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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 미수범이 튀니지 탈옥 후 유럽 건너와 총기 난사하기까지

    살인 미수범이 튀니지 탈옥 후 유럽 건너와 총기 난사하기까지

    지난 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도심에서 두 명의 스웨덴 축구 팬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한 남성이 튀니지 교도소를 탈옥한 범죄자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침소봉대를 경계해야 하겠지만 유럽 국가들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아프리카 출신들을 난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저간의 경고가 현실로 나타났다. 영국 BBC 방송은 2005년 살인 미수 혐의 등으로 징역 26년형이 선고된 압데살렘 라소우에드(45)가 총격 용의자라고 24일 보도했다. 그는 2011년 튀니지 교도소를 탈옥한 뒤 소형 보트를 이용해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에 불법 체류했다. 라소우에드는 결국 벨기에로 옮겨왔는데, 이곳에서 여러 나라에 망명을 신청했는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레이더망에서 사라졌다. 튀니지 당국은 지난해 8월 라소우에드를 조국으로 돌려보내라고 벨기에에 매달려 왔는데 당국은 송환 요청을 받고도 이를 진행시키지 않았다. 벵상 반 퀴켄보른 벨기에 법무장관은 지난 20일 “기념비적이며 용납할 수 없는 실수로 빚어진 극적인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사건 당일 저녁 라소우에드는 브뤼셀 도심에서 공격용 소총으로 근처 행인들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는 이어 아파트 건물 윗층 현관까지 쫓아가 60대와 70대 스웨덴 축구 팬을 쏴죽였고, 또 한 사람을 다치게 했다. 이슬람 국가(IS)가 사건 배후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벨기에 경찰은 사건 다음날 추적 끝에 브뤼셀 북부 샤에르빅에 있는 그의 자택 근처 카페에서 그를 사살했다. 벨기에 검찰의 팀 드 볼프 검사는 직원이 충분치 않아 추방 신청을 제때 처리하지 못한 것을 개탄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추방 신청서를 접수했지만 아마도 잊어먹고 캐비닛 속에 묵혀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라소우에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벨기에, 이탈리아에 망명 신청을 했다. 2016년 이탈리아 정보기관은 그를 과격분자로 분류해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그는 스웨덴에서 마약 거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그는 말뫼에서 코카인 100g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브뤼셀에 사는 스웨덴과 영국 이중 국적의 마자는 “내 생각에 국적 때문에 스웨덴 사람들이 타깃이 된 첫 사례”라고 BBC에 털어놓았다. 쿠란 소각 시위 이후 스웨덴 정부는 자국민에 대한 테러 위험이 높아졌다고 경고해 왔다. 마자는 “스웨덴 여권이 긍정적인 일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상황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라소우에드 총격 사건은 벨기에 검찰에 의해 테러 사건으로 다뤄지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충돌과 연관지어 안보 우려가 점증하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일어났다. 벨기에 검찰은 물론, 연방경찰과 철도경찰까지 추가 보안 조치에 함께 하고 있다. 아울러 이민국과 경찰, 사법부의 정보 교류가 강화됐다.
  • ‘검은 수요일’…밤중 크렘린궁 전방 4㎞에서 대형 인질극 [지구촌 소사]

    ‘검은 수요일’…밤중 크렘린궁 전방 4㎞에서 대형 인질극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사건 10걸 ❺2002.10.23 모스크바 오페라 극장 인질극그날 오후 9시 15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4㎞ 떨어진 둠 클리크 오페라 극장에서 뮤지컬을 감상하던 관객 900여명은 공연에 넋을 내주고 있었다. 군복에 중무장한 남녀 10여명이 무대 위로 오르며 배우들을 순식간에 몰아냈기 때문이다. 옛 소련 군대를 배경으로 한 ‘노르드 오스트’(Nord Ost·북방과 동방) 2막을 시작한 직후여서 미국, 영국, 독일에서 온 76명의 외국인을 포함한 관객들은 연기의 일부인 줄로만 알았다. 잠시 뒤 인질범들이 기관총을 공중에 난사한 뒤에야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15정의 AK 소총과 권총 11정, 수류탄 114개로 무장한 이들은 자신들을 체첸에서 온 ‘블랙 위도우’(Black Widow·검은 과부단)와 29사단 소속이라고 소개했다. 여성 19명, 남성 22명으로 이뤄진 집단이었다. 여성들은 검은 니캅을 착용한 채였다. 여성들은 자폭 테러까지 준비했다. 괴한들은 먼저 인질들에게 휴대전화로 가족과 지인들에게 상황을 알리라고 말한 다음 극장 30여곳에 폭탄을 설치했으며 50㎏ 가량의 폭탄을 2곳에 분산 배치해 만약의 경우 터트릴 태세였다. 10시 15분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장갑차 2대, 경찰차 20대, 소방차와 구급차 5대를 동원해 극장을 포위하고 인근 건물에 지휘본부를 설치했다. 이럴 즈음 범인들은 12세 미만의 어린이 20명과 임산부 등 30여명을 자발적으로 내보냈다. 러시아 정부는 최정예 특수부대인 알파 그룹과 빔펠 그룹, FSB 대테러 부대를 급파해 진압작전 대비 태세를 갖추면서 협상단을 꾸렸다. 24일 0시 반군은 17명의 인질을 추가 석방했다. 새벽 1시 러시아 정부는 공식성명을 발표하고 “무력 진압, 몸값 지불이 없을 것이며 인질들을 석방한다면 3국 망명을 주선하겠다”고 제안했다. 반군은 새벽 4시까지 모두 100여명의 인질을 풀어줬다. 그런데 극장 판매점 점원이 느닷없이 극장 안으로 난입하다가 경찰로 본 괴한들에게 살해되면서 첫 희생자가 발생했다. 반군은 체첸 내의 모든 포격 및 폭격 중단과 반군 인사들에 대한 보복 중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공식적인 전쟁 종료 선언에 이은 일주일 내 전면적 철군을 요구했다. 24일 새벽 6시 FSB 소속 소령이 어린이들 대신 인질을 자청해 접근했다가 의심한 반군에게 곧장 사살됐다. 오후 1시엔 가수 이오시프 코브존(1937~2018)과 적십자사 의사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가 협상한 후 여성 1명과 어린이 3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반군은 인질들에게 음식을 제공했으며 러시아군의 작전이 시작될 경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체첸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며 꼭 방문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모스크바 인질극 사건은 스톡홀름 신드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새벽 2시 의료진이 의약품 제공과 인질들의 치료를 위해 극장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1시간 뒤인 새벽 3시엔 NTV 기자들을 대동해 안으로 들어갔고 반군은 인터뷰 뒤 15명의 인질을 석방했다. 밤 11시 30분 정체불명의 남자가 극장 현관을 통해 들어갔다. 반란군은 그를 경찰이라고 여기고 인질들 앞에서 공개 처형했다. 이에 흥분한 남성 인질 1명이 여성 테러범에게 덤볐다가 사살됐다. 러시아 정부는 불관용 원칙을 앞세워 경직된 태도로 일관했다. 날카로워진 반군은 26일 오전 6시까지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교전을 벌이겠다고 압박했다. 결국 26일 새벽 5시 갑자기 극장의 모든 창문으로 서치라이트가 비쳤다. 환기구와 배관을 통해 연기가 퍼졌다. 러시아 군사경찰이 가스를 살포한 것이다.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알파 그룹과 빔펠 그룹이 현장으로 돌진했다. 교전이 이어졌으나 반군의 저항은 가스 중독으로 힘을 쓰지 못했다. 가스는 펜타닐 계통의 마약성 마취제로, 흡입하면 정신을 잃고 호흡기 마비로 질식사한다. 마취 효과는 강력하지만 치사량이 매우 적어서 위험한 약물이다. 교전은 7시 종료됐다. 반군은 전원 사살됐고 인질 700여명 중 공식적으로 131명이 숨졌다. 하지만 사망자 수는 200~300여명으로 추정된다.
  • 이스라엘·하마스 등 분쟁 한눈에… 삶터 잃은 시민, 희망은 안 버려요 [어린이 책]

    이스라엘·하마스 등 분쟁 한눈에… 삶터 잃은 시민, 희망은 안 버려요 [어린이 책]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교전이 점차 격해지고 있다. 무차별 폭격과 보복으로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도 커진다. 앞서 벌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종군기자로 전 세계 분쟁 지역을 누빈 저자가 10대들에게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쟁 지역의 역사와 분쟁의 양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나라에 따라 전제정권의 독재가 원인이 된 경우도 있고 경제 문제가 도화선이 된 사례도 있다. 테러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내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양한 자료를 실었다. 분쟁 지역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주변국까지 표시한 지도는 물론이고 분쟁의 씨앗이 된 역사적 사건을 연대표로 정리해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부르카’, ‘게릴라’, ‘샤리아’ 등 관련 용어나 무장단체 이름 등에 대한 해설도 각 장에 수록했다. 특히 저자는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았다. 우리와 다름없이 평범한 학생, 평범한 시민, 평범한 노동자였던 이들은 폭격을 피해 힘겹게 일상을 이어 간다. 혹은 난민, 실향민, 망명자로 떠돈다.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뉴스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이들이 삶터와 일상을 잃었다고 희망까지 버린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분쟁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일은 지금 닥친 위험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희망을 만드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
  • 나치 ‘충복’→‘국민 영웅’→히틀러 청부로 청산가리 음독 [지구촌 소사]

    나치 ‘충복’→‘국민 영웅’→히틀러 청부로 청산가리 음독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인물 10걸 ❹/1944.10.14 자살한 나치 육군원수 롬멜“미친 운전기사가 버스를 몰고 있을 때, 기독교인의 본분은 그 버스에 치어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러 주고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운전기사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지속하며 기독교 신앙 회복을 위해 활동했던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목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주변에선 나치 정권으로부터 생명에 위협을 받던 그에게 망명을 권유했다. 특히 미국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는 연구교수직을 제안했다. 학생을 가르치지 않아도 좋으니 연구에 전념하며 일단 독일을 탈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포들이 어둠 속에서 시달리고 있다. 누군가는 그들을 섬겨야 한다”며 정중히 거절한다. 그리고 더욱 위험한 일에 가담하게 된다. ‘발키리 작전’으로도 불리는 1944년 7·20 음모다. 2008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상영됐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 암살시도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에 이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나치 독일에겐 패색이 짙어질 무렵 국방군 내 비밀조직 ‘검은 오케스트라’ 주도였다. 낮 12시 30분쯤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해 시한폭탄을 사용했으나 히틀러는 생존했다. 그날 오후 4시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와 비밀회담에 빳빳이 고개를 들고 나타난 히틀러는 테러를 당한 회의장을 공개하며 “현재 전황이 이처럼 위험하지만 결국엔 자신이 살아남은 것처럼 끝내 우리가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 중 통신선이 복구되었으며 사방에서 반란 소식이 보고됐다. 히틀러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다 죽여버리겠다며 무시무시한 응징을 예고했다. 나치는 선전전을 위해 곧바로 재판부를 구성했다. 약 7000명이 체포됐으며, 5000명 정도가 사형을 선고받아 대부분 갈고리에 매달려 교수형을 당했다. 히틀러는 “푸줏간의 돼지와도 같다”고 묘사했다. 본회퍼 목사도 이듬해 4월 9일 새벽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된다. 암살시도 뒤 뜻밖에 무거운 처벌을 받은 사람으로 에르빈 롬멜(1891~1944)을 빼놓을 수 없다. 히틀러 암살기도 사건엔 무지막지한 나치 행태에 질린 현역 장교들도 참여했는데 당시 야전원수 계급이던 그가 이들과 접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진정한 군인이기를 자부했던 롬멜은 1그해 6월 펼쳐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을 계기로 히틀러에게 “이미 패전한 상황이어서 연합국들과 강화를 맺어야 한다”고 자꾸 건의해 최고위 세력의 눈밖에 난 처지였다. 10월 14일 오전 11시쯤 사복을 입은 12명의 게슈타포 요원과 빌헬름 부르크도르프, 미하엘 비트만 장군이 독일 울름에 위치한 롬멜의 집을 포위했다. 이어 ‘총통의 위임을 받아 암살기도에 공모한 죄’를 묻기 위해 자살을 권유했다. 조용히 죽는 대신,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장을 치러준다는 조건에서였다. 롬멜은 집에서 500m가량 떨어진 숲으로 들어가 청산가리 독배를 마셔 일생을 마쳤다. 히틀러는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받는 그가 암살미수 사건에 관련됐다는 게 알려져선 곤란하다고 판단해 자살을 권유했다고 한다. 1911년 사관학교를 나와 제1차 세계대전 후 사관학교 교직으로 지내던 롬멜은 나치당에 관심을 가지게 돼 가입하고, 히틀러의 경호대장으로 임명됐다. 기갑사단 지휘관으로 있던 1940년 프랑스 전선에서 전격전으로 아르덴 숲을 돌파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남겼다. 특히 1941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 군단을 이끌어 능수능란하게 지휘해 적과 아군 모두로부터 ‘사막의 여우’란 별명을 얻었다.
  • 하마스 “이스라엘 침공, 2년 준비했다…가자지구에 무기공장도”

    하마스 “이스라엘 침공, 2년 준비했다…가자지구에 무기공장도”

    하마스 외교국 책임자, RT·AP 등 외신 인터뷰“하마스, 2년간 이스라엘 턱밑서 거대한 공격 준비”“공격 개시 시간 철저히 기밀에…이란도 몰랐다”“이스라엘군 종이 호랑이…피할 곳 없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기습 침공을 2년 동안 준비했다고 하마스 고위 간부가 밝혔다. 레바논으로 망명한 하마스 외교국(NRA) 책임자 알리 바라카는 8일(현지시간) 러시아투데이 방송의 아랍어 뉴스 채널 ‘RTA아라빅’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 군수공장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바라카는 “우리는 이 일을 2년 동안 준비했다”며 “그동안 하마스는 탁자 밑에서 이 거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2년간 하마스는 합리적 접근법을 택했다. 어떤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최근 전투에서도 이슬람 지하드에 가담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하마스가 이번 공격에 대비한 전략의 일부였다”고 설명했다. 바라카는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통치하느라 바쁘고, 가자지구에 있는 250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집중하기를 원하며, 저항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이스라엘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공격 개시 시간(zero hour)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하마스 지도부에서도 제한된 소수만 알고 있었다. 공격 계획과 시기를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밀 유지, 작전 성공을 위해 우방과 동맹국도 공격 개시 시간을 모르게 했다”며 “공격 30분 후 모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과 헤즈볼라, 이란, 튀르키예에 통보했다. 심지어 러시아도 나중에 알고 접촉해왔으며, 공습 상황과 이 전쟁의 목표에 대해 들었다”고 덧붙였다.바라카는 또 9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약간의 성과와 수감자 교환을 계획했는데 이같은 엄청난 붕괴에 놀랐다”며 “이 군대(이스라엘군)는 종이호랑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보유한 4만 병력 중 2000명 정도만 동원된 크지 않은 규모의 작전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는 육해공 전력을 동시 가동하는 대규모 기습 타격을 이스라엘에 가했지만 이를 스스로 과소평가함으로써 서방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이스라엘을 조롱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라카는 RT아라빅 인터뷰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마스 공격으로 궁지에 몰렸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는 공격받은 이스라엘인들을 어디로 데려갈까. 텔아비브? 우리는 공격 첫날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를 폭격했다. 갈릴리도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 가자지구에서 갈릴리를 폭격할 수 있다.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북부 지역을 겨냥한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자지구 소멸 위기시 이란도 참전할 것”“가자지구에 군수공장…자체 로켓·탄약 생산”“미국에 수감된 팔 수감자 석방하라” 인질 협상 시사 바라카는 이어 하마스가 목숨을 걸고 이번 기습에 임할 것임을 암시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달리 우리는 스스로를 희생한다. 죽은 자를 순교자로 간주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라를 위해 순교하여 우리 땅을 지키는 것을 원한다”고 했다.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를 수립하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을 방해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에 대해선 “성지 알쿠드스(예루살렘)를 도발적으로 방문하는 등 극우세력(이스라엘 정부)의 그간 행태와 팔레스타인 수감자에 대한 핍박이 원인”이라고 반박했다. 또 하마스는 이란 등 우방의 지원을 받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바라카는 “이란 등 우방이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헤즈볼라도 있고 아랍과 이슬람 민족도 우리 편에 서 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우리를 지지한다”고 했다. 심지어 러시아도 메시지를 보내오는 등 지지를 표했다고 그는 밝혔다. 바라카는 “러시아는 미국이 팔레스타인에 연루된 것을 기뻐한다. 우크라이나전 상황에서 러시아에 대한 압력을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한 전쟁은 다른 전쟁의 압력을 완화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전장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자지구가 소멸될 위기에 처한다면 이란과 헤즈볼라도 참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란과 일정한 거리는 뒀다. 그는 “이란군(혁명수비대)의 장교들이 공격 계획을 지원했다거나 베이루트에서 열린 사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2014년 (이스라엘과) 전쟁 때는 이란과 헤즈볼라가 지원했지만 그 이후엔 로켓포 생산, 병력 훈련을 자체로 해결했다”고 말했다.바라카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기습을 위해 가자지구 현지에 공장도 세웠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이번 전쟁을 잘 준비했고 장기전까지 포함해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했다”며 “장기간 이어갈 수 있는 로켓포 전력을 보유했다”고 경고했다. 바라카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현지 공장이 있다. 사거리 10, 45, 80, 160, 250㎞의 로켓도 있다”고 밝혔다. 박격포와 박격포 탄, 총기 생산 공장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130㎜ B-7 함포와 82㎜ B-10 무반동총 및 탄약, 칼라시니코프 기관총 및 탄약 생산 공장이 있다. 러시아 허가를 받아 가자지구에서 칼리시니코프 탄약을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칼라시니코프는 러시아 무기 제조 회사다. 아울러 바라카는 하마스가 이번 공습에서 붙잡은 인질을 미국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수감자들과의 교환에 활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바라카는 “일부 하마스 조직원들이 미국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며 “우리는 미국에 우리 아들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 미국은 죄수를 교환했으며 최근에는 이란과 죄수 교환을 했다. 하마스와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대규모 병력 가자지구 인근 집결…지상전 임박 관측양측 인명피해 기하급수 증가…어린이 피해도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에서 100명이 넘는 민간인을 납치했다. 지난 9일에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민간 목표물을 경고 없이 타격할 때마다 인질 1명씩을 살해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보복 강도는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 공습에 나서면서 확전 우려도 가시화하는 양상이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촉발된 전쟁이 엿새째에 들어선 12일, 영국 BBC 방송은 대규모 이스라엘 병력과 탱크, 장갑차가 이미 이스라엘 남부에 집결했다며 가자지구에서의 지상전이 임박한 것으로 관측했다. 이미 수십만명에 이르는 예비군을 소집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는 물론 레바논과의 국경 주변에 탱크와 중화기를 밀집시킨 채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등과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고 있다. 다만 지상 작전 명령이 언제 떨어질지, 이스라엘 정부의 최종 목표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일단 이스라엘은 향후 며칠간 가자지구를 계속 공습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상전 개시까지 하마스의 전력을 최대한 약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관리들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제거하고 새로운 중동을 구축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향후 이뤄질 지상 작전은 과거 있었던 공격의 규모와 범위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지난 닷새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측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는 2014년 ‘가자 전쟁’ 당시 6주간 숨진 사람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 11일까지 양측의 사망자는 2300명을 넘어섰고, 부상자도 8000명 이상이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군인 169명을 포함해 1200명이 숨지고 3007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가자지구에서만 어린이 260명을 포함해 최소 1100명이 숨지고 5339명이 다쳤다고 현지 보건 당국이 밝혔다.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폭력 사태로 28명이 숨지고 150명이 부상했다.
  • “러, 우크라전서 노획한 서방무기 하마스에 지원” 우크라 정보당국

    “러, 우크라전서 노획한 서방무기 하마스에 지원” 우크라 정보당국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전에서 노획한 서방 무기를 지원받아 이스라엘 공격에 사용하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이 밝혔다. 9일(현지시간)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HUR)은 이날 소셜미디어 성명에서 “러시아는 하마스 무장세력의 이스라엘 공격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도발에 이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해당 게시글에서 HUR 수장인  키릴로 부다노우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과의 교전 중 노획한 미국과 유럽연합(EU) 제조 무기를 이미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에게 넘겼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러시아의 계획대로라면 우크라이나군을 비난하고자 서방 무기를 하마스 테러범들에게 정기적으로 판매했다는 가짜 뉴스가 나올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하마스를 지지하는 이란과 우호관계로 알려져 있다. 앞서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지난 7일 발표된 보고서에서 러시아 크렘린궁이 서방의 이목을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이스라엘 위기로 돌리기 위한 정보 작전 차원에서 하마스의 공격을 이용하고 있다고 해석한 바 있다. HUR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최근 러시아로 망명한 우크라이나 국경관리국의 루슬란 시로비 중위가 제기한 관련 발언을 근거로 삼아 관련 주장에 신빙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이같은 도발 목적은 우크라이나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서방 동맹국들로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의 흐름을 완전히 중단시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실제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은 이후 같은 날 텔레그램을 통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공급해온 무기들이 이스라엘에서 (하마스에 의해)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이 무기들은 미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두고 간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분쟁 지역에서 통제할 수 없이 사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매체들은 메드베데프 부의장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말에 대한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마스는 지난 7일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하면서 민간인 수백 명을 살해하고 일부를 인질로 잡아 가자지구로 끌고 있다. 이렇게 데려간 인질은 최대 150명에 달하고, 이스라엘 국적이 아닌 외국인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양측 사망자는 1600명, 부상자는 6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이스라엘 측에서만 약 900명이 숨지고 2400명 넘게 다쳤다고 이스라엘 보건당국이 10일 현지 신문 하레츠에 밝혔다.
  • 주먹질에 괴뢰 표기… 亞게임 ‘빌런’ 된 北 속내

    주먹질에 괴뢰 표기… 亞게임 ‘빌런’ 된 北 속내

    북한이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도를 넘은 ‘비매너’를 드러낸 가운데 속사정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국제적 축제이자 통합의 장인 아시안게임에서 ‘사고뭉치’ 행태를 보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1일 북한과 일본의 남자 축구 8강전에서 북한 김유성은 후반 28분 일본 대표팀 스태프에게 다가가 물병을 하나 빼앗고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취했다. 또 북한 선수들은 패배가 확정되자 단체로 주심을 향해 달려가 팔로 밀치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 통역관으로 활동하다가 망명한 고영환 한국관광대 겸임교수는 5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적국’ 일본과 맞서는 경우 강경한 태도로 상대를 쓰러뜨리라는 지시가 있었을 것”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지시했거나 적어도 (선수들의 행동 방침을) 결재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그러면서 “선수나 코치가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 교수는 북한 선수들의 행동을 통해 북한 내부 결속을 도모하려 했다는 분석도 내놨다. 아사히신문은 또 ▲‘노동단련대’ 수감 가능성 ▲스포츠를 전쟁으로 보는 시각 ▲북한 내 축구의 인기 등도 거론했다.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 매체가 최근 남북 여자축구 경기를 전하며 대한민국을 ‘괴뢰’로 지칭한 것을 거론하며 “스포츠에서조차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북한 스스로 자신감이 결여된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경색된 한반도 정세가 스포츠까지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25일 한국 사격 대표팀은 남자 단체전에서 정상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건 북한과 나란히 시상대에 올랐다. 이후 시상대에서 수상자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대회 관례인데 북한 대표팀은 이를 거부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구성됐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북한의 사고뭉치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한 축구 대표팀은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 쿠웨이트와의 경기 도중 태국인 주심을 실제로 폭행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가운데 이러한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도 보인다”며 “코로나19 이후 3년여 만의 체육 교류이기 때문에 지도부가 현장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교육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올해 벌써 둘 1000만명의 헝가리 노벨상 수상자 15명…인도 11명, 중국 8명

    올해 벌써 둘 1000만명의 헝가리 노벨상 수상자 15명…인도 11명, 중국 8명

    남한 정도의 면적에 1000만명이 모여 사는 헝가리가 역대 15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페렌츠 크러우스 독일 막스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 소장이 3일(현지시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헝가리는 전날 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 헝가리 세게드대학 교수에 이어 올해만 벌써 두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노벨상 수상자 출신 국가 순위를 매기는데 헝가리는 기존 15위에서 한 계단 올라섰다. 미국(406명)과 영국(137명), 독일(114명) 등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인도(11명), 중국(8명) 등 인구 대국보다도 많은 수상자를 거느리고 있어 ‘강소 과학국’임을 자랑한다. 영화 ‘오펜하이머’에 스치듯 나오는 현대 컴퓨터 기초 원리를 만든 존 폰 노이만, ‘원자폭탄의 아버지’ 레오 실라르드, ‘수소폭탄의 아버지’ 에드워드 텔러 등이 모두 헝가리 출신이다. 세 사람 모두 노벨상을 수상하지 않았으나 ‘헝가리 현상’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꼽힌다. ‘헝가리 현상’이란 헝가리 출신의 특정 세대와 지역에서 인재들이 집중적으로 배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세 사람처럼 1880년~1920년대 헝가리에서 태어난 인재들이 노벨상 수상자 7명, 노벨상 이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울프상 수상자 2명을 배출했다. 학계에서는 전체 예산의 10%를 교육에 투자하고 정답보다 풀이 과정의 창의성을 중시한 헝가리의 교육 정책이 이런 성과의 밑거름이 됐다고 풀이했다. 지금도 헝가리는 의학과 수학, 물리학, 화학 등 기초과학이 발달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다. 헝가리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따르면 현재 헝가리 의대, 치대, 약대에서 수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이 800여명에 달한다. 문화계에서도 헝가리 출신 인재들의 활약상은 세계적으로 두드러진다. ‘헝가리 광시곡’을 만든 피아노의 거장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 코다이 음악 교수법으로 유명한 졸탄 코다이, 벨러 버르톡, 리게티 죄르지 등 현대 음악을 대표하는 유명 작곡가들이 모두 헝가리 출신이다. 시카고 디자인 스쿨을 창설한 모호리 나기, 세계적인 사진작가 앙드레 케르테즈, 브라사이, 로버트 카파 등도 마찬가지다. 기초과학과 문화의 발전은 현대 문명의 결실로 이어졌다. 헬리콥터 프로펠러, 볼펜, 성냥, 컴퓨터 기초 원리 등을 개발한 것이 모두 헝가리인으로, 헝가리는 ‘발명의 나라’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다만, 2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가 옛 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이며 창의적인 교육 전통이 상당 부분 퇴색했다는 지적도 있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소련의 20만 병력에 진압되면서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유출됐다. 20만명의 지식인과 유력 인사들이 해외로 망명했고,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과학기술자들도 조국을 등져야 했다.
  • 옛 ‘다윗 소년공’…공산주의 첫 자유노조 이끌다 [지구촌 소사]

    옛 ‘다윗 소년공’…공산주의 첫 자유노조 이끌다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인물 10걸 ❶/1983.10.5 노벨 평화상에 레흐 바웬사레흐 바웬사(80) 전 폴란드 대통령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에서 농사를 도왔다. 부모님은 아들을 기특하게 여겼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17세 때 직업학교를 나와 4년 남짓을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했다. 이어 일찌감치 군 병역을 마쳤다. 1967년엔 그다니스크에 있는 레닌 조선소 전기 노동자가 되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나쁜 근로조건에서 지내던 터라 바웬사는 이들과 연대해 노동조합 활동에 참가했다. 12월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이 총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뒤 참된 자유노조 결성을 결심한다. 하지만 노동운동 탄압으로 4년간 실업자 생활을 했다. 1976년 ‘죽은 노동자를 위한 기념탑’을 세우기 위해 청원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런 경력 때문에 직업을 얻을 수 없었고, 주위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던 1980년 8월 조선소 파업투쟁을 시작했다. 당초 식료품 값의 인상으로 시작된 파업은 계속 확대됐고, 그는 직접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 노동조합을 이끌고 대정부 투쟁을 이끌었다. 마침내 9월 정부에서는 자유노조 설립을 합법화하기에 이르렀다. 중앙유럽 공산국가 중에선 처음으로 나라의 통제를 받지 않는 민주적인 노동조합 ‘연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곧 입장을 바꿔 계엄령을 선포했다. 또 ‘연대’를 불법화했다. 바웬사는 1981년 12월 11일 검거돼 옛 소련 국경 근처에서 1982년 11월 14일까지 약 11달 간 구금됐다. 1983년 7월 계엄령은 해제됐지만 정부는 바웬사와 대화를 거부했다. 1983년 10월 5일 그는 1901년 노벨상 제정 이후 노동자로는 처음으로 평화상에 호명됐다. 당시 폴란드 정부로부터 경계 1호로 꼽혀 자의와 무관하게 망명객에 오를까봐 두려워서 부인 다누타 고워시(74)에게 대리 수상하도록 했다. 1986~1987년 바웬사는 자신의 자서전을 파리로 밀반출해 자서전 ‘희망의 길’을 펴냈다. 그리고 1988년~1989년 폴란드 정부와 협상을 벌여 ‘연대’ 노조와 다른 노조들의 법적 지위 회복, 새로 부활된 폴란드 의회 구성을 위한 자유로운 의원선거, 대통령직 설치, 일련의 경제적 변화조치 발표 등값진 약속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폴란드 민주화 이후 1990년 실시된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바웬사는 노조 후보로 나서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취임 후 단행한 경제개혁이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실업률 증가 등 경제난이 가중되자 국민으로부터 오히려 지탄을 받았다. 바웬사는 비상 대책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1993년 9월 총선거를 실시해 신정부를 출범시켰다. 연임을 겨냥했지만 1995년 11월 대선에서 전 공산당원 알렉산드르 크바스니에프스키(69)에게 패배했다. 그는 이후에도 야권에서 주도하는 집회에 참가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뽐내며 건재를 알리고 있다.
  • 나도 미국으로…하루 만에 끝난 멕시코 유기견의 아메리칸 드림 [반려독 반려캣]

    나도 미국으로…하루 만에 끝난 멕시코 유기견의 아메리칸 드림 [반려독 반려캣]

    하루 만에 끝난 멕시코 유기견의 아메리칸 드림이 화제다. 현지 언론은 “지역 상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유기견 ‘오소’가 미국에서 멕시코로 송환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유기견에게 매일 먹거리를 챙겨준다는 상인 카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소가 사라진 후 빈 자리가 너무 컸는데 다시 우리 품으로 다시 돌아와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멕시코 접경도시 티후아나에 사는 유기견 오소는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간)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갔다. 미국은 이날 국경장벽 보수공사를 위해 일부 구간을 잠깐 개방했다. 중장비의 이동을 위해 국경을 연 것이다.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남미 이민자들은 국경에 틈새가 생기자 미국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이 나중에 확인한 CCTV를 보면 최소한 7명이 국경을 넘어 미국 입국에 성공했다. 유기견 오소는 사람들이 달리자 영문도 모른 채 함께 달리기 시작해 미국으로 넘어갔다. 평소 유기견을 돌봤던 상인들은 “오소가 평소 장난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였다”면서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하자 장난을 치는 줄 알고 함께 달린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국경을 넘은 중남미 이민자 7명은 망명 신청을 하기 위해 곧 자수해 신병이 확보됐지만 유기견 오소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미국 국경수비대도 무단으로 국경을 넘은 동물에게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낯선 미국 땅에서 꼼짝 없이 이민생활을 하게 된 유기견 오소가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게 된 건 멕시코 티후아나 상인들의 간곡한 요청 덕분이었다. 상인들은 유기견 오소의 사진까지 들고 몰려가 “우리가 사랑하는 유기견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오소를 찾아 우리에게 돌려달라”고 미국 국경수비대에 당부했다. 사연을 알게 된 미국 국경수비대는 수색에 나서 하루 만에 유기견 오소를 찾아냈다. 오소는 박수를 받으면서 30일 안전하게 멕시코 상인들에게 인계됐다. 오소는 티후아나 해변을 떠돌던 유기견이다. 나이는 6개월 정도로 추정된다. 해변에 놀러왔던 관광객이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오소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상인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사람을 너무 잘 따르고 귀여움을 떨어 유기견 오소가 한 몸에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유기견에게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밥도 꼬박꼬박 챙겨주고 있다. 특히 입맛에 맞게 유기견 오소에게 음식을 챙겨주는 건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널리 알려져 이미 유명한 일이다. 유기견 오소는 입이 고급(?)인 듯 사료를 먹지 않고 고급식당에서 나온 음식물에만 입을 댄다. 상인 알레한드로는 “처음엔 사료를 줬지만 오소가 전혀 입을 대지 않았다”면서 “고급식당 음식물만 먹는데 식당들이 귀찮아하지 않고 매일 음식을 챙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 가까스로 피한 美 셧다운… 바이든 임시 예산안 서명

    가까스로 피한 美 셧다운… 바이든 임시 예산안 서명

    미 상·하원 의회가 11월 17일까지 45일간 연방 정부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 임시 예산안을 승인하면서 셧다운을 가까스로 피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정 직전 상원에서 넘어온 법안에 서명했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제안한 임시예산안은 30일(현지시간) 미 연방 정부 셧다운까지 약 9시간을 앞두고 하원 본회의에서 찬성 335표·반대 91표로 가결됐다. 민주당 209명, 공화당 126명이 찬성하고 공화당 90명, 민주당 1명이 반대했다. 민주당은 의원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의원이 이 법안에 찬성했고, 공화당 의원 중 절반 가까이는 반대표를 던졌다. 이번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더라면 미국 연방 정부는 31조 4000억 달러에 달하는 채무 불이행으로 인해 셧다운이 될 뻔했다. 백악관 예산처에 따르면 연방 정부 셧다운 기간 동안 약 200만 명의 군인과 150만명의 공무원이 급여를 받지 못하지만 필수 인력으로 간주되는 80만 명의 직원은 계속 근무할 예정이었다. 이번에 통과된 이른바, ‘매카시 안’에는 공화당의 반대가 많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포함하지 않은 대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요구한 재난 지원 예산 160억 달러는 증액됐다. 또한 공화당 의원들이 요구한 국경 보안 조치도 제외됐다. 공화당 내 극우 세력들은 매카시 의장이 민주당과 협력하여 정부를 계속 운영한다면 하원 의장직에서 축출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법안 통과에 어려움을 겪었다. 매카시 의장은 하원 표결 직후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은 쉽다”면서 “하지만 저는 미국이 정부가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는 보수주의자를 원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민주당은 처음에 매카시 의장이 충분한 검토 없이 71페이지에 달하는 예산 법안을 떠넘겼다고 불만을 터뜨렸으나 200만명의 군인과 150 만명의 연방 정부 직원들의 급여가 밀리는 것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우선시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법안에 서명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유일한 하원 민주당 의원인 마이크 퀴글리 의원은 CNN에 “법안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자금이 포함되지 않으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뻐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것을 바로잡을 45일이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미 상원 의회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60억 달러 지원이 포함된 자체 임시 조치를 폐기하고 찬성 88 대 반대 9표로 하원의 예산안을 승인했다.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셧다운 3시간 전 표결을 마친 뒤 “미국 국민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다”며 “우리 정부를 인질로 삼으려 했던 공화당원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예산안 통과 직후 성명에서 “이번 임시 조치가 미국 국민에게 좋은 소식”이라면서도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애초에 이런 상황에 처하지 말았어야 했다. 불과 몇 달 전, 매카시 하원의장과 저는 이런 식의 인위적인 위기를 피하기 위해 예산안 합의에 도달했다. 몇 주 동안 극단적인 하원 공화당원들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과도한 예산 삭감을 요구하며 이 합의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들은 실패했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달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이후 우크라이나의 전쟁 자금 지원에 공화당 의원들은 강력히 반대했다. 미 의회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약 1130억 달러의 군사, 인도주의, 경제 원조를 승인했으며 바이든 전 부통령은 240억 달러를 추가로 요청했다. 양당의 갈등은 11월 17일까지도 봉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 히원 의원들은 이번 합의의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폭적인 지출 삭감, 대 우크라이나 원조 중단, 남부 국경을 넘어 몰려드는 망명 신청자들의 물결 속에서 이민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에서는 하원 의회가 올해 초 바이든 대통령이 매카시 대통령과 협상한 합의에서 정한 더 높은 자금 수준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지지하고 있다.
  • 밀입국 시도한 여성 6명, 냉동 트럭에서 극적 구조 [여기는 베트남]

    밀입국 시도한 여성 6명, 냉동 트럭에서 극적 구조 [여기는 베트남]

    베트남 여성 4명과 이라크 여성 2명이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던 냉동 트럭에서 극적으로 구조됐다. 이들은 지난 2019년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냉동 트럭에서 숨진 베트남인 39명이 사망한 사건을 보도했던 BBC 기자에게 연락해 프랑스 경찰에 의해 구조됐다. 29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여성 6명은 영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27일 프랑스 북부지역에서 바나나 상자를 실은 냉동 트럭에 10시간 이상 갇혀 있었다. 하지만 트럭은 영국이 아닌 이탈리아 방향으로 향했고, 여성들은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춥고, 비좁은 공간에서 공포에 휩싸였다. 이들 중 한 명은 BBC 기자에게 문자를 보내 “냉동 트럭에 갇혔는데, 너무 춥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기자는 실시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공유해 이들의 차량이 있는 고속도로 위치를 파악한 뒤 프랑스에 있는 동료들에게 알렸다. 동료들은 프랑스 현지 경찰에 연락해 트럭을 찾아내 여성 6명을 구출했다. 조사 결과, 프랑스의 라에티아 프랑카르트 검사는 “트럭 운전사는 이탈리아로 향하는 중이었고, 여성들의 밀입국과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 여성들은 “아일랜드 번호판을 보고 영국으로 가는 줄 알고 트럭에 올라탔으며, 사실상 운전사는 연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연락을 받은 BBC 기자는 “연락해 온 여성을 알지 못하는데, 4년 전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던 베트남인 39명이 사망한 사건을 보도했던 사실을 알고 나에게 연락을 취해왔다”고 전했다. 기자는 “트럭에 탔던 여성 중 한 명이 문자 메시지와 트럭의 GPS 위치, 트럭 내부 상태를 보여주는 짧은 동영상을 보내왔다”고 설명했다. 영상 속 여성들은 트럭의 좁은 공간에 앉아 과일 상자에 둘러싸여 숨을 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트럭의 내부 온도는 섭씨 6도에 불과했다. 여성 6명은 프랑스에 불법 체류한 혐의로 구금됐다가 나중에 풀려났다. 이들 중 4명에게는 30일 이내 프랑스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고, 나머지 2명에게는 망명 요청을 위한 체류를 허용했다. 한편 매년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수천 명의 이주민들이 트럭에 숨거나, 작은 배를 타고 프랑스 북부에서 영국 해협을 건너오고 있다.
  • ‘우산 혁명’ 9주년… 다시 보는 2019 홍콩 민주화 운동 [포토多이슈]

    ‘우산 혁명’ 9주년… 다시 보는 2019 홍콩 민주화 운동 [포토多이슈]

    [포토多이슈] 사진으로 다양한 이슈를 짚어보는 서울신문 멀티미디어부 연재물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우산 혁명’이 어제로 9주년을 맞이했다. 홍콩 민주화 운동을 알기 위해서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국은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돌려받을 당시 ‘일국양제(한 국가 두체체)’ 원칙을 약속했다. 홍콩은 이미 오랫동안 영국 통치 하에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민주적 선거 등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반환 협정에는 향후 50년간 고도의 자치권과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홍콩과 중국 본토는 2001년 거주권 부여 논란(홍콩에서 태어난 중국 본토인의 자녀에게 홍콩 거주권을 부여한다는 내용), 2005년 본토의 ‘반분열국가법’ 제정 시도 등으로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014년 8월 중국 정부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홍콩 시민들은 ‘홍콩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시위 도중 홍콩 경찰의 최루탄 진압에 맞서 우산을 방패 도구로 삼으면서 우산이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여기서 ‘우산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우산 혁명을 이끌었던 17세 조슈아 웡은 타임지에 ‘2014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홍콩 내에선 반중 정서가 더욱 짙어졌다. 2019년 6월 홍콩인들은 홍콩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인도하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며 다시 거리에 나왔다. 홍콩 시민들은 이 법안이 중국 공산당의 강압적인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받아들였다. 점점 격화된 시위는 화염병, 최루탄, 물 대포 등으로 점철됐다. 2019년 11월 8일 시위 현장 부근 주차장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던 대학생이 숨을 거두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경찰과 시위대의 대립 속에 추락했다. 11일에는 한 시위 참가자가 경찰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 몇달 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시위는 차츰 동력을 잃어버렸고 중국 정부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며 모든 시위 행위를 금지했다. 이후 홍콩 경찰은 민주활동가 및 주요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고, 몇몇 인사는 해외 망명을 선택했다. 경찰은 올해 7월 해외체류 민주활동가 8명에 거액 현상금을 걸며 대대적 단속을 이어가고 있다. 아래는 지난 2019년 9월 28일 홍콩 현지에서 직접 취재한 사진들이다.
  • (영상)“컴백홈”…‘하하하’ 웃으며 월북했던 미 병사, 미국 도착 순간[포착]

    (영상)“컴백홈”…‘하하하’ 웃으며 월북했던 미 병사, 미국 도착 순간[포착]

    북한이 판문점 견학 중 월북한 주한미군 소속 트래비스 킹(23) 이병을 추방한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킹 이병이 고향 땅을 밟았다. 미국 현지 언론이 공개한 영상은 텍사스주(州) 샌안토니오 공항에서 비행기에 내려 걸어가는 킹 이병의 모습을 담고 있다. 킹 이병은 월북할 때와는 다른 민간인 복장이었고, 비행기에 내린 후에는 활주로에서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CNN은 “킹 이병은 샌안토니오의 브룩육군병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앞서 킹 이병은 지난 7월 18일 오후 3시 27분경 판문점 견학 중 무단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이후 미국 당국이 그의 신병을 확보하고자 노력했으나 북한은 꾸준히 침묵을 유지하다가, 약 한 달 만인 지난달 15일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당시 조선중앙통신은 “(킹은)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반감을 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 넘어올 결심을 했다고 자백했다”면서 “트래비스 킹은 불평등한 미국사회에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나라(북한)나 제3국에 망명할 의사를 밝혔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약 2개월이 흐른 뒤인 27일,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당 기관에서는 공화국 영내에 불법 침입한 미군병사 트래비스 킹을 공화국법에 따라 추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킹 이병이 월북한 지 71일 만이다. 통신은 이어 “킹에 대한 조사가 끝났다”며 “미군 내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 불평등한 미국사회에 대한 환멸로부터 공화국 영내에 불법 침입하였다고 자백했다”고 재차 주장했다.킹 이병은 단둥에서 의료 장비가 갖춰진 국무부 항공기로 중국 선양으로 이동한 뒤, 다시 한국 오산의 미군 기지에서 미국 국방부에 신병이 인계됐다. 미 백악관은 “스웨덴과 중국의 도움으로 킹 이병이 석방됐다”면서 “킹 이병은 오늘 새벽 북중 접경지역으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니콜라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를 만났다”고 전했다. 이어 “정신 상태나 신체 건강 모두 양호하다”고 밝혔다. 스웨덴과 중국이 도운 배경 미 정부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있기 전인 이달 초 북한은 주스웨덴대사관을 통해 킹 이병을 풀어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스웨덴은 북한과 외교관계가 끊어진 미국을 대신해 북한 내 미국인 억류사건 등에서 영사 업무를 대행해 온 국가다.당국자들은 미국과 북한 대사관이 있는 중국 베이징과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 등을 오가며 킹 이병의 귀환을 위해 노력을 이어갔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 당국자간의 직접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킹 이병이 월북했을 때 우리는 수차 북한에 연락했으나 북한은 우리의 직접적인 접근을 거부하고 스웨덴과 대화했다”면서 “우리는 북한과 직접 대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이른바 ‘인질외교’의 우려를 덜어내고 킹 이병의 추방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킹 이병을 미국으로 돌려보낸 배경은? 북한은 킹 이병을 북한에서 추방하면서 어떠한 조건도 내걸지 않았다. 미국 측도 “우리는 그들(북한)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킹 이병의 안전한 귀환과 관련해 어떤 양보도 없었다”면서 우려했던 ‘인질외교’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미국 CBS 뉴스에 “북한은 킹 이병이 선전 목적으로 부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월북 당시 군사재판을 앞둔 범죄자 신분이었던데다, 이후 도망자 신분으로 북한에 넘어간 만큼 체제 선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킹 이병의 직급이 낮아 북한이 알아낼 정보가 많지 않다는 것도 석방 결정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밖에도 ▲북한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북중‧북러 국경을 개방하는 등 ‘정상 국가’ 이미지를 부각해야 하는 시점에 놓은 것 ▲‘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 구도에서 킹 이병의 일로 미국과 단독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부담감 등이 조건 없이 킹 이병을 미국으로 돌려보낸 배경으로 분석된다. 
  • [책으로 정책 읽기] 정권 따라 휘둘리는 ‘강약약강’ 정보기관의 ‘실패보고서’

    [책으로 정책 읽기] 정권 따라 휘둘리는 ‘강약약강’ 정보기관의 ‘실패보고서’

    1980년 4월 15일 보안사령관에 더해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하게 된 새 부장의 취임 일성은 “앞으로 중앙정보부는 ‘사바크’가 되지 말고 , 모사드가 되어야 한다”였다. 사바크는 이란 팔레비 왕정 당시 비밀경찰이었고,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해외첩보기관이다. 정권의 앞잡이가 아니라 국가를 지키는 선봉대가 돼야 한다는 선언인 셈이다. 새 부장 지시에 따라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그 중 하나가 국내정보인력을 대폭 줄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가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새 중앙정보부장, 1년 뒤 청와대까지 차지하게 되는 전두환(이하 직책 생략)이 깃발을 든 중앙정보부 개혁은 성공했을까. 모사드 같은 조직이 되었을까. 구조조정 작업은 한달만에 부장 지시로 중단됐다.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 때문이었다. 1992년 당시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썼던 김충식(가천대 교수)이 쓴 후속작 <5공 남산의 부장들>에 따르면 1980년 당시 학생시위가 갈수록 격화되자 당시 서정화(중정 차장)가 회의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은 중앙정보부 개편 시기가 아니고, 전 부원이 나서서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시위대, 정치 세력과 맞서서 싸워야 할 때입니다(1권 161쪽).” 꼭 학생시위가 아니더라도 정권장악에 혈안이 돼 있던 신군부로선 남산의 고문 기술자들이 절실히 필요했을 듯 하다. “죽을 뻔했던 요원들이 인사 중단으로 살아났다. 중앙정보부가 지하실 고문으로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온 것이다. 5·17 싹쓸이, 계엄령 전국 확대와 함께, 그동안 텅 비어 있던 지하실에, 무더기로 ‘정치 고객’들이 들이닥쳤다(1권 161~162쪽).” 5공화국이 들어선 뒤에는 아예 유학성 정보부장이 앞장서서 민주정의당 창당에 앞장섰으니 정보기관이 아니라 정치조직이 따로 없었다. 정보기관 개혁은 뒷전이 돼 버렸다. 그렇게, ‘사바크’로 태어났던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이름을 바뀐 뒤에도 줄곧 ‘사바크’였다. 그런 안기부였기에 1987년 대선 당시 안무혁(부장)은 안기부를 선거운동 선봉대로 총동원하기에 이르렀다(2권 275쪽). 1960~70년대 중앙정보부의 영욕을 다룬 전작에 이어 1979년 12·12 쿠데타 즈음부터 1988년 4월 여소야대로 이어진 국회의원 선거까지를 해부하는 <5공 남산의 부장들>은 제5공화국 정치를 다루는 르포인 동시에 정보기관 개혁의 반면교사를 위한 ‘실패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남산’의 수장은 신군부 우두머리이자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됐던 전두환, 신군부 일원인 유학성, 외무부 장관 출신 노신영, 전두환의 오른팔 장세동, 그리고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대통령이 바뀌는 전환기를 맡았던 안무혁 등 5명이다. 책에는 당시 중정-안기부의 비열한 공작 활동이 가감없이 기록돼 있다. 가령, 유학성은 미국과 협상 끝에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을 풀어주기로 하자 김대중에게 찾아가 구명서를 쓰면 풀어주겠다고 요구했다. 탄원서 쓰기를 거부하자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거듭 설득했다. “유학성 안기부장이 나서서, 스스로 가톨릭 신자라면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을 것을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고도 했다(1권 230쪽).” 결국 김대중은 탄원서를 썼다. 그 뒤가 가관이다. “생각해보니 신군부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목숨을 구걸하는 것 같았다. 탄원서를 되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유학성 부장은 ‘그렇게 잘 처리하겠다’라고 하더니, 며칠 뒤 약속을 깨고 언론에 공개했다.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디 호소할 데도 없었다(1권 230쪽).” 안기부는 ‘김대중이 미국으로 망명할 당시 안기부가 그에게 여행경비를 주었다’는 거짓정보를 재야인사들에게 흘리는 이간질도 했다(1권 321쪽). 안기부는 1982년에는 유행가를 노동요로 바꿔 부르는 것까지 통제하려고 했다. 결국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실제 주인공이자 노동운동을 하던 목사 허병섭을 연행했다. 마땅히 처벌할 법규가 없었다. 그러자 서울지검 공안부는 궁여지책으로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결국 2심에서 무죄가 났지만 안기부는 대법원을 움직인 끝에 파기환송을 거쳐 유죄를 이끌어 내고야 말았다. 당시 안기부, 검찰, 경찰이 모조리 한통속이었다는 걸 확인하는 건 여러모로 씁쓸하다. 책에선 이를 “안기부 지하실이나 치안본부 대공분설의 고문 수법에 검찰도 진배없다(2권 35쪽)”고 표현했다. 이는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당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했다는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네가 당한 일은 검사 앞에 나가서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검사나 우리는 다 한통속이야(2권 182쪽).” 공교롭게도 이 책에는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뒷이야기가 등장한다. 먼저 문재인. 그는 1980년 ‘서울의 봄’ 시위로 인해 체포됐는데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2차 합격 소식을 들었다. 당시 경희대 학생처장, 법대 동창회장이 유치장에 술을 들고 찾아왔을 뿐 아니라 육사1기 출신인 대학원장 김점곤이 계엄사령부를 직접 찾아다니며 구명운동을 했다고 한다. 김점근은 한국전쟁 당시 평양에 최초로 진입한 연대장이었다고 하는데, 중대장 때 휘하 소대장이 박정희였던 인연이 있었다. 그 덕분에 합격증을 받아든 문재인이 사법연수원에서 만난 동기가 박원순, 박시환, 송두환, 이귀남 등이었다고 한다.(1권 158~161쪽) 윤석열은 1980년 5월 8일 서울대에서 열린 마당극 모의재판 대목에서 등장한다(1권 122~123쪽). 윤석열은 당시 마당극 모의재판 재판장으로서 “전두환 무기징역! 신현확 사형!”을 선고했다. 당시 윤석열은 총리 신현확이 쿠데타 수괴라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한다. 윤석열은 5월 17일 전야에 보안사령부에서 일하던 친척이 집에 전화를 걸어 줘서 강릉 외가 쪽 친척 집에서 석 달간 숨어 있어서 구속을 피했다고 한다. <5공 남산의 부장들>을 읽다보면 당시 ‘남산’의 폭력이 얼마나 무지막지했는지 가감없이 드러난다. 심지어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였던 저자조차 남산에 끌려가 3박4일 고문을 당했다. 빌미라는 게 1985년 8월 중국 폭격기 조종사가 대만으로 망명하기 위해 전북 이리(현 익산)에 불시착했을 당시 대만 송환한다는 기사였다. 거짓도 아닌 대만 송환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3박4일 동안 편집국장과 정치부장까지 가둬놓고 매타작을 했다는 게 지금 기준으론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시로선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일상 다반사였다. 저자는 본인의 고문 피해 경험을 최대한 제3자 시각에서 기술한다. “김충식은 그 때 남산 지하실에서 두부모보다 큰 대용량의 안티프라민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됐다. (동아일보 편집국장) 이채주의 하반신에는 안티프라민을 바른 쇠고기가 감겼다. 피멍이 든 데는 쇠고기가 응급약이다. 얼마 되지 않아 퍼런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2권 176쪽).”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 이 책은 고삐풀린 권력기관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들은 처음엔 권력을 등에 업은 개였다. 주인이 시키는대로 무고한 시민들을 사냥하고 물어뜯었다. 나중엔 주인의 뜻을 알아서 해석해 움직였다.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는 검찰과 법원, 경찰을 거느리는 우두머리 사냥개였다. 고문은 예사였고 협박과 이간질, 정치공작, 심지어 불법 선거운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남산’의 역사를 알게 되면 2012년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이 이미 예고돼 있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민주화가 된 이후 안기부는 드러내놓고 ‘사냥’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권력기관 문제가 해결됐을까. 1980년대만 해도 안기부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서울지검장 이창우 방을 몰래 뒤져 약점을 잡아낸 뒤 사표를 쓰게 만들 정도였다(2권 39쪽). 하지만 안기부라는 우두머리 사냥개가 사라지자 안기부 앞에서 기를 못 펴던 검찰이 새로운 우두머리가 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권력기관의 민주적 통제라는 오랜 화두를 되새길 수밖에 없는 2023년이다.
  • 北 “불법 침입 주한미군 추방”

    北 “불법 침입 주한미군 추방”

    북한이 지난 7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무단 월북한 주한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 이병을 추방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킹 이병 월북 71일 만으로, 추방 방식을 논의하기 위한 북미 간 협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당 기관에서는 공화국 영내에 불법 침입한 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을 공화국법에 따라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지난 7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내로 불법 침입하였다가 억류된 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에 대한 조사가 끝났다”고 밝혔다.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당 기관에서 조사한 데 의하면 트래비스 킹은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 불평등한 미국 사회에 대한 환멸로부터 공화국 영내에 불법 침입하였다고 자백했다”고 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18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킹 이병이 미국 사회 환멸을 느껴 월북했고, 북한이나 제3국에 망명할 의사를 밝혔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북한 주장과 달리 미국 언론 등에서는 킹 이병이 주한미군 근무 당시 폭행 등 사고에 연루돼 두 달가량 구금되는 등 자주 문제를 일으켰고, 징계 대상이 돼 미국으로 송환되는 과정에서 월북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당시 북한이 킹 이병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히며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정부는 킹 이병의 안전한 귀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 [속보]北 “월북 미군 병사 ‘추방’ 결정”

    [속보]北 “월북 미군 병사 ‘추방’ 결정”

    북한이 지난 7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무단 월북한 주한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 이병을 추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27일 “공화국 해당 기관에서는 공화국 영내에 불법 침입한 미군병사 트래비스 킹을 공화국법에 따라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라고 보도했다. 북한은 킹 이병이 판문점을 통해 무단 월북한 것을 ‘영내로 불법 침입한 것’으로 결론내고 별도의 처벌 없이 추방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통신은 “공화국 해당 기관에서 조사한 데 의하면 트래비스 킹은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 불평등한 미국사회에 대한 환멸로부터 공화국 영내에 불법 침입했다고 자백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에서 폭행 등의 혐의로 두 달 가까이 구금됐던 킹은 추가 징계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송환될 예정이었지만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달아난 뒤 7월 18일 무단 월북했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킹이 불평등한 미국 사회에 환멸을 느껴 북한이나 제3국에 망명할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 노르웨이 망명 바그너그룹 지휘관, 러 다시 돌아가려다 체포

    노르웨이 망명 바그너그룹 지휘관, 러 다시 돌아가려다 체포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지휘관이었다가 노르웨이로 망명한 안드레이 메드베데프가 최근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려다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메드베데프가 지난 22일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돌아가려다 노르웨이 핀마크 지역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바그너그룹 지휘관 출신인 그는 지난 1월 목숨을 걸고 러시아-노르웨이 북극 국경 철조망을 넘은 후 망명을 신청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그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 투입된 바그너 용병 가운데 국외로 도피한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이다.특히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바그너그룹 용병들이 명령 불복종으로 즉결처형되는 등 여러 전쟁범죄와 인권 유린 사례를 폭로하며 외신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무사히 노르웨이에 안착하는데 성공했으나 이후 메드베데프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지난 4월 오슬로의 한 술집에서 싸움에 연루되고 공기총을 소지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 특히 지난 5월 돌연 그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이곳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어느 것도 해낼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같은 발언이 있은 지 5개월 만에 국경 부근에서 체포된 셈이다.그러나 이에대해 메드베데프의 변호인 브린율프 리스네스는 "메드베데프의 체포는 오해로 인한 것"이라면서 "그는 지난 1월 자신이 건너온 곳을 찾을 수 있을 지 알아보기 위해 그곳에 갔으며 결코 국경을 넘을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러시아 톰스크 출신인 메드베데프는 지난해 7월 4개월 계약으로 바그너그룹에 합류해 책임자 자리까지 올랐으며 매주 약 30~40명의 새로운 병력을 공급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11월 계약을 무기한 연장하겠다는 통보를 계기로 근무 중 수많은 인권 유린과 전쟁 범죄를 목격해 탈영했다고 주장했다.  
  • 파블로 네루다 떠난 지 반 세기, 아직도 사인 미스터리 [메멘토 모리]

    파블로 네루다 떠난 지 반 세기, 아직도 사인 미스터리 [메멘토 모리]

    23일(현지시간)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반 세기가 흘렀다. 칠레 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명령을 받은 암살범에 의해 살해됐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된 때로부터도 12년이 흘렀다. 10년 넘게 그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려는 조사가 진행됐지만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캐나다와 덴마크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포렌식 전문가들이 시인의 유해를 꼼꼼이 살펴봤지만 분명한 답을 들려주지 못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전했다. 뜻밖의 의혹을 제기한 이는 전직 운전기사 겸 개인비서였더 마누엘 아라야였다. 그는 지난 6월 사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77세를 일기로 눈을 감고 말았다. 네루다의 조카 로돌포 레예스는 최근 BBC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명확한 결론을 원한다. 공은 이제 누가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지 판사의 앞마당에 있다. 우리 모두는 그녀가 선언하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인의 본명은 리카르도 엘리제르 네프탈 레예스 바소알토인데 체코 작가 얀 네루다의 성과 성경의 바울을 연상해 파블로를 결합해 지은 필명이 아예 법적 이름이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네루다가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은 피노체트가 권력을 장악한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지 12일째 되는 날이었다. 생전의 그는 전립선암 때문에 고생했으며 사망 확인서에는 질병 치료 적기를 놓쳐 생기는 “암성악액질(cancerous cachexia)”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기재돼 있었다.그러나 2011년 고인의 말년을 함께 했던 아라야는 누군가 멕시코 망명을 막기 위해 병원에서 치명적인 주사를 놓아 숨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고인은 그곳에서 야당을 이끌려고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네루다는 공산주의자였으며 쿠데타에 의해 정권을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은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의 절친이었다. 아라야는 BBC에 “네루다가 이 나라를 떠나게 내버려두는 것이 피노체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살해 당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 때문에 네루다의 유해는 2013년 발굴돼 포렌식 검사를 받게 됐다. 캐나다 토론토의 맥매스터 대학과 코펜하겐 대학 과학자들이 참여한 전문가 패널은 암으로 사망한 것은 아니지만 사망 원인을 단정할 수 없다면서 더 많은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올해 2월 그들은 추가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네루다의 치아 가운데 하나에서 보툴리눔 박테리아(bacterium clostridium botulinum) 흔적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 독성이 요즈음 주름살을 없애기 위해 많이 맞는 보톡스 주사다. 원래 군사적인 목적, 치명적인 생물학적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져 이미 실험되곤 했다. 하지만 이들 전문가 역시 이 주사가 실제로 네루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거나 의도적으로 목숨을 해치기 위해 사용됐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여하튼 이 보고서는 사법부에 제출돼 있다. 파올라 플라자 곤잘레스 판사가 언제일지 모르는 시기에 지금까지의 조사 결론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진실을 정확히 가리기 위해 더 조사를 해야 한다고 명령할 수도 있다.미디어들의 관심도 뜨겁고, 칠레 국민들과 네루다 가족도 분열돼 있다. 조카 레예스는 삼촌이 살해된 것이 맞다고 확신하는 반면, 다른 조카 베르나르도 레예스는 “허황되고” 가짜 뉴스라고 주장한다. 시인의 유산을 관리하는 네루다 재단은 자연사했을 뿐이란 입장이다. 세 번째 부인이며 미망인인 가수 출신 마틸드 우리티아는 남편보다 12년을 더 살았는데 한 번도 살해됐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의사들이 적어도 6년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남편이 그렇게 빨리 세상을 등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쿠데타로 인해 자신이 정치적으로 표방하고 지지했던 모든 것들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한 뒤 홧병이 도져 숨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검찰은 수십명의 의사, 간호사, 외교관, 정치인들 뿐만아니라 마지막 날 고인을 만난 친구들까지 심문했다. 그 중 몇몇은 절망적으로 아픈 남자로 네루다를 묘사했다. 가장 친한 친구로 마지막 몇 시간을 병원에서 함께 있었던 아이다 피구에로아는 “그가 곧 죽을 것 같다는 게 내겐 명백했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그만큼 확신하지 못했다. 곤잘로 마르티네즈 코르발 칠레 주재 멕시코 대사는 조사관들에게 죽기 전날 시인을 만났는데 “임박한 (멕시코로의) 여행 준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분명 마음의 상처 때문에 떠나고 싶어했지만 그 역시 해외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이해하고 있었다. 화가 끓어 오른 상태였다고 생각할 점은 없었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죽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코마 상태도 아니었다”고 진술했다.많은 이들은 아라야가 왜 40년 가까이 피살 주장을 감추고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운전사는 17년은 (피노체트의) 독재 기간이어서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없었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칠레 언론이 다루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아라야는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에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네루다는 암살됐다. 나는 처음 순간부터 말해왔고 죽는 날까지 그렇게 말할 것이다.”
  • 中 인권운동가, 미국 망명 위해 대만 도착⋯”인권·존엄·법치·희망 없어” [대만은 지금]

    中 인권운동가, 미국 망명 위해 대만 도착⋯”인권·존엄·법치·희망 없어” [대만은 지금]

    중국 반체제 인권운동가 천쓰밍(60)이 미국 망명을 위해 대만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만 언론들의 관심을 모았다. 22일 대만 언론들에 따르면, 이날 천쓰밍은 트위터를 통해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탄압을 피하고자 대만에 도착했다"며 "미국이나 캐나다의 정치적 망명을 희망하며 대만 정부는 자신을 중국으로 되돌려 보내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천쓰밍은 이어 "중국 공안의 수단은 점점 잔인하고 광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그들은 적법 절차를 무시한 채 그를 소환, 구금하고 휴대전화를 빼앗는가 하면 정신병 감정까지 받게 했다"고 했다. 이어 "인격 파괴, 존엄 훼손, 신체 위협 등을 견딜 수 없어 지난 7월 22일 중국을 탈출해 9월 22일 자유의 섬인 대만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후난성 주저우의 인권운동가인 천쓰밍은 매년 6월 4일 중국 천안문 사건 관련 행사에 참여해 오면서 오랫동안 주저우 공안국의 반체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는 앞서 지난 5월 26일 트위터를 통해 올해 6월 4일을 앞두고 보안당국은 다음날부터 밤낮으로 그와 동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날 천쓰밍은 해당 트위터를 삭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금될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고 이어 천쓰밍이 구치소에 구금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리고 그는 두 달 이상 실종 당하면서 해외 인권 운동가들은 이를 알리기 시작했다.  대만 자유시보에 따르면, 천쓰밍은 22일 오전 6시 30분 태국에서 에바항공 비행기를 타고 대만에 도착해 현재 공항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그가 가지고 온 것은 배낭과 수천 달러의 현금 뿐이다. 그는 태국에서 임시 난민 지위를 획득했지만 안전하지 않다고 여겨 대만행을 택했다.  천쓰밍은 미국 망명을 희망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이 경제적 조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중국은 인권도, 존엄도 법치도, 희망도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 7월 중국을 빠져나온 뒤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고 싶었지만 여권이 취소되고 미국 비자도 없어 라오스와 태국을 거치게 됐다"며 "태국과 라오스보다 안전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 대만을 통해서만 단기적으로 안전을 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17년부터 천안문 사건을 기념하기 시작한 그는 "중국인 40세 이하는 천안문 사건을 모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며 "매년 천안문 사건을 기념한 이들은 중국 당국에 체포되어 구금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만의 법률을 위반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며 "단지 대만을 통해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천쓰밍은 2017, 2018, 2020, 2021년 4차례에 걸쳐 구금됐고, 2019, 2020, 2022년 6월 4일 기간에는 당국 보안요원에 의해 베이징 밖으로 강제 여행을 다녀와야 했다. 미국의 소리(VOA) 등에 따르면,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은 모두 '관광'을 명분으로 현지 국내 보안요원에 의해 베이징 밖으로 여행을 당했다. 일례로 반체제 여성 언론인 가오위(79)는 올해 6월 1일 보안요원들에 의해 허난성 뤄양으로 이송됐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베이징으로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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