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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첩보조직 일하다 6년 전 서울로 “90년대 청와대에까지 잠입했다”

    북 첩보조직 일하다 6년 전 서울로 “90년대 청와대에까지 잠입했다”

    김국송(가명) 씨. 30년 동안 북한의 막강한 첩보 조직에서 일해 최고 직위에까지 올랐는데 2015년 북한을 탈출해 현재 서울에서 살며 국가정보원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 BBC의 서울 특파원 로라 비커가 단독 인터뷰한 내용을 11일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충격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 검은 색 선글라스를 쓴 채로 사진 촬영에 응했고 인터뷰 날짜와 장소를 잡기까지 몇 주 동안 논의를 했으며 그 전에 누구라도 인터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극도로 신경을 썼다고 했다. BBC 취재진 가운데 두 명만 그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다고 했다.  비커 특파원은 그가 폭로한 충격적인 내용들을 일일이 검증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의 신원에 대해서는 일정한 검증 작업을 마쳐 일부 주장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과 뉴욕 주재 북한 공관에 북한 정찰총국에서 5년 동안 대좌(한국의 대령)로 근무했더 그의 신원 등에 관한 문의를 했지만 아직까지 어떤 답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가 폭로한 내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1990년대 초반 우리 청와대에 그가 파견한 요원이 잠입해 5~6년 근무하다 나중에 다시 북한으로 안전하게 돌아와 노동당의 314 연락실에서 근무했다는 주장이다. 90년대 초반이라면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이다.  그는 “북한 공작원들이 남한의 중요 기관 뿐만아니라 각계 사회 조직에 침투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국가정보원은 “탈북민 신상 및 주장에 대해 확인해 드릴 내용이 없다”면서도 “다만 ‘90년대 초 청와대 5~6년 근무’ 관련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은 간첩을 파견해 사회 조직에 암약하게 하는 것보다 6000명 넘는 사이버 해킹 요원들이 남측에 관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1980년대부터 명령해 사이버전쟁을 준비해왔다고 했다. 모란봉 대학에서 똑똑한 학생들을 선발해 6년 동안 특별 교육을 시킨다고 그는 증언했다. 이른바 라자루스 그룹이란 해커 집단이 2017년 영국 건강보험(NHS) 등 많은 나라의 기관들을 엉망으로 만든 사례가 있다. 이 그룹은 2014년에도 미국 영화사 소니 픽처스의 고급 자료들을 해킹한 바 있다.  김씨는 연락소 414가 이들 해커들을 모두 관리하는데 최고 지도자가 직접 전화로 연결된 유일한 연락소라고 주장했다.  “빨갱이 중의 빨갱이였다”는 그는 북한 지도부가 마약 거래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무기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현금을 벌려고 필사적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의 전략과 한국 정권을 목표로 한 공격에 관해서 이야기했으며 북한의 첩보와 사이버 네트워크가 전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최고 첩보부대에서 김씨가 마지막으로 보낸 몇 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 초기 자신이 세계에 어떻게 비치고 싶어했는지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전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젊은이였다.  북한은 2009년에 ‘정찰총국’이란 새로운 첩보기관을 창설했는데,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뒤를 이을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총국장은 김정은이 가장 신뢰하는 보좌관 중 한 명인 김영철이 맡았다. 김씨는 2009년 5월 한국으로 망명한 전직 북한 관리를 살해하는 ‘테러 대책반’을 구성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령이 “김정은으로선 ‘최고지도자’라는 전사된 입장에서 그것을 위안해주고 풀어주고 (김정일에게) 만족을 드리기 위한 하나의 행위”였다고 했다.  “극비리에 황장엽 선생을 테러하기 위한 TF팀이 꾸려지고 공작이 진행된 것이지요. 저는 직접 지휘, 공작을 수행하는….내 말에 따라서 이 사람들이 같이 협의하고 토론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황장엽은 북한 정권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이었고, 김씨 일가는 복수를 원했지만 암살 시도는 빗나갔다. 북한군 소령 두 명이 한국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북한 당국은 관련 내용을 부인했고 한국이 암살 시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해군 함정 천안함이 어뢰에 맞아 침몰해 46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한 당국은 늘 개입설을 부인해 왔다. 같은 해 11월에는 북한에서 날아 온 수십 발의 포탄이 연평도를 강타했다.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누가 그 공격을 지시했는지 논쟁이 크게 일었다.  김씨는 “천안함이나 연평도 작전에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정찰총국 일정한 간부들 속에서는 비밀이 아니고 통상적인 자랑으로, 긍지로 그렇게 알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절대적으로 북한에서는 도로 하나 만들어도 최고지도자의 재가(허락) 없이는 할 수 없어요. 하물며 천안함 폭침이라던가 연평도 포격이라던가 이런 것은 충성심 경쟁으로 할 일이 못 된다”며 “이런 것은 반드시 김정은이 특별 지시에 의해 공작되고 이행된 군사작품이지요. 성과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김정은이 최근 다시 그 때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작전부서에 있었고 최고 지도자를 위한 ’혁명 기금‘을 조성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불법 마약 거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 과업을 제가 받고 해외에서, 밝혀야 되겠는지 안 밝혀야 되겠는지 일단 접어놓고, 3명의 외국인을 북한으로 들여와서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715 연락소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훈련관에 생산기지를 만들어 놓고 마약을 생산했죠.아이스(필로폰의 은어)라고 알죠? 그걸 달러로 만들어가지고 김정일 혁명자금으로 바쳤죠.”  영국 주재 북한 공사로 일하다 망명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2019년 오슬로 자유포럼에서 북한 당국은 마약 밀매에 관여했고 북한 내부에 만연한 마약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마약으로 번 돈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봤다. 실제로 북한 인민을 위한 자금으로 쓰였을까?  “참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북한에는 모든 돈이 김정일이 김정은이 개인 것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자기 별장도 짓고 차도 사고 먹기도 하고 입기도 하고 향수(향응)를 누리는 거죠.”  김씨는 또 작전부가 관리하는 이란 불법 무기 판매에서 자금이 나왔다고 했다. 북한이 “특수소형잠수함, 반잠수함, 65잠수함급 이런 잠수함들을 아주 첨단화시켜가지고 잘 만든다”고 했다. 거래가 잘 돼서 북한 해운 부부장이 이란 총참모장을 자신의 수영장으로 불러들여서 판매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김씨는 북한이 또한 장기간 내전을 치르고 있는 국가들에 무기와 기술을 판매했다고 했다. 최근 몇 년간 유엔은 북한이 시리아, 미얀마, 리비아, 수단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유엔은 북한에서 개발된 무기가 세계 곳곳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김정은의 고모에게서 받은 벤츠 차량을 사용했고 북한 지도자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희귀 금속과 석탄을 팔아 수백만 달러의 현금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 돈은 여행 가방에 담겨 북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김씨는 결혼을 통해 강한 정치적 인맥을 형성해 여러 정보기관을 오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와 가족도 위험에 처했다. 2011년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정은은 숙부인 장성택을 포함해 그가 위협 요소로 여긴 사람들을 숙청하기로 결정했다. 장성택이 곧 처형되겠구나 알고 있었다고 했다. 2013년 12월 북한 관영 매체가 장씨의 처형을 알리자 김씨는 “신변의 위험을 확 느끼게 된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북한에서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로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BBC 제작진은 여러 차례 회의를 하면서 그가 왜 지금 인터뷰를 하기로 했는지를 가장 궁금해 했다고 했다. 해서 질문을 던졌더니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의무”라고 답했다. “북녘 동포들을 독재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앞으로 난 더 활발한 활동으로 북한 동포들을 독재의 억압에서 해방하고,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전심하려고 지금과 같은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10일 노동당 창건 76주년 기념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년간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인민이익을 침해하는 일을 용납 안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에 남북 통신연락선을 복원하는 등 남북, 북미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김씨는 “전략에 따라 지금 흐름세가 가고 있는 거죠. 우리가 다시 알아야 할 것은 북한이 지금까지 0.01%도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홍콩 ‘톈안먼 시위 추모상’ 철거될 듯…중국의 ‘기록 말살’ 시작

    홍콩 ‘톈안먼 시위 추모상’ 철거될 듯…중국의 ‘기록 말살’ 시작

    홍콩이 6·4톈안먼(天安門) 민주화시위 추모 조각상 철거를 명령했다. 당국이 톈안먼 시위의 기록을 말살하려는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일 홍콩 공영방송 RTHK는 1997년부터 홍콩대 캠퍼스 내에 자리했던 ‘수치의 기둥’이 곧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수치의 기둥’은 1989년 중국 톈안먼 민주화 시위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각상으로 덴마크 예술가가 제작해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에 기증한 작품이다. 지련회는 1990년부터 매해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촛불행사를 진행해온 단체로 ‘수치의 기둥’ 세정식을 연례 행사로 진행해왔다. 그러나 당국은 지련회의 홈페이지와 모든 소셜미디어 계정의 운영도 중단시키고 지련회가 30여 년 축적해온 역사적 자료에 대한 접근도 모두 차단했다. 지련회는 결국 당국의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달 말 해산했다. 지련회는 지난달 9일 홍콩 국가안전유지법(국가보안법)의 국가정권 전복선도죄 혐의로 기소를 당하면서 발이 묶였다. 전날에는 초우항텅 부주석 등 지련회 간부 4명이 체포되면서 사실상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당시 홍콩보안법 담당부서인 국가안전처는 지련회에 톈안먼 유혈사태로 이어진 중국 민주화 시위가 ‘반혁명 폭란’이기에 희생자 추모가 이를 부추기는 행위라고 통보했다. 지련회가 해산한 상황에서, 지련회가 기증받고 관리해 온 ‘수치의 기둥’ 역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홍콩 당국은 지련회가 내건 ‘공산당 일당독재 종식’ 등의 목표와 ‘수치의 기둥’ 등이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도전이라고 판단한다며 경고해왔고, 이에 따라 ‘수치의 기둥’도 곧 철거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 보안법이 시행된 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슈아 웡과 지미 라이 빈과일보 대표 등 저명 인사들이 체포돼 중형 위기에 처하거나, 많은 야당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두려움 속에서 해외로 망명했다. 지련회와 마찬가지로 당국의 외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해산하는 단체도 잇따라 나옴에 따라 홍콩의 범민주 진영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난민 경험 녹여 자아 정체성 탐구… “식민주의 다룬 작가 중 최고”

    난민 경험 녹여 자아 정체성 탐구… “식민주의 다룬 작가 중 최고”

    아프리카 출신 흑인작가 35년 만에 영예탄자니아서 태어나 난민으로 영국 도착대표작 ‘낙원’ ‘황폐’… 국내 출간은 안 돼아프리카 등 탈식민주의 관련 담론 관심“디아스포라 문제 조명, 시의적절한 수상”2021년 노벨문학상은 탄자니아의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3)에게 돌아갔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1986년 나이지리아 출신 월레 소잉카 이후 35년 만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7일 구르나에 대해 “식민주의의 영향과, 문화와 대륙 사이 격차에 있는 난민의 운명을 단호하고도 연민 어린 통찰로 깊게 파고들었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난민 경험을 바탕으로 자아 정체성에 집중해 온 작가”라며 “구르나 소설 속 등장인물은 문화와 대륙 사이에서의 틈, 과거의 삶과 새롭게 떠오르는 삶의 틈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는데, 이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를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1948년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난민 자격으로 입국한 영국에 정착해 문학과 학문 활동을 해왔다. 스물한 살 때부터 글을 쓴 구르나는 스와힐리어를 모국어로, 영어는 문학적 도구로 삼았다. 최근 은퇴하기 전까지 영국 켄트대 영문학 교수로 지내면서 식민주의 관련 담론을 주로 탐구했다. 장편소설 10편과 다수의 단편소설을 펴냈다. 대표작으로는 ‘낙원’(Paradise·1994), ‘바닷가에’(By the Sea·2001), ‘황폐’(Desertion·2005) 등이 있다. ‘낙원’과 ‘바닷가에’는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부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정식 출간된 소설은 없다.한림원은 “그의 소설이 상투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있으며,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낯선 동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에 대한 시각을 열어 줬다”고 설명했다. 문학상 선정 위원인 안데르스 올손은 그를 “식민주의 이후 시대 작가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하나”라고 호평했다. 구르나의 문학을 꿰뚫는 열쇠말은 ‘정체성’이다. 초기 소설 세 편 ‘출발의 기억’(Memory of Departure·1987), ‘순례자의 길’(Pilgrim’s Way·1988), ‘도티’(Dottie·1990)는 현대 영국에서의 이민자의 경험을 다양한 관점에서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순례자의 길’은 탄자니아 출신 무슬림 학생이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겪는 인종차별에 대한 투쟁을 묘사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네 번째 소설 ‘낙원’ 역시 제1차 세계대전 와중의 식민지 동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한 여정에서 아프리카의 계급의식에 대한 시선을 담아냈다. ‘침묵의 경배’(Admiring Silence·1996)는 잔지바르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한 한 청년이 결혼해 교사가 되는 이야기, ‘바닷가에서’는 영국 해변 마을에 거주하는 노인 망명자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평론가 폴 길로이는 구르나의 소설 속 인물이 새로운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며, 새로운 삶과 과거의 존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협상한다고 평가했다. 이주민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바닥에 깔고, 식민주의와 노예 제도의 유산이 어떻게 이주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지를 다룬다. 작가 자신도 자신의 문학이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길로이에게 “내 잠재적 독자 중 일부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은철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구르나는 동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이주해서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사는 입장에서 차별과 배척을 당한 경험을 일관성 있게 녹여냈다”며 “종교 갈등이 심화하고 이분법적으로 나뉜 세계관이 지배적인 현 시점에서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구르나의 소설 ‘출발의 기억’이나 ‘마지막 선물’(The Last Gift·2011) 등은 술술 읽힐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 어휘 구사가 장점”이라며 “작가 자신이 영국과 고향의 격차와 문화 간 충돌, 개인의 자아가 겪는 문제를 예리하게 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의식에 계속 귀를 기울이는 통찰도 녹아 있는 만큼 난민 문제가 전 세계적 이슈가 된 요즘 돋보이는 수상”이라고 강조했다.
  • 트렌스젠더, 여자옷 입었다가 수배자 신세… ’치료’ 해주겠다는 이슬람

    트렌스젠더, 여자옷 입었다가 수배자 신세… ’치료’ 해주겠다는 이슬람

    이슬람 종교행사에 여성복을 입고 나타났다가 기소된 말레이시아 트랜스젠더가 태국에서 붙잡혔다. 28일 워싱턴포스트는 이슬람율법 샤리아 위반 혐의로 수배령이 떨어졌던 말레이시아 트렌스젠더 사업가 누르 사자트(36, 본명 무하마드 사자드 카마루즈 자만)가 불법 입국 혐의로 태국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태국은 말레이시아 당국의 지속적 송환 요구에 따라 사자트 추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키사나 파다나차로엔 태국 경찰 부대변인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사자트 추방이 진행 중이며, 많은 요인이 고려될 것”이라고 밝혔다. 타니 상랏 태국 외무부 대변인은 “태국 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근거하여 이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자트는 2018년 이슬람 종교행사에 말레이시아 여성 전통의상 바주 쿠룽을 입고 갔다가 당국 조사를 받았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지난 1월 사자트를 이슬람교 모욕 혐의로 기소했다. 동성애도 성전환도 ‘불법’ 쏟아진 살해 위협국교가 이슬람교인 말레이시아는 인구 60%가 무슬림이다. 무슬림에게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가, 비무슬림에게는 민법이 적용되는 이중 법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슬람 법 체계에서 무슬림의 성전환은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불법이다. 관련법에 따라 최고 3년의 징역형과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사자트는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밝혔다. 유명 웹예능에 잇따라 출연하며 트랜스젠더 여성의 삶을 대중에 공개했다. 화장품 사업을 병행하며 기업가로서의 입지도 다졌다. 하지만 현지 이슬람 공동체는 사자트의 이 같은 행보를 용납하지 않았다. 여성복을 입고 이슬람 종교행사에 등장한 사자트를 법으로 다스렸으며, 개종 의사를 밝힌 그에게 위협을 가했다.사자트는 “(안티 트랜스젠더 때문에) 종교를 포기하고 싶어졌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는데, 사람들은 우리를 나쁘다고 비난한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가 숱한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사자트 같은 무슬림이 기독교나 힌두교 등으로 개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샤리아가 금지 규정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자트는 말레이시아를 탈출, 태국으로 도피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월 그가 샤리아 고등법원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말레이시아 당국은 여권을 취소하고 체포영장을 발부, 수배 조처를 내렸다.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사자트는 지난 8일 불법입국 혐의로 태국 경찰에 체포됐다. 2주에 한 번 이민국에 신상을 보고한다는 조건으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추방 가능성이 높다. 호주 망명 원하지만…‘치료’ 해주겠다는 이슬람사자트는 일단 호주로의 망명을 원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일간 더스타와 하리안 메트로에 따르면 사자트는 유엔난민기구(UNHCR)에 난민 신청을 했다. 익명의 태국 당국자는 그가 유엔난민기구 태국 방콕 사무소에서 망명 신청자 카드를 발급받았다고 귀띔했다. 유엔난민기구가 발급하는 망명 신청자 카드는 체포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수준의 보호를 제공한다.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이 카드는 공식적으로 그 어떤 법적 가치도 없지만, 유엔난민기구는 사자트가 본인 의사에 반하여 송환되지 않도록 노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사자트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며 태국을 압박하고 있다. 압드 잘릴 하산 말레이시아 범죄수사국장도 경찰과 외교부, 법무장관실이 사자트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산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사자트의 본명을 언급하며, 그에게 ‘좋게좋게 가자’는 식으로 귀국을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기존 혐의에 더해 공무집행방해혐의를 추가해 사자트를 기소한 상태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또 사자트의 성 정체성을 바꾸는 ‘전환 치료’ 계획도 밝혔다. 26일 종교 사건을 다루는 이드리스 아마드 말레이시아 총리부 상원의원은 “사자트에 대한 지도와 상담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아마드 의원은 “만약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한 본성으로 돌아가고싶어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도 그를 처벌하고 싶지 않다. 단지 교육하고 싶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트렌스젠더 여성을 남성 교도소에…이슬람 성소수자 인권 밑바닥이에 대해 성소수자(LGBTQ) 단체는 사자트가 체포되면 트렌스젠더 여성임에도 남성 수용 시설에 갇힐 것을 우려했다. 또 사자트 체포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고 호소했다. 말레이시아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저스티스 포 시스터스’는 24일 성명을 통해 성소수자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내 트렌스젠더는 그간 성폭행과 신체적 학대, 의료 및 고용 차별, 임의 체포, 투옥 등 갖은 핍박을 당했다. 사자트가 유명해진 뒤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모양새다. 1월 총리부 차관이 나서서 성소주자 처벌 강화를 언급한 데 이어, 6월에는 정부 태스크포스가 이슬람교를 모욕하고 성수소자 생활방식을 장려하는 소셜미디어 이용자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이슬라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자들은 이제 트랜스젠더의 모스크 등 이슬람교 예배당 출입을 금지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사자트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터무니없는 괴롭힘과 박해는 그 나라가 성소수자 사회에 얼마나 억압적이고 학대적인지를 부각시킨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성소수자 공동체를 때려눕히고 궁극적으로 억압하기 위해 종교를 곤봉처럼 휘두르고 있으며, 사자트와 같은 트랜스젠더가 그 피해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 [나우뉴스] 여자옷 입었다가 남자교도소 가게 생긴 트렌스젠더 논란

    [나우뉴스] 여자옷 입었다가 남자교도소 가게 생긴 트렌스젠더 논란

    이슬람 종교행사에 여성복을 입고 나타났다가 기소된 말레이시아 트랜스젠더가 태국에서 붙잡혔다. 28일 워싱턴포스트는 이슬람율법 샤리아 위반 혐의로 수배령이 떨어졌던 말레이시아 트렌스젠더 사업가 누르 사자트(36, 본명 무하마드 사자드 카마루즈 자만)가 불법 입국 혐의로 태국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태국은 말레이시아 당국의 지속적 송환 요구에 따라 사자트 추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키사나 파다나차로엔 태국 경찰 부대변인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사자트 추방이 진행 중이며, 많은 요인이 고려될 것”이라고 밝혔다. 타니 상랏 태국 외무부 대변인은 “태국 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근거하여 이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자트는 2018년 이슬람 종교행사에 말레이시아 여성 전통의상 바주 쿠룽을 입고 갔다가 당국 조사를 받았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지난 1월 사자트를 이슬람교 모욕 혐의로 기소했다. 국교가 이슬람교인 말레이시아는 인구 60%가 무슬림이다. 무슬림에게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가, 비무슬림에게는 민법이 적용되는 이중 법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슬람 법 체계에서 무슬림의 성전환은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불법이다. 관련법에 따라 최고 3년의 징역형과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사자트는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밝혔다. 유명 웹예능에 잇따라 출연하며 트랜스젠더 여성의 삶을 대중에 공개했다. 화장품 사업을 병행하며 기업가로서의 입지도 다졌다. 하지만 현지 이슬람 공동체는 사자트의 이 같은 행보를 용납하지 않았다. 여성복을 입고 이슬람 종교행사에 등장한 사자트를 법으로 다스렸으며, 개종 의사를 밝힌 그에게 위협을 가했다. 사자트는 “(안티 트랜스젠더 때문에) 종교를 포기하고 싶어졌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는데, 사람들은 우리를 나쁘다고 비난한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가 숱한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사자트 같은 무슬림이 기독교나 힌두교 등으로 개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샤리아가 금지 규정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자트는 말레이시아를 탈출, 태국으로 도피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월 그가 샤리아 고등법원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말레이시아 당국은 여권을 취소하고 체포영장을 발부, 수배 조처를 내렸다.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사자트는 지난 8일 불법입국 혐의로 태국 경찰에 체포됐다. 2주에 한 번 이민국에 신상을 보고한다는 조건으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추방 가능성이 높다. 사자트는 일단 호주로의 망명을 원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일간 더스타와 하리안 메트로에 따르면 사자트는 유엔난민기구(UNHCR)에 난민 신청을 했다. 익명의 태국 당국자는 그가 유엔난민기구 태국 방콕 사무소에서 망명 신청자 카드를 발급받았다고 귀띔했다. 유엔난민기구가 발급하는 망명 신청자 카드는 체포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수준의 보호를 제공한다.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이 카드는 공식적으로 그 어떤 법적 가치도 없지만, 유엔난민기구는 사자트가 본인 의사에 반하여 송환되지 않도록 노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사자트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며 태국을 압박하고 있다. 압드 잘릴 하산 말레이시아 범죄수사국장도 경찰과 외교부, 법무장관실이 사자트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산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사자트의 본명을 언급하며, 그에게 ‘좋게좋게 가자’는 식으로 귀국을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기존 혐의에 더해 공무집행방해혐의를 추가해 사자트를 기소한 상태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또 사자트의 성 정체성을 바꾸는 ‘전환 치료’ 계획도 밝혔다. 26일 종교 사건을 다루는 이드리스 아마드 말레이시아 총리부 상원의원은 “사자트에 대한 지도와 상담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아마드 의원은 “만약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한 본성으로 돌아가고싶어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도 그를 처벌하고 싶지 않다. 단지 교육하고 싶을 뿐”이라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성소수자(LGBTQ) 단체는 사자트가 체포되면 트렌스젠더 여성임에도 남성 수용 시설에 갇힐 것을 우려했다. 또 사자트 체포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고 호소했다. 말레이시아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저스티스 포 시스터스’는 24일 성명을 통해 성소수자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내 트렌스젠더는 그간 성폭행과 신체적 학대, 의료 및 고용 차별, 임의 체포, 투옥 등 갖은 핍박을 당했다. 사자트가 유명해진 뒤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모양새다. 1월 총리부 차관이 나서서 성소주자 처벌 강화를 언급한 데 이어, 6월에는 정부 태스크포스가 이슬람교를 모욕하고 성수소자 생활방식을 장려하는 소셜미디어 이용자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이슬라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자들은 이제 트랜스젠더의 모스크 등 이슬람교 예배당 출입을 금지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사자트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터무니없는 괴롭힘과 박해는 그 나라가 성소수자 사회에 얼마나 억압적이고 학대적인지를 부각시킨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성소수자 공동체를 때려눕히고 궁극적으로 억압하기 위해 종교를 곤봉처럼 휘두르고 있으며, 사자트와 같은 트랜스젠더가 그 피해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여자옷 입었다가 남자교도소 가게 생긴 트렌스젠더 논란

    여자옷 입었다가 남자교도소 가게 생긴 트렌스젠더 논란

    이슬람 종교행사에 여성복을 입고 나타났다가 기소된 말레이시아 트랜스젠더가 태국에서 붙잡혔다. 28일 워싱턴포스트는 이슬람율법 샤리아 위반 혐의로 수배령이 떨어졌던 말레이시아 트렌스젠더 사업가 누르 사자트(36, 본명 무하마드 사자드 카마루즈 자만)가 불법 입국 혐의로 태국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태국은 말레이시아 당국의 지속적 송환 요구에 따라 사자트 추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키사나 파다나차로엔 태국 경찰 부대변인은 “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사자트 추방이 진행 중이며, 많은 요인이 고려될 것”이라고 밝혔다. 타니 상랏 태국 외무부 대변인은 “태국 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근거하여 이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자트는 2018년 이슬람 종교행사에 말레이시아 여성 전통의상 바주 쿠룽을 입고 갔다가 당국 조사를 받았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지난 1월 사자트를 이슬람교 모욕 혐의로 기소했다. 동성애도 성전환도 ‘불법’ 쏟아진 살해 위협국교가 이슬람교인 말레이시아는 인구 60%가 무슬림이다. 무슬림에게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가, 비무슬림에게는 민법이 적용되는 이중 법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슬람 법 체계에서 무슬림의 성전환은 동성애와 마찬가지로 불법이다. 관련법에 따라 최고 3년의 징역형과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사자트는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밝혔다. 유명 웹예능에 잇따라 출연하며 트랜스젠더 여성의 삶을 대중에 공개했다. 화장품 사업을 병행하며 기업가로서의 입지도 다졌다. 하지만 현지 이슬람 공동체는 사자트의 이 같은 행보를 용납하지 않았다. 여성복을 입고 이슬람 종교행사에 등장한 사자트를 법으로 다스렸으며, 개종 의사를 밝힌 그에게 위협을 가했다.사자트는 “(안티 트랜스젠더 때문에) 종교를 포기하고 싶어졌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는데, 사람들은 우리를 나쁘다고 비난한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가 숱한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사자트 같은 무슬림이 기독교나 힌두교 등으로 개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샤리아가 금지 규정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자트는 말레이시아를 탈출, 태국으로 도피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월 그가 샤리아 고등법원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말레이시아 당국은 여권을 취소하고 체포영장을 발부, 수배 조처를 내렸다.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사자트는 지난 8일 불법입국 혐의로 태국 경찰에 체포됐다. 2주에 한 번 이민국에 신상을 보고한다는 조건으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추방 가능성이 높다. 호주 망명 원하지만…‘치료’ 해주겠다는 이슬람사자트는 일단 호주로의 망명을 원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일간 더스타와 하리안 메트로에 따르면 사자트는 유엔난민기구(UNHCR)에 난민 신청을 했다. 익명의 태국 당국자는 그가 유엔난민기구 태국 방콕 사무소에서 망명 신청자 카드를 발급받았다고 귀띔했다. 유엔난민기구가 발급하는 망명 신청자 카드는 체포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수준의 보호를 제공한다.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이 카드는 공식적으로 그 어떤 법적 가치도 없지만, 유엔난민기구는 사자트가 본인 의사에 반하여 송환되지 않도록 노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사자트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며 태국을 압박하고 있다. 압드 잘릴 하산 말레이시아 범죄수사국장도 경찰과 외교부, 법무장관실이 사자트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산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사자트의 본명을 언급하며, 그에게 ‘좋게좋게 가자’는 식으로 귀국을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기존 혐의에 더해 공무집행방해혐의를 추가해 사자트를 기소한 상태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또 사자트의 성 정체성을 바꾸는 ‘전환 치료’ 계획도 밝혔다. 26일 종교 사건을 다루는 이드리스 아마드 말레이시아 총리부 상원의원은 “사자트에 대한 지도와 상담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아마드 의원은 “만약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한 본성으로 돌아가고싶어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도 그를 처벌하고 싶지 않다. 단지 교육하고 싶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트렌스젠더 여성을 남성 교도소에…이슬람 성소수자 인권 밑바닥이에 대해 성소수자(LGBTQ) 단체는 사자트가 체포되면 트렌스젠더 여성임에도 남성 수용 시설에 갇힐 것을 우려했다. 또 사자트 체포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고 호소했다. 말레이시아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저스티스 포 시스터스’는 24일 성명을 통해 성소수자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고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내 트렌스젠더는 그간 성폭행과 신체적 학대, 의료 및 고용 차별, 임의 체포, 투옥 등 갖은 핍박을 당했다. 사자트가 유명해진 뒤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모양새다. 1월 총리부 차관이 나서서 성소주자 처벌 강화를 언급한 데 이어, 6월에는 정부 태스크포스가 이슬람교를 모욕하고 성수소자 생활방식을 장려하는 소셜미디어 이용자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이슬라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자들은 이제 트랜스젠더의 모스크 등 이슬람교 예배당 출입을 금지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사자트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터무니없는 괴롭힘과 박해는 그 나라가 성소수자 사회에 얼마나 억압적이고 학대적인지를 부각시킨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성소수자 공동체를 때려눕히고 궁극적으로 억압하기 위해 종교를 곤봉처럼 휘두르고 있으며, 사자트와 같은 트랜스젠더가 그 피해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 아프간 여자 청소년 축구팀, 탈레반 피해 포르투갈 망명

    아프간 여자 청소년 축구팀, 탈레반 피해 포르투갈 망명

    아프가니스탄 여자 청소년 축구팀이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22일 AP통신에 따르면 아프간의 14∼16세 여자 청소년 축구팀 선수 26명과 코치, 그들의 가족 등 80명이 지난 19일(현지시간) 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도착했다. 이들을 아프간에서 해외로 망명시키는 이른바 ‘사커볼 작전’은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관리를 지냈던 아프간 특수부대 근무 경력의 로버트 매크리리가 주도했다. 그는 “포르투갈이 아프간 소녀들의 망명을 허가했다”며 “이 소녀들은 세계와 인류의 진정한 빛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이번 작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함께 전직 미 장성, 미 중앙정보국(CIA) 베테랑 출신 인도주의 단체 설립자 등이 참여했다. 1996~2001년의 1차 집권기에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앞세워 여성의 사회활동을 금지하고 교육 기회를 박탈했던 탈레반이 지난달 다시 정권을 잡자 FIFA는 생명을 위협받게 된 아프간 여자 축구선수들을 탈출시켜 달라는 서한을 각국 정부에 보냈다. 성인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과 가족 등은 지난달 24일 미군 수송기를 통해 호주로 탈출했지만, 청소년 축구팀은 카불 공항 폭탄 테러 등으로 발이 묶였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육로를 통해 파키스탄으로 넘어간 후 포르투갈행 전세기를 타는 데 성공했다. 선수들은 AP통신에 “축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포르투갈 출신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만나고 싶다는 소녀도 있었다. 탈레반 1차 집권기에 스웨덴으로 건너간 아프간 여자 축구 대표팀 골키퍼 겸 코치 위다 제마라이는 “이제 소녀들이 꿈을 계속 꿀 수 있게 됐다”며 감사를 표했다. 탈레반은 재집권 후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했지만,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고 외출한 여성을 사살하는 등 과거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 기록말살형에 망명설, 자오웨이 실종 20일만 고향서 목격

    기록말살형에 망명설, 자오웨이 실종 20일만 고향서 목격

    인터넷 상의 모든 기록이 사라지는 기록말살형을 받으면서, 중국 정부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중국 여배우 자오웨이가 고향에서 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지난 14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자오웨이가 고향 안후이성 우후시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퍼졌다. 대만 언론인 ‘중시전자보’는 16일 실종 20일 만에 자오웨이가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모든 텔레비젼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름이 삭제됐으며, 텐센트 비디오·아이치이·유큐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서도 사라졌다. 물론 자오웨이가 관련된 작품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작품 크레딧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자오웨이의 기록말살형에 대해 중국 당국과 플랫폼 업체는 어떤 이유도 내놓지 않았다. 결국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 몇몇 와인 농장을 갖고 있는 자오웨이가 프랑스로 망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이동통신회사인 ‘차이나 모바일’에서 찍은 사진에서 자오웨이는 편안한 차림새에 목에는 전자 담배를 걸고 있다. 자오웨이는 인기 대만 드라마 ‘황제의 딸’에 1998년 출연하면서 명성을 얻었고,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사업가인 남편 황유룽과 100억 위안에 가까운 재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오웨이가 기록말살형을 받고 연예계에서 퇴출된 것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로 2001년 욱일승천기 문양의 옷을 입고 패션 잡지 화보 촬영을 한 것이 거론된다. 당시에는 중국에서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잡지 편집장이 사과하고, 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사건은 무마됐다. 게다가 2018년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찍혀 연예계에서 퇴출당한 장저한도 자오웨이가 설립한 회사의 소속 배우다. 결정적인 사건으로는 2018년 주가 조작 스캔들이 꼽힌다. 당시 자오웨이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자기 돈은 단돈 6000만 위안만 들이고 은행에서 30억 위안을 빌려 시가총액 120억 위안짜리 상장사를 매입하려다 당국에 적발됐다. 특히 자오웨이가 투자한다는 허위 공시만 믿고 회사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거액의 손실을 입어, 수억원대 벌금과 5년간 중국 주식시장 투자 금지란 처분이 내려졌다.
  • 해를 품은 붉디붉은 만… ‘상생의 두 손’ 뜨겁네

    해를 품은 붉디붉은 만… ‘상생의 두 손’ 뜨겁네

    신라 연오랑·세오녀 해와 달 설화 깃든 곳철기 전파한 전설은 수천년 뒤 제철소로거북 바위 서면 귓가 맴도는 ‘영일만 친구’ 호랑이 꼬리 닮았네… 동해 최대 ‘호미곶’신년 일출 명소 ‘상생의 손’ 최고의 포토존짙푸른 바다 끼고 드라이브, 내 가슴이 뻥늘 해를 맞는 땅이 있다. 영일만(迎日灣)을 품은 도시 경북 포항. 해와 철의 도시다.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중략)/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포항 하면 당장 떠오르는 노래, ‘영일만 친구’(1979)가 있다. 부산 기장군 출신 가수 최백호에게 유일한 친구 영일이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영일만 친구’는 포항을 상징하는 불후의 명곡이다. ‘목포의 눈물’(이난영),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제주도의 푸른밤’(최성원), ‘여수 밤바다’(장범준)와 함께 강력한 지역의 노래로 꼽힌다. 여담으로 최백호는 2012년 포항시의 각종 행사 및 홍보에 이 곡을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는 등 대인배적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발그레 달을 띄울 추석을 앞두고 대한민국 동해안 최대 만(灣)과 곶(串)을 품은 포항을 조심스럽게 다녀왔다. 동해로 불룩 튀어나온 호미곶과 그 너머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끌어안는 넉넉한 영일만은 포항의 상징이자 황금어장을 품은 삶의 터전이다. 예나 지금이나 포항은 동해안의 꽤 큰 규모의 어항이지만 현대에 들어 산업 및 군사도시 이미지로 각인됐다. 제철소와 함께 철강단지가 들어섰고 최대 규모 해병대 병력이 주둔해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어디 그뿐이랴. 푸른 바다와 높은 고산준령, 천년고찰, 운하, 전통시장 등 자연이나 문화적으로 모두 갖춘 천혜의 관광 도시다.●태곳적 해의 전설, 만(灣)에 비추다 과거 연일군(延日郡)에서 영일군(迎日郡), 이름에서도 줄곧 해와 떨어질 수 없었던 포항 영일만. 유명한 설화가 전해진다. 역대 포항 출신 중 가장 먼저 역사에 기록된 이는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편에 등장한다. 내용도 꽤 자세하고 극적이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157년) 바닷가에 살고 있었던 연오랑이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딛고 있던 커다란 바위가 갑자기 움직여 연오랑을 태우고 일본(왜)으로 건너갔다. 밀항이든 아니든 간에 왜에선 당연히 그를 신성시했다. 연오랑을 왕으로 삼았다. 왜 왜가 그를 왕으로 삼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연오랑은 돌아오고 싶지 않을 만큼 환대를 받았다. 부인인 세오녀는 어찌 됐나. 일 나갔던 남편이 아무 소식 없이 돌아오지 않으니 단단히 열이 받았는지 세오녀가 그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남편이 바닷가에 벗어 놓은 신발을 발견하고 역시 그 바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바위는 똑같이 세오녀를 태우고 망망대해로 떠났다. ‘바위 셔틀’을 탄 그녀 역시 왜에 도착했고 연오랑을 다시 만나 왕비가 됐다. 문제는 이들을 떠나보낸 신라였다. 이날부터 신라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해와 달이 사라졌다. 일관(日官)이 말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갔다. 도로 데려와야 한다.” 아달라왕은 사신을 보내 “돌아와 달라”는 말을 전했다. 연오랑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돌아가면 그저 어부고 여기선 왕이다. “돌아가지 않는 대신 왕비가 짠 비단을 줄 테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 보라”고 하자 과연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냈다.훗날 학자들은 이 설화에 대해 근사한 해석을 달았다. 신라의 권력 교체기에 왕족(천일창 왕자)이 여덟 가지 진귀한 보물을 들고 다지마 국에 망명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에 더해 다양한 근거를 제시했다. 천문학자들은 실제 일식이 그 시기에 있었을 것이라 했다. 연오가 일본에 전해준 것은 바로 철기를 다루는 기술(해)이며, 세오는 베를 짜는 직조술(달)을 가르쳐 줬다는 것. 융성했던 문화를 왜에 전파한 고대사가 설화 형식으로 기록됐다는 얘기다. 포항의 역대와 현재 지명인 연일(延日), 영일(迎日), 일월지(日月池) 등이 모두 이 설화에서 나왔다. 연오와 세오에 들어간 오(烏) 역시 해를 상징한다. 고구려인들은 해를 세 발 달린 까마귀 삼족오(三足烏)로 봤다. 포항 해병대 1사단이 주둔한 오천(烏川)의 지명은 여기서 나왔다. 1800년쯤 지나 1968년 영일만에 한반도 최초 종합제철소인 포항제철이 들어선 것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철과 해(烏, 日本)가 일찌감치 이곳과 연을 맺었던 셈이다. 역사는 이어진다.포항시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자리에 테마공원을 조성했다. 멀리 일본이 바라다보이는 영일만 해안 언덕 위에 정자와 신라 한옥촌 등을 지었다. 정자에 앉아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속까지 후련해진다. 공원을 조성하던 도중, 정말 땅속에서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발견됐다고 한다. 자연석이면서도 모양은 조각처럼 거북이를 빼닮았다. 설화 속 그 바위처럼 넓고도 기묘하게 생겼다. 신기할 따름이다. ●불룩 튀어나온 동해 최대 곶(串)에 서다 학창 시절 칠판에 분필로 슥슥 한반도를 그리던 선생님이 꼭 빠뜨리지 않았던 것이 바로 호미곶이다. 호랑이 꼬리를 닮았대서 호미곶(虎尾串)이다. 예전엔 간혹 ‘토끼 꼬리’라고도 했지만 조선 최고 풍수가 남사고(南師古)가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이며 백두산은 코, 호미곶은 꼬리에 해당하는 명당이라 설명한 후 호랑이 꼬리로 불렸다. ●‘영일’ 이름 덕… 해맞이 공원 일출에 빠지다 장기반도 끝에 있는 곳으로 대한민국 본토 최동단이다. 여기서 시계 방향으로 영일만이 시작된다. 연말에 신년 해맞이 인파가 몰린다. ‘영일’이란 이름 덕에 전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바다에서 해안 쪽을 보자면 기암이 가득한 해식애지만, 육지에서 수평선 쪽으로는 사실 이렇다 할 섬 하나 없어 허전했는데, 1999년 ‘상생의 손’이 만들어진 후 일출의 배경이 훨씬 근사해졌다.해맞이 광장부터 한 쌍의 ‘상생의 손’이 바다까지 이어진다. 붉은 태양과 그 빛이 녹아 들어간 바다를 배경으로 손가락마다 갈매기가 앉아 있는 사진이 유명하다. 이 장면을 남기기 위해 수많은 사진가들이 잠을 설쳐 가며 매일 아침 이곳을 찾는다. 상생이 아니라 고생의 손이 분명하다. 특히나 신년 일출이 아니라 요즘 같은 하절기라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 철장(鐵杖) 같은 모닝콜의 손이다. 1908년 세운 호미곶 등대를 기념하는 국립등대박물관과 새천년기념관 등 볼거리가 많아 날씨 탓에 일출을 놓친대도 위안 삼을 곳이 많다. 가는 길도 근사하다. 가까워질수록 점점 바다가 많이 보이더니 강사리 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예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린다. 드라이브 코스로 딱이다. 원양을 향해 불쑥 튀어나와 일대의 황금어장으로 유명한 구룡포. 이름도 무협지에 등장하는 지명처럼 근사하다. 사실 지명의 유래는 신라 진흥왕 때 아홉 마리 용의 승천 설화에 기인한다. 아무튼 동해상은 물론 울릉도와 오키 군도까지 단숨에 근접할 수 있는 구룡포항의 경제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일제는 어민을 모집해 사람(民)을 이곳에 심었다(植).●아! 구룡포, 근대사의 현장에 서다 구룡포 근대문화 역사거리의 탄생은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1900년대 초 일본인 어부들이 구룡포로 건너왔다. 어군을 따라가다 이곳에 닿은 도가와 야스부로와 하시모토 젠기치 일행은 구룡포에 정착해 일본인 어촌의 시조이자 리더가 됐다. 이른바 동해의 골드러시였다. 풍족한 어장에서 고기를 잡아 부유해진 그들은 학교와 신사를 짓고 조선 안의 일본을 건설했다. 구룡포는 자국에 생선을 수출하는 일제의 어업 전진기지가 됐다. 순식간에 엄청난 부를 쌓은 구룡포는 1930년대에 이미 극장과 병원, 백화점 등 첨단 생활시설과 주점, 식당, 유곽 등 유흥지구를 두루 갖춘 근대도시로 발전했다. 당시 신사와 소학교(현 구룡포 공원과 용왕당)로 오르는 계단에는 방파제와 근대식 어항을 세운 120인 공헌자 이름을 비석에 새겨 남겼다. 광복 이후 식민통치의 억울함에 분노한 주민들이 비석에 시멘트를 발라 지워 버렸다. 계단 오른편에 남아 있는 도가와 야스부로 송덕비에도 시멘트가 덧칠돼 있다. 계단 양옆 골목은 2층 목조의 적산가옥(일제강점기에 지은 일본식 가옥) 일색이다. 지금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하시모토 가옥은 전형적인 일본 고급주택으로 대부분의 자재를 일본에서 직접 들여왔을 정도로 많은 돈을 써서 지었다. 주택의 건축양식이며 자재, 소품이 보통 고급 주택 수준이 아니다.이 외에도 대등여관(현재 호호면옥)과 요릿집 일심정(현 찻집 후루사토야), 이케다 유희장(현 일반주택) 등 과거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근대 건물이 많아 드라마와 영화, 뮤직비디오 등의 단골 촬영지가 되고 있다. 얼마 전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역시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극 중에선 ‘옹산게장거리’로 나왔지만 구룡포다. 포스터에서 동백이(공효진 분)와 용식이(강하늘 분)가 바다를 바라보며 앉았던 계단 꼭대기는 수많은 관광객의 자리가 됐다. 100여년 전에 조성된 좁은 골목에 빼곡히 들어찼던 식당과 상점이 고스란히 카페와 소품숍으로 바뀌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요것조것 볼거리와 살거리가 많아 반나절씩 앉았어도 그리 지루하지 않다.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까멜리아(동백이네 가게), 동백이네 집 등과 다과 및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다.큰길가로 나오면 죄다 대게를 파는 식당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포항은 대게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금어기엔 수입 대게나 냉동대게를 쓰지만 제철이면 싱싱한 대게를 맛볼 수 있다. 구룡포초등학교 쪽으로 향하면 구룡포 까꾸네 모리국수가 나온다. 잡어를 한데 넣고 팔팔 끓인 얼큰한 국물 국수가 전국적으로 소문난 까닭에 끼니때와 상관없이 기나긴 줄을 드리운다. 구룡포초교 앞에는 바닷바람에 말린 해풍국수를 파는 구룡포할매국숫집과 수제 찐빵이 맛있기로 소문난 철규분식 등 이름난 맛집이 있고 바로 옆 구룡포 시장을 둘러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영일대 해변·포스코 거대한 야경, 내일을 비추다 포항에는 수영을 즐기기에 좋은 해변이 많다. 해병대 주둔지역이라 접근이 어려운 곳을 빼고도 영일대(구 북부), 칠포, 화진, 월포, 포항송도해수욕장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영일대 해수욕장이다. 영일만 내항의 중심 격이다. 도심과 가깝고 상업지구가 많이 들어서서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부산 해운대처럼 불야성의 도심 해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밤에 해변을 산책하다 보면 멀리 포항제철소가 눈에 들어온다. 투박한 용광로와 공장 건물에 형형색색 조명을 밝혀 마치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 속 산업도시 ‘인더스트리아’를 연상시키는 특이한 야경이 펼쳐진다. 바다 한가운데로 쭉 뻗은 제티 끝에는 전통 양식의 해상누각 영일정이 있어 반대편 포스코 야경과 대조를 이룬다.오목한 해변 뒤편으로는 많은 숙박업소와 식당, 술집, 카페 등이 밀집해 포항 밤문화의 중심지로 꼽힌다. 바다 전망의 호텔과 술집은 관광객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언제나 많은 이들이 영일대 해변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침 산책을 나오는 이들도 많다. 해변에는 철의 도시답게 ‘철’을 소재로 한 조형물이 늘어서 있다. 해가 떠오르는 수평선과 밀려드는 파도 그리고 모래밭의 조형물이 한데 어우러져 영일만 내항의 베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거친 동해의 숨결 속에서도 거대한 반도가 휘감은 덕에 영일만은 잔잔하고 묵묵히 내일 다시 떠오를 해를 기다릴 수 있다. 막막하고 지루한 코로나19의 터널 속, 해를 맞이하는 영일만의 신새벽에 서 있다면 아마도 아직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내일의 뜨거운 메시지’를 당장 받아 볼 수 있을 듯하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 “13세 소녀 집단 성폭행·살해”…아프간男, 가짜 신분으로 망명 신청

    “13세 소녀 집단 성폭행·살해”…아프간男, 가짜 신분으로 망명 신청

    ‘13세 소녀 집단 성폭행 후 살해’아프간 22세 男, 신분 속이고 英입국 13살 소녀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뒤 살해한 아프간 남성이 ‘가짜 신분’을 이용해 망명 신청을 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문제의 아프간 남성은 중죄 혐의를 받고 있는데도 가명을 사용해 난민 보트에 올랐다. 이후 영국에서 망명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영국 데일리 메일 등 현지 매체는 “오스트리아에서 13세 소녀 ‘레오니’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수배된 아프가니스탄 국적의 남성 라수일리 주바이둘라(22)가 가짜 신분으로 난민 보트를 타고 영국에 건너가 망명 신청을 했다”고 전했다. 13세 오스트리아 소녀 성폭행한 후 살해 혐의 체포 앞서 지난 6월26일, 성폭행 후 살해된 레오니는 비엔나의 한 나무에 묶인 채 발견됐다. 용의자는 주바이둘라를 포함한 아프간 남성 4명으로 알려졌다. 주바이둘라를 제외한 다른 아프간 남성들은 각각 16세, 18세, 23세다. 용의자들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레오니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자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트리아 경찰 당국 관계자들은 “피해자는 처음 두 명의 용의자를 알고 있었다. 용의자 중 18세 소년의 아파트로 동행했다. 그것은 자발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용의자들은 레오니를 살해한 후 시신을 카펫에 싼 뒤 아파트에서 90m가량 떨어진 지점에 유기했다.소녀 시신 발견되자 난민 보트 타고 영국으로 망명 주바이둘라는 이튿날 레오니의 시신이 발견되자 오스트리아를 떠났다. 그는 난민 보트를 타고 영국에 도착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홀로 오스트리아를 빠져 나와 가짜 신분으로 영국에 도착해 납세자들이 세금으로 마련해준 호텔에서 약 2주간 머물렀다. 이후 오스트리아 경찰의 제보로 영국 경찰에 체포됐다. 외신은 “영국 이민국 관계자들은 그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발생한 잔혹한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수배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피해자의 엄마는 “너무 화가 난다. 왜 이런 사람을 오래 전에 추방하지 않은 건가”라며 “내 딸은 자신을 유인한 16살 소년을 믿었을 뿐이다. 그게 내 소중한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한탄했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영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한 상태이며, 현재 송환 절차가 진행 중이다. 재판은 내년 1월 열릴 예정이다.
  • 13세 소녀 성폭행·살해하고 영국 건너가 망명 신청한 아프간 난민

    13세 소녀 성폭행·살해하고 영국 건너가 망명 신청한 아프간 난민

    오스트리아에서 13세 소녀를 집단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아프가니스탄 난민 4명 중 1명이 가짜 신분을 이용해 영국으로 건너간 사실이 드러나 현지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라수일리 주바이둘라(22)라는 실명이 밝혀진 이 용의자는 중죄 혐의를 받고 있는데도 가명을 사용해 난민 보트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망명까지 신청했던 사실이 최근 세상에 드러나면서 국경 안보에 관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스카이뉴스 등 영국 현지매체가 13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주바이둘라는 지난 7월 18일 난민 보트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와 7월 29일 신원이 드러나 체포될 때까지 거의 2주 동안 납세자들이 부담한 세금으로 수도 런던 동부 화이트채플에 있는 이비스 호텔에서 머물렀다. 현재 강제 송환 재판을 앞두고 있는 주바이둘라는 지난 6월 26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 중부에서 실종된 13세 소녀가 시신으로 발견된 뒤 그 나라를 탈출했다. 희생자는 비너노이슈타트 출신 레오니라는 이름의 여학생으로 시신 부검 결과 약물에 취해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질식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경찰은 SNS를 통해 희생자 소녀를 만난 뒤 성관계 무용담을 자랑했던 한 무리의 아프간 난민들에 관한 수사에 들어갔다.희생자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사흘 전 어머니 멜라니(40)와 아버지 하네스(39)에 의해 실종 신고가 접수돼 있었다. 소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살해되기 전날인 25일 다뉴브 운하의 번화가에서 연락하고 지내던 아프간 출신의 16세 소년과 그 일행이었던 주바이둘라와 함께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그후 소녀는 빈의 제22구역인 도나우슈타트에 있는 한 아파트로 가서 각각 18세와 23세인 아프간 남성 두 명을 더 만났다. 이 중에는 소녀에게 약물을 먹인 것으로 추정되는 마약 거래자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소녀는 이들 남성에게 살해돼 카펫에 감싸여진 채 아파트에서 90m 정도 떨어진 곳에 유기됐다. 현지 경찰은 처음에 주바이둘라가 이탈리아로 달아난 것으로 생각하고 국제 공조 수사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용의자는 인스브루크에서 기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 프랑스 북부까지 건너가서 난민 보트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경찰 조사에서 이들 용의자 중 적어도 두 명이 이번 사건 이전 이미 강제 추방 위기에 처해 있었고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계 당국을 향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희생자의 어머니 멜라니는 현지언론에 “너무 화가 난다. 왜 이런 사람은 오래 전에 추방되지 않았는가?”라고 되물으며 “내 딸은 자신을 유인한 16세 소년을 믿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 같다”고 한탄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아프간에서 영국으로 넘어오는 난민 중에 이런 중범죄자는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과 같은 테러리스트가 섞여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에세이 전성시대에 대한 단상/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에세이 전성시대에 대한 단상/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에세이나 수필을 읽고픈 욕망의 뿌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저자의 삶의 결과 마음의 무늬가 어떤 글쓰기보다도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일 테다. 대학 시절 예술기행의 매혹을 통해 글 쓰는 삶에 대한 동경(憧憬)을 간직한 이래 늘 에세이 장르에 대한 관심을 지녀온 편이다. 이즈음 ‘에세이의 전성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에세이, 산문집이 활발하게 간행되고 있다. 한 달 동안 평균 200여권의 신간 에세이가 세상에 선보인다. 엄청난 양이다. 늘 출판과 문학의 위기가 언급되고 있지만 외려 에세이 출판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에세이 장르의 활성화는 그 자체로 고무적인 일이지만, 과연 양적 증가가 질적 수준을 동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때로 소셜미디어에서 환호하는 에세이를 덜컹 구입했다가 실망한 적도 많다. 글 쓰는 주체의 ‘정신의 직접성’과 ‘체험의 구체성’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에세이는 그만큼 매혹적이며 치명적인 장르다. 이 점은 에세이 쓰기에 사유의 힘과 적절한 미적 통제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지리멸렬한 자기 노출이나 사적인 주관성에 함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글쓰기를 통해 한 권 책의 저자가 된다는 건 따지고 보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인 인정 욕구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제 누구나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시대, ‘모두가 작가인 시대’다. 요컨대 에세이의 커다란 유행은 글쓰기와 출판의 대중화라는 사실과 이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읽기보다는 쓰기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사유의 힘’을 담은 에세이보다는 힐링을 강조하는 내용과 가벼운 처세술에 가까운 수필이 대세다. 아일랜드의 세계적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자신의 대표작인 ‘더블린 사람들’과 ‘망명자들’ 같은 작품의 출간을 여러 번 거절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즈음 얼마나 출판과 글쓰기가 대중화됐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물론 이런 변화에 긍정적인 면과 대중민주주의의 흐름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같은 추세에는 양날의 칼이 존재한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와 출판의 대중화는 깊은 사유의 힘과 지성의 아름다움을 지닌 책들이 드물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글쓰기를 위해서는 먼저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사유를 키우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에 대한 안목과 시야를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쓰기를 위해서는 그 몇십 배 이상의 읽기가 필요하다. 이제는 그런 과정이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채 쓰기와 출판 자체가 목적인 경우도 많다. 누구나 자신이 쓴 책 한 권쯤은 존재하길 원한다. 그건 지극히 정당한 욕망이지만, 이 욕망이 출판 시장으로 옮겨 오면 나비효과가 인다. 물론 몇몇 예외가 있겠지만, 출판 대중화의 이면에는 대체로 정말 좋은 책은 잘 안 팔린다는 착잡한 진실이 존재한다. 깊은 사유와 농익은 안목을 담은 좋은 에세이가 판매 면에서도 부진하고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근래 간행된 책을 예로 든다면 이산하 시인이 에세이 ‘생은 아물지 않는다’나 최근 타계한 재미 원로 정치학자 이정식 교수의 ‘이정식 자서전’은 그 책의 소중한 가치와 매력만큼 독자에게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이른바 ‘모두가 작가인 시대’의 의미를 분석하며 “나는 사회적 약자의 자기 이야기가 ‘쉬운 책’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얘기한 바 있다. 이 발언에 깊게 공감했다. 언젠가 내 감성과 입장을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 정말 좋은 책이라는 취지의 얘기를 접한 적이 있다. 정말 그렇다. 편하고 익숙하게만 다가오는 에세이는 당신의 시야와 안목을 넓혀 주지 못한다. 코로나 시대의 두 번째 가을이다. 독서의 계절이기도 한 이 청아한 가을이 독자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 깊은 지성과 감각의 아름다움을 담은 에세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입대 날 병무청 앞에 선 양심적 병역거부자

    입대 날 병무청 앞에 선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심사에서 탈락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나단(32)씨는 6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전쟁없는세상, 군인권센터, 참여연대 주관으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 7월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 대체복무 신청이 기각된 것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나씨는 심사 과정에서 당한 반인권적 압박 면접 상황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신병훈련소 입소해야 하는 나씨는 이를 거부하고 병무청 앞에서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나씨는 지난해 10월 13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대체역 편입을 신청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지난 7월 16일 나씨의 신념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위원회는 병역 의무를 기피하려는 의도가 없고 사유가 있을 때 징집 또는 소집을 연기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29일 대체역심사위원회가 출범한 후 1667명이 대체역 심사를 통과했다. 그중 단 6명만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사람이었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심사위원들은 심사과정에서 나씨가 한 이야기의 꼬투리를 잡았다”면서 “심사위원 개인의 견해를 밝히면서 그 견해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밝히는 식(의 행위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나씨가 병역 거부를 고민하며 망명을 고려했다고 하자 ‘진지하지 않은 양심’이라고 했고 비속어를 쓰며 공격적으로 질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심사와 조사 과정에서 있었던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나씨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랑하지 않는 존재를 목숨 바쳐 구할 의무가 제게는 없다”며 “내 양심이 대체역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인지, 군대에 갈 수 있으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인지 (심사위) 기각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바다 건너 일본까지 헤엄쳐 가 망명 신청한 러시아인

    바다 건너 일본까지 헤엄쳐 가 망명 신청한 러시아인

    러시아인 한 명이 바다 건너 일본까지 헤엄쳐 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20일 일본 교도통신은 홋카이도의 작은 어촌마을 시베쓰에서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는 러시아인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17일 러시아 사할린주에 딸린 쿠나시르섬에서 종적을 감춘 망명 신청자는 이즈메니 해협 건너 일본 홋카이도 시베쓰까지 20㎞ 이상을 헤엄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시베쓰 해안에서 발견된 그는 인근 경찰서로 연행돼 입국 경위를 조사받은 후 구금됐다. 영유권 분쟁 지역인 쿠나시르섬 주민이 일본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20일 주일러시아대사관은 “러시아인이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와 관련하여 주일러시아대사관과 삿포로주재러시아영사관이 일본 당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언론도 속속 관련 소식을 전했다. 망명 신청자의 신원에 관한 보도도 잇따랐다. 모스크바타임스와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익명의 소식통 말을 인용해 “우드무르트공화국 수도 이젭스크 출신의 바스 페닉스 노카드(38)가 잠수복을 입고 홋카이도까지 24㎞를 헤엄쳐 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가 바다를 건너기 전 해안까지 타고 이동한 오토바이를 팔아 돈을 송금해달라고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노카드는 2011년 비자 규정 위반으로 일본에서 추방된 전력이 있는 자다. 태국과 발리에서도 문서 위조 혐의로 추방됐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극동 지역 이주 정책에 따라 무상으로 1헥타르(약 3000평)의 땅을 받고 쿠릴열도 쿠나시르섬으로 이주했다. 현지언론은 집에서 다수의 일본 포스터가 발견된 점과, 일본어 수업 수강 기록이 있는 점 등을 들어 그가 일본 문화에 심취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그러나 삿포로주재러시아영사관은 망명 신청자의 신원에 대한 언론 추정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사관 관계자는 “일본 당국이 망명 신청자의 신원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공식 확인 자체가 없었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23일 일단 “망명 신청자의 입국 경위를 확인한 뒤 관련 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망명 신청자가 살던 쿠나시르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일본 홋카이도 사이에 위치한 쿠릴열도에서도 최남단에 있는 섬이다. 일본은 쿠나시르를 포함해 이투루프, 시코탄, 하보마이 군도 등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을 ‘북방영토’라 칭하며 러시아와 영유권 갈등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1855년 제정 러시아와 체결한 통상 및 국경에 관한 양자조약을 근거로 이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열도를 실효 지배 중인 러시아는 남쿠릴열도가 2차 대전 종전 후 전승국과 패전국 간 배상 문제를 규정한 국제법적 합의에 따라 합법적으로 러시아에 귀속됐다면서 반환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요리 못하면 여성 몸에 불질러”…‘성노예’ 전락한 아프간 여성들

    “요리 못하면 여성 몸에 불질러”…‘성노예’ 전락한 아프간 여성들

    아프간 인권운동가, ‘탈레반 실화’ 폭로“우린 달라졌다” 거짓 선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여성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폭력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24일 해외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의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아프간 전직 판사 출신인 인권운동가 나즐라 아유비는 스카이뉴스를 통해 “지난 몇 주 사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많은 여성들은 성노예로 전락해 이웃 나라로 보내졌고 어린 소녀들은 탈레반 전사들과 강제 결혼을 강요받고 있다”며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던 탈레반의 약속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탈레반은 전사들에게 요리를 해주도록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있다”며 “탈레반 전사들은 요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여성 몸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아유비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구타와 채찍질을 당하며 심지어 고문과 살해 등도 어김없이 자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유비는 탈레반 통치 아래에서의 삶은 ‘악몽’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몇 달간 수백여 명의 여성 활동가 및 인권운동가들이 탈레반에 의해 암살당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아유비는 타지키스탄에서 법학 및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해 아프가니스탄 파르완 지역에서 여성 최초로 판사가 됐다. 자유와 인권을 옹호해온 아유비는 이슬람 과격 단체의 표적이 됐고, 그는 사법부를 떠나 피신 생활을 하다 지난 2015년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망명 생활 중이다. 그는 탈레반의 통제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판사로서 강력한 사회적 위치에 있었던 아유비는 탈레반 집권 후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그저 여성이란 이유로 혼자 집 밖에 나갈 수도 없어 네 살 배기 이웃 남자아이와 함께 나서야만 했던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다. 1996~2001년 탈레반이 아프간을 통치하던 시절, 여성들은 일하거나 학교에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집에서 벗어날 때도 항상 남성이 동행해야만 했고, 얼굴을 드러내면 처벌벋아 부르카라 불리는 천을 온 몸에 뒤집어써야 했다. 부르카는 머리와 목만 가리는 히잡과 달리 눈 분위에도 망사천이 달려있다. 탈레반은 이번에는 여성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프간 여성들은 탈레반이 가져올 새로운 통치를 두려워하고 있다. 또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탈레반이 총격을 가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부르카는 무슬림 가운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여성들만 주로 입는다.하지만 이에 대해 23일 탈레반 대변인은 ‘가짜 뉴스’라고 부인하며 “그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히잡을 쓰지 않았다면 히잡을 써야 하며 여성이 히잡을 쓴다면 당신 나라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권리를 가질 것”이라며 “현재 여성 교사들은 업무를 재개했고 여성 기자들 역시 복귀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에선 이미 과거 탈레반 집권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 中 “시진핑 중공 사상으로 학생 두뇌 무장” 교과서 반영 추진

    中 “시진핑 중공 사상으로 학생 두뇌 무장” 교과서 반영 추진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단계적 학습”中공산당·국가·사회주의 사랑하는 마음심기상하이 “영어시험 대신 시주석 사상 교육必”중국에서 시진핑 국가 주석의 장기 집권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교육 당국이 시 주석의 사상인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초등학교 등 정식 교과과정 교재에 넣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중국 공산당과 사회주의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고 대학교와 대학원생들에게까지 중국식 사회주의 사상 교육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과 큰 갈등을 빚었던 홍콩과 대만 국민들의 반(反)중국 정서를 근본부터 와해하려는 시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상 학습은 당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저거 임무” 24일 관영매체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중국 국가교재 위원회는 최근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관련 내용을 교과과정 교재에 넣는 것과 관련한 지침서를 발표했다. 국가교재 위원회 판공실 관계자는 이날 교육부 홈페이지를 통해 “이 사상을 학습하는 것은 전체 당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임무”라면서 “이 사상으로 학생의 두뇌를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에 이어 대학 학부와 대학원까지 단계적으로 학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초등학교 때는 학생을 계몽하는 데 중점을 둬 공산당·국가·사회주의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고, 중학교 때는 감성적 체험과 지식학습을 결합해 기본적인 정치 관점을 형성하도록 한다는 식이다. 또 사상과정치 과목을 중심으로 사상 교육을 진행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사상의 핵심 요지, 이론과 실천, 방법론, 역사적 지위 등을 가르칠 계획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인민일보는 “지침서 발표는 초중고와 대학에서 이 사상을 학습·관철하는 중요한 조치”라면서 “민족 부흥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을 시대적인 새 사람을 양성하는 데 중요한 촉진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중국 상하이 교육 당국은 최근 초등학교의 영어 기말고사 실시를 제한하는 등 학업 부담 경감을 강조하면서도, 새학기부터 시 주석의 사상을 반드시 학습하도록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중국군, 홍콩서 육해공 합동훈련“탈주범 추적 검거” 中반대파에 경고 한편 홍콩에 주둔하는 중국 인민해방군(중국군) 부대가 최근 탈주자를 추적·검거하는 내용이 포함된 육해공 합동훈련을 진행했다. 지난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후 많은 민주진영 인사들이 해외로 망명하거나 체포·기소된 상황에서 이번 훈련은 중국이 반대파에 보내는 경고로 해석된다. 지난 2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는 지난 20일 웨이보 계정에 86초 분량의 훈련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인민해방군은 바닷길을 통해 도망가는 수상한 배를 적발·추적해 탈주자를 검거하고, 부상자를 헬기로 이송하며, 산불 진압에 나서는 등의 훈련을 펼쳤다. 인민해방군의 차량은 홍콩의 도심을 가로질렀고, 2대의 군용헬기는 홍콩의 마천루 위를 순찰했다. 인민해방군은 “방위 임무 수행을 위한 홍콩부대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시험하기 위해 육해공 합동훈련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 탈레반에 두 차례 죽을 뻔했던 아프간 전 판사 “그들요, 절대 안 변해요”

    탈레반에 두 차례 죽을 뻔했던 아프간 전 판사 “그들요, 절대 안 변해요”

    요즈음 매일 아침 그녀가 잠에서 일어나면 전화에 아프가니스탄의 친구들이 보내온 절망적인 문자와 음성 메시지들이 가득 차 있다. 마르자 바바카카일은 아프간의 지방 판사로 일하다 두 차례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살해 위협을 받고 탈출해 2008년부터 영국에 머무르고 있는데 “인간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23일(이하 현지시간) 야후! 뉴스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았다. 탈레반이 그녀의 목숨을 노린 것은 여성을 보호하려는 그녀의 노력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첫 살해 시도는 1997년 그녀의 고향인 바글란주를 탈레반이 점령한 바로 다음날 있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는 어제일처럼 기억이 생생하다며 탈레반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걱정하고 있다. 난 희망을 버렸다. 여성들뿐만 아니다. 아프간의 새 세대는 물론 모두에 대해 그렇다.” 바바카카일은 인터뷰 도중 그녀가 받은 음성 메시지 하나를 들려줬는데 유명 여성 정치인의 것이라고 했다. 물론 신변에 위협이 가해질까봐 우려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몇초마다 끊기는 가운데 그 정치인은 훌쩍이며 “난 무섭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라고 속삭였다. 지난 15일 탈레반이 카불마저 장악한 뒤 이렇게 받는 절박한 메시지가 매일 수십통이라고 했다. 탈레반은 곧바로 여성의 인권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지 여성 활동가들은 전혀 믿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들이 아프간에서 벌여온 운동들은 똑똑한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하룻밤새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이렇게 말하기 쉽지 않은데, 받아들이기 어렵다.” 많은 친구들이 20여년 전 자신처럼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데 북부 풀 이 쿰리 출신인 바바카카일은 “내 인생 최악의 나날들이었다”고 돌아봤다. 커다란 무장 차량을 타고 온 아홉 탈레반 전사가 그녀의 집 문을 박차고 들어와 소리를 지르며 집안 곳곳을 뒤졌다. 간신히 문 뒤에 숨어 5시간을 버텼다. 그들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숨은 곳을 대라며 어머니의 뺨을 갈겼다. 그녀가 가정법원 판사로서 학교와 난민대피소를 만들었다는 것이 이유였다.1990년대 이 나라의 여성 판사는 몇 명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임용 자격을 얻은 뒤 날아갈 듯이 기뻐했는데 얼마 안 있어 법률적 제약이 너무 심해 공정한 판결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해서 그녀는 1994년 여성을 돕고 이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며 단체를 결성했다. 의사에 반한 결혼이나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여성들을 교육시켜 취업을 돕는 일이었는데 탈레반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탈레반이 집안을 뒤진 다음날, 그녀와 가족들은 이웃 파키스탄으로 피신해 몇년을 지냈다. 미국이 침공한 뒤 2007년 카불로 돌아가 여성을 돕는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정기적으로 찾게 됐다. 어느날 편지를 받았는데 ‘내일 널 죽인다’는 내용이었다. 어머니가 피하라고 해 그녀는 평소 들고 다니던 작은 여행가방에 모든 것을 챙겨 병원 밖으로 나왔다. 도로를 걷는데 차량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와 그녀를 친 뒤 달아났다. 반년을 입원해 있었는데 치아가 모두 부러지고, 등과 다리도 다쳤다. “(탈레반이) 두 번이나 날 공격했다. 때때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회복된 뒤에도 그녀는 카불에 머물렀지만 탈레반 전사들의 살해 위협은 계속됐다. 해서 영국 정부에 망명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져 두 번째로 아프간을 벗어났다. 그런데 다시 13년 만에 비록 몸은 멀리 있지만 탈레반 악몽에 다시 붙들리고 있다.
  • 아프간 탈출하려는 수백만, 어떤 나라가 가장 많이 도왔나

    아프간 탈출하려는 수백만, 어떤 나라가 가장 많이 도왔나

    국내 주한미군 기지에도 아프가니스탄 피란민을 받느냐 마느냐를 놓고 사회적 논의가 점화되고 있다. 사실 미국 행정부와 미군 당국이 당장 관심을 두고 있는 아프간인들은 미국 정부와 미국인들을 도와 도저히 탈레반 치하에 살 수 없는 이들이다. 미국 정부는 이들의 숫자를 6만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미국인들을 돕지 않았더라도 탈레반 치하에서 숨죽여 살 수 밖에 없는 이들은 부지기수다. 지난해까지 220만명 정도가 이미 이웃 국가로 피해 망명을 희망하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군 철수와 맞물려 아프간 정부군과 탈레반의 교전 와중에 350만명 가량이 집을 잃어 유민 신세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현재 탈레반이 주요 국경으로 통하는 길목을 차단하고 카불을 제외한 지방 공항마저 장악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까지 7000명 정도가 파키스탄으로 넘어간 것으로 전해지며 1500명 정도가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갔거나 국경 근처 텐트에서 풍찬노숙을 하고 있다.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까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한 관리는 탈레반의 정권 장악 이후 1만 8000명 정도가 이 나라를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전했는데 이 중 아프간 국적자가 몇명이나 되는지는 분명치 않다. 탈레반이 장악하기 전에 올해만 교전 때문에 55만명 정도가 고향을 떠나게 됐다고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R)이 밝혔다. 지난 6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보고에 따르면 올해 극심한 가뭄에 식량난이 겹쳐 이 나라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400만명 정도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어 다른 나라로 탈출하는 이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까지 파키스탄으로 달아난 사람은 150만명에 이른다. 이란은 78만명을 수용하고 있다. 독일이 18만명 이상을 받아들여 세 번째로 너른 품을 보였다. 터키는 13만명 가까이를 받아들였다. 앞의 예와 다르게 체류 하가만 내준 나라 1~3위는 터키와 독일, 그리스 순서로 각각 12만 5000명, 3만 3000명, 2만명씩 허용했다.각국이 어떤 도움을 줬고, 주겠다고 공언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란은 아프간 국경 근처 세 지방에 임시텐트를 세워 수용했다. 하지만 이란 내무부 관리들은 상황이 나아지면 이들을 돌려보낼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미 이란에는 350만명의 아프간인들이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6월에 탈레반이 장악하면 국경을 봉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당시에 벌써 하나 열린 국경 검문소를 통해 수천명이 잠입했다. 탈레반은 상인들과 유효한 여행증명을 제시하는 사람들만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한다. 타지키스탄으로 넘어간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지만 정부군 장병 등 적어도 수백명의 아프간인들이 최근 국경을 넘어 들어갔다는 보도들이 있다. 지난달 타지키스탄은 아프간 난민을 10만명까지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이미 1500명 정도의 아프간인들이 야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레반은 유효한 비자를 제시하는 이만 국경을 넘게 하고 있다. 영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2만명의 난민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영국 정부의 아프간 시민정착 프로그램은 첫해 5000명의 아프간인을 정착시키고, 여성과 어린이, 종교적 박해를 받을 그룹, 다른 소수그룹 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긴급난민, 분쟁 희생자, 위험에 처한 사람들, 특별이민비자를 신청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5억 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난민을 받아들일지 숫자를 제시하지 않았다. 캐나다는 2만명을 받아들이는데 정부 직원들, 여성 리더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호주는 인도주의 비자로 3000명 정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는데, 사실 이 숫자는 기존 프로그램에 있던 숫자를 그대로 제시했을 뿐 최근 아프간 사태에 따라 늘어난 것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은 2015년 시리아 난민들을 대거 받아들였다가 반이민 포퓰리즘 세력들의 반격에 고스란히 당한 사태가 재연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독일은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암시했는데 숫자를 구체화하지 않았다. 앙헬라 메르켈 총리는 6년 전 시리아 난민을 환대했다가 호된 질타를 받은 일 때문에 난민들이 “인접한 국가에서 안전하게 머무르는 일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이 (아프간발) 불법이민의 심상치 않은 파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프랑스가 “가장 위험한 이들을 보호할 것이지만 유럽 혼자서만 현재 상황이 초래하는 결과를 감수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스트리아는 어떤 아프간인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내무부는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안은 아프간인을 계속 추방할 것이며 아프간 이웃나라들에 “송환 센터”를 짓는 비용을 차라리 대겠다고 주장했다. 스위스도 아프간을 출발한 난민들을 대규모로 받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파키스탄과 협력해 아프간을 안정화시켜 새로운 난민 물결이 터키로 향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란과의 국경에 담장을 세워 이민 유입을 차단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마케도니아와 알바니아는 각각 450명과 300명의 아프간인 비자 서류를 검증할 때까지만 임시 수용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코소보 역시 미국으로 향하는 난민의 임시 거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숫자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동아프리카의 우간다는 2000명의 아프간 난민을 받는 데 합의했다. 이 나라는 아프리카에서 첫 번째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다.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전략적으로 이해가 결부돼 있거나 여유있는 나라 형편도 아니지만 따듯한 품을 내주고 있다.
  • “탈레반, 요리 못하는 여성 몸에 불질러” 아프간 판사출신 여성의 호소

    “탈레반, 요리 못하는 여성 몸에 불질러” 아프간 판사출신 여성의 호소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이 얼마나 후퇴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보고됐다. 20일 영국 스카이뉴스는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이 여성을 상대로 끔찍한 폭력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스카이뉴스에 출연한 아프간 인권운동가 나즐라 아유비는 “지난 몇 주 사이 아프간 여성은 성노예로 전락했다. 어린 소녀들은 탈레반 전사들과의 강제 결혼에 동원되고 있다.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던 그들의 약속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아프간 북부에서는 요리를 못한다는 이유로 탈레반이 젊은 여성 몸에 불을 질렀다는 보고도 들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음식이 맛없다며 여성 몸에 불을 질렀다더라. 구타, 채찍질 등 여성을 상대로 한 고문 수준의 끔찍한 폭행에 대해 현지 인권운동가들의 보고가 쏟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 활동가들조차 탈레반 보복이 두려워 숨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수백 명의 여성 활동가 및 인권운동가가 탈레반에 암살당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탈레반 통제 속에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사실 아유비는 파르반주지방법원의 첫 여성 판사 출신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탈레반이 부상하기 전 정규교육을 마쳤고, 타지키스탄에서 법학 및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그의 가족은 이슬람 과격단체의 표적이었다. 아버지는 1992년 무장단체 총에 맞아 사망했고, 오빠는 탈레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과격 이슬람단체 히즈브-에-이슬라미에게 납치돼 고문을 당하다 살해됐다. 아유비 전 판사는 “자유를 믿는 우리 가족은 이슬람 과격단체들의 암살 명단에 올라 있었다. 많은 압박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암살 위협에 시달리던 그는 사법부를 떠나 카불로 피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1996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본격 장악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압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는 “이웃집 4살 남자아이 없이는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남자면 됐다. 정말 굴욕적이었다. 파르반주 첫 여성 판사로서 강력한 위치에 있었지만 탈레반 집권 후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설명했다.그래도 아유비 전 판사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올 자유의 날을 위해 재단사로 일하며 젊은 여성을 위한 야학을 운영했다. 그리고 2001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탈레반 세력 전복 후 다시 사회 전면에 나선 그는 사법부에 복귀해 첫 대선과 의회 선거를 조율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아프가니스탄 새 헌법의 기틀도 마련했다. 특히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큰 목소리를 냈다. 아유비 전 판사는 남녀 차별적 법 조항에 문제를 제기하고 가정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꼬집었다. 아프간 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도 그의 거침없는 발언에 주목했다. 동시에 이슬람 과격단체의 살해 위협도 거세졌다. 그는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나는 극단 이슬람주의 주요 표적이 됐다”고 설명했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그는 2015년 결국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서도 아유비 전 판사의 아프간 여성 인권 운동은 계속됐다.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며 현지 인권운동가들을 지원했다. 탈레반 재집권 전인 지난 6월 언론 인터뷰에서 아유비 전 판사는 “여성 인권을 대변하기 위해서라도 아프간에서 탈출해야만 했다. 탈레반 밑에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안다. 여성은 숨 쉴 권리조차 잃게 된다”고 관심을 호소했다. 이어 “역사가 반복될까 두렵다. 다음 세대 아프간 여성은 내가 겪은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아프간 여성 문제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하면서 그의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 거액 챙겨 튀었다고? 아프간 정부 관리 “대통령 입던 옷 그대로 피신”

    거액 챙겨 튀었다고? 아프간 정부 관리 “대통령 입던 옷 그대로 피신”

    아슈라프 가니(72 사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떠날 때 입고 있던 복장 그대로 탈출해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한 채였다고 그의 정부 관리가 주장했다고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21일 전했다. 이 관리는 미국 CNN 인터뷰를 통해 황급히 피신한 가니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의 테르메스로 가 하룻밤을 보낸 뒤 그곳에서 아랍에미리트(UAE)로 넘어갔다. 그에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는 글자 그대로 입고 있던 옷차림으로 빠져나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일행의 탈출 경로가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그는 또 탈레반과의 투항 협상이 진행 중이었고, 탈레반이 워낙 호의적으로 협상에 임했던 데다 정부군이 그렇게도 빨리 속수무책으로 무너질지 예견하지 못해 이웃 나라로 달아날 방법 등에 대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가니 대통령이 카불이 함락되기 일주일 전인 지난 7일 법무장관 등 관료들과 모여서 회의 일정을 소화한 뒤 대통령궁의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던 사실이 21일 알려진 것도 얼마나 안이하게 상황을 인식했는지 보여준다. 그는 지난 18일 UAE에서 미리 녹화한 동영상 성명을 통해 탈레반에게 치도곤을 당하지 않으려고 급히 몸을 피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만약 내가 아프간에 남아 있었더라면 국민들은 다시 한번 목매달린 대통령을 보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6년 무함마드 나지불라 전 대통령이 탈레반 점령 뒤 목이 매달린 비극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나아가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하며 자신이 망명 길에 나서면서 1억 6900만 달러의 현금을 챙겨 떠났다고 무함마드 자히르 아그바르 타지키스탄 주재 아프간 대사가 주장한 데 대해 “완전히 근거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상하긴 하다. 타지키스탄에 머무르는 외교관이 어떤 근거로 가니 대통령 일행이 이 만큼 거액을 챙겨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주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가니 대통령이 탈출한 뒤 곧바로 이를 언급했으나 그 뒤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근거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물론 진실은 가니 대통령 본인과 그를 밀접 수행한 참모들이나 경호원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적은 돈도 아니고 우리 돈 2000억원의 현금을 챙겨 달아나려면, 헬리콥터에 싣지 못해 활주로에 흘리고 갔다면 일부라도 수거해 출처를 확인해볼 수 있을텐데 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현금을 챙겨간 이들이 실토하기 전에는 돈을 들고 튀었다고 주장하는 일은 신중해야 할 것 같다. 물론 돈을 챙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를 증명하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해서 국내 언론들이 더 이상 가니 대통령이 현금을 챙겨 떠났다고 단정해 보도하는 일만은 삼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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