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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리아 총리, 요르단 망명… 각료 첫 이탈

    리아드 히자브 시리아 총리가 정권을 이탈해 요르단으로 탈출하는 등 시리아 이너서클(핵심 권력집단)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권 붕괴의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미국은 시리아 반군에 사실상 무기구매 자금 지원을 허용했다. 시리아 반군, 인권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6일(현지시간) 히자브 총리가 가족과 함께 요르단으로 탈출했다고 발표했다. 또 그와 함께 2명의 장관과 3명의 보안기관 고위 장교 역시 요르단으로 망명했다고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이 레바논 류브난 알엔 통신을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한편 요르단의 사미 마이타 공보부 장관은 히자브 총리가 아직 요르단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요르단 관영 페트라 통신이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요르단 소식통들은 히자브 총리가 요르단을 거쳐 카타르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알아라비아 방송이 전했다. 히자브 총리와 그의 가족 및 측근들의 시리아 탈출 작전은 시리아 최대 반군 조직인 자유시리아군(FSA) 특수부대 요원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자브 총리는 지난해 3월 시리아 사태가 발생한 이후 시리아 정권을 이탈한 첫 번째 각료이자 최고위급 정부 관리다. 지난 6월 총리로 임명된 히자브 총리는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바트당에 충성하는 인물로 알려진 바 있다. 한편 미국 정부가 지난달 시리아 반군에 사실상 무기구매 자금 지원을 허용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시리아 정국에 대한 ‘게임체인저’ 역할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미 언론 등에 따르면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은 FSA의 무기구매 자금 지원을 위해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민간단체 시리아지원단(SSG)에 시리아 반군 지원을 위한 모금 활동을 지난달 ‘조용히’ 허가했다. 이에 따라 SSG는 모금한 돈을 반군에 직접 송금할 수 있게 됐다. 재무부의 허가 내용에 따르면 SSG가 직접 무기를 사들이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로 금지된 ‘금전·정보통신·병참 및 기타 원조’는 가능해졌다. 직접적인 무기 원조는 아니지만 이 돈으로 반군의 급료와 방독면, 차량 등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무기구매 자금으로 간주되고 있다. 지금까지 재무부는 미국 민간 단체의 반군에 대한 송금을 교육이나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제한했었다. 앞서 지난 1일 미 국무부는 시리아 반군에 대한 암호화 통신기술 등 비(非)살상 자원 지원을 위해 2500만 달러, 인도적 지원을 위해 6400만 달러를 각각 배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지난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의 시리아 반정부군 지원을 지시하는 ‘대통령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도 뒤늦게 드러나는 등 미국의 시리아 개입이 요란하지는 않지만 단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다. 시리아의 현 정부 ‘붕괴’ 상황을 대비하고 있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실제 SSG는 이번 미 재무부의 결정에 따라 반군이 시리아 정부군에 필적할 만한 현대식 무기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SSG의 정부 관계 담당 디렉터인 브라이언 세이어스는 “이번 결정은 자금 지원 측면에서 게임체인저이며 미 정부의 점진적인 정책 변화의 징후”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서울 조희선기자 carlos@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이병희 여사

    애국지사 이병희 여사가 2일 오후 2시 2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94세. 191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33년 종연방적주식회사에서 근무하며 동지들을 모아 노동운동을 벌였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1940년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했다.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하던 중 1943년 체포돼 구금됐다. 함께 독립운동을 협의하다 체포된 먼 친척 이육사도 같이 구금됐다. 1944년 이육사가 옥중에서 순국하자 그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품을 정리해 국내 유족에게 전달했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조영철씨가 있다. 빈소는 중앙보훈병원, 발인은 4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 (02)483-3320.
  • “대한민국 이름 지은 사람은 조소앙… 왕정에서 공화제로 이행한 첫걸음”

    “대한민국 이름 지은 사람은 조소앙… 왕정에서 공화제로 이행한 첫걸음”

    “상해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한 의미는 왕정에서 공화제로 이행한 중요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임정 내부에서 왕정복귀 주장 적지 않아 이완범(오른쪽)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교수는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 조계지 내 허름한 셋집에서 열린 임시정부의 첫 의정원(국회)에서 결정한 국호의 의미를 1일 이렇게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당시 임시정부 내부에서 왕정복귀의 주장이 적지 않았지만 신석우와 조소앙, 여운형의 반대로 공화제인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정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망명정부였지만 민권의식이 성장했던 결과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독립운동가 신석우 의원이 대한민국을 국호로 하자고 제안했으며, 표결을 통해 대한민국이 국호로 채택됐다고 알려졌지만,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조소앙(趙素昻·왼쪽·1887~1958) 선생은 자서전에서 대한민국이라고 명명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조소앙의 ‘자전’(自傳)과 ‘회고’(回顧)에 따르면 ‘나는 의정원의 창립자로, 10조 헌장(임시헌장)의 기초자로, 대한민국의 명명론자로, 위원제의 주창자’였다고 주장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오는 7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광복 67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연구논문 ‘국호로 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대한제국은 조선왕국·대한민국 이어준 징검다리” 이 교수는 “대한제국은 조선왕국과 대한민국을 이어준 징검다리였으며 그 사이에 역시 징검다리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해방 후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채택하는 과정에서도 재차 왕정복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남북통일정부 구성을 호소했던 김구를 견제하던 이승만이 여러 논의를 중단시키고 대한민국 안을 통과시켰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시리아軍, 전투기 앞세워 ‘반군거점’ 알레포 맹공

    시리아 반군의 거점인 알레포에서 정부군과 자유시리아군(FSA) 등 반군 사이에 대규모 교전이 벌어졌다. 특히 198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알레포의 초토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AFP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수도 다마스쿠스를 다시 장악한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군은 전투기와 중무장 탱크를 앞세우고 알레포로 이동, 폭격을 가했다. 이에 친정부 일간지 알와탄은 정부가 권위를 재확립하려 한다며 “(알레포에) 모든 전투의 어머니”가 드리워졌다고 경고했다. 반군 측은 알아사드 대통령의 알레포 대학살에 맞서기 위해 무장할 것을 촉구했다. 반정부 단체인 시리아국민의원회(SNC) 수장 압델 바세트 세이다는 “탱크와 전투기를 막을 무기가 필요하다.”며 “동지와 친구들이 FSA의 무장을 도와줄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전날 시리아 전역에서 민간인 94명, 반군 33명, 정부군 41명 등 168명이 사망했다고 밝힌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알레포 주민들이 낮게 비행하는 무장헬기의 폭격에 대비해 건물 지하로 피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이다는 또 “알아사드는 대량학살에 책임이 있어 재판을 받아야 하고, 그에게 정치적 망명이나 면책특권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알레포 충돌에 국제사회도 우려했다. 유네스코는 4000년 역사의 알레포 세계문화유산이 대량파괴될 것을 우려하는 한편 인터폴, 세계관세기구(WCO), 인접국 등에 문화유산의 밀거래를 막아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왈리드 알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은 이날 오랜 동맹국인 이란을 방문해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외무장관과 면담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반군들은 정부군과의 알레포 교전에서 분명히 패배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시리아의 정권 교체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며 “시리아 갈등이 악화되어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되면 그 결과는 시리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Weekend inside] 구카이라이 ‘고의살인죄’ 기소…보 사법처리 급물살

    [Weekend inside] 구카이라이 ‘고의살인죄’ 기소…보 사법처리 급물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살인죄로 정식 기소되면서 중국 당국이 보시라이의 ‘운명’을 확정하기 위한 마지막 수순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 말 권력교체가 이뤄지는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전까지 보시라이에 대한 처리 방침이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구카이라이가 지난 26일 밤 고의 살인죄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 것은 중국 지도부가 보시라이 처리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낸 것이며 이는 곧 18차 당대회 직전까지 보시라이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영국 BBC 중문망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실제로 보시라이 처리 문제를 놓고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공청단(共靑團·공산주의청년단),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의 태자당,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상하이방이라는 중국 3대 정치 파벌이 힘겨루기를 벌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차기 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를 것으로 관측됐던 보시라이가 낙마하면서 이를 둘러싼 계파 간 다툼이 격화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주중 개막된 것으로 전해지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차기 구도를 확정하는 내부 회의인 만큼 사건의 중요 고리인 구카이라이에 대한 기소가 이뤄지면서 보시라이에 대한 처리 방향과 계파 배분 문제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학자 왕여우진(王友)은 “중국은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구카이라이에 대한 판결은 물론 보시라이 처리 방침도 18차 당대회 이전까지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권력교체를 위해 모든 잡음 요소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당대회는 오는 10월 중하순으로 전망된다고 홍콩 명보가 27일 보도했다. 그러나 보시라이가 어떤 혐의로 ‘운명’을 맞이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검찰로부터 형사상 문제로 수사받은 구카이라이와 달리 당 검찰기율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부패 문제로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보시라이의 혐의에 대해서는 뇌물수수, 해외자금 이전, 당 지도부 감청, 군 매수를 통한 정변 기도, 불륜 스캔들 등이 거론돼 왔다. 반면 해외자금 이전, 돈세탁 등의 혐의가 제기됐던 구카이라이에 대한 검찰 기소장에서 부패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은 만큼 보시라이에게 부패 혐의가 적용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전날 발표된 구카이라이에 대한 기소문에서 구카이라이가 아들 보과과의 신변 안전을 우려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설명을 곁들였다는 점에서 구카이라이가 사형은 면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최소 15년 이상의 징역이나 사형집행유예(死緩·2년간 지켜본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 판결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 영사관 망명 기도로 구카이라이의 살인 혐의는 물론 보시라이의 부패 문제를 만천하에 공개한 단초인 왕리쥔의 경우 조만간 국가반역 혐의로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김민희 기자의 런던eye] ‘소년급제’ 코마네치의 인생

    운동선수를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말이 있다. ‘소년 급제’. 중국의 한 학자가 꼽은 인생의 세 가지 불행 중에서 맨 앞에 나오는 것이다. 어려서 너무 많은 것을 이루면 되레 화가 된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대개 20대 초반에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고 은퇴 수순을 밟는다. 평범한 이들은 막 날개를 펼치려 하는 때에 선수들은 날개를 접는다. 안타깝게도 그 뒤의 인생은 전만큼 화려하지 않다. 기자가 아는 ‘소년 급제’의 최고봉은 나디아 코마네치(51·미국)다. 열다섯 나이에 루마니아 대표로 나선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단평행봉에서 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으며 역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된 체조 레전드. 스타덤에 오른 뒤 그의 삶은 파란만장이라는 단어로도 모자랄 정도로 굴곡이 심했다. 차우셰스쿠 정권은 그를 선전 도구로 써먹었고, 스승 벨라 카롤리와 결별한 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 전과 같은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스승이 미국으로 망명한 뒤 정부의 핍박과 감시에 시달린 코마네치 역시 1989년 미국 망명을 감행했다. 망명을 도와준 미국 시민권자는 그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싸구려 공연으로 내몰았다. 지금의 남편인 미국 체조 대표 출신 버트 코너를 만나고 나서야 코마네치의 불행에는 마침표가 찍힌다. 25일 런던 스트랫퍼드에 있는 아디다스 라운지에서 코마네치를 만났을 때, 기자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험난한 인생을 헤쳐올 수 있었느냐고. 체조선수로 어린 나이에 성공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그의 답은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만 특별히 힘들었던 건 아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어렵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체조를 하며 내 인생의 기초를 쌓았다. 어렸을 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냈고, 그런 토대 위에서 금메달이란 보상이 돌아왔다. 체조를 했기 때문에 인생이 그런 것이란 걸 배웠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차근차근 추진한다면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한다.”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건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에게 딱 맞는 말이다. 소년 급제는 불행이지만, 불행했기 때문에 삶을 성숙하게 하는 통찰을 얻었다. 런던에서 성화를 봉송한 코마네치는 “이제는 뒤에서 일하는 게 좋다. 런던에서는 자원봉사도 한다. 스포츠로 세상을 바꾸는 게 즐겁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체조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세계를 무대로 자선사업도 펼치고 있다. haru@seoul.co.kr
  • 티베트 문화 간직한 무스탕을 가다

    티베트 문화 간직한 무스탕을 가다

    무스탕 하면 고급 가죽 의류나 ‘머슬카’의 상징이 된 미국 포드사(社) 자동차를 떠올리는 게 보통일 터. 하지만 트레킹 마니아라면 또 다른 무스탕을 떠올릴 게다. 히말라야 설산의 신비로움이 지배하는 네팔 깊숙한 고원 무스탕 얘기다. 26일 밤 8시 50분 EBS의 ‘세계테마기행-은둔의 왕국, 무스탕’을 통해 은둔의 땅의 속살을 엿볼 수 있다. 18세기 네팔에 자치권을 뺏긴 후 금단의 땅이 된 무스탕은 칼리간다키강을 따라 티베트 남쪽 국경에서 가샤까지의 지역을 통칭한다. 북쪽 가장 깊은 곳을 관통하고, 오지 중의 오지라 험한 협곡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난 좁은 길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 1960년대 달라이 라마가 망명한 뒤로는 중국에 대항하는 게릴라 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네팔 당국은 1992년에야 비로소 고액의 허가비를 받고 외국인 트레커들에게 문을 열었다. 오랜 세월 교류가 없었던 이곳에는 척박한 땅과 거센 바람에 맞서 화석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을 거슬러 떠난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무스탕은 고대부터 전해 오는 독특한 역사와 순수한 티베트 문화가 그대로 보존돼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도 불린다. 무스탕은 고고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지역이다. 히말라야는 한때 바다에 잠겨 고요한 세월을 보냈다. 7000만년 전 잠들어 있던 바다가 융기하기 시작했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디가온 지역에 남아 있다. 바다 밑에 있던 지층이 급속히 융기하면서 만들어진 히말라야의 지질학적 특이성을 지닌 칼리간다키강이 있다. 농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강에 모여 한 달 동안 많은 비에 쓸려 내려온 암모나이트를 캐러 다닌다. 모양새가 좋거나 독특한 나선형 모양의 암모나이트는 농사 외에 새로운 수입원이다. 주민들은 두 개의 망치를 들고 다니며 예쁜 모양의 암모나이트 화석을 캐려고 오늘도 허리를 숙인다. 무스탕의 지형적인 특성으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예술품이 ‘파이프 오르간 절벽’이다. 인간이 직접 수십, 수백년에 걸쳐 깎아 놓은 듯한 수많은 기둥이 어우러진 대협곡은 초자연적인 기운을 뿜어낸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中, 잠 안 재우고 하루 13시간 노역… 구금기간 가혹행위”

    “中, 잠 안 재우고 하루 13시간 노역… 구금기간 가혹행위”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 혐의로 체포됐다 지난 20일 114일 만에 풀려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는 25일 “중국으로부터 물리적 압박, 잠 안 재우기 등의 가혹 행위를 당했다.”면서 “이번 사건은 북한 보위부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서울 중구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납치, 테러 대상으로 지목해 중국 공안 당국이 감시했던 동료를 만난 직후 잡혔다.”면서 구금과 북한 당국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그는 “중국 국가안전부가 체포 후 3~4일이 지나서야 내가 누군지 알았다는 점에서 북한이 나를 지목해 잡아 달라고 중국에 요청했던 것 같지는 않다.”면서 “그날 중국인, 한국인을 포함해 7∼10명이 동시에 붙잡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일각에서 제기한 고위급 인사를 기획 망명시키려다 잡혔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힌 뒤 “기본적으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정보 조사, 탈북자 지원 활동을 했지만 중국에서 비슷한 활동을 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구체적 활동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중국에서의 강제 구금 경위에 대해 “지난 3월 23일 베이징을 통해 중국으로 입국한 후 27일 다롄으로 이동했다.”면서 “같은 달 29일 오전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는데 택시에 합승한 승객이 내린 후 국가안전부 요원들에게 검거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검거 당일 다롄의 한 호텔에서 조사를 받고 다음 날 일찍 단둥시 국가안전국으로 이송돼 4월 28일까지 한달간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중국 측은 처음에 변호사 접견은 허용되지 않고 영사한테는 우리가 통보할 테니 기다리라고 말했다.”면서 “영사 접견 이후 답변하겠다고 말하고 18일간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구치소 생활에 대해서는 “하루 13시간씩 노역을 시켰으며 식사도 한끼에 팥 없는 찐빵 하나를 줬으나 속이 좋지 않아 다 먹지도 못했다.”고 열악한 인권 상황을 꼬집었다. 고문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부분은 다음에 밝히겠다.”며 언급을 피했다. 김씨는 또 “귀환 조건으로 중국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구금 상태에서 당한 가혹 행위를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함구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 측의 가혹 행위가 있었다는 김씨의 주장에 대해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지난 6월 11일 김씨의 진술을 듣고 12일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등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중국 측은 조사 결과 그런 사실이 없다는 답변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김미경·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화학무기 전술’ 시리아… 러시아도 등 돌리나

    시리아 정부가 외부 공격에 화학무기로 맞대응하겠다는 벼랑 끝 전술로 우방인 러시아에까지 ‘팽’(烹)당할 위기에 놓였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7개월 전부터 화학무기를 국경지대로 옮겨 왔다는 의혹을 반군이 제기하면서, 화학무기가 실제 사용될 가능성에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군은 반군이 최근 장악한 제2의 도시 알레포를 재탈환하기 위해 반정부 시위 16개월 만에 처음으로 도심 공격에 전투기를 동원했다. 그간 민간인 학살도 눈감아 주며 시리아 정권을 비호해 온 러시아는 24일(현지시간) 엄중한 경고로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논평을 내고 “시리아는 1968년 질식성·독성 등의 가스를 전쟁 무기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제네바 의정서(1925년 체결)에 가입했다.”면서 “시리아 정부가 국제적 의무를 준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압박했다. 전날 시리아 외무부는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공식적으로 밝히고 외부 세력의 공격이 있으면 이를 사용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대해 반군인 자유시리아군(FSA)은 “정부는 국제사회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이미 7개월 전부터 대량살상무기들을 국경 지역 공항 등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면서 “여기에는 화학 성분이 포함된 무기와 장비들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 정부는 24일 화학무기 대응 부대를 시리아와의 국경지대에 배치한 데 이어 25일에는 국경 검문소 13곳을 폐쇄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화학무기 제거 작전으로 시리아 사태가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이날 이스라엘 라디오와 가진 인터뷰에서 “만약 레바논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가 시리아의 화학무기고를 급습하면 즉각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우리에게 이는 개전의 이유이자 레드라인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도 크네세트(의회) 외교·국방위원회 보고에서 “화학무기만 정확하게 포착해 제거하기 힘들기 때문에 시리아에 대한 모든 군사작전이 전면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우려하는 테러 집단의 화학무기 악용 가능성은 최악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은 알아사드 정권 붕괴 시 발생할 수 있는 ‘악몽의 시나리오’로 이를 포함해 종파 간 유혈사태 격화, 정권 공백기를 노린 이슬람 극단주의의 세력화, 종파 간 권력 투쟁으로 인한 정권 분열 및 내전 장기화, 터키·이라크·이스라엘 등 인접국의 정치적 불안정 촉발 등 다섯 가지를 꼽았다. 알아사드 정권을 버린 고위급 외교관은 25일까지 3명으로 늘었다. 압둘라티프 알다바그 아랍에미리트(UAE) 주재 시리아 대사와 그의 부인 라미아 알하리리 키프로스 주재 시리아 대사대리 라미아 알하리리가 하루 간격으로 카타르로 망명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김영환씨 25일 기자회견… 中 구금경위 밝힐 듯

    북한 인권운동가로 114일간 중국에 강제구금됐다가 지난 20일 풀려난 김영환씨가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구금 경위 등을 밝힐 예정이다. 김씨는 그동안 북한 반체제 조직이나 인사와 연계해 모종의 활동을 시도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와 어떤 얘기를 할지 주목된다.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는 김영환씨가 25일 오전 11시 서울시 중구 정동 ‘사랑의 열매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건 개요 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최홍재 석방대책위 대변인은 “김씨가 우리 국민이 궁금하는 것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 혐의로 체포됐던 김씨가 북한 내 인사의 기획 망명을 추진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북한 관련 정보에 밝은 한 소식통은 “김씨가 북한내 중량급 인사를 데려오려다 실패했다고 들었다.”면서 “이 인사는 나이가 많고 북한에서 사실상 연금상태에 있어 접근이 어려운 사람이나 탈북자 인권문제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알아사드 건재 확인되자 ‘권력이양’ 언급 논란

    시리아의 국경 검문소와 수도 다마스쿠스 일부를 반군에 내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질서 있는 방식’으로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AFP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알아사드가 조건부라도 권력 이양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기에 그만큼 사정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가 사퇴설을 부인하고 나서 혼선을 빚고 있다. 프랑스 주재 러시아 대사 알렉산데르 오를로프는 이날 라디오 프랑스인터내셔널(RFI)과의 인터뷰에서 “알아사드는 서방세계가 합의한 권력 이양안을 받아들였고, 야당(반군)과 대화할 대표를 지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알아사드는 (권력 이양이) 질서 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알아사드가 자신과 가족들의 신변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아사드의 망명이 시간문제라는 것이냐는 질문에 오를로프는 “개인적으로는 알아사드가 (시리아에) 남기는 힘들 것”이라며 동의했다. 오를로프의 이 같은 발언이 보도된 직후 시리아 공보부는 “(오를로프 대사의 발언이)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러시아 외무부도 트위터 등에 올린 글을 통해 “파리 주재 러시아 대사의 발언이 잘못 해석됐다.”면서 “그의 발언이 문맥을 벗어나 발췌됐다.”고 주장했다. 시리아 국영TV는 지난 18일 반군의 폭발물 공격으로 부상당한 정보 총책임자인 히샴 베크티아르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국제 외교가에서는 국방부 장차관에 이어 정보 총책의 사망으로 철권통치를 지탱하는 이너서클이 와해되면서 궁지에 몰린 알아사드가 러시아 등으로 망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로이터는 반군 영향력 아래 들어간 다마스쿠스 주민들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인용, “다마스쿠스에 있는 경찰 본부가 검은 연기에 휩싸인 뒤 반군에 의해 약탈됐다.”며 “정부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징조가 보인다.”고 전했다. 시리아 최대 반군 조직인 자유시리아군(FSA)은 “터키로 이어지는 바브 알하와 검문소와 자라블루스 검문소를 장악했으며, 다마스쿠스~바그다드 고속도로와 이라크와의 국경 검문소 아부 카말 역시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군이 국경 검문소를 장악하면서 해외 보급로를 확보한 셈이다. 시리아 유혈사태 이후 지난 19일 하루 사망자로는 가장 많은 310명 이상이 숨졌다고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밝혔다. 또 이틀 만에 3만명 이상이 레바논으로 탈출한 것으로 유엔이 밝혔다. 앞서 부상설과 탈출설 등이 난무한 가운데 알아사드가 이날 처음 국영TV에 출연,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열세에 몰린 알아사드가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조지 리틀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해 “배제할 수 없다.”며 “화학무기 사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유엔의 새 결의안이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것과 관련, 양국에 국제사회의 비판이 집중됐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과 러시아는) 역사의 반대쪽에 섰다.”고 비난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알아사드 몰락 초읽기… 美, 시리아 내전 ‘출구전략’ 짠다

    42년간 시리아를 철권 통치한 알아사드 일가의 몰락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반군의 급습으로 ‘국방부 장·차관의 몰살’이라는 최악의 타격을 입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망설까지 나돌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에 대비해 비상계획 마련에 착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 16개월 만에 전환점을 맞은 반군은 “다마스쿠스를 해방시키겠다.”며 도심을 봉쇄한채 정부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주목할 점은 행방이 묘연한 알아사드의 소재와 신변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나온다는 것이다. 전날 사건 현장인 다마스쿠스 중심가의 국가보안기구가 대통령 관저와 가깝다는 점에서 부상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가 이미 다마스쿠스를 떠나 지중해 항구도시 라타키아로 피신했다는 설과 함께 모스크바로 망명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알아사드의 부인 아스마가 이미 시리아를 떠나 러시아에 머물고 있을 수 있다고 19일 보도했다. 하지만 러시아 주재 시리아 대사는 아스마가 대통령과 함께 다마스쿠스에 머물고 있다며 러시아 도피설을 부인했다. 미국 정부는 시리아 정권 붕괴에 따른 비상대책으로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격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무기를 보유한 시리아 정권이 이를 민간인이나 반군에 사용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정부 소식통들은 최근 국방부 관계자들이 이스라엘 국방부 관리들과 만나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무기시설을 공격할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알아사드가 이스라엘의 개입에 대한 국민 반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미국은 현재 이 방안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일 시리아 유혈 사태를 중단시키기 위해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이 마련한 새로운 제재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예상대로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해 부결됐다. 새 결의안은 알아사드가 인구밀집 지역에서 10일 안에 병력과 중화기를 철수시키지 않으면 비군사적 제재는 물론 무력개입에도 나설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표결을 하루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알아사드 퇴진 허용을 촉구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와는 별도로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외교장관들은 오는 23일 알아사드의 측근 26명의 자산을 동결하고, 알아사드 정권에 반군 진압용 무기와 물자를 나르는 것으로 의심되는 항공기와 선박을 조사하는 방안에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AFP는 보도했다. 이번 사건으로 새로운 변수들이 향후 시리아 사태를 가늠할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적했다. 우선,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탄압을 지휘했던 군 지도부의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지다. 숨진 다우드 라지하 국방장관과 알아사드의 매형인 아세프 샤우카트 차관은 반정부군에 대항할 전략을 짜온 컨트롤타워로, 대체할 만한 ‘인물’이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알아사드 이너서클의 심리 변화도 관건이다. 그간 시리아 사태에서는 측근들의 이탈이 리비아 사태 때보다 적었다. 가족까지 겨냥한 정부의 보복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반군이 알아사드의 심장부까지 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측근들이 대규모로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프랑스 NGO “오리의 정치적 망명 허용하라!”

    ”오리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라!” 이런 이색적인 주장이 최근 프랑스에서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망명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는 프랑스의 비정부기구(NGO) L214. 이 단체는 최근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까지 벌였다. 단체가 오리 망명운동을 펴게 된 건 미국 캘리포니아가 오리들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천국(?)이 된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 1일(현지시간)부터 푸아그라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푸아그라는 거위나 오리의 간으로 만드는 프랑스의 대표적 요리다. L214는 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살생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프랑스오리들에게 망명을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관계자는 “푸아그라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한 게 캘리포니아가 처음은 아니지만 동물보호에 커다란 진전인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L214에 따르면 프랑스에선 매년 오리 7000만 마리가 살생돼 푸아그라로 변신(?), 식탁에 오른다. 이 가운데 절반은 푸아그라 요리에 적절하지 않다는 암컷 오리다. 한편 캘리포니아의 푸아그라 금지 법률은 현지 오리사육협회 등 관련 단체의 강한 반발을 사며 위헌 논란에 휘말렸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이라크 주재 대사 망명 선언… 시리아 ‘이너서클’ 붕괴 가속

    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으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시리아에 엑소더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군 장성은 물론 대사·석유차관 등 정부 고위급 관리들까지 행렬에 동참하는 등 ‘이너서클’(핵심 권력집단) 붕괴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나와프 알파레스 이라크 주재 시리아 대사가 11일(현지시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유혈 진압에 반대해 망명을 선언했다고 AP·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지난해 3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고위 외교관 출신의 망명자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알아사드 비난… 터키행 유력 알파레스는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시리아를 대표하는 대사 자리와 (시리아 여당인) 바트당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당원 동지들은 국민과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한 알아사드 정권에서 이탈하기를 바란다.”면서 “특히 군부는 대포와 총구를 국민을 살상하는 알아사드 정권의 범죄자들을 향해 겨눠 달라.”고 호소했다. 알파레스의 망명국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지만 터키행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이) 그의 망명 국가에 대해 12일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성·석유차관 등 잇단 탈출 그의 망명은 알아사드 대통령의 친구이자 공화국수비대의 지휘관 중 한 명인 마나프 틀라스 준장이 지난 5일 터키로 전격 탈출한 뒤 이뤄졌다. 앞서 2일 대령을 포함한 14명의 장교와 군인 71명이 터키로 집단 망명했고, 지난달 21일에는 시리아 전투기 조종사인 하산 함마데흐 공군 대령이 미그21 전투기를 몰고 요르단 국경을 넘어 망명했다. 지난 3월에도 압도 후사메딘 석유차관이 알아사드에 반기를 들고 반군에 합류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부터 알아사드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에서는 정부군의 유혈 진압으로 1만 70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추산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사우디 ‘바비’공주 英 망명 신청, 왜?

    사우디 ‘바비’공주 英 망명 신청, 왜?

    인형 같은 외모 덕에 ‘바비’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 사라 빈트 탈랄 빈 압둘아지즈(38)가 영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사우디 권력층의 탄압이 걱정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왕가 핵심 계층이 영국 망명을 신청한 것은 처음이어서 사우디 왕가와 영국 정부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사라 공주는 6일(현지시간) 신변 보호를 위해 망명하고 싶다는 뜻을 변호사를 통해 영국 내무부에 알렸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7일 보도했다. 그는 사우디 내 자신의 반대 세력이 “내가 이란과 손잡고 사우디에 등을 돌렸다고 몰아세운다.”면서 재산도 모두 동결된 상태라고 호소했다. 또 사우디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자신을 납치해 사우디로 돌려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라 공주의 망명신청 이면에는 사우디 왕실의 내부 권력 간 팽팽한 긴장과 갈등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라는 아버지인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와 사이가 틀어진 2007년 영국으로 건너왔다. 2008년 자신의 어머니가 숨지자 오빠인 투르키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와 상속 다툼을 벌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경쟁을 벌이던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제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나이프 왕세제가 지난달 숨진 뒤 위협을 느껴 망명을 서두르게 됐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영국 당국은 사우디로 돌아가면 신변상 위험이 있을 것이라는 사라 공주의 주장이 사실인지를 조사해 망명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가 공주에게 귀국을 요구하고 있어 ‘외교적 딜레마’에 빠진 영국이 중간에서 난처한 처지가 됐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사라 공주는 현재 런던 소재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네명의 자녀, 애완견 2마리 등과 함께 머물고 있으며 사설 경호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민족갈등 中위구르 ‘일촉즉발’

    2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신장(新疆) 우루무치(烏魯木齊) 유혈사태 3주기를 맞아 신장 일대에 또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신장은 시짱(西藏 티베트), 네이멍구(內蒙古)와 함께 중국내 3대 민족 갈등의 화약고로 통한다. 우루무치 자치구 장춘셴(張春賢) 당 서기가 전날 지역 내 한 대테러 전담 특수부대를 방문했으며 부대원들과 함께 직접 실탄 사격 훈련에도 참가했다고 5일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 계열의 환구시보(環球時報) 등 중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장 서기는 이날 부대원들에게 “신장자치구의 안정 문제가 심각하고 안정의 기초 또한 취약하다. 경계심을 강화해 폭력 테러 세력이 숨을 곳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며 당에 대한 충성과 사회안정에 대한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가 직접 실탄 사격까지 해가며 대테러 경비를 강화한 것은 우루무치 유혈사태 3주기를 맞아 크고 작은 테러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 있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위구르 독립세력으로 추정되는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9.11 테러 사태를 연상케 하는 비행기 공중 탈취 사고가 발생했다. 젊은 위구르인 남성 6명이 쇠지팡이 등 흉기를 소지하고 신장 허톈(和田)에서 베이징(北京)으로 향하던 톈진(天津)항공 소속 여객기에 탑승해 승객들을 위협했으나 이 비행기에 타고 있던 특수경찰들에 의해 바로 제압됐다. 이 과정에서 테러리스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면 중국 망명 위구르인 조직인 위구르인대표대회 대변인 디리샤는 “인종차별 발언을 한 한족들과 말다툼 끝에 빚어진 단순 폭력사건을 중 정부가 비행기 납치 사건으로 둔갑시켰다.”며 3주기를 앞두고 이 지역을 통제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날 밤에는 두바이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던 아랍에미리트연합 항공 소속 비행기가 신장 지역 상공에서 화재로 우루무치 공항에 비상착륙했던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항공사측은 화물칸에 있던 승객의 휴대전화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위구르인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이란 의혹이 제기된다. 이 밖에 지난 1일에는 신장 우루무치 한 마을의 농부 류유팡(劉有芳)이 밭에서 일하다 맞아죽은 채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해 일대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이날 반관영인 중국신문망이 보도했다. 피해자는 38세의 한족 여성으로 우루무치 공안당국은 인근 100여가구를 수색하는 등 범인 검거에 총력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부고] 광복군 입대 항일운동 김정숙 여사

    [부고] 광복군 입대 항일운동 김정숙 여사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운동을 펼친 애국지사 김정숙 여사가 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6세. 김 여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김붕준의 딸로서 어머니와 오빠, 언니, 남편이 모두 애국지사다. 1916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1919년 어머니와 중국으로 망명, 1937년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해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1940년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을 조직해 상임위원 겸 선전부장을 맡다 같은 해 광복군에 들어가 대적심리공작을 수행했다. 1942~45년 임시정부에서 일하다 귀국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고원석(사업)씨와 딸 원삼(미국 거주)씨가 있다. 빈소는 경희의료원, 발인은 8일 오전 10시. (02)958-9545.
  • 알아사드 ‘전시선언’… 그날 곳곳서 교전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이 1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전시 상황’을 공식 선언하며, 내각에 철저한 승전을 독려했다. 사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움직임은 미국과 러시아의 신경전으로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출구 없는 내전 상황에서 시민 희생만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알아사드는 26일(현지시간) 새 내각과의 첫 회의에서 “모든 양상에서 실제 전쟁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선언하고, “모든 정책과 역량을 전쟁 승리에 쏟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자신이 권좌에서 물러나기를 요구하는 서방 국가들에 대해 시종일관 일방적인 요구만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우리의 이해관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관영 사나 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민과 솔직하게 소통해야 시민도 우리를 이해하고 지지할 것”이라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외신들은 이날도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으로 민간인 68명을 비롯해 적어도 116명이 숨졌다고 시리아 인권관측소를 인용, 보도했다. 특히 인권관측소는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불과 8㎞ 떨어진 공화국 수비대 초소 인근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엘리트 병사들로 구성된 공화국 수비대는 알아사드의 동생인 마히르 사단장이 이끄는 부대로, 수도 방위의 임무를 맡고 있다. AFP통신은 “정부군이 수도에서 이처럼 가까운 곳에서 대포를 쏘며 교전한 것은 처음”이라고 인권관측소의 라미 압델 라흐만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알아사드의 발언과 수도 인근의 교전 등은 정부군의 잇따른 요르단·터키 망명 사례와 함께 알아사드 정권의 통제력 약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시리아의 터키 전투기 격추 사건과 관련한 양국 간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터키는 이날 자국군에 경계령을 내리고 시리아 국경에 탱크와 장갑차 15대와 미사일 장착 차량 등을 전진 배치했다. 이런 가운데 오는 30일 코피 아난 유엔·아랍연맹 공동 특사의 제안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미국과 러시아 모두 참석 의사를 밝혔지만, 이란의 회의 참석을 주장하는 러시아의 입장에 미국이 난색을 표해 실효성 있는 해법이 마련될지는 불투명하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약기편람은 박은식의 ‘한국통사 초고본’ 맞다”

    “약기편람은 박은식의 ‘한국통사 초고본’ 맞다”

    작자 미상으로 1904년 쓰인 것으로 알려진 ‘약기편람’(略記便覽)이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백암(白巖) 박은식(1859~1925)의 ‘한국통사 초고본’으로 최종 확인됐다. <서울신문 3월 14일자 2면> 쓰인 시기는 ‘한국통사’(韓國痛史)가 출간되기 5년 전인 1910년 12월 이후인 것으로 밝혀졌다. ‘약기편람’을 소장하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김학수 장서각 국학자료조사실 실장은 26일 “연구원이 소장한 약기편람은 박은식 선생이 1915년 상하이에서 출판한 한국통사의 초고본이 맞다.”면서 “써 내려갈 목차에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사건, 안명근의 데라우치 암살 기도 사건 등을 잡아놓은 것을 볼 때 아무리 빨라도 1910년 12월 이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통사 출간 5년 전 작성… 1915년 출판” 한국통사는 박은식이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상하이로 망명해서 서양의 근대적 역사서술 방식을 받아들여 쓴 역사책이다. 본문은 3편 114장으로 1864년 고종 즉위로부터 1911년 이른바 ‘105인 사건’ 발생까지 47년간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서술했고, 중요 부분은 각 장 뒷부분에 저자의 의견을 달았다. 약기편람은 한국통사 가운데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동학란, 명성황후 폐비 후 복위, 지방의병, 아관파천과 김홍집 정권 등장 등을 써 놓았고, 박승환 순국, 장인환·전명운 의거, 안중근 의거 등을 목록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책자다. 김학수 실장은 “지난 3월 14일 서울신문이 보도한 이후 약기편람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해제도 필요 없고, 망설일 것도 없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면서 “다만, 백암이 손수 약기편람을 정서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시켜 정성스럽게 필사한 것인지는 더 검토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암의 글씨는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됐고, 그의 후손들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밝혀, 친필 여부를 감정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기획처장은 “약기편람의 글씨가 아주 가지런한 것이 행서나 초서체로 흘려쓴 백암의 글씨체와는 아주 달라 보이지만, 다산 정약용이 직접 쓴 초고본들도 해서체로 정서해서 아주 가지런하므로, 평소 글씨체와 다르다고 친필이 아니라고 성급하게 단정지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수록 내용 대부분 한국통사와 동일 서울신문은 지난 3월 14일자에서 “약기편람은 현재 저자 미상으로 알려졌지만, 수록 내용 대부분이 한국통사와 동일한 만큼 저자는 박은식이 분명하다.”는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의 주장을 보도한 바 있다. 김 교수는 한국통사(아카넷 펴냄)를 번역해제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우연히 발견해 번역해제본에 이 사실을 발표했다. 김 실장은 “이번에 발견한 초고본은 백암 선생의 한국통사 저술의 과정을 밝힐 수 있으며, 백암 전집을 총체적으로 꾸밀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약기편람에 대한 서지정보(저자, 출판사명, 출간연도 등 책에 관한 정보)도 이른 시일 안에 바꿔놓겠다고 약속했다. 김 실장은 “학자들을 위해 무엇보다 약기편람에 대한 서지정보를 빨리 바꿔놓고, 열람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서각의 보유목록 인쇄물의 수정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인터넷 서지정보는 빨리 바꿔놓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임진전쟁 7주갑에 조선 선비들 생각한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임진전쟁 7주갑에 조선 선비들 생각한다

    올해는 임진전쟁이 발발한 지 7주갑(420년)이 되는 해이다. 동양은 예로부터 간지(干支)로 연, 월, 일을 계산했기 때문에 7주갑은 오늘날로 말하면 400주년이나 500주년처럼 뜻깊은 해이다. 이에 따라 7주갑을 기념하여 임진전쟁의 의미를 기억하고자 하는 많은 행사들이 경향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일 안동에서 동시에 열린 서애 류성룡 선생 사제사(賜祭祀:나라에서 내리는 제사)와 7주갑 기념식을 필두로 19일에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임진전쟁 7주갑, 그리고 420년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이 개최됐다. 29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임진전쟁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적극적 측면에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세를 얻는 느낌이어서 한편으로 반갑다. 사실 임진전쟁을 조선이 일본군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명나라의 구원으로 겨우 명맥을 부지하고, 이어 어렵게 강화에 이르러 운좋게 국체를 보존한 전쟁으로 일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전쟁에 관여한 3국 가운데 전후 국체를 보존한 나라가 조선뿐이라는 것은 역으로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조선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힘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무엇보다도 조선 선비들의 역할을 꼽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국난 자체를 초래한 책임을 물어 당시 선비들의 역할을 깎아내리지만, 이는 원론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전쟁과 같은 국가적 재난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한 시대 사회적 지도층의 역사적 책무를 평가하는 데 있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불가피하게 국난에 직면했을 때 그들이 어떤 자세들을 보였는가 하는 점이다. 임진전쟁 당시 많은 조선의 선비들은 국난을 초래한 책임을 통감하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조야(朝野)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특히 선비들이 이끈 의병의 활약은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 전국적으로 활동한 의병의 수는 2만 3000여명으로 추산되는데, 붓 대신 칼을 든 이들은 일본군의 진격을 지체시키거나 퇴로를 차단하는 활동을 펼쳤다. 개전 초기 일본군의 호남 진입을 막아 조선의 곡창지대를 지켜낸 정암진 전투를 비롯하여 당시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이들은 관군을 대신하거나 관군과 협력하면서 전세 반전의 발판을 만들어 나갔다. 금산의 칠백의총(七百義塚)이나 민·관 3000여명이 옥쇄(玉碎)한 남원성 전투 등의 예에서 보듯이, 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따랐음은 물론이다. 조선 선비들의 활약은 의병활동에서만 두드러졌던 것이 아니다. 류성룡 선생처럼 선조의 명나라 망명을 반대하고 전황을 몸소 점검하며 이순신과 같은 인재를 발탁하여 미래를 대비한 이들도 조선의 선비들이다. 조선 선비들의 이러한 행동들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왜 개인적 안위를 돌보지 않고 몸을 던졌을까? 여러 가지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공동체가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기꺼이 목숨을 던져 이를 구하는 데 앞장섰던 ‘견위수명’(見危授命)과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이 핵심이 아닐까 한다. 임진전쟁 당시 개인의 안전보다 공동체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던 조선 선비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요청되는 사회적 덕목이다. 이 점에서 임진전쟁 7주갑이 전쟁을 실질적인 승리로 이끌었던 조선 선비들의 그런 삶의 자세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사’는 곧 ‘해석의 역사’라고들 한다. 억지해석에 토대를 둔 견강부회도 곤란하겠지만 필요 이상의 자학적 역사인식도 문제이다. 부정적인 유산은 반드시 버려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옥석(玉石)을 구분하는 혜안마저 잃어 버려서는 발전이 없다. 임진전쟁 7주갑 해에 맞는 호국의 달을 보내며 조선의 선비들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이다. 한국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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