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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대 탈북부부 이스라엘 망명

    북한을 탈출한 50대 부부가 이스라엘에 망명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부부는 2년 6개월여 전 탈북한 뒤 이집트를 거쳐 이스라엘에 잠입, 거주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일간 ‘예디오스 아로노스’ 인터넷판은 6일 이들 부부가 북한에 돌아가게 되면 심각한 생명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점을 들어 내무부가 지난주말 이들의 정치적 망명 요청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부부는 아들을 데리고 위조서류를 지닌 채 두만강을 건넌 다음, 아들은 중국에 둔 채 이집트로 떠났다. 이후 이스라엘에 들어가 예루살렘에서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에서 농부로 일했던 이들 부부는 현재 청소부로 근무하고 있으며, 망명 허용과 동시에 선거참여 및 보험 가입 등 이스라엘 시민이 누리는 혜택과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옭아매는 것은 교육”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옭아매는 것은 교육”

    루소의 대표작 ‘에밀’은 ‘에밀’이라는 주인공과 스승의 일화를 중심으로 인간의 성장과 배움에 대해 기술한 교육서다. 인간의 품성과 자연적인 성장 과정을 고려한 교육 방식 때문에 자연주의 교육의 복음서로 여겨진 이래 ‘에밀’은 지금까지도 교육학의 고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판금과 분서, 체포명령과 망명에 이르기까지 루소는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고난을 겪게 된다.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4부에 등장하는 ‘사부아 신부의 신앙고백’이었다. 루소는 사부아 신부의 목소리를 빌려 신의 계시를 확언하는 교회와 이성적 앎으로 세계를 재단하는 철학자 모두를 비판한다. 교회와 철학은 각각 신앙과 이성의 이름으로 사유를 구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소가 생각하기에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고 규율화하는 결정적 기제는 교육이다. 따라서 ‘에밀’을 단순한 교육서로 읽을 경우 우리는 당혹스러움에 부딪히게 된다. 루소는 에밀의 환경과 성격, 수업 장소와 내용, 교사와 대화가 가져올 효과 등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그러나 사실 에밀이라는 인물을 비롯한 모든 상황은 상상의 산물이다. 무균질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완벽하게 이상적인 교육 상황. 때문에 루소는 ‘에밀’의 교수법을 따라 하는 자는 반드시 실패할 거라고 말한다. 학습자를 포함한 모든 상황을 교사의 의도대로 세팅할 수 없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개입한다면 ‘에밀’의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루소가 제시한 ‘자연주의 교육’의 아이러니가 있다.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고, ‘자연’이란 질서 속의 예기치 않음을 그 본질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연주의 교육이란 ‘의도하지 않은 인간’을 만들어 내는 실험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을 통해 알 수 없는 결과를 희망하기. 교회와 철학이 ‘에밀’을 불온하게 본 까닭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어디를 가나 불가해한 신비가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어. 그것은 우리 감각의 영역을 벗어나지. 그것을 간파하기 위한 오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상상력밖에 없네. 우리 각자는 그 상상의 세계를 통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터나가지. 하지만 자신의 길이 목적지를 향한 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54) 루소의 ‘고백록’

    [고전 톡톡 다시 읽기] (54) 루소의 ‘고백록’

    1762년 6월 파리.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루소의 책 ‘에밀’이 교회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압수당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루소는 밤을 틈타 해외로 망명한다. 연이어 ‘사회 계약론’도 판매금지 처분이 내려지고, 같은 해 가을 파리를 시작으로 유럽의 각 도시에서 그의 책이 불태워짐과 동시에 루소를 비난하는 글이 쏟아져 나온다. ●막다른 길에서 고백을 시작하다 그중 가장 심한 비방은 루소와 함께 ‘백과전서’를 편찬했던 옛 친구의 글로, “루소는 다섯 아이를 거리에다 버렸으며, 위병 초소에 출입하는 갈보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방탕한 몸은 쇠약해지고 매독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익명으로 발표된 이 글은 루소가 머물던 망명지 사람들을 자극했다. 마을 사람들은 루소의 집에 몰려와 돌을 던졌고 아침이면 깨진 유리창 아래로 돌이 수북이 쌓였다. 루소가 머물던 지역 의회는 결국 그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이때 루소의 나이는 쉰셋이었다. 신변의 위협, 연이은 추방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쏟아내는 알 수 없는 비난들. 루소는 이 ‘정당하지 않은’ 비난을 참을 수 없었다. 그의 감정은 소용돌이쳤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기 감정이 삶을 집어삼킬 판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방이 막힌 상황에서 출구를 찾듯 ‘고백록’을 쓰기 시작한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고백, 정신의 사체(死體) 일반적으로 고백은 사제, 판사, 의사 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고 해석과 처분을 기다리는 행위다. 그러나 루소의 고백은 해야 할 말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며, 타자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가 듣고 싶은 이야기다. 즉 루소가 ‘고백록’을 쓰면서 고려하고 있는 독자는 자기 자신이다. 이 고백을 듣고 루소의 삶을 단죄하고, 용서하고,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자신뿐이다. 루소는 자신이 누구인지 해석할 권리를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그는 타인의 판단을 기다리는 수동적 위치를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 삶을 해석하고자 했다. ‘고백록’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루소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가, 당시 풍속이 그랬다고 변명하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합리화하기도 한다. 루소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사건들은 이렇게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등장한다. 하나의 사건은 단 한 사람의 죄로 귀결될 수 없다. 루소는 매번 다른 회상을 통해 사건의 새로운 인과를 만듦으로써 자기 기억을 정화한다. 그의 고백은 설명할 수 없었던 것, 도저히 어떤 인과 속에서 생겨났는지 모를 일들을 새롭게 계열화하면서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내는 일종의 치료 행위였다. “이것은 자연 그대로, 진실된 모습 그대로 정확하게 그려진 유일한 인간상으로서, 아마 이러한 인간상은 앞으로는 다시 없을 것이다. (……) 이것은 뒤에 반드시 착수되지 않으면 안될 인간 연구에 있어 가장 먼저 필요한 참고 서적이 될 것이다.” 인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시체를 해부하듯 인간을 연구하려는 자들 역시 인간 정신을 해부해야 한다. 루소는 자기가 겪은 일을 서술할 때 사건의 사실 관계보다 자기 느낌과 감정을 정확하게 담으려고 애썼다.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흥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동시에 두 여자를 사랑했던 소년 시절의 첫사랑, 욕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인생에서 최고의 연인이자 어머니였던 바랑부인에 대한 복합적 애정. 루소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수 있을 법한 객관적인 메모와 기록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는 감정의 연쇄(連鎖)를 풀어놓는다. 루소의 지극히 ‘주관적인’ 내면의 기억, 혹은 그의 ‘영혼의 역사’가 마치 ‘정신의 사체(死體)’처럼 해부시간을 기다리는 독자 앞에 놓인 것이다. 어린 시절의 사소한 일화부터 자신의 치부가 될 만한 과오와 애정 행각, 거기에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치부까지, 온갖 사건을 오장육부를 내보이듯 고백하고 나서 그는 기세등등하게 외친다. “나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만일 누군가 내가 말해 온 것과 반대되는 내용을 알고 있어서 그 내용에 무수한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거짓말이며 조작일 것입니다.” 루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했지만, 시체를 해부해도 생명과 죽음에 대해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루소의 고백을 다 듣고도 우리는 루소라는 ‘인간’에 도달할 수 없다. ●자기 시대의 이성과 합리성에 질문하기 루소가 살던 18세기에는 과학과 수학의 발전에 힘입어 ‘이성’으로 세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팽배했으며, 그 이면에는 완벽한 앎을 통해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지식인들은 다양해 보이는 심적 현상을 면밀히 조사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예컨대 콩디야크는 모든 정신활동을 철저히 분석하면 단순한 요소를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으로부터 모든 정신활동이 합성된다고 주장했다. ‘고백록’ 역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루소 나름의 답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계몽주의자들의 영토를 벗어나는 루소의 또 다른 질문이기도 했다. 과연 인간의 삶이 과학적으로 추론될 수 있는가? 인간의 이성과 문명은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고백록’에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시작한 방랑, 사교계의 파티보다 고요한 사색을 더 좋아했던 자신의 욕망, 도저히 길들여지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 그리고 루소 스스로도 예상할 수 없었던 ‘우연’의 순간들이 실타래처럼 얽힌 채 기술되어 있다. 루소는 언제나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던 이들의 예상을 빗나갔으며, ‘보편적 인간형’으로 파악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시대에 자기 심성을 판단의 준거로 삼아 자기에게 밀려드는 사건들을 돌파해 갔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하는 자만이 진실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 이성의 ‘바깥’을 상상하는 자만이 자신의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루소가 우리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고백’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루소의 ‘고백록’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서 ‘인간의 진실’에 대해 질문하는 어느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구윤숙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아버지도 세습 반대했었다”

    “아버지도 세습 반대했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아버지(김정일)는 (3대) 세습에 반대했었다.”고 밝혔다고 도쿄신문이 28일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이달 중순 중국 남부의 한 도시에서 가진 김정남과의 인터뷰를 전하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김정남은 이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발탁된 이복동생 김정은을 향해 북한 주민의 생활향상과 연평도 포격으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과의 화해를 당부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지난해 9월 결정된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그는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마저 세습은 없었다. 사회주의에 맞지 않고, 부친도 반대했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그러면서 “(후계는) 국가체제 안정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북한의 불안정은 주변의 불안정으로 연결된다.”며 3대 세습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중국이 북한의 3대 세습을 용인한 이유에 대해서도 “세습을 인정했다기보다는 북한이 선택한 후계구도를 지지했다.”고 덧붙였다. ●연평도 포격 군부소행 시사 지난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의 배후와 관련해 “교전지역의 이미지를 강조해 핵 보유나 군사우선정치에 정당성을 갖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언급, 포격이 군부 주도로 이뤄졌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우라늄 농축 등을 포함한 핵 개발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의) 국력은 핵에서 태어나고 있어 미국과의 대결상황이 있는 한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김정남은 또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와 관련해 “답할 수 없다.”며 즉답을 회피한 뒤 “때때로 (아버지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김정일을 보좌하는 김경희나 장성택과도)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이후에 퍼진 암살미수설이나 중국 등으로의 망명설도 “근거가 없는 소문이다. 위험을 느낀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김정남은 동생 김정은에게 바람도 전했다. 그는 “연평도 사건처럼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조정하기 바란다.”며 “이것은 동생에 대한 나의 순수한 바람이다. 동생에게 도전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미가 아니다.”고 말했다. ●“北 핵포기 없을 것” 북한이 2009년말 단행한 화폐개혁에 대해서는 “실패였다. 개혁·개방에 관심을 둬야 한다. 현 상태로는 경제 대국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와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인 납치사건과 관련, “지금과 같이 북한과 일본의 논의가 평행선이라면 해결이 어렵다.”면서 북·일 간 대화재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납치 피해자와 만난 적은 없지만 최근 납치 피해자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보관리가 엄격해졌다고 전했다. 2001년 5월 위조여권을 사용해 나리타 공항으로 입국하려다 불법입국자로서 강제출국 당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 사건으로 내 인생이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치에 관심이 없다.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부고] 前 광복회장 애국지사 안춘생 선생

    [부고] 前 광복회장 애국지사 안춘생 선생

    안중근 선생의 당질인 애국지사 전 광복회장 안춘생 선생이 26일 오후 4시 23분 서울 보훈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1912년 8월 황해도 벽성에서 출생한 선생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 뒤 계속된 일제의 탄압으로 1918년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했다.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되자 남경으로 가서 1936년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 임관해 중국군 제2사단에 배속, 대일전에 참전했다. 이어 1939년 10월 중국군 육군 소령으로 군정부 감호대대에서 복무하다가 1940년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에서 산서 지역에 군사특파원으로 파견돼 군사활동을 전개했다. 고인은 광복 이후 민족청년단 훈련부장으로 청년운동에 헌신하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를 제8기로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교장, 육군 제8사단 사단장, 국방부 차관보 등을 역임하고 나서 1961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다. 오는 30일 발인하며 영결식은 오전 10시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치러져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62년 北유학생들 망명…北·불가리아 단교 위기

    북한이 1962년 유학생 망명사건으로 인해 우방국이었던 불가리아 정부와 외교단절 위기까지 갔던 사실이 공식문서로 확인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최근 비밀해제된 불가리아 국립 문서보존소의 북한 관련 기록물을 입수해 24일 공개했다. 이 기록물들은 1950~70년대 북한주재 불가리아 대사관에서 생산한 문서와 소피아 주재 북 대사관에서 불가리아 외무부로 발송한 문서 등 2000여장이다. 1962년 8월 이상종씨 등 북한 국비 유학생 4명은 김일성 독재 체제에 반대하며 불가리아에서 망명을 선언했다가 북한 대사관에 억류됐으나 현지 정부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북한은 유학생 망명을 허용했다는 이유로 1968년까지 6년간 불가리아와 문화교류 등을 전면 중단했다. 이번에 공개된 1968년 불가리아 외무부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대표자들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4명의 북한 유학생들을 돌려보낼 것과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사과해야만 관계 정상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강력히 고수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불가리아 정부는 1968년 9월 9일 북한 건국 20주년 즈음에 김일성 주석에게 ‘우호 관계를 회복하자’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외교 관계가 정상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1960년대 북한과 동구권 국가 사이 외교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 사료”라면서 “유학생 망명으로 북한이 공산주의 형제국가로 불린 불가리아와 외교적 갈등까지 겪은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이 1965년 한·일 수교를 앞두고 불가리아에까지 수교 반대 집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이번 문서에서 확인됐다. 국가기록원은 상반기 중 문서 분석을 마치는 대로 일반인들이 홈페이지에서 자료 열람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튀니지 과도정부 ‘그 나물에 그 밥’

    23년간 군림했던 독재자를 축출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 과도정부 출범과 함께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모하메드 간누시 총리는 17일(현지시간) 여·야 통합 과도정부의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대선과 총선 때까지 국정을 이끌어갈 이번 내각은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과 대립 관계에 있던 야당 인사들을 포함한 23명으로 구성돼 있다. 진보민주당을 만든 나치브 체비(지역개발장관), 에타지드당 당수 아흐메드 이브라힘(고등교육장관) 등이 야당 인사로 내각에 진출했다. 반정부 블로거로 유명한 슬림 아마무가 아동청소년부 장관에, 프랑스 식민 지배에 항의하는 영화를 제작한 머피다 트라틀리 감독은 문화장관에 내정돼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민심은 싸늘하다. 내무, 재무, 외무, 국방 등 주요 부처 장관들이 유임됐기 때문이다. 벤 알리 대통령과 손발을 맞춰 온 간누시 총리도 자리를 지켰다. 독재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반면 공산당과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인 엔나흐다당은 이번에도 배제됐다.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야권 인사 몬세프 마르주키는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 구성을 ‘가장 무도회’에 비유하며 “겉으로 통합을 외치지만 결국 독재 정당 인사들로 과도정부가 구성됐다.”고 비판했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출마를 위해 18일쯤 튀니지로 귀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시민 수백명이 수도 튀니스에서 집권 여당인 입헌민주연합(RCD)의 과도정부 참여에 반발해 시위를 벌였다. 간누시 총리는 내각 발표와 함께 “6개월 내에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그는 “헌법위원회는 45∼60일 안에 선거를 치르도록 권고했지만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투표를 위해서는 시간이 충분치 못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튀니지의 소요 사태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혼란 틈타 ‘금 들고 튄’ 독재자 아내

    지난 14일 성난 튀니지 국민들이 “대통령은 물러가라.”고 아우성치는 동안에도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느긋했다. 23년간 어떻게 지켜온 자리인가. 2014년 대선 불출마 선언 다음 카드로 내각 경질과 조기 총선 카드를 내놓고 대국민 연설을 작성했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달랐다. 사태 파악이 빨랐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레일라 트라벨시는 남편에게 “재산을 챙겨 놓자.”고 제안했다. 자신이 빨리 몰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벤 알리는 반대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한 트라벨시는 일단 튀니스은행을 찾았다. 은행장은 금괴 인출을 거절했다. 트라벨시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설득했고, 벤 알리 대통령은 결국 동의했다. 새 연설 녹음까지 마친 그가 망명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군부가 그의 축출을 주도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프랑스와 유럽 정보기관을 인용한 르몽드 보도에 따르면 트라벨시가 빼돌린 금괴는 무려 1.5t, 4500만 유로(약 670억원)어치인 것으로 보인다. 트라벨시는 남편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로 떠나기 전 이 금괴 등 재산을 빼돌릴 곳으로 두바이를 택했고, 제다로 출국하기 전 두바이를 몰래 다녀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르몽드는 보도했다. 금괴를 빼돌린 뒤 이 부부가 어떻게 튀니지를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일단 헬리콥터를 타고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로 간 뒤 그 곳에서 전용기를 불러 사우디로 향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피플파워는 ‘23년 철권’보다 강했다

    성난 민초들의 두려움을 이겨낸 투쟁이 23년간 장기집권해 온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74) 대통령을 튀니지의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튀니지를 한달 가까이 달군 ‘재스민 혁명’이 1차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전국에서 방화와 약탈이 발생하는 등 한동안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총리 여·야 통합정부 구성 논의 모하메드 간누시 튀니지 총리는 14일 국영방송을 통해 “벤 알리 대통령이 튀니지를 떠났다.”고 밝혔다. 벤 알리 대통령은 이날 가족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직을 맡도록 한 헌법에 따라 푸아드 메바자(77) 국회의장이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취임했다. 메바자 의장은 45~60일 내 새 대선을 실시해야 한다.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간누시 총리는 16일 여야 통합정부 구성을 논의하려고 주요 야당인 민주진보당의 마야 즈리비 대표 등을 만나 향후 정치 일정 등을 논의했다. 튀니지 전역에는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비상사태가 해제되기 전까지는 3명 이상 모이는 집회가 금지되고 군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에 대해 발포할 수 있다. CNN은 수도 튀니스 곳곳에 탱크와 무장 군인 등 군병력이 배치되기 시작했으며 사복 경찰들이 거리에 나온 청년들을 곤봉으로 때리고 발로 짓밟는 등 아비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튀니스 중앙역 청사가 불타고 튀니지 동부 모나스티르의 한 교도소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 재소자 50여명이 불에 타 숨지거나 탈옥을 시도하던 중 교도관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며칠 전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고 치료받던 벤 알리 대통령의 부인 레일라 여사의 조카 이메드 트라벨시는 이날 숨졌다. 또 벤 알리 대통령의 경호실장 알리 세리아티는 사회 불안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꾸민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중동 독재정권 연쇄붕괴에는 회의적 아랍 각국은 튀니지 국민 편을 들고 나섰다. 벤 알리를 받아들인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조차 성명을 통해 “우리는 전적으로 튀니지 국민의 편에 서 있다.”고 했다. 이집트는 “튀니지 국민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튀니지 사태가 중동의 다른 독재국가에 ‘민주화 도미노’ 현상으로 번져 나갈지에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튀니지 사태에 고무된 이집트 카이로의 시위자들은 장기집권 중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의 동유럽처럼 독재정권들이 연쇄 붕괴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드물다. 이집트·이란·시리아·요르단 등에 정치적 불화가 있지만 집권세력이 군대를 장악, 무력으로 반대파를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인 데다 군인들이 시위에 동조할 태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된 근거다. 쿠웨이트와 바레인, 요르단 등은 제대로 조직된 야당이 있지만 집권층이 국부를 활용, 자국민들에게 광범위한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불만이 폭발하지 않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하버드 종신교수에 남미 첫 시장에…세계 속 자랑스러운 한국인들

     낯선 이국땅에서 값진 성과를 거둔 한인 동포들의 쾌거가 신년 벽두 이역만리에서 잇따라 전해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 법대 사상 처음으로 동양계 여성 종신교수가 된 석지영(37·미국명 지니석) 교수와 중남미 이민사 106년 만에 처음으로 한인 시장이 된 정흥원(64)씨가 그 주인공이다.  ● 동양계 첫 하버드 법대 여성 종신교수 석지영, ‘자랑스러운 한인상’ 수상  석 교수는 13일(현지시간) 미주한인의 날을 맞아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선정한 ‘자랑스러운 한인상’을 받았다. 서남표(74)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 박윤식(71) 조지워싱턴대 교수와 함께 수상자 명단에 오른 석 교수는 “갑자기 바뀐 나라, 문화와 언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1979년 부모를 따라 뉴욕 퀸즈로 이민 온 석 교수는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했던 경험이 삶을 발전시켜온 큰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원래 쉬지않고 혼자서 재잘거리는 아이였지만,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전혀 영어를 못해 한마디 말도 할 수 없게됐고,또 완전히 새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방황하고 소외감을 느꼈던 경험은 나의 기억속에 아이로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겪고 또 극복해가는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삶을 헤쳐가고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했고,단지 어울리는 것만이 아니라 상황을 더 낫게 만들어가는 힘도 주었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퀸즈의 첫 초등학교 친구들은 요르단,이스라엘,멕시코,일본,체코,인도,중국 등 전세계로부터 온 이민자들이 대부분이었다며 “이들 이민자들의 공통점은 전쟁,망명,추방,재건,생존 등에서 비롯되거나 미국에서의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유년기의 환경이 주요한 성장 배경이었다고 기억했다.  특히 석 교수는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에는 어머니가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매일같이 자신과 여동생을 동네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는 석 교수는 “엄마로부터 책을 찾는 방법을 배우고 스스로 보고싶은 책을 찾아다니며 혼자서 은밀한 발견을 하는 즐거움을 누렸고,자유를 추구하는 힘을 키웠던 것 같다”며 법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성장과정을 전적으로 어머니의 영향으로 돌렸다.  어머니로부터 “책을 읽어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고 한 번에 10권의 책을 읽기도 했다는 그는 “책을 읽는 게 즐겁다는 것을 어릴 적에 깨달았고,나에게 독서는 비밀스러운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며 말했다.  그는 범죄,가족법에 관한 저서와 논문으로 평가를 받아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로 발탁됐다.향후 목표에 대해서는 “최고의 학자,최고의 선생이 되고 싶다”며 “미래에 영향력을 미칠 학생들을 책임감 있게 가르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딴 후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석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보다 앞서 살아간 사람들 중에서 멘토를 만드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열쇠”라고 조언했다.  이날 자랑스러운 한인상 시상식에는 한덕수 주미대사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나와 축하했고,한나라당 전재희 이성헌 차명진 윤상현 조해진 현기환 유일호,창조한국당 이용경,미래희망연대 윤상일 의원도 KEI의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페루서 중남미 첫 한인시장 탄생  한국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중남미에서 이민역사 106년 만에 처음으로 한인 시장이 탄생했다.  13일(현지시각) 주 페루 한국대사관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인동포 정흥원(64)씨가 지난 2일 수도 리마에서 동쪽으로 300㎞가량 떨어진 중부 도시 찬차마요(Chanchamayo)에서 임기 4년의 시장에 취임했다.  현지 원주민들에게 ‘마리오 정’으로 알려져 있는 정 시장은 작년 10월 3일 치러진 선거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푸레르사(Fuerza) 2011’의 후보로 출마해 유권자 9만6천명 중 34.8%의 득표율로 현직 시장을 큰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다.  페루에서 이민 생활을 한 지 15년째인 정 시장은 현지에서 음식점 운영과 생수사업을 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원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도와 ‘빈민의 대부(el padrino de los pobres)’로 불리며 유권자의 신망을 얻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페루 이민 전 아르헨티나에서 생활한 기간까지 합쳐 모두 35년을 남미지역에서 보냈지만 아직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모국에 대한 애정도 크다.  페루에서는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의 경우 2년 이상 출마지역에 거주한 사실이 인정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장관직을 제외한 공직 선거 입후보에는 문제가 없어 한국 국적을 갖고도 출마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정 시장은 주민 1천600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취임식에서 “나는 회사 운영을 통해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서 “임기 4년동안 여러분들과 힘을 합쳐 지역발전을 꼭 이루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 시장이 이끌어갈 찬차마요시는 인구 17만6천명에 커피농업이 주요 산업이며,은과 구리,아연 등 광물 자원의 보고여서 한국과 교류가 확대될 경우 국내 광물 산업에도 큰 도움을 주게 될 전망이다.  주 페루 대사관의 김완중 공사는 “이민을 와 성공한 한국 동포가 현지에 도움을 주고,시장에 앞도적인 표차이로 당선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정 시장이 빈민의 대부로 사랑받고,존경받아 같은 한국인으로서 무척이나 뿌듯하다”고 말했다.   맹수열기자·연합뉴스 guns@seoul.co.kr
  • “매주 62만弗 잃어… 재정 압박”

    “매주 62만弗 잃어… 재정 압박”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금융기관의 계좌 폐쇄 등으로 인한 재정 압박이 심각하다며, 활동 본거지를 스위스나 호주 등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산지는 10일 발행된 스위스의 트리뷴 드 주네브와 24시 등과의 독점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어산지는 “압력이 강해질수록 나의 결의는 더욱 굳어지지만, 재정적 측면은 다른 문제”라며 “외교전문을 공개한 뒤 일주일에 (계좌 폐쇄 등으로) 62만 2000달러에 달하는 돈을 잃고 있으며, 활동을 계속하려면 돈을 되찾거나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서포크 카운티에서 전자 발찌를 착용한 채 연금 생활을 하고 있는 어산지는 “위키리크스는 정상 기능을 계속할 것”이라며 “몇몇 동료 직원들이 여전히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위스도 (이전 대상국으로) 가능한 나라이며, 위키리크스의 주요 도메인이 스위스에 있다.”며 “강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도메인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는 지난해 12월 초 미국의 도메인 제공업체 에브리DNS가 미국 내 도메인(wikileaks.org)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자 스위스 도메인(wikileaks.ch)을 새로 개통했다. 어산지는 자신의 모국인 호주도 이전 대상 지역의 하나지만 현재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자신이 스위스로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이란 팔레비 왕가 ‘끝나지 않은 비극’

    이란 팔레비 왕가 ‘끝나지 않은 비극’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축출된 무하마드 레자 팔레비 국왕의 적통을 이은 두 왕자 가운데 막내인 알리레자 팔레비(45)가 4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알리레자의 친형 레자 팔레비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알리레자 팔레비 왕자가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동포들에게 전한다.”고 밝혔다. AFP통신에 따르면 보스턴 경찰 대변인은 그가 자기 몸에 총을 쐈다고 전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타도하자고 외치는 혁명과 뒤이은 망명 등 이란을 뒤흔든 정치적 격변은 10대 초반이었던 알리레자에게 큰 정신적 상처로 남았다. 레자는 “다른 수백만 이란 젊은이들처럼 알리레자도 사랑하는 모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불행에 매우 혼란스러워했다.”고 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알리레자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기피했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1966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태어난 알리레자는 1984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뒤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과 고대 이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1941년 즉위해 한때 이란의 지존으로 군림하며 온갖 사치를 누렸던 팔레비 국왕은 왕좌에서 쫓겨난 다음해인 1980년 이집트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2001년에는 31세였던 막내딸 레일라가 오랫동안 거식증과 우울증을 앓던 끝에 영국 런던의 한 호텔에서 약물과용으로 숨졌다. 파라 팔레비 왕비는 당시 “9살 때 이란을 떠나야 했던 레일라는 조국이 자기 가족을 버린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래서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팔레비 왕비는 이란에서 추방된 뒤 프랑스 파리의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팔레비 왕조는 1925년 알리레자의 할아버지인 레자 팔레비가 카자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란은 2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는 등 개방화와 서구화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친미정책과 빈부격차 확대 등은 국내에서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1979년 혁명으로 국왕이 이집트로 망명하면서 팔레비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혁명전 이란은 이스라엘보다도 더한 친미국가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발생한 혁명 이후 이란은 노골적으로 ‘미국타도’를 외치는 반미국가가 됐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부고] ‘홍콩 민주화 대부’ 쓰투화

    홍콩에서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희생자를 위한 운동을 시작해 ‘중국의 숙부’ ‘홍콩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쓰투화(司徒華)가 2일 오전 지병으로 숨졌다. 79세. 홍콩시민지원 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 주석인 그는 폐암으로 쓰러진 뒤 몇달 동안 병원에서 투병했다. 홍콩 행정수반인 도널드 창 행정장관은 성명을 통해 “중국과 홍콩을 매우 사랑한 고인은 평생을 민주주의를 증진하기 위해 헌신했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40여년간 교육계에 몸담아온 그는 1970년대부터 사회운동에 투신했으며 홍콩민주당의 원로 가운데 한 명이다. 톈안먼 사태 직후부터는 지련회를 설립해 희생자와 유가족, 중국 내 반체제 인사 등을 지원·보호하는 일에 앞장섰다. 지난해 4월 휠체어를 탄 채 회원들의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했고, 10월에는 지련회 주석으로 재선되는 등 최근까지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홍콩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톈안먼 사태의 주역으로 21년째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왕단(王丹)은 타계 소식을 듣고 “선생님은 나와 민주화 운동가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며 슬퍼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사퇴 설득 실패

    ‘무력 대응’을 내세운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의 로랑 그바그보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사퇴 설득이 일단 실패했다. 서아프리카 15개국으로 구성된 ECOWAS가 28일(현지시간) 베냉, 시에라리온, 카보베르데 등 3개국 대통령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코트디부아르로 파견했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이들은 그바그보와의 면담에서 지난달 대선에서 승리한 알라산 와타라 전 총리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망명하지 않으면 군사적 개입을 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담을 마친 뒤 페드로 피레스 카보베르데 대통령은 이 같은 사실을 전한 뒤 대통령실 성명을 통해 다음주 다시 대화에 나설 계획라고 밝혔다. 2차 회담이 성과를 못내더라도 ECOWAS가 실제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코피아난국제평화유지군훈련센터의 쿠아시 아닝은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 주요 국가들은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정치적 만용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황장엽 수양딸 김숙향씨 “재산 9억 돌려달라” 소송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 김숙향(68)씨가 황 전 비서의 재산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28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김씨는 황 전 비서가 망명한 이후 그를 도와주었던 엄모씨를 상대로 9억원을 요구하는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김씨는 “황 전 비서가 2001년쯤 엄씨에게 9억원을 전달했고, 그 돈은 서울 강남구 일대 토지와 건물 매입에 쓰였다.”며 “이는 황 전 비서가 남한 사정에 어둡고, 신분상 제약 때문에 직접 부동산을 계약하는 게 적절치 않아 엄씨가 대신하도록 한 것인 만큼 매매대금이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3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김일성 사상을 주체사상으로 집대성한 황 전 비서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1997년 남한으로 망명했다. 그는 지난 10월 10일 서울 논현동 자택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경찰은 부검을 거쳐 황씨가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표현의 자유 넓어졌다” 환영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형사처벌의 근거가 됐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자 인터넷업계는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면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김창희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정책위원장은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고 신장시키는 데 분수령이 될 결정”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업체 관계자는 “미네르바 구속 이후 인터넷에 글을 썼다가 잡혀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절필 선언을 하거나 해외 인터넷서비스로 옮겨가는 ‘사이버 망명’이 이어지는 등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면서 “이번 위헌 판결을 통해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받게 되었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인터넷상 허위사실이나 유언비어에 대한 규제를 추진하려던 방송통신위원회는 법률적 문제에 부딪히게 됐다. 방통위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인터넷에 허위사실이나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사례에 대해 민간 자율심의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 방통위는 ‘긴장상황 시 인터넷글 삭제’ 논란이 일자 “가이드라인 도입 여부부터 검토할 것”이라면서 “도입하더라도 인터넷업체의 자율적인 가이드라인 수준이며 굉장히 제한적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언비어’라는 용어가 법적으로 모호하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때 또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北외교관 심상찮은 탈북행렬

    북한 ‘외교직(職)’들의 잇단 탈북이 심상치 않다. 14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러시아에 밀입국했던 북한군 통역관 최모(41)씨가 최근 한국으로 망명을 신청했다. 앞서 평양 옥류관의 네팔 분점 책임자였던 양모씨도 인도 등을 거쳐 최근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위키리크스가 최근 공개한 미국 국무부 문서에는 올 1월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해외에서 근무하는 북한 고위관리 다수가 최근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말한 내용이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주 에티오피아 북한 대사관의 직원이면서 의사인 김모(40)씨가 현지 한국 대사관으로 망명했다. 북한의 동북아지역 공관장급 외교관과 외화벌이 총회사 사장도 지난해 한국으로 왔다. 이들 탈북자는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좋은 기득권층에서 엄선된 사람들이어서 생활고로 탈북하는 경우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주로 40대로, 인생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나이라는 점도 ‘가치지향형 탈북’으로 짚어볼 만한 대목이다. 1991년 귀순한 북한 외교관 고영환씨가 당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북한에서 외교관은 경쟁률이 100대1에 이르는 선망의 직업으로 우선적으로 아파트를 배당 받는 등 다른 북한 주민에 비해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하지만 외국에 나와 다른 세계를 보면서부터 김일성 부자 찬양 학습과 숨막히는 감시통제에 대한 회의가 밀려들어오고, 다른 나라 외교관에 비해 형편없는 월급과 생활환경에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외교 소식통은 “외교직의 탈북 러시는 북한 체제의 동요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방증”이라며 “체제 붕괴의 전조증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망명 북한군 총참모부 통역사 곧 한국행”

    북한군 총참모부에서 통역을 맡았던 탈북 남성의 망명 요청을 한국 정부가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14일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 관계자의 말을 인용,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 연해지방에 밀입국한 41세 탈북 남성의 망명 요청을 러시아 정부가 거부했으며, 한국이 조만간 이 남성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전했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통역사였다고 소개한 이 남성은 “김정일 체제하에서 시민의 생활이 고통스러웠다.”고 망명 동기를 밝혔다. 지난해 9월 러시아 우수리스크 근교로 밀입국한 이 남성은 지난달 러시아에서 열렸던 재판에서는 북한의 산업 관련 관청에서 근무했다고 말했지만 이후 “실제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에서 러시아어 통역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당초 북한은 남성의 신병 인도를 러시아 측에 요구했지만 망명 신청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난민의 지위에 관한 조약’ 체결국인 러시아는 거부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노벨委 “류샤오보 정당한 투쟁… 中 변화 계기 되길”

    노벨委 “류샤오보 정당한 투쟁… 中 변화 계기 되길”

    ‘류샤오보’라는 이름이 불리는 순간 메마른 박수를 받아든 주인공은 ‘사진’이었다. 단상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 뒤편에는 커다란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고, 류샤오보는 그 안에 갇혀 있었다. 10일 오후 1시(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상자인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의 자리가 비어 있는 가운데 2010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는 물론 대리인·상금 전달자까지 참석하지 않은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109년 만에 처음이다. 주인공 없이 명분만 있는 시상식은 쓸쓸했고, 식장 밖에서는 서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세계 인권의 날인 이날 벌어진 논쟁의 주제는 세계 평화에 공헌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주어지는 노벨평화상의 올해 수상자가 ‘인권탄압에 맞선 투사’인가, 아니면 ‘국가 전복을 꿈꾸는 범죄자’인가였다. 류샤오보가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계속된 세계적 논란과 혼란은 시상식 당일 최고조를 이뤘다. 오슬로 시청에서 1시간 15분 동안 진행된 시상식에는 하랄 노르웨이 국왕과 소냐 왕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비롯한 저명 인사, 이병현 노르웨이 주재 한국 대사 등 각국 대사, 해외로 망명한 중국의 반체제 운동가 등 약 1000명이 참석했다. 노벨위원회가 초청한 류샤오보의 가족 및 지인 140명 중에서는 인권운동가 완얀하이가 유일하게 자리를 지켰다. 소프라노 조너선 만의 공연으로 막을 올린 시상식의 열기는 토르비에른 야글란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류샤오보의 수상 이유를 설명하며 최고조에 달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과거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독재정권의 탄압 때문에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사례를 거론하며 “중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언론·표현·토론·시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은 닫힌 사회”라고 비판했다. 이어 “류샤오보는 오직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고, 반드시 석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미국이 진정한 강대국이 된 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해 관철된 이후”라며 “강대국이 된 중국은 이 같은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중국 정부에 조언했다. 참석자들은 여러 차례 기립박수로 연설에 답했고, 일부 중국 반체제 인사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30여분 넘게 진행된 연설의 대부분을 중국 정부의 민주화와 인권신장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채웠고, “류샤오보의 수상이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희망찬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노벨위원회는 류샤오보의 빈 의자에 상장을 올려놓는 것으로 수여식을 대신했다. 이어 노르웨이 여배우 리브 울먼은 류샤오보가 지난해 쓴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며 우리는 자유로운 중국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항상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원고를 대신 읽었다. 지난해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시상식에 보낸 성명에서 “나보다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더 많은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중국 당국에 그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BBC, AP통신 등은 이날 약 2000명의 시위대가 ‘류에게 자유를’, ‘중국의 자유’ 등의 구호를 외치며 노르웨이 주재 중국대사관까지 가두행진을 벌인 뒤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는 10만여명의 청원서를 공개했다고 전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초청장을 받은 65개국 중 중국 등 18개국이 불참했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각국 등 47개국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참한 나라는 러시아, 쿠바, 이라크, 카자흐스탄 등으로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고민 또는 자국 내 반체제 인사 감금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우크라이나, 콜롬비아, 세르비아 등은 시상식 직전 입장을 바꿔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위원회와 류샤오보의 수상을 지지하는 각국 정부는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중국 정부에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9일 “중국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당연히 세계 인권선언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면서 “강대국으로서 ‘토론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야글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인권 기준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에 대한 답변으로 분석된다. 야글란 위원장은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중국을 겨냥한 결정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책꽂이]

    ●대동이탐구(서병국 지음, 한국학술정보 펴냄) 지나, 즉 중국에서 동방을 일컫는 동이에 대해 우리 스스로 소중화 의식에 사로잡혀 부정적인 인식에만 주목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중국 스스로 동이를 자랑스러운 문화민족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현재 동북아시아 평화정착에도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3만 2000원. ●오래된 미래교육(정재걸 지음, 살림터 펴냄) 전통적인 교육모형으로서 ‘만두모형 교육관’을 주창하고 있다. 주자가 마음을 만두로 비유한 데에서 따온 것으로 공의(公義)를 위한 인성교육, 환경교육, 통일교육, 세계시민교육의 필요성과 방법론을 밝혔다. 1만 8000원. ●압록강은 흐른다(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범우 펴냄) 일제 강점기 독일로 망명한 학자 이미륵 본인의 자전적 소설로 독일은 물론 국내에서도 이미 숱한 판본으로 나왔다. 이 책에서는 원래 40개의 이야기 중 24개를 간추려서 실었다. 9000원. ●종이봉투 크리스마스(케빈 A 밀른 지음, 손정숙 옮김, 황소자리 펴냄)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하늘은 흰 눈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아이들은 울지 않으려 애쓰는 때다. 종이봉투를 쓴 소녀 카트리나와 주인공 몰러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다. 따뜻하고 푸근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게 만드는 작품이다. 1만 1500원.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하린 지음, 문학세계 펴냄) 야구가 문학화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은 이제 더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가족의 구성원들이 투수의 구질 혹은 야구 선수들의 인생에 능청스럽게 빗대는 과정은 시인의 상상력과 무변한 사유의 일단을 확인시켜 준다. 물신숭배의 자본주의에서 피폐해지고 파편화되는 개인의 비참함이 해학적으로 다가오는 시편들이 곳곳에 있다. 7000원.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어!(아네테 노이바우어 지음, 김종민 그림, 윤혜정 옮김, 미래!아이 펴냄) 성장 과정과 아이들의 거짓말은 거의 불가분에 가깝다. 책은 덜컥 거짓말을 한 이후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겪는 솔직한 고민들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어설프게 훈계하는 어른들은 없다.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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