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모로코인 2명과 시리아인 1명을 본국으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길섶에서] 괌 위협 유감/황성기 논설위원

    미국령 괌에 대한 북한의 ‘포위 사격’ 협박을 놓고 전문가들의 내기가 한창이다. 중국 베이징의 지인은 “90%의 확률로 쏜다”고 장담한다. 일본에서는 “21~23일 사이에 쏠 것”이라는 정보가 돌아다닌다. 국내에서도 “쏜다”, “못(안) 쏜다”가 엇갈린다. 지난해 망명한 태영호 주영국 북한 공사 같은 이는 후자 쪽이라고 한다. 굳이 건다면 ‘못 쏜다’이다. 명운을 걸고 개발한 미사일이 미국의 미사일 요격망에 걸려 떨어진다면 몽땅 폐기해야 한다. 그런 리스크를 알고도 쏜다면 바보일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주역 고노 요헤이(80) 전 중의원 의장의 일본 가나가와신문 15일 자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그가 국회의원이 되어 처음 나간 외국이 괌이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괌에서 사망한 일본군 유골의 수습 상황 조사가 목적이었는데 해골로 가득한 참상, 심지어 굶어 죽은 유해도 목격했다. 고노는 말한다. “이런 비참하고 어리석은 일은 절대로 안 된다고 다짐했다. 정치는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모든 걸 걸어서 막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 그것이 정치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임청각 역사…민주당 이용득 의원·배우 이서진 관계도 재조명

    임청각 역사…민주당 이용득 의원·배우 이서진 관계도 재조명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북 안동 임청각을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 거듭 극찬하면서 임청각(보물 182호)의 역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안동시 법흥동 법흥교 옆에 있는 임청각은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과 형조좌랑을 역임한 이중공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 건축한 조선 중기 별당형 정자다. 500년의 역사보다 더욱 주목받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이 곳은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생가이며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이 중에는 석주 선생의 두 동생과 아들, 손자, 조카 등이 있다. 석주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식솔들을 이끌고 임청각을 떠나 기약 없는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국내에서 의병투쟁과 애국계몽운동을 해봤지만, 그 방식으로는 도저히 일제를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학식이 풍부하고 재산이 많은 석주 선생이었지만 부귀영화를 걷어차고 국난 극복의 선봉에 섰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이고 99칸짜리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일제는 독립운동 성지나 다름없는 임청각의 정기를 끊으려고 마당 한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 칸을 뜯어내 오늘의 어색한 모습을 갖게 됐다. 선생이 서간도에서 독립단체 통합 노력에 주력하다가 1932년 유명을 달리하자 가문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1907∼1997)여사 슬하 7남매 중 장남은 일본강점기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둘째, 셋째, 넷째는 실종되거나 사고로 숨지는 등 대를 잇는데도 상당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허은 여사는 훗날 회고록에서 “(나라에)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남 앞에 비굴함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도 선대의 긍지가 그들 핏속에 자존심으로 살아 있구나 싶다”고 했다.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은 임청각의 소유주였던 독립지사 이상룡 선생의 후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의원은 경북 안동출신으로 한국상업은행 노조위원장과 전국금융산업노조 위원장, 한국노총 위원장을 역임한 노동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이다. 이용득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항일 독립운동의 산실과도 같은 공간인 임청각은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신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며, 저의 종갓집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매년 현충일이 있는 주 토요일에 온 가족이 현충원에 모여 (이상룡 선생에 대한) 추모와 헌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면서 “(문 대통령의) 방문을 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방문에 이어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임청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주신데 대해 석주 선생의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나라를 되찾지 못하면 가문도 의미가 없다’며 아흔아홉칸 가택을 팔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조상님들의 정신을 본받아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임청각 등 전 재산을 처분한 이후 이상룡 선생 후손들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일제강점기 탄압은 물론 광복 이후엔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빨갱이로 몰리기도 했다. 이로인해 후손들은 거리로 내몰리거나 고아원에 가는 등 뿔뿔히 흩어졌다. 임청각은 광복 뒤 가문의 노력으로 되찾았고 2002년 국가에 헌납했다. 이를 주도한 것이 서울은행장과 제일은행장 등을 지내고 2001년 타계한 원로 금융인이자 고성 이씨 탑동파 종손이었던 고(故) 이보형 선생이다. 이보형의 친손자가 바로 배우 이서진(탑동파 16대손)으로 알려졌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임정 초대 국무령’ 이상룡 본가… 일제가 50칸 뜯고 철길 만들어

    ‘임정 초대 국무령’ 이상룡 본가… 일제가 50칸 뜯고 철길 만들어

    독립운동가 9명 낸 99칸 가옥 文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 李총리도 임청각 복원 지원 의사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북 안동 임청각(臨淸閣·보물 182호)을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극찬하면서 이 건축물이 주목받고 있다. 안동시 법흥동 법흥교 옆에 있는 임청각은 상하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의 본가로 99칸 규모다.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1368~1430)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과 형조좌랑을 역임한 이중공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에 지었다. 대청의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로 알려졌다. 임청각은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선생의 두 동생과 아들, 손자, 조카 등도 독립운동을 했다. 석주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식솔을 이끌고 만주 망명길에 올라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학식이 풍부하고 재산이 많은 석주 선생이었지만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국난 극복의 선봉에 섰던 것이다. 선생은 이 과정에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일제는 독립운동 성지나 다름없는 임청각의 정기를 끊기 위해 마당 복판으로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칸을 뜯어냈다. 선생이 서간도에서 독립단체 통합에 주력하다가 1932년 유명을 달리하자 가문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선생의 손부인 허은(1907~1997) 여사 슬하 7남매 중 장남은 일제강점기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둘째, 셋째, 넷째는 실종되거나 사고로 숨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임청각을 방문, “안동이나 유교라고 하면 보수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안동 지역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했다”며 “(이들은) 혁신 유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10일 임청각을 찾아 “대통령께 경북으로 휴가를 간다고 보고드렸더니 ‘안동으로 가 보라’고 말씀하셨다”며 “문 대통령이 의원 시절이던 지난해 임청각을 찾아 복원 등과 관련해 하신 약속을 잘 알고 있다”고 지원 의사를 내비쳤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광복절 경축사] 의사도 기자도 과학자도 나라 되찾으려고 뛰었다

    [광복절 경축사] 의사도 기자도 과학자도 나라 되찾으려고 뛰었다

    “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 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에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른 독립운동가 5인은 우리나라에서 각 분야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꼽힌다. ●몽골 전염병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이태준(1883~1921) 선생은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추천으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외곽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 위기에 처하자 몽골로 망명해 몽골인을 치료했다. ●日 만행 취재한 첫 순직기자 장덕준 장덕준(1892~1920) 선생은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했고, 1920년 만주에서 일본군의 조선인 학살사건인 ‘경신참변’이 발생하자 현장으로 가 일본군의 만행을 취재하다 암살당했다. 선생은 한국 언론 사상 첫 순직 기자가 됐다. ●日 관리 암살무기 운반했던 남자현 남자현(1872~1933) 선생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대한통의부 등 항일 단체에 가담했다. 1933년 일본 고위 관리를 암살하려고 무기를 운반하다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순국했다. ●과학기술 대중화 앞장선 김용관 김용관(1897~1967) 선생은 경성공전을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와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선 운동가였다. ●독립군 출신 영화 ‘아리랑’ 감독 나운규 나운규(1902~1937) 선생은 독립군 출신 영화감독으로 영화 ‘아리랑’을 제작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간도 지역에서 일제 기관시설 파괴 임무를 띤 독립군으로 활약하다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文 극찬한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 안동 임청각은?

    文 극찬한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 안동 임청각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북 안동 임청각을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말하면서 임청각(臨淸閣·보물 182호)의 역사가 재조명 되고 있다.안동시 법흥동 법흥교 옆에 있는 임청각은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과 형조좌랑을 역임한 이중공의 셋째 아들 이명이 1519년 건축한 조선 중기 별당형 정자다. 영남산 기슭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해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고 99칸을 배치한 살림집으로 지었다. 대청에 걸려있는 현판은 퇴계 선생 친필로 알려졌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임청각이지만 정작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생가이며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이다. 이 중에는 석주 선생의 두 동생과 아들, 손자, 조카 등이 있다.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1월 식솔들을 이끌고 임청각을 떠나 기약 없는 만주 망명길에 오른 석주 선생은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쳤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은 물론이고 99칸짜리 임청각까지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썼다. 일제는 독립운동 성지나 다름없는 임청각의 정기를 끊으려고 마당 한가운데로 중앙선 철길을 내고 행랑채와 부속건물 등 50여 칸을 뜯어내 오늘의 어색한 모습을 갖게 됐다. 선생이 서간도에서 독립단체 통합 노력에 주력하다가 1932년 유명을 달리하자 가문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석주 선생의 손부 허은(1907∼1997)여사 슬하 7남매 중 장남은 일본강점기 경찰에 끌려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고 둘째, 셋째, 넷째는 실종되거나 사고로 숨지는 등 대를 잇는데도 상당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시인 이육사의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종고모 집인 임청각에 드나들며 함께 지내기도 했다고 임청각 웹사이트는 소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임청각을 방문해 “안동이나 유교라고 하면 보수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안동지역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했다”면서 “(이들은)혁신 유림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호남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는 영남과 유교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영남 유림 뿌리를 찾아 경의를 표하기 위해 지난 10일 임청각을 찾아 “대통령께 경북으로 휴가를 간다고 보고드렸더니 ‘안동으로 가보라’고 말씀하셨다”며 “제 발로 왔지만, 대통령 분부를 받고 온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편 2020년까지 도담∼영천 145.1㎞ 구간의 중앙선을 복선화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현재 철로와 약 7m 거리에 있는 임청각은 철로에서 6㎞ 밖으로 이격된다. 중앙선 신선이 놓이게 되면 임청각을 관통하고 있는 철로는 더는 사용하지 않는 폐선이 된다. 이에 따라 폐선을 걷어내면 임청각을 온전히 복원하는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서 호명한 ‘독립운동가 5인’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서 호명한 ‘독립운동가 5인’

    의사 출신 이태준, 과학자 김용관…영화감독 나운규간도 참변 취재 중 실종된 장덕준·‘독립군 어머니’ 남자현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 5인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 관심이 쏠리고 있다.문 대통령이 호명한 독립운동가 5인은 우리나라의 대표 독립운동가로 손꼽히는 인물들로 대부분 국가보훈처 선정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뽑혔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의사·기자·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을 위해 애쓴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우선 이태준(1883∼1921) 선생은 몽골에서 의술을 펼치면서 독립운동을 도왔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안창호 선생의 추천으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외곽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활동하다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 위기에 처하자 몽골로 망명했다. 선생은 몽골 고륜(지금의 울란바토르)에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열어 근대 의술로 몽골인들을 치료했고 황제의 주치의까지 지냈다. 선생은 신한천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열렬한 독립운동가였다. 몽골을 점령한 러시아 백위파(러시아 혁명 반대세력) 대원에 의해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장덕준(1892∼1920) 선생은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1914년 평양 일일신문사에 입사해 언론인이 됐다. 1915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했고 ‘추송’이라는 필명 하에 ‘조선 소요에 대한 일본 여론을 비평함’이라는 논설로 일본의 3·1 운동 왜곡을 비판했다. 1920년 만주에서 일본군이 독립군의 청산리 대첩에 대한 보복으로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한 ‘경신참변’이 발생하자 현장으로 가 일본군의 만행을 취재했다. 취재 중 일본인에게 불려 나간 뒤로 소식이 끊겼는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간한 독립신문은 선생이 일본군에 암살당했다고 보도했다. 선생은 한국 언론사상 첫 순직 기자가 됐다. 남자현(1872∼1933) 선생은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대한통의부 등 항일 단체에 가담했다. 북만주 일대에서 예수교회와 여성교육기관을 만들어 여성계몽운동을 벌이고 1920년 청산리 대첩에서 부상한 독립군 치료에 힘을 쏟아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렸다. 1932년에는 왼손 무명지를 잘라 흰 수건에 쓴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란 혈서와 손가락을 국제연맹조사단에 보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다. 1933년 일본 고위관리를 암살하려고 무기를 운반하다 하얼빈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독립은 정신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남기고 순국했다. 김용관(1897∼1967) 선생은 경성공전을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와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선 운동가였다. 민족의 힘을 키우는 데는 과학의 부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1932년 ‘발명학회’를 조직했고 이듬해 일제강점기 대표적 대중 과학기술 잡지인 ‘과학조선’을 창간했다.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발명학회의 활동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일제의 군국주의가 노골화하며 급속히 위축됐고 김 선생도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1967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나운규(1902∼1937) 선생은 영화 ‘아리랑’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한 독립군 출신 영화감독으로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선생은 고향에서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 연해주를 거쳐 북간주로 이주했다. 간도지역에서 무장 독립운동이 활발할 때는 철도와 통신 등 일제의 기관시설 파괴 임무를 띤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철도 파괴 계획이 일본의 손에 들어가 2년간 옥고를 치른 선생은 1924년 극단 예림회에 가입,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심청전’, ‘흑과백’ 등의 연극에도 출연했다. 1926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영화 ‘아리랑’을 제작해 주목을 받았고 ‘풍운아’, ‘잘 있거라’, ‘사랑을 찾아서’ 등의 작품도 만들었다. 1937년 폐병으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고첫 번째 맞는 광복절입니다.오늘, 그 의미가 유달리 깊게 다가옵니다. 국민주권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백 년 전인 1917년 7월, 독립운동가 14인이 상해에서 발표한‘대동단결 선언’은 국민주권을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천명했습니다.경술국치는 국권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오히려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이라고 선언하며,국민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습니다.마침내 1919년 3월, 이념과 계급과 지역을 초월한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을 거쳐,이 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그렇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려는 선대들의 염원은백 년의 시간을 이어왔고,드디어 촛불을 든 국민들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민족의 자주독립에 생을 바친 선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도,일제의 눈을 피해 야학에서 모국어를 가르친 선생님도,우리의 전통을 지켜내고 쌈짓돈을 보탠 분들도,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습니다.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무대도 한반도만이 아니었습니다.1919년 3월 1일 연해주와 만주, 미주와 아시아 곳곳에서도한 목소리로 대한독립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의 이 모든 빛나는 장면들이지난 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촛불로 살아났습니다.우리 국민이 높이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입니다.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은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되살아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땀 흘린 모든 분들,그 한 분 한 분 모두가 오늘 이 나라를 세운 공헌자입니다. 오늘 저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들께,또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들께,다시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저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이민족과 나라 앞에 닥친 어려움과 위기에 맞서는용기와 지혜를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완전히 새롭게 하겠습니다.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습니다.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 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습니다.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모두 찾아내겠습니다.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고자 합니다.대한민국은 나라의 이름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그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젊음을 나라에 바치고 이제 고령이 되신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습니다.살아계시는 동안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의 치료를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참전명예수당도 인상하겠습니다. 유공자 어르신 마지막 한 분까지대한민국의 품이 따뜻하고 영광스러웠다고 느끼시게 하겠습니다.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확대할 것입니다.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겠습니다.애국의 출발점이 보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해국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도 마주해야 합니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남북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입니다.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그 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오늘 광복절을 맞아한반도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가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분단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던식민지시대가 남긴 불행한 유산입니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국력이 커졌습니다.한반도의 평화도, 분단 극복도,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 할 것 없이 평화입니다.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입니다. 평화는 또한 당면한 우리의 생존 전략입니다.안보도, 경제도, 성장도, 번영도평화 없이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합니다.평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에 평화가 없고,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집니다.지금 세계는 두려움 속에서 그 분명한 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합니다.전 세계와 함께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입니다.정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위기를 타개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안보를 동맹국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원칙은 확고합니다.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입니다.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문제는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해결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외교적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입니다.국방력이 뒷받침되는 굳건한 평화를 위해우리 군을 더 강하게, 더 믿음직스럽게 혁신하여강한 방위력을 구축할 것입니다.한편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군사적 대화의 문도 열어놓을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닙니다.북핵문제의 역사는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문제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유예하거나 핵실험 중단을 천명했던 시기는예외 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시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그럴 때 북미, 북일 간 대화도 촉진되었고,동북아 다자외교도 활발했습니다.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은 핵 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군사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이 점에서도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 당국에 촉구합니다.국제적인 협력과 상생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대로 간다면 북한에게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수많은 주민들의 생존과 한반도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됩니다.우리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즉각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핵 없이도 북한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우리가 돕고 만들어 가겠습니다.미국과 주변 국가들도 도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습니다.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고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통일은 민족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하는‘평화적,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북한이 기존의 남북합의의 상호이행을 약속한다면,우리는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 합의를 제도화할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남북간의 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협력은남북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입니다.경제협력의 과정에서 북한은핵무기를 갖지 않아도 자신들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사실을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쉬운 일부터 시작할 것을 다시 한 번 북한에 제안합니다.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협력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합니다.이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성묘에 대한 조속한 호응을 촉구합니다.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남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남북대화의 기회로 삼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동북아 지역에서 연이어 개최되는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의 도쿄 하계올림픽,2022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은한반도와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절호의 기회입니다.저는 동북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이 기회를 살려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합니다.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뜻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우리는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한일관계도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과거사와 역사문제가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입니다.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양국 간의 과거와 일본의 책임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그 노력들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이러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바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2년 후 2019년은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진정한 보훈은,선열들이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하여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합시다.그 과정에서, 치유와 화해, 통합을 향해지난 한 세기의 역사를 결산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보수,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했듯이우리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이제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이 점에서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입니다.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이제 지난 백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도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서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다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 다함께 선언합시다.우리 앞에 수많은 도전이 밀려오고 있지만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헤쳐 나가는 일은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당당히 외칩시다.담대하게, 자신 있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합시다.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이겨 나갑시다.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완성합시다.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을 확인합시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유공자들께깊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우장춘 박사의 삶/윤창수 정책뉴스부 차장

    [데스크 시각] 우장춘 박사의 삶/윤창수 정책뉴스부 차장

    ‘육종학의 아버지’ 고(故) 우장춘 박사는 벼를 비롯해 우리 밥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채소의 종자를 만들어 냈다. 칼만 갖다 대면 쫙 하고 갈라져서 튼실한 속살을 드러내는 배추와 아삭아삭 씹히는 단맛이 일품인 속이 꽉 찬 무도 우 박사의 작품이다. 오늘날 제주가 감귤의 성지가 된 것은 그의 아이디어였고, 강원도 대관령 감자가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하는 것도 우 박사의 종자 개량 덕이다. 우 박사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하지만, 씨 없는 수박은 한국 농부들에게 종자를 개량하는 육종학을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였고, 그의 학문적 업적은 일본에서 완성됐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일부 뒤집는 ‘종의 합성’ 이론을 담은 논문을 썼지만, 1950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농업 발전에만 매달려 배추, 무뿐 아니라 고추, 오이, 양파, 토마토 등 20여 가지 품종의 우수한 종자를 확보해 식량 자급의 길을 연다. 광복절에 우 박사의 생애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그만큼 한국과 일본 양국의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인물도 없기 때문이다. 우 박사의 부친 우범선은 무과에 급제한 무신이었는데 을미사변 당시 훈련대 대대장으로 명성황후 시해에 주도적으로 가담했다. 이후 일본으로 망명해 일본 여성과 결혼했으며 전 만민공동회장 고영근에 의해 암살된다. 우 박사는 아버지가 살해됐을 때 고작 다섯 살이었는데 한때 고아원에 맡겨질 정도로 힘든 성장 과정을 보냈다. 어머니는 식모로 일하며 힘겹게 아들을 키웠고 그는 일본에서 사는 내내 일본 성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해에 시달렸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탁으로 한국에 왔지만 한국에서의 연구 생활도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 정부 때문에 그가 어머니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우 박사의 꼼꼼하고 치밀한 연구 업적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최근 국가기록원에 의해 공개됐다. 나팔꽃 줄기의 단면을 직접 그린 그림은 마치 현미경으로 사진을 찍은 듯 세포 하나하나까지 묘사했으며, 1930년대에 만든 나팔꽃 표본은 어제 딴 것처럼 하나도 시들지 않고 색깔까지 생생하다. 무척 섬세한 압화 과정을 거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 박사가 한국으로 오기 전에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했다고 알려진 맹세인 “지금까지는 어머니의 나라 일본을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아버지의 나라에 뼈를 묻고자 한다”를 그는 61년의 인생 동안 충실하게 지켰다. 한국에서의 삶이 고작 9년밖에 되지 못한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가 일본에서 공부하며 도쿄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다면 한국 무는 여전히 주먹만 한 크기의 순무 신세였을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인기인 위인전 학습만화 ‘후’에 일본 최고 거부인 손정의는 있어도 우장춘은 없다. 한때 교과서와 위인전에 자주 등장했던 우 박사가 위인 대열에서 사라진 것이 혹시 식민사관과 민족주의 역사관 사이 갈등의 부산물은 아닌지 모르겠다. 광복절에 다시 보는 일본은 여전히 우리가 배울 것이 많은 존재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 때문에 추진하는 정책은 일본의 것을 벤치마킹한 게 많다. 청년이 지방으로 가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지역희망뿌리단, 고향기부제, 도심재생사업 등이다. 우 박사가 만약 한국을 아버지를 암살한 나라로만 생각했다면 우린 아직 식량 수입국일 수도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지만 과거에만 매달려 미래를 망칠 수도 없다. geo@seoul.co.kr
  • [지금, 이 영화] ‘엘리자의 내일’

    [지금, 이 영화] ‘엘리자의 내일’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라는 남자가 있다. 1967년에 루마니아 최고권력자가 된 뒤 20여년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체제 유지를 위해 철권통치를 펼쳤다. 비밀경찰의 도청과 감시가 삼엄했다. 조금이라도 반정부적인 말과 행동을 하면 즉시 정보기관에 끌려갔다. 혹독한 고문과 억울한 죽음이 이어졌다. 당시 루마니아인들의 공포를 체감하는 데 루마니아 출신 작가 헤르타 뮐러의 작품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녀는 차우셰스쿠를 비판하다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 이후 뮐러는 엄혹한 그 시대를 그린 소설을 꾸준히 썼다. 뮐러가 2009년 받은 노벨문학상은 이에 대한 문학적 지지와 격려였다.차우셰스쿠의 전횡으로 국가 경제는 붕괴됐다. 궁핍에 시달리던 국민은 1989년 12월 마침내 대규모 민중 봉기를 일으킨다. 시위대에 붙잡힌 차우셰스쿠는 곧 총살당했다. 루마니아인들은 드디어 루마니아가 이전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다. 그때 20대 초반이던 크리스티안 문주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루마니아는 과연 더 살 만한 나라가 됐을까. 이 시기를 겪으며 청년에서 중년이 된 문주 감독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가 만든 영화 ‘엘리자의 내일’을 통해서다. 이 작품은 민주화를 성취한 다음의, 오늘날 루마니아가 처한 현실을 담아낸다.주인공은 의사 로메오(아드리안 티티에니)다. 그는 과거 차우셰스쿠 정권에 항거했던 의식 있는 젊은이였다. 그런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는 현재 루마니아에 희망이 없다고 여긴다. 자신은 그럭저럭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지만 부정부패가 만연한 이곳에서 딸 엘리자(마리아 빅토리아 드래거스)만은 탈출하기를 바란다. 우등생인 그녀는 영국의 명문대학 입학 허가를 받은 상태다. 남은 문제는 엘리자가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잘 치르느냐에 달려 있다. 한데 첫 번째 시험 전날 그녀에게 불행이 닥친다.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것이다. 엘리자는 심적 충격을 받았다. 저항하다가 팔도 다쳤다. 도저히 내일 졸업 시험을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로메오는 엘리자에게 시험장에 가야 한다고 종용한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렇게 기회를 놓침으로써 앞날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아버지는 딸에게 말한다. “때로 인생에선 결과가 더 중요하단다. 너에게 늘 정직하라고 가르쳤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아.” 지금 로메오는 옛날에 그가 대항했던 독재자가 했을 법한 소리를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차우셰스쿠의 인생관이었으리라. 엘리자에게 실리적인 도움이 된다면 로메오는 무엇이든 하겠다고 나선다. 괴물과 싸웠던 영웅이 괴물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가. ‘로메오의 오늘’에 답은 없다. 미래가 미래 세대의 것이듯, ‘엘리자의 내일’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다.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하칼럼니스트
  • 신동욱, ‘이재용 12년 구형’에 “뇌물죄 적용되면 권양숙 여사도 뇌물죄”

    신동욱, ‘이재용 12년 구형’에 “뇌물죄 적용되면 권양숙 여사도 뇌물죄”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7일 박영수 특별검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한 것에 대해 “미국으로 본사 이전하고 망명 신청하라는 꼴”이라고 밝혔다.신 총재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특검이 구형에 발악하는 특견(犬) 꼴이다. 이재용 뇌물죄 적용되면 권양숙 여사도 뇌물죄 적용해야 공평한 꼴이다. 조윤선 검찰 6년 구형에 재판부 집행유예 데자뷰 꼴 난다”고 적었다. 박 특검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과 전직 삼성그룹 수뇌부 등 5명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은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이익의 직접적 귀속 주체이자 최종 의사결정권자임에도 범행을 전면 부인하면서 다른 피고인들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다”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작년 탈북 영향… 北, 국제수학올림피아드 10년 만에 불참

    북한이 2007년부터 매년 참가해 온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올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불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홍콩 대회에서 참가 학생의 탈북 사건이 발생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2일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박찬모 평양과학기술대 명예총장은 이 매체와의 통화에서 “이름(명단)까지 나왔는데 끝내 북한이 참석을 안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한 북한 학생의 탈북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지난해 7월 홍콩 과학기술대에서 열린 제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석한 북한 학생 한 명은 대회 후 홍콩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진입해 망명을 신청했다. 이 학생은 같은 해 9월 말 한국에 도착했다. 지난달 브라질에서 열린 올해 대회에서 한국은 대표단 6명 전원이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美 “모든 국가는 北난민 보호해야”

    美 “모든 국가는 北난민 보호해야”

    中전투기 2대 서해 인근서 美정찰기에 90m 근접비행 최근 중국의 북송으로 탈북자 일가족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과 중국이 탈북자 강제송환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미국의소리(VOA) 방송은 25일 미국 국무부가 “모든 국가가 자국 영토 내의 북한 난민과 망명 희망자를 보호하는 데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카티나 애덤스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대변인은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이 탈북자 북송을 중단하라는 유엔의 요청을 거절한 것과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미 국무부의 이 같은 반응은 전날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불법적으로 중국 국경을 넘은 북한 주민은 난민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한 반발로 여겨진다. 루 대변인은 탈북자 강제송환을 중단하라는 유엔의 요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불법적으로 중국 국경을 넘은 북한 주민은 난민이 아니라 중국 법률을 위반한 사람”이라면서 “중국은 중국법을 위반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은 사람들에 대해 일관되게 국제법과 국내법,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적절히 처리해 왔다”며 유엔의 요청을 거부했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이날 중국 전투기가 한반도 서해 인근 공역에서 미군 정찰기에 90m까지 근접해 비행을 방해했다고 비판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서해와 동중국해 사이의 공역을 비행 중이던 미 해군 소속 EP3 정찰기를 중국군 J10 전투기 2대가 가로막으면서 충돌할 뻔했다. 정찰기는 충돌을 피하고자 ‘회피 기동’으로 정찰 지역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제프 데이비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공해 상공에서는 이런 비행 방해가 정기적으로 일어나지만, 대다수는 안전한 방식으로 이뤄진다”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일반적 안전 행동과는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중국이 이처럼 공세적인 차단기동작전에 나선 것을 두고 최근 북한 핵 문제 해법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긴장 관계를 반영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의 한 군사 전문가는 “이번 중국의 비행 방해는 지난 2월과 5월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서 일어난 것과는 다른 메시지를 띠고 있는 것 같다”며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계속되는 압박에 항의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105세 의사’ 日 히노하라 별세

    90세에 베스트셀러를 내고, 100세가 넘어서도 진료를 계속해 오면서 인간의 마음까지 치료하고 보듬어 온 105세 일본 현역 의사의 죽음에 일본 사회가 존경과 애정어린 애도를 보냈다. 도쿄 성루카국제병원은 18일 히노하라 시게아키 명예원장이 이날 자택에서 영면했다고 밝혔다. 1941년부터 내과 의사로 일해 온 그는 환자와의 대화를 중시하면서 ‘환자 참여 의료’를 도입해 일본 의료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01년 저서 ‘살아가기에 프로 되기’는 100만부를 넘는 베스트셀러로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70년 일본 공산주의 과격단체 적군파 조직원들이 항공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하려던 ‘요도호’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했다. 또 목소리를 잃었다가 수술을 받고 재기한 한국인 테너 배재철씨의 팬이자 후원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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