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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뉴스라인] 네팔 티베트인 10명 中 송환위기

    지난달 캄보디아 정부가 자국에 망명한 위구르인 난민 20명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한 데 이어 이번에는 네팔에 불법 입국한 티베트인 10명이 송환 위기에 처했다. 네팔 정부 관계자는 “최근 불법적으로 입국한 티베트인 10명을 조사하고 있다. 아직 결정하진 않았지만 강제 송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그들이 반중 활동에 관여돼 있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티베트인들은 남성 8명, 여성 2명으로 지난 16일 밤 국경 부근에서 체포됐으며, 출입국 관련 부서에 넘겨져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올드보이’처럼…가방 속 밀입국 소년

    ‘올드보이’처럼…가방 속 밀입국 소년

    영화 ‘올드보이’를 연상케 하는 ’슬픈’ 소년… 최민식 주연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식은 납치된 지 15년 만에 세상에 나올 때, 몸집 만큼이나 큰 수트케이스에 ‘담겨져’ 나온다. 이탈리아의 불법이민수색대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현실 속 이 장면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기에 충분하다. 수색대는 최근 남동부 해안의 항구도시인 바리에서 푸조207차량을 탄 불법이민자 일당을 검거했다. 이 차량의 트렁크에서는 대형 수트케이스가 발견됐는데, 놀랍게도 이 안에는 아프간에서 밀입국을 시도한 15세 소년이 몸을 숨긴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리스에서 출발한 여객선을 타고 이탈리아로 밀입국을 시도한 이 아이는 몸을 동그랗게 만 채 수트케이스에 숨어 있었으며, 경찰 조사에서 “돈을 벌려고 이탈리아에 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색대는 이 아이와 함께 밀입국을 시도한 아이의 형(17)이 이탈리아로 이동하는데 도움을 준 그리스 출신 운전사를 불법밀입국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아이와 형은 바리의 망명자 보호소로 보내야 할지, 아프간의 부모에게 돌려보낼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수많은 밀입국시도자들을 찾아냈지만, 수트케이스에 숨어든 사람은 없었다.”면서 “이 가난한 소년은 경찰에게 들킬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지 언론은 이 소년이 이탈리아까지 밀입국하는데 쓴 비용은 2600유로(약 420만원)가량이라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모닝브리핑] 유엔 北인권보고관 “탈북자 송환금지 지켜져야”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15일 “북한을 떠나 망명을 희망하는 ‘탈북자’들이 위험한 상황으로 되돌려 보내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강제송환금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서울 태평로 프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허가없이 출국을 시도하는 사람과 유사한 상황에서 송환된 사람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처벌이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타폰 특별보고관은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적절한 경로를 통해 제공돼야 하며 ‘접근 허용 없이는 지원도 없다.’는 국제원칙에 입각해 적절한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북한에는 식량뿐 아니라 전기, 의약품 등 다른 물자 부족도 여전하다.”면서 “왜곡된 식량 배분경로로 이러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윤리가 규칙이라는 편견 버려라

    그동안 우리에게 윤리, 혹은 도덕은 충분히 고리타분했다. 또한 윤리가 아무리 아닌 척해도 결국은 철학의 자장 바깥을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어렵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프란시스코 J. 바렐라가 쓴 ‘윤리적 노하우’(유권종·박충식 옮김, 갈무리 펴냄)는 윤리란 단순히 규칙을 잘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저 개인의 윤리적 소양 속에서 몸으로 겪고 배운 판단 능력이 곧 지혜이자 윤리라는 설명이다. 나아가 바렐라는 노홧(Know-What·어떤 것을 아는 것)보다 노하우(Know-How·앎을 아는 과정과 절차 등)의 비중이 훨씬 크다는 사실이야말로 윤리적 앎의 근원적 실체에 가깝다고 얘기한다. 특히 윤리적 행위는 판단체계라기 보다는 존재의 투사라고 생각하는 맹자의 사상과 적극적으로 교직하고 있으며 2500년에 걸쳐 쌓아진 불교, 도교, 유교의 윤리적 숙련성에 대해 긍정적 해석을 풀어간다. 이는 저자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칠레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다가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바렐라는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 이후 망명 생활을 했다. 이후 티베트 불교에 심취, 아예 티베트 불교도가 됐다. 인간이 진짜 윤리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앎이 아니라 실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절차의 또 다른 얘기다. 1만 1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줌인 아시아] 亞 소수민족 난민 ‘수난시대’

    아시아의 소수민족 난민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도 아랑곳없이 태국과 캄보디아는 갈 곳 없는 난민들을 쫓아냈다. 지난 5월 타밀반군(LTTE)과의 내전이 종식된 스리랑카는 타밀족에 대해 고문·성폭행 등 가혹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태국은 28일 자국으로 밀입국한 라오스계 몽족 4000여명을 라오스로 송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AFP·AP통신이 보도했다. 태국 정부는 북부 펫차분주 난민촌에 거주하고 있던 몽족을 40여명씩, 100여대의 버스에 나눠 태워 라오스로 송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몽족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을 지원하다가 1975년 라오스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정치적 탄압을 피해 태국 등으로 탈출해 신산(辛酸)한 난민생활을 해왔다. 타나 차루왓 태국군 대령은 “5000여명의 병사와 민간 봉사자 등이 28일 오전부터 송환 작업을 시작했다.”면서 “몽족을 라오스로 송환하는 데는 하루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몽족을 올해 말까지 송환하겠다고 라오스와 합의했다.”면서 “라오스는 송환된 몽족의 안전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애드리안 에드워즈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대변인은 이날 AFP통신에 “모든 송환은 자발적이어야 한다.”며 재차 송환 중단을 촉구했다. 유럽연합 의장국인 스웨덴도 성명을 통해 “깊은 당혹감을 느낀다.”면서 “국제법상 난민에 대한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캄보디아는 19일 밤 유혈 시위가 일어난 중국 신장(新彊) 위구르자치구를 탈출해 캄보디아에 망명을 요청한 위구르인 20명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했다. 캄보디아 정부 대변인은 중국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의 범법자’인 위구르인 20명을 이날 특별기편에 태워 중국으로 송환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송환 대가로 12억달러(약 1조 4000억원) 규모의 원조와 차관을 챙겼다. 스리랑카 정부가 운영하는 난민촌에 수용된 소수민족인 타밀족 난민들은 ‘타밀반군과의 내통’ 혐의로 가혹행위를 받거나 실종되는 사례도 많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폭로했다. 특히 타밀족 여성들은 배고픔에 지친 나머지 식량을 얻기 위해 정부 보안군의 성적 요구에 응하는 등 성적 학대를 당했다. 김규환 강국진기자 khkim@seoul.co.kr
  • 티베트 출신 아페이 中정협 부주석 100년 영욕의 삶 마감

    티베트 출신 아페이 中정협 부주석 100년 영욕의 삶 마감

    │베이징 박홍환특파원│티베트의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였지만 많은 티베트인들로부터 ‘변절자’로 비난받아 온 아페이 아왕진메이가 100세 생일을 두 달여 앞두고 23일 베이징에서 영욕의 삶을 마감했다. 아페이는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을 때는 티베트군을 이끌고 중국의 인민해방군에 대항했으나 패배한 뒤에는 적극적인 협력자로 변신해 중국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1951년 달라이 라마의 위임을 받아 베이징에서 중국의 티베트 점령을 인정하는 협정을 체결한 그는 1959년 무장봉기 실패 뒤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할 때 동행하지 않고, 티베트에 남았다. 1952년부터 1959년까지 인민해방군 티베트 수석 부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가 정식으로 설립된 1965년 이후에는 초대 자치구 인민위원회 주석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199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는 전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직책을 맡았다. 1967년 이래 고향인 티베트를 떠나 베이징에 거주해 왔다. 자녀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공식적인 직책을 맡아 활동하고 있으나 셋째 아들은 20여년 전 미국으로 망명, 티베트 독립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stinger@seoul.co.kr
  • [모닝 브리핑] 日언론 “러 근무 北근로자 12명 9월 한국 망명”

    │도쿄 박홍기특파원│러시아 아무르주에서 일하던 북한 근로자 12명이 지난 9월 한국에 집단망명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교도통신이 23일 보도했다.통신은 러시아 안보관계자의 말을 인용, 북한 근로자들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지원을 받아 망명했다고 전했다. 또 현재 북한 근로자 4명이 추가로 한국 망명을 신청, 한국 정부와 UNHCR가 수속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등 해외에서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가 집단으로 망명한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탈북자 문제에 대해선 탈북자 신변안전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hkpark@seoul.co.kr
  • 위구르난민 강제송환 12억弗짜리 거래였나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이 캄보디아로부터 위구르인 난민 20명을 건네받은 지 이틀만에 캄보디아에 12억달러 상당의 원조 및 차관을 제공키로 약속했다. 캄보디아에는 돈 때문에 인권을 포기했다는 비난이, 중국에는 자본을 무기로 목적을 달성했다는 국제사회의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중국과 캄보디아가 21일 12억달러 상당의 원조 및 차관제공 협정에 서명했다고 AFP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캄보디아를 방문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은 같은 날 프놈펜에서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 회담했다. 앞서 캄보디아 정부는 유엔과 미국, 인권단체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19일 밤 수도 프놈펜에서 위구르인 난민 20명을 특별기에 태워 중국으로 강제송환했다. 캄보디아 정부 대변인은 “양국은 모든 분야에서 유대를 강화키로 합의했으며 협정의 내용은 중국이 캄보디아에 12억달러 상당의 원조 및 차관을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중국 측은 위구르인 송환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법에 따르면 위구르인들은 분명한 범법자”라고 덧붙였다. 이번 합의는 지난 10월5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훈센 총리 간에 합의한 중국의 대(對)캄보디아 원조방안의 일환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1992년 9억 3000만달러의 원조 및 차관을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43억달러 이상을 캄보디아에 제공한 캄보디아 최대의 차관 및 원조 공여국이다. 소식이 전해지자 ‘위구르 대모’인 레비야 카디르는 “(위구르인 송환은) 수억달러 원조를 내세운 중국의 거대한 압력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며 “중국 주변국들은 중국의 기분을 상하게 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위구르인들이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우려했다. 이번에 강제송환된 위구르인들은 지난 7월5일 우루무치 유혈사태 직후 중국 내 비밀 선교 조직의 도움을 받아 탈출, 이달 초 캄보디아에 도착한 뒤 유엔난민기구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상태였다. 중국을 탈출할 당시 위구르인들은 22명이었지만 나머지 2명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stinger@seoul.co.kr
  • 디지털음원으로 만나는 임형주의 ‘압록강은 흐른다’

    디지털음원으로 만나는 임형주의 ‘압록강은 흐른다’

     한·독수교 125주년을 맞아 SBS와 독일 방송사 BR(Bayerischer Rundfunk)이 공동으로 제작한 SBS 창사특집 드라마 ‘압록강은 흐른다’의 OST가 디지털 음반으로 발매된다.  드라마 ‘압록강은 흐른다’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뒤 따스한 인간애로 독일인을 감동시킨 고(故) 이미륵 선생의 일대기를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 지난해 방영 이후 방송 요청이 이어져 올해 1월 신년특집으로 재방송됐고, 지난 6월에는 영화판으로 재편집돼 극장 상영을 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내년에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독일에 수출되어 BR 방송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소니뮤직이 내놓은 이번 ‘압록강은 흐른다’ OST는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서비스되는 디지털 음반. 드라마 OST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전곡이 팝페라테너 임형주의 음악으로 채워졌다.  임형주는 “지난 2월 첫 미니앨범 ‘My Hero(마이 히어로)’을 내놓으면서 ‘압록강은 흐른다’의 OST 음반 1만장을 제작해 증정한 적이 있었다. 발매 2~3달 만에 전량이 다 팔리면서 팬들의 요청이 계속됐는데도 음원 서비스도 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디지털 앨범으로 발매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압록강은 흐른다’ OST의 디지털 음반은 오는 16일부터 서비스된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황장엽 “평양 300m지하에 비밀 땅굴”

    황장엽 “평양 300m지하에 비밀 땅굴”

    북한 평양시에 유사시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수뇌부들의 대피를 위한 비밀 땅굴이 있다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주장했다. 황 전 비서는 7일 자유북한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평양 지면 아래 약 300m 지점에 지하철도(지하철)와 다른 제2의 지하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1997년 남한에 망명한 황 전 비서는 “수십년 전 우연히 평양 지하철과 연결된 비밀 지하땅굴에 직접 가 봤다.”면서 “지하철도로 내려간 뒤 그곳에서 또 지하철도 깊이만큼 다시 내려갔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 비밀 땅굴은 남포·순천·영원 등 주변으로 40∼50㎞나 뻗어 있다.”면서 “평양 철봉산 휴양소에서 남포항까지 땅굴을 뚫어 놨는데 이곳을 통해 유사시 (김 국방위원장 등이) 중국으로 도주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상으로부터 100~150m 깊이에서 운행되고 있는 평양시 지하철은 유사시 핵공격에도 견디는 초대형 방공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은행계좌 동결·신변위협 이란 인권운동 탄압 극심”

    “당장 입을 다물지 않는다면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내겠다.” 최근 이란 정부로부터 노벨평화상 메달을 몰수당한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62)가 전한 정부의 협박 내용이다. 포럼 참석을 위해 1일 한국을 방문한 그는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과 가족에 대한 정부의 탄압을 폭로했다. “정부가 나와 남편의 은행계좌를 동결시키고 은행금고 안에 있던 노벨상 메달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프랑스 최고 명예훈장) 등을 빼앗은 것은 명백한 범법행위”라고 에바디 변호사는 주장했다. 정부의 탄압에 분개한 듯 그는 한 시간여 회견 동안 ‘범법’이라는 표현을 10번 넘게 사용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에도 지치거나 피곤한 기색 없이 시종 강한 어조로 이란 정부를 비판했다. 에바디 변호사는 5일 전 자신의 계좌를 동결조치한 법원과 판사를 고소했다. 그는 “정부는 내가 노벨상 수상금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이란 세법에는 그런 조항이 없다.”면서 “남편과 가족들이 수차례 법원을 찾아가 계좌를 풀어줄 것을 호소했는데도 소용이 없어 고소했다.”고 전했다. 정부의 조치에 대해 에바디 변호사는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인권 활동가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지난 6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재임시킨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재투표를 요구해온 에바디를 포함한 인권운동가들을 정부가 예의주시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대선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나는 스페인으로 출국했지만 다른 인권운동가들은 전부 출국금지를 당한 상태”라고 전했다. 반년 가까이 외국을 떠돌며 망명 아닌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에바디 변호사는 남편과 가족과 친척이 있는 이란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란에 들어가면 나올 길이 없고 외부와 접촉할 수단도 없다.”면서 “이란에 돌아가기 앞서 몇달간 해외에 체류하면서 이란의 인권탄압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로만 폴란스키, 결국 ‘전자 발찌’ 신세

    로만 폴란스키, 결국 ‘전자 발찌’ 신세

    32년 전 13세 소녀와 불법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체포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스위스 법원이 보석을 허가했다.25일(현지시간) AP통신과 외신 등에 따르면 스위스 형사법원은 “폴란스키 감독에게 450만 달러(한화 약 51억원)의 보석을 허가했다.”고 보도했다.보석을 허가하면서 위치를 알 수 있는 ‘전자 발찌’를 착용시켜 스위스 별장에 머물도록 결정한 것.이는 지난달 20일 폴란스키 감독 측의 석방 요청을 기각했던 결정을 다시 번복한 것이다.법원은 “폴란스키 감독의 나이가 76세로 고령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인 점을 고려해 가택연금을 선택키로 했다.”며 “전자 발찌로 그의 행동을 충분히 감시 할 수 있다.”고 밝혔다.한편 폴란스키 감독은 지난 77년 미국서 불구속돼 프랑스로 도피한 후 망명 생활을 계속 해왔다.사진 = 영화 ‘러시아워3’에 출연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낙엽의 재발견

    낙엽의 재발견

    ●日 시골마을 年3억엔 소득 일본 도쿠시마현의 작은 마을 가미카쓰는 20년 전만 해도 노인들만 살던 ‘두메산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찾아오는 ‘기적의 땅’이 됐다. 변화의 원동력은 낙엽이었다. 쓸모없이 버려지던 단풍잎의 미적 가치에 주목한 마을은 1987년 사회적기업 ‘이로도리’를 설립해 낙엽과 산죽, 소나무잎, 동백나무잎을 고급요리용 장식 소재로 팔았다. 처음에는 나뭇잎 상품의 수요가 없어 고전했지만, 음식점 특성에 따른 맞춤형 제품을 내놓자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마을에서 매년 3억엔(약 36억원) 이상을 벌어들인다. 노인들은 그저 나뭇잎을 모으는 일만으로 월 25만엔(약 320만원)을 손에 쥔다. 이로도리의 요코이시 도모지 부사장은 “우울하던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마을 주민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준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설명한다. 요즘 전국 자치단체들은 매일 쌓이는 낙엽을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느라 여념이 없다. 일부에서는 낙엽을 퇴비로 활용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버려진다. 하지만 앞선 국가에서는 작은 아이디어로 낙엽을 ‘돈’ ‘일자리’와 맞바꾸고 있다. ●다양한 ‘블루오션’ 창출 해마다 1000억개가 넘는 일회용품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는 미국에서는 최근 한 식기회사가 출시한 낙엽 접시 ‘베르테라’가 쓰레기문제 해결의 희망이 되고 있다. 인도 시골에선 야자잎으로 접시를 빚는다는 점에 착안한 이 접시는 낙엽과 물로만 만든다. 개당 1달러에 팔리는 이 제품은 오븐에서 써도 될 만큼 내구성이 뛰어난데다, 62일이면 자연분해돼 환경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베르테라는 세계 여러 나라의 친환경제품 상을 휩쓸며 주목받고 있다. 스웨덴은 낙엽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안을 연구해 10여년 전부터 낙엽과 잔가지, 풀뿌리 등을 이용한 ‘바이오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액체 바이오가스가 장기적으로 석유 수요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국가과제로 삼았다. 프랑스에서는 폐기물 처리장에 지렁이 20억마리가 서식하는 특수탱크를 설치, 지렁이가 낙엽 등 정원쓰레기를 먹어치우게 해 유기농업에 필요한 지렁이 분변토(糞土)를 만들고 있다. 한국종합환경연구소 이승호 책임연구원은 “외국 도시들은 낙엽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조례 등 법적 근거를 우선 마련, 주민들도 재활용에 적극 참여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태우고 땅에 묻고 서울신문이 최근 서울 25개 자치구의 낙엽 재활용 실태를 파악한 결과, 매년 10월 말~12월 시내 가로수에서 배출되는 낙엽(3만t 추정) 가운데 절반이 넘는 58%(1만 7400t)가 수거 후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재활용하더라도 농가에 무상제공하는 경우(9000t·전체의 30%)가 대부분이디. 한때 민간기업에서 의약품 원료로 활용하기 위해 국내 은행잎을 수거했지만, 지금은 오염문제 등으로 재활용을 중단하고 약품처리된 수입품을 사용하고 있다. 자원순환연대 홍수열 정책팀장은 “자치단체들이 지금이라도 낙엽을 쓰레기가 아닌 자원으로 인식한다면 외국 못지않게 다양한 활용방안을 곧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美대북인권특사 “中에 탈북자 송환 중단 촉구”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로버트 킹 미국 대북인권특사 지명자는 5일(현지시간) 특사에 취임하면 중국 정부에 탈북자 추방과 강제 북송을 중단할 것을 촉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킹 지명자는 이날 상원 인준청문회에 출석, 중국 정부는 유엔난민협약의 당사국으로서 탈북자를 추방하거나 북한으로 강제송환해서는 안 되는 것 등을 포함해 협약 준수의무가 있으며 망명을 희망하는 탈북자들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접근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mkim@seoul.co.kr
  • 카르자이 당선 확정… 정당성 논란 지속

    ‘대선 1차투표→선거 부정 시비→결선투표 실시 발표→2위 후보 보이콧→결선투표 취소’ 대통령선거 투표 과정에서 혼미를 거듭해온 아프가니스탄 정국이 선거관리위원회가 2일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을 새 대통령으로 인정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AFP 등 외신들은 이날 아프간 선관위가 오는 7일 치를 예정이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를 취소하고 카르자이 대통령을 당선자로 발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선관위 최고위급 관리인 다우드 알리 나자피는 “선관위가 2명의 결선투표 후보 중 한 명인 압둘라 압둘라의 결선투표 불참 선언에 따른 대책을 논의한 결과 결선투표를 치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카르자이 대통령을 최종 당선자로 확정됐다고 선언했다. 앞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수도 카불을 깜짝 방문해 대선 관련 해법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촉구하면서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압둘라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부정선거 방지를 막기 위해 요구한 조건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결선 투표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카르자이 측에 요구한 조건은 ▲편파적 입장을 보인 아지줄라 로딘 선관위원장 해임 ▲선거번 위반 의혹이 있는 내무, 교육, 부족담당 장관 경질 등이었다. 양측은 이를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이에 따라 혼란을 거듭해온 아프간 정국이 일단락된 양상이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특히 압둘라 후보의 결선투표 보이콧과 결선투표 취소 등 카르자이 대통령의 재선 과정을 둘러싼 정당성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결선투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게 큰 약점이다. 압둘라 후보의 지지 세력이 반발할 경우 부족간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카르자이가 어떤 카드를 꺼내 정국을 수습할지 주목된다. ● 카르자이는? 칸다하르 주의 포팔자이족 출신으로 인도 유학에서 돌아와 1980년대 구 소련군의 침공에 맞선 무장투쟁에 참가하면서 유명해졌다. 1989년 소련군 철수 뒤 무자헤딘 지원을 받아 구성된 아프간 정부에서 외무차관으로 활동했다. 1996년 탈레반 집권 뒤에는 파키스탄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2001년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자 과도정부 수반으로 추대됐다. 이후 아프간 정부의 안정화를 이끌다가 2004년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55%가 넘는 지지율로 초대 민선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집권 5년 동안 아프간 전쟁 상황 악화와 민간인 피해 급증, 정부 내에 부패 만연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3共~유신시대 풍운아 이후락씨 별세

    박정희 시대의 실세 중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서 뇌종양과 노환이 겹쳐 별세했다. 85세. 그는 지난 5월 이 병원에 입원했다. 이 전 부장은 1924년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공립농고를 졸업했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1기로 졸업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육군 정보국 차장과 주미대사관 무관을 거쳤다. 미 중앙정보국(CIA) 연락책도 맡았다. 이 전 부장이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1년의 5·16 군사쿠데타였다. 5·16 주체세력은 미국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당시 CIA와 가까웠던 이 전 부장을 영입했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공보실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1963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 전 부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기용됐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 출범과 함께 권력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3선(選) 개헌의 후폭풍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 전 부장을 주일대사로 보냈으나 1년 뒤 핵심자리인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했다. 이 전 부장은 1971년의 대통령선거를 사실상 총지휘했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71년의 대선에서 패배한 뒤 이씨에게 “나는 박정희 후보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 부장에게 졌소.”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관권 및 금권 선거를 총지휘한 그를 비꼰 것이다. 이 전 부장은 ‘대한민국 제1세대 대북 밀사’로도 유명하다. 1972년 5월2일 자살용 청산가리 캡슐을 몸에 감추고 3명의 수행원과 함께 채 판문점을 넘었다. 그는 3박4일간의 방북기간 중 김일성 주석(당시 직함은 노동당 총비서)을 두 차례 만나 북측으로부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공동성명의 기본 원칙’을 받아 왔다. 북측의 김영주(김일성 주석 동생)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박성철 제2부총리가 그해 5월29일부터 서울을 답방, 박 전 대통령 및 이 전 부장과 수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는 공작정치의 대명사라는 말도 듣는다. DJ 납치 사건의 주범으로도 꼽힌다. 1973년 7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DJ 납치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잃었다. 특히 1973년 12월1일 당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사석에서 “박정희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라고 발언한 게 파문을 일으켜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경질됐다. 권좌를 떠난 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 전 부장은 “조계종 회의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그해 12월 말 극비의 정보 문서들을 챙겨 영국령 바하마로 출국했다. 사실상 망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망명한 이 전 부장이 자신의 치부를 폭로할 것을 우려해 귀국을 종용했다는 설이 정설로 돼 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친필 편지를 받고 1974년 2월 귀국했다. 1970년 말 국회의원을 잠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신군부 세력으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몰리면서 공직에서 사퇴하고 정치활동을 규제받았다. 1985년 정치활동 규제에서는 풀렸으나 외부행사에 나오지 않으며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 왔다. 이 전 부장은 입원하기 전까지 경기 하남시에 있는 별장에서 칩거하며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유족은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 등 3남1녀. 빈소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발인은 2일 오전 8시30분. (02)440-8922.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카스트로 여동생 “난 CIA 스파이였다”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전·현직 국가평의회의장의 여동생인 후아니타 카스트로(76)가 1964년 미국 망명 전 미 중앙정보국(CIA)에 내통한 사실을 밝혔다고 AP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후아니타는 멕시코 출신 언론인 마리아 안토니에타 콜린스와 공동 집필한 회고록 ‘나의 오빠 피델과 라울, 비밀이야기’의 출간을 앞두고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1961년 또 다른 여동생 엔마를 만나러 간다며 멕시코를 방문해 멕시코시티의 한 호텔에서 CIA 요원과 접선한 뒤 ‘도나’라는 암호명을 받았다. 그 뒤로 3년간 CIA와 협력하며 반체제 인사들의 활동을 도왔다. 후아니타는 CIA와 단파라디오를 통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AP는 전했다. 하지만 그는 협력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회고록의 공동 저자인 콜린스는 후아니타가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동포들을 도왔다고 전했다. 원래 후아니타는 1959년 오빠 피델이 이끈 쿠바혁명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피델의 독재정치에 환멸을 느낀 뒤 은밀히 반체제 인사들을 돕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집은 반체제 인사들의 은신처로 활용됐다. 피델은 그에게 “벌레들(반체제 인사들을 지칭)과 내통하지 마라.”고 경고할 정도로 이미 둘 사이는 멀어진 상태였다. 이후 후아니타는 1963년 어머니 리나 크루스가 사망한 뒤 쿠바를 떠나 마이애미에 정착했다. 회고록에 담긴 두 오빠에 대한 그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그는 피델을 이기적인 냉혈한으로 묘사했지만 라울은 고귀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 라울의 딸인 조카 마리엘라가 동성애자 인권 보호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예방 활동을 하는 것에도 찬사를 보냈다. 그는 회고록에서 “피델을 배반하고 적과 내통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배반한 것은 내가 아닌 바로 오빠 피델”이라고 잘라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印총리 “달라이 라마는 귀빈”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에게 양국 간 분쟁 지역에 달라이 라마가 방문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AP통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달라이 라마가 다음 달 대표적인 분쟁지역 아루나찰 프라데시주(州) 타왕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온 이번 발언으로 양국 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싱 총리는 25일 태국 후아힌에서 열린 원 총리와의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원 총리에게 달라이 라마는 우리의 귀빈이며,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종교 지도자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망명 티베트인들이 정치적 활동에 관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결국 싱 총리가 달라이 라마의 분쟁지 방문을 종교적 목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이를 제지할 명분이 없음을 중국 측에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달라이 라마의 행보를 다분히 정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티베트 불교를 믿는 먼바족이 사는 타왕은 한때 티베트의 일부였던 지역으로 중국은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에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는 타왕이 인도의 영토라며 중국의 심기를 자극해 왔다. 싱 총리의 타왕 방문까지 반대했던 중국 정부로서는 당연히 달라이 라마의 방문도 강력히 반대해 왔던 터다. 싱 총리의 발언에 원 총리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싱 총리는 “평화적으로 양국 간 국경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양국은 최근까지 13차례에 걸쳐 국경문제를 논의했지만 뚜렷한 합의를 보지 못한 상태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모닝 브리핑] 日신문 “한국, 황장엽씨 日방문 허용”

    │도쿄 박홍기특파원│한국 정부가 망명한 황장엽(86) 전 북한노동당 서기의 일본 방문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아사히신문이 22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황씨의 방일을 허용해 달라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비공식적으로 받고 이같이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날 한국을 방문한 나카이 히로시 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과 구체적인 황씨의 입국 시기 등을 협의했다. 한국 정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전 대통령 정부와는 달리 북한에 엄격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한편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해 황씨의 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방일을 허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도 일본 측이 공식적으로 초청하면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방일이 이뤄지면 황씨의 해외방문은 지난 2003년 10월 미국 방문 이후 두번째다. hkpark@seoul.co.kr
  • ‘신발투척’ 기자, 전쟁피해자 돕는 재단 설립

    기자회견장에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져 ‘아랍의 영웅’이 된 이라크의 문타다르 알 자이디 기자가 인도주의 재단을 설립할 뜻을 밝혔다. 전쟁 미망인과 고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취지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자이디는 19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부모를 잃은 고아들, 추방자 등 전쟁 피해자들을 도와줄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면서 “재단의 자금을 통해 의료센터를 설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 자이디 재단은 웹사이트를 개설했으며 이미 자이디의 친구들이 기부한 5만스위스프랑(약 5800만원)을 기금으로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이디는 또 부시 전 대통령이 주도한 전쟁 책임자들을 국제 사회가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신발 사건 뒤 교도소에 수감된 9개월 동안 전기 충격 등 심한 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라크 인권부의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8만 5000명 이상이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 이 데이터는 2003년 3월 미군의 이라크 침공 직후 사상자 숫자는 포함하지 않았다. 이라크전 사상자를 집계하는 영국의 이라크보디카운트(www.iraqbodycount.org)는 이라크 전쟁 시작부터 2009년 8월까지 최소 9만 3540명이 사망했다고 추산하고 있다. 자이디는 스위스 망명을 신청했다가 철회했으며 관광객 비자로 13일 스위스를 방문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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