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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아공 문 두드리는 짐바브웨 난민들

    ‘여행이 고되지는 않을까.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던데….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앞둔, 축구팬의 ‘행복한 고민’이 아니다. 짐바브웨에서 반독재 투쟁에 나섰다가 6개월된 딸아이가 보는 앞에서 죽을 만큼 맞고 쓰러지면서 고국을 떠나야겠다고 마음 먹은 22세 바버라, 그가 국경을 건너기 전 속을 끓였던 이유들이다. 전 재산을 털고 빚을 내, 매일 300명가량 되는, 짐바브웨와 남아공을 가르는 림포포강을 건너는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 했다. 친척이 준 돈으로 ‘가이드’를 구했지만, 돈도 빼앗기고 성폭행까지 당했다. 바버라는 “운이 나빴으면 에이즈 감염자에게 걸렸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인디펜던트가 7일 보도했다. 지난해 2월 독재 체제가 무너지고 거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아공 정부는 “짐바브웨에 위기는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15개월이 지난 현재 매주 2100명이 망명 신청을 하기 위해 남아공 국경 무시나의 내무부를 찾는다. 여권 발급 비용만도 한달 수입의 2배를 훌쩍 넘기 때문에 빈손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아 실제로 망명 지위를 얻는 사람은 1% 정도다. 어렵게 남아공에 들어온 사람들은 최소 70만명. 하지만 남아공에서는 ‘인종 증오 범죄’라는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망명자인 이스마엘(버림받은 자라는 뜻) 카우자니는 “월드컵은 즐거운 행사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종말의 시작입니다. 남아공이라는 천국의 문이 닫히고 있어요.” 씁쓸한 그의 눈동자에는 월드컵 분위기가 한껏 나는 요하네스버그 거리의 인파가 비치고 있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탁신 체포영장 발부 테러 선동혐의… 사형가능성

    태국 형사재판소가 25일(현지시간) 탁신 친나왓 태국 전 총리에게 테러 선동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2006년 태국 군부 세력에 의해 축출된 후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탁신 전 총리는 지난 3월부터 두달간 88명의 사망자를 낸 UDD(일명 붉은셔츠) 반정부 시위의 배후로 의심 받아왔다. 특히 시위 주동자들을 조사하고 있는 특수조사팀은 24일 탁신과의 관계에 대한 주요 연결고리를 찾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테러 선동혐의가 인정되면 탁신 전 총리에게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탁신 전 총리의 변호인은 즉각 성명을 내고 “태국 정부가 상식과 법률을 무시하고 있다.”며 무고함을 주장했다. 한편, 아피싯 웨차지와 총리와 태국 정부 관계자들은 회의를 열고 현재 시행되고 있는 야간통행금지 조치를 오는 29일까지 연장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부고] 러시아 로마노프왕가 레오니다 대공비 숨져

    1917년 러시아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에서 출생한 로마노프 왕가의 마지막 생존자 레오니다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大公妃·95)가 24일 숨졌다.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기 3년 전인 1914년 태어난 레오니다 대공비는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러시아 황태후로 알려져 있다. 또 로마노프 왕가의 대표이며 왕위 계승자인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의 미망인이다. 키릴로비치 대공은 러시아에서 마지막에서 세번째 황제인 알렉산드르 2세의 증손자로 1992년 세상을 떠났다. 키릴로비치 부부의 딸인 마리아 블라디미로프나 대공비는 현재 로마노프 왕가를 대표하고 있다. 로마노프 왕조 사무실의 알렉산드르 자카토프 소장은 “레오니다 대공비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한밤에 숨졌다.”면서 “요청대로 상트페테르부르그 페터 앤 파울 요새의 남편 곁에 묻힐 것”이라고 밝혔다. 묘지에는 니콜라이 2세 등 로마노프 왕조 황제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레오니다 대공비는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출생, 1934년 프랑스 니스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재벌 섬너 무어 커비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딸 헬렌을 낳았으나 1937년 이혼했다. 스페인으로 이주한 뒤 1948년 블라디미르 대공과 재혼했다. 레오니다 대공비는 소비에트 시절, 작가 막심 고리키의 도움으로 생활하다 스페인으로 망명, 마드리드와 브르타뉴의 한 작은 마을을 오가며 살았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복에 관한 담론》(돌베개) 중에서 | 무덤을 찾아다니며] 무덤에도 시대가 보인다

    [《복에 관한 담론》(돌베개) 중에서 | 무덤을 찾아다니며] 무덤에도 시대가 보인다

    언제부터 생긴 기묘한 버릇인지, 나는 젊은 시절 외국에 나가 살 때 어느 새로운 도시를 방문하면 곧잘 그 고장의 묘지부터 찾아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독일 하이델베르크 유학 시절에 그곳 공동묘지에 묻힌 막스 베버와 마리안네 베버 부부,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철학자 쿠노 피셔 등의 무덤을 찾은 것이 시작이 아니었나 회상됩니다. 유럽의 묘원(墓園)은 우리나라의 공동묘지와는 달리 그 꾸밈새가 아름답고 잘 정리돼 있기도 해서 꽤 볼 만하고 관광객에게도 충분히 눈요깃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자동차로 드라이브하면서 둘러봐야 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의 광대한 중앙묘지(zentralfriedhof)는 그 좋은 보기입니다. 그곳의 가령 음악가 묘역 단지에는 베토벤, 브람스, 글루크, 슈베르트, 후고 볼프,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 등 세계 음악의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이 한데 모여 묻혀 있습니다. 더욱이 그 무덤들은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의 무성격한 봉분과는 달리 무덤마다 각 시대 양식의 조각 작품을 장식하고 있기도 해서 다양하고 개성적인 형상을 보여줍니다. 장엄하기도 하고 우아하기도 한 유럽의 그러한 묘지들을 우리나라의 초라한 분묘와 비교하고 나면, 과연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조상 숭배의 나라라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어집니다(물론 선조들의 무덤 자리로 명당을 찾으려는 한국인의 성심과 열성만은 단연 세계 제일이란 믿음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가령 프랑스의 여행 가이드북 《기드 뒤 미슐랭》에는 작곡가 베를리오즈, 시인 보들레르, 독일의 망명 문인 하이네, 또는 실존주의 작가 사르트르와 보봐르 등 명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묘역 지도까지 자세히 기재된 파리의 몽마르트르와 몽파르나스의 공동묘지에 관한 안내가 있습니다. 그곳은 가보신 분들도 많으시리라 믿기 때문에 그곳에 관한 긴 얘기는 생략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비교적 근래에 가본 묘지 몇 군데에 관한 얘기만 해볼까 합니다. 나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20여 년 전 처음 방문했습니다만 그때는 다른 곳은 둘러보지도 않고, 그럴 시간 여유도 없고 해서 오직 한군데만 구경하고 돌아왔습니다. 베네치아 시내에서 택시(모터보트)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산 미켈레 섬(Isola S. Michele)만을 둘러보고 온 것입니다. 그 섬의 공동묘지에 묻힌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무덤을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프랑스, 미국의 국적을 차례로 가진 세상이 다 아는 코스모폴리탄이었기 때문에 그가 어디에 묻히건 놀랄 일은 아니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뉴욕에서 숨을 거둔 그가 영면의 장소로 마지막 국적을 얻은 그 광활한 미 대륙의 땅이 아니라 굳이 대서양을 횡단해서까지 유럽으로 건너와, 하필이면 그것도 예전에 한동안 국적을 취득하고 살았던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건너와서 거기서도 다시 한참 떨어진 한적한 외딴섬에 묻혔다는 것이 내게는 도무지 궁금하기만 한 수수께끼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산 미켈레 묘지를 찾아가 봤고, 거기서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고르와 베라 스트라빈스키 부부의 묘가 있었고, 거기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1872~1929)의 무덤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걸 확인하고 그때 그곳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발레 뤼스(Ballet Russe)’를 창단해 20세기 발레의 부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디아길레프는 스트라빈스키에게 발레 음악의 명작 <불새>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 등의 작곡을 위촉해 그를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워 준 사람입니다. 산 미켈레에 못지않게 나를 감동시킨 것은 서베를린의 첼렌도르프 공원묘지에 묻힌 전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의 무덤이었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나서 서베를린 시장을 거쳐 유럽대륙 최고(最古)의 정당 당수가 돼 제2차 세계대전 후 첫 사회민주당 출신의 총리로 취임한 빌리 브란트(1913~1992), 그는 냉전시대에 동·서유럽의 화해에 기여한 업적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덤에는 아무런 장식이나 가공도 하지 않은 자연석이 하나 덩그렇게 세워져 있고, 거기에는 일체의 경력이나 관직에 관한 표시 없이 - 심지어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1890~1970) 묘비에도 그것만은 새겨 두었다는 생년과 몰년(沒年) 표시도 없이 - 다만 WILLY BRANDT라는 이름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나를 감동시킨 것은 브란트의 묘역 바로 뒤가 에른스트 로이터(1889~1953)의 묘역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로이터와 브란트는 둘 다 베를린 시장을 역임하면서 저마다 스탈린의 베를린 봉쇄와 흐루시초프의 베를린 장벽에 맞서 분단 도시의 자유를 지켜낸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르웨이 군복을 입고 망명지에서 귀국한 젊은 브란트를 정치가로 키워 준 사람이 역시 터키의 망명지에서 귀국한 베를린의 선배 시장 에른스트 로이터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한 사례를 나는 최근 모스크바의 한 공동묘지에서 구경했습니다. 그곳은 가령 정치가로는 흐루시초프와 옐친, 문인으론 고골과 체호프, 무대인으론 샬라핀과 울라노바 등이 묻혀 있는 명소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묘원이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전년에 타계한 러시아의 세기적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가 묻혀 있다 해서 2008년 6월 초 짬을 내어 찾아가 봤습니다. 로스트로포비치의 무덤은 묘비가 완성되지 않아 가묘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치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세계에서 드림 트리오라 일컫던 파블로 카살스(첼로), 자크 티보(바이올린),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노)의 3인조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엔 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 소련의 ‘드림 트리오’를 이루었던 에밀 길렐스(1916~1985, 피아노)와 레오니드 코간(1924~1982, 바이올린)의 묘소가 오래전부터 거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들이 형제도 부부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길렐스와 코간은 같은 자리에 묻혀 있고, 묘비도 둘이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후의 영원한 안식처로 생전에 특별히 가까웠던 은인이나 선배, 친구나 동료들 곁을 찾아간다는 것이 동북아에는 없는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만 있는 풍습인가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인 고도(古都) 가마쿠라(鎌倉)에는 도케이지(東慶寺) 묘원이 있습니다. 원래 비구니 사원이라고 하는 이 절의 후원에 마련된 공동 묘역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근대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출판사 이와나미서점의 창업자 이와나미 시게오를 비롯해서 일본 근대철학을 대표하는 니시다 기타로와 아베 요시시게, 와쯔지 데쓰로, 다니카와 데쓰조, 문학자 고바야시 히데오와 아베 도모지, 기시다 구니오 등의 무덤이 모여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일본 문화계의 주요 인물 가운데 그곳에 묻히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도케이지 묘원은 근대 일본의 지식인과 예술인의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라 할 만한 곳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다른 나라와 같이 순국한 군인들을 위한 국립묘지는 있습니다. 가족 묘지를 마련할 땅을 매입하기가 일반 서민들에겐 갈수록 어려워진 근래에 와서는 망우리를 위시해서 여러 군데에 공원 묘지, 교회 묘지 등이 개발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음악가, 학자, 작가들을 위한 공동묘지는 없는 것 같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이 도대체 가능한지, 아니 그러한 발상부터 가능한 것인지…, 나는 회의적입니다. 살아서는 넓은 세상에 나와 이름도 군청이나 시청의 열린 호적부에 오르지만, 죽어서는 좁은 선영(先塋)의 가족묘에 돌아가 묻히고 이름도 닫힌 족보에 기록되는 것이 괜찮게 사는 한국 사람들의 생사입니다. 왜 그럴까? 그러한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나는 우리나라 기복사상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글·사진_ 최정호 울산대학교 석좌교수
  • [사설] 채팅 여간첩에 포섭된 얼빠진 공기업 간부

    인터넷 채팅을 하다 여간첩에 포섭된 얼빠진 서울메트로 간부가 지하철 기밀자료를 빼넘겼다가 당국에 적발된 사건은 우리사회 대공 안보의식이 얼마나 허약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직 서울메트로 과장급 간부 오모(52)씨는 서울지하철 1~4호선의 위기대응 매뉴얼 등 내부정보를 북한의 30대 공작원 김미화에게 전달, 북한에 보고하게 했다. 김미화가 북한에 보고한 정보들은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하철 테러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적발하지 못했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오씨는 동거하던 김미화가 북한 공작원임을 밝혔는데도 서울메트로 종합관제소 컴퓨터에 저장된 종합사령실 비상연락망, 승무원 근무표, 위기상황 발생 시 대응방안 등을 USB 메모리에 담아 넘겼다. 한심하다. 우리는 서울메트로에 허술한 보안관리 체계를 철저히 재점검할 것을 촉구한다. 북한은 지난 3월26일 백령도에서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해 침몰시켰다. 또 망명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를 암살하기 위해 공작조를 파견했으나 당국에 4월20일 구속됐다. 북한 정권의 대남 교란, 파괴 공작이 무차별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간첩 김미화 사건은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하철 안전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국민의 대공 경각심에 허점을 드러내면 위험하다는 점도 경고해 주었다. 김미화는 성(性)을 무기로 남성들을 유혹해 기밀을 빼내고, 탈북자로 위장해 입국했다는 점에서 2008년 간첩 혐의로 검거됐던 원정화(36·여)와 닮은 꼴이다. 북한 정권은 지난해 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척하면서 같은 시기에 대남 교란 공작을 펼쳤음이 속속 드러났다. 우리 사회 전체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누구라도, 언제라도 북한의 공작 목표가 될 수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얼빠진 공기업 간부가 국민의 대공의식을 일깨웠다.
  • 조기총선 거부땐 또 안갯속

    태국 반정부 시위대의 랏차쁘라송 거리 시위는 끝났지만,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당초 탁신 친나왓 전 총리 복귀를 요구하며 시작된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옐로(엘리트·귀족)와 레드(농민·도시빈민층)로 대비되는 태국 사회의 계층 간 갈등이 본격적으로 표출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위 과정에서 근거지인 방콕 시내 이외에 중북부 농촌 지역에 비상사태를 잇달아 선포하며 주의를 기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 태국 정세는 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와 탁신 전 총리에 달려 있다. 시위대의 추가 협상 요구를 거부하며 ‘무력진압’을 강행한 아피싯 총리는 시위가 끝나면서 약속했던 협상에 나서야 하는 입장이다. 당초 시위대에 제안했던 11월 조기총선 실시 방안을 다시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7명의 주요 지도자를 잃은 반정부 시위대가 이번처럼 대대적인 시위를 다시 벌이기는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선거패배를 두려워하는 아피싯 총리가 약속을 깰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이 경우 지방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다시 일어날 수 있고, 태국 정부는 그동안 사태를 예의주시해 온 유엔 등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하는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시위 주동자들에 대한 처벌이 어떻게 이뤄질지도 향후 정국에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정부 시위대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금전적 지원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탁신 전 총리의 대응도 주목된다. 반정부 시위대가 현 정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해야 복권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어서다. 현재 망명 중인 탁신 전 총리는 태국에 입국하면 부정축재 혐의로 2년간 징역을 살아야 한다. 탁신 전 총리는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태국 정부의 반정부 시위대 탄압이 태국 전역에서 게릴라 전쟁을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탁신 전 총리가 추후 이번 시위 진압이 무력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반정부 시위를 유도할 개연성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반정부 시위 2개월만에 ‘피묻은’ 백기투항

    반정부 시위 2개월만에 ‘피묻은’ 백기투항

    태국 정부는 19일 전격적으로 반정부시위대를 치고 들어갔다. 군경의 진압작전에 시위대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던 지역은 곧바로 군경에 넘어갔다. 시위대 지도부는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14일 시위가 시작된 지 2개월여 만이다. 당초 망명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시위대(UDD·일명 레드셔츠)가 수도인 방콕 시내 중심가에 모여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을 외칠 때만 해도 시위가 장기화되고, 유혈사태로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방콕 중심가를 거점으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많은 사상자가 났지만 정부 측의 해산 최후통첩도 거부했다. 결국 정부는 이날 오전 6시쯤 장갑차, 소총과 유탄발사기, 최루탄 등을 동원해 강제해산에 나섰다. 상원의회가 중재하는 협상을 거부한 지 하루 만이다. 진압과정에서 최소 6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군경은 먼저 장갑차를 앞세워 전진하면서 시위대가 설치해 놓았던 폐타이어로 만든 바리케이드 등을 제거했다. 최루탄과 공포탄도 발사했다. 곧이어 시위대의 차지였던 랏차쁘라송 거리로 연결되는 진입로를 장악했다. M16 소총으로 무장한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투항하지 않으면 사살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 시위대는 폐타이어에 불을 지르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시꺼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군경과 시위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폭탄이 터진 듯 굉음도 곳곳에서 들렸다. 인근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들의 피해가 커지자 시위대 지도자인 자투폰 프롬판은 시위대 본부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지지자들에게 “더 이상 피해가 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항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시위대 지도부가 경찰에 백기를 든 이후에도 적지 않은 시위대는 방송국과 대형 쇼핑센터, 주식거래소 건물 등 20개 시설에 난입하거나 불을 지르는 등 저항을 계속했다. 랏차쁘라송 거리에서 가까운 쇼핑센터 센트럴 월드에선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에 화재가 발생했다. 일부 호텔 등에서는 전력 공급이 끊기기도 했다. 친정부성향으로 지목된 신문사 ‘방콕 포스트’는 시위대가 공격에 나서자 직원들을 긴급 대피시켰다. TV방송국 ‘채널 3뉴스’가 불길에 휩싸여 사무실에 갇힌 100여명을 구하기 위해 헬리콥터가 출동하기도 했다. 순센 깨우꿈넷 군 대변인은 이날 오후 시위 지역인 랏차쁘라송 거리 일대를 장악했다며 진압작전의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혼란이 지속되자 태국 정부는 TV방송을 통해 방콕 시내 전역을 포함, 24개주에 대해 오후 8시부터 20일 오전 6시까지 통행금지를 선포했다. 정부는 또 모든 TV방송국의 정규방송을 취소하고 정부 검열을 거친 프로그램만 방송토록 명령했다. 태국 중앙은행과 증권거래소는 공공 안전을 이유로 20~21일 이틀간 휴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편 탁신 전 총리는 이날 자신이 시위대와 정부 간 평화협상을 방해했다는 정부 측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탁신 전 총리는 “오늘 정부는 랏차쁘라송 거리의 평화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고는 내가 협상을 거부한 이들 중 하나라고 비난했다.”면서 “하지만 나는 평화적인 방안을 찾는 협상을 위한 어떤 노력도 반대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강국진 박성국기자 betulo@seoul.co.kr
  • 푸미폰 국왕 침묵의 이유

    푸미폰 국왕 침묵의 이유

    태국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푸미폰 아둔야뎃(82) 국왕이 최근의 시위 정국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개월 넘은 반정부 시위가 내전 상태로 접어들었건만 국왕은 각계의 개입 호소에도 불구, 전과 달리 가타부타 말이 없다. 국왕이 중재 활동을 벌이지 않는 표면적인 이유는 건강 문제. 지난해 9월부터 고열과 식욕부진 등으로 방콕 시리라즈 병원에 장기입원해 있다. 그러나 그가 침묵하는 진짜 이유는 이번 사태가 계층간 갈등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와 달리 국왕 자신도 ‘이해당사자’가 돼 끼어들기가 껄끄럽게 됐다는 것이다. 과거 푸미폰 국왕은 군부와 민주화 세력 간의 충돌 과정에 ‘제3자’로서 개입할 수 있었다. 현재는 왕실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온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시위대를 지원할 수도 없고, 왕실 수호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현 정부와 군부 손을 섣불리 들어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태국은 입헌군주제 국가이지만 푸미폰 국왕은 ‘헌법 위의 존재’로서 초월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1946년 즉위해 60년 넘게 재임하고 있는 그는 재임 기간 19번의 군부 쿠데타와 16번의 헌법 개정 등 사회 격변을 겪었지만 지도력과 중재 능력으로 고비 때마다 사태를 해결해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아 왔다. 그는 1973년 군부가 민주화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을 향해 발포하자 궁전 문을 열어 학생들의 편에 섰고 1992년 군사정권에 의해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을 때도 직접 개입해 군사정권을 종식시켰다. 1992년 당시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친다 총리와 야권의 잠롱 방콕 시장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무릎을 꿇어앉히며 준엄하게 질책하던 모습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당시 푸미폰 국왕이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자 수친다 총리는 해외 망명길을 떠났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성공가도 달리는 닉 클레그는

    성공가도 달리는 닉 클레그는

    보수당과의 연정을 통해 영국 부총리에 오르게 된 닉 클레그(43) 자유민주당 당수는 무엇보다 그를 둘러싼 다문화 환경이 눈길을 모으는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에서 자란 네덜란드인으로 영국 방문 도중 클레그 부총리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증조할아버지는 러시아 귀족이었고 할머니도 망명한 러시아 남작부인이었다. 클레그는 스페인 여성과 결혼했다. 이런 환경 덕분에 그는 영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5개 언어에 능통하고 인종주의를 배격하는 성향을 갖게 됐다. 캐머런 신임 총리처럼 클레그 내정자도 은행가 아들로 태어나 사립 귀족학교인 웨스트민스터 스쿨과 케임브리지대에서 공부했다. 이후 유럽연합(EU)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다 1999년 이후 5년간 EU 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영국 주요 당수 가운데 친(親) EU 성향이 가장 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5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2년 만에 당수가 되고, 다시 3년 만에 부총리가 되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영국에서 부총리는 큰 실권이 없다. 부총리직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가디언은 클레그 부총리 내정자가 과거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뚜렷한 족적 없지만 부패와 거리먼 ‘Mr.청렴’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50·자유당) 상원의원은 필리핀 정치명문가 아키노 가문의 적자다.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과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평범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어머니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대장암으로 숨지면서 추모열기를 타고 단기간에 유력 대선후보로 급부상했다. 아키노 의원은 나이키 회사의 매니저로 일하다 부모의 후광을 업고 지난 1998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 3차례 하원의원직을 역임한 뒤 2007년 상원에 입성했다. 정치인으로서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부정부패와 거리가 먼 깨끗하고 공정한 이미지를 필리핀 유권자들에게 심어줬다. 이것이 그를 대권 고지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됐다. 독신인 그는 당구를 즐기고 재즈음악 CD를 수집하고 골프를 좋아하는 등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다. 그의 아버지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은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 항거해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1983년 미국 망명에서 돌아오던 도중 마닐라공항에서 암살당했다. 그 뒤 그의 어머니 코라손 아키노가 1986년 ‘피플 파워’ 혁명의 핵심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바 있다. 그의 아버지인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은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했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필리핀 첫 母子대통령 유력

    필리핀 첫 母子대통령 유력

    필리핀에서 세계 최초로 모자(母子) 대통령이 탄생할 전망이다. 정·부통령, 상·하원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1만 7888명의 공직자를 선출하는 3대 선거가 10일 필리핀 전역에서 일제히 치러진 가운데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상원의원인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50) 자유당 후보가 개표 초반 예상했던 대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과 마누엘 비야르 상원의원은 상당한 표 차이로 각각 2위와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아키노 후보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 독재시절인 1983년 미국 망명생활 후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당한 아버지와 1986년 대통령에 올라 6년간 재임한 어머니 코라손 아키노에 힘입어 대선 직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42%의 지지율을 얻으며 2, 3위 후보들을 20%포인트 이상 차이로 따돌리며 선거 전부터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자동 검표·투표 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이번 선거에서 노이노이 아키노 후보는 검표기 고장으로 제때에 투표하지 못했고, 곳곳에서 투표가 지연되면서 예정된 마감시간인 오후 6시(현지시간)보다 한 시간 연장된 7시에 마감됐다. 한편 당초 우려했던 대로 폭력 사태가 잇달아 발생, 최소 10명이 숨졌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수도 마닐라 외곽 바쿠르시에서 한 의원의 경호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경호대원 2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고 경찰 1명도 크게 다쳤다. 이 충돌은 경찰이 해당 의원 지지자 일부를 구금하자 경호대원들이 경찰과 대치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57명이 숨지는 최악의 정치테러가 발생했던 남부 마긴다나오주에서는 이번에도 선거에 출마한 경쟁 후보들의 무장세력이 충돌, 민간이 2명이 사망했다. 또 남부 잠보앙가주에서는 경찰과 시장 후보 지지자들이 충돌, 3명이 사살되고 10명이 다치는 등 선거를 둘러싼 유혈사태가 이어졌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詩語로 만난 미완의 혁명가들

    詩語로 만난 미완의 혁명가들

    대륙의 언어는 잊힌 지 오래다. 북방에 휘몰아치던 눈보라는 반도까지 건너오기에 힘이 부쳤다. 20세기 초 망명과 미완의 혁명, 좌절 등을 겪은 거친 사내들의 흔적은 역사책 속에서만 희미하게 전승될 뿐이다. 분단된 반도의 일상에 갇힌 시인(詩人)들의 시어(詩語)는 더 이상 역사를 기억할 필요도, 웅혼한 뜻을 노래할 필요도 없게 됐다. 정철훈(51)의 애씀이 두드러지거나 외로워 보이는 이유다. 그는 네번째 시집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창비 펴냄)에서 끊임없이 대륙의 언어와 사유를 동원해 그곳에 살았던 이들이 미완(未完)으로 남겨놓은 것들을 복원시키려 한다. ‘만주에서 개장수, 블라지보스똑에서 항만노동자였던 강자들/ 그때는 우리의 시대라고 부르던 시대’(‘나의 시대’ 부분)라며 건설과 창조를 위해 원시의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과 그러한 시대가 있었음을 기억해낸다. 표제작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서 레닌을 비롯해 이동휘, 홍범도, 박진순, 김아파나시, 홍도, 김규식, 여운형 등 미완의 혁명가들을 나열하며 쓸쓸히 추억하는 것은 그 시대가 저물었음에 대한 적막한 고백이다. 또한 이들의 노력이 눈에 드러나는 성공과 승리만을 위한 몸부림이 아님을 스스로 알고 있다. 함께 사고하는 이들이 한 무리를 이루지 않는 한, 그 무리가 불온스러운 파괴·건설·창조의 시대를 향해 함께 달려가지 않는 한 대륙의 기개가 반도에 스며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대륙에 대한 꿈을 멈출 수는 없다. ‘은유적 반성’과도 같은 시편에서 자랑스럽고도 참혹한 현대사의 지점들인 4·19, 5·18의 숱한 죽음들을 ‘삼만년 오만년 전에 죽은 내 얼굴’로 기꺼이 지금, 여기의 문제로 끄집어내는 명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1997년 등단한 정철훈은 소설가이면서, 기자(국민일보)이면서, 시인이다. ‘고적한 설거지’, ‘문상’ 등 일상 속의 성찰을 담은 시편과 어우러진 정서가 시집 전체에서 약간 들쑥날쑥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두 독재자의 엇갈린 운명

    두 독재자의 엇갈린 운명

    1989년은 두 독재자의 운명이 엇갈린 해다.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반면, 대통령 위에 군림했던 마누엘 노리에가 당시 군 최고통치자는 미국의 ‘파나마 침공’으로 기예르모 엔데라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망명길에 올랐다. 21년이 흐른 2010년 4월26일 두 사람의 상황은 다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알 바시르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집권 기간을 연장했지만 미국에서 수감 생활을 해온 노리에가는 돈 세탁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던 프랑스로 신병이 인도됐다.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 대선서 승리…집권 연장 부정 선거를 우려한 야당의 보이콧 속에 치러진 대선에서 26일(현지시간) 승리를 확정지은 오마르 알 바시르(66) 수단 대통령은 16세에 군에 입대한 이후 군을 떠나본 적 없는 직업 군인 출신이다. 북부와 달리 기독교와 토속 신앙을 믿는 남부 지역 반군의 무장 투쟁은 1983년부터 시작됐지만 알 바시르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친이슬람 정책’을 강화하자 20년이 넘는 기나긴 내전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3월 국제형사재판소는 2003년 시작된 ‘다르푸르 분쟁’ 과정에서 최소 3만 5000명의 민간인이 살해되고 25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며 전쟁 범죄 등 6가지 혐의를 적용,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 때문에 2005년 내전을 종결하면서 남부 반군과 체결한 평화협정에 따라 24년 만에 치른 선거에서 웃게 됐지만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노리에가 전 파나마 軍통치자 ‘돈세탁’… 佛로 신병인도 마누엘 노리에가(76)는 1992년 미국 마이애미 법정으로부터 마약 밀매 등 혐의로 40년형을 선고 받았다. 1968년 쿠데타 당시 오마르 토리요스 장군의 최측근 자리를 꿰찼고 1981년 토리요스가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이후 1983년 군최고통치자가 되면서 대통령 위에 군림했다. 1986년까지 미국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등 미국과 ‘밀월 관계’를 유지했으나 그가 부정 부패를 일삼자 미국은 결국 등을 돌렸다. 형량이 구금 기간과 복역 기간을 합쳐 17년까지 줄면서 2007년 형기가 끝났다. 하지만 300만달러 돈세탁 혐의로 그에게 10년형을 선고한 프랑스 사법 당국이 신병 인도를 요구하자 노리에가 측은 전쟁 포로라며 본국 송환을 주장, 법적 공방이 벌어지면서 풀려나지 못했다. 지난 2월 대법원이 노리에가 측의 이의 신청을 기각,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신병 인도서에 서명함에 따라 26일 파리행 여객기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모닝 브리핑] 美난민지위 인정 탈북자 작년 25명

    미국 정부로부터 지난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탈북자가 25명으로 집계됐다. 미국 국토안보부 이민통계국이 22일(현지시간) 발표한 ‘2009 회계연도(2008년 10월~2009년 9월) 난민과 망명자 자료’에 따르면 난민 지위를 받은 북한 국적자는 2006년 9명, 2007년 22명, 2008년 37명, 지난해 25명으로 모두 93명이다. 망명자는 없었다. 미국 내 난민 자격취득자는 지난해 7만 4602명으로 2008년 6만 107명에 비해 1만 4495명 늘었다. 국적별로는 이라크 25.3%, 미얀마 24.4%, 부탄 18.0% 등이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독립운동가들에게 편지 써보세요”

    “독립운동가들에게 편지 써보세요”

    “평양을 떠난 뒤 제 마음 한켠을 떠나지 않는 건 할머니의 낡은 일기장이에요. ‘아이가 태어나 첫 울음을 울 때 그 아이의 일생을 누가 알겠는가.’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귀한 집 딸로 태어나 부귀영화는커녕 독립운동 자금 품어 안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기를 몇 번이었던가요.” ●‘임정 안주인’에 손녀가 보낸 편지 ‘상해 임시정부의 안주인’이라 불리는 고(故) 정정화(1900~1991) 여사에게 손녀 김선현씨가 보내는 편지다. 정 여사는 1920년 시아버지 김가진이 74세의 고령에도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망명하자 이를 뒤따랐던 인물. 여성이라 감시가 덜하다는 점을 이용, 10여년 동안 국내에 수차례 드나들면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건넸다. 해방 뒤 임시정부의 상징 김구 선생이 암살되고, 김구 선생의 비서이자 임정 국무위원을 지낸 남편 김의한이 한국전쟁 때 납북되면서 숱한 고초를 겪었다. 김씨는 그런 할머니에게 4년 전, 그동안 생사를 알 수 없던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북한 평양에 들러 할머니 묘의 흙을 가져다 뿌려드린 얘기를 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는 22일 상해임정 설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 4월13일까지 10년 동안 독립운동가들에게 편지를 쓰자는 ‘100년 편지’ 사업을 벌인다고 밝혔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강화학파 홍승헌(1854~1914) 참판에게 편지를 썼다. 강화학파는 양명학에 가깝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조선 후기 혹독한 탄압을 받았지만, 망국 뒤에는 가장 강력한 항일운동을 벌였던 집단으로 꼽힌다. 편지에서 한 교수는 “세상의 변화에 끝까지 책임지려 했던 마지막 보수주의자들의 의리를 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였던 홍 참판님과 벗들께 술 한 잔 올리려 합니다. 잔을 든 손이 왜 이리 떨리는지요.”라고 추도했다. ●글 쓰는 형식은 자유… 이메일로 접수 기념사업회 측은 “평소에 어렵고 딱딱하게 느끼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보자는 취지”라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함께 나누는 가상의 대화 등 글 쓰는 형식은 자유”라고 설명했다. 편지는 이메일(kpg1919@korea.com)로 보내면 된다. 오는 8월15일 광복절에 맞춰 책으로도 낼 예정이다. 편지나 관련 사진을 단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면 사업회에 요청(02-732-2871~2)하면 된다. 사진에 얽힌 사연은 소설가 서해성이 썼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황장엽 암살기도, 60억원 불꽃놀이 北

    북한이 보낸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암살조가 체포됐다고 한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997년 남쪽으로 망명한 황씨를 암살하기 위해 북측이 남파한 2인조 간첩이라고 한다. 그러잖아도 천안함 참사의 충격파에 휩싸여 있는 마당에 섬뜩하면서도 서글픈 느낌이 든다. 최근 10년 사이 남북 정상회담을 두 번이나 했지만, 체제 유지를 위해선 여하한 대남 도발도 서슴지 않는 북측의 자세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북측이 황씨를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망명 후 줄곧 북의 아킬레스건인 세습체제를 비판해 왔다. 건강이상설이 불거지면서 3남 김정은으로의 후계구도 구축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린을 건드린 형국이다. 북한은 지난해 노동당 작전부와 인민무력부 정찰국 등을 통합해 정찰총국이란 대남공작기구를 만들어 ‘황장엽 암살조’를 지휘토록 했다고 한다. 문제는 암살조에 황 전 비서 제거 명령을 내린 지난해 11월쯤 북측은 우리 측에 정상회담을 타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유화 제스처를 쓰는 한편 은밀히 대남 테러도 준비했다는 얘기다. 북측의 이런 이중 행보는 여전히 핵포기를 통한 대남·대외 관계개선보다는 체제 유지에 최우선적으로 매달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 추론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최근 잇단 이상 징후의 의미가 짐작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제 민주평통 북미주 자문위원 오찬에서 “북한이 백성들은 어려운데 (김일성)생일이라고 해서 60억원을 들여 폭죽을 터뜨렸다.”고 비판했다. 허기진 주민들에게 옥수수를 사주는 대신 불꽃놀이에 외화를 탕진할 정도라면 북측의 사정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밤새 폭죽을 터뜨린다고 흔들리는 체제가 공고해질 리 있겠는가. 이 대통령은 흡수통일 의사가 없음을 거듭 천명했다. 북한체제의 점진적 개혁으로 평화적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게다. 그러나 우리는 혹시라도 북 스스로 쌓아온 모순으로 급변 사태가 닥칠 개연성에 대해서도 눈을 감지 말고 소리 없이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 월드뉴스 위클리 프리뷰(4월19~25일)

    월드뉴스 위클리 프리뷰(4월19~25일)

    이번 주(4월19~25일)에는 반정부 시위와 불의의 사고로 대통령 유고 사태가 발생한 키르기스스탄과 폴란드에서 본격적인 정국 수습이 시작된다. 반면 태국에서는 소강 상태를 보였던 반정부 시위가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키르기스 헌법 초안 공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 장례식을 치른 폴란드에서는 조기 대선 일정이 확정, 발표된다.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고 있는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하원 의장이 유력한 후보인 가운데 카친스키 대통령이 소속돼 있었던 법과정의당 후보로 누가 나설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의 사임과 망명으로 탄력을 받은 키르기스스탄 과도정부는 19일 새 헌법 초안을 공개한다. 3개월 내에 헌법 개정을, 6개월 내에 대선과 총선을 치르겠다고 약속한 과도정부는 헌법 개정을 통해 의원 내각제를 도입하고 권력 분점을 위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특히 부정 선거를 막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구성을 ▲정당 ▲공공 및 비정부 기관 ▲유엔으로부터 동수를 추천받는 제도를 검토 중이다. ●태국 반정부시위 재개 최대 명절인 쏭끌란을 기점으로 잠시 시위를 중단했던 태국 반정부 시위대는 이번 주 초 가두 시위를 시작으로 총리 사퇴 압박 수위를 높일 예정이다. 체포 영장이 발부돼 있는 시위대 지도부 24명 전원은 “다음달 15일 자수하겠다.”며 남은 기간 총리 사퇴를 이끌어 내겠다고 선언했다. 벨기에 의회는 22일 전체 회의를 열고 공공장소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없게 하는 옷이나 베일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한다. 부르카와 히잡 등 이슬람식 베일을 겨냥한 법안으로, 통과가 될 경우 벨기에는 유럽 최초의 부르카 금지국이 된다. 지난 14일 아이슬란드 남부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폭발로 시작된 항공 운항 중단 사태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산재 분출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데다 당분간 바람 방향까지 바뀌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바키예프 대통령 사임… 해외로 망명

    반정부 시위에 밀려 도피했던 키르기스스탄의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대통령직을 공식 사임함에 따라 과도정부 체제의 정국이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다. 이른바 ‘제2차 튤립혁명(민주 시민혁명)’은 바키예프 대통령의 사임으로 8일 만에 일단락됐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이날 밤 부인과 두 자녀만 데리고 카자흐스탄으로 출국한 뒤 키르기스 과도정부에 ‘국민과 영토보전을 규정한 헌법에 따라’라는 내용을 담아 사임을 표명하는 문서를 보냈다. 사실상 망명이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망명국은 터키나 라트비아일 가능성이 크다. 이로써 바키예프 대통령은 ‘제1차 튤립혁명’으로 실각한 아스카르 아카예프 전 대통령과 같은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바키예프 대통령의 입국 허용에 대한 성명에서 “미국·러시아·카자흐스탄 3국의 대통령과 국제기관의 협조에 의한 조치”라고 밝힌 뒤 “키르기스 사태와 정세 안정을 위한 중요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국무부의 필립 크롤리 대변인은 “미·러·카자흐 등 3국 정상이 지난 12~1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바키예프 대통령의 출국을 협의했다.”고 말했다. 키르기스 과도정부는 바키예프 대통령이 물러남에 따라 헌법개정을 거쳐 6개월 안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할 방침이다. 현재 대권 주자로는 과도정부의 오툰바예바 수반,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제1부대표, 오무르베크 테케바예프 부대표 등이 부상하고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키르기스 대통령, 카자흐스탄 망명 가능성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키르기스스탄 수도를 떠나 남부에 머물던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이 15일 인근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 의장국인 카자흐스탄의 외무장관은 미국과 러시아, 카자흐스탄이 함께 바키예프 대통령의 출국을 주선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바키예프 대통령의 망명이 허용된 것으로 해석되며 이에 따라 제2의 소요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아졌다. 그동안 과도정부는 바키예프 대통령에게 키르기스를 떠날 것을 촉구하면서 키르기스에 남아 있을 경우 법정에 서게 될 것 이라고 경고해 왔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한편 미국 국무부의 필립 크롤리 대변인은 14일 “키르기스가 민주주의로 진전돼 가길 바란다.”면서 “우리는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바키예프 대통령을 키르기스의 국가수반으로 간주하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하면서 “(바키예프의 신분에) 확실히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대통령 얼굴로 X 닦아!… ‘차베스 화장지’ 등장

    대통령 얼굴로 X 닦아!… ‘차베스 화장지’ 등장

    철저한 반미주의자로 사회주의 혁명의 기치를 높이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얼굴이 찍힌 휴지가 나와 히트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재에 가까운 차베스 대통령의 사회주의 혁명이 싫으면 그의 얼굴로 X을 닦아라.”라는 메시지가 먹혀들면서 반(反)차베스주의자들 사이에 휴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차베스’ 휴지가 출시된 곳은 히스패닉계가 대거 거주하고 있는 미국 마이애미다. 공식 상품명은 ‘21세기 사회주의’ 휴지다. 이미 실패한 사회주의를 21세기에 부활시키려는 차베스 대통령의 야무진 꿈은 결국 휴지가 될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휴지에 대통령 얼굴을 박아넣는 민망한 발상을 한 사람은 쿠바 출신의 여성 기업인이다. 쿠바를 떠나 한때 베네수엘라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다시 마이애미로 이주한 그는 차베스 대통령에 대해 반감을 가진 미국인과 히스패닉계가 많은 데 착안해 ‘차베스 휴지’라는 아이디어 상품(?)을 내놨다. 판매가격은 개당 8.99달러(약 1만원). 그는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 사람은 물론 쿠바인들도 휴지를 많이 찾고 있다.”며 “휴지가 화제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이애미에서 발행되는 매체에 “(차베스 얼굴로 X을 닦는) 꿈을 현실화시켜봐”라는 문구를 앞세워 휴지광고를 내고 있다. 사진=임팩트토크나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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